제도적 이슬람주의와 민주주의

이 장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굵직한 주제 네 가지를 제기했다.
1.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의 통일성과 다양성: 어떤 카테고리에 다양성이 있다고 해서 공통인수가 전무하다는 뜻은 아니다.— 정말 그렇다면 카테고리는 존재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이슬람교에는 모든 무슬림이 공감하는 핵심 신조— 즉 세계관과 신앙 및 윤리적 가르침 등— 가 있다. 30여 년간 아프리카 및 아시아의 이슬람국가 스무 곳을 다니며 연구해온 나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보이는 사례를 숱하게 목격했다. 이슬람주의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이슬람교를 샤리아로 통일하고, 코란에서 법이 아닌 도덕을 언급할 때에만 “샤리아”가 등장한다는 사실을 대놓고 외면할 뿐 아니라, 자칭 권위자라는 위인들이 주장하는 “글로벌 칼리프” 가 아닌 니잠 이슬라미, 즉 신이슬람 질서를 확립하려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국가(다울라)” 나 “질서(니잠)”— 이슬람주의자들이 샤리아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매우 중요한 개념— 가 코란에는 없다. 따라서 이슬람주의자들이 공감하는 것은 왜곡된 샤리아 전통에 근거하여 세계 재편성을 지향하는, 근대의 종교화된 정치 이데올로기인 셈이다. 이에 동조하는 무슬림이 이슬람주의자가 되는 반면, 이에 편승하지 않은 채 이슬람교를 영적으로 이해하는 독실한 무슬림은 이슬람주의자가 아니다. 사실, 민주정치의 참여를 지지하고 이슬람주의자의 지하드운동은 포기한다는 “포스트이슬람주의” 는 앞뒤가 맞지 않는 용어다.
“신이슬람 질서” 를 창출하고 싶어 안달하는 이슬람주의자들이 어떻게 “포스트이슬람주의자” 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이 목표가 폐기될 때만이 포스트이슬람주의를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이슬람주의 아젠다를 포기한 이슬람 조직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터키의A KP를 비롯한 일부 정당은 위헌조치를 피할 요량으로 이슬람주의라는 정체성을 부인하고 있지만 이를 포스트이슬람주의의 징조로 보기는 어렵다. 어쨌든, 제도적 이슬람주의자와 지하디스트의 차이는 모호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일부 이슬람주의 당은 선거에 동의하나 민병대를 지금까지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즉, 하마스와 헤즈볼라 및 최고 이슬람 이라크 위원회는 의회의 대표를 선출해 적법성을 주장하는 동시에 테러를 자행하며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2. “민주정치에 대한 순수 의지”: 이 맥락에서 “순수”라는 말은 민주적 다원주의에 입각한 진보적 이해를 일컫는다. 이슬람주의의 이데올로기와 그 주축을 연구한 결과는 이 같은 의지를 둘러싼 신념을 뒷받침하지 못한다. 신이슬람 질서는 전체주의적 질서다. 이슬람주의자들의 사상 및 문화적 가치관을 바꾸면 얼마든지 개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지금껏 정치적 이슬람교를 연구하면서 그런 변화를 체감한 적은 없었다. 수사적으로나 전략적으로 민주정치에 적응하려는 노력은 있었지만 이는 이집트의 무슬림 형제단의 경우에서와 같이 모두 법적 제재를 피하거나, 추방을 면하기 위한 수단적인 이유에 그치고 말았다. 물론 그런 개혁을 감행한 위인이 전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이슬람주의를 전면 포기했다고 말할 수 있을 테지만 AKP나 무슬림 형제단은 아직 그런 적이 없었다.
3. 이슬람주의의 이데올로기와 민주정치의 양립성: 정치를 이슬람주의식 종교로 바꾸는 데에는 타협이 없다. 신성한 종교에는 협상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반대는 곧 이단으로 정죄될 뿐이며, 민주정치의 필수요소인 다원주의와 다양성에 대한 관용은 “분리를 조장한다” 는 이유로 배격한다. 선거에 참여하고 폭력을 애매하게 폐기하는 것만으로 이슬람주의자들이 순수하게 민주정치를 지향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이슬람주의 조직은 샤리아라는 허울 아래 비무슬림 소수나 종교색을 띠지 않는 정당과는 권력을 분담하지 않으려 한다. 그들은 전체주의적인 샤리아가 허용한다고 믿는 것만 수용한다. 샤리아가 헌법의 가치와 같다는 주장이 있으나 사실 입헌주의와 샤리아는 본질이 아주 다르다.
4. 합류와 배제: 이슬람주의 국가질서가 민주정치와 공존할 수 없음에도, 이슬람세계에서 주요 야권세력을 대변하는 이슬람주의 조직체를 민주 정부는 외면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두 가지 방편이 있는데, 첫째는 터키가 대변하는 합류요, 둘째는 알제리의 경우처럼 이슬람주의 당을 공공연히 금지하는 배제다. 나는 개인적으로 터키의 모델을 선호한다. 물론 터키의 AKP에 안심이 된다는 뜻은 아니다. 민주적 다원주의를 버리고 “점진적 이슬람주의화” 를 추구하니 말이다. AKP는 이슬람주의 정당으로 겉으로는 그런 척해도 독일 기독교 민주당원과 비견할 만한 이슬람교의 보수주의는 아니다. 이는 숨은 유대인dönme(돈메)이라 규정된 세속주의자를 비롯하여, 쿠르드족과 알라위족과 같은 소수 민족・종교집단을 용납하지 않았다. 합류 정책은 배제되었던 당에 힘을 실어주었다. AKP는 선거를 “권력에 이르는 가장 적법한 방책” 으로 활용하여 “주로 이슬람주의 노선에서 공화국을 재편”할 수 있었으나 종착역은 민주화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