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이야기: 통일을 위해


 
1979년 어느 날 MIT 물리학과 교수이며 이론물리학자, 우주론학자 앨런 구스Alan Harvey Guth(1947~)는 지난 15년 동안 빅뱅이론을 끈질기게 연구한 끝에 이론의 생사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수정을 가했습니다. 그는 우주가 태어나자마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팽창hyperinflation되었다고 가정함으로써 우주론과 관련된 몇 가지 수수께끼를 해결했으며, 이로 인해 우주론은 혁명적인 변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얻어진 관측결과는 구스의 주장이 사실이었음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이론inflation theory이 해결한 문제 중 하나는 우주의 평탄성flatness과 관련 있습니다. 관측 자료에 의하면 우주의 곡률curvature은 거의 제로로 나타나는데, 이는 과거의 천문학자들이 주장했던 내용과 일치합니다. 즉 우주를 빠르게 팽창하는 풍선의 표면에 비유하면 인플레이션을 겪으면서 엄청난 규모로 팽창되어 풍선의 표면(공간)이 거의 평탄해졌다는 것입니다. 우주의 시공간은 인플레이션을 겪으면서 엄청난 규모로 팽창되어 지금은 거의 평탄해진 상태입니다.

구스의 발견이 높게 평가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로부터 입자물리학과 우주론 사이에 긴밀한 협조가 형성되었다는 점입니다. 입자물리학이란 세상이 무엇으로 이루어져있으며 그것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를 밝히는 물리학의 한 분야입니다. 현대의 천문학자들은 우주의 가장 깊은 비밀을 밝히는 데 미시세계의 물리학이 절실하게 요구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우주론은 입자물리학이나 양자역학과 운명을 같이하게 된 것입니다.

앨런 구스는 1947년 뉴저지의 뉴브런즈윅에서 태어났습니다. 1960년대 MIT에 진학한 그는 입자물리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상호작용을 하나의 체계로 통일하는 통일장이론unified field theory에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그 무렵에 복잡다단한 우주를 간단한 법칙으로 통일시키는 이론이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최고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과학자들은 자연에 존재하는 힘이 가장 근본적인 단계에서 네 종류로 분류된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힘은 태양과 행성들을 한 가족으로 맺어주고 있는 중력입니다. 중력이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진다면 별들은 당장 폭발하고 지구는 산산이 분해되며 우리 모두는 시속 수천km의 속도로 우주공간을 향해 내던져질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도시의 밤거리를 밝히고 TV를 볼 수 있게 해주며 이동전화와 라디오, 레이저빔 그리고 인터넷까지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전자기력electromagnetic force이 있습니다. 전자기력이 사라진다면 지금의 문명은 당당 수천 년 전으로 되돌아가 암흑과 고요 속에 잠길 것입니다. 전자기력의 얼개를 초미세영역에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것은 광자라는 작은 입자에 의해 전적으로 좌우되고 있습니다.

세 번째 힘은 방사능 붕괴과정에서 작용하는 약력weak force인데, 이 힘은 핵자들을 한데 묶어놓을 정도로 강하지 않기 때문에 핵자들이 떨어져나가거나 붕괴되는 과정에만 관여합니다. 또한 약력은 방사능물질을 통해 지구의 중심부를 뜨겁게 달궈서 화산활동을 일으키는 근본적 원인이기도 합니다. 약력은 전자와 뉴트리노neutrino(중성미자, 질량이 없고 다른 입자와 상호작용도 거의 하지 않는 입자. 뉴트리노는 수조km 두께의 금속을 자연스럽게 통과할 수 있음)의 상호작용에 기초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W-보존과 Z-보존이 교환됩니다. 보존boson을 보스입자라고도 합니다. 입자계가 따르는 통계는 입자의 생성, 소별 연산자가 따르는 교환관계에 의해 정해집니다. 스핀이 0 혹은 정수인 입자는 양자통계의 일종인 보스-아인슈타인통계Bose-Einstein statistics(같은 입자로 된 계에서 각 입자의 스핀이 정수이면 그 파동함수는 두 입자의 교환에 대해 부호가 바뀌지 않는 불변이며, 1입자상태를 점유하는 입자 수는 0에서 무한대까지의 임의의 수를 취할 수 있다. 이런 입자를 보존(보스입자)이라 하며 보존은 보스-아인슈타인통계를 따름)를 따르며, 짝수의 질량수를 가진 원자핵atomic nuclei과 광자photon, 포논phonon, 마그논magnon 등은 보존입니다.

마지막으로 핵자nucleon(양성자와 중성자)들을 단단하게 묶어두는 핵력nuclear force(강력이라고도 함)이 있습니다. 핵력이 작용하지 않는다면 모든 원자핵은 당장 분해되고 그 결과 우리의 눈에 보이는 모든 물체도 근본적인 단계에서 순식간에 와해될 것입니다.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원소가 106종(천연적으로 존재하는 원소는 90종이고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16종을 합해 모두 106종으로 구성되어 있음)인 이유는 핵력에 의해 핵자들이 안정된 결합을 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106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항성(별)이 아인슈타인의 E=mc2을 통해 빛을 방출할 수 있는 것도 핵력과 약력이 함께 작용한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핵력이 없으면 우주는 칠흑 같은 어둠으로 덮일 것이며 지구의 바다는 모두 얼어붙을 것입니다.

네 종류의 힘들이 그 특성과 세기가 제각각이어서 언뜻 보기에는 공통점이 없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전자기력은 가장 약한 힘인 중력보다 무려 1036배나 강합니다. 지구의 질량은 6조×1조kg이나 되지만, 이로 인해 발생하는 중력은 아주 미미한 전자기력으로 상쇄됩니다. 중력은 항상 잡아당기는 방향(인력)으로 작용하지만 전자기력은 전하의 부호에 따라 인력 혹은 척력으로 작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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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의 자연주의 회화



 

 

 

 

마네는 야외로 나가 풍경을 그리기도 했지만, 모네와는 달리 실내에서 모델을 그리는 데 더 익숙해 있었습니다. 자연에 대한 그의 견해는 모네와는 사뭇 달랐는데 젊은 화가들에게 한 말에서 알 수 있습니다.

 

기억을 풍부하게 하게. 자연이 주는 것이란 정보뿐일세. 기억을 놓치는 순간 진부한 자연으로 떨어지게 된다네. 늘 주인이 되어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도록 하게. 그림은 지겨운 과제가 아니니까.

 

마네가 야외로 나가 그리기를 꺼려한 또 다른 이유는 왼쪽 다리에 마비증상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이 증세를 안 건 1876년 오슈드 가족과 함께 지낼 때였습니다. 처음에는 류머티즘인 줄로만 알았는데, 당시 사람들은 임질과 관절염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마네의 주치의도 관절염으로 오진했습니다. 2년 후에는 매독 3기의 증세인 이동성 운동실조로 인해 마비증세가 더욱 심해졌고, 오른쪽 다리를 굽히지 못할 정도로 악화되었습니다.



 

 



마네의 <나나 Nana>, 1877, 유화, 150-116cm.

 

마네가 이 작품을 장식품, 그림, 부채 등을 파는 카푸친 가의 상점에 진열하자 많은 사람들이 보려고 몰려들었습니다. 부르주아 생활의 이면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속옷차림의 여인이 거울 앞에서 루즈를 바르고 있습니다. 야회복을 차려입은 신사는 여인이 화장을 끈나기만 기다리며 앉아 있습니다. 신사의 기다림에 위축된 여인의 모습과 허황된 신사의 모습이 대조됩니다. 배경에는 일본 벽화에서 볼 수 있는 물가는 거니는 학의 모습이 있습니다. 모델 앙리에트 오제는 당시 오렌지 공의 애인이었으며, 그녀는 ‘시드론(레몬’으로 불리었습니다.



 

에밀 졸라의 소설 『나나』가 출간되기 전 1877년에 마네가 먼저 <나나>를 그렸습니다. 졸라는 『나나』를 1879년 10월부터 『르 볼테르 Le Voltaire』에 연재하다가 1880년 2월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졸라와 마네의 관계를 알고 있던 유이스망은 “마네는 졸라가 소설에서 보여주려고 한 여인을 잘 묘사했다”면서 마네의 <나나>는 졸라가 『나나』를 쓰는 데 직접적인 도움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마네는 훗날 소설 『나나』를 읽고 놀라울 정도로 훌륭한 작품이라고 졸라에게 말했습니다. 졸라는 소설에서 나나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속옷을 겨우 걸친 그녀는 아침 내내 서랍장 위에 있는 조그만 거울 앞에 붙박인 듯 서 있다. … 여전히 아이 같기도 하고 성숙한 여인 같기도 한 자신의 벌거벗은 몸, 그 싱싱한 젊음을 감상하고 있는 것이다.

 

<나나>는 1877년 국전에 낙선했는데 무도회에서 볼 수 있는 여인의 전신상이 진부한 작품으로 보였고, 그림의 모델이 화류계에서 익히 알려진 배우 앙리에트 오제였으므로 살롱 심사위원들로서는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습니다.



 

 



마네의 <스케이팅 Skating>, 1877, 유화

 

마네가 자주 가던 스케이트장에서 현대인 생활의 한 장면을 묘사한 것입니다. 모델은 <나나>에서 포즈를 취했던 앙리에트 오제입니다. 그녀의 뒤 오른쪽의 여인은 그녀의 자매 빅토리아느로 밤의 환락세계에서 오제와 인기를 다투었습니다. 이 그림에서 오제의 정력적이면서 우아한 모습이 잘 묘사되었습니다.



마네는 앙리에트 오제를 모델로 <스케이팅>도 그렸는데, 샹젤리제에 새로 문을 연 스케이트장을 찾은 우아하고 풍만한 여인의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이 작품과 <자두> 그리고 <나나>는 자연주의 주제의 그림들이었습니다.



 

 



마네의 <햄릿 역의 포르 Portrait de Faure Dans Hamlet>, 1877, 유화, 196-130cm.

 

장 밥티스트 포르는 오페라가 시작된 1868년부터 햄릿 역할을 맡았으며, 한 시즌에 무려 58번이나 무대에서 같은 노래를 불렀고, 유명해졌습니다. 그는 재능 있는 바리톤 가수였으며, 1865년에 베르디가 인정해준 데서도 알 수 있습니다. 마네는 덴마크의 왕자로 분장한 포르를 1876년 말부터 그리기 시작하면서 어던 포즈로 그릴 것인가에 대해 의논했습니다. 포르는 셰익스피어의 주인공 모습으로 그려주기를 원했으며, 마네는 무대에 선 그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평론가들은 1877년 살롱을 통해 소개된 <햄릿 역의 포르>를 가소로운 초상화라고 비난했습니다. 작자미상의 이 캐리커처에는 ‘마네가 오그라뜨린 포르’란 간단한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사진: 오페라 가수이면서 마네의 작품 수집가인 장 밥티스트 포르



 

<나나>를 그린 후 마네는 앙브루와즈 토마의 오페라에서 햄릿 역을 맡은 가수 장 밥티스트 포르의 초상을 그렸습니다. ‘바리톤의 왕’이란 찬사를 들은 포르는 한 해 전에 마네에게 초상화를 의뢰했는데 <나나>를 그린 후에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마네는 1막 4장에서 슬퍼하는 햄릿 앞에 아버지의 유령이 나타나는 장면을 선택하여 10년 전에 그린 적이 있는 스페인풍의 검정색으로 강렬함을 표현했습니다. 무대 위에 있는 모습이라서 조명에 의한 명암을 강조한 것입니다. 포르가 스무 번이나 그의 화실로 와서 포즈를 취한 데서 그의 초상을 그리기 쉽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훗날 포르는 술회했습니다.

 

내가 포즈를 취한 것이 스무 차례는 될 것이다. 나는 노래를 부르러 가야 했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 내가 보니 초상화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조명이 깜박거리는 신비로운 분위기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그림의 다리는 내 다리가 아니었다. ‘이것은 내 다리가 아니잖습니까?’ 절반밖에 닮지 않은 나의 초상화를 보고 놀라서 항의하니, 그는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 당신보다 훨씬 멋진 다리를 가진 인물로 그린 것이 잘못되었단 말이오?’라고 오히려 핀잔했다. 그 후 우리는 몇 차례에 걸쳐서 티격태격하는 서신을 주고받았고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햄릿 역의 포르>가 1877년 5월 1일 개막된 살롱에 소개되었을 때 어느 평론가는 “고집쟁이들의 두목 마네는 가수들의 두목을 그리고 싶어 했지만 이 초상화는 그야말로 가소롭기만 하다”고 적었고, 풍자화가 샹은 캐리커처에다 “햄릿이 미쳐서 마네에게 자기의 초상을 그리게 했다. … 그래서 올챙이의 초상이 되고 말았다”고 적었습니다. 포르의 다리를 보고 어떤 평론가는 마네가 다른 사람의 다리로 대체했다고 적었습니다. 마네는 친구 토세에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내가 그린 <햄릿 역의 포르>를 두고서 충분히 비꼬았을까? 더구나 그들은 왼쪽 다리가 너무 짧다고 말하네. 사람이 앞으로 걸어갈 때 두 다리가 육군이 차렷하고 선 것처럼 되겠는가? 더구나 경사진 바닥에서? 빌어먹을! 난 정말이지 모범적인 드로잉 선생이 관람자에게 달려가는 햄릿의 환상을 어떻게 그릴 것인지 알고 싶다네.

 

마네는 말년에 새 모델을 선정했는데 댄서 출신의 메리 로랑이었습니다. 로랑은 씀씀이가 크고 사치스러웠지만 화가와 작가들을 좋아했으며, 말라르메를 특히 좋아했습니다. 로랑이 기꺼이 모델이 되어주겠다고 하자 마네는 의욕이 생겼습니다. 로랑의 건강 넘치는 활기찬 매력을 하나씩 드러내는 작업은 마네에게도 흥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로랑도 마네를 본 순간 그를 좋아했고 두 사람은 연인이 되었습니다.



 

 



마네의 <가슴을 드러낸 금발 Blonde with Bare Breasts>, 1878년경, 유화, 62.5-51,cm.

 

마네는 주로 초상화를 그렸지만 이 작품처럼 모델의 얼굴을 불분명하게 그린 적은 없었습니다. 모델의 머리카락, 드러난 가슴과 걸친 옷자락에 나타난 붓자국은 표현적이고, 전보다 단순한 방법이며, 이차원적으로 매우 평편해졌습니다. 모델은 붉은 양귀비꽃이 달린 밀짚모자를 썼는데, 양귀비꽃은 녹색 배경과 대조되어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모델의 피부색이 매우 아아하게 나타났으며, 진주 같은 광채가 밝은 녹색의 배경에 잘 조화됩니다. 마네는 공기와도 같은 가벼운 붓터치를 여기저기에 가했습니다.



 

 



마네의 <목욕통에 있는 메리로랑 In the Tub, Mery Laurent>, 1878, 종이에 파스텔, 55-45cm.



 

 



마네의 <가을: 메리 로랑 L'Automne: Mery Laurent>, 1881, 유화, 73-51cm.

마네는 1881년 네 명의 미인들을 소재로 사계절을 그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봄과 가을밖에 그리지 못했는데, 젊은 여배우 잔 드 마르시를 모델로 <봄: 잔>을, 메리 로랑을 모댈로 <가을: 메리 로랑>을 그렸습니다. 꽃이 있는 벽지를 배경으로 우뚝 서 있는 메리를 묘사했는데, 행복과 풍요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사진: 1849년 낸시의 앤 로즈에서 태어난 로랑은 십대 때에 파리로 왔습니다. 카바레에서 댄서로 출발한 그녀는 재능이 있어 곧 오페라 무대에 서게 되었습니다.



 

1878년 로랑을 모델로 <가슴을 드러낸 금발>을 그릴 때에는 이미 다리에 통증이 있었던 터라 유채물감을 수채물감 사용하듯 엷게 타서 빠르게 그리면서 작은 크기로 그렸습니다. 배경을 몇 차례 동일한 색으로 걸쳐 칠한 것으로 봐서 단번에 그렸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같은 해 <목욕통에 있는 메리로랑>을 그렸으며, 1881년에는 <가을: 메리 로랑>이란 제목으로 그녀의 옆모습을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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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인내 역시 내적인 강인함의 한 형태이다


 

우리에게는 쉼터가 필요합니다. 쉼터는 사람, 장소, 기억, 생각, 이상 등 사람이나 사물로 믿을 만한 안식처가 되어주고 보호해줄 그 무엇으로, 경계를 내려놓고 힘과 지혜를 얻어 갈 수 있는 곳입니다. 우리의 쉼터는 특정 장소나 활동, 친구들과의 모임, 좋은 벗, 선생님 등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쉼터는 이성ㄹ의 힘에 대한 자신감, 자연과 하나가 된 느낌, 정의감 등 말로 표현하기 어려우나 훨씬 더 심오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쉼터를 가짐으로써 과도한 반응 상황이나 연려에서 벗어나고 긍정적인 영향으로 내면을 채울 수 있습니다. 쉼터에서 휴식을 취할 때가 늘어남에 따라 뉴런은 조용히 안전하다는 신경망을 형성합니다. 깨달음의 길에서 큰 변동이나 영혼의 어두운 밤, 옛 믿음이 붕괴되면서 생기는 불안감 등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럴 때 쉼터는 우리를 붙잡아주고 폭풍 속에서 벗어나게 해줍니다.

쉼터를 매일 한 번 이상 찾도록 합니다.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언어로 표현되는 것이든 아니든, 가장 편안하고 안심할 수 있는 것이면 됩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쉼터를 경험합니다, 쉼터가 우리가 근거한 곳일 수도 있으며, 우리 내면을 흘러 지나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붓다 브레인Buddha's Brain』의 저자 릭 핸슨과 리처드 멘디우스는 마음에 쉼터를 깃들게 하라고 권합니다. 쉼터의 느낌이나 생각을 가지고 몸으로 느끼도록 하라고 권합니다. 쉼터의 영향을 삶 속에 받아들이고 보호와 휴식을 느끼라고 권합니다. 원한다면 많은 쉼터를 옮겨 다녀도 좋다고 말합니다.

강인함에는 에너지와 결의라는 두 가지 기본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우리는 거리를 행진할 때처럼 호흡을 조금 빨리함으로써, 어깨에 약간 힘을 넣어 긴장함으로써 에너지와 결의를 강화시킬 수 있습니다. 강인함과 관련되는 근육의 움직임, 특히 작고 은근한 움직임에 친숙해져야 합니다.

강인한 힘을 느끼고 이를 강화시켜 나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 있습니다.



1. 숨을 크게 들이마셔라.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에 개입하려 하지 말고 그냥 지나가는 생각만을 살펴보라. 알아차림 되고 명료하게 지속되는 어떤 힘이 있는지 느껴보라.

2. 몸에서 일어나는 활력을 느껴라. 당신의 호흡이 힘을 일어주는가 살펴보아라. 근육을 살피고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려고 하는 임이 있는지 살펴보아라. 당신의 몸속에 어떤 동물적인 힘이 있는지도 살펴보아라.

3. 정말 강인해짐이 느껴지는 시간을 회상해보아라.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강한 상황을 상상해보아라. 당신이 느낀 강인한 힘의 느낌을 마음속으로 불러오라. 호흡에서 느낀 힘, 팔과 다리에서 느껴진 에너지를 불러오라. 바로 그런 막강한 힘이 당신의 심장을 때리고 있다. 느끼는 것은 무엇이든 좋다. 그 힘이 강력하고, 명료하며, 확고하다는 느낌을 계속 지속하라.

4. 강인하게 느껴지는 것이 어떻게 좋은 것인지 살펴보아라. 그 힘을 당신 존재의 속으로 빨아들여라.

5. 강인한 느낌을 지속하면서 당신을 지지하는 어떤 사람 쪽으로 마음을 데리고 가라. 가능한 한 실감날 수 있게 그 사람의 얼굴과 그 사람의 목소리를 상상하라. 당신 자신을 지지받고, 가치 있으며,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느껴보아라. 이런 지지받는다는 느낌이 어떻게 힘을 실어주는 것인지도 느껴보아라. 어떻게 강인하게 느끼는 것이 어떻게 좋은 것인지 살펴보아라. 이 힘이 당신 존재 속으로 흡입되도록 해보아라.

6. 또한 떠오르는 다른 느낌들, 예컨대 연약함과 같은 정반대의 느낌들조차 살펴보아라. 무엇이든 떠오르는 것은 좋다. 다만 그것을 살피고는 놓아주고 사라지게 하라. 강인한 힘을 느낄 때의 배경으로 주의를 돌려라.

7. 마지막으로 강인한 힘의 느낌을 지속하면서 의식을 도전적 상황으로 데리고 가라. 굳센 마음을 견지하면서 힘든 조건을 감지하라. 강인하게 중심을 지켜나가면서 상황을 그냥 지켜보아라. 어떤 문제이건 푸른 하늘에 구름이 지나가듯 의식의 공간 속으로 흘러가버리게 하라. 넉넉하게, 이완된 채 힘들지 않게, 호흡, 의식, 투명한 마음, 온몸, 선량한 의도, 이 모두에서 힘을 느껴라.



괴로움의 원인을 식히고 행복의 원인, 예컨대 우리의 의지와 같은 것을 강하게 하는 것은 모두 중요합니다. 의지란 명확하고 분명한 목표를 향해 강인하게 나아가며 긴 시간 그러한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걸 말합니다. 대개 우리 뇌에서는 의식하지 못하는 수준에서 의지가 만들어집니다.

의지는 욕망의 한 형태입니다. 욕망 그 자체는 고통의 근원이 아닙니다.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건 갈망입니다.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건전한 의지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적인 강인함은 여러 형태로 나타납니다. 조용한 인내 역시 내적인 강인함의 한 형태입니다. 강인함을 느낄 때 우리 몸은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해 친숙해져서 그 느낌을 불러낼 수 있도록 합니다. 의식적으로 강인함을, 그 느낌을 강화시켜서 신경에 깊이 새기도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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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카미유의 임종>



 

 

 

 

카미유는 건강이 악화되어 제대로 거동하지도 못했습니다. 알리스가 사경을 헤매는 카미유를 간호했고, 오슈드는 사업의 재기를 위해 주로 파리에서 지냈습니다. 카미유는 고통으로 몸부림치다 1879년 9월 5일에 서른두 살의 나이로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카미유가 세상을 떠나던 날 모네가 드 벨리오에게 보낸 편지는 카미유에 대한 그의 애정을 말해줍니다.

 

가엾은 아내가 오늘 세상을 떠났습니다. … 불쌍한 아이들과 홀로 남은 저 자신을 발견하고 완전히 낙담한 상태입니다. 당신에게 또 하나 부탁드릴 일은 동봉하는 돈으로 일전에 제가 몽 드 피에테에 저당잡힌 메달을 찾아달라는 것입니다. 그 메달은 카미유가 지녔던 것 중에 유일하게 기념될 만한 것이라서 그녀가 떠나기 전에 목에 걸어주고 싶습니다.”(1879. 9. 5)



 

 



모네의 <카미유의 임종 Camille on Her Death-Bed>, 1879, 유화



<카미유의 임종>은 모네가 카미유의 시신을 그린 것입니다. 모네가 본능적으로 그린 그림은 습작에 불과했습니다. 아내의 시신을 그렸다는 소문은 널리 퍼졌습니다. 이때 모네가 한 말을 1928년에 클레망소가 전했습니다.

 

여전히 제게 다정한 여인의 임종을 보면서 저는 죽음이 그녀를 부동의 모습으로 만드는 데 대한 색의 변화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어 그리게 되었습니다.

 

당시 피사로에게 보낸 편지에서 카미유를 잃고 방황하는 모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극도의 비탄에 빠졌습니다.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두 아이를 데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득하기만 합니다. 비통함이 뼈에 사무칠 정도입니다.”(1879. 9. 26)



 

 



모네의 <국화 Chrsanthemums>, 1878, 유화

 

아르장퇴유에서 모네는 오로지 센 강을 배경으로 그리는 데만 집중했습니다. 꽃을 그릴 경우에도 정원이나 들에 핀 꽃을 그렸습니다. 르누아르가 꽃이 있는 정물을 많이 그리자 자극을 받아 그도 꽃이 있는 정물을 그렸습니다. 그는 1876-82년에 화병에 꽂힌 꽃을 주로 그렸으며, 정물화를 인상주의전에 출품하기도 했습니다. 이 그림 속의 국화는 곧 시들 것만 같습니다. 생생한 꽃이 아니고 시들어가는 꽃이라서 시듦의 가엾음을 묘사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자연에는 나고 지는 갖가지가 있으므로 어쩌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리려고 했는지 모릅니다. 국화는 벽지의 붉은색 꽃다발과 대조를 이룹니다. 붉은색 화병과 붉은색 바닥으로 인해 늦가을의 정취가 국화에 배어 있는 듯합니다.



 

 



모네의 <배와 포도 Pears and Grapes>, 1880, 유화

 

모네는 1870년 이전에 르누아르와 나란히 꽃을 그린 적이 있습니다. 그 후 주로 물을 그리다가 1878년부터 다시 정물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폴 세잔처럼 공간에 다한 관심에서 정물을 모티프로 삼은 것이 아니라 물 다음으로 이차적인 관심을 갖고 그렸습니다.



 

 



모네의 <해바라기 Bouquet de Soleils>, 1880, 유화, 101-81.3cm.

<국화>에 비해 해바라기는 꿈틀대고 생기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습니다.



 

 



모네의 <복숭아 단지 Bocal de Peches>, 1866, 유화, 55.5-46cm.



 

모네와 알리스 그리고 아이들이 퇴거당할 지경에 처해 있었습니다. 모네는 풍경화보다 더 비싼 가격에 팔리는 정물화를 그렸습니다. 그는 1866년에도 정물화를 그린 적이 있지만 주로 야외로 나가 작업하느라고 소홀히 했다가 카미유가 죽은 후 집에만 있다 보니 다시 그리게 되었고, 그 후 틈만 나면 그렸습니다. 그는 해바라기, 달리아, 글라디올러스, 과꽃, 국화, 튤립 등을 그렸습니다.



 

 



모네의 <부빙, 베퇴이유 The Thaw, Vetheuil>, 1880, 유화

 

아내를 잃고 처음 맞는 겨울은 모네를 더 춥고 허전하게 했습니다. 카미유의 임종을 그린 후라서 죽은 그녀의 차가운 회색 얼굴이 늘 마음속에 남아있었을 것입니다. 회색이 두드러진 부빙 혹은 해빙의 장면들은 그의 마음을 나타낸 것만 같습니다. 침통한 분위기가 확연한 풍경들입니다. 회색과 흰색으로 망망한 베퇴이유에 얼음조각들이 떠 있고, 신비한 정숙함이 느껴지는 풍경에 엷은 태양빛이 광채를 냅니다.



 

 



모네의 <베퇴이유 해빙 Ice Breaking-Up at Vetheuil>, 1880, 유화



 

 



모네의 <센 강둑, 베퇴이유 Au Bord de la Seine, pres de Vetheuil>, 1880, 유화, 73-100cm.



 

1879년 겨울은 유난히 추웠습니다. 1880년 1월 모네는 센 강의 정경을 캔버스에 담기 위해 야외로 나갔습니다. 강 위에는 얼음이 둥둥 떠다녔습니다. 그는 강가의 얼음에 구멍을 내고 이젤을 세운 후 병에 담아 온 뜨거운 물로 언 손을 녹여가며 빛에 따라 변화를 일으키는 강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그는 친구들에게 장님이 막 눈을 뜨게 되었을 때 바라볼 수 있는 장면을 그리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시각적 관찰을 신뢰했으며, 자신이 관망한 세계가 실재 세계라고 믿었습니다. 이젤의 위치를 옮기지 않거나 조금만 옮겨 동일한 주제를 보는 시간에 따라서 그리고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나는 정경을 대여섯 점 그렸습니다. <부빙, 베퇴이유>와 <베퇴이유의 해빙>이란 제목으로는 두 점 그렸는데, 강물에 떠내려가는 얼음덩이들을 그리기 위해서는 신속한 관망이 요구되었습니다. 봄이 되고 꽃들이 만개하자 <센 강둑, 베퇴이유>를 그리기도 했습니다.



 

 



모네의 <라바쿠르의 센 강 The Seine at Lavacourt>, 1880, 유화, 100-150cm.

붓질을 짧게 해서 순간적인 빛의 역할을 나타내기보다는 수면을 매끄럽게 해서 부르주아들이 좋아하는 그림이 되게 했습니다.



 

모네는 독립화가들에게 살롱에 출품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지만, 1880년 살롱에 <얼음덩이>와 <라바쿠르의 센 강>을 출품했고, <라바쿠르의 센 강>만 받아들여졌습니다. 1년 전부터 자칭 ‘독립화가 Independent Artists’라고 칭한 무명협동협회 화가들이 제5회 인상주의전을 열었는데, 모네는 그들에게 등을 돌리고 살롱에 복귀한 것입니다. 살롱 출품에 대한 비난을 의식한 모네는 뒤레에게 보낸 편지에서 작품을 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르주아적인 작품을 그리게 되었다고 변명했습니다. 에콜 데 보자르의 학장 쉔느비에르는 살롱에서 창백한 색조에 영롱한 빛이 있는 모네의 작품을 보고 감동했으며, 다른 화가의 작품들은 아주 어둡게 보이더라고 했습니다. 에밀 졸라는 <라바쿠르의 센 강>에 대해 경솔한 방법으로 그려졌다고 했지만, 1880년 6월 21일 『르 볼테르』에 발표한 글은 모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십 년 안에 모네의 재능이 제대로 평가될 것이며 호평 속에서 그의 작품들이 전시될 것이다. 그의 작품이 고가에 팔릴 것이며 당대의 큰 인물의 위치를 점하게 될 것이다.

 

르누아르가 1879년 살롱에 출품했고, 시슬레와 세잔이 협회를 탈퇴하는 등 무명협동협회는 붕괴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살롱 폐막 후 모네는 ‘현대인의 삶’에서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이 화랑은 인상주의 화가들을 후원해온 조르주 샤르팡티에가 1879년에 창간한 잡지 『현대인의 삶 La Vie Moderne』의 건물 부속 화랑입니다. 모네는 18점을 소개했고, <부빙, 베퇴이유>를 샤르팡티에의 아내가 1천 5백 프랑에 구입했습니다. 작품을 판 돈으로 모네는 빚을 갚을 수 있었고, 새로운 의욕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모네는 카탈로그 서문을 써준 뒤레에게 감사의 표시로 그림 한 점을 줬습니다.



 

 



모네의 <산책자 The Stroller>, 1887, 유화, 100-70cm.

산책하는 사람은 모네의 두 번째 아내 알리스입니다. 모내는 이 작품을 1899년 조르주 프티의 화랑에서 열린 로댕과의 2인전 때에 선보였습니다.



 

모네가 ‘현대인의 삶’에서 가진 개인전은 작은 화랑들도 좋은 전시회를 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카페에도 이런 가능성이 있음을 깨닫게 되어 전시회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뒤랑-뤼엘과 조르주 프티가 국내외에서 전시회를 통해 미술시장의 영역을 넓히려고 애썼으며, 뒤랑-뤼엘은 모네의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뒤랑-뤼엘의 경쟁자 프티는 센 강을 주제로 그린 모네의 그림을 많이 구입했습니다. 모네가 살롱에 참가한 것도 살롱에 당선해서 컬렉터들로 하여금 그의 작품에 더욱 투자하게 만들라고 한 프티의 권유 때문이었습니다. 모네는 프티에게 자신의 작품 두 점은 쉽게 살롱에 입선될 것이라면서 이해하기가 수월해 부르주아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이라고 응답했습니다. 그해 8월에는 르아브르에서 열린 화가동지회의 그룹전에 참여했지만. 살롱 당선작을 포함한 새로운 작품들이 푸대접을 받았습니다. 샤르팡티에는 이듬해 6월 모네의 개인전을 다시 열어주었습니다.

이 시기에 모네의 식구와 오슈드의 식구는 한데 얽혀 뒤죽박죽되어 있었습니다. 오슈드는 사업상 주로 파리에서 지내면서, 알리스에게 파리로 와서 함께 지내자고 했지만 알리스는 모네의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는 구실로 모네의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모네의 가정에서 알리스의 역할이 커지면서 모네의 생활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좀 더 작품을 팔아서 새로 꾸미는 가정을 경제적으로 안정시켜야 하고, 또한 나이가 이제 마흔이므로 회화에서도 안정을 찾아야 했습니다.



 

 



모네의 <벼랑에서 본 바다 풍경 La Mer-Vue des Falaises>, 1881, 유화, 60-75cm.



 

 



모네의 <페캉의 해안 Fecamp, Bord de la Mer>, 1881, 유화, 67-80cm.



1880년 여름 모네는 루앙에 있는 형의 별장에서 지내면서 바다풍경과 가파른 언덕을 그렸습니다. 이듬해 3월에는 페캉으로 가서 여러 점 그렸습니다.



 

 



르누아르의 <폴 뒤랑-뤼엘의 초상 Portrait of Paul Durand-Ruel>, 1910, 유화, 65-54cm.



 

작품이 팔리기 시작하자 모네는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서 좀 더 나은 환경으로 이사하기를 원했습니다. 졸라에게 쓴 편지에서 “이제 베퇴이유를 떠나야 할 것 같아 센 강변에 위치한 멋진 곳을 물색 중인데 푸아시가 어떨까 생각 중입니다”(1881. 5. 24)라고 했고, 그해 12월에 이사했는데 이사비용을 뒤랑-뤼엘이 지불했습니다. 그는 베퇴이유에서 동쪽으로 32km 가량 떨어진 푸아시의 생루이 별장으로 이주했으며, 알리스가 아이들을 데리고 그를 따라왔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함께 있자는 간곡한 청을 물리치고 모네를 따라온 것입니다.

뒤랑-뤼엘은 1881년 2월부터 모네의 작품을 본격적으로 구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네는 옛 컬렉터들에게 헐값에 팔지 않고 뒤랑-뤼엘에게 팔았습니다. 모네는 경제적으로 넉넉해지자 살롱을 포기할 수 있었고, 인상주의 화가들과도 다시 화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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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끊임없이 우리 내부와 외부를 스캔하며 위협이 있는지를 관찰한다


 

뇌는 끊임없이 우리 내부와 외부를 스캔하며 위협이 있는지를 관찰합니다. 위협이 감지되면 스트레스 반응 체계가 작동합니다. 때로 경계가 입증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편도체-해마 반응에 의해 과거의 사건에 대한 반응의 결과로 지나치게 과장되는 경우가 더 흔합니다. 그 결과 생겨나는 불안은 불쾌한 것으로 불필요하며, 우리의 뇌와 신체를 불필요한 일에 과도하게 반응하게 합니다.

또한 경계와 불안은 마음챙김 및 명상 집중 상태에서 주의를 빼앗아갑니다. 따라서 전통적인 명상 수련 지침에서 흔히 명상할 만한 장소로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호젓한 장소를 권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정각을 이루신 날 밤, 부처님께서도 보리수 밑을 찾으시지 않았던가. 안전하다고 느끼게 되면 뇌는 경계에 활용되던 자원을 다시 거둬들이므로 집중과 통찰에 활용할 수도 있으며, 좀 더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도 있습니다.

『붓다 브레인Buddha's Brain』의 저자 릭 핸슨과 리처드 멘디우스는 자신에 필요에 맞는 적절한 방법을 권합니다.



1. 몸을 이완하라. 이완 반응을 통해 욕조의 마개를 뽑아내듯 긴장을 배출할 수 있다.

2. 심상화를 이용하라. 우반구의 심상화는 정서 반응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상대적 안전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자신을 보호해주는 무언가를 심상해보아도 좋다. 인자한 할머니나 수호천사 등이 그 예이다. 또는 보호막 같은 빛에 둘러싸여 있는 자신을 상상해도 좋다.

3. 지지해주는 사람들과 연결되게 하라. 자신을 진정으로 염려해주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좀 더 시간을 보내도록 한다. 멀리 떨어져 있다면 그들과 함께 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그때의 좋은 기분을 받아들인다. 상상한 것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동료 의식은 뇌의 애착과 사회적 그룹회로를 활성화시킨다. 인류 진화사에서 양육자 및 무리에 속하는 사람들과 신체적, 정서적으로 밀착되는 것은 생존에 필수적이었다. 결과적으로 친밀감을 느끼는 건 안전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4. 공포를 마음챙김의 대상으로 하라. 긴장, 두려움, 염려, 불안, 패닉 등은 다른 많은 상태들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마음 작용이다. 공포가 느껴지기 시작하면 공포로 인해 몸이 어떤 느낌이 되는지 관찰한다. 경고를 느끼고 변화하며 진행해나가는 모습을 관찰한다. 자신이 느끼고 있는 걸 말로 스스로에게 들려줌으로써 변연계의 전두엽에 의한 조절 능력을 증가시킨다. 공포를 의식하는 것 자체는 전혀 두렵지 않음을 인식하라. 공포로부터 분리되어 광대한 의식의 영역에서 공포가 구름처럼 지나가버리도록 하라.

5. 내면의 보호자를 불러내라. 신경계에 퍼져있는 네트워크에 의해 다양한 인격을 이루는 하위적 요인들이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하여 겉으로는 한 덩어리이지만 실제로는 파편화되어 있는 자아를 형성한다. 예를 들어 내면의 어린이, 엄격한 부모, 자상한 부모가 한 사람의 내면에 공존하기도 하고, 피해자, 고발자, 보호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 속의 자상한 부모, 보호자 같은 요인들이 우리를 안심시키고 용기를 북돋우며, 편안하게 해준다. 또한 비판적이고 품위를 손상시키는 내외부의 요소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준다. 이들은 우리에게 아첨하거나 꾸며내지 않는다. 이들은 현실에 뿌리박은 채, 강인하고 다정하며, 상식이 통하는 선생님이나 코치처럼 옳은 길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고 비열한 이들에게 꺼져버리라고 말해주는 인격의 하부요인들이다.

6. 현실적이 되라. 전두엽의 평가 능력에 의존해서 판단하라. 두려워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은? 그 피해는 얼마나 클 것이며 오래 지속될 것인가? 극복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누가 날 도와줄 수 있을 것인가?

대부분의 공포는 과장된 것이다. 살아가면서 뇌는 경험에 입각하여 예측을 하게 되는데 특히 부정적인 경험을 데이터로 사용한다. 어떤 상황이 극히 일부나마 과거의 경험과 비슷하게 일어났다면 뇌는 자동적으로 그 기억을 예측에 적용한다. 뇌가 고통이나 상실, 또는 단지 고통이나 상실에 대한 위협만을 예측한다 하더라도 공포의 신호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뇌의 부정적 경향성 때문에 대부분 이 같은 예측은 과잉 평가되거나 사실무근인 경우가 많다.

세상을 뒤틀림이나 혼란, 또는 취사선택 없이 바라보도록 노력하라. 무엇이 사실인가? 과학, 경영학, 의학, 심리학, 명상수련법 등은 모두 사물의 진실에 기반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괴로움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무지를 들고 있다. 연구결과 역시 상황을 명확히 파악할수록 긍정적인 정서가 증가하고 부정적인 정서는 감소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정말로 염려할 일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대처하면 된다. 무언가를 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자체로도 더 기분이 좋아지지만, 처해 있는 상황을 실제로 개선시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7. 안정 애착에 대한 의식을 키워라. 어린이는 브모와의 관계를 통해 네 가지 애착 상태를 형성할 수 있다. 안정 애착, 불안-회피 애착, 불안-긴장 애착, 혼돈 애착이 그것이다. 부모 일방에 대한 애착 상태가 다른 일방에 대한 애착 상태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불안 애착 상태는 전전두엽과 변연계 협응의 부족 같은 신경 활동의 특정 패턴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애착 상태는 어른이 되어서도 지속되는 경향이 있으며 잠재화되어 주요 인간관계의 기본 틀을 형성한다.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불안-회피, 또는 불안-긴장 애착 관계 속에서 성장했다면, 우리는 아직 그 틀을 바꾸어서 관계의 안정성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성장 과정에서 부모와의 관계, 특히 아주 어린 시절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를 돌이켜본다. 불안 애착이 존재했다면 그 존재를 인정하자.

둘째, 불안을 안고 있는 자신에게 연민을 느끼자.

셋째, 가능한 한 다정하고 의지할 만한 사람들을 찾아서 그들과 함께 할 때의 기분을 흡수하고 내면화하자. 기존의 관계에서도 상대가 자신을 더 잘 대해 줄 행동을 하도록 하자.

넷째, 명상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 대한 마음챙김을 해보자. 그리하여 과거 어린 시절 박았어야 마땅할 관심과 조화를 자신에게 부여하자. 마음챙김은 우리 뇌의 중심부를 활성화시켜서 전전두피질과 변연계의 연계를 돕는다. 이는 안정 애착의 핵심적인 신경적 근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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