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과 공격성, 사랑과 증오가 시너지로 함께 진화한 것이다



 

 

 

 

수백만 년 동안 우리 조상들은 굶주림과 포식자의 위협, 그리고 질병에 노출되어 왔습니다. 수렵-채취 집단 남성의 여덟 중 하나는 이러한 싸움 끝에 목숨을 잃는데, 이는 20세기 전쟁의 사망률인 100명 중 하나와 비교하면 분명해집니다.

우리의 뇌는 이러한 능력과 경향을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학교 내 패거리 문화에서도, 회사 내 권력 싸움에서도, 가정 폭력에서도 공격성과 증오는 여전히 작동합니다. 더 큰 규모로 나아가면, 우리의 공격성은 편견과 독재, 인종 청소, 전쟁 등으로 이어집니다. 종종 이러한 경향은 조작되는데, 전통적 의미에서의 강한 아버지를 대신하는 독재 권력은 ‘적들’을 규정하고 악마화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작은 진화상의 공격성이라는 유산에 기반을 두지 않는다면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것입니다.

선불교에서는 “아무것도 제외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누군가를 “우리 편”의 범주 밖에 놓는 순간, 우리의 뇌와 마음은 자동적으로 그 사람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나쁜 대접을 하는 것을 정당화합니다. 실질적인 공격성으로 나아가기 직전의 상태가 됩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모두 동일한 DNA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유전적 유산인 공격성을 부정하는 것은, 고통의 원인 중 하나인 무지, 즉 치癡에 해당합니다. 심각한 집단 간 갈등은 집단 내의 박애주의를 발달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사랑과 증오는 우리 속에 존재하며, 우리 마음속에서 이리저리 요동칩니다. 두 마리 어린 늑대가 동굴에서 뒤얽혀 몸싸움을 하듯이. 증오의 늑대를 죽일 방법은 없습니다. 증오의 늑대에 대한 적의 자체가 오히려 우리가 지우려는 것을 더 낳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증오의 늑대를 주의 깊게 관찰하며 목줄을 채우고, 증오의 늑대가 짖어대는 경고와 정의, 불만, 분개, 멸시, 평견 등을 제한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늑대에게 매일 먹이를 줄 것인가가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사람의 뇌는 지난 300만 년 동안 세 배로 커졌는데 그 상당 부분은 대인관계의 기술, 즉 공감, 협동 등에 할애되어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처해 있었던 가혹한 환경 속에서는 협동은 생존을 돕는 요소였으므로, 협동을 촉진하는 요인들이 우리 뇌에 새겨졌습니다. 여기에는 이타주의, 관용, 평판에 대한 관심, 공정, 언어, 용서, 도덕과 종교 등이 포함됩니다.

뇌의 크기가 커짐에 따라 초기 인류의 아동기는 뇌를 발달시키고 단련시키기 위해 더 길어져야 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부모 자식 간의 애착 관계 및 다른 무리 구성원들과의 애착 관계를 개발해야 했습니다. 다양한 신경망들이 여기에 기여하는데, 도파민과 옥시토신에 기반한 보상 체계와, 육체적 고통과도 비슷한 반응을 야기하는 사회적 거부에 의한 징벌 체계가 그것입니다.

한편, 증오의 늑대 또한 진화했습니다. 수렵-채취 집단 간에는 흔히 격렬하고 치명적인 투쟁이 일어납니다. 무리 내의 협동은 무리 간 공격성을 촉발시키고, 공격성의 대가인 먹을거리와 짝, 생존 등은 무리 내의 협동을 촉진했습니다. 협동과 공격성, 사랑과 증오가 시너지로 함께 진화한 것입니다. 이들의 능력과 경향은 오늘날 우리 속에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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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이야기: 초신성-람다Lambda(Λ)의 재등장


 

 

 

 

먼 거리에 있는 초신성supernova은 아득한 과거에 존재했던 천체이므로 이것들을 분석하면 수십억 년 전 우주의 팽창속도를 계산할 수 있습니다. 천문학자들은 지금의 우주가 팽창되고 있지만 속도가 점차 느려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10여 개의 초신성을 분석할 결과 과거 우주의 팽창속도가 생각했던 것만큼 빠르지 않았음이 밝혀졌습니다. 즉 초신성의 적색편이red shift(도플러효과나 강한 중력장으로 인해 스펙트럼선이 장파장red 쪽으로 편향되는 현상)가 기대했던 것보다 작게 나타난 것입니다. 천문학자들은 우주초기와 현재의 팽창속도를 비교한 결과 현재의 팽창 가속도가 더 크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물리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이 처음 제기했던 진공에너지vacuum energy, 즉 람다(Λ, 암흑물질의 양을 좌우하는 우주상수로 지금까지 얻어진 관측 자료에 의하면 Ω+Λ=1이며, 이는 평탄한 우주에 대한 인플레이션이론의 예견과 일치한다. Λ는 우주의 밀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상수)가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미 알려진 우주공간의 밀도인 Ω의 값 0.3에 진공에너지인 Λ의 값 0.7을 더하면 인플레이션이론의 예견대로 1.0이 얻어집니다. 우주론학자들은 인플레이션의 잃어버린 퍼즐조각이 기적처럼 맞아 들어가는 광경을 목격했는데, 그 조각이 진공 속에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 결과는 WMAP 위성에 의해 한 번 더 확인되었습니다. 위성이 보내온 관측 자료를 분석한 결과 Λ와 관계된 에너지(혹은 암흑물질)가 우주를 이루는 총물질의 73%를 차지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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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 테오 반 고흐에게 작품을 팔다


 



 

 

 



모네의 <겨울 나무들, 베네쿠르의 경치 Arbres en Hiver, Vue sur Bennecourt>, 1887, 유화, 81-81cm.



 

 



모네의 <그림을 그리는 블랑슈 오슈드 Blanche Hoschedé Painting>, 1887, 유화

 

 

모네의 의붓딸 블랑슈는 모네를 만나고 나서 회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모네가 그림을 그리는 곳에 늘 있었습니다. 블랑슈도 화구를 갖고 모네를 따라다니면서 같은 장소에서 그림을 그렸지만, 모네와 동일한 주제를 그리지는 않았습니다. 모네는 블랑슈에게 많은 말을 하며 가르쳤지만, 결코 어떻게 그려야 한다고 가르친 적은 없습니다. 그의 유일한 가르침은 “자연을 잘 보도록 해라. 본 것을 그릴 수 있는 데까지 그리도록 해라”였습니다.

 







모네의 <지베르니의 보트 The Boat at Geverny>, 1887, 유화

오슈드의 자녀들이 정식으로 모네의 가족으로 입적된 건 1892년입니다. 아직 오슈드

 

부인을 법적 아내로 맞이하기 전이었지만, 모네는 그녀의 딸들을 가족으로 여기고 강으로 피크닉을 가서 즐거운 한 대를 캔버스에 담았습니다. 그는 이 시기에 가족을 주제로 많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오슈드 딸들은 보트의 노를 저으며 즐거운 한 대를 보내고 있습니다.

 



1887년 모네는 지베르니에서 포플러나무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4년 후 연작에 대한 출발이었습니다. 또한 새로 꾸린 가족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모네는 기억 속에 남아있는 지중해의 아름다운 장관들을 떨쳐버릴 수 없어 1888년 1월 지중해로 갔는데, 모파상의 권유가 작용한 까닭이기도 했습니다. 그대 르누아르는 그곳으로부터 멀지 않은 엑스에서 세간과 함께 작업하고 있었습니다.

 

태양이 작열하는 남쪽에서 모네는 지중해의 아름다움을 캔버스에 담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로댕에게는 지중해의 아름다운 경치와 광선이 “금은보석으로 그려야 할 정도”(1888. 2. 1)로 찬란하다고 편지에 적었습니다. 1884년 부르디게라에서 뒤레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그는 같은 표현을 사용했는데, “(리구리안의 풍경을 그리려면) 다이아몬드와 보석으로 채운 팔레트가 필요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모네의 <후앙 레 핑 Juan-les-Pins>, 1888, 유화, 73-92cm.



 

 



모네의 <후앙 레 핑의 바다 Plage de Juan-les-Pins>, 1888, 유화, 73-92cm.



 

 



모네의 <바닷가의 나무들, 앙티즈 Arbres au Bord de la Mer, Antibes>, 1888, 유화, 73-92cm.



 

 



모네의 <살리에서 보이는 앙티브 Antibes Vue de la Salis>, 1888, 유화, 65-92cm.



 

 



모네의 <앙티브 Antibes>, 1888, 유화

 

 

1888년 봄 모네는 칸에서 가까운 앙티브 앞바다에서 주변의 장면들을 캔버스에 담았습니다. 이 시기에 그의 그림은 매우 성숙한 경지를 보여주었으며, 말라르메는 모네에게 “선생의 가장 훌륭한 시기”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모네는 동일한 주제를 반복해서 그리기도 했습니다. 앙티브에서 모두 36점을 그렸는데, 지중해에 대한 그의 열정을 말해줍니다. 이 가운데 10점을 빈센트 반 고흐의 동생 테오 반 고흐에게 팔았습니다. 테오는 숙부가 동업으로 참여한 예술품 중개회사 부소&발라동의 딜러로서 형 빈센트의 작품을 파리 미술시장에 알리는 일에 전념하고 있었으며, 모네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사진: 폴 뒤랑-뤼엘



 

 



사진: 모네의 모습, 1899년 12월 폴 나다르가 찍음.



 

 

테오는 모네에게 먼저 1,000프랑을 주고 작품이 팔리는 대로 절반씩 분배하기로 했습니다. 실질적인 모네의 딜러였던 뒤랑-뤼엘은 모네의 처사가 옳지 못하다고 화를 냈지만, 모네는 은근히 미국에 작품을 많이 팔고 있는 부소&발라동을 통해 작품을 팔았으면 했습니다. 테오가 모네로부터 구입한 작품들을 전시하자 저널리스트 펠릭스 페네옹은 『르뷔 앵데팡당』에 “열 점의 앙티브 바다풍경이 부소&발라동 화랑 부속 쇼룸에 전시되고 있다”고 알렸습니다. 베르테는 모네에게 이 전시에 관해 편지에 적었습니다. “선생은 대중을 완전히 사로잡았습니다. 참 대단한 외고집이세요. 전시를 관람한 사람들이 감탄을 금하지 못하고 있답니다.” 이 편지를 받은 모네는 새로운 구매에 매우 고무되었습니다.

 

테오가 런던에서 모네의 전시회를 개최하면서 모네에 관한 옥타브 미르보의 글을 영어로 번역해 카탈로그 서문에 실었습니다. 미르보는 모네를 생존하는 화가 가운데 가장 위대하다고 추켜세웠습니다. 그때부터 모네는 로댕과 같은 명성과 부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로댕에 프랑스 조각을 대표한다면 모네는 회화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1840년 동갑내기로 서로 존경한 두 사람은 교류하고 있었는데, 모네가 로댕에게 보낸 편지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알 수 있습니다.

 

친애하는 로댕 선생,

선생이 보내준 아름다운 청동상을 받고 제가 얼마나 기뻤는지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을 늘 바라볼 수 있도록 화실에 두었습니다. <지옥의 문>을 비롯하여 선생 댁에서 본 작품들 덕분에 경이로운 느낌을 갖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1888.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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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 상대주의자들의 자유주의 옹호는 옹호가 아니다


 

 

 

 

자유주의자들은 종종 자신들이 지지하지 않는 것들, 포르노나 낙태 등도 옹호하는 입장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국가가 시민에게 특정한 삶의 방식을 강요해선 안 되며, 다른 사람들과 같은 자유를 가지고 스스로 가치와 목적을 선택하도록 최대한의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선택의 자유를 중시할지라도 자유주의자들은 포르노를 허용하는 것과 지지하는 것은 전적으로 다르다고 말합니다.

보수주의자들은 이런 구분을 무시함으로써 그것을 역이용하는데, 낙태를 허용하는 것은 낙태를 지지하는 것이고, 교내 기도의 의무화를 반대하는 것은 기도를 반대하는 것이며, 공산주의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은 공산주의에 동조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정치의 논쟁 양상이 늘 그렇듯이 자유주의자들은 보다 고귀한 원칙들을 동원해 이에 대응하는데, 예를 들면 포르노를 허용하는 까닭은 포르노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관용과 선택의 자유 혹은 공정한 절차를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와 『왜 도덕인가? Why Morality』의 저자이며 하버드 대학의 교수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1953)은 이러한 자유주의자들의 대응은 도덕적 기반이 점점 불분명해지면서 점차 취약해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관용과 선택의 자유를 우선시해야 하는 데 대해서 자유주의자들은 모든 도덕이 주관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도덕을 법률화하는 것이 옳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상대주의는 이렇게 질문합니다.

무엇이 문학이고 무엇이 쓰레기인지 누가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가? 그것은 일종의 가치 판단이다. 그렇다면 누구의 가치관이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할까?

샌델은 이 질문을 자유주의자들이 옹호하는 가치에 대해서도 던질 수 있는 질문이라고 말합니다. 샌델은 관용과 자유, 공정성도 가치이므로 어떠한 가치도 옹호해선 안 된다는 주장으로는 옹호하기 힘들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가치가 주관적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자유주의자들이 옹호하는 가치들을 지지하는 건 옳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는 상대주의자들의 자유주의 옹호는 결코 옹호가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자유주의자들이 동원하는 고귀한 원칙들의 도덕적 토대에 대해 최근의 정치철학자들은 두 가지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그것은 공리주의와 칸트의 도덕철학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 뒤를 잇는 공리주의적 관점은 ‘복지의 극대화’라는 이름으로 자유주의 원칙들을 옹호합니다. 국가는 설사 국민에게 이익이 된다 하더라도 특정한 삶의 방식을 강요해선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럴 경우 장기적으로 인간의 행복이 감소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이따금씩 잘못된 선택을 한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낫다고 말합니다.

밀은 『자유론 On Liberty』에서 말했습니다.

자유라고 부를 수 있는 자유는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빼앗으려 하거나 이익을 얻으려는 다른 사람들의 노력을 방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자유뿐이다.

밀은 자신의 주장이 결코 추상적 권리 개념에 의존하지 않으며, 오직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란 원칙을 토대로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나는 모든 윤리적 문제가 궁극적으로 호소하는 바가 공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영속적 이익을 전제로 하는 가장 넓은 의미의 공리여야 한다.

일반적인 사상으로서의 공리주의는 많은 반대에 부딪혔는데, 공이란 개념과, 모든 인간의 이익을 원칙적으로 같은 단위로 잴 수 있다는 가정의 의문이 따랐기 때문입니다. 공리주의자들이 모든 가치를 선호와 욕구로 격하시킴으로써 가치의 질적 차이를 인정하지 못한다는, 즉 고귀한 욕구와 기본적인 욕구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제기되었습니다. 최근에는 공리주의가 개인의 권리에 대한 존중을 포함하여 자유주의 원칙들에 설득력 있는 토대를 제공하는지 여부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습니다.

샌델은 공리주의자 자유주의의 이상에 적절하게 부합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행복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사람들이 지닌 가치들을 평가 없이 합산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는 선호도를 아무런 평가 없이 합산하는 것은 관대한 태도이며, 나아가 민주적인 태도라고 말합니다. 민주주의 선거에서는 유권자들이 어떤 사람이건 그들의 표를 모두 동등하게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샌델은 공리주의적 계산법이 얼핏 보기엔 자유주의와 일맥상통하는 것처럼 보이나 반드시 그런 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는 다수의 뜻이 그 자체로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 정치에 적합한 도구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공리주의 철학은 자유주의 원칙에 적절한 토대가 되지 못한다고 지적합니다.

공리주의에 반대하는 주장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이 칸트의 주장입니다. 칸트는 공리주의와 유사한 경험주의가 도덕의 근거가 되기엔 부적절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늘날의 자유주의자들은 공리주의가 사람들 간의 차이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칸트의 주장을 부인합니다. 공리주의는 무엇보다도 복지를 극대화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사회를 개인처럼 취급합니다. 공리주의는 우리의 갖가지 다양한 욕구들을 하나의 욕구 체계로 융합시킬 뿐, 개개인에게 만족을 분배하는 일에는 무관심합니다. 공리주의는 소수의 사람들을 모두의 행복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개개인 자체를 목적으로 존중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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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은 본질적인 관용을 내포한다


 

 

 

 

공감은 모든 의미 있는 인간관계의 근간이 됩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공감해줄 때, 우리는 내면의 존재가 그 사람을 위해 실제로 존재하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곧, 서로에게 있어 소중한 존재이며 감정과 욕구가 설 자리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공감을 통해 상대가 우리의 내면, 특히 의지와 감정을 적어도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는 확신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로, 피아니스트 댄 시겔Dan Siegel이 말하듯 누군가 우리를 느끼고 있음을 느끼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감이란 찬성이나 동의가 아닙니다. 우리가 타인에게 공감한다 해도 여전히 우리 자신이 바라는 것이 다를 수 있습니다. 공감은 우리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실을 이해하면 공감해도 좋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공감은 우리가 모든 존재와 관계 맺고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잘 모른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우리가 자신의 견해에 갇혀 있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공감은 행동의 미덕이며 타인과 현재에 머무르기 위한 반응 패턴에 대한 제한입니다. 공감하지 못하는 태도는 타인을 종종 불쾌하게 하며, 그 결과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서로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으므로 공감을 통해 적의가 없는 상황을 만들어나갈 수 있습니다. 공감은 본질적인 관용을 내포합니다. 타인의 상황을 공감해줄 의지를 나눠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붓다 브레인Buddha's Brain』의 저자 릭 핸슨과 리처드 멘디우스는 공감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고, 상대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를 통해 타인을 완전히 받아들여도 충분할 만큼 안전함과 강인함을 느낍니다. 상대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든 그것은 거기에 있는 것이고, 자신은 여기에 있다는 걸 잊지 말라고 말합니다. 상대의 생각과 감정의 흐름을 지켜보되 분리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타인의 움직임, 자세, 동작, 행동 등을 주목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먼저 스스로에게 초점을 맞춰서 호흡과 몸과 감정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 뇌의 뇌도가 활성화되고 타인의 감정을 인식할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공감은 스스로를 타인에게 열어주어 자연스레 상대방과 가까워지게 합니다. 따라서 최대한 공감하는 태도를 유지하면서 밀접한 상태에서도 편안하게 있을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진화사에서 타인과 마주치는 것은 많은 위험을 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심리학적인 고통은 대개 긴밀한 인간관계에서 유래합니다. 특히 어린 시절에는 기억 네트워크가 쉽게 형성되고 정서 반응이 전전두피질에서 거의 조절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지나치게 친밀해지는 것을 경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타인과 더 깊이 맺어지면서도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찾아야 합니다.

의식 자체에 주의를 기울이되, 의식 속에 들어온 상대방에 대한 감각과 구분해야 합니다.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집중 상태가 어떠한 것인지를 인식해야 합니다. 작업기억 부분의 의식은, 전전두피질의 위쪽-바깥쪽 신경 기질에 크게 의존하는 데 반해 아래쪽-중심쪽 영역의 회로는 사회-정서 처리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주의집중을 의식함으로써 우리는 위쪽-바깥쪽 회로를 좀 더 활성화시킬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있거나 혼자 있을 때에도 자신의 내면세계에 주의를 기울이면 어린 시절 충분히 공감을 받지 못해서 생긴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자신의 경험에 마음을 씀으로써 어린 시절 타인에게 다정한 보살핌을 받을 때와 같은 신경회로가 자극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어릴 적 받았어야 마땅할 것을 준다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관심과 배려가 서서히 스며들어서, 우리가 타인과 밀접해지더라도 안전하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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