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 테오 반 고흐에게 작품을 팔다


 



 

 

 



모네의 <겨울 나무들, 베네쿠르의 경치 Arbres en Hiver, Vue sur Bennecourt>, 1887, 유화, 81-81cm.



 

 



모네의 <그림을 그리는 블랑슈 오슈드 Blanche Hoschedé Painting>, 1887, 유화

 

 

모네의 의붓딸 블랑슈는 모네를 만나고 나서 회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모네가 그림을 그리는 곳에 늘 있었습니다. 블랑슈도 화구를 갖고 모네를 따라다니면서 같은 장소에서 그림을 그렸지만, 모네와 동일한 주제를 그리지는 않았습니다. 모네는 블랑슈에게 많은 말을 하며 가르쳤지만, 결코 어떻게 그려야 한다고 가르친 적은 없습니다. 그의 유일한 가르침은 “자연을 잘 보도록 해라. 본 것을 그릴 수 있는 데까지 그리도록 해라”였습니다.

 







모네의 <지베르니의 보트 The Boat at Geverny>, 1887, 유화

오슈드의 자녀들이 정식으로 모네의 가족으로 입적된 건 1892년입니다. 아직 오슈드

 

부인을 법적 아내로 맞이하기 전이었지만, 모네는 그녀의 딸들을 가족으로 여기고 강으로 피크닉을 가서 즐거운 한 대를 캔버스에 담았습니다. 그는 이 시기에 가족을 주제로 많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오슈드 딸들은 보트의 노를 저으며 즐거운 한 대를 보내고 있습니다.

 



1887년 모네는 지베르니에서 포플러나무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4년 후 연작에 대한 출발이었습니다. 또한 새로 꾸린 가족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모네는 기억 속에 남아있는 지중해의 아름다운 장관들을 떨쳐버릴 수 없어 1888년 1월 지중해로 갔는데, 모파상의 권유가 작용한 까닭이기도 했습니다. 그대 르누아르는 그곳으로부터 멀지 않은 엑스에서 세간과 함께 작업하고 있었습니다.

 

태양이 작열하는 남쪽에서 모네는 지중해의 아름다움을 캔버스에 담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로댕에게는 지중해의 아름다운 경치와 광선이 “금은보석으로 그려야 할 정도”(1888. 2. 1)로 찬란하다고 편지에 적었습니다. 1884년 부르디게라에서 뒤레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그는 같은 표현을 사용했는데, “(리구리안의 풍경을 그리려면) 다이아몬드와 보석으로 채운 팔레트가 필요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모네의 <후앙 레 핑 Juan-les-Pins>, 1888, 유화, 73-92cm.



 

 



모네의 <후앙 레 핑의 바다 Plage de Juan-les-Pins>, 1888, 유화, 73-92cm.



 

 



모네의 <바닷가의 나무들, 앙티즈 Arbres au Bord de la Mer, Antibes>, 1888, 유화, 73-92cm.



 

 



모네의 <살리에서 보이는 앙티브 Antibes Vue de la Salis>, 1888, 유화, 65-92cm.



 

 



모네의 <앙티브 Antibes>, 1888, 유화

 

 

1888년 봄 모네는 칸에서 가까운 앙티브 앞바다에서 주변의 장면들을 캔버스에 담았습니다. 이 시기에 그의 그림은 매우 성숙한 경지를 보여주었으며, 말라르메는 모네에게 “선생의 가장 훌륭한 시기”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모네는 동일한 주제를 반복해서 그리기도 했습니다. 앙티브에서 모두 36점을 그렸는데, 지중해에 대한 그의 열정을 말해줍니다. 이 가운데 10점을 빈센트 반 고흐의 동생 테오 반 고흐에게 팔았습니다. 테오는 숙부가 동업으로 참여한 예술품 중개회사 부소&발라동의 딜러로서 형 빈센트의 작품을 파리 미술시장에 알리는 일에 전념하고 있었으며, 모네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사진: 폴 뒤랑-뤼엘



 

 



사진: 모네의 모습, 1899년 12월 폴 나다르가 찍음.



 

 

테오는 모네에게 먼저 1,000프랑을 주고 작품이 팔리는 대로 절반씩 분배하기로 했습니다. 실질적인 모네의 딜러였던 뒤랑-뤼엘은 모네의 처사가 옳지 못하다고 화를 냈지만, 모네는 은근히 미국에 작품을 많이 팔고 있는 부소&발라동을 통해 작품을 팔았으면 했습니다. 테오가 모네로부터 구입한 작품들을 전시하자 저널리스트 펠릭스 페네옹은 『르뷔 앵데팡당』에 “열 점의 앙티브 바다풍경이 부소&발라동 화랑 부속 쇼룸에 전시되고 있다”고 알렸습니다. 베르테는 모네에게 이 전시에 관해 편지에 적었습니다. “선생은 대중을 완전히 사로잡았습니다. 참 대단한 외고집이세요. 전시를 관람한 사람들이 감탄을 금하지 못하고 있답니다.” 이 편지를 받은 모네는 새로운 구매에 매우 고무되었습니다.

 

테오가 런던에서 모네의 전시회를 개최하면서 모네에 관한 옥타브 미르보의 글을 영어로 번역해 카탈로그 서문에 실었습니다. 미르보는 모네를 생존하는 화가 가운데 가장 위대하다고 추켜세웠습니다. 그때부터 모네는 로댕과 같은 명성과 부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로댕에 프랑스 조각을 대표한다면 모네는 회화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1840년 동갑내기로 서로 존경한 두 사람은 교류하고 있었는데, 모네가 로댕에게 보낸 편지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알 수 있습니다.

 

친애하는 로댕 선생,

선생이 보내준 아름다운 청동상을 받고 제가 얼마나 기뻤는지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을 늘 바라볼 수 있도록 화실에 두었습니다. <지옥의 문>을 비롯하여 선생 댁에서 본 작품들 덕분에 경이로운 느낌을 갖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1888.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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