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은 본질적인 관용을 내포한다


 

 

 

 

공감은 모든 의미 있는 인간관계의 근간이 됩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공감해줄 때, 우리는 내면의 존재가 그 사람을 위해 실제로 존재하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곧, 서로에게 있어 소중한 존재이며 감정과 욕구가 설 자리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공감을 통해 상대가 우리의 내면, 특히 의지와 감정을 적어도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는 확신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로, 피아니스트 댄 시겔Dan Siegel이 말하듯 누군가 우리를 느끼고 있음을 느끼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감이란 찬성이나 동의가 아닙니다. 우리가 타인에게 공감한다 해도 여전히 우리 자신이 바라는 것이 다를 수 있습니다. 공감은 우리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실을 이해하면 공감해도 좋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공감은 우리가 모든 존재와 관계 맺고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잘 모른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우리가 자신의 견해에 갇혀 있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공감은 행동의 미덕이며 타인과 현재에 머무르기 위한 반응 패턴에 대한 제한입니다. 공감하지 못하는 태도는 타인을 종종 불쾌하게 하며, 그 결과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서로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으므로 공감을 통해 적의가 없는 상황을 만들어나갈 수 있습니다. 공감은 본질적인 관용을 내포합니다. 타인의 상황을 공감해줄 의지를 나눠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붓다 브레인Buddha's Brain』의 저자 릭 핸슨과 리처드 멘디우스는 공감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고, 상대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를 통해 타인을 완전히 받아들여도 충분할 만큼 안전함과 강인함을 느낍니다. 상대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든 그것은 거기에 있는 것이고, 자신은 여기에 있다는 걸 잊지 말라고 말합니다. 상대의 생각과 감정의 흐름을 지켜보되 분리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타인의 움직임, 자세, 동작, 행동 등을 주목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먼저 스스로에게 초점을 맞춰서 호흡과 몸과 감정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 뇌의 뇌도가 활성화되고 타인의 감정을 인식할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공감은 스스로를 타인에게 열어주어 자연스레 상대방과 가까워지게 합니다. 따라서 최대한 공감하는 태도를 유지하면서 밀접한 상태에서도 편안하게 있을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진화사에서 타인과 마주치는 것은 많은 위험을 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심리학적인 고통은 대개 긴밀한 인간관계에서 유래합니다. 특히 어린 시절에는 기억 네트워크가 쉽게 형성되고 정서 반응이 전전두피질에서 거의 조절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지나치게 친밀해지는 것을 경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타인과 더 깊이 맺어지면서도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찾아야 합니다.

의식 자체에 주의를 기울이되, 의식 속에 들어온 상대방에 대한 감각과 구분해야 합니다.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집중 상태가 어떠한 것인지를 인식해야 합니다. 작업기억 부분의 의식은, 전전두피질의 위쪽-바깥쪽 신경 기질에 크게 의존하는 데 반해 아래쪽-중심쪽 영역의 회로는 사회-정서 처리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주의집중을 의식함으로써 우리는 위쪽-바깥쪽 회로를 좀 더 활성화시킬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있거나 혼자 있을 때에도 자신의 내면세계에 주의를 기울이면 어린 시절 충분히 공감을 받지 못해서 생긴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자신의 경험에 마음을 씀으로써 어린 시절 타인에게 다정한 보살핌을 받을 때와 같은 신경회로가 자극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어릴 적 받았어야 마땅할 것을 준다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관심과 배려가 서서히 스며들어서, 우리가 타인과 밀접해지더라도 안전하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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