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의 템스 강 풍경



 



 

 

젊은 시절에 다녔던 곳을 다시 찾던 모네는 런던에도 다시 갔습니다. 1891년 여행 때 이미 런던 연작을 구상했지만, 이를 실행한 건 1899년 가을부터였습니다. 1899년 9월, 1900년 2-3월, 1901년 2-4월 세 차례 방문했고, 1902년에도 가려고 했지만 실행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1903년 겨울과 봄에는 연작을 완성시키기 어려워 한때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1899년의 방문에는 알리스와 동행했습니다. 템스 강이 잘 보이는 사보이 호텔에 묵으며 주로 안개 낀 장면을 그렸습니다. 사보이 호텔은 새로 지은 최고급 호텔이었고, 전망이 좋은 곳에 위치한 데다 커다란 창이 있어 경관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는 6주 동안 그 호텔에 묵었는데, 그만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부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안개가 자욱한 런던이 그에게 매우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인상적이었습니다.



 

 



모네의 <워터루 다리 Waterloo Bridge>, 1900, 유화, 65-92cm.



 

 



사진: 1900년의 클로드 모네



 

 



모네의 <워터루 다리 Waterloo Bridge>, 1900-03, 유화, 65-100cm.



 

 



모네의 <워터루 다리, 구름이 낀 날 Waterloo Bridge, Cloudy Weather>, 1900, 유화



 

 



사진: 런던 시리즈를 그릴 무렵의 모네의 화실



 

 



모네의 <워터루 다리, 안개 속의 태양 Waterloo Bridge, le Soleil dans le Brouillard>, 1903, 유화, 73-100cm.



 

 



모네의 <채링 크로스 다리 Charing Cross Vridge>, 1903, 유화, 73-100cm.

채링 크로스 다리는 좀고 철로가 있는 다리로 원터루 다리에 비해 낮으며, 워터루 다리는 폭이 넓어서 차량과 사람들의 통행이 수월했습니다.



 

런던 연작은 세 가지 주요 모티프로 되어 있는데 첫째 워터루 다리와 템스 강을 배경으로 하류를 그린 것, 둘째 상류의 채링 크로스 다리를 그림 중앙에 넣은 것, 셋째 성 도마 병원의 창과 발코니에서 내려다 본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국회의사당을 주제로 한 것들입니다. 성 도마 병원에서는 강 건너 국회의사당이 잘 보였습니다. 이때 그린 국회의사당을 배경으로 한 템스 강 그림은 보불전쟁을 피해 런던으로 피신했을 때 그린 1871년의 그림과 비교하면 그의 양식이 얼마나 자유로워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30년 전에 그린 국회의사당은 인상주의 초기 그림으로서 아직 대상의 형태를 무시하지 못한 데 반해 이제는 형태를 무시하고 자신의 느낌을 강렬한 색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는 예술의 목적을 위해 대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표현미를 더 중요시했습니다.



 

 



모네의 <국회의사당 (안개 속에서) The Houses of Parliament (Effect of Fog)>, 1903, 유화



 

 



모네의 <국회의사당, 안개 속의 햇빛의 효과 Le Parlement, Effet de Soleil dans le Brouillard>, 1904, 유화, 81.5-92cm.



 

 



모네의 <석양의 국회의사당 Le Parlement, Coucher de Soleil>, 1904, 유화, 81-92cm.



 

 



모네의 <국회의사당, 모진 비바람의 하늘 The Houses of Parliament, Stormy Sky>, 1904, 유화



 

 



모네의 <햇빛 틈으로 보이는 국회의사당 The Houses of Parliament with the Sun Breaking Through>, 1904, 유화



 

모네는 안개 낀 런던의 장면들을 빛에 대한 신앙으로 매우 인상 깊게 그려냈습니다. 빛의 드라마가 안개 속에서 펼쳐진 것 같았습니다. “날마다 런던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내게 다가오는구나”(1900. 3. 4 블랑슈에게)라고 쓴 편지에서 그가 런던의 풍경을 아주 좋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안개가 짙을 때는 실재가 거의 환각처럼 보여서 어떻게 완성시켜야 할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90점의 캔버스를 지베르니로 끌고 와 고심했습니다. 템스 강 그림에 1904년이라고 서명한 것으로 보아 지베르니 화실에서 계속 템스 강을 그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화실에서 템스 강을 그린 것에 대해 말했습니다.

 

내가 그린 대성당, 런던, 그리고 다른 그림들이 자연 안에서 직접 그린 것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별로 의미 있는 질문이랄 수 없고, 누구도 개의할 일이 못되며, 중요한 문제가 될 수도 없다. 난 자연 안에서 그리는 많은 예술가들을 알고 있는데 그들은 아주 형편없는 그림을 그린다. … 결과가 어떤가 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하다.

 

세 차례에 걸쳐 런던에서 연속적으로 그린 그림들은 거의 100점에 달했습니다. 사진에 의존하기도 하고 기억을 더듬기도 해서 완성한 시리즈 가운데 37점을 골라 1904년 5월과 6월 뒤랑-뤼엘의 화랑에서 ‘런던 템스 풍경 연작(1900-1904년)’이라는 명칭으로 소개했습니다. 이때 전시 카탈로그를 쓴 옥타브 미르보는 모네의 그림을 ‘마술적이며, 악몽 같고, 꿈 같으며, 신비하고, 작렬하며, 혼돈 같고, 물에 뜬 정원 같으며, 비현실적이며’ 등의 형용사를 동원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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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 칸트파 자유주의는 상대주의와는 다르다


 

 

 

 

칸트 철학의 관점에서 보면 몇몇 권리는 전반적인 복지를 감안해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기본적입니다. 미국의 철학자로 하버드 대학의 교수였던 존 롤스John Rawls(1921-2002)는 공리주의를 대신할 실질적인 사회정의 원리를 ‘공정으로서의 정의론’을 전개한 『정의론』에서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제각기 사회 전체의 복지로도 짓밟을 수 없는, 정의에 근거한 불가침성을 갖고 있다. 정의가 보장하는 권리는 정치 교섭이나 사회적 이익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권리와 관련하여 칸트파 자유주의자들에게는 공리주의에 의존하지 말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결코 특정한 선 관념에 의존하지 않는 이유, 특정한 삶의 방식이 다른 삶의 방식들보다 우월하다고 전제하지 않는 이유가 필요합니다. 특정한 목적을 지지하지 않고, 좋은 삶에 대해 어떤 비전을 지니지 않은 채 자유와 권리가 인간의 기본권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는 상대주의자들의 딜레마이기도 합니다. 특정한 목적을 포용하지 않고도 자유주의 원칙들을 지지해야 하는 딜레마.

 

칸트파 자유주의자들이 제안하는 해법은 정의와 선 혹은 가치를 구분하는 것입니다. 기본적인 권리 및 자유의 틀과, 사람들이 그 틀 안에서 선택해 추구하는 선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국가가 공정한 틀을 유지하는 것과 특정한 목적을 지지하는 건 전적으로 다르다고 말합니다. 칸트 철학의 관점에서 전자의 옹호만이 가능한데, 그것이 중립성을 토대로 하기 때문입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와 『왜 도덕인가? Why Morality』의 저자이며 하버드 대학의 교수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1953)은 목적을 중시하는 중립적 틀에 전념하는 것이 일종의 가치로 보일 수 있으므로 칸트파 자유주의는 상대주의와는 다르다고 말합니다. 특정한 삶의 방식이나 선 관념을 지지하지 않기 때문에 칸트파 자유주의자들에게는 두 가지 면에서 옳음이 좋음에 우선합니다. 첫째, 개인의 권리가 전체의 선을 위해 희생될 수 없으며, 둘째, 개인의 권리를 조건으로 하는 정의는 결코 좋은 삶에 대한 특정한 비전을 전제로 해서는 안 됩니다. 권리가 정당화되는 이유는 그것이 전체 복지를 극대화하거나 선을 증진하기 때문이 아니라, 개인 혹은 집단이 다른 개인 혹은 집단과 동등한 자유를 갖고 나름의 가치와 목적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등주의적 자유주의자들은 복지국가를 지지하므로 시민의 자유라는 기본인권이 사회적, 경제적 권리를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자유지상주의 자유주의자들은 시장경제를 옹호하며 재분배 정책이 사람들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시민의 자유에 대한 인권이 엄격한 사유재산 체제를 통합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평등주의 자유주의든 자우지상주의 자유주의든 인간은 제각기 나름의 목적과 이해관계 및 선 관념을 가진 독립적인 개인이란 사실에서 출발합니다. 또한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자유를 갖고 도덕적 행위자로서의 능력을 깨달을 권리를 모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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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속에서 알아차림 할 때 나타나는 신경 패턴은 대단히 다양하다


 

 

 

 

마음챙김이 점점 안정을 이루어나가면 보다 또렷한 알아차림 자체로 휴식할 수 있게 됩니다. 알아차림이란 지각, 생각, 욕망, 기억, 정서 등을 포함하는 어떤 정신적 내용, 즉 마음의 대상mind-object을 모두 포함하는 일반적인 말입니다. 비록 마음의 대상은 분주하게 바뀔 수 있지만 알아차림 자체는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알아차림은 마음의 대상이 등록되는 일종의 스크린 같은 것인데, 참선에서는 이를 비유해 머리 위로 날아가는 기러기가 연못 위에 비친 모습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알아차림은 지나가는 모습에 의해 더럽혀지거나 일그러지지 않는 것입니다.

뇌 속에서 알아차림 할 때 나타나는 신경 패턴은 대단히 다양합니다. 그러나 표상되는 능력 그 자체, 즉 알아차림의 주관적 경험 내용의 바탕은 일반적으로 안정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알아차림으로 머물게 되면 내면의 명료함과 평화감과 같은 멋진 느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느낌은 일반적으로 명상에 있어 가장 깊은 상태입니다. 우리는 하루 종일 알아차림으로 머물 수 있는 위대한 느낌을 계발할 수 있습니다.

눈을 뜬 채나 감은 채로 이완하라. 바로 이곳에 평화로운 몸으로 호흡하며 머물러야 합니다.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동안 감각들을 살펴보십시요. 무언가 관찰되는 것 중 분명한 감각을 명확하게 관찰하십시요.

마음의 대상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은 채 그것들이 흘러가는 것을 관찰하십시오. 정신적인 당근을 쫓지 말고, 채찍과 싸우지 않은 채, 생각들은 생각일 뿐 생각에 끌려가지 않고, 알아차림 내용을 확인하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스크린 속으로 뛰어들지 말고 오직 영화를 영화로만 보십시오.

경험들이 왔다가 사라져가도록 할 뿐 그 경험들에 영향을 미치려하지 마십시오. 모든 마음의 대상은 모두 같은 것으로 왔다가 사라져가는 것으로 보십시오.

이 순간에 정착하십시오. 과거는 사라졌고 미래는 놓아주십시오. 이 순간을 다음 순간과 애써 연결하려 하지 말고 받아들이십시오. 기억도 하지 말고 계획도 하지 말며 현재 이 순간에 머물러야 합니다. 잡을 것도 찾을 것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가질 것도 없고, 해야 할 것도 없으며, 있다 할 것도 없습니다.

알아차림의 세계 속에서 내용들 간을 확실하게 분별하는 방법, 즉 마음의 대상들 사이의 간극을 살펴야 합니다. 알아차림의 공간과 같은 특성에 주목하십시오. 이 공간은 무한하게 넓고, 고요하며, 침묵하고 있고, 무엇이 나타날 때까지 텅 비어 있으며, 무엇이든 담아낼 수 있을 만큼 방대하고, 언제나 존재하며, 신뢰할 만하고, 유성처럼 마음의 대상이 지나가도 결코 바뀌지 않는 공간입니다. 알아차림은 그 자체입니다. 단순히 존재하고, 단순히 현존하며, 무한대로 열려 있고, 가장자리가 없는 상태로 돌아오십시오.

마음챙김은 통찰과 지혜를 안겨주는데, 마음챙김의 최적의 방법은 명상입니다. 명상을 통해 집중 상태에 도달하면 집중력을 레이저빔처럼 고도로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집중 상태는 통찰력의 원천입니다.

불교는 마음을 집중하는 데 필요한 다섯 가지를 말합니다.

1. 하나의 대상에 주의를 집중하기 시작한다.

2. 대상에 주의 집중을 유지한다.

3. 대상에 강렬한 흥미를 가진다. 때로 지복至福의 감각이 몰려온다.

4. 행복, 만족, 평온 등을 포함하는 마음의 기쁨을 느낀다.

5. 의식이 통합되어 모든 것이 전체로 느껴지는 상태로 잡념이 사라지고, 평정에 도달하며, 현재의 존재에 대한 강렬한 감각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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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 젊은 시절의 영상을 찾아서



 



 

 

1895년 1월 모네는 노르웨이로 갔습니다. 알리스와 오슈드 사이에서 태어난 모네의 의붓아들 자크 오슈드가 노르웨이인 과부와 결혼하여 크리스티아나(오슬로의 옛 지명)에 보금자리를 마련했기 때문입니다.



 

 



모네의 <콜사스 산 Mount Kolsaas>, 1895, 유화



 

 

모네는 그림도 그릴 겸 오슬로에서 16km 떨어진 산드비켄 마을 근처에서 두 달가량 머물었습니다. 그는 콜사스 산에 매료되어 순백의 광대함 가운데 우뚝 솟은 산을 주제로 13점을 그렸습니다. 그는 아마 호쿠사이의 후지 산 그림을 머리에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는 블랑슈에게 보낸 편지에 “이곳에서 보는 것보다 더 멋진 인상을 생각할 수가 없구나. 눈이 주는 인상 말이다. 이는 참으로 놀랍지만 또한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난해하구나”(1895. 3. 1)라고 적었습니다.

 

그해 4월 지베르니로 돌아올 때 그의 손에는 콜사스 산 그림 외에도 13점의 노르웨이 풍경화가 들려 있었습니다. 이 그림들은 노르웨이의 풍경화가 프리츠 터을로브를 비롯한 몇몇 화가들로부터 칭찬을 받은 것들입니다. 그는 그곳에서 그린 그림을 대성당 그림과 함께 5월에 뒤랑-뤼엘의 화랑을 통해 파리 시민에게 소개했습니다.



 

 

 



모네의 <지베르니의 센 강, 아침 안개 속에서 Bras de Seine pres de iverny, Brouillard>, 1897, 유화, 89-92cm.



 

 



모네의 <아침의 센 강 Matinee sur la Seine>, 1897, 유화, 81-92cm.



 

 



모네의 <아침의 센 강 Matinee sur la Seine>, 1896, 유화, 89-92cm.



 

 



모네의 <아침의 센 강 Matinee sur la Seine>, 1897, 유화



 

 

오십대 후반에 접어든 모네는 젊었을 때 찾아다니던 절경을 다시 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는 1896년과 1897년 겨울에 노르망디를 여행했으며, 또 센 강변의 풍경들을 다시 주제로 삼아 <아침의 센 강>이란 제목으로 연속적으로 그렸는데, 전과 마찬가지로 영롱한 색으로 아름답게 묘사했습니다.

 

저널리스트 모리스 기유모가 1897년 8월 지베르니로 모네를 방문했을 때 모네가 새벽 3시 30분에 옷을 껴입고 센 강변으로 가서 <아침의 센 강>을 그리는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1898년 6월에는 프티가 1895년 이래 가장 큰 규모로 모네의 개인전을 파리에서 열었습니다. 이때 프티는 모네가 노르망디와 센 강에서 그린 그림들과 7점의 대성당 그림을 소개했습니다. 전시회는 언론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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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과 친절


 

 

 

 

연민이 다른 존재가 고통 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면 친절은 그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연민은 고통에 일차적으로 반응하지만 친절은 어느 때나 제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심지어 다른 존재가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을 때조차 친절해질 수 있습니다. 친절은 매일의 작은 일상 속에서 표현되며, 수고한 사람에게 감사를 표하거나 피곤할 때라도 자녀와 좀 더 놀아준다거나, 혼잡한 도로에서 양보를 했을 때 등도 모두 친절의 한 예입니다.

친절은 사랑의 자질이므로, 애정-친절loving-kindness이란 표현도 흔히 씁니다. 애정-친절은 길 잃은 여행자를 도와주는 단순한 것에서부터 자녀나 배우자에 대한 무한한 애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친절은 무리 안의 사람이라는 뜻의 어원에서 유래하며 무리원을 결속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이는 애정의 늑대를 살찌우는 개념입니다.

친절은 전전두피질의 의지와 원칙에 의존해 있으며 변연계에 기초하는 정서와 보상 및 옥시토신이나 엔돌핀 등의 신경화학물질 및 뇌간과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들 요소들은 친절을 함양하게 해줍니다.

스스로에게 연민을 가지는 것은 중요합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되면 먼저 마음의 응급처치로서 스스로에게 연민을 가져야 합니다. 손을 가슴이나 심장에 얹어서 연민을 구체화합니다.

무엇이 일어나든 균형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개 사건의 영향은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집니다. 또한 대부분은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전반적으로 좋은 일의 일부에 불과한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을 짜증나게 만드는 대상으로 관용을 연습해야 합니다. 관용과 인내를 가지고 너그러운 마음을 유지해야 합니다.

스스로의 악의를 자신에게 주어지는 고통으로 간주하여 떨어낼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악의는 불쾌하며 건강에도 나쁜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 상시적인 적개심은 심혈관계 질환의 위험을 높입니다. 악의는 스스로에게는 항상 해를 미치지만, 타인에게는 아무런 해도 미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한을 갖는 건 내가 독을 마시고 당신이 죽기를 바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으로, 애정-친절은 악의의 반대 축이다. 따라서 악의를 녹여내기 위해서는 애정-친절로 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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