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 젊은 시절의 영상을 찾아서

1895년 1월 모네는 노르웨이로 갔습니다. 알리스와 오슈드 사이에서 태어난 모네의 의붓아들 자크 오슈드가 노르웨이인 과부와 결혼하여 크리스티아나(오슬로의 옛 지명)에 보금자리를 마련했기 때문입니다.

모네의 <콜사스 산 Mount Kolsaas>, 1895, 유화
모네는 그림도 그릴 겸 오슬로에서 16km 떨어진 산드비켄 마을 근처에서 두 달가량 머물었습니다. 그는 콜사스 산에 매료되어 순백의 광대함 가운데 우뚝 솟은 산을 주제로 13점을 그렸습니다. 그는 아마 호쿠사이의 후지 산 그림을 머리에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는 블랑슈에게 보낸 편지에 “이곳에서 보는 것보다 더 멋진 인상을 생각할 수가 없구나. 눈이 주는 인상 말이다. 이는 참으로 놀랍지만 또한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난해하구나”(1895. 3. 1)라고 적었습니다.
그해 4월 지베르니로 돌아올 때 그의 손에는 콜사스 산 그림 외에도 13점의 노르웨이 풍경화가 들려 있었습니다. 이 그림들은 노르웨이의 풍경화가 프리츠 터을로브를 비롯한 몇몇 화가들로부터 칭찬을 받은 것들입니다. 그는 그곳에서 그린 그림을 대성당 그림과 함께 5월에 뒤랑-뤼엘의 화랑을 통해 파리 시민에게 소개했습니다.

모네의 <지베르니의 센 강, 아침 안개 속에서 Bras de Seine pres de iverny, Brouillard>, 1897, 유화, 89-92cm.

모네의 <아침의 센 강 Matinee sur la Seine>, 1897, 유화, 81-92cm.

모네의 <아침의 센 강 Matinee sur la Seine>, 1896, 유화, 89-92cm.

모네의 <아침의 센 강 Matinee sur la Seine>, 1897, 유화
오십대 후반에 접어든 모네는 젊었을 때 찾아다니던 절경을 다시 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는 1896년과 1897년 겨울에 노르망디를 여행했으며, 또 센 강변의 풍경들을 다시 주제로 삼아 <아침의 센 강>이란 제목으로 연속적으로 그렸는데, 전과 마찬가지로 영롱한 색으로 아름답게 묘사했습니다.
저널리스트 모리스 기유모가 1897년 8월 지베르니로 모네를 방문했을 때 모네가 새벽 3시 30분에 옷을 껴입고 센 강변으로 가서 <아침의 센 강>을 그리는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1898년 6월에는 프티가 1895년 이래 가장 큰 규모로 모네의 개인전을 파리에서 열었습니다. 이때 프티는 모네가 노르망디와 센 강에서 그린 그림들과 7점의 대성당 그림을 소개했습니다. 전시회는 언론의 호평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