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예술가 자크 루이 다비드



 



 

 

 

다비드는 1793년 8월 10일에 개최될 예정인 페스티벌 준비위원장에 선임되었다. 수십만 명의 파리 시민이 참여하는 대축제는 루이 16세를 축출하고 공화국을 선포한 혁명의 날을 기념하고 시민들의 단합을 꾀하기 위한 것으로 가톨릭의 전통적 페스티벌을 모방한 공화국의 건국을 상징하는 가장행렬이 있는 축제였다. 다비드의 책임 하에 축제준비위원으로 그의 제자 지오아키노 기우세페 세랑젤리, 건축가들 오귀스트 세발 위베르와 장 니콜라스 루이 뒤랑, 목수 뒤플레이, 그리고 음악가들 브루니, 사레트, 메훌이 참여했다. 다비드는 축제에 사용할 의상, 건축물, 그리고 소품들을 디자인했다.

 

 



125

 

다비드의 혁명적 가장행렬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1794년 6월 8일에 개최된 ‘지고한 존재를 위한 페스티벌’125이었다. 1793년의 프랑스는 오래 지속된 왕과 교회와의 관계면에서 볼 때 더이상 기독교 국가라고 할 수 없게 되었으나, 일종의 종교적 형식을 필요로 했는데 사회적 유대와 사후 구원에 대한 희망을 위해서는 종교를 완전히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고한 존재’에 관한 문화로서의 시민 종교가 형성된 셈인데 이 존재를 이성적이며 인정 많고 지혜롭다고 믿게 되었다.

 

 

 



124

 

 



127

 

페스티벌은 튈르리 공원에서 십만 명이 운집한 가운데 대규모로 거행되었다. 로베스피에르가 개회사를 낭독할 때 밝혀진 거대한 빛이 무신론을 상징하는 지혜의 동상을 환하게 밝혀 모습을 드러나게 했다.124 이는 기독교 입장에서 보면 무신론적 행사였다. 페스티벌에 참여한 시민들은 2십만 명에 이르렀으며, 그들은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신을 위한 찬송가를 불렀고, 젊은이와 늙은이들이 다비드의 <호라티우스의 맹세>8에서와 같은 제스처를 취하며 충절을 맹세했다. 가장행렬은 오늘날 에펠 타워가 있는 곳으로 향했는데 그곳에는 원형경기장, 개선문, 그리고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거대한 언덕이 있었고 헤라클레스 동상과 자유의 나무가 우뚝 솟아 있었다.127

헤라클레스 동상은 다비드가 시민들의 단합을 위해 사용한 것이다. 헤라클레스 동상은 포획한 적의 대포를 녹여서 제조되었고 받침대는 궁정의 기념비와 오늘날 노트르담으로 불리우는 당시 ‘이성의 성전Temple of Reason’으로 불린 곳에 세워졌던 성자와 왕들의 동상을 녹여서 만들었다. 헤라클레스의 한 손에는 자유와 평등을 상징하는 작은 조각이 들려 있고 다른 손에는 가공할 무기 곤봉이 들려 있다. 다비드에게 헤라클레스는 매우 유효한 혁명의 상징물이었다. 그는 헤라클레스를 ‘프랑스 시민의 승리’로 상징하기도 했다. 1793년 11월 그는 이 거대한 동상이 프랑스 시민을 상징한다면서 파리의 퐁 뇌프에 세워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128

 

다비드는 대혁명을 주제로 한 드라마의 무대휘장을 디자인하면서 헤라클레스를 승리의 병거 위에 위치시키고 그의 무릎에 조그만 조상 ‘자유와 평등’을 올려놓고 그 앞에 학문, 예술, 사업, 그리고 부를 의인화한 조상을 놓았다. 네 마리의 황소가 이 병거를 끌면서 바퀴로 왕실과 봉건주의의 상징물들을 박살낸다. 승리의 천사가 한 손에 창을 들고 황소 위를 날아 앞에 넘어진 왕을 칼로 찌르는 두 사람의 모습이 있다. 고대, 중세, 현대의 정치적 영웅들인 로마 여인 코르넬리아, 브루투스, 윌리엄 텔, 마라, 르 펠레티에, 피에르 바이유, 샤를 보바이 드 프레오가 병거 뒤를 따르고 있다.128

다비드는 혁명을 찬양하는 작품들을 제작할 계획만 세워놓고 실현시키지 못한 것들도 많은데 그것들은 계획으로만 끝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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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차원 접근하기


 

 

 

 

위성항법장치GPS(Global Positioning System)는 지구의 주변을 돌고 있는 24개의 위성들로부터 동기화된 신호를 수신한 후 삼각측량법을 이용하여 지구상에 있는 특정인의 위치를 매우 정확하게 결정하는 시스템으로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로부터 크루즈 미사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각 위성에는 500억분의 1초 이내의 오차로 동기화된 신호를 내보낼 수 있는 시계가 탑재되어 있고, 이로부터 계산된 위치의 오차범위는 약 10~15m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 정확한 결과를 얻으려면 뉴턴의 중력법칙에 상대론적 수정을 가해야 한다. 위성이 우주공간을 여행하는 동안 일반상대성이론의 법칙에 따라 라디오파의 진동수에 약간의 변화가 초래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이 누락되면 GPS의 시계는 매일 4조분의 1초씩 빨라져서 시스템 자체를 신뢰할 수 없게 된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의 시대가 활짝 열린 것이다.



칼텍의 천문학자이자 중력파탐지 프로젝트의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게리 샌더스Gary Sanders는 말했다. “그동안 우리는 새로운 방식으로 하늘을 바라볼 때마다 새로운 우주를 발견했다.” 아인슈타인은 1916년에 중력파gravitational wave(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모든 작용은 유한한 전파속도(진공 속에서 광속도)로 전해지는 근접작용)의 존재를 처음 예견했다. 트램폴린trampauline 위에 놓인 볼링공을 갑자기 치우면 트램폴린의 표면이 튀어 오르면서 한동안 진동을 겪게 될 것이다. 볼릴공을 태양으로 대치시키고 트램폴린을 공간으로 대치시키면 태양이 갑자기 없어졌을 때 중력적 충격파가 특정 속도(빛의 속도)로 퍼져나가는 현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방정식에서 중력파를 허용하는 정확한 해를 구하는 데 성공했지만 자신의 예견이 입증되는 것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뜨고 말았다. 중력파는 전자기파electromagnetic wave(주기적으로 세기가 변화하는 전자기장이 공간 속으로 전파해나가는 현상)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약하기 때문에 별들이 서로 충돌할 때 생성되는 중력파조차도 지금의 장비로는 관측하기가 쉽지 않다.



현재 과학자들은 중력파를 간접적인 방법으로 관측하고 있다. 미국의 물리학자로 1933년에 쌍성펄서binary pulsar(펄서란 1초에 1회 이상 회전하면서 규칙적으로 강한 빛과 약한 빛을 내는 중성자별을 말하는데, 이런 중성자별과 중성자별 혹은 보통 별과 중성자별로 이루어진 쌍성계를 말한다)의 발견, 중력파를 간접적으로 확인한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한 러셀 헐스Russell Alan Hulse(1950~)와 1968년 하버드 대학에서 천문학 박사학위를 받고 매사추세츠 대학의 교수가 된 미국의 물리학자 조지프 테일러 2세Joseph Taylor Jr.(1941~)는 연성계binary system(서로 상대방의 주위를 돌고 있는 두 개의 천체)를 이루고 있는 중성자별들이 점차 가까워지면서 중력파를 방출한다고 추정했다. 이것은 점성이 큰 당밀을 휘저을 때 흔적이 남는 현상과 비슷하다. 이것들은 수명을 다한 중성자별들이 나선궤적을 그리며 서로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PSR(pulsar) 1913+16을 주 관측대상으로 삼았다. 지구로부터 1만6천 광년 거리에 있는 이 천체는 7시간 45분을 주기로 서로 상대방에 대해 공전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중력파를 방출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헐스와 테일러는 여기에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적용하여 두 개의 중성자별이 매 주기마다 1mm씩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아냈다. 별의 크기와 비교하면 형편없이 작은 값이지만 1년이 지나면 이 효과는 1m까지 커지고 70만km에 달하는 궤도도 점차 작아진다. 이것들은 모두 관측결과를 종합하여 궤도의 감소현상이 중력파에 기초한 아인슈타인의 이론과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에 따르면 PSR 1913+16은 중력파를 꾸준히 방출하면서 자체 에너지가 감소하여 앞으로 2억4천만 년이 지나면 하나로 합쳐지게 된다. 헐스와 테일러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93년에 노벨상을 수상했다.



이 실험은 일반상대성이론을 검증하는 데 사용될 수 있으며, 계산에 의하면 일반상대성이론의 정확도는 거의 99.7%에 달한다.



2003년에 가동되기 시작한 최초의 중력파감지기LIGO(Laser Interferometer Gravitational-Wave Observatory)는 중력파와 관련된 우주의 비밀을 풀어줄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중력파감지기의 임무는 망원경으로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먼 거리에서 발생하는 우주적 사건인 블랙홀이나 중성자별neutron star(혹은 pulsar, 주로 중성자로 이루어졌다고 생각되는 밀도가 아주 높고 작은 천체로 전형적인 중성자별은 지름이 약 20km이지만 그 질량은 태양과 비슷하기 때문에 이것들의 평균밀도는 매우 커서 물 밀도의 1014배이다)의 충돌 등을 직접 관측하는 것이다. 중력파감지기는 두 개의 커다란 레이저로 작동되고, 그중 하나가 워싱턴의 핸퍼드Hanford에 설치되어 있으며 다른 하나는 루이지애나의 리빙스턴 패리쉬Livingston Parish에 설치되어 있다. 여기에 4km짜리 파이프 두 개가 L자형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각각의 입구에서 발사된 레이저가 접합부에서 충돌하면 간섭을 일으키게 된다. 여기에 레이저를 교란시키는 요소가 전혀 없다면 두 가닥의 레이저파는 정확하게 상쇄간섭을 일으켜 사라지도록 위상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블랙홀이나 중성자별이 서로 충돌하면서 발생한 희미한 중력파가 이 장치에 도달하면 둘 중 한쪽 파이프의 길이가 아주 조금 수축되어 레이저빔의 간섭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즉 두 가닥의 레이저빔이 완전하게 상쇄되지 않고 간섭무늬를 만드는 것이다. 이 무늬를 컴퓨터로 전송하여 정밀한 분석과정을 거치면 중력파의 진원지와 강도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중력파가 강할수록 간섭무늬도 크게 나타난다.



중력파감지기LIGO는 공학의 기적으로 불릴 만큼 정교하고 안정된 장치이다. 레이저가 공기분자에 흡수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파이프의 내부압력은 대기압의 1조분의 1을 유지하고 있고, 감지기의 크기는 30만m3에 달한다. 이는 인공적으로 만든 진공실 중 세계최대 규모이다. 중력파감지기가 중력파에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것은 여섯 개의 조그만 자석으로 작동하는 거울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 거울은 300억분의 1인치 이내의 오차로 매끈하게 가공되어 있는데, 거울을 직접 관리하고 있는 게릴린 빌링슬레이GariLynn Billingsley는 “거울을 지구에 비유하면 1인치 이상의 굴곡이 없을 정도로 매끈한 표면을 갖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게다가 이 거울은 100만분의 1m만 움직여도 그 변화가 감지되도록 설계되어 있으므로 세계에서 가장 예민한 실험장비라 불릴 만하다. 루이지애나에 설치된 감지기는 아주 미세한 교란에도 쉽게 영향을 받으므로 500m 거리에서 일하는 벌목꾼들 때문에 낮에는 가동되지 않고 있다. 밤에도 자정부터 새벽 6시 사이에 근처를 지나는 화물열차 때문에 중력파감지기의 가동시간은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수km 바깥에서 발생하는 해변의 파도도 중력파감지기의 관측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파도에 의한 교란은 진동수가 매우 작기 때문에 지구를 그냥 관통한다. 태양과 달에 의한 중력의 변화를 수백만 분의 1cm 단위로 중력파감지기의 관측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중력파감지기LIGO는 프랑스-이탈리아가 협조해 피사에 건축한 VIRGO와 일본 도쿄의 외곽지역에 설치된 TAMA 그리고 영국-독일이 연합하여 독일의 하노버에 건축한 GEO600과 함께 중력파감지 국제 컨소시엄의 일부이다. 이렇게 뛰어난 성능에도 불구하고 많은 과학자들은 LIGO가 정말로 흥미로운 우주적 사건을 관측할 정도로 예민하지는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이보다 더욱 성능이 뛰어난 LIGO II를 설계하고 있는데, 2007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LIGO II의 상능은 LIGO에 비해 수천 배가 될 것으로 본다. LIGO II가 완성되면 흥미로운 천체사건을 관측할 가능성은 훨씬 높아진다. LIGO II는 60억 광년 이상의 거리에서 블랙홀이 충돌하는 사건을 하루당 10건 혹은 10년당 10건 정도 관측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우주 초창기에 발생한 중력파를 감지하기에는 LIGO II도 역부족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앞으로 15~20년 후에 완공될 예정인 LISA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레이저 간섭 우주안테나LISA(Laser Interferometer Space Antenna)는 중력파를 감지하는 차세대 첨단장비로 지구상에 붙어있는 중력파감지기와 달리 우주공간에 설치될 예정이다. 현재 NASA와 유럽 우주국은 세 개의 위성을 2010년에 발사할 목적으로 관련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세 개의 레이저감지기는 한 번에 500만km인 정삼각형을 형성한 채 지구로부터 4,800만km 떨어진 곳에서 태양의 주변을 돌게 된다. 각 위성은 두 개의 레이저를 통해 다른 두 개의 위성들과 끊임없이 신호를 주고받도록 설계되어 있다. 여기서 방출되는 레이저빔의 출력은 0.5와트에 불과하지만 과학 장비가 워낙 예민해 외부로부터 날아온 중력파를 10-21의 오차 이내에서 관측할 수 있다. 이는 원자 하나의 1/100에 해당한다. LISA는 90억 광년의 거리에서 발생하는 중력파의 관측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현재의 기술로 관측할 수 있는 가장 먼 거리이다.



LISA는 빅뱅 때 발생한 충격파를 관측할 수 있을 정도로 정밀하게 설계되어 있다. LISA는 빅뱅 후 1조분의 1초가 지난 시점을 관측할 수 있다. 물리학자들은 LISA가 통일장이론과 만물의 이론의 정확한 특성을 밝혀줄 것으로 기대한다. LISA가 추구하는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빅뱅 때 매우 강력한 중력파가 발생하여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고 주장하는 인플레이션이론inflation theory(혹은 급팽창이론이라고도 하는데, 이 이론은 초기우주가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던 시기가 있었다는 이론으로 진공에너지 밀도에 의한 음압력이 팽창을 가속시켰기 때문이다)을 검증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인플레이션 혹은 팽창이 막 시작되던 순간에 발생한 중력파를 찾고 있다. 빅뱅이 일어난 시점에 발생한 중력파의 지문은 인플레이션이론과 이에 반하는 다른 이론들의 진위 여부를 판별해줄 것이다. LISA는 차세대 과학의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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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루이 다비드의 날조된 전설 <바라의 죽음>



 



 

 

 

다비드가 마지막으로 공화당원의 죽음을 그린 것은 그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조제프 바라라는 열세 살 소년이다. 이 소년은 1793년 12월 7일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벤데Vendee에서 일어난 동란 때 말 두 필을 빼앗으려는 왕당파 당원들에게 저항하다 목숨을 잃었다.122 로베스피에르가 주도한 공화당은 바라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바라가 “왕이시여 만수무강하라”고 외치기를 거부하고 “공화국이여 영원하라”고 애국심에 불타는 말을 외치다 목숨을 잃은 것으로 시민들에게 알리기로 했다. 국가적 차원에서 새로운 전설을 창조하기로 한 것이다.

 

 

 



<바라의 죽음>

 

 





 

<바라의 죽음>123은 완성하지 못했는데 미완성으로 남은 이 작품은 다비드가 그 이전이나 이후에 그린 그림들에 비해 수수께끼 같다. 땅바닥에 비스듬히 누운 바라의 손에는 혁명을 상징하는 꽃모양 기장이 달린 편지가 있다. 다비드는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누드로 드로잉한 후 옷을 입히는 방법을 사용했지만 여기서는 누드로 묘사했다. 흥미로운 점은 바라가 여성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그가 고대 그리스의 청년의 누드를 염두에 두고 그린 것으로 짐작되며 주변에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아 어떤 상황에서 죽음을 맞았는지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바라의 누드 자세도 평범하지 않은데 아마 군인들에 의해 살해된 후 강간당한 모습이 아닌가 짐작된다. 바라의 죽음에 관한 실제 자료가 제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비드가 이렇게 그린 것은 사실을 무시하고 시공을 초월해 영원히 존재하는 누드로서의 영웅을 창조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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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우주Multiverse


 

 

 

 

케임브리지 대학의 마틴 리스 경Sir Martin Rees(1942~)은 우주적 우연이야말로 다중우주의 존재를 입증하는 강력한 증거라고 믿는다. 그는 “바깥 어딘가에 수백만 개의 평행우주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가정을 내세우지 않고서는 우리의 세계에 이렇게 많은 우연과 기적이 발생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주의 모든 환경이 생명체에 적합하도록 최적화되어 있는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나도 한때는 모든 조건이 생명체에게 적합하도록 세팅되어 있는 것이 우연이나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지나치게 편협한 관점이다. ... 그냥 생명체가 전성하기 위해 요구되는 조건들이 지나치게 많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 관점을 받아들이면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신의 섭리를 굳이 도입할 필요가 없다.”



리스는 이런 개념들 중 일부를 정량화함으로써 자신의 논리를 더욱 강화시켰다. 그는 우주가 이상적으로 세팅된, 측정 가능한 여섯 개의 숫자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며, 이 숫자들은 생명체의 탄생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 숫자는 빅뱅을 통해 수소가 헬륨으로 전환되는 과정에 관여하는 입실론(ε=0.007)이다. 이 값이 0.006이었다면 핵력이 지금보다 약해져서 양성자와 중성자는 서로 결합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면 중수소deuterium(양성자proton 1+중성자neutron 1)가 형성되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의 몸과 우주의 대부분을 이루는 무거운 원자들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오직 수소로 가득 찬 썰렁한 우주로 남았을 것이다. 핵력(양성자와 중성자를 결합하여 원자핵을 이루고 있는 힘)이 지금보다 조금만 약했다면 주기율표periodic table에 있는 대부분의 원자들은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없으므로 생명체는 결코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반면에 입실론ε의 값이 0.008이었다면 핵융합이 너무 빠르게 진행되어 빅뱅 이후 수소는 곧 고갈되었을 것이며, 지구 같은 행성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별도 오래전에 모두 소멸했을 것이다. 리스는 “핵력의 세기가 지금의 4%만 작았어도 무거운 원소의 출발점인 탄소carbon는 별 속에서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며, 그 결과 생명체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라는 프레드 호일의 말을 인용하면서 입실론ε값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핵력의 크기가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베릴륨beryllium 원자핵이 불안정해지기 때문에 연쇄적인 핵융합nuclear fusion(가벼운 원소 사이의 핵반응에 의해서 무거운 원소 철까지 형성되는 반응으로 상호작용하는 핵이 원자번호가 낮은 원소에 속하는 경우에는 상당한 양의 에너지가 방출된다)이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해 탄소원자가 존재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탄소는 모든 유기물에 반드시 필요한 원소이므로 이것 없이는 생명체가 탄생할 수 없다.



우주의 운명을 좌우하는 두 번째 숫자는 전자기력의 세기와 중력의 세기의 비율을 나타내는 N=1036이다. 즉 전자기력은 중력보다 무려 1036배나 강하다. 그런데 중력이 이보다 더 약하면 별이 충분히 응축되지 않아서 핵융합반응을 일으킬 수 없다. 그러면 별들은 빛을 발할 수 없게 되며 그 주변의 행성들은 꽁꽁 얼어붙은 암흑세계가 되었을 것이다.



이와 반대로 중력이 지금보다 조금 강했다면 별들은 너무 빨리 타올라서 이미 옛날에 소멸했을 것이므로 이 경우 역시 생명체는 존재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중력이 강하면 별들 사이의 간격이 지금보다 훨씬 가까워져서 서로 충돌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세 번째 숫자는 우주의 상대적 밀도를 나타내는 오메가(Ω)이다. Ω의 값이 지나치게 작았다면 우주는 너무 빠르게 팽창하고 너무 빠르게 식었을 것이다. 또한 Ω가 너무 크면 우주는 생명체가 탄생하기도 전에 완전히 수축되었을 것이다. 리스는 자신의 저서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우주가 지금처럼 팽창하면서 Ω~1을 유지하려면 빅뱅이 일어나고 1초가 지났을 때 Ω의 값이 1에서 0.000000000000001 이상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네 번째 숫자는 우주팽창의 가속도를 결정하는 우주상수 람다(Λ)이다. 우주상수가 지금보다 몇 배 정도 컸다면 우주는 반중력에 의해 즉각적으로 대동결big freeze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생명체의 존재는 어림도 없는 소리다. 또한 우주상수가 음수였다면 우주는 안으로 붕괴되어 역시 생명체는 살아갈 수 없다. 즉 생명체가 번성하려면 우주상수는 우주의 밀도 Ω와 마찬가지로 아주 작은 영역 이내의 값을 가져야 한다.



다섯 번째 수는 우주배경복사의 불규칙성을 나타내는 Q(10-5)이다. 이 값이 조금 더 작았다면 우주전역에는 먼지와 가스가 극도로 균일하게 분포되어 별이나 은하가 형성되지 못했을 것이며, 우주는 별다른 특색이 없는 어둡고 균일한 공간으로 남았을 것이다. 반면에 Q가 지금보다 컸다면 지금보다 훨씬 빠른 시기에 초대형 은하가 형성되어 주변의 물질들을 마구 잡아먹으며 거대한 블랙홀로 진화했을 것이다. 리스의 계산에 의하면 이 블랙홀은 은하전체보다 큰 질량을 갖고 있으므로 모든 별과 행성들은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 최후를 맞이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섯 번째 숫자는 공간의 차원을 나타내는 D이다. M-이론이 등장한 후로 물리학자들은 “지금보다 높거나 낮은 차원에서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일단 1차원 공간(선)은 너무나 단순하기 때문에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 1차원 공간의 양자역학에서 입자들은 상호작용을 전혀 하지 않는다. 즉 1차원에서는 생명체의 기본단위인 입자들이 결합을 아예 하지 않기 때문에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2차원 공간에서도 이와 비슷한 문제가 발생한다. 2차원 평면에 살고 있는 생명체를 상상해보라. 이것들의 내장은 과연 어떻게 생겼을까? 체내에서 완전소화를 하지 않는 한 2차원의 생명체들도 입과 배설기관을 동시에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2차원 도형의 기하학적 특성상 입구와 출구가 한 몸에 존재하려면 이것들의 몸은 두 조각으로 분리되어야 한다. 따라서 2차원에도 복잡한 생명체가 존재할 수는 없을 것 같다.



4차원의 공간으로 가면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이런 우주에서는 행성들이 안정된 궤도를 유지할 수 없다. 4차원 공간에서는 뉴턴의 중력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지 않고 거리의 세제곱에 반비례한다. 아인슈타인의 절친한 연구동료였던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수학자 폴 에렌페스트Paul Ehrenfest(1880~1933, 1922년에 네덜란드 시민권을 받았다)는 1917년에 다른 차원에서 물리학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예견해 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그는 푸아송-라플라스 방정식Poisson-Laplace equation(행성과 전자의 운동을 서술하는 방정식)을 분석한 끝에 4차원 이상의 공간에서는 행성의 궤도가 불안정하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그런데 원자핵의 주변을 돌고 있는 전자도 기본적으로는 태양계와 비슷한 구조이므로 고차원 공간에서는 원자와 태양계가 존재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생명체가 살기에는 3차원 공간이 가장 이상적이란 뜻이다.



리스는 우주의 운명을 좌우하는 모든 상수가 가장 적절한 값으로 세팅되어 있기 때문에 평행우주가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옷이 많이 싸여있는 곳에서 무심코 하나를 집어 들었다면 그것이 몸에 딱 맞는다 해도 별로 놀라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수없이 많은 우주들 중에는 생명체에게 가장 적합한 우주가 반드시 존재하며, 우리가 바로 그곳에 살고 있다.” 즉 우리의 우주는 조물주에 의해 디자인된 우주가 아니라 무수히 많은 평행우주들 중에서 생명체에게 가장 이상적인 우주일 뿐이라는 것이다.



와인버그는 이 점에 동의한다. 그는 시간이 빅뱅 이후부터 흐르기 시작했다거나 빅뱅 이전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는 주장을 믿지 않는다. 다중우주에서는 우주가 언제든지 만들어지고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리스가 다중우주이론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우주에서 약간의 단점ugliness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지구의 공전궤도가 완벽한 원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것이 한 사례이다. 가장 이상적인 궤적에 약간의 무작위성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주상수(우주상수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나온다)가 정확하게 0이 아니라 0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것은, 우리의 우주가 그다지 특이한 존재가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는 우주가 우연한 사건에 의해 무작위로 탄생했다는 증거이다. 리스는 다중이론이 향후 20년 내에 검증 가능하다고 장담했다.



다중우주이론에 약간의 변형을 가한 이론은 지금도 검증할 수 있다.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리 스몰린Lee Smolin(1955~)은 리스보다 한술 더 떠서 “우주의 진화는 다윈의 진화론처럼 궁극적으로 우리의 우주와 같은 형태가 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혼돈인플레이션이론chaotic inflationary theory에 따르면 아기우주는 부모우주의 물리상수와 약간 다른 값을 갖고 태어난다. 그런데 일부 물리학자들의 주장대로 블랙홀로부터 우주가 탄생할 수 있다면 다중우주들 중 상당수의 우주 속에는 블랙홀이 여러 개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블랙홀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우주일수록 많은 아기우주를 양산하여 물리상수를 대물림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우주는 무수히 많은 선조우주를 갖고 있어야 한다. 즉 수조 년 동안 대를 이어오면서 우주적 자연선택에 의해 지금과 같은 우주로 진화했다는 논리가 성립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우주가 블랙홀을 가장 많이 보유해온 제법 있는 집안의 후손이란 뜻이다. 스몰린의 이론대로라면 우리의 우주는 평행우주들 중에서 블랙홀이 가장 많은 우주에 속하지만 블랙홀이 많은 우주가 생명체에게도 유리하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그리고 다윈의 진화론을 우주에 적용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그의 아이디어는 검증이 가능하므로 반증의 사례도 고려되어야 하는데, 예를 들면 물리적 변수들을 잘 조절하면 생명체가 없는 우주에서 블랙홀이 가장 쉽게 생성될 수 있다거나 핵력이 지금보다 강한 우주에서는 별들이 빠르게 초신성으로 진화하기 때문에 블랙홀의 수도 많다는 결론이 내려질 수도 있다. 이런 우주에서는 별의 수명이 짧기 때문에 생명이 탄생할 기회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블랙홀의 수가 많으므로 스몰린의 주장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초끈과 웜홀 그리고 높은 차원의 존재를 인정하는 모든 이론은 지금의 기술로 검증할 수 없다. 초고성능의 관측위성과 중력파감지기 그리고 레이저laser(결맞음상태에 있는 빛을 만들어내는 장치로 Light Amplification by Stimulated Emission of Radiation의 약자이다)를 이용한 다양한 장비들이 우리의 의문을 풀기 위해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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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된 우주


 

 

 

 

지구와 태양의 거리는 1억5천만km로 생명체의 탄생에 필요한 화학반응을 일으키기에 매우 적절한 거리다. 태양과 가까이 있는 금성Venus은 온실행성으로 대기의 주성분이 이산화탄소carbon dioxide(무색, 무취의 기체로 압력을 가라면 쉽게 액화되고 이를 더욱 압축하면 고체상태인 드라이아이스를 만들 수 있는데, 상온, 상압에 드라이아이스를 놓아두면 승화되어 기체로 날아간다)이므로 표면온도가 섭씨 480도에 달한다. 게다가 수시로 황산비가 내리고 기압은 지구의 100배가 넘는다. 반면 지구는 태양과의 거리뿐만 아니라 다른 요소들도 거의 기적이라 할 만큼 절묘하게 세팅되어 있다. 예를 들면 달은 지구가 지금의 공전궤도를 유지하는 데 가장 적절한 크기를 지니고 있다. 지금의 달의 크기(지구 크기의 1/3)가 작았더라면 지구의 자전을 방해하는 요인들이 수억 년 동안 누적되어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커다란 기상변화를 초래했을 것이며, 이 대재난의 와중에 모든 생명체가 멸종했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달이 없었다면 지구의 자전축은 수백만 년을 주기로 무려 90도씩 돌아가게 된다. 생명의 근원인 DNA가 생성되려면 안정된 기상상태가 수억 년 이상 지속되어야 하므로 달이 없었다면 생명체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화성의 달은 덩치가 너무 커서 화성의 자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천문학자들은 과거 한때 화성의 자전축이 45도가량 기울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주기적으로 작용하는 약한 힘 때문에 지금도 달과 지구 사이의 거리는 매년 4cm씩 멀어지고 있다. 이런 추세로 앞으로 20억 년이 지나면 달의 거리가 너무 멀어져서 지구는 더 이상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달은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질 것이고, 지구의 자전축이 심각하게 돌아가면서 지금과는 전혀 다른 별자리들이 밤하늘에 나타날 것이다. 지구의 날씨도 심각한 영향을 받아 생명활동 자체가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높다.



목성Jupiter은 우리에게 고마운 존재다. 목성은 태양계를 떠도는 온갖 소행성들을 태양계 바깥으로 내던지는 역할을 착실하게 수행해왔다. 이른바 소행성 전성시대로 일컬어지는 35~45억 년 전에 태양계는 별과 행성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들, 즉 소행성들로 가득 차있었다. 만약 목성이 지금보다 훨씬 작아서 강한 중력을 행사하지 못했다면 지금도 태양계는 소행성으로 초만원을 이루고 있을 것이며, 그것들 중 몇 개만 지루로 떨어져도 지구의 생명체는 멸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지구가 지금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목성이 지금과 같이 적절한 크기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구의 질량도 가장 적절한 값으로 세팅되어 있다. 지구의 질량이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작았다면 중력이 작아져서 대기 중에 산소를 붙잡아둘 수 없었을 것이며, 질량이 조금이라도 컸다면 원시시대에 형성된 유독가스가 대기 중에 섞여서 생명체가 살 수 없었을 것이다.



행성들의 공전궤도도 우리에게 아주 적절하게 형성되어 있다. 명왕성Pluto을 제외한 모든 행성들의 궤도는 원형에 가까운데(실제로는 아주 조금 일그러진 타원형이다), 이 덕분에 지구는 거대가스gas giant와 같은 다른 천체들과의 충돌을 효과적으로 피할 수 있다.



태양계가 은하수의 중심으로부터 은하수 반경의 3분의 2만큼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것도 우리에게는 큰 행운이다. 태양계가 은하수의 중심에 더 가까이 있었다면 중심부에 숨어있는 블랙홀의 강력한 복사장 때문에 생명체가 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태양계가 은하수의 중심에서 너무 멀리 있었다면 유기물에 필요한 원소들이 충분히 많지 않았을 것이다.



1995년 최초로 외부 태양계를 발견했던 카네기연구소의 폴 버틀러Paul Butler는 말했다.

“지금 우리는 2,000개에 달하는 태양계를 관측하고 있다. 이것들 중에는 우리로부터 150광년이나 떨어져 있는 태양계도 있다. 우리의 목적은 두 가지다. 하나는 우주의 이웃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지내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태양계와 같은 시스템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행성에서 생명체가 탄생하려면 안정된 환경이 적어도 수억 년 이상 지속되어야 하며, 하나의 행성이 그동안 큰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예를 들어 원자가 형성되는 과정을 보면, 원자의 중심부에 있는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양성자의 질량은 중성자보다 아주 작다. 이는 곧 중성자가 마침내 붕괴되어 양성자로 전환되면서 최저에너지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양성자의 질량이 지금보다 1%만 컸다면 양성자가 중성자로 붕괴되면서 모든 원자핵이 불안정한 상태가 되어 결국에는 모두 분해되고 말 것이다. 이렇게 되면 원자는 형성될 수 없으며 생명체도 탄생할 수 없다.



생명체의 탄생을 가능하게 한 또 다른 요인을 꼽는다면 양성자가 안정한 상태를 유지하여 반전자antielectron로 붕괴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실험결과에 의하면 양성자의 수명은 우주의 수명보다 훨씬 길다. 따라서 양성자는 안정된 DNA의 탄생에 큰 공헌을 한 셈이다.



강력(핵력)이 지금보다 조금 더 약했다면 중수소deuterium와 같은 원자핵들은 안정된 상태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므로 별의 내부에서 핵융합반응이 일어난다 해도 무거운 원자핵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와 반대로 핵력이 조금 더 강했다면 별들은 핵원료를 너무 빨리 소모하여 수명이 짧아졌을 것이며, 태양이 없는 지구에는 생명체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약력의 세기가 달라져도 생명체는 존재할 수 없다. 약력을 통해 상호작용하는 중성미자neutrino는 폭발하는 초신성의 에너지가 외부로 전달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이 에너지가 없으면 철보다 무거운 원소는 만들어질 수 없다. 약력이 지금보다 조금 더 약했다면 중성미자는 상호작용을 거의 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 결과 초신성은 철 이상의 무거운 원소를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약력이 지금보다 조금 강했다면 중성미자는 별의 중심부에서 쉽게 탈출하지 못해 우리의 몸과 주변 환경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무거운 원소들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우주적 우연을 기록한 긴 목록을 만들었다. 목록을 보면 우주와 관련된 그 많은 상수들이 한결같이 생명체의 탄생에 가장 적절한 값으로 세팅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천문학자 휴 로스Hugh Ross는 이 기적과 같은 상황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주의 모든 상수가 지금과 같이 적절한 값으로 세팅될 확률은 폐품창고에 태풍이 불어닥쳐 보잉 747 제트기가 자동으로 조립될 확률과 비슷하다.”



인류학적 관점에서 볼 때 물리적 상수들이 적절한 값을 갖고 있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모종의 의지가 개입된 계획우주를 연상하게 한다. 우주적 물리상수의 값이 생명체와 의식이 발생 가능한 쪽으로 맞춰져 있다. MIT의 물리학자 베라 키스티아코프스키Vera Kistiakowsky는 말했다. “물리적 세계에 존재하는 고도의 질서를 생각하면 신의 존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 의견에 찬성한 또 다른 사람은 물리학자 존 폴킹혼John Polkinghorne(1930~)으로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입자물리학을 연구하다가 어느 날 교수직을 버리고 영국교회의 성직자가 되었다. 그는 말했다. “우리의 우주는 낡고 버려진 세상이 아니라 생명체를 위해 모든 환경이 절묘하게 맞춰진 특별한 세상이다. 왜냐하면 우주를 창조한 창조주가 그렇게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별과 행성의 움직임을 좌우하는 불변의 운동법칙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도 “신이 없다면 이토록 우아한 법칙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라며 조물주의 존재를 시인했다.



그러나 노벨상을 수상한 물리학자 스티븐 와인버그Steven Weinberg(1933~)는 이런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인간이라면 자신이 우주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울 것이다. 인간의 삶은 태초우주의 3분으로부터 야기된 연쇄적 사건의 결과가 아니라 우주가 시작될 때부터 이미 결정된 운명이었다.” 그러나 그는 인류학의 강원리인 “우주는 적어도 어느 한 시기 동안 생명체에게 적절한 환경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미신에 가까운 신화라고 결론지었다. 앨런 구스Alan Guth(1947~)도 인류학 원리에 반대하면서 말했다. “나는 인류학 원리를 부르짖는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원리로 우주의 역사를 설명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일부 과학자들이 인류학 원리를 받아들이는 이유는 그보다 더 나은 생각을 떠올릴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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