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우주Multiverse


 

 

 

 

케임브리지 대학의 마틴 리스 경Sir Martin Rees(1942~)은 우주적 우연이야말로 다중우주의 존재를 입증하는 강력한 증거라고 믿는다. 그는 “바깥 어딘가에 수백만 개의 평행우주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가정을 내세우지 않고서는 우리의 세계에 이렇게 많은 우연과 기적이 발생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주의 모든 환경이 생명체에 적합하도록 최적화되어 있는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나도 한때는 모든 조건이 생명체에게 적합하도록 세팅되어 있는 것이 우연이나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지나치게 편협한 관점이다. ... 그냥 생명체가 전성하기 위해 요구되는 조건들이 지나치게 많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 관점을 받아들이면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신의 섭리를 굳이 도입할 필요가 없다.”



리스는 이런 개념들 중 일부를 정량화함으로써 자신의 논리를 더욱 강화시켰다. 그는 우주가 이상적으로 세팅된, 측정 가능한 여섯 개의 숫자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며, 이 숫자들은 생명체의 탄생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 숫자는 빅뱅을 통해 수소가 헬륨으로 전환되는 과정에 관여하는 입실론(ε=0.007)이다. 이 값이 0.006이었다면 핵력이 지금보다 약해져서 양성자와 중성자는 서로 결합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면 중수소deuterium(양성자proton 1+중성자neutron 1)가 형성되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의 몸과 우주의 대부분을 이루는 무거운 원자들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오직 수소로 가득 찬 썰렁한 우주로 남았을 것이다. 핵력(양성자와 중성자를 결합하여 원자핵을 이루고 있는 힘)이 지금보다 조금만 약했다면 주기율표periodic table에 있는 대부분의 원자들은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없으므로 생명체는 결코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반면에 입실론ε의 값이 0.008이었다면 핵융합이 너무 빠르게 진행되어 빅뱅 이후 수소는 곧 고갈되었을 것이며, 지구 같은 행성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별도 오래전에 모두 소멸했을 것이다. 리스는 “핵력의 세기가 지금의 4%만 작았어도 무거운 원소의 출발점인 탄소carbon는 별 속에서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며, 그 결과 생명체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라는 프레드 호일의 말을 인용하면서 입실론ε값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핵력의 크기가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베릴륨beryllium 원자핵이 불안정해지기 때문에 연쇄적인 핵융합nuclear fusion(가벼운 원소 사이의 핵반응에 의해서 무거운 원소 철까지 형성되는 반응으로 상호작용하는 핵이 원자번호가 낮은 원소에 속하는 경우에는 상당한 양의 에너지가 방출된다)이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해 탄소원자가 존재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탄소는 모든 유기물에 반드시 필요한 원소이므로 이것 없이는 생명체가 탄생할 수 없다.



우주의 운명을 좌우하는 두 번째 숫자는 전자기력의 세기와 중력의 세기의 비율을 나타내는 N=1036이다. 즉 전자기력은 중력보다 무려 1036배나 강하다. 그런데 중력이 이보다 더 약하면 별이 충분히 응축되지 않아서 핵융합반응을 일으킬 수 없다. 그러면 별들은 빛을 발할 수 없게 되며 그 주변의 행성들은 꽁꽁 얼어붙은 암흑세계가 되었을 것이다.



이와 반대로 중력이 지금보다 조금 강했다면 별들은 너무 빨리 타올라서 이미 옛날에 소멸했을 것이므로 이 경우 역시 생명체는 존재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중력이 강하면 별들 사이의 간격이 지금보다 훨씬 가까워져서 서로 충돌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세 번째 숫자는 우주의 상대적 밀도를 나타내는 오메가(Ω)이다. Ω의 값이 지나치게 작았다면 우주는 너무 빠르게 팽창하고 너무 빠르게 식었을 것이다. 또한 Ω가 너무 크면 우주는 생명체가 탄생하기도 전에 완전히 수축되었을 것이다. 리스는 자신의 저서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우주가 지금처럼 팽창하면서 Ω~1을 유지하려면 빅뱅이 일어나고 1초가 지났을 때 Ω의 값이 1에서 0.000000000000001 이상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네 번째 숫자는 우주팽창의 가속도를 결정하는 우주상수 람다(Λ)이다. 우주상수가 지금보다 몇 배 정도 컸다면 우주는 반중력에 의해 즉각적으로 대동결big freeze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생명체의 존재는 어림도 없는 소리다. 또한 우주상수가 음수였다면 우주는 안으로 붕괴되어 역시 생명체는 살아갈 수 없다. 즉 생명체가 번성하려면 우주상수는 우주의 밀도 Ω와 마찬가지로 아주 작은 영역 이내의 값을 가져야 한다.



다섯 번째 수는 우주배경복사의 불규칙성을 나타내는 Q(10-5)이다. 이 값이 조금 더 작았다면 우주전역에는 먼지와 가스가 극도로 균일하게 분포되어 별이나 은하가 형성되지 못했을 것이며, 우주는 별다른 특색이 없는 어둡고 균일한 공간으로 남았을 것이다. 반면에 Q가 지금보다 컸다면 지금보다 훨씬 빠른 시기에 초대형 은하가 형성되어 주변의 물질들을 마구 잡아먹으며 거대한 블랙홀로 진화했을 것이다. 리스의 계산에 의하면 이 블랙홀은 은하전체보다 큰 질량을 갖고 있으므로 모든 별과 행성들은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 최후를 맞이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섯 번째 숫자는 공간의 차원을 나타내는 D이다. M-이론이 등장한 후로 물리학자들은 “지금보다 높거나 낮은 차원에서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일단 1차원 공간(선)은 너무나 단순하기 때문에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 1차원 공간의 양자역학에서 입자들은 상호작용을 전혀 하지 않는다. 즉 1차원에서는 생명체의 기본단위인 입자들이 결합을 아예 하지 않기 때문에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2차원 공간에서도 이와 비슷한 문제가 발생한다. 2차원 평면에 살고 있는 생명체를 상상해보라. 이것들의 내장은 과연 어떻게 생겼을까? 체내에서 완전소화를 하지 않는 한 2차원의 생명체들도 입과 배설기관을 동시에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2차원 도형의 기하학적 특성상 입구와 출구가 한 몸에 존재하려면 이것들의 몸은 두 조각으로 분리되어야 한다. 따라서 2차원에도 복잡한 생명체가 존재할 수는 없을 것 같다.



4차원의 공간으로 가면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이런 우주에서는 행성들이 안정된 궤도를 유지할 수 없다. 4차원 공간에서는 뉴턴의 중력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지 않고 거리의 세제곱에 반비례한다. 아인슈타인의 절친한 연구동료였던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수학자 폴 에렌페스트Paul Ehrenfest(1880~1933, 1922년에 네덜란드 시민권을 받았다)는 1917년에 다른 차원에서 물리학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예견해 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그는 푸아송-라플라스 방정식Poisson-Laplace equation(행성과 전자의 운동을 서술하는 방정식)을 분석한 끝에 4차원 이상의 공간에서는 행성의 궤도가 불안정하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그런데 원자핵의 주변을 돌고 있는 전자도 기본적으로는 태양계와 비슷한 구조이므로 고차원 공간에서는 원자와 태양계가 존재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생명체가 살기에는 3차원 공간이 가장 이상적이란 뜻이다.



리스는 우주의 운명을 좌우하는 모든 상수가 가장 적절한 값으로 세팅되어 있기 때문에 평행우주가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옷이 많이 싸여있는 곳에서 무심코 하나를 집어 들었다면 그것이 몸에 딱 맞는다 해도 별로 놀라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수없이 많은 우주들 중에는 생명체에게 가장 적합한 우주가 반드시 존재하며, 우리가 바로 그곳에 살고 있다.” 즉 우리의 우주는 조물주에 의해 디자인된 우주가 아니라 무수히 많은 평행우주들 중에서 생명체에게 가장 이상적인 우주일 뿐이라는 것이다.



와인버그는 이 점에 동의한다. 그는 시간이 빅뱅 이후부터 흐르기 시작했다거나 빅뱅 이전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는 주장을 믿지 않는다. 다중우주에서는 우주가 언제든지 만들어지고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리스가 다중우주이론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우주에서 약간의 단점ugliness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지구의 공전궤도가 완벽한 원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것이 한 사례이다. 가장 이상적인 궤적에 약간의 무작위성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주상수(우주상수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나온다)가 정확하게 0이 아니라 0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것은, 우리의 우주가 그다지 특이한 존재가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는 우주가 우연한 사건에 의해 무작위로 탄생했다는 증거이다. 리스는 다중이론이 향후 20년 내에 검증 가능하다고 장담했다.



다중우주이론에 약간의 변형을 가한 이론은 지금도 검증할 수 있다.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리 스몰린Lee Smolin(1955~)은 리스보다 한술 더 떠서 “우주의 진화는 다윈의 진화론처럼 궁극적으로 우리의 우주와 같은 형태가 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혼돈인플레이션이론chaotic inflationary theory에 따르면 아기우주는 부모우주의 물리상수와 약간 다른 값을 갖고 태어난다. 그런데 일부 물리학자들의 주장대로 블랙홀로부터 우주가 탄생할 수 있다면 다중우주들 중 상당수의 우주 속에는 블랙홀이 여러 개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블랙홀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우주일수록 많은 아기우주를 양산하여 물리상수를 대물림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우주는 무수히 많은 선조우주를 갖고 있어야 한다. 즉 수조 년 동안 대를 이어오면서 우주적 자연선택에 의해 지금과 같은 우주로 진화했다는 논리가 성립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우주가 블랙홀을 가장 많이 보유해온 제법 있는 집안의 후손이란 뜻이다. 스몰린의 이론대로라면 우리의 우주는 평행우주들 중에서 블랙홀이 가장 많은 우주에 속하지만 블랙홀이 많은 우주가 생명체에게도 유리하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그리고 다윈의 진화론을 우주에 적용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그의 아이디어는 검증이 가능하므로 반증의 사례도 고려되어야 하는데, 예를 들면 물리적 변수들을 잘 조절하면 생명체가 없는 우주에서 블랙홀이 가장 쉽게 생성될 수 있다거나 핵력이 지금보다 강한 우주에서는 별들이 빠르게 초신성으로 진화하기 때문에 블랙홀의 수도 많다는 결론이 내려질 수도 있다. 이런 우주에서는 별의 수명이 짧기 때문에 생명이 탄생할 기회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블랙홀의 수가 많으므로 스몰린의 주장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초끈과 웜홀 그리고 높은 차원의 존재를 인정하는 모든 이론은 지금의 기술로 검증할 수 없다. 초고성능의 관측위성과 중력파감지기 그리고 레이저laser(결맞음상태에 있는 빛을 만들어내는 장치로 Light Amplification by Stimulated Emission of Radiation의 약자이다)를 이용한 다양한 장비들이 우리의 의문을 풀기 위해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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