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를 읽고 장자에게 배운다』 중에서

 

 

 

 

 

못생긴 첩이 사랑을 받다

 

『장자』에 이런 이야기가 있는데 오늘날에 적용할 때 꼭 맞다고 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이 여관에 묵으러 갔다. 그 여관주인에게는 첩이 둘 있었는데 한 명은 미녀이고 한 명은 추녀였다. 그런데 여관주인이 예쁜 첩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못생긴 첩만 아끼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을 보고 손님들은 모두 의아해 했다. 다른 이들처럼 의아해 하던 그 사람이 여관주인에게 물었다.
“어떻게 두 첩을 대하는 태도가 그렇게 다를 수 있죠?”
여관주인이 대답했다.
“예쁜 첩은 자신이 예쁘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절대 예쁘지 않고, 못생긴 첩은 자신이 못났다고 생각하지만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오.”
매우 의미심장한 말이다. 예쁜 첩은 자신의 미모를 믿고 거만하여 무엇을 하든 잘난 척하지만 이와 반대로 못생긴 첩은 자신이 못났다고 생각하여 겸손하고 태도 또한 공손했다.

사람이 함께 생활하다 보면 외모보다는 성격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오만한 성격과 온화한 성격의 차이는 이렇게 크다. 아무리 천하절색이라도 겉껍질에 불과한 외모보다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마음이 바르지 않은데 반반한 얼굴만 믿고 타인에게 거만하게 군다면 다른 사람들은 그를 단지 물건처럼 두고 쳐다볼 뿐이지 진정으로 가까운 사이가 되거나 사귀고자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름다움과 추함의 구분은 시대적, 사회적 차이 외에도 거리감을 고려해야 한다. 일정한 거리를 두면 감상에 도움이 된다. 『장자』의 「소요유편逍遙遊篇」의 앞부분에 나오는 이야기 세 개는 모두 물고기에 대한 것이다. 곤鯤이라는 큰 물고기가 있었는데 그것이 변하여 새가 되면 이를 붕鵬이라고 한다. 붕은 일단 한번 날면 9만 리까지 높이 날아 올랐다. 장자는 생각했다. 땅에서 바라본 하늘은 아득하여 아름답기만 하다. 이것
은 하늘의 진짜 색깔일까? 아니면 우리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잘 안 보이는 것일까? 그는 이어서 하늘에서 땅을 본다면 땅도 아름답게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대개 하늘이 아름답다고만 생각하지 그것이 서로 간의 거리 때문에 그렇게 보인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미국의 우주인이 달에 착륙해 한 말이 있다.
“지구는 참 아름답다.”
정작 지구에 있을 때에는 늘 북적대는 사람들 속에서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려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런데 우주인이 본 지구는 주위의 별들 사이에서 유일한 유채색의 별이며 초원, 강, 설산, 사막, 삼림 등으로 이뤄져 아름답게 보였던 것이다.
프랑스의 한 사회학자는 한 사람이 가장 창의적인 때를 찾으려면 인구밀도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1km2의 공간에 평균 30명이 있다면 가장 이상적이다. 이 정도 인구밀도라면 한참을 걸어가야 동족을 만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사람들과 마주치게 될 때마다 친근함을 느끼게 된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 일정한 거리도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비교적 창의적인 사고도 가능해진다. 이것이 바로 거리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이다.
많은 사람들이 유럽 여행을 동경한다. 유럽에 도착해서 중세 후기의 고성을 보면 아름답다고 느낀다. 텔레비전이나 소설에서 나올 법한 것들을 보면서 당시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진다. 벨기에의 한 마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을이 성 하나로 된 곳으로, 나는 그런 아름다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런데 정작 그곳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곳은 그들에게 나고 자란 고향이요, 우리가 살고 있는 집과 별반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왜 여행객의 눈에만 아름다울까? 그것은 이용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당신이 그곳 주민이라면 적어도 경찰서, 우체국, 세탁소, 식당 등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아야 할 것이다. 당신이 실제로 이용해야 할 장소가 되고 거리가 좁혀지면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만다. 재미있지 않은가?

장자는 만물에 모두 도가 있으며 도는 만물 속에 존재한다고 말했다. 사람은 육체를 제외하고도 정신이 있고 정신은 영혼을 주재한다. 우리는 생계를 위해 고생도 마다하지 않고 쉴 새 없이 움직이지만, 가끔은 발걸음을 멈추고 자신에게 휴식시간을 줘야 하지 않을까?

 

 

저자소개: 푸페이룽 傅佩榮
1950년에 태어난 푸페이룽은 타이완대학 철학대학원 석사, 미국 예일대학 철학박사이다. 타이완대학 철학과 학과장 및 철학대학원 원장을 역임하였으며 벨기에대학, 네덜란드 레이던대학 객원교수이기도 하다. 현재는 타이완대학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푸페이룽은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말솜씨를 가진 교수로, 타이완 『민생보民生報』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학교수로 선정되었다. 뿐만 아니라 타이완 교육부에서 수여하는 우수 교육자상, 『성공한 인생成功人生』으로 타이완 문화예술 분야 국가문예상, 『천론에 대한 유가와 도가의 해석儒道天論發微』으로 중정中正 문화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현재까지 타이완에서 백 권이 넘는 책을 출간하는 등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특히 전통 경전 연구에 몰두하여 기존의 이론이나 고정관념을 탈피한 독창적인 견해를 내놓고 있다.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논어』, 『맹자』, 『노자』, 『장자』, 『역경』 등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였으며 학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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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멘 하라의 『일체감이 주는 행복』(도서출판 知와 사랑)

부제: 나를 치유하는 신성한 연결고리

 

 

 

집단의 업이 지닌 힘

 

자신의 업에 고통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에게 피해를 입힌 사람을 처벌하고 그들에게 복수하고 싶어한다. 이렇게 반응하는 것은 우리가 일체감과 단절되어 있기 때문에, 그래서 결국 용서하지 못하고 더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국에는 더 부정적인 결과를 불러온다. 다른 사람을 적대시하고 불신과 의심에 굴복한다면, 이 끝없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신이 속한 집단과 다른 집단이 분리되어 있다는 환상에 매달리다 보면, 악업은 치유되지 못하고 지속될 수밖에 없다. 편협한 사고나 인종주의가 바로 그런 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피부가 흰 사람이 피부가 검은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낡은 관념을 신봉하고 있다.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오는 믿음이기는 하지만, 너무나 잘못된 생각이다. 예를 들어 부유한 브라만 계급이 ‘불가촉천민’으로 취급되는 가난한 사람들보다 피부가 더 하얀 인도에서는 아직도 노예제도의 유산을 느낄 수 있는 미국과 동일한 분할이나 편견이 발견된다.

우리를 계속 병들게 하는 이런 행동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일체감을 받아들이고 모든 이들을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다. 가령 당신은 캐나다인이고 나는 유럽인일 수 있지만, 더 크게 보면 그저 지구의 일원일 뿐이다. 당신은 동성애자이고 나는 이성애자일지라도, 우리 모두 배우자의 사랑과 포용을 필요로 하지 않는가? 당신은 무신론자이고 나는 신을 믿지만, 우리 모두 삶에 대한 해답과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더 큰 무엇과의 연관성을 찾고 있지 않은가? 이념이나 인종, 성별이나 지난 역사와 상관없이 우리 모두의 길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제 우리의 차이점을 극복하고 서로 화합하기 위해 집중해야 할 때다.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일어났을 때 에이브러햄 링컨은 성경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미국인들에게 경고했다. “집이 갈라지면 똑바로 서 있을 수 없다.” 내부가 분열되면 제국도 무너질 수 있음을 링컨은 잘 알고 있었다. 미국의 화합이 엄청난 위기에 처하자, 링컨은 서로 분리되어 싸우는 대신 뭉쳐야 한다고 호소했다.

오늘날 우리는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미국이라는 큰 나라조차 너무 많은 욕심과 두려움 때문에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고 느낀다. 자연재해에 일상이 흔들리고, 회복되기까지 몇 년이 걸릴 주택 위기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아무도 모르는 재정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악업을 만들어내는 단절이라는 근본적인 원인보다 겉으로 드러나는 증세를 치료하기에 바쁘다.

최근에 나는 친구들과 고객들에게서 민간 채권자나 정부 소속 채권자들의 공격적이고 비도덕적인 태도에 대해 듣고 충격을 받았다. 나는 그들에게 인간은 대개 두려운 상황에 놓이면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환기하려 애썼다. 우리는 대부분 부당하거나 불법적인 대접을 받기 싫어하지만, 겁에 질린 상황에서는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자, 이제 세상과 나 사이에 싸움이 시작되는 거야.’ 이때부터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하지만 이런 광기는 멈추어야 한다.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이웃에게 잘못을 저질러도 괜찮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부패와 남용에 가담한 사람도 부당한 대접을 받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자신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야 한다. 다른 인간에 대한 배려 없이 권력에만 집착하는 집단에 들어가봤자 전혀 안전하지 않다. 결국 마지막에는 자신의 차례가 돌아올 것이다. 로마 제국을 예로 들어 제국이 권력을 오용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살펴보자. 알다시피 로마인들은 다른 이민족을 정복하고 착취함으로써 자신들의 안전을 도모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민족들의 저항에 부딪혔을 뿐이다. 로마의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는 부족한 정부 재원을 메우기 위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세금을 올렸다. 제국은 너무나 방대하게 확장되어 거의 통제 불능에 놓였다. 게다가 관료들은 서로 싸우기 바빴고 로마인이 되기를 강요받은 이민족들은 새로운 국가의 가치를 존중하거나 그것에 공유되지 않고 끈질기게 저항했다. 이런 불협화음은 제국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신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 제국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적이며 자신들이 창조한 것들이 영원하리라고 믿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 같지 않은가? 미국도 국내외 문제들에 대해 지금이라도 당장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 모든 나라와 정부, 제도는 결국 와해되지 않는가.

아틀란티스에 대한 이야기도 빠뜨릴 수 없다. 이 도시가 정말로 존재했는지 아니면 이야기 속에만 존재하는지 모르겠지만, 서구 문명의 진로를 놓고 상상할 때면 아틀란티스는 오랫동안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제국이 내부에서부터 흔들리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명백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추정에 따르면, 아틀란티스는 기술이 발달한 도시였지만 검은 피부의 레뮤리아Lemuria인들을 비롯한 여러 민족과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욕망과 잔인함이 결부된 아틀란티스인들의 악업은 결국 섬이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원인이 되었다.

미국인들은 아틀란티스의 전설을 듣고 편협함과 욕심 그리고 공격성에 물든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선조들이 지은 죄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총체성의 법칙에 따르면, 우리가 곧 그들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세월이 지났건 얼마나 많은 제국이 나타났다 사라졌건 상관없이, 우리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로부터 영원히 도망치지 못한다. 한 사람이 혹은 한 집단이 다 죽는다고 해서 악업이 해소되지는 않는다.

미국은 전 세계의 역할 모델이 될 가능성이 있다. 역사상 빛나는 순간들도 많았다. 일체감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건국의 아버지들과 그 밖의 다른 애국자들이 있었으며, 그들이 세운 이상에 따라 살던 시대도 있었다. 이제 우리는 통일성과 조화를 갖춘 세계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갈등과 의심 그리고 편협함과 힘에 대한 욕심에 더 깊이 빠질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조화가 다시 전면에 부각될 때만 끝없는 하강의 움직임을 멈출 수 있다. 하지만 상위 2% 인구가 대부분의 부를 움켜쥐고 수백만의 인구가 기본적인 자유와 안전을 찾아 발버둥치는 한, 우리는 계속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매일 수천 명의 개인들이 선업을 쌓고 우리가 계획한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젊은이들은 안전함으로 향하는 전통적인 경로에서 떨어져 나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설계하고 창조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므로 더 이상 누구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회구조와 물질적인 방식에 질문을 던져보자. 오로지 그래야만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발전은 아주 작은 변화에서 시작된다. 가령 지하실과 다락, 창고에 싸구려 물건(어떤 물건에는 상표가 그대로 붙어 있을 지경이다)을 가득 쌓아두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물질’이 절대로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실 그런 물건은 사람을 오히려 더 갑갑하게 할 뿐이다. 모든 사람이 보다 소박하고 단출하게 살려고 노력한다면, 우리 사회는 긍정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당신도 물질주의의 손아귀에 붙들린 적이 있는가? 더 구매하고 더 소유하고 더 수집하고 싶은 압박을 느낀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물질에 정신을 빼앗겨,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 그리고 영적 존재와의 관계에 마음을 쏟을 때 느낄 수 있는 기쁨과 안정감을 잊어버린 것이다. 소유욕에 사로잡혀 자제력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 하더라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 있었던 자신을 용서하고, 앞으로는 다르게 살겠다고 맹세하라.

전 지구적인 경제 위기는 인류를 일체감으로 복귀시킬 중요한 기회다. 미래에 대한 희망도 안전도 느낄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희생해서 얻는 부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있다. 서로 나누며 소박하고 조화롭게 살아간다면, 우리는 다 함께 지구의 혜택을 고루 누리며 살 수 있다. 그리고 선업을 쌓음과 동시에 지속적으로 생산되는 부정적인 업에 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 세상 모든 남성과 여성 그리고 아이들이 보다 겸허한 태도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으며, 앞으로 그런 삶의 자세가 점점 확대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일체감을 향해 나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카르멘 하라 박사는 '더 뷰The view', '굿모닝 아메리카Good morning America', '투데이 쇼Today show' 그리고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 [뉴욕 포스트The New York Post]를 비롯한 미국의 텔레비전 쇼와 언론 매체에 출연하는 유명 인사이며 심리치료학자다.

할리우드 스타에서부터 저명한 정치인들까지 그녀를 찾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다년간의 경험을 통한 부부 치료나 인지치료 방식이 그녀의 신비한 직관력과 합쳐져 그녀는 세계적인 상담사로 발돋움했다. 또한 세 장이나 음반을 낸 재능 있는 음악가이며, 자신만의 고유한 보석을 디자인하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홈페이지 www.CarmenHarra.com과 페이스북 carmen Harra- (Wholeliness)를 방문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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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를 읽고 장자에게 배운다』 중에서

 

칭찬하려다 오히려 욕먹다

몇 년 전 강연을 하러 간 적이 있었다. 두 단체에서 주최한 행사였는데 한쪽에서는 남성 두 명, 다른 쪽에서는 여성 두 명이 나를 마중나왔다. 우리는 호텔에 도착한 후, 야식을 먹으러 갈 참이었다. 이때 한 남성이 호의를 표한다고 이렇게 말했다.
“푸 교수님은 정말 운이 좋으시네요. 이렇게 미인 두 분이 마중을 나오시고요.”
그러고는 ‘환비연수環肥燕瘦(고대의 미녀를 지칭했던 말로 환環은 양귀비를, 연燕은 조비연을 가리킴. 풍만한 체격의 미인인 양귀비와 가냘픈 몸매의 조비연 모두 미인을 대표함)’라는 말을 덧붙였다. 본래는 자신의 문학적 소양도 뽐내고 상대를 칭찬하고자 사용한 말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기준으로는 풍만함이 결코 미를 대표하지 못한다. 그런데 마침 두 여성이 좀 풍만한 편이었기에 그녀들은 이 말을 바로 받아쳤다.
“지금 나더러 뚱뚱하다는 말이에요?”
분위기는 순식간에 꽁꽁 얼어붙어 야식을 먹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 이야기는 무엇을 뜻할까? 고대사회라고 미의 기준이 한 가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태평양 연안에 카렌족Karen 마을이 있다. 그곳에서 말하는 미인은 어려서부터 목걸이를 해서 목을 길게 만든 사람으로 목이 길수록 미인으로 대우받는다. 다른 지역에 사는 평범한 여자가 그곳에 가면 분명 못생겼다고 놀림을 받을 것이다. 이는 아름다움이 때로는
습관에 의해 형성된 판단과 관계가 있음을 뜻한다. 습관은 당신의 판단 기준에 영향을 주고, 자주 보다 보면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해 미녀 혹은 미남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그와 다른 스타일의 사람을 보면 반대로 추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즉 습관이 만들어내는 판단은 매우 상대적이다. 한편 우리는 아름다움과 추함이 습관에서 비롯된 판단 외 에도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자』에는 동시효빈東施效嚬이라는 성어와 관련된 고사가 나온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에 서시西施라는 미인이 있었다. 그녀는 가슴에 통증이 있어서 아플 때마다 가슴을 잡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와 같은 마을에 동시東施라는 못생긴 여자가 살았는데 서시의 모습을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하여 똑같이 따라 했다. 그러자 마을의 부자들은 혹시나 그녀와 마주칠까 두려워 즉각 문을 닫아버리고 밖에 나서기를 꺼렸으며,
가난뱅이들은 처자식을 데리고 아예 멀리 떠나버렸다. 꿈에라도 나올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장자』에 나오는 이 이야기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진정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다른 사람이 아름답다고 느낄 때 무엇이 그를 아름답게 했는지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단순히 외모나 화장술, 혹은 명품을 걸친다고 아름다워진다면 너무 쉽지 않은가?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적인 아름다움을 떠나서 생
각할 수 없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적인 아름다움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 노장의 지혜 ‥‥‥

인간사회에서 아름다움과 추함을 판단하는 기준은 시대마다 다르며
개인마다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기준, 그리고 각자의 마음가짐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아름다워지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장자』에 나오는 우화 중, 여관주인은
왜 못생긴 아내를 더 아끼고 예쁜 부인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을까?

 

저자소개: 푸페이룽 傅佩榮
1950년에 태어난 푸페이룽은 타이완대학 철학대학원 석사, 미국 예일대학 철학박사이다. 타이완대학 철학과 학과장 및 철학대학원 원장을 역임하였으며 벨기에대학, 네덜란드 레이던대학 객원교수이기도 하다. 현재는 타이완대학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푸페이룽은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말솜씨를 가진 교수로, 타이완 『민생보民生報』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학교수로 선정되었다. 뿐만 아니라 타이완 교육부에서 수여하는 우수 교육자상, 『성공한 인생成功人生』으로 타이완 문화예술 분야 국가문예상, 『천론에 대한 유가와 도가의 해석儒道天論發微』으로 중정中正 문화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현재까지 타이완에서 백 권이 넘는 책을 출간하는 등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특히 전통 경전 연구에 몰두하여 기존의 이론이나 고정관념을 탈피한 독창적인 견해를 내놓고 있다.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논어』, 『맹자』, 『노자』, 『장자』, 『역경』 등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였으며 학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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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멘 하라의 『일체감이 주는 행복』(도서출판 知와 사랑)

부제: 나를 치유하는 신성한 연결고리

 

 

 

개인의 총체성을 받아들이기

 

우리 모두는 어두운 면을 가지고 있고, 잘못된 행동에 대한 괴로운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대신 어두운 면이 드러난 사람을 지목해서 ‘적어도 나는 저 사람만큼 나쁘지는 않아’라고 자위하곤 한다. 사실 실패에 대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고 자신의 잘못을 모른 척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쁘기만 하거나 착하기만 한 사람은 없다. 인간은 모든 본성의 총체이며, 무의식적인 충동과 의식적인 충동 두 가지 모두를 지니고 있다. 한 남자가 자신은 일부일처제를 신봉하고, 부부 사이의 감정적인 친밀감을 중시하며, 결혼식에서 상대에게 충실할 것을 맹세했다고 치자. 하지만 그는 풀리지 않은 업 때문에 생각대로 살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어쩌면 자신이 그런 행복을 누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한 사람과 평생 정서적으로, 성적으로 친밀함을 유지하면서 사는 것을 두려워할 수도 있다. 어쩌면 그런 감정에 휩쓸려 다른 여성을 유혹한 뒤 나중에 부인을 배신했다는 엄청난 죄의식에 빠질 수도 있다. 이렇듯 풀리지 않은 업 때문에 그의 행동은 더 나쁜 업을 낳게 된다.

물론 이 사람의 행동을 비난하기는 쉽지만, 그를 나쁜 사람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자신의 행동에 따른 정서적 영향을 부정하면서 전혀 괴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의 영혼은 알고 있다. 자신의 에너지가 매우 심하게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또한 이런 영혼의 불균형으로 인해 육신에 병을 얻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업을 해소하고 일체감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자신과 타인을 완전한 선과 완전한 악으로 구분하고 피해자와 가해자로 생각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모든 이들이 지닌 일체감을 이해하고 개별적인 행동의 복잡성과 모순을 받아들여야 한다. 평소에 사랑으로 가득 찬 사람도 긴박한 상황에 놓이면 엄격하고 가혹해질 수 있으며, 아주 자기중심적인 사람도 다른 사람을 도울 기회가 오면 너그러움을 보일 수 있다. 또한 다른 이들의 삶에 단순히 개입하여 그 사람의 숨겨진 상처를 넘보려 하지 말라. 그 사람은 어쩌면 자신의 상처를 자각하고 있지 못할 수도 있다. 나쁜 행동이 과거의 감정적 상처와 단절감에서 기인할지도 모른다고만 단순히 믿어보자. 일체감을 받아들이면, 타인이 상처를 치유하도록, 연결고리를 찾도록, 더 이상 악업을 쌓지 않도록 도울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을 진정으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생각 자체가 자아가 지혜와 통제에 대한 환상을 즐기고 있다는 증거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런 까닭에 온화하고 성격 좋은 친구가 갑자기 오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끔찍한 행동을 저지르면, 극심한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런 일들을 통해 우리는 모든 이들에게 어두운 면이 있으며, 표면적으로 드러난 모습과 실제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다른 사람이 당신보다 풀어야 할 업이 더 많아 보이더라도 그것은 당신이 상관할 문제가 아니다. 그 사람을 ‘교정’하거나 비교하고 판단하는 것은 당신의 몫이 아니다! 그런 행동은 오히려 자신의 업을 해결하지 않으려는 자아의 변명일 뿐이다.

유명 스타들에게 환호하는 우리 문화에서는 이렇게 문제의 초점을 잘못 건드리는 경우가 잦다. 이들이 잘못된 행동을 한 사실이 드러나면, 우리는 자신의 문제는 잊고 그에 대한 잡담에 몰두한다. 스타는 완벽해야만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린다. 이들은 언제나 얼굴에 웃음을 띠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며 이해와 인내로 모든 이들을 대해야 한다는 압박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공인은 항상 즐거워 보여야 한다는 대중의 기대는 이들에게 거대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비현실적인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부담 속에서 살아간다.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개인을 불안과 우울에 빠뜨린다. 다른 이들을 끊임없이 만족시키지만 자신은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삶은 피곤할 뿐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에게 단절되고 거절당하는 일 없이 불행과 분노를 표현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하고 자신이 돌봐야 하는 이들을 항상 실망시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종종 극단적인 고독에 빠져 살아간다. 그들은 일체감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도 사랑하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업을 해소하기 위한 첫 단계인 자신의 다양한 측면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의 어떤 부분을 숨기면(그것이 어두운 면이건 자비로운 면 혹은 창의적인 면이건 간에) 그것은 일체감과 모순되고 부조화를 발생시킨다. 당신이 자신을 사랑한다면, 자신의 실패를 바라보고 받아들이며 파악하는 일이 한결 쉬워진다.

영적 존재는 자신의 총체성을 받아들이는 어려운 과정에서 항상 큰 힘이 되어준다. 격동과 비극의 시기를 헤쳐 나가는 동안 길잡이나 천사 혹은 영령이 나서서 도와주는 일이 없는 듯 보일 테지만, 이는 업의 법칙에 따라 당신이 소중한 교훈을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당신이 좀 덜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교훈을 얻기를 바라지만,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업에 대한 깨우침을 얻으려면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영적 존재의 목적은 개인이 고통을 받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업을 치유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당신의 영혼이 먼저 치유되고 난 다음의 일이다.

사실 집단의 의식 속에 있는 모든 영적 존재와 영혼이 가장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일은 인류의 업을 해소하고 모든 이들을 일체감 안으로 데려가는 것이다. 신의 지혜는 인간의 이해 범위를 능가한다. 직장이나 집을 잃고 나면 엄청나게 불행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나중에는 그런 경험이 없었더라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없었으리라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그러므로 기억하라. 어떤 일이 생각처럼 되지 않을 때는 더 나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카르멘 하라 박사는 '더 뷰The view', '굿모닝 아메리카Good morning America', '투데이 쇼Today show' 그리고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 [뉴욕 포스트The New York Post]를 비롯한 미국의 텔레비전 쇼와 언론 매체에 출연하는 유명 인사이며 심리치료학자다.

할리우드 스타에서부터 저명한 정치인들까지 그녀를 찾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다년간의 경험을 통한 부부 치료나 인지치료 방식이 그녀의 신비한 직관력과 합쳐져 그녀는 세계적인 상담사로 발돋움했다. 또한 세 장이나 음반을 낸 재능 있는 음악가이며, 자신만의 고유한 보석을 디자인하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홈페이지 www.CarmenHarra.com과 페이스북 carmen Harra- (Wholeliness)를 방문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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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를 읽고 장자에게 배운다』 중에서

 

유가와 도가의 차이점

 

도가를 대표하는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소개하기에 앞서 우선 유가와 도가의 차이점을 알아보자. 유가는 인간의 생명을 기본 가치로 보는 대표적인 인문주의 사상이다. 따라서 인간은 목적이 되므로 절대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중학교 때 처음 『논어』의 「향당편鄕黨篇」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공자가 노나라에서 51세에 처음으로 관직에 올랐고, 5년간의 짧은 벼슬 생활을 뒤로하고 천하를 주유했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무엇이 아름답고 무엇이 추할까?
공자가 벼슬을 하던 시절의 일이다. 하루는 공자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더니 가족들이 뛰어나와 마구간에 불이 났다고 했다. 공자는 곧바로 물었다.
“다친 사람은 없는가?”
말의 상태가 어떤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구분廐焚, 자퇴조子退朝, 왈曰, 상인호傷人乎, 불문마不問馬’ 이 열두 자가 내게 준 충격은 실로 대단했다. 당시는 계급이 있던 봉건사회였다. 마구간에 불이 나서 다친 사람이 있다면 분명 마부나 일꾼 혹은 하인일 것이다. 모두 하층민으로 이들의 인권 따위는 보장받지 못하던 시대였다. 그런데도 공자는 이러한 행동을 보임으로써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고 은연중 말하고 있다. 당시는 재산을 따질 때 소유한 말의 수를 물을 정도로 말의 가치가 높았던 시기였다. 그렇지만 공자에게는 아무리 중요한 재산도 인간의 생명과 비교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인문주의다. 그래서 유가를 인간사회에 꼭 필요한 사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도가는 다르다. 그 차이점을 알아보기 위해서 일단 우화 한 편을 살펴보자.
사냥을 좋아하는 초왕楚王은 유명한 활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초왕은 사냥을 마치고 성으로 돌아가던 중 부하에게 활을 맡겼다. 그리고 얼마 후 부하가 활을 잃어버린 것을 알게 됐다. 사람들은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활은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초왕은 하는 수 없이 그만 찾으라고 했고 “초왕실궁楚王失弓, 초인득지楚人得之”라고 말했다. 초왕이 잃어버린 활을 초나라 사람이 줍는다는 뜻이다.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사고다. 한 국가의 지도자라면 자국민의 복지를 고려해야 한다. 초왕의 활은 초나라 국경 안에서 사라졌으니 그것을 습득하는 자가 있다면 반드시 초나라 백성일 것이다. 그러므로 더는 찾지 않아도 그만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공자가 이 말을 듣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꼭 활을 줍는 사람을 초나라에 국한할 필요가 있겠는가? 더 이상적
인 것은 ‘왕이 활을 잃어버리고 사람이 그것을 줍는다’이다.”
왕이 분실한 활을 누군가가 줍는다면 그게 제나라 사람이든, 초나라 사람이든, 오나라 사람이든, 월나라 사람이든, 아니면 조나라 사람이든 상관없다. 심지어 다른 민족이어도 좋다. 그냥 사람이 주우면 된다. 이것이 바로 인문주의다.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게 꼭 사람이어야만 할까?”
가장 이상적인 대답은 ‘활을 분실하고 누군가가 줍는다’이다. 그것을 사자가 주워 장난감 삼아 가지고 놀든, 개미가 주워 가든, 지구상에 있어서 대자연의 품속에 남아 있기만 한다면 문제 될 것이 있겠는가? 이것이 도가의 사상이다. 유가는 사람을 중심에 두고 도가는 이 생각을 초월하여 만물이 근원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가에서는 인간이 기본이 될 경우 만물의 가치가 왜곡되기 쉽다고 본다. 예를 들어 사과는 왜 빨간 것일까? 사람들의 식욕을 돋우기 위해서? 그럼 돼지는 왜 뚱뚱한 걸까? 인간에
게 영양을 공급하려고? 사과나 돼지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할 노릇이다. 본래 그런 모습인데 그것이 인간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장자는 우화를 통해서 만물의 기준이 다르다는 점을 알려준다. 즉 인간의 기준이 유일한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만약 상대적인 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오해한다면 도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아름다움과 추함만 두고 봐도 하나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다. 고대에서는 분명 미녀를 칭송했던 말이 오늘날에는 왜 통용되지 못할까?

 

저자소개: 푸페이룽 傅佩榮
1950년에 태어난 푸페이룽은 타이완대학 철학대학원 석사, 미국 예일대학 철학박사이다. 타이완대학 철학과 학과장 및 철학대학원 원장을 역임하였으며 벨기에대학, 네덜란드 레이던대학 객원교수이기도 하다. 현재는 타이완대학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푸페이룽은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말솜씨를 가진 교수로, 타이완 『민생보民生報』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학교수로 선정되었다. 뿐만 아니라 타이완 교육부에서 수여하는 우수 교육자상, 『성공한 인생成功人生』으로 타이완 문화예술 분야 국가문예상, 『천론에 대한 유가와 도가의 해석儒道天論發微』으로 중정中正 문화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현재까지 타이완에서 백 권이 넘는 책을 출간하는 등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특히 전통 경전 연구에 몰두하여 기존의 이론이나 고정관념을 탈피한 독창적인 견해를 내놓고 있다.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논어』, 『맹자』, 『노자』, 『장자』, 『역경』 등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였으며 학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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