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왈 vs 예수 가라사대(도서출판 지와 사랑)

 

 

 

 

예수는 과연 신이었을까?

 

예수에 관한 기독교의 설명에는 모순이 있다. 예수가 하느님의 독생자라면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그의 형제자매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가 기적을 행했다면 권능에 있어서 하느님과는 어떻게 다른가? 일신론의 관점에서 따져볼 때, 예수는 하느님이 될 수 없으며 하느님이 보낸 사자에 불과하다. 마리아는 예수의 모친이지 하느님의 아내가 아니므로 예수와 마리아는 모두 인간으로서 신성을 지닐 수 없다. 또한 예수가 사람들의 박해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하지만 사람은 어차피 죽게 되어 있으므로 그의 죽음에만 특별한 의미가 있을 수 없다. 일신론은 삼위일체가 아니라 말 그대로 오직 한 분, 바로 하느님만을 인정하는 것이다. 예수는 하느님이 아니라 단지 세상에서 특별히 선택된 사자에 불과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를 신으로 생각할 때 문제가 야기되고 심지어 모순이 되기까지 한다. 하느님은 전능하므로 사람의 도움 없이도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예수 또한 하느님이라면, 어째서 죽음의 방식으로만 인류를 죄악과 고통에서 구할 수 있단 말인가? 이를 과연 전능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또한 인간의 죽음은 필연이라 하더라도 하느님은 영원하므로 처음과 끝이 있을 수 없다. 즉 하느님은 절대 죽을 수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가 죽었고 그가 죽어 있는 동안 하느님이 여전히 존재했다면 분명 예수와 하느님은 동일한 존재가 아니다. 그리고 예수의 죽음이 곧 하느님의 죽음이라면 그가 죽었을 때 누가 우주를 주재했을까? 하느님은 왜 독생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것만이 인류에게 생명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을까? 예수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지상에 온 것이라면 그가 오기 전의 인류는 상관하지 않겠다는 말인가? 예수에게 신의 능력이 있었다면 왜 사람들이 그를 잔혹하게 비난하고 심지어 사지로 내몰도록 내버려두었단 말인가? 그가 누구인가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한다. “예수는 성모 마리아의 아들이자 야훼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의견도 있고 “예수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고 성자이긴 하지만 하느님의 아들은 아니다. 그 이유는 기독교에서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령이 하나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기독교의 신학에는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모순들이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크리스천들은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가고 영생을 얻는다는 확신을 신봉하기 때문에 모순에도 개의치 않는다. 예수를 기리는 추수감사절, 성탄절, 부활절은 해를 거듭할수록 세계적인 기념일이 되고 있다. 예수가 시초인 기독교를 원시 기독교라 일컫는데 앞서 언급한 대로 본래 원시 기독교는 동양의 종교였다. 원시 기독교는 고대의 이집트, 시리아, 바빌로니아 등지에서 유행하던 동양의 종교적 사상을 흡수했다. 그 사상은 구속이 특징이었고 의식을 중시했으며, 사후에 천국에 가야 한다는 교리를 전파했다. 실제로 동정녀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예수를 낳은 이야기, 예수가 보여준 많은 기적, 십자가 처형과 부활, 예수의 영생 등 『신약성경』에 나오는 많은 이야기들은 고대 동양의 종교적 사상에서 가져온 것이다. 또한 원시 기독교는 일신론, 구세주, 선지, 계시, 모세 10계명 등 유대교의 종교적 사상을 그대로 계승하여 교리의 토대로 삼았다. 또한 유
대교 경전 『구약성경』을 정경으로 받아들이고 기도, 찬송, 성경 낭독, 설교 등 유대교의 의식을 그대로 계승했다. 단지 유대교의 안식일을 주일로, 유월절을 부활절로 바꾸었을 뿐이다.
원시 기독교는 교리에 있어서 이제 갓 올라온 새싹처럼 시작하던 단계였고 완전한 이론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 또한 크리스천은 사회 하층민이 대부분이었고 삼위일체론과 원죄론은 물론 의식 체계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시 기독교는 노예와 핍박받는 사람들의 종교이자 종교 발전의 새로운 단계를 제시했다. 또한 인류가 한 형제자매라는 사상을 제시하여 유대인만이 하느님의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선민의식의 벽을 허물고 인류에게 의미 있는 세계의 신을 창조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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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를 읽고 장자에게 배운다』 중에서

 

 

 

 

 

 

이득과 손해는 사실 매우 복잡한 문제다. 유가에서는 ‘견리사의見利思義’를 주장한다. 이익을 발견했을 때 이것을 가져도 될까를 고민하는 것이 유가의 사고다. 반면 도가는 ‘견리사해見利思害’를 주장한다. 이득이 생기면 그로 인한 손해가 없을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득과 손해는 때때로 함께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것이 도가사상의 특징이다.
이득이 생기면 발생할 손실도 고려하라! 왜 그래야 할까? 그 연원을 밝히려면 노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손해를 피하고 이득만 취하는 방법

 

노자는 혼란에 빠진 세상을 보며 이를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지고민했다. 그는 우선 세상이 왜 혼란해졌는지를 생각해보았다. 혼란은 인간에게서 비롯되지만, 인간은 세상 만물의 으뜸[萬物之靈]으로 본래 영리한 존재다. 힘을 겨룬다면 소보다 못하고 달리기를 한다면 말을 따라잡을 수 없지만, 인간은 인지력과 복합적인 사고력을 지니고 있어서 만물의 으뜸이 되었다. 어린 시절 처음 글자를 배울 때, 그림을 보며 글자를 익히던 기억을 떠올려 보자. 고양이 그림 아래에 귀여운 애완동물이라고 적고, 사자 그림 아래에는 무서운 맹수라고 쓴다. 만약 이 둘 사이의 차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무시무시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동물원에 간 한 어린이가 사자를 보고 귀엽다고 생각해 곧장 달려가 안았다고 하자. 그다음 장면은 어떻게 될까?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그래서 우리는 학교에 가서 제일 먼저 구별하는 것을 배운다. 무엇이 우리에게 득이 되고
해가 되는지, 무엇이 먹을 수 있고 먹을 수 없는지, 무엇이 안전하고 위험한지, 인류는 이 모든 것을 구별할 수 있었으므로 발전을 거듭하며 생존해 왔다. 그러나 구분을 지으면 욕망이 따르기 마련이다. 당신이 일단 황금과 돌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당신은 황금을 원할 것이다. 이번에는 다이아몬드와 황금을 비교해 보자. 다이아몬드가 황금보다 좋다고 판단하면 당신은 다이아몬드를 더 갖고 싶어 할 것이다. 당신의 구분이 더 상세해질수록 욕망 또한 더욱 복잡해지는데 이는 인간세상의 당연한 이치다. 그래서 노자는 인지력으로 구분하는 것에 문제의 원인이 있다면 구분하는 행위가 욕망을 이끌어내고, 그것이 다시 싸움을 야기하여 세상을 혼란에 빠뜨린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을 변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구분하는 능력을 높이고 인지력을 발휘해 어려움을 피해가면 된다. 이런 식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 한다면 피하면 된다. 오래된 중국 속담 중에 머리를 내미는 새가 총에 맞는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되도록 나서지 말며, 그것이 안 된다면 최소한 너무 서둘러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 마라. 그럼 적어도 재난은 피할 수 있다. 사람들이 역사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그 속에서 교훈을 얻어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이렇게 말했다.

 

“역사가 인류에게 주는 유일한 교훈은 바로 아무런 교훈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인간이 결코 재난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과거에 발생했던 수많은 문제들이 계속 반복되며 일어나고 있을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는 이야기다. 노자와 장자는 재난을 피하고 더욱 평탄한 생활을 영위하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일러준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노자와 장자의 사상이 단순히 재난을 피하는 데에만 유용했다면, 그들은 그저 사려 깊은 책략가에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인지에는 세 번째 단계가 있다고 했다. 계명啓明, 즉 자각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도의 견지에서
만물을 관찰하는 것이다. 전체를 보는 눈이 생겼다면 더 이상 사소한 문제를 따지지 않는다. 사소한 요소들은 이미 전체와 융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해를 따지기에 앞서 노자와 장자의 가르침을 거론하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이 어떤 이득을 발견했을 때 그 뒤에 후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영광을 좇으려다가 도리어 모욕을 당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득이 있을 때는 반드시 손실을 고려해야
한다.


이득이 있을 때 그 해로움을 생각하고, 영광을 좇다가 모욕당하는 것을
피하며, 얻음이 있을 때에 잃음을 준비하라.
‥‥‥ 노장의 지혜 ‥‥‥

유가는 이익을 보면 의를 생각한다는 견리사의見利思義를 주장한다. 반면 도가는 이익을 보면 그 해로움을 생각한다는 견리사해見利思害를 주장한다. 이러한 도가의 주장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득이 있으면 반드시 손실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생활 속 어디에서나 도사리고 있는 이익의 유혹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장자는 어떤 이야기로 우리를 이끌어 줄까?

 

 

저자소개: 푸페이룽 傅佩榮
1950년에 태어난 푸페이룽은 타이완대학 철학대학원 석사, 미국 예일대학 철학박사이다. 타이완대학 철학과 학과장 및 철학대학원 원장을 역임하였으며 벨기에대학, 네덜란드 레이던대학 객원교수이기도 하다. 현재는 타이완대학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푸페이룽은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말솜씨를 가진 교수로, 타이완 『민생보民生報』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학교수로 선정되었다. 뿐만 아니라 타이완 교육부에서 수여하는 우수 교육자상, 『성공한 인생成功人生』으로 타이완 문화예술 분야 국가문예상, 『천론에 대한 유가와 도가의 해석儒道天論發微』으로 중정中正 문화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현재까지 타이완에서 백 권이 넘는 책을 출간하는 등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특히 전통 경전 연구에 몰두하여 기존의 이론이나 고정관념을 탈피한 독창적인 견해를 내놓고 있다.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논어』, 『맹자』, 『노자』, 『장자』, 『역경』 등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였으며 학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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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를 읽고 장자에게 배운다』 중에서

 

 

 

 

 

죽림칠현의 우두머리 원적阮籍의 구슬픈 울음

『장자』의 「어부편」은 흥미롭다.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서 제자들에게 강의를 하는데 마침 어부 한 명이 배를 저어 지나가다가 공자의 제자에게 물었다.

“이 사람은 누구시오?”

이렇게 물어본 후에야 어부는 그가 공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 사람은 벼슬이 있소?”

“없소.”

어부는 또 물었다.

“그럼 제후처럼 관리하는 땅이 있소?”

“없소.”

그러자 어부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왜 백성의 일을 걱정하오? 벼슬도 없는데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소.”

공자는 어부의 말을 듣고 옳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를 모셔다 여러 가지를 물었다. 공자는 어부의 대답을 듣고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했다. 그중 기억에 남는 대목이 하나 있는데, 바로 진실이란 마음에서부터 정성을 다해 열중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어부는 사람이 억지로 운다면 좀 슬퍼 보일 수는 있어도 비통함을 주지 못하며, 사람이 거짓으로 화를 내면 좀 무섭게 보일 수는 있겠지만 위압감을 주지는 못한다고 했다. 사람이 억지로 친절한 척 미소를 띠고 있다고 해서 상냥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진정한 슬픔은 소리 없는 흐느낌이고, 진정한 분노는 성내지 않아도 그 위엄이 느껴지며, 진정한 친절은 웃고 있지 않아도 상냥함이 느껴진다. 즉 마음에서 진정으로 우러나올 때 비로소 자연스럽게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도가에서는 이를 특히 중시한다.

진실은 마음속에서 정성을 다해 열중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
‥‥‥ 노장의 지혜 ‥‥‥

인간사회에 선악은 반드시 존재했으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두 선을 행하고 악을 멀리하라고 가르쳤다. 그래야 사회질서가 유지되고 화목한 삶을 영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면서 선과 악에 관한 풀리지 않는 기본적인 의문에 부딪혔을 때, 도가의 가르침에 도움을 청한다. 선과 악에 대한 완벽한 이론을 가지기는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사회 속에서 선과 악을 분별할 줄은 알아야 한다. 다음은 위진魏晉시대의 신도가新道家 중 죽림칠현의 우두머리였던 원적에 관한 이야기다. 원적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평소와 다름없이 고기를 먹고 술을 마셨다. 이런 그를 보고 사람들이 불효자라 욕했다. 그런데 출관하던 날 그는 피를 토해내며 구슬피 울었다. 사람들은 그가 유교에 대항하기 위해 일부러 기존의 예에 맞선 것이며 진심만을 보여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즉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슬프지만 실제로는 평소 생활과 다를 것이 없었다. 하지만 사실 누구보다도 마음이 아프고 슬펐다. 도가사상에서는 원적처럼 일부러 감정을 억제하는 것을 권장하지 않는다. 당신이 진심으로 슬퍼서 운다면 그것은 모두 자연스러운 감정의 발현이다. 이처럼 도가에서는 자연스러움과 본성을 중시한다. 자연스럽게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는 것,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것이다.

 

저자소개: 푸페이룽 傅佩榮
1950년에 태어난 푸페이룽은 타이완대학 철학대학원 석사, 미국 예일대학 철학박사이다. 타이완대학 철학과 학과장 및 철학대학원 원장을 역임하였으며 벨기에대학, 네덜란드 레이던대학 객원교수이기도 하다. 현재는 타이완대학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푸페이룽은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말솜씨를 가진 교수로, 타이완 『민생보民生報』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학교수로 선정되었다. 뿐만 아니라 타이완 교육부에서 수여하는 우수 교육자상, 『성공한 인생成功人生』으로 타이완 문화예술 분야 국가문예상, 『천론에 대한 유가와 도가의 해석儒道天論發微』으로 중정中正 문화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현재까지 타이완에서 백 권이 넘는 책을 출간하는 등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특히 전통 경전 연구에 몰두하여 기존의 이론이나 고정관념을 탈피한 독창적인 견해를 내놓고 있다.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논어』, 『맹자』, 『노자』, 『장자』, 『역경』 등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였으며 학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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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멘 하라의 『일체감이 주는 행복』(도서출판 知와 사랑)

부제: 나를 치유하는 신성한 연결고리

 

 

 

 

몸과 마음과 영혼의 일체감을 획득하는 방법

 

관찰
당신의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의 연결고리를 바라보라. 건강에 나쁜 음식, 가공된 음식을 먹었을 때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 또 농민에게서 직접 농산물을 사거나 지역사회에 먹을거리를 기부하는 영농 조합 같은 곳에서 식품을 구입할 때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불안하거나 분노와 슬픔을 느낄 때, 몸의 어떤 부위에 불편함을 느끼는가? 언제 가장 건강하다고 느끼고, 언제 가장 활력을 느끼는가? 영양소가 골고루 당신의 몸과 마음을 채우고 있을 때인가?  어떤 일을 할 때 에너지가 차오르는 것을 느끼는가? 언제 육체적으로 강인하다고 느끼며, 언제 긍정적인 방식으로 반응하는가? 당신에게 즐거움을 주고 힘을 주는 활동은 무엇인가? 이렇듯 모든 면을 충족하려면, 필요한 사항을 기억하기 위해 자신이 관찰한 내용을 일기장에 기록해두는 편이 좋다.

기도
자신과 세상의 다른 모든 이들, 생명체들, 어머니 지구의 건강과 웰빙 그리고 균형을 위해 기도하라. 몸이 지닌 자연적인 치유의 힘을 믿고, 인간이 만든 약에 의존하지 않고도 병에 걸리지 않을 수 있도록 기도하라. 자신과 다른 사람들 그리고 환경이 서로에게 주고받는 영향을 깨달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불균형을 바로잡고 일체감을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하라. 자신의 몸, 마음 그리고 영혼과 신 사이의 연결고리를 받아들이라. 또한 다른 사람들이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 사이의 신성한 연결고리를 자각하고 스스로를 더 잘 보살필 수 있도록 기도하라. 분노와 좌절과 미움을 버리고, 부정적 감정이 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깨닫도록 기도하라. 치료사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면서 신성하고 소중한 치유 작업을 계속 이어 나가기를 기도하라.

행동
행동은 당신의 외부에서 일어난다. 풍요로운 감정과 생각으로 내면을 채우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긍정적인 생각일지라도 자신의 머릿속에 갇혀 실천의 중요성을 망각해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다. 몸과 마음, 영혼의 웰빙을 추구하고 실천하기 위해 달력이나 휴대전화 일정표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면 그리하라. 더 건강한 삶을 추구하겠다는 꿈이 있다면, 허송세월을 보내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이 장에서 내가 말한 내용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행복을 향한 첫발자국을 내딛기 위해 다음과 같이 실천 항목을 간추려보았다. 몸에 좋은 유기농 음식을 섭취하라.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생산된 음식을 구입하고 섭취하면, 오염을 줄이고 지구의 에너지 자원을 덜 사용할 수 있다. 또 독성을 제거한 청정한 땅에서 건강한 곡식을 생산하는 데 도움이 된다. 농민이 직접 판매하는 식품, 건강식품 가게나 영농 조합에서 판매하는 식품을 사면 더욱 좋다. 가능하다면 직접 텃밭을 일구는 것도 괜찮다. 통곡물과 집에서 가꾼 허브와 채소를 섞은 식단은 당신의 건강에 도움이 된다.
가공식품과 설탕, 소금, 지방을 지나치게 섭취하지 말라. 당신의 몸은 가공된 정크 푸드를 낯설어한다. 만약 몸이 말을 할 수 있다면, “대체 이것들은 뭐야?”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몸은 말을 못하기 때문에, 대신 최선을 다해 ‘음식’을 지방질로 바꾸어 몸속에 저장한다. 그렇더라도 지방질에는 비타민과 미네랄 같은 핵심 영양소가 결핍되어 있으므로, 몸이 제 기능을 다하기가 어려워진다. 자신이 직접 요리를 하면 독소 섭취를 쉽게 피할 수 있다. 시간이 없다면, 한꺼번에 많은 음식을 만들어 며칠 동안 보관하면서 먹어도 된다.(채소는 날것으로 또는 살짝 찌거나 구워서 먹는 것이 가장 좋다. 채소를 삶으면 비타민과 무기질이 흘러나와 사라진다.)
음식의 진정한 값어치를 생각하라. 식품 안전망이 허술하고 동물을 함부로 다루는 대형 축산 업체는 오염된 식품을 생산할 가능성이 더 크다. 소비자와 농민 그리고 지구를 동시에 생각하는 생산구조를 위해 비용을 좀 더 지불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물을 많이 마시라. 우리의 몸은 대부분 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수분을 보충해주어야 한다. 하루에 여덟 잔 정도의 물은 필수적이다. 또한 물을 알칼리성으로 바꿔주는 정수기를 권하고 싶다. 몸속의 산도PH는 아주 민감해서 지나치게 산성이 강해지면 부조화와 질병을 일으킨다. 오후에는 탄산수를 마시지 말라. 탄산수에 든 설탕은 탈수 작용을 일으키며, 다이어트 식품에 포함된 인공 감미료는 잘 소화되지 않는다. 또한 시중에 팔고 있는 과일 주스는 대부분 진짜 과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과일 원액을 희석한 주스가 아니라 100% 주스라고 확실히 명시되어 있는 것만 사자. 100% 오렌지 주스에 직접 탄산수를 타서 마시는 것도 좋다.
규칙적으로 운동하라. 건강을 전체적으로 지키고 몸의 독소를 배출하려면,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 요가나 기 체조는 마음을 가다듬고 몸의 에너지 흐름을 원활하게 해주므로 아주 효과적이다. 그리고 일상적으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몸을 움직여보라.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대신 계단을 이용하면, 심장근육이 활성화되고 체액 순환이 원활해지며 전체적으로 몸이 건강해진다. 또 사무실과 일부러 먼 곳에 주차하거나 내릴 곳보다 한 정거장 먼저 내려 15분 정도 걸으면, 건강에 많은 도움이 된다.
다른 이와 함께 식사하라. 다른 이들과 같이 음식을 먹으면, 감성과 지성 그리고 영혼이 풍요로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당신이 소중하게 생각하거나 더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과 함께 식사를 해보라. 저녁에 친구들이나 가족들, 아이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어보라. 그러면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즐거워하는 특별한 시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은 당신에게 소중한 추억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자신의 몸을 사랑하라. 상처받거나 균형을 잃은 부분에 집중하라. 손을 그 부위에 대고 사랑의 에너지를 전하라. 긍정적인 에너지를 상처 입은 부위에 보내면, 따뜻하고 부드러운 진동이 느껴질 것이다. 이런 방법은 여러 기 치료법들 가운데 하나이며, 에너지 치료의 기본이기도 하다. 자신에게 다정하게 이야기하라. 당신의 생각을 크게 소리 내어 말하건 아니면 조용히 되뇌이건, 우선 그 생각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잘 살펴보라. 혹독한 자기 검열 대신 자신의 힘과 능력에 칭찬을 보내라. 늙고 아프고 괴로운 건 정말 싫다고 생각하는 대신, 자신의 건강에 감사하며 “몸을 이렇게 멋지고 건강하게 잘 돌보다니 내 자신이 정말 자랑스럽구나”라고 말해보라.
감정적, 정신적 독소를 줄여라. 감정과 정신에 독이 되는 혹독한 자기 검열 습관을 버리고,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을 멀리하라. 누군가가 우울해한다면 연민을 가지고 도움을 받도록 권유하라. 하지만 그 사람의 가라앉은 기분에 덩달아 동요하지는 말라.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기분을 고양해주는 일들에 참여하여 스스로를 충전하라. 그러지 않으면 감정에 불균형이 생기기 쉽다. 심리 치료를 받아도 좋다. 하지만 이때는 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파악하는 것을 넘어서, 자신의 행동 습관을 치유하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할 것이다.
명상을 하라. 몸과 마음의 웰빙을 도와주는 명상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규칙적으로 명상을 하라. 특히 심란하거나 마음의 조화가 깨졌을 때, 몇 분 동안이라도 호흡에 집중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비워낸다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명상은 거칠게 흐르는 강물을 다시 평화롭게 잠재우는 행위다. 야외로 나가라! 비타민D는 육체 건강에 핵심적일 뿐 아니라 세로토닌Serotonin 분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런 비타민D를 얻으려면 햇빛을 충분히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매일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도록 노력하고, 적어도 야외에서 조금이라도 운동을 하라. 하루 종일 실내에서 지낼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면, 창문을 열든지 자연광이나 식물 혹은 반려 동물을 가까이해서 지구와의 연결고리를 잊지 않도록 하라.
에너지 치료사들의 도움을 받으라. 세상에는 당신의 감정과 정신 그리고 몸에 큰 도움이 되도록 에너지의 흐름을 바꿔줄 수 있는 치료사들이 많다. 몸과 직관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 몸에 맞지 않는 음식이나 평정을 깨뜨리고 낙관적 전망을 흐려 당신을 혼란에 빠뜨리는 뉴스 등 지금까지 당신이 받아들여온 외부의 것들을 변화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면, 그 신호에 귀를 기울여라. 당신이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고 느끼는 모든 것은 당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파장을 내보내므로, 긍정적인 영향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늘 신경 써야 한다.
신에게 돌아가라. 신적 존재야말로 당신의 치유를 돕고 웰빙을 북돋우는 끊임없는 사랑의 근원이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도에는 정신적이면서도 육체적인 치유 효과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기도가 신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신의 현현顯現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다른 방법, 당신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신의 힘을 받을 수 있게 도와주는 다른 방법이 있다면, 그 방법을 사용해도 좋다. 신성한 연결고리는 당신의 모든 측면(몸, 마음, 정신)뿐 아니라 당신과 보이는 세계 혹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사실을 이해한다면 당신의 인식에도 변화가 생길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자아는 더 이상 생각을 통제하지 않을 것이며, 당신이 직면한 위기는 벌이 아니라 업을 해소하고 내면을 치유하는 계기로 바뀔 것이다. 몸과 마음과 영혼과 주변 환경간의 관계를 깨닫고 보살피다 보면, 우리의 삶도 행복해질 것이다. 단절감을 불러오고 고통을 적대시하는 태도를 부추기는 자아의 환상을 버리면, 도전을
받아들이기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카르멘 하라 박사는 '더 뷰The view', '굿모닝 아메리카Good morning America', '투데이 쇼Today show' 그리고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 [뉴욕 포스트The New York Post]를 비롯한 미국의 텔레비전 쇼와 언론 매체에 출연하는 유명 인사이며 심리치료학자다.

할리우드 스타에서부터 저명한 정치인들까지 그녀를 찾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다년간의 경험을 통한 부부 치료나 인지치료 방식이 그녀의 신비한 직관력과 합쳐져 그녀는 세계적인 상담사로 발돋움했다. 또한 세 장이나 음반을 낸 재능 있는 음악가이며, 자신만의 고유한 보석을 디자인하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홈페이지 www.CarmenHarra.com과 페이스북 carmen Harra- (Wholeliness)를 방문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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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왈 VS 예수 가라사대 - 유교와 기독교의 상생과 융합
차이더구이 지음, 박영인 옮김 / 지와사랑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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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왈 vs 예수 가라사대(도서출판 지와 사랑)

 

 

 

 

 

 

자신을 신이라 선포한 예수


 

30세 이후부터 예수가 신비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그의 행적을 기록했다. 예수는 사역하는 동안3 20km 이상 떨어진 곳으로 간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 전역에 그의 명성이 퍼졌다. 이 때문에 유대의 권력자와 유대교 지도자들이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의 복음에는 “하느님의 사랑이 너희와 함께 있다”, “서로 사랑하라”, “사람은 모두 존귀하다”,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이 땅에 임했다”, “천당과 지옥을 나누는 심판이 있을 것이다”, “하느님에게 구하면 반드시 죄 사함을 받는다”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예수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지만 스스로 깨우쳤다. 하느님의 계시를 직접 받아 선교했으며 제자를 양성했다. 세속적으로 볼 때 그는 비천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다. 오래 살지도 못했고 좋은 직업을 가진 적도 없었으며 복, 학위, 지위, 재산, 명예, 권력 등 세상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 중 어느 하나도 가진 게 없었다. 성년이 된 후 그는 유대인이 고대하던 메시아가 자신임을 선포했다.
기독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예수가 사역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에 능력이 있음을 보았고, 그가 행한 신비로운 기적을 보았다. 그래서 그를 평범하지 않은 교사와 선지자 그리고 ‘기름 부음 받은 자’, 즉 메시아로 인정했다. 또한 『구약성경』의 예언을 들어 예수의 신성함을 증명했는데 가장 두드러진 부분이 예언자 이사야의 말이다.


다윗 왕실은 들어라. ……주께서 몸소 징조를 보여주시리니,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야서」 7:13~14).


 

십자가에 못 박히기 일주일 전, 나귀를 타고 예수가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할 때 많은 사람들이 “그는 하느님이 보낸 사자다!”라고 외쳤다. 심지어 십자가에 못 박혀 숨이 끊어지려는 순간 땅이 진동하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과 처형을 담당했던 백부장5 은 예수가 진정 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예수는 자신을 신이라고 선포했기 때문에 종교재판을 받았고 그 결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그의 제자들은 스승이 부활할 것을 믿었다. 그리고 예수가 부활하자 그날을 부활절로 기념하여 예수의 수난과 부활을 기리기 시작했다.
“나는 내 뜻을 이루려고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려고 왔다”(「요한복음」 6:38)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가 행한 모든 일은 신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예수가 지상에 온 이유는 신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였으며, 사람들이 신을 이해하고 신과 가까워져 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갇힌 자를 석방하고 눈먼 자를 보게 하며 억압받는 자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였고, 신의 가르침을 명확히 깨닫게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시비를 분별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각, 기준, 기호에 따라 살기보다 선한 마음으로 조화로운 사회를 건설하여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예수는 늘 사람들의 잘못을 깨우치고 위선자와 악인에게는 회개하여 죄에서 벗어나라고 외쳤다. 예수는 여러 번 자신이 하느님의 독생자임을 선포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복음」 10:30, 14:9, 14:6).


너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도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몸소 하시는 일이다(「요한복음」 14:10).


 

예수가 제자들에게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 베드로가 ‘그리스도,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답했다. 예수는 베드로의 고백을 칭찬했다. 현실에서 예수는 마리아의 장자였고 남동생과 여동생들이 있었다. 동생들은 예수가 메시아임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가 십자가 처형 후 부활하자 동생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중심축이 되어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사역에 왕성하게 활약했다. 야고보는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고 예수를 메시아라고 고백하여 ‘주의 동생 야고보’라는 호칭을 얻었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었지만 예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류의 구세주, 우주의 주재자로 받아들여졌다. 예수도 스스로 신이라 칭했고 신비한 행적을 많이 보였다. 짧은 기간 동안 사역하면서 그는 많은 사람들의 병을 치유해주었다. 맹인을 눈 뜨게 하고 중풍환자가 일어나 걸을 수 있게 했으며 문둥병자를 낫게 하고 과부의 죽은 아들을 소생시켰다. 또한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내쫓았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배불리 먹이고도 음식을 남기는 기적을 행했다. 그 밖에도 물 위를 걷고 바람과 파도를 잠재우는 등 자연을 지배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기적적인 일들을 행함으로써 예수는 신성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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