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멘 하라의 『일체감이 주는 행복』(도서출판 知와 사랑)

부제: 나를 치유하는 신성한 연결고리

 

 

 

 

무신론과 근본주의

 

수천 년 동안 종교와 영적 신앙은 인간이 이룬 문화의 한 부분을 차지해왔다. 인간이 이성이라는 능력을 발달시킨 뒤로, 인간은 존재의 근원을 더 높은 존재에게서 찾았다. 그렇지만 오늘날 점점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믿지 않거나 무신론자를 자칭하고 있다. 무신론은 역사상 보편적으로 논의되거나 받아들여진 주제는 아니다. 하지만 19세기 들어 종교가 대중을 세뇌하는 아편이라고 칭한 카를 마르크스를 비롯해, 프리드리히 엥겔스나 프리드리히 니체 같은 철학자들 때문에 악명을 떨치게 되었다.
무신론적인 공산주의 정권이 중국과 소련에 들어서게 된 데는 수백 년 동안 보이는 세계의 권력에 지나치게 집착해온 교회의 부패도 한몫했다고 본다. 종교가 폭정과 분열 그리고 폭력의 정당화에 이용되는 것을 보고 많은 이들이 등을 돌렸다. 다시 말해 소수의 권력자들이 권력을 남용해 종교를 이용함으로써, 슬프게도 수백만의 사람들이 신성과 연결될 수 있었던 고리를 끊어버린 것이다.
종종 무신론자들은 종교란 멍청하고 무지한 사람들이 의지하는 것이라고 폄하하곤 한다. 그들은 사람들이 확실성이라는 거짓된 감정을 얻기 위해 종교에 매달린다고 생각한다. 또한 더 높은 존재에 대한 믿음은 사람들의 판단력을 흐리는 반면, 오직 과학만이 해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종교 지도자들과 종교 기관의 권력 남용을 지켜본 우리로서는 이러한 관점이 이해되고도 남는다. 하지만 신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억압이나 박해에 대한 개인적 감정을 배제하고 본다면, 무신론이나 근본주의는 사실 공통된 부분이 많다. 둘 다 종교적 신비의 아름다움을 거부하고, 모든 것에 답할 수 있다는 거짓된 확신에 빠져 있다. 또 무신론자들은 과학을 통해 우주의 질서를 모두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근본주의자들은 경전이나 종교의 가르침이 이 세상의 모든 지식과 지혜를 대신한다고 주장한다. 대개 극단적인 경향이 그렇듯이, 두 이론 모두 마음의 부조화로 이어지고 일체감으로부터 멀어진다.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더 이상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세태에서 근본주의자들의 목소리 또한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경향이 계속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근본주의는 마치 어디로 나아갈지 불확실한 나머지 두려움에 질려 내지르는 마지막 비명과 같은 것이다.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안전함을 보장해주는 무언가에 매달리게 된다. 하지만 사람들이 일체감 속에서 안정을 찾게 되면 근본주의도 시들해질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이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극단과 자신들이 배운 대로 신은 존재하며 나머지는 모두 거짓이라는 또 다른 극단 사이에서 살아간다. 불확실한 시대에는 무신론이나 근본주의의 완고한 입장이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두 철학은 모두 그것을 믿는 사람들에게서 어려움을 헤쳐 나갈 진정한 힘을 빼앗는다. 인간이 신비롭고 아름다운 영적 존재라는, 신성한 총체적 진실에 둘러싸인 영적 존재라는 인식 말이다. 언젠가 다른 나라에서 메어리라는 고객이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녀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성경을 곧이곧대로 읽고 따르며 정기적으로 목사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그녀는 자신이 심령술이나 영매를 결코 믿지 않는다고, 자신이 믿는 종교에서도 그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이 그녀의 관점에서는 ‘사악하고 신의 뜻에 어긋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나에게 도움을 청해야겠다고 느꼈다.
메어리는 스물여덟 살이 된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었는데, 너무나 아들을 보고 싶고 한 번만이라도 아들의 존재를 느끼고 싶은 마음에 처음으로 자신의 믿음을 거스르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내가 그녀에게 그녀의 아들이 매일 목에 걸고 다니던 십자가를 잃어버린 뒤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얘기하자, 그녀는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아들이 G로 시작하는 갓난아기를 두고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도 말해주었다. 또한 그녀의 아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쳤는지, 사고의 가해자가 누구인지도 이야기했고, 2년 전 세상을 떠난 아들의 할머니가 저세상에서 기다린다는 말도 들려주었다. 눈물을 흘리며 메어리는 내 말이 모두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또 내가 어떻게 그 모든 것을 알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것으로 자신이 새로운 가능성에 눈뜨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상담이 끝날 무렵, 그녀는 나와 나눈 대화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축복으로 가득 찬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세상 어머니들의 가장 끔찍한 악몽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준 나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또 나를 통해 얻은 평화는 지금까지 교회의 어느 누구도 줄 수 없었던 것임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그토록 큰 위안을 준 것이 다
름 아닌 사랑과 자비로 가득 찬 신이라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카르멘 하라 박사는 '더 뷰The view', '굿모닝 아메리카Good morning America', '투데이 쇼Today show' 그리고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 [뉴욕 포스트The New York Post]를 비롯한 미국의 텔레비전 쇼와 언론 매체에 출연하는 유명 인사이며 심리치료학자다.

할리우드 스타에서부터 저명한 정치인들까지 그녀를 찾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다년간의 경험을 통한 부부 치료나 인지치료 방식이 그녀의 신비한 직관력과 합쳐져 그녀는 세계적인 상담사로 발돋움했다. 또한 세 장이나 음반을 낸 재능 있는 음악가이며, 자신만의 고유한 보석을 디자인하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홈페이지 www.CarmenHarra.com과 페이스북 carmen Harra- (Wholeliness)를 방문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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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왈 vs 예수 가라사대(도서출판 지와 사랑)

 

 

 

 

 

루터와 더불어 종교개혁을 주도한 칼뱅

칼뱅은 유명한 개혁가이자 신학자로 루터 다음으로 유럽의 종교개혁을 주도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저술한 『기독교 강요Christianae Religionis Institutio』의 서두에서 “하느님을 아는 지식과 자신을 아는 지식만이 진정한 지식이다”라고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기독교 강요』는 1536년에 출판되기까지 2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으며 종교개혁운동을 이끈 권위 있는 작품이 되었다. 칼뱅은 프랑스인이지만 스위스에서 활동했으며 제네바에 영향력 있는 교회 행정기구를 설립했다. 기독교 역사에서 그가 이룬 성과는 단연 돋보였다.
칼뱅의 아버지는 명망 있는 법률 고문이었다. 그래서 칼뱅은 많은 귀족들을 사귈 수 있었고, 아버지의 도움으로 열두 살 때 교회 직분을 얻었으며, 열네 살 때는 파리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에서 라틴어와 철학, 변증법 등을 배운 것이 훗날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토대가 되었다. 열아홉 살 때에는 법학 과정을 마치고 프랑스 학사원에서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를 전문적으로 배웠다. 1532년에는 첫 번째 책을 출판했다.
종교개혁운동은 프랑스에도 영향을 미쳤다. 칼뱅도 점차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여 1536년에는 제네바로 옮겨 윌리엄 파렐과 함께 종교개혁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실패로 끝나 스위스에서 쫓겨났다. 칼뱅 추종 세력은 제네바 정치혁명이 끝난 후 정치권력을 손에 넣었다. 그래서 칼뱅은 1541년 9월에 제네바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제네바는 칼뱅의 노력에 힘입어 지저분한 곳을 깨끗이 청소하고 빈민을 보살피는 등 복지를 강화하여 기독교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칼뱅은 1559년 제네바 대학의 전신인 제네바 학원을 설립하여 선교사를 육성하고 유럽 몇몇 나라로 파견했다. 그의 영향은 점차 유럽 각지로 퍼져나가 칼뱅주의를 형성했다.

 

 

중국으로 간 선교사 로버트 모리슨

로버트 모리슨은 1782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열여섯 살이 될 때까지 걸핏하면 술에 취하거나 흥청망청 놀았고 저속한 말을 입에 달고 살며 허랑방탕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열여섯 살 때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했고, 스무 살이 조금 넘었을 무렵 하느님의 부름을 받아 중국 선교사가 되었다.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사전 없이 배우려니 어려움이 만만치 않았다. 도중에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온갖 고생을 이겨내고 마침내 중국어에 능통하게 되었다.
당시 중국과 영국 사이의 뱃길을 동인도회사가 독점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상업적 이익을 고려해 선교사가 배를 타고 중국으로 가는 걸 허용하지 않았다. 모리슨은 어쩔 수 없이 미국을 경유하여 마카오로 갈 수밖에 없었으므로 어려움이 많았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듯이 그는 중국 의상을 착용하고 손톱을 길렀으며 변발을 하고 중국 음식을 먹었다. 그는 중국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였으나 그 와중에도 「사도행전」과 「누가복음」을 연달아 중국어로 번역했다. 또한 옥스퍼드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 내에 중국어 강좌를 개설하고 말레이시아의 말라카에 외국인 최초로 영화英華학당을 설립하여 중국어 인재를 양성했다. 그는 중국 선교에 성공한 크리스천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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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를 읽고 장자에게 배운다』 중에서

 

 

 

경쟁과 초월의 서로 다른 결과

 

『장자』에서는 되도록 다투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장자』에는 이
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다. 그중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오왕吳王이 부하를 데리고 장강을 건너 ‘후산猴山’ 앞에 도착했다. 그곳은 산 전체에 원숭이들이 살고 있었다. 사람을 본 원숭이들은 잽싸게 숲으로 피해버렸다. 그런데 유독 재주가 많은 원숭이 한 마리가 도망가지 않고 사람들에게 자기 재주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나무를 타며 재주넘기를 하고 빙빙 돌며 쇼를 했다. 이 모습
을 지켜본 오왕은 화가 나서 활을 꺼내 쐈다. 그런데 원숭이가 그 활을 잡아버렸다. 이를 본 오왕은 더욱 화가 났고 부하들에게 함께 활을 쏘라고 했다. 결국 그 원숭이는 활에 맞아 죽었다. 이 원숭이는 돋보이고 싶어 했다.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자랑하고 싶었다. 짧지만 무척 흥미로운 우화다.
고대 사람들의 생활은 아주 단조로웠다. 그래서 닭싸움 등을 오락거리로 삼았다. 기성자紀渻子는 제왕의 투계조련사다. 기성자가 닭을 맡은지 10일이 지나자 제왕이 기다리다 지쳐 물었다.
“닭의 상태가 어떤가? 경기에 나갈 수 있겠나?”
기성자가 대답했다.
“아직 안 됩니다. 지금은 그저 근거 없는 자신감뿐입니다. 감정을 조절할 줄 모릅니다. 얼핏 보면 사나워 보이지만 사실 허세를 부리는 것뿐입니다.”
그 후 또 10일이 흘렀고 제왕이 물었다.
“이제 경기에 나갈 수 있겠는가?”
기성자가 대답했다.
“아직도 이릅니다. 이 닭은 아직도 바깥의 빛과 소리에 너무 민감합니다. 그건 아직도 자기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10일이 지나 제왕이 물었다.
“이젠 경기에 내보내도 되겠지?”
기성자가 대답했다.
“아직 때가 안 됐습니다. 이 닭은 아직도 눈빛이 매섭고 그 기세도 전혀 꺾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또 10일이 흘러 40일이나 지났다. 제왕의 인내심도 이제 바닥이 났다. 이때 기성자가 말했다.
“이제 내보내도 됩니다. 이 닭은 이제 외부의 어떤 자극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나무로 만든 닭 같습니다.”
그 닭이 경기에 나가자 다른 닭들은 당황스러웠다.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아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들 그냥 도망치기에 바빴고 그 닭은 무적의 투계가 됐다. 우리가 지금 쓰는 ‘태약목계呆若木鷄(나무로 만든 닭과 같다)’는 『장자』에서 자기 자신조차 잊은 채 남과 싸우고자 하는 마음도 없는 상태로 오히려 남을 그와 경쟁하게 만드는 아주 높은 경지를 의미하는 말이다. 노자도 이렇게 말했다.
“부유불쟁夫唯不爭, 천하막능여지쟁天下莫能與之爭”
다투지 않으므로 천하에 나와 경쟁할 대상이 없다는 뜻이다. 즉 당신이 경쟁하지 않으므로 당신에게는 상대방이 파고들 어떤 약점도 빈틈도 없다는 의미이다.

노장의 사상에서 제창하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불쟁이선승不爭而善勝’은 사실 침착하고 냉정하게 그리고 묵묵히 내적 역량을 키우라는 뜻이다. 나무로 만든 닭처럼 반응이 없던 닭 역시 내적 역량을 키움으로써 천하무적이 되지 않았는가. 장자는 이외에 어떤 우화로 무경쟁의 관점을 우리에게 전해줄까? 그리고 현대인은 거기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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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멘 하라의 『일체감이 주는 행복』(도서출판 知와 사랑)

부제: 나를 치유하는 신성한 연결고리

 

 

 

 

종교와 과학, 영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

 

 

지금 떠오르고 있는 것은 새로운 믿음 체계이며, 새로운 종교적, 영적 이데올로기 혹은 신화다. 우리는 기존 신화뿐 아니라 이데올로기, 종교 체계에도 이별을 고하고 있다.
—에크하르트 톨레Echart Tolle

이 세상 모든 종교에서는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고, 우리가 대접받기를 원하듯이 대접하며, 신을 사랑하고 공경하라고 가르친다. 종교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Religion은 ‘제한하다 혹은 묶다’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Religare에서 유래했다. 그러므로 종교라는 단어는 인간과 영령의 결합 그리고 하나의 우주적 믿음 속에서 모든 인간이 서로 결합한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너무 자주 종교를 분열의 도구로 이용한다.
집단의 자아가 개입하고 개인은 각 종교의 차별성에 더 중점을 둔다. 다른 종교의 경전에서 특정한 구절을 골라 전체적인 맥락은 무시한 채 “이것 봐, 이 사람들은 우리하고 달라”라고 말한다. 너무나 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우리 종교가 진정한 종교이며, 신은 우리 편입니다”라고 설교한다. 이러한 분열로 수백만의 사람들이 고통과 죽음으로 내몰렸고, 사람들은 더 이상 일체감을 가지고 경배하지 않게 되었다.
위대한 변화의 시점에 서 있는 우리는 이러한 낮은 의식의 단계를 벗어나야 한다. 특히 미국은 이제 종교 국가라기보다 영적 국가로 변모하고 있다. 현명하게도 젊은 세대들은 수많은 종교가 있지만 진정한 신은 단 하나이며 여러 종교 중 가장 ‘옳은’ 종교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우리는 곧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전 지구적 화합을 통해, 우리가 지닌 영적 본성으로 개인적인 종교의 차이를 극복함으로써 모든 것들과 모든 이들을 연결하는 경지에 도달할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우리의 삶을 이해하는 데 중심이 되었던 과학은 세계를 보는 하나의 통로에 불과해질 것이다. 그러면 종교에 대항하는 우스꽝스러운 토론도 더 이상 계속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물론 실제 데이터와 연구 결과를 존중하겠지만, 동시에 그 한계도 깨닫게 될 것이다. 과학에서는 보이는 세계의 경험을 결정하는 보이지 않는 세계라는 존재를 전반적으로 무시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체감을 받아들이게 되면, 종교와 영성과 과학 사이의 분열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분열에서 오는 갈등은 치유될 것이다.

 

신의 사랑 아래 모든 것은 하나가 된다

기독교와 이슬람교, 유대교의 많은 신자들은 신을 인간과 별개의 존재로 여긴다. 그리고 그 종교의 지도자들은 중보의 기도를 통해 신에게 접근해야한다고 가르친다. 또 신은 피조물과 떨어져 천국에 살고 있다고 설교한다. 우리와 떨어진 저 머나먼 높은 곳에서 신은 심판하고, 벌을 내리고,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정의의 권능으로 세상을 조율한다. 동시에 위대한 신은 자비와 은혜를 내리고, 기도에 응답하고, 기적을 행하는 존재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에게 중재를 청해야 한다.
이러한 신의 모습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평화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러한 신의 모습이나 신과의 소통 방식에서 공포와 슬픔 그리고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이들은 신을 그렇게 협소하게 이해해서는 신성하고도 복잡한 삶의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종교가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다행히도 당신은 영적 존재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랑과 치유 그리고 조화의 근원으로서 말이다. 일체감이 자신의 진정한 본성임을 받아들이면, 신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 나갈 수 있다. 조물주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의식의 역능을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역능이나 지혜와 분리된 모든 것은 그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위대한 의식(합일의 영역으로도 불린다) 속에서 합일된다. 하지만 당신이 인간의 형태로 남아 있는 한, 이를 인식하기란 매우 어렵다.
우주의 모든 존재는 의식을 지닌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 증거를 우리는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다. 은하계의 완벽한 궤도가 그러하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의 신성한 지성이 그러하며, 모든 유기체 사이에 존재하는 상징적 관계들이 그러하다. 우리와 영적 존재는 모든 존재와 생명체가 지닌 빛나는 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신성은 사랑과 힘, 지혜와 풍요의 위대한 근원이다. 또한 온 우주를 가로질러 흘러가는 강물처럼 언제나 우리를 보살핀다. 하지만 신의 분노에 두려움을 느끼게 되면(죽음이나 고통을 무서워하다 보니 신을 믿지 않는 사람조차 이러한 두려움을 느낀다) 우리는 자신의 본성을 망각하고 만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의식을 지닌 존재로서, 저 높은 권능과 지금 연결되어 있고 과거에도 그랬으며 미래에도 영원히 그럴 텐데, 이 사실을 잊고 마는 것이다.
이 세상 종교에는 신의 진실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담겨 있다. 서로 다른 종교의 가르침을 공부하다 보면, 신에 대한 여러 다른 견해를 접하게 된다. 또한 인간이 자신의 모습을 신의 모습에 반영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발견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은 인간의 모든 단점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신을 창조했다. 고대 스칸디나비아인들과 이집트인들 역시 다양한 신을 숭배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신들 하나하나는 복잡하고 신성한 존재의 모습을 제한되게나마 구현하고 있다. 여러 종교를 공부하다 발견한 사실이 있는데, 놀랍게도 서로 완전히 달라 보이는 종교 사이에도 상당한 공통점이 있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종교 신화에는 지구상의 뭇 생명을 창조한 조물주 이야기가 등장한다. 기독교나 유대교, 이슬람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신은 ‘존재’할 것을 명령하여 모든 존재들을 탄생시킨 위대한 조물주다. 힌두교에서 주신 브라흐마Brahma는 존재하는 모든 것의 창조를 책임지고 있다. 호주 원주민들의 창조 신화에 따르면, 만물을 창조한 바이아메Baiame라는 조물주가 인간을 이 지상에서 창조했다. 또 음양 이론에 기초한 중국의 탄생 신화에서는 모든 것이 신성한 힘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우리는 신성한 힘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와 고대의 모든 종교에서 공통되는 진리, 즉 신성의 본질이 사랑과 선이라는 진리는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어릴 적에 나는 부모님이 배웠던 것, 할아버지 할머니가 배웠던 것과 동일한 종교적 교리와 가르침을 배웠다. 당시(지금도 그렇지만) 내 주위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은 전통적인 그리스정교를 믿었다. 교회는 여러 가지 성상들로 가득했고, 수염을 기른 사제들은 예복을 입고 있었다. 일요일이면 설교를 듣기 위해 모두 교회에 갔다.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전부였다. 우리는 전통에 충실했고, 지금까지 우리를 지탱해온 것들에 전혀 도전하지 않았다. 종교를 바꾼다거나 영성에 대해 공부한다거나 무신론자가 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과거 정부 지배 하에서는 교회에 가는 것이 의무가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였지만, 누구도 자신의 믿음에 의문을 품거나 다른 종교에 호기심을 가지거나 신의 가르침을 다른 방식으로 공부하려 들지 않았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나는 종교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종교를 아예 거부하는 사람들까지) 한 나라에 모여 산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 그 후로 신에 대한 나의 믿음은 다른 양상을 띠게 되었다. 어떤 사람이 나와 완전히 종교가 다르더라도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이전까지 배운 것들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기존의 배움을 거부한 것은 결코 아니다. 무엇이 가장 합당한지, 무엇이 신의 아들딸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지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종교에서 가르치는 대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보살피는 우주적 힘에 대한 믿음은 옳은 것이라는 판단에 이르렀다. 또한 신의 사랑으로 우리 모두를 일체화하는 일체감이라는 개념에 다다르게 되었다.
종교는 어째서 이렇게 분열되었을까? 의술사들이나 주술사들, 사제들과 성자들 그리고 영적 지도자들은 모두 우리의 영성의 본질에 대해, 신과의 연결에 대해 가르쳐왔다. 하지만 우리는 그 가르침을 잊고 말았다. 전대에는 종교가 가로막았고, 후대에 이르러서는 과학이 우리를 진실로부터 소외시켰다. 그 때문에 우리는 단절감과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신과의 연결을 방해하는 건강하지 못한 제약들을 떨쳐버려야 한다. 잃어버린 일체감을 되찾아야 한다.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카르멘 하라 박사는 '더 뷰The view', '굿모닝 아메리카Good morning America', '투데이 쇼Today show' 그리고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 [뉴욕 포스트The New York Post]를 비롯한 미국의 텔레비전 쇼와 언론 매체에 출연하는 유명 인사이며 심리치료학자다.

할리우드 스타에서부터 저명한 정치인들까지 그녀를 찾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다년간의 경험을 통한 부부 치료나 인지치료 방식이 그녀의 신비한 직관력과 합쳐져 그녀는 세계적인 상담사로 발돋움했다. 또한 세 장이나 음반을 낸 재능 있는 음악가이며, 자신만의 고유한 보석을 디자인하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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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는 용기, 행복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자

● ● 버리는 용기
우리가 우리의 개념을 버리는 데는 용기가 요구된다. 익숙해서 편안해진 개념들을 버리는 것은 엄청나게 충격적이다. 우리는 설 곳이 없다고 느끼게 된다. 개념이 우리를 실재에서 멀어지게 하고 진정으로 행복해질 기회를 없애버리지만, 편안하고 이해할 수 있고 예측할 수 있는 세계라는 의미에서 우리가 개념에 집착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고목 앞에 서면 우리는 생각한다. “그래, 나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아. 이건 나무라고 부르는 거야. 어디 보자. 여기는 줄기고 줄기에 가지랑 잎이 달렸네. 내가 생각했던 대로 이건 나무야.” 이런 식으로 나무를 보는 건 죽어 있는 사물을 보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을 단순히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식으로 볼 때 우리는 우리 앞에 펼쳐진 기적과도 같은 살 아 있는 과정을 놓치게 된다.
한 번은 틱낫한 선사가 교도소에서 강연한 적이 있었다. 청중 가운데 하나가 자신은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강연 전에 조용히 앉아 명상을 했다고 말했다(틱낫한 2002). 그는 전 세계에서 온 80여 명의 게스트와 120여 명의 재소자가 있는 자리에서 홀로 명상을 할 수 있었음을 대단한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선사는 단순히 그 자신으로 현존했을 뿐이며 그 순간에 집중했다. 그는 강연을 한다는 개념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선불교의 말을 빌리면 ‘강연’이라는 것을 하는 ‘교사’라는 사람도 없고 ‘청중’이나 ‘재소자’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틱낫한 선사는 분리된 자아라는 개념에 빠져 있지 않았다.

● ● 행복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자
우리는 이야기를 말하는 걸 좋아한다. 이야기들의 내용은 달라도 그것의 구조는 예측할 수 있다. 이야기에는 주요 인물과 보조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 가운데 하나가 주인공이고 이야기는 주로 화자의 관점에서 진행된다. 내용 전개는 곤경에 처하고, 위험한 여행을 떠나야만 하거나 미스터리가 풀려야만 한다. 우리는 그 곤경을 극복하고 해결해야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며, 해결점에 도달할 수 있다.
붓다의 이야기는 영웅전으로 들릴 수 있다. 극복해야 할 난관(인간의 고통)이 있고 해야 할 탐구가 있으며 찾아야 할 해결책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사물을 생각하는 데 매우 익숙해서 이런 기본 구조를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붓다는 자신이나 자신의 이야기에 관해서는 조금밖에 말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특정 인물로서 특별히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했던 건 그의 진리와 통찰 또는 가르침이었다. 역사가나 전기 작가에게는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겠지만, 그는 자신의 가르침을 담은 불교 경전에서 사생활에 관한 기록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깨우침을 얻기 전의 그의 삶과 죽음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매우 적다. 남겨진 기록 대부분이 전기나 역사서라기보다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신화나 전설 같은 내용이다. 붓다의 삶과 가르침 전반에 걸친 내용과 그가 깨우침을 얻은 후부터 타계하기 전까지의 기록은 상대적으로 극히 적다. 그는 존경받기를 바라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발견한 것을 사람들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했을 뿐이다. 고통이 없는 영역, 즉 행복의 영역이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보기를 바랐다. 우리가 마음을 열기만 하면 열반의 영역이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삶의 드라마에 갇혀 있다. 흔히 행복을 찾는다고 하면, 용이나 괴물을 쓰러뜨리고 황금이나 공주를 찾는 것처럼 본능적으로 어떤 일을 겪는 가운데 그 어려움을 견디고 탐색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찾는 해결책과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행복이 바로 지금 존재한다는 말을 들으면 그것을 찾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만 하고, 인내해야 하며, 투쟁해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삶을 ‘이야기’로 보기 때문에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는 관념에 사로잡힌다. 우리는 어떻게든 행복을 추구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큰돈을 벌거나 명성을 쌓는 것처럼, 깨우침을 얻어야만 하는 필요성도 마찬가지다. 깨우침을 얻으려면 악전고투하고 곤경을 이겨내야만 한다. 우리의 의식 구조는 이런 생각으로 가득 차 있어서 이런 생각을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내게는 그것이 없어. 매우 어려운 일이야. 난 그것을 위해 투쟁해야만 해.”
우리가 ‘붓다’라고 말할 때 입을 씻어야 하는 이유는 이런 생각들 때문이다. 우리는 붓다가 위험하고도 어려운 일을 견디며 영웅적인 수행을 했기 때문에 깨우침을 얻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마음이 편안했을 때 그리고 인간의 본성과 싸우기보다는 함께 하려고 결심했을 때, 열반이라고 부르는 상태에 빠져들 수 있었다. 휴식을 취하며 마음을 열었을 때 평화와 행복을 발견한 것이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나뭇잎’이라는 개념 대신 있는 그대로의 나뭇잎을 보면서 현재의 순간에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대부분 실망한다. 항상 대단한 성취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나뭇잎을 바라보면서 어떤 특별한 성취를 이루지 못하면 거기서 특별함을 느끼지 못하고 자아를 충족시킬 수 없다. 오히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우리는 자아 밖으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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