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를 읽고 장자에게 배운다』 중에서

경쟁과 초월의 서로 다른 결과
『장자』에서는 되도록 다투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장자』에는 이
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다. 그중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오왕吳王이 부하를 데리고 장강을 건너 ‘후산猴山’ 앞에 도착했다. 그곳은 산 전체에 원숭이들이 살고 있었다. 사람을 본 원숭이들은 잽싸게 숲으로 피해버렸다. 그런데 유독 재주가 많은 원숭이 한 마리가 도망가지 않고 사람들에게 자기 재주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나무를 타며 재주넘기를 하고 빙빙 돌며 쇼를 했다. 이 모습
을 지켜본 오왕은 화가 나서 활을 꺼내 쐈다. 그런데 원숭이가 그 활을 잡아버렸다. 이를 본 오왕은 더욱 화가 났고 부하들에게 함께 활을 쏘라고 했다. 결국 그 원숭이는 활에 맞아 죽었다. 이 원숭이는 돋보이고 싶어 했다.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자랑하고 싶었다. 짧지만 무척 흥미로운 우화다.
고대 사람들의 생활은 아주 단조로웠다. 그래서 닭싸움 등을 오락거리로 삼았다. 기성자紀渻子는 제왕의 투계조련사다. 기성자가 닭을 맡은지 10일이 지나자 제왕이 기다리다 지쳐 물었다.
“닭의 상태가 어떤가? 경기에 나갈 수 있겠나?”
기성자가 대답했다.
“아직 안 됩니다. 지금은 그저 근거 없는 자신감뿐입니다. 감정을 조절할 줄 모릅니다. 얼핏 보면 사나워 보이지만 사실 허세를 부리는 것뿐입니다.”
그 후 또 10일이 흘렀고 제왕이 물었다.
“이제 경기에 나갈 수 있겠는가?”
기성자가 대답했다.
“아직도 이릅니다. 이 닭은 아직도 바깥의 빛과 소리에 너무 민감합니다. 그건 아직도 자기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10일이 지나 제왕이 물었다.
“이젠 경기에 내보내도 되겠지?”
기성자가 대답했다.
“아직 때가 안 됐습니다. 이 닭은 아직도 눈빛이 매섭고 그 기세도 전혀 꺾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또 10일이 흘러 40일이나 지났다. 제왕의 인내심도 이제 바닥이 났다. 이때 기성자가 말했다.
“이제 내보내도 됩니다. 이 닭은 이제 외부의 어떤 자극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나무로 만든 닭 같습니다.”
그 닭이 경기에 나가자 다른 닭들은 당황스러웠다.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아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들 그냥 도망치기에 바빴고 그 닭은 무적의 투계가 됐다. 우리가 지금 쓰는 ‘태약목계呆若木鷄(나무로 만든 닭과 같다)’는 『장자』에서 자기 자신조차 잊은 채 남과 싸우고자 하는 마음도 없는 상태로 오히려 남을 그와 경쟁하게 만드는 아주 높은 경지를 의미하는 말이다. 노자도 이렇게 말했다.
“부유불쟁夫唯不爭, 천하막능여지쟁天下莫能與之爭”
다투지 않으므로 천하에 나와 경쟁할 대상이 없다는 뜻이다. 즉 당신이 경쟁하지 않으므로 당신에게는 상대방이 파고들 어떤 약점도 빈틈도 없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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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장의 사상에서 제창하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불쟁이선승不爭而善勝’은 사실 침착하고 냉정하게 그리고 묵묵히 내적 역량을 키우라는 뜻이다. 나무로 만든 닭처럼 반응이 없던 닭 역시 내적 역량을 키움으로써 천하무적이 되지 않았는가. 장자는 이외에 어떤 우화로 무경쟁의 관점을 우리에게 전해줄까? 그리고 현대인은 거기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