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왈 vs 예수 가라사대(도서출판 지와 사랑)

 

 

 

 

 

루터와 더불어 종교개혁을 주도한 칼뱅

칼뱅은 유명한 개혁가이자 신학자로 루터 다음으로 유럽의 종교개혁을 주도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저술한 『기독교 강요Christianae Religionis Institutio』의 서두에서 “하느님을 아는 지식과 자신을 아는 지식만이 진정한 지식이다”라고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기독교 강요』는 1536년에 출판되기까지 2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으며 종교개혁운동을 이끈 권위 있는 작품이 되었다. 칼뱅은 프랑스인이지만 스위스에서 활동했으며 제네바에 영향력 있는 교회 행정기구를 설립했다. 기독교 역사에서 그가 이룬 성과는 단연 돋보였다.
칼뱅의 아버지는 명망 있는 법률 고문이었다. 그래서 칼뱅은 많은 귀족들을 사귈 수 있었고, 아버지의 도움으로 열두 살 때 교회 직분을 얻었으며, 열네 살 때는 파리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에서 라틴어와 철학, 변증법 등을 배운 것이 훗날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토대가 되었다. 열아홉 살 때에는 법학 과정을 마치고 프랑스 학사원에서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를 전문적으로 배웠다. 1532년에는 첫 번째 책을 출판했다.
종교개혁운동은 프랑스에도 영향을 미쳤다. 칼뱅도 점차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여 1536년에는 제네바로 옮겨 윌리엄 파렐과 함께 종교개혁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실패로 끝나 스위스에서 쫓겨났다. 칼뱅 추종 세력은 제네바 정치혁명이 끝난 후 정치권력을 손에 넣었다. 그래서 칼뱅은 1541년 9월에 제네바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제네바는 칼뱅의 노력에 힘입어 지저분한 곳을 깨끗이 청소하고 빈민을 보살피는 등 복지를 강화하여 기독교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칼뱅은 1559년 제네바 대학의 전신인 제네바 학원을 설립하여 선교사를 육성하고 유럽 몇몇 나라로 파견했다. 그의 영향은 점차 유럽 각지로 퍼져나가 칼뱅주의를 형성했다.

 

 

중국으로 간 선교사 로버트 모리슨

로버트 모리슨은 1782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열여섯 살이 될 때까지 걸핏하면 술에 취하거나 흥청망청 놀았고 저속한 말을 입에 달고 살며 허랑방탕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열여섯 살 때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했고, 스무 살이 조금 넘었을 무렵 하느님의 부름을 받아 중국 선교사가 되었다.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사전 없이 배우려니 어려움이 만만치 않았다. 도중에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온갖 고생을 이겨내고 마침내 중국어에 능통하게 되었다.
당시 중국과 영국 사이의 뱃길을 동인도회사가 독점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상업적 이익을 고려해 선교사가 배를 타고 중국으로 가는 걸 허용하지 않았다. 모리슨은 어쩔 수 없이 미국을 경유하여 마카오로 갈 수밖에 없었으므로 어려움이 많았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듯이 그는 중국 의상을 착용하고 손톱을 길렀으며 변발을 하고 중국 음식을 먹었다. 그는 중국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였으나 그 와중에도 「사도행전」과 「누가복음」을 연달아 중국어로 번역했다. 또한 옥스퍼드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 내에 중국어 강좌를 개설하고 말레이시아의 말라카에 외국인 최초로 영화英華학당을 설립하여 중국어 인재를 양성했다. 그는 중국 선교에 성공한 크리스천이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