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는 용기, 행복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자

● ● 버리는 용기
우리가 우리의 개념을 버리는 데는 용기가 요구된다. 익숙해서 편안해진 개념들을 버리는 것은 엄청나게 충격적이다. 우리는 설 곳이 없다고 느끼게 된다. 개념이 우리를 실재에서 멀어지게 하고 진정으로 행복해질 기회를 없애버리지만, 편안하고 이해할 수 있고 예측할 수 있는 세계라는 의미에서 우리가 개념에 집착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고목 앞에 서면 우리는 생각한다. “그래, 나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아. 이건 나무라고 부르는 거야. 어디 보자. 여기는 줄기고 줄기에 가지랑 잎이 달렸네. 내가 생각했던 대로 이건 나무야.” 이런 식으로 나무를 보는 건 죽어 있는 사물을 보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을 단순히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식으로 볼 때 우리는 우리 앞에 펼쳐진 기적과도 같은 살 아 있는 과정을 놓치게 된다.
한 번은 틱낫한 선사가 교도소에서 강연한 적이 있었다. 청중 가운데 하나가 자신은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강연 전에 조용히 앉아 명상을 했다고 말했다(틱낫한 2002). 그는 전 세계에서 온 80여 명의 게스트와 120여 명의 재소자가 있는 자리에서 홀로 명상을 할 수 있었음을 대단한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선사는 단순히 그 자신으로 현존했을 뿐이며 그 순간에 집중했다. 그는 강연을 한다는 개념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선불교의 말을 빌리면 ‘강연’이라는 것을 하는 ‘교사’라는 사람도 없고 ‘청중’이나 ‘재소자’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틱낫한 선사는 분리된 자아라는 개념에 빠져 있지 않았다.

● ● 행복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자
우리는 이야기를 말하는 걸 좋아한다. 이야기들의 내용은 달라도 그것의 구조는 예측할 수 있다. 이야기에는 주요 인물과 보조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 가운데 하나가 주인공이고 이야기는 주로 화자의 관점에서 진행된다. 내용 전개는 곤경에 처하고, 위험한 여행을 떠나야만 하거나 미스터리가 풀려야만 한다. 우리는 그 곤경을 극복하고 해결해야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며, 해결점에 도달할 수 있다.
붓다의 이야기는 영웅전으로 들릴 수 있다. 극복해야 할 난관(인간의 고통)이 있고 해야 할 탐구가 있으며 찾아야 할 해결책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사물을 생각하는 데 매우 익숙해서 이런 기본 구조를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붓다는 자신이나 자신의 이야기에 관해서는 조금밖에 말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특정 인물로서 특별히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했던 건 그의 진리와 통찰 또는 가르침이었다. 역사가나 전기 작가에게는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겠지만, 그는 자신의 가르침을 담은 불교 경전에서 사생활에 관한 기록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깨우침을 얻기 전의 그의 삶과 죽음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매우 적다. 남겨진 기록 대부분이 전기나 역사서라기보다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신화나 전설 같은 내용이다. 붓다의 삶과 가르침 전반에 걸친 내용과 그가 깨우침을 얻은 후부터 타계하기 전까지의 기록은 상대적으로 극히 적다. 그는 존경받기를 바라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발견한 것을 사람들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했을 뿐이다. 고통이 없는 영역, 즉 행복의 영역이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보기를 바랐다. 우리가 마음을 열기만 하면 열반의 영역이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삶의 드라마에 갇혀 있다. 흔히 행복을 찾는다고 하면, 용이나 괴물을 쓰러뜨리고 황금이나 공주를 찾는 것처럼 본능적으로 어떤 일을 겪는 가운데 그 어려움을 견디고 탐색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찾는 해결책과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행복이 바로 지금 존재한다는 말을 들으면 그것을 찾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만 하고, 인내해야 하며, 투쟁해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삶을 ‘이야기’로 보기 때문에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는 관념에 사로잡힌다. 우리는 어떻게든 행복을 추구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큰돈을 벌거나 명성을 쌓는 것처럼, 깨우침을 얻어야만 하는 필요성도 마찬가지다. 깨우침을 얻으려면 악전고투하고 곤경을 이겨내야만 한다. 우리의 의식 구조는 이런 생각으로 가득 차 있어서 이런 생각을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내게는 그것이 없어. 매우 어려운 일이야. 난 그것을 위해 투쟁해야만 해.”
우리가 ‘붓다’라고 말할 때 입을 씻어야 하는 이유는 이런 생각들 때문이다. 우리는 붓다가 위험하고도 어려운 일을 견디며 영웅적인 수행을 했기 때문에 깨우침을 얻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마음이 편안했을 때 그리고 인간의 본성과 싸우기보다는 함께 하려고 결심했을 때, 열반이라고 부르는 상태에 빠져들 수 있었다. 휴식을 취하며 마음을 열었을 때 평화와 행복을 발견한 것이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나뭇잎’이라는 개념 대신 있는 그대로의 나뭇잎을 보면서 현재의 순간에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대부분 실망한다. 항상 대단한 성취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나뭇잎을 바라보면서 어떤 특별한 성취를 이루지 못하면 거기서 특별함을 느끼지 못하고 자아를 충족시킬 수 없다. 오히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우리는 자아 밖으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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