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멘 하라의 『일체감이 주는 행복』(도서출판 知와 사랑)

부제: 나를 치유하는 신성한 연결고리

 

 

 

 

종교와 과학, 영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

 

 

지금 떠오르고 있는 것은 새로운 믿음 체계이며, 새로운 종교적, 영적 이데올로기 혹은 신화다. 우리는 기존 신화뿐 아니라 이데올로기, 종교 체계에도 이별을 고하고 있다.
—에크하르트 톨레Echart Tolle

이 세상 모든 종교에서는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고, 우리가 대접받기를 원하듯이 대접하며, 신을 사랑하고 공경하라고 가르친다. 종교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Religion은 ‘제한하다 혹은 묶다’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Religare에서 유래했다. 그러므로 종교라는 단어는 인간과 영령의 결합 그리고 하나의 우주적 믿음 속에서 모든 인간이 서로 결합한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너무 자주 종교를 분열의 도구로 이용한다.
집단의 자아가 개입하고 개인은 각 종교의 차별성에 더 중점을 둔다. 다른 종교의 경전에서 특정한 구절을 골라 전체적인 맥락은 무시한 채 “이것 봐, 이 사람들은 우리하고 달라”라고 말한다. 너무나 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우리 종교가 진정한 종교이며, 신은 우리 편입니다”라고 설교한다. 이러한 분열로 수백만의 사람들이 고통과 죽음으로 내몰렸고, 사람들은 더 이상 일체감을 가지고 경배하지 않게 되었다.
위대한 변화의 시점에 서 있는 우리는 이러한 낮은 의식의 단계를 벗어나야 한다. 특히 미국은 이제 종교 국가라기보다 영적 국가로 변모하고 있다. 현명하게도 젊은 세대들은 수많은 종교가 있지만 진정한 신은 단 하나이며 여러 종교 중 가장 ‘옳은’ 종교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우리는 곧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전 지구적 화합을 통해, 우리가 지닌 영적 본성으로 개인적인 종교의 차이를 극복함으로써 모든 것들과 모든 이들을 연결하는 경지에 도달할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우리의 삶을 이해하는 데 중심이 되었던 과학은 세계를 보는 하나의 통로에 불과해질 것이다. 그러면 종교에 대항하는 우스꽝스러운 토론도 더 이상 계속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물론 실제 데이터와 연구 결과를 존중하겠지만, 동시에 그 한계도 깨닫게 될 것이다. 과학에서는 보이는 세계의 경험을 결정하는 보이지 않는 세계라는 존재를 전반적으로 무시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체감을 받아들이게 되면, 종교와 영성과 과학 사이의 분열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분열에서 오는 갈등은 치유될 것이다.

 

신의 사랑 아래 모든 것은 하나가 된다

기독교와 이슬람교, 유대교의 많은 신자들은 신을 인간과 별개의 존재로 여긴다. 그리고 그 종교의 지도자들은 중보의 기도를 통해 신에게 접근해야한다고 가르친다. 또 신은 피조물과 떨어져 천국에 살고 있다고 설교한다. 우리와 떨어진 저 머나먼 높은 곳에서 신은 심판하고, 벌을 내리고,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정의의 권능으로 세상을 조율한다. 동시에 위대한 신은 자비와 은혜를 내리고, 기도에 응답하고, 기적을 행하는 존재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에게 중재를 청해야 한다.
이러한 신의 모습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평화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러한 신의 모습이나 신과의 소통 방식에서 공포와 슬픔 그리고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이들은 신을 그렇게 협소하게 이해해서는 신성하고도 복잡한 삶의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종교가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다행히도 당신은 영적 존재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랑과 치유 그리고 조화의 근원으로서 말이다. 일체감이 자신의 진정한 본성임을 받아들이면, 신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 나갈 수 있다. 조물주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의식의 역능을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역능이나 지혜와 분리된 모든 것은 그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위대한 의식(합일의 영역으로도 불린다) 속에서 합일된다. 하지만 당신이 인간의 형태로 남아 있는 한, 이를 인식하기란 매우 어렵다.
우주의 모든 존재는 의식을 지닌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 증거를 우리는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다. 은하계의 완벽한 궤도가 그러하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의 신성한 지성이 그러하며, 모든 유기체 사이에 존재하는 상징적 관계들이 그러하다. 우리와 영적 존재는 모든 존재와 생명체가 지닌 빛나는 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신성은 사랑과 힘, 지혜와 풍요의 위대한 근원이다. 또한 온 우주를 가로질러 흘러가는 강물처럼 언제나 우리를 보살핀다. 하지만 신의 분노에 두려움을 느끼게 되면(죽음이나 고통을 무서워하다 보니 신을 믿지 않는 사람조차 이러한 두려움을 느낀다) 우리는 자신의 본성을 망각하고 만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의식을 지닌 존재로서, 저 높은 권능과 지금 연결되어 있고 과거에도 그랬으며 미래에도 영원히 그럴 텐데, 이 사실을 잊고 마는 것이다.
이 세상 종교에는 신의 진실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담겨 있다. 서로 다른 종교의 가르침을 공부하다 보면, 신에 대한 여러 다른 견해를 접하게 된다. 또한 인간이 자신의 모습을 신의 모습에 반영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발견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은 인간의 모든 단점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신을 창조했다. 고대 스칸디나비아인들과 이집트인들 역시 다양한 신을 숭배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신들 하나하나는 복잡하고 신성한 존재의 모습을 제한되게나마 구현하고 있다. 여러 종교를 공부하다 발견한 사실이 있는데, 놀랍게도 서로 완전히 달라 보이는 종교 사이에도 상당한 공통점이 있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종교 신화에는 지구상의 뭇 생명을 창조한 조물주 이야기가 등장한다. 기독교나 유대교, 이슬람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신은 ‘존재’할 것을 명령하여 모든 존재들을 탄생시킨 위대한 조물주다. 힌두교에서 주신 브라흐마Brahma는 존재하는 모든 것의 창조를 책임지고 있다. 호주 원주민들의 창조 신화에 따르면, 만물을 창조한 바이아메Baiame라는 조물주가 인간을 이 지상에서 창조했다. 또 음양 이론에 기초한 중국의 탄생 신화에서는 모든 것이 신성한 힘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우리는 신성한 힘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와 고대의 모든 종교에서 공통되는 진리, 즉 신성의 본질이 사랑과 선이라는 진리는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어릴 적에 나는 부모님이 배웠던 것, 할아버지 할머니가 배웠던 것과 동일한 종교적 교리와 가르침을 배웠다. 당시(지금도 그렇지만) 내 주위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은 전통적인 그리스정교를 믿었다. 교회는 여러 가지 성상들로 가득했고, 수염을 기른 사제들은 예복을 입고 있었다. 일요일이면 설교를 듣기 위해 모두 교회에 갔다.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전부였다. 우리는 전통에 충실했고, 지금까지 우리를 지탱해온 것들에 전혀 도전하지 않았다. 종교를 바꾼다거나 영성에 대해 공부한다거나 무신론자가 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과거 정부 지배 하에서는 교회에 가는 것이 의무가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였지만, 누구도 자신의 믿음에 의문을 품거나 다른 종교에 호기심을 가지거나 신의 가르침을 다른 방식으로 공부하려 들지 않았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나는 종교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종교를 아예 거부하는 사람들까지) 한 나라에 모여 산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 그 후로 신에 대한 나의 믿음은 다른 양상을 띠게 되었다. 어떤 사람이 나와 완전히 종교가 다르더라도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이전까지 배운 것들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기존의 배움을 거부한 것은 결코 아니다. 무엇이 가장 합당한지, 무엇이 신의 아들딸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지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종교에서 가르치는 대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보살피는 우주적 힘에 대한 믿음은 옳은 것이라는 판단에 이르렀다. 또한 신의 사랑으로 우리 모두를 일체화하는 일체감이라는 개념에 다다르게 되었다.
종교는 어째서 이렇게 분열되었을까? 의술사들이나 주술사들, 사제들과 성자들 그리고 영적 지도자들은 모두 우리의 영성의 본질에 대해, 신과의 연결에 대해 가르쳐왔다. 하지만 우리는 그 가르침을 잊고 말았다. 전대에는 종교가 가로막았고, 후대에 이르러서는 과학이 우리를 진실로부터 소외시켰다. 그 때문에 우리는 단절감과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신과의 연결을 방해하는 건강하지 못한 제약들을 떨쳐버려야 한다. 잃어버린 일체감을 되찾아야 한다.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카르멘 하라 박사는 '더 뷰The view', '굿모닝 아메리카Good morning America', '투데이 쇼Today show' 그리고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 [뉴욕 포스트The New York Post]를 비롯한 미국의 텔레비전 쇼와 언론 매체에 출연하는 유명 인사이며 심리치료학자다.

할리우드 스타에서부터 저명한 정치인들까지 그녀를 찾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다년간의 경험을 통한 부부 치료나 인지치료 방식이 그녀의 신비한 직관력과 합쳐져 그녀는 세계적인 상담사로 발돋움했다. 또한 세 장이나 음반을 낸 재능 있는 음악가이며, 자신만의 고유한 보석을 디자인하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홈페이지 www.CarmenHarra.com과 페이스북 carmen Harra- (Wholeliness)를 방문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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