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왈 vs 예수 가라사대(도서출판 지와 사랑)

 

 

 

 

 

아내의 빈말에 돼지를 잡은 증자

 

심성의 수양 또한 수신이다. 심성수양은 성실한 마음가짐(誠心)과 욕망을 제거하는 것(去欲)이 핵심이다. 성실한 마음가짐은 중국 민족정신의 하나로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언어에는 신뢰가 있어야 하고 행동에는 결과가 따라야 한다. 그러나 이는 실천하기 매우 힘든 일이다.
하루는 증자의 아내가 외출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린 아들이 엄마의 옷자락을 붙들고 자기도 데려가라며 칭얼거렸다. 그녀는 일단 아들을 달랠 요령으로 거짓말을 했다.
“착하지, 엄마 금방 다녀올게. 갔다 와서 돼지고기 요리를 해줄게.”
아들은 돼지고기 요리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울음을 그쳤다. 아내가 시장에서 돌아왔을 때 증자는 번쩍거리는 도살용 칼을 들고 돼지 잡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내는 당황해하며 증자를 말렸다.
“아이가 따라오려 해서 달래려고 했던 말인데 어찌 진짜 돼지를 잡으려 하십니까?”
증자가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는 순수하고 미숙하기에 부모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 배우는 법이오. 지금 아이에게 거짓말로 우롱한다면 남에게도 거짓말로 우롱하라고 가르치는 것과 같지 않소. 엄마가 아들을 속이면 아들은 엄마를 믿지 못할 텐데 어찌 아들을 교육할 수 있단 말이오!”
이렇게 말한 증자는 돼지를 잡았다. 증자는 성인뿐만 아니라 아이에게도 성실하게 대해야 함을 몸소 보여준 것이다.
성誠이란 무엇인가? 원나라의 이학자 허형은 말했다.
"성의誠意란 자신과 남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역겹고 더러운 것을 보면 싫어하기 마련인데 이를 혐嫌이라 하고 좋은 것을 보면 좋아하기 마련인데 이를 애愛라 한다. 이것이 바로 성의이다. 소인은 혼자 있을 때 마음을 삼가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없으면 아무 일도 하지 않다가 사람들이 볼 때에야 말로만 공적인 일을 도모하자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러한 그의 태도를 이미 간파하고 있다. 단지 소인 혼자만이 자신의 온갖 음흉함을 간파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뿐이다."
이처럼 성이라 하는 것은 하나면 하나, 둘이면 둘로 숨김없이 진실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성은 겉과 속 그리고 언행이 일치하는 것을 말하며 수양이 높을 때 드러나는 모습이다. 성의 핵심은 유학자들이 주장했던 신독설愼獨說이다. 신독설은 혼자 있을 때 자신을 성찰하고 수양하는 도덕수양 이론으로 자신을 단속하는 윤리라고 말할 수 있다.
오늘날의 사회에 신독설의 정신이 무척 절실하다. 도처에서 신독하지 못해 갖가지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다. 관광지 어디서나 누가 언제 여기에 다녀갔다는 식의 낙서가 발견된다. 또한 버스정류장, 영화관, 회관, 항구, 부두 등지에서 함부로 가래를 뱉고 담뱃재와 휴지를 버리는 사람, 개인이 운영하는 상점과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훔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모두 혼자 있을 때 도리에 어긋남이 없도록 삼가지 못해, 즉 신독하지 못해 생기는 현상들이다. 신독설은 사람들이 모르는 일을 할 때 자기 자신에게 더욱더 엄격해 조금도 부끄럽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 사람은 남과 함께 있을 때보다 혼자 있을 때 욕망을 절제하기 더 힘들다. 그래서 신독을 수양하여 자신을 욕망에서 지켜내야 한다. 은밀한 곳에서 불쑥불쑥 자라는 욕망의 싹을 신독으로 잘라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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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젖은 광한루

 

 

 

남원에 갔다가 광한루에 갔습니다.

황희 정승이 유배되었을 때 광한루가 지어졌다고 합니다.

물론 그때는 작은 정자에 불과했겠지요.

웃기는 건 근처에 춘향의 묘가 있는 것인데,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덤이 있다면 웃기지 않습니까?

소설 속의 주인공 춘향을 기리는 사당이 있는 것쯤이야

귀엽게 봐줄 만하지만,

무덤까지 만든 건 남원시의 지나친 관광정책이라고 생각됩니다.

사당에 있는 전신 인물상은 장우성 화백이 그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보존 상태가 좋아보였습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데 입장료를 내고 광한루 관광지에 갔습니다.

월매의 집을 만들어놓고 끝에 있는 방을 부용당이라 하여 춘향과 이도령이 즐거운 하룻밤을 보낸 곳이라고 우깁니다.

이도령이 잘생겼던지 양반집 아들이라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만난 첫날 밤 그와 사랑을 불태운 걸 보면 춘향은 화끈한 여자였습니다.

암튼 소설 같은 관광지의 장면들을 소개합니다.

 

 

부용당

 

 

 

오작교

 

 

 

 

 

 

 

 

돌로 만든 다리인데 나무로 만들었더라면 더욱 운치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오작교 양쪽 물에는 팔뚝만한 다채로운 잉어들이 한데 몰려 있는데

바로 앞에서 잉어먹이를 팔고 있어 잉어들이 인기척이 나면 그곳으로 몰려듭니다.

300원짜리 종이컵에 담아 파는 잉어먹이는 2천 원이었습니다.

 

 

광한루

 

 

 

 

 

‘호남제일루’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호남에서 가장 큰 정자인 모양입니다.

광한루 옆에는 작은 정자가 있고 인적이 없어 오솔길처럼 보이도록 찍어보았습니다.

 

광한루 옆 작은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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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지와 사랑의 신간 <법왕 달라이 라마> 중에서

 

 

 

 

달라이라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폭력과 국제 질서
비폭력을 진정으로 실천하는 일은 전 세계적으로 아직도 실험 중입니다만, 사랑과 이해를 토대로 비폭력을 추구하는 일은 신성합니다. 이 실험이 성공한다면 훨씬 더 평화로운 세상으로 가는 길을 열 수 있습니다.

이타주의의 필요성
국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연민을 불러오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경제적 불평등, 특히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불평등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고통의 원천입니다. 경쟁과 부에 대한 욕망이 아닌 이타주의가 사업의 원동력이 되어야 합니다.

과학윤리의 중요성
또한 현대의 과학 분야에서 인간의 가치 존중을 재차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타적인 동기가 없다면 과학자들은 유익한 기술과 단순한 편의주의를 구별할 수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환경 파괴는 이런 혼동에서 기인한 가장 명백한 사례입니다. 특히 생명의 섬세한 구조를 조작할 수 있는 새롭고 놀라운 생명공학 분야에서는 합당한 동기가 더욱더 요구됩니다.

종교는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종교의 목적은 관용, 너그러움, 사랑과 같은 긍정적인 인간의 자질을 향상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기심을 줄이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모든 종교의 전통은 그것들 나름대로의 고유한 가치와 정신적, 영적 건강을 위한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평화를 위한 무장해제
엄청나게 파괴적인 무기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살해되는 비극을 목격하는 이 시대에 우리가 무기를 축소해야 하는 건 분명합니다. 대규모의 군대를 제거하고 국제 통합군을 운영하는 데 따르는 모든 갈등의 요소가 사라진다면 큰 나라건 작은 나라건 모두가 정녕 평등해질 것입니다. 무기 생산을 중단하면 경제적으로도 큰 이득이 뒤따라서 예상치 않은 발전이 지구에 찾아올 것입니다.

평화의 구역
저의 제안은 이렇습니다. 한 나라 또는 여러 나라들에 군사력을 행사할 수 없는 평화의 구역을 지정하여 각 공동체의 ‘중심’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지역 공동체 운동과 함께 평화의 구역은 안정의 오아시스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규정을 정하여 중
대한 변화가 발생할 시에는 유엔이 중재해야 합니다.

비폭력주의
저는 미래에 대해 낙관적입니다. 오늘날 지구상의 모든 이가 세계평화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비폭력적인 사람들의 힘’ 운동의 출현은 반론의 여지없이 인류가 압제통치 아래서는 견딜 수 없고 제대로 기능할 수도 없다는 점을 보여줬습니다.

과학과 종교
또 하나의 희망적 사실은 과학과 종교의 양립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물리학, 생물학, 심리학은 매우 정교한 수준에 도달해 많은 연구자들이 우주와 생명의 궁극의 본질을 캐는 심오한 질문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질문들은 종교의
기본적 관심사입니다. 따라서 더 통일된 관점이 나타날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예로부터 동양은 마음의 이해에, 서양은 물질에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이제 동서양이 만났으므로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삶의 두 관점이 더욱더 조화를 이룰 것입니다.

지구에 대한 우리의 태도
지구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급속히 변화하는 것은 희망의 신호입니다. 이제 정부뿐만 아니라 개인도 새로운 생태계의 질서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푸른 행성은 우리가 아는 가장 쾌적한 거주지입니다. 지구의 생명은 우리의 생명입니다. 지구의 미래는 우리의 미래입니다. 지구 자체가 지각 있는 생물체라고는 믿지 않지만, 지구는 정녕 우리의 어머니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처럼 지구에 의존합니다.

결론
저는 모든 개인이 우리의 지구 가족을 바른 방향으로 이끌 책임이 있다고 믿습니다. 소원을 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대규모 운동은 개인들의 주도로 시작됩니다. 우리 각자가 단순히 이타적인 동기를 향상시킴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고무할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진정으로 믿습니다. 현재와 같은 대변화의 시기는 인류 역사에 흔치 않은 일입니다. 이 시기를 잘 이용하여 더욱더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일이 우리 각자에게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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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를 읽고 장자에게 배운다』 중에서

 

 

 

 

 

쓸모가 없다는 것

 

 

장자가 혜시에게 말했다.
“쓸모가 없다는 말의 의미를 알려주지. 우리가 밟고 서 있는 이 땅은 분명 쓸모가 있을 걸세. 그런데 여기를 제외한 나머지 땅을 모두 없애버린다면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에 가치가 있을 것 같은가?”
좀 더 쉬운 예를 들어 보겠다. 대학생에게 재학시절 4년 동안 가장 유용한 곳은 어디일까? 바로 학교와 늘 지나다니는 혹은 이용하는 상점이 위치한 근방의 비교적 좁은 지역이다. 그렇다면 그곳을 제외한 지역은 학교를 다니는 동안 아무런 쓸모가 없을까? 당신은 모스크바와 멕시코가 어떻게 다른지, 또 오스트레일리아와 오스트리아는 어떻게 다른지 아는가? 당장 생활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이 없다고 느끼는 이런 지명들을 모두 제외시켜 버린다면 학교는 당신에게 쓸모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분명 쓸모가 없어질 것이다. 학교가 당신에게 쓸모 있는 이유는 현재의 당신에게는 그다지 유용하지 않지만 앞으로 접하고 이해하고 또 개발할 수 있게 될 많은 것들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는 언뜻 보아 쓸모 없는 것이 도리어 크게 쓰이는 것이다. 즉 쓸모 있는 것은 쓸모 없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비로소 쓸모가 생겼다. 마찬가지로 반대의 경우도 성립한다. 이와 같은 장자의 변론을 듣고서 혜시는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장자는 정말 쓸모 없는 것도 결국 그 쓰임을 크게 인정받는다고 말했다. 『장자』의 「소요유편」에 나오는 말이다. 혜시가 양나라 재상으로 있던 시절, 양왕이 그에게 나무 씨앗을 보냈다. 이 나무가 자라자 엄청나게 큰 박이 열렸다. 그러나 너무 커서 어느 곳에도 쓸 데가 없었다. 반으로 갈라 물을 푸는 데 쓰려고 했으나 그 박이 들어갈 만한 큰 항아리가 없었다. 결국 혜시는 박을 깨버렸다. 그러자 장자가 말했다.
“자네, 아까운 물건을 버렸군. 이렇게 좋은 박이 있는데 왜 요주腰舟를 만들어 사용하지 않나? 강이나 바다에서 그것을 몸에 묶으면 떠 있을 수 있지 않은가.”
장자의 말을 듣던 혜시는 이렇게 반박했다.
“자네는 늘 너무 큰 도리를 말해 실천이 불가하네. 즉 쓸모가 없다는 말이지.”
언짢아진 장자가 말했다.
“들고양이와 족제비는 둘 다 밤에 돌아다니는 작은 동물을 잡는 데는 선수지. 하지만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결국은 덫에 걸려 죽고 만다네. 야크는 몸집이 얼마나 큰지 마치 하늘에 드리운 구름 같다네. 비록 쥐새끼 한 마리 못 잡지만 느긋하고 자유롭게 산다네. 자네는 왜 이 나무를 사람의 발길이 적은 한적한 곳에 심을 생각을 하지 못했나? 너무 커서 베어도 쓸 곳이 없어서 아무도 베려고 하지 않을 테니 나무 아래서 유유자적 한가로이 쉴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되면 모두에게 다 이로운 일이 아닌가? ”
「소요유편」은 이 이야기를 끝으로 마무리된다. 본래 쓸모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 더 큰 용도로 그 쓰임을 인정받게 됨을 일깨워주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다. 산에 있는 나무라는 뜻의 「산목편山木篇」에는 장자 자신의 처지를 서술한 부분이 있다. 장자가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올랐는데 마침 땔감을 베러 온 사람들이 큰 나무 아래 앉아 차를 마시며 쉬고 있었다. 장자가 물었다.
“당신들은 나무를 하러 온 것이 아니오? 나무가 이렇게 큰데 왜 베지 않소?”
“이 나무는 크기만 하지 쓸모가 없습니다. 속이 텅 비어서 침상을 만들 수도 없고 기둥감도 못 됩니다. 그래서 쓸모가 없다는 것이지요.”
산에서 내려온 장자는 제자들을 데리고 하룻밤 신세를 지러 오랜 친구를 찾아갔다. 친구는 장자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리고 하인에게 오리 한 마리를 잡으라고 분부했다. 하인이 물었다.
“오리가 두 마리 있는데 한 마리는 울 줄 알고 다른 한 마리는 울지 못합니다. 어떤 놈을 잡을까요?”
그러자 주인이 말했다.
“못 우는 놈을 잡아라.”
이것은 또 무슨 뜻일까? 과거에는 오리가 개와 비슷한 역할을 해 낯선 사람을 보면 소리를 내 경계해 쫓고 심지어 물기까지 했다. 그래서 오리가 못 운다는 말은 이러한 능력이 없다는 뜻이므로 두 마리 중 쓸모없는 한 마리가 죽임을 당한 것이다.

쓸모 없는 것이 쓸모가 생기고,
쓸모가 없을수록 더욱 유용하게 쓰인다.
‥‥‥ 노장의 지혜 ‥‥‥

장자는 쓸모 없는 것이 쓸모가 생기고, 크게 쓸모가 없는 것은 더욱 유용하게 쓰인다고 말했다. 그런데 나무는 쓸모가 없어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고, 오리는 쓸모가 없어서 죽임을 당했다. 둘 다 쓸모가 없었는데 왜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을까? 우리는 쓸모 없음을 그저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까? 쓸모 있는 것과 쓸모 없는 것 중에서 무엇을 택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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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왈 vs 예수 가라사대(도서출판 지와 사랑)

 

 

 

 

 

착한 노란 콩, 나쁜 검은 콩

 

송나라 구양수는 장구령이 말한 네 가지 수신을 요약하여 “안으로는 마음을 바르게 하고 밖으로는 용모를 바르게 한다”라고 했다. 옛사람은 마음과 용모를 바르게 하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다. 명나라의 서보는 어릴 때부터 신중하게 행동하고 조심스럽게 말했으며 인품을 갈고 닦아 선을 쌓고 악을 눌렀다. 그는 선조들이 했던 방법을 따라야 했다. 두 개의 병 중 한쪽에는 노란 콩, 다른 한쪽에는 검은 콩을 채웠다. 선한 생각, 선한 말, 선한 행동을 했을 때는 노란 콩을, 악한 생각, 거친 말, 악한 행동을 했을 때는 검은 콩을 넣었다. 처음에는 노란 콩보다 검은 콩이 많았지만 악을 누르고 선을 행하려고 노력한 결과 두 종류의 콩이 비슷하게 채워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선행이 늘어 결국 노란 콩이 많아졌다. 서보는 화개전 대학사라는 관직에 올라서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선을 쌓고 악을 제하며 수신양성에 힘썼다.
주나라의 예악과 법도를 제정한 주공은 생각 한 끗 차이로 성인이 될 수도 있고 망나니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특히 개인의 도덕 수양, 내적 평안, 염치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덕으로써 하늘과 어울리고 어디서든 깊은 우물 앞에 서 있듯이, 살얼음판을 걷듯이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람을 대하고 일을 처리할 때 이러한 태도를 취하면 하늘은 계속해서 신뢰와 지지를 보낼 것이다. 또한 군
자는 낮에 부지런히 고군분투해야 하고 밤에도 느슨해져서는 안 된다. 시시때때로 경계하고 두려워하면서 자신을 성찰할 때에만 위험에 처했을 경우에도 해를 입지 않을 수 있다.

 

모든 윤리 도덕의 출발점, 기소불욕 물시어인

공자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내가 서려면 남을 세우고, 내가 영달하려면 남을 영달하게 해야 한다. 내가 하고자 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억지로 시키지 말아야 한다”라고 했다. 즉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남도 하게 하고 자신이 이루고 싶은 목표를 남도 이루게 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1993년 8월 28일부터 9월 4일까지 미국 시카고에서 세계종교대회가 열렸다. 6500명의 대표들이 ‘글로벌 윤리선언’을 제정하고 통과시켰다. 이 회의에서 사람들은 공자의 말을 비롯하여 각 종교의 세계관과 교리를 뛰어넘는 황금률을 채택했는데 다음과 같다. 내가 하고자 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억지로 시키지 말아야 한(다공자). 내가 다른 사람에게서 당하기를 원치 않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도 행하지 마라,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기독교). 너희들 중 형제가 원하던 바를 얻었을 때 기뻐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신도가 아니다(이슬람교). 스스로 즐겁고 기쁘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기쁘고 즐겁지 아니한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단 말인가(불?교)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대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야말로 도덕의 핵심이다(힌두교). 이들 황금률을 보면 공자는 여덟 자의 짧은 문장으로(己所不欲 勿施於人) 다른 종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모두 표현했다. 또한 공자가 명확하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말에는 표면적인 의미를 넘어서는 또 다른 의미가 담겨 있다. 바로 자신의 마음에 견주어 남의 마음을 헤아리라는 말이다.
기소불욕 물시어인, 즉 “내가 하고자 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억지로 시키지 말아야 한다”라는 말은 모든 윤리 도덕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이 원칙은 작게는 인간과 인간의 교류에서, 크게는 국제관계의 교류에까지 폭넓게 적용되어야 한다. 다른 나라에게 얕보이고 싶지 않으면 다른 나라를 얕보지 말아야 한다.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다른 나라의 도움을 원한다면 다른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먼저 도와야 한다. 이와 같이 계속 확장하면 우리 삶에서 당면하는 많은 문제들도 ‘기소불욕 물시어인’의 정신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이 문장은 관용과 평화를 사랑하게 하고 남의 의중을 헤아리게 한다. 또한 선량한 마음을 품게 하고 즐겁게 남을 돕게 하며 거리낌이 없는 마음과 고매한 인격을 가지게 한다. 90여 년 동안 살면서 풍부한 인생 경험을 쌓은 지셴린이 “공산주의 사회가 실현된다 하더라도 ‘기소불욕 물시어인’을 실천했을 때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라고 강조한 것은 당연하다. 유학 경전에는 기소불욕 물시어인처럼 통찰력 있는 말들이 매우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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