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를 읽고 장자에게 배운다』 중에서

 

 

 

 

 

쓸모가 없다는 것

 

 

장자가 혜시에게 말했다.
“쓸모가 없다는 말의 의미를 알려주지. 우리가 밟고 서 있는 이 땅은 분명 쓸모가 있을 걸세. 그런데 여기를 제외한 나머지 땅을 모두 없애버린다면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에 가치가 있을 것 같은가?”
좀 더 쉬운 예를 들어 보겠다. 대학생에게 재학시절 4년 동안 가장 유용한 곳은 어디일까? 바로 학교와 늘 지나다니는 혹은 이용하는 상점이 위치한 근방의 비교적 좁은 지역이다. 그렇다면 그곳을 제외한 지역은 학교를 다니는 동안 아무런 쓸모가 없을까? 당신은 모스크바와 멕시코가 어떻게 다른지, 또 오스트레일리아와 오스트리아는 어떻게 다른지 아는가? 당장 생활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이 없다고 느끼는 이런 지명들을 모두 제외시켜 버린다면 학교는 당신에게 쓸모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분명 쓸모가 없어질 것이다. 학교가 당신에게 쓸모 있는 이유는 현재의 당신에게는 그다지 유용하지 않지만 앞으로 접하고 이해하고 또 개발할 수 있게 될 많은 것들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는 언뜻 보아 쓸모 없는 것이 도리어 크게 쓰이는 것이다. 즉 쓸모 있는 것은 쓸모 없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비로소 쓸모가 생겼다. 마찬가지로 반대의 경우도 성립한다. 이와 같은 장자의 변론을 듣고서 혜시는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장자는 정말 쓸모 없는 것도 결국 그 쓰임을 크게 인정받는다고 말했다. 『장자』의 「소요유편」에 나오는 말이다. 혜시가 양나라 재상으로 있던 시절, 양왕이 그에게 나무 씨앗을 보냈다. 이 나무가 자라자 엄청나게 큰 박이 열렸다. 그러나 너무 커서 어느 곳에도 쓸 데가 없었다. 반으로 갈라 물을 푸는 데 쓰려고 했으나 그 박이 들어갈 만한 큰 항아리가 없었다. 결국 혜시는 박을 깨버렸다. 그러자 장자가 말했다.
“자네, 아까운 물건을 버렸군. 이렇게 좋은 박이 있는데 왜 요주腰舟를 만들어 사용하지 않나? 강이나 바다에서 그것을 몸에 묶으면 떠 있을 수 있지 않은가.”
장자의 말을 듣던 혜시는 이렇게 반박했다.
“자네는 늘 너무 큰 도리를 말해 실천이 불가하네. 즉 쓸모가 없다는 말이지.”
언짢아진 장자가 말했다.
“들고양이와 족제비는 둘 다 밤에 돌아다니는 작은 동물을 잡는 데는 선수지. 하지만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결국은 덫에 걸려 죽고 만다네. 야크는 몸집이 얼마나 큰지 마치 하늘에 드리운 구름 같다네. 비록 쥐새끼 한 마리 못 잡지만 느긋하고 자유롭게 산다네. 자네는 왜 이 나무를 사람의 발길이 적은 한적한 곳에 심을 생각을 하지 못했나? 너무 커서 베어도 쓸 곳이 없어서 아무도 베려고 하지 않을 테니 나무 아래서 유유자적 한가로이 쉴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되면 모두에게 다 이로운 일이 아닌가? ”
「소요유편」은 이 이야기를 끝으로 마무리된다. 본래 쓸모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 더 큰 용도로 그 쓰임을 인정받게 됨을 일깨워주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다. 산에 있는 나무라는 뜻의 「산목편山木篇」에는 장자 자신의 처지를 서술한 부분이 있다. 장자가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올랐는데 마침 땔감을 베러 온 사람들이 큰 나무 아래 앉아 차를 마시며 쉬고 있었다. 장자가 물었다.
“당신들은 나무를 하러 온 것이 아니오? 나무가 이렇게 큰데 왜 베지 않소?”
“이 나무는 크기만 하지 쓸모가 없습니다. 속이 텅 비어서 침상을 만들 수도 없고 기둥감도 못 됩니다. 그래서 쓸모가 없다는 것이지요.”
산에서 내려온 장자는 제자들을 데리고 하룻밤 신세를 지러 오랜 친구를 찾아갔다. 친구는 장자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리고 하인에게 오리 한 마리를 잡으라고 분부했다. 하인이 물었다.
“오리가 두 마리 있는데 한 마리는 울 줄 알고 다른 한 마리는 울지 못합니다. 어떤 놈을 잡을까요?”
그러자 주인이 말했다.
“못 우는 놈을 잡아라.”
이것은 또 무슨 뜻일까? 과거에는 오리가 개와 비슷한 역할을 해 낯선 사람을 보면 소리를 내 경계해 쫓고 심지어 물기까지 했다. 그래서 오리가 못 운다는 말은 이러한 능력이 없다는 뜻이므로 두 마리 중 쓸모없는 한 마리가 죽임을 당한 것이다.

쓸모 없는 것이 쓸모가 생기고,
쓸모가 없을수록 더욱 유용하게 쓰인다.
‥‥‥ 노장의 지혜 ‥‥‥

장자는 쓸모 없는 것이 쓸모가 생기고, 크게 쓸모가 없는 것은 더욱 유용하게 쓰인다고 말했다. 그런데 나무는 쓸모가 없어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고, 오리는 쓸모가 없어서 죽임을 당했다. 둘 다 쓸모가 없었는데 왜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을까? 우리는 쓸모 없음을 그저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까? 쓸모 있는 것과 쓸모 없는 것 중에서 무엇을 택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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