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음은 주인이 아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성적인 마음으로만 변화를 이루려고 한다. 이성적인 마음을 주인으로 모시고 모든 걸 맡기지만, 그렇게 하면 우리 내면에 많은 번민이 일어나게 된다. 우리 대부분은 이성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으며 명령을 받기 싫어한다. 이성적인 부분은 매우 작아서 그것만으로 변화를 이뤄내려 한다면 꽁꽁 언 호수를 손가락 온기로 녹이려는 것과 같다. 호수를 녹이기는커녕 동상에 걸리고 말 것이다. 마음은 주인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일부일 뿐이다. 마음챙김을 연습하고 마음과 함께 할 때, 행동하고 느끼고 체험하는 각각의 일을 의식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의식은 나의 나머지 부분과 조화를 이룬다. 의식은 싸움을 벌이지 않고 각각의 체험을 살펴보게 한다. 우리가 스스로 주인으로 군림하려고 하면 저항이 뒤따른다. 하지만 마음을 챙겨 우리가 겪는 어려움을 꾸준히 의식하면 변화의 문이 열린다.
우리는 마음챙김을 통해서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것이 실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오랫동안 갖고 싶었던 스포츠카를 얻게 되면 정말 기쁠 것이다. 하지만 그 기쁨이 얼마나 지속될까? 결국 그 새 차도 늘 그렇듯이 일상의 배경이 되어버린다. 똑같은 거리를 통근해야 하고 길은 언제나처럼 막힌다. 교통체증 때문에 시속 10킬로미터로 기어가다시피 한다면, 새 BMW를 타든 낡고 투박한 쉐비를 타든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계속해서 마음을 챙겨 이런 체험을 한다면 우리가 갈망하는 것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고 좀 더 단순하게 사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무엇인가를 포기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어떤 것이 떨어져나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마음을 챙기고 살아갈 때 살아 있는 진리의 빛이 그 방법을 밝혀줄 것이다.
습관 에너지를 평화적으로 다루는 한 가지 방법은 우리 내부에서 다른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키우는 것이다. 즉 부정적인 에너지를 제압하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키우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불성이 있다. 이것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마음챙김이 나의 내면의 붓다다.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 있는 붓다와 늘 소통함으로써 긍정적인 에너지를 키울 수 있다. 습관 에너지가 일어나 우리를 몰아붙인다면 잠시 멈추고 심호흡하라. 평온하고 자애롭고 지혜로운 붓다의 이미지를 떠올려라. 아니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종교나 전통에서 평온과 지혜를 상징하는 누군가를 떠올려도 좋다. 예수, 성인, 아니면 어떤 현명한 치료자의 이미지를 떠올려도 좋다. 우리가 그런 사람이라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해보라. 서두를 필요가 없다. 상상을 통해서 우리도 그런 기분을 경험할 수 있다. 우리 내면의 붓다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우선 앉아서 심호흡을 즐긴다. 마음속으로 ‘들이쉰다’라고 말하면서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라고 말하면서 내쉰다. 그리고 평화로운 붓다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다음과 같은 항목을 생각하면서 심호흡한다. 각 항목을 원하는 만큼 오래 생각해도 무방하다.


• 나는 “내 안의 붓다”와 소통한다.
• 붓다와 소통하면 나는 “평화”를 느낀다.
• 붓다와 소통하면 나는 “평온”을 느낀다.
• 붓다와 소통하면 나는 내 안의 “지혜”를 알게 된다.
• 붓다와 소통하면 나는 내 안의 “자애로움”을 키운다.
• 붓다와 소통하면 나는 “확실해진다.”
• 붓다와 소통하면 나는 “자유롭다.”


각 항목을 생각하면서 몇 차례 심호흡한 뒤, “ ” 안의 단어에 집중한다. 잠시 후 마음이 고요해지면 말없이 가만히 있겠다는 일념으로 그냥 조용히 앉아 있는다. 집중력이 떨어져 산만해지면 전체 문장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 “ ” 안의 단어에 집중하다가 침묵 상태로 들어간다. 이렇게 한 후에 우리 자신을 살펴보라. 우리의 습관 에너지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것이 어떻게 되었든 그대로 두라. 바로 효과가 없다 해도 연습했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을 칭찬해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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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멘 하라의 『일체감이 주는 행복』(도서출판 知와 사랑)

부제: 나를 치유하는 신성한 연결고리

 

 

 

 

 

다른 사람을 바꾸거나 구원하려는 욕구를 버리기

 

이제 우리는 일체감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직면하게 될 여섯 가지 도전에 대해 알아보겠다. 지금까지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이는 당신이 터득해야 할 여러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다음은 당신이 마주치게 될 여섯 가지 도전이다.


• 다른 사람을 바꾸거나 구원하려는 욕구를 버리기
•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그 대가를 기대하지 말기
• 사랑으로 소통하기
• 열린 마음과 열린 가슴으로 듣기
•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솔직해지기
• 자신과 다른 이들을 참을성 있게 대하기

이런 도전들을 받아들이면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낯선 사람과의 간단한 대화를 비롯해 모든 상호작용은 내적 변혁의 기회를 줄 것이다. 또한 자신의 에너지와 행동을 다르게 변화시켜 더 큰 전체를 변화시킬 기회도 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도전들에 부딪힐 때마다 이러한 목적을 이룰 기회를 얻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신성한 연결고리를 경험하면 늘 깨어 있을 수 있다. 이 상태로 당신이 해야 할 일을 실천하라. 신의 시험대를 통과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동정심을 보여야 한다.

이제 여섯 가지 도전들을 자세히 살펴보자.
문제를 보면 달려들어 고치고 싶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당신이 다른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은 상대방에게 상처와 적대감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물론 다른 사람을 돕는 행위는 좋다. 하지만 그에게도 자유의지가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본인이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아는 모든 사람이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존재라고 인식하면서도 개인주의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당신의 자아도 당신이 특정한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능력만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무슨 뜻인가 하면,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나비효과 같은 현상은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는 말이다.
당신의 행동이 유형의 결과로 바로 나타나지 않을 때, 당신의 자아는 그 에너지가 허공으로 사라져버렸다고,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생각한다. 선업을 쌓으면 자신에게, 더 나아가 전체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자아는 깨닫지 못한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아를 중심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을 피하라. 자신이 쌓은 선업의 힘을 믿어보라. 세상에는 애정 어린 당신의 행동에 영감을 받아 선업을 쌓기 위해 노력하는 침묵의 증인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 친구 중 누군가가 당신의 힘과 용
기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 말을 들은 사람이 벅찬 감동을 받아 또 다른 사람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고, 그 이야기에 힘입은 사람은 또 용기를 내어 주위에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지도 모른다. 당신은 이러한 연쇄반응을 전혀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다. 보이지 않는 세계의 작동 원리에 무지한 자아는 이런 선업을 만들어내는 기적 같은 놀라운 효과를 믿지 않으려 한다.
착하고 애정 넘치는 가슴을 지닌 당신은 자신이 가진 정보나 재주를 다른 이들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 어느 순간 사람들의 문제에 대해 당사자보다 더 나은 식견을 가지게 되었다고, 자신의 지혜를 나누어야겠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 자신의 자아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상대방이 원하지도 않은 충고를 해주거나 남의 문제에 자신의 문제인 양 나설 필요는 없다. 당신이 틀릴 수도 있고, 상대방에게 무엇이 최선인지 당신 자신이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아는 그런 가능성에 눈을 감아버리기도 한다. 아마도 상대가 바라는 것은 충고가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변화시킬 용기를 불어넣는 애정 어린 관용일 것이다.
가까운 사람이 고통받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고통은 우리 삶의 한 부분이다. 이 사실을 진정으로 받아들인다면, 다른 이를 바로잡고자하거나 정치 시스템을 뜯어고치고자 하는,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는 자아의 욕망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자신을 변화시키는 과정에 동참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당신의 애정 어린 행동이 전체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당신의 고통이 헛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한 사람, 자기가 저지른 행동의 결과에 괴로워하는 사람을 구하려 하다 보면, 그 사람이 자신의 업을 스스로 푸는 것을 방해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사실 그가 괴로움을 스스로 극복함으로써 내면의 성장을
이룰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한발 물러나야만 하겠지만, 그 전까지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많다. 대신 그저 도움을 주고 격려를 아끼지 말아라. 그리고 그 사람으로 하여금 각자에게는 자신만의 길이 있고 그 길이 인류의 더 큰 여정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하라. 그럼으로써 자신의 자유의지를 표현할 수 있도록 도우라.
일체감을 받아들일 때 당신은 평화와 에너지를 경험할 것이다. 창조의 완전함을 간절하게 믿는 한, 평화와 에너지는 당신의 열정에 균형을 부여해 다른 이들의 행복에 기여할 것이다. 선업이 세상에 미치는 신비로운 영향을 경험하다 보면 다른 사람의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 당신의 열정도 차분해질 것이고, 그 열정은 자신이 도울 수 있는 곳에 도움을 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대체될 것이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반드시 당신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예수님과 그 제자들도 어느 마을에서 사람들에게 지혜를 전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자, 신발을 털고 다른 곳으로 가신 적이 있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억지로 높은 의식에 도달하라고 강요하기보다, 그 에너지를 더 긍정적인 데다 쏟는 편이 낫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카르멘 하라 박사는 '더 뷰The view', '굿모닝 아메리카Good morning America', '투데이 쇼Today show' 그리고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 [뉴욕 포스트The New York Post]를 비롯한 미국의 텔레비전 쇼와 언론 매체에 출연하는 유명 인사이며 심리치료학자다.

할리우드 스타에서부터 저명한 정치인들까지 그녀를 찾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다년간의 경험을 통한 부부 치료나 인지치료 방식이 그녀의 신비한 직관력과 합쳐져 그녀는 세계적인 상담사로 발돋움했다. 또한 세 장이나 음반을 낸 재능 있는 음악가이며, 자신만의 고유한 보석을 디자인하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홈페이지 www.CarmenHarra.com과 페이스북 carmen Harra- (Wholeliness)를 방문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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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왈 vs 예수 가라사대(도서출판 지와 사랑)

 

 

 

 

 

 

원죄와 예수의 구속, 원죄설과 성악설의 공통분모

 

원죄와 예수의 구속

 

기독교는 원죄와 계율이라는 구속의 노선을 따른다. 『구약성경』 「창세기」 3장에는 기독교의 핵심 교의 중 하나인 원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하느님은 세상을 창조하던 엿새째 되던 날 자신의 형상을 따라 흙으로 인류의 시조인 아담을 빚었다. 코에다 생기를 불어넣어 영혼과 생명을 부여하고 아담의 갈비뼈 하나를 취해 이브를 만들어
배필로 삼게 했다. 그 후 에덴동산에서 만물을 관리하며 살도록 허락했으나, 두 사람은 하느님의 바람을 저버리고 죄를 범했다. 그리스도의 구속은 종교상의 신성한 구원을 말한다. 유대교에 ‘메시아’라는 개념이 있었다. 제사장과 선지자 그리고 왕을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고 했는데 이것이 메시아다. 유대인은 나라의 독립을 찾고 다시 회복시
킬 메시아가 오기를 간절히 고대했다. 구속은 그것을 간절히 바라는 자가 처해 있는 고통, 위기, 비극을 내포할 뿐만 아니라 구속하는 자가 용감하게 자신을 버려야 하는 희생도 상징한다. 즉 구속이란 구속을 받는 자의 희망과 기쁨, 그리고 구속하는 자의 희생과 헌신이 드러나는 사건이다.
기독교에서는 하느님의 뜻을 어기는 것도 죄로 규정한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인류의 원죄가 시작되었다. 하느님의 뜻을 어겨 죄를 지었지만 죄를 보상할 방법이 없어 대대손손 전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사람은 평생 원죄를 안고 사는 죄인이 되었다. 하느님은 원죄를 속죄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독생자 예수를 지상에 보냈다. 예수는 죄가 없지만 인류의 죄를 짊어졌고 하느님은 그를 십자가의 구속 제물로
삼아 인류를 대신해서 죽게 했다. 이로써 인류에 대한 구속 계획이 완성되었다. 구속으로 속죄 받은 자는 이제 하느님이 주는 성령을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며, 성령의 도움으로 죄의 권세를 이기고 선을 행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예수를 구세주로 받아들였음을 고백하는 행위인 세례를 받는다. 세례는 죄인이었던 과거의 자신이 죽고 새 생명을 얻었음을 뜻하는 행위이다. 세례를 받은 자는 예수가 죽어 부활한 것처럼 더는 죄에 얽매여 사는 노예가 아니다. 기독교 경전인 『성경』은 구속 계획의 완성 과정을 기록한 구속사이다. 원죄설이 없었다면 예수의 구속은 필요 없었을 것이고 기독교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원죄설은 기독교 신학의 핵심이다.

 

 

원죄설과 성악설의 공통분모

 

원죄설은 성악설과 유사하다. 성악설은 서양에서 줄곧 주류를 차지했던 윤리사상이다. 서양에서 최초로 법치를 주장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만물이 선을 지향하고 만물의 영장인 인간도 선을 지향한다고 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선뿐만 아니라 악을 지향하는 본성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인간은 선을 지향함으로써 많은 것을 이루고 만물의 영장이 되었지만 예와 법을 무시하고 정의를 위반하면 이내 가장 최악의 동물로 전락할 것이다”라고 했다. 인간이 악하기 때문에 법으로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원죄설과 서양에서 보편적으로 유행했던 성악설은 내세의 삶을 강조함으로써 인간의 자연본성을 부정하고 현세에서의 욕망을 무조건 억압하는 성향을 띤다.
인간의 본능적 욕망을 어떻게 적절하게 통제할 것인가는 인류 문명의 공통된 주제이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드id’, ‘자아ego’, ‘초자아superego’의 개념을 제시했다. ‘이드’는 인간의 본능적 에너지인 충동과 욕망으로 구성되며, 욕망에 충실하고 극단적 쾌락을 추구하는 등 쾌감원리를 따른다. ‘초자아’는 후천적으로 받아들인 윤리원칙이다. 본능에 따른 행위를 제약하고 자아를 구속하여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인격형성을 돕는다. 또한 사람의 이성과 양지를 형성하고 고상한 신념과 우아한 행동준칙 등의 사회도덕을 내면화하며 도덕원칙을 따른다. ‘자아’는 일상생활에서의 직접적인 의식 활동으로 ‘이드’와 ‘초자아’ 중간에 있다. 자아는 둘의 관계를 조절하고 ‘초자아’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본능적 충동이 일어나도록 유도하며 현실원칙을 준수한다.
프로이트는 인간에게 욕망이 없을 수 없다고 보았다. 인간은 필요한 것을 충족하고 욕망을 실현하려고 한다. 하지만 사회적 동물로서 규칙과 도덕, 법률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욕망과 도덕을 조절하는 ‘자아’가 강해질수록 정신이 건강해지고 ‘이드’ 혹은 ‘초자아’가 지나치게 강하면 비정상적인 상황이 초래되기 쉽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의 본능이야말로 삶을 촉진하는 동력인 반면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문화
는 오히려 인성을 억압하고 왜곡시켜 삶에서 고통과 초조함을 유발하는 것으로 보았다. 심지어 사람마다 정도는 다르지만 정신병을 앓게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문화적 금기는 인간의 본능을 구속하고 억압하여 응집력과 질서를 형성한다. 원래 욕망은 개별적이고 맹목적이며 격앙된 것이었다. 그러나 사회적인 힘으로 전환되어 창의적인 생산과 노동활동에 참여하게 한다. 이로써 인류는 동물적인 자연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모든 문화는 원시부락에서든, 현대 민족에서든 자신만의 특수한 금기와 경외, 신앙을 기초로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신생아는 원죄를 지니고 태어나며 성장하면서 서서히 그 원죄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아담은 불행했고 모든 사람이 아담 때문에 불행하다. 실제로 원죄설과 해방설은 기독교를 이루는 핵심으로 거대한 진리이다. 나머지는 대부분 이것의 외피나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는 탁월한 식견을 갖춘 철학자로서 기독교 교의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 원죄설과 해방설이라고 주장했다. 원죄설은 기독교의 인성론으로 인식되며 순자
121 3 수신을 강조한 공자, 구원의 손길을 편 예수가 주장한 성악설과 유사하다.
이렇게 볼 때 기독교 교의는 성악설에 기초한다. 사실 인성이 악하다는 것을 가정해야 하느님의 존재와 인간의 구속이 필요해진다. 예수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분명히 말해두는데, 천지가 없어지지 않는 한 율법은 일 점 일 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마태복음」5:17~18).


오늘날 민법정신을 긍정하는 태도는 당연히 율법을 긍정하는 기독교의 정신에서 왔다. 인성이 악하다면 권력자가 본성에 따라 통치할 때 반드시 권력이 남용될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권력을 제약해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또한 인성이 악하기 때문에 하느님과 종교가 없어서는 안 된다. 기독교의 역할이 중요해진 것은 성악설에서 오는 필연적인 결과다. 기독교는 유대교에서 분리해 나올 때 유대교의 말세론을 버리고 구속설을 채택했다. 즉 현실의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해방의식보다는 내세와 영성주의를 강조했다. 기독교는 구속과 원죄를 가장 기본적인 하나의 변증법으로 구성하여 그리스도가 부활한 것은 아담이 지은 원죄를 구속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리스도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 죽었다가 부활한 첫 사람이 되셨습니다. 죽음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온 것처럼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왔습니다. 아담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살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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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불편한 진실

 

19대 국회를 개원하면서 여야가 합의한 사항에는 국민의 관심을 끄는 세 가지가 포함되었다.

민간인 불법사찰로 몇몇 사람이 구속되었지만, 그 몸통이 밝혀지지 않아 국정조사를 하자는 것이 하나다.

다음은 이명박 대통령의 장남 명의로 내곡동의 사저 부지를 편법으로 구입한 데 대한 특검이다.

그리고 문방위 차원의 언론청문회가 세 번째다.

이 세 가지는 여야가 합의한 사항들이므로 국민은 19대 국회가 개원하면 그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헌데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난데없이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 매입문제도 특검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누가 들어도 대통령의 아들 편법 행위를 조사하지 않겠다는 말로 들린다.

문제가 된 사건을 조사하자는데 문제가 된 적이 없는 사건들을 함께 조사하자는 건 여야의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겠다는 졸렬한 방법이다.

언론의 보도로 말하면 “전형적인 물타기 전략”이다.

새누리당의 “전형적인 물타기 전략”은 민간인 사찰 문제에 전임 정부들도 포함해야 한다고 우기는 것이다.

죄가 밝혀진 현행범을 조사하자는데 죄가 드러나지도 않은 과거의 사람들을 함께 조사하자는 것이다.

당연히 “그러면 차라리 박정희 시대의 민간인 사찰 문제부터 조사하자”는 비아냥이 나오는 대목이다.

언론청문회는 ‘민주당 최고위원회 도청 의혹사건’의 당사자인 한선교 새누리당이 문방위원장에 내정되면서 실행이 어려워지게 되었다.

이한구 원내대표는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자 대표직을 사임했다.

헌데 사임을 번복했다.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 진실이란 불편할 뿐이다.

자신의 사임 결정을 번복한 것은 매우 실망스럽다.

여야가 합의한 사항들을 이행하지 않으려고 “전형적인 물타기 전략”을 펴는 것은 매우 치졸한 행태다.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 진실이란 불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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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습관 에너지를 다루는 도구

 

 

마약은 물론 알코올 중독만큼 습관 에너지와의 싸움을 잘 드러내는 건 없다. 이런 습관들은 갈증을 해소하려고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은 행동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습관들 때문에 우리는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더 원하게 된다.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처럼 심각하지 않은 습관 에너지를 다룬다고 해도 중독을 치료할 때 사용되는 몇 가지 방법을 배우면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것은 마음을 챙겨 이런 문제들을 살펴보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중단해야 하는 이유 검토하기

해로운 행동을 중단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겠지만, 습관 에너지의 공격을 받으면 우리는 그 모든 이유를 망각한다. 마음 한 방에 나쁜 습관을 고치려는 의도가, 완전히 분리된 또 다른 방에서는 이를 계속하려는 습관 에너지가 있다.
두 개의 방을 합치는 간단하고 직접적인 방법이 있다. 고치고 싶은 습관을 생각할 때, 앉아서 심호흡하며 바꾸려고 하는 모든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고 목록을 만들어라. 딱 한 가지만 다짐하라. 습관 에너지가 공격해오면, 시키는 대로 그 행동을 하기 전에 그 목록을 주의 깊게 읽어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두 방을 연결하는 선이 개설된다.
예를 들어 담배를 끊고 싶다면 폐암과 같이 분명한 건강상의 문제와 그 때문에 잇따르는 모든 결과(예를 들어 오래 살지 못하면 자녀나 손자가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없다)를 목록으로 만든다. 객관적으로는 중요하지 않아 보이지만, 우리에게는 중요한 이유도 목록에 포함시킨다. 어떤 사람은 폐암 때문이 아니라 치아와 손가락에 생기는 니코틴의 얼룩이 싫어서 담배를 끊었다. 외모에 대한 집착 때문일지언정 효과만 있다면 그렇게 하라. 그 밖의 모든 수행과 마찬가지로 이것 또한 건성으로 하지 말고 집중해서 하라. 수행에 집중하기 위해서 심호흡하고 목록의 각 항목을 깊이 생각하라. 충동에 빠질 때 생기는 원하지 않는 결과를 마음속에 명확하게 그려보라. 충동을 거부할 때 생기는 바람직한 결과를 생각해 보라. 수시로 목록을 확인하고 또 항목을 추가하라. 가능한 한 많은 항목들을 삽입하라. 속히 끝내버리고 싶은 숙제처럼 수행해서는 안 된다.

 

미루기

어떤 갈망이 생기면, 그냥 나중으로 미루어라. 저녁에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봐서 걱정인데, 아예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 대신에 그 시간을 줄이고 싶다면 미루는 방법이 도움이 될 수 있다. 퇴근해서 집에 오자마자 텔레비전을 보는 대신, 8시나 9시까지 기다려보라. 이렇게 하는 것이 완전히 끊도록 우리 자신에게 강요하는 것보다는 훨씬 쉽다. 그리고 바람직하지 못한 욕구를 부추기기만 하는 박탈감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건전하지 못한 행동을 하려는 욕구가 생겨날 때는 잠깐 멈추고 우리의 생각과 기분을 주의 깊게 살펴라. 습관 에너지는 우리가 경험하는 그 밖의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몸과 의식 속에 생기고, 한동안 머물다가, 다시 사라진다. 습관 에너지가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시간은 불과 15분에서 20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어려운 시기는 매우 일시적이며 매우 무상하다는 점을 기억하라.
습관 에너지와 싸우는 대신, 마음을 챙기고 그것에 집중해서 몸과 마음이 정확하게 무엇을 체험하는지 알아보면 생각, 감정, 신체 감관이 변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습관 에너지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틀림없이 이렇게 해볼 수 있다. 습관 에너지는 저절로 생겨났다 사라진다. 습관 에너지를 받아들이면 그것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만약 두려워서 체험조차 꺼린다면 그 두려움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반대로 습관 에너지를 받아들인 채로 있다면, 거기에 그리 두려울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욕구가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필요는 없다. 현관에 앉아서 쉬려고 하는데 잡초를 뽑아야 한다는 욕구를 느끼게 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습관 에너지가 생겼다 사라지는 걸 의식하고 계속해서 쉬겠다고 결정하면 된다.

 

잠시 중단하기

알코올 중독을 치료할 때, 치료사는 때때로 평생 술을 끊을 생각이 없는 고객에게 일정 기간만 술을 멀리하고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를 체험해보라고 권한다. 중독 치료에서는 이런 방법을 맨 정신 샘플추출이라고 한다. 행동을 변화시키려는 사람 역시 습관을 잠시 중단하는 방법으로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한 번 변하면 돌이킬 수 없다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가운데 전혀 다른 자신을 체험해볼 수 있다.
이런 전략을 모든 습관에 적용할 수 있다. 저녁에 간식을 먹는 습관을 고치려면, 몇 주 정도의 특정 기간을 정해 그동안 간식을 끊으면 어떨지 체험해보라. 말할 때 심하게 빈정대거나 비웃는 버릇을 고치려면 짧은 기간을 정하고 그동안만이라도 참아보라. 이런 방법으로 습관의 사슬을 끊고 바라던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

 

대안 찾기

나쁜 습관을 버리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우리가 나쁜 습관을 완전히 끊으려면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 즉 뭔가 다른 것을 해야만 한다. 우리가 술을 끊고 싶다면 그 대신 좋아할 만한 건강 음료를 찾아야 한다. 텔레비전을 그만 보고 싶다면 대신 저녁 시간에 할 재미난 일을 찾아야 한다. 대안을 찾게 되면 박탈감이 덜해진다. 박탈감을 느끼면 원하는 대로 행동을 변화시키는 데 성공할 수 없다. 대체로 대안 찾기는 지금과는 다른 자신을 상상하는 능력과 관련 있다. 우리가 텔레비전 없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저녁 시간을 보내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술을 마시지 않고 혹은 우리가 고치려는 습관을 따르지 않고 즐겁게 저녁 시간을 보내는 일을 상상할 수 있는가? 과도하게 무엇인가를 ‘하는’ 습관 에너지를 고치는 상상을 할 수 있는가? 박탈감을 느끼지 않고 이런 변화를 이루는 상상을 할 수 있다면 성공할 확률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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