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왈 vs 예수 가라사대(도서출판 지와 사랑)

 

 

 

 

 

 

원죄와 예수의 구속, 원죄설과 성악설의 공통분모

 

원죄와 예수의 구속

 

기독교는 원죄와 계율이라는 구속의 노선을 따른다. 『구약성경』 「창세기」 3장에는 기독교의 핵심 교의 중 하나인 원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하느님은 세상을 창조하던 엿새째 되던 날 자신의 형상을 따라 흙으로 인류의 시조인 아담을 빚었다. 코에다 생기를 불어넣어 영혼과 생명을 부여하고 아담의 갈비뼈 하나를 취해 이브를 만들어
배필로 삼게 했다. 그 후 에덴동산에서 만물을 관리하며 살도록 허락했으나, 두 사람은 하느님의 바람을 저버리고 죄를 범했다. 그리스도의 구속은 종교상의 신성한 구원을 말한다. 유대교에 ‘메시아’라는 개념이 있었다. 제사장과 선지자 그리고 왕을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고 했는데 이것이 메시아다. 유대인은 나라의 독립을 찾고 다시 회복시
킬 메시아가 오기를 간절히 고대했다. 구속은 그것을 간절히 바라는 자가 처해 있는 고통, 위기, 비극을 내포할 뿐만 아니라 구속하는 자가 용감하게 자신을 버려야 하는 희생도 상징한다. 즉 구속이란 구속을 받는 자의 희망과 기쁨, 그리고 구속하는 자의 희생과 헌신이 드러나는 사건이다.
기독교에서는 하느님의 뜻을 어기는 것도 죄로 규정한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인류의 원죄가 시작되었다. 하느님의 뜻을 어겨 죄를 지었지만 죄를 보상할 방법이 없어 대대손손 전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사람은 평생 원죄를 안고 사는 죄인이 되었다. 하느님은 원죄를 속죄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독생자 예수를 지상에 보냈다. 예수는 죄가 없지만 인류의 죄를 짊어졌고 하느님은 그를 십자가의 구속 제물로
삼아 인류를 대신해서 죽게 했다. 이로써 인류에 대한 구속 계획이 완성되었다. 구속으로 속죄 받은 자는 이제 하느님이 주는 성령을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며, 성령의 도움으로 죄의 권세를 이기고 선을 행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예수를 구세주로 받아들였음을 고백하는 행위인 세례를 받는다. 세례는 죄인이었던 과거의 자신이 죽고 새 생명을 얻었음을 뜻하는 행위이다. 세례를 받은 자는 예수가 죽어 부활한 것처럼 더는 죄에 얽매여 사는 노예가 아니다. 기독교 경전인 『성경』은 구속 계획의 완성 과정을 기록한 구속사이다. 원죄설이 없었다면 예수의 구속은 필요 없었을 것이고 기독교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원죄설은 기독교 신학의 핵심이다.

 

 

원죄설과 성악설의 공통분모

 

원죄설은 성악설과 유사하다. 성악설은 서양에서 줄곧 주류를 차지했던 윤리사상이다. 서양에서 최초로 법치를 주장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만물이 선을 지향하고 만물의 영장인 인간도 선을 지향한다고 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선뿐만 아니라 악을 지향하는 본성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인간은 선을 지향함으로써 많은 것을 이루고 만물의 영장이 되었지만 예와 법을 무시하고 정의를 위반하면 이내 가장 최악의 동물로 전락할 것이다”라고 했다. 인간이 악하기 때문에 법으로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원죄설과 서양에서 보편적으로 유행했던 성악설은 내세의 삶을 강조함으로써 인간의 자연본성을 부정하고 현세에서의 욕망을 무조건 억압하는 성향을 띤다.
인간의 본능적 욕망을 어떻게 적절하게 통제할 것인가는 인류 문명의 공통된 주제이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드id’, ‘자아ego’, ‘초자아superego’의 개념을 제시했다. ‘이드’는 인간의 본능적 에너지인 충동과 욕망으로 구성되며, 욕망에 충실하고 극단적 쾌락을 추구하는 등 쾌감원리를 따른다. ‘초자아’는 후천적으로 받아들인 윤리원칙이다. 본능에 따른 행위를 제약하고 자아를 구속하여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인격형성을 돕는다. 또한 사람의 이성과 양지를 형성하고 고상한 신념과 우아한 행동준칙 등의 사회도덕을 내면화하며 도덕원칙을 따른다. ‘자아’는 일상생활에서의 직접적인 의식 활동으로 ‘이드’와 ‘초자아’ 중간에 있다. 자아는 둘의 관계를 조절하고 ‘초자아’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본능적 충동이 일어나도록 유도하며 현실원칙을 준수한다.
프로이트는 인간에게 욕망이 없을 수 없다고 보았다. 인간은 필요한 것을 충족하고 욕망을 실현하려고 한다. 하지만 사회적 동물로서 규칙과 도덕, 법률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욕망과 도덕을 조절하는 ‘자아’가 강해질수록 정신이 건강해지고 ‘이드’ 혹은 ‘초자아’가 지나치게 강하면 비정상적인 상황이 초래되기 쉽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의 본능이야말로 삶을 촉진하는 동력인 반면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문화
는 오히려 인성을 억압하고 왜곡시켜 삶에서 고통과 초조함을 유발하는 것으로 보았다. 심지어 사람마다 정도는 다르지만 정신병을 앓게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문화적 금기는 인간의 본능을 구속하고 억압하여 응집력과 질서를 형성한다. 원래 욕망은 개별적이고 맹목적이며 격앙된 것이었다. 그러나 사회적인 힘으로 전환되어 창의적인 생산과 노동활동에 참여하게 한다. 이로써 인류는 동물적인 자연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모든 문화는 원시부락에서든, 현대 민족에서든 자신만의 특수한 금기와 경외, 신앙을 기초로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신생아는 원죄를 지니고 태어나며 성장하면서 서서히 그 원죄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아담은 불행했고 모든 사람이 아담 때문에 불행하다. 실제로 원죄설과 해방설은 기독교를 이루는 핵심으로 거대한 진리이다. 나머지는 대부분 이것의 외피나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는 탁월한 식견을 갖춘 철학자로서 기독교 교의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 원죄설과 해방설이라고 주장했다. 원죄설은 기독교의 인성론으로 인식되며 순자
121 3 수신을 강조한 공자, 구원의 손길을 편 예수가 주장한 성악설과 유사하다.
이렇게 볼 때 기독교 교의는 성악설에 기초한다. 사실 인성이 악하다는 것을 가정해야 하느님의 존재와 인간의 구속이 필요해진다. 예수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분명히 말해두는데, 천지가 없어지지 않는 한 율법은 일 점 일 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마태복음」5:17~18).


오늘날 민법정신을 긍정하는 태도는 당연히 율법을 긍정하는 기독교의 정신에서 왔다. 인성이 악하다면 권력자가 본성에 따라 통치할 때 반드시 권력이 남용될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권력을 제약해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또한 인성이 악하기 때문에 하느님과 종교가 없어서는 안 된다. 기독교의 역할이 중요해진 것은 성악설에서 오는 필연적인 결과다. 기독교는 유대교에서 분리해 나올 때 유대교의 말세론을 버리고 구속설을 채택했다. 즉 현실의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해방의식보다는 내세와 영성주의를 강조했다. 기독교는 구속과 원죄를 가장 기본적인 하나의 변증법으로 구성하여 그리스도가 부활한 것은 아담이 지은 원죄를 구속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리스도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 죽었다가 부활한 첫 사람이 되셨습니다. 죽음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온 것처럼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왔습니다. 아담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살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20~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