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음식을 먹어야 하나요?

 

 

<동의보감>의 잡병편雜病篇 내상內傷문에 다음의 내용이 있습니다.

 

소화를 담당하는 비장은 음악을 좋아한다. 음악을 들으면서 음식을 권하라. 비장은 음악을 좋아하므로 음악을 들으며 즐겁게 식사하면 소화를 잘 시킬 수 있다. 비위脾胃의 병을 고칠 때에는 마음을 편안하고 즐겁게 하라.

 

비장은 지라를 말하고 비위脾胃는 지라와 위를 말합니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원인이 됩니다. 유학에서 말하는 칠정七情은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이지만, 한의학에서 말하는 칠정七情은 기쁨, 분노, 우울, 고뇌, 슬픔, 놀람, 공포인데 기쁨을 제외하고는 모두 부정적인 감정들입니다. 칠정에 시달리게 되면 기氣가 잘 운행되지 못해 쌓이고 막히게 되는 울증鬱證의 하나인 기울氣鬱의 증세가 나타나게 됩니다. 기울이란 정신적 스트레스情志不舒로 인한 기혈이 한 곳에 뭉치는 기기울결氣機鬱結을 가리키는 병증으로, 흉고胸苦, 흉통胸痛, 이노易怒, 식욕불진食欲不振, 월경불순月經不順, 맥침삽脈沈澁, 흉협혹비혹통胸脇或痺或痛, 부종창만浮腫脹滿 등의 다양한 증상을 말합니다. 한의학에서는 기氣가 처음 병들었을 때에는 증세가 미미하더라도 칠정으로 인해 체액이 잘 운행되지 못하고 맑은 기와 탁한 기가 서로 섞이게 되면 기가 막히게 되어 더부룩한 증세가 나타나거나 아픈 증세가 생긴다고 합니다.

음식을 받는 위장이 잘 움직이고 연동해야 소화가 잘 되는데 화나고 짜증나고 슬픈 감정이 흘러야 할 것을 막아버리고 움직여야 할 것을 멈추게 합니다. 그래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가운데 음식을 먹으면 위장의 연동도 느리고 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싫어하는 사람과 함께 식사를 하면 산해진미를 먹더라도 위장이 꽉 막히는 증세가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식사가 여러 차례 반복되면 만성 체기의 상태가 됩니다. 위장이 병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동의보감>에서는 비위의 병을 앓던 사람이 기쁜 것을 보거나 원하던 일을 이루면 정신이 맑아져 병이 사라진 것처럼 느끼게 된다고 말합니다. 기쁜 일, 원하던 일로 인해 원기가 잘 펴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소화를 담당하는 비장이 음악을 좋아하므로 음악을 들으면서 기분 좋게 음식을 먹으라고 <동의보감>은 말합니다. 먹을 대에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식사할 때에 건드리면 화가 나고 짜증이 납니다. 그렇게 되면 체합니다. 그래서 개도 먹을 때에는 안 건드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음악을 듣거나 유쾌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식사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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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괘 중에서 마흔여덟 번째가 정井입니다. 본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개읍井改邑 불개정不改井 무상무득无喪无得 왕래往來井井 흘지汔至 역미율정亦未繘井 리기병羸其甁 흉凶

정니불식井泥不食 구정舊井 무금无禽

정곡井谷 사부射鮒 옹폐루甕敝漏

정설불식井渫不食 위아심측爲我心惻 가용급可用汲 왕명王明 병수기복並受其福

정추井甃 무구无咎

정井 렬한천식冽寒泉食

정수물멱井收勿冪 유부有孚 원길元吉

 

첫 번째 효사爻辭는 정개읍井改邑 불개정不改井 무상무득无喪无得 왕래往來井井 흘지汔至 역미율정亦未繘井 리기병羸其甁 흉凶입니다. 정개읍井改邑은 우물井은 마을邑을 열고 고친다改는 뜻입니다. 그런데 마을을 고치면서도 우물은 고치지 않는다不改井고 했습니다. 핵심을 놓친 채 겉만 번드르르하게 일을 벌이는 모양새입니다. 그러니 잃을 것도 없지만 얻을 것도 없습니다无喪无得. 왕래往來井井 이하의 구절은 이런 엉터리 같은 마을의 백성, 이런 어처구니없는 지도자 밑에서 살아야 하는 백성의 어려움을 표현한 것입니다. 왕래往來井井은 사람들이 이 우물에서 저 우물로, 이 지도자에게서 저 지도자에게로, 마실 물을 찾아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고치지 않았으니 우물의 물은 거의 말라汔至(거의 흘) 있고, 우물의 두레박줄繘井(두레박줄 율) 역시亦 물이 있는 바닥까지 미치지 못하며未, 결국 두레박마저 걸리고羸其甁(여윌 리, 병병) 말아 흉합니다凶.

 

두 번째 효사爻辭는 정니불식井泥不食 구정舊井 무금无禽입니다. 정니불식井泥不食(진흙 니)이라면 구정舊井(옛 구)이라도 금禽이 없다无는 말이므로 더러워져泥 먹을 수 없게不食된 우물이라면 그것이 설혹 선대로부터 내려온 유서 깊고 큰 우물舊井이라고 해도 새 한 마리 날아들지 않는다无禽는 뜻입니다.

 

세 번째 효사爻辭는 정곡井谷 사부射鮒 옹폐루甕敝漏입니다. 골짜기의 우물井谷을 두꺼비鮒(붕어 부)가 독을 쏘며射 지키고 있으니, 두레박甕(독 옹)이 깨어져敝(해질 폐) 물이 샌다漏(샐 루)는 말입니다. 깊은 산속에 우물이 있다는 말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없는 우물이라는 말이며, 이는 군자의 마음이 민심을 떠나 폐쇄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게다가 그 우물은 두꺼비가 독을 쏘아 대며 지키고 있습니다. 독 뿜는 두꺼비는 우물의 주인이자 그 우물의 관리책임자인 군자 그 자신입니다. 군자가 이렇게 되었다는 것은 당연히 만인에게 개방되어야 할 것을 개방하지 않고, 사리사욕私利私慾에 눈이 멀어 우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네 번째 효사爻辭는 정설불식井渫不食 위아심측爲我心惻 가용급可用汲 왕명王明 병수기복並受其福입니다. 이 구절의 앞부분은 우물을 청소하지만井渫 먹을 수 없으니不食 나의 마음我心이 측은하다惻는 말입니다. 군자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우물을 고치고 청소하지만, 그 물을 백성에게 먹일 수 없어서 스스로 아프고 안타까워하는 장면입니다. 이 군자의 우물은 아직 백성에게 먹일 수 있는 우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말라 버리거나 썩어버린 우물은 아닙니다. 가용급可用汲은 그 우물이 아직은 물을 길을 수 있는, 가히可 물 공급汲에 쓸用 수 있는 우물이란 말입니다. 이런 우물을 찾아 새롭게 고치고 청소할 수 있는 사람은 왕뿐입니다. 그래서 왕이 밝다면王明, 더불어 그 복을 받으리라並受其福고 했습니다. 더불어 복을 받는다고 한 것은 이것이 왕과 군자 자신에게 똑같이 이로운 일이라는 말이고, 나아가 목마른 백성에게 또한 복된 일이라는 뜻입니다.

 

다섯 번째 효사爻辭는 정추井甃 무구无咎입니다. 추甃(벽돌담 추)를 추錘로 간주해서, 정추井甃를 우물 안으로 추를 내려 그 수량이나 먹을 수 있는지의 여부를 판별하는 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게 우물의 사용 가능 여부를 미리 짐작해보는 일, 자신의 수련 정도를 측절해보는 일이 바로 정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해해도 그 대의는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여섯 번째 효사爻辭는 정井 렬한천식冽寒泉食입니다. 이는 좋은 우물의 조건, 즉 군자가 갖추어야 할 덕성을 열거한 구절입니다. 렬冽(찰 렬)과 한寒은 모두 차고 맑고 깨끗하다는 말이며, 이는 무엇에도 현혹되지 않는 냉철한 판단력과 사사로운 기운에 흔들리지 않는 군자의 청렴한 자세를 상징합니다. 천泉(샘 천)은 끊없이 샘솟아 아래로 흐른다는 말이므로 이는 지치지 않는 열정과 애민愛民의 정신을 상징합니다. 식食은 만인이 먹을 수 있다는 말이므로 홍익弘益의 정신과 같습니다.

 

일곱 번째 효사爻辭는 정수물멱井收勿冪 유부有孚 원길元吉입니다. 우물井을 거두되收 덮개를 씌우지冪(덮을 멱) 않으니勿 믿음이 있고有孚 근원적으로 길하다元吉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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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 번째 성스러운 진리(고성제苦聖諦): 둑카 이해하기

 

 

고통은 불교 용어로 둑카dukkha(범인의 고뇌, 번뇌)라고 한다. 둑카는 ‘아픔’, ‘슬픔’, ‘고통’ 혹은 ‘불행’으로 번역되며, ‘불완전함’을 의미한다. 명상을 통해 얻는 매우 고결한 정신도 소중하지만 궁극적인 자유를 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고통으로 여겨진다. 명상의 최고 경지에 오른 수행자들도 수행을 멈추는 순간 둑카가 다시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둑카는 ‘공(空, śūnyatā)’을 의미한다. 공은 우주와 분리되어 본래부터 존재하는 자아가 없음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좀 더 폭넓게 만물이 기본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함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매우 포괄적인 용어다. 불치병을 선고받는 일뿐 아니라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하는 일을 의미하기도 한다. 커다란 문제와 더불어 삶의 작은 불편도 의미한다. 너무 많은 의미들을 내포하기 때문에 이 단어를 번역하기보다는 ‘둑카’ 그대로 사용하는 편이 때로는 가장 바람직하다.
둑카의 통찰이 매우 중요했으므로 붓다는 둑카를 가르침의 초석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는 첫 번째 설법에서 자신이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로 불렀던 사성제四聖諦를 가르쳤는데 그중 첫째가 둑카였다.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전한 후, 인생의 마지막 무렵에 붓다는 자신이 항상 가르쳤던 것이 둑카였으며 그것을 끝내는 방법이었다고 강조했다. 그 정도로 붓다는 둑카를 중시했다.
인간의 삶은 고통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제시하는 둑카는 고귀하고 성스러운 진리다. 둑카는 불도의 토대가 된다. 둑카의 진리를 완전히 이해하면 완전한 깨우침을 얻는 셈이다. 둑카를 이해할 때 불행은 끝나고 행복과 평화만이 남는다.
첫 설법에서 붓다가 설명한 둑카는 다음과 같다.
태어남이 둑카이고, 늙음이 둑카이며, 병듦이 둑카이고, 죽음이 둑카이며, 슬픔과 한탄, 아픔, 비탄과 절망이 둑카이고, 기분 나쁜 것과 관련되는 것이 둑카이며, 기분 좋은 것과 분리되는 것이 둑카이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함이 둑카다. 요컨대 집착의 오온이 둑카이다. (초전법륜경初轉法輪經, Dhammacakkappavattana-sutta, in Rahula 1974, 93) 목록에 포함된 항목 대부분을 고통이라고 인식하겠지만, 우리에게 태어남은 언뜻 고통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불교의 관점에서 보면 태어남은 두 가지 의미에서 고통이다. 무엇보다도 안전한 자궁에서 떨어져나와 세상의 고통과 분리를 느끼며 태어나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어보라! 새로운 생명의 탄생에 기쁠지 모르지만, 귀를 기울이면 우리는 둑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러나 태어나는 과정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태어남은 살면서 겪는 많은 어려움, 짓밟히는 꿈, 고통스러운 관계 그리고 병과 죽음을 비롯해 붓다가 언급한 그 밖의 모든 것의 시작이다. 바로 이것이 태어남을 둑카로 여기는 두 번째 이유다. 모든 고통의 시작이란 의미에서 태어남이 둑카인 것이다.
붓다가 언급한 목록의 마지막 항목 역시 설명이 필요하다. 그는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의 오온五蘊도 둑카라고 말한다. 오온 그 자체는 둑카가 아니지만 ‘나’ 또는 ‘나의 것’, 즉 자아로서 오온에 집착하면 둑카가 된다. 바로 이러한 집착 때문에 우리의 정신적, 육체적 연속체는 우리가 병들고病苦, 늙고老苦, 죽어가는 과정死苦에서 불쾌한 감각과 생각을 경험하며 큰 슬픔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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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지와 사랑의 신간 <법왕 달라이 라마> 중에서

 

 

 

그들에게 승리를 안겨주기를 기원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질시해
학대하고, 비방하고, 비웃을 때
내가 이기지 않고
그들에게 승리를 안겨주기를 기원합니다.

 

이 시의 핵심은 다른 사람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혹은 부당하게 여러분을 화나게 만들 때 부정적 방식으로 반응하지 말고 이타심을 행하는 진정한 수행자로서 관용을 가지고 그들을 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대우에 평정심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다음 시에서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관대하게 대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들을 영적 스승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내가 도와주었거나
기대를 많이 했던 누군가가
나의 마음을 심하게 아프게 해도
그를 귀중한 스승으로 여기기를 기원합니다.

 

샨티데바의 『보살행 안내』에서는 이런 태도를 키우는 방법과 우리에게 해를 가하는 사람들을 영적 공부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방식을 폭넓게 다룹니다. 찬드라키르티의 『중도 입문Chandrakirti’s Entry to the Middle Way』의 세 번째 장에서도 인내심과 관용을 키우는 감동적이고 효과적인 가르침을 볼 수 있습니다.

 

요컨대 복덕과 기쁨을
직접적이고 직접적이지 않은 나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바치고
어머니들의 모든 아픔과 고통을
내가 받기를 기원합니다.

 

이 시는 ‘주고받기 수행’(수행법tong len)으로 알려진 특정한 불교 수행법을 의미합니다. 이는 주고받는 모습을 상상함으로써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평등하게 생각하여 서로를 바꾸는 수행입니다.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을 바꾸는 것’을 단순히 내가 다른 사람이 되고 다른 사람이 내가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어쨌든 이러한 상황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의미하는 바는 서로가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른바 ‘자아’라는 것을 우리 존재의 귀중한 핵심으로 여겨 다른 사람의 행복을 무시하면서까지 소중히 받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조적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는 무관심한 경우가 많습니다. 기껏해야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얼마간 관심을 갖지만 그저 느낌이나 감정의 단계에 머무릅니다. 대체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무관심하고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수행의 핵심은 이 태도를 바꿔 우리 자신에 대한 강한 몰두와 집착을 줄이고,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의미 있고 중요하게 생각하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피해와 고통을 받아야 한다고 제안하는 이런 종류의 접근법을 대할 때는 이를 신중하게 고려하고 적절한 맥락 안에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제로 이 말은 영적인 길을 따르고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관해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어떠한 고난과 고통이 따르더라도 기꺼이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신을 미워하거나 학대하거나 스스로에게 자학적인 고통을 가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런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또 하나의 예는 “필요하다면 가장 깊은 지옥에서도 몇 겁을 지나고 수많은 생을 보낼 수 있는 용기를 지니게 되기를 기원합니다”라는 티베트의 유명한 시구입니다. 이 말의 핵심은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요구되는 용기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에 헌신할 의지가 있다면, 이 정도의 수준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문구들을 정확히 이해하는 일이 매우 중요한 까닭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할 경우, 자아가 자기본위의 화신이라면 스스로 망각 속으로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문입니다. 근본적으로 영적인 길을 따르려는 소망 뒤에는 최고의 행복을 얻으려는 동기가 자리합니다. 따라서 자신의 행복을 원하듯 다른 사람들의 행복 또한 원하는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다른 사람들에
대한 진정한 연민을 키우려는 사람은 연민을 키울 만한 기반이 있어야 하는데, 그 기반은 자신의 감정과 교류하고 자신의 행복을 돌보는 능력입니다. 그럴 능력이 없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관심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을 돌보려면 먼저 자신을 돌봐야만 합니다.
‘주고받기 수행’은 애정 어린 친절과 연민 수행의 요약입니다. ‘주는’ 수행이 애정 어린 친절 수행을 강조하는 반면 ‘받는’ 수행은 연민의 수행을 강조합니다. 샨티데바는 자신이 쓴 『보살행 안내』에서 이 수행에 대한 흥미로운 방식을 제안했습니다. 그것은 시각화(상상법)를 통해 자기본위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것에 대응하는 방식을 습득
하는 것입니다. 한쪽에서는 자신의 일상적인 자아, 즉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전혀 영향받지 않는 자아와 자기본위의 화신을 시각화합니다. 이 자아는 매우 오만하게도 다른 사람들을 부당하게 이용할 만큼 자신의 행복만을 신경 쓰는 자아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아무런 보호막과 피신처 없이 고통에 빠진 사람들의 무리를 시각화합니다. 원한다면 구체적인 사람들에게 집중해도 좋습니다. 예를 들어 잘 아는 사람 중에 고통에 빠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선택해서 주고받기 수행의 전 과정을 그를 대상으로 하면 됩니다. 세 번째로 자신을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제삼자 관찰자로 설정해서 누구의 이익이 더 중요한지 평가합니다. 자신을 중립적인 관찰자의 입장으로 분리시키면 자기본위의 한계를 알고 다른 지각 있는 중생들의 행복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훨씬 더 공정하고 분별 있는 일이라는 걸 알기 쉽습니다.
이러한 시각화를 통해서 서서히 다른 사람들과의 친밀감을 느끼고 그들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주고받기 수행을 실질적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주고받기 수행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종종 또 다른 시각화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먼저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주의를 집중한 뒤 그들의 고통이 견디기 힘들다고 느낄 만큼 그들을 향한 연민을 키우고 강화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실질적으로 그들을 도울 방법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따라서 더욱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연민 어린 동기를 가지고 그들의 고통과 그 고통의 원인,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 등을 자신이 떠맡는다고 상상합니다. 그들의 고통과 부정적인 마음이 검은 연기라고 상상하며 이 연기가 자신에게 흡수되어 사라진다고 상상합니다.
이 수행을 할 때는 자신의 긍정적인 면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한다는 상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했던 선행, 자신에 내재한 긍정적 잠재력, 또한 자신이 얻은 영적 지식이나 통찰력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른 지각 있는 중생들 역시 자신의 장점을 누리도록 이것들을 그들에게 보내십시오. 여러분의 자질을 밝은 빛이나 희끄무레한 빛줄기라고 상상하고 다른 사람들을 통과해 그들에게 흡수된다고 생각하세요. 지금까지 주
고받기 수행을 설명했습니다.
물론 이런 종류의 수행법은 상상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물리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공감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또한 자기본위로 생각하는 습관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이 수행의 장점입니다.
지금까지 다른 지각 있는 중생들을 돕겠다는 이타심을 키우는 마음 수련법을 소개했습니다. 완전한 깨달음을 얻겠다는 염원과 함께 이 수련을 한다면 보리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보리심이란 다른 모든 지각 있는 중생들을 위해 완전한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이타적 염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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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물이나 음식이 노화에 나쁜 영향을 끼칠까요?

 

 

<동의보감>의 잡병편雜病篇 내상內傷문에 다음의 내용이 있습니다.

 

차가운 기운으로 인한 독기가 가장 심하다. 바람 불고, 덥고, 습하고, 건조하고, 뜨거운 기운을 풍한서습風寒暑濕 조화라고 하여 육기六氣라 부른다. 이 여섯 가지 기운이 심해지면 모두 병을 일으킬 수 있는데, 유독 차가운 기운으로 인한 독기의 해악이 가장 심하다.

 

풍한서습風寒暑濕이란 바람과 추위와 더위와 습기를 말합니다. 따뜻한 물을 마시는 것과 차가운 물을 마시는 것은 체질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노화의 연령에서는 차가운 물은 몸에 좋지 않습니다. 차가운 물이나 음식을 먹게 되면 이를 가장 먼저 받아들이는 장부가 위胃입니다. 차가운 물이나 음식이 위의 맑고 조화로운 기운을 상하게 합니다. 한의학에서 노화란 몸이 식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노화란 기혈氣血 혹은 혈기가 쇠약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나이가 들면 수水의 기운도 화火의 기운도 모두 이지러집니다. 뱃속이 늘 따뜻한 사람은 질병이 발생하지 않는데, 온기로 인해 뱃속의 혈기가 왕성해지기 때문입니다. 바람과 추위와 더위와 습기, 건조하고, 뜨거운 여섯 가지 기운이 심해지면 병이 발발할 수 있는데, <동의보감>은 유독 차가운 기운으로 인한 독기가 가장 심하다고 말합니다.

노화를 방지하는 좋은 방법은 항상 몸을 조금씩이라도 움직이는 것입니다. <동의보감>에는 흐르는 물은 썩지 않고 문짝을 여닫을 때 문짝이 달려 있게 하는 물건인 문지도리hinges는 벌레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물과 문지도리가 항상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배불리 먹은 후 바로 앉거나 누워버리면 경략이 통하지 않고 혈맥이 쌓이며 막히게 됩니다.

흐를 통通자와 아플 통痛자는 발음은 같지만, 그 뜻은 전혀 다릅니다. <동의보감>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통痛한 것은 불통不通하기 때문이고 불통하게 되면 통痛하게 된다. 그러니 통通하면 불통不痛하느리라.

병은 혈기가 흐르지 않기 때문이고 흐르지 않으면 병이 발발하니, 혈기를 흐르게 하면 병이 생기지 않고 오래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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