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출판 지와 사랑의 신간 <법왕 달라이 라마> 중에서

 

 

 

그들에게 승리를 안겨주기를 기원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질시해
학대하고, 비방하고, 비웃을 때
내가 이기지 않고
그들에게 승리를 안겨주기를 기원합니다.

 

이 시의 핵심은 다른 사람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혹은 부당하게 여러분을 화나게 만들 때 부정적 방식으로 반응하지 말고 이타심을 행하는 진정한 수행자로서 관용을 가지고 그들을 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대우에 평정심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다음 시에서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관대하게 대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들을 영적 스승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내가 도와주었거나
기대를 많이 했던 누군가가
나의 마음을 심하게 아프게 해도
그를 귀중한 스승으로 여기기를 기원합니다.

 

샨티데바의 『보살행 안내』에서는 이런 태도를 키우는 방법과 우리에게 해를 가하는 사람들을 영적 공부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방식을 폭넓게 다룹니다. 찬드라키르티의 『중도 입문Chandrakirti’s Entry to the Middle Way』의 세 번째 장에서도 인내심과 관용을 키우는 감동적이고 효과적인 가르침을 볼 수 있습니다.

 

요컨대 복덕과 기쁨을
직접적이고 직접적이지 않은 나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바치고
어머니들의 모든 아픔과 고통을
내가 받기를 기원합니다.

 

이 시는 ‘주고받기 수행’(수행법tong len)으로 알려진 특정한 불교 수행법을 의미합니다. 이는 주고받는 모습을 상상함으로써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평등하게 생각하여 서로를 바꾸는 수행입니다.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을 바꾸는 것’을 단순히 내가 다른 사람이 되고 다른 사람이 내가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어쨌든 이러한 상황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의미하는 바는 서로가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른바 ‘자아’라는 것을 우리 존재의 귀중한 핵심으로 여겨 다른 사람의 행복을 무시하면서까지 소중히 받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조적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는 무관심한 경우가 많습니다. 기껏해야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얼마간 관심을 갖지만 그저 느낌이나 감정의 단계에 머무릅니다. 대체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무관심하고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수행의 핵심은 이 태도를 바꿔 우리 자신에 대한 강한 몰두와 집착을 줄이고,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의미 있고 중요하게 생각하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피해와 고통을 받아야 한다고 제안하는 이런 종류의 접근법을 대할 때는 이를 신중하게 고려하고 적절한 맥락 안에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제로 이 말은 영적인 길을 따르고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관해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어떠한 고난과 고통이 따르더라도 기꺼이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신을 미워하거나 학대하거나 스스로에게 자학적인 고통을 가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런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또 하나의 예는 “필요하다면 가장 깊은 지옥에서도 몇 겁을 지나고 수많은 생을 보낼 수 있는 용기를 지니게 되기를 기원합니다”라는 티베트의 유명한 시구입니다. 이 말의 핵심은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요구되는 용기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에 헌신할 의지가 있다면, 이 정도의 수준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문구들을 정확히 이해하는 일이 매우 중요한 까닭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할 경우, 자아가 자기본위의 화신이라면 스스로 망각 속으로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문입니다. 근본적으로 영적인 길을 따르려는 소망 뒤에는 최고의 행복을 얻으려는 동기가 자리합니다. 따라서 자신의 행복을 원하듯 다른 사람들의 행복 또한 원하는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다른 사람들에
대한 진정한 연민을 키우려는 사람은 연민을 키울 만한 기반이 있어야 하는데, 그 기반은 자신의 감정과 교류하고 자신의 행복을 돌보는 능력입니다. 그럴 능력이 없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관심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을 돌보려면 먼저 자신을 돌봐야만 합니다.
‘주고받기 수행’은 애정 어린 친절과 연민 수행의 요약입니다. ‘주는’ 수행이 애정 어린 친절 수행을 강조하는 반면 ‘받는’ 수행은 연민의 수행을 강조합니다. 샨티데바는 자신이 쓴 『보살행 안내』에서 이 수행에 대한 흥미로운 방식을 제안했습니다. 그것은 시각화(상상법)를 통해 자기본위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것에 대응하는 방식을 습득
하는 것입니다. 한쪽에서는 자신의 일상적인 자아, 즉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전혀 영향받지 않는 자아와 자기본위의 화신을 시각화합니다. 이 자아는 매우 오만하게도 다른 사람들을 부당하게 이용할 만큼 자신의 행복만을 신경 쓰는 자아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아무런 보호막과 피신처 없이 고통에 빠진 사람들의 무리를 시각화합니다. 원한다면 구체적인 사람들에게 집중해도 좋습니다. 예를 들어 잘 아는 사람 중에 고통에 빠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선택해서 주고받기 수행의 전 과정을 그를 대상으로 하면 됩니다. 세 번째로 자신을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제삼자 관찰자로 설정해서 누구의 이익이 더 중요한지 평가합니다. 자신을 중립적인 관찰자의 입장으로 분리시키면 자기본위의 한계를 알고 다른 지각 있는 중생들의 행복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훨씬 더 공정하고 분별 있는 일이라는 걸 알기 쉽습니다.
이러한 시각화를 통해서 서서히 다른 사람들과의 친밀감을 느끼고 그들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주고받기 수행을 실질적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주고받기 수행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종종 또 다른 시각화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먼저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주의를 집중한 뒤 그들의 고통이 견디기 힘들다고 느낄 만큼 그들을 향한 연민을 키우고 강화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실질적으로 그들을 도울 방법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따라서 더욱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연민 어린 동기를 가지고 그들의 고통과 그 고통의 원인,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 등을 자신이 떠맡는다고 상상합니다. 그들의 고통과 부정적인 마음이 검은 연기라고 상상하며 이 연기가 자신에게 흡수되어 사라진다고 상상합니다.
이 수행을 할 때는 자신의 긍정적인 면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한다는 상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했던 선행, 자신에 내재한 긍정적 잠재력, 또한 자신이 얻은 영적 지식이나 통찰력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른 지각 있는 중생들 역시 자신의 장점을 누리도록 이것들을 그들에게 보내십시오. 여러분의 자질을 밝은 빛이나 희끄무레한 빛줄기라고 상상하고 다른 사람들을 통과해 그들에게 흡수된다고 생각하세요. 지금까지 주
고받기 수행을 설명했습니다.
물론 이런 종류의 수행법은 상상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물리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공감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또한 자기본위로 생각하는 습관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이 수행의 장점입니다.
지금까지 다른 지각 있는 중생들을 돕겠다는 이타심을 키우는 마음 수련법을 소개했습니다. 완전한 깨달음을 얻겠다는 염원과 함께 이 수련을 한다면 보리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보리심이란 다른 모든 지각 있는 중생들을 위해 완전한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이타적 염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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