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라는 환성과 도래할 왕에 대한

김광우의 <예수 이야기> 중에서


사람들이 예수의 입성을 환호하자 가야바는 당혹스러웠다.
대낮에 그를 체포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체포 과정에서 사람들이 거세게 반발한다면 오히려 민중의 반란을 촉진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화약에 불을 당기는 일이다.
그것은 예수의 계략에 말려드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요단강 주변 광야에서부터 여리고와 베다니를 거쳐 예루살렘까지 예수의 행로를 따라온 인파를 어떻게 따돌릴 것인가.
뜻밖의 사건이었다.


우리는 왜 사람들이 그토록 예수를 지지했는지 주목해야 한다.
그가 사람들에게 표적을 보이고 기적을 행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나중에 사람들이 예수보다는 감옥에 갇혀 사형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바라바를 선택한 것으로 미루어, 아마 사람들은 예수를 앞세워 바라바의 구명운동을 벌이려 했는지도 모른다.
예수가 사람들의 환호에 담담한 표정을 지은 것은 그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바라는 것과 자신이 선택한 것 사이에 타협이란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제물로 바쳐질 양처럼 순순히 성전을 향해 나아갈 뿐이었다.


“호산나!”라는 환성과 도래할 왕에 대한 예언자의 노래는 유월절이면 예식처럼 순례자들에 의해 불려졌다.
여러 나라로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은 유월절이면 다윗의 도시 예루살렘으로 와서 자신들을 다시 한 곳으로 모아주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다.
그들은 예언이 이루어지기를 노래하면서 망국의 한을 달랬다.
사람들은 예수를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라고는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단지 그를 향해 예언자의 노래를 불렀던 것이지, 그를 메시아로 영접한 것은 아니었다.
가야바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예수를 체포하지 않고 그대로 둔 데서 그가 얼마나 체포에 신중을 기했는지 알 수 있다.


성 안에 들어온 예수는 성전 뜰에서 소나 양 등 제물로 쓰일 동물을 파는 사람들과 환전상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내쫓았다.
또한 돈을 바꾸어주는 사람들의 돈을 쏟아버리고 상을 둘러엎었다.
비둘기파는 사람에게는 “이것을 거둬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아라”(요한복음서 2:14?6) 하고 말했다.
예수는 몹시 분노했으며 흥분하여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였다.
그런데 너희는 그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버렸다.” 【마태복음서 21:13】


환전상들은 제사장의 허락을 받아 외국돈을 성전에서 유용한 고대 헤브라이 돈으로 바꾸어주고 수수료를 받고 있었다.
장사꾼들은 순례자들이 성전에 바칠 동물들을 고향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운반해오는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서 성전 뜰에서 제물이 될 동물들을 팔았다.
예수는 장사꾼들을 내쫓아 성전을 깨끗이 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하나님의 나라에 관해 큰 소리로 설교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요,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다.
그것은 나를 믿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내 말을 듣고서, 그것을 지키지 않을지라도,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려는 것이다.
나를 배척하고 나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심판하시는 분은 따로 계신다.
내가 말한 바로 이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할 것이다.
나는 내 마음대로 말한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무엇을 말해야 하고 또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가를 친히 나에게 명령해주셨다.
나는 그 명령이 영생을 준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나는 무엇이든지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해주신 대로 말할 뿐이다.’” 【요한복음서 12: 44?0】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 백성의 우두머리들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를 에워싸고 있어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사람들 모두가 그의 가르침을 열심히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누가복음서 19:47-8).


해가 서산에 지자 순례자들은 각자 흩어졌다.
예수도 성전에 그냥 남아 있을 수가 없으니 어딘가로 가서 밤을 보내야 했다.
베다니와 예루살렘 사이 올리브 나무가 있는 겟세마네 산으로 가서 밤새도록 기도했는지도 모른다.
어둠이 내리자 예루살렘은 텅 빈 채 고요 속에 잠겼다.
순례자들은 여인숙에서, 친지의 집에서, 또는 산으로 가서 밤을 보냈다.
낮에는 아주 덥지만 밤이 되면 쌀쌀해진다.
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며, 달빛이 고요한 정적 사이로 비추는 산 속에는 기도하는 사람들의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릴 듯 말 듯했다.


예수도 그 별과 달을 바라보면서 하늘나라의 오묘한 비밀에 대한 명상에 잠겼을 것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잠을 청하지 못했을 것은 당연하다.
내일이나 모레 체포되어 갖은 수난을 겪어야 할 그가 근심 없이 잠을 이룰 수는 없었으리라.
제자들은 육신의 피로를 이기지 못해 여기저기서 잠에 골아떨어졌겠지만, 그는 홀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어딘가에서 땀을 흘리면서 하나님께 간구했을 것이다.
행여라도 수난을 피할 방법이 있다면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하나님께 졸랐을 것이다.
궁리하고 또 궁리해도 그런 방법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몸서리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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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여우라고 부른

김광우의 <예수 이야기> 중에서


날이 밝아왔다. 예수는 밤새 싸늘한 공기를 마시며 기도하느라 지친 몸이었지만 동이 트면서 예전에 느껴보지 못한 전율이 몸에 흐르는 것을 느꼈다.
죽음을 결단하고 준비해온 그에게 그날이 닥친 것이다.
유월절 축제가 시작되기 전날이다.
그날을 공관복음서 저자들은 니산월 14일이라고 기록했고 요한은 니산월 13일이라고 기록했다.
니산월은 유대력에서 여덟 번째 달로 오늘날 3월에서 4월에 해당하는 달이다.


예수가 어제 성전을 깨끗이 한 일로 중의회는 들끓었다.
장사꾼과 환전치기들이 성전 뜰에서 장사를 한 것은 사람들이 제사를 드릴 제물을 사고팔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으로서 중의회가 허락한 것인데, 나사렛 시골뜨기가 감히 중의회의 권위에 도전을 한 것이다.
단 하루라도 그를 방치했다가는 무슨 변을 당할지 알 수 없다.
오늘 밤 그를 체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야바는 사람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밤에 은밀한 곳에서 해치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추종자들에게 밤이 깊으면 자신의 집 뜰에 모이라고 했다.


날이 밝자 예루살렘의 거리는 다시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비둘기와 양을 파는 상인들이 일찌감치 장을 폈으며, 유월절에 먹는 무교병을 파는 행상과 환전상들이 대목을 노리며 거리에 장사진을 쳤다.
동물소리와 장사꾼들이 순례자들과 흥정하는 소리로 거리는 떠들썩했다.
로마 군인들은 삼삼오오 한 조가 되어 순찰을 돌며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었다.
유대인들의 폭동을 막기 위해 경계령이 내려진 것이다.


빌라도 총독은 지중해 연안의 가이사랴 시에서 예루살렘으로 와서 군인들을 통솔하고 있었다.
비상사태를 선포한 후 민중을 선동하는 자가 나타나면 누구를 막론하고 즉시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로마에서 자신을 후원하던 세이아누스가 처형당한 마당이므로 빌라도는 가뜩이나 긴장해 있었다.
로마에 대한 어떠한 도전이라도 예루살렘에서 일어난다면 그는 정치적으로 파멸하고 만다.
그는 유대인들의 복잡한 종교분쟁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사렛 사람 예수에 관해서는 가야바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가 은밀히 폭동을 계획하고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으므로 시골뜨기 예언자에게는 아예 관심도 두지 않았다.


예수가 여우라고 부른 갈릴리의 분봉왕 안디바 또한 예루살렘에 와 있었다.
그 역시 폭동을 염려하고 있었는데 자신에게도 불똥이 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폭동의 주모자들이 갈릴리 사람일 경우 그의 분봉왕 자리는 종지부를 찍을 수도 있다.
더구나 제로테의 본거지는 갈릴리가 아닌가.
그는 오늘날 헤롯 궁전이라고 불리는 곳에 머물렀는데 그곳에서 빌라도가 머물고 있는 안토니아 요새는 그리 멀지 않았다.


오늘부터 8일 동안 제사가 진행된다.
빌라도와 안디바는 8일간의 제사가 무사히 끝나도록 유대인들의 동향에 주의를 집중했다.
유대인들은 오늘부터 무교병을 먹기 시작하며 오후가 되면 새끼 양을 성전으로 끌고 와 죽인 뒤 피를 받아 사제에게 준다.
사제는 그 피를 제단에 뿌린다. 도살된 새끼 양은 집으로 가져와 요리하여 그날 저녁 가족과 함께 유월절 파티를 연다.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한 최후의 만찬은 바로 유월절 파티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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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성전이 무너지더라도

김광우의 <예수 이야기> 중에서


낮에 예수가 무엇을 했는지는 기록에 없다.
아마 자신이 열두 살 때 ‘아버지의 집’이라고 불렀던 성전으로 갔을 것이다.
성전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성전 뜰에서 새끼 양을 도살하느라 성전은 온통 양들의 울음소리로 시끄러웠다.
예수가 성전 뜰을 거니는 것을 본 대제사장과 율법학자, 장로들은 그에게 와서 무슨 권한으로 성전을 청소했느냐고 물었다.
예수는 오히려 그들에게 반문했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 물어보겠으니, 나에게 대답해보아라.
그러면 내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를 너희에게 말하겠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온 것이냐, 사람에게서 온 것이냐?” 【마가복음서 20:3-4】


뜻밖의 질문에 당황한 그들은 자기들끼리 수근댔다.
“하늘에서 왔다”고 대답하면 예수는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았느냐”고 할 것이며, 그렇다고 해서 “사람에게서 왔다”고 대답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를 에워싼 군중을 의식했다.
대답을 잘못했다가는 요한을 참 예언자로 알고 있는 군중이 자신들에게 달려들 것이다.
그들은 대답을 못하고 얼굴을 붉히다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고 씩씩거렸다.
그러자 예수는 “나도 내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를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마가복음서 11:33)고 하였다.
그들이 물러가자 예수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예복을 입고 다니기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고, 잔치에서는 윗자리에 앉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삼키고, 남에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한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더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마가복음서 12:38?0】


성전을 떠날 때 제자 한 사람이 성전을 가리켜 아름다운 돌과 봉헌물로 잘 꾸며놓았다고 감탄하자 예수가 말했다.


“너희가 보고 있는 이것들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날이 올 것이다.”
“선생님, 그러면 이런 일들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이런 일이 일어나려고 할 때에는, 무슨 징조가 있겠습니까?”
“너희는 속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는 ‘내가 그리스도다’ 하거나 ‘때가 가까이 왔다’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따라가지 말아라. …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에 앞서,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고,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겨줄 것이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왕들과 총독들 앞에 끌려갈 것이다.”
【누가복음서 21:6?2】


예수는 성전이 무너지더라도 자신이 사흘 만에 성전을 다시 세우겠다고 말해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암시하였다.
그가 은유로써 한 말을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나중에라도 제자들이 자신의 말을 이해하길 바랐던 예수는 따로 설명해주는 배려를 하였고, 그리하여 복음서 저자들은 스승의 말을 기억해두었다가 기록으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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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또한 스승이 자신의 계획을 알고 있음을

김광우의 <예수 이야기> 중에서


날이 저물자 예수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만찬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그들이 어느 곳에 만찬을 준비해야 하느냐고 묻자 예수가 말했다.


“너희가 성 안으로 들어가면 물동이를 메고 오는 사람을 만날 것이니, 그가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가거라.
그리고 집주인에게 말하기를 ‘선생님께서 당신에게 하시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그 방이 어디에 있느냐고 하십니다’ 하여라.
그러면 그 사람은 자리를 깔아놓은 큰 다락방을 너희에게 보여줄 것이니, 너희는 거기에서 준비를 하여라.” 【누가복음서 22:10?2】


목요일 만찬은 유대인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조상 모세에게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조상들을 이집트로부터 구해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신 날을 기념한다.
가장은 미리 준비한 무교병을 쪼개고 기도를 한 다음 가족들에게 유월절을 지켜야 하는 이유에 관해서 설명한다.
또한 조상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랑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상황을 설명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구전으로 전해졌다.
이날 가족들은 포도주 잔을 돌려 마시며 하나님이 유대인을 구원해주시길 기원한다.


베드로와 요한으로부터 만찬 준비가 끝났다는 말을 듣고 예수는 열두 제자와 함께 그곳으로 갔다.
유다도 함께 갔다.
유다는 이 만찬이 스승과의 마지막 만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찬이 끝나면 예수의 행방을 가야바에게 고자질해야 한다.
그는 숙연한 마음으로 스승의 뒤를 따랐다.
제자들은 단순한 유월절 만찬으로 생각했겠지만 예수와 유다는 그것이 ‘최후의 만찬’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예수는 유다가 자신을 배신할 것을 알고 있었고, 유다 또한 스승이 자신의 계획을 알고 있음을 알았다.
탁자 앞에 앉은 예수는 제자들의 얼굴을 하나씩 자세히 바라보고 나서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고 있는 사람이 나를 넘겨줄 것이다.” 【마가복음서 14:18】


예수의 이 말은 유다에게 스가랴의 예언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다짐해두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가 유다를 따로 지적하여 말하지 않은 것은 유다로 하여금 일을 완수토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유다가 감당하기에 벅찬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러한 방법으로라도 그를 재촉해야 했다.
그와 유다 사이에 묵계가 있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그러한 해석이 예수 생애의 의의를 격하시킬까?
예언을 이루는 일은 하나님의 통치를 완성하는 일이며 하나님의 질서를 세우는 일이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자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이사야의 예언도, 스가랴의 예언도 모두 이루어져야 한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유다는 스승을 배신하라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제자들은 스승의 말을 듣자 “나는 아니지요?” 하고 말하면서 자신이 결백함을 드러내려고 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그는 열둘 가운데 하나로서, 나와 함께 같은 대접에 빵을 적시고 있는 사람이다.
인자는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떠나가지만, 인자를 넘겨주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기에게 좋았을 것이다.”
【마가복음서 14:20?1】

준비된 죽음을 맞이하는 예수가 유다를 가리켜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저주했다는 것은 잘 믿기지 않는다.
제자들의 유다에 대한 저주를 마가가 예수의 말이라고 기록하지 않았는지 의심이 간다.
복음서의 많은 기록에서 저자들의 의도를 발견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마가뿐 아니라 다른 복음서 저자들도 유다를 저주하며, 그가 돈에 눈이 어두워 스승을 배반했다고 썼다.
그러나 당시의 정황을 안다면 예수가 제자의 배반 때문에 사형에 처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자의 배반은 상징적인 의미 그 이상이 될 수 없다.
예수가 유다에게 말했다.


“네가 할 일을 어서 하여라.” 【요한복음서 13:27】


유다와 예수만이 아는 비밀이 최후의 만찬에 있었다.
다른 제자들은 두 사람의 비밀을 알지 못했다.
유다가 스승의 분부대로 그 집을 나가자 예수는 무교병을 들어 기도한 후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주며 말했다.

“받아서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마태복음서 26:26】


예수는 포도주 잔을 들어 기도한 후 포도주를 그들에게 나누어주며 말했다.

“모두 이 잔을 마셔라.
이것은 많은 사람에게 죄를 사하여주려고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제부터 내가 나의 아버지의 나라에서 너희와 함께 새 것을 마실 그날까지, 나는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절대로 마시지 않을 것이다.” 【마태복음서 26: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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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는 예수가 두려워하고 괴로워했다고 썼다

김광우의 <예수 이야기> 중에서


신학자 가운데는 최후의 만찬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와 같은 이야기는 사도 바울의 영향 아래 헬레니즘적인 교회에서 꾸며낸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주장대로 예수가 빵과 포도주를 자신의 몸과 피로 은유하여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사랑하는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함께 음식을 나누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이 목요일이 아니었다면 전날 수요일이라도 좋고 화요일이라도 좋다.
그가 어떻게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가지지 않았겠는가!
죽음을 앞둔 그가 최후의 만찬을 가졌다면 당연히 상징적인 예식을 행했을 것이다.
그것은 죽음과 관련한 예식이므로 제자들에게 몸과 피에 대해 언약을 했을 것이다.


유월절 만찬 때 유대인들은 찬송을 하는데 주로 시편 113편을 불렀다.
훗날에는 114?18편을 불렀다고 한다.


내가 고난을 받을 때에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나에게 응답하여주시고,
주께서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다.
주님은 내 편이시므로
나는 두렵지 않다.
사람이 나에게 무슨 해를 끼칠 수 있으랴?
주께서 내 편이 되셔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망하는 것을
내가 볼 것이다.
주님께 몸을 피하는 것이
사람을 의지하는 것보다 낫다.
주님께 몸을 피하는 것이
지위가 높은 사람을 의지하는 것보다 낫다.
【시편 118:5?】


예수와 제자들은 찬송을 부르고 나서 어두운 밤에 올리브 산으로 향했다(마가복음서 14:26).
그들은 산기슭의 묘지와 올리브 밭을 지나 올리브기름을 짜는 곳, 즉 겟세마네라고 하는 곳에 이르렀다.
겟세마네는 예루살렘 성벽 맞은편에 있다.
제자들은 올리브 숲에 이르러 각각 편한 자세로 나무 밑에 앉았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내가 기도하는 동안에, 너희는 여기에 앉아 있어라” 하고 말하고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갔다.
이 셋은 예수가 특히 사랑한 제자들이라고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다.
마가는 예수가 두려워하고 괴로워했다고 썼는데 아마 베드로의 증언을 토대로 한 것 같다.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머물러서 깨어 있어라.” 【마가복음서 14:34】


예수는 이렇게 말하고는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가서 기도했다.
그가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몇 시간 후에 닥칠 엄청난 일이 두렵지 않을 리 없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결단에 대한 확신이 절실히 필요했다.
운명 앞에서 전율과 공포에 사로잡혀 자신이 감당해야 할 육체적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는 광야에서 모세가 드린 기도를 떠올렸을 것이다.


주께서는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죽을 인생들아, 돌아가거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주님 앞에서는 천년도
지나간 어제와 같고,
밤의 한 순간과도 같습니다.

주께서 생명을 거두어가시면
인생은 한 순간의 꿈일 뿐,
아침에 돋는
한 포기의 풀과 같을 따름입니다.
아침에는 돋아나서 꽃을 피우다가도
저녁에는 시들어서 말라버립니다.

… …
주 우리 하나님,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셔서,
우리의 손으로 하는 일이
틀림이 없게 하여주십시오.
우리의 손으로 하는 일이
틀림이 없게 하여주십시오.
【시편 9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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