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여우라고 부른

김광우의 <예수 이야기> 중에서


날이 밝아왔다. 예수는 밤새 싸늘한 공기를 마시며 기도하느라 지친 몸이었지만 동이 트면서 예전에 느껴보지 못한 전율이 몸에 흐르는 것을 느꼈다.
죽음을 결단하고 준비해온 그에게 그날이 닥친 것이다.
유월절 축제가 시작되기 전날이다.
그날을 공관복음서 저자들은 니산월 14일이라고 기록했고 요한은 니산월 13일이라고 기록했다.
니산월은 유대력에서 여덟 번째 달로 오늘날 3월에서 4월에 해당하는 달이다.


예수가 어제 성전을 깨끗이 한 일로 중의회는 들끓었다.
장사꾼과 환전치기들이 성전 뜰에서 장사를 한 것은 사람들이 제사를 드릴 제물을 사고팔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으로서 중의회가 허락한 것인데, 나사렛 시골뜨기가 감히 중의회의 권위에 도전을 한 것이다.
단 하루라도 그를 방치했다가는 무슨 변을 당할지 알 수 없다.
오늘 밤 그를 체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야바는 사람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밤에 은밀한 곳에서 해치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추종자들에게 밤이 깊으면 자신의 집 뜰에 모이라고 했다.


날이 밝자 예루살렘의 거리는 다시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비둘기와 양을 파는 상인들이 일찌감치 장을 폈으며, 유월절에 먹는 무교병을 파는 행상과 환전상들이 대목을 노리며 거리에 장사진을 쳤다.
동물소리와 장사꾼들이 순례자들과 흥정하는 소리로 거리는 떠들썩했다.
로마 군인들은 삼삼오오 한 조가 되어 순찰을 돌며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었다.
유대인들의 폭동을 막기 위해 경계령이 내려진 것이다.


빌라도 총독은 지중해 연안의 가이사랴 시에서 예루살렘으로 와서 군인들을 통솔하고 있었다.
비상사태를 선포한 후 민중을 선동하는 자가 나타나면 누구를 막론하고 즉시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로마에서 자신을 후원하던 세이아누스가 처형당한 마당이므로 빌라도는 가뜩이나 긴장해 있었다.
로마에 대한 어떠한 도전이라도 예루살렘에서 일어난다면 그는 정치적으로 파멸하고 만다.
그는 유대인들의 복잡한 종교분쟁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사렛 사람 예수에 관해서는 가야바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가 은밀히 폭동을 계획하고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으므로 시골뜨기 예언자에게는 아예 관심도 두지 않았다.


예수가 여우라고 부른 갈릴리의 분봉왕 안디바 또한 예루살렘에 와 있었다.
그 역시 폭동을 염려하고 있었는데 자신에게도 불똥이 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폭동의 주모자들이 갈릴리 사람일 경우 그의 분봉왕 자리는 종지부를 찍을 수도 있다.
더구나 제로테의 본거지는 갈릴리가 아닌가.
그는 오늘날 헤롯 궁전이라고 불리는 곳에 머물렀는데 그곳에서 빌라도가 머물고 있는 안토니아 요새는 그리 멀지 않았다.


오늘부터 8일 동안 제사가 진행된다.
빌라도와 안디바는 8일간의 제사가 무사히 끝나도록 유대인들의 동향에 주의를 집중했다.
유대인들은 오늘부터 무교병을 먹기 시작하며 오후가 되면 새끼 양을 성전으로 끌고 와 죽인 뒤 피를 받아 사제에게 준다.
사제는 그 피를 제단에 뿌린다. 도살된 새끼 양은 집으로 가져와 요리하여 그날 저녁 가족과 함께 유월절 파티를 연다.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한 최후의 만찬은 바로 유월절 파티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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