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김광우의 저서 <예수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예수는 지상에서 그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자신에게 일어날 일에 대해 제자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은 반드시 예루살렘으로 가야하며, 또한 장로와 대제사장과 율법학자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은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베드로는 놀라 예수를 붙들고 “주님, 안 됩니다. 절대로 이런 일이 주님께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하고 소리쳤다.
예수는 돌아서서 흥분한 얼굴로 베드로를 꾸짖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마태복음서 16:23】


예수는 제자들에게 지금이 결정적인 시기이며 모두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할 때라고 말했다.
제자들은 몹시 슬펐다.
바리새파와 율법학자들이 스승을 잡으려고 안달인데 그들이 우글거리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가 스스로 자신을 내주겠다니 큰일이었다.
그들이 스승을 죽일 것이 뻔한데 오히려 스승을 말리는 제자를 사탄이라고 나무라니 제자들은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예수는 말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찾을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또 사람이 제 목숨을 되찾는 대가로 무엇을 내놓겠느냐?” 【마태복음서 16:24?6】


고난을 받아들이려는 사람은 먼저 자신을 부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수는 그 점을 지적한 것이다.
자신을 부정한다는 것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오로지 부름 받은 대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제자들은 예수와 행동을 같이하기로 결심하면서도 스승이 가고자 하는 길이 성과가 보장된 혁명의 길이라 생각했으며, 혁명이 성공한 후 자신들에게 돌아올 보상에 관심을 가졌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생각이었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에게 다가와 목숨을 걸고 따르겠다면서 이렇게 제안했다.


“선생님,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주시기 바랍니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주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하여주십시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시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그 일은, 내가 허락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해놓으신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마가복음서 10:35-40】


그는 제자들을 납득시키려고 여러 방법으로 설명을 시도했는데 자신이 떠난 뒤라도 제자들이 자신의 뜻을 헤아릴 수 있으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보상을 놓고 서로 다투는 제자들을 나무랐다.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마가복음서 1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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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처음으로 제자들을 친구라고 부르며
김광우의 저서 <예수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계명을 주겠다며 가까이 와서 앉으라고 한 후 말했다.


“나의 계명은 이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다 행하면 너희는 내 친구다.
이제부터는 내가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종은 주인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들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서 15:12?5】


그는 처음으로 제자들을 친구라고 부르며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사랑의 극치라고 말했다.
예수의 친구들은 누구였나? 제자들은 보아서 알고 있다.
버림받고 소외되고 갖은 병에 시달리는 병자들이 예수의 친구였으며, 그들을 예수는 사랑했다.
그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는 것이 예수의 신앙이었다.


그는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들을 택했으니 이제부터는 나와 헤어져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라고 했다.
제자들은 예수에게, 세례자 요한이 그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준 것처럼 그들에게도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해주었다.


“아버지,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나라가 임하게 하시며,
날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를 용서해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누가복음서 11:2?】


그는 제자들에게 두 사람씩 한 조를 이루어 다니도록 했다.
그리고 길을 떠날 때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 것이며, 옷도 두 벌씩은 가지고 가지 말라고 했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에 머물다가, 거기에서 떠나거라”(누가복음서 9:4)라고 말했다.
예수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제자들에게 누누이 당부했다.


“보아라, 내가 너희를 내보내는 것이 마치 양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과 같이 슬기롭고, 비둘기와 같이 순진하게 되어라.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법정에 넘겨주고, 그들의 회당에서 매질을 할 것이다.
… 사람들이 너희를 관가에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너희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그때에 지시를 받을 것이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마태복음서 10:16?0】


예수는 의인은 고난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은 의인을 어려운 지경에서 구해주실 것이며 죽으면 죽음으로부터 구해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제자들에게 어려운 지경에 처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변론을 준비해주실 것이니 염려하지 말라고 안심시켰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는 제자들을 떠나보냈다.
그것은 자신의 주변 정리이기도 했다. 자신이 부재하더라도 하나님의 나라는 완성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계속 통치해야 하고 그 통치는 질서로서, 사랑으로서 나타나야 한다.
그는 더 이상 지상에 남아 그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는 살벌한 예루살렘으로 가야 한다.
그곳에서 목숨을 바쳐야만 하나님의 통치가 완전히 이루어지며 사랑이 위대하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다.
그의 생애가 아름다운 이유는 그가 자신의 영예를 한 번도 내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며, 자신의 인격을 한 번도 뽐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 말은 그의 생애의 요지이며 아름다움의 극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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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 속에서 더 큰 외로움을 느끼고 
 

김광우의 저서 <예수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제자들을 떠나보내고 예수는 홀로 지냈다. 죽음을 준비해야 했다.
제자들이 함께 있지 않았으므로 이 시기에 그가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기록이 없다.
아마도 닥쳐올 수난을 상상하면서 괴로워하고, 죽음을 이겨내기 위해 기도하며 시련을 감당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스렸을 것이다.
결단의 길을 떠나려 하자 수심에 찬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홀어머니를 남겨두고 떠날 생각을 하니 슬픔이 북받쳤다.
그가 고향 사람들에게 배척당해 동네를 떠날 수밖에 없었을 때 어머니는 자식의 앞날이 무사하기만을 바라면서 자식을 배웅했고 예수는 연신 뒤돌아보면서 어머니의 눈에 흐르는 눈물을 보며 자신의 눈물을 닦았다.
이제 어머니에게 처절하게 처형되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 무렵 로마에는 정치적인 변화가 있었다.
권력자 세이아누스가 티베리우스 황제를 거역한 죄로 로마에서 처형당한 것이다.
그의 처형은 유대와 무관하지 않았다.
본디오 빌라도는 세이아누스의 후원을 받아 유대의 총독으로 부임했기 때문이다.
가야바가 장악하고 있는 중의회도 로마에서 전개되는 상황을 예의 주시했는데 그곳의 정치적 변화로 행여 중의회의 기능이 마비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친로마주의를 표명했던 분봉왕 헤롯 안디바도 자신의 위상에 변화가 있을까봐 잔뜩 긴장했다.
빌라도, 중의회, 안디바 모두 다가오는 유월절이 무사히 지나기만 바랄 뿐이었다.


이제 각지에서 사람들이 유월절을 지내려고 예루살렘으로 몰려온다.
중의회와 빌라도 총독, 안디바는 유대인들의 반로마 감정이 봉기로 발전하지 않도록 사전준비를 철저히 해두어야 한다.
그들 역시 제로테와 반로마 혁명을 일으키려는 사람들이 유월절을 봉기에 적절한 날로 여기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가야바는 무사안일주의자였다.
그는 어떤 변화도 바라지 않았으며 중의회 기능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면 로마에 아부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가야바는 감시원들을 더 많이 풀어 예수를 비롯하여 예언자를 자칭하는 종교지도자들과 지하에서 민중을 충동하는 제로테의 동향을 낱낱이 보고하도록 했다.
감시가 소흘하여 소요가 일어난다면 감시원들에게 책임을 추궁하여 혹독한 체벌을 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정치적 긴장감이 감돌던 이때 바라바와 그를 따르는 일당이 반로마 궐기를 계획했다가 발각되어 로마 군인들에 의해 예루살렘으로 압송되었다.
반로마 감정을 가진 사람들은 바라바의 체포 소식에 동요되어 총독에게 바라바를 풀어달라고 탄원했다.
바라바는 순식간에 영웅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예언자로 여겼으며, 더러는 그가 메시아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가기 전 요단 강가에 들렀다.
그에게는 감회가 깊은 곳이다.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은 곳이며 많은 나날을 명상하여 자신의 사역 목적을 발견한 곳이다.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 광야에 집결한 순례자들은 예수를 보자 세례자 요한이 부활한 것처럼 여겨졌다.
자신들에게 정치적 사회적 평화를 가져다줄 사람이라 생각되었다.
그가 선두에 서서 폭발적인 민족 감정에 불을 당겨주기를 바랬다.
마태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랐다고 기록했으며(마태복음서 19:2) 누가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의 수가 수만 명이나 되어 서로 밟힐 지경이었다고 기록했다(누가복음서 12:1).
수만 명에 에워싸인 그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러면 군중 속에서 더 큰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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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예수는 오랜만에 사람들 앞에 모습을 나타냈지만 민중은 이내 그를 알아보고 모여들었다.
그가 제자들을 다시 만난 곳도 그곳이었을 것이다.
광야의 동태를 주시하던 가야바는 예수가 광야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잔뜩 긴장했다.
어서 그를 체포하지 않는다면 불행한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가야바는 바리새파와 율법학자들을 보내 체포할 구실을 속히 찾으라는 지령을 내렸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자신들의 전문지식을 동원해 그에게 올가미를 씌우려고 율법을 들고 나왔다.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모세가 너희에게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였느냐?”

“이혼장을 써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모세는 허락하였습니다.”

“모세는 너희의 완악한 마음 때문에, 이 계명을 써서 너희에게 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남자는 부모를 떠나서, 자기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마가복음서 10:2?】


바리새파와 율법학자들은 예수와 설전을 벌였다.
예수는 전과 달리 공격적인 태도로 그들을 직접 비난하고 저주했다.
그들은 예수의 말에서 트집을 잡으려고 안달이었지만 그들의 악한 저의는 예수에 의해 번번이 폭로되었으며, 그때마다 민중들은 아주 통쾌해 했다.
죽음에 임박한 결연한 그의 모습은 민중에게 환호의 대상이었다.
예수는 바리새파와 율법학자들에게 호통을 쳤다.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다. … 그 속에 있는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예수는 몹시 분노하여 노기 띤 말로 그들을 정죄했다.
그들의 위선이 하나님의 통치와 질서를 파괴한다고 비난했다.


“바리새파 사람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너희는 박하와 운향과 온갖 채소의 십일조는 바치면서, 정의와 하나님께 바치는 사랑은 소흘히 한다!
… 바리새파 사람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너희는 회당에서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한다!
너희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너희는 드러나지 않게 만든 무덤과 같아서,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면서도 그것이 무덤인지를 알지 못한다!” 【누가복음서 11:42?4】


율법교사 가운데 한 사람이 바리새파 사람을 거들 겸 예수에게 시비를 걸었다.
“선생님,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면, 우리까지도 모욕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거침없이 그들을 응대하였다.


“그렇다!
너희 율법교사들에게도 화가 있을 것이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지기 어려운 짐을 지우면서도, 너희는 스스로 손가락 하나도 그 짐에 대려고 하지 않는다.
너희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였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꾸미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도 말하기를 ‘내가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내겠는데, 그들은 그 가운데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하였다.
창세 이래로 흘린 모든 예언자들의 피에 대하여 이 세대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아벨의 피에서 비롯하여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은 사가랴의 피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 너희 율법교사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너희는 지식의 열쇠를 가로채서 너희 스스로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들도 막았다!” 【누가복음서 11: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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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죽이기로 결심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그렇게 노기 띤 예수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민중이 보는 앞에서 질책을 들은 그들은 필사적으로 예수에게 대들면서 트집이 될 만한 말을 찾았다.
가야바는 예수가 민중들 앞에서 바리새파와 율법학자들을 거세게 비난했다는 말을 듣고 화가 나 중의회를 소집했다.
그는 제사장들에게 예수를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민중이 그를 메시아라고 믿게 될 것이며 따라서 로마 군인들이 유대의 땅과 민족을 빼앗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신들은 아무것도 모르오.
한 사람이 백성을 대신하여 죽어서, 민족 전체가 망하지 않는 것이 당신들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소.” 【요한복음서 11:49?0】


가야바의 말에서 우리는 광야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중의 동요가 얼마나 심상치 않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예수를 따르는 수만 명의 민중이 폭동을 일으킨다면 로마 군인들이 진압에 나설 터이고,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살상될 것이다.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가뜩이나 로마가 새로운 정치국면을 맞아 어수선한 상황이니 티베리우스 황제가 어떤 단호한 조치를 내릴지 알 수 없다.
그나마 안디바가 누리고 있던 정치적 자치권과 중의회가 누리던 종교적 자치권마저 박탈당한다면 유대의 앞날은 캄캄할 뿐이다.


한편 가야바의 말에서 우리는 그가 이미 예수를 죽이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예수가 민중의 지도자이기를 거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를 속죄양으로 삼아 처형하는 것이 더 큰 사태를 사전에 막는 묘법이 될 거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문제는 어떤 방법으로 그를 체포하여 어떤 방법으로 죽이느냐이며, 어떤 방법이 민중의 저항을 받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중의회가 어떤 결론에 도달했는지, 가야바의 생각이 어떠한지 예수는 알고 있었다.
그를 죽이려는 사람들이 광야에 나타나자 예수는 그들을 피해 제자들과 함께 광야에서 가까운 에브라임이라는 마을로 가서 지냈다(요한복음서 11:54).
에브라임은 사마리아인이 사는 동네다.
사마리아인과 유대인들은 서로 반목하고 있으므로 예수를 죽이려는 사람들이 잠입하기에 적합한 곳이 못 되었다.
예수와 제자들이 유월절 전까지 지내기에는 비교적 안전한 곳이다.
예수는 광야에서 죽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죽음의 세례는 유월절에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져야 했다.
예수는 사마리아 땅에서 기도를 올렸다.


의로운 사람에게는 고난이 많지만,
주께서는
그 모든 고난에서 그를 건져주신다.
뼈마디 하나하나 모두 지켜주시니
어느 것 하나도 부러지지 않는다.
악인은 그 악함 때문에 끝내 죽음을 맞고,
의인을 미워하는 사람은
반드시 마땅한 벌을 받을 것이다.

주님은 종들의 목숨을 건져주시니,
그를 피난처로 삼는 사람은
누구나 형벌을 받지 않는다.
【시편 34:19?2】


예수는 의인에게는 고난이 많을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고난에서 구해준다고 믿었다.
하나님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죽기 전에 극적으로 자신을 건져주지 않으신다면 죽은 후에라도 사흘 안에 건져주실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한 믿음이 없었다면 어떻게 고난을 자초할 수 있었겠는가!
그는 자신이 좋아하던 이사야서의 ‘고난받는 종’의 노래를 떠올리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전에는 그의 얼굴이
남들보다 더 안 되어 보였고,
그 모습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상해서,
그를 보는 사람마다 모두 놀랐다.

이제는 그가 많은 이방 나라를
놀라게 할 것이며,
왕들은 그 앞에서 입을 다물 것이다.
왕들은 이제까지 듣지도 못한 일들을
볼 것이며,
아무도 말하여주지 않은 일들을
볼 것이다.
【이사야서 52:14?5】

그는 자신이 사람들로부터 받들어져 높임을 받고 크게 존경받게 되리라고 믿었다.
그러한 믿음과 소망이 없는 예수를 상상하기란 힘든 일이다.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았다면 죽음으로부터 부활할 특권도 받았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그는 장차 일어날 일에 관하여 제자들에게 말해줄 수 있었다.
사흘 후에 부활할 것이란 그의 장담은 하나님에 대한 그의 신뢰의 표시다.
그는 이사야의 다음과 같은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주께서 죽음을 영원히 멸하신다.
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말끔히 닦아주신다.
그의 백성이 온 세상에서 당한 수치를
없애주신다.
이것은 주께서 하신 말씀이다.
【이사야서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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