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 속에서 더 큰 외로움을 느끼고 
 

김광우의 저서 <예수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제자들을 떠나보내고 예수는 홀로 지냈다. 죽음을 준비해야 했다.
제자들이 함께 있지 않았으므로 이 시기에 그가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기록이 없다.
아마도 닥쳐올 수난을 상상하면서 괴로워하고, 죽음을 이겨내기 위해 기도하며 시련을 감당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스렸을 것이다.
결단의 길을 떠나려 하자 수심에 찬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홀어머니를 남겨두고 떠날 생각을 하니 슬픔이 북받쳤다.
그가 고향 사람들에게 배척당해 동네를 떠날 수밖에 없었을 때 어머니는 자식의 앞날이 무사하기만을 바라면서 자식을 배웅했고 예수는 연신 뒤돌아보면서 어머니의 눈에 흐르는 눈물을 보며 자신의 눈물을 닦았다.
이제 어머니에게 처절하게 처형되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 무렵 로마에는 정치적인 변화가 있었다.
권력자 세이아누스가 티베리우스 황제를 거역한 죄로 로마에서 처형당한 것이다.
그의 처형은 유대와 무관하지 않았다.
본디오 빌라도는 세이아누스의 후원을 받아 유대의 총독으로 부임했기 때문이다.
가야바가 장악하고 있는 중의회도 로마에서 전개되는 상황을 예의 주시했는데 그곳의 정치적 변화로 행여 중의회의 기능이 마비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친로마주의를 표명했던 분봉왕 헤롯 안디바도 자신의 위상에 변화가 있을까봐 잔뜩 긴장했다.
빌라도, 중의회, 안디바 모두 다가오는 유월절이 무사히 지나기만 바랄 뿐이었다.


이제 각지에서 사람들이 유월절을 지내려고 예루살렘으로 몰려온다.
중의회와 빌라도 총독, 안디바는 유대인들의 반로마 감정이 봉기로 발전하지 않도록 사전준비를 철저히 해두어야 한다.
그들 역시 제로테와 반로마 혁명을 일으키려는 사람들이 유월절을 봉기에 적절한 날로 여기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가야바는 무사안일주의자였다.
그는 어떤 변화도 바라지 않았으며 중의회 기능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면 로마에 아부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가야바는 감시원들을 더 많이 풀어 예수를 비롯하여 예언자를 자칭하는 종교지도자들과 지하에서 민중을 충동하는 제로테의 동향을 낱낱이 보고하도록 했다.
감시가 소흘하여 소요가 일어난다면 감시원들에게 책임을 추궁하여 혹독한 체벌을 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정치적 긴장감이 감돌던 이때 바라바와 그를 따르는 일당이 반로마 궐기를 계획했다가 발각되어 로마 군인들에 의해 예루살렘으로 압송되었다.
반로마 감정을 가진 사람들은 바라바의 체포 소식에 동요되어 총독에게 바라바를 풀어달라고 탄원했다.
바라바는 순식간에 영웅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예언자로 여겼으며, 더러는 그가 메시아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가기 전 요단 강가에 들렀다.
그에게는 감회가 깊은 곳이다.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은 곳이며 많은 나날을 명상하여 자신의 사역 목적을 발견한 곳이다.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 광야에 집결한 순례자들은 예수를 보자 세례자 요한이 부활한 것처럼 여겨졌다.
자신들에게 정치적 사회적 평화를 가져다줄 사람이라 생각되었다.
그가 선두에 서서 폭발적인 민족 감정에 불을 당겨주기를 바랬다.
마태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랐다고 기록했으며(마태복음서 19:2) 누가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의 수가 수만 명이나 되어 서로 밟힐 지경이었다고 기록했다(누가복음서 12:1).
수만 명에 에워싸인 그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러면 군중 속에서 더 큰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