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공자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그 영향이 중국에서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대단하다.
한 사람의 사상이 이렇듯 오랫동안 폭넓게 지지를 받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공자는 기원전 551년 음력 8월 27일에 노나라 창평향 추읍에서 홀씨와 주나라 후예인 희성의 안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공자의 부친 숙양씨는 마을의 대부로 힘 센 장사였다.
그는 여씨로부터 딸만 9명을 얻은 후 첩으로부터 맹피라는 아들을 얻었는데 그가 공자이다.
공자가 기원전 479년 그의 나이 73세에 타계한 후 그를 따른 무리들이 그의 가르침을 받들어 학파를 결성했다.

공자의 사상을 받아들여 여기에 성선설을 보탠 이는 맹자(390?-305?)로서 그는 추나라 사람인데 추나라는 나중에 노나라에 병합되었다.
맹자는 주나라가 멸망하기 전 춘추전국시대를 살면서 공자와 마찬가지로 왕들에게 민본정치를 하라고 강권했으며 또한 공자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정치철학에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이론가였지 혁명가는 못되었다.

공자의 사상은 2천 년 이상 중국의 지배적인 사상으로 영향을 발휘했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중국에서 손꼽히는 효자들 중에 공자의 제자 세 사람은 들어있지만 정작 효를 중시한 공자는 들어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공자가 유일한 중국의 사상가는 아니였고 동시대에 노자가 있었다.
노자가 과연 역사적으로 실존했는지 안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저서로 도덕경이 전해오고 있다.
그의 가르침은 공자의 것과 비교할 만하며 그의 가르침을 전수 발전시킨 사람이 장자이다.
노자의 도는 서양사람들의 로고스Logos 또는 신플라톤주의자 프로티누Plotinus의 나우스Nous(정신, spirit이라고도 한다)와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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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소크라테스 
 

우리가 아는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이 전한 소크라테스이다.
엄격히 말하면 어디서 어디까지가 진정한 소크라테스이고 어디서 어디까지가 플란톤의 소크라테스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를 만났을 때는 아주 어렸을 적이었고 그는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이복형으로부터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라톤은 마치 자신이 옆에서 보고 들은 스크라테스를 묘사했는데 그만큼 문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사형에 처해진 것은 기원전 399년이었고 그때 그의 나이 70살 정도였다.
소크라테스는 아주 못생겼으며 들창코에 올챙이 배를 했다.
극작가 시노폰Xenophon은 소크라테스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는 사티릭Satyric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실레누스Silenus(박카스의 양아버지인 뚱뚱한 노인)들 보다 더욱 못생겼다."

소크라테스는 늘 초라한 모습이었으며 헌옷을 주로 입었고 맨발로 보행했으며 춥거나 덥거나 목이 마르거나 그런 것들에 무심했고 그런 그의 태도는 아테네 사람들에게 놀라움의 대상이었다.
플라톤이 저술한 <심포지움>에는 추운 겨울 소크라테스가 군인이었을 때 "보통 옷차림에 맨발로 신발을 신은 군인들과 함께 행진했는데 군인들은 그가 자신들을 경멸이라도 하는 것인양 느껴져 그를 노려보았다"고 적혀 있다.

소크라테스는 어디에서고 명상에 잠겼는데 때로는 밤새 선 채로 명상에 잠겼으며 추운 겨울에도 선채 명상에 잠겼으므로 사람들은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그럴 수 있는지 숨어서 봤는데 새벽에야 명상을 마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한다.
이 또한 플라톤이 기록으로 전한 이야기이다.

소크라테스는 주량이 대단했다.
플라톤의 저서에는 그가 파티에 초대받아가 포도주를 마셨는데 밤새 마셨고 어느 누구보다 많이 마셨으며 새벽에 모두들 골아떨어졌지만 그는 여전히 대화하면서 술에 취하지 않았다.
분별없이 음주를 한 초기 박키Bacchi들과 달리 소크라테스는 피타고라스와 마찬가지로 지성적인 박키였던 것 같다.
윤리적인 면에서 보면 소크라테스는 오르페우스 종교의 모든 성직자들 가운데 가장 모범이 되는 성직자와도 같았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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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는 젊었을 때 
 

소크라테스는 젊었을 때 파르메니데스Parmenides와 그의 제자 제노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소크라테스는 젊었으므로 대학자 앞에서 하룻강아지 무서운 줄 모르고 자신의 '아이디어들의 이론'에 관해 장황하게 그 타당성을 말했다.
파르메니데스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경청한 후 이론의 무모함을 지적해 그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때 소크라테스는 정의, 아름다움, 그리고 선에 관해 젊은이답게 자신만만하고 열정적으로 웅변하면서 모든 사물에 관해 온전한 아이디어들이 정신세계에 따로 있다고 주장했는데
석학 파르메니데스의 귀동냥을 구하기에는 턱 없이 모자랐다.
파르메니데스는 "네 말대로라면 머리카락, 진흙, 그리고 먼지에도 아이디어가 따로 있을 것이다"라고 소크라테스를 놀렸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분개하면서 그러한 것들에는 아이디어들이 없다고 말한 뒤 아이디어들이 없는 것들을 없다고 생각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불리한 논쟁에 더이상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고 논쟁에서 빠져나왔다.
파르메니데스는 소크라테스에게 말해주었다.
"그래, 맞다.
소크라테스, 네가 아직 젊기 때문이다.
내가 실언하는 것이 아니라면 네가 더 성장한 후 철학을 제대로 알게 되면 그때 사물의 의미조차도 경멸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그날 파르메니데스의 학자적 아량에 감동했으며 그의 견해에 동조해서 말했다.
"세상의 모든 것들에는 공통적인 분명한 아이디어들이 있으며 그것들로부터 명칭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면 유사한 것들은 유사한데 그 이유는 그것들이 유사함을 지녔기 때문이고 위대한 것들은 위대한데 그것들은 위대함을 지녔기 때문이며 의로운 것들과 아름다운 것들은 의롭고 아름다운데 그 이유는 그것들이 의와 미를 지녔기 때문입니다."

젊은 소크라테스의 말투는 마치 "청진동의 해장국은 맛있기 때문에 맛있으며 조순이는 예쁘기 때문에 예쁘다"고
말하는 것과도 같았다.
소크라테스의 미학은 아름다움 자체를 추구한 예술품이 고상하고 온전히 아름다운 것이며 예술을 위한 예술을 (달리 말하면 순수예술을) 추구하는 것이 예술을 사랑하는 것이라 하겠다.

파르메니데스가 지적한 소크라테스의 문제
파리메니데스는 소크라테스를 만난 후 그가 당면한 6가지 문제를 지적했다.
이는 플라톤이 저서 <파르메니데스>에 기록한 것으로 럿셀이 <서양철학사>에 번역해 옮겼다.

1. 모든 사물은 정신세계의 아이디어에 공통적인 것이냐?
아니면 부분적으로 그러하냐?
만약 한 가지 사물, 탁상이나 의자라고 할 때 동시에 많은 장소에 이런 것들이 있을 경우 또는 탁상과 의자에 대한 아이디어들을 나눠가진다면 (각 탁상과 의자가 각각의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고 소크라테스가 말했으므로)
사물이 가지는 작은 부분은 온전한 아이디어의 부분보다 더욱 작지 않겠느냐.
그래서 소크라테의 말은 불합리한 것이다.
2. 만약 사물과 아이디어에 공통점이 있다면 사물과 아이디어는 유사한 것이므로 거기에는 또 다른 아이디어가 있어 독특한 것과 고유한 아이디어 모두를 포용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독특한 것과 두 개의 아이디어를 포용하는 또 다른 아이디어가 있어야 하며 이렇게 한없이 아이디어들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이렇게 아이디어가 하나가 아니라 많은 것이라면 모든 아이디어들은 한없는 아이디어들의 연속이 되지 않겠느냐.
3. 소크라테스가 아이디어들이 단지 사고들이라고 가정한다면이라고 말하려고 하자 파르메니데스는 사고들은 반드시 어떤 것들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4. 아이디어들이 독특한 것들을 닮을 수 없는 이유는 2의 경우와 같다.
5. 아이디어들이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것들을 우리가 알 수 없는 이유는 우리의 지식이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6. 신의 지식이 온전하더라도 우리는 신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신은 우리를 다스릴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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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이 집행되던 날 소크라테스는 
 

사형이 집행되던 날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방문한 제자와 친구들에게 사랑에 관해 설교했는데 남녀 사이의 사랑이 아니라 지혜에 대한 사랑 즉 철학에 관해서였다.

철학Philosphy은 두 단어의 합성어로 사랑한다는 philo와 지혜라는 Sophy가 합쳐져서 지혜의 사랑이란 뜻이 되었다.
Philharmony는 그러니까 Harmony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여하튼 소크라테스는 최후의 날에 철학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악처로 소문난 아내 크산페오가 남편을 만나러 와 목을 놓고 통곡했다.
크산페오가 악처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남편이 돈도 안 받고 젊은이들을 장터에서 가르쳤고 때로는 집에까지 데려와 가르쳤기 때문이다.
하루는 소크라테스가 방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2층에서 쿵쿵 소리가 들렸다.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에게 비가 올 조짐이라고 했다.
쿵쿵 소리는 크산페오가 화가 나서 일부러 발을 구르며 낸 소리였다.
얼마 후 천장으로부터 물이 떨어졌다.
크산페오가 화가 나서 물을 쏟은 것이었다.

크산페오가 어찌나 섧게 우는지 소크라테스는 도저히 이야기를 지속할 수 없어 제자에게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라고 했다.
그리고는 조용한 가운데 이야기를 계속했다. 해는 서산에 기울고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해가 지기 전에 사약을 마셔야 했는데 그는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에 여념이 없었다.
간수는 사약을 마실 시각이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겸연쩍어 하며 문가에서 기웃거렸다.
소크라테스는 그때서야 눈치를 채고 간수를 불러 사약을 마시는 요령에 관해 물었다.
간수가 친절하게 설명한 대로 그는 사약을 들이킨 후 약기운이 온몸에 제대로 퍼지게 하려고 왔다 갔다 하다가 다리가 무거워지는 걸 느끼고는 침대에 반듯이 누웠다.
그리고 이불을 얼굴 위로 덮었다.
그때서야 생각이 났는지 그는 이불을 조금 내리고서는 친구에게 부탁했다.
"크리토Crito, 아스클레피우스Asclepius에게 닭 한 마리 빚을 졌는데
자네가 대신 갚아주겠나?"

크리토가 그러마고 대답하자 그는 안심하고 저세상으로 떠났다.

소크라테스의 영혼은 육체의 무덤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며 플라톤은 저서 <패도>에 이와 같은 내용을 상세하게 기술한 후 결론으로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의 시대의 모든 사람들 중 가장 지혜로웠으며 의로웠고 훌륭했다."

약 2400년이 지난 후 철학자 럿셀은 <서양철학사>에 플라톤과는 상반된 견해를 피력했다.
"소크라테스는 정직하지 못했으며 사고가 복잡했고 개인적으로 지식을 위한 지식을 찾기보다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동의할 수 있는 지식만을 찾았다.
그는 이전의 현인들 일곱 명(그리스의 현인들)과는 달리 과학적인 사고가 불충분했지만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윤리를 스스로 증명해보였다.
이는 철학에서 볼 때 죄를 짓는 일이고 진리에 대해서는 불신행위에 해당한다.
그는 죽어서 이미 저승에 가 있는 성자들과 담소하는 재미를 가지려고 했는데 철학자라면 과학적 연옥(정죄하는)에서 오래 사는 것이 떳떳한 일일 것이다."

플라톤이 설립한 아카데미Academy는 서양사에 최초의 대학으로 구둣점을 찍었다.
소크라테스를 평생 존경해마지 않았던 플라톤은 348년이거나 이듬해 제자의 결혼식에 갔다가 피로연 도중 타계했다는 설이 있고 또 다른 설에 의하면 집필 도중 세상을 떠났다.
플라톤은 자신이 설립한 아카데미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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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철인정치는 공자와 맹자가 존경했던 3황5제 

플라톤의 철인정치는 공자와 맹자가 존경했던 3황5제와 같은 이들이 표방한 덕치주의와 같다.

플라톤의 저서 <공화국 Republic>은 서양철헉의 입문서이다.
철학을 이 책을 읽고 이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플라톤의 공화국은 고대 그리스인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국가를 말한다.
물론 인구가 적은 도시국가에서나 꿈꿀 수 있는 이상적인 나라이다.

플라톤은 왕의 아들, 귀족의 아들, 상인의 아들 가리지말고 한데 모아 합숙시키면서 동일한 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위 말하는 교육 균등의 자유를 허락하는 것이다.
교육의 내용은 체육, 철학, 음악이다.
그때만 해도 이 셋만 배우면 이상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채육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체육뿐 아니라 나라를 방어할 수 있는 군사훈련도 포함된다.
육체를 단련시켜서 튼튼한 몸을 만드는 것인데 플라톤은 의사가 필요없을 정도의 튼튼한 체력을 갖추는 것이 목적이다.

음악 역시 오늘날 우리가 아는 음악이 아니라 시, 예술, 문예가 포함된다.
주 목적은 용기, 절제, 미덕을 갖게 만들고 철학을 공부할 수 있는 바른 정서를 갖추게 하는 것이다.
철학을 일찌감치 가르치지 않고 바른 정서를 갖춘 후에야 가르치는 이유는 일찍 가르치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아무하고나 논쟁을 하겠다고 덤비기 때문이다.
이렇게 교육을 동등하게 제공하지만 학생들의 실력에는 차이가 생기기 마련이다.
해서 시험을 치루어 우수한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들을 구분한다.

첫 번째 시험에서 낙방하는 사람은 상인이 된다.
두 번째 낙방하는 사람은 군인이 된다.
두 시험 모두 패스한 사람은 철학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로 장차 나라를 이끌 지도자들이다.
이들이 정부관리인 수호자들이 된다.

플라톤의 공화국에서는 철인정치가 이루어지는데 가장 우수한 인재들에게 나라를 맡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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