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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트랙을 도는 여자들 ㅣ 오늘의 젊은 문학 3
차현지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11월
평점 :
우선, <트랙을 도는 여자들>의 해설은 안타깝다. 열 편의 소설을 묶은 이 책을 왜 중언부언으로 지난하게 요약해서 그것을 해설이라고 제목 했는지 모르겠다.
부러움인지 깍아내림인지 모를 감정이 건조한 감상에 식은 콜라겐 덩어리처럼 섞여 있다.
정작 작가는 목에 기름칠을 하고 느끼한 말을 뱉는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불균질한 사람들의 불균질한 이야기라고 한다. 해설이.
균질하지 않음에 대한 것이다. 균질은 표준이라는 잣대의 범위 안에 들어감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래서 해설은 말한다.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다’라고 말한다.
주택가 거리에서 엄마는 칼에 찔려 죽었고, 그 칼에 찔려 죽은 엄마의 딸과 스물두 살 때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죽어 후 줄 곧 혼자 살았으며 ‘안간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드러내지 않게 살아온 여자가 트랙을 도는 운동장에서 만난다. 칼에 찔려 죽은 엄마는 남자친구가 자주 바뀌었고, 딸은 그렇게 자주 바뀌는 엄마의 남자 친구가 ‘아빠’로 오랫동안 알고 있었다.
신혼이 그대로 박제된 것 같은 집에서 전처를 결코 잊지 못한 것 같은 남자와 6년을 사귀었지만, 자신이 전처의 인스타그램을 찾아 보여준 이후 어느 날 남자는 헤어지자고 한다. 그 여자는 그 전처의 레스토랑을 아빠와 간다. 아빠와 엄마는 이혼했는데, 엄마는 아빠의 근황이나 건강을 끊임없이 보고하라고 한다.
b는 5년 해외근무를 하면 전임 교수가 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내가 된 여자친구와 갓 사귀기 시작했을 때이고, 말이 안 통하는 것이 무서워 해외여행도 가지 않는 아내가 눈에 밟혀 해외 근무를 하지 않았다.
“자네가 정말 잘못 셈한 게 뭔지 아나? 두 패가 따로 논다고 생각한 거였네” p87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사람” p88
말 그대로 잘 못 생각한 것이다. b는 번번이 임용 심사에서 떨어졌고, 해외 근무를 다녀온 제자가 b의 경쟁자가 합류했고, 친구의 도움으로 다들 간다는 어느 기업의 연구소장으로 끝내 갔을 때도, 하필이면 조미료 파동이 일어나서 b는 몸빵처럼 뉴스에 나와서 희생양으로 짜집기 당한 채 뉴스에 나왔다. 아내는 안타까움은 이미 퇴화되었고, b의 전락의 과장 내내 긁었다. 그 뉴스가 나왔을 때도 모질게 긁었다. 그 긁음에는 b는 더 이상 참지 않고, 모든 가족이 모여 아침을 먹던 그 식탁에서 음식이며 식기를 모조리 아내에게 던졌고, 식탁 주변은 깨진 그릇 조각으로 발을 디딜 수 없었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을 정리한 것은 안타깝게도 b가 아니라 아내였다”
균질하다 불균질해졌거나, 애당초 불균질했었고 지금도 변함없이 불균질한 삶을 불균질하다는 것처럼 서사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이 책의 해설처럼 말이다.
엄마가 살인을 당했다. 바로 그 근처에 딸이 살고 있다. 그 딸의 집에 전세가 싸니 이사 가라고 소개받았다. 대부분 이혼했다. 착각으로 인생은 실패했다. 갑자기 버림받았다. 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대들었다. 목 졸렸고, 오지게 맞았다. 박사 학위를 받는 데 16년이 걸린 아들은 아는 형의 제안으로 웹드라마 조명팀으로 합류했다. 그 아들은 행복하다는데 아비는 속이 타 죽는다. 허우대만 멀쩡했던 아빠는 동생이 대학에 들어가자 무일푼으로 엄마에게서 쫓겨났다. 그래서 딸의 집 거실에서 생활한다. 그런데 아빠는 엄마 명의의 차를 아직도 타고 다니고 보험료도 엄마가 낸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고, 모든 것이 정신이 나간 것 같고, 정상에서 한참 벗어났고 이제는 정상과는 영영 이별인 것 같다. 낭패라는 말은 너무 가벼워 붙일 수도 없고, 모든 게 끝나버렸다는 말이 결론처럼 그리고 엔딩 커튼처럼 어울릴 뿐인 것 같다.
“외로운 건 결론이지, 기분이 아니라고” p96
고상한 감상을 가질 일 없는 우리 인생을 온통 기름이 튀고 먹는 이들을 번들번들하게 만드는 삼겹살이 아닌, 기름을 쫙 뺀 수육처럼 보여준다.
수육에는 빠르게 한 잔 들이켜고 바닥에 탁하고 놓으며 소주를 마신다. 감정도 수육에서 빠진 기름처럼 하나 남지 않은 것 같지만, ‘탁’하는 여운은 그 어느 것보다 짧지만 길게 여운 된다.
“외로운 건 결론이지, 기분이 아니라고.” p96
<트랙을 도는 여자들>의 저자는 정말 추천사처럼 목에 기름칠 하나 하지 않고, 담백하기도 하고 직설적이기도 하고 투박하게 뱉어낸다.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다.
그래서 문장도 간결하다. 군더더기 없이.
그래서 소설들은 서사되어 과거로부터 흘러와 현재에서 맴돌다 미래로 다시 흘러가는 것이 아니고, 독자를 그 소설의 한 가운데로 정확하게 내리꽂아준다. 소설 속 파라솔 대여 장사를 하는 할아버지가 신속하게 모래를 파고, 오전인지 오후인지 또는 바람이 부는지 날씨가 좋은지에 따라 요구되는 각에 맞춰 정확하게 파라솔을 꽂듯이, 우리를 소설 속 그 자리에 꽂아준다.
아주 정확해서 우리가 그 속의 어느 등장인물인 것 같은 착각을 가지게 한다.
그리고 균질함이 우리 인생의 표준 잣대가 아니고 불균질함이 그 잣대여서 소설과 현실의 경계는 무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