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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멩코 추는 남자 (벚꽃에디션) - 제1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허태연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9월
평점 :
품절
노년을 아름답게 찬미해서 읽는 이에게 노년을 기다리는 설렘을 주는 책이 얼마나 될까?
'시몬 드 보부아르'가 노년에 대해 논하였다고 하지만, 책 표지에서 한껏 진지함과 명석함이 아직도 여전하다는 듯한 그녀의 인상은 노년을 대표한다기보다는 아직도 젊다는 것을 억지스럽게 보여주려는 것으로만 보인다.
우리의 새 소설이 그 '노년'에 대해 설렘을 갖게 해준다는 것은 신선함을 넘어, 디오니소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고대 철인부터 시간도 물질의 상전이인 것을 밝혀내고 있는 현대 물리학까지 풀지 못하고 더 아리송한 질문만을 할 수밖에 없는 '죽음' 이전의 '노년'을 받아들일 만 한 것으로 인식시켜주는 것은 충격적이고 파격적이다.
소설의 도입부를 읽고 초반에서 중반을 향해 열심히 달리는 동안, 노년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우리 모두가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도 문득 고뇌에 빠지는 '죽음'과 그 '죽음' 이전의 '노년'에 대해 도대체 어떻게 이 책은 '동경'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플라멩코 추는 남자>는 제11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했다.
혼불문학상
1998년 12월 세상을 떠난 대하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崔明姬)의 문학 정신을 후대에 널리 알리고, 나아가 한국 문단의 미래를 짊어질 문학인들의 초석을 다지는 한편, 심화된 한국 소설의 연구 발전을 위해 전주문화방송이 2011년 제정한 대한민국 문학상이다. 당선작은 상금 5,000만 원을 받으며, 단행본으로 출간된다. 2001년 혼불기념사업회에서 제정한 청년문학상과 혼불학술상 2개 부문도 통칭하여 혼불문학상으로 불린다.
[네이버 지식백과] 혼불문학상 [魂─文學賞] (두산백과)
이번 11회는 수준이 미달이라는 둥, 결선에 오른 작품들의 한계가 이렇다 저렇다는 말을 했지만, <플라멩코 추는 남자>로 '혼불문학상'이 거룩해 보일 지경이니, 이 작품은 전주문화방송에게 큰 효자임에 틀림없다.
다시, 내가 이 책을 통해서 왜 노년을 기대하게 되었는 지로 돌아가 보자.
'노년'. 늙었다. 젊지 않다. 효율이 떨어진다. 근육은 늙음에 덜 영향을 받는다고 해도 어느 나이대가 넘어가면 급격히 쇠락하는 것 같다.
어느 토요일 수영장에서 모두들 제일 오른쪽 레인에서 오랫동안 자유형을 하고 계시는 분을 봤다. 70인지 80인지를 넘으신 분인데, 거의 한 시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쉼 없이 자유형을 하고 계셨다. 모두들 대단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수영을 몇 개월만 열심히 한 20-40대는 그 속도로 한 시간 이상 수영하는 것이 유별나지 않다.
'운동'에서 '노년'은 더 서글프다. 운동의 매력에 빠지는 30대도 조금 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이라는 후회에 빠진다.
첫 번째 구미를 당긴 것은 '은퇴'였다.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일을 갑자기 하지 않으면 가정에서 설자리를 잃고 자존감을 상실하고 무기력해진다고 하지만,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너무 매력적으로 들렸다. 내가 요즘 일이 너무너무 많아서 그저 부러운 것일 수도 있다.
매일 출근해서 온종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낼 곳이 없어지고, 그런 날들이 끝없이 반복된다면, 감당할 수 없는 시간에 질식할 수도 있겠지만, 죽기 전에 해야 할 일들 풀어야 할 매듭들이 가득하다면, 더욱이 그 과정에서 그동안 미처 몰랐던 것을 발견하고, 알고 있던 것 또한 새롭게 재 발견한다면, 그것은 정말 제2의 생을 살아가는 것이 될 것이다.
마흔한 살에 쓴 청년일지, 그리고 그 청년일지에 죽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을 써두었다. 알코올 중독으로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고 그는 미래의 자신이 해야할 일들을 써 내려가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성실하게 살아온 새로운 삶을 은퇴하며 약속했던 일들을 하며 다시 또 새로운 생을 시작한다.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플라멩코를 배우고, 전처와 함께 기억 속으로 밀어버렸던 딸을 다시 만나고.
이혼 후에 재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렸지만, 청년일지에 쓰인 대로 자신이 버리고 다시는 찾지 않았던 이제는 마흔이 된 딸을 다시 찾으러 나설 때는 불편함이 느껴졌다. 온전하지 못한 가정의 가부장적이고 무책임한 늙은이의 이야기로도 생각했다. 지금의 그 행복한 가정에도 딸이 있으니 그 의도함이 너무 드러나는 것 같기도 했다.
재회한 딸을 만나기 전 그동안 지급하지 못한 양육비를 청구하면 어떻해야 할지를 걱정하는 모습에는 현실적일 수도 있지만, 야박하고 더 읽고 싶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서 더 현실적이었고, 딸과 화해해나가는 모습은 스크린 넘어가 아닌 이쪽 편의 드라마였다.
수상소감에서 저자가 밝힌 소설의 배경에서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저자가 열여섯이고 저자의 아버지가 마흔둘이셨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 아버지의 이름을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으로 부여했다. 이야기를 지어내듯이, 자신의 아버지가 살아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하며 소설 속 아버지를 그려나갔다고 한다.
"아버지 없이 자라는 동안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제가 의지한 모든 분께 노년의 삶을 상상할 여유를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아버지를 잃은 모든 분께 아버지를 상상할 기회를 선물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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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나 잘했어? 나로 인해서, 아빠 행복해?" p2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