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2023.5.30.

수다꽃, 내멋대로 43 88만원세대



  어릴 적에 골목이나 너른터(운동장)에서 동무들하고 뛰놀다가 갑자기 우르르 서로 무리를 지으며 부른다. “종규야! 이리 와!” 이쪽에서 무리지은 아이들도 동무이고, 저쪽에서 무리지은 아이들도 동무이다. 둘로 나눈 무리는 한 사람을 더 늘리려고 용을 쓴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다가 땀을 삐질삐질 흘린다. 드디어 한마디를 터뜨린다. “난 어디에도 못 들어가겠어! 둘 다 동무들이잖아!” ‘그냥 놀 뿐’이라지만, 줄다리기나 오징어나 콩주머니를 하며 끝없이 짝을 바꾸어서 어울리는 놀이가 아닌, 처음부터 무리를 갈라서 누가 이기느냐 지느냐로 다툰다면, 어디에도 안 끼었다. 뒤로 홱 돌아서서 달아난다. 쌩 하고 달아나는데, 동무들은 ‘달리기’를 하자는 줄 여겨 어느새 무리가 풀어지고 달음박질놀이로 바뀐다. 우리는 왜 ‘어느 쪽’에 서야 할까? 어느 해에 태어났기에 ‘태어난해’라는 또래로 묶여야 할까? 어느 해에 무슨 배움터(학교)를 들어갔기에 ‘학번’이라는 금을 갈라야 할까? 우리는 우리 ‘이름’으로 살아갈 뿐, ‘나이·주민등록번호·학번·군번’으로 갈라야 할 까닭이 없다. 이쪽이건 저쪽이건 그쪽이든 똑같다. 저마다 옳다고 외치지만 ‘갈라침·금긋기(분단·분열·분리)’일 뿐이고, 이 무리짓기부터 ‘따돌림(차별)’이 싹튼다. 2007년이던가, 《88만 원 세대》라는 책이 나오고, 둘레에서 이 책을 마구 추켜세우던 그즈음, 나는 어쩐지 코웃음이 나왔다. “무슨 얼어죽을 88만 원?” 그무렵 내 한달벌이는 ‘88만 원’은커녕 ‘50만 원’도 ‘30만 원’도 아니었다. 때로는 ‘10만 원’으로 볼볼 기었다. ‘그들(지식인)’이 금긋는 ‘88만 원 세대’라는 말은 고약했다. 왜 이런 ‘무리짓기(세대갈등)’를 일삼아야 하는가? 일부러 틀(프레임)을 만들어서, 왜 자꾸 갈라치기(이간질)를 하는가? 이 틀(프레임)로 이 나라에 새롭게 불길(분노)을 일으키고, ‘분노 프레임’으로 강단·강의를 차지하면서 ‘새길’이 아닌 ‘불길(분노)’로 금긋기(이분법에 따른 사회분열)로 치닫겠구나 싶었다. 《88만 원 세대》가 ‘나쁜책’일 수는 없되, 이런 책을 쓰고 이야기를 펴는 이들은 ‘통장잔고 0원’을 겪어 본 적이 없을 텐데 싶더라. ‘가난·구조적 차별·학벌’을 따지는(비판하는) 글을 쓰고 강의를 하는 분들 가운데 고졸·국졸인 사람이 있을까? 또는 서울·수도권 아닌 시골에서 사는 사람이 있을까? 가난하지도 않고, 가난을 겪지도 않고, 빈곤층·차상위계층도 아닌 그분들은 ‘근로장려금’을 받은 일도 없겠지. 예전에 최영미 시인이 ‘근로장려금 수령 대상자’로 딱 한 해 된 적 있다는 글을 남긴 적이 있는데, 그저 웃음이 났다. 여태 가난해 본 적이 없다가 꼭 한 해 돈벌이가 줄었대서 징징거리면, 늘 가난하게 살아가는 차상위·근로장려금 수령자는 어찌해야 할까. 달콤발림으로 꼬드기면서 ‘시키는 대로 나팔수가 되면 다달이 통장잔고가 늘어난다’고 다가오는 무리가 늘 있다. 온나라 어느 고장에서나 그 고장 기득권(시장·군수)을 봐주는(옹호하는) 글을 써주면 짭짤한 벌이와 자리(교수 또는 고문 또는 원장)를 준다. ‘나눔’은 아름길이 될 수 있지만 ‘가름·쪼갬’은 서로 미워하고 손가락질하고 불길을 일으켜서 그저 싸움(전쟁)으로 치닫는 굴레이다. 우리가 스스로 사랑을 지피지 않고서 불길(분노)만 지필 적에는, 모든 정치·문단·언론·교육 권력자들이 뒤에서 팔짱끼며 낄낄댄다. 그들은 우리가 ‘아름다운 책’이 아닌 ‘분노를 지피는 책’을 더 많이 읽어서, 스스로 ‘생각을 멈추기’를 바라더라. “생각하는 사람이라야 산다”는 말씀이 있듯, 참말로 우리는 ‘사람’일 노릇이다. 우리말 ‘사람·살다·살리다·사랑·사이·새(멧새)·생각’은 말밑이 같다. ‘살(살갗)’도 같은 말밑이다. ‘살빛(살색)’은 나쁜말이 아닌, “사람 겉몸을 감싼 얇으면서 빛나는 옷”인 ‘살’을 드러내는 빛깔인데, ‘살빛’이란 낱말을 따돌림말(차별어)로 여겨 ‘살구빛’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목소리(논리)가 판치는 대목도, 우리가 스스로 사람됨과 사람빛을 잊어버리도록 내몰고 만다. 그런 목소리도 다 ‘금긋기(분열·이간질)’일 테지. 거짓말을 앞세워 틀(질서·프레임)을 지켜야 한다고 여기는 목소리가 높은 곳에는 어깨동무(평화)가 깃들 틈새가 없다. 그래서 나는 혼길을 걷는다. 몸에도 마음에도 날개를 달면서 뚜벅뚜벅 걷는다. 먼길을 갈 적에는 버스를 얻어타고, 버스에서 내리면 하늘빛을 머금으며 걷는다. 걷다가 멈추어 들꽃을 보고, 바람길을 읽고, 구름꽃을 느낀다. 나는 ‘그들이 세운 틀·무리’에 깃들 마음이 없다. 언제나 ‘아이들’하고 도란도란 어울리고, ‘곁님’하고 ‘나 스스로’ 우리 보금자리를 숲빛으로 가꾸는 길을 가려는 마음이다. 나는 아무 또래(세대)가 아니다. 그저 ‘숲사람’이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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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3.5.29.

수다꽃, 내멋대로 42 딴청



  어릴 적을 돌아보면, 나로서는 일곱 살까지 신나게 놀던 나날이 있고, 여덟 살에 이르러 어린배움터(국민학교)에 깃든 나날이 있다. 여덟 살에 이르기까지 둘레 어른들이 으레, 거의 날마다, 자주 하던 “그래, 여덟 살 때까지는 내버려 둬. 그때까지는 실컷 놀아야지.” 같은 말이 있다. 더 옛날에는 더 달랐겠지. 더 옛날에는 아이들이 무엇을 하든 ‘딴짓·딴청’이라 여기지 않고 ‘놀이’나 ‘소꿉’이라 여겼다. 그러나 ‘틀’에 가두려 하면 모든 놀이·소꿉은 그만 ‘딴짓·딴청(주의력 결핍)’으로 여기면서 ‘나쁜짓(태도 불량)’으로 못박더라. 아무래도 ‘틀(제도권·학교·군대·감옥·정부·사회)’이라는 눈으로는 이렇게 보겠지. ‘틈(자유·기회·시간·소통·대화)’을 두지 않는 ‘틀·굴레’이기에 ‘단단’하게 ‘틀어막’고 ‘틀어쥔(거머쥔)’다. 사람들 넋(영혼)을 틀어쥐어서 마음대로 부리려 하는 나라이다. ‘틈(자유·기회)’이 없으니, ‘틔울(싹틔울)’ 수 없고, ‘틈(시간·대화)’이 없으니, ‘열(생각을 열·말길을 열)’ 수 없다. 우리가 배움터(학교)를 따로 세워서 겪은 지는 이제 고작 온해(100년)이다. 온해 앞서라 하더라도 누구나 배움터를 다니지 않았고, 가난하거나 종(노예·백성·천민)이라는 자리에 있던 사람은 얼씬조차 못 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잊거나 모르는데, 1400년대에 세종임금이 훈민정음이란 글을 지었다고 하더라도, 이 글을 배우거나 구경할 수 있던 사람은 한줌(1%)조차 안 된다. 한문을 익혀서 쓰던 나리(권력자)가 아니면 훈민정음을 듣거나 배울 길이 없었다. 종살이(노예살이·농부·천민)를 하던 사람들은 언제나 짓밟힌 삶이었고, 종이나 붓은 만질 수 없었고, 종이랑 붓은 너무 비싸기까지 했고, 종(노예·백성·천민)으로 살던 사람들은 나리(양반·사대부·권력자)가 쓰는 글을 어깨너머로 구경하려다가 들키면 볼기(곤장)를 얻어맞거나 목숨까지 잃었다. ‘훈민정음·정음·언문·암클’은 1900년대에 접어들 즈음까지 참말로 ‘아무나 못 배우고 못 쓰던, 숨죽이던 글’이다. 나는 1993년에 푸른배움터(고등학교)를 마쳤는데, 그무렵에는 배움터에서 이 대목을 가르쳐 주었고, 적잖은 책에 이 대목이 나왔지만, 어쩐지 요새에는 이 대목을 안 가르칠 뿐 아니라, 마치 1400년대부터 ‘종(노예·백성·천민)으로 억눌린 숱한 사람들’이 글살이(문자생활)를 할 수 있었다는 듯, 거짓말을 가르치는 분이 부쩍 늘었다. 아무튼, ‘딴짓·딴청’이 무엇인가 하고 헤아려 보면, ‘시키려는 쪽에서 시키는 대로 안 한다’요, ‘심부름을 맡기려는 쪽에서 말하는 대로 안 듣는다’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이제 생각해 보자. 아이들은 왜 딴짓이나 딴청을 할까? 어른이 시키는 일·짓·말이 썩 달갑지 않거나 어렵거나 모르기 때문이다.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스스로 생각하고 살필 틈이 있어야 한다. ‘어른들은 다 아는 말’이라지만, ‘아이로서는 다 모르는 말’이기 일쑤이다. 아이 곁에서 ‘한자말이나 영어나 일본말씨’를 손질하거나 걸러야 하는 까닭을 다들 제대로 모르는데, 아이들한테 너무 어려워서 뭔 소리인지 알 길이 없거든. ‘어른들이 교과서나 책으로 적은 글’은 ‘아이한테는 뜬구름잡는 헛소리’이거나 ‘우격다짐으로 외워야 하는 굴레’이곤 하다. ‘숲·숱하다·수북하다·수박·수수하다·수두룩하다·쉽다·쉬다·숨·숨다’는 말밑이 같으며 얽힌다. ‘스스로·스승·스님’도 말밑이 같으며 얽히는데, ‘숲·스스로’는 만난다. 아주 쉬워 흔한 우리말은, 서로 잇닿으면서 생각을 북돋우고 틔우며 연다. 우리가 어른이라면 아이 곁에서 ‘쉽고 수수한 우리말’을 써야, 어른으로서도 어질게 철이 들고, 아이로서도 즐겁게 소꿉놀이를 하면서 마음틔움·생각열기·사랑나눔으로 뻗게 마련이다. ‘집(보금자리·살림터)’이라면 가두지 않는다. ‘틀(학교·군대·감옥·정부·사회)’이라면 가둔다. ‘집’은 심부름이나 시킴질이 안 흐르는, 함께 짓고 가꾸고 일구어 나누는 ‘날개’이다. ‘틀’은 오직 심부름과 시킴질이 판치면서, 외워야 하고 똑같아야 하고 따라가야 하는 ‘수렁’이다. 아이들은 차림옷(교복)을 입으면 안 된다. 똑같은 옷을 맞춰 입히는 데는 ‘틀’인데, 이런 틀은 ‘학교·군대·감옥·정부’인걸. 옷과 몸짓과 말이 틀에 박히면 ‘날개(자유·민주·평화·평등)’를 못 편다. 마음껏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때라야, 날개를 펴면서 틈을 내어 철빛을 읽는 어른으로 자라날 만하다. 틀로 틀어쥐어 억누르고 똑같이 맞추면, 틀에 박히고 말아 마음도 생각도 사랑도 살림도 집도 없이 ‘학생·회사원·지식인’이라는 굴레에 갇혀서 종살이로 흐른다. 다 다른 아이들이 ‘다 다른 몸짓·말짓·눈짓’은 ‘딴짓(다른 짓)’을 해야 맞다. 손가락도 꼬물거리고, 발가락도 꼼지락거리면서 놀아야 아이답다. 아이 아닌 어른도 매한가지이니, 얌전히 앉아서 듣기만 하거나 외우기만 해서는 둘 다 갇힌다. 이른바 ‘수업·강의’에서도 왁자지껄 떠들고 수다를 펴면서 생각과 마음을 주고받아야 ‘교사(강사)·학생’ 모두 날개를 펴며 신나게 새길을 배운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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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3.5.14.

숨은책 824


《悅話堂美術文庫 15 韓國의 民畵》

 김호연 글

 열화당

 1976.6.5.



  1996년 여름에 가시울(철책)에서 나왔고, 밀린 말미(휴가)를 보름 받습니다. 싸울아비(군인)는 날마다 헌책집에 가서 책만 팝니다. 이러고서 싸움터(군대)로 돌아간 뒤, 1997년 12월에 마침내 그곳을 떠날 수 있을 때까지 말미를 안 쓰고 틀어박혔습니다. 젊은돌이는 싸울아비로 끌려가면 ‘잊히’는구나 싶어 멧자락에서 멍하니 하늘바라기·별바라기를 하고 눈쓸이를 했어요. 그때 드나들던 헌책집지기는 “군인한테 책값을 받으면 안 되지. 그냥 가져가시게.” 하면서 실랑이를 했습니다. “군인으로 휴가를 나오면 친구도 만나고 술도 마셔야 하지 않아? 왜 맨날 책만 보러 와?” 하고 물으시는 말씀에는 웃기만 했습니다. 《悅話堂美術文庫 15 韓國의 民畵》를 읽으면서 ‘조자용’ 님 말고도 겨레그림을 눈여겨보는 사람이 있었구나 싶어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김호연 님은 ‘겨레그림’이란 이름을 짓기는 했어도 글은 순 한자투성이예요. 한자는 겨레글이 아니고, 중국말·일본말은 겨레말이 아닐 텐데요. 가만 보면, 우리말·우리글을 살핀다는 분들도 ‘國語·國文學’처럼 한자쓰기를 즐겨요. 스스로 작은이로 발을 디디면 말빛부터 바꿀 텐데요. 그나저나 열화당은 1982년에 껍데기만 바꾸면서 마치 처음 펴낸 듯 눈가림을 했습니다.


- 1996.8.8. 용산 뿌리서점. 내가 하는 일을 믿음과 사랑으로 늘 땀흘려 하길 빌며.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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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3.5.14.

숨은책 823


《지구인을 지켜라》

 러셀 글

 편집부 옮김

 소년생활사

 1977.11.15.



  모두 100자락인 ‘소년생활 칼라북스’ 가운데 아흔여섯째인 《지구인을 지켜라》입니다. 1970∼80년대에 잔뜩 나온 이런 꾸러미는 여러 곳에서 조금씩 다르게 선보이는데 ‘옮긴이’ 이름은 없고, 펴냄터 무늬·판짜임은 일본판을 흉내냈고, 줄거리를 베끼거나 훔치면서 우리나라 이야기책을 몇 가지 끼워맞췄습니다. 저는 1982년에 어린배움터(국민학교)에 들어가면서 글붓집(문방구)을 날마다 드나들었고, 이때 이런 꾸러미를 처음 보았습니다. 여덟 살에 글씨를 익히고 혼자 책을 읽을 수 있은 뒤로 글붓집에서 그림종이(도화지)·글붓(연필)·지우개 들을 사면서 멍하니 바라보는데 글붓집 아저씨나 아주머니가 물어봐요, “왜? 사고 싶어?” “아. 그렇지만 100자락을 다 살 돈은 없어요.” “하나만 사도 돼.” “네? 그래요?” 어머니는 저한테 날마다 120원을 주었습니다. 집이랑 배움터를 오가는 길삯(차비)이에요. 늘 걸어다니면서 120원을 아꼈고, 책 한 자락 값이 모이면 두근두근하면서 하나씩 샀습니다. 지난날 어린이는 ‘배움터 앞 글붓집’에서 꿈이랑 이야기를 천천히 사모읍니다. 걸어다니며 다릿심이 붙고, 며칠 걸으면 책 하나가 생깁니다. 책으로 읽으며 ‘이런 앞날이 있을까?’ 궁금했는데 참말로 새날이 왔습니다.


“학교 앞 문방구나 전국 유명서점에서 판매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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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3.5.14.

숨은책 822


《테레비전, 그 作用에서 受像까지》

 J.벤딕·R.벤딕 글

 윤상해 옮김

 음향문화연구회·신문관

 1962.3.30.



  우리 아버지나 이웃 아저씨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맞추어 집에 보임틀(텔레비전)을 들이려고 무던히 애썼습니다. 나라에서는 큰 놀이판(스포츠)을 자랑해야 한다면서 작은 살림집끼리 어깨를 맞댄 골목마을을 하루아침에 난데없이 밀었고, 커다란 가림담(차단벽)을 세워 큰길에서 안 보이도록 했어요. 《테레비전, 그 作用에서 受像까지》는 ‘우리나라 방송국’이 열고서 온날(100일)이 되는 때를 기려서 나옵니다. 1962년이라면 보임틀을 생각조차 못 하던 사람들이 훨씬 많고, 집전화조차 들이기 힘들었어요. 손으로 짓고, 몸으로 일하고, 다리로 걷고, 눈으로 마주보고, 살갗으로 느끼는 살림인 나날입니다. ‘지음머리(인공지능·AI)’ 같은 말은 우스개로 여겼어요. 2020년대에 태어난 아이는 1940년대에 태어난 아이가 꿈조차 못 꾸던 모습을 스스럼없이 만납니다. 앞으로 2300년에 태어날 아이는 어떤 새길을 스스럼없이 만날까요? 1962년에는 ‘보임틀을 풀이하는 책’이 따로 나와도 몰라보는 사람이 수두룩했으나 2023년에는 ‘지음머리를 풀이하는 책이 굳이 없어’도 스스럼없이 알아보거나 알아차릴 텐데, 2300년 즈음에는 새길을 새롭게 밝히는 이야기를 새삼스레 새기는 아름누리일 수 있기를 빕니다.


ㅅㄴㄹ


우리나라에 텔레비죤이 들어온것은 8년전의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손으로된 분격적인 텔레비죤방송을 보고 들을 수 있게 된것은 인제 겨우 백날밖에 되지 않읍니다. 오늘날에 있어서는 텔레비죤은 이미 우리 국민생활의 필수품으로 등장하고 있는것이지만 아직도 우리네의 살림이 생활과학에 밝지 못한지라 일반적으로 텔레비죤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깊지 못한터에 이번에 ‘음영문화연구회’ 동지들의 수고로 ‘벤딕크’ 씨의 자미있는 그림과 알기쉬운 풀이로 엮어진 이책을 부드러운 우리말로 옮겨서 까다로운 것으로 생각되기 쉬운 텔레비죤 이야기를 힘들이지않고 알아볼수있게 해준것은 매우 유익하고 보람있는 일이라고 아니할수 없읍니다. 그 수고를 치하하며 이책이 널리 읽혀져서 우리 텔레비죤의 시청자는 물론 국민전체가 생활과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기를 마음 깊이 바라면서 감히 일독을 권하는 바입니다. 1962년 4월, 텔레비죤방송국 개국 100일을 기념하는날에, 서울텔레비죤방송국 국장 황기오 (책머리에)


또한 텔레비젼은 군사상으로도 중요한 존재입니다. 무인비행기, 유도탄에 텔레비전·카메라를 장치하면, 모니터로 감시하여 유도할 수도 있읍니다 … 언젠가는 텔레비젼을 부리어 물건을 사들이기도 하며, 친구를 방문하며, 학교에 다닌다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텔레비젼은 우리들의 오늘의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한 부분이 되게 되었읍니다. (62쪽/未來의 텔레비 : 그밖의 텔레비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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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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