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1.1.5.
 : 추운 눈길



- 동지가 지나며 겨울해가 아주 조금 길어진다. 살림집에는 유리창이 많아 바깥이 훤히 내다보인다. 아침부터 기저귀 빨래를 하고 물을 길어 온 다음 곧바로 밥을 해서 차리느라 고단해 한숨 잔다며 누웠는데, 어느새 네 시가 코앞. 졸리면 낮잠을 함께 자면 좋을 아이가 낮잠 잘 생각이 없어 보여, 날은 춥지만 자전거수레에 태워 살짝 마실을 할까 생각한다.

- 아침에 눈발이 흩날리다가 햇볕이 들며 녹았는데, 다시 눈발이 조금 흩날린다. 아이한테 옷을 입힌다. 바깥은 추우니까 솜바지를 입히고, 웃옷 단추를 모두 꿴다. 모자를 쓰라 하고 장갑을 끼운다. 앞마당 눈밭에 자전거와 수레를 끌고 나와 둘을 붙인다. 수레에 놓은 담요를 꺼내 자전거 안장과 수레 위쪽에 얹는다. 아이 겨드랑이에 두 손을 끼고는 번쩍 들어 수레 안쪽에 앉힌다. 작은 담요를 아이 무릎에 하나씩 놓고 조금 큰 담요로 허벅지 쪽을 덮는다. 이불 하나로 몸과 다리를 덮고는, 두툼한 마고자로 마무리를 한다. 아이는 길을 나서기 앞서 자꾸 손을 밖으로 빼려 한다. 날이 춥다 해도 말을 안 듣는다.

- 자전거에 올라탄다. 눈길에서는 자전거 바퀴가 헛돈다. 눈길 자전거는 오랜만이라고 새삼 느낀다. 집살림을 꾸리며 눈길 자전거 타기는 거의 못하리라 생각했는데,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이렇게 할 수 있구나. 다만, 오래는 못 타고 짧은 거리만 달릴 수 있지.

- 오른쪽 논둑길로 달릴까 왼쪽 마을길을 달릴까 하다가 왼쪽으로 간다. 조금 달리자니 바람이 맞바람. 바람이 꽤 매섭다 싶어 뒤를 돌아보며 아이한테 묻는다. “안 춥니? 괜찮아?” 아이는 아무 말이 없다. 밖으로 내놓던 손은 어느새 마고자와 이불 안쪽으로 집어넣고 옹크린다. 칼바람을 맞아야 비로소 손을 넣니. 에그, 처음부터 넣으면 좀 좋으니.

- 마을길 오르막 막바지에서 택배 짐차를 만난다. 택배 짐차는 내 옆에서 멈추며 “책자 같은 게 왔는데, 집에 있으세요?” 하고 묻는다. “네, 집에 사람 있어요.” 하고 대꾸하는데, 눈길 오르막에서 자전거를 멈추었기에 자전거 페달이 나가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자전거수레를 질질 끈다. 택배 짐차 일꾼 옆자리에 아기를 품에 안은 아주머니가 앉았다. 택배 일꾼은 이렇게 함께 다닐 수 있겠구나.

- 겨우 십 분 즈음 달리는데 손가락이 얼어붙는다. 아이도 얼굴이 다 얼어붙겠지.

- 마을 들머리이자 큰길가에 자리한 보리밥집에 닿는다. 달걀 스무 알하고 얼음과자 셋하고 아이 까까하고 고른다. 얼음과자는 이 추위에 집으로 가져가는 동안 녹지 않으리라. 아이 얼굴과 손이 좀 녹았다 싶을 무렵 다시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집으로 달린다. 이번에는 논둑길 쪽으로 간다.

- 날이 춥기도 하지만, 여느 때에도 마을 살림집 사이를 달릴 때에는 사람들을 보기 힘들다. 생각해 보면, 우리도 집 바깥으로 나와서 마당을 거닌다거나 하지 않으니까. 광월리 수월마을 쪽 마지막 집을 지나 호젓한 논둑길을 달리는데, 개우리 옆에서 코를 찌르는 똥내음이 물씬 풍긴다. 개똥 냄새인가 싶어 놀란다. 다른 때에는 개똥 냄새가 이렇게 나지 않았으니까. 조금 더 달리니 오른쪽 새로 일구는 인삼밭에 뿌린 거름이 보인다. 그렇구나. 인삼밭을 퍽 널따랗게 일구며 거름과 흙을 잔뜩 뿌리니까 이 냄새가 퍼지는구나.

- 집 앞 가파르면서 짧은 비알길에서는 자전거를 내려 자전거를 민다. 미끌미끌한 눈을 밟으며 자전거를 끌어올린다. 겨울에는 칼바람을 맞는 추위를 느끼는 가운데 눈밭에서 미끄러지는 맛으로 자전거를 타지. 아무렴. 집 앞 마당에서 자전거를 세우니 아이는 꼼짝을 않는다. 졸음이 오기도 했고 춥기도 했으니까. 아이를 안아 자전거수레에서 내린다. 아이는 “추워.” 하고 말하면서 집으로 들어간다. 아이가 신은 목긴신은 아빠가 한 짝씩 벗긴다. 바퀴에 눈이 소복하게 묻은 자전거를 굴려 도서관에 넣는다. 풀리는 날씨 하루 없이 꽁꽁 얼어붙기만 한 겨울이 참 길다. 기름 300리터를 넣었어도 두 달을 견디기 힘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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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와 글쓰기


 이제껏 새해를 새해라고 여기며 맞은 적은 없다. 글을 쓰고 나서 끝에 붙이는 날짜가 조금 달라진다고 여길 뿐, 새해라 해서 헌해가 아쉽거나 새해가 반갑거나 하지 않다. 헌해가 그립거나 새해가 애틋하지 않다. 아무래도 여태껏 걸어온 내 삶이란 내 길만 헤아린 삶이었기 때문에 굳이 내 나이라든지 새해라든지 돌아볼 까닭이 없는지 모른다. 바깥에 눈길을 돌린다거나 보배스러운 삶을 남들한테서 찾는다면 새해를 새삼스레 느끼겠지만, 내가 보내는 하루하루야말로 보배스러운 삶이라고 여긴다면 새해라 해서 달라질 느낌은 없다. 다짐을 하건 일을 하건 놀이를 하건 사람을 만나건 ‘바로 오늘’부터 할 뿐이기 때문이다.

 2011년 1월 1일을 맞이하여 아이가 네 살이고, 오뉴월에 둘째가 태어난다. 첫딸하고 어느새 네 해(서른 달)째 함께 살아가는 셈이요, 둘째랑 첫 해를 살아가는 셈이다. 둘째는 엄마 배속에서 자라니까 지난해부터 함께 살아왔다고 해야 옳겠지. 아이가 엄마 배속에 고운 보금자리를 마련한 나날부터 우리 집은 네 식구 살림이니까.

 아빠는 새해 첫날을 맞이했어도 떡국을 끓인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양력설 아닌 음력설을 쇠니까 양력설에 굳이 떡국을 낼 까닭이 없는지 모르나, 생각조차 못했다. 네 식구 복닥이는 나날로 노상 빙글빙글 돌기 때문이다. 옆지기 동생들이 양력설 맞이 마실을 와 주면서 떡국떡을 들고 왔기에, 이 떡국떡을 국을 끓이며 넣을 때에 비로소 ‘새해 첫날이니 떡국을 차려서 먹네.’ 하고 깨달았다.

 밥을 하면서 만화책을 들여다본다. 다른 때에는 책 들출 겨를이 없으니, 밥을 안치고 찌개를 끓이며 다른 이것저것을 하는 틈에 조금이나마 책을 들춘다. 아이는 불가에서 서성이며 논다. “이거 뜨거워?” 하고 묻기에 “응, 뜨거워. 가까이 가지 마.” 하고 얘기할 뿐, 아빠는 아이도 즐길 만한 일거리를 나누어 주지 않는다. 모처럼 어른 넷에 아이 하나 밥차림 설거지를 하는 동안에도 아이가 부엌에서 거치적거린다고 여길 뿐, 아이한테 무어 하나 심부름이라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이 바보, 아이는 저랑 놀아 주거나 저한테도 뭔가를 시키지 않으니 얼마나 심심하겠니.’ 하고 떠오른다. 내 어릴 적, 언제나 일만 하느라 바쁜 어머니는 당신 아이한테 따로 말을 걸거나 놀아 줄 틈이 없었다. 아이인 나는 어머니 곁에 촐랑촐랑 따라붙으며 다녔고, 어머니는 퍽 귀찮아 하시기는 했으나 이것저것 심부름이나 잔일을 시켰으며, 심부름이나 잔일을 하며 즐거워 하곤 했다. 쓰레기 하나 내다 버리든 밥상을 닦든 아주 조금이라도 집일을 거든다면서 더없이 뿌듯했고, 밥값을 했다고 느꼈다.

 옆지기 남동생한테 ‘아빠가 설거지한 그릇을 모시천으로 닦는 일’을 시키다가, ‘설거지한 그릇을 옆지기 남동생한테 건네주는 몫’을 아이한테 맡긴다. 아이는 차분한 얼굴로 그릇을 착착 받아 넘긴다. 마치 어린 날 제 아버지 얼굴하고 같다.

 깊어 가는 밤나절, 아이는 잠들지 않는다. 제 손수건에 침을 발라 빈 밥그릇을 닦는 시늉을 한다. 아까 설거지를 할 때에 외삼촌이 모시천으로 그릇 물기를 닦는 모습을 따라한다. 아이가 유리잔을 꽤나 많이 깨뜨리기는 했으나, 웬만해서는 놓쳐서 깨뜨리지는 않으니까, 아이한테도 이 일을 좀 시킬까. 엄마는 아이한테 밥상 닦는 일을 시켜 주라 얘기한다. 아빠 혼자 다 하기만 한다면 힘들기도 힘들고, 아이한테 한두 가지 시킨들 일거리가 줄지 않으나, 아이로서 무언가 겨울날 집안에서 오래오래 보내야 하는데, 자잘하더라도 일거리를 느끼며 함께 하도록 마음을 쓰지 않으면 아이는 자꾸자꾸 제 어버이 말을 안 들을는지 모른다.

 아이는 제 엄마랑 아빠가 하는 말을 귀담아들으며 제 말을 배우고, 아이는 제 엄마랑 아빠가 하는 일을 거들며 제 몸을 가꾼다. 아이가 손을 다칠까 걱정하거나 아이가 물건을 떨어뜨려 망가뜨릴까 근심한다고 해서 나쁜 일이 아니다. 이런 일도 걱정하고 근심하는 한편, 아이가 심심해 할까 걱정하고, 아이가 무엇을 배우며 마음을 가다듬어야 좋을까를 근심해야지 싶다. 아이가 깨어 돌아다니는 동안에는 아이가 혼자 책읽기나 그림그리기에 빠져들지 않는 만큼, 아이 앞에서 되도록 책읽기를 하지 말아야겠다. 아니, 책읽기를 못하겠지. 아이한테 자꾸 말을 걸고, 심부름을 시키며, 아주 살짝이라도 가만히 있지 못하도록 놀려야겠다. 엊그제까지 이 일을 옳게 못했으니, 오늘부터 이 일을 옳게 하도록 한결 마음을 기울이자. (4344.1.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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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지기 동생들이 새해 첫날을 맞이해 우리 시골집으로 마실을 왔다. 마중을 나가는 길, 우리 마을 들머리 버스 정류장을 바라본다. 

- 2011.1.1. 충북 충주시 신니면 광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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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12.27.  충청북도 음성군 읍내리. 

오래된 흙벽 창고 건물이 하나 빼고 모조리 헐렸다. 그러고 보니, 흙벽 창고를 안 보이게 쌓아 놓던 담벼락도 곧 허물겠네. 이 그림도 가뭇없이 잊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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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 맞는 마음


 새눈이 내립니다. 문을 열고 내다 봅니다. 마당에 어느새 새눈이 소복소복 쌓였습니다. 밤 한 시입니다. 아이는 곱게 잠들지 않습니다. 그예 울기만 합니다. 힘들어서 그러는지, 고단해서 그러는지, 심심해서 그러는지, 더 놀고파 그러는지 좀처럼 예쁘게 잠들지 못합니다. 새근새근 잠들지 못하는 아이를 어찌해야 좋을까요. 스물아홉 달째 함께 살아가는 아이랑 꽤 자주 부대끼는 일이지만, 부대낄 때마다 슬프고 안쓰럽습니다. 악을 쓰지 말고 억지를 부리지 말며 어여삐 잠들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너무 지나치려나요.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다가 살며시 안습니다. 낮나절 아이를 안고 읍내를 다녀오느라, 저녁나절 빨래를 하느라, 더구나 아빠는 낮잠을 못 잔 몸이라, 아이를 안으면서 끄응 소리가 납니다.

 아이한테 밤눈 내리는 바깥 모습을 보여줍니다. 달도 자고 별도 자는 이 깊은 밤에 온누리 온통 하얀 빛깔인데 홀로 이렇게 깨어 울면 어떡하니 하고 이야기를 합니다. 아빠도 속으로는 얘가 참 울음을 못 그치는구나 싶어 밉살맞네 하고 여겼습니다만,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을 고칩니다. 나 또한 내 아이만 한 나이였을 때에 어떠했고, 또 내가 바로 이 자리에서 아이라 할 때에 어떠할까 돌아보면, 아이를 다그칠 수 없습니다.

 품에 안긴 아이는 울먹울먹하다가 찬찬히 머리를 파묻습니다. 머리를 파묻은 아이를 서서 안다가 자리에 눕습니다. 아이가 잠들 때까지 서서 안고 싶으나, 팔과 허리가 받쳐 주지 않습니다. 배에 올려놓다가 팔베개를 하고, 한참 소근소근 달래니 비로소 눈을 깜빡깜빡 하다가는 고이 잠듭니다.

 어머니는 두 아이를 어떤 마음으로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놀리고 가르치고 보듬으며 살아오셨을까요. (4343.12.2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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