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디 워〉


 어떤 분들은 《미국의 송어낚시》(중앙일보사)라는 소설이 훌륭하다고 합니다. 하도 그런 말이 많아서 저도 한 번 사서 읽어 봅니다. 흐흠,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참 지루합니다. 책장이 잘 안 넘어갑니다. 그예 읽다가 읽다가 지쳐서 읽기를 그만두고 책꽂이에 꽂아 둡니다.

 몇 해 앞서부터 《파브르 식물기》(두레)를 야금야금 읽습니다. 한꺼번에 다 읽기에는 아쉬워서. 성철 큰스님 말씀모음(장경각)을 지난주부터 한 권씩 사서 읽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거의 눈길을 안 둔 책이었는데, 예전에 눈길을 두며 이 책을 읽었다면 얼마나 속뜻을 잘 읽어냈을까 싶군요. 이제 와서 읽으니 딱 좋습니다.

 며칠 앞서 《안톤 카이투스의 모험》(내일을여는책)을 다 읽었습니다. 책을 덮으며 후유 한숨이 나옵니다. 아이들을 생각하고 헤아리는 마음이 바다처럼 깊고 너를 때라야 비로소 이만한 작품을 온몸으로 써낼 수 있네요. 일본 교사가 쓴 《교실 일기》(양철북)를 읽으며, 야누쉬 코르착 같은 사람은 나라마다 겨레마다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른 모습으로 아이들과 부대끼고 있구나 하고 느낍니다. 우리 나라에는 어떤 야누쉬 코르착이 있을까요.

 정치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한테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삼인) 같은 책이 피와 살이 될 수 있을까요. 그저 그런 책이 될는지, 아니면 썩 읽고 싶은 마음이 안 들 책일는지.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 한 표 권리를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팡질팡입니다. 지금으로서는 ‘최선도 차선도’ 보이지 않습니다. 더욱이, 한 표 권리는 ‘차선이 아닌 대통령이 되어야 할 만한 진짜 대통령감’한테 쓰고 싶습니다. 죽는표가 어디 있습니까.

 《슈베르트》(신구문화사)를 읽으면서 올해 제 나이 서른셋이란 얼마나 많은 나이냐고, 지금 나는 얼마나 내 하고픈 일을 하며 살고 있느냐고 묻게 됩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행복한만화가게)를 읽는 동안 ‘똑똑하고 용기 없기’보다는 ‘똑똑하지 않더라도 용기 있게’ 사는 편이 낫다고 스스로 되묻습니다.

 《광고와 사진 이야기》(눈빛)를 읽으며, 이만한 줄거리로도 사진 이야기를 써내는 세상이라면, 나도 사진 이야기를 다루는 책을 쓸 수 있겠네 하고 주먹을 불끈 쥡니다. 《곤혹한 비평》(작가들)을 읽는 내내 ‘문학을 좋아하는 분들이 이 책을 써낸 사람 이름을 알까? 김현, 김우창, 김윤식, 김병익 같은 사람들 비평은 읽어도 이 책을 써낸 사람 비평을 읽으려 할까?’ 하는 물음표가 그치지 않습니다.

 《슬픈 미나마타》(달팽이)를 읽으며 가슴이 저릿저릿하고 눈물이 핑 돕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미나마타’ 역사를 숨기려 한다는군요. 생각해 보면, 우리 나라에도 ‘온산병’이라는 공해병이 있습니다만, ‘온산병’이 무엇인지 ‘온산’이 어디에 붙은 마을인지 아는 분이 몇이나 될는지.

 영화 〈디 워〉를 보았습니다. 보름쯤 되었지 싶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참 좋았습니다. 재미있어서 웃기도 하고 엉성해서 웃기도 했습니다. 후줄근한 연기와 짜임새없다고 느껴지는 줄거리였지만, ‘더 깊이 무엇인가 생각하기’보다는 ‘그냥 재미나게 영화 하나 보며 즐겁게 살자’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디 워〉는 〈디 워〉였고, 〈티라노의 발톱〉은 〈티라노의 발톱〉이었으며, 〈우뢰매〉는 〈우뢰매〉였습니다.

 영화 〈디 워〉를 보고 싶으면 보고, 보고 싶지 않으면 안 보면 되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좋았다면 그 좋은 마음을 잘 간직하고, 보고 난 느낌이 영 꽝이었다면 아쉬움과 모자람을 잘 곰삭이면 될 텐데. 하지만 어떤 책을 주머니돈 털어서 사서 읽었는데, 글쓴이 생각이나 책 짜임새가 참 후줄하고 형편없었을 때에는, 남들이 이런 책을 사서 보느라 헛돈과 헛시간 날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비판 어린 글을 쓸 수 있습니다. 한편, 내가 느끼기에 후줄근하고 형편없는 책이라 해도, 이 책 하나를 보며 가슴이 벅차거나 따스해지는 분도 있겠지요. 심형래 감독은 다음에 어떤 영화를 찍고 우리 앞에 찾아올까요. (4340.8.2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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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피가 자꾸 난다. 잠을 못 잤나? 고된 일을 했나? 글쎄, 마감글을 하나 써야 하는데, 썩 내키지 않는 책을 소개하는 글을 억지로 써야 하다 보니 머리가 찌뿌둥하다. 하루하루 먹고살 걱정을 하노라니 어쩔 수 없이 무언가를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골치가 아프다. 줏대를 지키면서 살기란 보통 일이 아니구나. 줏대보다도 마음을 먼저, 몸을 먼저 지켜야겠다. 마음과 몸이 무너진 다음에 줏대를 지켜 보아야 어디에 쓸까. (4340.8.2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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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켁.. 대한서림 찍은 사진이 없네요.. ㅠ.ㅠ 대한서림 옆 동인서관 깃든 건물 옆 전당포 찍은 사진만 있구... 이따가 대한서림 나가서 건물 사진 좀 찍어 놓아야겠군요. 에궁....)


 책으로 보는 눈 10 : 동네 책방이 된 대한서림

 도서관 자료를 갈무리하다가, 제가 고등학교 때 챙겨 놓았던 ‘도서상품권 홍보책자’ 하나를 보았습니다. 1991년에 인천에서도 도서상품권을 쓸 수 있게 되었다면서, 인천에서 가장 컸‘던’ 새책방 〈대한서림〉에서 내놓은 책자입니다. 책자 사이에는 “대한서림 창립 36주년 기념 특별회원을 모집합니다”라는 말을 큼직하게 적어 놓은 안내글도 있습니다. 이 안내글이 1991년 것이니, 책방 〈대한서림〉은 어느덧 52해라는 세월을 인천에서 책을 나누어 왔다는 소리가 됩니다.

 자전거를 타거나 두 다리로 걸어서 동네 나들이를 하노라면 학교 앞을 으레 지나가게 됩니다. 이렇게 초중고등학교 앞을, 또는 대학교 앞을 지나가면서, 학교 앞 문방구와 가게를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간판이며 유리문이며 진열장이며 예전 것 그대로 간직하며 꾸려 가는 곳이 많은 가운데, 지난날 흔히 찾아볼 수 있던 동네 책방이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도 꿋꿋하게 책살림 꾸리는 곳이 제법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인천에도 교보문고와 영풍문고 새끼가게가 어김없이 들어온 탓에 중간 크기 책방과 작은 책방은 씨가 마르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대한서림〉에 가서 《김교신 전집》 가운데 4권 하나를 산 다음, 나머지 책을 주문해 놓았습니다. 고른 책을 들고 돌아나오며, 〈대한서림〉 건너편에 있는 〈동인서관〉 안쪽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주안 나들이를 할 때 스치고 지나가는 〈시민서림〉과 〈동아서림〉을 헤아려 봅니다. 모두들 인천에서는 내로라 할 만큼 컸‘던’ 곳이었는데, 어느덧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와 견주어 ‘작은 책방’, 말 그대로 동네 책방이 되었구나 싶습니다.

 그래, 이렇게 동네 책방이 되고 만 〈대한서림〉을 찾아가느니 넓고 시원하고 책 가짓수도 훨씬 많다는 교보문고와 영풍문고로 가는 분들이 늘겠지요. 마일리지도 알뜰히 쌓이고 책 보는 재미도 있으시겠지요. 그러면, 우리가 ‘큰’ 책방에 가서 구경하거나 골라드는 책은 ‘어떤’ 책일까요. 셈틀로 손가락만 또닥거리며 인터넷책방으로 주문하여 집에서 읽는 책은 ‘무슨 이야기를 담은’ 책일까요.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잡지를, 《산에서 살다》나 《야생초 편지》 같은 책을, 《서준식의 옥중서한》이나 《즐거운 불편》 같은 책을, 《스핑크스의 코》나 《수달 타카의 일생》 같은 책을, 《오카방고의 숲속학교》나 《우리 옆의 약자》 같은 책을 ‘큰’ 책방이나 ‘인터넷’책방에서 사들이고 있지는 않나요. 우리가 책으로 읽어서 얻는 ‘좋다는 이야기’와 ‘훌륭한 깜냥’과 ‘살뜰한 슬기’를 머리속에 가두어 두는 지식으로만 내버려두고 있지는 않나요.

 서울에서 지낼 때 자주 찾아가던 인문사회과학책방 〈풀무질〉에서 《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해》를 사서 읽었습니다. 며칠 앞서 《슬픈 미나마타》를 주문해 놓았습니다. 대학로 인문사회과학책방 〈이음아트〉를 찾아가서 《소금꽃나무》를 사서 읽고 있으며, 《일중독 벗어나기》와 《누나의 오월》도 감칠맛나게 읽고 있습니다. (4340.7.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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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핫... 앞서 올린 묶음글 제목을 고치다 보니까, 애써 써 놓고 안 올려놓은 글이 있었네요.

^^;;; 바보팅이....






 책으로 보는 눈 5 : 책 한 권을 한 해 동안


 아침에 뒷간에서 똥을 누며 《마르코스와 안토니오 할아버지》(다빈치,2001)라는 책을 읽습니다. 지금도 꾸준히 사랑을 받는 책인지는 모르겠으나, 처음 나온 지 여섯 해가 지난 지금 읽어도 마음에 와닿는 줄거리가 많습니다.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 가운데 한 사람인 마르코스 부사령관이, 부족 토박이인 안토니오 할아버지한테 여러 가지 옛이야기와 세상이야기를 듣고는 자기가 느끼고 깨달은 생각을 붙여서 엮어낸 책입니다.

 어젯밤 잠들기 앞서는 《새만금은 갯벌이다》(한얼미디어,2006)라는 책을 잠깐 읽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읽기보다는 작은제목을 보며 눈길이 가는 꼭지부터 먼저 읽어 나가고 있습니다. 구경꾼이 아닌 이웃으로서, 또 바로 자기 자신이 새만금 사람이 될 수 있음을, 또 지금 이 나라에서는 어디에 발붙이고 있어도 새만금 사람들처럼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자기 삶터에서 쫓겨나고 있음을 깨달으며 펼쳐 내려가는 이야기책입니다.

 그젯밤 잠들기 앞서는 《우리 청춘의 조선》(사계절,1988)이라는 묵은 책(판이 끊어졌음)을 졸린 눈 비벼가며 읽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식민지 조선에 군복무하러 들어온 일본 젊은이가 한국땅에서 따순 사람들 마음을 느끼고 노동자가 되어 밥벌이를 하는 동안 자연스레 노동운동에 몸담게 된 이야기를 숨김없이 보여줍니다. 읽으면서 때때로 눈물이 맺힙니다.

 조금 앞서 낮밥을 반 그릇 먹었습니다. 반 그릇으로도 얼추 배가 든든해지며 졸음이 쏟아집니다. 새벽 네 시 반에 일어나 도서관 갈무리를 하고 글쓰고 걸레 빨고 하다 보니 고단합니다. 잠깐 드러누워 허리를 펴 주어야겠네요. 그래도 눈에 힘을 조금 더 주고 책 한 줄이라도 읽을 생각입니다. 음, 오늘은 무슨 책을 읽을까. 《김광식의 민주기행, 김광식의 아시아기행》(삶이보이는창,2004)을 읽어 볼까. 《슈베르트》(신구문화사,1977)를 읽어 볼까. 《무식하면 용감하다》(행복한만화가게,2006)를 읽을까. 웬만한 책들은 몇 시간 바짝 숨을 모아서 읽어제끼기보다는, 적어도 한두 달, 으레 서너 달, 거의 대여섯 달에 걸쳐서 조금씩 맛보면서 읽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한꺼번에 다 읽어 버리면 ‘읽기는 빨리 읽어도, 잊기도 금세 잊구나’ 싶거든요. ‘읽기는 더디게 읽어도, 오래오래 마음에 남아 제 앞길을 밝혀 주는’ 이야기를 좋아하다 보니, 겹치기가 되어도 열 쪽이나 스무 쪽, 때로는 대여섯 쪽만 읽은 뒤 책을 덮곤 합니다. 학교 다닐 때 교과서 하나 진도를 한 해에 걸쳐서 나가듯, 책 한 권 읽을 때에도 거의 한 해라는 시간을 헤아리며 읽어 버릇하고 있습니다. (4340.5.2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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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 <시민사회신문>에 실으려고 쓴 글입니다.


 그제 뜻하지 않게 서울 나들이를 했습니다. 요즈음은 오른팔꿈치가 많이 저려서 자전거를 타지 못하고 전철과 버스로 움직입니다. 서울로 가는 전철은 몇 번씩 에어컨 고장으로 가다가 멈추며 점검을 합니다. 서울에 닿아 타는 시내버스는 눈물이 말라 눈이 따갑고 목이 컬컬하도록 에어컨을 신나게 틀어 줍니다. 길가에 수없이 함부로 세워진 자가용과 짐차에 막혀 버스는 가다서다를 되풀이하고, 건널목 신호에도 틈틈이 걸려서 멈추기를 자주. 이렇게 멈추어 있는 동안 버스 왼편으로 아슬아슬 바싹 붙는 오토바이가 씽씽 지나갑니다. 안전모자 안 쓴 오토바이꾼이 보이고, 피자를 나르는 고딩으로 보이는 아이가 보입니다. 피자 나르는 아이는 택트 오토바이로 묘기를 부리기까지. 퀵배달 오토바이도 차 사이로 오락가락. 버스 기사는 오토바이 생각만 하면 얼마나 골치가 아플까, 자전거 타는 사람도 저 오토바이와 마찬가지로 느끼지 않을까, 더욱이 자전거는 오토바이처럼 씽씽 지나가 버리지 못하니 뒤에 바싹 따라붙으며 괴롭히고픈 마음이 불쑥불쑥 들지 않을까…….

 홍익대 앞 만화가게에서 만화책 세 권 고릅니다. 마포도서관을 지나 헌책방 〈온고당〉에서 사진책 몇 가지와 이야기책 몇 가지를 고릅니다. 걸어온 길을 거슬러 전철역으로 갑니다. 젊음이 넘친다는 대학교 앞 길거리에는 아리땁게 꾸민 아가씨들과 멋들어지게 꾸민 남정네들이 가득합니다. 이들을 부르는 술집과 밥집 불빛은 대낮만큼까지는 아니지만 무척 환합니다. 출출해서 닭집 한 군데에 들어가 튀김닭을 먹습니다. 닭집은 자리가 없을 만큼 북적입니다. 맛은 있었지만 인천보다 2000원 비싼 값. 사진기와 책으로 묵직한 가방을 추스르고 조금 걷다가 전철을 탑니다. 가방에서 책 하나 꺼내어 읽습니다. 조금 앞서 헌책방에서 산 《녹색평론》 1992년 7∼8월호(5호). 잡지 《녹색평론》이 나온 지 어느덧 열다섯 해가 넘었군요. 고등학교 다닐 때 읽은 생각이 어렴풋하지만 다시 들춥니다. 다시 들추니 ‘지금 생각하면 어설프고 모자란 이야기’가 보이는 한편, ‘그때나 이제나 마음에 뭉클하게 다가오는 이야기’가 보입니다. 잡지는 갓 나올 때보다 몇 달, 또는 몇 해 묵힌 뒤 보면 더 맛깔나다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먼 길, 《녹색평론》은 1/3쯤 읽다가 가방에 넣고, 다른 책을 하나 꺼냅니다. 《지는 꽃도 아름답다》(달팽이). 일흔 할머니가 꾸려온 삶 이야기가 마치 시 한 편처럼 조곤조곤 다가옵니다. 당신 세월을 흐트러짐 없이 살아오셨고 그 흐트러짐 없는 삶을 꾸밈이나 겉발림 없이 담아내면 ‘시라고 추켜세우는 평론가가 없어도’ 시가 되는군요. 그러나 하루 내내 땡볕을 먹고 맥주 석 잔을 마신 탓인지 머리가 어질어질해서 책을 덮습니다. 몸이 힘들어도 뒷꼭지와 눈 둘레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가며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몸이 힘들기에 책을 덮고 자리에 눕거나 찬물로 멱감고 쉴 수 있습니다. 눈으로 읽은 줄거리는 머리를 거쳐 마음에서 삭인 뒤 몸으로 받아들이거든요. 눈과 머리와 마음과 몸 모두를 써서. (4340.8.2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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