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배움살림 2021.2.15.

숲집놀이터 245. 할아버지



일곱 해 만에 우리 아버지, 그러니까 아이들 할아버지하고 목소리를 나눈다. 우리 아버지는 큰아이가 어린배움터(초등학교)에 안 들어가고 집에서 놀며 스스로 배우는 길을 간다고 할 적부터 말을 끊고 고개를 돌렸다. 우리 아버지는 사내인 내가 두 아이를 건사하면서 천기저귀를 챙기고 안고 업고 돌보면서 다니는 일도 못마땅히 여겼다. 마침종이(졸업장)가 아닌 살림빛을 품으려는 길보다는 돈·이름·힘을 거머쥐면서 이 세 가지로 집안을 거느려야 한다고 여기는 우리 아버지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아버지는 여덟 아이 가운데 맏아들로 태어나 여러 동생을 먹여살리려고 사범학교를 마치고서 바로 교사라는 길을 가면서 돈을 벌었고, 갖은 고비에 수렁을 온몸으로 견디고 이겨 왔으니, ‘틀·울타리 안쪽’으로 들어가야 이 나라에서 비로소 살아남을 만하다고 여길 만하다. 나는 ‘틀·울타리 안쪽’이 아닌 ‘숲 한복판’을 바라보면서 이 살림빛이 살림꽃으로 피어 살림씨앗을 맺는 길을 생각한다. “할아버지, 돈을 벌어도 살림이지만, 사랑으로 보금자리를 가꾸어도 살림이에요. 넓고 번듯한 집도 세간이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을 지으면서 조금씩 돌보고 가꾸는 집도 세간입니다. 서울 한복판 일자리도 있을 텐데, 기저귀를 빨고 아기를 안고 자장노래를 부르고 밥을 짓고 나무를 품으면서 조용히 하는 일도 있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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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244. 모든 아이들은



따지고 보면, 모든 아이들은 학교를 안 가도 된다. 교과서를 읽고 시험을 치르며 교칙에 길들다가 졸업장을 따는 학교를 갈 겨를이 있다면, 집에서 어버이 살림을 지켜보고 거들면서 배우고 스스로 무엇을 하면 즐거울까 헤아리면서 놀면 된다. 모든 아이들은 스스로 사랑이요 사람이며 살림이자 슬기로운 숨결인 줄 늘 느끼면서 스스로 배울 노릇이라고 본다. 잘 놀며 자란 아이들은 앞으로 할 일을 스스로 즐겁게 찾아나서기 마련이라고 느낀다. 인문지식·시사정보·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철학이 아닌, 사랑·사람·살림·슬기·숨결·숲을 언제나 마주하면서 차근차근 마음으로 받아들이도록 이끌어야지. 아이들을 학교에 가두니 아이들한테서 생각날개가 사라진다. 아이들을 학교란 틀에 옭매니 아이들한테서 사랑씨앗이 사그라든다. ‘교육’이란 이름을 붙여 아이들한테 하는 짓 가운데 사랑스럽거나 참답거나 슬기로운 길이 있을까? ‘놀이’란 이름으로 아이 스스로 배움길을 찾아나서면 될 뿐이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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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242. 사랑꾸지람



아이를 사랑으로 꾸짖을 수 있을까? 도무지 말이 안 된다고 여긴다. 꾸짖는 말이 어떻게 사랑이 될까? 사랑이라면 꾸짖지 않겠지. 사랑이라면 이야기를 하겠지. 사랑이라면 달래고 다독이겠지. 사랑이라면 어루만지고 얼싸안다가 눈물을 짓겠지. 사랑이라면 노래하고 춤추는 손길로 가볍게 토닥이겠지. 어버이는 아이를 꾸중하거나 꾸짖을 수 없다고 여긴다. 어른 사이가 되기에 비로소 꾸짖거나 꾸중할 만하지 싶다. 동무를 꾸짖는달까요. 이웃을 꾸중한달까. 그러나 이때에도 결이 다르다. 동무나 이웃을 어떻게 꾸짖거나 꾸중할까? 우리가 참다운 사랑으로 살아가면서 동무나 이웃을 정 꾸짖거나 꾸중해야 한다면, ‘사랑꾸지람’이어야지 싶다. 꾸지람을 생각하지 말고, 사랑을 앞에 놓아야지 싶다. 이러다가 꾸지람을 녹여없애고 사랑말로, 사랑얘기로, 사랑노래로 거듭나야지 싶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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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243. 숲으로



돌림앓이 탓에 2020년에는 이 나라 모든 학교가 3월에 열지 못했고, 4월이며 5월을 지나 6월에 이르러 조금씩 열려고 한다. 그러나 애써 열어도 다시 닫는 곳이 많고, 열었다 하더라도 눈을 마주보고 생각을 나누는 길을 열었다고는 느끼기 어렵다. 모두들 ‘한 사람이라도 돌림앓이에 걸리면 어떡하나’ 같은 생각에 사로잡힌다. 구태여 졸업장학교를 서둘러 열어야 할까? 셈틀을 켜서 누리배움길을 깔아야 할까? 교과서에 맞추어 나아가는 배움길이 아니면 안 되는가? 슬기로운 나라살림이라면 입시지옥이란 이름이 또아리를 틀 까닭이 없고, 입시학원이 그렇게 넘칠 일이 없다. 슬기롭지 않은 나라인 터라, 돌림앓이가 푸른별에 퍼졌어도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른 채 ‘집에 가두기’하고 ‘서로 떨어지기’하고 ‘입가리개 하기’ 말고는 딱히 생각도 하지 못한다. 이럴 때야말로 서울을 떠나고, 큰고장을 벗어나서, 조용히 숲으로 갈 노릇이라고 여긴다. 관광지 해수욕장이 아닌 조용한 바닷가를 찾아가고, 너른 들녘으로 가서 낫이며 호미를 쥐고 흙살림을 이끌 노릇이라고 본다. 아이들을 대학교 아닌 숲으로 보내자. 아이들 스스로 숲이라고 하는 터를, 사람 손길이 안 닿기 때문에 이토록 푸르며 싱그럽고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터를 맨발에 맨손으로 느끼도록 하자. 이제는 숲으로 가지 않고서는 다 죽는 길 아닌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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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241. 쀼루퉁



해마다 삼월이면 우리한테 그날이 돌아온다. 바로 ‘의무교육 입학유예 신청서’를 쓰는 그날. 이날은 두 아이가 싫어도 학교에 가서 서류를 읽어야 하고, 서류에 이름을 적어야 한다. 작은아이는 “난 학교 싫어. 그렇지만 아버지랑 같이 가면 좋아.” 하고 조잘조잘 노래를 부르고, 큰아이는 암말 없이 쀼류퉁한 얼굴이다. 누가 보아도 얼마나 싫고 못마땅하고 짜증나고 성나고 골나고 부아나고 …… 온갖 말을 다 갖다붙일 수 있을 만큼 식식거리는 낯이다. 면소재지 초등학교 샘님은 웃는 낯으로 큰아이한테 말을 걸지만, 큰아이는 한마디 대꾸조차 없고 쳐다보지도 않는다. 얘야, 아버지가 학교에 너희를 데려오기 앞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하지 못했구나, 아버지가 잘못했네. “사름벼리 어린이, 온누리에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단다. 모두 우리가 겪으면서 배우는 일이야. 쀼루퉁한 마음이 되어 그 기운이 네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면 둘레에 다른 사람은 다 아무렇지 않아. 뿌루퉁낯인 사름벼리 어린이 너 혼자만 속이 불타면서 까맣게 타버린단다. 자, 종이 하나를 줄게. 여기에 그림을 그리거나 네 마음을 글로 옮기렴. 우리가 어디에 있든 어디를 가든 그곳이 어떠한 곳이든 우리가 마음으로 바꾸면 돼. 우리 보금자리만 꽃터로 가꿀 수 없어. 우리가 발을 디디고 바라보는 모든 곳이 꽃터요 숲터가 되도록 가만히 바라보면서 우리 꿈을 바라보면 어떻겠니?” 사름벼리 어린이는 20분쯤 지나고서야 얼굴을 천천히 풀면서 종이두루미 하나를 접는다. 고마워.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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