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바라본 한국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34] 이강(李剛), 《韓國》(保育社,1971)

 


  남북녘이 살아가는 땅떵어리에서 오른쪽에 있는 바다를 가리켜 ‘동해’라 말한다지만, 러시아나 일본에서 바라볼 때에도 이 바다가 ‘동해’가 될 만할까 궁금합니다. 지구별에 남북녘 살아가는 땅덩어리만 있다 한다면, ‘동해’뿐 아니라 ‘서해’나 ‘남해’라는 이름을 지도책에 척 하니 적바림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지구별이라는 테두리에서 바라볼 때에도 ‘동해’라는 이름을 쓸 만할까 궁금합니다. 이와 마찬가지인데, 일본에서는 ‘일본해’라 이름을 붙인다는데, 먼먼 옛날, 곧 서기 500년이나 서기 1000년에는, 기원전 500년이나 2000년 즈음에는 일본땅에서 이 바다를 어떤 이름으로 가리켰을까 궁금합니다. 한겨레한테는 ‘동해’였다면 일본겨레한테는 어떤 바다였을까요. 한겨레는 남북녘 땅덩어리 아래쪽 바다를 두고 ‘남해’라 말하지만, 정작 남북녘 땅덩어리 아래쪽 바다는 ‘남해’라기보다 ‘태평양’이에요. 이쪽 바다를 가리킬 이름을 옳게 붙이자면 ‘남해’ 아닌 ‘제주해(제주바다)’쯤 되어야 알맞지 않으랴 싶어요. 그러고 보면, 한겨레한테는 오른쪽이요 일본겨레한테는 왼쪽이라 할 바다는 ‘울릉바다’라고도 할 만하겠지요. 널따란 바다 한복판에 울릉섬이 꽤 크게 솟았으니까요.


  1930년에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이강(李剛) 님이 엮은 사진책 《韓國》(保育社,1971)을 읽습니다. 베트남전쟁 취재도 했다는 이강 님이라 하는데, 이분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다만, ‘보육사 빛깔책(保育社 color books)’ 가운데 하나로 《韓國》을 내놓은 만큼, 한국 이야기에 눈길을 두는 분인 줄 헤아릴 수 있습니다. 1966년에는 《これが新しい世界だ “KOREA”》를 엮기도 했다고 해요. 《これが新しい世界だ》는 ‘世界情報社’라는 곳에서 서른두 권으로 내놓은 ‘세계여행 전집’이랄지 ‘세계 이야기 전집’과 같은 책인데, 이 가운데 이강 님이 “한국(KOREA)”을 맡았다는군요. 어쩌면 재일조선인 이강 님일 수 있으나, 이 대목조차 오늘날에는 발자국을 찾기 힘듭니다.


  사진책 《韓國》을 찬찬히 읽습니다. 겉에는 “カラ-ガイド”라는 말이 적힙니다. 보육사 빛깔책은 빛깔사진과 그림자사진을 두 쪽마다 갈마들어 넣습니다. 1960∼70년대에 이처럼 빛깔사진을 듬뿍 넣은 작은 사진책을 구경하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봅니다. 더구나 퍽 값싸게 장만해서 알차게 즐길 만한 책은 퍽 적었겠지요.

 

 

 

 

 


  사진책 《韓國》에 실린 사진은 ‘일본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바라보는 한국’입니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바라보는 한국이 아닙니다. 일본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바라보는 한국을 담아내어 ‘일본에서 한국으로 찾아갈 사람한테 길잡이가 되도록’ 엮습니다. 한국을 찾아간 일본사람이 ‘한국에서 으레 보거나 마주하거나 겪거나 부대낄 모습’을 꾸밈없이 담습니다.


  예나 이제나 거의 비슷하다 할 텐데, 1971년이든 2011년이든, 또 앞으로 2051년이 되든,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한국 바깥에 보여주는 한국 모습’이라 한다면 어떠할까요. 아마, 사진책 《韓國》에 나오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려고는 안 하겠지요. 관광지라든지 ‘아름다운 자연’을 찍는 사진은 《韓國》에도 있습니다만, 《韓國》에는 아름다운 자연이나 관광지만 나오지 않아요. ‘도심에서 30분만 나오면 김포공항 언저리에서도 소가 끄는 수레’를 볼 수 있다면서, 한국을 보여주는 사진 가운데 하나로 소가 끄는 수레를 ‘자동차로 꽉 찬 서울 도심’ 사진이랑 나란히 보여줍니다. 비가 오는 날 우산을 파는 사내아이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놀이공원에서 풍선을 파는 아저씨 모습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갓난쟁이를 업은 아주머니가 살아가는 ‘풀로 이은 지붕’이 가득한 시골마을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냇가에서 빨래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손으로 모내기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온돌’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풀집 가득한 시골마을에서 굴뚝에 연기가 솔솔 피어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연탄을 나르는 아이 모습이랑 도리깨질을 하는 할매 할배 모습을 보여줍니다. 고무신을 꿴 아이들 모습하고 나룻배 모습을 보여줍니다. 참말, 한국사람 살아가는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꾸민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눈부신 경제발전’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이른바, 공장 굴뚝을 보여주지 않아요. 새마을운동이니 무어니 하면서, ‘한국 정부에서 한국을 알리려고 나라밖에 보여준다’는 사진책을 들여다보면, 경부고속도로 죽 뻗은 길이라든지, 새로 지은 우람한 공장이라든지, 서울에 번듯번듯 높직하게 세운 건물과 아파트라든지, 예쁘장해 보인다는 놀이공원이라든지, 온통 이런 모습들을 ‘한국 정부가 뽐내려’ 하는데, 사진책 《韓國》에는 ‘한국 정부가 뽐내고 싶어 하는 모습’은 한 가지도 안 실립니다.

 

 

 

 

 


  한국 정부 관계자가 사진책 《韓國》을 보았으면 거북하게 여겼겠구나 싶어요. 왜 더 ‘발전된 신흥공업국’다운 모습을 안 보여주느냐고, 설악산이나 오대산이나 한라산 사진을 잔뜩 보여주지 못하느냐고 따질 만하구나 싶어요.


  사진책 《韓國》은 한국에서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 살림살이를 살짝 들여다봅니다. 설악산에 갈 겨를에 여느 도시 여느 골목을 걷는다든지, 여느 시골 여느 고샅을 걷습니다. 더 깊이 파고들지는 못하나, 여느 사람들 살림집 사이를 걷습니다. 수수한 사람들 수수한 살림새와 함께, 한겨레가 먼 옛날부터 이룬 예쁜 문화가 무엇인가 하고 보여줍니다. 박물관과 경주를 돌아다니면서 이곳에 깃든 문화재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사진책 《韓國》은 ‘여느 일본사람이라면 담아낼 수 없을’ 모습을 담아내어 보여주기에 이쁘장합니다. 우스꽝스러운 극장 간판을 보여줍니다. 부산 바닷가에서 발가벗고 노는 사내아이를 보여줍니다. 서울 을지로 한옥집을 보여주되, 눈 가득 내린 날 마당에 자전거가 선 모습을 보여줍니다. 밥집이나 멋집도 보여주지만, 여느 저잣거리 모습을 찬찬히 보여줘요.


  서울 골프장, 이화여대, 청계천 고가도로 밑 길장사, 얼어붙은 한강에서 얼음을 지치는 아이들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자그마한 책을 덮습니다. 이제, 거꾸로 생각을 해 봅니다. 1971년 무렵, 한국에서 일본을 찾아간 누군가 있을 적에, ‘한국에서 일본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어 보여준다’ 한다면, 어떠한 모습을 얼마나 어떻게 담아서 보여주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2011년 오늘날 한국사람은 일본을 찾아가서 어떠한 모습을 즐겁게 누리면서 어떠한 사진을 찍는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앞으로 2051년쯤 된다면 이때에는 한국사람이 어떤 눈길로 이웃 일본을 바라볼는지 생각해 봅니다.

 


  그나저나, 1971년, 2011년, 2051년, 이렇게 여든 해에 걸쳐 어느 한 나라를 살핀다 할 적에, 우리들은 우리 스스로 우리 마을과 보금자리와 나라와 이웃을 어느 만큼 속속들이 살피면서 어느 만큼 사랑스레 껴안을까 헤아려 봅니다. 한겨레 스스로 바라보는 한겨레는 어떤 모습일까요. 한겨레 스스로 이웃나라한테 보여주고픈 한겨레 이야기는 어떤 모습인가요. 한겨레는 한겨레 스스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꾸밈없이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으로 알뜰살뜰 담는다고 말할 만한가요.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 삶터를 사진으로 못 담고 말아, 이렇게 이웃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한국 삶터를 담은 사진으로 ‘이 나라 사람들 발자국을 돌아보’아야 하지는 않나 궁금합니다. (4345.7.14.흙.ㅎㄲㅅㄱ)

 

(사진책 읽는 즐거움 .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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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보기
― 필름스캐너 소리 듣는다

 


  얼마만에 듣는 필름스캐너 소리인지 모릅니다. 몇 달만에 필름스캐너를 돌리는가 가만히 어림합니다. 한 해 남짓 묵힌 필름을 현상소에 맡겨 사흘만에 받고는 이른아침에 필름 한 통 여섯 장씩 필름스캐너에 앉힙니다. 가장 크게 긁는 사진파일이기에 여섯 장을 파일로 긁기까지 꽤 오래 걸립니다. 서른여섯 장을 모두 긁으려면 한 시간 이삼십 분 남짓 걸립니다. 필름 여섯 장을 필름스캐너에 앉히고 빨래를 하더라도 스캐너는 그대로 천천히 움직입니다. 필름 한 장 크기는 고작 35밀리미터. 35밀리미터 필름 한 장을 파일로 긁기까지 몇 분 걸립니다. 필름스캐너는 아주 꼼꼼히 아주 천천히 아주 낱낱이 아주 찬찬히 이야기 하나 빚습니다. 사진기에 필름을 감아 찍을 때에도 더디 걸리고, 다 찍은 필름을 빼내어 현상을 맡길 적에도 더디 걸리지만, 현상된 필름을 필름스캐너에 앉혀 파일을 이루기까지 또 더디 걸립니다.


  나는 더디 걸리는 오랜 길을 더 좋아하거나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더디 걸리며 이루어지는 이야기가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그 자리에서 곧바로 알아채고 몇 번 손길을 타면 금세 태어나는 디지털파일이라 해서 안 아름답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 스스로 아름다운 넋이라면 어떠한 기계로 찍는 사진이든 모두 아름답습니다. 더구나, 내가 쓰는 필름사진기는 ‘아주 값진’ 기계라거나 ‘값진’ 기계는 아닙니다. 낮고 작은 기계입니다. 그래, 돈셈으로 치면 낮고 작은 기계라 할 텐데, 나는 내가 쓰는 필름사진기한테 늘 말을 겁니다. 나는 네가 좋아. 나는 네가 사랑스러워. 나는 네가 믿음직해.


  나한테 필름사진기를 빌려준 분이 이 사진기에 담은 꿈과 사랑을 생각하며 사진을 찍습니다. 나한테 필름값을 빌려준 분이 이 필름마다 담은 꿈과 사랑을 헤아리며 사진을 찍습니다.


  필름스캐너는 아주 천천히 움직입니다. 어느 한 가지 이야기라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꼼꼼히 써레질을 합니다. 흙일꾼 할배는 소를 몰아 논을 갈고, 나는 필름을 필름스캐너에 앉혀 내 사랑을 꿈꿉니다. 좋습니다. 이 소리를 들으며 사진 하나 태어나는 날을 맞이하고 싶어 사진을 찍는지 모르겠습니다. (4345.6.3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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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읽기
― 다시 읽는 사진, 거듭 찍는 사진

 


  2012년에 다섯 살을 누리는 아이하고 글씨 쓰기를 합니다. ㄱㄴㄷ부터 하나하나 함께 쓰며 놉니다. 깍두기 공책을 가득 메우는 아이는 오래지 않아 한글을 싱그럽게 익힐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는 이곳저곳에 적힌 글월을 읽을 수 있을 테며, 어느 날에는 제 삶이야기를 짤막하게 글로 옮길는지 모릅니다. 다만, 이렇게 아이가 글월을 읽거나 제 삶이야기를 글로 쓰기까지는 퍽 먼 일이 될 수 있을 텐데, 아이와 글씨 쓰기를 함께 하면서 날마다 새롭게 사진을 찍습니다. 어제 찍은 사진을 오늘 새삼스레 들여다보고, 오늘 새삼스레 거듭 찍으며, 하루가 지나면 또 예전 사진을 들여다볼 테고, 다시금 새삼스레 새롭게 사진을 찍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진길 걷는 다른 분은 어떠할는지 잘 모릅니다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삶과 사람을 사랑스럽고 즐겁게 꾸준히 찍습니다. 이를테면, 누군가 사랑하는 짝꿍이 있다 할 때에 사진을 어떻게 찍을는지 헤아려 보셔요. 사랑하는 두 사람은 아마 날마다 새롭게 만나면서 새롭게 사진을 찍을 테지요. 사랑하는 나날을 누리는 햇수가 늘수록 둘이 함께 찍은 사진이 사진첩 몇 권이 되도록 두툼하게 늘 테지요. 사랑하는 두 사람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 아무것 아니라 할 만한 모습까지 사진으로 찍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은 모르더라도 두 사람한테는’ 서로 믿고 어깨동무하며 살아가는 이야기 한 자락 싣는 사진이거든요. 좋아하는 마음을 담으니 늘 다시 들여다보는 사진이 되고, 언제나 거듭 찍는 사진이 됩니다.


  어느 어버이라 하더라도 이녁 아이들을 바라볼 때면, 날마다 새롭게 사진을 찍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제랑 오늘이 얼마나 다르겠느냐 말할 분이 있을 터이나,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내 마음은, 어제는 어제요 오늘은 오늘이에요. 어제와 같은 놀이를 오늘 똑같이 하더라도, 오늘은 오늘대로 새롭게 노는 삶이에요. 새삼스럽게 사진기를 손에 쥡니다. 아이가 손에 힘을 꽉 주며 깍두기 공책 메우는 모습을 즐겁게 바라봅니다. 사진기 떨리지 않도록 잘 붙잡고는 한 장 두 장 찍습니다. 이제 그만 찍자 싶지만, 사진기를 내려놓지 못합니다. 열 장 스무 장 잇달아 찍습니다. 하루 지나 이 사진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어느 사진 하나 버릴 수 없다고 느낍니다. 며칠 지나 또 이 사진을 바라보면서 어느 사진이든 사랑스럽다고 느낍니다.


  가만히 보면, 한국에서 사진길 걷는 분 가운데 최민식 님은 부산 자갈치 저잣거리에서 벌써 쉰 해 넘도록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저잣거리 일꾼’을 마주하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그러나, 최민식 님으로서는 ‘늘 새로운 길’을 걷는 마음일 테고, ‘언제나 다른 삶결’을 마주하면서 사진을 찍는다고 느낄 테지요.


  사랑하는 마음이 될 때에 사진을 찍는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진을 읽는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북돋운다면, 사진학교를 못 다니고 사진강의를 못 들었다 하더라도, 사랑스럽게 즐길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곱게 건사한다면, 사진이론이나 사진비평을 모른다 하더라도, 사랑스럽게 사진을 읽는 하루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4345.6.2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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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찍기
― 사진에 담는 얘기

 


  아이 어머니가 빛종이를 알맞게 자르고 접어 여럿을 한데 그러모아 볼록볼록한 종이공을 접습니다. 누구라도 찬찬히 생각하며 천천히 접고 끼우면 볼록볼록한 종이공을 접을 수 있다고 합니다. 아이는 어머니가 접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손바닥에 살며시 올려놓고는 좋아합니다. 발가락 사이에 끼워 어기적어기적 걸으며 아버지한테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윽고 종이공이 둘이 되니 손바닥에 예쁘게 올려놓고는 방바닥에 드러눕습니다. 아버지한테 이 예쁜 공 사진으로 찍어 달라고 말합니다. 나는 사진기를 손에 쥐고는 아이가 웃는 사진을 두 장 찍습니다.


  사진 한 장은 사진기를 손에 쥔 이가 찍고 싶을 때 찍으며 태어납니다. 사진 두 장은 사진기를 바라보는 이가 찍히고 싶을 때 찍히며 태어납니다. 사진을 찍고 싶은 사람은 사진에 찍히는 사람 마음을 따사롭게 보살피며 사진에 찍히고 싶게끔 이끌어야겠지요. 사진에 찍히고 싶은 사람은 사진을 찍는 사람 마음이 환하게 밝아지도록 돌보며 사진을 찍고 싶게끔 이끌어야겠지요.


  삶이 따사로울 때에 사진이 따사롭다고 느낍니다. 사진이 따사롭구나 싶다면 삶이 더없이 따사롭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삶이 넉넉할 때에 사진이 넉넉하다고 느낍니다. 사진이 넉넉하구나 싶다면 삶이 가없이 넉넉하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사진에 담는 얘기란 바로 사람들 스스로 아끼며 좋아하고 꿈꾸는 모습이리라 느낍니다. (4345.6.20.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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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짓는 손길과 사진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58] Jorma Komulainen 엮음, 《Vision of Finland》(Kirjayhtyma,1990)

 


  헌책방 나들이를 즐기면서 나라밖 사진책을 기쁘게 장만하곤 합니다. 세계사진역사에 이름 한 줄 올리지 못한 이들이 빚은 사진으로 이루어진 숱한 사진책을 재미나게 만나 예쁜 꿈을 꾸면서 사들이곤 합니다. 나한테 돈이 퍽 많았다면 헌책방 나들이를 안 즐겼을까 살짝 궁금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러니까, 돈있는 집에서 태어나 돈을 실컷 쓰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굳이 헌책방을 뒤지지 않으면서 지구별 숱한 사진책을 수만 수십만 권 장만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돈있는 집에서 태어나는 바람에 책길이나 사진길하고는 사뭇 동떨어진 길을 걸을는지 몰라요. 돈을 펑펑 쓰면서 내 삶을 나 스스로 안 사랑하는 길에서 헤맬는지 몰라요.


  꼭 돈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사진책이 아닙니다. 반드시 돈이 넉넉해야 살 만한 사진기가 아닙니다. 돈이 적다면 적은 대로 사진책을 살 수 있습니다. 돈이 아예 없으면 얻어서 읽거나 빌려서 봅니다. 책방에 가서 선 채로 볼 수 있습니다. 돈이 적으면 적은 돈에 맞추어 사진기를 장만할 수 있습니다. 돈이 아예 없으면, 남한테서 얻어서 쓸 수 있어요. 또는, 따로 기계를 써서 필름이나 메모리카드에 앉히지 않는 사진을 찍습니다. 내 눈으로 바라보고 내 마음으로 아끼며 내 사랑으로 보듬을 사진을 누리면 됩니다.


  서울 용산에 있는 헌책방 〈뿌리서점〉을 찾아가서 온갖 책을 신나게 들여다보다가 《Jorma Komulainen 엮음-Vision of Finland》(Kirjayhtyma,1990)라 하는 사진책 하나를 집어듭니다. 지구별 여러 나라에서 ‘제 나라를 이웃에 널리 알리려 하는 사진책’을 내놓을 때에는 으레 ‘나라이름’만 적습니다. 때때로 ‘beautiful’ 같은 이름을 붙여요. “Vision of Finland”처럼 ‘앞날을 꿈꾸는 생각’을 이야기하려는 사진책은 퍽 드뭅니다.

 

 


  나는 핀란드라는 나라를 여러모로 좋아합니다. 가 본 적 없고, 참말 가 본 적 없으니 겪은 적 없을 뿐더러, 내 곁에는 핀란드 동무나 이웃이 없어요. 그런데 이래저래 듣거나 마주하는 ‘핀란드 문화와 삶과 사회’는 매우 살가우면서 예뻐요. 요즈막에는 한국땅에 ‘핀란드 교육 혁명’ 이야기가 들어오기도 해요. 곧, 거꾸로 생각해 보면 돼요. 핀란드에 ‘한국 교육 혁명’ 같은 이야기가 흘러들 수 있을까요. 핀란드 아이들이 한국 학교 아이들처럼 ‘시험공부에 시달리’도록 핀란드 어른들이 함부로 내몰까요.


  핀란드 아이들이 좋은 배움터와 삶터와 놀이터와 꿈터를 누릴 수 있다면, 핀란드 어른들 또한 좋은 일터와 만남터와 숲터와 사랑터를 누릴 수 있다는 뜻이라고 느껴요. 아이들도 어른들도 나란히 누리는 핀란드 숲일 테지요.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다 함께 즐기는 핀란드 책내음과 삶내음과 사랑내음일 테지요.


  사진책 《Vision of Finland》를 읽습니다. 핀란드에서 살아가는 여러 사진쟁이들 사진을 아기자기하게 담습니다. 따로 어느 한 사람 사진으로 이루어진 책은 아니요, 사진이 한결같이 포근하고 저마다 맑게 빛납니다. 모두들 어떤 삶을 누리면서 사진을 찍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어떠한 삶터에서 어떠한 이웃을 사귀며 지내기에 밝은 빛살을 살뜰히 품는 사진을 보여주는가 하고 가늠해 봅니다.

 


  한참 책장을 넘기다가, ‘무민’ 이야기를 쓰며 핀란드 어린이문학을 빛낸 ‘토베 얀슨’ 님 사진과 무민 모습이 두 쪽에 걸쳐 나오는 대목을 봅니다. 오래도록 들여다봅니다. 한국에서 한국을 널리 알리려는 사진책을 정부이든 공공기관이든 문화부이든 개인이든 상업출판사이든 이럭저럭 애써 내놓는다 할 때에, ‘한국 아이들 꿈을 보살피고자 어린이문학을 빛낸’ 분들 모습과 이야기를 한 자리 살포시 꾸밀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이제껏 이렇게 해 보리라 생각한 사진쟁이나 책쟁이나 글쟁이가 있었나 궁금합니다. 지구별 어느 나라나 ‘글’이나 ‘문학’을 빛낸 사람을 손꼽으며 예쁘게 기릴 적에는 으레 ‘어린이문학’으로 꿈과 사랑을 돌본 이들 이름부터 적바림하는 줄 깨닫는 한국 문화쟁이나 예술쟁이는 있을까 궁금합니다.


  사진책 《Vision of Finland》에는 숲에서 살아가는 곰 사진도 몇 장 깃듭니다. 참말 숲에서 곰이 홀가분하게 살아가니까 이런 사진을 찍어서 실을 만하겠지요. 참으로 핀란드는 자연이 넓고 아름답기에 너르며 아름다운 숲과 들판과 바다를 해맑게 보여주는 사진을 찍어서 실을 만하겠지요.


  핀란드에도 헬싱키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핀란드에서도 겨울올림픽이든 여름올림픽이든 퍽 커다란 행사나 경기를 치르곤 합니다. 그런데 핀란드에서는 ‘더 높이 세우는 건물’을 자랑하는 듯 보이지 않습니다. 핀란드 사진책에서는 ‘더 크거나 더 우람하거나 더 대단하다’고 내세울 만한 모습은 굳이 보여줄 마음이 없는 듯합니다.

 

 


  다 다른 사람들은 저마다 아름답습니다. 키가 더 커서 더 멋지지 않습니다. 얼굴이 더 예쁘장하다 말하기에 더 즐거울 삶은 아닙니다. 머리가 똑똑하대서 누구 한 사람이 가장 돋보이거나 훌륭하지 않습니다. 큰 키도 작은 키도 없고, 가난하거나 가멸찬 살림도 없습니다. 누구나 스스로 누리는 좋은 나날이요, 저마다 손수 빚는 좋은 삶입니다. 올림픽에서 보리빛 메달을 목에 걸어야 눈밭을 싱싱 잘 달리지 않습니다. 시험을 치러 1등이 되어야 대학교에 붙지 않습니다. 아이를 밴 어머니가 몇 분이나 몇 시간이나 몇 초라는 숫자에 맞추어 아이를 낳지 않습니다. 아이한테 먹이는 밥그릇에 밥알 숫자를 하나하나 세어 담지 않습니다.


  좋게 누릴 삶을 생각하면서 좋게 나눌 사랑을 좋게 바라보는 눈길로 얼싸안는 손길일 때에 비로소 사진 한 장 찍습니다. 누군가는 눈물지으며 사진을 찍을 테고, 누군가는 웃음지으며 사진을 찍을 테지요. 괴롭거나 힘들다면 눈물바람 사진이 나올 만한데, 괴롭거나 힘든 나날에도 방긋 웃으며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어요. 누군가 보기에는 참 꾀죄죄하거나 고달프다는 삶이라 하지만, 언제나 스스럼없이 웃음지으며 사진에 찍히는 사람이 있어요.

 


  무엇일까요. 무엇인가요.


  사진은 무엇이고, 사진으로 담는 삶은 무엇일까요.


  사진을 찍어 빚는 책은 어떤 넋을 담으면서 사랑스러운가요. 책에 담으려 찍는 사진은 어떤 얼로 빚을 때에 아름다운가요.


  여기에서 누리는 삶을 여기에서 찍습니다. 여기에서 짓는 삶을 여기에서 사진책으로 짓습니다. 사랑을 짓는 손길이 사진을 짓는 손길입니다. 꿈을 짓는 손길이 사진을 짓는 손길입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손길이 사진을 나누는 손길입니다. 아이들한테 좋은 밥 한 그릇 베푸는 손길이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 좋은 사진을 누리도록 베푸는 손길입니다. (4345.6.17.해.ㅎㄲㅅㄱ)

 

(사진책 읽는 즐거움 -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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