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내 마음의 산골마을
박희병 지음 / 그물코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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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 하나 41 ― 돈 아닌 ‘사람’이 가꾸는 고향마을
 : 박희병, 《거기, 내 마음의 산골마을》을 읽으며


- 책이름 : 거기, 내 마음의 산골마을
- 글쓴이 : 박희병
- 펴낸곳 : 그물코(2007.7.25.)
- 책값 : 8000원



 (1) 천막농성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 깃든 동네 한복판을 쑤석거리려는 산업도로를 반대하는 뜻으로 펼쳐 놓은 천막농성터에 나와 있습니다. 어느덧 열아흐레째(3월 17일). 인천시는 자기들이 밀어붙이려는 산업도로가 주민들 반대에 막히어 공사 삽날이 멈추게 되자, 살그머니 말을 돌려서 여론을 바꾸려고 애를 씁니다. 동네 한복판에 놓으려고 하는 길은 ‘산업도로’가 아닌 ‘6차선 간선도로’라 말하고, 방음벽 세우면 걱정거리가 없다고 하면서.

 처음부터 ‘6차선 간선도로’를 내야 하는 곳이 아니었음에도 ‘산업도로에서 간선도로로 목적을 바꾸었으니, 이런 길은 내야 하지 않느냐?’고 주민들 앞에서 이야기를 합니다. “이 길이 나야 공해가 줄어든다니까요?” 하는 말과 “이 동네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길이라니까요?” 하는 말에는 그만 질려 버립니다. 찻길이 나야 공해가 줄어든다니, 찻길이 나야 동네가 발전한다니 …….

 천막농성터를 찾아온 인천 동구 구청장님은 말합니다. “어차피 이 동네는 재개발과 재생사업을 할 텐데, 그런 간선도로 놓아 보았자 중복투자가 되니 쓸모가 없다”고. 구청장님은 “나한테는 권한이 없어요. 그리고 시에다가도 이런 길은 내지 말아야 한다고 요청하는 공문도 보냈습니다.” 하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여쭈어 봅니다. 몇 해 앞서 보낸 공문 말고, 요즘에도 그런 요청을 공문으로 시에 올린 적이 있느냐고. 구청장님은 “요사이에는 올리지 않았습니다” 하고 대답해 줍니다.

 구청장님은 ‘일개 구청장한테는 아무런 힘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하다면, ‘일개 주민’은 어떤 힘이 있는가요. 위에서 내려보내는 명령과 지시가 있으면, 힘이 없는 ‘일개 구청장’은 곧이곧대로 따라야 하고, ‘일개 주민’은 아이고 고맙습니다 하고 받아들여야 하나요.


.. 벼가 익으면 이른 아침부터 벼를 베었다. 낫으로 한 동씩 한 동씩 정성껏 베었다. 한 손으로 벼포기를 잡고 벼 밑동을 싹둑싹둑 베었다. 벤 벼는 논바닥에 눕혀 놓았다. 벼 베는 일은 허리가 아프고 힘든 일이지만 일 년의 보람이 여기에 있었다 ..  (벼 베기/152쪽)


 구청장님 말이 아니더라도 가난한 동네 사람들 몇몇 힘으로 나라힘(공권력)을 뒤집기는 어렵다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옳지 않은 일을 앞에 두고서 힘이 딸린다고, 힘이 모자란다고, 힘이 없다고 하여 물러설 마음은 없습니다. 우리들 삶터가 포크레인 삽날에 찢기고 갈리게 되는 모습을 마냥 불구경 하듯 손 놓고 바라볼 수 없습니다.

 내 모든 이야기와 발자국이 남아 있는 고향인데, 이 고향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모습을 뒷짐 지고 구경할 수 없습니다. 시멘트로 떡바른 아파트가 성냥갑처럼 촘촘히 올라서며 햇볕을 막아 버리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습니다. 우리 뒷사람들이 ‘당신(앞사람)들이 말하는 옛날 자취와 역사와 문화란 무엇이냐?’고 따질 때, ‘우리(뒷사람)들한테 시멘트 아파트만 달랑 남겨 놓고서 우리보고 무엇을 보고 느끼고 꿈꾸며 자라라고 하는 셈이냐?’ 하고 따질 때, 미안합니다 한 마디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흐흐흐 웃으며 고개를 돌리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앞사람)는 여기에서 태어나서 이와 같은 집에서 살았고 이러한 골목길에서 뛰놀았으며 이런 역사가 깃든 학교에서 공부했단다’ 하고 들려주고 싶습니다. 공장 굴뚝보다는, 도시락 싸들고 나들이를 올 수 있는 나무그늘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자동차 배기가스보다는 걱정없이 자전거를 타고다닐 수 있는 사람길을 나누어 주고 싶습니다. 돈으로 이룩한 지엔피 숫자보다는, 땀방울과 웃음울음으로 쌓아올린 책 하나를 남겨 주고 싶습니다.


.. 추수를 끝낸 논에 가 보면 너무도 허전하였다. 그 많던 개구리며 물방개며 소금쟁이며 미꾸라지는 싹 종적을 감추고, 벼 밑동만이 논바닥 까만 흙 위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추수가 끝난 논을 혼자 밟으며 노는 일은 너무나 유쾌한 일이었다. 그 속에는 개구리, 물방개, 소금쟁이의 기억들이 서랍 속의 물건들처럼 빼곡히 들어차 있었따 ..  (추수한 뒤의 논/35쪽)


 (2) 내 고향 네 고향


 일곱 살 앞서는 거의 떠오르지 않지만, 일곱 살 때부터는 하나하나 떠오릅니다. 그 무렵 살던 다섯 층짜리 아파트는 연탄으로 때던 곳이었고, 1층 집으로 들어가려면 계단 다섯을 밟고 올라가야 했습니다. 2층부터는 일곱 계단이었다고 생각하는데, 한 칸씩 밟고 올라가기보다는 멀리서 달음질을 해 오며 폴짝 뛰어오르기를 좋아했습니다. 처음에는 네 칸 뜀뛰기가 되었고 드물게 다섯 칸 뜀뛰기가 됩니다. 제자리뛰기를 하면 거의 세 칸 뜀뛰기가 되고, 네 칸을 밟을락 말락 하다가 뒤로 자빠질 뻔하기도 하고 앞으로 콩 넘어지며 무릎이 깨지기 일쑤입니다. 4층에 있는 우리 집으로 갈 때면 형하고 잡기놀이 하듯 신나게 뛰어올라갑니다. 이때부터는 셋셋하나, 또는 셋둘둘, 또는 셋넷, 또는 둘셋둘.

 거꾸로 4층집에서 내려갈 때에는 한꺼번에 일곱 칸 뛰기를 해 보는데 이럴 때면 무릎이 아프기도 하여 셋넷 나누어 뛰기로 내려오곤 합니다. 때때로 나무로 된 손잡이를 잡고는 계단밟기를 않고 아래쪽 손잡이를 밟고 다시 아래쪽 손잡이를 잡은 뒤 그 아래쪽 손잡이를 밟고 하기를 되풀이. 손잡이에 한쪽 엉덩이를 깔고 미끄러져 내려오기도 합니다.

 어머니 일을 도와서 신문돌리기를 할 때에도 뜀뛰기 놀이 하듯 쉬지 않고 달립니다. 겨드랑이에 끼고 달리는 신문이 무거워 1층 난간 손잡이에 신문을 올려놓고는 한두 부만 집어서 후다닥 올라가 우유주머니에 넣거나 문틈에 끼우거나 문 아래로 밀어넣습니다. 신문 보는 집마다 ‘넣어 달라고 하는 방법’이 달라서, 작은 쪽지에 이런저런 방법을 적어 놓고는 그때그때 보면서 넣습니다. 5층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 신문이 한 부씩 사라질 때가 있어서 나중에는 무거워도 통째로 들고 올라갔다가 내려오기도 합니다. 신문돌림꾼이 지나가는 때를 알고는 슬쩍 한 부 훔쳐가는 사람이 꼭 있습니다.


.. 흙이 있는 데는 어디든지 땅강아지가 있었다. 마당에도 있고 담부랑 밑에도 있고 집 뒤에도 있고 집 앞에도 있고 밭에도 있고 길에도 있고 강변에도 있고 묵은땅에도 있고 논두렁에도 있고 숲에도 있었다 ..  (땅강아지/138쪽)


 열다섯 동으로 이루어진 다섯 층짜리 아파트에는 큰 놀이터가 둘 있었습니다. 한쪽은 모래밭으로만 제법 길게 이어져 있어서, 이곳에서는 공차기도 하고 공치기도 합니다. 먼저 와서 찜 하는 아이들이 차지하고 놀곤 해서(어차피 같이 놀게 되기는 하지만), 학교 마치고 집으로 올 때면 집에 책가방 던져놓기 앞서 먼저 찜해 놓는 아이가 있기 마련. 넓은 모래밭을 차지하지 못하면, 바로 건너편에 있는 조금 좁은 모래밭을 차지. 이곳도 차지하지 못하면, 1동부터 8동 사이로 퍽 널찍하게 나 있는 찻길이 놀이터. 여기도 차지하지 못하면, 차가 가장 적게 서 있는 동과 동 사이가 놀이터.

 중학교에 들어선 1988년까지도 집에 차를 모는 사람이 드문 우리 동네라서, 우리들 놀이터는 언제나 넓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차도 많지 않은 아파트마을에 웬 빈터를 그리 넓게 마련했는가 모를 일인데, 인천 시내에 있는 다른 5층짜리 아파트도 동과 동 사이 빈터는 모두 넓었어요.


.. 아무리 추워도 사흘만 견디면 다시 따뜻한 날이 온다는 희망 때문에 긴긴 겨울을 날 수 있었다. 나흘이 따뜻하면 사흘이 아무리 추워도 견딜 만하였다. 견뎌내기만 하면 다시 따뜻한 날이 온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행복하였다 ..  (삼한사온/127쪽)


 이렇게 모래밭 놀이터를 차지하면서 공차기를 할 때는, 발이 푹푹 빠지니 제대로 달릴 수 없지만, 그래도 좋다며 신이 나서 달리고 찹니다. 야구놀이를 할 때에는 뜬공 잡기 힘들고 튄공 잡기 버겁지만 좋다고들 뛰고 치고 북적댑니다.

 하드볼이 아닌 테니스공으로 했으니 유리창 깰 일은 거의 없습니다. 다만, 요즈음 아파트처럼 툇마루 통유리를 한 집이 몇 군데 없었기에 파울을 치면 툇마루 안쪽으로 쏙 들어가 버리고. 이때는 공을 친 아이가 그 집을 찾아가서 딩동딩동 단추를 눌러서 공 꺼내 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허구헌날 여러 차례 공 꺼내기 해 주어야 하는 아주머니나 할머니는 우리들 개구쟁이를 몹시 싫어했습니다. 공을 안 꺼내 주겠다고 하면서 욕설이나 큰소리가 나왔고, 공 들어간 집이 1층이나 2층이면 몰래 담벼락을 타고 들어가서 꺼내오곤 하는데, 그러다가 수위 아저씨한테 걸리기라도 하면 죽도록 얻어맞거나 안 붙잡히도록 내빼기.

 동과 동 사이에서 야구를 할 때는 포수가 없이 벽을 포수 삼고 분필로 스트라이크존을 그립니다. 여기에 들어가면 스트라이크. 안 들어가면 볼. 그런데 벽치기 야구를 할 때에도 걸림돌이 있습니다. 벽치기 대상이 되는 1층 집 아저씨나 아주머니가 창문을 열고 “딴 데 가서 놀아!” 하고 빽 소리를 지르니까요.

 벽치기 야구를 할 때에는 으레 2층이나 3층 또는 4층이나 5층까지도 공이 들어갑니다. 어쩌다가 옥상에 공이 올라가면 이때에도 수위 아저씨가 있나 없나 두리번두리번 살핀 뒤 살짝 옥상문 열고 들어가서 공을 주워 옵니다. 위험하다고 해서 옥상에는 못 올라가게 하지만, 이 옥상에 올라가서 공을 주울 때면 우리 아파트마을 오른편에 있는 경인고속도로 들머리가 내려다보이고, 왼편에 있는 제2부두가 내려다보입니다. 공을 줍고 나서 한참 동안 큰 짐차와 컨테이너차를 구경합니다. 타워크레인으로 컨테이너를 집어서 큰 짐배에 싣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다가 저 멀리 수위 아저씨가 저를 보고 꽤액 하고 소리를 치면, 부리나케 옥상 사다리를 타고 내려와서 어디엔가 숨습니다. 이윽고 다른 동무들이 ‘아저씨 갔다’는 신호가 나오면 조용히 나와서 다시 벽치기 야구놀이를 하고.


.. 웬만한 마을 바위는 모두 이름이 있었다. 누가 지었는지 알 수 없지만, 들은 대로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자식은 부모에게서 듣고 부모는 그 부모에게서 듣고 부모의 부모는 또 그 부모에게서 듣고 부모의 부모는 또 그 부모에게서 듣고 이런 식으로 들어 알기도 했을 테지만, 어릴 때부터 마을사람들한테 들어 알기도 했을 것이다 ..  (바위/101쪽)


 모래밭에서 동 대항 야구놀이를 하던 어느 날, 우리 형이 타자로 나온 모습을 보고는 뒤에서 응원한다고 촐싹거리다가 야구방망이에 귀가 맞아서 찢어져 피가 철철 흐르기도 했습니다. 이날 형은 집에서 구두주걱이 부러지도록 얻어맞고, 야구놀이는 파장이 되고, 저는 너덜거리며 아픈 귀를 잡지도 못하고 눕지도 못하고 엉엉 울기만 하고.

 열흘쯤 앞서 오랜만에 형과 형 옛동무를 만나서 신포시장에서 순대 한 접시 시켜 놓고 소주를 마시다가 옛날 제 귀 떨어진 이야기를 했습니다. 형은 “야, 너 때문에 내가 집에서 얼마나 맞은 줄 알아?” 하고 웃으며 이야기를 합니다만, 그때 아버지한테 얼마나 모질게 혼이 났을까요. 참 미안한 옛일입니다.


.. 한쪽 다리로 나무를 밟고 큰 도끼를 어깨 너머까지 힘차게 들었다가 휙 내리치면 나무가 딱 벌어지며 쪼개지는 것이었다. 한 번에 쪼개지지 않는 나무도 있었는데, 그런 나무에는 반드시 옹이가 있었다. 옹이는 나무의 상처였다. 아버지는 “상처가 있는 나무는 단단하단다”라고 하셨다 ..  (장작/40쪽)


 그런데 이런저런 이야기가 깃든 5층짜리 아파트는 헐려서 없어지고 22층인가 23층짜리 새 아파트가 이 자리에 우람하게 올라섰습니다. 시내버스를 타고 가끔 이 앞을 지나갈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 있던 기름집도 함께 사라지고 기름집 자리에는 맥도널드가 2층짜리 건물로 들어섰습니다. 예전 집자리 건너편 정석빌딩은 지금도 그대로. 예전 집자리 왼편에 있던 한국은행 인천지점은 지금도 그대로. 새로 올라선 높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옛 이웃은 지금도 몇 집 있으나, 우리 집을 비롯한 거의 모든 이웃은 다른 데로 살림을 옮겼습니다. 이 가운데에는 인천을 떠난 사람도 있을 테고, 우리 나라를 떠난 사람도 있을 테지요. 멀리멀리 떠나간 사람들이 자기 어린 나날을 보낸 집자리로 돌아와 볼 일이 있을까 모릅니다만, 예전 집자리로 돌아와 본다 한들, 어린 날을 돌이킬 수 있는 ‘무엇인가’는 거의 한 가지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신흥 남여 중학교로 가는 울타리도 없고, 울타리에 자라던 까마중도 없으며, 제일제당에서 인천 앞바다로 흘려보내는 쓰레기물 흐르는 개천은 뚜껑이 덮이어 뚜껑 밑으로 쓰레기물이 흐르는지 민물이 흐르는지 똥물이 흐르는지 아무도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그때나 이제나 이곳 하늘을 날고 있는 갈매기를 만납니다. 공장과 자동차에서 뿜어내는 매캐한 연기와 먼지밖에 없는 곳임에도, 갈매기는 이곳, 바닷가 마을을 잊지 않고 찾아와 줍니다. 몸에 좋을 턱이 없는 새우깡이나마 던져 주는 이 없고, 지친 날개 쉬며 느긋이 앉을 너럭바위 어디에도 없이 모텔만 줄줄줄 늘어선 이곳이지만, 갈매기는 한결같이 찾아와 줍니다.

 바다를 앞에 끼고 살아가는 인천사람이지만 갈매기 바라보는 사람이 없는데. 경인고속도로를 타고 인천으로 찾아오는 바깥사람들도 갈매기를 바라보지 않는데.


 (3) 《거기, 내 마음의 산골마을》을 책꽂이에 꽂으며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천막 둘레로 지나갑니다. 먼저 초등학생들이 지나갑니다. 재잘재잘 쫑알쫑알. 곧 중학생들이 지나갑니다. 천막 둘레에 걸어 놓은 걸개천 글씨를 읽으며 지나갑니다. 이제 어둠이 깔리면 고등학생들도 지나갈 테지요.


― 나무를 보고 있으면, 말이 없는 것이라고 해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갈참나무/136쪽)
― 두릅을 먹으면 두릅나무에 왜 가시가 많은지 알 것 같았다.  (두릅/133쪽)
― 나무를 모르면 그 눈꽃이 그 눈꽃이지만, 나무를 알면 눈꽃이 저마다 달랐다.  (눈꽃/96쪽)
― 같은 밥을 늘 같이 먹으니 누렁이는 얼굴이며 성품이 우리와 같았다.  (누렁이/83쪽)
― 산골마을에는 교회나 절 같은 건 없어도 밤하늘의 별들 때문에 평화로웠다.  (별/47쪽)



 산골마을에서 어린 날을 보냈던 박희병 님은 당신 어린 날을 돌아보면서 책 하나를 적어내려 갑니다. ‘오늘날 박희병’을 이루어낸 뿌리가 무엇인가를 되짚으면서 책 하나 끄적여 내놓습니다. 서울대학교에서 국문학을 가르치면서 우리 옛문학 이야기를 틈틈이 책으로 써 내다가, 뜬금없이 당신 옛 고향 발자취를 더듬는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어쩌면 뜬금없는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까뭉개며 없애려고 하지만, 없어져서는 안 될, 아니 찬찬히 되살아나야 좋을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엮어내었는지 모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고향마을이 될 터전을 자꾸자꾸 짓뭉개거나 밟아 없애려고 하기에, 이러다가는 우리 모두 죽음길로 갈밖에 없다는 걱정이 커지면서 내놓았는지 모릅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거의 모두 도시에 지어진 높고 우람한 아파트에서 살며 부모나 학원 차를 타고 집과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지냅니다. 흙 밟을 일이 없지만 아스팔트와 시멘트 바닥 밟을 일도 드뭅니다. 이런 가운데 자라고 있는 아이들은 앞으로 스무 해쯤, 또는 서른 해나 마흔 해쯤 뒤, 자기가 자랐던 어린 날 고향을 떠올리면서 어떤 이야기를 남길 수 있을까요. 자연과 담을 쌓는다기보다 아예 ‘자연이라고 하는 국물도 건더기도’ 없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돌아보면서 끄적일 이야기는 누구한테 얼마나 아름다움과 즐거움으로 다가갈 수 있을까요.


.. 똥물을 주면 채소는 몸이 실해져 벌레가 잘 달라붙지 않고 잎에서는 당장 윤기가 났다. 사람은 자기가 먹은 것을 똥으로 누고 똥은 다시 먹을 것이 되고 먹은 것은 또다시 똥으로 되고 똥은 또다시 먹을 것이 되니 결국은 제한테서 나와 제한테로 돌아가는 듯 싶었다. 마을 어딜 가도 늘 똥냄새가 났으나, 그래서 그 냄새는 싫지 않았다 ..  (똥바가지/118쪽)


 천막농성 열아홉 날이 저물고 스무 날이 다가옵니다. 지난 3월 3일 낮, 인천시 종합건설본부장은 천막농성 터로 한 번 찾아왔습니다. 그날 그분은 우리들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이거 강제로 포크레인 가지고 때려부수면 그만이라니까!” 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태껏 동네사람들하고 ‘막공사 산업도로’ 문제로 열린 토론마당을 한 번도 마련하지 않고 ‘시에서 2020년까지 내다보면서 마련한 계획이니 이대로 해야 한다’는 방침만 통보하고 있는 마당에, 종합건설본부장이라는 자리에 앉은 분 말로는, 더욱이 천막농성터에 찾아온 분이 꺼낼 말로는, 그다지 알맞다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처음 이 소리를 들었을 때에는 뜨거운 무엇이 머리끝까지 솟구쳐올랐고, 헛웃음을 웃으며 돌아가는 종건본부장 겉옷자락 꽁무니를 볼 때에는 소름이 돋았으며, 주민과 만나서 이야기를 할 마음이 없다는 뜻을 다시금 알게 된 뒤에는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일구어 가는 우리 고향이요 우리 문화요 우리 사회요 우리 세상이 아니라, 돈(경제) 논리 하나만으로 삽날을 앞세워 파헤치고 무너뜨린 다음에 다른 돈보따리를 들고 와서 새로운 집을 지으면 된다고 하는 마음씀은 그지없이 불쌍하고 못난 지식쪼가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토록 오랜 세월 높은 대학교까지 다니면서 얻은 지식이, 그동안 나라밖 여러 곳을 다니며 듣고 보았다는 경험이, 여태 정부 부처 여러 자리에서 나라일을 주물러 왔다는 움직임이 고작 이만큼밖에 안 되느냐 싶으니 눈물이 다 날 노릇이었습니다.

 길은 돈으로 내고 아파트도 돈으로 짓는다지만, 길은 누가 다니고 아파트에는 누가 살지요? 두 다리가 아닌 자동차로만 움직이는 사람은 얼마나 사람다운 사람이며, 온 몸뚱이가 아닌 돈으로 사들여 잠만 자고 떠나는 아파트는 얼마나 사람 깃들일 만한 집입니까? (4341.3.1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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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와 테러리스트 - 앙굴리말라 이야기
사티쉬 쿠마르 지음, 이한중 옮김 / 달팽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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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부처와 테러리스트
- 글 : 사티쉬 쿠마르
- 옮긴이 : 이한중
- 펴낸곳 : 달팽이(2005.1.27.)
- 책값 : 6500원



 이 책 하나 35 ― 바보 기자와 어리석은 공무원한테 책 선물
 : 사티쉬 쿠마르, 《부처와 테러리스트》를 읽고



 (1) 기자와 공무원


 월요일인 어제, 2월 25일 아침 아홉 시 사십팔 분, 연합뉴스 인천지사에서 일하는 기자한테서 전화가 옵니다. 이분이 쓴 ‘배다리 산업도로 공사재개’ 기사가 오로지 인천시에서 보도자료로 돌린 글에 바탕을 두고 쓰느라, 주민들 목소리를 하나도 담지 않기도 했으나, 이보다도 사실관계를 찬찬히 살피지 않고 썼기에 인터넷편지로 ‘정정보도 요청’을 했어요. 기자는 자기가 주민 목소리를 담지 않은 대목과, 자기가 쓴 기사와는 달리 ‘인천시가 주민하고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누어 보지 않은 한편, 이야기를 나누려 애쓰지도 않았다’는 대목, 또 공사진행율을 수치로 따져서 말할 때 당신들로서는 그 수치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대목 들을 말합니다.

 그분으로서는 고침 기사를 쓸 수는 없구나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래도 전화 한 통 넣어 주니 고맙습니다. 우리 동네 한복판, 아니 인천이라는 곳이 지금 모습으로 자리잡는 동안 뿌리내리고 살아온 오래된 서민 동네 한복판에 너비 50∼70미터에 이르는 산업도로를 우격다짐으로 뚫어내겠다고 하는 인천시 공무원 가운데 어느 누구도 우리 동네 사람들하고 ‘그래, 무엇이 문제냐?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안다, 안다. 그대가 누군지 안다. 하지만 그대는 내가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죽어 줄 수 있다는 걸 모르는가?” 부처는 잠시 한숨을 돌리더니 말했다. “난 언제든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 죽는 것은 아무도 해롭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죽이는 건? 남들을 죽이니 어떤 기분이 들지, 앙굴리말라? 죽이는 것에 관해 자신의 감정을 깊이 한번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  (25쪽)


 공무원은 누구 때문에 일하는 사람일까 생각해 봅니다. 공무원은 어디에서 일하는 사람일까 생각해 봅니다. 공무원은 왜 일하는 사람일까 생각해 봅니다. 공무원이 되면 ‘먹고살기 힘든 요즘 세상에 안정된 일자리와 넉넉한 노후보장’이 되니 좋은가요. 위에서 내려보낸 일을 말없이 따르기만 하면 되는가요.

 관청 어느 곳마다 ‘민원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민원실’에서는 어떤 ‘주민 목소리’를 듣고 고치려고 하는지요. 주민들이 살기 팍팍하다고 하는데, 지금 우리한테 있어야 할 것은 수천 억이나 수 조에 이르는 돈을 쏟아부으며 새로 닦는 찻길이 아닌데, 그 어마어마한 돈을 우리 주머니에서 뽑아낸 세금으로 닦을 까닭이 없는데, 그 엄청난 돈으로는 지역 문화를 북돋우고 지역 사회를 가꾸고 지역 복지와 교육을 일으키는 데에 써야 할 텐데, 이런 목소리는 ‘민원’이 아니라고 여겨서 입 닫고 귀 막고 눈 감고 있어도 되는지요.

 사람이 살아가는 터전보다 찻길이 더 많은 세상이 되어 버리면, 사람이 걱정없이 걸어다닐 길이 아니라 주차장만 잔뜩잔뜩 만들어 버리면, 우리들이 이 땅에 목숨붙이 하나로 태어난 보람과 기쁨은 어디에서 어떻게 맛볼 수 있을는지요.


.. “사랑의 힘을 발휘해 보라. 본성의 힘은 칼의 힘보다 강하다. 사랑의 힘은 그대 안에서 자라는 것인 반면, 칼의 힘은 바깥에서 주어지는 것이다 … 칼의 힘은 남들의 나약함과 굴종과 무기력에 의존한다. 그러나 사랑의 힘은 모든 사람들에게 힘을 주지.” ..  (32∼33쪽)


 어제 아침 연합뉴스 기자한테 전화를 받은 뒤, 부지런히 짐을 챙겨 인천시청으로 갑니다. 아침 11시에 시청 기자실에서 ‘산업도로 강행하려는 인천시를 규탄하며, 다시금 인천시장 면담을 요청’ 하는 기자회견을 하기에. 동네사람 가운데 하나이면서,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는 시민기자인 하나로 찾아갑니다.

 인천시청은 퍽 뻘쭘한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제가 국민학교 다닐 무렵, 인천 중구에서 지금 자리로 옮겨 왔는데, 그때에나 이제에나 교통 편이 아주 나쁩니다. 버스도 잘 다니지 않아요. 더욱이 버스는 시청 뒷문에 멈출 뿐입니다. 시청으로 찾아갈 때 앞이 아닌 뒤에서 버스를 내려서 찾아가도록 하는 곳이 인천 말고 다른 데에 또 있을까요?

 옆지기가 버스를 타면 멀미를 하기에 인천지하철을 타고 갑니다. 돌고 돌아 인천시청역에서 내리니 우람하게 지은 땅밑 건물에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인천지하철에는 짐칸이 없어, 타고 오면서 ‘뭐 이런 게 다 있어?’ 하고 투덜투덜거렸는데, 전철에서 내려 높직한 계단을 하염없이 밟고 오르면서, ‘지하철역 안에 이렇게 대리석으로 꾸미는 데 들어간 돈이 어디에서 나왔는데?’ 하는 푸념이 끊이지 않습니다. 앉아서 다리쉼 할 자리도 거의 보이지 않으면서 그예 큼직큼직하게 이것 꾸미고 저것 꾸미고 …… 누구한테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는 건물인지.

 버스와 마찬가지로 시청 뒷문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는 인천지하철. 시청 앞은 오로지 자가용만 몰고 가서 내리도록 짜 놓았습니다. 예전에 한 번 버스를 타고 시청 앞으로 오며 이십 분 가까이 걸었던 일을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버스정류장부터 시청 앞문까지 얼마나 멀든지.


.. “그렇다면, 지금 현재 불행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데 어찌 미래에 행복해질 생각을 한단 말인가? 어찌 엉겅퀴 씨앗을 뿌리고 장미를 기대할 수 있는가? 지금이야말로 언전하게 살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순간이다.” ..  (42쪽)


 시청으로 들어갑니다. 가운데문은 닫혀 있습니다. 수위실과 맞닿은 왼쪽 쪽문 하나만 열립니다. 가운데에 버젓이 있는 큰문이 왜 닫혀 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만, 시청 경찰 여러 사람이 가운데에 우뚝 서서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을 샅샅이 훑어봅니다.

 기자실은 2층. 기자실로 올라가는 계단은 왼쪽으로 돌아서 가라고 합니다. 나중에 보니 가운데 계단도 있어요. 그런데 이 가운데 계단은 ‘인천시장 전용 계단’으로 느껴집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시장실에 들르려고 하니 시청 경찰 대여섯이 우리를 막아서며 ‘어디를 가느냐? 시장은 지금 밥먹으러 가고 없다’면서 붙잡습니다. 다른 경찰 하나는 ‘내려가는 계단은 저기에 있다. 저쪽으로 가라’고 말합니다.

 가운데에 널찍하고 좋은 계단이 있는데, 왜 구석진 곳에 조그맣게 있는 꽉 막힌 계단으로 가야 하나요?

 오늘도 지난달처럼, 또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인천시장 얼굴은 못 봅니다. 시장 비서 얼굴조차도 구경하지 못합니다. 시청 경찰 얼굴만 잔뜩 보고는 돌아서야 합니다.


.. “연꽃에게는 적이 없습니다. 연꽃은 화를 낼 줄도 모릅니다. 연꽃은 누구를 기쁘게 할지, 누구를 불쾌하게 할지 모릅니다. 연꽃은 판단하지 않습니다. 연꽃은 성인에게도 죄인에게도 기쁨을 줍니다. 인간은 왜 연꽃처럼 될 수 없을까요?” ..  (59쪽)


 기자회견 자리를 물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옆지기가 말합니다. ‘기자라는 사람이 다들 저런가?’ 하고. 당신도 아까 한 마디를 하려다가 참았다는데, 인천에서 인천 이야기를 쓰는 기자들이 인천 이야기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말합니다. ‘여태껏 배다리 산업도로 이야기가 한두 번 나오지 않았는데, 올 때마다 똑같은 대답을 해 주어야 한다’면서, 어쩜 이럴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씁쓸하게 웃습니다. 한 마디 대꾸합니다. “인천시장도, 인천시 공무원도 배다리에 한 번도 안 와 보지만, 기자들도 배다리에 한 번도 안 와 보잖아요. 공무원도 주민하고 만나려고 안 하지만, 기자도 주민하고 만나려 안 하잖아요.”

 허허허. 허전하고 텅 비어 가는 마음 따라 눈물이 살그머니 맺힙니다.


.. “꿀벌은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옮겨 다니며 한 번에 조금씩만 꽃 속의 꿀을 얻는다. 꿀벌이 해를 끼친다고 불평하는 꽃은 없다.” ..  (68쪽)


 기자로 일하는 분들 가운데 대학교 안 나온 사람 하나 없으리라 봅니다. 공무원으로 일하는 분들 가운데 대학교 안 나온 사람 하나 없으리라 봅니다. 선배 공무원도, 선배 기자도 학교교육 튼튼히 받고, 여러 가지 지식과 상식이 많으리라 봅니다. 그런데요, 그런데 왜 이렇게밖에 일을 못할까요.

 기자든 공무원이든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쉽게 일해서는 안 되는 자리일 텐데요. 책상머리에서 일해서는 안 되는 기자이자 공무원 아닌가요. 전화통만 붙들면서 ‘사람을 만난다’고 해서는 안 되는 기자이자 공무원 아닌가요. 어떤 정책을 꾸려나가면서, 간담회든 공청회든 설명회든 한두 번이 아니라 수십 차례 이어나가면서, 또 몸소 주민을 찾아다니며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 가운데 잘잘못을 가다듬어야 하지 않나요. 기사 한 줄에 자기 목숨을 걸듯 꼼꼼히 살피고, 바로 그 한 줄을 올바르게 적어내려가려는 매무새로 바삐 뛰고 움직이고 돌아다녀야 하지 않나요.

 그러나 기자와 공무원 탓만 할 수 없습니다. 이분들이 학교 다니며 배우는 동안, 이분들을 가르친 또다른 분(교사, 교수)들이 이분들을 올곧게 이끌지 못했거든요. 지식보다 삶을, 지위나 계급보다는 사람을, 돈보다는 사랑을, 권력보다는 믿음과 나눔을 섬기라는 뜻을 몸으로 곰삭이도록 다스리지 못했잖아요.


 (2) 사람과 살면서 사람을 못 보면


 새벽 한 시 오십 분에 잠에서 깹니다. 일어나서 오줌을 누고 바깥을 바라보니 온통 하얗습니다. 하얀 밤입니다. 이 하얀 밤, 언손을 녹이며 신문을 돌리고 우유를 돌리고 골목길을 비질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고될까요. 소복소복 내리는 눈에 첫 발자국을 남기거나 두 번째나 세 번째 발자국을 남길 이들 얼굴은 얼마나 꽁꽁 얼어붙어서 바알갈까요.

 창가에 기대어 골목길을 내려다보며 사진을 몇 장 찍습니다. 이 깊어가는 밤, 발자국을 하나하나 만들면서 돌아다녀 볼까. 기자들이 이 동네를 손수 밟지 않는다고 안쓰러워하지 말고 내가 이 동네를 밟으면 되니까. 공무원들이 정작 자기가 일하는 동네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르기만 할 뿐 아니라 알려고도 안 하는 몸가짐을 슬퍼하지 말고 내가 이 동네를 더 알아가면 되니까.


.. “전하, 폭력은 폭력을 낳습니다. 복수와 정의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어디선가 폭력이 일으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용기가 필요합니다. 용서는 정의보다 위대합니다. 자신에게 잘해 주는 사람에게 친절과 자비를 베푸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진정한 용서와 자비는 야만적인 행위를 저지른 사람일지라도 용서해 줄 수 있을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  (57쪽)


 사흘 춥고 나흘 따뜻하다던 옛날씨는 말 그대로 옛날씨이고, 내내 춥다가 살포시 풀리려던 날씨였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쌀쌀해지더니 비가 한 차례, 눈이 한 차례.

 온도가 떨어진 이 밤, 방온도는 1∼2도를 오락가락. 보일러를 돌리고 싶으나 기름이 바닥나고 있어서 살짝 한 번 돌린 뒤 끄고. 집에 도시가스가 들어온다면 보일러를 돌렸을지 모르겠다고 생각. 어쩌면, 도시가스로 불을 때는 집은 ‘기름이며 가스며 얼마나 쓰이는가를 살갗으로 못 느끼는 채 돈만 벌어서 불값을 치르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렇다고 자기가 잡아먹는 자원이 얼마나 되는가를 살갗으로 못 느끼지는 않을 터이나, 깊이깊이 느끼기는 어렵지 않을까. 주머니 걱정에 앞서 자원 걱정을 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들은 따숩게 겨울나기를 한다지만, 바로 우리들이 낳아서 기를 다음세대는 어찌하지? 기름이 바닥나고 가스도 모자랄 스무 해 뒤는, 쉰 해 뒤는 어찌하지? 우리가 낳을 아이들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낳을 아이들은 어찌하지? 우리는 다음세대뿐 아니라 다음다음세대한테 아무런 책임을 안 지고, 지금 이 자리에서 이대로도 좋고 즐겁다고 생각하며 살아도 되는지?


.. “그대의 마부가 화살에 맞았는데 그대는 누가 활을 쐈느냐고 알아보겠느냐? 어디서 날아온 것인지, 어느 대장간에서 만든 것인지, 누가 만들었는지, 화살촉이 쇠로 만든 것인지 구리로 만든 것인지를 먼저 알아보겠느냐?” ..  (87쪽)


 기자회견 자리에서, 주민대책위 부위원장 아저씨와 헌책방 아주머니 한 분이 거의 같은 말씀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여기에 길을 낸다고 들인 800억(이 돈은 시에서 밝힌 돈이지만, 800억이 어디에 어떻게 쓰였느냐 하는 내역을 공개하지 않습니다.)이 큰 돈이고 조금만 더 하면 공사가 끝나는데 왜 반대하느냐고도 말하는데, 앞으로 길게 내다보면 훌륭한 투자를 한 셈이 됩니다. 지금은 이만큼이지만, 지금 잘못된 결정을 내려서 밀어붙이면 앞으로는 더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망가져서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돈을 들여서 어떻게 보면 도심지 퍽 넓은 자리에 빈 자리가 생겼습니다. 이 빈 자리는, 인천을 인천시장이 명품도시를 바라는 그 뜻대로 참으로 인천다운 인천 모습을 가꾸며, 인천사람들이 가장 바라는 숲을 가꿀 수 있으며, 인천이라는 곳 역사와 문화를 살리는 데에 아름답고 훌륭하게 되쓸 수 있습니다’ 하고.

 저도 잠깐 말미를 얻어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이 산업도로 공사 예산으로 수천 억이 잡혀 있는데, 앞으로 몇 천 억을 더 들여서 세금을 더 내버리기보다는, 그 돈으로 배다리를 비롯해 이 동네 살림집을 조금만 손질하면 서울 인사동보다 멋진 문화마을로 가꿀 수 있어요. 이곳에 와서 영화를 찍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파이란〉이라든지 〈고양이를 부탁해〉라든지, 이곳은 50∼60년대 건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한편, 인천상륙작전 때 폭탄 안 맞고 살아남은 30년대 건물도 제법 있어요. 동인천역 앞에는 옛날 양조장 건물이 하나 있는데, 그 문화유산이 지금은 노래방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런 건물은 아파트 짓겠다고 허물면 그냥 사라져요. 다시 지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문화유산을 그냥 노래방 건물로 있게만 해도 될까요? 인천에서 앞으로 2014년에 아시안경기를 치르며 숙소가 모자라서 아파트를 새로 지어야만 한다고 하는데, 배다리 둘레 창영동 금곡동 송림동 송현동 율목동 숭의동 도원동 화수동 화평동 들 해서, 이곳에 있는 집을 살짝살짝 고치면 얼마든지 민박으로 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집은 이 집 그대로 귀중한 근현대 문화유적지 터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한테는 지금 사는 대로 보람을 느끼게 하고, 이 동네는 동네대로 아시안경기 때 숙소로 쓰도록 하면서 나라밖, 인천 바깥 사람한테 인천이라는 곳이 어떠한 곳인가를 말하도록 할 수 있어요. 우리는 그런 넓고 큰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자는 겁니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앙굴리말라의 말이 진심이라 하더라도 카스트제도와 그의 극악무도한 행동 사이에 아무런 연관성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들은 왜 앙굴리말라가 카스트제도를 비난해야 하는지, 그것을 왜 자기 범죄에 대한 변명거리로 삼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대부분의 ‘돔’ 사람들과 불가촉천민들은 법을 잘 따르지 않는가.” ..  (119∼120쪽)


 밤 두 시 반, ‘배다리를 지키는 인천시민모임’ 인터넷방에 들어가 봅니다. 어제 기자회견 자리에 와 준 기자들이 올린 기사가 너덧 올려져 있습니다. 이 깊은 밤에 잠을 쫓아가며 애쓰는 분이 있군요. 기사를 하나하나 살핍니다. 허허. 거참. 이거야 원. 기자회견문이라고 나눠 준 종이에 적힌 말을 제대로 옮겨적지도 못하고, 기자회견을 하는 뜻도 담지 못하고, 산업도로라는 길이 어떻게 주민 삶과 삶터를 무너뜨리는지를 짚어내지 못하고. 그래도 기사를 써 주기라도 했으니 고맙다고 절을 해야 하는지. 길게 한숨을 쉽니다. 찬방에 입김이 길게 뻗습니다.

 사람을 마주하며 사람을 이야기했는데. 우리는 이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인데. 잘못 생각했나요? 잘못 보았나요? 서로 보는 눈이 다른가요? 우리한테는 보이는 사람이, 누군가한테는 돈으로 보이나요? 우리한테는 보이는 골목집이 누구한테는 재개발 이익으로 보이나요?


 (3) 《부처와 테러리스트》라는 책


 처음 나왔을 때는 읽지 않고 지나쳤던 책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사티쉬 쿠마르. 요 몇 해 사이에 한국땅에서 부쩍 이름값을 높이는 인도사람. 꽤 많은 이들이 사티쉬 쿠마르를 읽습니다만, 《부처와 테러리스트》는 그다지 안 읽히는 듯합니다. 이분 사티쉬 쿠마르는 입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몸으로 사는 사람이고, 지식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닙니다. 더 많은 돈이나 적은 돈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는 자기 몸뚱이로 사는 사람입니다. 돈이 아닌 온몸 부대낌과 온마음 쏟아부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먹고살자면 돈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 하지만, 돈이 쓰이는 곳을 살피면, ‘물건을 사는 일’입니다. 돈으로 사는 물건이 아닌 우리 손으로 만드는 물건이 된다면, 또 돈으로 사는 먹을거리가 아니라 우리 손으로 일구는 먹을거리가 된다면, 또 돈으로 사는 집이 아니라 우리 손으로 짓고 돌보는 집이 된다면, 우리한테는 ‘적은 돈’조차 아닌, ‘한푼 없어도’ 넉넉한 삶이 됩니다.


.. “내가 이렇게 말하는 건, 앙굴리말라, 내가 그걸 직접 체험했기 때문이다.” ..  (34쪽)


 국민학교였나 중학교였나, 자연인가 과학 시간인데, 아, 중학교 1학년 때로 떠오릅니다. 그때 과학(물상 시간이었지 싶습니다)을 배우는데, 첫머리에 ‘체험’ 이야기가 나왔어요. ‘과학은 실험을 거쳐 알아내는 체험’이라고. 이론으로만 따져서는 과학이 되지 못하고, 반드시 실험을 거쳐서 현실에서 이루어내야 비로소 과학으로 자리를 잡는다고.

 따지고 보면, 과학만 실험과 체험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인문학도 실험과 체험이 뒤따라야 합니다. 여성학은 어떻습니까. 환경학은 어떻습니까. 교육학과 사회학은, 예술학은 어떠한가요. 어느 학문이 실험과 체험 없이 바탕을 이루어낼 수 있을까요.

 실험과 체험, 온몸 부대낌 없이 신문기사 하나 나올 수 있습니까. 온마음 쏟아부음 없이 서민을 헤아리는 정책 하나 나올 수 있습니까. 우리는 어이하여 야무지게 살아가는 사람을 알아보고 이들 이야기를 기사로 다루지 못하는가요. 우리는 어찌하여 낮은자리 사람들을 헤아리며 이들이 어깨동무하고 잘살 수 있도록 정책을 펼치지 못하는가요.


.. “난디니야, 나를 그저 따르기만 하지는 말아라. 내가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그 말을 그냥 받아들이지는 말아라. 그것을 직접 자기 삶 속에서 시도해 보아라. 내가 말한 것이 그대의 경험, 그대만의 진실과 공명할 때에 비로소 받아들여라.” ..  (89쪽)


 이야기책 《부처와 테러리스트》는 저마다 다 다른 땅에서 다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들한테 무엇이 참으로 소중하며 가장 마음을 기울이면 좋은가 하는 물음 하나 내놓습니다. 다만, 풀이법은 내놓지 않습니다. ‘이런 길도 있느니라’ 할 뿐 ‘이 길로 가야 하지는 않느니라’ 하고 넌지시 옷소매를 잡습니다. ‘내가 간 이 길이 나한테는 좋았다고 당신도 무턱대고 이 길을 가지 말라’고 합니다. 길찾기는 저마다 다 다른 자기 삶을 돌아보며 스스로 새롭게 가꾸고 일구어야 오래오래 싱그럽고 반갑고 단단할 테니까. (4341.2.2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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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야생으로 - 시튼의 야생동물 이야기 6
어니스트 톰슨 시튼 지음, 장석봉 옮김 / 지호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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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다시 야생으로
- 글쓴이 : 어니스트 톰슨 시튼
- 옮긴이 : 장석봉
- 펴낸곳 : 지호(2004.2.27.)
- 책값 : 11000원



 이 책 하나 34 ― ‘멧돼지, 너구리, 박쥐’는 우리 이웃
 : 어니스트 톰슨 시튼, 《다시 야생으로》를 읽고



 (1) 사진과 삶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했습니다. 제가 찍은 사진을 기꺼이 내걸어 주면서 사진잔치를 열어 주는 곳을 다녀왔습니다. 저녁도 얻어먹고 술도 얻어마십니다. 저녁 먹는 밥집에서 나물 반찬을 많이 내어줍니다. 달래무침이 보이고 원추리무침이 보입니다. 쉬 맛볼 수 있다면 쉬 맛볼 수 있는 나물이지만, 쉬 맛보기 어렵다면 쉬 맛보기 어려운 나물입니다. 아직 봄이 아니라 이런 나물을 맛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만, 비닐집에서도 키우고 중국에서도 사들이고 있을 테지요.

 원추리무침을 냠냠짭짭 하다가 문득, 이 원추리무침이 원추리무침인 줄 아는 분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원추리가 봄에 노랗게 고운 꽃을 피우는 줄 아는 분은 또 얼마쯤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이제 그 말들도 콜리베이가 자신들과 같은 동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절대로 인간에게 길들여지지 않는 자유로운 야성의 피가 흐르는 말이라는 것을. 자줏빛으로 물든 평원에 밤이 찾아왔을 때 녀석은 야생마 무리 속에 섞여 있었다. 어둠 속에서 길고 힘든 여행을 한 끝에 드디어 고향을 찾은 것이다 ..  (29쪽)


 밥집 나물 반찬을 여러 그릇 비웁니다. 그렇게까지 맛있다고는 느껴지지 않았으나 나물 반찬이었기에 자주 손이 갑니다. 좀 시고 달고 짠 맛이 있습니다. 양념을 많이 하신 듯합니다. 버섯칼국수를 먹는데, 여기에 넣는 양념도 아주 목과 혀를 건드릴 만큼 맵습니다. 그러나 저 같은 사람이나 맵다고 느끼지, 다른 분들은 괜찮다고 말합니다.

 저와 옆지기는 나물을 먹을 때 따로 무치지 않습니다. 그냥 날것 그대로 물에 헹구기만 해서 먹습니다. 무도 배추도 날것 그대로 먹습니다. 정구지도 그냥 먹으면 더 맛납니다. 시금치도 얼갈이도 흙만 씻어내고 먹습니다. 이렇게 먹으면서 풀맛이 참 달다고 느낍니다. 그러면서 배부르게 먹지 못합니다. 익힌 푸성귀는 배부르도록 먹으면서도 더 먹게 되지만, 날 푸성귀는 많이 먹지도 못하게 되고 꼭 배에 알맞도록만 먹게 됩니다.


.. 그곳에는 인간이 마련해 주는 맛있는 목초도 없고 곡물도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야생의 질긴 풀과 드넓은 평원, 그리고 그곳으로 불어오는 바람뿐이다. 그러나 콜리베이는 이곳에서 자신이 그토록 갈망하는 것을 얻었다. 그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  (31쪽)


 사진잔치를 여는 곳에서 여러 분들하고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눕니다. 한 분이 말씀합니다. 우리가 사진기로 담아내는 모습은 ‘우리가 보고 싶은 모습에서 어느 한 순간을 훔치는 일’이 아닐까 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다가 한 말씀 올립니다. “어떤 사진은 한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 가운데 한 순간을 훔치는 사진일 수 있을 테지만, 제가 사진을 찍으면서 느끼기로는, 제가 그분 삶에서 한 순간을 사진으로 담아내면서 그 순간을 선물해 드리는구나 싶어요.” 하고.

 한 분이 말씀합니다. “디지털사진으로 찍기보다는 필름사진도 함께 찍어 보면, 사진을 찍는 맛을 남달리 느낄 수 있”다고. 저는 필름과 디지털 두 가지 모두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느낀 대로 한 말씀을 올립니다. “필름사진이라고 해도 똑같이 기계이고, 디지털사진이라고 해도 똑같이 손이 많이 가게 되어요. 둘은 좋은 대목과 아쉬운 대목이 다르게 있으니, 이 다름을 잘 느끼고 헤아리면서 찍으면 좋으리라 생각해요. 이제는 필름사진 쓰는 이가 많이 줄어서 예전처럼 여러 가지 필름을 고루 쓰지 못해 아쉬워요. 디지털은 무엇보다도 돈 나가는 소리가 적게 들려서 좋기도 하지만, 필름보다 좀더 자유롭게 흐름을 죽 이어가면서 담을 수 있는 좋은 대목을 살리면 한결 즐거우리라 생각해요.” 하고.


.. 5월의 숲은 먹을 게 풍족하다. 일찍 피는 작은 꽃들에는 대개 양분의 저장소인 구근이 있다. 꽃이 없어지면 그 다음에는 딸기가 식량이 되었다. 하지만 독이 있는 것들도 있었다. 그러나 자비로운 만물의 어머니는 그런 식물은 아주 고약한 냄새나, 얼얼한 맛이 나거나 아니면 따끔따끔하게 만들어 놓아서 숲에 사는 현명한 돼지들에게 경고를 보냈다 … 어미는 독이 있는 식물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새끼들은 어미를 따라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를 맡아 보면서 그런 식물에 대해 알아갔다 ..  (37쪽)


 그러게.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더라도, 요즈음 우리 둘레에서 사진기 없는 사람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손전화에는 기본으로 사진 기능이 담겨 있습니다. 스스로 ‘작가’라는 이름만 안 붙이고 있을 뿐이지, 누구나 사진을 찍거나 즐기면서 살아간다고 느껴요. 그런데 참말로 사진을 즐기는 사람은 몇 사람쯤 될는지요. 사진을 그저 찍어대기만 하고, 못 즐기면서 지내지는 않나요. 사진 찍는 재미를 느끼지 않을 뿐더러, 느끼려는 마음도 없지는 않나요.

 일을 하는 재미나 즐거움, 놀이를 하는 재미나 즐거움, 사람을 만나는 재미나 즐거움, 책을 읽는 재미나 즐거움, 무엇보다 우리한테 주어진 목숨 하나 부여잡고 살아가는 재미나 즐거움을 얼마쯤 헤아리는 우리들일까요.


.. 그렇다면 야생동물들이 사용하는 치료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숲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잘 알고 있는 것들이다! 일광욕, 냉수욕, 따뜻한 진흙욕, 단식, 물 치료, 구토, 설사약, 먹이나 사는 장소를 바꾸는 것, 휴식. 그리고 다친 부위를 혀로 핥는 것들이다. 그러면 치료법을 처방하고 치료 시간을 정해 주는 의사는 누구일까? 단 하나, 그것은 “몸의 갈망”이라는 의사이다 ..  (71쪽)


 서울에서 인천으로 돌아가는 전철길, 건너편 마주앉은 아주머니 한 분이 삼십 분이 넘도록 손전화로 이야기를 합니다. 큰 목소리로. 아주머니가 건 손전화 건너편 사람과 당신이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가를 우리들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셨을까요.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꾸벅꾸벅 졸다가 엉뚱한 데에서 내리지 말라는 뜻일까요.

 왱왱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울립니다. 덜컹거리는 전철 소리로도 버거운 귀는 수다 소리에 시달리고 들볶이며 아파 옵니다. 어지러워서 눈을 감습니다. 눈을 감아도 소리는 들립니다.


.. 이 강인한 멧돼지 전사가 싸워 이기는 것을 보고 그는 마치 자기가 이긴 것처럼 느꼈다. 그는 그 멧돼지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다. 녀석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 그는 이 멧돼지 부부가 서로에게 보내는 애정도 보았다. 가족 간의 사랑이라는 유대감을 말해 주는 어린 새끼들도 보았다. 당신은 동물에게는 육체적인 사랑밖에는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물들의 사랑은 인내하고 함께 싸우고 또 인내하면서 유지된다 ..  (126∼127쪽)


 그러나 집으로 돌아와서 이부자리를 깔고 안쪽으로 파고들어도 전철 소리는 끊이지 않습니다. 우리 식구가 깃든 집 바로 앞이 철길이거든요. 오 분에서 칠 분마다 한 번씩 전철이 오가며 덜컹덜컹 하는 소리가 집안까지 들려옵니다. 밤에는 일찍 자지 않도록, 새벽에는 늦잠 자지 않도록 깨워 주는 전철 소리입니다.

 우리가 이 집에서 살아가는 동안 이 전철 소리는 늘 함께하는 벗인 셈입니다. 우리 형편으로는 조용하며 값싼 집을 얻을 수 없으니, 도시 재개발로 이 동네를 쓸어버리지 않는다면 오래오래 벗삼을 전철 소리입니다.


.. 너구리가 우리에게 뭔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인간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마도 이런 내용일 것이다. 너구리는 따뜻한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들의 상징이다. 그리고 만약 이 나라의 우둔한 의원들이 흉악한 정책을 펴서 텅 빈 나무들과 함께 너구리가 모두 사라지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의 땅이 온통 돈과 배금주의에 정복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하지만 부디 나는 그런 일이 생기기 전에 세상을 뜨고 싶다 ..  (131쪽)


 잠깐 바람이나 쐴까 하고 장바구니를 들고 가게 마실을 갑니다. 집 둘레 구멍가게가 아닌 동인천역 앞쪽에 있는 조금 큰 가게로 갑니다. 그곳에는 번데기깡통을 하나에 550원에 팔아요. 동네 구멍가게는 1000원, 할인마트는 850원, 그 가게는 550원. 약과 열 개들이도 가게마다 값이 달라, 어느 곳은 1000원 어느 곳은 1300원 어느 곳은 1800원입니다.

 집을 나서니 밤바람이 제법 찹니다. 장갑을 끼지 않은 맨손은 시립니다. 코를 훌쩍이면서 걷습니다. 열한 시를 갓 넘긴 밤길에 비틀비틀 걷는 사람이 보이고, 술꾼을 태우려고 기다리는 택시가 보입니다. 길을 거니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가게에는 손님이 얼마나 들었을까나.

 몇 가지 먹을거리를 고르며 셈을 치릅니다. 제가 뻔히 장바구니를 들고 값 치른 물건을 담고 있는데에도 “봉투 드릴까요?” 하고 묻습니다.


.. 겨울이 없는 곳에는 멋진 봄도 없는 법이다. 혹독한 추위가 몰아치는 땅에서만이 매년 찾아오는 꿀벌과 제비꽃의 기적을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법이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그곳에는 매서운 눈과 서리가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야자나무가 무성하고 일 년 내내 따뜻한 땅일지라도 봄의 비밀스러운 힘은 나타났다 ..  (231쪽)


 장바구니를 손목에 끼고 돌아가는 길. 이제 때는 늦어 지하상가는 쇠문을 내립니다. 이렇게 되면 건널목이 없는 요 동네에서는 찻길 가로지르기를 해야 합니다. 느즈막한 이맘때 찻길을 가로지르는 우리들을 보고도 교통순경은 붙잡지 않습니다. 저희들도 알 테지요.


.. 사실 그는 자신의 말을 동물들이 알아듣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친절하게 대하고 있다는 것은 동물들도 이해할 것이라고는 느꼈고 그것이면 충분했다 ..  (312쪽)


 밤하늘 별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 집에 닿습니다. 잠깐 하늘을 올려다보지만, 등불이 그닥 안 많은 이 골목길에서도 별은 보이지 않습니다. 도시는 하늘이 아닌 땅에 별이 있다는 이야기를 누군가 했다는데, 참말 우리네 땅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네 땅에 놓여 있는 이 많은 별들은 서로를 얼마나 비추면서 어깨동무를 하고 있나 모르겠어요. 밤하늘 빛나는 별은 길잡이가 되기도 했고 길동무가 되기도 했는데, 도심지 땅에 내린 별은 누구한테 도움이 되고 있을까요. 누구한테 길을 일러 주고 누구와 동무를 삼고 있을까요.


 (2) 한 해 천만 원


 어제, 사진잔치 자리에는 대학교 다니는 어린 학생도 몇 사람 있었습니다. 밥자리에서 잠깐 등록금 이야기가 나와서 물어 보았습니다. 요즘은 한 해에 등록금이 얼마쯤 나가는지. 인문대학인데 한 학기에 360만씩 낸답니다. 그러면 한 해에 720만 원. 책값이며 밥값이며 찻삯이며 하면 천만 원은 우습지 않게 들겠네.


.. 스라소니는 무시무시한 소리로 으르렁거렸다. 그리고는 악마처럼 험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어미 멧돼지에게 겁을 주기 위해서였다. 어미 멧돼지에게 겁을 준다고? 어린 새끼가 “엄마, 엄마, 도와줘요!” 하고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도! ..  (92쪽)


 하하, 천만 원이라니. 그러면 대학교를 네 해 만에 잘 마친다면 사천만 원이라는 소리? 이야, 사천만 원이라니. 아이 하나에 사천만 원이면, 아이가 둘이면? 셋이면?

 어이구, 어버이 된 사람은 허리가 휘어서 어찌 사나. 이렇게 엄청나게 아이들 배움값을 치러야 하니, 그렇게 들인 돈을 ‘본전 뽑기’ 해야겠다면서 눈이 돌아갈밖에 없겠네. 본전에다가 이자를 붙여서 돌려받아야겠다고 생각할밖에 없겠네. 돈 버느라 바쁘고 돈 갚느라 힘겹고 돈 끌어들이느라 눈이 벌걸밖에 없겠네.

 이런 세상이라면, 대학교가 학문을 참다이 파고들기란 꿈 같은 소리가 되겠네. 대학교 졸업장으로 한 사람 마음밭을 알뜰히 다스려 주는 일이란 씨나락 까먹는 소리가 되겠네. 대학까지 다니며 얻거나 이룬 열매를 이웃들과 스스럼없이 나누거나 베풀자는 이야기는 미친놈 방귀 소리로나 여기겠네.


.. 내면의 충동에 의해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짝짓기를 했다. 자기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어딘가 조용한 장소를 찾았다. 그곳에는 구멍이 난 커다란 나무가 아직도 땅에 뿌리를 박고 서 있다. 그 귀중한 땅은 그 귀중함이 인간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름다움이 계속 유지되고 있었다. 바로 이곳에서 너구리 부부는 만물의 어머니가 이끄는 대로 새끼를 낳았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배운 것보다 좀더 많은 것들을 새끼들에게 가르쳤다. 세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  (168∼169쪽)


 한 달 이삼십만 원 벌기에도 빠듯한 내 처지를 돌아보자니, 뒷날 아이를 낳아서 기르게 된다면 대학교는커녕 제도권 초중고등학교나 제대로 넣을 수 있을는지, 없을는지. 돈으로 굴러가야 하는 학교 틀거리라면, 이런 학교 틀거리에서 아이들한테 안겨 주고자 하는 지식이란 무엇일는지. 돈에 엄청나게 기울어져 있는 학교 틀거리라면, 이런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 마음에는 무엇이 싹트고 자라서 동무들끼리 어떻게 어울리며 살아갈는지.


.. 어미는 자기 어미에게 배웠던 것들을 새끼에게 주로 실습을 통해 가르쳐 주었다 ..  (217쪽)


 하긴, 그렇구나. 꼭 이래서만은 아니지만, 우리 옆지기는 ‘우리가 가르치면 되지요’ 하고 이야기를 합니다. 아이를 가르치는 일은 학교에 떠넘기면 안 된다고, 학교 교사한테 떠맡기면 안 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아이가 배워야 할 것들은 누구보다 우리들, 어버이 된 사람이 먼저 배워야 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어버이 스스로 먼저 제대로 살피고 돌아보고 추스르면서 배울 수 있어야, 아이들도 기꺼이 배우거나 받아들일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어버이 스스로 즐겁게 받아들일 수 없는 지식이라면 아이들한테 무슨 쓸모가 있느냐고, 어버이 스스로 고맙게 새길 수 없는 지식이라면 아이들 삶과 얼과 넋에 어떤 도움이 되느냐고 이야기를 합니다.


.. 박쥐 한 마리가 잡아먹는 벌레의 수는 하루 밤에만 수백 마리에 달한다. 그러므로 집 주위의 벌레가 완전히 소탕되었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하나도 없다 … 박쥐가 날아다니는 벌레 한 마리를 잡을 때마다 인간의 적에게 매서운 타격이 가해진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 아탈라파(박쥐)를 우리에 가뒀던 소년은 어떻게 된 것일까? 그와 관련해서는 이것 말고는 밝혀진 것이 없었다. 파리 때문에 생긴 전염병이 집을 습격했고, 그 병마가 떠난 뒤 새롭게 생긴 작은 흙무더기가 두 개 생겼다. 옆에 나무 탑이 하나 있는 조용한 묘지였다 ..  (248, 249, 258쪽)


 지난주에 보건소에 찾아갔습니다. 인천 중구와 동구에 있는 보건소에 차례차례 갔습니다. 먼저 중구 보건소에서는, 우리 주소지가 중구가 아니라며 동구로 가 보라고 말합니다. 우리 집에서는 중구 보건소가 코앞에 있어서 가까운데. 한참 걸어서 동구 보건소로 가니, ‘산부인과에서 임신증명서를 떼어 와야’ 기초진료를 해 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중구 보건소로 가서 알아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중구 보건소에서는 동구로 가라고 하고, 동구에서는 임신증명서를 떼어서 중구로 가라고 하고. 허허 참.


.. 무정한 만물의 어머니이자 동시에 만물을 사랑하는 어머니는 자신의 자식들 중에 가장 강한 아이를 영원히 사랑한다. 그 위대한 어머니가 지금 아탈라파에게 다가왔다 ..  (284쪽)


 (3) 《다시 야생으로》라는 책


 어니스트 톰슨 시튼 님이 쓴 《다시 야생으로》를 다 읽어냅니다. 읽는 동안 여러 차례 눈물을 쪼르르 흘렸습니다. 집말이 되고 싶지 않아 끝끝내 들말로 돌아간 짐승 이야기, 자기 어미를 곰한테 빼앗긴 앙갚음을 끝내 해내면서 자기 짝과 새끼를 지켜낸 멧돼지 이야기, 들너구리가 살아가는 이야기, 박쥐가 사람 삶터에서 쫓겨나는 이야기, 들기러기 식구들이 죽는 날까지 서로를 아끼며 살아가는 이야기, 사람한테 붙잡혀 동물원에 갇혀서 구경거리 신세가 되는 원숭이 이야기를 하나하나 읽어나갑니다.


.. 육식만 하는 곰은 무시무시한 피부병에 자주 걸린다.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곰은 더욱 심하다 ..  (76쪽)


 시튼 님 《다시 야생으로》를 우리 말로 옮긴 장석봉 씨는, “이 책에 실린 일곱 편의 이야기 역시 그의 다양한 재주를 어김없이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어찌 재주만으로 이런 이야기와 그림이 나올 수 있을까? 그는 뛰어난 관찰력을 갖춘 자연학자이기도 했다. 아니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가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라는 것도 언급해 두어야 할 것 같다.”고 말합니다. 따뜻한 마음씨로 자연 삶터와 들짐승을 꾸밈없이 바라보고 아낌없이 껴안으면서 살았기에 이런 글을 그리고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 다른 요정들과 달리 인간에게 매우 우호적이다. 녀석은 동굴이나 나무 구멍에서 사는데, 낮에는 항상 몸을 숨기고 있고 또 겨울에는 지하에서 잠을 자든지 아니면 따뜻한 지방으로 슬그머니 옮겨간다. 깃털은 없지만 비행에는 놀라운 재능을 타고났다. 게다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말을 할 수도 있고 마음만 먹으면 달빛 속에서도 모습을 감출 수 있다. 어린아이들이라면 그런 놀라운 능력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은 결코 그런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  (198∼199쪽)


 돌이켜보면, 우리 스스로 마음을 따숩게 추스르지 않으니 사회 문제와 범죄가 끊일 수 없습니다. 대학교도 나오고 대학원도 나온 똑똑한 분들이지만, 정작 그분들 마음에 따스함이 깃들고 있지 않으니, 정치 권력을 붙잡아도 기득권 지키는 데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영어만 잘하는 재주꾼, 지식만 가득한 재주꾼, 가방끈만 긴 재주꾼, 그렇지만 머리통만 굵어서 몸통은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 재주꾼인 우리들로 바뀌어 간다면, 우리 세상은 아름다움하고 차츰차츰 멀어지기만 합니다. 한 달에 천만 원 버는 부자한테 ‘여보쇼, 그 돈 좀 사회에 내놓으시오’ 하고 말하기 앞서, 한 달에 오십만 원 버는 우리들부터 ‘다문 만 원이나 오천 원이나마 덜어내며 사회에 내놓는’ 매무새로 살아가야지 싶습니다. (4341.2.4.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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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겠습니다 - 땅과 아이들을 살리는 먹을거리 교과서
요시다 도시미찌 지음, 홍순명 옮김 / 그물코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잘 먹겠습니다
- 글 : 요시다 도시미찌
- 옮긴이 : 홍순명
- 펴낸곳 : 그물코(2007.5.31.)
- 책값 : 6000원


 이 책 하나 31 ― 밥을 먹습니까, 돈을 먹습니까?
 : 요시다 도시미찌, 《잘 먹겠습니다》



 (1) 내 밥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밥을 먹기 앞서 두 손을 모으거나 고개를 숙이며 비손을 올립니다. 우리 옆지기는 천주교를 믿기에 천주교 틀에 따라 비손을 합니다. 저는 우리가 살아가는 땅을 믿기에, 먹을거리를 내어준 흙과 뭇 목숨붙이들한테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한 다음 ‘잘 먹겠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 부디 옛날 어른들의 먹는 지혜에 귀기울여 주세요. 우엉도 대충 씻어 뿌리 잔털까지 먹었습니다. 우엉은 껍질에 맛이 있습니다 ..  (79쪽)


 조금 앞서 아침을 들었습니다. 옆지기 어머님이 베풀어 준 흰김치, 양조장집 아주머니가 베풀어 준 무채, 지난주에 성당에서 얻은 빨간무, 이웃 아주머니가 나누어준 달걀을 반쯤 익힌 것, 가게에서 사 온 콩과 누런쌀로 지은 밥, 이렇게 밥상을 차려서 먹었습니다.


.. 모든 먹을거리는 뿌리를 찾아보면 흙에서 나왔습니다. 흙이 변해서 된 우리들은 흙에서 가꾼 건강한 먹을거리를 먹어야 건강할 수 있습니다 … 튼튼한 아이를 키우고 활력 있는 지역사회를 만들려면 먼저 그 바탕이 되는 흙을 건강하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  (7∼9쪽)


 술안주 삼아서 가끔 과자부스러기를 먹을 때가 있는데, 과자는 대여섯 봉지를 먹어도 배부르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이렇게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여 방귀가 자주 나옵니다. 하지만 집에서 손수 쌀을 일고 씻고 안쳐서 지은 콩밥에다가 한두 가지 푸성귀나 김치로 밥을 먹으면 반 그릇으로도 배가 부르고, 한 그릇을 다 비우면 더는 밥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고 나서 저녁까지 배가 고프지 않고, 저녁에 밥을 먹을 때에도 반 그릇쯤 먹으면 속이 넉넉합니다. 이튿날 아침이면, 냄새 살짝 구수하고 푸른빛 슬며시 도는 똥이 시원하게 나오면서 방귀는 거의 안 뀌게 됩니다.


.. 자기들이 흙과 미생물과 연결되어 서로 지탱하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친근감이 나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오는 체험이 없으면 자연 환경문제를 아무리 가르쳐도 다만 지식의 조각으로 끝나고 말 두려움이 있습니다 ..  (19∼20쪽)


 책상 앞에 앉아서 글쓰는 일을 해야 할 때면 힘이 많이 들어서 때때로 입이 심심합니다. 요즈음은 귤이 나는 철이니 썰렁한 부엌에 귤을 한 바구니 모셔 놓고서 두 알씩만 방으로 가지고 와서 천천히 벗겨서 먹습니다. 불은 잠자는 작은 방만 땝니다. 거의 ‘외출’로 맞추어 놓으니 불을 땐다고 할 수 없고, 잠자는 방바닥에는 이불이 늘 깔려 있습니다. 한참 일하다가 허리가 아프면 이불로 들어가 옹크리기도 하고 다리를 쭉 뻗어 보기도 합니다. 불을 때지 않아도 이불 속에서는 따뜻해서 손도 녹이고 몸도 풀어 줄 수 있어 좋습니다.


.. 고기, 달걀, 우유는 조금씩 소중하게 먹는 것이 좋습니다. 싼 고기, 달걀, 우유는 값을 낮추기 위하여 부자연스러운 방법으로 동물들을 기릅니다. 그런 동물들은 허약하고 병에 걸리기 쉬우므로 약품을 써서 건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약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가축과 연결된 우리들은 어떨까요? ..  (83쪽)


 우리 집으로 놀러오는 분들이 감이나 능금이나 배를 들고 오곤 합니다. 이럴 때 감이나 능금이나 배를 흐르는 물에 씻은 뒤 쟁반에 담아서 내옵니다. 우리 식구는 감씨는 못 먹지만 능금씨나 배속까지 오독오독 씹어서 먹습니다. 껍질은 열매에서 가장 맛있는 곳이니 마땅히 그냥 먹습니다. 손님한테 내어준다고 해서 껍질을 벗기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가장 맛있다고 느끼는 곳을 쓰레기로 버릴 수 없으니까요. 가장 맛있는 곳이니 “껍질째 드시면 훨씬 맛있어요. 열매는 껍질 맛으로 먹어요. 씨앗도 얼마나 맛있는데요. 감이나 능금이나 배가 다시 태어나자면 바로 고 작은 씨앗 때문에 다시 태어나잖아요. 새로운 열매가 될 유전자와 영양분을 담뿍 안고 있는 씨앗이니 오도독 깨물어 먹으면 우리 몸에도 좋답니다.” 하고 이야기를 합니다.


.. 인간도 닭장의 닭처럼 완전히 격리된 방 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  (22쪽)


 그렇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도 껍질이나 씨앗이나 배속을 남기는 분들이 거의 모두.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기도 하고, 꺼려지기도 해서 그렇기도 하고, 쓰고 텁텁해서 입맛에 안 맞아서 그렇기도 하겠지요. 땅콩조차 껍질을 벗겨서들 먹고 있으니까요.





 (2) 선배와 후배와


 지난주 토요일, 개봉역 둘레에 우뚝우뚝 솟은 아파트 가운데 ‘로즈빌’이라는 곳 22층에 사는 고등학교 선배네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아파트 이름 ‘로즈빌’이란 무슨 뜻일까 한참 머리를 굴렸지만, 돌머리로는 그 뜻을 알아낼 길이 없습니다.

 24층까지 우뚝 솟은 아파트들인데,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가 매우 좁습니다. 햇볕이 들지 않겠군요. 놀이터는 놀이기구 몇 가지가 있지만 흙 한 줌 없습니다. 참 썰렁하네, 하고 느꼈지만, 다른 아파트도 이와 비슷하겠지요.


.. 역시 목숨보다 돈이 더 중요한 것일까요? … 넘쳐나는 정보 홍수에 밀려 생명이나 앞날에 관한 귀중한 정보는 여간해서 시민들에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 사람들은 그것을 싸다고 삽니다. 서로가 자기 돈벌이를 위하여 사는 사회, 청소년 흉악범죄는 그런 사회를 토양으로 자라난 검은 꽃입니다 ..  (29쪽)


 저도 어릴 적에 아파트에서 열세 해 살았습니다. 5층짜리 아파트였는데, 동과 동 사이는 5층 아파트 높이만큼 띄엄띄엄이었습니다.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지만, 바닷가 항구 바로 옆에 있던 우리 아파트는, ‘전쟁이 나서 포탄을 맞아서 쓰러져도 옆 동이 닿지 않아야 한다’는 잣대가 있어서 그런 잣대에 따라서 지었다는 소리를 얼핏 들은 적이 있습니다. 놀이터는 두 군데 있었는데, 두 놀이터는 따로따로 아파트 한 동 넓이와 똑같을 만큼 무척 넓었습니다. 그래서 이 놀이터에서는 11:11 공차기 놀이나 9:9 공놀이를 즐길 수 있었어요. 놀이터 바닥은 모두 모래였습니다.


.. 파리는 정화된 세계에 사는 우리들에게 함께 생활할 수 없는 보기 싫은 생물이지만, 지구에게 또 우리들에게 없어서 안 되는 귀중한 생명입니다. 병충해도 파리와 마찬가지로 지구를 청소하는 일꾼입니다 ..  (34쪽)


 승강기를 타고 22층으로 지이잉 올라갑니다. 승강기는 ‘장애인도 바퀴걸상을 밀고 탈 수 있을 만큼’ 넓습니다. 이런 편의시설은 참 좋군요. 그런데, 바퀴걸상을 타고다니는 장애인들이 이 로즈빌 아파트에서 전세라도 얻어서 살 수 있을 만한 살림일는지.


.. 예전에는 사람의 똥오줌을 통에 숙성시키고 농사꾼은 그것이 완전히 정화했는지 손끝으로 찍어 맛보고 나서 거름으로 썼습니다. 그런 거름으로 키운 채소에 병충해는 전혀 생기지 않았습니다. 기생충이나 병원균은 덜 숙성된 사람의 똥오줌을 직접 채소 가까이에 뿌렸을 때 크게 생겨났던 것입니다 ..  (45쪽)


 선배와 형수는 큰상 가득 먹을거리를 차려 줍니다. 두 사람 다 바깥일을 다니느라 시간도 없을 텐데, 참말 힘들겠습니다. 상차림도 일이지만, 나중 뒷갈무리도 일이잖아요. 형수님한테 슬쩍 여쭈니, “평소에는 안 쓰지만, 오늘 같은 날은 자동세척기 쓰니까 괜찮아요.” 합니다.


.. 초등학생은 아직 괜찮지만 고등학생, 대학생이 될수록 먹을거리는 황폐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결국 먹는 지식을 가르쳐도 실천할 수 있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없으니까 먹을거리도 아무거나 먹게 되는 것이겠지요 ..  (63쪽)


 동기 녀석 부부와 후배 녀석 부부, 혼자 사는 후배 하나, 이렇게 하여 아홉 사람이 큰상에 둘러앉아 젓가락질과 숟가락질을 합니다. 부지런히 술잔을 부딪힙니다. 예전에는 ㅊ소주만 마시던 사람들이 요즘에는 다른 ㅊ소주를 더 마시게 된다며, ‘ㅈ회사 불쌍해서 어쩌나’ 하고 이야기합니다. 그래도 뭐, 둘 다 어마어마하게 팔릴 텐데.

 고기와 회는 밖에서 사 왔지만 다른 찬거리는 집에서 마련하신 듯. 참으로 고맙게 받아먹습니다.

 저와 옆지기를 뺀 다른 사람들은 돈벌이 이야기, 주식 이야기, 자동차 이야기 들을 주고받습니다. 다들 나이가 먹어서 그런가.

 선배는 “야, 결혼하고 나서 여지껏 책 한 권도 못 사 읽었다.”고 말합니다. “그래도 선배는 책이 있는 방(서재)도 따로 있잖아요. 요새 그렇게까지 책 있는 방 마련해 놓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하고 대꾸해 줍니다.

 작지 않은 차, 큰 텔레비전, 헹굴 때 속이 들여다보이는 세탁기, 단추만 누르면 알아서 씻기는 설거지 기계, 슥 밀기만 하면 쓸고 닦고 해 주는 청소기 ……, 참으로 많은 전자 설비를 쓰는 우리들은, 집안살림이나 바깥일을 보면서도 손쓰거나 시간 들일 일이 참으로 줄었습니다. 누구라 할 것 없이 자기 틈 내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그런데 이렇게 온갖 전자 설비를 쓰면서 아껴진 시간으로도 ‘더 많은 돈을 벌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하루하루가 힘들고 바쁜가 봐요.


.. 먹는다는 것은 먹혀지는 셀 수 없이 많은 생명의 응원을 받아 힘껏 사는 것입니다 ..  (74쪽)


 넌지시 물어 봅니다. “아이가 크면 나중에 학교 보낼 생각이에요? 학교 보내면 바보 될 텐데.” 선배는, “학교 왜 안 보내? 보내야지.” 하고 말하고, 동기 녀석은 “나는 안 보낼까 봐.” 하고 말합니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에다가 유치원까지 하면 열두 해는 훨씬 넘고 열대여섯 해쯤 되겠지요. 이만한 세월 동안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요. 영어? 한문? 상식? 또 뭘 배우지요? 논술? 태권도? 컴퓨터? 그리고 또?

 수능점수를 잘 받아야 한다면 처음부터 수능 시험문제만 가르칠 일이 아닐까 모르겠습니다. 이름있는 대학교에 가야 한다면, 그런 대학교에 가서 좋을 일이 무엇일까요. 나중에 돈 많이 주는 큰회사에 일자리 얻으려고? 그러면 처음부터 돈 많이 벌 수 있는 일을 시키면 될 노릇이 아닐는지.

 아버지가 있고 어머니가 있다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손수 아이들을 가르치면 될 텐데. 다들 대학교 나오고 어쩌고 하면서 다른 집 아이들 과외는 잘만 시킨 지식인들인데, 그런 지식으로 자기 아이 하나 못 가르칠까요.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 아이한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모르고, 돈벌이에 너무 푹 빠져서도 그러한지 모르며, 돈벌이보다도 일에 잔뜩 매이면서 자기 삶을 안 찾고 있어서인지 모르겠습니다. 왜 아이들을 학교에 ‘버려’ 놓거나 ‘가두어’ 놓으며 햇볕 한 줌 바람 한 줌 못 쬐게 할까요.

 모두 다 똑같은 시멘트집 아파트에 살면서 집과 학교와 학원 사이를 자가용이나 학원버스로 오가며 땅 한 번 아이들 스스로 못 밟게 하는 이런 모습이, 부모가 할 노릇일는지요.


.. 영양사는 숫자를 맞추려 먹을거리 재료를 사방에서 모을 것이 아니라, 지금 지역에 있는, 농약이 적은 제철의 건강한 먹을거리 재료를 조사하여 그것을 어떻게 만들어 아이들이 물리지 않게 맛있는 요리를 만들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  (64쪽)


 저녁 열한시 즈음 자리를 접기로 합니다. 우리 식구는 전철을 타고 돌아가도 되는데, 인천 사는 후배가 자기 차로 같이 가자고 이야기합니다. 대리운전 부르면 된다고.


.. 왜 아픈 사람은 자꾸 늘고 새로운 병원체가 나타나는지? 왜 집중력이 약한 어린이가 늘고 돌발성 범죄가 느는지? 왜 사람은 툭하면 싸우는지? 앞날이 어두운데 왜 사회구조는 바뀌지 않는지? 이 모든 현상의 바탕 원인에 대해 말로 하기 어렵지만, 우리들이 자연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언제부터인가 사람은 자연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나도 얼마 전까지 잊고 있었습니다. 선생님들도 어린이들도 지도자도 대부분의 사람이 잊어버렸습니다 ..  (98쪽)


 후배 녀석도 머잖아 색시를 만나 혼인을 하겠지요. 후배 녀석도 예식장에서 혼인을 할 테고, 청첩장 받아서 예식장을 찾아가면 뷔페로 밥 한 끼니 차려놓겠지요. 서양 예복을 입고 사진 촤라락 찍은 뒤, 케익을 자르고 나서, 비싼 한복으로 갈아입고 폐백을 올린 다음, 다른 동무들이 꾸며준 웨딩카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가서 나라밖 어디로 나들이를 한 주쯤 다녀올까요.





 (3) 작은 책, 《잘 먹겠습니다》


 고작 105쪽에 지나지 않는 작은 책, 《잘 먹겠습니다》를 지지난달에 사서 이달 첫머리에 다 읽었습니다. 다 읽고 나서 책상맡에 그대로 올려둔 채 틈틈이 집어서 되읽습니다. ‘땅과 아이들을 살리는 먹을거리 교과서’라는 작은이름이 붙은 조그마한 이 책은, 일본에서 ‘농사체험 학습’을 할 때 교과서처럼 쓴다고 합니다.

 일본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하고 마찬가지로, 논밭에서 풀을 뽑으라 하면 잡풀이 아닌 곡식 풀을 땀 뻘뻘 흘리면서 뜯는답니다. 날마다 ‘어머니가 부엌일 하며’ 밥상에 차려 주니 먹기는 먹었겠지만, 벼가 어떤 모양인지, 보리가 어떤 모습인지, 수수가 어떤 생김인지, 감자풀과 고구마풀은 무엇인지 하나도 가려내지 못할 테지요. 고구마케익은 맛있다면서 먹어도 고구마줄기 하나는 못 찾겠지요.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만큼 맛있다는 울릉도 호박엿’ 이야기는 흔히 들었겠지만, 그 호박이 얼마만한 크기와 빛깔로 꽃을 피우는지는 모르겠지요. 고기를 구으며 깻잎은 즐겨먹었어도 깻잎이 깨를 심어서 거두는 잎이고, 깨가 얼마나 자잘한 알갱이로 열매를 남기는지 모를 테지요.


.. 우선 알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소비행동에 주의하면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지역기업이 자라납니다. ‘뭐야! 사회를 바꾸는 것은 먼저 자기부터라고 알고 있는데, 그때 왜 거기서 포기했을까, 그때 왜 좀 분명히 생각하지 않았을까!’ 나중에 후회해도 이미 늦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이야깃거리로 삼아야 합니다. ‘왜 학교의 교육위원회에서는 이런 것을 전해 주지 않을까?’라고 상대를 비판하기 전에 우선 그렇게 생각한 당신부터 기회 있을 때마다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  (31쪽)


 우리들은 무엇을 ‘안다’고 이야기하고 있을까요. 고등학교 졸업장은 우리 아이들한테 ‘너희한테 지식이 얼마만큼 있고, 너희가 이 사회에서 얼마만큼 너희들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건네줄까요. 대학교 졸업장이 있으면, 혼자힘으로 꿋꿋하게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요. 졸업장 없는 사람은 사람이 아닌 ‘사람 쓰레기’일 뿐일까요.


.. 병원균이 세포를 침범한다기보다 건강치 못한 부위에 병원균이 모여들었을 뿐입니다 ..  (37쪽)


 오늘은 12월 25일, 예수님오신날입니다. 예수님오신날에 눈이 오면 ‘하얀 성탄절’, 영어로 ‘화이트 크리스마스’라고 합니다만, 지난해에도 올해에도 12월 25일은 따뜻합니다. 2008년은 어찌 될까요. 2009년은? 2010년쯤 뒤부터는 우리 나라도 ‘반소매 옷을 입고 맞이하는 예수님오신날’이 되지 않을는지요. (4340.12.2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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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호시노 미치오 지음, 이규원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 글ㆍ사진 : 호시노 미치오
- 옮긴이 : 이규원
- 펴낸곳 : 청어람미디어(2005.7.23.)
- 책값 : 12800원


 이 책 하나 29 ― 사랑하는 자연 품에 안긴 사진여행꾼
 : 호시노 미치오,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1) 그림 그리는 동네 젊은이와


 “오랫동안 있으면 좋겠는데.”
 도서관을 찾아온 동네 젊은 친구가 한 마디 합니다. 지금도 좋지만, 앞으로 스무 해 뒤에도 이 자리에서 꼿꼿하게 도서관을 지키고 있으면 더 좋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자기는 아직 젊어서 많이 모르지만, 좋은 뜻을 품고 일하는 사람들이 잠깐으로 그치지 말고 오래도록 목숨을 이어나가면 좋겠다고 이야기합니다.


..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늘 생각하는 것은, 그 지방의 풍경을 내 것으로 만들려면 거기서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스크린을 바라보는 것과 같아서, 풍경은 결코 나와 참된 언어를 나누려 하지 않는다. 그런 여행은, 하면 할수록 세계가 그저 좁아지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만나고 그를 좋아하게 되면 풍경은 비로소 폭과 깊이를 띠게 된다 ..  (261쪽)


 앞으로 스무 해면 2027년. 스무 해 뒤 저는 쉰이 넘는 나이. 쉰 살이라. 제 나이 쉰 살에 무슨 일을 어디에서 어떻게 하고 있을까를 한 번도 내다본 적은 없습니다. 아니, 내다볼 겨를이 없이 언제나 이 자리에서 이 한동안을 잘 보내자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를 ‘괜찮게 보낸 하루였어’ 하는 마음으로 보낼 수 있으면, 이렇게 보낸 하루하루가 모여서 한 달이 되고 한 해가 될 테고, 그 한 해 두 해가 모여서 열 해가 되겠지요.


.. 물보라를 뿜어 올리며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고래가 자연이라면, 그 고래에 작살을 던지는 에스키모 사람들의 생활도 역사 자연인 것이다 …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라면, 생물의 다양성이야말로 무엇보다 소중할 것이다 ..  (244∼246쪽)


 어쩌면, 나도 저 젊은 친구 나이였을 때 나보다 앞서서 사회운동을 하고 문화운동을 하던 손윗사람들을 보면서 “앞으로도 오래오래 지금 일을 이어가시면 좋겠어요” 하고 말하거나 “스무 해 뒤에도 웃으면서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하고 말하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좋은 일이니까, 훌륭한 일이니까, 이런 일을 하는 보람을 듬뿍 느끼면서 힘을 잃지 말고 우리 같은 어린 싹들한테 앞날을 헤아리는 믿음을 선사해 주고 앞선 사람들이 다부지게 걸어가면서 제 꿈을 펼 수 있음을 널리 보여주기를 바라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다치지 말라고, 지치지 말라고, 어깨 떨구지 말라고, 떠나지 말라고, 앞으로 내가 당신들 나이가 될 때 나 같은 사람들이 외로이 헤매지 않게 해 달라고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 노인은 천장을 올려다보고 때때로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조금 지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뭔가를 생각하는 거라면, 112년을 살아온 사람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묻고 싶었다 ..  (212쪽)


 동네 젊은이는 벽그림 그리기를 하며 살아갑니다. 주말에는 부모님이 꾸리는 밥집에서 오토바이로 밥 나르기를 한답니다. 오늘도 “작업하다가 와서 옷이 좀 그래요.” 하고 씨익 웃습니다. 젊은 친구가 입은 옷은 군인옷. 해병대 다니며 입던 야상. 야상에는 벗겨지지 않을 만큼 페인트가 묻어 있습니다.

 도서관에 들어와서 “미술책도 있나요?” 하고 묻기에, 속으로, ‘허허, 원 참, 자기가 서 있는 왼쪽에 있는데, 안 보이나?’ 하고 생각하며 웃습니다. “음, 어떤 미술책을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쪽에 아이들 그림책부터 해서 죽 있어요.” 하고 손으로 가리킵니다. 그리고, “요새는 아무나 붓질 할 줄 알면 아이들 그림책을 그린다고 하는데, 진짜 제대로 그리는 아이들 그림책을 보면, 밑바탕부터 아주 잘 되어 있는 분들이 그리기 때문에, 줄 하나에도 깊이가 느껴져요.” 하고 덧붙이면서, 키츠 그림책과 벵상 그림책과 스캐리 그림책을 하나씩 들추면서 보여줍니다. 스캐리 그림책은 일본에서 펴낸 열 권짜리 전집도 있기 때문에, “이분은 처음에는 이렇게 부드러우면서 빛이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만화 그림처럼 되어 가고, 나중에는 모두그림으로 하나로 모아서 재미난 이야기를 엮어내는 책을 만들었어요.” 하고 말하며 작품을 여럿 보여줍니다.

 1940년대에 나온, 의사가 그린 남녀 성기 해부학 그림책도 보여주고, 독일 조각가가 사람몸을 찰흙으로 빚는데 뼈와 힘살까지 하나하나 꼼꼼히 빚어서 붙인 뒤 마무리를 짓는 모습을 사진으로 하나하나 담아서 보여주는 책도 보여줍니다. “선생님은 과정을 중시하나 봐요?” “글쎄, 예술은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요. 보통은 마무리한 작품만을 두고 이야기하지만요.”


.. 밥은 왜 41년 간이나 이 땅을 떠나지 않았을까. 가문비나무 이야기가 그 물음에 힌트를 주는 것 같다. 밥에게는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자연조차 여전히 미지의 세계이며, 지금 살고 있는 이곳, 그리고 마침내는 죽어갈 이곳 쉬솔릭이 흥미로운 것이다 ..  (26쪽)


 “혹시, 김환기라고 하는 분 책도 있나요?” “김환기, 김환기, 음, 어디엔가 있는데. 이건 이쾌대 님 책이고, 이쾌대 님은 일제강점기 때 그림을 그린 분이에요. 우리들한테는 잘 안 알려져 있지만. 어디에 있는데 잘 안 보이네요. 저도 꽂아만 놓고 머리에만 기대기 때문에 잘 못 찾기도 해요.” “따로 입력해서 정리하지는 않으시나 봐요?” “네, 일부러 안 하고 있어요. 그렇게 정리해 두면 저부터도 찾기 좋겠지만, 사실 책을 본다고 할 때에는 그렇게 목록이 주어지면, 다들 ‘보는 책’만 또 보게 되잖아요. 하지만 목록을 따로 마련해 놓지 않으면 자기가 바라는 책을 찾으면서 다른 여러 가지 책도 함께 보게 되어요. 책을 본다고 할 때에는 그렇게 어느 하나만이 아니라 둘레 책들까지 해서 두루 보도록 하는 일이 좋다고 생각해요.”


 (2) 아침신문을 보고


 일터인 도서관이 있는 인천 배다리 둘레에 ‘너비 50미터 길이 2.41킬로미터’짜리 산업도로를 놓으려는 인천시 종합건설본부는, 머지않아 ‘지금 멈춰진 공사를 다시 밀어붙이겠다’는 이야기를 신문사 기자한테 말한 듯합니다. 우리들 동네사람(주민)한테는 그런 이야기를 입도 벙긋하지 않았는데.

 그저께 아침, 인천에서 나오는 신문을 보니, “수 차례 민원인들과 타협을 시도했지만 진척이 없어 (공사 재개) 통보를 검토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신문기자한테 들려준 인천시 종합건설본부 쪽에서는 언제 한 번 제대로 된 ‘주민설명회’를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동네 샛길도 아닌, 산업자재 그득 싣고 수출입 화물을 수십 톤씩 싣고 다니는 큰 짐차가 들락거릴 산업도로를 동네 한복판에 놓는다면, 이 동네 문화며 삶터는 그예 무너져내릴 테지만, 이런 엄청난 밀어붙이기 막공사를 거두어들이려는 움직임은 아직도 없습니다. 그러면서 동네사람들 ‘민원 때문에 공사진행에 차질이 빚어진다’는 이야기를 신문사 기자들한테 흘리고 있습니다.


.. 들판에서 곰을 만난다는 것. 그것은 어떤 체험일까. 저기 한 마리 곰이 있을 뿐인데도 광대한 풍경은 묘한 긴장감을 띠게 된다. 며칠 뒤 툰드라 저쪽에서 검은 이리가 나타났다. 백야의 신비한 분위기 속에서 이리는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아직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먼 거리인데도 이리는 문득 나를 알아차리고 섬광처럼 달려서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  (56쪽)


 문득 궁금해집니다. 지금은 산업도로 밀어붙이기를 동네사람들 힘으로 가까스로 ‘공사 잠정 중단’까지 이끌어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공사 잠정 중단’을 하고 나서 ‘아무런 타협안’도 우리들한테 내놓은 적이 없습니다. 길을 내 버리면 사람들 삶은 와장창 깨지는데, 여기에서 무슨 타협안이 있을 수 있을까요. 또, 어떤 타협안을 우리들한테 이야기했다고 신문사 기자는 종합건설본부 공무원들 말을 거리낌없이 실을 수 있었을까요. 어차피 공사터를 닦아 놓았으니 ‘길은 그냥 내되 산업도로 구실만 안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까요. 여기에 길이 놓이면, 동네에서 초중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통학로가 끊어져서 위험해질 뿐 아니라, 소음과 먼지에 무던히도 시달려야 하는데, 어차피 길을 내도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 문제이지, 공사를 밀어붙이는 공무원들은 이 동네에 안 살기 때문에 상관이 없는 일일까요.


.. 지난 1백 년 동안 알래스카 북극권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새로 들어와 살게 되었다. 하나는 선교사, 상인, 광산업자, 생물학자, 교육자 따위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개 자신이 전에 살던 지방의 생활양식과 가치관을 이 땅에 고스란히 가지고 들어왔다. 또 한 부류는 이 땅에 벌써부터 존재하던 생활양식과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이어받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알래스카에서는 전자에 속하는 사람들은 겉으로 쉬 드러나는 데 반해,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은 거의 알려지는 일이 없다 ..  (35쪽)


 아침에 한 번, 낮에 한 번 우체국 가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인천 종합건설본부 사람들한테 이 길은 왜 있어야 할까요. 동네사람들은 그런 길 없어도 된다고, 아니 그런 길이 나면 동네가 옴팡 무너지고 망가진다고 하는데, 인천시장을 비롯해서 지역 국회의원과 시의원과 구의원들은 왜 이런 동네사람들 목소리는 안 들으려고 할까요. 이들 행정을 맡고 정치를 맡은 이들은 어떤 목소리를 들었기에 여기에, 동네 한복판에 산업도로를 놓아서 ‘지역균형발전’과 ‘경제발전’을 이룩하겠다는 소리를 읊을 수 있을까요. 또 이런 소리는 어찌하여 지역신문 기사로 꾸준히 실릴 수 있을까요.


.. 아직 습기로 눅눅한 강가 둔덕 위에 벌렁 눕는다. 이른봄의 향기로운 흙냄새. 연보랏빛 야생 크로커스가 봉오리를 부풀리고 있다. 부드러운 햇살 속에서 멍하니 구름을 바라보고 있자니, 심장 뛰는 소리가 이상하게 크게 들린다. “어이― 시간아, 어릴 적의 너를 다시 한 번 만나보고 싶다.” 이렇게 외쳐 보고 싶지 않은가 ..  (103쪽)


 산업도로 예정터는 우체국에서 십오 미터쯤 옆. 이곳에 4층짜리 건물이 있었는데, 얼마 앞서 그 4층짜리 건물 4/5를 허물었습니다. 참말 길을 뚫으려고 저 건물도 허는가 하고 가슴이 쿵쾅쿵쾅. 그러고 두 주 뒤인 오늘 아침, 큰 기중기차 한 대가 와서 철근놓기를 합니다. ‘어, 뭐 하나?’ 하고 가만히 바라보니까, 길을 낸다는 것 때문에 그 건물 4/5는 잘려나갔지만, 비스듬하게 건물 붙이기를 해서 잘린 곳 가운데 1.5/5쯤을 새로 올리려고 하는 듯합니다.


.. 이 마을의 교회는 십자가만 없다면 다른 민가와 구분이 가지 않는 통나무 오두막이다. 다른 마을에서 온 신부님은 한참 젊은 사람이었다. 까만 가운 밑으로 하얀 운동화와 청바지가 비쳐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  (149쪽)


 사람 사는 곳에 길이 안 날 수 없고, 사람이 사니까 길을 놓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나라에서 새로 놓는 길은 얼마나 사람이 다니도록 마음을 쓰면서 놓는 길일까요. 지금 우리 나라에서 자꾸만 놓으려고 하는 길은 얼마나 사람한테 도움이 되고 즐거울 만한 길일까요.

 사람들 주머니를 털어서 모은 돈으로 사람들이 장비를 움직여서 길을 닦고 사람들이 모는 자동차가 오가는 길이지만, 정작 사람 냄새는 하나 없는 길, 사람 느낌은 깃들 수 없는 길은 아닌지요.


 (3) 그림쟁이


 벽그림 그리는 젊은 친구는 도서관 책 구경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그림쟁이 김환기 님이 자기한테 작은할아버지라고 하기에 김환기 님이 쓴 《그림에 부치는 시》라는 책 하나를 빌려줍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우리 친척이라고 해서 인터넷으로 알아보았는데, 사진을 보니까 할아버지하고 진짜 똑같이 생겼더라고요. 이 책에 있는 표지 그림하고도 진짜 똑같네요.”


.. 자연은 강한 자만이 살아남아 자손을 남긴다고 한다. 이리의 습격을 받는 카리부 무리는 미처 도망치지 못하는 약한 놈을 희생시켜서 무리 전체의 강인함을 유지한다고 한다. 지극히 이해하기 쉬운 설명이지만, 자연은 정말 그렇게 교과서대로 움직일까? 의외로 우연성이 지배하는 부분이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자연은 약한 자까지도 포용해버리는 넉넉한 품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  (204쪽)


 젊은 친구한테 김환기 님 도록 하나를 찾아서 보여주었습니다. 젊은 친구는, “아, 그런데,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네.” 하고 말합니다. “저도 그 도록을 갖춰 놓기는 했지만, 저도 그 그림 봐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몰라요. 무슨 모더니즘이라고 하던가, 그런 그림인데.”


.. 비록 어린아이들이지만, 한 생명을 끝장내고 손으로 직접 살점을 만지면서 뭔가를 느꼈을 것이다. 우리를 비롯한 모든 생명이 다른 생명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 그 고기를 입안에 넣음으로써 그 카리부의 생명을 자기가 잇게 된다는 것 ..  (42∼43쪽)


 “김환기 이분이 글도 쓰셨어요?” “네, 글도 쓰셨지요. 그리고 글을 잘 쓰셨지요. 책을 보면 사이사이 그림도 끼워넣었어요. 참 좋아요.” “이 책 빌려 주셔도 돼요?” “음, 친구가 나중에 돌려주기만 하면 되지요.” “와, 고맙습니다.”


.. 알래스카의 새로운 토지 분할로, 그들의 집은 어느새 국립공원 경계선 안에 들어가 있다. 알래스카가 아직 미개척지였던 시절, 자유를 찾아 이 땅에 들어와 들판에 정착한 많은 사람들에게 어느 날 불쑥 불법침입 통고장이 날아든다 ..  (62쪽)


 “가만히 보면, 우리 도서관에는 그림책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다른 갈래 책도 그렇지만. 그냥 제가 좋아해서 하나하나 사서 읽은 책들이고, 그러다 보니까 좀 좁다고도 할 수 있는데, 그래도 이런 책들은 다른 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책이 많기도 하니까, 재미있게 봐 주세요.”

 젊은 친구는 제가 추천해 주는 책들을 걸상에 앉아서 차분하게 하나하나 넘깁니다. 어쩌면 처음 보는 새로운 그림들이라서 마음을 쏟아서 보는지 모르고, 어쩌면 오늘 이 자리에서 만나는 이 그림들이 우리 젊은 친구한테 새로운 눈을 틔워 주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작은할아버지한테 흐르던 피가 자기한테도 흐르고 있음을 느끼며, 자기는 자기 나름대로 그림밭으로 나아가려는 피끓음을 하는지 몰라요.


.. 카리부를 다 옮겼을 때 나는 케니스에게 물었다. “케니스, 혼자 있을 때는 어떻게 카리부를 훈제실까지 옮겨요?” 케니스는 빙글빙글 웃으며 대답했다. “쉬차, 조금씩 끌고 가면 돼. 끌다 보면 어느새 둑 위에 와 있어.” ..  (196쪽)


 “오늘 구경 잘하고 갑니다. 책도 잘 읽을게요.” 젊은 친구는 부모님 집에서 따로 나와서 혼자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오토바이를 타고다닌다고 하는데, “오토바이 타면 서울에도 가고 부천에도 가고 좋아요. 일하다가도 페인트 떨어지면 바로 타고 가서 사 올 수 있고요.”

 제가 젊은 친구 나이였을 때는 두 다리로 달리면서 다녔습니다. 저 젊은 친구가 지금 제 나이를 넘어서며 자기 손아랫사람을 만날 때에는, 저 친구한테 손아랫사람 되는 이는 어떻게 세상을 부대끼며 만날까요.


 (4) 《바람 같은 이야기》라는 책


 한 해 남짓 읽어 온 《바람 같은 이야기》를 덮습니다. 이제 제 책상맡에서 떠나보낼 때가 되었습니다. 책이름 그대로 이 책을 쓰고 사진을 찍은 ‘호시노 미치오’ 님은 바람처럼 와서 바람처럼 사라진 삶을 보냈다고 느낍니다. 더운 곳에서는 시원한 바람으로, 추운 곳에서는 따스한 바람으로.


.. 편리한 문명생활과 등을 돌리고, 불편한 한 팔로 카리부를 한 걸음 한 걸음 둑 위로 끌고 올라가는 케니스. 그가 가지고 있는 힘은 과연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언젠가 케니스가 나이 더 들어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 자리에서 가만히 죽어 가겠지.” ..  (198쪽)


 사진이 좋아 사진을 찍고, 어느 날 보게 된 알래스카 사람들 삶터 사진에 흠뻑 빠져서 바지런히 일해서 돈을 모으면 그 돈으로 비행기표를 사서 알래스카로 떠났다는 호시오 미치오 님. 흘러흘러 떠도는 것만이 바람이 아니며, 고여고여 한 자리에만 맴도는 것만이 바람이 아님을 온몸으로 말하면서, 글 몇 자락과 사진 몇 장으로 우리들하고 언제 어디서나 이야기를 나누고자 스스로 바람이 되어 버린 이 사람. 다음에 또 봐요. (4340.12.14.쇠.ㅎㄲㅅㄱ)


 《노던라이츠》(청어람미디어,2007)
 《여행하는 나무》(갈라파고스,2006)
 《숲으로》(진선출판사,2005)
 《곰아》(진선출판사,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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