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은 교학사에서 나온 《마더 구스의 노래》, 오른쪽은 팬더북 출판사의 《마더 구즈의 노래》. 교학사의 책은 1991년에, 팬더북의 책은 1996년에 처음 나왔다. 교학사의 책은 어린이 독자들을 위해 잔인한 표현의 문장을 부드럽게 윤색했다. 두 권 모두 절판되었다. 마더 구스 원본을 전체를 옮긴 책은 아니지만, 유아 교육용 마더 구스에서 볼 수 없는 동요들이 많이 수록되었다. 유럽의 미시사를 공부하기 위한 목적으로 마더 구스를 알아보려면 이 두 권의 책, 특히 팬더북 출판사의 책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팬더북의 마더 구스에는 원문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 《마더 구스의 노래》 (교학사, 1991년)

* 《마더 구즈의 노래》 (팬더북, 1996년)

* 《마더 구스》 (북타임, 2010년)

 

 

 

 

《마더 구스의 노래(Mother Goose's Melody)》(약칭 ‘마더 구스’)는 영국의 아이들이 자라면서 즐겨 부른 전래 동요집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동요를 영국에서는 ‘Nursery rhyme’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왕, 귀족, 성직자들에 대한 풍자부터 풍속, 도덕적 교훈, 수수께끼, 속담, 자장가, 알파벳이나 요일 이름 같은 것을 외우기 쉬운 문장들로 구성되었다. 아이들은 동요를 따라 부른다. 이런 과정에서 영어의 운(韻, rhyme)을 자연스럽게 익혀 언어감각이 향상된다. 그래서 마더 구스는 유아용 영어 교재로 많이 소개되었다. 마더 구스를 따라 부르면 자연스럽게 영미권 아이들의 정서를 이해하면서 영어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더 구스가 어린이들을 위한 동요집으로 생각하는 부모가 있다. 하지만 마더 구스의 일부분만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원래 마더 구스가 처음 나왔을 땐 그랬다. 그러다가 어른들이 즐겨 부른 짤막한 민요들도 마더 구스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유아 교육용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마더 구스와 마더 구스 원본을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원본에는 비정하면서도 잔인한 표현이 담긴 동요가 수록되어 있다. 그 속에 명랑하고 쾌활한 분위기의 동요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의 정서에 맞지 않는 동요도 있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거리낌 없이 어른들의 노래를 불렀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오늘날 어린이는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가족의 일원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그렇지 못했다. 프랑스 역사가 필립 아리에스는 ‘어린이’가 철저히 역사와 문화를 통해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중세 유럽에는 ‘아동기’에 대한 의식 자체가 형성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어른과 구별되는 옷을 입히고 놀이를 구분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아동’이 탄생하기 시작한 것은 기껏 17세기에 들어와서야 가능했다. 어린이들은 10대로 접어들면 부모님의 노동을 돕는다거나 돈을 벌려고 도제 생활을 했다. 궁핍하게 생활하는 하류층 부모들은 자식들 양육이 부담스러워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중세 프랑스 사회에서 영아살해는 공공연하게 자행되었으며, 그것이 도덕적인 타락으로 인식되지는 않았다. 이처럼 비정한 사회상의 모습은 지금까지 전해지는 동요나 동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샤를 페로의 동화 『엄지 동자』는 가난과 기근으로 인해 부모로부터 버려지는 일곱 명의 형제들이 등장한다.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 일찍 비정한 현실에 눈을 떴다. 중세의 어린이들은 냉정한 어른들의 세계를 압축한 동요를 즐겨 부르면서 자연스럽게 어른으로 자랐을 것이다.

 

 

 

 

 

 

 

 

 

 

 

 

 

 

 

 

 

영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가난의 늪에 허덕인 서민들은 자신들의 심정을 반영한 동요를 많이 불렀다. 로버트 단턴은 《고양이 대학살》 1장에 마더 구스의 동요를 인용하여 동요가 유행했던 당시 사회의 모습을 유추한다. 관련 내용은 《고양이 대학살》 65~70쪽에 있다.

 

 

신발 속에 사는 늙은 여자가 있었네.

아이가 너무 많아 어찌할지 몰랐네.

 

 

이 동요는 《고양이 대학살》 66쪽에 나온다. 그런데 인용문은 원문의 일부만 발췌한 것에 불과하다. 원문은 이렇다.

 

 

 

There was an old woman who lived in a shoe.

She had so many children, she didn't know what to do;

She gave them some broth without any bread;

Then whipped them all soundly and put them to bed.

 

구두 속에 한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아이들이 너무 많아 어쩔 줄을 모른다.

죽만 주고, 빵은 하나도 주지 않고,

게다가 호되게 매질하며, 자거라, 이 꼬마들아.

 

(《마더 구즈의 노래》 58쪽)

 

 

 

단턴은 이 동요를 인구 증가의 현상을 노래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가족의 일원이 늘어날수록 생계의 부담도 같이 늘어난다. 인구 증가와 함께 가난의 고통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할머니는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여주고 싶어도, 그렇지 못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빵 하나조차 구경할 수 없었다. 그래서 묽은 죽으로 연명해야만 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할머니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빵을 달라고 떼를 쓴다. 할머니는 절망적인 상황을 폭력으로 해소한다. 자신을 괴롭게 만드는 아이들에게 분노를 표출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거리로 나서서 구걸을 하기도 한다.

 

 

 

크리스마스가 오는데

거위는 살이 찌네.

늙은이의 모자에

한 푼만 넣어줍쇼.

 

(《고양이 대학살》 68쪽)

 

Christmas is coming, the geese are getting fat,

Please do put a penny in the old man's hat;

If you haven't got a penny, a ha'penny will do,

If you haven't got a ha'penny, then God bless you.

 

크리스마스가 와요, 거위가 살이 쪄요.

자, 1페니, 할아버지 모자에.

1페니가 없으면 반 페니라도 좋아요.

반 페니도 없다면, 신의 가호를.

 

(《마더 구즈의 노래》 83쪽)

 

 

 

가난의 고통이 지속될수록 정의 온기가 식어간다. 가난한 자들은 도둑이 되어 남의 것을 빼앗으려고 한다.

 

 

 

한 사람이 있었는데 아무것도 없었네,

도둑들이 강탈하러 그에게 왔다네.

그는 굴뚝 끝에 올라갔고,

그들은 그를 죽였다고 생각했네.

 

(《고양이 대학살》 68쪽)

 

 

There was a man and he had naught,

   And robbers came to rob him;

He crept up to the chimney top,

   And then they thought they had him.

 

But he got down on the other side,

   And then they could not find him;

He ran fourteen miles in fifteen days,

   And never looked behind him.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빈털터리,

  그를 털려고 도둑들이 찾아왔다.

그는 굴뚝 꼭대기로 기어 올라갔다.

  이제 잡았다, 하고 도둑이 뒤쫓아 갔다.

 

그러나 살짝 저편으로 도망쳐 내려갔다.

  그래서 그들은 그를 찾을 수 없었다.

그는 15일 동안 14마일을 달렸다.

  뒤돌아 봐도 이젠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마더 구즈의 노래》 52쪽)

 

 

 

더 이상 살아갈 여력이 없는 사람들은 절망적인 최후의 선택을 한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여 힘들었던 속세의 고통에서 벗어난다. 가난은 한 가족을 붕괴시키는 비극을 초래한다.

 

 

세 아들을 둔 늙은 여자가 있었네.

제리와 제임스와 존.

제리는 교수형에 제임스는 익사하고,

존은 사라져 다시 찾지 못했다네.

그것이 세 아들의 종말이었다네.

제리와 제임스와 존.

 

(《고양이 대학살》 66~67쪽)

 

There was an old woman had three sons,

Jerry, and James, and John:

Jerry was hung, James was drowned,

John was lost and never was found,

And there was an end of the three sons,

Jerry, and James, and John.

 

한 할머니와 세 아들이 살고 있었다.

세 아들은 제리, 제임스, 그리고 존이었다.

제리는 목을 맸고, 제임스는 물에 빠졌다,

존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것으로 할머니의 세 아들 이야기는 끝이다.

제리, 제임스, 그리고 존.

 

(《마더 구즈의 노래》 142쪽)

 

 

 

《고양이 대학살》에서는 “Jerry was hung”을 교수형으로 옮겼다. ‘hang’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동요의 전체적 의미 또한 달라진다. 제리가 목을 매어 자살했다면, 가난을 견디지 못한 아들 두 명은 자살을 한 것이고, 유일하게 살아있는 아들은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거지로 되었을 거로 추측할 수 있다. 제리가 교수형을 당한 것으로 해석하면, 제리가 제임스를 물에 빠뜨려 죽였거나 존마저 살해한 혐의로 교수형을 받는다는 아주 절망적인 내용이 된다. 제리는 장남으로서 가족들의 궁핍한 삶을 해소할 책임이 있었다. 그러나 제리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깊은 좌절감에 빠졌고, 자신의 손으로 가족들을 죽이는 극단적인 행동을 했을 것이다.

 

마더 구스 동요 속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비참한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앞길이 깜깜한 가난의 동굴 속에 오랫동안 살아왔지만, 그들은 생전에 돈과 빵을 손대지 못했다. 그들의 삶을 구원해 줄 희망의 빛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 앞에 기다리는 것은 병마 또는 죽음이었다. 솔로몬 그런디의 죽음처럼 이름 없는 삶의 끝자락 또한 너무나도 비참했다.

 

 

Solomon Grundy,

Born on a Monday,

Christened on Tuesday,

Married on Wednesday,

Took ill on Thursday,

Worse on Friday,

Died on Saturday,

Buried on Sunday.

This is the end

Of Solomon Grundy.

 

솔로몬 그런디는,

월요일에 태어나서,

화요일에 세례받고,

수요일에 결혼해서,

목요일에 병이 들어,

금요일에 위독해지고,

토요일에 세상을 떠나,

일요일에 장례지냈다.

이렇게 해서 솔로몬 그런디의

일생은 모두 끝났다.

 

 

(《마더 구즈의 노래》 1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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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1 15: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1 18: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6-02-11 18: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더구스도 처음 들었을 때는 동요라고 해서 더 무서웠던 기억이 나요.
cyrus님, 연휴는 잘 보내셨나요. 오늘도 좋은 저녁 되세요.^^

cyrus 2016-02-11 19:23   좋아요 1 | URL
무서운 분위기의 동요가 많이 있는데 국내에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아서 아쉽습니다.

표맥(漂麥) 2016-02-11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분야엔 제가 젬병이란걸 깨닫습니다. cyrus님은 역시 제가 모르는 부분을 많이 알고 계시군요. 읽는 것만으로도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cyrus 2016-02-12 08:58   좋아요 0 | URL
저도 최근에 알았어요. 인터넷에 찾아보면 나오는 내용들이에요. ^^

2016-02-12 0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2 1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6-02-12 1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즐거운 금요일 되세요.^^

cyrus 2016-02-12 19:04   좋아요 1 | URL
네, 고맙습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
 
중세의 여인들
아일린 파워 지음, 이종인 옮김 / 즐거운상상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시공사 출판사 마케터님께.

 

 

 

 

 

 

 

요즘 마음의 평안을 얻고 계시는지 궁금해서 편지를 보냅니다. 이 사진 때문에 깜짝 놀라셨죠? 작년 12월 마지막 주말이었던 가요? 그러고 보니 어느새 한 달이나 지났군요. 마케터님이 저지른 희대의 실수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잊으려고 해도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답니다. (찡긋)

 

마케터님은 중세가 남자의, 남자에, 남자를 위한 주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중세》 2권 출간에 맞춰서 엄청난 이벤트를 준비했었죠. 이벤트 참가자를 남자로 한정했더군요. 마케터님. 설마 역사(History)를 진짜 ‘남자들을 위한 이야기(His+story)’로 이해한 건 아니죠? 재밌으라고 이벤트를 만든 거죠? 당신의 아이디어에 전 전 대통령의 훤한 이마를 탁 치고 갑니다.

 

사람들 반응이 크게 심각해지자 마케터님은 이벤트 공지사항을 급히 삭제하고 사과문을 올렸습니다. 이벤트 기획이 잘못된 점을 인정한 자세는 좋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마케터님은 중세에 관한 지식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어떤 분야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자신의 선입견이 진짜 지식으로 믿어버리는 착각을 합니다. 이러면 왜곡된 정보를 타인에게 전파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선입견이 전파되는 힘은 무섭습니다. 선입견이 수많은 사람의 머릿속에 심어지면 완전히 사라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앞으로 이런 위험한 실수를 방지하라는 의미에서 제가 중세와 관련된 책 한 권을 마케터님께 권합니다.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아일린 파워라는 역사가가 쓴 《중세의 여인들》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을 쓴 저자의 성을 보세요. 파워(Power). 아주 멋지지 않습니까? 왠지 힘이 넘치듯 할 남자가 중세에 관한 책을 쓴 것 같죠? 그런데 틀렸습니다. 누구나 ‘힘’을 뜻하는 단어를 떠올리면 ‘아일린 파워’가 남자라고 생각할 겁니다. 저도 처음에 그랬습니다. 그런데 실은 아일린 파워는 여자입니다. 네, 여류 역사가가 중세의 여인들에 관한 책을 썼습니다. 《중세의 여인들》은 얇아요. 본문의 분량만 계산해도 200쪽 이상 되지 못합니다. 어때요? 1,000쪽을 훌쩍 넘어가는 《중세》에 비하면 읽을 만하죠?

 

요즘 독자들은 아일린 파워가 누군지 잘 몰라요. 오스틴 파워는 잘 아는데 말이죠. 그런데 아일린 파워 이 사람, 생전에 아주 유명했었답니다. 아놀드 토인비 아시죠? 이 유명한 역사가는 유부남인데도 한때 콩깍지에 단단히 쓰여서 아일린 파워를 짝사랑한 적 있습니다. 그녀는 미모가 출중할 뿐만 아니라 역사를 분석하는 일도 수준급이었습니다. 그녀는 연구 능력을 인정받아 여러 차례 교수직을 역임했습니다. 그야말로 파워는 남성 학자들만 모여 있는 신전이나 다름없는 역사학계에 영향력을 행사한 최고의 여신이었습니다. 그녀는 남자들의 기록에 가려진 중세 여성들의 삶을 발견해냈습니다. 그 발견의 결과물이 바로 《중세의 여인들》입니다.

 

우리는 흔히 중세 여성들을 남성중심사회의 희생양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세 사회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래요. 종교를 신성하게 여기던 중세 남성들, 특히 교회의 종교인들은 여성이 유혹에 쉽게 빠지는 타락의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남성들은 자신들이 우매한 여성들을 다스려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여성들을 자신보다 열등한 존재로 보는 거죠. 그런데 이 중세 남성들은, 알면 알수록 좀 웃긴 존재입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이들은 성모 마리아를 고결한 존재로 찬양하고 숭배했으니까요. 성모님도 여잔데, 현실의 여자들만 열등한 존재로 생각한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죠. 그렇지만 중세 시절에는 이런 비상식의 상식이 통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중세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인정받으려는 방법은 있습니다. 돈 많은 귀족의 딸로 태어나면 됩니다. 그리고 돈이 많아야 합니다. 돈이 많으면 역시 돈 많은 영주를 만날 수 있습니다. 캬아! 이거야말로 금수저 인생 아니겠습니까? 역시 그때나 지금이나 돈이 최곱니다 그려. 상류층의 여성들은 화려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남성들, 특히 음유시인들은 그녀 앞에 잘 보이려고 애썼습니다. 귀족 부인들에게 자신들이 만든 감미로운 노래를 바쳤습니다. 귀족 부인들 덕분에 음유시인들은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종교인들이 성모 마리아를 숭배했다면, 모험심에 사로잡힌 기사들은 서사시에 나올 법한 숙녀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들은 기사도 정신을 마음껏 발휘해봅니다만, 기사들이 사랑하는 숙녀들은 성모처럼 현실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귀족 부인들 앞에서 자신들의 용맹함을 뽐냅니다. 금수저를 확실히 쥔 귀족 부인들은 경제적으로 실질적인 힘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들도 토지를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귀족 남편이 죽으면 미망인이 집안의 재산 및 남편 소유의 토지를 관리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귀족의 딸이 아닌 여성들은 어떻게 하면 인정받았을까요? 중세 사회에서 귀족의 딸 다음으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여성이 중세 장인의 딸입니다. 장인의 딸은 아버지의 일을 물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들은 남성들만 있을 것 같은 중세 길드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장인의 딸은 은수저 인생입니다. 보통 여자들도 마음만 먹으면 장인의 도제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은수저 인생의 그녀들만큼이나 대접받지 못합니다. 여성 장인들이 많아지게 되자 길드에 소속된 남성 장인들은 제 밥그릇이 위태롭다는 것을 감지했습니다. 그러고는 아주 간사하게 규정을 만듭니다. 장인의 아내와 딸 이외에는 함께 일할 수 없다고 못을 박은 거죠. 돈을 벌어서 생계를 이어가고 싶은 여성들에게는 억울한 일이죠. 그런데 이보다 더 억울한 여성이 있었습니다. 농촌에서 태어난 여성들이에요. 그녀들은 글자 하나 제대로 못 배우고 평생 농사일을 하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말 그대로 흙 수저 인생인 거죠. 흙흙, 흑흑...

 

자, 이제 제가 마케터님에게 《중세의 여인들》을 추천하는 이유를 잘 아시겠죠? 중세가 남성의 시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을 겁니다. 남성들의 사회에 제한되어 살아야 했던 여인들도 있었고, 반면에 남성들로부터 인정받고 화려하게 산 여인들도 있었답니다. 중세 사회를 이해하려면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아울러서 봐야 합니다. 만약 역사가가 중세의 하층 여성들 중심으로 연구했으면 중세가 여성들을 억압하는 남성의 시대라고 분석했을 겁니다. 이는 중세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겁니다. 이 역사가는 상류층 여성의 존재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역사가의 오류는 중세 기사들이 활동한다고 해서 중세를 남성의 시대라고 생각했던 마케터님의 실수와 비슷합니다.

 

마케터님은 자사에서 나온 《중세》 1, 2권을 다 읽으셨으리라 봅니다. 《중세》만 제대로 읽으면 중세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겠죠? 천만에요. 그것만 본다 해도 중세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중세 연구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지금도 중세에 관련된 학술논문이 무수히 나옵니다. 중세 사회를 이해하는 다양한 관점이 정말 많습니다. 중세 사회를 정형화된 의미로 함부로 형용할 수 없습니다. 하나의 지식으로 이해하는 순간, 생각의 진행은 멈춰버립니다. 그리고 딱딱하게 굳어진 지식은 한 번에 깨뜨리기 힘든 선입견이 되고 맙니다. 이 선입견이 오래 남으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마케터님 본인이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출판사 직원은 자신이 소속된 출판사의 책을 만들고 홍보를 해야 하는 일이 전부가 아닙니다. 자신이 만드는 책 속에 있는 지식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독자에게 신뢰를 주는 책을 만들 수 있습니다.

 

 

 

 

 

※ 추신 : 이 책에 한계가 있습니다. 파워가 1920년대에 집필한 논문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겁니다. 파워는 농촌에 거주하는 하층민 여성들의 삶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서 연구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래서 파워는 현존하는 소수의 자료를 가지고 여성들이 이렇게 살았으리라 추정했습니다. 파워가 해결하지 못한 미흡한 연구는 후세 역사가들이 새로운 자료를 발굴하면서 보완했을 겁니다. 이 점에 유의해주시길 바랍니다. 


 

 

※ 《중세의 여인들》을 만든 ‘새로운 상상’ 출판사 편집자님 그리고 이 책을 옮긴 이종인 번역가님에게 드리는 독자의 한 말씀.

 

독일의 음유시인(Minnesinger) ‘미네징거’ 혹은 ‘민네징어’라고 표기합니다. 책 53쪽에는 미네징거, 63쪽에는 민네징어라고 되어 있더군요. 다음 쇄를 찍을 때 한 가지 단어로 통일해주세요. 74쪽에 중세의 형제 화가를 ‘반 림부르그 형제’라고 써 있었습니다. 이들 형제가 현제 네덜란드 영토가 된 플랑드르 지방에 태어났다고 해서 이름 앞에 ‘van’을 붙었을 거로 추측해봅니다. 이 정도 표기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Limbourg’를 소리 나는 대로 쓰면 ‘림부르그’ 혹은 ‘림부르흐’입니다. 그런데 통상적인 외국어 표기를 따르면 ‘랭부르 형제’로 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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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2-01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스틴 파워는 알아도 에일린 파워는 모르는.... ㅋㅋㅋㅋㅋㅋㅋ
나날이 발전하는 사이러스 님의 유머 감각에 박수를 보냅니다.

cyrus 2016-02-01 20:38   좋아요 0 | URL
곰발님의 언어 유희에 비교하면 이건 90년대식 아재 개그입니다. ㅎㅎㅎ

오늘 우편으로 책 보냈습니다. ^^

yureka01 2016-02-01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보니 참 꼼꼼하게 읽은 ^^..
남자의 역사도 여자 없이는 안된다는 건 만고강산에 불변의 법칙..
남자가 있는한 여자가 있고 여자가 있는 한 남자가 있어야 소리가 나는 법.

소리는 역사니까요 ㅎㅎㅎ

cyrus 2016-02-02 09:13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서로 마주쳐야 좋은 소리가 나옵니다. 그런데 자신의 분노를 여성에게 적대적으로 표출하는 남성들이 많아졌습니다. 불협화음이 그칠 줄 모르네요. ^^;;

고양이라디오 2016-02-02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페이지라니 가볍게 한 번 읽어봄직하겠네요ㅎ cyrus님의 책편력 참 대단하신 것 같다는ㅎ

cyrus 2016-02-02 09:16   좋아요 1 | URL
네. 진짜 책이 가볍습니다. 책 앞에 역자 설명이 있어요. 사실 그것만 읽어도 책 내용 80%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종인 씨가 책의 핵심 내용을 잘 정리했어요.

편력이 너무 많아서 한 분야의 책들을 꾸준하게 읽지 못합니다. 이게 제 문제점입니다. ^^

고양이라디오 2016-02-02 15:34   좋아요 1 | URL
저도 그렇습니다ㅎ 하지만 그 편력을 더 넓혀나가고 싶네요. 세상에는 재미나고 다양한 것들이 너무 많네요^^

뽈쥐의 독서일기 2016-02-02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런 일이 있었군요... 이렇게 민감한 시기에 용감하시군요. 저도 뒤늦게 마케터의 아이디어에 전 전 대통령의 이마를 탁! ㅎㅎ
전 유난히 약한 분야가 역사인데.. 그래도 미시사나 뒷이야길 참 좋아해요. 추천해주신 책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ㅎㅎ

cyrus 2016-02-03 08:28   좋아요 0 | URL
저도 역사 분야를 깊이 있게 아는 수준이 아니에요. 저는 읽기 쉬운 만만한 내용의 책만 골라 읽습니다. ㅎㅎㅎ

yamoo 2016-02-04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한 말씀이 기 글의 격조를 10배쯤 높였습니다!ㅎㅎ

꼼꼼한 리뷰, 잘 봤습니다.! 열성적이고 성실한 독서가 사이러스 님, 건투를 빕니다!^^

cyrus 2016-02-05 10:56   좋아요 0 | URL
야무님, 요즘 기분 좋은 일 있으십니까? 칭찬의 말씀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부담스럽습니다. ㅎㅎㅎ

게으른독서가 2016-02-06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의 폭넓은 지식에 늘 감탄하고 있어요. 아놀드 토인비가 아일린 파워를 짝사랑했다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대체 이런 정보는 어디서 찾으신 거예요?

cyrus 2016-02-06 15:02   좋아요 0 | URL
사실은 《중세의 여인들》에 나오는 내용들입니다. ^^
 

 

 

질병의 고통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피할 수 없는 숙명인지 알면서도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본능적일 수밖에 없다. 의학의 발전은 환자의 고통을 가장 효과적으로 치료하기 위하여, 아픈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다. 인류 초기의 의학은 우리 몸의 각 부분에 추상적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영적의 힘으로 질병을 치유하려고 했다. 몸속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근대 의학의 문이 열렸다. 죽은 사람의 몸을 열어보는 일이 다반사가 되고 비로소 오늘날과 같은 해부학이 정립된다.

 

 

 

 

 

 

 

 

 

 

 

 

 

 

 

 

 

 

인체의 구조에 대한 기념비적인 저서인 베살리우스의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는 1,000년이 넘는 의학의 한계를 극복했다. 고대 로마의 의사 갈레노스가 동물 해부를 바탕으로 만든 해부학을 넘어섰다. 베살리우스는 해부학 연구를 위해선 시체를 훔쳐내는 일도 서슴지 않는 정열적인 의학도였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사람의 몸을 신의 영역으로 여겨 인체가 호기심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걸 용납하지 않던 기독교 시대였다. 베살리우스는 해부 실습이 허용된 이탈리아 파도바대학의 의학교수로 임명되었다. 베살리우스는 파격적인 해부학 수업을 시도했다. 자신이 직접 시체를 해부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풍부한 해부 경험이 쌓인 베살리우스는 갈레노스의 해부학에 문제점을 발견했다. 교회 권력의 힘이 유럽을 지배하게 되자 갈레노스의 해부학은 유일한 정통학설로 인정되었다. 이를 비판하는 학자는 교회의 이름으로 불이익을 받았다.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를 발표한 이후 베살리우스는 종교 권위에 도전한 대가로 교수직을 그만둔다.

 

 

 

 

 

 

 

 

 

 

 

 

 

 

 

 

 

 

종교의 힘이 무너지면서 의사들은 해부학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들은 메스를 쥐고 베살리우스의 후예가 되었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해부학 수업의 중요성이 대두하면서 해부학 실습 학교가 많이 세워졌다. 하지만 해부용 시체, 특히 죽은 지 얼마 안 된 시체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법적으로는 사형수의 시체만이 해부가 허용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범죄자들의 시체만으로는 부족했다. 의사들은 낮에 메스를 들고, 밤에는 삽을 들었다. 돈이 없는 의사는 시체 도굴꾼이 되었다. 재력이 있는 의사는 전문 시체 도굴꾼을 고용했다. 시체 도굴과 해부 실습이 빈번해지면서 비윤리적인 문제들이 하나둘씩 발생하기 시작했다. 도시의 오물 구덩이에 시체 토막이 발견되었다. 해부하다가 남은 시체 토막이 몰래 버려진 것이다. 파리의 작가 루이 세바스티앵 메르시에는 시체 토막이 발견되는 파리의 오물 구덩이를 《파리의 풍경》에 기록했다. 그는 구덩이 안에 묻힌 시체 토막을 보면, ‘끔찍한 중범죄’가 떠오른다고 썼다. 불행하게도 메르시에의 예감은 수십 년이 지나서 현실이 된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도 시체 도굴꾼이 성행했다. 에든버러의 작은 여관을 운영하는 윌리엄 버크와 윌리엄 헤어는 시체 도굴이 돈이 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처음에 그들은 방세를 밀린 채 사망한 투숙객의 시체를 해부학교에 팔아 방세를 회수했다. 버크와 헤어는 시체를 구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들은 병든 투숙객, 노숙자들을 유인해 목 졸라 살해하고 시체를 팔았다. 버크와 헤어의 범행이 발각되기 전까지 17명의 사람이 희생당했다(문헌마다 희생자의 수가 다르다. 어떤 책은 15명이라고 썼다). 버크와 헤어가 공급한 시체는 에든버러 의과대학 강사인 로버트 녹스가 매입했다. 헤어는 자신의 죄를 면하기 위해서 버크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 결국 버크는 1829년에 교수형에 처했다. 석방된 헤어는 에든버러를 떠나 런던에서 가난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버크의 시체는 법의 규정대로 해부 실습소로 향했다. 지금도 에든버러 대학 박물관에 가면 버크의 골격 표본을 볼 수 있다. 살인자의 성(姓) 버크(burke) ‘목 졸라 죽이다’를 뜻하는 단어가 되었다.

 

‘발견’은 미처 찾아내지 못하였거나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흔히 최초의 발견자가 되면 돈방석에 앉고, 역사교과서에 자신의 이름을 남길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들 중 절반은 처음에 ‘미친놈’ 소리를 들었다. 그나마 일자리를 잃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잘못 걸리면 목숨까지도 잃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과학자들은 ‘미친 짓’이라는 비난 속에도 새로운 발견에 매달렸다. 그 과정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당사자들은 혼자 괴로웠을 것이다. 그래서 눈부시게 보이는 과학의 역사를 더 자세히 보면 낭만적이지 않다. 특히 해부학의 역사가 그렇다. 당시 시대적 상황 때문에 베살리우스는 어쩔 수 없이 허락 없이 시체에 손을 대야 했다. 그 일이 악의적으로 변질하여 버크와 헤어 같은 진짜 ‘미친놈’들이 나오기도 했다. 새로운 발견을 위해 미친 척한 학자들 덕분에 지금의 의학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제 의사들은 해부용 시체를 훔치지 않아도 된다. 버크와 헤어 연쇄 살인 사건 이후로 의사들은 합법적인 과정으로 해부용 시체를 얻을 수 있다. 해부학 실습을 시뮬레이터로 대신하는 의과 대학이 있다고 한다. 시체의 배를 갈라서 내부 기관을 손으로 만지는 일이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의대생들은 해부학 실습날이 다가오면 많이 긴장한다더라. 그러나 보는 것과 아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아는 것’에만 의존하는 집단적 태도가 어떤 문제를 일으켰는지 과학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의대생들이 베살리우스의 후예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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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6-01-07 19: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의사들뿐 아니라 화가들도 해부를 엄청 많이 했다고 하더라구요. ^^

cyrus 2016-01-08 11:45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원래 레오나르도 다빈치, 바스키아 이야기도 쓸려고 했는데 글이 길어지고, 주제와 상관이 없어서 안 썼습니다. ^^

AgalmA 2016-01-07 20: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실험정신에 주목한 본문과 조금 어긋난 글이라 죄송한데; 이 글에서의 범죄들에 대해 더 감정이입에 되어 말을 해 보면...
오늘 오로라님이 투구게에 대한 잔인한 실험에 대해 글도 올리셨다시피, 인간의 욕심 때문에 잔인하게 가행되는 동물실험과 학살도 참 문제가 많죠. 상아를 위해 코끼리를 죽이고, 가방을 위해 악어를 죽이고, 멋을 위해 털을 빼앗고, 장식을 위해 시베리아 호랑이를 사냥하고 곰의 머릴 자르고, 실험에 이용되는 쥐가 제일 고생이 많고...인간에 대한 인간 행위가 다를 바도 없는 게 보험금을 노린 범죄도 점점 더 극성이고...
데미안 허스트의 충격적인 작품들은 혐오감도 주지만 그런 각성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실험정신들이 금방 상업, 범죄에 이용된다는 게 또 딜레마...

cyrus 2016-01-08 11:54   좋아요 0 | URL
미안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옳은 말씀 하셨습니다.  제가 소개한《역사책에도 없는...》 책에 시험관 아기 실험 논란에 관한 내용이 있습니다. 불법으로 자신의 정자로 정자은행을 운영한 의사가 적발된 사례가 있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지금도 시험관 아기 연구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선이 있습니다. Agalma님 말씀대로 과학자들은 어떤 연구에 참여하기 전에 윤리적 보편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연구 결과에 대한 성찰도 필요합니다.

해피북 2016-01-07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기억으론 어제 이발사들의 해부학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에 이어 오늘은 의사들의 해부와 시체도굴꾼 이야기까지 새로운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셔서 재밌고 좋아요 ㅎ

cyrus 2016-01-08 11:56   좋아요 0 | URL
제가 사소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

살리미 2016-01-07 23: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초창기 의사들의 해부학 실험에 대한 이야기들은 항상 흥미롭기도 하고,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의학의 발전이 여기까지 왔구나 싶습니다.
제대로 해부를 해보지도 않고 시뮬레이터로 대신하는 의사들에게 내 수술을 맡긴다고 생각하면 끔찍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Agalma님 말씀처럼 어디까지를 인간을 위해 허용할 범위인가는 생각보다 쉽지 않은 문제인것 같네요. 제가 영화를 좋아하다보니 닥치는대로 막 보곤 하는데 요즘엔 정말 너무 혐오감을 주는 내용들이 많아서 (장기매매를 위한 납치나 불법 시술같은...) 이게 정말 현실에서 문제가 되고 있으니 이렇게 영화로 만들어지는건가 싶어서 끔찍해질 때가 많아요.
음.... 갑자기 cyrus님 의도와 멀어져가는 느낌이 있습니다만.. ㅎㅎ

cyrus 2016-01-08 12:10   좋아요 1 | URL
과학 발전에는 항상 빛과 그림자가 생깁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보다 더 윤택한 삶을 살 수 있는 장밋빛 미래를 원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발견 소식이 나오면 대중은 열광합니다. 과거에 황우석 교수에게 기대를 했던 것처럼요. 대중의 기대심리가 높아지면 학자는 좋은 성과를 내고 싶어합니다. 명예와 이익에 눈이 멀어져서 윤리에 어긋나는 일을 저지릅니다. 이런 사례는 반복되어선 안 됩니다.
 
문구의 모험 - 당신이 사랑한 문구의 파란만장한 연대기
제임스 워드 지음,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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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방(文房)은 원래 중국에서 문학을 연구하던 관직 이름이었다. 뒤에 선비들의 글방 또는 서재라는 뜻으로 정착됐다. 이곳에 갖춰두고 쓰는 종이, 붓, 먹, 벼루‘문방사우(文房四友)’라 칭한다. 우리 조상들은 예부터 문방사우를 가까이하며 인격을 쌓으려 노력했다. 좋은 문방사우를 갖는 것은 선비들의 취미였다. 그들에게 문방사우는 단순한 필기도구 이상이었다. 서예를 하는 이들 말고는 붓을 쓸 일이 거의 없기에 볼펜, 사인펜 등이 자리를 차지한 지 오래다. 그렇지만 형태만 달라졌을 뿐 문구는 예나 지금이나 글 읽고 공부하는 사람에게 가장 친숙한 존재들이다.

 

누군가는 컴퓨터, 스마트폰의 세상이 되면 문구의 역할이 밀려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에 진짜 그렇게 되면 문방사우처럼 연필, 볼펜, 지우개, 수정액 이 네 가지를 아우르는 별칭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들의 영문 첫 글자만 따서 ‘PBEC(pencil, ballpoint pen, eraser, correction fluid)’라고 정해지면, 미래의 영어사전에 ‘PBEC’는 두 가지 의미를 쓰이게 된다. ‘PBEC’는 태평양 경제 협의회(Pacific Basin Economic Council)의 약자다. 이처럼 머리에 쏙 들어오지 않는 약자가 사전에 등재되지 않으려면 연필, 볼펜, 지우개, 수정액이 정말로 사라지는 일이 없기를 바라야 한다. 그러나 그런 일은 절대로 없다. 서예를 기초로 하는 캘리그라피의 인기는 여전하다. 새해 첫날이나 새 학기가 시작되면 어른이나 아이나 새로운 문구를 산다. 새 문구를 가지면 새로운 사람이 되는 기분이 든다. 공부하는 사람들은 필기도구를 애인처럼 소중히 여긴다.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알록달록한 색깔 볼펜들, 지우개, 샤프펜슬, 샤프심, 형광펜 등 책상 위에 각종 문구가 다 있어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은 당분간 독서실에서 필기도구와 동거해야 한다. 자꾸 시험에 낙방할수록 동거 생활이 늘어난다.

 

 

 

 

모나미 153 (사진출처: 네이버캐스트)

 

 

이 정도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문구를 ‘문방사우(文房事友)’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문구는 우리 일상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친구와 같다. 사실 한국 사람에게는 오랫동안 함께 지낸 친구 같은 문구가 딱 하나 있다. 그 친구(mon ami)가 바로 모나미(Monami) 볼펜이다. 모나미. 그는 참 좋은 친구다. 어디든지 가면 이 녀석이 굴러다닌다. 어디서 나타나는지 모르겠지만, 급히 메모해야 할 일이 생길 때 우연히 녀석을 발견하면 진짜 반갑다. 이 친구의 단점이라면 배변 훈련이 덜 되어 있다. 모나미가 흰 종이를 만나면 부끄럼이 없다. 종이를 기저귀라고 생각하는지 똥을 싼다. 모나미가 싼 똥이 종이에 묻으면 글씨가 지저분해진다. 

 

 

 

 

 

딕슨 타이콘데로가

 

 

연필은 작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친구다. 우리에게 《찰리의 초콜릿 공장》의 작가로 알려진 로알드 달딕슨 타이콘데로가라는 연필을 애용했다. 존 스타인벡은 자신의 손에 꼭 맞는 완벽한 친구를 찾느라 애썼다. 스타인벡의 손은 그 친구를 찾느라 종이 위를 수차례 헤매고 다녔다. 여러 종류의 연필을 써보았지만, 종이 위를 부드럽게 움직이는 좋은 녀석이 나타나지 않았다. 오랜 방황 끝에 스타인벡은 드디어 블랙윙 602라는 연필을 만났다. 블랙윙(Black wing)은 스타인벡의 손에 날개를 달아주어 글을 써내려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여행기 작가 브루스 채트윈은 여행의 동반자인 프랑스산 몰스킨 노트와 작별하는 아픔을 겪었다. 채트윈은 파리의 문구점에 가서 몰스킨 노트를 대량으로 사려 했으나 이미 공급이 중단되는 바람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직장인에게 스테이플러는 애증의 사우(社友)다. 맨 처음 신입사원을 가장 먼저 반겨주는 문구가 스테이플러다. 회사 사무실에 있는 스테이플러가 회사원들보다 짬밥이 더 많다. 눈치 빠른 신입사원은 누군가 시키지 않아도 미리 서류에 스테이플러를 찍는다. 그런데 운 없게 스테이플러 침을 비딱하게 박아놓으면 평탄하게 갈 줄 알았던 직장 생활이 자칫 비딱하게 될 수 있다. 상급자는 신입사원의 스테이플러 박는 수준을 보고, 일을 대충 하는 사람으로 본다. 드라마 《미생》의 하 대리처럼 부하 직원을 모질게 대하는 상급자였으면 잘못 박은 스테이플러 침을 빼고, 다시 박으라고 꾸짖었다. 어떻게든 잘못 박은 스테이플러 침을 빼보려 하지만, 손톱 밑 살만 아플 뿐 빠지지 않는다. 스테이플러와의 애착 관계가 강한 회사원은 회사를 그만둘 때 스테이플러를 자신의 소지품인 줄 알고 챙겨온다고 하더라.

 

문구는 죽지 않는다. 문방사우(文房死友)는 없다. 우리가 그들의 곁에 너무 오랫동안 떠나있었다. 우린 스마트폰에 금방 사랑에 빠져 그들의 존재를 깜빡 잊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책상 안에서 우리가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니 문구는 사라질 거라고 쓸데없는 걱정하지 마시길. 우리에게 잘 보이려고 새롭게 꾸며서 문방구에 진열된다. 고급스럽게 단장한 몽블랑 만년필과 몰스킨 노트는 "날 가지세요"라고 말하며 우리를 유혹한다. 친구들이 멀쩡하게 살아있는데도 그들이 언젠가는 죽게 될 거라고 말할 텐가.

 

 

 

 

※ 딴죽 걸기

 

 

1. 볼펜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유명 회사 빅 크리스털은 1951년에 설립되었다. 빅 크리스털 공식 홈페이지에 가면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1950년에 세웠다고 적었다. (42쪽)

 

2. 스카치테이프를 발명한 사람은 리처드 G. 드루(Richard Gurley Drew)다. 저자는 스카치테이프를 만든 사람의 이름을 ‘딕 드루’로 썼다. 딕(Dick)은 리처드(Richard)의 애칭이다. 저자는 본명 대신에 애칭이 들어간 ‘Dick Richard’로 쓴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Richard Gurley Drew와 Dick Richard는 동일 인물이다. 본명이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바람에 나는 저자가 발명한 사람의 이름을 잘못 쓴 것으로 착각했다. (278쪽, 296쪽, 301쪽)

 

3. 이 책을 먼저 읽고 서평을 남긴 모 알라딘 블로거가 83쪽에 있는 오타를 지적했다. 영국의 해외정보 전담기관 명칭인 MI6(Military Intelligence 6)‘M16’으로 잘못 썼다. 내가 읽은 책은 2015년 11월 9일에 나온 초판 3쇄다. 83쪽의 오자가 수정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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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1-03 2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켈리 그리피를 좋아해서 지금 필기구만 해도
몇개인지 다 헤아려 보지는 못했습니다.
필통마다 가득 들어 있긴 한데.
글쎄 글씨가 영 마음대로 나오지 않더라구요.ㅎㅎㅎㅎ
필기구보면 한번 써보고 싶어서 한두개씩 너무 많아 모은듯..ㄷㄷㄷㄷ

cyrus 2016-01-04 10:25   좋아요 0 | URL
지인이 초등학생 시절에 서예 학원을 다니면서 붓글씨를 좋아했어요. 그 친구는 붓질을 잘 해서인지 캘리그라피를 독학으로 시작했는데도 글씨를 잘 썼어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멋진 캘리그라피 작품을 보여주세요. ^^

stella.K 2016-01-03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 모나미 볼펜의 역사가 못해도 50년은 된듯한데
아직도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단 말야?
그래도 여전히 나오는 걸 보면 신기하다.
몇년 전 물가가 넘 많이 올라 모나미 볼펜은 싼맛에 계속 쓰일거라나 뭐라나
그랬는데 볼펜똥은 아예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나 보다.ㅋ

작년에 예스 24에서 악스트 잡지를 샀더니 연필 세 자루가 들어간 붓통 같이 생긴게
딸려 오더군. 얄상하니 잘 빠져서 좋았고, 모처럼 연필에 대한 추억도 아련하고
좋았는데 단점은 육각형이 아니라 그냥 원통형이었고 심이 달면 깍아 줘야할 것을
생각하니 못 쓰겠더군. 귀찮아서.ㅠ

cyrus 2016-01-04 10:28   좋아요 0 | URL
볼펜 똥 문제가 개선될 줄 알았는데, 여전한 걸 보니 회사는 볼펜 똥을 자신들의 트레이드마크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ㅎㅎㅎ 펭귄클래식 《노예 12년》을 샀는데 검은색 연필 6자루를 줬어요. 아직 쓰지 않았는데 이 연필들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요. ^^

만병통치약 2016-01-03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나미는 흔한만큼 다 쓴 사람 보기 힘든 볼펜이죠^^ / 책 하나 읽으려도 전 2색 볼펜과 포스트잇, 자가 옆에 없으면 불안해서 책을 못 읽겠어요 ㅋㅋ

cyrus 2016-01-04 10:32   좋아요 0 | URL
오래전에 저희 집은 모나미 검정색 펜이 많았어요. 제가 유치원생이었을 때도 모나미 검정색 펜을 많이 썼어요. 그래서 가느다란 플라스틱 관으로 된 잉크 심도 장만할 정도였어요. 펜 한 개 다 쓰고 나면 잉크 심을 갈아 넣었어요. 그 방법을 초등학생 때 처음 알았어요. 몇 년 후에 파란색 모나미 볼펜을 처음 봤을 때 충격이었어요. 그때만 해도 모나미 볼펜은 검정색, 빨간색만 있는 줄 알았거든요. ^^

2016-01-03 2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04 1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04 1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04 1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찔레꽃 2016-01-03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독특한(?) 책을 읽으셨네요. ^ ^

cyrus 2016-01-04 10:35   좋아요 0 | URL
문구의 기원이나 역사를 상세하게 정리한 책은 많지 않아요. 문구 회사의 역사까지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

리벤테르 2016-01-04 0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딕 드루는 애칭을 적다보니 그런 것 아닐까요. 다른 정보는 대강 맞는 듯 한데. 리처드의 애칭이 보통 딕이니까. 물론 풀네임을 적으면 더 좋았겠지만요. 어디까지나 추측입니다.

cyrus 2016-01-04 10:39   좋아요 0 | URL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저자는 풀 네임 대신에 애칭이 들어간 이름을 쓴 것으로 볼 수 있겠어요. 리벤테르님의 의견을 수렴해서 내용을 수정하겠습니다.

서니데이 2016-01-04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기구도 하나 둘 담기 시작하면 요즘은 금방 만원이 되더라구요. 오래 쓰는 것도 아니고 소모품이니까 이것저것 사게 되고요. 그러다보니 많아지네요. ^^;
cyrus님,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cyrus 2016-01-04 18:34   좋아요 2 | URL
고등학생 때 필통 안에 쓸데없는 필기구가 너무 많은 것이 짜증이 났어요. 그 이후로 필통 자체를 없애도 간단한 필기구만 챙기고 등교했어요. 그때부터 필통과 완전 이별했어요. 이 습관이 대학생이 되어서도 유지되었어요. ^^
 
나의 한국현대사 - 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988년 하면 무슨 장면이 떠오르시는가. 하나씩 열거하면 너무나도 많다. 88올림픽의 굴렁쇠 소년, 대학가요제 무대에서 ‘그대에게’를 열창하던 젊은 마왕 신해철의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워진 추억의 물건들이 생각날 수 있다. 오백원짜리 지폐, 연탄보일러, 석유곤로, 워크맨 등이 우리 가슴 속에 있는 아날로그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남긴 강력범 지강헌의 인질극도 잊을 수 없다. 씁쓸하지만, 권력형 범죄자들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으니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지강헌 인질극이 당시 사회에 크나큰 충격을 줘서 그렇지, 그 해에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킨 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을 얼마나 될까. 1988년의 정서를 거의 완벽히 재현했다고 호평을 받은 ‘응팔’ 드라마 제작진들도 모를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을 유시민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책 《나의 한국현대사》에 우리가 잊어선 안 될 그 사건을 ‘소환’했다.

 

 

 

 

 

 

문송면 사망 소식을 보도한 동아일보 (1988년 7월 2일 자)

 

 

 

점점 다가오는 서울 올림픽 개막식에 국민이 들떠있던 1988년 7월. 15살 소년이 세상을 떠났다. 소년의 이름은 문송면. 사인은 수은중독. 문송면은 혼자 상경하여 수은을 온도계에 넣은 작업을 진행하는 공장에 일했다. 문송면은 마음이 성숙한 소년이었다. 없는 집안 살림에 고생하는 부모님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어서 중학교 졸업을 포기하고 자립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공장에 다닌 지 두 달 만에 문송면의 건강이 나빠졌다. 심각한 수은중독으로 인해 손발이 마비될 정도였다. 문송면은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치료받았으나 공장은 그의 병을 산재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 사건의 파문은 컸다. 심각한 청소년 노동 현실이 폭로된 것이다. 일을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중금속 중독으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열악한 공장 환경 문제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문송면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자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중독 직업병 피해자들이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원진레이온 사건은 1981년에 일어난 국내 최대의 직업병 사건이다. 원진레이온은 박정희 대통령이 공장 기공식에 참여할 정도로 제1차 경제개발 역점사업에 참여한 인조견사 생산 공장이었다.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은 이황화탄소의 위험성을 모른 채, 장시간 동안 일을 했다. 회사는 노동자들을 위한 안전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이황화탄소에 노출된 노동자들이 신체마비, 정신이상 등의 증상에 시달렸다. 1988년이 돼서야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이상 증상의 원인이 직업병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러나 노동부는 회사에 ‘무재해 기록증’을 발급했고, 회사는 피해 노동자들의 산재신청을 거부했다. 열악한 노동환경의 실태가 알려지게 되자 통일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었던 노무현 등의 야당 의원들이 진상조사를 실시했다. 원진레이온 피해자들이 서울 올림픽 성화 봉송 행사를 막으려고 하자, 정부는 태도를 돌변하여 피해자들의 호소를 들어주기 시작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안전과 작업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이 싹텄다.

 

20년이 지난 사이, 한국은 많이 발전했다. 일반적으로 경제가 발전하면 노동 환경도 좋아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20년 전에 견줘 노동조건이 개선된 것은 사실이나, 아직도 열악한 작업 환경에서 일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삼성전자나 한국타이어 등 많은 대기업에서 노동자들이 암에 걸려 숨지거나 폭발사고 등으로 희생되고 있다. 십 년이 넘는 직업병 고통은 우울증이나 정신질환을 가져와 자살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환자를 돌보는 가족도 고통의 나날을 보낸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부는 노동자·민중의 안전과 건강보다 성장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자가 직업병 인정을 받기란 정말 어렵다. 기업을 옹호하는 우파들은 노동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 역사를 불편하게 생각한다. 근현대사 교과서에 소개하는 유명한 노동자는 전태일이 유일하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쳤던 전태일의 절규에 우리 사회는 응답하지 않고 있다.

 

1988년 전국에 알려진 소년은 두 명이었다. 어느 소년은 사회의 음지 속에서 일하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고, 두 달 뒤에 한 소년은 푸른 잔디밭을 달려가며 굴렁쇠를 굴렀다. 밝음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회든지 어두운 이면이 있기 마련이다. 단지 그것에서 눈을 돌려 밝은 면만 보려는 사회가 있고, 반면 그늘진 곳에 더 빛을 비춰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는 사회가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어두운 이면을 감추거나 그로부터 고개를 돌린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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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12-03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우 열 다섯이었다는 것이 더 마음아파요.
잘읽었습니다. cyrus님, 편안한 밤 되세요.^^

cyrus 2015-12-04 17:31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yureka01 2015-12-03 2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차량 크레인 무너져서 노동자 2명이 사망했고,
서해대교 주탑에서 소방관 1명이 사망했다는 뉴스..
언제까지 우린 후진적 뉴스는 변함이 없을까요..

cyrus 2015-12-04 17:34   좋아요 0 | URL
이런 사고가 발생하면 보상을 해주면 끝이라고 생각해요. 이러니까 우리 사회에 노동 작업환경의 문제점을 개선할 마음이 없어요.

살리미 2015-12-03 23: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어느 사회에나 어두운 이면은 존재하죠. 건강한 사회를 구분하는 기준은 어둠이 존재하느냐가 아니라 그 어둠을 응시하는 자세에 있을 것 같아요. 잘못을 인정하는 것. 그늘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문제 해결이 시작되는 것일텐데 언제부턴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보기가 어려워진 듯 하네요.

cyrus 2015-12-04 17:35   좋아요 0 | URL
요즘은 사회에 무슨 잘못을 지적하면 배부른 소리로 생각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4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진레이온 오랜만에 듣느 이름이네요. 제가 아는 분 중 한 분이 원진레이온 노동자였습니다. 그분 말씀에 의하면 진짜 열악했다고 하네요... 한국노동운동사에서 원진레이온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높죠....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고..

cyrus 2015-12-04 17:39   좋아요 0 | URL
원진레이온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직업병`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전태일 분신 사건 다음으로 한국현대사에서 기억해야 할 사건인데도 교과서에 짤막하게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교과서 개정 때 이 사건을 반영하자고 건의하면, 분명 보수 쪽에서 반대할 겁니다.

루쉰P 2015-12-04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시간 cyrus님의 글을 읽어 온 독자이지만 글을 흐름은 물결처럼 자연스럽게 읽힌다고 말씀 드리고 싶네요 전 글을 읽을 때 호흡이 끊어지면 좋지 않은 글이라 여깁니다 근데 정말 너무 부드러워요 ㅋ 부럽네요 전 너무나 잘 지내고 있습니다 혼자만의 왕국 생활이죠 부끄러운 인생입니다;;;

cyrus 2015-12-04 18:15   좋아요 0 | URL
저보다 글 잘 쓰시는 분들이 많아서 제 글은 어디 보여주기에 민망한 수준입니다. ㅎㅎㅎ 저도 혼자 지내는 생활이 많아요. 사람들의 목소리 그리워질 때가 있지만, 혼자 있는 게 편해졌어요.

csp 2015-12-05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까맣게 잊고 있다 기억이 났습니다. 어렸을 적 선물받은 환경보호 만화책에 고인의 이야기가 실려있었어요. 그 때 만화를 읽으며 참 공포스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화도 많이 났었는데... cyrus님 덕분에 오래 잊고 지낸 이름을 되새김질 하게 되네요.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cyrus 2015-12-07 14:13   좋아요 0 | URL
문송면 사건은 노동문제에 관심 많은 분들만 아는 이야기가 되고 말았어요. 많이 회자되지 못한 점이 안타깝습니다. 부족한 글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transient-guest 2015-12-08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진레이온 사건은 나중에와서 뉴스로 본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 한창 노조운동도 그렇고 연탄공장 주변에 사는 분들의 진폐증 문제 같은게 다뤄지기 시작했지요. 문송면 사건은 이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접하는 느낌입니다. 일단 법적으로는 집단소송이 가능해져야 하고, 징벌적피해보상이 도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보아도 맘이 아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