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
마크 피셔 지음, 안현주 옮김 / 구픽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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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weird) 으스스한(eerie) 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과연 이 두 가지 유형에 차이점이 있을까? 기이한 것은 말 그대로 이상한 것이다. 으스스한 것은 몸에 소름 돋게 하는 대상이다. 우리는 무서운 영화를 보고 나면 소름 돋았다라거나 소름 끼친다라는 말을 한다. 소름 돋게 하는 으스스한 것은 결국 불안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고 기묘한 존재나 현상을 접했을 때도 마음이 불안해지고 소름이 돋는다.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은 얼핏 보기엔 비슷해 보인다.

 

영국의 작가 겸 문화이론가 마크 피셔(Mark Fisher)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Howard Phillips Lovecraft: 미국의 작가, 공포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에 대한 학술 토론회에 참석하고 나서부터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의 사례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러브크래프트,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 마거릿 애트우드(Margaret Atwood) 등 작가의 작품들과 영화와 팝(pop)이 그의 관심사다. 그는 우리 일상을 관통하는 대중문화 속에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의 특성이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는지 분석하고 비평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자신의 연구 결과물을 보지 못한 채 2017년에 세상을 떠났다. 13편의 에세이로 이루어진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은 피셔의 유작이다.

 

으스스한 것에 접근하기라는 제목의 글에 피셔가 말한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의 의미가 잘 나와 있다. 기이한 것은 (우리와/현실에)어울리지 않는 존재이다. 기이한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가 보기에 기이한 것은 너무나도 이상하거나 뭔가 잘못되어 있다.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 나오는 괴물들은 기이하다. 그것들은 거대하며 인간의 외형을 닮지 않았다. 그래서 기이하다. 우리의 기준으로 볼 때 기이한 것은 잘못되고 위험한 것이다. 그러나 피셔는 기이한 것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 기이한 것에 대한 오해가 생긴다고 말한다.

 

으스스한 것은 존재의 오류또는 부재의 오류로 설명할 수 있다. ‘존재의 오류무언가 있어야만 할 때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부재의 오류존재의 오류와 반대되는 상황으로 이해하면 된다. ‘부재의 오류아무것도 없어야 할 곳에 무언가가 존재하는 상황이다. 으스스한 것은 미지의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진실을 알고 나면 으스스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은 단순히 유령이나 귀신과 같은 초자연적 존재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으로만 볼 수 없다.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은 일상의 공간에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 일상은 어떤 사람에게나 매일 되풀이되는 삶이다. 이런 친숙한 환경에 이전에 만나지 못한 낯선 존재가 나타나거나 익숙한 존재가 돌연 사라지게 된다면 그것은 일상을 와르르 무너뜨리는 기이하고 으스스한사건이다. 기이하고 으스스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느끼는 공포는 우리의 감정을 조여 오는 섬뜩한 현실이 된다. 일상을 위협하는 공포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숨어 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대중문화 속에 스며든 기이하고 으스스한 것을 즐기고 있다. 즐기는 건 좋다. 그렇지만 소설이나 영화 속에 나올 법한 기이하고 으스스한 사건들이 최악의 현실로 되지 않기를 바라야 한다.  

 

 

 

 

 

Trivia

 

 

* 역자의 주석에 오류가 있다. 주석의 글자 크기가 너무 작아서 읽기가 불편하다.

 

 

 

 

 

53쪽에 영국의 극작가 알프레드 제리라는 이름이 나온다. ‘알프레드 제리가 아니라 알프레드 자리(Alfred Jarry)라고 표기해야 한다. 그리고 그는 프랑스인이다. 그의 작품 <우부 로이(Ubu Roi)>위뷔 왕또는 위비 왕이라는 제목으로 두 차례나 번역되었다. 그런데 역자는 <우부 로이>국내 미번역작으로 분류했다.

 

 

 

 

 

 

81쪽에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의 사망 연도가 적혀 있지 않다. 그는 1989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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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9-05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이 책 훑어보면서, 이건 이쪽 분야에 조예가 깊은 사이러스님이 읽고 리뷰를 쓸 만한 책이겠구만- 하면서 읽기를 포기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오랜만에 PC로 사이러스님 서재 들어왔더니, 서재 알림말이 바뀌었네요. 언제 바꾸셨는데 제가 이제야 겨우 확인한 걸까요. 굉장히 재밌는 말입니다. 사이러스님 말씀인가요?

syo 2019-09-05 12:34   좋아요 0 | URL
혹시 바꾼 게 아니라 원래부터 계속 저거였으면,

그냥 최근에 바꾼 척 해주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

cyrus 2019-09-06 12:41   좋아요 0 | URL
저자가 언급한 문학작품이나 영화 대부분이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생소한 것이라서 호기심에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실망할 거예요. 저는 관심 있는 주제가 있는 글만 정독하고 나머진 대충 훑어봤어요. ^^

서재 알림 말 작년에 바꾼 거예요.. ㅎㅎㅎㅎ 제가 만들었어요. 애서가의 삶을 아이러니 기법으로 표현해봤어요.. ㅋㅋㅋ

감은빛 2019-09-17 17:07   좋아요 1 | URL
책을 사놓고도 제대로 읽지 않는 걸 보면 저도 책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책이 자꾸 저한테 오는걸 보면 책이 혹시 저를 좋아하는 걸까요?

그런데 그 전에 적어놓으셨던 말씀이 기억이 날듯 말듯 하네요.

cyrus 2019-09-18 15:24   좋아요 0 | URL
To. 감은빛님 / 책에 영혼이 있다면 알라디너들은 책의 사랑을 많이 받는 사람일 거예요. ㅎㅎㅎ

서니데이 2019-09-11 19: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추석인사 왔습니다.
가족과 함께 즐겁고 좋은 추석명절 보내세요.^^

cyrus 2019-09-16 11:21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추석 잘 보내셨어요? 매번 먼저 인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훌라댄서 2019-09-12 14: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란 글씨에서 오는 불길함부터 실망 대중서로는 알맞지 않다

cyrus 2019-09-16 11:22   좋아요 0 | URL
책에 생소한 작가의 작품과 영화가 언급되어 있어서 대중서로 보기 어려운 건 맞습니다.
 
예술가는 왜 책을 사랑하는가? - 예술에서 일상으로, 그리고 위안이 된 책들
제이미 캄플린.마리아 라나우로 지음, 이연식 옮김 / 시공아트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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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독서의 역사는 곧 인류의 지성사이며 문화사다. 알베르토 망겔(Alberto Manguel)《독서의 역사》에서 ‘독서’를 ‘책에 담은 의미를 알아내는 행위’라고 말했다. 세상을 이해하는 행위로 그만큼 독서의 의미가 크고 깊다는 뜻이다. 책은 애서가 또는 작가의 전유물로 여겨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책을 좋아하는 예술가도 있었다. 반 고흐(van Gogh)앙리 마티스(Henri Matisse)는 다독가였다. 책은 모든 장르의 그림에 카메오로 등장했다. 초상화에 그려진 인물의 학식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는지 암시해주고, 비싼 장식품으로도 그려지기도 했다. 몇몇 애서가는 농담으로 사놓고도 읽지 않은 책들을 장식품으로 취급한다고 말한다. 과거 예술가와 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유럽은 중세 이래 책을 아름답게 꾸미는 전통이 있었다. 그래서 책은 귀족이나 고위 성직자, 교수 등 극히 한정된 인텔리만 읽을 수 있고 소장할 수 있었다. 단순한 읽을거리가 아니라 신분 과시용이요 유산계층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해주는 화려한 장식품이었다. 그림에 책을 그려 넣은 예술가들은 책이 장서가의 정체성과 사회적 지위를 증명해주는 소품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책이 등장하면서 예술가는 자신의 정체성과 사회적 지위를 확립할 수 있었다.

 

《예술가는 왜 책을 사랑하는가?》‘도판이 풍부한 독서의 역사’라고 보면 된다. 책의 원제는 ‘The Art of Reading’이다. 《예술가는 왜 책을 사랑하는가?》는 중세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독서의 거대한 역사를 예술가들이 남긴 다양한 그림을 통해 보여준다. 이 책의 공동 저자는 책이 그려진 그림들을 살펴보면서 책을 대하는 예술가들의 생각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지 알아본다.

 

책을 많이 읽은 예술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예술가와 책이 서로 무관한 관계라고 단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앞서 언급했듯이 책의 등장으로 ‘무명의 장인’으로 취급받았던 예술가의 지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활동한 화가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는 1550년에 <예술가 열전>(국내에서는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이라는 책을 썼다. <예술가 열전>은 예술가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인 기록물이다. 이 책이 나오지 않았다면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그림은 ‘작가 미상의 그림’으로 알려져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을 것이다.

 

책이 상류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시절은 절대로 다시 오지 않는 책의 황금기이다. 이때 책은 상류층의 권위를 발산하는 그림을 장식하는 데 절대로 빠져서는 안 될 필수 소품이었다. 하지만 시대에 따라 유행이 변하듯이 책을 대하는 대중의 태도와 그 책에 의미를 부여하는 예술가들의 생각도 조금씩 달라졌다. 17세기 유럽에 인생의 허무함을 강조하는 정물화인 ‘바니타스(vanitas)가 유행했다. 바니타스를 즐겨 그린 화가들은 책을 유한하고 덧없는 인간의 삶을 의미하는 상징물로 인식했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지식이 대중화되고, 책의 개인 소유가 가능하게 되면서 책은 상품으로 거듭났다. 아, 물론 이때도 여전히 책은 기득권층의 지위를 돋보이게 해주는 소품으로 활용되었다. 전근대의 책이 왕족, 귀족, 기독교 수도사들의 지위를 드러나게 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면, 근대의 책은 부르주아의 전유물이었다. 앞서 나는 책과 독서의 역사를 인류의 지성사라고 언급했는데, 이를 비판적으로 해석하면 책과 독서의 역사는 ‘기득권 중심의 지성사’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사회를 지배하는 기득권층은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책을 이용했다. 역사적으로 책은 기득권층의 대변인 역할을 해온 것이다. 결국 책은 기득권층이 승인한 지식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예술가는 왜 책을 사랑하는가?》를 번역한 미술사가 이연식‘독서는 위험하다. 특히 예술가에게 위험하다’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는 독서 자체를 피해야 할 행위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책 읽는 사람은 분명 그저 읽기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인 것은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지식은 부당한 세상에 맞서는 무기를 만들 때 필요한 재료가 된다. 독서가 축복인지 저주인지는 우리가 그 속에 있는 재료를 어떻게 쓰느냐(어떻게 읽고 소화하느냐)에 달려 있다. 책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책은 위험하지 않다. 책 속에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사람들이 위험하다.

 

 

 

 

※ Trivia

 

* 278쪽에 미국의 작가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의 동성 연인의 이름이 나온다. 그런데 그녀의 이름이 ‘앨리스 토클러’라고 되어 있다. ‘앨리스 토클러스/토클라스(Alice B. Toklas)라고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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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3 1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8-03 11:45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책을 너무 안 읽는 사람도 문제고, 또 책을 너무 많이 읽는 사람도 문제에요. 전자는 글 한 줄 못 쓴다면, 후자는 잘못된 신념을 강조하는 글을 너무 많이 써요.

라이너스 2019-08-04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체가 담고 있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수용자의 태도 또한 중요하다는 것이군요~ 읽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cyrus 2019-08-05 16:25   좋아요 0 | URL
주제와 내용이 어렵지 않아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
 

 

 

도서관에 책을 많이 빌려 보게 되면, 완독하지 못하고 반납하는 경우가 많다. 도서관에서 만난 《초현실주의, 어떻게 이해할까?》(미술문화)도 처음에는 잠깐 보고 마는 책이었다. 내가 관심 있는 주제는 ‘초현실주의 운동과 초현실주의 회화’였다. 《초현실주의, 어떻게 이해할까?》는 초현실주의 회화뿐만 아니라 초현실주의 운동에 영향받은 조형미술, 사진, 영화 등도 살피고 있다.

 

 

 

 

 

 

 

 

 

 

 

 

 

 

 

 

 

* 요아힘 나겔 《초현실주의, 어떻게 이해할까?》 (미술문화, 2008)

 

 

 

책의 분량이 많지 않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끝까지 다 읽었다. 책을 끝까지 읽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소개된 초현실주의 사진 작품들이 아주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특히 프랑스의 사진작가 클로드 카엥(Claude Cahun)의 자화상은 내 눈길을 사로잡는 사진 작품이었다.

 

 

 

 

 

사진 속 카엥의 모습은 마치 신성한 아우라(Aura)를 발산하는 신과 같다. 아마도 이 사진을 보는 관객들은 한번쯤 이런 생각을 했지 싶다. “사진에 나온 작가는 남자인가, 여자인가?” 관객이 사진 속 작가의 성별을 궁금해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름과 짧은 머리를 보고 카엥을 남자라고 추측하는 관객들이 있을 것이다.

 

 

 

 

 

 

 

 

 

 

 

 

 

 

 

 

 

 

* 조현준 《쉽게 읽는 젠더 이야기》 (행성B, 2018)

 

 

 

사실 카엥은 여성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루시 슈보브(Lucy Schwob)다. 작가인 마르셀 슈보브(Marcel Schwob)의 조카딸이기도 하다. 그녀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기기 위해 ‘클로드 카엥’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했다. 자화상 속 그녀의 모습은 에이젠더(agender)에 가깝다. 에이젠더란 성 정체성이 없다고 믿는 사람, 즉 자신이 어느 성별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여기거나 혹은 ‘젠더에 대한 개념’이 없는 사람을 일컫는 용어이다. ‘젠더가(성별이) 없는 사람’이라니. 인간을 ‘남성’, ‘여성’, 딱 두 개의 성별로 나누려는 젠더 이분법(gender binary)에 익숙한 사람들은 젠더 없는 삶이 정말로 가능한지 의문을 드러낸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전통적인 이분법적 성 구분은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 된 지 오래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선 여전히 문화 · 종교 · 정치권력 등의 영향으로 생물학적 성별과 성 정체성(남성성, 여성성)이 일치하는 시스젠더(cisgender)가 ‘정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시스젠더에서 벗어나는 다양한 성 정체성은 ‘비정상’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격리와 치료의 대상이 된다. 카엥이 살았던 시대의 사람들은 ‘남자로 태어나면 남자로 살아가고, 여자로 태어나면 여자로 살아간다’라는 고정된 젠더 이분법적인 삶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래서 그 당시 사람들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모습으로 사진을 찍는 카엥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녀의 가족은 카엥의 동성애를 반대했다. 카엥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알게 된 수잔네 말레르브(Susanne Malherbe)와 함께 작업을 했다. 카엥은 여러 편의 글도 썼는데, 그녀가 글을 쓰면 말레르브가 글을 위한 삽화를 그렸다.

 

 

 

 

 

 

 

 

 

 

 

 

 

 

 

 

 

* 줄리엣 해킹 《위대한 사진가들》 (시공아트, 2016)

 

 

 

그런데 1917년에 카엥의 아버지는 미망인이었던 말레르브의 어머니와 결혼했다. 졸지에 카엥과 말레르브는 연인에서 의자매가 되었다. 그러나 카엥은 말레르브와의 동성애 관계를 분명히 드러나도록 행동했다. 그 후로 카엥은 ‘전통적 여성성’을 거부한 자신의 삶을 보여주는 사진들을 남기기 시작했다.

 

 

 

 

 

 

 

 

 

 

 

1920년에는 삭발한 모습으로 자화상을 촬영했으며, 남자들처럼 짧은 머리를 하고 다녔다. 그리고 파리에서 본격적으로 작가 겸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이름을 ‘클로드 카엥’으로 바꾸었다. 그녀는 초현실주의자들과 파리의 유명한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Shakespeare & Company)의 주인 실비아 비치(Sylvia Beach) 등과 어울렸다.

 

 

 

 

 

 

 

 

 

 

 

 

 

 

 

 

 

 

 

 

* [2018년 레드스타킹 네 번째 선정도서] 케이트 본스타인 《젠더 무법자》 (바다출판사, 2015)

 

 

 

 

카엥의 자화상을 보면서 그녀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추측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사람들은 상대방의 외모나 품행만 보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판단한다. 이러한 심리적 반응을 ‘젠더 귀인(gender attribution)이라고 한다. 그러나 카엥의 자화상을 보는 관객들은 젠더 귀인으로 자화상 속 카엥이 누구인지 판단하지 못한다. 카엥은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남자인지 여자인지 심문하는 듯한 관객들의 따가운 시선을 거부한다. 사진 속 카엥은 관객들에게 무언의 경고를 보낸다. “내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함부로 판단하지 마!”

 

 

 

 

 

 

 

 

 

 

 

 

 

 

 

 

 

 

 

* 수전 손택 《해석에 반대한다》 (이후, 2002)

 

 

 

관객들은 ‘젠더가 없는 사람(카엥)’의 등장에 당혹스러워 한다. 카엥은 자신을 비웃는 젠더 이분법 세계를 위반하면서 거기에 갇힌 사람들을 사진으로 조롱한다. 카엥의 자화상은 수전 손택(Susan Sontag)이 설명했던 ‘캠프(camp)의 미학을 보여준다. 손택은 『‘캠프’에 관한 단상』이라는 글에서 ‘캠프’를 진지함을 거부하는 과장의 미학 양식으로 설명한다. 캠프는 고급과 저급을 가르는 기존의 가치 판단에 따르지 않으며 과장성과 연극성에 초점을 맞춘 미학 양식이다. 그래서 캠프는 탈권위적인 특성을 띤다.

 

캠프는 더 나아가 퀴어(queer)의 정신을 대변한다. 미국의 페미니스트 케이트 본스타인(Kate Bornstein)은 젠더 이분법의 위계 방식을 흔드는 주제 의식을 담은 연극 작품을 직접 만들어 본인이 직접 무대에 오른다. 본스타인은 남자의 성기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의료적 트랜지션(transition)을 통해 여자의 몸이 되었다. 그/그녀를 트랜스젠더라 부르면 되겠지만, 그/그녀의 섹슈얼리티는 남성이 아닌 여성이다. 본스타인은 생물학적 특성만으로 성별을 분류하고, 성별로 누군가의 정체성을 멋대로 판단하는 젠더 이분법적 사고를 깨뜨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그녀는 자신을 젠더의 경계를 무시하면서 자유롭게 다양한 성별 또는 젠더로 살아가는 ‘젠더 무법자(gender outlaw)라고 소개한다. 사실 본스타인보다 훨씬 전에 ‘젠더 무법자’로서 살아가면서 캠프 미학을 사진으로 구현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 사람이 바로 클로드 카엥이다. 퀴어 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클로드 카엥의 작품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카엥의 작품이 국내에 많이 알려지길 바란다.

 

 

 

 

 

※ Trivia

 

 

 

 

 

 

 

 

 

 

 

 

 

 

 

 

* 엘리슨 나스타지 《예술가와 고양이》 (디자인하우스, 2015)

 

 

 

‘Claude Cahun’의 표기명은 통일되어 있지 않다. ‘클로드 카훈’, ‘클로드 카운’으로 부르기도 한다. 클로드 카엥의 약력을 볼 수 있는 책은 두 권뿐인데, 《위대한 사진가들》《예술가와 고양이》(디자인하우스)가 있다. 필자가 카엥의 삶을 요약했을 때 참고한 책은 전자의 책이다. 《예술가와 고양이》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예술가들의 삶을 ‘아주 짧게’ 쓴 책이라서 카엥의 사진 예술을 이해하는 데 참고할 만한 책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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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2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7-12 17:43   좋아요 0 | URL
삶의 시작을 본인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문제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죠. 그래서 자신을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갑니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 나올 줄이야‥…. 놀라운 일인데.” 막스 에른스트(Max Ernst)《백 개의 머리를 가진 여인》이 출간된 것을 확인했을 때 적잖이 놀랐다. 조금 과장된 표현을 하자면, 《백 개의 머리를 가진 여인》은 이 세상에 나올 만한 책이 아니다. 세상을 초월한 ‘괴작(怪作)’이다.

 

 

 

 

 

 

 

 

 

 

 

 

 

 

 

 

 

 

 

* 막스 에른스트 《백 개의 머리를 가진 여인》 (이모션북스, 2019)

* 앙드레 브르통 《초현실주의 선언》 (미메시스, 2012)

 

 

 

이 괴이한 작품을 만든 사람은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여한 독일의 화가이다. 초현실주의는 1924년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초현실주의 선언’으로 세상에 그 정체를 드러냈다. 브르통은 프로이트(Freud)의 정신분석학에 단단히 감화를 받은 상태였다. 그는 이성과 윤리를 초월하는 완전한 자유를 선언했다. 브르통이 일상의 상식 세계에 매몰돼가는 인간의 정신을 해방하고 꿈과 무의식이 엮어내는 초현실적인 세계를 제공하려 했다면, 에른스트는 그런 세계를 구체화하는 방식을 마련했다. 에른스트는 사물 위에 종이를 대고 문지르는 프로타주(frottage)를 처음으로 고안했으며 콜라주(collage)도 그가 주로 사용한 기법이다. 콜라주는 ‘풀로 붙이는 것’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 기성품을 캔버스에 붙여 화면을 구성하는 기법을 말한다. 콜라주를 처음 선보인 화가로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가 많이 거론되지만, 본격적으로 ‘초현실주의적 콜라주’를 확립한 화가는 에른스트다.

 

 

 

 

 

 

 

 

 

 

 

 

 

 

 

 

 

 

 

* 요아힘 나겔 《초현실주의, 어떻게 이해할까?》 (미술문화, 2008)

* 피오나 브래들리 《초현실주의》 (열화당, 2003)

* 매슈 게일 《다다와 초현실주의》 (한길아트, 2001)

 

 

 

에른스트가 초현실주의적 콜라주 기법을 이용해서 만든 작품이 바로 1929년에 발표된 《백 개의 머리를 가진 여인》이다. 브르통은 《백 개의 머리를 가진 여인》을 위한 서문을 직접 썼다. 제목이 범상치 않다. 제목을 줄여서 ‘백두녀(百頭女)라고 부르기도 한다. 프랑스어 원제는 ‘La femme 100 têtes’이다. 이 제목에 중의적인 의미가 있다. 프랑스에서 100은 ‘cent’라고 한다. ‘La femme cent têtes’를 발음하면 ‘famme sans tête’라는 문장의 발음이 들릴 수 있는데, 이 문장의 뜻은 ‘머리가 없는 여인’이다. 그래서 《백 개의 머리를 가진 여인》은 ‘머리 없는 여자’라는 제2의 제목과 함께 언급되기도 한다.

 

이 책은 ‘콜라주 소설’이다. 콜라주를 이용해서 만든 소설이라 볼 수 있는데, 책을 펼치는 순간 알쏭달쏭한 도판과 암호 같은 문장 들을 만나게 된다. 이제부터 책 속에 있는 도판과 문장 몇 개를 공개할 텐데, 내가 앞서 책을 소개할 때 언급한 말이 과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자, 어떤가? 《백 개의 머리를 가진 여인》은 총 147개의 도판과 그 도판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 같은(사실은 도판과 전혀 관련이 없다) 간단한 문장 한 줄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소설’로 분류되지만, 기승전결로 이어지는 소설의 일반적인 서사 전개 방식은 찾아볼 수 없다. 에른스트는 무엇이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도판과 문장 들을 나열했을 뿐이다. 독자는 이 난해하기 짝이 없는 도판과 문장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해석)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든 도판과 문장의 의미를 찾는 일에 애쓰면 정신은 경직된다. 이런 독서는 에른스트가 원하지 않는 방식이다.

 

나는 이 작품을 ‘이 세상 소설이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우리는 ‘이 세상 소설’을 읽는 일에 익숙하다. ‘이 세상 소설’은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로 이어지는 기승전결의 이야기 흐름을 담고 있다. 우리는 소설을 읽다 보면 어느 정도 결론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세상 소설’이 아닌 《백 개의 머리를 가진 여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위기감을 드러낸다. 독자는 뚜렷한 서사 전개가 없는 이야기를 접하는 순간 난감해하고, 도판과 문장을 설명할 길이 없다는 생각에 불안감을 느낀다. 책은 독자를 혼란스럽게 한다. 어떤 독자는 알 수 없는 불안과 긴장을 견뎌내지 못해 불쾌감을 드러낼 것이다. 이러한 독자의 반응은 에른스트의 초현실주의적 콜라주가 일으킨 효과이고, 이게 바로 초현실주의자들이 원하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정신적 충격을 주는 것. 에른스트의 초현실주의적 콜라주는 일상의 이미지를 한곳에 모아 뒤섞은 다음, 그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익숙한 의미를 해체한다.

 

 

 

 

 

 

 

 

 

 

 

 

 

 

 

 

 

 

 

* [절판] 베르너 슈피스 《막스 에른스트》 (열화당, 1994)

 

 

 

 

에른스트의 작품에 자주 나오는 인물이 있는데,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운 기이한 존재이다. 이 존재의 이름은 ‘로프로프(Loplop)라고 하는데, 어떤 책은‘로플로프’ 또는 ‘롭롭’이라고 나온다. 로프로프는 인간과 새와 결합한 이형(異形)의 존재이다. 에른스트는 로프로프를 자신의 분신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로프로프는 ‘날개달린 남성’으로 묘사된다. 에른스트는 어린 시절 애지중지 키우던 새가 죽은 동시에 바로 누이동생의 탄생 소식을 듣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그때부터 그는 사람과 새를 구분하는 데 혼란을 겪었으며 그의 그림에 새와 ‘새 인간’ 로프로프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에른스트는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와 함께 초현실주의 운동을 이끈 대표주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달리와 마그리트보다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에른스트의 삶과 작품 세계를 중점적으로 설명한 책은 《막스 에른스트》 (열화당)이 유일하다. 이 책은 90년대에 나왔기 때문에 지금은 도서관 창고에 가야 만날 수 있다.

 

 

 

 

 

 

 

 

 

 

 

 

 

 

 

 

 

 

* [절판] 페기 구겐하임 《페기 구겐하임 자서전》 (민음인, 2009)

* 앤톤 길 《페기 구겐하임》 (한길아트, 2008)

* 메리 V. 디어본 《페기 구겐하임》 (을유문화사, 2006)

 

 

 

에른스트의 삶 전반을 알아보려면 생전에 그가 만났던 여성들을 주목해야 한다. 에른스트는 네 번이나 결혼했다. 결혼 생활을 하는 중인데도 다른 여성을 만날 정도로 달리와 피카소 못지않게 여성 편력이 심하다. 그가 사귄 페기 구겐하임(Peggy Guggenheim)은 20세기 미술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컬렉터다. 그녀 역시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예술가들(극작가 사무엘 베케트, 다다이스트 마르셀 뒤샹 등)과 사귀었을 정도로 자유분방한 인생을 산 인물이었다.

 

 

 

 

 

 

 

 

 

 

 

 

 

 

 

 

 

 

* 소피 들라생 《달라의 연인 갈라》 (마로니에북스, 2008)

* 도미니크 보나 《세 예술가의 연인: 엘뤼아르. 에른스트. 달리, 그리고 갈라》 (한길아트, 2000)

 

 

 

 

달리의 삶과 예술에서 지대한 영향을 준 갈라(Gala)도 에른스트와 사귄 적이 있다. 갈라는 달리를 만나기 전에 초현실주의 운동에 동참한 시인 폴 엘뤼아르(Paul Eluard)의 연인이었다. 그런데 엘뤼아르와 에른스트의 우정이 돈독해지자(두 사람의 우정을 동성애 관계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갈라도 에른스트에게 애정을 드러냈다.

 

 

 

 

 

 

 

 

 

 

 

 

 

 

 

 

 

 

 

 

* 레오노라 캐링턴 외 《내 플란넬 속옷》 (아작, 2017)

* [절판] 휘트니 채드윅 외 《위대한 예술가 커플의 10가지 이야기》 (푸른숲, 1997)

 

 

 

 

페기는 에른스트의 세 번째 아내였고, 그 다음으로 에른스트의 아내가 된 여성이 화가 도로시아 태닝(Dorothea Tanning)이다. 에른스트는 두 번째 아내와 이혼을 하고 난 후에 자신보다 스물 살이나 적고, 초현실주의 운동에 합류한 화가인 레오노라 캐링턴(Leonora Carrington)을 만나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그녀는 화가로 많이 알려졌지만, 단편소설 『내 플란넬 속옷』과 초현실주의적 소설인 『The Oval Lady』(1975) 등을 쓴 작가이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면서 에른스트는 파리를 떠나 망명하게 됐는데, 그의 망명을 적극적으로 도운 사람이 캐링턴이다. 그러나 이 여자 저 여자를 만나고 다닌 ‘날개달린 조류 남자’ 에른스트는 캐링턴의 영원한 동반자가 될 수 없었다. 그녀는 불안 증세를 겪어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신세가 되었다. 캐링턴은 자신이 사랑했던 ‘새 인간’에 관한 글을 쓰면서 고독하게 지내다가 2011년에 세상을 떠났다. 《위대한 예술가 커플의 10가지 이야기》 (푸른숲)에 에른스트와 캐링턴의 관계에 대해 더 자세히 알려주는 글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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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4 16: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7-04 18:14   좋아요 0 | URL
초현실주의자들은 성별 불문하고 성애에 자유로운 사람들이었어요. 그래서 관계가 복잡해요... ^^;;

2019-07-04 1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7-05 11:47   좋아요 0 | URL
괜찮습니다. 사과할 일은 아닙니다. 글을 쓰면서 캐링턴이 작가라는 사실을 적는 것을 깜빡 잊어버렸어요. ^^;;
 

 

 

카페 ‘스몰토크’에 가면 벽에 걸린 그림 한 점을 볼 수 있다.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의 작품인데 진품은 아니다. 종이에 복사한 복제품이다. 이 작품의 제목은 간결하면서도 특이하다. 『구상 8(composition Ⅷ)이다. 칸딘스키는 ‘구상’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추상화를 여러 점 그렸다. 특히 『구상 8』은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누구든 알 수 없는 도형과 기호들로 채워진 칸딘스키의 그림 앞에서 난감한 심정을 한 번쯤 느꼈을 것이다. 그림 속에서 형체를 찾으려 가까이 보고 멀리 봐도, 도대체 무엇을 그린 것이며 왜 그렸는지 알아내는 데 실패했을 것이다. 그런 후 짜증 섞인 반응을 보이면서 내린 결론이 ‘도대체 이게 무슨 그림이야?’다.

 

전시장에 있는 그림 중 초보 관람자들을 난처하게 만들며 가장 인기 없는 회화 장르 대부분은 추상미술에 속한다. 추상미술의 정의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자연물을 대상으로 삼지 않고 작가의 느낌이나 감정을 표현한 그림이다. 추상미술은 기존 정물화나 풍경화, 초상화 즉 구상화가 갖는 재현적인 요소를 거부한다. 애초부터 추상미술은 대상을 재현하거나 모방하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기 때문에 ‘비(非)대상 미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어떤 대상을 의도적인 왜곡으로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를 ‘비구상 미술’이라고 한다.

 

추상미술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는 시점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견이 있지만, 이것을 논할 때 반드시 거론되는 화가가 바로 칸딘스키다. 그렇다면 칸딘스키와 그의 추상미술을 이해하려면 어떤 책을 참고하면 좋을까? 이제 막 서양미술 공부에 입문(입덕)하는 독자들이 보면 좋은 책에는 어떤 책이 있는지, 필자가 직접 고르고 읽어봤다.

 

 

 

 

 

 

 

 

 

 

 

 

 

 

 

 

 

* 노르베르트 볼프 《표현주의》 (마로니에북스, 2007)

* 하요 뒤히팅 《표현주의, 어떻게 이해할까?》 (미술문화, 2007)

* 슐라미스 베어 《표현주의》 (열화당, 2003)

 

 

 

칸딘스키는 표현주의(Expressionism)의 창시자다. 그러므로 ‘표현주의’가 탄생하게 된 시대적 배경부터 먼저 알아야 한다. ‘표현’이라는 용어의 기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표현주의의 특징을 요약하면 ‘강력한 색채’와 ‘주관적 양식’이다. 표현주의는 20세기 초 독일에서 시작된 회화 양식이다. 이때 당시 독일 미술의 중심지는 뮌헨(München)이었다. 인상주의가 유행하기 시작한 프랑스 파리에 건너갈 수 없었던 독일, 러시아 출신 화가들은 뮌헨에서 터를 잡아 새로운 미술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칸딘스키도 화가가 되기 위해 독일로 건너 온 러시아 출신 화가 중 한 사람이다.

 

 

 

 

 

그런데 뮌헨 미술계는 젊고, 타지에서 온 화가들이 활동하기가 어려운 보수적인 분위기였다. 특히 1870년대부터 뮌헨 미술계를 주름 잡고 있었던 프란츠 폰 렌바흐(Franz von Lehnbach)는 황제나 수상과 같은 유명한 인물들의 초상화를 주로 그렸다. 뮌헨에 렌바흐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만, 오늘날에는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렌바흐의 그림을 보면 칙칙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렌바흐는 옛 거장들이 선호했던 갈색 물감 위주로 그리는 것을 고집했다. 만약 당신이 렌바흐가 그린 독일의 수상 비스마르크(Bismarck)의 초상화를 보자마자 ‘저 그림은 너무 칙칙해서 별로야. 비스마르크가 저렇게 생기 없는 모습으로 보이는 건 처음이야’라고 느꼈다면, 당신도 표현주의 미술을 알아보는 안목을 가지고 있다.

 

 

 

 

 

 

 

 

 

 

 

칸딘스키를 포함한 젊은 화가들은 생기 없고 칙칙한 렌바흐의 화풍을 좋아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들은 렌바흐의 화풍을 가르치는 미술학교에 입학하지도 않았다. 칸딘스키는 도유망한 젊은 화가들이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자신이 직접 미술학교를 세웠다. 칸딘스키의 미술학교는 뮌헨의 미술학교와 다르게 개방적인 분위기였고, 전문 화가가 되려고 하는 여성들도 입학할 수 있었다. 칸딘스키가 가르친 제자였던 가브리엘레 뮌터(Gabriele Munter)는 훗날 그의 아내가 된다.

 

 

 

 

 

 

 

시대를 앞서 간 칸딘스키와 그의 동료 및 제자들의 작품들은 비평가들의 조롱을 받았지만, 젊은 화가들은 여전히 ‘색채만으로 그림을 그리려고’ 했다. 그리하여 칸딘스키는 뮌터, 그리고 러시아 출신 화가이면서 부부로 연을 맺게 되는 알렉세이 폰 야블렌스키(Alexej von Jawlensky)마리안네 폰 베레프킨(Marrianne von Wereffkin) 등과 함께 ‘뮌헨 신미술가협회(Neue Künstler-vereiningung München, NKV)를 결성했다. 이 협회장은 칸딘스키였고, 그는 독일 전위미술의 대부가 되었다.

 

열화당 출판사의 《표현주의》, 마로니에북스 출판사의 《표현주의》, 그리고 《표현주의는 어떻게 이해할까?》, 이 세 권은 독일 표현주의 미술이 탄생하게 된 계기와 그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한 책이다. 이 중에서 필자가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책은 《표현주의는 어떻게 이해할까?》이다. 이 책의 장점은 핵심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해서 보여주는 방식이다. 그리고 표현주의 회화에 중점을 둔 책들과 다르게 조형 미술과 건축미술에까지 영향을 준 표현주의도 소개하고 있다.

 

 

 

 

 

 

 

 

 

 

 

 

 

 

 

 

* 지벨레 엥겔스, 코르넬리아 트리슈베르거 《칸딘스키와 청기사파》 (예경, 2007)

* [절판] 토마스 다비트 《프란츠 마르크: 무지개의 색을 훔친 화가》 (랜덤하우스코리아, 2006)

 

 

 

독일 표현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면, 이제 칸딘스키와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가 함께 결성한 ‘청기사파(Blaue Reiter)의 그림들에 주목해보자. ‘청기사’는 마르크와 칸딘스키가 어느 날 함께 커피를 마시다가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조어이다. 마르크는 말을 좋아했고, 칸딘스키는 기사를 좋아했다.

 

 

 

 

 

 

 

 

 

 

두 사람은 신비로운 내면의 세계를 통찰하고, 이를 색채로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마르크는 인간의 눈으로 동물의 마음을 읽기를 원했고, 동물이야말로 생명력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칸딘스키와 청기사파》는 청기사파의 이상을 공유한 당대 화가들의 삶과 주요 작품들을 다루고 있다. 남성 화가들의 활동에 가려진 여성 화가들(가브리엘레 뮌터, 마리안네 폰 베레프킨)의 재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내용이 인상적이다. 《프란츠 마르크: 무지개의 색을 훔친 화가》는 마르크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중심으로 서술한 책이다. 당연히 이 책의 주인공은 마르크와 그가 좋아했던 동물들이다. 절판된 게 너무 아쉬운 책이다.

 

 

가브리엘레 뮌터가 칸딘스키의 작품들을 보관하지 않았으면, 칸딘스키와 표현주의는 현대미술의 문을 본격적으로 연 화가와 예술사조로 평가받지 못했을 것이다. 뮌터는 칸딘스키에 버림받아 실연의 아픔을 겪었지만, 그녀는 세계 대전의 위험 속에서도 남편과 동료 화가들의 작품을 잘 간수했다. 뮌터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표현주의 및 청기사파 화가들의 작품들을 뮌헨 시에 기증했다. 언론은 감동적인 찬사와 함께 그녀의 기부 소식을 대중에게 알렸다.

 

 

“뮌터 부인 앞에 우리 모두 모자를 벗어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칸딘스키와 청기사파》, 124쪽)

 

 

칸딘스키가 표현주의라는 새로운 미술의 시대를 열었다면, 뮌터는 그 찬란했던 시대의 유산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녀의 노력을 생각한다면, 현대미술을 공부할 때 막연하게 어렵다고 느꼈던 표현주의를 대충 훑고 지나갈 수 없다. 언젠가는 우리나라에서도 표현주의 미술이 많이 주목받는 날이 올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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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7 0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6-07 18:33   좋아요 0 | URL
표현주의 미술을 공부하면서 표현주의 미술 작품에 있는 색채를 다시 보게 됐어요. 특히 마르크와 가브리엘레 뮌터의 그림에 있는 색들이 정말 좋았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