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베이컨 - 프랜시스 베이컨의 파란색과 함께 통과하는 밤 미술관에서의 하룻밤
야닉 에넬 지음, 이재형 옮김 / 뮤진트리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4점  ★★★★  A-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붓질은 포악하다

그는 붓을 휘두르면서 모델의 얼굴을 때린다







붓에 맞은 입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찌그러진다

검정, 회색, 빨간색이 불길하게 뒤섞인 피부는 거칠거칠하다

베이컨이 그림을 그릴 때 자주 사용한 빨간색은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처럼 보인다.







베이컨의 초상화와 인물화를 만나게 되면 지옥도(地獄圖)가 떠올린다.고어(gore: )’로 가득한 그림들이 유명해지자, 대중은 베이컨을 폭력의 화가로 기억한다.


하지만 베이컨은 자신의 그림에 폭력성이 드러난다는 대중의 감상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본인은 즐거운 그림을 그렸다고 말한다. 그는 야만과 전쟁이 판치는 이 세상이야말로 자신의 그림보다 더 폭력적이라고 비판한다베이컨의 일침은 틀리지 않았다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희곡 닫힌 방에서 타인은 지옥이라고 했다. 베이컨은 한술 더 떠서 지옥은 바로 이 세상이야!”라고 말했다.


베이컨은 자신의 그림에 나름대로 매력(?)이 있다고 공공연히 주장했다. 그러나 어두침침한 그의 그림은 볼 때마다 무섭다. 여기서 베이컨 그림의 기괴한 매력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은 고민한다. 폭력잔혹. 살벌한 단어를 쓰지 않고, 베이컨의 그림이 덜 무섭게 보이도록 대중에게 소개할 수 있을까? 이러한 고민을 해결해 주는 책이 바로 블루 베이컨(Blue Bacon)이다.


이 책을 쓴 야닉 에넬(Yannick Haenel)은 청소년 때부터 베이컨을 좋아한 작가다. 그는 베이컨의 작품들이 전시된 퐁피두 센터(Pompidou Center), 그것도 한밤중에 혼자 관람한다. 좋아하는 화가의 작품들을 혼자서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일은 축복이다. 하지만 저자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는 베이컨의 그림들과 함께한 하룻밤이 마치 지옥 한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회상한다.


저자는 베이컨이 만든 지옥의 쓰라린 맛을 느낀 이후로 편두통에 시달린다하룻밤의 그림 감상의 후유증이다하지만 푸른 기운이 감도는 베이컨의 또 다른 그림을 보자마자 그의 머리를 콕콕 찌르던 고통이 말끔히 사라진다. 편두통에 짓눌린 저자의 마음을 치유해 준 베이컨의 그림은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Water from a Running Tap)이다이 그림은 베이컨이 세상을 떠나기 십 년 전인 1982년에 완성되었다<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난폭한 베이컨이라는 수식어가 나오게 만든 검은색이 가득한 그림들과 다르게 아주 평범하다. 노란색 배경 한가운데에 푸른색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만 그려져 있다. 저자는 베이컨의 그림에서 튀어나오는 파란색에 흠뻑 젖는다. 



 나는 입을 크게 벌리고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 앞에 서 있었다. 물은 더할 나위 없이 시원했다. 물의 시원함은 우리를 가득 채워준다. 그 시원함 덕분에 유익한 빛이 내 머리 주위로 흘러들었다. 나는 점점 더 잘 볼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숨도 잘 쉬었다.


(47쪽)



그는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를 오랫동안 바라보면서 기분 좋은 청량함을 느낀다저자는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파란색상처 없는 나라로 이끄는 빛으로 비유한다<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파란 천국이다


블루 베이컨 그림 없는 미술 책이다저자는 그림을 보여주지 않고, 오로지 단어로 이미지를 설명한다이 책을 펼치자마자 베이컨의 기괴한 그림들이 불쑥 튀어나와 독자를 놀라게 하는 일은 없다유명한 블랙 베이컨’을 만나기 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베이컨의 파란색 그림을 먼저 알고 있으면 좋다. 그러면 검은색에 가려져 있던 색들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베이컨은 붓으로 자신과 인물들을 분해했다블루 베이컨베이컨의 삶에 칠해진 검은색을 분산시켜서 다채로운 매력을 보여주는 프리즘이다.






<cyrus의 주석>

 



* 21




 

 데이비드 실베스터와의 인터뷰[1]에서 프랜시스 베이컨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곧 살아있는 사람을 잡기 위해 덫을 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 42




 

 데이빗 실베스터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흠잡을 데 없이그려진 자신의 가장 완벽한 작품으로 언급한다.


[1] 데이비드 실베스터, 주은정 옮김, 나는 왜 정육점의 고기가 아닌가?: 프랜시스 베이컨과의 25년간의 인터뷰 (디자인하우스, 2015).





* 51




 

 앙토냉 아르토반 고흐의 까마귀가 지구를 황폐화하는 악령에 맞서기 위해 세워진 허수아비라고 확신했다. [2]

   

[2] 앙토냉 아르토, 이진이 옮김, 사회가 자살시킨 자, 반 고흐 (읻다, 2023), 조동신 옮김, 나는 고흐의 자연을 다시 본다: 사회가 자살시킨 사람 반 고흐 (도서출판 숲, 2003, 절판)





* 58




 

 우리는 우리 삶의 질료가 갇혀 있는 이 같은 고통을 인식하지만, 베이컨은 그것에 예술이라는 형식을 부여함으로써 그것을 견딜 수 있는 경험으로 변화시킨다. 어느 정도 예민함의 차원에서는 사는 것이 참을 수 없지만, 것의 극히 짧은 순간들을 우리에게 전달하는 그림은 그 고통에 굴하지 않고 우리를 풍요롭게 해준다. 랭보 나는 나의 풍요가 어디서나 피로 얼룩졌으면 좋겠어라는 싯구[3]에 그것이 있다.

 

[3] 시구(詩句)’가 올바른 표현이다. 인용된 시구가 있는 시의 제목은 착란 I: 어리석은 처녀. 출전: 랭보, 김현 옮김, 지옥에서 보낸 한 철 (민음사, 2016).





* 78




 

 조르주 바타유는 라스코의 벽을 마주하고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은 자기가 이 풍요로움의 놀라운 광채를 위해 태어났다고 느낀다.”

   

[4] 조르주 바타유, 차지연 옮김, 라스코 혹은 예술의 탄생 / 마네 (워크룸프레스, 2017).





* 119




 

 질 들뢰즈는 그가 베이컨에 관해 쓴 저서[5]에서 다음과 같이 외친다. “불쌍한 고기 같으니!” 이보다 더 진실한 외침은 없다. 그날 밤 베이컨의 그림들은 이렇게 소리쳤다.


[5] 질 들뢰즈, 하태환 옮김, 감각의 논리 (민음사, 2008).





* 128




 

 랭보의 시에 등장하는 사랑의 열쇠라는 시구[주6]는 나를 꿈꾸게 한다.

   

[주6사랑의 열쇠이라는 제목의 시에 나온다. 출전랭보김현 옮김지옥에서 보낸 한 철 (민음사, 2016).





* 163




 

필립 솔러스 필립 솔레르스(Philippe Sollers)





* 166




 

 15세기에 회화 예술을 이론화한 레오 바티스타 알베르티는 회화란 분수의 표면을 예술적으로 껴안는 것이라고 썼다. [주7]


[7]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 김보경 옮김, 회화론 (기파랑에크리, 2011), 노성두 옮김, 알베르티의 회화론 (사계절, 2002년, 절판).





* 177~178







 

 1953년에 그려진 이 그림은 여러 개의 제목을 가지고 있는데, 레슬링 장면을 기록한 뮤브리지의 사진에서 영감을 받아 두 인물또는 레슬러라는 제목으로 불린다.

 

뮤브리지 마이브리지(Eadweard James Muybridge)

 




* 217




 

 앙드레 브르통<나드자>(Nadja)[주8] 서두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보다 누가 나를 괴롭히는가?”라는 질문을 더 선호했다.

   

[주8앙드레 브르통, 오생근 옮김, 나자 (민음사, 200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굿 라이프 - 20세기 주거건축의 사상을 찾아서
이냐키 아발로스 지음, 엄지영 옮김 / 이유출판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점


4점  ★★★★  A-





철학자를 건축가로 비유하면, 철학자가 쓴 책은 철학으로 만든 집의 설계도다. 철학자는 사람들을 철학의 집으로 초대한다. 철학의 집은 편안한 보금자리가 아니다. 철학의 집은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들을 위한 거푸집이다. 마음에 드는 철학 거푸집을 발견한 사람이 그 속에 들어가면 철학자가 된다. 철학 거푸집에 거주하는 철학자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또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스스로 생각한다.








니체(Nietzsche)과거에 만들어진 철학의 집들을 망치로 부수는 철학자. 그의 책 아침놀철거 서약서. 니체는 플라톤(Plato) 이후에 활동한 철학적 건축가들을 비판한다. 철학적 건축가들이 철학의 집을 지으면서 가장 많이 사용한 재료는 도덕이다. 도덕으로 만든 집에 오래 거주한 사람은 도덕에 복종한다. 도덕을 너무 믿고 따르면 개인의 자유는 사라지며 욕망은 억눌린다도덕은 삶의 주인이 아니다. 니체는 도덕 철학의 집들을 철거한 다음에 도덕이 무너진 그 자리를 쟁기로 갈아엎는다. 니체는 자신만의 철학의 집을 세우기 전에 땅속에 구멍을 뚫는작업을 시도한다. 그는 자신의 철학을 도덕에 대한 신념을 파내는 작업이라고 했다. 도덕의 집이 무너져도 흩어진 잔해들은 또다시 도덕의 집을 만들기 위한 재료가 된다.


니체는 철학적 건축가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니체가 열심히 쟁기질한 땅에 새로운 철학적 건축가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도덕이 주인인 철학의 집이 아닌 자유로운 개인이 주인이 되는 철학의 집을 만들었다굿 라이프: 20세기 주거 건축의 사상을 찾아서니체 이후에 활동한 20세기 철학적 건축가들을 소개한 책이다20세기의 철학적 건축가들은 다수가 선호하는 좋은 집의 조건을 거부한다. 좋은 집4인 이상 가족이 살 수 있어야 하며, 일상생활에 불편한 점이 없도록 만들어진 공간이다. 그러나 20세기 철학적 건축가들이 설계한 집은 오로지 건축가를 위한 공간이다. 주로 많이 사용된 재료는 건축가의 상상력이다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영향을 받은 건축가들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로서의 개인의 정의를 의심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건물은 형태가 없으며 가족도, ‘라는 개인도 살지 않는다


책은 총 일곱 군데 철학의 집을 소개한다. 독자들이 제일 먼저 방문하는 집은 차라투스트라의 집이다. 차라투스트라(Zarathustra)는 니체 철학의 핵심 개념인 초인(Übermensch)을 상징하는 존재. 독일의 건축가 미스 반 데 로어(Mies van der Rohe)8년 동안 중정이 있는 집의 설계도를 만들었다. 중정이 있는 집의 주인은 도덕을 거부하고, 자아를 변화하는 일에 전념한 차라투스트라다니체 철학을 좋아하는 거주자라면 이 집을 거푸집으로 삼을 수 있다.


니체의 망치에 의해서 도덕 철학의 집이 무너진 이후에 철학을 잊은 사람들은 과학과 공업 기술로 만들어진 집을 선호했다. 과학 지식이 적용된 공법, 실증주의적 건축 방식이 유행하면서 저비용으로 많은 양의 공장과 아파트가 들어섰다. 실증주의적 건축술의 목표는 대량 건설, 표준화된 설계실증주의가 가져다준 혜택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과거보다 풍족한 삶을 누리게 되었지만, 삶의 여유를 잃어버렸다니체는 실증주의를 비판한 철학자다. 미스 반 데 로어가 구상한 차라투스트라의 집굿 라이프에 첫 번째로 소개된 반실증주의적 건축물이다.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모리스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 Ponty) 실증주의에 반대하는 철학인 현상학을 만들었다. 현상학은 개인의 경험을 분석하는 실증주의와 다르게 개인의 경험을 그대로 묘사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현상학자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은 객관성이 아닌 주관성이다그래서 현상학자들은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사물을 한데 모아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콜라주(collage) 또는 브리콜뢰르(bricoleur)을 선호한다. 어린이는 자신만의 시선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 줄 안다. 따라서 주관성이 강한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현상학적 집에 입주할 수 있.


굿 라이프실제로 만들어진 집도 나온다팩토리(Factory)는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작업실이다. 팩토리는 무의식과 욕망을 탐구한 프로이트(Sigmund Freud)와 계급 없는 세상을 꿈꾼 마르크스(Karl Marx)가 혼합된 건축물이다. 이곳은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개성과 욕망이 억눌린 채 살아온 예술가와 연예인들은 팩토리에 자주 드나들었다. 팩토리는 서로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는 축제의 장이다.


집을 짓는 일 또한 철학을 하는 일과 같다. 집과 철학은 좋은 삶을 실현하기 위한 뼈대다. 뼈대가 튼튼해야 외부의 유혹과 세파에 쉽게 흔들리지 않으면서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잘 만든 집에 오래 살다 보면 한계와 문제점이 눈에 보인다. 철학적 건축물도 마찬가지다. 굿 라이프는 책에 소개된 철학적 건축물들에 입주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과대광고를 하지 않는다. 책은 철학적 건축물들의 한계도 밝힌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그 집에 인간이 산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철학자의 언어와 사유가 스며든 집을 본격적으로 탐구한 철학자다. 하이데거가 생각한 실존주의자의 집그 집에 사는 사람의 내면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가부장적 권위를 중시하는 실존주의자가 집주인이 되면 그 집 안에 딱딱한 수직적 문화가 흐른다현상학적인 집에 설계자와 거주자의 취향이 반영된 장식품이 많다. 겉만 화려한 현상학적 집은 실용성을 중시하는 거주자들에게 추천할 수 없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집은 건축가의 실험 정신이 많이 반영된 가상 공간이다. 현실 도피에 가까운 과도한 실험 정신은 비현실적인 집을 양산할 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마저 파괴한다.


굿 라이프집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시선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좋은 삶의 조건과, 그렇게 살기 위해 우리가 필요한 좋은 집의 조건 또한 다양하다. 철학은 집을 만들 때 쓸 수 있는 좋은 재료. 그렇지만 현실을 외면하고, 교조주의적 성향이 강한 철학으로 지어진 집은 부실하다. 불량한 사상(思想)이 가득한 집은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이 없는 사상누각(沙上樓閣)이다.






※ cyrus의 정오표




* 65




 

 실존적인 집이 가부장적 권위의 체계와 연결되며, 자기 중심화되고 초월적이며 수직적인 공간 조직을 갖는다는 사실을 명학하게 보여준다.



명학하게 명확하게






* 93쪽 각주 





프레더릭 윈즐로 테일러(1856~1925) [주]



[] 테일러의 사망 연도는 1915이다.





* 133쪽 각주






조르지오 데 기리코 조르지오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빛의 아틀리에
실비 제르맹 지음, 박재연 옮김 / 마르코폴로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점


4점  ★★★★  A-





렘브란트(Rembrandt), 페르메이르(Vermeer),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그들 이름에 항상 따라오는 꾸밈말이 있다. 빛의 화가. 이 세 사람은 그림을 그릴 때마다 세 개의 팔레트를 사용했다. 화가들의 손에 여러 색깔 물감으로 수놓은 수채화용 팔레트가 있다. 나머지 두 개의 팔레트는 눈이다. 빛의 화가는 물감이 정해준 색보다는 빛이 빠르게 움직이면서(빛의 속도는 1초에 지구 둘레의 일곱 바퀴 반을 돌 정도로 엄청 빠르다) 생기는 찰나의 색을 좋아한다. 신비한 빛의 효과가 만든 색은 물감에 없는 색이다. 아주 특별한 색을 발견한 빛의 화가는 두 눈에 물감을 풀어 빛과 섞는다. 작고 동그란 팔레트에서 화가 본인만 느낀 빛 색이 태어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학문과 예술의 신은 총 아홉 명이다. 제우스(Zeus)기억의 신 므네모시네(Mnemosyne) 사이에 태어난 아홉 자매다. 학문과 예술을 사랑하는 아홉 자매를 무사이(Mousai)라고 부른다. 무사이는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를 가리키는 뮤즈(Muse)’의 어원이다. 재미있게도 아홉 자매 중에 그림을 그리는 신이 단 한 명도 없다. 따라서 화가의 뮤즈라는 표현은 어색하다빛은 투명한 뮤즈. 빛은 무한해서 투명하다. 빛은 실체가 기묘해서 투명하다. 빛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입자와 파동 형태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만약에 화가들의 재능을 보호하는 뮤즈가 있다면, 그녀는 바로 이다. 뮤즈가 된 빛은 얼굴이 두 개여야 한다.


예술의 신이 되지 못한 빛은 화가들이 즐겨 쓰는 화구(畵具)로 전락했다. 화구의 주인은 화가다. 빛은 그림을 그릴 때 쓰는 천연 도구가 아니다. 빛은 무한한 아틀리에(작업실)’프랑스 작가 실비 제르맹(Sylvie Germain)은 위대한 화가들을 숭배하기 위해 쓰는 표현인 빛의 거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는 빛의 거장이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빛은 인류보다 제일 먼저 태어났다. 빛은 여전히 신비스럽고 불가사의하다. 최초의 화가가 나타나기 전에 빛의 아틀리에가 생겼다빛의 주인은 화가가 아니다. 반대로 되어야 한다. 화가의 주인은 빛이다


실비 제르맹의 빛의 아틀리에미술 감상문 또는 예술 에세이에 가깝다. 그녀가 만난 세 명의 화가 모두 빛의 거장이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 페르메이르, 조르주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 아차, 실수했다! ‘빛의 거장이 아니라 빛의 아틀리에를 빌려 쓴 거장이다실비 제르맹은 모든 화가가 빛의 제자라고 말한다


프란체스카, 페르메이르, 라 투르는 빛을 경배한 동방박사. 그들은 밤의 마구간에서 태어난 빛을 만나기 위해 빛의 아틀리에로 향했다. 세 화가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보물을 빛에 바친다. 빛의 도움을 받아 그림을 다 그리고 나면 일상으로 돌아갔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꿈>

1466년경



 

프란체스카는 수학자. 그가 빛에 바친 선물은 기하학이다. 그는 기하학을 이용해 빛과 형상, 공간을 정교하게 배치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천문학자>

1668년경



 

페르메이르가 가져온 선물은 철학이다. 페르메이르는 수수께끼로 남은 화가다. 그가 남긴 그림들도 수수께끼로 칠해져 있다. 그가 동시대에 활동한 철학자들이 쓴 책을 읽었는지 알 수 없다. 실비 제르맹은 페르메이르의 작품인 <지리학자> <천문학자>를 감상하면서 진리를 사랑하는 페르메이르를 상상한다.

   






조르주 라 투르

<타오르는 불꽃의 마리아 막달레나>

1640년경



라 투르는 까다로운 선물을 가지고 왔다. 이 선물의 정체는 어둠이다. 라 투르의 어둠은 빛을 집어삼키는 무시무시한 암흑이 아니다. 언제 사그라질지 모르는 희미한 빛을 더욱 도드라지게 하는 역할을 한다. 라 투르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지휘봉이 된 붓으로 어둠에 지시한다. “여기 빛의 아틀리에에 들어오는 너희들은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주1] 빛을 위해서 양보하라.” 빛의 아틀리에에 들어온 어둠은 겸손하다. 마침내 조화를 이룬 빛과 어둠은 캔버스 앞에서 지휘하는 라 투르의 붓에 맞춰 야상곡을 연주한다. 라 투르의 그림은 눈으로 느끼는 야상곡이다.


모든 화가가 빛의 아틀리에를 이용한 시간을 (작업실 대여비)으로 환산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 나온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의 경매가를 웃도는 수준이다. 화가들은 빛의 아틀리에를 무료로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 빛의 아틀리에를 돈 주고 사용하면 화가들은 빚쟁이가 된다. 빛은 화가들을 위해 아낌없이 아틀리에를 빌려준다. 빛을 빌려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은 위대한 빛쟁이.





[주1] 패러디한 문장의 원문은 단테(Dante)신곡지옥 편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내 앞에는 창조된 것은 영원한 것들뿐,

나는 영원히 지속되니, 여기 들어오는

너희들은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지옥> 37~9, 35, 김운찬 옮김, 열린책들, 2022)





* 65쪽 각주





마르셀 프루스트, 갇힌 여인 [주2]



[2] 갇힌 여인7로 이루어진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대하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5부 제목이다.





* 72

 




 블랑쇼<죽음>에서 비범함은 내가 죽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라고 썼다.[3] 페르메이르의 작품은 가시적인 세계, 빛과 색의 끝, 즉 보이지 않는 세계와 밤의 가장자리에서 멈춘다.



[3]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죽음>죽음의 선고(고재정 옮김, 그린비, 2011)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판본 빈센트 반 고흐, 영혼의 편지들 세트 - 전3권 - 1960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이승재 옮김 / 더모던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彬彬書簡(빈빈서간): 빈(彬)센트가 빛나는 편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뒷모습
미셸 투르니에 지음, 에두아르 부바 사진,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점


4점  ★★★★  A-




예술 책 읽기 모임 두루미’ 세 번째 선정 도서





태양은 지구를 향해 빛을 흩뿌리면서 다닌다. 낮에 열정적으로 일한 태양은 제대로 쉬고 싶다. 태양은 숙면을 위해 어두운 이불을 푹 덮는다. 태양이 잠들기 시작하면 자고 있던 달이 잠에서 깨어난다. 달은 잠잘 때 덮고 있던 푸른 이불을 갠다. 태양은 자고 있어도 계속 빛을 뿜어낸다. 태양 빛은 매우 강렬해서 어두운 이불을 뚫고 나올 정도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태양 빛은 못생긴 달을 위한 조명이 되어준다. 태양 빛을 받지 못한 달은 지구에서 보이지 않는다. 달의 반쪽 부분에 태양 빛을 받으면 반달이 된다. 태양 빛이 달을 감싸 안으면 보름달이 된다. 밤이 되면 태양 빛으로 화장한 달의 얼굴이 나타난다. 중력에 몸을 맡긴 달은 지구 주변을 돈다. 하지만 달은 자신의 뒷모습을 절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어떤 불자가 덕망이 높은 승려를 만나러 직접 찾아왔다. 불자는 승려에게 가르침을 청했으나 승려는 자신도 글을 모른다면서 거절했다. 헛걸음한 불자가 실망감을 드러내자, 승려는 불자에게 달을 보라면서 손가락을 들었다. 그러면서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만 쳐다보는 불자를 나무랐다. 어리석은 불자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만 눈이 쏠려 제대로 봐야 할 달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달을 잘 보는 승려도 달을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승려는 달의 앞모습만 쳐다봤기 때문이다. 승려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은 달의 완전한 모습이 아니라 달의 얼굴이다.


항상 태양 빛을 받아서 생기가 넘치는 앞모습에 가려져 있어서 그렇지 사실 뒷모습도 살아있다. 뒷모습은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 그렇지만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은 앞모습에 있다. 눈 하나만 뒤에 달려 있으면 좋으련만. 뒷모습이 아쉬워한다. 하지만 세상은 뒷모습의 소원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얼굴에 있어야 할 눈이 뒤통수에 있으면 세상은 앞모습을 괴물이라고 손가락질한다. 한쪽 눈만 있는 얼굴은 매력이 없다. 비난이 두려운 앞모습은 한쪽 눈을 절대로 뺏기고 싶지 않다뒷모습은 할 말이 많은데, 말을 할 수 없다. 하필이면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하는 입이 얼굴에 있다. 뒷모습은 냄새를 맡고 싶다. 그런데 한 번 열면 쉬지 않는 입 바로 위에 냄새 맡는 코가 달려 있다. , , 입이 앞쪽에 몰려 있다.


에두아르 부바(Edouard Boubat)는 세간의 빛을 잘 받지 못해 시들시들해진 뒷모습을 향해 카메라를 비춘 사진작가다. 그는 뒷모습이 살아있다는 진실을 확인했다. 초라해진 자신의 모습에 어깨가 축 처져 있던 뒷모습이 부바의 카메라가 반가워서 어깨를 들썩인다. 뒷모습을 찍은 부바의 카메라에 이름이 있다면, 그 이름은 바로 카메라 루시다(Camera Lucida)’. 뒷모습이 부바의 밝은 방(Camera Lucida)’에 들어서는 순간, 자신도 살아 있다면서 온갖 동작으로 표현한다.


부바의 카메라 루시다에 찍힌 뒷모습은 찬란하지 않다. 나무 쟁기를 짊어진 인도의 어느 농부와 앙상한 소 두 마리의 뒷모습, 양손에 물뿌리개를 들고 정원을 걷는 정원사의 뒷모습, 허리를 구부리면서 산책하는 할머니의 뒷모습,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이 길바닥에 깔린 파리의 거리. 작가 미셸 투르니에(Michel Tournier)는 파리의 거리가 찍힌 사진을 보면서 글을 썼는데, 이 글에 등 뒤에서 본 파리라는 제목을 달았다. 사진 한가운데에 멀리 떨어져 있는 에펠탑(Tour Eiffel)이 희미하게 보인다. 밤이 되면 아름다워지는 철의 여인(La Dame de Fer)’ 에펠탑에 현혹된 사람들은 낮이 되면 나타나는 더러운 진실을 보지 못한다. 쓰레기통에 담지 못한 더러운 진실이 여기저기에 방치된 거리는 도시의 지저분한 뒷모습이다.


뒷모습은 세련되지 않으며 하찮다. 그렇지만 카메라에 찍히면 사진을 보는 감상자의 눈과 마음을 찌르는 위력을 가진다. 에두아르 부바의 카메라가 주목한 뒷모습에 생기가 돋는 푼크툼(punctum)’이 있다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자신의 책 밝은 방: 사진에 관한 노트에서 푼크툼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푼크툼은 원래 찌름또는 작은 구멍을 뜻하는 단어다. 바르트는 푼크툼이 있는 사진이 자신을 찌르고, 자신의 마음에 상처를 입힌다고 했다바늘로 피부를 찌르면 아프듯이 사진 속 푼크툼은 감상자의 눈과 마음을 콕 찔러 아프게 만든다.


화려하지 않은 뒷모습은 억지로 꾸미지 않는다. 따라서 뒷모습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부바는 화려하지만,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 앞모습에 전혀 관심이 없다. 앞모습을 찍은 사진에 푼크툼이 없어서 시시하다. 반면 뒷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면 가슴이 뛴다. 뒷모습이 살아있음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사진은 감상자의 마음을 뒤흔든다. 감상자는 뒷모습을 찍은 사진을 바라볼 때 푼크툼을 만난다.


사진 속 뒷모습은 조용하다. 뒷모습은 말하지 않는다. 말하고 싶어도 꾹 참는다. 앞모습은 제 할 말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야 사람들 앞에서 멋진 모습을 과시할 수 있거든. 이렇듯 앞모습을 찍은 사진에 익숙한 사람은 과묵한 뒷모습을 찍은 사진이 낯설어서 선뜻 다가서지 못한다. 말이 없는 뒷모습을 꾸밈없이 보여주는 사진에서 푼크툼을 찾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모험이다. 사막 한가운데에 푼크툼이라는 바늘을 찾는 일이랄까바르트는 사진의 매력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단어로 모험을 골랐다. 푼크툼은 화려함과 거리가 멀고, 특별한 의미가 없다. 사진 속 뒷모습을 보면서 해석하지 않는 순간부터 감상자는 자신만의 푼크툼을 찾아 나선다. 이때부터 화려하지 않은 모험이 시작된다푼크툼이 있는 사진은 감상자를 찔러댈 뿐만 아니라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살아있는 감상자는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말한다. 그늘이 진 삶의 일부라든가 사람들 앞에 보여주면 부끄러운 치부를 숨기지 않는다. 자신이 진실한 삶을 살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볼 줄 안다사진의 푼크툼을 찾는 모험은 어렵지 않다. 마음이 솔직하지 못하거나 외면을 멋지게 꾸미는 일을 좋아하는 성격이 모험을 어렵게 만든다.


카메라 루시다와 함께 만든 에두아르 부바의 사진집 뒷모습자신의 진솔한 마음과 모습을 만나게 해주는 거울이다. 뒷모습만 보여주는 거울에 아름다움을 찾지 마시라. 그 대신에 우리가 찾아야 할 푼크툼이 있다. 푼크툼은 우리에게 진실하게 살아 보라면서 힘껏 찌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