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품은 미술관 - 예술가들이 바라본 하늘과 천문학 이야기
파스칼 드튀랑 지음, 김희라 옮김 / 미술문화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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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우주는 무한한 도화지다. 사람들은 까만 도화지에 알록달록한 상상력을 마음껏 수놓았. 바빌로니아 지역에 살았던 칼데아 사람(Chaldean)은 밤의 화가들이었다. 그들은 누워서 별 하나하나 눈 맞춤했다별빛을 듬뿍 받은 화가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밤의 화가들은 별을 그러모아서 여러 가지 동물을 그려 넣었다. 별들을 연결해서 만든 동물 그림은 별자리가 되었다. 밤의 이야기꾼들은 별자리에 어울릴만한 신화를 만들었다. 신화를 믿는 사람들은 밤하늘에 위대한 영웅들의 모습을 새겼다.


붓을 든 화가들은 한 폭의 캔버스에 우주를 담으려는 야망을 품었다. 대부분 화가는 우주를 몰랐다. 하지만 잘 모를수록 우주의 모습은 더 잘 그려진다. 화가들은 상상력을 동원해서 자신만의 별과 우주를 만든다.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천문학자들은 최대한 정확하게 별과 행성을 그린다. 거대한 도화지였던 우주는 그림이 되었다코스모스(cosmos, 우주)는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먹으면서 자라난다.


우주를 품은 미술관: 예술가들이 바라본 하늘과 천문학 이야기멀티버스(multiverse) 화보. 과학에서 말하는 다중우주(多重宇宙)는 실험으로 검증되지 않았다. 저 멀리 어딘가에 있을 또 다른 우주들을 직접 볼 수 없다그러나 고대부터 현대까지 동서양 예술가들이 그린 다중우주는 감상할 수 있다미술관에 코스모스(우주)가 울긋불긋 만개한다책의 저자는 문학 교수다. 저자는 그림 작품들을 설명할 때 우주와 행성을 소재로 한 문학 작품들을 인용한다시인과 소설가들도 우주에서 영감을 찾았다.








예술가들이 상상한 멀티버스는 시대별로 다르다중세인들의 우주는 신의 피조물이다. 태양은 예수의 신성함을, 달은 성모 마리아의 순결함을 상징한다. 성직자와 교부 철학자들은 성경 구절에 부합하는 우주를 좋아했다. 중세 예술가들은 성경을 펼쳐서 우주를 찾았다








실험과 관측을 중시하는 천문학자들이 등장하면서부터 중세 우주론의 한계가 드러났다. 코페르니쿠스(Copernicus)갈릴레이(Galileo Galilei)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주장했다. 천문학자들이 이용한 망원경은 우주를 좀 더 정확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화가들이 풍경을 그릴 때 사용한 카메라의 조상)









낭만주의자의 우주는 우울하고 암울하다낭만주의 예술가들이 묘사한 석양은 태양의 뜨거운 생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하늘이다. 희미한 석양은 힘이 없다. 인간처럼 우주 또한 쇠퇴하고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다.


거인 같은 망원경과 우주를 홀로 떠도는 인공위성 덕분에 우리는 우주와 행성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있다. 고대에 살았던 밤의 화가들은 토끼가 살고 있는 달을 상상하면서 그렸다. 과학의 혜택을 받고 사는 현대인들은 스마트폰 카메라로 선명한 달 사진을 찍을 수 있다그래도 예술가들은 여전히 우주를 상상한다. 우주를 정확하게 아는 과학은 우주를 자유롭게 상상하는 예술을 죽이지 못한다








예술로 피어난 코스모스는 영원하다.









<별의 먼지로 만들어진 cyrus가 만든 주석과 정오표>







* 106




 

 아폴리네르시집 알코올(1913)에서 과감하게 목이 잘린 태양이라 표현함으로써 태양의 언어를 혁신했다. [1]



[1] 목이 잘린 태양이라는 시구가 나오는 시는 알코올에서 첫 번째로 실린 변두리. “목이 잘린 태양은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기욤 아폴리네르, 황현산 옮김, 알코올, 열린책들, 2010)






* 145




 

아르튀르 랭보, <태양과 육체>, 시집, 1870 [주2]

 


[주2랭보가 처음으로 발표한 시집지옥에서 보낸 한철이다. 1873년에 발표되었다. 이 시집이 나오기 전에 랭보는 잡지를 통해 시를 발표했다. 1870년에 랭보의 이름이 실린 시집은 나오지 않았다. <태양과 육체>1870년에 쓴 시다.



[우리말로 번역된 <태양과 육체>가 실린 랭보의 시 선집]

 

* 최완길 옮김, 지옥에서 보낸 한철(북피아, 2006, 절판)


* 한대균 옮김, 나의 방랑(문학과지성사, 2014)



폴 베를렌(Paul Verlaine)은 랭보의 연인이다. 우리말로 번역된 베를렌의 시 선집은 그리 많지 않으며 절판되었다. 베를렌의 시 <하얀 달> 전문을 볼 수 있는 번역본 베를렌 시선(윤세홍 옮김, 지만지, 2013)이 유일하다.






* 159~160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소련의 우주 비행사 유리 가가린의 놀라운 업적을 칭송했다레비나스는 가가린이 한 시간 만에 인간이 모든 지평선을 넘어 존재했음을 보여준 첫 번째 사람이고 우주에서는 그를 둘러싼 모든 게 하늘이었다고 말했다[주3]



[주3출처는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의 에세이 Heidegger, Gagarin and Us(하이데거가가린 그리고 우리, 1961)이 글은 <Difficult Freedom: Essays on Judaism>(1963)에 수록되었다.



















[주4]


* 186

토성의 위성 수: 82

 

* 206

목성의 위성 수: 79

 

* 218

천왕성의 위성 수: 27

 

* 220

해왕성의 위성 수: 14



[주4토성, 목성, 천왕성, 해왕성의 위성 수가 정확하지 않다. 토성은 태양계 중 가장 많은 위성을 가진 행성이다. 국제천문연맹(International Astronomical Union, IAU)이 인정한 토성의 위성 수는 274. 목성의 위성 수는 95, 천왕성의 위성 수는 28, 해왕성의 위성 수는 16.

 

(출처: NASA Jet Propulsion Laboratory, ‘Planetary Satellite Discovery Circumstances’, https://ssd.jpl.nasa.gov/sats/discovery.html)







* 215





에베레스트산 8,844m [주5]


 

 


[주5] 에베레스트산의 높이 측량은 1849년부터 시작되었다. 중국, 인도, 미국이 산의 높이를 측정했는데, 측량법이 달라서 높이가 다르게 나왔다. 1954(또는 1955) 인도가 측정해서 확인된 산의 높이는 해발 8,848m였다. 처음으로 인정된 에베레스트산 높이 값이다


2005년 중국이 측정했을 때는 약간 줄어든 8844.43m가 나왔다. 8,844m는 바위 위에 쌓인 눈을 제외한 상태에서 측정된 높이 값이다


1999년에 미국은 GPS로 측정해서 확인된 산의 높이가 8,850m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의 측량 결과는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공식 높이는 해발 8,848m


에베레스트산은 지각 변동의 영향을 받으면 높아진다. 2015년 히말라야에 지진이 발생하고 5년이 지나서 중국과 네팔이 공동 측량을 착수했고, 1m 높아진 8,848.86m로 확인되었다.


(출처: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실측해 보니 1m가량 높아졌다>, 연합뉴스, 2020128일 입력,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2067863?sid=104)






* 259




 


 혜성의 꼬리와 사람의 머리카락이 비슷하므로 혜성은 여성의 이미지와 강력하게 동일시된다. 예를 들어 프루스트는 꽃다운 소녀들의 행렬이 바다를 향하는 것을 반짝이는 혜성처럼 둑을 따라나아간다고 표현했[주6]

 


[주6] 저자가 인용한 문장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대하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2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1919) 2고장의 이름 : 고장에 나온다프루스트 특유의 길고 늘어진 문장의 첫 부분에 해당한다.



 방파제를 따라 빛나는 혜성처럼 앞으로 나아가던 그 무리 안쪽에서 소녀들은 주위 군중이 자기들과는 다른 인종인 듯, 또 그들의 고통 역시 자기들 마음속에 어떤 유대감도 불러일으킬 수 없다고 판단한 듯 군중을 바라보지 않는 것 같았고, 나사가 풀린 기계처럼 보행자들을 피하는 수고도 할 필요 없다는 듯, 멈춰 선 사람들에게도 길을 비키도록 강요했으며, 기껏해야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접촉도 꺼리는 어느 겁 많은 또는 분노한 노신사가 허둥대거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도망이라도 치면, 자기들끼리 서로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김화영 옮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2중에서, 255,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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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9-08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도 흥미롭지만 책의 오류를 잡아내는 cyrus님의 수고와 능력이 항상 경이롭습니다.

cyrus 2025-09-10 06:51   좋아요 1 | URL
책을 읽다가 궁금한 내용이나 무언가 의심스러운 내용이 보이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 편이에요. ^^;;

서니데이 2025-09-09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위의 댓글 쓰신 분과 같은 생각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오타가 있거나 오류가 있을 때도 있지만, 그냥 지나가게 되거든요.^^
지난 월요일에 개기월식이 있어서인지, 우주와 행성의 이야기가 좋네요.
cyrus님 잘 읽었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cyrus 2025-09-10 06:53   좋아요 0 | URL
알고 있어서 오류를 잘 잡아낸다기보다는 모르는 것이 많아서 오류를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요. 오류를 확인하면서 제가 몰랐다거나 잘못 알고 있었던 사실을 알게 되거든요. ^^
 
왜 베토벤인가
노먼 레브레히트 지음, 장호연 옮김 / 에포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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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협찬받고 쓴 서평이 아닙니다.




4점  ★★★★  A-

 








귓속에 바이러스가 들어 있다. 여러분! 귓속에 바이러스가 살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귀에 기생하는 음악 바이러스



귀 벌레(earworm)는 음악 바이러스의 매개체다. 귀 벌레는 사람들이 즐겨 듣는 노래에 달라붙어 있다. 달팽이관으로 들어간 귀 벌레는 음악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음악 바이러스가 뇌를 침투하면 머릿속에 멜로디가 계속 맴도는 증상이 일어난다.








음악은 다양하고, 지금도 계속 확장되고 있다. 그런 만큼 음악 바이러스의 종류도 많으며 질긴 생명력을 가졌다. 가장 유명한 음악 바이러스는 베토벤 바이러스(Beethoven Virus)이다. 2000년에 처음 나온 클래식 음악 바이러스로, 베토벤이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8비창’> 3악장의 변이체(변주곡)다. 베토벤 바이러스가 많이 나타나는 곳은 오락실이다펌프라는 이름이 더 유명한 댄스 리듬 게임 <Pump It Up>을 하면 베토벤 바이러스를 들을 수 있다.


멜로디가 뇌에 잘 꽂히는 사람은 음악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쉽다. 멜로디가 반복해서 들리면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없다. 우리를 괴롭히는 단점 하나만 빼면 음악 바이러스에 좋은 점이 훨씬 많다.


영국의 클래식 음악 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Norman Lebrecht)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바이러스보균자. 그는 말러에 관한 책을 두 권이나 썼으며, 2010년에 쓴 왜 말러인가?: 한 남자와 그가 쓴 열 편의 교향곡이 세상을 바꾼 이야기(Why Mahler?, 이석호 옮김, 모요사, 2010년)가 국내에 번역되었다.


2020년은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었다. 세계의 모든 음악인이 베토벤의 곡들을 연주해야 할 그해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계를 집어삼켰다연주회가 줄줄이 취소되면서 음악인들의 악기는 침묵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습격에 쓰러진 음악인들의 부고까지 들려오자, 레브레히트는 깊은 상실감에 빠진다. 마음이 약해진 그를 다독여준 것은 베토벤의 음악, 베토벤 바이러스였다.


베토벤 바이러스를 받아들인 레브레히트는 말러에 이어서 베토벤의 삶과 음악을 톺아본다왜 베토벤인가(Why Beethoven)는 전 세계 음악인들의 귓속에 살고 있는 불멸의 베토벤 바이러스를 소개한 책이다이 책은 100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장마다 베토벤의 곡들과 그 곡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베토벤의 대표작 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범작들과 졸작이라 불리는 작품들도 나온다. 저자는 젊은 시절에 클래식 음반을 수집했다. 명반(名盤)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베토벤 연주곡 음반들뿐만 아니라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그래도 들어줄 만한 음반들을 소개한다오랫동안 귓속에 베토벤 바이러스를 달고 살아온 클래식 음악광과 베토벤의 음악을 제대로 듣고 싶은 입문자 모두에게 유용한 정보다.


위인전에 갇힌 베토벤은 음악 천재. ‘위인 베토벤은 어린 독자에게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지 않는다. 결국 어린 독자들은 그가 음악을 만드는 과정이 아닌 음악인으로서 힘들게 살아온 과정을 읽는다. 위인전에 베토벤의 작품들, 그중 가장 유명한 대표작들의 제목만 언급된다. 그러나 작품들은 작곡가의 천재적인 능력만 돋보여주는 장식품으로 전락한다. 따라서 위인전은 베토벤의 생애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간혹 사실과 다른 내용을 덧붙여서 쓰는 위인전 지은이도 있다.


왜 베토벤인가는 베토벤 전기(傳記)저자가 다시 만난 베토벤은 천재 베토벤이 아니다.음악 바보 베토벤이다평생 음악만 바라보면서 살아온 베토벤. 음악과 동거한 베토벤의 방은 지저분했다. 음악을 껴안은 베토벤은 소변이 가득한 요강을 비우는 것을 잊었다베토벤은 반권위주의자. 그는 귀족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음악을 만들지 않았다. 베토벤은 반전통주의자. 그는 오랫동안 유행한 작곡 형식을 거부했다. 베토벤은 기존의 형식에 벗어난 멜로디를 만들었다전통적인 멜로디에 익숙한 당대의 음악인들은 베토벤의 곡이 귓속을 거칠게 문지르는 소음으로 느꼈다. 대중적으로 유명한 곡(<엘리제를 위하여>, <월광>, <비창>)을 제외한 베토벤의 음악은 감상자뿐만 아니라 연주자들도 대단히 어려워한다


레브레히트는 독자와 감상자들을 위해 베토벤의 음악이 어려운 이유를 친절하게 설명한다왜 베토벤의 음악은 어려운가? 베토벤은 혼돈의 음악을 제대로 만들려고 했다. ‘조화로운 음악은 대부분 화려하고, 감상자를 편안하게 해준다. 이와 정반대인 혼돈의 음악은 거칠다연주 중간에 나와서는 안 되는 악기의 소리가 갑자기 튀어나올 때가 있다감상자는 다음에 어떤 멜로디가 나올지 예상할 수 없다.


베토벤 바이러스는 음악인들이 사랑하는 음악 바이러스다연주자들의 숙원은 베토벤의 곡을 완벽하게 연주하는 것이다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는 베토벤이 만든 9개의 교향곡을 피아노 독주곡으로 편곡했다. 바흐(J. S. Bach)<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로 천재 피아니스트로 급부상한 글렌 굴드(Glenn Gould)는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을 카라얀(Karajan)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협연했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마력은 문학과 미술에도 뻗어 있다음악 바이러스는 작가들의 펜에 침투하여 한 편의 문학으로 다시 태어난다. 톨스토이(Tolstoy)는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에 영감을 얻어 동명의 소설을 썼다. 앤서니 버지스(Anthony Burgess)는 소설 시계태엽 오렌지에서 <교향곡 9번 합창’> 피날레 환희의 송가를 끔찍한 폭력의 송가로 만들었다.






 18974, 구스타프 말러가 빈 국립 오페라단에 입성한 그 주에 구스타프 클림트는 반항적인 예술가들을 모아 빈 분리파 운동을 시작했다. 5년 뒤에 클림트는 황금 지붕을 얹은 분리파 건물을 지어 전시회를 열었다. 막스 클링거의 베토벤 조각상(영웅적이고 옷을 거의 다 벗은 모습)이 중앙 홀에 놓였고, 벽 위쪽에 그려진 벽화에는 황금 갑옷을 입은 기사가 보이는데 용모가 영락없는 말러다.

 

(301)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는 베토벤 사망 7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02년에 벽화 <베토벤 프리즈>(The Beethoven Frieze)를 그렸다.


감상자를 압도하는 베토벤의 음악은 독재자를 미화하거나 찬양하는 곡으로 악용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대중은 베토벤의 음악을 오해했고, 베토벤의 반권위적인 참모습을 알지 못했다. 왜 베토벤인가는 독자와 음악광들을 향해 대단히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왜 베토벤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가? 그 답은 이 책 속에 있다



베토벤 바이러스는 절대로 해롭지 않다

음악 바이러스는 잘못이 없다

음악을 곡해하는 나쁜 귀(bad ear)가 달린 사악한 인간, 

악귀(bad ear)가 달린 악귀(惡鬼)가 음악을 오염시킨다

그들의 귓속에 음악은 없다. 귓속에 ()이 들어 있다.







<cyrus가 만든 주석>








초판 1쇄 발행 2025328[1]



[1]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날짜는 326일이다.





* 37





 마르셀 프루스트는 할머니가 연주하는 <비창>을 듣더니 이 곡을 베토벤 소나타의 스테이크와 감자라고 했다. [주2]


[주2] <비창>이 언급된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글은 존 러스킨(John Ruskin)의 책 참깨와 백합서문, <독서에 관하여>. <독서에 관하여>참깨와 백합 그리고 독서에 관하여(유정화 · 이봉지 옮김, 민음사, 2018)마르셀 프루스트: 독서에 관하여(유예진 옮김, 은행나무, 2014)에 수록되어 있다.






 “박식한 요리사일지는 몰라도 감자를 곁들인 비프스테이크는 제대로 할 줄 모르는군요.” 감자를 곁들인 비프스테이크! 단순하기 때문에 도리어 매우 어려운 이 요리는 요리 경연의 이상적인 주제로요리의 비창」 소나타이며[생략]

 

(참깨와 백합 그리고 독서에 관하여》 중에서, 138)


 “박식한 요리사일지는 몰라도, 그녀는 사과를 곁들인 비프스테이크는 할 줄 모르네요.” 사과를 곁들인 비프스테이크! 단순하다는 자체로 어려운 이 요리는 바로 그 때문에 요리대회 경연에 이상적인 음식이고, 요리 분야의 <비창 소나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으며, [생략]

 

(마르셀 프루스트: 독서에 관하여중에서13)



스테이크와 감자의 프랑스어 원문은 ‘Le bifteck aux pommes’. 두 책의 번역문이 다르다. ‘pomme’는 사과와 감자를 뜻하는 단어.






* 58




 

 체코에서 태어나 크로아티아에서 자란 알프레트 브렌델은 1951년 빈에서 프란츠 리스트의 <크리스마스트리 모음곡>으로 음반 데뷔를 했다[주3] 미국 음반사 복스-턴어바웃이 빈 필하모닉을 가짜 이름을 내세워 고용하고는 브렌델을 데리고 베토벤의 피아노곡 전곡 녹음에 나섰다.


[주3] 이 책에 언급되지 않은 한 가지 사실. 복스-턴어바웃(Vox turnabout)에 고용된 알프레트 브렌델(Alfred Brendel)이 첫 번째로 녹음한 곡은 프로코피예프(Sergei Prokofiev)<피아노 협주곡 5G장조 op. 55>이다. 이 곡은 브렌델의 첫 음반이 발매되기 일 년 전인 1950에 녹음되었다.






* 160~161

 

 베토벤이 매독에 걸렸다고 주장하는 책들이 있다. 하지만 그가 매독으로 고생했다는 임상적 증거나 부검 증거는 거의 없다는 것이 최근 학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주4]






[주4] 이미 반증되었고, 근거가 빈약하지만 베토벤이 매독에 걸렸다고 주장하는 학자의 견해를 비교해서 읽어보기를 권한다. 참고문헌: 데버러 헤이든, 이종길 옮김, 매독(길산, 2004)





* 286




 

 제러미 덴크[주5]농담이 섞인 진지한 작품이 아니라 () 곡 전체가 웃음바다이며 웃음이 곡의 핵심이라고 느꼈다.






[주5] 제러미 덴크(Jeremy Denk)는 미국의 피아니스트다. 작년에 그가 쓴 책 이 레슨이 끝나지 않기를: 피아니스트 제러미 덴크의 음악 노트(장호연 옮김, 에포크)가 출간되었다이 책의 부록은 제러미 덴크가 추천하는 플레이리스트 목록이다. 이 목록에도 베토벤의 명곡들이 포함되어 있다.

 






* 451




 

 베토벤은 아르놀트 쇤베르크처럼 숫자에 신경 쓰지 않았다. [주6]


[주6] 쇤베르크(Arnold Schonberg)는 불길한 숫자로 알려진 13을 무척 두려워했다. 그는 자신이 13일에 태어난 것을 불길한 징조로 여겼다. 13 공포증이 심한 쇤베르크는 악보에 쪽수를 적을 때 13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쇤베르크는 713일 금요일에 세상을 떠났다.





* 482





 웨일스 시인 딜런 토머스가 말한 빛의 스러짐” [주7]


[주7] 빛의 스러짐(The dying of the light)’이 나오는 딜런 토머스(Dylan Thomas)의 시는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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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예스카스 2025-04-22 1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멋진 후기를 남겨주시다니!
장바구니 고민은 끝입니다^^

cyrus 2025-04-27 22:57   좋아요 0 | URL
생김새는 벽돌 책이지만, 베토벤의 삶과 작곡 비화, 베토벤 연주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어서 어렵지 않을 거예요. ^^
 
블루 베이컨 - 프랜시스 베이컨의 파란색과 함께 통과하는 밤 미술관에서의 하룻밤
야닉 에넬 지음, 이재형 옮김 / 뮤진트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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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붓질은 포악하다

그는 붓을 휘두르면서 모델의 얼굴을 때린다







붓에 맞은 입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찌그러진다

검정, 회색, 빨간색이 불길하게 뒤섞인 피부는 거칠거칠하다

베이컨이 그림을 그릴 때 자주 사용한 빨간색은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처럼 보인다.







베이컨의 초상화와 인물화를 만나게 되면 지옥도(地獄圖)가 떠올린다.고어(gore: )’로 가득한 그림들이 유명해지자, 대중은 베이컨을 폭력의 화가로 기억한다.


하지만 베이컨은 자신의 그림에 폭력성이 드러난다는 대중의 감상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본인은 즐거운 그림을 그렸다고 말한다. 그는 야만과 전쟁이 판치는 이 세상이야말로 자신의 그림보다 더 폭력적이라고 비판한다베이컨의 일침은 틀리지 않았다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희곡 닫힌 방에서 타인은 지옥이라고 했다. 베이컨은 한술 더 떠서 지옥은 바로 이 세상이야!”라고 말했다.


베이컨은 자신의 그림에 나름대로 매력(?)이 있다고 공공연히 주장했다. 그러나 어두침침한 그의 그림은 볼 때마다 무섭다. 여기서 베이컨 그림의 기괴한 매력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은 고민한다. 폭력잔혹. 살벌한 단어를 쓰지 않고, 베이컨의 그림이 덜 무섭게 보이도록 대중에게 소개할 수 있을까? 이러한 고민을 해결해 주는 책이 바로 블루 베이컨(Blue Bacon)이다.


이 책을 쓴 야닉 에넬(Yannick Haenel)은 청소년 때부터 베이컨을 좋아한 작가다. 그는 베이컨의 작품들이 전시된 퐁피두 센터(Pompidou Center), 그것도 한밤중에 혼자 관람한다. 좋아하는 화가의 작품들을 혼자서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일은 축복이다. 하지만 저자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는 베이컨의 그림들과 함께한 하룻밤이 마치 지옥 한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회상한다.


저자는 베이컨이 만든 지옥의 쓰라린 맛을 느낀 이후로 편두통에 시달린다하룻밤의 그림 감상의 후유증이다하지만 푸른 기운이 감도는 베이컨의 또 다른 그림을 보자마자 그의 머리를 콕콕 찌르던 고통이 말끔히 사라진다. 편두통에 짓눌린 저자의 마음을 치유해 준 베이컨의 그림은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Water from a Running Tap)이다이 그림은 베이컨이 세상을 떠나기 십 년 전인 1982년에 완성되었다<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난폭한 베이컨이라는 수식어가 나오게 만든 검은색이 가득한 그림들과 다르게 아주 평범하다. 노란색 배경 한가운데에 푸른색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만 그려져 있다. 저자는 베이컨의 그림에서 튀어나오는 파란색에 흠뻑 젖는다. 



 나는 입을 크게 벌리고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 앞에 서 있었다. 물은 더할 나위 없이 시원했다. 물의 시원함은 우리를 가득 채워준다. 그 시원함 덕분에 유익한 빛이 내 머리 주위로 흘러들었다. 나는 점점 더 잘 볼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숨도 잘 쉬었다.


(47쪽)



그는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를 오랫동안 바라보면서 기분 좋은 청량함을 느낀다저자는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파란색상처 없는 나라로 이끄는 빛으로 비유한다<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파란 천국이다


블루 베이컨 그림 없는 미술 책이다저자는 그림을 보여주지 않고, 오로지 단어로 이미지를 설명한다이 책을 펼치자마자 베이컨의 기괴한 그림들이 불쑥 튀어나와 독자를 놀라게 하는 일은 없다유명한 블랙 베이컨’을 만나기 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베이컨의 파란색 그림을 먼저 알고 있으면 좋다. 그러면 검은색에 가려져 있던 색들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베이컨은 붓으로 자신과 인물들을 분해했다블루 베이컨베이컨의 삶에 칠해진 검은색을 분산시켜서 다채로운 매력을 보여주는 프리즘이다.






<cyrus의 주석>

 



* 21




 

 데이비드 실베스터와의 인터뷰[1]에서 프랜시스 베이컨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곧 살아있는 사람을 잡기 위해 덫을 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 42




 

 데이빗 실베스터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흠잡을 데 없이그려진 자신의 가장 완벽한 작품으로 언급한다.


[1] 데이비드 실베스터, 주은정 옮김, 나는 왜 정육점의 고기가 아닌가?: 프랜시스 베이컨과의 25년간의 인터뷰 (디자인하우스, 2015).





* 51




 

 앙토냉 아르토반 고흐의 까마귀가 지구를 황폐화하는 악령에 맞서기 위해 세워진 허수아비라고 확신했다. [2]

   

[2] 앙토냉 아르토, 이진이 옮김, 사회가 자살시킨 자, 반 고흐 (읻다, 2023), 조동신 옮김, 나는 고흐의 자연을 다시 본다: 사회가 자살시킨 사람 반 고흐 (도서출판 숲, 2003, 절판)





* 58




 

 우리는 우리 삶의 질료가 갇혀 있는 이 같은 고통을 인식하지만, 베이컨은 그것에 예술이라는 형식을 부여함으로써 그것을 견딜 수 있는 경험으로 변화시킨다. 어느 정도 예민함의 차원에서는 사는 것이 참을 수 없지만, 것의 극히 짧은 순간들을 우리에게 전달하는 그림은 그 고통에 굴하지 않고 우리를 풍요롭게 해준다. 랭보 나는 나의 풍요가 어디서나 피로 얼룩졌으면 좋겠어라는 싯구[3]에 그것이 있다.

 

[3] 시구(詩句)’가 올바른 표현이다. 인용된 시구가 있는 시의 제목은 착란 I: 어리석은 처녀. 출전: 랭보, 김현 옮김, 지옥에서 보낸 한 철 (민음사, 2016).





* 78




 

 조르주 바타유는 라스코의 벽을 마주하고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은 자기가 이 풍요로움의 놀라운 광채를 위해 태어났다고 느낀다.”

   

[4] 조르주 바타유, 차지연 옮김, 라스코 혹은 예술의 탄생 / 마네 (워크룸프레스, 2017).





* 119




 

 질 들뢰즈는 그가 베이컨에 관해 쓴 저서[5]에서 다음과 같이 외친다. “불쌍한 고기 같으니!” 이보다 더 진실한 외침은 없다. 그날 밤 베이컨의 그림들은 이렇게 소리쳤다.


[5] 질 들뢰즈, 하태환 옮김, 감각의 논리 (민음사, 2008).





* 128




 

 랭보의 시에 등장하는 사랑의 열쇠라는 시구[주6]는 나를 꿈꾸게 한다.

   

[주6사랑의 열쇠이라는 제목의 시에 나온다. 출전랭보김현 옮김지옥에서 보낸 한 철 (민음사, 2016).





* 163




 

필립 솔러스 필립 솔레르스(Philippe Sollers)





* 166




 

 15세기에 회화 예술을 이론화한 레오 바티스타 알베르티는 회화란 분수의 표면을 예술적으로 껴안는 것이라고 썼다. [주7]


[7]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 김보경 옮김, 회화론 (기파랑에크리, 2011), 노성두 옮김, 알베르티의 회화론 (사계절, 2002년, 절판).





* 177~178







 

 1953년에 그려진 이 그림은 여러 개의 제목을 가지고 있는데, 레슬링 장면을 기록한 뮤브리지의 사진에서 영감을 받아 두 인물또는 레슬러라는 제목으로 불린다.

 

뮤브리지 마이브리지(Eadweard James Muybridge)

 




* 217




 

 앙드레 브르통<나드자>(Nadja)[주8] 서두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보다 누가 나를 괴롭히는가?”라는 질문을 더 선호했다.

   

[주8앙드레 브르통, 오생근 옮김, 나자 (민음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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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라이프 - 20세기 주거건축의 사상을 찾아서
이냐키 아발로스 지음, 엄지영 옮김 / 이유출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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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철학자를 건축가로 비유하면, 철학자가 쓴 책은 철학으로 만든 집의 설계도다. 철학자는 사람들을 철학의 집으로 초대한다. 철학의 집은 편안한 보금자리가 아니다. 철학의 집은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들을 위한 거푸집이다. 마음에 드는 철학 거푸집을 발견한 사람이 그 속에 들어가면 철학자가 된다. 철학 거푸집에 거주하는 철학자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또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스스로 생각한다.








니체(Nietzsche)과거에 만들어진 철학의 집들을 망치로 부수는 철학자. 그의 책 아침놀철거 서약서. 니체는 플라톤(Plato) 이후에 활동한 철학적 건축가들을 비판한다. 철학적 건축가들이 철학의 집을 지으면서 가장 많이 사용한 재료는 도덕이다. 도덕으로 만든 집에 오래 거주한 사람은 도덕에 복종한다. 도덕을 너무 믿고 따르면 개인의 자유는 사라지며 욕망은 억눌린다도덕은 삶의 주인이 아니다. 니체는 도덕 철학의 집들을 철거한 다음에 도덕이 무너진 그 자리를 쟁기로 갈아엎는다. 니체는 자신만의 철학의 집을 세우기 전에 땅속에 구멍을 뚫는작업을 시도한다. 그는 자신의 철학을 도덕에 대한 신념을 파내는 작업이라고 했다. 도덕의 집이 무너져도 흩어진 잔해들은 또다시 도덕의 집을 만들기 위한 재료가 된다.


니체는 철학적 건축가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니체가 열심히 쟁기질한 땅에 새로운 철학적 건축가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도덕이 주인인 철학의 집이 아닌 자유로운 개인이 주인이 되는 철학의 집을 만들었다굿 라이프: 20세기 주거 건축의 사상을 찾아서니체 이후에 활동한 20세기 철학적 건축가들을 소개한 책이다20세기의 철학적 건축가들은 다수가 선호하는 좋은 집의 조건을 거부한다. 좋은 집4인 이상 가족이 살 수 있어야 하며, 일상생활에 불편한 점이 없도록 만들어진 공간이다. 그러나 20세기 철학적 건축가들이 설계한 집은 오로지 건축가를 위한 공간이다. 주로 많이 사용된 재료는 건축가의 상상력이다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영향을 받은 건축가들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로서의 개인의 정의를 의심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건물은 형태가 없으며 가족도, ‘라는 개인도 살지 않는다


책은 총 일곱 군데 철학의 집을 소개한다. 독자들이 제일 먼저 방문하는 집은 차라투스트라의 집이다. 차라투스트라(Zarathustra)는 니체 철학의 핵심 개념인 초인(Übermensch)을 상징하는 존재. 독일의 건축가 미스 반 데 로어(Mies van der Rohe)8년 동안 중정이 있는 집의 설계도를 만들었다. 중정이 있는 집의 주인은 도덕을 거부하고, 자아를 변화하는 일에 전념한 차라투스트라다니체 철학을 좋아하는 거주자라면 이 집을 거푸집으로 삼을 수 있다.


니체의 망치에 의해서 도덕 철학의 집이 무너진 이후에 철학을 잊은 사람들은 과학과 공업 기술로 만들어진 집을 선호했다. 과학 지식이 적용된 공법, 실증주의적 건축 방식이 유행하면서 저비용으로 많은 양의 공장과 아파트가 들어섰다. 실증주의적 건축술의 목표는 대량 건설, 표준화된 설계실증주의가 가져다준 혜택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과거보다 풍족한 삶을 누리게 되었지만, 삶의 여유를 잃어버렸다니체는 실증주의를 비판한 철학자다. 미스 반 데 로어가 구상한 차라투스트라의 집굿 라이프에 첫 번째로 소개된 반실증주의적 건축물이다.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모리스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 Ponty) 실증주의에 반대하는 철학인 현상학을 만들었다. 현상학은 개인의 경험을 분석하는 실증주의와 다르게 개인의 경험을 그대로 묘사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현상학자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은 객관성이 아닌 주관성이다그래서 현상학자들은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사물을 한데 모아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콜라주(collage) 또는 브리콜뢰르(bricoleur)을 선호한다. 어린이는 자신만의 시선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 줄 안다. 따라서 주관성이 강한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현상학적 집에 입주할 수 있.


굿 라이프실제로 만들어진 집도 나온다팩토리(Factory)는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작업실이다. 팩토리는 무의식과 욕망을 탐구한 프로이트(Sigmund Freud)와 계급 없는 세상을 꿈꾼 마르크스(Karl Marx)가 혼합된 건축물이다. 이곳은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개성과 욕망이 억눌린 채 살아온 예술가와 연예인들은 팩토리에 자주 드나들었다. 팩토리는 서로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는 축제의 장이다.


집을 짓는 일 또한 철학을 하는 일과 같다. 집과 철학은 좋은 삶을 실현하기 위한 뼈대다. 뼈대가 튼튼해야 외부의 유혹과 세파에 쉽게 흔들리지 않으면서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잘 만든 집에 오래 살다 보면 한계와 문제점이 눈에 보인다. 철학적 건축물도 마찬가지다. 굿 라이프는 책에 소개된 철학적 건축물들에 입주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과대광고를 하지 않는다. 책은 철학적 건축물들의 한계도 밝힌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그 집에 인간이 산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철학자의 언어와 사유가 스며든 집을 본격적으로 탐구한 철학자다. 하이데거가 생각한 실존주의자의 집그 집에 사는 사람의 내면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가부장적 권위를 중시하는 실존주의자가 집주인이 되면 그 집 안에 딱딱한 수직적 문화가 흐른다현상학적인 집에 설계자와 거주자의 취향이 반영된 장식품이 많다. 겉만 화려한 현상학적 집은 실용성을 중시하는 거주자들에게 추천할 수 없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집은 건축가의 실험 정신이 많이 반영된 가상 공간이다. 현실 도피에 가까운 과도한 실험 정신은 비현실적인 집을 양산할 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마저 파괴한다.


굿 라이프집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시선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좋은 삶의 조건과, 그렇게 살기 위해 우리가 필요한 좋은 집의 조건 또한 다양하다. 철학은 집을 만들 때 쓸 수 있는 좋은 재료. 그렇지만 현실을 외면하고, 교조주의적 성향이 강한 철학으로 지어진 집은 부실하다. 불량한 사상(思想)이 가득한 집은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이 없는 사상누각(沙上樓閣)이다.






※ cyrus의 정오표




* 65




 

 실존적인 집이 가부장적 권위의 체계와 연결되며, 자기 중심화되고 초월적이며 수직적인 공간 조직을 갖는다는 사실을 명학하게 보여준다.



명학하게 명확하게






* 93쪽 각주 





프레더릭 윈즐로 테일러(1856~1925) [주]



[] 테일러의 사망 연도는 1915이다.





* 133쪽 각주






조르지오 데 기리코 조르지오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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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아틀리에
실비 제르맹 지음, 박재연 옮김 / 마르코폴로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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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렘브란트(Rembrandt), 페르메이르(Vermeer),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그들 이름에 항상 따라오는 꾸밈말이 있다. 빛의 화가. 이 세 사람은 그림을 그릴 때마다 세 개의 팔레트를 사용했다. 화가들의 손에 여러 색깔 물감으로 수놓은 수채화용 팔레트가 있다. 나머지 두 개의 팔레트는 눈이다. 빛의 화가는 물감이 정해준 색보다는 빛이 빠르게 움직이면서(빛의 속도는 1초에 지구 둘레의 일곱 바퀴 반을 돌 정도로 엄청 빠르다) 생기는 찰나의 색을 좋아한다. 신비한 빛의 효과가 만든 색은 물감에 없는 색이다. 아주 특별한 색을 발견한 빛의 화가는 두 눈에 물감을 풀어 빛과 섞는다. 작고 동그란 팔레트에서 화가 본인만 느낀 빛 색이 태어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학문과 예술의 신은 총 아홉 명이다. 제우스(Zeus)기억의 신 므네모시네(Mnemosyne) 사이에 태어난 아홉 자매다. 학문과 예술을 사랑하는 아홉 자매를 무사이(Mousai)라고 부른다. 무사이는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를 가리키는 뮤즈(Muse)’의 어원이다. 재미있게도 아홉 자매 중에 그림을 그리는 신이 단 한 명도 없다. 따라서 화가의 뮤즈라는 표현은 어색하다빛은 투명한 뮤즈. 빛은 무한해서 투명하다. 빛은 실체가 기묘해서 투명하다. 빛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입자와 파동 형태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만약에 화가들의 재능을 보호하는 뮤즈가 있다면, 그녀는 바로 이다. 뮤즈가 된 빛은 얼굴이 두 개여야 한다.


예술의 신이 되지 못한 빛은 화가들이 즐겨 쓰는 화구(畵具)로 전락했다. 화구의 주인은 화가다. 빛은 그림을 그릴 때 쓰는 천연 도구가 아니다. 빛은 무한한 아틀리에(작업실)’프랑스 작가 실비 제르맹(Sylvie Germain)은 위대한 화가들을 숭배하기 위해 쓰는 표현인 빛의 거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는 빛의 거장이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빛은 인류보다 제일 먼저 태어났다. 빛은 여전히 신비스럽고 불가사의하다. 최초의 화가가 나타나기 전에 빛의 아틀리에가 생겼다빛의 주인은 화가가 아니다. 반대로 되어야 한다. 화가의 주인은 빛이다


실비 제르맹의 빛의 아틀리에미술 감상문 또는 예술 에세이에 가깝다. 그녀가 만난 세 명의 화가 모두 빛의 거장이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 페르메이르, 조르주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 아차, 실수했다! ‘빛의 거장이 아니라 빛의 아틀리에를 빌려 쓴 거장이다실비 제르맹은 모든 화가가 빛의 제자라고 말한다


프란체스카, 페르메이르, 라 투르는 빛을 경배한 동방박사. 그들은 밤의 마구간에서 태어난 빛을 만나기 위해 빛의 아틀리에로 향했다. 세 화가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보물을 빛에 바친다. 빛의 도움을 받아 그림을 다 그리고 나면 일상으로 돌아갔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꿈>

1466년경



 

프란체스카는 수학자. 그가 빛에 바친 선물은 기하학이다. 그는 기하학을 이용해 빛과 형상, 공간을 정교하게 배치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천문학자>

1668년경



 

페르메이르가 가져온 선물은 철학이다. 페르메이르는 수수께끼로 남은 화가다. 그가 남긴 그림들도 수수께끼로 칠해져 있다. 그가 동시대에 활동한 철학자들이 쓴 책을 읽었는지 알 수 없다. 실비 제르맹은 페르메이르의 작품인 <지리학자> <천문학자>를 감상하면서 진리를 사랑하는 페르메이르를 상상한다.

   






조르주 라 투르

<타오르는 불꽃의 마리아 막달레나>

1640년경



라 투르는 까다로운 선물을 가지고 왔다. 이 선물의 정체는 어둠이다. 라 투르의 어둠은 빛을 집어삼키는 무시무시한 암흑이 아니다. 언제 사그라질지 모르는 희미한 빛을 더욱 도드라지게 하는 역할을 한다. 라 투르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지휘봉이 된 붓으로 어둠에 지시한다. “여기 빛의 아틀리에에 들어오는 너희들은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주1] 빛을 위해서 양보하라.” 빛의 아틀리에에 들어온 어둠은 겸손하다. 마침내 조화를 이룬 빛과 어둠은 캔버스 앞에서 지휘하는 라 투르의 붓에 맞춰 야상곡을 연주한다. 라 투르의 그림은 눈으로 느끼는 야상곡이다.


모든 화가가 빛의 아틀리에를 이용한 시간을 (작업실 대여비)으로 환산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 나온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의 경매가를 웃도는 수준이다. 화가들은 빛의 아틀리에를 무료로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 빛의 아틀리에를 돈 주고 사용하면 화가들은 빚쟁이가 된다. 빛은 화가들을 위해 아낌없이 아틀리에를 빌려준다. 빛을 빌려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은 위대한 빛쟁이.





[주1] 패러디한 문장의 원문은 단테(Dante)신곡지옥 편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내 앞에는 창조된 것은 영원한 것들뿐,

나는 영원히 지속되니, 여기 들어오는

너희들은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지옥> 37~9, 35, 김운찬 옮김, 열린책들, 2022)





* 65쪽 각주





마르셀 프루스트, 갇힌 여인 [주2]



[2] 갇힌 여인7로 이루어진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대하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5부 제목이다.





* 72

 




 블랑쇼<죽음>에서 비범함은 내가 죽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라고 썼다.[3] 페르메이르의 작품은 가시적인 세계, 빛과 색의 끝, 즉 보이지 않는 세계와 밤의 가장자리에서 멈춘다.



[3]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죽음>죽음의 선고(고재정 옮김, 그린비, 2011)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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