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전자책 출판사 페가나 북스2011년 아일랜드의 작가 로드 던세이니(Lord Dunsany)의 소설 페가나의 신들을 시작으로 해서 올해까지 11권의 던세이니 작품을 번역 출간했다. 작품 목록은 다음과 같다.

 

 

 

 

 

 

 

 

 

 

 

 

 

 

 

 

 

 

 

 

 

 

 

 

 

 

 

 

 

 

 

 

 

 

 

 

 

* [e-Book] 페가나의 신들(201110)

* [e-Book] 시간의 신들(20126)

* [e-Book] 웰러란의 검(20133)

* [e-Book] 몽상가의 이야기(20138)

* [e-Book] 판의 죽음(201411)

* [e-Book] 경이의 서(20156)

* [e-Book] 경이로운 이야기(20171)

* [e-Book] 세 반구 이야기(201711)

* [e-Book] 꿈의 땅에서 온 이야기(20184)

 

 

 

 

 

 

 

 

 

 

 

 

 

 

 

 

 

* [e-Book] 엘프랜드의 공주(20198)

* [e-Book] 로드 던세이니 단편선(20198)

 

 

 

 페가나의 신들시간과 신들은 단편집이며 완역본이다. 웰러란의 검, 몽상가의 이야기, 판의 죽음, 경이의 서, 경이로운 이야기, 세 반구 이야기, 꿈의 땅에서 온 이야기도 단편집이지만 몇몇 작품은 번역되지 않았다. 예전에 필자가 던세이니의 단편집에 수록된 이야기를 목록 형식으로 정리한 글을 쓴 적이 있다. 던세이니의 단편소설 목록을 알고 싶으면 필자의 졸문을 참고하면 된다

 

 

 

※ 「풍요 속의 몽상(2017422)

https://blog.aladin.co.kr/haesung/9295309

 

 

 

로드 던세이니 단편선9편의 단편집에 있는 모든 이야기를 수록한 합본이다. 던세이니는 단편뿐만 아니라 장편, , 희곡, 에세이까지 쓴 다작 작가이다. 엘프랜드의 공주(The King of Elfland’s Daughter)1924년에 발표된 장편 소설이다. 페가나 북스 공식 홈페이지에 이 소설을 간략하게 소개한 내용이 있는데, 그 내용에 보면 던세이니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라고 적혀 있다. 혼자서 던세이니의 작품을 번역하고 편집한 엄진 씨가 착각한 거로 보이는데 엘프랜드의 공주두 번째장편소설이다. 던세이니의 첫 번째 장편은 1922년에 발표된 환상소설 Don Rodriguez: Chronicles of Shadow Valley.

 

엘프랜드의 공주공주를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왕자(기사)를 주인공으로 한 중세 문학의 세계관이 반영된 소설이다. (Erl) 주민을 이끌어갈 차기 군주인 알베릭(Alveric) 왕자는 엘프랜드 왕국의 공주 리라젤(Lirazel)과 결혼하라는 부왕의 명령을 받는다. 엘프랜드는 인간 세상과 차원이 다른 요정 왕국이다. 엘프랜드 사람들의 시간 개념은 인간이 생각하는 시간 개념과 다르다. 엘프랜드에서의 하루(24시간)는 인간 세상의 10년과 같다. 엘프랜드에서는 시간이 흐른다라는 인식 자체가 없다. 그곳에는 영원한 아름다움이 존재하며 엘프랜드 사람들은 변화와 새로운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리라젤은 아름다움을 손상시키는(노화) 시간의 힘을 두려워한다.

 

 

 

 

 

 

 

 

 

 

 

 

 

 

 

 

* 프리드리히 드 라 모테 푸케, 차경아 옮김 운디네(지만지, 2013)

 

 

 

 

 

 

 

 

 

 

 

 

 

 

 

 

* [개정판] 차경아 옮김 환상문학 걸작선 1(자음과모음, 2013)

* [구판 절판] 차경아 옮김 완역판 낭만동화집 1(자음과모음, 2006) [주1]

 

 

 

 

 

 

 

 

 

 

 

 

 

 

 

* [절판] 프리드리히 드 라 모테 푸케, 차경아 옮김 물의 요정 운디네(문예출판사, 2006)

* 프리드리히 드 라 모테 푸케 외 물의 요정의 매혹(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2007) [주2]

 

 

 

 

인간을 사랑하는 요정(정령)은 오랫동안 유럽에서 신화, 전설 등에 자주 등장해왔다. 이 인물 설정은 낭만주의 작가들에게 영감을 준 모티프이기도 하다. 가장 유명한 요정은 운디네(Undine). 운디네는 강이나 연못에 사는 물의 요정이다. 그녀는 영혼을 가지지 않았지만, 인간을 사랑해서 아이를 낳으면 영혼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 세상에 정착해서 살아가려는 요정에 제약이 따른다. 운디네와 결혼한 인간이 그녀를 욕하면, 그녀는 물이나 연못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이별이 끝은 아니다. 이별보다 더 가슴 아프고 잔인한 비극이 나온다. 운디네의 전 남편이 재혼을 하면 운디네가 다시 나타나 그의 목숨을 빼앗는다.

 

독일의 낭만주의 작가 푸케(Friedrich de la Motte Fouque)운디네는 물의 요정과 인간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다. 이 작품이 보여준 이성영역의 인간(남성)감성영역의 요정(여성)의 갈등과 실패한 사랑은 후대 작가들의 동화 작품에 영향을 주었고, 이 설정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동화가 바로 안데르센(Andersen)인어 공주. 엘프랜드의 공주의 알베릭과 리라젤의 사소한 갈등 역시 운디네에 나오는 비극적인 설정과 유사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설정은 독일 작가 푸케의 운디네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만들었다기보다는 요정이 나오는 모국(아일랜드)의 전설과 민담에 영감을 받았다고 보는 게 옳다.

 

 

 

 

 

 

 

 

 

 

 

 

 

 

 

 

 

* [e-Book] 페가나 무크 Vol. 3(2019)

 

 

 

엘프랜드의 공주로드 던세이니 단편선을 읽기 전에 무료로 볼 수 있는 페가나 무크 Vol. 3을 먼저 보는 것이 좋다. 던세이니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요약해서 정리한 글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엄진 씨(무크지 본문에는 엄정진으로 표기되어 있다. 필명인가 아니면 본명인가?)가 추천하는 던세이니 단편 10이 소개되어 있다.

 

 

 

 

 

[주1] 구판에 오자 몇 개가 보인다.

 

[주2] 물의 요정을 주제로 한 단편소설과 시가 다섯 편씩 수록되어 있다. 다섯 편의 소설과 시를 쓴 사람 모두 독일인(루트비히 티크, 괴테, 푸케, E. T. A. 호프만, 에두아르트 뫼리케,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 하인리히 하이네, 아이헨도르프, 고트프리트 켈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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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09-17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꼭 전자책으로만 책을 내는지 모르겠어.
전자책이 싸고 좋은 점도 있겠지만
나 같은 구식인은 전자책 별로야.
다른 출판사에서 종이책으로 내주려나?
하긴 난 어차피 종이책으로 나와도 못 읽을 것 같긴하지만
종이책으로 안 내주니 괜히 심술이 나려고 해.

cyrus 2019-09-17 16:11   좋아요 1 | URL
종이책으로 나오기 힘든 작품은 전자책으로 나올 수밖에 없어요. 종이책 만드는 출판사 대부분은 흔히 ‘고전’이라고 알려진 대중성 있는 작품들을 선호해요. 그래야 많이 팔릴 수 있으니까요. 던세이니의 전 작품을 종이책으로 나온다면 사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예요. 출판사는 인지도가 낮은 작품을 내는 것을 꺼려해요. 그래서 1인 전자책 출판사들이 대단한 거예요. 한 사람이 안 팔리는 작품을 직접 번역하고 편집하고 출판 홍보를 하니까요. 그들도 알아요. 자신이 만든 소설이 너무 오래됐고 재미없다는 걸요. 그렇지만 문학적 가치가 있어서 포기하지 않고 번역하고 책을 만들어요.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출판사의 책에 리뷰나 페이퍼가 없으면 안타까워요.
 

 

 

지난달 우주지감 독서 모임 지정 도서는 셰익스피어(Shakespeare)의 희극 한여름 밤의 꿈이었다. 2011년에 이 작품을 처음 읽었다. 8년 만에 다시 읽게 되었다. 20대 때 셰익스피어의 작품 리뷰를 몇 편 쓴 적이 있다. 오랜만에 과거에 썼던 글을 읽어보니 뜯어고쳐야 할 문장들이 많이 보였다. 또 한편으로는 글에서 드러나는 20대 때의 내 모습이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최종철 옮김 한여름 밤의 꿈(민음사, 2008)

* [품절] 윌리엄 셰익스피어, 이윤기 · 이다희 옮김 한여름 밤의 꿈(달궁, 2005)

 

 

 

 

8년 전에는 최종철 교수의 번역본(민음사)을 읽었다면, 올해는 이윤기 씨와 그의 따님 이다희 씨가 함께 번역한 번역본(달궁)도 같이 읽었다. 두 권의 책 모두 분량이 작다.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다면 하루에 두 권을 동시에 읽을 수 있다. 국내에 출간된 한여름 밤의 꿈번역본 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민음사 판본이다. 그렇지만 이 책에 전체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다.

 

 

 

 

 

 

책 앞표지에 있는 그림 제목은 ‘The Awaking of Adonis’이다. 이 제목을 우리말로 풀어보면 잠에서 깨어나는 아도니스. 그림을 그린 사람은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 회원으로 활동한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 라파엘 전파의 영국 화가들은 성경이나 전설, 신화 속 한 장면을 즐겨 그렸다. 그래서 라파엘 전파의 그림은 화려한 색으로 꾸며진 한 편의 이야기. 라파엘 전파 화가들은 신화적인 주제를 현실감 있게 표현하려고 했다.

 

아도니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름다운 소년이다.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는 자신보다 한참 어린 아도니스에 푹 빠져버린다. 그녀는 아도니스를 독점하고 싶어서 그를 상자 속에 넣고 감춘다. 그런 다음 아도니스가 있는 상자를 저승의 왕 하데스(Hades)의 아내 페르세포네(Persephone)에게 맡겨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페르세포네도 아도니스의 아름다운 외모에 매료되어 아프로디테에게 아도니스를 돌려주기를 거부한다.

 

소년을 둘러싼 두 여성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제우스(Zeus)가 직접 중재에 나선다. 제우스의 판결에 따르면 아도니스는 일 년의 3분의 1을 페르세포네와 함께 저승에서 함께 살고, 나머지 3분의 1은 아프로디테와 함께 지상에서 생활한다. 그리고 남은 인생은 아도니스 본인이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다. 사냥을 좋아한 아도니스는 저승보다는 지상에서 생활하는 것을 선호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나머지 삶 역시 아프로디테와 함께 보낸다. 아프로디테는 혼자서 사냥을 즐기는 아도니스에게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도니스는 사냥하다가 멧돼지 이빨에 찔려 죽는다. 아도니스의 허망한 죽음에 비탄에 빠진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가 죽어가면서 흘린 피에 신의 음료인 넥타르(Nectar)를 붓는다. 아도니스의 피가 흘린 자리에 붉은빛의 꽃이 피어나는데, 그 꽃이 바로 아네모네(Anemone).

 

 

 

 

 

 

 

 

 

 

 

 

 

 

 

 

 

 

*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도서출판 숲, 2017)

* 윌리엄 셰익스피어 비너스와 아도니스(전예원, 2011)

* 윌리엄 셰익스피어 비너스와 아도니스(시와진실, 2003)

 

 

 

아도니스 이야기는 작가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인기 소재였다. 아도니스 이야기를 언급한 가장 오래된 문헌은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Ovidius)변신 이야기. 셰익스피어는 비너스와 아도니스(Venus & Adonis)라는 제목의 장시를 썼다. 비너스는 아프로디테의 영어 이름이다. 다만 그리스 신화와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가 있다. 셰익스피어의 장시에 묘사된 아도니스는 아프로디테의 구애에 부담스러워 한다. 셰익스피어는 아도니스를 어른의 사랑을 잘 모르는 어린아이로 묘사했다.

 

워터하우스의 그림을 살펴보자. 아도니스가 누운 자리 주변에 붉은 아네모네가 피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도니스에게 다가가는 여성은 아프로디테다. 아네모네 한 송이에 손을 내민 아이는 아프로디테의 아들 에로스(Eros). 화살(한 번 맞으면 각각 사랑 또는 혐오의 감정이 생기는 두 종류의 화살이 있다)이 담겨진 화살집을 보면 알 수 있다. 아도니스는 죽음이라는 깊은 잠에 빠진 상태다.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의 피가 남아있는 자리에 신주를 부어 아도니스를 눈부시게 아름다운 꽃으로 다시 깨어나게(awaking) 만든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허종 옮김 로미오와 줄리엣(동인, 2016)

* 윌리엄 셰익스피어, 서경희 옮김 로미오와 줄리엣(을유문화사, 2016)

* 윌리엄 셰익스피어, 최종철 옮김 로미오와 줄리엣(민음사, 2008)

 

 

 

 

한여름 밤의 꿈에 아도니스와 관련된 내용이 없다. 아도니스와 아프로디테가 나오는 그림이 어째서 한여름 밤의 꿈표지 그림이 되었는지 의아하다. 한여름 밤의 꿈에 나오는 아테네의 품팔이꾼들은 직접 공연을 준비하고 연기를 한다. 그들이 공연하려는 작품은 피라모스(Pyramus)와 티스베(Thisbe) 이야기다. 이 이야기도 변신 이야기에 언급되어 있다. 피라모스와 티스베 이야기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원형이다.

 

 

 

               

 

 

피라모스와 티스베는 벽에 난 구멍을 통해 서로의 모습을 확인하고 사랑의 대화를 주고받는다. 워터하우스는 피라모스의 말을 듣기 위해 벽에 난 구멍에 귀를 기울이는 티스베의 모습을 그렸다. 이 그림이 한여름 밤의 꿈표지 그림에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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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1 1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9-01 15:1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자세하게 쓰기 귀찮아서 그냥 간단하게 ‘품팔이꾼’이라고 적었어요. 이윤기 씨가 그렇게 썼어요. ^^

카알벨루치 2019-09-01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벽에 난 구멍에 말을 하고 귀를 기울이는 장면 영화 <화영연화>가 연상됩니다

cyrus 2019-09-01 15:17   좋아요 1 | URL
카알벨루치님도 눈치 채셨군요. 독서모임 멤버 중에 영화를 많이 본 분이 계세요. 그 분도 피라모스와 티스베 이야기를 보고는 <화양연화>를 언급했어요. ^^
 
플럼번 달섬 세계고전 8
제시 레드먼 포셋 지음, 박재영 옮김 / 달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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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면서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한반도에 살면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인종 문제’이다. 한국인들은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단일 민족’이라고 배워 왔고, 이것을 또한 자랑스럽게 생각하도록 교육받았다. 하지만 한국인이 외국에 가면 ‘유색인’이라는 이유로 인종 차별을 당한다. 우리나라가 몇 년 전부터 다문화 국가가 되었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인종 차별이 심각하지 않다고 낙관하는 것은 섣부르다고 생각한다. 우리 주변에서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을 보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 그러나 학교에 다닌다고 해도 아이들의 절반 이상이 학교에서 차별을 느낀 적이 있다고 한다. 피부색으로 인한 (동급생과 교사의) 놀림, 타민족 및 문화에 대한 교사의 편견 등이 그 원인이다. 한국인도 아시아계 유색인인데 우리나라에 이주해온 다른 아시아계 유색인들을 무시하고 차별한다. 예를 들면 3D 업종에서 근무하는 이주노동자들은 건강 위험성이 큰 분야에서 일하고 있음에도 의료적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이주노동자들은 우리나라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지만, 임금 체불과 인권 유린 등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는다. 한국인의 유색인 차별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교묘하게 작용하고 있다.

 

유색인을 차별하는 우리 사회에서 백인은 특별대우를 받는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비(非)백인에게 인종 차별적 시선을 보낸다. 특히 흑인이나 동남아 출신 사람들에게 그렇다. 이들이 지하철을 타면 옆자리에 앉는 것조차 꺼린다. 반면 백인에게는 유독 친절하게 대한다. 우리나라를 여행하는 외국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모 방송 프로그램에 유럽 백인 여성이 출연했다. 그녀는 지하철 좌석에 앉았고, 옆에 있던 할머니는 그녀에게 영어로 말 걸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흰 피부의 여성을 ‘미국 여성’인 줄 알고 대화를 시도한 것이다. 유럽인 여성은 할머니에게 영어를 하지 못한다고 대답하면서 자신은 미국인이 아니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 활동한 혼혈 연예인 또는 그들의 가족은 대부분 백인 출신이다. 백인계 혼혈인은 선망의 대상이다. 이들은 남부럽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나, 대부분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영어 콤플렉스’가 있는 ‘토종’ 한국인을 오히려 주눅 들게 한다. 미국의 주간지 <타임(Time)>이 선정한 ‘영향력 있는 10대’에 포함된 한국인 최초 흑인 모델 한현민은 학창 시절에 피부색 때문에 차별받은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너, 혼혈이냐?”고 놀림 섞인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다. 유럽계 백인과 아프리카계 흑인이 만나서 태어난 혼혈인은 ‘혼혈인 차별’과 ‘흑인 차별’이란 이중 차별을 겪는다. 이 혼혈인이 여성이라면, ‘여성 차별’까지 겪게 된다.

 

최근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선보인 제시 레드먼 포셋(Jessie Redmon Fauset)의 장편소설 《플럼 번(Plum Bun)미국에서 태어난 유색인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제시 포셋은 듀보이스(W. E. B. Du Bois)[주]를 만나 흑인 민권 운동에 참여했다. 그녀는 듀 보이스가 만든 잡지의 편집장을 맡아 흑인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했고, ‘할렘 르네상스(Harlem Renaissance, 미국 뉴욕의 흑인 지구 할렘에서 유행한 흑인예술문화 부흥 운동)로 알려진 1920년대 흑인 문학의 탄생과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플럼 번은 마른 자두가 발라진 구운 빵을 말한다. 플럼 번은 이 소설의 주인공인 유색인 여성 안젤라 머레이(Angela Murray)의 성격을 상징한다. 안젤라는 흑인 아버지와 백인 외모의 유색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장녀이다. 그녀는 어머니를 닮은 하얀 피부지만, 그녀의 동생 버지니아(Virginia)는 까만 피부다. 안젤라는 백인도 아니고, 흑인도 아닌 자신의 어중간한 유색인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면서 성장한다. 그녀는 벌써 어린 나이에 ‘백인 정체성’의 장단점을 파악한다. 안젤라가 생각하는 백인 정체성의 장점은 하얀 피부색 덕분에 백인으로서 행복하게 잘 살아가는 것이다. 반면 단점은 남들 앞에 백인인 것처럼 행동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려면 가족 이외의 사람들에게 자신이 혼혈 유색인이라는 사실을 절대로 공개해선 안 된다. 그래서 안젤라는 뉴욕에서 생활할 때 유색인 정체성을 숨기기 위해 스페인 출신 백인 여성을 떠올리게 하는 가명을 쓴다. 그 당시에 유색인도 흑인과 같이 차별받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어린 안젤라는 시장을 가다가 흑인 아버지와 동생을 만날 뻔했는데, 그녀는 아버지와 동생에게 아는 척하지 않는다. 이러한 안젤라의 태도는 자신을 흑인과 상종하지 않는 백인인 것처럼 철저하게 행동하기 위한 의도적인 ‘패싱(passing)이다.

 

안젤라는 행복한 삶에 대한 욕망이 강하다. 그녀가 원하는 ‘행복한 삶’이란 ‘백인 중산층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안젤라는 백인 남자와 결혼하여 풍족하게 살고 싶어 한다. 그녀의 욕망은 달콤하다. 《플럼 번》의 역자에 따르면 ‘플럼 번’은 안젤라의 달콤한 욕망을 뜻한다. 이 소설에서 안젤라는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그녀는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그녀가 결혼하고 싶은 남자는 흑인을 경멸하는 백인이다. 안젤라는 이 백인 남자가 보는 앞에서 ‘백인 여성’으로 행동하기 위해 또다시 동생의 면전에 대고 무시(패싱)한다. 이처럼 《플럼 번》은 하얀 피부색의 순수혈통 백인을 선호하는 백인우월주의와 인종차별주의를 극복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혼혈 유색인의 위태로운 삶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백인’이 아닌 혼혈 유색인은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없고, 백인과 함께 극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등 여러 부당한 차별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안젤라는 하얀 피부색만 믿고 백인 행세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백인인 척하는 자신의 패싱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고, 자신이 추구한 행복한 삶은 결국 백인이라는 거울에 비친 환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안젤라가 백인 행세를 하면서 바라본 거울은 깨끗하고 참된 거울이 아니라 얼룩이 묻은 더러운 거울이다. 그래서 여기에 자신을 비추더라도 그녀가 보게 되는 것은 하얀 피부가 아니라 ‘백인 정체성’이다.

 

이야기 곳곳에 그 당시에 일어날 법한 인종 차별 상황들이 묘사되어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화가 났던 장면은 미술학교에 다니던 안젤라가 ‘아웃팅(outing, 다른 사람이 당사자 동의 없이 성소수자 또는 차별받는 특정 대상임을 밝히는 행위) 당하는 상황이다.

 

 

 

 모델 그리기 수업이 있는 오후였다. 모델이 들어왔다. 살짝 예쁘면서 심술궂은―다소 음산하고 비열한 기질이 넘치는―얼굴에 키가 작고 늘씬한 편에 속하는 젊은 여자였다. 모델은 안젤라와 시선이 맞닿자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집요하면서 회의적인 눈빛으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일찍이 안젤라와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던 에스더 배일리스였다.

  에스더가 표독스럽게 웃었다. “저기 유대인 여자 옆에, 안젤라 머레이 아닌가요?”

  쉴즈(미술학교 강사-cyrus 주)가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 여자는 유색인이에요. 비록 그녀가 말하지 않았겠지만, 그렇지만 나는 알아요. 지금 받는 것보다 열 배를 준다면 모를까, 저 애를 위해 포즈를 취하지는 않겠어요. 네가 무슨 백인 숙녀라도 되는 것처럼 거기 앉아서 나를 그려!

  어이없고 당혹스러웠던 쉴즈 씨는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그렇지만 나는 안젤라가 정말 유색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매이블. 생긴 것도 그렇고 행동하는 것도 딱 백인 숙녀거든. 글쎄, 안젤라가 유색인일 리가 없어. 내가 유색인 여자를 몰라볼 것 같아?”

쉴즈 씨에게는 그것이 민감하면서도 수치스러운 문제 같았다.

  “유색인이었다면, 나에게 말을 했어야지.”

쉴즈 씨가 옹색하게 말을 불쑥 뱉었다.

  “하지만 머레이 양, 당신이 유색인이라는 말을 나에게 하지 않았지.”

안젤라는 친숙한 연극의 한 장면을 리허설하는 것 같았다.

  “유색인요! 당연히 내가 유색인이라고 말하지 않았죠. 왜 말해야 하죠?”

 

 

(77~79쪽, 밑줄 친 문장은 글쓴이가 강조하기 위해 한 것임)

 

 

 

에스더 베일리스는 안젤라와 같은 학교에 다닌 백인 여성이다. 학생 시절 에스더는 안젤라를 무시한 백인 학생 중 한 명이다. 그녀는 오랜만에 만난 안젤라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그녀가 유색인이라고 공개해버린다. 이 장면을 보고 분노하지 않는 독자가 과연 있을까?

 

혹자는 이 소설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흑인이 오래전부터 차별받으면서 살아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백인을 파렴치한으로 묘사할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으나 《플럼 번》은 단순히 ‘백인 대 흑인(유색인)’으로 나누어지는 이분법적 인종 구분에 사로잡힌 사회 문제만 비판하지 않는다. 아주 사소한 장면이라 독자들이 지나칠 수 있는데, 소설 후반부에 유색인이 가난한 백인을 무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안젤라는 파리로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자신이 살았던 옛 집을 둘러본다. 그 집에 유색인 여자가 살고 있다. 그녀는 집 안에 들어가서 구경하고 싶었고, 유색인 여자에게 말을 걸어보려고 했으나 유색인 여자는 “가난뱅이 백인 쓰레기와는 볼 일이 없어”라고 투덜거린다.

 

(387~388쪽, 밑줄 친 문장은 글쓴이가 강조하기 위해 한 것임)

 

 

 

인용한 문장의 원문을 직접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백인 쓰레기’의 원문은 ‘White Trash(화이트 트래쉬)일 가능성이 있다. 화이트 트래쉬는 미국의 북부 백인들은 자신들보다 가난한 남부 백인을 낮춰 부를 때 쓰는 속어다. 백인 중심 사회에 차별받는 유색인 여자가 자신보다 가난하고 못사는 백인을 ‘쓰레기’라고 욕하는 장면은 흑인과 유색인은 ‘항상 차별받는 피해자 또는 사회적 약자’라고 고정적으로 보게 만드는 정체성 문제를 되짚어보게 만든다. 가끔 인종 문제에 접근할 때 우리는 ‘언더도그마(underdogma)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언더도그마는 힘의 차이를 근거로 선악을 판단하려는 오류이며 맹목적으로 약자는 착하고, 강자는 악하다고 인식하는 현상이다. 흑인과 유색인을 사회적 약자 정체성을 가진 존재로만 보게 되면, 흑인/유색인보다 못사는 백인이나 또 다른 흑인/유색인이 차별받는 상황을 외면하게 된다. 일상적인 차별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 따라 ‘나’라는 인간은 누군가로부터 차별받는 피해자가 될 수 있고, 때로는 누군가를 차별하는 가해자도 될 수 있다. 《플럼 번》은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중산층 중심주의가 어떻게 혐오를 작동시키며 한 인간의 내면을 분할시키는지를 정교하게 보여주는 훌륭한 소설이다.

 

 

 

 

 

[주] 필자가 쓴 듀보이스의 저서 《니그로》(삼천리, 2013) 서평에 듀보이스의 업적을 간략하게 소개된 내용이 있다.

https://blog.aladin.co.kr/haesung/10098157

 

 

※ Trivia

 

 

* “으응, 내가 하께요.” (41쪽)

 

→ “내가 할게요.”의 오식.

 

 

 

* “행복을 거의 잡았었는데, 앙젤, 혹시 브라우닝의 <로마 캄파냐 평온의 두 사람> 읽어 봤어?” (153쪽)

 

→ 영국의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의 시 『로마 캄파냐 평원의 두 사람』의 오식.

 

 

 

* “끝까지 사는 거야.” 혹독한 운명이 참으로 명랑한 삶, 그 속에서 부닥치는 힘든 일들을 생각했다. 어머니 아버지의 인종, 흑인들을 생각했다. (331쪽)

 

→ ‘어머니 아버지’라고 고쳐 써야 한다.

 

 

*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플럼번』과 같은 시기에 출간된 넬라 라슨(Nella Larsen)의 『패싱(Passing)』이라는 소설일 것이다. (작품 해설, 412쪽)

 

→ 『플럼번』은 1928년에, 『패싱』은 1929년에 발표되었다. 플럼번』과 같은 시기에 나온 넬라 라슨의 소설은 『퀵샌드(Quicksand)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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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0 1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8-22 11:59   좋아요 0 | URL
네, 차별과 불평등 문제를 접근할 때 ‘사회적 약자=차별 및 불평등 피해자’라는 공식에 끼워 맞추면 안 됩니다. 역차별 문제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현재 차별과 불평등 문제는 과거에 비해 복잡해요.
 

 

 

2010년 충남 당진의 한 제철소에 설치된 섭씨 1,600도가 넘는 용광로 속에 29살 청년이 추락하여 사망했다. 추락 방지 장치 같은 기본적인 안전장치가 설치되었어도 청년 노동자는 목숨을 잃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청년 노동자의 비참한 죽음을 보도한 기사에 ‘제페토’라는 이름의 누리꾼이 조시(弔詩) 형식으로 된 댓글을 남겼다. 그 댓글이 바로 『그 쇳물 쓰지 마라』다.

 

 

 

 

 

 

 

 

 

 

 

 

 

 

 

 

 

 

* 제페토 《그 쇳물 쓰지 마라》 (수오서재, 2016)

 

 

 

 

 

광염(光焰)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 말 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냐.

 

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 적 얼굴 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주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보자, 하게.

 

 

(『그 쇳물 쓰지 마라』 전문, 25쪽)

 

 

 

 

이 시는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고, 누리꾼들은 청년 노동자를 추모하는 의미로 시를 공유했다. 그러나 제페토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금도 용광로는 여전히 뜨겁다.

 

 

 

 

 

 

 

 

 

 

 

 

 

 

 

 

 

 

 

* 은유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돌베개, 2019)

 

 

 

하루 일상 속에서 우리는 많은 노동자를 만난다. 그리고 우리가 늘 보는 일상용품이나 건물 속에도 노동자들이 있다. 일하다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의 흔적, 즉 우리가 알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뼈와 피와 살이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노동을 미화하는 사람들은 노동자들이 만든 일상용품 속에 그들의 ‘피, 땀, 눈물’이 있다고 말한다. 이런 말이 노동자들의 숭고한 노고에 경의를 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들의 말은 기업의 이윤을 위해 쉬지도 않고 일하는, ‘살아있는’ 노동자들에게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한다. 이런 말을 자주 하는 사람 대다수는 힘든 노동을 해본 적이 없는 인텔리에 속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노동은 이상적이다. 그러므로 노동을 미화하는 말은 현재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노동을 미화하는 인텔리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에 침묵한다. 기업은 노동자들이 피와 땀과 눈물을 덜 흘리면서 일할 수 있는 작업장을 만드는 일에 소극적으로 나선다. 이러면 노동자들이 주로 투입되는 작업장의 개선은 더디고, 그들의 노동은 위험한 상태로 진행하게 된다.

 

 

 

 

 

 

 

 

 

 

 

 

 

 

 

 

 

 

 

 

* [e-Book] 하야마 요시키 《단편을 맛보다, 하야마 요시키 편》 (책보요여, 2018)

* 하라 겐이치 《하야마 요시키로의 여행》 (어드북스, 2010)

 

 

 

 

노동자의 시선으로 노동 현장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바라보고 묘사한 작가가 있다. 그는 바로 하야마 요시키(葉山嘉樹, 1894~1945)다. 그의 문학을 ‘일본의 조지 오웰(George Orwell)이라고 평가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야마는 일본의 명문대인 와세다 대학에 입학했으나 화물선 수습 직원으로 일하기 위해 대학을 중퇴한다. 그 후 시멘트 공장에 일하게 되는데, 그 공장에서 노동자가 화상을 입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난다. 이 일을 계기로 하야마는 노동조합을 결성하려고 했으나 해고당하는 바람에 노동조합 결성이 무산된다. 그러나 하야마는 노동조합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1919년 이후 일본에 확산한 노동조합주의 운동의 선봉에 서는 프롤레타리아 작가로 인정받는다.

 

하야마의 소설은 ‘노동자’로서 살았던 작가의 삶이 반영되어 있다. 하야마의 대표작으로 언급되는 단편소설 『시멘트 통 속의 편지』‘알지 못하는 노동자의 죽음의 흔적’을 처음으로 언급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화자는 댐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그는 일하다가 우연히 시멘트 통 속에 들어있는 작은 나무 상자를 발견한다. 나무 상자 속에 누군가가 입었던 낡고 헤진 작업복과 편지가 들어 있다. 그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저는 N 시멘트 회사의 시멘트 자루를 만드는 여공입니다. 재 애인은 분쇄기에 돌을 넣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10월 7일 아침, 커다란 돌을 넣다가, 그 돌과 함께 분쇄기 속에 빠져 버렸습니다.

 

동료들이 구해 주려고 했지만, 재 애인은 물속에 잠기듯 돌 더미 아래로 사라졌습니다. 돌과 애인의 몸은 함께 부서져 붉은 조각돌이 되어 컨테이너 벨트 위에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벨트를 따라 분쇄 통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속에서 강철 탄환과 같이, 잘게 잘게, 저주와도 같은 격한 비명을 지르며,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그런 다음 불구덩이로 들어가 훌륭한 시멘트가 되었습니다.

 

뼈도, 살도, 영혼도, 완전히 가루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 다음 날, 이 편지를 써서 이 통 속에 살짝 넣어 두었습니다.

 

당신은 노동자인가요? 당신이 노동자라면, 저를 불쌍히 여겨 답장해주세요.

 

이 통 속의 시멘트는 어떤 곳에 쓰였나요? 그리고 얼마나 많은 곳에 쓰였나요? 당신은 미장이인가요, 건축가인가요? 저는 제 애인이 극장 복도나 커다란 저택의 담벼락이 되는 걸 차마 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걸 제가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만약 당신이 노동자라면, 이 시멘트를 그런 곳에 쓰지 마세요.

 

[중략]

 

그이는 상냥하고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막 26살이 된 젊디젊은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그이에게 하얀 수의를 입히는 대신, 시멘트 자루를 입히네요! 그이는 관에 들어가지 못하고 회전 가마 속에 들어가 버렸습니다.

 

[중략]

 

만약 당신이 노동자라면, 제게 답장해 주세요. 그 보답으로 제 애인이 입은 작업복 조각을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이 편지를 감싸고 있는 천이 그 조각입니다. 이 조각에는 돌가루와 그이의 땀이 배어 있습니다. 그이가 이 작업복을 입고 저를 얼마나 꼭 껴안아 주었는지 모릅니다. 부탁합니다. 이 시멘트를 쓴 날짜와 상세한 주소, 어떤 곳에 썼는지, 그리고 실례가 아니라면 당신의 성함도, 꼭꼭 알려주세요. 당신도 부디 몸조심하세요. 안녕히.

 

 

(박소정 옮김, 『시멘트 통 속의 편지』 중에서, 11~14쪽, 밑줄은 글쓴이가 한 것임)

 

 

 

하야마는 편지에 있는 여공의 목소리로 죽으면 소모품으로 취급받는 노동자들의 처우를 고발한다. 그러면서 이 편지를 읽고 있을 독자들에게 호소한다. 당신이 노동자라면, 이들을 기억해달라고. 여공의 편지는 노동자가 아닌 독자들도 노동 문제에 공감하게 만드는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편지의 여운을 느낀 독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애인, 가족, 친구도 ‘세상이 알지 못하는 (죽은) 노동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 [절판, No Image] 정태원 편역 《공포 특급 6: 일본 편》 (한뜻, 1996)

 

 

 

 

90년대에 『시멘트 통 속의 편지』가 일본 공포 문학 선집에 수록된 적이 있다. 아마도 죽은 노동자의 몸이 기계에 분쇄되어가는 과정을 묘사한 내용 때문에 공포 문학으로 분류된 것 같은데, 엄연히 말하면 공포 문학으로 볼 수 없다. 『시멘트 통 속의 편지』의 장르는 프롤레타리아 문학이다.

 

하야마 요시키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일본에서 하야마에 대판 평가가 엇갈린다. 한때 ‘좌파 작가’라는 이유로 하야마의 작품들이 외면당했고, 한편으로는 만주를 통치하려는 일본 국가 정책에 지지한 작가라고 비판받았다. 하야마는 일본의 만주 통치 정책(일본은 자신들이 세운 괴뢰국인 만주국에 일본인들의 이민을 추진하는 ‘만주 개척단’을 만들었다)에 지지하여 자신의 외동딸과 함께 만주로 향했다. 일본이 패전하면서 하야마는 딸과 함께 일본으로 귀국하지만, 귀국하던 중 열차에서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하야마 요시키로의 여행》(어드북스)여행기 형식으로 된 ‘하야마 요시키 평전’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작가는 하야마의 흔적이 있는 장소들을 찾아가는데, 직접 하야마의 외동딸을 만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생소한 하야마의 삶과 노동문학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문헌이다. 《단편을 맛보다, 하야마 요시키 편》 (책보요여) 는 하야마의 단편소설 다섯 편이 수록된 선집이다. 하야마의 대표작은 아니지만, 『시멘트 통 속의 편지』와 함께 추천하고 싶은 단편은 『만복추상(万福追想)이다. 일본에 강제로 연행된 조선인 노동자들이 겪는 아픔을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은 한국인인가? 당신이 한국인이라면 『만복추상』을 꼭 읽어보기를 바란다.

 

 

 

 

 

※ Trivia

 

* 《하야마 요시키로의 여행》 155쪽 역주루쉰(魯迅)의 출생연도가 ‘1981’로 잘못 적혀 있다. 그는 1881년에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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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4 1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8-14 17:35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언제 생길지 모르는 산업재해를 가볍게 여기는 노동자들도 있습니다. 안전 불감증은 고용주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하는 노동자들도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레삭매냐 2019-08-14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인터넷 언론을 통해 본 청년들을
위험한 노동의 최전선에 내모는 현실
에 대한 기사를 읽어서 그런지 더 와
닿는 포스팅이었습니다.

소수의 자본가 계급을 제외하고는 거
의 모든 이들이 노동자일 텐데, 자신
의 본질 혹은 본성을 부인하는지 이해
가 되지 않습니다.

그나저나 하야마 요시키라는 작가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네요.

cyrus 2019-08-14 17:37   좋아요 0 | URL
‘노동’은 힘든 일을 떠올리게 하고, 좌파들이 선호하는 용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사실 저도 그렇고 대부분 사람은 ‘노동’보다는 ‘근로’라는 말을 선호하죠. 그래서 노동자의 처우 문제를 남 일처럼 생각하기 쉬워요.

blanca 2019-08-14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사로 읽은 기억이 나요. 감정을 이입하면 너무 괴로워서... 오늘 엘리베이터 사고로 또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 자꾸 미국 이야기 하는 것 안 좋아하지만 상대적으로 육체 노동을 경시하는 풍조가 유교 문화권엔 팽배한 것 같아요. 어쩌면 가장 존중받고 대우 받아야 할 직업군인데 말이에요. 시로 죽어간 익명의 청년의 영혼이 조금이나마 위로받기를 기원합니다.

cyrus 2019-08-15 10:51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대로 육체노동을 경시하는 풍조에, 노동자의 건강권과 재해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 겹쳐져서 육체노동을 기피하는 구직자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노동자가 사망한 뉴스를 보는 사람들은 죽은 노동자를 추모하는 마음보다는 저런 일은 위험하고 힘들다고 생각하기 쉬워요.
 

 

 

19세기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번영한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다.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 1837~1901)는 영국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한 시기였다. 64년 동안 영국을 통치한 여왕의 존재감 때문에 빅토리아 시대를 ‘여왕의 시대’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실질적으로 보면 ‘신사의 시대’였다.

 

 

 

 

 

 

 

 

 

 

 

 

 

 

 

 

 

 

* 설혜심, 박형지 《제국주의와 남성성》 (아카넷, 2016)

 

 

 

 

영국 제국주의를 연구한 설혜심은 대영제국의 식민지 확장 사업이 영국 남성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주목한다. 이 무렵 영국 신사에 부합하는 남성상은 운동으로 단련된 육체와 무뚝뚝한 성격을 가진 강인하고 엄격한 가부장적 남성이다. 그러나 이들은 영국 식민지로 넘어가면 태도가 확 달라진다. 영국 남성들은 본국의 여성을 ‘집 안의 천사(The Angel in the House)로 여기면서 보호하면서도 식민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대했다. 그리고 통치자로서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식민지인들에게 물리적 폭력을 가하기도 했다.

 

 

 

 

 

 

 

 

 

 

 

 

 

 

 

 

 

 

 

* [품절, No Image] 페터 풍케 《오스카 와일드》 (한길사, 1999)

* 수전 손택 《해석에 반대한다》 (이후, 2002)

 

 

 

 

영국 남성이 단지 ‘생물학적인 남성’이라서 남성성을 발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빅토리아 시대의 엄격한 사회적 분위기와 제국주의가 부여한 ‘영국 신사’와 ‘식민지 통치자’라는 일종의 역할을 수행(performance)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영국 남성은 자신에게 주어진 이 남성성을 긍정하면서 수행했을까? 모든 영국 남성이 남성성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비록 소수에 불과하지만, 남성성 역할을 거부한 남성이 있었다. 남성성을 거부한 가장 대표적인 영국 남성이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이다. 그는 머리를 길렀고, 가슴에 커다란 해바라기 장식을 달고 다니는 등 세인의 주목을 이끄는 화려한 패션을 소화했다. 당시 사회의 위선을 공격하는 특유의 독설은 와일드를 더 유명하게 만들어줬고, 그는 영국 사교계의 인사들 사이에서 재치 넘치는 셀럽(celeb)이 되었다. 기성 사회에 반하는 와일드의 행동과 복장은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오스카 와일드의 양성적인 스타일수전 손택(Susan Sontag)이 설명한 ‘캠프(camp)라는 개념에 부합한 인물이다. 캠프를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지만(손택은 캠프의 다양한 정의를 설명하기 위해 총 58개의 짧은 글로 구성된 단상 형식으로 글을 썼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캠프는 엄숙한 고급문화를 거부하고, 고급문화에 반하는 부자연스럽고 과장된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다. 따라서 캠프는 반 부르주아적이고, 반 전통적인 문화다.

 

 

 

 

 

 

 

 

 

 

 

 

 

 

 

 

 

 

 

* 메리 엘리자베스 브래든 《오들리 부인의 비밀》 (부북스, 2019)

* 장정희 《선정소설과 여성》 (L.I.E., 2007)

* 한국근대영미소설학회 엮음 《공포와 일탈의 상상력: 영국고딕소설》 (신아사, 2015)

 

 

 

 

그렇다면 빅토리아 시대에 유행한 문학 장르인 선정소설(sensation novel)은 캠프 성향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까? 성급하게 결론을 내는 것일 수 있으나, 나는 선정소설의 특징이 캠프 성향과 약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손택은 캠프 취향의 기원을 ‘고딕 소설(gothic novel)에서 찾는다. 고딕 소설은 비밀 통로가 있는 고풍스러운 저택을 배경으로 신비감과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장르이다. 프랑스에 처음 시작된 고딕 소설은 잠시 유행이 사그라졌다가 영국에서 부활했다. 고딕 소설에서 묘사되는 미스터리한 현상들은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이성 중심주의에 싫증을 느낀 독자들은 고딕 소설을 주목하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감성에 호소하고 서늘한 공포심을 유발하는 문학이 인기를 누리게 된다. 고딕 소설이 영국에서 인기의 정점을 찍고 있을 때 여기에 탄력을 받아 등장한 소설이 바로 선정소설이다. 그러나 엄격한 독자와 비평가들은 진지한 성찰을 보여주지 않는 고딕 소설과 선정소설을 ‘천박한 문학’이라고 비판했다. 영국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선정소설인 《오들리 부인의 비밀》도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비평가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피하지 못했다.

 

고딕 소설과 선정소설이 철저히 외면당한 이유는 단지 독자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장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고딕 소설과 선정소설은 대중의 불안과 근심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 장르이다. 고딕 소설과 선정소설에서 묘사된 공포는 독자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만든 허구적 요소가 아니라 그 소설을 읽고 있는 독자들이 실제로 느끼는 공포(김일영, 한국근대영미소설학회, 2015). 고딕 소설과 선정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기성 사회를 위협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지나칠 정도로 드러낸다. 예를 들어 《오들리 부인의 비밀》의 주인공 오들리 부인은 한 집안의 명예에 흠집 낼 수 있는 범죄를 저지른 인물이다. 《오들리 부인의 비밀》이 성공하면서 그 후에 나온 선정소설 속 여성들은 가부장제를 위반하는 욕망을 가진 존재로 그려진다(장정희, 2007). 기존 소설에서 보지 못한 여성들이 등장하고, 위험한 매력을 가진 선정소설의 여주인공에 열광하는 독자들이 늘어날수록 보수적인 대중은 ‘여성의 욕망은 위험하다’는 공포를 간접적으로 느낀다.

 

 

 

 

 

 

 

 

 

 

 

 

 

 

 

 

 

 

 

* 엘렌 식수 《메두사의 웃음 / 출구》 (동문선, 2004)

* 연구모임 사회 비판과 대안 엮음 《현대 페미니즘의 테제들》 (사월의책, 2016)

 

 

 

 

손택은 캠프를 ‘과장된 것’, ‘벗어난 것’, ‘제 상태가 아닌 물건을 선호한 것’이라고 했다. 선정소설의 여주인공들은 과도하게 감정을 분출한다. 일부 비평가들은 선정소설에서 재현되는 여주인공의 과다한 감정 표현을 작품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봤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표현 방식을 엘렌 식수(Helene Cixous)여성적 글쓰기(écriture féminine)와 연관 지어서 주목하고 있다. 식수가 제안한 여성적 글쓰기는 남성 중심적인 논리적 글쓰기를 전복시키는 효과가 있다. 고딕 소설과 선정소설이 유행하면서 여성들은 창작 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고, 고딕 소설과 선정소설을 즐겨 읽은 여성 독자들이 늘어났다. 고딕 소설과 선정소설이 유행하기 전에 나온 소설과 문학은 ‘선택된 사람들만의 것(식수)’이었다. ‘선택된 사람들’에 속하지 못한 여성은 글쓰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없었다. 그러나 고딕 소설과 선정소설의 등장은 공식적인 텍스트로 인정받던 이성 및 남근 중심주의 글쓰기에 저항하는 공간을 만들어주었고, 그 공간에 여성들이 들어왔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 겁에 질린 남성 지식인과 독자들은 책 읽고 글 쓰는 여성을 경계했다. 글 쓰는 여성은 남성 중심 사회를 위협하는 존재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딕 소설과 선정소설을 독자들의 흥미를 끄는 상업적인 소설로 단순하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 고딕 소설과 선정소설은 그 소설들이 나온 시대의 어두운 이면을 정확하게 반영한 문학 장르이다. ‘고전’의 반열에 오르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연구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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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9-08-09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두사의 웃음.. 좋은가요 ? 이 책 살까 말까 했는데 출판사가 동문선이라 안 샀는데... 개인적으로 동문선을 무지 싫어하는 1인.

cyrus 2019-08-10 06:10   좋아요 0 | URL
내용은 좋은데 번역문이 별로 좋지 않아요.

곰발님이 왜 동문선을 싫어하는지 알겠어요. 출판사 대표가 문제가 많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