딕테
차학경 지음, 김경년 옮김 / 문학사상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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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대구 독서 모임

<읽어서 세계문학 속으로>

2월의 세계문학









얼떨결에 하와이에 불시착한 테레사(Theresa). 아시아의 변방으로 알려진 한국에서 온 소녀는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다. 아늑한 집, 듬직한 어버이, 어머니의 포근한 품에 나오는 말(母語). 어디서 잃었는지 소녀는 모른다. 불안해진 소녀의 조그마한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는다. 테레사는 외로움과 추위에 떨었다. 소녀를 움츠리게 만드는 하와이의 차가운 바람은 어디서 부는 것일까.







테레사의 괴로움에 이유가 있다. 소녀는 혼자다. 커다란 하와이는 육첩방과 같은 남의 나라.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 살지 않는 무인도. 혼자서 아픔을 참다가 병원에 온 테레사. 그러나 의사는 소녀의 병을 모른다. 그녀한테 병이 없다고 한다. 지나친 시련, 지나친 피로. 하지만 소녀는 성내서는 안 된다. 테레사, 불쌍한 테레사. 끝없이 침전하는 테레사.


인생살이가 어렵다던 윤동주 시인시가 쉽게 써지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고달픈 인생살이를 너무 일찍 깨달은 테레사도 손쉽게 글을 쓰지 않았다. 그녀가 글을 쓰는 것은 어렸을 때 잃어버린 소중한 것을 찾기 위한 일이다어른이 된 테레사는 여러 번 쓰다가 하와이의 바닷모래로 덮어 버린 자신의 옛 이름을 찾았다. 차학경(Hak Kyung Cha). 어머니의 말(母語)에서 태어난 이름이다.[]


차학경의 첫 번째 책 딕테(Dictee)가족과 고향의 추억을 되새긴 앨범이요, 회상록이다딕테》는 눈으로 읽는책이면서도 눈으로 보는이다. 이 책에 차학경의 아버지 차형상이 직접 붓으로 쓴 글씨어머니 허형순의 사진이 있다. 차학경은 어버이에 대한 그리움을 이미지로 표현했다. 그녀는 왜 텍스트 곳곳에 이미지를 넣었을까그녀는 말하기가 자신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 이 책에서 차학경은 자신을 말하는 여자(diseuse)’로 지칭한다. 하지만 그녀는 언어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는다. 낯선 언어를 억지로 만나면 입과 혀의 활기가 없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언어는 라는 정체성을 보여주지 못한다차학경에게 이미지는 책을 쓰기 위해 활용된 비언어적 표현 수단이 아니다. 본인의 정체성과 다양한 감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시할 수 있는 2 언어.







차학경은 남의 나라에 적응하기 위해 남의 언어와 문화를 받아 쓰면서(Dictee)’ 성장했다. 포근한 어머니의 말에 익숙한 혀는 차가운 남의 언어가 닿는 순간, 바로 얼어버린다. 목젖은 닫힌다. 웅크린 목소리는 목구멍으로 들어간다. 말하는 여자가 되고 싶은 차학경남의 말과 비슷한 것을 뱉어본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 나오는 것은 단어들이 어설프게 만나서 생긴 비문(非文)이다. 남의 나라 사람들은 이방인의 어설픈 말을 듣지 못한다.


어머니 차형순은 차학경에게 말하기와 글쓰기의 가치를 처음으로 알려준 스승이다. 그래서 차형순은 딕테를 태어나게 한 할머니이자 산파이 책의 2칼리오페 서사시는 어린 차학경이 소중하게 여긴 것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텍스트다어머니, 모국어, 고향은 차학경의 삶에서 절대로 분리할 수 없는 것들이다.






 당신은 어둠 속에서 말합니다. 비밀 속에서. 바로 당신의 언어를 말합니다. 당신 자신의 언어. 당신은 아주 부드럽게, 속삭여 말합니다. 어둠 속에서, 비밀스럽게. 모국어는 당신의 안식처입니다. 당신의 고향입니다. 당신의 존재 그 자체입니다. 진정으로. 


(56쪽)



말하는 여자자신이 누군지 떳떳하게 말할 줄 아는 인간이다. 그리고 자유와 존엄성을 말살하는 세상에 거세게 저항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차학경은 남성에게 복종하는 여성을 양산하는 세상에 저항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유관순과 잔 다르크(Jeanne d’Arc), 가톨릭 성인 테레즈 수녀(Thérèse de Lisieux, 리지외의 테레사, 小花 데레사)를 소환한다. 이 세 사람은 차학경보다 먼저 태어났다. 그녀들은 어린 나이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인식했으며,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행동으로 실천했다. 1장 「클리오 역사」(유관순), 5장 「에라토 연애」(테레즈 수녀, 잔 다르크) 주체적인 여성의 삶과 목소리를 재구성한 글이다. 차학경은 이 글을 통해 자신 또한 그들처럼 살아가겠다고 천명한다.


딕테는 작가가 소중하게 여긴 것들을 모아 놓은 보석함과 같은 책이다. 어머니와 모어는 굳어 있던 작가의 입과 혀를 살아있게 해주는 생명력이다. 작가는 한국을 떠나면서 놔두고 온 어머니와 모어를 되찾고 나서야 자신이 진정 누군지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한국 사람이면서도 미국 사람이다. 한국에서 차학경으로 태어나 ‘테레사’라는 이름을 부여받아 미국에 정착한 디아스포라(Diaspora)다. 글 쓰는 작가이자 비디오 아트(Video art) 예술가였다. 어머니와 모어는 풍요로운 정체성을 지닌 테레사 학경 차’로 성장하게 만든 힘이다.





[] 숨은 윤동주 찾기글의 첫 문단부터 세 번째 문단까지의 글은 윤동주 시인의 시구(밑줄을 친 부분)를 엮어서 썼다. 내가 인용한 시는 <쉽게 씌어진 시>, <>, <바람이 불어>, <>, <병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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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Homeros)는 물음표가 많은 음유시인이다. 그가 어디서 태어났으며, 언제 태어났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나마 알려진 정보는 호메로스가 시력을 잃은 걸인이었다는 점이다.


















* [개정판 절판] 알베르토 망겔, 김헌 옮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 세계적인 인문학자가 밝히는 서구문화의 근원(세종서적, 2015)

 

* [구판 절판] 알베르토 망겔, 김헌 옮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펙트: 세계적인 인문학자가 밝히는 서구문화의 근원(세종서적, 2012)

 

* 새뮤얼 버틀러, 한은경 옮김, 이인식 해제 에레혼(김영사, 2018)





호메로스는 어떤 사람인가, 실제로 존재했을까?정답이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이 질문을 호메로스 문제(Homeric Question)’라고 한다사람들은 호메로스의 정체에 대해 갖가지의 가설을 제시했다. 에레혼이라는 유토피아적 소설을 쓴 영국의 작가 새뮤얼 버틀러(Samuel Butler)호메로스의 성별을 의심했다. 그는 호메로스가 여성이라고 주장했다.


















[대구 책방 <일글책서양 인문 고전 읽기 2023년 첫 번째 선정 도서]

* 호메로스, 천병희 옮김 일리아스(도서 출판 숲, 2015)


[대구 책방 <일글책서양 인문 고전 읽기 2023년 두 번째 선정 도서]

* 호메로스, 천병희 옮김 오뒷세이아(도서 출판 숲, 2015)





그가 내세운 증거는 오뒷세이아에 있는 사소한 오류들이다. 예컨대 배의 내부 구조와 그리스 국가의 지리와 관련한 묘사가 정확하지 않은 점이다. 여러 개의 오류를 발견한 버틀러는 남성이라면 하지 않는 실수라고 말했다. 그리고 오뒷세이아의 작가가 여성이라서 오디세우스(Odysseus)의 궁전 내부를 상세하게 묘사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버틀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호메로스의 정체는 시칠리아 출신의 젊은 미혼 여성이다. 그녀는 일리아스를 마음대로 인용하면서 오뒷세이아를 썼다.


몇몇 독자는 여전히 호메로스가 여성이라는 가설에 끌린다(나도 한때 이 견해에 흥미를 느낀 적이 있다). 그러나 버틀러의 견해는 억측이다. 호메로스를 둘러싼 성별 논란은 재고할 가치가 없다. 여성의 창작 능력을 깎아내리는 성차별적 인식에서 비롯된 남성들만의 문제. 버틀러는 가부장의 권위가 식민지로 뻗어나가고 있던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했다. 이 시대에 살았던 여성 작가들은 남성 중심 문단이라는 커다란 장벽을 마주쳐야 했다. 이들은 작품들이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남성 작가로 보일 수 있는 필명을 썼다.


버틀러는 여성의 글솜씨가 서투르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 그래서 호메로스를 여성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남성 지식인들은 버틀러의 허무맹랑한 주장에 분개했다. 그들은 유구한 서양 지성사의 시작을 알린 아버지와 같은 호메로스가 절대로 여성일 리 없다고 믿었다. 버틀러를 비판한 지식인들은 두려워했다. 호메로스가 여성이라고 알려지게 되면, ‘남성의, 남성이 만든, 남성을 위한 지성사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다.









남성의남성이 만든남성을 위한 지성사’를 거룩하게 묘사한 그림이 앵그르(Ingres)의 호메로스 예찬(The Apotheosis of Homer, 1827)이다. 앵그르는 이 그림에서 호메로스를 고전의 전당을 다스리는 통치자로 묘사했다.


















* [절판] 정금희 엮음 앵그르(재원, 2015)


* 아르킬리코스 & 사포 외, 김남우 옮김 고대 그리스 서성시(민음사, 2018)

 

* 아르킬리코스 외, 오자성 옮김 고대 그리스 서성시선: 서정시는 어떻게 쓰여지는가(청개구리아카데미, 2011)





승리의 여신이 권좌에 앉아 있는 호메로스에게 월계관을 씌워주고 있다. 권좌 아래에 있는 두 여자는 일리아스오뒷세이아를 상징한다호메로스 이후에 활동한 남성 작가와 예술가들이 아버지를 숭배하기 위해 모여들었다이 그림에서 유일하게 등장한 여성 문인은 고대 그리스의 시인 사포(sappho).


알베르토 망겔(Alberto Manguel)은 버틀러의 기이한주장이 틀렸음을 인정하면서도, 고전을 대담하게 해석한 태도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고전은 예나 지금이나 독자를 지배한다. 고전의 위압감에 눌린 독자는 고전이 알려주는 모든 내용을 순순히 따른다. 그러나 버틀러는 고전의 명령을 어기고, 자기 마음대로 고전을 해석했다. 망겔은 버틀러처럼 유쾌한 뻔뻔함이 있어야 고전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펙트, 265).


논리적으로 맞지 않더라도 고전을 읽고 느낀 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고전 해석에 정답은 없다. 완벽한 해석은 없다. 그러나 버틀러는 자신의 해석이 정답이라고 믿었다. 버틀러의 해석은 편파적이다. 이런 해석은 재미가 없고 불쾌하다. 버틀러의 불쾌한 뻔뻔함은 고전뿐만 아니라 고전을 읽은 타인의 해석마저 망가뜨리려고 했다. 고전을 자기 마음대로 뒤집으려면, 고전을 대하는 자신의 해석도 뒤집을 수 있어야 한다. 고전 해석은 고전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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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5-01-25 2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오늘부터 연휴 시작인데, 편안한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월요일이 임시공휴일이 되면서 이번 연휴가 많이 길어졌어요.
연휴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cyrus 2025-01-27 09:18   좋아요 1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서니데이님. 연휴 전 2주 동안 잔업을 연속으로 해서 책을 제대로 못 읽었어요. 토요일부터 읽고 싶은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읽어야 할 책들이 너무 많아서 집과 카페에서만 시간을 보내려고 해요. ^^

그레이스 2025-01-27 09: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망구엘의 이 책 저는 왜 몰랐죠?
장바구니에 넣어갑니다~♡
절판이네요 ㅠ
아! 이펙트! 이 책으로 갖고 있어요 ㅋㅋ

cyrus 2025-01-27 09:34   좋아요 1 | URL
구판, 개정판 모두 절판됐어요. 이중에 한 권만 있으면 됩니다 ㅎㅎㅎ
망겔이 쓴 책도 그렇고 , 그레이트 이펙트 시리즈가 읽어볼만한 고전 개론서인데 전부 다 절판됐어요.
 
벨기에 물고기
레오노르 콩피노 지음, 임혜경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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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점  ★★★★☆  A





동심은 신이 나서 팔딱거린다. 어린이는 놀기 좋아하는 동심이 이끄는 대로 세상을 여행한다. 어린이는 새로운 것과 친해지고 싶어 한다. 지칠 줄 모르는 동심을 품은 어린이는 놀면서 한 뼘씩 계속 자란다. 동심은 어린이가 어른으로 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른은 동심을 가두는 감옥이다. 꼼짝 없이 어른에 갇힌 동심은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어른으로 변한 어린이는 자신의 가슴속에 살고 있었던 동심이 죽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프랑스 극작가 레오노르 콩피노(Léonore Confino)의 생각은 다르다. 그녀는 거울에 비친 본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어린 시절의 흔적을 찾으려고 했다. 비록 동심을 만나지 못했지만, 콩피노는 동심 찾기를 실패로 단정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기 안의 어린아이가 아직 죽지 않았으며 세월이 흐르면서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콩피노의 희곡 벨기에 물고기는 우리에게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동심을 다시 만나라고 부추긴다벨기에 물고기에 나오는 인물은 40대 중년 어른과 10대 어린아이. 그랑드 므시외(Grande monsieur)는 혼자 사는 크로스드레싱(Crossdressing)이다. 생물학적 성별은 남성이지만, 평소에 여성의 옷을 입는다. 그랑드 므시외는 잊을 수 없는 불행한 과거를 안고 살아간다. 그는 과거에 한 명의 자식을 둔 유부남이었다. 아내는 여성의 옷을 입는 동성애자 남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린 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떠난다. 


프티 피유(Petit fille)는 정신분석가로 활동하는 부모를 기다리다가 우연히 그랑드 므시외를 만난다. 친한 성소수자 외에 타인을 경계하는 그랑드 므시외는 프티 피유를 자신의 집에 초대한다. 아이를 양육한 경험이 없는 그랑드 므시외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프티 피유의 말과 행동에 쩔쩔맨다프티 피유는 특이한 인물이다. 자신이 물고기라고 주장한다. 그녀의 양쪽 옆구리에 아가미가 있다그랑드 므시외는 프티 피유의 부모가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고아가 된 프티 피유는 슬퍼서 눈물을 흘리는데, 한 번 나온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프티 피유가 흘린 눈물은 어항을 한가득 채울 수 있는 양이다.


이 극작품에 튼튼한 금붕어가 나온다. 그랑드 므시외는 프티 피유를 위해 특별한 상중 의식을 치른다.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를 눈물로 채운 어항에 집어넣는다. 일주일 동안 물고기와 함께 산다. 일주일이 지나면 물고기를 방망이로 한 번에 때려서 기절시킨다. 빈사 상태가 된 물고기를 튀겨서 먹으면 상중 의식은 끝이 난다. 하지만 그랑드 므시외와 프티 피유는 튼튼한 금붕어를 죽이지 못한다. 빗자루로 여러 번 내려쳐도 금붕어는 죽지 않는다. 두 사람은 금붕어와 함께 산다.


벨기에 물고기에 묘사된 시공간은 어른어린이의 경계가 없다. 그랑드 므시외는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성장하는 인간이다. 그랑드 므시외는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고독한 어른이다. 프티 피유를 만난 이후부터 그는 가족과 타인과 함께 사는 삶의 소중함을 느낀다죽지 않는 튼튼한 금붕어살아서 움직이는 동심을 상징한다. 동심은 단순히 어린이만 가지고 있는 백지상태의 마음이 아니다. 어린이와 함께 책을 읽는 일을 하는 작가 김소영동심을 어린이의 세계’라고 표현한.[어린이의 세계는 계속 커진다. 어린이의 세계 안에는 어린이가 세상을 만나면서 얻게 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그 속에 즐겁고 유쾌한 추억만 있는 건 아니다. 눈물과 상처도 있다. 어린이의 세계는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자양분이다. 성장이 멈춘 어른은 어린이의 세계를 잊어버린다. 하지만 어린이의 세계를 소중히 간직하는 어른은 날마다 달라지는 세상과 친해지려고 열심히 배우는 인간이다. 낯설고 새로운 것을 환대할수록 그들의 정신은 끊임없이 성장한다. 따라서 동심은 계속 자라는 마음이다.


벨기에 물고기희미해진 어린이의 세계로 향하는 거울과 같은 희곡이다. 그랑드 므시외와 프티 피유가 주고받는 대화를 읽으면 우리가 어린 시절에 했던 말버릇과 행동을 발견할 수 있다.맞아, 나도 저랬었지!’라고 느꼈다면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동심이 꿈틀거릴 것이다. 동심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





[]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사계절,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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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긍지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김영신 옮김 / 불란서책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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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Nietzsche)는 스스로 디오니소스(Dionysos)의 제자라고 했다.
그리고 성자보다는 사티로스(Satyr)가 되고 싶다고 했다.

콜레트(Colette)는 디오니소스를 따르는 사제 마이나스(Maenads)다.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글을 써라.”
그녀는 숙녀의 삶을 거부하고 사포(Sappho)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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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Shakespeare)1564에 태어났고, 체호프(Chekhov)1904에 숨을 거두었다. 우연하게도 올해는 두 극작가가 특별히 주목받는 해다.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지 460주년, 체호프가 세상을 떠난 지 120주년이 되는 해다위대한 극작가를 말할 때 셰익스피어와 체호프는 당연히 빠지지 않는다. 대부분 독자는 ‘4대 비극‘5대 희극에 포함된 작품을 읽으면서 셰익스피어의 매력에 푹 빠진다. 연극인은 체호프의 ‘4대 장막극을 절대로 모를 수 없다. 배우를 꿈꾸는 학생들은 대학교 연극영화과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희곡을 읽으면서 작품을 분석하고, 연극 대본을 읽으면서 연기 연습을 한다. 학생들은 대학별 연극영화과 지정 희곡 목록에 포함된 작품 한 편을 선택해서 독백 연기를 준비해야 한다. 셰익스피어와 체호프의 극작품들은 연극영화과 지정 희곡으로 자주 나온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이경식 옮김 햄릿(문학동네, 2016)


[<읽어서 세계문학 속으로> 세 번째 선정 도서]

* 안톤 체호프, 강명수 옮김 갈매기(지만지드라마, 2019)





햄릿은 가장 많이 읽히고, 가장 많이 무대에 올랐고, 가장 많이 재창작된 셰익스피어의 대표작이다. 갈매기는 체호프의 4대 장막극 중 제일 먼저 발표된 작품이다. 갈매기는 초연 당시 반응이 매우 좋지 않았다


















* 안톤 체호프, 김규종 옮김 체호프 희곡 전집(시공사, 2010)

* [절판] 안톤 체호프, 전훈 옮김 숲 귀신(애플리즘, 2010)

* 안톤 체호프, 이주영 옮김 체호프 희곡 전집 3(연극과인간, 2002)





1889년에 체호프는 숲의 수호신(‘숲 귀신’, ‘숲의 정령)이라는 장막극을 선보였으나 참담한 실패를 맛봤다. 이때 당시 겪은 실패는 체호프의 자존심에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체호프는 숲의 수호신재출간과 공연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한동안 단막극과 단편소설 집필에 주력했다. 그러다가 1895년에 갈매기를 쓰기 시작했다. 체호프는 상당히 만족스러운 상태로 갈매기를 쓰고 있다고 밝혔지만, 이 작품이 성공할 거라고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는 갈매기무척 바보 같은 이야기라면서 경멸에 찬 표현을 썼다.


체호프는 지인들 앞에서 이전에 경험한 실패에 초연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야심 차게 집필한 갈매기를 극장에 공개했다. 체호프는 갈매기실패한 작품이 될 거라면서 관객들의 냉담한 반응을 어느 정도 예상했다. 극장을 찾은 체호프는 관객들에게 외면받은 갈매기를 눈앞에서 지켜봤고, 또 한 번 그의 자존심이 크게 다쳤다. 갈매기마저 실패하자 체호프는 희곡을 쓰지 않기로 결심했다. 갈매기가 초연된 지 2년 후에 체호프와 친분이 있는 연출가는 대중과 연극인들이 알아보지 못한 갈매기의 매력에 이끌렸다. 그는 체호프에게 공연을 허락하지 않으면 자신을 죽이는 일이라면서 극단적인 표현을 써가면서 제안했다. 다행히 갈매기재공연은 성공했다


















* 콘스딴찐 스타니슬랍스키, 강량원 옮김 나의 예술 인생: 현대 연기 시스템 완성을 향한 스타니슬랍스키의 창조의 길(책숲, 2015)

 



갈매기두 번째 공연 장소는 모스크바 예술 극장이다이 극장을 설립한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Konstantin Stanislavsky)는 체호프의 극작품들을 연출한 전설적인 연출가다. 그는 자서전 나의 예술 인생에서 체호프의 희곡이 없으면 모스크바 예술 극장 소속 극단에서만 생기는 고유의 향기가 잃어버렸다고 회상한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이 있어서 런던 글로브 극장(Globe Theatre)의 전성기가 빛날 수 있었던 것처럼 체호프의 희곡은 모스크바 예술 극장의 명성을 높여주었다. 


젊은 체호프는 단편소설을 엄청 많이 쓰면서도 희곡에 향한 관심을 멈추지 않았다. 이 시기에 그가 열심히 공부한 극작가는 셰익스피어다. 1882년에 체호프는 모스크바의 푸시킨 극장에 공연된 셰익스피어 작품을 관람했다. 1887년에 덴마크의 왕자 햄릿이라는 제목의 보드빌(vaudeville, 대사보다 춤과 노래가 많은 연극)을 쓰려고 준비한 적도 있다.


갈매기의 등장인물 트레플료프는 작가가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배우로 활동하는 어머니 이리나는 트레플료프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 트레플료프는 새로운 형식의 문학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낡은 과거의 문학을 비판하는데, 트레플료프는 자신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리나를 과거에 벗어나지 못한 예술인으로 여긴다. 트레플료프는 소린 영지의 저택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직접 만든 연극을 공개한다. 이리나는 주류 문학에 완전히 벗어난 아들의 연극을 이해하지 못한다. 수치심을 느낀 트레플료프는 연극 공연을 중단시킨다.


이라나는 트리고린이라는 작가와 사귄다. 트레플료프는 과거의 문학에 졸졸 따라다니면서 성공한 작가이면서 어머니가 편애하는 트리고린을 싫어한다. 트레플료프는 자신의 실패한 연극에서 연기를 했던 니나를 사랑한다. 그러나 니나도 트레플료프가 만들고 싶은 문학을 이해하지 못한다. 니나는 시골이나 다름없는 소린 저택에서 벗어나 도시에서 생활하는 연극 배우가 되고 싶어 한다. 성공하고 싶은 열망이 강한 그녀의 눈빛은 가난한 백수 트레플료프가 아닌 화려한 인생을 살고 있는 유명한 작가 트리고린으로 향한다. 결국 트리고린으로 향한 니니의 동경은 사랑으로 변해버린다. 니나는 배우와 사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트리고린과 함께 소린 영지를 떠난다.


갈매기의 트레플료프는 햄릿과 비슷한 인물이다. 그는 애인과 같이 다니는 어머니를 질투한다. 트레플료프는 이리나와 트리고린이 자신의 앞길을 막는다고 생각한다. 햄릿은 친부를 독살하고 어머니를 아내로 맞이한 숙부를 덴마크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숙부와 함께 침실을 쓰는 어머니를 증오한다.


햄릿갈매기극중극이 나온다. 햄릿은 숙부의 양심을 잡아낼 방법(22)’으로 극단과 함께 <곤자고의 살인>이라는 연극을 꾸민다. 햄릿은 <곤자고의 살인>에 숙부가 친부를 죽이는 과정과 똑같은 장면을 의도적으로 넣는다. 트레플료프는 이리나와 니나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연극을 직접 써서 연출까지 맡는다. 만약 공연이 중단되지 않고 잘 마무리돼서 사람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면 그는 두 여자에게 작가가 될 만한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는 동시에 사랑받았을 것이다


햄릿은 친부의 영혼을 만난 이후로 복수의 비수를 가슴속에 품기 시작한다. 하지만 복수의 비수를 일찌감치 빼지 못한 바람에 어머니와 오필리아 등 여러 인물이 죽는다. 어정쩡한 복수극의 결말은 햄릿의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햄릿의 복수 지연은 햄릿위대한 비극으로 유명하게 만든 주제다갈매기의 트레플료프도 복수를 과감히 실행하지 못해서 불행에 빠진 인물이다. 그는 트리고린에게 결투를 신청하겠다면서 복수를 위한 총을 가슴 속에 품고 다닌다. 하지만 트레블료프는 복수의 총을 트리고린의 심장을 향해 쏘려는 결단력이 부족했다. 결국 운 좋게(?) 살아남은 트리고린은 니나와 함께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다. 두 여자를 모두 빼앗긴 트레블료프는 트리고린의 심장에 박혀 있어야 할 복수의 총알 한 발을 자신의 머리 쪽으로 돌린다.


갈매기에서 니나와 함께 불행한 여성으로 묘사되는 마샤 햄릿의 오필리아에 해당한다. 마샤는 소린 영지의 햄릿트레플료프를 좋아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포기한다. 그녀는 트레플료프에 대한 사랑을 잊기 위해 메드베덴코라는 가난한 교사와 결혼한다. 메드베덴코는 마샤를 좋아하지만, 마샤는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는 남편이 된 메드베덴코를 따사로운 애정 한 점 느껴지지 않는 태도로 대한다. 햄릿은 미친 척하면서 오필리아를 무척 매정하게 대한다. 오필리아는 햄릿의 매정한 태도를 진심으로 느꼈고, 정신적 충격을 극복하지 못하면서 물에 빠져 자살한다. 마샤는 자살하지 않지만,  그녀의 첫 대사 한 줄에서 우리는 그녀가 현실적인 삶을 이미 포기한 상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마샤는 항상 입고 다니는 검은 옷을 인생의 상복이라고 말한다본인이 행복하지 않은 운명을 선택함으로써 불행을 자초한다


서평가 이현우햄릿갈매기를 함께 분석한 글에서 체호프의 희극(갈매기)’셰익스피어의 비극(햄릿)’보다 더 잔혹하다고 평한다.[트레플료프, 이리나, 니나, 트리고린, 이 네 사람의 관계를 중심으로 갈매기를 읽는다면 트레플료프의 비극적 삶과 죽음이 유독 두드러져 보인다하지만 갈매기에 나오는 주변 인물들 또한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영지와 큰 저택의 주인 소린은 도시로 가고 싶어 하지만, 끝내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조용히 숨을 거둔다. 메드베덴코는 마샤와 그녀의 식구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불편한 동거를 끝내지 못한다


암울한 회색빛 현실은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더 짙어진다. 칙칙한 쇠퇴의 그림자가 덮친 영지에 사는 인물들은 분위기를 밝게 해보려고 함께 먹고, 마시고, 오락을 즐긴다. 하지만 희망의 밝기를 억지로 부풀리면 불행이 사라지기는커녕 일시적으로 가려질 뿐이다. 애써 행복한 척하면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바라보면 쓴웃음이 삐져나온다. 갈매기는 잔혹한 희극이라기보다는 비극의 농도가 짙은 희극이다.







[] <비극보다 더 잔혹한 희극>, 중앙선데이, 2013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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