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셰익스피어를 입다
안경환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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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Shakespeare)의 작품들을 보면 과 관련된 장면이나 대사가 많이 나온다. 특히 희극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재판 장면은 가장 유명하다. 젊은 귀족 바사니오(Bassanio)포셔(Portia)와 결혼하고 싶어서 친구 안토니오(Antonio)에게 결혼 자금을 마련해 달라고 부탁한다. 무역 상인 안토니오는 무역용 배들에 실은 자산을 담보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인 샤일록(Shylock)에게 돈을 빌린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배들이 모두 침몰하는 바람에 안토니오는 빈털터리가 된다. 안토니오를 증오하는 샤일록은 신체 담보 계약서에 쓰인 대로 안토니오의 심장 가까이에서 살 1파운드를 베어 내려고 한다. 하지만 재판관으로 분장한 포셔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정확히 1파운드의 가슴살을 떼어내라고 판결을 내린다. 포셔의 판결로 인해 안토니오와 샤일록의 운명이 달라진다. 안토니오는 목숨을 구하지만, 샤일록은 전 재산을 날리고 기독교로 개종까지 하게 되는 수난을 겪는다. 독자들은 안토니오를 살린 포셔의 지혜와 명판결에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몇몇 법률가는 포셔의 판결을 비판하면서 샤일록이 정의에 어긋난 재판의 희생양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미연방대법원 대법관들은 판결을 내릴 때 셰익스피어 작품 속 대사를 인용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왜 유독 법과 관련된 장면과 대사가 많이 나올까? , 셰익스피어를 입다는 이 궁금증을 해갈해주는 책이다. 이 책을 쓴 안경환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명예교수는 문학에 조예가 깊은 법조인이다. 그는 문학 작품 속에 투영된 법의 모습을 다룬 글을 써왔다. , 셰익스피어를 입다는 셰익스피어의 대표작에 나오는 법과 법조인들의 모습을 분석한 학자들의 다양한 견해를 소개한 책이다.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16세기 영국은 소송 폭주의 시대이다. 한 해 평균 1백만 건의 소송 사건이 일어났다고 한다. 법에 의지하는 국민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법원의 종류도 많아졌다. 왕립법원에 나온 수많은 판결은 시간에 지나면서 누적되어 관습법(Common law)이 된다.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명성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여러 번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크고 작은 소송들을 겪으면서 법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 동시에 법 제도의 한계 등을 피부로 느꼈을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작품들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거름이 된다.

 

저자는 문학 작품을 사회적 텍스트로 본다. 사회적 텍스트로서의 문학 작품에 시대가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문학 작품은 시대의 거울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법 제도의 변천사가 반영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니스의 상인의 재판 장면에 대한 법조인들의 분석 다음으로 이 책에 주목해야 할 내용은 햄릿(Hamlet)의 유명한 독백에 대한 법적인 해석이다. 그동안 학자와 독자들은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을 햄릿의 우유부단한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사로 해석했다. 그렇지만 저자는 기존의 통설을 반박하면서 법률가적 해석을 주장한다. ‘법률가적 해석에 따르면 햄릿은 아버지의 복수를 실패한 우유부단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복수에 눈이 멀기 쉬운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 노력했다. 만약 그가 당장 삼촌을 죽였으면 살인자가 된다. 햄릿은 살인죄의 책임을 면하는 대책을 강구했을 것이다. 그리고 삼촌이 아버지를 죽인 사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를 포착해서 언젠가 공격할 수 있는, 법적 복수를 생각했을 수도 있다. 따라서 햄릿은 신속한 사적 복수와 지루한 법적 복수 중에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한 것이다. 저자는 햄릿의 고민을 영리한 법률가의 계산된 이성적인 행동으로 본다.

 

햄릿에 대한 법률가적 해석은 참신하지만, 다수의 사람이 동의하기 힘든 비주류 해석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을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라 햄릿의 성격에 대한 분석이 달라진다. ‘법률가적 해석을 주장한 저자는 햄릿의 대사를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다라고 의역했다. 가장 많이 알려진 번역문이다. 원문을 직역하면 있음이냐 없음이냐, 그것이 문제다가 된다. 직역을 선호하는 역자나 독자가 많지 않지만, 그래도 의역한 문장이 무조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햄릿의 대사는 의미를 제대로 살리면서 번역하기 힘든 문장이다. 그러므로 의역한 문장만 가지고 햄릿을 고민하는 영리한 법률가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아마도 저자는 문학에 문외한인 법학도와 문학을 좋아하는 법학 비전공자 모두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 책을 썼을 것이다. 그래서 , 셰익스피어를 입다멀찌감치 떨어진 문학과 법이라는 두 문화를 왕래하고 싶은 독자들을 위한 다리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문학 애호가와 법학도 모두를 만족시켜주는 책이 되기 어려워 보인다. 이 책을 흥미롭게 읽기 위해서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먼저 읽어보는 것이 좋다. , 셰익스피어를 입다에 소개된 열두 편의 작품 중에 국내 독자들이 잘 읽지 않는 역사극(헨리 62, 리처드 2, 리처드 3)’이 포함되어 있다. 지루하고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알고 나서 , 셰익스피어를 입다를 읽으면 작품 속 장면에 대한 저자의 해석을 이해할 수 있다. 법률 용어의 의미를 상세하게 설명한 각주가 없는 저자의 글은 책을 읽으려는 법학 비전공자에게 부담감을 준다. 이렇다 보니 에세이집’이 아닌 논문 모음집을 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이없는 오자와 오류가 눈에 걸린다. 15쪽에 있는 웨스터민스터웨스트민스터(Westminster) 사원의 오자다. 112쪽에 햄릿의 삼촌을 클라우디우스라고 잘못 썼다. 클라디우스라고 써야 한다. 148~149쪽에 영국의 수필가 겸 언론인 조셉 애디슨(Joseph Addison)조셉 에디슨(Joseph Edison)으로 잘못 썼다(조셉 애디슨보다 조지프 애디슨라는 이름이 더 많이 알려져 있)157쪽에 보조관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보좌관의 오자로 보인다. 293쪽에 한 여름 밤의 꿈의 등장인물 이름이 잘못 적혀 있다. 타니아너'티타니아(Titania)'로 고쳐야 한다. 348쪽에 보면 동성애자옆에 소괄호로 ‘LGBT’로 표기한 문장이 있다. ‘LGBT’는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의 첫 글자를 합친 것으로 성소수자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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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한 현대시를 읽으면 고통스럽다. 읽으면 읽을수록 머리가 아프다. 안 읽으면 그만이지 시간을 낭비하면서까지 어려운 시를 읽느냐고 할지 모르겠다. 시를 읽고 싶은 호기심, 현대시를 알고 싶은 욕구 때문에 자꾸 시를 읽으려고 한다. 물론 의미가 불분명한 문장으로 꾸며놓은 시는 보고 싶지 않다.

    

 

 

 

 

 

 

 

 

 

 

 

 

 

 

 

 

 

* 로트레아몽, 윤인선 옮김 말도로르의 노래(달섬, 2020)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말도로르의 노래(문학동네, 2018)

 

    

 

로트레아몽(Lautreamont)의 산문시 말도로르의 노래(Les Chants de Maldoror)는 난해한 현대시로 유명하다. 주인공 말도로르가 저지르는 온갖 악행과 신성모독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말도로르의 노래는 초현실주의에 영향을 준 현대시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현대의 독자들은 이 작품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단번에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지나치게 과장된 문장들은 독자의 인내심을 시험한다. 로트레아몽은 종종 불어사전에 없는 단어를 썼는데,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글쓰기 방식은 로트레아몽을 전공한 불문학자들의 진땀을 빼게 한다. 우리말로 번역하기 힘든 단어나 문법이 맞지 않는 문장(로트레아몽이 의도적으로 썼을 가능성이 높다)은 번역자들을 괴롭힌다.

 

말도로르의 노래완역본 2종을 비교하면서 읽으면 로트레아몽의 문장이 얼마나 어려운지 느낄 수 있다.

 

    

 

* 원문

Fatigué de la vie, et honteux de marcher parmi des êtres qui ne lui ressemblent pas, le désespoir a gagné son âme, et il s’en va seul, comme le mendiant de la vallée.

 

* 생활에 지치고, 그와는 닮지 않은 존재들 사이에서 걷는 게 부끄러워, 그는 절망에 빠졌다. 그래서 그는 계곡의 걸인처럼 홀로 죽어 가고 있다. (윤인선 옮김, 83)

 

* 삶에 지치고, 자기와 닮지 않은 존재들 사이로 걷는 것이 부끄러운 나머지, 절망이 그의 영혼을 짓눌러, 그는 계곡의 걸인처럼 홀로 간다. (황현산 옮김, 77)

 

 

인용문의 말도로르의 노래 두 번째 노래’ 7절에 나오는 양성(兩性) 인간이다. 두 개의 문장은 속세에 거리를 두는 양성 인간의 모습을 묘사한 내용이다. 그런데 첫 번째 문장을 번역한 윤인선은 양성 인간이 쓸쓸하게 죽어 간다는 식으로 번역했다. 그녀는 동사 ‘va’를 잘못 번역했다. ‘va’떠나다’, ‘가다를 뜻하는 ‘aller’3인칭 단수형이다. ‘양성 인간이 홀로 간다라고 번역한 황현산의 문장이 맞다. 두 번째 노래’ 7절 전체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양성 인간은 죽지 않는다.

 

 

    

 

* 원문

Écoutez les pensées de mon enfance, quand je me réveillais, humains, à la verge rouge.

 

* 나의 어린 시절, 내가 빨간 채찍에 맞아 잠을 깨곤 했을 때, 인간들이여, 그때 내가 한 생각을 들어 보라. (윤인선 옮김, 112~113)

 

* 내가 어린 시절에 잠에서 깨어나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들어보라, 음경이 빨간 인간들아. (황현산 옮김, 102)

 

 

두 번째 노래’ 12절에 나오는 첫 문장의 일부이다. ‘verge’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 단어인데, 막대 또는 채찍을 뜻한다. ‘verge’음경을 뜻하기도 한다. 이 문장을 우리말로 번역하기가 까다로워 보인다.

 

 

 

 

* 원문

Quel ne fut pas son étonnement, quand il vit Maldoror, changé en poulpe, avancer contre son corps ses huit pattes monstrueuses, dont chacune, lanière solide, aurait pu embrasser facilement la circonférence d’une planète!

 

* 낙지로 변한, 말도로르가, 창조주의 몸에다 자신의 흉측한 여덟 개의 발을 뻗치는 것을 창조주가 보았을 때, 그의 놀라움은 얼마나 컸을 것인가! 견고한 가죽끈 같은, 그 각각의 낙지발은 쉽게 하나의 유성 둘레를 감쌀 수 있었을 것이다. (윤인선 옮김, 134)

 

* 녀석의 놀라움이 얼마나 컸을까, 말도로르가 낙지로 둔갑해, 하나하나가 질긴 가죽 끈이어서 행성 하나쯤은 어렵잖게 둘러 감을 수도 있을 그 흉물스러운 여덟 개의 다리를 제 몸뚱이 쪽으로 뻗는 것을 제 눈으로 보았으니. (황현산 옮김, 112)

 

 

말도로르는 각종 동물로 변신하면서 자신의 폭력성을 드러낸다. ‘planète’도 앞서 언급한 verge’처럼 뜻이 많은 단어다. 행성과 유성뿐만 아니라 지구, ‘세계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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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트레아몽(Lautréamont)말도로르의 노래(Les Chants de Maldoror)는 가장 난해한 문학작품 중 하나다. 우리는 이 작품을 가장 난해한 시아니면 가장 난해한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다.

 

 

 

 

 

 

 

 

 

 

 

 

 

 

 

 

 

 

 

* 로트레아몽, 윤인선 옮김 말도로르의 노래(달섬, 2020)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말도로르의 노래(문학동네, 2018)

 

    

 

학자와 역자들은 노래 여섯 개의 노래로 이루어진 산문시로 보고 있지만, 그 속에 시의 기본 형식인 운율과 압운(rhyme)은 없다. 독자들이 보기에는 노래가 시처럼 보이지 않겠지만, 로트레아몽이 독보적인 산문시 세계를 일구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노래프랑스 산문시 문학의 계보에 넣어야 할 작품이다.

    

 

 

 

 

 

 

 

 

 

 

 

 

 

 

 

 

* 보들레르, 황현산 옮김 파리의 우울(문학동네, 2015)

* 보들레르, 윤영애 옮김 파리의 우울(민음사, 2008)

 

 

 

초현실주의 운동을 이끈 시인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이 평가했듯이 보들레르(Baudelaire)산문시를 문학 장르로 자리매김하도록 만든 장본인이다. 보들레르 이전에 이미 산문시와 유사한 형식을 갖춘 글을 쓴 프랑스 작가들이 있었다. 보들레르는 요절 시인 알로이시우스 베르트랑(Aloysius Bertrand)의 유고인 <밤의 가스파르(Gaspard de la nuit)>를 스무 번이나 읽었다고 한다[프랑스의 음악가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은 이 작품에 영감을 받아 동명의 피아노곡을 만든다]. 그는 이 책을 유명하다고 불릴 만한 작품이라서 칭찬한다. 그리고 자신도 <밤의 가스파르>와 유사한 어떤 방식의 글을 시도한다. 그 글이 바로 파리의 우울이다.

 

보들레르는 파리의 우울헌사에서 자신의 꿈은 산문시를 쓰는 일이라고 언급했다.

 

 

 우리 중 누가 한창 야심만만한 시절, 이 같은 꿈을 꾸어보지 않은 자가 있겠소? 리듬과 각운이 없으면서도 충분히 음악적이며, 영혼의 서정적 움직임과 상념의 물결침과 의식의 경련에 걸맞을 만큼 충분히 유연하면서 동시에 거친 어떤 시적 산문의 기적의 꿈을 말이오. (파리의 우울민음사, 18)

 

 

말도로르의 노래(달섬)지인들(출판업자와 경제적 후원자)에게 보낸 로트레아몽의 편지들이 부록으로 실려 있다. 로트레아몽은 186910월 말에 쓴 편지에 미츠키에비치(Adam Mickiewicz), 바이런(George Gordon Byron), 밀턴(John Milton), 사우디(Robert Southey), 뮈세(Alfred de Musset), 그리고 보들레르가 한 것처럼 악을 노래했다고 밝혔다. 로트레아몽은 여섯 개의 노래로 이루어진 노래를 이미 다 쓴 상태였다. 인쇄 작업도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출판업자는 노래의 대담성과 잔인성이 검찰총장의 검열에 걸릴 수 있다면서 출판을 거부한다. 그래도 로트레아몽은 작품 출간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글에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을 수정할 수 있다면서 보들레르의 시 부록을 보내달라고 출판업자에게 부탁한다. 로트레아몽은 다음 작품에는 이 아니라 ’, ‘희망’, ‘행복을 노래하겠다고 밝힌다. 노래를 외면하고 기피하는 당대의 반응에 좌절감을 느낀 로트레아몽은 낭만주의 문학을 끔찍한 궤변에 불과한 시적 탄식이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빅토르 위고(Victor Hugo), 뮈세 등의 선배 작가들을 가냘픈 여자’, ‘항상 우는 흉내를 내는 연약한 문호라고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1864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이 시기에 열여덟 살의 로트레아몽은 자신이 태어난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를 떠나 프랑스의 왕립고등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로트레아몽의 학창 시절에 대해 자세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그래서 젊은 로트레아몽이 보들레르의 글을 읽으면서 영감을 얻은 사실을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새로운 작품을 쓰기 위해 보들레르의 글을 참고하겠다고 편지를 통해 밝혔으므로 보들레르와 로트레아몽의 문학적 교집합(“대도시 파리에서 우연히 만난 보들레르와 로트레아몽”)[]에 대해서 논의해볼 수 있다. 아마도 로트레아몽은 풍기문란 혐의를 받아 검찰의 검열을 피하지 못한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의 명성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노래의 대담성과 잔혹성은 악의 꽃의 분위기와 비슷하다. 로트레아몽은 1867년부터 파리에서 생활한다. 그해부터 그는 노래의 초고를 쓰기 시작한다. 로트레아몽이 산문시의 등장을 선언한 파리의 우울도 눈여겨봤다면 노래》도 리듬과 각운이 없는 시적 산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노래가 로트레아몽 생전에 출판되지 못한 바람에 ‘시적 산문의 두 번째 기적은 일어나지 못했다. ‘시적 산문의 두 번째 기적은 로트레아몽이 죽은 지 훨씬 지난 뒤에 나타난 20세기의 초현실주의자들에 의해서 일어났다.

 

 

 

 

[] 원문은 로트레아몽의 시에 나오는 구절로 알려진 해부대 위의 우산과 재봉틀의 우연한 만남이다. 이 구절은 초현실주의 미술의 특징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문구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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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5-09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리의 우울을 두 권 다 갖고 있어요. 문학동네의 것이 글자가 작아 민음사 걸로 또 샀지요. ㅋ

cyrus 2020-05-09 14:39   좋아요 0 | URL
저는 민음사 판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문학동네 판을 역자의 주석 위주로 읽었어요. ^^
 
말도로르의 노래 달섬 세계고전 13
로트레아몽 지음, 윤인선 옮김 / 달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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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에 받친 천재를 아시오? 그 천재의 이름은 이지도르 뒤카스(Isidore Ducasse). 사실 이 본명보다는 가명인 로트레아몽(Lautréamont)이 잘 알려져 있다.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에서 태어난 로트레아몽은 학업을 위해 프랑스로 건너갔다. 로트레아몽의 아버지는 프랑스인이며 몬테비데오에 있는 프랑스 영사관에서 근무했다. 1868년에 로트레아몽은 익명으로 <말도로르의 첫 번째 노래>를 발표한다. 특이하게도 그 책의 저자 이름은 없고 ★★★만 표시되었다. 이듬해에 로트레아몽은 말도로르의 두 번째 노래를 출간하기 위해 준비하지만, 출판업자는 출간을 거부한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세 번째 노래부터 시작해서 여섯 번째 노래까지 완성한다. 1870년에 로트레아몽은 언젠가는 나오게 될 책(그가 요절하는 바람에 완성하지 못한다)을 위해 그 책의 서문에 해당하는 <시집(Poesies)>을 발표한다. 그해 11월 말 아침에 로트레아몽은 사망한다. 사망 당시 그의 나이는 스물네 살이었으며 사망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6부로 구성된 산문시 말도로르의 노래는 그가 죽은 후에 출간되었다. 그러나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로트레아몽은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불가사의한 인물이다. 그의 유년시절과 사망 원인에 대해서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다. 짧은 인생의 시작과 끝이 영원한 비밀로 남게 되는 바람에 그에 대한 추측만 무성할 뿐이다. 대중은 요절 시인에 대해서 모르는 게 너무 많다. 혹자는 로트레아몽을 정신 이상자로 보고, 그가 광기를 견디지 못해 자살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중은 요절 시인에 대해서 모르는 게 너무 많다. 그를 둘러싼 추측성 말들이 나오게 된 또 다른 원인은 말도로르의 노래의 난해성에 있다. 이 작품은 주인공 말도로르(Maldoror)가 저지르는 나쁜 행동들과 해석하기 어려운 잡다한 생각들이 장황하게 나온다. 말도로르의 노래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로트레아몽의 글 쓰는 방식은 독자에게 불친절하기로 악명 높다. 인칭이 자주 바뀌기 때문에 글을 읽다가 헤매기 쉽다. 사실 말도로르의 노래는 수수께끼 같은 단어와 단번에 봐도 이해하기 힘든 구절로 가득하다. 그래서 우리말로 번역하기 힘든 작품이기도 하다. 말도로르의 노래번역본을 읽을 때는 번역의 질에 대해서 따지지 말자. 읽다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문장을 만나면 그냥 넘어가면 된다.

 

로트레아몽은 독자의 분노를 유발하는 글을 쓰려고 작정한 듯이 상당히 공격적으로 글을 썼다. ‘말도로르의 첫 번째 노래의 첫 문장은 독자를 향한 경고로 시작한다.

 

 

 

 자신이 읽는 글처럼 순간적으로 잔인해지고 대담해진 독자가, 이 어둡고 독으로 가득 찬 페이지들의 황폐한 늪지대를 지나면서, 방향을 잃지 않고, 험하고 거친 자신의 길을 찾길 바란다. 왜냐하면, 그가 엄격한 논리와 적어도 자신의 의심과 동등한 정신적 긴장을 유지하지 않는다면, 이 책의 치명적인 발산물들이 마치 물이 설탕을 적시듯 그의 영혼을 적실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다음에 이어지는 페이지들을 읽는 것은 좋지 않다. 단지 몇 사람들만이 위험 없이 쓰디쓴 이 열매를 맛볼 것이므로. 따라서 수줍은 영혼이여, 그 길은 미탐험의 황야 속으로 더 멀리 잠입하기 전에, 그대의 발걸음을 앞으로 내딛지 말고 뒤로 돌리라. 내가 그대에게 말하는 것을 잘 들으라. 그대의 발걸음은 앞이 아니라 뒤로 돌리라. (7)

    

 

 

이 글의 실체를 잘 모르는 독자는 이 문장을 보면서 로트레아몽이 치명적으로 위험한 글이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과장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저자의 경고를 무시할 정도로 자신감 있는 독자라면 여섯 번째 노래까지 읽어보길 바란다. 아마도 그 사람은 이 글을 쓴 로트레아몽의 정신 상태를 의심할 것이다. 그리고 신을 모독하고,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는 등 온갖 악행을 일삼는 말도로르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하리라.

 

로트레아몽은 생전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초현실주의자들의 스타가 된다. 초현실주의자들은 문법과 서술 구조를 무시한 로트레아몽의 파격적인 글쓰기에서 자유와 반항의 힘을 확인했다. 말도로르의 노래고전이 될 만한 작품으로 볼 수 있는지 의심하는 독자들이 있겠지만, 그들의 생각이 틀린 건 아니다. 책에 정말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느껴지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나온 말도로르의 노래1997년에 나왔으나 한동안 절판된 번역본(출판사는 청하’)의 개정판이다. 국내에 출간된 말도로르의 노래완역본은 두 종이다. 그중 한 권은 2년 전에 황현산 교수가 번역한 것(출판사는 문학동네’)이다. ‘달섬출판사에서 나온 말도로르의 노래의 역자는 로트레아몽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부록으로 로트레아몽이 쓴 편지들이 실려 있다. 이 편지들은 말도로르의 노래의 집필 의도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소중한 문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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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Chehov)가 만들어낸 인간의 모습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그는 인간의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의사였다. 프랑스의 소설가 앙드레 모로아(Andre Maurois)현대의 의사는 환자를 확실히 이해하려면 예술가가 돼야 하며 철학가의 지능과 소설가의 재주를 겸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체호프가 현대의 의사에 가장 적합한 작가라는 사실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실제로 체호프는 의사였다. 모스크바 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그는 아내를 의학, 애인을 문학으로 비유하면서 자신의 삶을 규정했다. 그러나 병원 근무와 집필 생활을 병행한 삶은 체호프의 건강을 나쁘게 만든 원인이 된다. 작가로서 명성이 차츰 높아졌지만 젊은 시절부터 걸린 폐결핵은 평생 체호프의 건강을 위협했다. 결국 그는 1904년에 요양 생활을 하다가 사망한다.

    

 

 

 

 

 

 

 

 

 

 

 

 

 

 

 

 

* 안톤 체호프 지루한 이야기(창비, 2016)

* [품절] 안톤 체호프 귀여운 여인(시공사, 2013)

* 안톤 체호프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열린책들, 2009)

 

 

 

문학과 의학의 만남은 체호프의 죽음을 재촉했지만, 그에게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력을 제공해주었다. 체호프가 남긴 수백 편의 소설 중에 생명과 죽음, 질병의 고통, 광기, 의사의 삶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있다. <6호실> 또는 <6호 병동>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중편소설은 체호프가 작가로서의 원숙기로 접어든 시기에 나온 작품이다. 시골 마을에 사는 정신병원 원장이 환자들과의 대화를 시도하다가 도리어 자신이 환자로 몰리는 과정을 그렸다. ‘어느 노인의 수기라는 부제가 있는 <지루한 이야기>는 죽음을 앞둔 학자가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인식하는 과정을 그린 중편소설이다.

 

<지루한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은 체호프의 수작이라 할 수 있는데, 창비에서 나온 지루한 이야기는 우리말로 번역한 이 작품을 실은 유일한 책이다. 표제작인 <지루한 이야기> 이외에 <검은 옷의 수도사>,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이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출판사의 책 소개 내용 중에 오류가 있다. <지루한 이야기>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중편이라고 소개했는데, 사실이 아니다. <지루한 이야기>따분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1965에 처음 번역되었다. 최초의 번역 작품이 수록된 책은 문우출판사에서 나온 러시아 문학 전집 2이다. 그리고 1983년에 주우사의 세계문학전집 중 한 권인 사랑스러운 여인, 지루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 책은 체호프의 중 · 단편을 선별해서 모은 책이며 사랑스러운 여인<귀여운 여인>의 이명이다. 이듬해에 주우세계문학전집학원세계문학전집(출판사는 학원사’)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출간되었는데 역자나 수록 작품은 주우사의 책과 같다.

 

문우출판사의 러시아 문학 전집동완, 사랑스러운 여인, 지루한 이야기박형규가 역자로 참여했다(두 책 모두 단독 번역이 아닌 공동 번역이다), 두 사람 모두 1세대 러시아 문학 번역가. 이미 두 차례 번역된 체호프의 작품을 국내 초역이라고 잘못 소개한 것은 책 소개 글을 만든 창비 출판사 측 또는 역자(도스토옙스키의 작품 번역으로 유명한 석영중 교수)의 착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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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la 2020-05-06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은 한달동안 책 몇 권을 끝나고서평을 한꺼번에 확~쓰시는군요? ㅎ

cyrus 2020-05-06 23:32   좋아요 0 | URL
가끔 책만 읽고 싶어지는 날이 오긴 해요. 사실 2월 말부터 대구에 있는 모든 공공도서관이 휴관하면서 글쓰기 욕구가 한풀 꺾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