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병 한길 히스토리아 14
필립 지글러 지음, 한은경 옮김 / 한길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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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710,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의 항구 도시 메시나에 열두 척의 배가 들어왔다. 이 배에 탄 선원들은 이미 전염병에 걸려 있었고, 갑판 곳곳에 주검들이 널려 있었다. 메시나 당국은 선원들이 항구에 내리지 못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이미 중국에서 시작된 전염병의 위력을 소문으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헛수고였다. 배가 떠나면서 전염병은 해상 무역 길을 지나면서 유럽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흑사병이 죽음의 창을 휘두르면서 유럽 정복에 나선 것이다.

 

유럽인들에게 흑사병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중세 유럽을 휩쓸었던 이 병은 유럽 인구 절반의 생명을 앗아가 신이 내린 형벌로 간주할 정도였다. 유럽인들은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감염됐는지도 모른 채 죽어갔다. 하룻밤 자고 나면 흑사병은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전염됐고, 이를 차단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았다.

 

흑사병의 영향력에 대해서 역사가들이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시기가 언제인지는 여러 의견이 있을 것이다. 19세기에 흑사병을 주제로 한 연구 논문들이 나오긴 했으나 정설이라고 보기 어렵다. 흑사병(The Black Death)이라는 단순한 제목이 붙여진 책은 1969년 영국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중세사가도 아니고, 전염병 전문가도 아니다. 저자는 자신을 아마추어 학자라고 언급하면서 그저 즐겁게이 책을 썼다고 서문에서 밝혔다. 그는 출판사에서 15년 이상 편집자로 일한 경력이 있다. 저자는 흑사병에 관한 당대 유럽인들의 기록과 후대 역사가들의 연구 논문에 나온 내용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썼다.

 

이 책에 저자는 흑사병이 유럽 전역에서 확산하는 과정과 그 원인을 먼저 설명하고, 흑사병이 영국 사회에 미친 영향을 다룬다. 저자는 책의 구성이 다소 산만하게 보일 수 있다고 스스로 밝혔다. 그래도 피상적이고 방대한 내용을 균형 있게 서술하려는 저자의 노력이 돋보인다. 이 책이 나온 지 50년이 넘었다. 반세기가 지나면서 이 책에 나온 정설들은 반박되거나 수정되었을 것이다. 국내 번역본도 나온 지 십 년 넘었고, 지금은 서점에서 구할 수 없는 책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 책의 진가를 무시할 수 없다. ‘친구와 술은 오래될수록 좋다라는 말이 있다. 꼭 모든 책이 그런 건 아니지만, 오래될수록 좋은 책도 있기 마련이다. 흑사병은 그런 책이다. 전염병의 공포가 전 세계를 배회하고 있는 이 시국에 읽기 적절한 책이다. 전염병은 잊을 만하면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왔다. 1969년에 나온 흑사병을 지금 읽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소설 페스트(La Peste)는 전염병의 공포와 이를 극복하는 인간의 모습을 묘사한 걸작이다. 카뮈의 소설에 가려져서 그렇지 보카치오(Boccaccio)데카메론(Decameron)도 흑사병이 휩쓸고 있던 당시의 사회상을 잘 보여준 작품이다. 그러나 전염병을 소재로 한 문학 작품은 한계가 있다. 작가는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려고 전염병이 확산하는 과정을 더 암울하게 묘사하거나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설정을 넣기도 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전염병을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독자들이 생길 수 있다. 역사책을 읽으면 소설 읽기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흑사병은 인간의 목숨을 앗아간 전염병의 위력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전염병이 유럽 사회와 경제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도 살핀다.

 

영국에 흑사병이 퍼지면서 수많은 대학 교수와 학자들이 사망했다. 이로 인해 라틴어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부족해졌고, 라틴어를 직접 영어로 옮기는 일이 늘어났다. 흑사병 시대는 서양 공통어가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흑사병 시대 이후 종교에 대한 중세 유럽인들의 인식이 달라졌다. 교회는 흑사병을 신의 분노라고 주장하면서 교인들의 죄악을 강조하기만 했다. 중세 유럽인들은 매번 충고에 가까운 설교만 늘어놓는 교회에 실망했고, 기성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새로운 교단에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전염병으로 인해 영국의 장원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농노들의 수가 줄어들자 경작하지 않은 땅이 많아졌고, 그런 땅을 소유한 영주들은 농노의 이동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다. 그 후로 농민들의 반란이 증가했고, 장원제 붕괴와 영주 세력의 몰락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다. 저자는 흑사병이 없었더라면 14세기 후반 영국과 유럽의 역사는 매우 달랐을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와 같은 삶의 방식은 지주와 농민 모두에게 버려야 할 짐이었다. 삶의 질은 극적으로 바뀌었다. 흑사병은 유럽을 초토화한 전염병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역사를 움직이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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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0-04-01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사병이 없었다면 뉴턴의 중력이론도 늦게 탄생했겠죠!!!

cyrus 2020-04-02 08:04   좋아요 0 | URL
맞아요. 흑사병이 과학의 역사까지도 바꾼 셈이네요. ^^

레삭매냐 2020-04-01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설적으로 대통령이나 국가권력도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재택근무를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능하게 만들
었다는 뉴스를 본 것 같습니다.

유럽의 인구 감소는 무엇보다 신분
제 사회에서 사람의 중요성을 자각
하게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의 삶이 어떻게
바뀌게 될 지 궁금하네요.

그나저나 이런 책들은 왜 다 절판
이 되는지...

cyrus 2020-04-02 08:09   좋아요 0 | URL
흑사병과 관련된 역사책이 더 있는지 알아봤는데, 생각보다 많지 않았어요. 우리나라가 코로나에 크게 한 번 데였으니 전염병의 역사에 관한 책이 나올 거예요. ^^
 
지구가 평평했을 때 -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과학의 모든것
그레이엄 도널드 지음, 한혁섭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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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했다. 대항해 시대가 오기 전까지 누구도 목숨을 담보로 한 항해를 시도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상상력은 상식이 되었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바다가 끝나는 지점까지 항해하면 낭떠러지로 추락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스페인의 항해자 마젤란(Magellan)이 세계 일주에 성공하여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지금도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안 믿어진다면 유튜브(Yotude)‘flat earth’를 찾아보라. 평평한 지구를 믿는 사람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말을 거짓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지구는 평평한 원반 모양으로 생겼으며 그 지구 중심에 북극이 있다. 남극은 원의 가장자리에 있는 거대한 얼음벽이다. 코로나19 관련 소식 때문에 묻혔는데, 지난 달 말에 미국의 모험가가 자신이 직접 만든 로켓을 타다가 추락해 사망했다. 이 모험가는 ‘flat earth’ 지지자다. 지구가 평면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로켓을 만들었다.

 

가짜 뉴스 중에는 마치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인 체하는 수상한 논리들이 있다. 유사 과학은 그저 우스개로 가볍게 받아들이면 모를까,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는 경우도 있다. 유사 과학은 단순한 허위사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 피해를 주기도 한다. 또 유사 과학을 이용한 상술은 금전적 피해를 준다.

 

지구가 평평했을 때는 과거에 사람들이 과학이라고 믿었던 잘못된 이론들을 보여주는 책이다. 지금은 믿기 힘든 일이겠지만, 담배는 한때 기적의 약초라고 환영받았다. 담배의 효능을 믿은 의사들은 담배 연기로 환자를 치료했다. 예나 지금이나 남자들은 정력 향상에 관심이 많다. 오늘날 아보카도(Avocado)는 건강식품으로 주목받고 있는 과일이다. 대항해 시대의 스페인 탐험가들은 멕시코에 열린 아보카도에 최음제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그들이 그렇게 믿은 이유가 황당하다. ‘아보카도는 멕시코어로 고환을 의미한다. 과일 모양이 고환처럼 생겨서 그런 이름이 붙여진 것뿐인데 스페인 탐험가들은 이름만 듣고 지나친 상상을 했다. 책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flat earth’도 나온다. 미국의 작가 워싱턴 어빙(Washington Irving)은 콜럼버스(Columbus)를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으로 묘사한 소설을 썼다. 사실 콜럼버스는 지구가 서양 배 모양처럼 생겼다고 믿었다.

 

지구가 평평했을 때는 교과서에 완전히 퇴출한 이론만 소개하지 않는다. 교과서에 나올 법한 유사 과학도 나온다. 군인들은 다리를 지날 때는 발을 맞춰 걷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발걸음에서 나오는 진동과 다리의 고유 주파수(한 번 움직이면 계속 진동하는 빈도수)가 맞아떨어지면 진동이 더 커져 다리가 무너진다고 믿었다. 생각보다 이 가설을 믿는 사람들이 많다. 아마도 그 사람들은 과학책에서 봤다고 말할 것이다. 지구가 평평했을 때를 보기 전까지 나도 군인들의 행군이 다리를 무너뜨리는 원인이라고 믿으면서 살아왔다. 어렸을 적에 사고가 일어난 순간의 장면들만 편집하여 보여주는 방송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내가 본 방송 프로그램에 군악대가 지나가면서 다리가 무너지는 장면이 나왔다. 그 방송 프로그램의 내레이션을 한 성우는 사고 원인을 군악대의 발걸음에서 생긴 진동이라고 말했다. 이 책의 저자는 군인의 행군이 진동의 위력을 과장한 사례로 보고 있다. 사람의 고음으로 유리잔을 깰 수 있다는 믿음도 과장되었다고 한다.

 

이 세상에 별의별 사람들이 살았고,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그 사람들은 보편적인 상식에 벗어난 황당한 이론을 열심히 전파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시대의 아집으로 만들어진 것이 유사 과학이라고 말한다. 아집에 갇힌 그들만의 이론은 고여서 썩은 물과 같다. 썩은 물을 맛 보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일수록 그 사회의 건강은 나빠진다.

 

 

 

 

 

 

Trivia

 

 

* 59

 

실제로 콜럼버스가 살던 시대에 세계가 평평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 이야기는 19세기 중반 미국 작가 워싱턴 어빙의 인기 소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인생과 항해(1928)에서 만들어졌다.

 

본문에 발표 연도가 잘못 적혀 있다. 어빙의 소설이 나온 해는 1828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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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한 성당에 에케 호모(Ecce Homo)라는 제목의 오래된 벽화가 있었다. 에케 모호는 이 사람을 보라는 뜻의 라틴어. 이 벽화에 가시 면류관을 쓴 예수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성당 신도(그녀는 복원 작업을 해본 적이 없는 수공예 교사였다)는 벽화 복원 작업을 시도했다. 그러나 벽화를 복원하는 데 실패한다.

 

 

 

 

    

 

 

예수의 얼굴은 사라지고 원숭이처럼 생긴 우스꽝스러운 얼굴이 남게 된 것이다. 스페인 언론은 이 벽화를 공개하면서 역사상 최악의 복원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벽화는 명성을 얻었다. 외국 네티즌들은 복원에 실패한 벽화를 이 원숭이를 보라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벽화를 보려고 성당을 찾은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뜨거운 반응에도 예수를 존경하는 종교인들과 예술을 사랑하는 미술 전문가들은 예수의 얼굴이 사라진 벽화를 실패작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은 치렁치렁한 긴 머리와 수염 없는 예수의 얼굴에 위엄이 사라졌으며 아름답지 않다고 느낀다. 머리카락 잘린 삼손(Samson)이 힘을 잃은 것처럼 수염 없는 예수는 영적인 권위를 잃어버린다.

    

 

 

 

 

 

 

 

 

 

 

 

 

 

 

 

* [절판] 다니엘라 마이어, 클라우스 마이어 (작가정신, 2004)

 

 

 

남자의 인상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것은 머리 모양과 수염이다. 그러나 털의 중요성은 그 정도로 단순하지만 않다. 남성의 털은 남성성의 상징으로, 남성성은 힘의 상징으로, 그 힘은 권위의 상징으로 점점 복합된 이미지를 형성한다. ‘체모의 문화사라는 부제가 달린 (작가정신)은 털에 얽힌 인간의 문화와 미적 가치가 시대별로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준다.

 

수염은 단순히 인상을 만들어주는 털에 그치지 않는다. 수염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남자들의 체면과 권위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수염 옹호론자면도 옹호론자는 오랜 기간 동안 서로 힘을 겨뤄왔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수염이 권력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파라오(Pharaoh)만이 수염을 기를 수 있었다. 남성 종교인들은 예수의 남성성과 권위를 향상하기 위해 수염을 예찬했으며 자신들도 수염을 길렀다. 반면 면도를 지향하는 종교인들도 있었다. 고대 이집트 사제들은 털을 세속적인 것으로 인식하여 머리카락과 눈썹을 밀었다고 한다. 그들은 신의 몸에 털 한 올이 없다고 믿었다. 학자들도 수염 대 면도의 대립에 동참했다. 수염을 지성의 상징으로 보는 학자들의 주장이 대세를 이루었지만, 한때 수염 기르기를 거부하는 학자들의 주장도 인기를 얻었다.

    

 

 

 

 

 

 

 

 

 

 

 

 

 

 

 

* 크리스토퍼 올드스톤-모어 수염과 남자에 관하여(사일런스북, 2019)

 

 

 

은 현재 절판된 책이다. 체모에 관한 흥미로운 역사를 보여준 의 빈자리를 채운 책이 수염과 남자에 관하여(사일런스북)이다. 수염과 남자에 관하여도 체모의 문화사를 다루고 있지만, 이 책의 저자는 수염과 면도에 중점을 맞춘다. 수염과 남자에 관하여보다 분량이 작다. 하지만 의 공동 저자는 주류 역사가 외면한 여성의 체모, 머리카락, 대머리에 관심을 보인 옛사람들의 기록에 주목한다.

    

 

 

 

 

 

 

 

 

 

 

 

 

 

 

* [절판] 베아트리스 퐁타넬 치장의 역사(김영사, 2004)

 

 

 

남자들은 자신의 얼굴에 기른 수염을 과시했지만, 여성이 수염을 기르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남자들은 여자의 아름다움을 위해 수염뿐만 아니라 체모를 기르지 않는 것을 권장했다. 이로 인해 여성은 체모를 언제나 수치스럽고 아름답지 못한 것으로 인식했다. 치장의 역사는 여성의 체모 제거가 가장 오래된 화장 문화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로마 귀부인들은 온 몸과 얼굴에 난 털은 물론 콧구멍에 난 털까지도 모조리 뽑았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부인들은 고귀함의 상징이었던 넓은 이마를 만들고자 눈썹과 두개골 상부 머리카락을 뽑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의 작품 <모나리자>를 보면 르네상스 시대의 미인상을 확인할 수 있다. 여인의 입가에 띤 은은한 미소를 주목한 사람들은 여인의 얼굴에 눈썹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 쉴라 제프리스 코르셋(열다북스, 2018)

    

 

 

의 공동 저자는 모든 문화권에 나타난 여성의 제모 제거 풍습을 고문이라고 표현한다. 따라서 제모는 길고 긴 여성 억압의 역사에 대한 하나의 상징으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입장은 탈 코르셋을 지향하는 급진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고 있다. 국내 급진 페미니스트들이 선호하는 호주의 여성학자 쉴라 제프리스(Sheila Jeffreys)는 미용 관습이 여자의 순종을 표시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그녀가 말한 순종은 여자가 남자를 위해 성적으로 복무하려는 의지와 성적 복무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 모두를 의미한다. 대부분 남자는 여성의 매끄러운 피부를 선호한다. 그리고 털이 없는 여성 겨드랑이와 음부 페티쉬(fetish)가 있는 남자들이 있다. 쉴라 제프리스를 포함한 탈 코르셋 지지자들은 여자는 이런 남자들을 위해 제모를 하게 되고, ‘아름답고 순종적인 여성성을 실천할 것을 강요받는다고 주장한다.

 

 

 

 

 

 

 

 

 

 

 

 

 

 

 

 

 

 

 

* [품절] 키레네의 시네시오스 《대머리 예찬(21세기북스, 2005)

 

   

 

수염 대 면도의 역사가 상당히 오래돼서 그런지 머리카락 대 대머리의 역사가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국내 네티즌들의 키보드 배틀(온라인 언쟁)을 부추기는 주제 중 하나가 바로 대머리 또는 탈모 인에 대한 차별 문제이다. 대머리와 탈모 인을 긍정하는 사람들은 탈모를 희화화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머리카락 없는 사람의 심리를 위축시킨다고 주장한다. 사실 머리카락 대 대머리논쟁은 탈모 환자가 급격히 일어나기 시작한 시기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다. 머리카락 대 대머리의 역사도 수염 대 면도의 역사만큼 오래 됐다. 고대 그리스의 신플라톤주의 철학자 키레네의 시네시오스(Synesios of Cyrene)는 탈모와 대머리를 예찬한 최초의 인물이다.

 

시네시오스는 대머리였다. 그는 자신의 스승이자 경쟁자인 황금 입의 디온(golden-mouthed, ‘황금 입은 별명이고, 본명은 ‘Dio Chrysostom’이다)이 쓴 글인 <머리카락 예찬>을 보자 분노한다. <머리카락 예찬>은 말 그대로 머리카락이 풍성한 사람을 예찬한 글이다. 시네시오스는 <머리카락 예찬>에 대한 반론으로 대머리 예찬(21세기북스)을 쓴다. 그는 이 글에서 대머리가 지성의 상징인 이유를 열거한다. 그런데 그가 내세운 몇 가지 이유를 지금 보면 억지스럽고 논리적이지 않다. 시네시오스는 일 년 내내 태양에서 나오는 빛을 쬔 대머리는 강철 같이 단단해져서 모든 질병을 물리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태양 자외선 때문에 피부가 상할 수 있어서 오히려 건강에 좋지 않다.

 

강철 대머리의 우수성을 주장한 시네시오스의 주장을 재반박할 수 있는 사례가 있다. 비록 구전된 일화이지만, 고대 그리스의 비극작가 아이스킬로스(Aeschylos)의 최후에 대한 이야기다. 아이스킬로스는 하늘에 떨어진 거북 등껍질에 맞아 죽었다. 독수리는 포획한 거북의 딱딱한 등껍질을 깨기 위해 거북을 바위에 떨어뜨렸고, 하필 거북이 아이스킬로스의 머리를 명중한 것이다. 아이스킬로스는 햇볕을 받으면 반짝반짝 빛나는 대머리였다고 한다. 아마도 독수리는 아이스킬로스의 대머리를 단단한 바위로 보였던 것 같다. 위대한 비극 작가답게 그는 최후의 작품인 대머리의 비극을 만들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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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20-03-17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날짜에 저도 털에 대한 페이퍼를 쓴거로군요~저는 머리털^^
그런데 성당 벽화는 종교를 떠나서 봐도 복원 너무 못 한 거 아닌가요? ㅎㅎ
복원이 아닌 자신만의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켜 버렸네요..화풍은 앤서니 브라운 풍?

cyrus 2020-03-17 18:06   좋아요 0 | URL
저는 예수를 남성도, 여성도 아닌 무성의 존재로 묘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남성 종교인들은 예수가 남성이라는 근거를 내세워 권위를 획득했어요. 물론 기독교인들은 제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 ^^;;
 
수염과 남자에 관하여 (2019년 세종도서 교양부분 선정) - 남자 얼굴 위에서 펼쳐진 투쟁의 역사 (서양 편)
크리스토퍼 올드스톤-모어 지음, 마도경 옮김 / 사일런스북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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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지낸 지 어느덧 11일이 되었다. 밖에 나갈 일이 없어서 면도를 안 한 지 사흘이 지났다. 원래 이틀에 한 번씩은 면도한다. 면도하지 않으면 얼굴에 수염이 거뭇거뭇하게 자라난다. 내 피부가 하얘서 수염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인다. 그래서 자주 면도를 한다. 어제 친한 동생한테 연락이 왔는데 이 녀석도 거의 집에서 지내고 있다. 그 녀석도 면도를 안 하고 있다면서 셀카 사진을 찍어 내게 보여줬다. 이 친구는 나보다 수염이 빨리 자라는지 구레나룻도 꽤 많이 자라나 있었다. 그는 체격이 크다. 이대로 수염이 쭉쭉 자란다면 두 달 뒤에 그는 임꺽정과 같은 모습으로 변해 있을 것 같다.

 

인류 역사상 가장 먼저 면도를 한 사람은 누구일까? 사실 누구도 궁금하지 않은 질문이다. 면도가 과연 역사적인 행위’로 볼 수 있는지 의심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이 수염과 남자에 관하여라는 책을 보게 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수염과 남자에 관하여남성의 외모에 큰 영향을 미치는 수염과 그것을 제거하는 면도의 역사를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의 부제는 남자 얼굴 위에서 펼쳐진 투쟁의 역사. ‘투쟁의 역사라고 하니 거창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그동안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수염과 면도를 다시 보게 된다.

 

저자는 수염 기르는 행위와 면도를 단순히 남성성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사회가 인정하는 남성이 되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한다. 수염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얼굴은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의 조건 또는 남성성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읽을 수 있는 지표. 수염과 면도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수염 기르는 행위를 개인 취향의 문제로 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러한 입장을 반박할 수 있는 수많은 사례를 보여준다. 수염은 정치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때론 지도자의 권위나 정치적인 메시지를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상징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면도의 역사는 생각보다 엄청 오래됐다. 면도를 시작한 최초의 인류는 고대 수메르와 이집트의 남성들이다. 고대인들이 면도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신분을 철저하게 구분하기 위해서다. 왕족과 귀족은 수염을 길렀으며 성직자들은 면도했다. 왕족은 땅을 정복하고 지배하는 자신들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수염을 길렀다면, 성직자는 신성한 신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 불손한 수염과 털을 말끔히 제거했다. 고대 이집트의 최고 통치자인 파라오(Pharaoh)는 유일하게 턱수염을 기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귀족은 함부로 턱수염을 기를 수 없었다. 이집트 여왕도 수염이 통치자의 권위를 상징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왕비에서 파라오가 된 하트셉수트(Hatshepsut)는 가짜 턱수염을 달았다. 이렇듯 수염에 대한 고대 이집트인들의 인식은 수염의 정치적 의미를 보여주는 첫 번째 역사적 사례로 볼 수 있다.

 

시대가 변하면 수염 스타일과 수염에 대한 인식도 변한다. 고대 이집트인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인들도 수염의 상징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남성으로서의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서 수염을 길렀다. 그러나 세계를 정복하려는 알렉산드로스(Alexandros)가 등장하면서 수염에 대한 고대 남성들의 인식이 달라진다. 알렉산드로스는 면도를 선호했다. 그러면서 그를 따르는 병사들도 면도하게 되고, 알렉산드로스가 정복한 영토에 사는 남성들도 수염을 밀었다. 그 후 400년 동안 면도는 남성 얼굴의 정석으로 자리 잡는다 흉상이나 동상으로 만들어진 알렉산드로스의 외모는 수염이라고 찾아보기 힘든 청년의 말끔한 얼굴이다. 과거에 수염이 있는 남성이 존경을 받았다면 알렉산드로스의 시대에 이르면서 면도한 남성이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턱수염을 선호하는 시대가 찾아오긴 했으나 유행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래도 어느 사회든 유행을 따르지 않는 부류가 있기 마련이다. 남성 철학자들은 턱수염이야말로 남성성과 남성미를 드러내는 진정한 표상이라고 주장한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서 종교인들도 수염을 옹호한다. 고대 및 중세의 종교인들은 왕족만 수염을 기를 수 있었던 과거를 소환한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예수가 남자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의 남성적인 권위를 높이기 위해 수염을 옹호한다. 그러면서 턱수염이 있는 예수의 얼굴이 그려진 성화(聖畫)가 유행한다. 종교인들이 턱수염을 찬양하는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예수의 권위는 한층 더 높아지고, 교회의 남성 지도자들의 지배력은 강화된다.

 

유럽 남자들이 다시 수염을 밀기 시작한 시기는 17세기 이후다. 저자는 턱수염이 퇴조하는 시기가 계몽주의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그래도 여전히 수염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수염과 권위적인 남성성을 동일하게 생각했다. 특히 황제의 얼굴이 어떻게 생기느냐에 따라서 남성들의 수염 스타일은 달라졌다. 루이 나폴레옹(Louis Napoléon)17세기 이후 유럽에서 턱수염을 기르기 시작한 군주다(그의 큰아버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유럽의 알렉산드로스가 되고 싶었던지 항상 수염이 없는 얼굴을 유지했다). 프랑스 남성들은 루이 나폴레옹처럼 턱수염을 길렀다. 턱수염이 남성의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상징이 된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면도한 남성이 멋진 남성미의 상징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대중은 깔끔하게 면도한 남자를 선호하게 되고, 수염은 예술가 또는 사회질서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상징이 된다.

 

수염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라기 보다는 인정 투쟁의 역사에 더 가깝다. ‘투쟁의 역사로 본다면 수염을 선호하는 세력과 면도를 선호하는 세력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서로서로 비방하면서 공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수염의 역사를 인정 투쟁의 역사로 보면 서로 다른 두 세력의 관계 양상을 다르게 볼 수 있다. 그들은 자신과 다른 입장을 가진 세력을 제압하기보다는 그들의 남성성과 대조하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남성성을 인정받으려고 했다. 그러니까 수염을 선호하는 세력은 수염과 남성성의 연관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면도를 선호하는 세력의 입장과 비교하게 되고, 수염의 중요성이 사회로부터 인정받아야 하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려고 했다. 면도를 선호하는 세력들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고수했다. 이 두 세력은 서로서로 남성성을 인정해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수염과 면도를 둘러싼 오랜 인정 투쟁의 역사는 남성성의 정의와 남성 얼굴의 스타일이 끊임없이 변하고 다양해졌다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Trivia

 

 

* 그래서 그리스도라는 인물에 약간의 인간미 부여하는 것이 불가피했으며, 성녀 가타리나 수도원의 화가는 그리스도에게 중간 길이의 평범한 턱수염을 부여하여 이 작업을 용케 해낸 셈이다. (115)

 

약간의 인간미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써야 한다.

 

 

* 히틀러의 절친한 여인 알베르트 슈페어는 훗날 한 장의 종이에 히틀러와 스탈린의 이름이 우호적 관계로 함께 묶여 있는 모습을 본 것은 나의 상상을 초월한 충격적이고 흥미로운 돌발사태였다라고 고백했다. (342)

 

히틀러(Hitler)의 최측근 중 한 사람인 알베르트 슈페어(Albert Speer)남자.

 

 

* 닐 암스트롱과 부즈 올드린은 짧게 깎은 머리로 달에 도착했으나 [생략] (356)

 

버즈 올드린(Buzz Aldrin)으로 표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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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3 2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4 14: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3 2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4 14: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0-03-03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재미있겠는데요.. ㅎㅎ

cyrus 2020-03-04 14:50   좋아요 0 | URL
이 책에 관심 가지실 줄 알았습니다. ^^

페크(pek0501) 2020-03-04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시대가 변하면서 무엇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것 - 변화가 흥미롭습니다.
요즘 코로나19도 우리의 생활 패턴을 변화시키고 있지요.

cyrus 2020-03-04 14:52   좋아요 0 | URL
모든 사람이 다 그렇진 않겠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로 사람들은 손 씻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했을 것입니다. ^^;;

2020-03-05 0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5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1920년대 조선에는 신식 교육을 받은 신여성이 등장했다. 나혜석, 허영숙(한국 여성 최초의 개업의, 춘원 이광수의 부인), 황애시덕(애국부인회를 조직한 독립운동가) 등이 일본에서 공부하고 귀국해 여자유학생친목회를 결성하고, 여성 독자를 위한 교양지 <여자계(女子界)>를 창간한 것은 한국 여성사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손꼽힌다. 조선의 문학계와 미술계를 대표하는 유명한 신여성이 나혜석이라면, 음악계에는 윤심덕이 있다. 예술가로서의 길을 걸었던 두 사람의 여성해방론과 신념은 시대를 앞서 있었다. 1920년대 조선에는 여전히 구시대적 사고방식이 남아 있었다. 여성이 결혼하지 않고 사회생활을 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고, 신여성이 지향하는 자유 연애론에 눈살을 찌푸리면서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권 신장에 앞장선 두 사람으로서는 그 시절을 살아가기가 결코 녹록치 않았다.

 

 

 

 

 

 

 

 

 

 

 

 

 

 

 

 

 

 

* [우주지감 9월의 책] 나혜석, 장영은 엮음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민음사, 2018)

* [품절] 나혜석 경희 ()(종합출판 범우, 2006)

* [품절] 이상경 나는 인간으로 살고 싶다(한길사, 2009)

 

 

 

 

 

 

 

 

 

 

 

 

 

 

 

 

 

 

 

* 헨리크 입센 인형의 집 (예술의전당 에디션)(민음사, 2018)

* 헨리크 입센 인형의 집(민음사, 2010)

* 헨리크 입센 인형의 집(열린책들, 2010)

 

 

 

나혜석은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 많이 알려졌지만, 소설과 시를 쓴 작가이기도 하다. 1918<여자계>에 발표한 자전적 소설 경희는 구시대적 통념에 저항하는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한 여성주의 텍스트이다.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조선에 돌아온 경희는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주체이자 결혼의 주체라고 한다. 나혜석은 경희라는 인물을 통해 조선의 여성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의 문제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또 여성 스스로가 결혼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내 · 외부적 갈등도 소설 속에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결국 경희는 입센(H. Ibsen)의 희곡 인형의 집에 나오는 노라(Nora)처럼 가부장제가 작동하는 가정을 등지기로 결심한다.

 

 

 

 

 

 

 

 

 

 

 

 

 

 

 

 

* 김경일 신여성, 개념과 역사(푸른역사, 2016)

 

 

 

인형의 집은 나혜석을 포함한 신여성들에게 영향을 준 희곡이다. 19211월부터 <매일신보>인형의 집인형의 가()라는 제목으로 번역 연재되었다. 나혜석은 신문에 연재되는 희곡을 위해 직접 삽화를 그렸다. 제일 마지막 회에 나혜석이 쓴 동명의 노랫말이 실렸다. 나혜석의 인형의 가경희()(종합출판 범우)에 수록되어 있다. 윤심덕은 도쿄음악학교 졸업발표회를 위한 인형의 집공연에 노라 역을 맡았다. 나혜석과 윤심덕은 남성에 종속된 여성으로 사는 삶을 거부하고, 한 인간으로서 독립하려는 노라를 찬미하고 동경하고 있다.

 

신여성, 개념과 역사(푸른역사)의 저자 김경일은 나혜석과 윤심덕을 2세대 근대 여성으로 분류한다. 2세대 근대 여성은 봉건적 가족제도와 결혼제도에 대한 비판과 도전을 통해 사회전반에 걸친 개조와 개혁을 달성하려고 했다. 그녀들의 꿈은 여성의 개성과 평등에 기반을 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식민지라는 조선의 특수한 시대적 환경은 그녀들의 신념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게 만드는 유리 장벽이었다. 나혜석과 윤심덕은 봉건적 가족제도와 결혼제도를 비판하면서 여성의 개성과 평등을 강조했고, 자유연애를 서슴없이 말했다. 특히 나혜석은 1934년에 이혼 고백장-청구(靑邱) 씨에게라는 글을 써서 조선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 글을 통해 나혜석은 자신이 이혼에 이르게 된 경위와 그 과정에서 전 남편 김우영이 보인 편협함, 그리고 남성 이기주의 등을 상세하게 언급했다. 이혼 고백장는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공개적인 도발이었다. 그러나 이글이 발표되자 대중은 격렬하게 그녀를 비난했다. 전근대적인 남성 중심 사회에 벗어나지 못한 남녀 모두가 그녀를 향해 돌을 던졌다. 나혜석은 글쓰기를 통해 자기 존재를 증명하려고 했다. 그녀는 잠시 붓을 내려놓고 펜이라는 날카로운 무기를 들어 여성을 억압하는 시대에 맞서 싸웠다.

 

하지만 자유주의 계열의 신여성에 속한 나혜석과 윤심덕을 제외한 일부 신여성들은 여성 해방보다는 민족 해방을 먼저 생각했다.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의 등장으로 인해 여성의 자유를 강조하는 여성해방론이 설 자리는 축소되었다. 남성 지배의 사회 분위기를 질타한 나혜석은 주류 남성 지식인들의 비방과 냉소에 시달렸지만, 사회주의 계열 신여성은 남성 지식인들의 비방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었다. 사회주의 계열의 신여성들의 목표는 민족 해방이었고, 그녀들은 새로운 공산주의 국가를 만드는 대의에 헌신하는 존재로 인정받았다.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계열의 남성 지식인들의 눈에는 나혜석과 같은 자유주의 계열의 신여성을 안 좋게 보였을 것이고, 그녀들은 이기적이고 속물 같은 부르주아 여성으로 인식되었다.

 

나혜석은 이혼 고백장에서 이혼 후 자신을 향한 비난과 냉대를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처절한 심정을 토로한다.

 

 

 

 세상의 모든 신용을 잃고 모든 공분 비난을 받으며, 부모 친척의 버림을 받고 옛 친구를 잃은 나는 물론 불행하려니와 이것을 단행한 씨[김우영]에게도 비탄, 절망이 적지 아니 할 것입니다. 오직 나는 황야를 헤매고 암야에 공막(空漠, 텅 비고 쓸쓸함)을 바라고 자실(自失, 자기 존재를 잊을 정도로 얼이 빠져)하여 할 뿐입니다.

 떨리는 두 손에 화필과 팔레트를 들고 암흑을 향하여 가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광망(光芒)의 순간을 구함인가. 너무 크고 너무 중한 상처의 충격을 받는 내게는 각각으로 절박한 쓸쓸한 생명의 부르짖음을 듣고 울고 쓰러지는 충동으로 가슴이 터지는 것 같사외다.

 

(나혜석 이혼 고백장중에서,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157)

 

 

 

 

황야를 헤매고 암야에 공막을 바라고 자실한 상태에 이른 나혜석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슴 속을 파고드는 암울함과 처절함이 우러나오는 윤심덕의 노래 사의 찬미가 떠오른다. 윤심덕은 이 노래를 취입한 레코드가 나오기 전에 극작가 김우진과 함께 현해탄에 몸을 던졌다. 이혼 고백장에 있는 자실이라는 단어가 자살로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그러나 나혜석은 절망을 딛고 다시 한 번 갱생하기 위해 세상의 모든 조소와 질책을 감수하면서 행진을 계속할 것이라고 결심한다.

 

 

 

(1)

황막한 광야를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이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러 가느냐

 

(2)

웃는 저 꽃과 우는 저 새들이

그 운명이 모두 다 같구나

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너는 칼 위에 춤추는 자로다

 

(3)

허영에 빠져 날뛰는 인생아

너 속였음을 네가 아느냐

세상의 것은 너에게 허무니

너 죽은 후엔 모두 다 없도다

 

(후렴)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윤심덕의 불꽃 같은 삶은 짧고도 강렬했다. 세상은 그녀의 용감한 신념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세상은 오로지 그녀가 자살한 이유를 알고 싶어 했고, 그녀와 김우진과의 관계에 관음증적인 호기심을 느꼈다. 주류 사회를 불편하게 만든 언행으로 인해 나혜석은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채 살다가 행려병자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나혜석과 윤심덕은 세상에 안주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원대한 꿈을 펼치지 못하게 하는 세상에 정면으로 부딪치는 삶을 선택했다. 그녀들은 자신에게 다가올 비극을 알면서도 각자가 원하는 삶을 찾으려고 열중한 칼 위에 춤춘 자들이었다.

 

 

 

Trivia

 

신여성, 개념과 역사85(초판 1)오자가 있다. 2세대 근대 여과 급진주의라고 적혀 있다. ‘2세대 근대 여성과 급진주의로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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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5 2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9-28 15:29   좋아요 0 | URL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들을 보면 대단해요. 저는 그렇게 하라고 하면 절대로 못 하겠어요.. ^^;;

stella.K 2019-09-26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희> 범우사에서 나왔네.
애석하게도 절판이야. 다른 책도 봤는데 읽고 싶은 게 많더군.
기획을 잘 했던 것 같은데 잘 안 알려진 것 같아.
나도 이제 처음 알았다.
옛날에 범우사 알아 줬는데. 처음 책을 읽는 사람들은
범우사 아니면 삼중당이었는데 지금은 그 명성이 완전 묻혔지?
난 옛날에 냈던 책으로만 먹고 살려나 했더니
그래도 최근 간간이 책을 내긴 했더군.
나혜석은 희곡이 있어 함 읽어보려고 해.

cyrus 2019-09-28 15:33   좋아요 0 | URL
범우사의 행보가 너무 조용해서 지금도 새 책을 내놓고 있는지 알아봤어요. 지금도 범우문고가 나오네요.. ㅎㄷㄷ 그런데 예전에 나온 책들의 일부는 절판됐어요. 나혜석의 희곡을 따로 실은 책이 있을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