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미(Me)



No. 3








<실패를 목적으로 한 정상적 질서>

장소: 국제 갤러리 서울

전시 기간: 202421~ 202433

202431일 오전 1120분에 첫 만남





완벽(完璧)의 원래 의미는 흠 없는 구슬(玉)이다. 완벽은 고대 중국에 존재했다는 화씨의 구슬이라는 진귀한 보물에서 유래된 단어다. 완벽의 반대말은 하자(瑕疵)’. 하자는 구슬의 얼룩진 흔적을 뜻한다

















* 플라톤, 김유석 옮김 티마이오스(아카넷, 2019)


* 마이클 벤슨, 지웅배 옮김 코스미그래픽: 인류가 창조한 우주의 역사(롤러코스터, 2024)

 



완벽한 상태는 아름답고, 완전해야 하며 조화로운 질서에 가깝다. 일단 무조건 좋은 것이어야 한다. 플라톤(Plato)에게 완벽함이란 천상에 있는 이데아(idea)’. 그는 지상에 있는 모든 것은 이데아를 모방한 불완전한 것들이라고 인식했다플라톤의 저서 티마이오스데미우르고스(demiourgos)라는 거인이 나온다. 이 거인은 우주를 창조한다플라톤은 데미우르고스가 만든 우주 역시 이데아를 모방한 것이라고 봤다그에 따르면 물질의 네 가지 원소인 물, , , 공기는 무질서한 상태다. 데미우르고스는 네 가지 원소에 각각 정다면체 형태를 부여하면서 우주를 만든다. 플라톤은 우주가 정십이면체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한다플라톤 입체라고 알려진 우주론은 예술가와 천문학자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는 자신이 쓴 책 우주의 신비에서 플라톤 입체를 이용해서 행성의 공전 궤도를 설명하려고 했다. 그는 정다면체 형태로 된 우주가 질서와 조화를 이루는 세계로 이해했다.


도예가는 완벽한 도자기가 나올 때까지 계속 굽고, 마음에 안 들면 망치로 깨뜨린다. 일반인이 보면 멀쩡해 보이는 도자기를 부수고,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도예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솔직하게 인정하자. 누구나 완벽한 것을 선호한다.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본인이 생각하는 완벽한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한 번쯤은 노력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 별 하나를 완전한 형태로 그리려고 애쓴 적이 있다. 내 눈에는 별이 비뚤비뚤해 보여서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다. 원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다. 보기 좋게 동그란 원이 나오지 않으면 여러 번 그리곤 했다. 여러 번 시도해도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우리 마음 한구석에 실현 불가능한 벽을 세우려고 애쓴다. 그 벽의 이름은 완벽이다.


마음속에 세우고 있는 완벽을 무너뜨리려면 결국 실패를 받아들여야 한다. 실패를 순순히 받아들여서 허무주의와 패배주의에 굴복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실패의 가치를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보는 것도 아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속담을 언급하고 싶지 않다. 실패를 경험한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이 따라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실패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완벽해지기 위해 애쓰는 일을 멈추는 것이다.






김홍석

시지프스의 돌

2024년




김홍석의 개인전 <실패를 목적으로 한 정상적 질서>는 우리가 그토록 추구하는 완전하고 완벽한 삶(또는 예술)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완벽과 조화로움과 거리가 먼 김홍석의 작품들은 성공과 실패로 명확히 나누려고 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거부한다









김홍석

믿음의 오류(운석)

2024년


믿음의 오류(운석)국제갤러리 K3 에 따로 설치된 작품이다. K3 관에 흘러나온 음악주춤거리는 행진이었다.








김홍석

A Star

2011년





관람객이 김홍석의 작품을 조금이라도 이해했다면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김홍석은 관람객이 단번에 이해하기 쉬운 완벽한 작품을 만들지 않는다. 이런 작가가 관람객의 마음에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난해한 작품을 선보였다고 해서 단순히 개인전을 실패로 규정할 수 없다따라서 김홍석의 작품들은 성공과 실패라는 경계가 무의미한 뒤엉킴(entanglement)’을 보여준다전시 제목은 정상적 질서에 가까운 완벽함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메시지로 읽을 수 있다절대로 완벽할 수 없기에 실패하더라도 무언가를 계속 표현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완벽해지지 말자. 되는대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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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4-03-18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저 ‘완벽‘과 ‘하자‘ 가 그런 뜻이었다는 게 정말 너무 신기해서 놀라는 중이에요.
 




두루미()

 

No. 2



2024년 2월 24일 토요일

일글책


참석자: 너진(일글책 책방지기), 고요





예술 책 읽기 모임 <두루미>를 만들고 나면서부터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책가방 안에 <두루미> 선정 도서를 챙겨 넣고 다니는 일이다. 다 읽은 책이지만, 생각날 때마다 다시 펼쳐본다. 하지만 책을 들고 다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주말에 책방에 가서 내가 만든 독서 모임 선정 도서를 홍보하기 위해서다. 사실 홍보라기보다는 책 소개에 가깝다. 독서 모임 참석 인원 한 명 더 늘리려고 책을 소개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내가 직접 구매하고 읽은 책을 알리고 싶을 뿐이다. 평소대로 책 좋아하는 사람들 앞에서 책에 관해 얘기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책방지기와 그곳에 자주 오는 분들에게 <두루미> 두 번째 선정 도서를 소개했는데, 그분들의 반응을 지켜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예술 책 읽기 모임 <두루미> 두 번째 선정 도서]

() 미리엄 엘리아, 에즈라 엘리아 (그림) 미리엄 엘리아, 신해경 옮김

미술관에 갑니다(열화당, 2021)

 


이거 진짜 미술책 맞아요?”

 

애들이 보는 그림책 같아요.”

 

이런 특이한 책을 어떻게 알게 되었어요?”



<두루미두 번째 선정 도서 미술관에 갑니다 어린이용 그림책을 패러디한 미술책이다. 판형이 작고, 분량이 얇아서 금방 다 읽을 수 있다이 책에 엄마와 두 자녀가 나온다. 엄마는 현대미술을 좋아한다. 엄마는 예술을 보여주기 위해 미술관에 데리고 간다. 하지만 자녀는 엄마가 소개하는 예술을 이해하지 못한다. 엄마를 잘못 만난(?) 어린 친구들은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들을 볼 때마다 충격에 빠지고, 공포를 느낀다. 


현대미술은 정말 어렵다. 미술관에 갑니다에 나온 자녀는 현대미술 앞에만 서면 작아지고, 혼란스러워하는 대중들의 모습을 상징한다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주제를 다룬 책이라서 그런지 책을 이해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우스갯소리로 미술관에 갑니다3분 만에 다 읽을 수 있지만, 그 책을 이해하려면 평생을 바쳐야 할지도 모른다. 미술관에 갑니다는 다 읽은 책인데도 다 읽은 것 같지 않은 책이다.


미술관에 갑니다는 독자가 스스로 질문하고 생각하도록 부추기는 책이다. 이 책은 여백이 너무 많다. 그 여백은 독자가 알아서 채워 넣어야 한다. 엄마와 두 자녀의 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석하거나 난해한 작품들로 가득한 미술관을 어떻게 즐길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미술관에 갑니다를 여러 번 훑어볼 때마다 <두루미> 모임 시간에 꺼낼 질문들을 만들었다. 질문 만드는 일이 상당히 어려웠다. 내가 만든 질문 몇 개는 바로바로 대답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질문 1] 

이해 안 되는 예술작품을 보면 어떤 반응을 해요? 현대미술을 잘 모르는 아이와 타인에게 이해 안 되는 예술작품을 어떻게 설명하실 거예요?



[질문 2]

누드가 있는 그림을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하실 거예요? 끝나지 않은 미술사 대논쟁 중 하나가 누드에 대한 반응입니다. 현재 걸작으로 알려진 누드 그림은 처음 공개되었을 당시 외설 논란에 휩싸였고, 대중들의 혹평을 받았어요. 반면 예술가들은 누드를 검열하는 태도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고 인식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예술적인 누드와 외설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질문 3]

미술관에 가서 예술작품을 봤을 때 속은 기분이 든 적이 있나요?



[질문 4]

현대미술이 어렵고 난해한데도 미술관에 가는 본인만의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 미술관에 가서 재미있다고 느낀 적이 있었어요?



[질문 5]

철학자들은 현대미술을 철학으로 접근해서 이해하고 분석하려고 합니다. 철학으로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장단점을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두루미> 첫 번째 모임에 이어서 두 번째 모임도 참석한 분이 계셨는데, 별칭은 고요. 고요 님은 한때 학생들에게 그림책을 읽는 것을 가르치는 일을 했고, 자녀와 함께 미술관에 가본 경험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미술관에 갑니다가 마치 하브루타 학습 방식이 적용된 그림책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고요 님은 내가 준비한 질문들을 꺼내기도 전에 질문과 관련된 견해를 밝혔다.


미술관에 갑니다의 엄마는 자녀들이 작품에 대해서 질문하면 답변하고, 가끔 자녀들이 이해하기 힘든 작품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한다. 하지만 고요 님은 자녀와 미술관에 가면 자녀들에게 작품을 보고 느낀 것을 묻지 않는다고 했다. 정확하지 않겠지만, 고요 님이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방식은 이렇다. 그분은 작품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생각하는 것보다 작품을 보고 감정을 느끼는 것을 선호한다. 나와 정반대다. 고요 님은 미술관에 갑니다의 글(부모와 자녀의 대화)보다는 그림을 유심히 봤다고 했는데, 나는 반대로 글을 반복해서 읽었다.

















* 정서연 요즘 미술은 진짜 모르겠더라: 난해한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12가지 키워드(21세기북스, 2023)

 

* [품절] 김찬용 김찬용의 아트 네비게이션: 대한민국 1호 도슨트가 안내하는 짜릿한 미술사 여행(arte, 2021)

 



고요 님은 미술관에 갑니다와 함께 읽은 책 한 권을 추천했다. 책 제목이 현대미술을 접한 사람들의 감정 상태를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요즘 미술은 진짜 모르겠더라. 맞아, 진짜로 모르겠다요즘 미술은 진짜 모르겠더라의 목차만 봐서는 대략 어떤 책인지 알 수 있다. 이 책은 미술이 생소한 독자들을 위해 현대미술과 관련된 미술 사조와 용어를 설명한 책인데 이와 비슷한 책을 추천하자면 김찬용의 아트 네비게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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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4-02-27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대 미술은 너무 작가의
주관이 강렬하게 반영되어서
그런진 몰라도 그닥 감흥이
없더라는...

cyrus 2024-03-01 09:56   좋아요 0 | URL
저는 처음에 ‘저게 뭐지?’라고 반응하다가 시간이 지나서야 조금은 어떤 의미인지 깨닫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저의 주관적인 해석에 가깝지만, 현대미술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 정답을 찾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틀리더라도 크게 신경 안 써요. ^^
 



두루미(Me)


No. 1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경계선을 한 걸음씩 뛰어넘으면, 우리는 새로운 시선을 획득한다. 그 결과 세계를 두루두루 보는따뜻한 시선에 아주 조금이라도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가와우치 아리오,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중에서, 205)

 


이 문장에 영감을 받아 예술작품 리뷰만 모아놓은 카테고리 이름 두루미로 정했다. 여기서 아름다울 미()’를 뜻하는 영어 ‘me’,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두루미는 새 이름이 아니라 나 혼자 전시회에 가서 예술 작품을 두루두루 보는’ 경험을 상징하는 조어(造語).










<마뉴엘 솔라노: Pijama>

장소: 페레스 프로젝트

전시 기간: 20231130~ 2024114

무료

2023년 12월 9일 토요일 오전 10시에 첫 만남







가장 처음 한 사람의 인생을 찍어주는 사진사는 부모다. 어린아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모의 사진기 안으로 들어간다. 키가 커진 아이는 사진기 밖으로 나온다. 이제는 그가 사진사가 되어 자식의 인생을 카메라에 담는다.















* 데이비드 호크니, 남경태 옮김 명화의 비밀: 호크니가 파헤친 거장들의 비법(한길사, 2019)



 

사진사라는 직업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에 화가가 사진사였다. 아주 오래전에 화가들은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라는 도구를 이용해 그림을 그렸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라틴어로 어두운 방이라는 뜻이며 사진기의 조상이다. 어둠을 채운 방의 한쪽 벽에 구멍을 뚫는다. 구멍으로 흘러 들어온 외부 풍경이 반대쪽 벽에 거꾸로 맺힌다. 방 안에 들어간 화가는 거꾸로 된 세상을 화폭에 담는다영국의 예술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는 사진기가 상용화되기 전에 살았던 회화의 거장들이 거울과 렌즈를 응용한 광학 장치를 이용해서 그림을 그렸다고 주장한다.

 

멕시코의 화가 마누엘 솔라노(Manuel Solano, 1987년생)2014년에 HIV 감염에 따른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었다. 빛과 물감으로 가득한 솔라노의 인생은 거대한 암실에 갇힌다. 솔라노는 여름이 되면 스페인에서 부는 뜨거운 바람의 이름이기도 하다. 거대한 암실은 예술에 대한 솔라노의 뜨거운 열정을 막지 못한다. 오히려 너무 뜨거워서 암실의 한쪽 벽에 슬슬 금이 가기 시작했고, 결국 구멍이 생겼다. 솔라노는 그 구멍에서 나온 형상을 캔버스에 담았다. 솔라노의 양손 끝은 붓이 되었고, 머릿속에 남아 있는 크고 작은 기억의 조각들은 물감의 역할을 대신했다. 솔라노는 기억의 조각들을 녹여서 캔버스에 발랐다.












 

솔라노의 서울 첫 개인전 <마뉴엘 솔라노: Pijama>가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갤러리 페레스 프로젝트(Peres Projects)’에서 진행되고 있다. 캔버스에 기억을 바른 작품뿐만 아니라 솔라노의 어린 시절을 볼 수 있는 영상 작품들(작품명: 어렸을 때, 암컷 새끼 오리)도 공개하고 있다.







마누엘 솔라노

파자마

2023



   

파자마(Pijama)는 춤추는 솔라노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을 재현한 자화상이다. 파자마앞에 서면 어린 솔라노를 들썩이게 만든 무언가를 상상할 수 있다. 솔라노는 부모의 침대에서 리모컨으로 TV 채널을 돌리다가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우연히 만났을 것이다. 분명 솔라노가 어린 시절 들은 노래는 멕시코 음악이다. 하지만 그림 속 어린 솔라노를 계속 응시하면 춤에 빠져든 솔라노의 감정에 이입된다. 그 순간 어린 시절 우리의 기분을 들뜨게 해준 추억의 음악이 희미하게 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대부분 사람은 어린이는 동요만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어린이는 가사의 뜻은 몰라도 특정 음악을 좋아하게 되면 계속 그 음악만 들으려고 한다. 어떤 아이는 노랫말을 또렷하게 말하지 못해도 트로트만 나오면 흥얼거리면서 따라 부른다. 어릴 적에 판소리를 좋아해서 국악인이 된 신동도 있다. 어떤 음악만 나오면 춤을 추는 아이도 있다. 내 어머니가 회상하기를, 어린 시절 나는 일기예보 음악만 나오면 TV 앞에서 춤을 췄다고 한다. 지금도 사진첩에 당시 춤추는 내 모습을 찍은 사진이 있다. 사진이 없었으면 무아경의 순간을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누엘 솔라노

햇살 또는 티라노사우루스 의상

2023



   

햇살 또는 티라노사우루스 의상은 한 장의 가족사진과 같은 작품이다. 작품 속 솔라노의 어머니는 사진사가 되어 티라노사우루스 의상을 입은 솔라노의 남동생을 찍고 있다











거대한 크기의 작품 앞에 몬테소리 교구(장난감)’이 있다장난감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가만히 놓여 있으면 조용한 물건이다. 하지만 손으로 직접 만져보면 한동안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 놀이하는 행위의 즐거움이 새록새록 떠오른다장난감 블록을 만지면서 노는 어린이는 예술하는 인간의 원형이다어린이는 자신이 직접 장난감으로 작품을 만들어 부모 앞에서 보여준다. 그 순간 부모는 어린 예술가의 자질을 알아보는 첫 번째 관람자가 된다갤러리 전시 첫날에 솔라노는 몬테소리 교구를 이용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 롤랑 바르트, 김웅권 옮김 밝은 방: 사진에 관한 노트(동문선, 2006)





사진 찍고 있는 어머니가 있는 장소는 솔라노 가족이 살았던 집이면서도 카메라 루시다(Camera lucida)’이기도 하. 카메라 루시다 역시 카메라의 작동 원리와 비슷한 광학 장치로, 카메라 옵스큐라와 반대로 밝은 방을 뜻한다프랑스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저서 밝은 방(원제: 카메라 루시다)에서 푼크툼(punctum)’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 단어는 찌르다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되었다. 푼크툼은 사진이나 예술 작품을 관람자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감정 상태에 비추어 해석하는 방식을 말한다. 바르트는 푼크툼의 원래 뜻을 상기하면서 사진의 푼크품 나를 찌르면서 상처를 주는 우연이라고 설명한다.


작품 속 장소는 밝은 방이고, 작품명에 햇살이 비쳐 있다. 여기서 거꾸로 해석해보자어린 솔라노는 사진사와 사진 모델이 된 어머니와 남동생의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자기 자신을 찌르는푼크툼이 화살처럼 뚫고 지나갔을 것이다. 어린 솔라노는 어머니의 따사로운 시선을 한몸에 받은 남동생을 바라보면서 부러움과 질투심을 동시에 느꼈을 수 있다


사람의 기억 용량은 한정적이라서 어릴 적 순간적으로 느꼈을 모든 감정 상태를 정확히 기억해 낼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나쁜 기억보다는 즐겁고 행복한 기억을 더 오래 간직하고 싶어 한다. 보존된 기억을 녹여서 작품을 만드는 솔라노도 인간의 취약성을 잘 알고 있다.[주] 사진 모델이 된 남동생을 향한 본인의 부정적인 감정을 기억하지 못할 수 있다. 만약에 어린 솔라노가 나도 사진에 찍히고 싶다라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생겼다면햇살 또는 티라노사우루스 의상솔라노의 삶을 콕 찌른 순간을 형상화한 작품으로도 볼 수 있다





[주] 솔라노는 어린 시절 수줍음이 많아 탐구하고 관찰하는 걸 좋아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나쁜 기억이 있다면 그림에 투영된다면서 스스로 가지고 있는 마음가짐이라면 기쁘고 좋은 기억을 떠올리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했다


(출처: <시력 잃고도 못 잊은 캔버스손끝을 붓 삼아 세계를 칠하다> 문화일보, 유승목 기자, 2023126일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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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조네(Giorgio, 1477?~1510)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 베르메르) 못지않게 베일에 싸인 화가이다. 조르조네는 짧은 생애동안 뛰어난 재능을 가진 화가로 활동하여 명성을 얻었지만, 그의 삶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 [구판] 조르조 바자리 《이태리 르네상스의 미술가 평전》 (한명출판사, 2000)

* [개정판] 조르조 바자리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 2》 (올재, 2017)

※ 두 책 모두 같은 역자(이근배)임.

 

 

 

 

조르조네의 생애를 소개한 조르조 바자리(Giorgio Vasari)에 따르면 피렌체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라는 거장이 활동하고 있었을 때, 조르조네가 베네치아를 주름잡고 있었다고 한다. 조르조네의 등장이 베네치아 회화의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르조네는 카스텔프랑코(Castelfranco)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이탈리아인들의 이름에는 자신들이 태어난 고향 이름이 들어가 있다. 빈치(Vinci)는 피렌체 근교에 있는 자치도시(Comune, 코무네) 이름이다. 이곳에 레오나르도가 태어나서 그의 이름이 ‘빈치 출신의 레오나르도’, 즉 레오나르도 다 빈치로 알려졌다. 이렇듯 조르조네의 본명은 조르조 바바렐리 다 카스텔프랑코(Giorgio Barbarelli da Castelfranco)이다.

 

조르조네는 ‘젊고 유능한 예술가’로서의 레오나르도와 비슷한 행보를 걷었다. 레오나르도와 조르조네는 공통으로 류트(Lute)라는 악기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았다. 조르조네는 사교계 모임에 자주 참석했고 베네치아 사교계 최고의 인기 예술가로 알려졌다. 바자리는 빛과 그늘을 다루는 조르조네의 표현력을 레오나르도와 비교했다. 조르조네도 레오나르도 특유의 화법인 스푸마토(Sfumato: 물체의 윤곽선을 자연스럽게 희미하게 그리는 명암법)를 능숙하게 사용했다. 그러나 조르조네는 천부적인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지 못하고 33세(혹은 3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사교계 연회에서 알게 된 여성과 사랑에 빠져 교제를 하게 됐는데, 이 여성이 흑사병(Plague, 페스트)에 걸렸다. 이 사실을 몰랐던 조르조네는 흑사병에 걸려 목숨을 잃고 말았다.

 

 

 

 

 

 

 

 

 

 

 

 

 

 

 

 

* 마크 로스킬 《미술사란 무엇인가》 (문예출판사, 1990)

* 스티븐 파딩 《501 위대한 화가》 (마로니에북스, 2009)

 

 

 

 

르네상스 미술 전공 미술사가인 마크 로스킬은 바자리가 조르조네의 생애에 관한 내용을 수집할 때 상당히 애먹었을 거로 추정한다. 이상하게도 조르조네의 생전 활동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고, 조르조네가 죽고 난 후 그에 대한 전설이 전해져 내려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스킬은 조르조네의 죽음에 관련된 일화를 전설로 치부하고 있다. 《501 위대한 화가》 ‘조르조네’ 편에 보면 조르조 바사리가 조르조네를 ‘머리를 멋있게 기른 온화한 성격의 미남’이라고 썼다는 내용이 나온다. 바자리의 기록에 근거하면 조르조네가 뛰어난 외모와 성품을 지닌 미남일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머리를 멋있게 길렀다’는 내용은 바자리의 책(그가 쓴 《예술가 열전》을 번역한 책)에 나오지 않는다. 바자리는 조르조네를 ‘몸집이 큰 남자’라고 묘사했다.[1] 이 내용이 조르조네의 외모를 짐작할 수 있는 바자리의 유일한 설명이다.

 

 

 

 

 

 

 

 

 

 

 

 

 

 

 

 

 

 

 

 

 

 

 

 

 

 

 

 

 

 

 

 

 

 

 

* 에른스트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예경, 2003, 2013, 2017)

* 진중권 《교수대 위의 까치》 (휴머니스트, 2009)

 

 

 

 

조르조네의 몇 안 되는 작품 가운데 가장 불가사의한 작품은 『폭풍우』이다. 아쉽게도 우린 그림 속에 서 있는 남녀의 정체가 무엇인지 영원히 알아낼 수 없다. 그밖에도 관람자의 눈을 사로잡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또 있다.

 

 

 

 

 

남자 옆에 있는 부러진 원주(圓柱)와 회색빛 구름 사이에 번쩍거리면서 빛나는 번개. 이 그림 속 수수께끼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금까지 이 그림을 해석하기 위해 주장한 가설이 무려 스무 개나 넘는다고 한다. 이탈리아의 미술사가 리오넬로 벤투리(Lionello Venturi)진중권은 『폭풍우』의 번개에 주목한다. 『폭풍우』는 ‘눈으로 보는 풍경화’일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그 그림에 숲, 하늘, 물, 도시 그리고 날씨 현상 등 눈으로 보는 소재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폭풍우』는 자연현상의 변화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풍경화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이 그림 속에 숨겨진 ‘진짜 의미’를 찾아내려고 한다. 그렇게 되면 『폭풍우』는 ‘무언가 다른 것을 말하고 있는 숨겨진 텍스트’이며 그림 속 대상은 알레고리(Allegory)이다. 진중권은 『폭풍우』에 묘사된 자연을 ‘신이 떠난 세상’, 즉 자연현상의 실체를 파악한 인간의 관심이 반영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이 그림을 알레고리 측면으로 바라보면 또 다른 해석이 튀어나온다. 그림 속 남녀가 신화 또는 기독교와 관련된 전설적인 인물을 상징한 것이라면, 번개는 신의 능력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상징물이 된다. 에른스트 곰브리치(Ernst Gombrich)는 아기가 장래에 영웅으로 성장하는 존재,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여성은 아기의 어머니(젖을 먹이는 여성이 ‘유모’일 수도 있다), 남성은 의지할 데 없는 어머니와 아기를 보살펴주는 친절한 목동으로 해석했다. 곰브리치의 해석과 연관 지어 부러진 원주와 번개를 설명하면 각각 ‘아기 영웅이 겪게 될 시련’, ‘영웅의 성장을 지켜보는 신’이다. 결국, 이 그림에 나타난 자연은 ‘여전히 신이 존재하는 세상’이다. 관람자는 그림의 ‘진짜 의미’를 알아내기 위해 다양한 도상학적 분석 방식을 동원할 수 있고, 자신만의 색다른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폭풍우』는 ‘마음으로 보는 풍경화’이다. 관람자의 감정이입은 ‘보이는 것(직접적 표현)’과 ‘보이지 않은 것(암시적 표현)’의 간극을 채운다.

 

나는 『폭풍우』가 종교적 알레고리가 들어간 풍경화라고 생각한다. 세 명의 인물은 이집트로 피신하는 ‘성 가족(Holy Family)’이다.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에 제작된 『폭풍우』에서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중세 시대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마크 로스킬은 『폭풍우』와 『카스텔프랑코의 성모』(약칭 ‘성모’)에서 발견되는 유사점을 근거로 두 그림 모두 조르조네의 작품이라고 확신한다.

 

 

 

 

 

 

 

 

 

 

『폭풍우』 그림 왼쪽에 있는 목동은 『성모』 그림 왼쪽에 있는 갑옷 입은 기사(율리우스 1세의 뒤를 이어 로마 교황으로 축성된 성 리베리우스라고 한다)의 자세와 똑같다. 그리고 『폭풍우』 속 어머니와 아기는 아기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모습과 닮았다. 그러면 『폭풍우』의 목동의 정체는 마리아의 남편 요셉(Saint Joseph)이다. 기사 복장을 한 성인과 요셉. 이 두 사람은 성모와 아기 예수를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진 남성이다. 중세 기독교인들은 성모 마리아를 절망과 피폐해진 정신에 안식과 활력을 불어넣는 은혜로운 존재로 묘사했고, 성모는 ‘중세 남성들이 존경하는 여성상’으로 자리 잡았다.

 

 

 

 

 

 

 

 

 

 

 

 

 

 

 

 

 

 

 

* 크리스틴 드 피장 《여성들의 도시》 (아카넷, 2012)

* 프랑수아 라블레 《팡타그뤼엘 제3서》 (한길사, 2006)

 

 

 

그러나 초기 기독교인들은 ‘원죄 의식’을 근거로 여성을 ‘타락하고 남성보다 도덕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바라봤다. 기독교 내 여성차별 인식은 여성에 대한 차별의 이데올로기로 형성됐고, 편협한 사고방식은 중세로 이어졌다. 크리스틴 드 피장(Christine de Pizan)은 펜을 무기 삼아 여성을 비하하는 풍조와 맞서 싸웠다. 그러나 ‘인간’이 세상의 중심에 서기 시작한 르네상스가 도래했는데도 여성 차별적 편견은 여전했다. 중세의 낡은 관행을 풍자한 프랑수아 라블레(Francois Rabelais)는 ‘남성보다 못한 여성’을 무시하는 구시대적 인식을 그대로 답습했다.

 

 

 

 

 

 

 

 

 

 

 

 

 

 

 

 

 

 

 

 

 

 

 

 

 

 

 

 

 

 

 

 

* 아일린 파워 《중세의 여인들》 (즐거운상상, 2010)

* 요한 하위징아 《중세의 가을》 (연암서가, 2012)

* 카리 우트리오 《이브의 역사》 (도서출판 자작, 2000)

* 섀리 엘 서러 《어머니의 신화》 (까치, 1995)

 

 

 

 

중세 절정기에 성모 숭배와 기사도 정신이 하나가 되는 ‘어설픈 접목’이 이루어졌다. 중세 사람들은 아기 예수에게 젖을 먹이는 성모를 ‘존경의 대상’으로 바라봤다. 특히 기사들은 성모와 같은 여성을 숭배하고 수호하는 일이 기사도 정신을 실천하기 위한 의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조르조네의 『카스텔프랑코의 성모』는 성모 숭배와 ‘갑옷으로 무장한 성인’의 조합을 도상학적으로 나타낸 그림이다. 그림 속 성인은 종교인이라기보다는 성모를 지키기 위해서 언제든지 싸울 수 있는 ‘전사’에 가깝다. 중세 시대가 무너지고 기사의 역할이 사라져도 남성들의 ‘성모 바라기’는 멈추지 않았다. 중세 말기부터 아기 예수에게 젖을 주는 성모를 묘사한 그림들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남성 기독교인들은 모유 수유를 하는 여성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면서도 성모의 모유 수유는 인정했다. 이때부터 그림 속 성모는 가슴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때론 헐벗은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자, 이제 당신이 여성을 이중적으로 바라보는 남성의 못된 시선을 이해했다면, 조르조네의 『폭풍우』를 볼 때마다 불쾌하게 느껴질 것이다. 『폭풍우』의 여성이 수유하는 자세가 어설프다. 그녀는 오른쪽 허벅지를 드러내 보인다. 남성 관람자의 시선은 그녀의 허벅지와 가슴으로 향한다. 따라서 『폭풍우』의 여성은 남성의 욕망이 반영된 ‘에로틱한 성모’를 상징한다. 성모를 지켜야 할 기사가 사라지자 그 자리에 ‘한층 젊어진 요셉’이 등장했다. 요셉은 아기 예수를 양육하는 성모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 주변을 감시해야 한다. 그리하여 여성은 ‘자녀 양육에 힘써야 하고, 남성에게 보호받아야 할 연약한 존재’가 된다.

 

『폭풍우』는 중세부터 르네상스까지 이어지는 편협한 여성 차별 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불쾌한 그림’이다. 나의 그림 해석에 이견이 있을 거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림을 곰곰이 따져 보면 남성 중심적 세계를 보여주는 알레고리가 읽힌다. 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남성들이 열광한 성모 마리아는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이상적인 존재’이다. 유럽 전역을 휩쓴 흑사병의 위력을 경험한 남성들은 암울한 현실이 주는 괴로움을 잊기 위해 성모를 예찬했다. 조르조네는 『폭풍우』와 『카스텔프랑코의 성모』를 그리는 내내 흑사병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불길한 예감을 감지했던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성모는 천부적인 능력을 갖춘 젊은 화가의 영혼을 지켜주지 못했다.

 

 

 

 

 

[1] 이근배 역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 2》 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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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6 2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1-07 09:00   좋아요 1 | URL
지금도 흑사병의 원인, 전파 경로 등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어요. 여전히 풀리지 못한 것들이 있어요.

서니데이 2017-11-08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밖에 바람이 많이 불어요.
cyrus님 좋은 오후 보내세요.^^

cyrus 2017-11-08 16:34   좋아요 1 | URL
오늘 미세먼지가 엄청 많이 날렸겠죠? 이럴 때 퇴근 생각이 간절합니다. ^^

임모르텔 2017-11-12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일간 대전 대청호수로 가을여행을 다녀왔는데, 금새 단풍이 누렇게 떨어지더군요.
짧네요 가을이..환절기 비염 조심하세요..^^

cyrus 2017-11-12 20:04   좋아요 0 | URL
내일부터 기온이 떨어진다고 해요. 이렇게 겨울이 오는가 봐요. 올빼미님도 감기 조심하세요. ^^
 

 

 

신비로운 미소를 띠고 있는 『모나리자』(Monna Lisa). 이 그림은 피렌체의 부유한 상인 프란체스코 델 조콘다(Francesco de Gioconda)의 세 번째 부인을 그린 초상화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알쏭달쏭한 미소를 짓는 이 여인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동성애자였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자신의 자화상을 여성화시켰다는 의견도 있다.

 

 

 

 

 

『모나리자』가 있는 루브르박물관(Musee du Louvre)에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또 다른 그림이 있다. 벌거벗은 두 여인이 욕조에 들어가서 묘한 행동을 한다. 왼쪽 여인이 오른쪽 여인의 유두를 쥐고 있다. 왼쪽 여인은 마치 뜨거운 것이라도 잡는 양 왼손가락으로 아슬아슬하게 반지를 잡고 있다. 가슴의 유두를 잡은 왼쪽 여인의 자세는 이름 모를 남성 화가가 의도한 연출이다. 저기요, 아재! 당신의 시선이 어디로 향해 있는지 다 알고 있어요.

 

 

 

 

 

 

자, 가슴은 그만 보고, 욕조가 있는 방의 구조를 살펴보자. 불이 타오르는 난로 옆에 바느질하는 여인이 있다. 여인의 머리 위에 작은 그림 액자가 걸려 있다. 그런데 액자 크기가 너무 작다. 아무리 두 눈을 크게 떠봐도 무엇을 그렸는지 알 수 없다. 난로 위에도 그림 액자가 있는데, 절반이 가려져 있다. 비스듬히 누워 있는 모델의 다리만 보일 뿐이다.

 

 

 

 

 

 

 

 

 

 

 

 

 

 

 

 

 

 

 

 

 

 

 

 

 

 

 

 

 

 

* 김복래 《프랑스 왕과 왕비, 왕의 총비들의 불꽃같은 생애》 (북코리아, 2006)

* 나가노 교코 《무서운 그림 2》 (세미콜론, 2009)

* 엘리아 보슈롱 《수수께끼에 싸인 미술관》 (시그마북스, 2014)

* 유경희 《가만히 가까이》 (아트북스, 2016)

 

 

 

작자 미상의 그림을 보는 사람보다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다행히 그림 제목이 알려져서 관람객은 벌거벗은 두 여인이 누군지 짐작할 수 있다. 반지를 쥔 오른쪽 여인이 프랑스의 왕 앙리 4세(Henri IV)의 애첩 가브리엘 데스트레(Gabrielle d'Estrées)다. 왼쪽 여인은 가브리엘 데스트레의 동생 빌라르 공작부인(duchesse de villars)이다. 공작부인은 왜 언니의 유두를 쥐고 있을까? 그림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관람객들은 저 두 사람을 '수수께끼 자매'라고 불렸을 것이다.

 

이 그림이 제작된 16세기 당시에 가슴의 유두 상태로 여성의 임신 여부를 판단했다. 따라서 동생의 행위는 가브리엘의 임신 사실을 암시하며 바느질하는 여인은 장차 태어날 아기(왕의 자식)가 입게 될 배냇저고리를 만든다고 볼 수 있다.

 

앙리 4세의 전처는 여왕 마고(La Reine Margot)’로 알려진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Marguerite de Valois)였다. 마르그리트는 왕의 아이를 낳지 못했고, 왕은 매력적이고 자식까지 낳아줄 수 있는 가브리엘과 어울려 다녔다. 왕은 한때 58명의 애첩을 거느린 호색가였다고 한다.

 

 

 

 

 

 

 

 

 

 

 

 

 

 

 

 

 

 

* 다카시 하마모토 《반지의 문화사》 (에디터, 2002)

* 원종옥 《그림에서 보석을 읽다》 (이다미디어, 2009)

 

 

 

가브리엘의 손에 쥔 반지는 앙리 4세와의 약혼을 알리는 의미심장한 상징이다. 반지에 박힌 보석은 사파이어(sapphire)다. 이때 당시 앙리 4세가 교황으로부터 왕비와의 결혼무효 판결을 받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가브리엘은 ‘왕과 약혼한 애첩’이었다. 그래서 가브리엘은 왕이 준 귀중한 증표를 손가락에 끼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가브리엘의 반지는 단순한 약혼반지가 아니다. 왕권의 존엄성과 명예를 상징하기 때문에 가브리엘의 정치적 권위를 의미하기도 한다. 가브리엘은 왕의 조언자가 되었고, 그에게 가톨릭으로 개종할 것을 권유했다. 따라서 그림 속 반지는 왕과의 약혼을 알리는 증표임 동시에 ‘여왕을 넘어선 애첩’이었던 가브리엘의 권위를 돋보이게 하는 어트리뷰트(속성, attribute)다.

 

 

 

 

 

 

 

 

 

 

 

 

 

 

 

* 진중권 《성의 미학》 (세종서적, 2005)

 

 

 

진중권은 반지를 색다르게 해석했는데, ‘여성의 성기’를 암시하는 상징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자매의 근친상간 관계를 상상하기도 하는데, ‘터무니없는 상상’이다.

 

왕과 가브리엘 사이에 세 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1599년에 왕은 가브리엘과 정식으로 결혼하기 위해 마르그리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그러나 결혼식이 거행되기 일주일 전에 가브리엘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스물다섯 살이었고, 임신 6개월이었다. 가브리엘이 사산아를 낳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지지만, 그녀가 독살당했다고 주장하는 음모론도 있다.

 

 

 

 

 

 

 

 

 

 

 

 

 

 

 

 

 

* 박경성 《레오나르도》 (서문당, 1992)

* 루치아 임펠루소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림으로 읽기》 (예경, 2008)

 

 

 

《레오나르도》 (서문당, 1992)라는 책은 가브리엘 자매를 그린 그림에 ‘두 비너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몸에 실 한 오라기 걸치지 않는 여인을 봤을 때 에로틱의 대명사 ‘비너스(Venus)’를 떠올렸던 걸까. 그렇지만 16세기 후반 작자 미상의 프랑스 화가가 그린 그림이 1519년에 세상을 떠난 다 빈치의 작품으로 소개된 내용은 잘못된 정보다.

 

 

 

 

 

 

 

 

 

 

 

 

 

 

 

* 에이민 E. 허먼 《우아한 관찰주의자》 (청림출판, 2017)

 

 

 

이 그림을 보는 관객들은 벌거벗은 자매를 쳐다보는데 집중한 나머지 ‘그림 속 그림’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림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작가들도 마찬가지다. 자매 뒤에 또 다른 그림이 있다는 사실조차 언급하지 않는다. 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뜻밖의 사실을 잘 보지 못하는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에 빠지게 된다. 모델의 하반신만 보이는 그림의 정체와 의미에 대해 자유롭게 추정할 수 있다. 그림 속 모델이 남자라면 전쟁의 신 마르스(Mars, 그리스 신화에서는 ‘아레스(Ares)’), 아름다운 소년으로 알려진 아도니스(Adonis)일 수 있다. 아도니스는 사냥하는 도중 멧돼지의 엄니에 찔려 죽고 마는데, 땅바닥에 누워 죽어가는 아도니스의 모습은 화가들이 즐겨 그리던 소재였다. 두 사람 모두 공통으로 비너스가 홀딱 반한 남자들이다. 모델이 여자라면 누워 있는 비너스를 그린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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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9-13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그림 한번 얄궃구만.ㅋ

cyrus 2017-09-13 16:59   좋아요 0 | URL
아마도 왕을 위해서 야릇하게 그렸을 거예요. ^^;;

sprenown 2017-09-13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군요...미술사학자들이 괜히 있는게 아니구요

cyrus 2017-09-14 13:48   좋아요 0 | URL
미술사학자들이 발견하고, 확인한 내용 중에는 추정도 있습니다. 그래서 미술을 공부하면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볼 수 있습니다. ^^

페크pek0501 2017-09-13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술가 중에는 동성애자가 많은 것 같아요. 예술과 동성애,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cyrus 2017-09-14 15:21   좋아요 0 | URL
정말 어려운 질문이군요. 동성애자 예술가는 아웃사이더입니다. 주류가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도전 정신이 있었을 겁니다. ^^

2017-09-13 2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9-14 13:50   좋아요 0 | URL
그림 속 이야기를 볼 수 있어서 미술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

꼬마요정 2017-09-13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의 미학‘이랑 ‘그림에서 보석을 읽다‘ 재밌게 봤습니다. 책과 마찬가지로 그림에서도 많은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다는데, 아직도 저는 그림이 어려워요 ^^

cyrus 2017-09-14 13:52   좋아요 0 | URL
제가 책으로만 미술을 공부했는데요, 저도 아직 그림 보는 것을 몰라요. ^^

2017-09-14 2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9-14 21:01   좋아요 0 | URL
미술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양합니다. 미술 전문가라고 해서 그의 해석이 무조건 볼 수 없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