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이 사랑한 음악 - 고대부터 AI 음악까지 음악사와 기술사의 교양서
니키타 브라긴스키 지음, 박은지 옮김 / 생각지도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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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는 두 권의 공책을 가지고 있다. 문제를 풀 때 펼치는 공책에 수학자가 계산한 흔적이 빼곡하다. 또 다른 공책은 수학자의 고막에 있다이 공책은 수학자가 음악을 들으면 펼쳐진다수학자는 음악을 듣더라도 선율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선율이 왜 아름답게 느껴지는지 분석한다.


수학자는 어려운 문제를 계산해서 정답을 찾는 과정을 즐거워한다. 그러나 고막에 공책이 있는 수학자는 문제를 푸는 것보다 음악을 좋아한다. 마음에 쏙 드는 음악을 만나면 정답게 듣는다. 그에게 음악은 고막 친구







수학이 사랑한 음악고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수학과 음악의 끈끈한 우정(수음지교, 數音知交)을 보여주는 책이다책의 원제는 수학적 음악(mathematical music)’이다음악의 역사에 악기를 연주하는 음악가들만 있는 게 아니다. 음악에 날개를 달아준 수학자들도 있다







수학을 음악으로 표현한 최초의 수학자는 피타고라스(Pythagoras)그는 비율이 좋은 음악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음악에 귀가 밝은 수학자들은 수학을 이용해서 아름다운 소리를 만드는 방법을 연구했다라이프니츠(Leibniz) 오일러(Euler)는 음악을 듣는 순간, 우리의 정신(영혼)이 무의식적으로 계산하게 되어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주장했다음악을 감상하면서 동시에 계산한 오일러는 듣기 좋은 음악, 즉 어울림음(협화음)을 만들 수 있는 수학 공식을 제안하기도 했다.


음악가들도 수학이 음악을 만드는 데 요긴한 학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위법이 적용된 바흐(Bach)의 음악에는 정교하게 짜여진 수학적 질서가 새겨져 있다. 그러나 전통을 거부하는 아방가르드 음악가들은 어울림음을 과감히 포기했다. 이들은 고막을 긁는 불협화음도 수학적 음악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수학은 컴퓨터와 인공지능(AI)의 발전에 이바지했다.수학적 음악은 컴퓨터와 AI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나날이 발전되는 현대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이미 수학과 음악이 한몸이었던 고대부터 시작되었다수학은 음악의 성장과 변신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지음(知音)이다.


수학이 사랑한 음악2023년에 번역 출간된 책이다. 초판은 양장본이며 최근에 나온 2판은 반양장본이다2판에 새로 추가되거나 달라진 내용은 없다초판에 고쳐야 할 내용이 2판에 그대로 남아 있다.







초판에 컴퓨터 음악을 만든 미국의 화학자 레너드 아이잭슨(Leonard Isaacson)의 사망 연도가 적혀 있지 않다(117쪽). 그는 2018년에 세상을 떠났다







초판이 출간된 2023년에 ‘AI 음악의 대부데이비드 코프(David Cope)는 살아 있었다(126쪽). 2025년에 별세했다.







205쪽에 언급된 에드바르 그리그(Edvard Grieg)<산속 마왕의 궁전에서>(In the Hall of the Mountain King)는 하나의 독립된 작품이 아니다. <페르 귄트 모음곡 1> 4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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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괴수괴인 도해백과
고성배 지음, 백재중 그림 / 닷텍스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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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은 지구에 살지 않는다. 그래도 사람들은 어딘가에 괴물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괴물은 지구가 아니라 우리의 머릿속에 살고 있다. 뇌는 상상력을 발휘해서 괴물을 만든다여기에 허풍까지 맞으면 괴물의 윤곽이 뚜렷해진다.


괴물은 인간이 빚어낸 조물(彫物)이다. 인간은 괴물을 만든 조물주(造物主). 아이러니하게도 상상력이 뛰어난 조물주는 징그럽거나 포악한 괴물을 두려워한다. 괴물을 피하는 우리의 모습은 자신이 직접 만든 괴물(creature)을 버리고 도망간 빅터 프랑켄슈타인(Victor Frankenstein)과 같다.


우리는 괴물을 무서워하고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흥미롭게도 닮은 구석이 있다메리 셸리(Mary Shelley)의 소설에 묘사된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인간처럼 말할 줄 안다(영화로 다시 태어난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언어 구사 능력이 부족하다)유대교 랍비의 명령을 따르는 골렘(Golem)은 흙으로 만든 거인이다. 이 거대한 피조물도 인간처럼 죽는다. 골렘의 이마에 죽음을 뜻하는 고대 히브리어가 적힌 양피지를 붙이면 사라진다.







괴물을 직접 만나지 않고도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괴물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 된다. 영화는 괴물의 초상화다우리는 편안하게 난폭한 괴물을 구경하면서 감상할 수 있다SF 괴수 괴인 도해 백과영화에 묘사된 총 50종의 괴물들을 소개한 백사전이다괴물과 오컬트를 아카이빙(archiving)하는 작가 고성배와 일러스트레이터 백재중이 합심해서 만든 책이다







괴물은 괴수와 괴인으로 분류할 수 있다. 짐승과 식물의 습성에 가까우면 괴수, 인간과 거의 비슷하면 괴인이다도해(圖解)는 어떤 내용을 그림으로 설명하는 방식이다. 저자와 일러스트레이터는 영화 속 괴물의 생김새와 습성을 한눈에 볼 수 있게 괴물 해부도를 그렸다. 조잡하게 만든 오래된 B급 영화는 화질이 좋지 않다. 저화질을 뚫지 못한 괴물을 관찰하기가 어려워진다. 저자와 일러스트레이터는 여백으로 남을 수 있는 불분명한 부분에 그들만의 상상력을 덧칠했다.







이 책의 묘미는 괴물과의 친밀감(?)을 높여주는 부록이다. 저예산 B급 영화의 거장 로저 코먼(Roger Corman) 감독의 <흡혈 식물 대소동>(The Little Shop of Horrors, 1960)에 거대한 식인 식물이 나온다. 밥 달라고 말하는 식인 식물은 초심자용 식물이다. 키울 때 주의해야 할 점만 잘 지킨다면 식물 집사가 될 수 있다강심장은 식인 식물을 키워보자.






 

히말라야산맥에 사는 설인(雪人)을 찾아다니는 사냥꾼들을 위한 설인 가면이 있다. 설인이 눈앞에 나타나면 설인 가면을 써서 동족인 척 행동하면 된다.





 


귀염둥이 프랑켄슈타인에게 다양한 종류의 옷을 입혀주는 미니 게임도 있다. 패션 감각이 뛰어난 독자는 프랑켄슈타인을 힙하게 만들어보자.










내가 악인(惡人) 하이드(Hyde)가 된다면 얼굴이 어떻게 변할까? 약을 먹지 않아도 하이드로 변신해 보자. , 성격은 변하지 말 것.



이 책에 소개된 괴수 영화 절반은 어설프게 만든 B급 영화지만, 그래도 명작도 몇 편 포함되어 있다. 괴수물을 좋아하는 시네필(cinephile)은 이 책에서 자신이 한 번도 보지 못한 색다른 영화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오래전에 나온 영화를 찾을 수 없으면, 영화가 된 원작 소설들을 읽는 것을 추천한다.







조르주 멜리에스(Georges Méliès)의 무성 영화 <달 세계 여행>(Le Voyage dans la Lune, 1902)외계인이 최초로 등장한 영화. 원작은 쥘 베른(Jules Verne)의 소설 지구에서 달까지(김석희 옮김, 열림원, 2002).












더 씽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괴물 디 오리지널>(The Thing from Another world, 1951)의 원작은 W. 캠벨(John W. Campbell)의 단편 소설 거기 누구냐?(Who Goes There?, 1938). SF 단편 선집 SF 명예의 전당 4: 거기 누구냐?에 수록되어 있다.








러시아에서 만든 무성 영화 <크리스마스이브>(Noch pered Rozhdestvom, 1913)의 원작은 니콜라이 고골(Nikolai Gogol)의 초기작 디칸카 근교 마을의 야회(이경완 옮김, 을유문화사, 2021) 2부에 수록된 단편 소설이다. 번역본에 있는 단편 소설 제목은 성탄 전야.







기묘하고 이상한 책을 리뷰하는

cyrus의 주석










추천사는 연상호 감독이 썼다

해방촌에 있는 문학 전문 서점 <고요서사> 차경희 대표가 교정에 참여했다.








* 53

 

소설 셜록 홈즈의 작가 아서 코난 도일이 대본을 썼다. [주]




[]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이 영화 시나리오를 썼다고 잘못 소개했다. 도일은 영화의 원작자. 영화와 같은 제목의 소설 잃어버린 세계국역본 2(이수경 옮김, 출판사: 황금가지 / 김상훈 옮김, 출판사: 행복한책읽기)2003년에 출간되었는데, 모두 절판되었다. 각본가는 마리온 페어팩스(Marion Fairfax)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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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냥이로 사회학 하기 - 혹은 나는 어떻게 고양이를 사랑하도록 배웠는가
권무순 지음 / 오월의봄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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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집에 매일 놀러 오는 고양이가 있다. 그 친구의 이름은 아직 없다. 어디서 왔는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주1] 











이름 없는 고양이는 제 방안을 거닐 듯 돌아다닌다.[주2] 한참 서성거리다가 문 앞에서 눕는다. 어머니가 문을 열고 나오면 밥을 달라고 야옹야옹 운다







반년 동안 밥을 얻어먹었는데도 고양이는 어머니의 손길을 무서워한다. 어머니는 지금까지도 고양이를 한 번도 쓰다듬지 못했다. 그런데 고양이가 착하다. 어머니가 자신을 만지려고 하면 발톱을 내밀지 않고, 하악질도 하지 않는다. 뒷걸음치면서 피하기만 한다어머니가 밥을 주면 가까이 다가와서 받아먹는다고양이는 어머니를 알아본다. 길을 가다가 어머니를 만나면 졸졸 따라다닌다정말 이상한 고양이다.[주3] 보면 볼수록 정말로 기묘(奇妙/奇猫)해.







이름 없는 고양이도 가족이 있다. 어떤 날은 거의 다 자란 새끼 고양이와 같이 밥 먹으러 온다. 맛있는 음식을 새끼에게 주고 먹지 못하니 그다지 살이 찌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런대로 만족하면서 부모님 집에서 이름 없는 고양이로 살아갈 작정인가 보다.[주4] 


무사태평해 보이는 저 고양이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에 고민거리가 있을 것이다.[주5] 인간과 함께 사는 집고양이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자유로운 길고양이로 살아갈 것인가. 이름 없는 고양이는 인간에게 애교를 부리는 반려묘도, 인간을 극도로 경계하는 야생 고양이도 아니다. 나는 이 기묘한 친구를 어떻게 봐야 할까?







길냥이로 사회학 하기는 고양이를 동물이 아닌 행위를 하는 주체로 다시 보게 만든다. 이 책의 저자는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STS)을 연구했다. 과학기술학은 과학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자연과 문화, 기술과 인간 등의 이분법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 두 가지 개념의 얽힌 관계와 연결망에 주목하는 학문이다행위를 하는 주체는 단독으로 행위를 하는 독립된 실체를 뜻하지 않는다. 또 다른 주체가 어떤 행위를 하는 데 영향을 주는 능동적 존재이다. 비인간도 행위를 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 과거의 이분법은 인간과 비인간을 철저히 구분하는 인간중심주의를 답습했고, 과거의 사회학은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만 분석했다. 과학기술학은 이 두 가지 한계를 비판하여 비인간의 행위성(agency)에 주목한다. 비인간의 행위성은 다른 인간과 비인간의 행위를 변화시킨다







과학기술학을 정립한 철학자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는 인간과 비인간 모두 행위자(actor)’로 인식했고, 이 세계가 인간 행위자와 비인간 행위자들이 얽힌 연결망(network)이 만든 결과물이라고 주장했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복잡한 연결망을 행위자 연결망 이론(actor-network theory, ANT)’이라고 한다.


ANT에 따르면 길고양이도 비인간 행위자. 길고양이는 자신을 괴롭히지 않는 인간에게 접근해서 먹이를 구한다. 나의 어머니는 길 위에 떠도는 강아지를 집으로 데려와서 함께 살았고, 고양이보다 개를 더 좋아한다. 시골에 정착하면 반려견을 키울 거라고 말했는데, 지금은 고양이 집사가 되었다. 이름 없는 고양이가 어머니의 인생 목표(행위 목표)를 수정하게 했다. 처음부터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거나 고양이를 길러본 적이 없는 인간이 주기적으로 길고양이에게 밥을 준다면 그 사람은 길고양이를 만나서 행위자가 된 것이다부모님의 집은 이름 없는 고양이의 맛집이자 편히 쉴 수 있는 안식처다인간 행위자인 어머니와 비인간 행위자인 길고양이는 한집에서 살고 있다.







저자는 길고양이가 비인간 행위자라면, 그들을 우리와 협상하는 대상으로 인정해야 하며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길고양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행위를 한다. 인간은 길고양이의 행위성을 바라보면서 동등하게 대해야 한다. 더 나아가 길고양이들과 함께 정치 공동체를 형성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길고양이를 정치적 주제로 보는 저자의 견해가 지나친 비약이라고 지적하는 독자들이 있다. 과학기술학이 낯선 독자들은 정치하는 길고양이가 터무니없는 생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저자는 인간과 비인간이 포함된 공동체를 뜻하는 사물의 의회(parliament of things)’를 언급만 했는데, 이 생소한 개념이 나오게 된 배경을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해야 했다. ‘사물의 의회는 라투르가 자신의 책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We have never been modern, 홍철기 옮김, 갈무리, 2009)에 제시한 용어다.











이름 없는 고양이는 집 밖에서 생활하는 반려종(companion species) 또는 반려(하는 행위)이다. ‘companion’빵을 함께 먹는다라는 뜻을 품은 라틴어 쿰 파니스(cum pains)’에서 생긴 단어다.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는 동료로서 빵을 나누는 존재를 반려 종이라 했다. 반려종은 단순히 음식을 같이 먹을 수 있는 동료가 아니다. 서로 돌보고,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면서 관계를 맺는 동반자다. 이름 없는 고양이는 어머니의 자식이 아니다. 기묘한 친척(odd kin)이다. 해러웨이가 강조한 친척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없는 존재다. 이름 없는 고양이는 두 발로 걷는 친척에 관심이 많다. 인간 친척과 함께 사는 법을 잘 아는 묘수(妙手/猫手).








88일 세계 고양이의 날을 맞아

이름 없는 고양이를 위해 글을 쓴

cyrus의 주석








[1]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첫 문장을 패러디했다.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송태욱 옮김, 16)









[2, 3]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고양이1연과 마지막 연의 구절을 인용했다. 오늘 88일은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을 번역한 황현산 선생의 8주기.

 

 

내 머릿속을, 강하고, 부드럽고, 매혹적인,

아름다운 고양이 한 마리가.

제 방안을 거닐 듯 돌아다닌다.

녀석이 야옹거려도 그 소리 겨우 들리고.

 

[중략]

 

너의 목소리밖에는, 신비로운 고양이.

세라핀 같은 고양이, 이상한 고양이.

내 안에서는, 한 천사 안에서처럼

모든 것이 미묘하고 조화롭구나!

 

(황현산 옮김, 102~103)






[주4, 5]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나온 문장들을 패러디했다.



* 36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지 못하니 그다지 살이 찌지는 않았지만 절름발이도 되지 않고 그럭저럭 건강하게 그날그날을 살아가고 있다. [중략] 그런대로 만족하면서 평생 이 선생 집에서 이름 없는 고양이로 살아갈 생각이다.

 

 

* 612


 무사태평해 보이는 이들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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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예찬 - 서점 멸종 시대에 쓰는 좋은 서점론
제프 도이치 지음, 장혜인 옮김 / 니라이카나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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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480이 만나서 모이면 1(ream)이다림은 종이를 셀 때 쓰는 단위서점에 있는 모든 책의 종이를 세면 몇 림일까? 종이를 일일이 세는 것은 엄청 힘들다종일 해서 끝나는 일이 아니다종이의 원료는 나무의 섬유질을 추출해서 만든 목재 펄프(wood pulp). 펄프가 된 나무들을 모으면(wood)을 만들 수 있다. 서점의 책들은 숲의 흔적이다. 종이책이 된 (書林)의 자취가 있 서점은 서림(書林)이다.


서점은 다양한 종류의 책이 주렁주렁 달린 숲이다. 서점을 찾는 애서가는 책 숲을 마음껏 둘러본다(browse)종이책이 그득한 서점은 서림이다애서가들의 발길이 잦은 서점은 좋은 서림이다. 서림에 매료된 애서가는 서가를 둘러보면서 책을 훑어본다(browse).







미국의 비영리 서점 세미너리 코옵(Seminary Co-op)책을 훑어보는 경험을 만끽할 수 있는 서림이다. 세미너리 코옵을 운영한 제프 도이치(Jeff Deutsch)의 서점 예찬점점 더 귀해지는 좋은 서점의 특징들을 소개한 책이다. 그는 좋은 서점에 가면 책을 훑어보려는 충동이 생긴다고 말한다훑어보기(browsing)책을 곱씹거나 되새김질하는 일이다. 책을 훑어보는 독자는 책을 파고들면서(digging) 먹는 책벌레와 같다. 책벌레는 서림을 갉아먹는 해충이 아니다책벌레는 서림을 맛있게 먹을 줄 안다.







* 리디아 데이비스, 서제인 옮김 세부 속으로: 더 자세한 쓰기, 사라짐의 쓰기에 대하여(에트르, 2026)

 

* 제임스 우드, 노지양 옮김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 삶과 문학, 읽고 쓰기에 관한 네 번의 강의(아를, 2025)

 

* 제나 히츠, 박다솜 옮김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 내면의 삶을 기르는 배움에 대하여(에트르, 2025)




똑똑한 지성인(知性人)이 좋은 책벌레가 되는 건 아니다. 좋은 책벌레는 일독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을 찾는 일을 성실히 하는 지성인(至誠人)이다. 바지런한 책벌레는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는 책을 발굴한다(dig)독자들의 눈빛을 받아본 적이 없는 평범한 책은 서림에 어울리지 않는 잡초(雜草)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책벌레는 잡초 속으로(Into the Weeds) 스며든다


소설가 리디아 데이비스(Lydia Davis)는 에세이  《세부 속으로(원제: Into the Weeds)에서 어떤 것에 신경 쓰이면(bother), 그것을 글감으로 삼아 글을 쓴다고 밝혔다. 마찬가지로 책벌레는 신경 쓰이는 주제를 만나면 그 주제와 관련된 책들을 모아서 탐독한다독자들이 신경 쓰지 않는 책도 책벌레는 꼼꼼하게 관찰하듯이 읽는다외골수 책벌레는 책에 적힌 사소한 단어를 대충 보지 않는다. 단어를 자세하게 파고들어(Into the Weeds) 자신만의 생각을 펼친다


문학 비평가 제임스 우드(James Wood)는 독자를 침묵의 비평가라고 했다. 책벌레는 자기 의견을 말할 줄 아는 혀(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 136쪽)를 가진 침묵의 비평가다침묵의 비평가는 자신만의 잡초(雜抄)를 직접 써서 펼친다. 잡초(雜抄)가 무성한 좋은 서림은 독자들의 잡다한 생각과 취향이 가지가지 피어 있다


평범한 서점의 주인은 소매업자처럼 일한다. 그들은 책을 판매하는 일에 능숙하다. 자기한테 이익이 되는 일만 한다책을 사는 손님들을 끌어모으려고 서점에 잘 팔리는 책을 갖춘다. 상품성이 떨어지고 수익성이 낮은 책을 거들떠보지 않는다. 잘 팔리지 않는 책을 찾는 독자를 하대한다.


좋은 서림의 주인은 애서가, 애독자이자 책벌레 애호가이기도 하다. 애서가는 잘 팔리지 않는 책의 매력을 눈여겨본다. 책을 못 팔아도 크게 아쉬워하거나 초조해하지 않는다. 은은한 매력이 있는 책을 알아보는 책벌레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린다책벌레 애호가인 서림의 주인은 쓸모없는 지식이나 주제에 파고든 책벌레를 쫓아내지 않는다. 책벌레의 무용한 공부와 독서를 북돋아 준다공부하는 책벌레는 호기심과 궁금증이 많고, 배움을 사랑하는 독자다(제나 히츠,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 226쪽)


서림은 더 많이 배우려고 하는 학생과 같은 독자들을 양성하는 곳(seminary)이다세미너리 코옵은 상품성과 수익성을 중시하는 서점이 아니다. 무용한 지식을 공부할 수 있는 서점이다제프 도이치는 효율성이 떨어지는 서점 운영 방식을 고수한다. 그는 오히려 책벌레를 좋아하는 서점과 배움을 좋아하는 독자가 지닌 비효율성이 평가절하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세미너리 코옵처럼 현명한 비효율성을 추구하는 서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좋은 서림의 주인은 책의 판매 부수가 저조해도 책을 훑어보는 책벌레들이 많이 와주길 바란다. 서점 주인은 책을 사지 않는 책벌레가 달갑지 않다. 심지어 책벌레의 관심사와 취향을 무시한다. 하지만 서림의 주인은 책벌레를 서림의 주인공으로 격상시킨다책벌레의 독서 취향이 생소하고, 책벌레의 공부 방식이 서툴러도 지속적으로 격려한다서림은 비효율적으로 살아가는 책벌레를 위한 안식처다.









19281121일 조선일보에 연재된 

벽초 홍명희의 장편소설 임꺽정1




서림(徐林)은 임꺽정의 책사(策士). 관군에게 사로잡힌 서림은 임꺽정을 배신했다. 책사(冊肆)는 잘 팔리는 책들만 진열한() 서점이다. 책사(策士)처럼 행동하는 서점 주인은 만듦새가 부족한 책들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 서림(徐林)이 책사(冊肆)를 운영했으면 독자를 기만하면서 책을 팔았을 것이다.


서림(書林)은 독자를 배신하지 않는다. 좋은 서림은 베스트셀러 목록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단 한 명의 독자가 알았으면 하는, 은은한 매력을 지닌 책들의 목록을 만든다. 좋은 서림은 유명한 지식인, 출판인, 북튜버들이 추천한 책들만 진열하지 않는다. 서림을 드나드는 침묵의 비평가인 무명의 독자들이 추천한 책을 읽고, 큐레이팅한다. 서림에 정직하게 책을 소개하는 주인과 정독하는 독자들이 살고 있다.








서점 예찬에 나오는 책을 가지고 있는 

cyrus가 만든 주석




[출판사에 관한 주석]


니라이카나이2020년에 등록되어 서점 예찬을 포함한 총 5권의 책을 만든 출판사. 니라이카나이(ニライカナイ)오키나와섬이 있는 류큐 열도(난세이 제도)의 토착 민족 류큐인(琉球人)의 전통 설화에 묘사된 낙원이다. 이 낙원은 바다 저 멀리 동쪽에, 혹은 바다 밑바닥에 있다고 여겨진다. 오키나와현에 낙원의 이름에서 따온 다리가 있다.





 


니라이카나이 출판사 대표는 오키나와에서 2년간 생활했는데, 우리나라로 돌아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 니라이카나이 다리였다고 밝혔다. 그래서 책과 사람을 잇는 다리와 같은 출판사가 되겠다는 마음을 담아 출판사 이름을 니라이카나이로 정했다고 한다.



(출처: 니라이카나이 출판사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niraikanai_books/)






책 마지막에 이 책에 나오는 책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참고문헌 목록이 있다. 서점을 운영한 저자의 추천 도서 목록으로도 볼 수 있는데, 애서가가 흥미를 느낄만한 책들이 포함돼 있다. 목록에 국역본 제목이 없는 책, 저자 이름과 번역자 이름이 빠진 책, 출판사 이름이 잘못 적힌 책이 있다.





* 272





아리스토텔레스 선집, 조너선 번즈 [주1]


도서관(Library: An Unquiet History), 매슈 배틀스 [주2]






[주1] 아리스토텔레스, 김재홍 · 김헌 · 유재민 · 임성진 · 조대호 함께 옮김 아리스토텔레스 선집(도서출판 길, 2023년, 품절


국역본은 테런스 어윈(Terence Irwin)과 게일 파인(Gail Fine)이 편집한 아리스토텔레스 선집(1995)을 참고한 책이다. 그리스 고전학자들이 많이 참고하는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은 독일의 문헌학자 아우구스트 이마누엘 베커(August Immanuel Bekker)가 편집한 판본(Corpus Aristotelicum, 아리스토텔레스 저작집, 1830~1870)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선집베커의 아리스토텔레스 저작집에 실린 주요 저서들의 일부를 발췌해서 번역한 것이다.




[주2] 매튜 베틀스, 강미경 옮김 도서관, 그 소란스러운 역사: 지식의 생성과 소멸의 은밀한 기록(지식의숲, 2016년, 절판)






* 273





영웅(On Heroes), 토머스 칼라일 [주3]


[주3] 토머스 칼라일, 박상익 옮김 영웅 숭배론(한길사, 2023)






* 273





연설(Orations), 키케로 [주4]


[주4] 키케로, 전영우 옮김 연설가에 대하여: 로마의 실천 변론법(민지사, 2013년, 절판)






[곧 나올 책] 키케로, 이선주 옮김, 연설가론(아카넷)






* 274





쓸모없는 지식의 효용, 에이브러햄 플렉스너 [주5]





[주5] 에이브러햄 플렉스너 · 로버르트 데이크흐라프 함께 지음, 김아림 옮김 쓸모없는 지식의 쓸모: 세상을 바꾼 과학자들의 순수학문 예찬(책세상, 2020년, 절판)


에이브러햄 플렉스너(Abraham Flexner)프린스턴고등연구소(Institute for Advanced Study, IAS)의 설립자이자 초대 소장이다. 학자들이 무용한 지식을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순수학문 연구소. 서점 예찬의 역자는 ISA 고급 학문연구소로 번역했다. 로버르트 데이크흐라프(Robbert Dijkgraaf)는 네덜란드의 이론물리학자로, 9대 프린스턴고등연구소 소장(2012~2022)으로 재직했다. 여담으로, 3대 프린스턴고등연구소 소장은 로버트 오펜하이머(Robert Oppenheimer).

 

번역본 제목으로 정해진 쓸모없는 지식의 쓸모는 플렉스너가 쓴 에세이의 제목이다. 이 글은 무용한 연구가 왜 중요한지를 알려준다. 번역본에 로버르트 데이크흐라프의 에세이 내일의 세계도 수록되었다.






* 275





시간 맥동의 비밀(The Secret Pulse of Time), 스테판 클라인(Stefan Klein) [주6]


[주6] 슈테판 클라인, 유영미 옮김 안녕하세요, 시간입니다: 심리학과 뇌과학이 파헤친 시간의 비밀(뜨인돌, 2017년, 절판)


슈테판 클라인, 유영미 옮김 시간의 놀라운 발견: 시간의 미스터리에 빠진 사람들을 위한 시간 사용 설명서(웅진지식하우스, 2007년, 절판)






* 275





철학자들의 생애,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주7]






[주7]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김주일 · 김인곤 · 김재홍 · 이정호 함께 옮김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나남출판, 2021년, 전 2권)






* 276





황금 노트북, 도리스 레싱 [주8]


[주8] 도리스 레싱, 권영희 옮김 금색 공책(창비, 2019년, 전 2권)


도리스 레싱, 안재연 · 이은정 함께 옮김 황금 노트북(, 2007년, 전 3권, 절판)






* 277





백과전서, 드니 디드로, 장 르롱 달랑베르 [주9]





[주9] 드니 디드로, 이충훈 옮김 백과사전(도서출판b, 2014)


정은주 옮김 《백과전서 도판집(프로파간다, 2017년, 전 5권)



35권으로 구성된 <백과전서>(Encyclopédie) 디드로(Denis Diderot)달랑베르(Jean-Baptiste Le Rond d’Alembert)가 편집자로 참여했고, 여러 명의 계몽사상가가 7만 개 넘는 항목을 작성했다. 1751년에 1권이 출간되었고, 35권은 1772년에 출간되었다. <백과전서> 서문은 달랑베르가 썼다.

 

백과전서 도판집원전 <백과전서> 17권과 과학, 인문, 기술에 관한 도판집이라는 부제가 달린 도판집 11권을 번역한 책이다백과사전》은 원전 <백과전서> 5권에 실린 디드로의 백과사전항목 전문을 번역한 책이다.

 






* 278





참깨와 백합 그리고 독서에 관하여, 유정화 옮김, 민음사, 2018 [주10]


[주10] 저자 이름이 빠졌다<참깨와 백합>존 러스킨(John Ruskin)의 강연문이며 유정화가 번역했다. <독서에 관하여><참깨와 백합>을 번역한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가 쓴 서문이다. <독서에 관하여>는 불문학자 이봉지가 번역했다.






* 278






의식은 육체의 굴레에 묶여, 수전 손택, 김선형 옮김, 고양, 2018 [주11]





[주11] 출판사 이름이 ‘고양이 아니라 이후의식은 육체의 굴레에 묶여다시 태어나다》(김선형 옮김, 이후, 2013년)수전 손택(Susan Sontag)1947년부터 1980년까지 썼던 일기와 노트에 기록된 잡문을 엮은 책이다. 두 권 모두 절판되었다.

 






* 279





흑인 소년, 리처드 라이트 [주12]












[주12] 리처드 라이트, 정병조 옮김, 흑인 문학전집 1(휘문출판사, 1965년, 절판), 수록된 작품명은 블랙 보이』다. 


리처드 라이트, 정병조 옮김, 블랙 보이(미문출판사, 1968년, 절판)


리처드 라이트, 이충률 옮김, 깜둥이 소년(푸른미디어, 1998년, 절판)






* 272





그웬돌린 브룩스(Gwendolyn Brooks) [주13] 









[주13] 그웬돌린 브룩스(1917~2000)는 미국의 시인이다. 1950년에 퓰리처상 시 부문(Pulitzer Prize for Poetry)을 받았다. 퓰리처상을 처음으로 수상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다. 흑인 문인들의 시와 에세이, 희곡을 모은 흑인문학전집 5브룩스의 시 3(모성애, 앞뜰의 노래, 그대가 일요일을 잊었다면)이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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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속으로 - 더 자세한 쓰기, 사라짐의 쓰기에 대하여
리디아 데이비스 지음, 서제인 옮김 / 에트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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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것들은 가볍다

보잘것없는 것들은 가엽다

이 자그마한 것들은 잊히면 시나브로 사라진다.


무미건조한 것들은 무용하다.

무무(貿貿)한 것들은 무시당한다.

이 하찮은 것들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시나브로 사라진다.


점점 잊히는 것들에 대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진지한 관찰자’는 세심한 관심을 드러낸다. 









세상을 진지하게 관찰하는 사람은 호기심이 많다. 그들은 자그맣고 하찮은 것들을 열심히 주우러 다닌다영국의 문학 비평가 제임스 우드(James Wood)우리가 지나치기 쉬운 것들세부 사항(detail)’이라고 했다.


세부 사항은 관찰자를 만나고 싶다. 세부 사항은 원래 조용한 편이지만, 자신을 알아준 관찰자를 만나면 수다스러워진다관찰자의 눈빛을 느낀 세부 사항이 말을 건넨다. 



날 만져 주세요.” 



우드는 세부 사항을 우리에게 만져달라고 애원하는 삶의 조각으로 비유한다. 호기심이 많은 관찰자는 삶의 조각들을 모은다.












호기심이 솟아나면 세부 사항을 궁금해한다. 진지한 관찰자는 쓸모없는 세부 사항이 궁금해서공부한다. 미국의 철학자 제나 히츠(Zena Hitz)는 호기심을 죽이면서 실용성만 챙기는 공부를 비판한다. 그녀는 쓸모없는 것(지식)을 공부하는 관찰자 자유롭게 배움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격찬했다. 궁금증이 많은 관찰자는 삶의 조각들을 사랑한다. 이들은 중요하지 않은 것에 주의를 기울인다.









진지한 관찰자가 글을 쓰면 무색한 세부 사항에 선명한 빛깔이 생긴다미국의 작가 리디아 데이비스(Lydia Davis)는 자신의 글쓰기를 잡초가 무성한 곳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행위로 비유한다‘into the weeds(잡초 속으로).’ 이 관용구는 더 자세하게 들어가다라는 뜻도 있다잡초는 성가신(bother) 존재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잡초를 관찰하는 사람은 잡초의 매력을 알려고 노력한다. 진지한 관찰자는 성가신 것에 궁금증을 느끼면 그것에 신경을 쓴다(bother)진지한 관찰자는 보기 좋고, 쓸모 있는 것들만 찾는 남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데이비스는 신경 쓰이는삶의 조각들을 주워서 노트에 담는 작가다. 그녀는 자신의 눈앞에 아른거리는 삶의 조각이 신경 쓰이기 시작하면 글을 쓴다고 밝힌다. 



날 쓰다듬어주세요.”



삶의 조각을 여러 번 쓰()다듬으면 멋진 글이 된다글의 소재가 될 만한 삶의 조각은 작가가 직접 찾을 수 있지만, 때로는 예기치 않게 불쑥 나타나기도 한다그리고 자주 봐서 흔한 사물도 자신에게는 특별한 삶의 조각이 된다전업 작가가 아니어도 삶의 조각을 찾아서 글을 쓸 수 있다


데이비스는 무용한 글쓰기를 해야 하는 이유를 강조하기 위해 조지 스터트(George Sturt)의 책 <수레바퀴 제작인의 작업실>(The Wheelwright’s Shop)을 재조명한다스터트는 수레바퀴를 만드는 일을 하면서 틈틈이 소설을 썼다그는 사람들이 궁금해하지 않는 이야기, 즉 수레바퀴를 만드는 과정과 그 밖의 공예 기술들을 꼼꼼하게 기록했다<수레바퀴 제작인의 작업실>은 스터트의 소설들보다 더 유명해진 회고록이다. 이 책은 작가가 살았던 영국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 1837~1901)의 공예 기술을 알려주는 귀중한 사료가 되었다. 스터트는 보잘것없는 세부 사항을 관찰한작가.


똑똑하고, 표현의 기교가 뛰어난 사람만이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 자신의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을 애지중지하는 마음이 있으면.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진지한 관찰자,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알라딘 램프에 갇혀 16년째 무용한 글쓰기를 한

cyrus가 만든 주석





* 32




 

 ‘나는 내 어떤 책들을 어떻게 썼는가[주1]는 언제나 내 머릿속에 맴도는 책 제목이다. (중략) 이 제목은 프랑스 작가 레몽 루셀 에세이집 제목이면서 표제작 제목이기도 하다. 방금 그것을 찾아본 나는 존 애시베리가 루셀을 경유해 그 에세이집에 다시금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된다.







[1] 레몽 루셀(Raymond Roussel)독특한 방식으로 글을 쓴 프랑스의 작가다. 그의 실험적인 글쓰기는 당대의 독자들로부터 외면받았다. 루셀은 자신의 글쓰기에 관한 생각을 정리한 <나는 내 어떤 책들을 어떻게 썼는가>라는 글을 썼고, 자신이 죽은 후에 출간할 것을 요청했다







루셀의 대표작은 아프리카의 인상(송진석 옮김, 문학동네, 2019)로쿠스 솔루스(송진석 옮김, 문학동네, 2020). 국역본 아프리카의 인상에 부록으로 <나는 내 책 몇 권을 어떻게 썼는가>가 실려 있다. 루셀의 작품을 진지하게 분석한 학자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루셀에 심취한 푸코는 1963년에 <레몽 루셀>을 출간했다. 이 책의 영문판 제목은 <죽음과 미로>(Death and the Labyrinth: the World of Raymond Roussel)미국의 시인 존 애시베리(John Ashbery)는 루셀의 열렬한 독자이자 루셀의 작품을 영어로 옮긴 번역자로, <죽음과 미로> 서문을 썼다.







푸코의 <레몽 루셀>은 국내에 번역 출간되지 않았다. 루셀이 언급된 또 다른 철학서질 들뢰즈(Gilles Deleuze)차이와 반복(김상환 옮김, 민음사, 2004)이다. 들뢰즈는 푸코의 <레몽 루셀>을 참조했다. 










[2] 제임스 우드의 비평 에세이집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에 실린 두 번째 글은 진지한 관찰이다. 이 글에 리디아 데이비스의 단편소설 <문법 질문>(Grammar Questions)이 언급된다(177쪽). <문법 질문>작품집 불안의 변이》(강경이 옮김, 봄날의책, 2023년)에 수록되어 있다(제목은 문법 질문들이다). 불안의 변이<푸코와 연필>(Foucault and Pencil)이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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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6-07-06 0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임스 우드 책 읽었는데 리디아 데이비스 언급된 것도 잊고 있었네요. 연결 지점 배워갑니다. 전 무엇보다 저 <수레바퀴제작인의 작업실> 읽어보고 싶어요.

cyrus 2026-07-13 06:55   좋아요 1 | URL
저는 존 애시베리의 시집이 출간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생소한 이름이라서 알아봤는데, 노벨 문학상 빼고 퓰리처상, 전미도서상을 받은 시인이라고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