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연의 소설 홍학의 자리를 읽다가 옥에 티를 발견했다.
















[<읽어서 세계 문학 + 향기의 미스터리 속으로> 2025년 8월의 책]

* 정해연 홍학의 자리(엘릭시르, 2021)




* 242

 

 포르말린은 소독제, 살균제, 방부제에도 쓰이는 약품이지만 독성이 강해 희석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다. 최소 30배에서 50배로 희석해 정작 들어가는 포르말린은 1%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실에서 흔히 표본을 만드는 데 쓴다고 알고 있지만 거기에도 다른 물질과 혼합하여 사용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표본은 관리에 상당한 주의를 요한다. (중략) 포르말린은 1급 발암물질로 분류되어 있을 만큼 독성도 강하다. 그렇게 위험한 물질이기에 아무나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전언이다.

 



소설의 화자는 삼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이야기하는 작가. 작가는 포르말린이 ‘1급 발암물질로 분류되어 있다고 하는데, 여기에 오류가 있다.


















* 사마키 다케오 · 잇시키 겐지 함께 씀, 원지원 옮김, 하루 한 권, 일상 속 화학 물질: 두 얼굴을 가진 우리 생활 속 다양한 물질들(드루, 2023)

 

* 김병민 거의 모든 물질의 화학: 화학 물질 세상에 대한 과학적 통찰(현암사, 2022)




발암물질은 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따라서 ‘1급 발암물질이라는 표현은 잘못되었다. 세계보건기구(WTO) 산하 국제암연구소(International Agency for Research on Cancer, IARC)는 실험과 역학 조사를 거쳐서 발암물질을 지정하고, 분류한다.


IARC 지정 발암물질은 5개 군(group)으로 나뉜다. 1, 2A, 2B, 3, 4이다. IARC는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 및 조사 결과를 토대로 발암물질을 5개 군으로 분류한다


1군 발암물질(Carcinogenic to humans)확실히인체에 암을 일으키는 물질이. 2A(Probably carcinogenic to humans)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정되는물질이다. 2B(Possibly carcinogenic to humans)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물질이다. 1, 2A, 2B군으로 분류되려면 발암성이 나타난다고 보는 증거가 충분히 있어야 한다


3(Unclassifiable as to carcinogenicity in humans)암을 일으킨다고 확신할 수 없는물질이다. , 발암물질로 보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4(Probably not carcinogenic to humans)암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확실한증거가 있는 물질이다.








발암물질 분류를 으로 잘못 쓰면 화학물질을 막연히 두려워하는 화학물질 공포증(Chemiphobia)’이 커진다1군 발암물질이라 해서 가장 위험한 물질로 생각하기 쉬운데, 절대로 그렇지 않다. 5개 군은 위험성에 따른 등급을 뜻하지 않는다. IARC는 매번 발암물질이 암을 유발하는 메커니즘을 연구하는데, 이 연구 결과를 토대로 5개 군 발암물질 목록을 다시 고친다. 4군 발암물질이 암을 일으키는 이례적인 현상이 발견된다면 반복 실험과 검증을 거쳐야 한다. 암을 유발하는 메커니즘과 관련된 증거가 확보되면 4군 발암물질은 1, 2A, 2B군으로 재조정될 수 있다.


포르말린은 폼알데하이드의 35~40%를 물에 녹여 만든 화학물질이다. 폼알데하이드는 새집증후군을 유발하는 독성 물질로 알려진 IARC 지정 1군 발암물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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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8-19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일반적인 의미에서 소설가가 cyrus님처럼 화학이나 발암물질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 않을 겁니다.그러면에서 정해연 작가가 1군 발암물질을 1급 발암물질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그정도 자료를 조사했다는 점은 칭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일본의 경우에도 작가의 성향에 따라서 누구나 다아는 유명 작가들의 경우도 메이지시대를 소설로 쓰면서 연필 한자루로만 메이지시대를 저술한 작가도 있지만 트럭 한대분의 조사 자료를 가지고 메이지시대를 서술한 작가가 있다고 하니까요.
 
저주받은 시인들
폴 베를렌느 지음, 임민지 옮김 / 필요한책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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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점  ★★★☆  B+





절반으로 갈라진 랭보(Arthur Rimbaud)의 짧은 인생은 물과 기름과 같다. 은 시상(詩想)이 홍수마냥 흘러넘치는 조숙한 시인의 삶이다. 랭보는 열여섯 살에 처음으로 시를 썼다. 그의 첫 번째 시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 출간된 해는 1873. 이때 당시 랭보는 열아홉 살이었다









기름은 끈끈한 노동자의 삶이다. 랭보는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을 여행하면서 여러 가지 일을 했다고국과 완전히 다른 타지의 날씨는 랭보의 연약한 몸을 괴롭혔지만, 랭보는 꾹 참고 일했다서커스단의 사무직원, 식민지 산물 회사의 직원, 채석장 회사의 작업반장, 건축업체의 관리 감독, 커피콩을 골라내고 포장하는 회사의 관리자, 아프리카의 무기 거래 상인. ‘기름의 시대에 랭보는 틈틈이 시를 쓰긴 했지만,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지 않았다.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시인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었다. 여기저기 돌아니면서 일하느라 시상이 폭삭 늙어버린 랭보. 일과 방랑에 중독된 랭보는 고향 친구에게 자신은 더 이상 문학에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본인 스스로 의 시대에 마침표를 찍은 랭보의 나이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시 쓰는 삶을 스스로 포기한 랭보를 여전히 시인이라고 주장한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폴 베를렌(Paul Verlaine)이다랭보와 베를렌은 함께 여행하고, 토론하고, 질투심이 섞인 말다툼을 할 정도로 뜨겁게 사랑했다. 베를렌은 아내를 버리고 랭보와 함께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다. 그러나 사랑의 여정은 오래가지 못한다. 화를 참지 못한 베를렌은 랭보를 향해 권총 두 발을 쏜다. 다행히 두 개의 총알은 랭보의 목숨을 비껴간다. 살인 미수로 체포된 베를렌은 2년 동안 감옥 생활을 한다.


베를렌은 대중과 문단 모두에서 잊힌 랭보의 문학적 재능을 아까워했다. 그는 랭보처럼 관습에 도전하고 개성 충만한 시를 쓴 무명 시인들에게 저주받은 시인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베를렌의 시 비평서 저주받은 시인들은 랭보를 포함한 여섯 명의 시인의 작품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해설한 책이다. 오늘날 저주받은 시인또는 저주받은 예술가는 재능은 뛰어나지만,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불행한 예술가를 가리킬 때 쓴다. 하지만 베를렌이 생각하는 저주받은 시인세상에 편입된 삶을 거부했다. 그들은 독자의 문학 취향에 부합하는 시를 쓰지 않는다.


베를린이 찾은 6인의 저주받은 시인은 랭보, 트리스탕 코르비에르(Tristan Corbiere), 스테판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 마르슬린 데보르드 발모르(Marceline Desbordes-Valmore), 빌리에 드 릴라당(Villiers de L’Isle Adam), 그리고 가엾은 를리앙(Pauvre Lelian)’이다.


베를렌은 가엾은 를리앙가장 우울한 운명을 지닌 시인이라고 소개한다. 사실 가엾은 를리앙베를렌이 자신의 이름 철자를 바꿔 만든 가명이다. 베를렌은 왜 자신의 책 마지막에 자기소개서를 썼을까? 랭보 총격 사건 이후로 베를렌은 가톨릭에 귀의하여 종교적인 분위기가 강한 시를 쓰기 시작한다. 전 연인 랭보는 종교에 헌신하는 시인으로 변한 베를렌을 비판했다. 가엾은 를리앙은 가톨릭 신앙을 드러낸 시를 쓰는 베를렌의 분신이다. 베를렌은 화려하고, 나른하며, 신경질적 어조가 반영된 젊은 시절의 시들과 엄숙하고 단순한 어조로 읊는 종교적인 시는 결국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시상에 잠기는 대로 시를 쓰는 자유가 있다고 강조한다베를렌은 동료 시인들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 저주받은 시인이다.









명예와 긍정적인 평가를 좇아가면서 글 쓰는 작가는 불행하다. 이런 작가는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쓰지 못한다. 본모습이 없는 글을 쓰게 만드는 저주가 작가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힌다. 정말로 저주받은 시인은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이와 반대되는 베를렌과 저주받은 시인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시를 쓴다. ‘저주받은 시인의 유일한 독자는 시인 본인이다그들은 독자(獨自)적으로 시를 쓰는 독자(讀者)’.






<‘독자적인 독자’ cyrus가 쓴 주석>







* 65~66

 

 우리는 이 시의 정신을 매우 혐오하는데, 그 정신은 노년기의 불경스러운 미슐레[주1], 여인들의 더러운 속옷 아래, 그리고 파르니 뒤로 숨은 미슐레와의 불행한 만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다른 미슐레는 우리가 그 누구보다도 존경한다).



[1] 해당 인용문에서 베를렌이 언급한 랭보의 시는 첫 성체 배령(1871)이다. 저주받은 시인들을 쓸 무렵(1888), 베를렌은 가톨릭 신자였다. 첫 성체 배령은 제목과 상반되게 가톨릭 신앙과 그리스도교를 조롱하는 시. 그래서 베를렌은 이 시에 드러난 랭보의 반가톨릭적 정신을 혐오한다고 비평했다.

     

쥘 미슐레(Jules Michelet)는 프랑스의 역사가다. 그가톨릭의 권위주의를 비판한 볼테르(Voltaire) 계열의 반교권주의자. 미슐레는 1874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4년 전에 나폴레옹 3세 중심의 군주정(2공화국)이 종식되고, 3공화국이 수립되었다. 3공화국 초창기에 정계에 진출한 공화주의자들은 반교권주의자였다. 첫 성체 배령을 쓴 1871년의 랭보는 반교권주의적 성향이 강했다.

     

젊은 시절 베를렌은 제3공화국 출범을 지지했고, 시민 혁명 정부인 파리 코뮌(Paris Commune)에 협력했다. 랭보 총격 사건 이후부터 보수적으로 변했다그러나 베를렌은 모순적인 인간이었는데, 1878년부터 시를 가르치면서 알게 된 뤼시앵 레티노아(Lucien Létinois)라는 제자와 동성애 관계를 맺는다. 제자의 요절에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베를렌은 방탕한 생활을 한다. 아무튼 종교에 빠져 정신이 늙어버린 말년의 베를렌은 랭보의 반가톨릭적 정신이 불경스럽게 보였을 것이고, 첫 성체 배령이 반교권주의의 영향을 받은 시라고 비평한다

     

베를렌은 종교 비판적인 시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지만, 혁명을 일으켜 국가 권력을 무너뜨린 프랑스 민중을 지지한다. 미슐레는 민중을 프랑스 혁명의 주체로 보는 역사관을 주장했다. 1846년에 발표한 미슐레의 민중(조한욱 옮김, 교유서가, 2021)은 그의 대표작이며 민중 친화적인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이 즐겨 읽었다. 따라서 베를렌이 존경한다는 다른 미슐레민중을 쓴 역사가 미슐레를 의미한다.



[참고 문헌]

 

* 아르튀르 랭보, 한대균 옮김, 나의 방랑(문학과지성사, 2014)

 

* 폴 베를렌, 윤세홍 옮김, 베를렌 시선(지만지, 2013)

 

* 삐에르 쁘띠필, 나애리 · 우종길 옮김, 광인 뽈 베를렌느(역사비평사, 1991)

 

* 롤랑 바르트, 한석현 옮김, 미슐레(이모션북스, 2017)






[2] 베를렌이 저주받은 시인들에서 인용한 랭보의 시는 총 여덟 편이다. 모음들, 저녁 기도, 앉아 있는 자들, 놀란 아이들, 이 잡는 여인들, 취한 배, 첫 성체 배령, 파리가 다시 북적댄다. 이 작품들은 여러 종의 번역본이 있는 랭보 시()집에 수록되어 있다여덟 편의 시가 모두 실린 번역본은 나의 방랑(한대균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4년)이다.








※ 작품명은 번역본에 표기된 제목이며 번역본의 목차 순으로 적었다.



* 지옥에서 보낸 한철(최완길 옮김, 북피아, 2006, 절판)

깜짝 놀란 어린아이들, 저녁의 기도, 모음들, 이를 잡는 여인들, 취한 배


 

* 지옥에서 보낸 한철(김현 옮김, 민음사, 2016, 개정판)

모음, 취한 배

 


* 랭보 시선(이준오 옮김, 책세상, 2001, 절판)

모음들, 최초의 성체 배령, 취한 배

 


* 랭보 시선(곽민석 옮김, 지만지, 2012)

모음들, 이 잡는 여인들, 취한 배

 


* 나의 방랑(한대균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4)

놀란 아이들, 앉아 있는 자들, 저녁 기도, 파리의 향연 혹은 파리가 다시 북적댄다, 모음들, 첫 성체 배령, 이 잡는 여인들, 취한 배


 






* 103






여류 작가들 여성 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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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18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영화 이클립스로 랭보와 베를렌의 이야기를 만났어오. 하지만 시는 저는 대중이라 역시 접근하기 어렵더라구요. 베를렌의 책이 이런 내용인줄은 몰랐는데 책의 구성도 자신을 가엾은 를리앙으로 표현한것도 흥미롭네요

cyrus 2025-08-19 06:32   좋아요 1 | URL
랭보와 베를렌 두 시인의 시는 역시 계속 읽어도 어려운데, 그들이 살아온 과정이 더 흥미로워요. <토탈 이클립스>를 한 번 보고 싶은데, 자막 달린 영화 보기가 어렵네요. ^^;;
 
대구의 5.18, 두레양서조합 사건
김상숙 지음 / 책과함께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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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점  ★★★★★  A+














19809, 갑자기 대구의 바위섬에 폭풍우가 덮쳤다. 민주주의가 익어가던 5월의 광주를 무자비하게 짓밟은 폭풍우가 대구까지 오고 말았다바위섬에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주민들은 폭풍우를 피하려고 뿔뿔이 흩어졌다그들 중 일부는 폭풍우에 휘말려 모진 고생을 했다


반공 프레임에 갇힌 사람들은 바윗섬 생존자들을 빨갱이라고 손가락질했대구는 유독 바위섬 주민들을 싫어했다. 대구 토박이는 땅에 한 번 박히면 꿈쩍도 하지 않은 바윗덩어리만 보고 자라왔다. 광주를 제외한 1980년대 전국은 전두환을 위한 국가였다. 전국 언론사와 방송국은 광주에 폭풍우를 일으킨 전두환 정권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다 같이 입을 맞췄다. 신문과 TV는 국가를 무너뜨리려는 폭도들이 광주에 모여 있다는 가짜 뉴스를 퍼뜨렸다. 그러면서 북한의 지령을 받은 간첩과 손잡은 폭도들을 진압한 5월의 폭풍우를 옹호했다. 광주의 참상을 모르는 대구 시민들은 전두환 정권이 옳은 일을 했다고 믿었다. 


아득히 먼 옛날 대구에 바위섬들이 많았다. 그곳에 평등한 세상을 꿈꾼 공산주의자들이 모여 살았다.[주1]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분열하자 대구의 공산주의자들은 북쪽으로 건너갔다활발한 사람들이 살지 않는 바위섬은 점점 생기를 잃으면서 붙박이들이 살기 좋은 바윗덩어리로 변했다.


19809월에 사라진 대구의 마지막 바위섬은 경북대학교 후문(현재는 서문근처에 있었다. 이 바위섬의 이름은 두레 서점이다두레는 농사일을 돕기 위해 만든 작은 조직을 뜻한다. 두레 서점을 만든 바위섬 주민들은 과거에 농촌 문제에 관심이 많은 대학생이었다. 이들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농민의 권익 보호를 위한 농민운동에 뛰어들었다. 이 시기의 박정희 정권은 강력한 추진력으로 산업화 정책을 밀어붙였고, 농촌 경제를 더 악화시키는 저곡가 정책까지 단행했다. 대구와 경북 지역 대학생들은 대학 4-H 연구회[주2]를 결성하여 박정희 정권의 농업정책을 비판했다.


대학 4-H 연구회 소속 학생들은 사회 문제를 깊이 파고들기 위해 두레 양서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조합원들이 모인 자리에 두레 서점이라는 바위섬이 생겼다. 두레 서점은 생각의 폭을 넓혀주는 책들이 잔뜩 펼쳐진 정원이자 젊은 민중 운동가들의 결속을 다지는 아지트였다. 두레 조합원들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 독재 체제에 반대하는 학생 운동을 주도했다. 민주화 바람이 불기 시작한 안동에 가톨릭교회와 연대하여 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가톨릭농민회가 만들어졌다1979년에 경찰은 정권을 줄곧 비판해 온 안동가톨릭농민회 소속 간부와 가톨릭 신부들을 강제로 체포하고 감금했다박정희 정권의 비민주적인 만행이 알려지자, 경북대학교, 영남대학교, 계명대학교 학생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정권의 종교 탄압을 규탄하는 가톨릭 교구들의 기도회가 전국에 열렸다.


두레 서점에 가면 불온서적으로 알려진 마르크스(Karl Marx) 관련 서적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대구의 마지막 바위섬은 빨갛지 않았다두레 조합원들은 민주주의를 염원했다. 그들은 총과 탱크로 광주 시민들을 위협한 폭풍우의 진실을 알고 있었다. 전두환은 광주 민주화운동을 저지하기 위해 폭동 진압을 명분으로 계엄군을 동원했다두레 조합원들은 군부 정권이 감추려고 했던 광주 5·18 항쟁을 처음으로 접했다. 그들은 광주에 갇혀 버린 진실을 알리고자 유인물을 제작하여 배포했다. 하지만 바위섬 주민들도 계엄군이 통제하는 대구 한가운데에 갇히고 만다. 그들은 시민과 학생들이 동참할 수 있는 거리 시위를 계획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전략이 없어서 거세게 저항하지 못했다. 광주에 이어 대구마저 점령한 계엄군을 뚫을 힘이 부족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무르익었던 반공주의는 대구의 민주화 열기를 식게 했다. 보수적으로 변한 대구에 박정희반공’, 이 두 단어가 깊이 새겨진 바윗덩어리가 많아졌다.


바위섬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19809, 전두환 정권은 조용히 반독재 저항 운동을 준비하던 두레 서점을 습격했다. 두레 조합원들이 예상하지 못한 폭풍우가 갑자기 찾아왔다. 경찰은 민주화운동에 합류한 시민, 학생, 농민 100여 명을 강제로 연행했다. 두레 서점은 북한을 찬양하는 불온서적을 유통하고, 북한 간첩들을 은밀히 지원한 반국가단체로 낙인찍혔다대구에 하나뿐인 바위섬은 허망하게 사라졌다.


민중 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두레 조합원들은 혹독한 고문을 받았고, 감옥에서 치욕적인 가혹행위를 겪었다. 몇몇은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떠났다. 살아남은 바위섬 주민들을 계속 괴롭히는 것은 고문 트라우마가 아니라 죄책감이다. 그들은 광주 5·18 항쟁에 합류하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저항한 자신들을 스스로 실패자로 여긴다.


두레 양서협동조합의 민주 항쟁을 실패로 단정할 수 없다. 두레 서점에서 시작된 대구 민주 항쟁은 끝나지 않았다. 독재 정치와 두레 서점이 사라졌어도 민주주의와 역사의 진실을 지키는 일은 계속되어야 한다민생은 뒷전이고 정쟁만 일삼는 우파 정치인은 반공주의를 활용한다. 정계 입문을 노리는 극우 선동가들은 광주 5·18 항쟁을 북한이 개입한 폭동이라고 주장한다








박정희의 이름이 새겨진 바윗덩어리는 동대구역 광장의 동상이 되었다. 농촌을 죽이고, 도시로 이주한 농민들을 빈민으로 만든 박정희 정권의 저곡가 정책을 생각하면, 농부 코스프레를 한 박정희의 모습은 부자연스럽다. 이렇듯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잘못된 과거는 지금까지도 민주주의와 역사의 진실을 위협하거나 왜곡한다성숙한 시민은 과거사에 짙게 드리워져 있었던 독재의 그늘을 잊어서는 안 된다독재의 그늘은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방심하면 암울한 그늘이 스멀스멀 나타날 수 있다. 민주주의를 가린 독재의 그늘을 부지런스레 걷어낸 민중 운동가들을 기억해야 한다두레 서점이 세월 속에 지워지더라도, 두레 양서협동조합의 항거 정신은 우리가 되새겨야 할 민주주의 정신이다.







<5월 18일과 815일을 함께 기억하고 싶은[주3] cyrus의 주석>








[1] 대구는 과거에 조선의 모스크바라고 불릴 정도로 사회주의자들이 많이 활동한 지역이었다. 현재 대구의 모습과 완전히 정반대인 붉은 대구를 자세히 알고 싶어서 참고할 만한 책이 있는지 찾아봤지만, 일반 독자들을 위한 책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때마침 일제강점기 시절에 활동한 조선 사회주의자들을 주목한 박노자의 신간 붉은 시대: 독립을 넘어 쇄신을 꿈꾼 식민지 조선 사회주의 유토피아》(원영수 옮김, 한겨레출판, 2025년)가 출간돼서 대충 훑어보긴 했다. 그런데 대구와 경북 출신 사회주의자들이 많이 언급되지 않았다. 대구 · 경북 내 사회주의 운동에 관한 내용이 나오는지는 책을 정독해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정독하지 않고 책을 살펴보다가 유일하게 발견한 경북 출신 사회주의자는 조선공산당 창립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인 권오설(1897/1898~1930)이다.




[주2] 4-H는 1920년대 미국에 발족한 청소년 단체이다. 두뇌(Head), 마음(Heart), (Hand), 건강(Health)의 머리글자를 뜻한다. 우리말로 번역된 4-H의 뜻은 (: Head), (: Heart), (: Hands), (:Health).




[주3] 815를 거꾸로 하면 518, 518을 거꾸로 하면 815. 경북 안동 출신의 시인 이육사는 좌익 계열의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1898~1958?)이 만든 의열단에 가입한 독립운동가. 시인이 태어난 날은 1904518일(음력 4월 4일)이다. 시인의 동생은 문학 평론가 이원조(1909~1955). 형제는 마르크스-레닌주의자(ML)였다.












[주4] 책 앞표지에 그려진 도안은 사발통문을 연상시킨다. 사발통문은 둥근 사발 형태로 글이 적힌 문서다. 동학 농민운동을 이끈 녹두장군 전봉준은 주동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도록 사발통문을 활용했다. 비상계엄령이 내려진 19805월 광주 5·18 항쟁을 알고 있었던 경북대학교 학생들은 광주 시민들을 학살한 전두환 정권과 계엄군의 만행을 폭로하고, 시위 장소를 알리는 사발통문을 배포했다



 비상계엄이 확대된 뒤 경북대학교 학생들은 524반월당에 모여서 시위하자고 사발통문이 돌았어요. 그날 막상 반월당에 가니까 경찰차만 길가에 쭉 있고 사람들이 모이지 않았어요. 우리는 덕산빌딩 쪽에서 서성거리다가 시위는 포기하고 술 마시러 중앙공원 쪽으로 갔어요.


(대구의 5·18, 두레양서조합 사건》 중에서, 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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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5-08-16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시루스님의 글은 좋았지만, 이번 글은 특히 더 좋네요.
518과 815가 그런 관계로군요.

그런데 어떻게 알라딘에 글을 쓰면서 이렇게 깔끔하게 편집을 잘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html 편집을 잘 하시는 건가요?
알라딘에 사진을 넣으면 사진 크기 줄이기도 어렵고, 영 불편하기만 하던데요.
늘 시루스님의 글은 깔끔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cyrus 2025-08-17 07:42   좋아요 0 | URL
원래 이 책을 5월에 소개하려고 했는데, 차일피일하면서 미루기만 했어요. 광복절 날짜를 거꾸로 하면 518이라서 저는 특별한 방식으로 서평을 써봤어요.

글은 한글2022 프로그램에 쓰고요, 사진은 마우스 드래그 기능으로 크기를 조절해요. 사진이 너무 크면 가장자리 쪽이 잘린 채 나와서 제가 봐도 만족스럽지 못해요. 그래서 사진 크기를 줄이거나 작게 잘라서 편집해서 등록하는데, 문제는 해상도가 떨어져요. 원본 사진보다 선명하지 않아서 아쉬워요. ^^;;
 
손 가는 대로 - 조지 오웰 시사 에세이 오웰이 쓴 오웰
조지 오웰 지음, 정철.홍지영 옮김 / 빈서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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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내가 좋아하는 글은 정직하게 쓴 글이다. 정직한 글쓴이는 자신이 느끼고 생각한 것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정직한 글은 글쓴이의 정신(얼)이 돋아난 얼글이다. 얼글은 얼굴의 평안도 방언이다. 글쓴이의 얼굴을 닮은 얼글은 꾸밈새가 없다. 얼글을 읽으면 글쓴이의 참모습이 보인다. 글쓴이의 얼글을 좋아하면 그 글쓴이의 얼굴을 닮고 싶어진다.


작가의 얼굴은 하나지만, 작가의 얼글은 여러 개(, )수많은 얼글을 모아 놓은 한 권의 책은 조각무늬 그림으로 이루어진 작가의 자화상이다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얼글이 많은 작가다. 오웰이 쓴 얼글은 에세이와 칼럼이다우리에게 친숙한 오웰의 얼굴은 소설가 오웰의 모습이다얼굴이 유명해서 얼글을 많이 남긴 에세이 작가 겸 칼럼니스트 오웰의 모습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오웰은 194312월 초부터 19474월 초까지 트리뷴(Tribune)이라는 신문에 칼럼을 연재했다. 칼럼 제목은 ‘As I please’. 우리말로 풀이하면 나 좋을 대로또는 손 가는 대로오웰의 유명한 에세이는 주로 트리뷴에 실린 칼럼이다예전에 나온 오웰의 에세이 선집들은 트리뷴을 포함한 여러 언론 매체에 발표된 칼럼과 에세이를 모은 것이다지난달 초에 출간된 손 가는 대로: 조지 오웰 시사 에세이트리뷴‘As I please’에 연재된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이 에세이 선집에 처음 번역된 오웰의 글이 많이 있다.

 

오웰은 정치적인 글을 예술로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 했다.[주1] 소설가 오웰의 얼굴만 본 독자들은 동물농장과 1984가 예술이 된 정치적인 글이라고 생각한다1940년대 초중반 오웰은 소설가 겸 트리뷴』 전속 칼럼니스트’였이때 당시 오웰은 항상 공격적으로 글을 쓰는[주2] 칼럼니스트로 유명했다. 하지만 칼럼니스트 오웰은 자신의 약점을 가리려고 센 척하는 건방진 건공잡이가 아니. 얼글에 드러난 오웰의 참모습은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고, 공개하는 정직한 작가의 얼굴이다. 과거에 자신이 썼던 트리뷴칼럼에 오류가 발견되면, 이를 정정하는 글트리뷴에 실었다. 오웰은 중국인과 흑인을 경멸하는 감정이 스며든 차별어를 지적하는 칼럼을 썼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첫 소설 버마 시절에 있는 차별어를 직접 고쳐 쓴 개정판을 발표했다.

 

오웰의 정치 칼럼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쓴 매문(賣文)이 아니다. 정치와 예술이 융합한소설을 쓰기 위한 습작이다. 오웰은 짧은 칼럼도 성심껏 썼다. 그는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이나 주목을 끌어내고 싶은 어떤 사실[주3]을 알리려고 했다. 파시즘과 손을 잡은 좌파,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무시하는 작가와 언론인들, 베스트셀러를 과장 광고하는 가식적인 서평만 찾는 출판업계를 낱낱이 공개했다. 오웰의 칼럼은 세상의 모든 불의를 널리 알리는 종이 확성기


오웰은 진실을 무시한 채 거짓 선동을 하는 보수주의자, 공산주의자, 평화주의자들을 비판했다. 우리는 가짜 뉴스가 판치고, 누구나 선동꾼이 되기 쉬운 정치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 8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종이 확성기에서 오웰의 정치적인 목소리는 여전히 흘러나온다칼럼 속에 살아 있는 오웰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다. 








[1, 3]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이한중 옮김, 나는 왜 쓰는가(한겨레출판, 2025), 323.


[2] 조지 오웰, <울워스의 장미> 중에서, 손 가는 대로, 53. 오웰의 트리뷴칼럼은 원래 제목이 없다. <울워스의 장미>는 번역자가 붙인 가제목이다. 이 글은 최근에 나온 나는 왜 쓰는가개정판(한겨레출판)에도 수록되었는데, 이 번역본에 나온 가제목은 트리뷴』의 칼럼 제목인 나 좋을 대로(As I please).

 







<나 좋을 대로 서평을 쓰는 cyrus의 주석과 정오표>




* 이 책에 자주 나오는 단어가 카톨릭이다. 과거에 쓰던 외래어 표기법인데, 1995년에 새로운 외래어 표기법이 확정되면서 가톨릭으로 변경되었다.





* 28




 

 T. E. 흄이 대략 정립한 아이디어는 특히 20년대와 30년대에 크라이테리언을 중심으로 활동한 수많은 작가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윈덤 루이스[4], T. S. 엘리엇, 올더스 헉슬리, 에벌린 워, 그레이엄 그린 등이 모두 그에게 영향을 받았다.

 


 

* 29





 

 ‘패배의 규율을 비통하게 설교하는 페탱, 자유주의를 비난하는 소렐, 러시아 혁명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베르다예프, 복지 보고서로 유명한 베버리지를 비꼬는 비치코머[4], 미 함대의 대포 뒤에서 무저항을 주장하는 올더스 헉슬리 등,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인간 사회가 근본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는 믿음에 대한 거부다.



비치코머에 붙인 역자의 각주 22

Beachcomber. 윈덤 루이스[4]의 필명.



[4] 영국에서 태어난 윈덤 루이스라는 이름의 작가가 두 명이다. 한 명은 작가이자 화가로 활동한 퍼시 윈덤 루이스(Percy Wyndham Lewis, 1882~1957). 또 다른 한 명은 비치코머라는 필명의 칼럼니스트로 유명한 D. B. 윈덤 루이스(Dominic Bevan Wyndham Lewis, 1891~1969).






* 54




 

 대부분 남성 노동자가 하루 담배값으로 1실링 가까이 쓰는 나라에서 장미 나무에 6펜스를 쓰는 사치에 부르주아라는 이름을 붙여야 할까?

 


담배값 담뱃값






* 56, 각주 15




 

 오웰은 에즈라 파운드에 대한 의견을 독립된 에세이로 남겼다. [CW3612] ‘A Prize for Ezra Pound’.[5]



[5] ‘A Prize for Ezra Pound’가 우리말로 번역되었는지 확인해 봤는데, 찾지 못했다. 일단 번역되지 않은 글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혹시 번역된 글이 있으면 알려 주시라


오웰은 무솔리니를 노골적으로 찬양한 파운드를 심심찮게 비판했다. 1949년에 오웰은 <에즈라 파운드의 문학상 수상에 대한 의문(The Question of the Pound Award>라는 글도 썼다. 이 글은 오웰의 에세이 선집 영국식 살인의 쇠퇴(박경서 옮김, 은행나무, 2014)에 수록되었다. 문득 ‘A Prize for Ezra Pound’<에즈라 파운드의 문학상 수상에 대한 의문>과 비슷한 내용의 글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 130~131





 

 한 명은 읽어본 최악의 시라 단언했고

다른 비평자는또 다른 평론가는 헛소리!”라고 한마디 남겼다.

 


다른 비평자는또 다른 평론가는 또 다른 평론가(비평자)





* 171~172, 각주 125








박상은 역 야성의 부르짖음 / 하얀 엄니, 2013. [6]

 


[6] 출판사 이름(동서문화사)이 빠졌다.





* 287






 

 『고문실의 기쁨[7] 같은 책을 사려고 헌책방을 돌아다닌다면 

매우 불쾌한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다.



[7] 이 책의 번역본이 있으며 2018년에 나는 이 책의 서평을 썼다. 존 스웨인, 조석현 옮김, 고문실의 쾌락: 세계 고문 형벌의 발자취(자작나무, 2001년, 절판).





* 267, 325, 382, 401




 


세익스피어 셰익스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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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05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웰의 칼럼을 읽어보고싶어집니다.

cyrus 2025-08-10 17:42   좋아요 1 | URL
오웰은 관심사가 넓어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썼어요. 시시콜콜한 주제를 진지하게 쓰는데요, 그런 오웰의 글 쓰는 태도를 보면서 정말 본인 쓰고 싶은 대로 썼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오웰의 취향과 관심 분야가 다른 독자라면 지루할 수 있어요. ^^;;

stella.K 2025-08-05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오랫동안 카톨릭인 줄 알았는데 그것으로는 검색이 안 되서 나중에야
가톨릭으로 하니까 제대로 나오더군.
근데 이 판으로 <동물농장>이 있네. 왜 이렇게 두껍고 비싼가 했더니
이유가 있었어. 지금 당장을 살 수 없고 1, 2년 후에나 사 봐야겠어. ㅋ
문지혁 작가도 동물농장을 번역했네.
하여간 꼼꽁하기는...! ㅎㅎ

cyrus 2025-08-10 17:44   좋아요 1 | URL
최근에 오웰의 새로운 번역본들이 나오네요. 오웰의 아내에 관한 책도 나왔는데, 다음 달 독서 모임 선정 도서가 오웰의 에세이 선집이에요. 오웰에 대한 새로운 정보들을 미리 수집할 겸 오웰의 책들을 바지런히 읽어야겠어요. ^^

페크pek0501 2025-08-13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웰의 책은 세 권 , 읽은 것 같습니다.
제가 읽은 책이 언급되어 반갑네요.

cyrus 2025-08-15 12:15   좋아요 0 | URL
다음 달 독서 모임 선정 도서가 오웰의 에세이라서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오웰의 소설 <목사의 딸>, <엽란을 날려라>를 읽어보려고 해요. ^^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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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정치는 의외로 친분이 두텁다. 문학은 특정 정당 정치와 정치인에 힘을 실어주는 지지자다. 종이 안에서 문자로 정치를 언급해 온 문학은 종이 밖으로 나오면 정치적인 목소리가 된다자신이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이 부당하게 억압을 받으면 문학은 격렬하게 저항한다이럴 때 펜은 폭군이 쥔 칼보다 강한 무기로 변한다정치를 위해 펜을 꺾는 문학은 정치인이다. 정치에 지나치게 몰입한 문학은 독재자를 위한 나팔수.







조지 오웰(George Orwell)문학과 정치의 친밀한 관계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는 작가다. 종이 안에서 작가로 살아온 그는 정치적인 견해를 솔직하게 밝혔다. 하지만 오웰이 생각하는 정치는 종이 안에서만 갇혀 있지 않았다. 종이 밖으로 나온 오웰은 펜을 든 작가가 아니었다. 전체주의와 비민주적인 정치에 맞서 싸우기 위해 총을 든 저항군이었다.


오웰은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여 프랑코(Francisco Franco)의 파시스트 정권에 대항했다. 파시스트를 비판하는 유럽의 지식인들이 스페인에 모여 반()파시스트 저항군을 결성했다. 하지만 그들의 결속은 오래가지 못했다. 반파시스트 저항군 안에서도 파시즘이 꿈틀대고 있었다. 반파시스트 저항군에게 합류한 공산주의자들은 스탈린(Joseph Stalin)을 지지했다. 그들은 스탈린의 독재 정치를 외면했고, 이를 비판하는 사회주의자와 트로츠키(Leon Trotsky) 지지자들을 탄압했다. 사회주의자인 오웰은 저항군 안에서 일어난 갈등과 내전을 르포르타주 카탈로니아 찬가(Homage to Catalonia)에서 상세히 밝혔다. 스페인 내전은 오웰의 문학과 정치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사건이다.


오웰은 문학과 정치가 어울려 지내는 것을 인정했지만, 정치에 아부를 떠는 문학을 비판했다. 정치가 문학을 송두리째 집어삼키면 표현의 자유를 없애는 거대한 검열관이 된다오웰은 나는 왜 독립노동당에 가입했나라는 글에서 정치에 거리를 두려는 충동을 느낀 작가는 평화롭게 책을 쓰는 데 전념한다고 했다정치에 굴복한 문학을 경멸하는 작가는 문학과 정치를 철저히 분리하려고 애쓴다오웰은 펜에 좀 더 힘을 주면서 나는 왜 쓰는가에서 문학과 정치의 관계를 강조한다. 이 글에서 그는 예술(문학)과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라고 말한다. 오웰은 정치에 무관심한 문학도 경계한다. 흐리멍덩한 문학은 표현의 자유를 조용히 죽이는 정치를 찬양한다. 자신들의 펜을 옥죄는 상황임을 모르는 것도 문제지만, 알면서도 침묵하는 태도가 더 심각하다. 문학이 정치를 외면할수록 전체주의와 독재에 찔러야 할 펜 끝이 무뎌진다. 오웰의 정치적인 글쓰기는 불의를 감지하는 순간 시작된다.


오웰은 파시즘을 지지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한 작가들을 언급하면서 비판한다지금도 독자들에게 영향을 주는 작가들만 언급하자면 미국의 시인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타임머신투명 인간을 쓴 작가로 유명한 H. G. 웰스(Herbert George Wells), 탐정 브라운 신부(Father Brown)’ 시리즈를 쓴 영국의 추리소설 작가 G. K. 체스터턴(G. K. Chesterton) 등이 있다문학과 정치를 분리하려는 독자들은 정치색이 짙은 문학을 피한다. 이들은 파시즘과 제국주의를 찬양하거나 간접적으로 지지한 작가의 글을 거부한다. 글을 잘 쓴다고 해도 자신과 정치적 견해와 정반대인 작가는 반갑지 않다. 그러나 오웰은 비뚤어진 정치에 고개를 푹 숙인 작가들을 비판하면서도 그 작가들의 문학적 성취는 인정한다.


작가의 정치적 견해에 동의하는 반응과 작가의 문학을 즐기는 행위가 일치한다고 믿는 독자라면 정치 대 문학: 걸리버 여행기에 대하여(약칭 정치 대 문학’)를 읽어야 한다. 걸리버 여행기를 쓴 작가로 유명한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는 당대 영국 정치를 비판하는 팸플릿도 썼다. 어린이를 위한 동화로 알려진 걸리버 여행기는 사실 18세기 영국 사회와 정치를 풍자한 소설이다. 오웰은 스위프트의 정치적 견해에 동의하지 않지만, 여덟 살부터 처음 읽은 이후로 여섯 번 이상 읽었다는 걸리버 여행기를 극찬한다. 오웰은 문학을 감상할 수 있는 자유를 강조한다. 글에서 드러난 작가의 정치색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분노하게 되면 그 작가의 문학적 매력과 글의 장점을 즐기지 못한다(정치 대 문학, 358).


작가와 리바이어던(Writers and Leviathan)정치적인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에게 전하는 충고와 같은 글이다. 리바이어던은 성경에 나오는 괴물이다. 오웰은 문학을 침범하는 정치와 이데올로기를 이 괴물로 비유한다오웰은 작가의 정치적 활동을 독려하면서도 정당을 위해서 글을 쓰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정당이 공유하는 이데올로기를 찬양하는 글쓰기는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죽이는 일이다문학을 비굴하게 만드는 정치는 위험하다그러나 문학과 정치를 못 만나게 막을 수 없다


문학과 정치가 잘 협력하면 훌륭한 예술 작품이 나온다. 오웰은 자신의 대표작 동물농장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융합해 보려고 시도한 소설이라고 했다(나는 왜 쓰는가, 325). 오웰은 문학과 정치를 결합한 새로운 소설을 쓰고 있다고 밝히면서도, 이 작품은 실패작이 될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예측은 빗나갔다. 개인의 삶을 억압하고 파괴하는 전체주의의 위력을 암울하게 보여준 1984는 성공했다.













오웰의 에세이 선집 나는 왜 쓰는가15년 만에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했다구판[주1]에 수록된 에세이는 총 29. 이번 개정 증보판에는 국내에 처음 소개된 에세이 2이 추가되었다사진 도판의 배치가 달라졌다. 구판에 실린 도판들은 갓난아기부터 말년까지 오웰의 모습이 남아 있는 사진들과 글이 써진 시대적 배경을 보여주는 역사 자료와 같은 사진들이다구판의 사진 도판은 글 중간에 삽입되어 있었다. 개정 증보판에서는 사진 도판이 책 마지막에 나온다. 그런데 구판에 있었던 사진 도판 몇 개가 빠졌다.






[1] 나는 왜 쓰는가구판 

서평 <나는 왜 조지 오웰을 읽는가>

2010111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haesung/4234956







<cyrus가 만든 주석과 정오표>



* 134




 

 그의 책 역사 개괄[주2]에서 가장 큰 악한은 군인 모험가인 나폴레옹이다.

 


[주2] 인용한 문장은 웰스, 히틀러 그리고 세계 국가에 나온다. 역사 개괄 H. G. 웰스가 쓴 책이다. 원제는 <Outline of History>. 1920년에 출간된 세 권짜리 책이다. 지구의 기원부터 제1차 세계 대전까지의 세계사를 연대순으로 정리한 책이다. 1922년에 웰스는 방대한 <Outline of History>를 한 권으로 요약한 <A Short History of the World>를 썼다. 이 책의 국역본은 총 세 권이다. 


* 《웰스의 세계 문화사(지명관 옮김, 가람기획, 2003, 절판)


* 《H. G. 웰스의 세계사 산책: 세계 대문호와 함께 인류 문명의 위대한 역사를 걷다(김희주 · 전경훈 함께 옮김, 옥당, 2023)


* 《인류의 세계사: 생명의 탄생부터 세계 대전까지, 인류가 걸어온 모든 역사(육혜원 옮김, 이화북스, 2024).





* 205






정신분열증 환자 조현병 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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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5-07-26 1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책 오래 전에 사 놓고 안 읽고 있네. 그 사이 새판이 나왔구나.
그곳 대프리카는 어떠니? 여긴 넘넘 덥다. 그러다보니 의욕부진이다. 서프리카될 것 같다. 이미 된 거 같고. 휴~

cyrus 2025-07-30 06:47   좋아요 1 | URL
서울 더위는 대구랑 비슷하던데요. 차이점이라면 대구 더위는 습함이 느껴진다면, 서울 더위는 햇볕이 뜨겁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