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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서스 - 석기시대부터 AI까지, 정보 네트워크로 보는 인류 역사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24년 10월
평점 :

3점 ★★★ B

대구 독서 모임 <고라니 울고> ‘두꺼운 책 읽기’
일곱 번째 책
우리는 언제나 정보를 마신다. 정보는 우리 삶에 절대로 없으면 안 되는 제2의 공기다. 우리가 마신 정보는 정체성과 가치관을 만들 데 쓴다. 생각에 잠기면 머릿속에 켜켜이 쌓인 정보가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온갖 정보를 뭉쳐서 만든 자신의 의견을 타인에게 드러낸다. 말에 새겨진 정보는 타인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타인은 내가 호흡한 정보를 마신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떠돌아다니는 정보는 뿌리처럼 질기게 뻗어 나가는 네트워크를 발아하는 씨앗이다. 네트워크는 이 세상을 움직이게 만드는 뿌리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정보 호흡을 하고 있으며 세상의 뿌리는 쭉쭉 뻗어 나가고 있다. 거대한 네트워크 뿌리를 잡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정보를 소중하게 여긴다. 그들은 정보가 많을수록 세상을 더 좋은 쪽으로 발전시키는 힘이 더 커진다고 믿는다. 그러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는 네트워크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네트워크의 기능을 낙관적으로 보는 견해에 반대한다. 하라리는 반문한다. ‘슬기로운 인간(Homo sapiens)’이라고 자부하는 우리는 왜 잘 만들어 놓은 네트워크를 파괴할 정도로 중대한 잘못을 저지르고 살육을 일으키는가?
하라리의 책 《Nexus》는 협력과 유대감을 좋아할 줄만 알았던 ‘정보 네트워크’가 잘못된 방향으로 비뚤게 되어버린 역사적인 사례들을 보여준다. 정보 네트워크 낙관론자는 슬기롭지 못한 인류의 어두운 역사를 가볍게 바라본다. 그때 그 시절에서만 일어난, 특수하고도 예외적인 상황으로 여긴다. 그리고 올바른 정보를 공유하면 과거에 있었던 인류의 실수가 되풀이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라리는 정보 네트워크 낙관론을 ‘정보에 대한 순진한 관점’이라고 말한다. ‘순진한 정보관’은 정보가 많을수록 좋으며 정보 네트워크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연결(Nexus)하게 해주리라고 믿는다.
정보는 때론 독이 된다. 정보에 중독된 뇌는 자만심이 가득 차서 부풀어 오른다. 자기 수정 능력이 부족한 정보 중독자는 잘못된 정보를 의심 없이 마신다. 독성이 강한 정보가 모여서 만들어진 네트워크에 갇힌 사람들은 자신은 절대로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무오류성)고 착각한다. 무오류성은 타인의 다른 견해를 존중하지 않으며, 타인의 건전한 비판을 거부한다. 민주적인 대화와 연대를 부정하는 네트워크는 전체주의가 된다. 독일 나치즘과 소련의 스탈린주의는 잘못 비뚤어진 네트워크다. 하라리는 최악의 네트워크를 ‘망상에 기반한 네트워크’라고 표현한다.
네트워크는 정보들을 연결해서 거대한 ‘질서’를 만든다. 독재자는 자신에게 유리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정보를 독점하고, 국민의 정보 접근을 제한한다. 하라리는 반민주적인 독재 정치 네트워크가 AI와 손을 잡는 상황을 경계한다. 독재 정치와 전체주의는 지도자 한 사람의 권한에만 집중된 네트워크다. 네트워크를 장악한 지도자는 자신의 무오류성을 지지하는 AI를 좋아한다. 독재자를 위한 AI는 고의로 거짓 정보와 음모론을 퍼뜨리는 선동가요, 독재 정치를 비판하는 정적과 민주 시민을 짓밟는 정치 깡패다. AI에 복종하는 독재 정치 네트워크는 민주주의의 자정 기능이 떨어지며 건실한 토론이 불가능해진다. 20세기의 독재 정치가 인간 정치라면, 21세기의 독재 정치는 컴퓨터 정치다.
《Nexus》는 AI를 슬기롭게 이용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경각심을 높인다. AI를 맹신하는 대중과 권력자가 많아지면 정보 네트워크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검은 손’이 된다. 하라리는 본인이 직접 여러 분야를 탐사해서 발굴한 정보와 전문가들의 견해를 적절하게 엮어서 글을 쓴다. 그의 출세작 《사피엔스》(조현욱 옮김, 김영사, 2023년)를 이미 읽은 독자 대다수는 하라리의 폭넓은 지식 스펙트럼에 감탄하고 매료된다. 그러나 인기도서를 펴낸 전문가의 책은 ‘무오류성의 책’이 아니다. 한 권의 책 속에도 저자의 편견과 저자가 잘못 알고 있는 정보가 들어 있다. 하라리가 《Nexus》를 쓰기 위해 발굴하고 인용한 정보 중에 사실과 다른 것이 있다. 책 밖에 있는 다른 관점을 비추면서 책을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 305쪽
《성경》은 스스로 편집하거나 해석할 수 없었고, 이 때문에 유대교와 기독교 같은 종교들에서 실제 권력은 이른바 오류 없는 책이 아니라 유대교 랍비와 가톨릭교회 같은 인간의 기관이 가졌다. 반면 AI는 새로운 경전을 작성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편집하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고 있다. 여기에 인간의 개입은 전혀 필요 없다.
과거의 《성경》은 오랫동안 ‘무오류성의 책’으로 여겨졌다. 백인 남성 교황, 목사, 신부, 신학자들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고(“무오류의 책을 신뢰하라.”), 《성경》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무오류성의 진리’라고 주장했다(“책을 해석하는 인간을 신뢰하라.”). 반면 종교인이 아닌 평범한 신자는 오류를 저지르는 존재이므로 《성경》을 해석할 권한이 없다. 《성경》을 독차지하듯이 거머쥔 남성들은 교회 안팎에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신의 대리인’으로 자처한 교황은 전통에 반하는 기독교 분파를 이단으로 규정했다. 기득권이 된 종교인들은 《성경》을 자유롭게 해석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개혁을 추구하는 신학과 종교인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전통에 반기를 들었다. 16세기에 시작된 여성주의 신학은 교회 안의 유리 천장을 깨뜨렸다.[주1] 퀴어 신학은 성 소수자 인권 보호에 앞장선다. 《성경》 속 문자에 근거해서 성 소수자 차별을 정당화하는 해석을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한다.[주2]
비종교인은 종교를 피상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성경》의 전통적인 해석에 도전하는 비판 신학과 해방 신학이 낯설다. AI가 나오기 한참 전에 이미 진보적인 종교인과 신학자들은 《성경》을 해석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하라리는 비종교인을 위해 종교의 기능과 《성경》 편찬의 역사를 잘 요약했다. 하지만 한 권의 책에 압축된 종교는 전통을 지향하려는 과거의 모습에 가까운 반쪽 얼굴이다. 종교에 대한 하라리의 주장은 시대적 요청에 맞게 변화하는 종교의 새 얼굴을 보여주지 못한다.
* 456쪽
보수는 특정 종교나 이념에 헌신하지 않는다. 그게 무엇이든 이미 있는 것, 지금까지 대체로 합리적으로 작동해 온 것을 보존하는 데 헌신한다. [중략] 1980년대 미국에서 보수는 미국의 민주주의 전통을 지지하고 공산주의와 전체주의에 반대한다는 뜻이다.
이 책에서 하라리는 보수(주의)가 ‘특정 종교와 이념에 헌신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한다. 보수적인 기독교와 손을 잡으면서 진보적 정치 운동을 공산주의로 몰아세우고, 성 소수자 혐오를 조장하는 극단적인 보수의 행보를 생각한다면, 하라리가 보수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리숙하다. 그는 보수 우파의 한쪽 얼굴만 보고 있다. 1980년대 미국의 우파와 보수주의는 신자유주의 체제가 반영된 정치를 본격적으로 실행한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정부 시절(1981~1989년)과 겹친다. 레이건의 신자유주의는 기업 중심의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이념’이자, 사회주의와 노조 운동에 대항하는 ‘정치적 무기’였다. 레이건은 남부 지역에 사는 백인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을 위한 공약들(성평등 헌법 수정안 반대 등)을 내세운 덕분에 1984년 재선에 성공했다.[주3] 공화당을 지지한 북미 기독교 우파의 강령은 ‘신앙, 가족, 자유’였다.[주4] 1980년대 미국의 보수 우파는 민주주의가 아닌 신자유주의를 지지했으며 도덕과 가족을 중시하는 기독교에 헌신했다.

[주1] 테레사 포르카데스 이 빌라, 김항섭 옮김, 《여성주의 신학의 선구자들》 (분도출판사, 2018년).
[주2] 월터 윙크 엮음, 한성수 옮김, 《동성애와 기독교 신앙: 교회들을 위한 양심의 질문들》 (무지개신학연구소, 2018년), 패트릭 S. 쳉, 유연희 옮김, 《죄로부터 놀라운 은혜로: 퀴어 그리스도를 찾아서》 (무지개신학연구소, 2020년).
[주3] 스티븐 레비츠키 · 대니얼 지블랫 함께 씀, 박세연 옮김,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 (어크로스, 2024년), 147~148쪽.
[주4] 피에르 다르도 · 크리스티앙 라발 외 함께 씀, 정기헌 옮김, 《내전, 대중 혐오, 법치: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원더박스, 2024년), 20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