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펴보기 전에 책 얼굴(앞표지)부터 살펴본다. 내가 선호하는 책 얼굴은 화가의 그림이 있는 것이다. 특히 좋아하는 화가의 그림으로 장식된 책 얼굴을 만나면 반갑다. 최근에 완독한 《탄소라는 세계》의 책 얼굴은 앙리 루소(Henri Rousseau)의 그림이다.
* 폴 호컨, 이한음 옮김 《탄소라는 세계》 (웅진지식하우스, 2025년)
* 코르넬리아 슈타베노프, 이영주 옮김 《앙리 루소》 (마로니에북스, 2006년)
* [절판] 정금희 · 조명식 · 쥬세페 고아 편집 《앙리 루소》 (재원, 2005년)
책 앞날개에 적힌 루소의 그림 제목은 「Jungle with Setting Sun」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해가 지는 정글’이다.

루소는 이국적인 풍경을 주로 그렸다. 그러나 루소는 열대우림이 많은 아프리카에 가본 적이 없다. 정글에 가지 않아도 정글을 그리는 방법이 있다. 열대 식물들이 자라는 식물원에 가면 된다. 루소는 식물원에 드나들면서 열대 식물들의 생김새를 눈여겨봤다. 하지만 그는 꽃과 나무를 똑같이 그리려고 하지 않았다. 루소는 정식으로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아마추어 화가였다. 그는 원근법을 무시하거나 상상력을 덧칠해서 풍경화를 그렸다.

그림의 실체를 잘 모르는 독자는 루소가 평화로운 정글을 상상해서 그린 풍경화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책 얼굴의 절반을 가린 띠지를 벗기면 참담한 형상이 나타난다. 수풀 사이로 야생 동물에 잡아먹히는 아프리카 원주민이 보인다. 이 그림의 다른 제목은 「Black Man Attacked by a Jaguar」다. 야생 동물의 정체는 재규어다. 상상화에 묘사된 세상은 환상이고, 정확하지 않다. 재규어의 습격에 당한 아프리카 흑인은 ‘모순’이다. 재규어는 아프리카가 아닌 중남미에 서식한다.
루소의 그림들에서 나타나는 모순적 이미지는 예술적 상상력이 빚어낸 산물이다. 루소의 그림을 감상하려면 사실을 바라보려는 눈을 감아야 한다. 그러면 루소가 그린 환상의 세계를 들어갈 수 있다.
* 찰스 로버트 다윈, 장대익 옮김, 최재천 감수 《종의 기원》 (사이언스북스, 2019년)
《탄소라는 세계》를 다 읽은 후에 다시 책 얼굴을 살펴봤다. 책 얼굴과 책의 속살(책의 핵심 내용)이 다르다.
책 얼굴이 된 루소의 그림은 ‘약육강식’의 냉혹한 정글을 연상시킨다. 강자는 약자를 지배하고 멸망시킨다. 지금까지 살아남는 존재는 강자다. 정글에 오직 힘의 논리만이 통한다. 《탄소라는 세계》는 정글이 생각보다 냉혹하지 않으며 자연에 살벌한 경쟁만 있는 건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 책이 독자에게 보여주고픈 속살은 협력하고 공생하는 자연 생태계다.
* [개정판] 최재천 《다윈 지능: 최재천의 진화학 에세이》 (사이언스북스, 2022년)
* 브라이언 헤어 · 버네사 우즈 함께 씀, 이민아 옮김, 박한선 감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친화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인류의 진화에 관하여》 (디플롯[주1], 2021년)
* 다니엘 S. 밀로, 이충호 옮김 《굿 이너프: 평범한 종을 위한 진화론》 (다산사이언스, 2021년)
* 프란츠 부케티츠, 이덕임 옮김 《겁쟁이가 세상을 지배한다: 다윈의 자연선택론과 적자생존의 비밀》 (이가서, 2011년)
지금도 여전히 대중은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자연관을 주장한 생물학자로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을 지목한다. 다윈은 억울하다. 그는 ‘약육강식’이라는 단어를 자신의 책 《종의 기원》에 쓴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을 강조하는 비정한 논리로 사용됐다. 하지만 다윈의 의도와 다르게 진화론은 경쟁을 부추기고 사회적 약자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선전 도구로 변질되었다.
자연에서 가장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적자는 완벽하지 않다. 그리고 생각보다 강하지 않다. 진화는 생명체가 완벽한 상태로 거듭나는 과정이 아니다. 약점이 있는 생명체가 끊임없이 변하는 자연에 적응하기 위한 전략이다.
* 신현철 《다윈을 오해한 대한민국》 (소명출판, 2025년)
* [수정 증보판] 찰스 로버트 다윈, 신현철 옮김 《종의 기원 톺아보기》 (소명출판, 2024년)
우리나라에 번역된 ‘진화’와 ‘경쟁’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한자를 수입한 것이다. 두 개의 단어는 일본의 지배를 받기 전인 대한제국 시절에 알려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근대 일본에서 번역된 ‘진화’와 ‘경쟁’은 명확한 정의가 없는 불완전한 단어였다. 서양 사상을 받아들인 일본 지식인들은 ‘진화’와 ‘경쟁’을 다윈의 생각과 다르게 이해했다. 다윈이 생각한 자연관을 제대로 이해한 일본 지식인은 남을 이기기 위한 경쟁이 아닌 모두가 이익을 누릴 수 있는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약육강식’을 내세우는 진화론이 우세했다. 유럽과 자웅을 겨룰 만한 강대국이 된 일본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전역을 지배한다. 이 시기에 ‘진화’와 ‘경쟁’은 우리가 아는 ‘약육강식’과 동일한 의미의 단어로 자리 잡게 된다.
일제강점기의 조선 지식인들은 굴욕적인 약소국 신세에서 벗어나기 위한 이론적 대안으로 ‘약육강식’을 주장했다. 처음에 그들은 부국강병을 주장했지만, 독립에 대한 열망이 식어버린 이후부터 강자 앞에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였다. 고개 숙인 지식인들은 아시아의 강대국 일본에 순응하면서 발전하는 것이 이롭다고 주장하는 친일파로 변절했다.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2025년 9월의 세계 문학]
* 조지 오웰, 이한중 옮김 《나는 왜 쓰는가》 (한겨레출판, 2025년, 개정 증보판)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을 위한, 그리고 어느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 (아카넷[주1], 2025년)
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정치와 영어』라는 글에서 ‘정치적 언어’를 이렇게 정의한다.
정치적 언어는 거짓을 사실처럼 만들고 살인을 존중할 만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순전한 헛소리를 그럴듯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고안된다.
(조지 오웰, 『정치와 영어』 중에서, 《나는 왜 쓰는가》 수록, 291쪽)
‘진화’는 다양한 생명이 한데 어우러진 자연의 참모습이 담긴 과학 용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의 생각들이 묻혀서 지저분한 정치적 용어가 되고 말았다. 다윈의 책을 한 번도 읽지 않은 사람은 진화를 거쳐야 인간이 진보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다윈은 진화가 진보의 동일한 단어로 쓰이는 것에 반대했다. 진화론을 잘 안다고 주장하는 우파는 경쟁에서 살아남은 개인을 존중한다. 얼치기 진화론자는 진화의 정의가 ‘강한 자가 되기 위한 과정’이라고 거짓말하고, ‘남을 쓰러뜨려 이기는 경쟁’을 정당화한다. 정치적 언어가 된 ‘진화’는 위험하다.
최근에 새로 나온 니체(Nietzsche)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번역본은 기존의 번역서들보다 번역자의 주석이 많은 편이다. 이번 번역본의 역자는 니체 철학 연구의 권위자 박찬국 교수다. 그런데 본문이 시작되는 부분에 ‘위험한 주석’이 있다. 문제의 주석은 다윈의 자연관과 니체의 자연관을 비교한 내용이다.

자연에는 불필요할 정도로 많은 종과 다채로운 변화와 풍요로움이 존재한다. 이 점에서 니체의 자연관은 자연을 부족한 자원을 둘러싸고 생명체들이 투쟁하는 결핍의 장소로 보는 다윈식의 진화론적인 자연관과는 다르다.
니체에게서 자연은 마치 넘쳐흐르는 자신의 힘을 분출하지 못하여 고통스러워하는 생명체와 유사하다. 차라투스트라에게는 자신의 지혜를 베푸는 일이 ‘행복’이다.
(주석 5, 14쪽)
박 교수가 언급한 다윈의 진화론적 자연관은 ‘정치로 오염된’ 진화의 잘못된 의미가 반영되어 있다. 다윈은 지구상의 수많은 생명체가 생물 다양성에 의해 건강한 상호 관계를 유지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유기체 간의 상호 관계, 그리고 각 유기체와 물리적 환경 간의 상호 관계가 얼마나 복잡하면서도 딱 들어맞는가도 생각해 보라.
(찰스 다윈, 장대익 옮김, 《종의 기원》 「4장 자연선택」 중에서, 141쪽)
다윈의 진화론을 편협하게 설명한 ‘위험한 주석’은 사소하지 않다. 주석의 심각성에 둔감한 독자들이 있다면 거꾸로 생각해 보자. 니체의 철학이 독일 나치즘(Nazism)에 영향을 준 사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보기만 할 텐가. 니체는 반유대주의를 비판했지만, 그가 죽은 후에 니체 철학의 핵심 ‘위버멘쉬(Übermensch)’는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Hitler)가 좋아하는 정치적 용어가 되었다.
다윈과 니체는 억울하다. 두 사람은 정치에 물들인 언어 ‘진화’와 ‘위버멘쉬’를 말하지 않았다. 그들을 지지하는 추종자들은 이론과 사상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정치색’을 입혔다.

<다윈과 니체를 좋아하는 cyrus가 만든 주석>
[주1] 디플롯 출판사는 학술서와 고전을 주로 펴낸 아카넷 출판사 소속의 임프린트 출판사(독립 브랜드)다.
* 《다윈을 오해한 대한민국》, 104쪽

다윈이 쓴 또 다른 책 Desecnt of Man[주2]을 ‘인간의 친연관계’가 아니라 ‘인간의 기원’이나 ‘인간의 유래’ 또는 ‘인간의 계승’으로 번역한다면, 다윈이 생각하는 바가 조금은 오해될 수 있을 것이다.
[주2] Desecnt → Descent. ‘인간의 유래’로 알려진 다윈의 책 제목의 영어 철자가 틀렸다. 중간에 있는 e와 c가 바뀌었다.
* 《다윈을 오해한 대한민국》, 214쪽

다윈이 “모든 생명체 사이에서, 그리고 생명체와 물리적인 살아가는[주3] 조건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상호 연관성이 얼마나 무한히 복잡하면서도 서로에게 잘 부합하는지도 유념”해야 한다고 설명했듯이, 생물과 환경과의 적절한 관계가 생물다양성의 지속성을 담보할 것이다.
[주3] 문장이 어색하다. 저자는 자신이 직접 번역하고 주석을 단 《종의 기원 톺아보기》에 있는 문장을 인용했다. 그런데 《종의 기원 톺아보기》 구판(2019년 출간) 118쪽에 있는 비문(非文)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옮겨 적었다. 작년에 나온 수정 증보판에도 비문이 남아 있다. 비문이 나오는 쪽수는 구판과 똑같이 118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