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큰 사람들을 위한 수학책 - 26가지 수학 원리로 가볍게 익히는 수 감각
에디 우 지음, 안혜림 옮김 / 반반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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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협찬받고 쓴 서평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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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점  ★★★☆  B+






잘 만든 음악은 인류의 역사에 영원히 남을 발자국이다우리는 지금도 음악인들이 남긴 발자국을 듣는다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달 표면에 발자국을 남긴 우주인이다그는 달을 걷는 순간을 위대한 도약(giant leap)’이라고 표현했다








피부가 하얀 암스트롱이 깜깜한 우주로 올라가기 2년 전에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은 음악으로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발자국을 남겼다. 1967년에 루이 암스트롱은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순간들을 표현한 노래를 불렀다입이 큰(Satchmo) 암스트롱의 목소리는 뜨겁다그의 노래에 사람들의 마음을 달아오르게 만드는 열기가 있다시간이 지나도 노래를 달군 열기가 식지 않았고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명곡이 되었다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뜨거운 발자국이 된 이 노래의 제목은 <What a Wonderful World>.


만약에 피타고라스(Pythagoras)가 루이 암스트롱처럼 재능이 뛰어난 음악인이었으면수학으로 이루어진 세상이 얼마나 멋진 곳인지 감탄하는 노래를 부르고 다녔을 것이다피타고라스는 아름다운 모든 것에 수학이 있다고 믿었다피타고라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숫자를 특별하게 여겼다지금도 여전히 수학으로 이루어진 세상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수학자들이 있다호주의 수학 교사 에디 우(Eddie Woo)는 수학을 가르치는 유튜버다수학 강의 콘텐츠를 올리는 에디 유의 유튜브 채널 이름은 우튜브(Wootube)’그는 수학으로 가득한 세상이 멋진 이유를 친절하게 알려주는 책을 썼다책 제목은 <Woo’s Wonderful World of Maths>.


호주에서 태어난 수학책은 새해 첫 주에 우리나라로 왔는데, 제목이 달라졌다다 큰 사람들을 위한 수학책: 26가지 수학 원리로 가볍게 익히는 수 감각숫자와 수학 문제를 보면 질색하는 어른들을 위한 수학책이다저자는 수학 공부에 재미를 느끼지 못한 자신의 학창 시절을 술회한다그는 열아홉 살에 수학 교사가 되기로 결심했다저자는 어떻게 수학과 사이좋게 지내게 되었을까?


수학의 재미에 푹 빠진 저자는 호기롭게 수학을 포기한 사람들을 향해 말한다우리 모두는 수학자다!” 우리가 생각하는 수학자는 문제를 푸는 과정을 찾는 사람이다그런데 저자는 수학자들의 진짜 관심사가 패턴(pattern)이라고 말한다패턴은 늘 똑같이 유지된다그래서 패턴을 바라보면 안정감이 느껴진다언뜻 보면 혼잡해 보이는 자연 속에 안정적인 패턴이 숨어 있다우리는 무지개를 만나면 알록달록한 색에 주목한다그렇지만 자연 속에 숨은 패턴을 즐겨 찾는 사람은 무지개가 왜 곡선으로 뜨는지 알고 싶어 한다구름 속에 있는 수많은 물방울이 무지개를 만든다물방울의 실제 모습은 둥그런 모양이다빛이 둥그런 물방울 속으로 들어가면 굴절이 일어나고물방울을 통과한 빛은 여러 색으로 분산된다패턴을 좋아하는 수학자는 둥글둥글한 패턴의 물방울이 무지개를 만든다라고 설명한다들쭉날쭉한 해안선이나 눈송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계속 되풀이되는 반복적인 패턴을 확인할 수 있다이러한 패턴을 프랙털(fractal)이라고 한다.


인간의 뇌는 규칙적인 형태의 패턴을 선호한다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뇌는 패턴을 탐지하는 기계. ‘수학적 본능에 충실한 사람은 패턴 찾는 일을 좋아하거나 패턴을 바라보면서 아름다움을 느낀다수학은 크게 응용수학과 순수수학으로 나뉜다응용수학은 실생활에 적용되는 수학이다금전적인 손해를 최대한 피하면서 돈을 모으고 싶으면 응용수학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 응용수학이 문제를 끝까지 해결하려는 인내심이 필요한 수학 분야라면 순수수학은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수학이다순수수학은 사람들에게 문제를 풀어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순수수학은 멋쟁이다. 수학은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패턴을 연구하는 수학자는 순수수학자에 가깝다그런데 똑똑한 수학자의 뇌도 종종 실수하며 오류를 일으킨다수학적 패턴의 아름다움에 너무 집착하면 증명하는 일을 소홀히 한다때로는 아름다운 수학적 진리에 조금이라도 흠집을 내고 싶지 않아서 사소한 오차를 무시하기도 한다.


저자는 자연 속에 숨어 있는 패턴 중 가장 유명한 황금비를 소개한다황금비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아름다움의 기준이다황금비의 근삿값 1.618이다황금비를 설명할 때 자주 나오는 예시가 나선 형태의 앵무조개황금비를 연구한 사람들은 고대 그리스 예술을 대표하는 파르테논 신전이 황금비로 만들어진 건축물이라고 주장한다수학 문제를 풀기 싫어하는 사람도 세상의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황금비의 신비한 효과를 믿는다.








테디 우 선생은 황금비가 적용된 파르테논 신전을 자신의 책에 언급하지 않았다테디 우의 책을 추천한 키스 데블린(Keith J. Devlin)은 황금비가 수학적 진실로 잘못 알려진 세태를 비판한 수학자데블린은 2006년에 발표한 <The Math Instinct>라는 책에 파르테논 신전이 황금비로 세워졌다는 증거가 없으며 실제로 건물을 측정하면 황금비의 근삿값과 다른 수치가 나온다고 했다







2014년에 방영된 ‘EBS 다큐 프라임’의 <황금 비율의 비밀>(2부작)에 키스 데블린이 출연했는데 여기서도 황금비에 대한 잘못된 통념(고대 그리스인들은 황금비를 알고 있었다.’)을 지적했다.


테디 우의 설명에 따르면 황금비는 자연이 만들어 낸 모양인 동시에 미를 추구하는 인간이 만들어 낸 모양이다(87). 하지만 대부분 수학자는 증명을 통해 황금비가 이 아니라고 주장해왔다자연은 황금비를 완벽하게 만들 수 없다황금비는 아름다움을 완벽하게 드러내는 수치가 아니다숫자로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다고 믿는 인간의 착각이 만들어 낸 수치다.


과장된 황금비의 실체를 숙지한 상태에서 이 책의 19장을 읽으면 모순을 만나게 된다. 19장의 주제는 수학적 증명이다. 테디 우는 수학적 진실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234)수학적 진실로 알려진 황금비가 거짓으로 증명된 이상수학적 진실이 변하지 않는다는 저자의 믿음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다. 





※ cyrus의 주석






[1] 다 큰 사람들을 위한 수학책은 반반북스 출판사가 펴낸 첫 번째 책이다출판사 이름인 반반의 의미는 때로는 흐름을 거스르고(보편을 거스를(줄 아는 정신을 뜻한다.






* 41

 

 유클리드는 고대 그리스 황금기에 육체노동을 멀리하고 여가를 즐기는 꿈같은 상류층의 삶을 살았지만유희에 빠지기보다 철학적 사유에 골몰하며 당대 그리스인들의 핵심적인 믿음 중 하나를 이론으로 체계화하는 업적을 남겼다그 믿음은 바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신들의 세계에 존재하는 완벽하고 이상적인 것들을 베낀 것에 불과하다는 믿음[2]이었다고대 그리스인들의 눈에 실제 세계의 나무는 이상적인 나무를 변형시킨 복제품이었고인간이 만든 건축물은 신들이 사는 성스러운 올림포스산의 신전들을 어설프게 따라 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2] 그리스인들의 자연관은 플라톤(Plato) 철학의 핵심 개념인 이데아(idea)’와 관련이 있다이데아는 현실 저 너머에 있는 완벽한 원형(原形)이다현실에 있는 만물은 이데아를 모방한 것이다플라톤은 선()의 이데아를 아름답다고 생각했다티마이오스(김유석 옮김아카넷, 2019)는 선의 이데아를 모방한 우주를 다룬 대화 편이다이 책에 언급된 데미우르고스(dēmiurgos)는 우주를 만든 신적인 존재이다.






* 251

 

 수학에서 다루는 개념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본질적인 요소 중 하나다수학 개념들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적으로 전 세계 곳곳에서 여러 인물에 의해 거듭 발견돼 온 것도 그 때문이다그중에서도 미적분의 발명은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17세기에는 미적분의 최초 발명자가 누구인지를 두고 수학자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와 아이작 뉴턴이 격론을 벌이기도 했다미적분의 창시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오늘날까지도 의견이 분분하다.[주3]



[주3] 수학은 서구에서 시작된 학문이 아니다수학은 전 세계 곳곳에 있는 학문이었으며 독자적인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미적분의 역사는 유럽이 아닌 고대 인도에서 시작되었다미적분의 최초 발견자에 대한 논쟁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면 다시 쓰는 수학의 역사(케이트 기타가와 · 티머시 레벨 함께 씀이충호 옮김서해문집, 2024)를 참고하면 된다유럽 백인 남성 중심 수학의 역사에 오랫동안 가려진 비유럽 국가의 수학과 여성 수학자들의 업적을 주목한 책이다.





* 312





 균형 이루지 못하면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멸종이 불가피하므로 자연은 반드시 평형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균형 → 균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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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라이프 - 20세기 주거건축의 사상을 찾아서
이냐키 아발로스 지음, 엄지영 옮김 / 이유출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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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철학자를 건축가로 비유하면, 철학자가 쓴 책은 철학으로 만든 집의 설계도다. 철학자는 사람들을 철학의 집으로 초대한다. 철학의 집은 편안한 보금자리가 아니다. 철학의 집은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들을 위한 거푸집이다. 마음에 드는 철학 거푸집을 발견한 사람이 그 속에 들어가면 철학자가 된다. 철학 거푸집에 거주하는 철학자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또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스스로 생각한다.








니체(Nietzsche)과거에 만들어진 철학의 집들을 망치로 부수는 철학자. 그의 책 아침놀철거 서약서. 니체는 플라톤(Plato) 이후에 활동한 철학적 건축가들을 비판한다. 철학적 건축가들이 철학의 집을 지으면서 가장 많이 사용한 재료는 도덕이다. 도덕으로 만든 집에 오래 거주한 사람은 도덕에 복종한다. 도덕을 너무 믿고 따르면 개인의 자유는 사라지며 욕망은 억눌린다도덕은 삶의 주인이 아니다. 니체는 도덕 철학의 집들을 철거한 다음에 도덕이 무너진 그 자리를 쟁기로 갈아엎는다. 니체는 자신만의 철학의 집을 세우기 전에 땅속에 구멍을 뚫는작업을 시도한다. 그는 자신의 철학을 도덕에 대한 신념을 파내는 작업이라고 했다. 도덕의 집이 무너져도 흩어진 잔해들은 또다시 도덕의 집을 만들기 위한 재료가 된다.


니체는 철학적 건축가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니체가 열심히 쟁기질한 땅에 새로운 철학적 건축가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도덕이 주인인 철학의 집이 아닌 자유로운 개인이 주인이 되는 철학의 집을 만들었다굿 라이프: 20세기 주거 건축의 사상을 찾아서니체 이후에 활동한 20세기 철학적 건축가들을 소개한 책이다20세기의 철학적 건축가들은 다수가 선호하는 좋은 집의 조건을 거부한다. 좋은 집4인 이상 가족이 살 수 있어야 하며, 일상생활에 불편한 점이 없도록 만들어진 공간이다. 그러나 20세기 철학적 건축가들이 설계한 집은 오로지 건축가를 위한 공간이다. 주로 많이 사용된 재료는 건축가의 상상력이다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영향을 받은 건축가들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로서의 개인의 정의를 의심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건물은 형태가 없으며 가족도, ‘라는 개인도 살지 않는다


책은 총 일곱 군데 철학의 집을 소개한다. 독자들이 제일 먼저 방문하는 집은 차라투스트라의 집이다. 차라투스트라(Zarathustra)는 니체 철학의 핵심 개념인 초인(Übermensch)을 상징하는 존재. 독일의 건축가 미스 반 데 로어(Mies van der Rohe)8년 동안 중정이 있는 집의 설계도를 만들었다. 중정이 있는 집의 주인은 도덕을 거부하고, 자아를 변화하는 일에 전념한 차라투스트라다니체 철학을 좋아하는 거주자라면 이 집을 거푸집으로 삼을 수 있다.


니체의 망치에 의해서 도덕 철학의 집이 무너진 이후에 철학을 잊은 사람들은 과학과 공업 기술로 만들어진 집을 선호했다. 과학 지식이 적용된 공법, 실증주의적 건축 방식이 유행하면서 저비용으로 많은 양의 공장과 아파트가 들어섰다. 실증주의적 건축술의 목표는 대량 건설, 표준화된 설계실증주의가 가져다준 혜택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과거보다 풍족한 삶을 누리게 되었지만, 삶의 여유를 잃어버렸다니체는 실증주의를 비판한 철학자다. 미스 반 데 로어가 구상한 차라투스트라의 집굿 라이프에 첫 번째로 소개된 반실증주의적 건축물이다.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모리스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 Ponty) 실증주의에 반대하는 철학인 현상학을 만들었다. 현상학은 개인의 경험을 분석하는 실증주의와 다르게 개인의 경험을 그대로 묘사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현상학자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은 객관성이 아닌 주관성이다그래서 현상학자들은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사물을 한데 모아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콜라주(collage) 또는 브리콜뢰르(bricoleur)을 선호한다. 어린이는 자신만의 시선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 줄 안다. 따라서 주관성이 강한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현상학적 집에 입주할 수 있.


굿 라이프실제로 만들어진 집도 나온다팩토리(Factory)는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작업실이다. 팩토리는 무의식과 욕망을 탐구한 프로이트(Sigmund Freud)와 계급 없는 세상을 꿈꾼 마르크스(Karl Marx)가 혼합된 건축물이다. 이곳은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개성과 욕망이 억눌린 채 살아온 예술가와 연예인들은 팩토리에 자주 드나들었다. 팩토리는 서로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는 축제의 장이다.


집을 짓는 일 또한 철학을 하는 일과 같다. 집과 철학은 좋은 삶을 실현하기 위한 뼈대다. 뼈대가 튼튼해야 외부의 유혹과 세파에 쉽게 흔들리지 않으면서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잘 만든 집에 오래 살다 보면 한계와 문제점이 눈에 보인다. 철학적 건축물도 마찬가지다. 굿 라이프는 책에 소개된 철학적 건축물들에 입주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과대광고를 하지 않는다. 책은 철학적 건축물들의 한계도 밝힌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그 집에 인간이 산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철학자의 언어와 사유가 스며든 집을 본격적으로 탐구한 철학자다. 하이데거가 생각한 실존주의자의 집그 집에 사는 사람의 내면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가부장적 권위를 중시하는 실존주의자가 집주인이 되면 그 집 안에 딱딱한 수직적 문화가 흐른다현상학적인 집에 설계자와 거주자의 취향이 반영된 장식품이 많다. 겉만 화려한 현상학적 집은 실용성을 중시하는 거주자들에게 추천할 수 없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집은 건축가의 실험 정신이 많이 반영된 가상 공간이다. 현실 도피에 가까운 과도한 실험 정신은 비현실적인 집을 양산할 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마저 파괴한다.


굿 라이프집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시선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좋은 삶의 조건과, 그렇게 살기 위해 우리가 필요한 좋은 집의 조건 또한 다양하다. 철학은 집을 만들 때 쓸 수 있는 좋은 재료. 그렇지만 현실을 외면하고, 교조주의적 성향이 강한 철학으로 지어진 집은 부실하다. 불량한 사상(思想)이 가득한 집은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이 없는 사상누각(沙上樓閣)이다.






※ cyrus의 정오표




* 65




 

 실존적인 집이 가부장적 권위의 체계와 연결되며, 자기 중심화되고 초월적이며 수직적인 공간 조직을 갖는다는 사실을 명학하게 보여준다.



명학하게 명확하게






* 93쪽 각주 





프레더릭 윈즐로 테일러(1856~1925) [주]



[] 테일러의 사망 연도는 1915이다.





* 133쪽 각주






조르지오 데 기리코 조르지오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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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이 잃어버린 여성 - 신, 물리학, 젠더 전쟁
마거릿 워트하임 지음, 최애리 옮김 / 신사책방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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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점  ★★★☆  B+











코스모스(cosmos)는 여름 바람이 식어가는 가을에 피는 꽃이다. 코스모스는 원래 질서 또는 조화를 뜻하는 그리스어다. 코스모스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꽃보다 과학을 떠올린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코스모스는 질서정연한 우주를 표현할 때 쓰는 단어가 되었다.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 덕분에 그리스가 원산지인 코스모스는 시들지 않았다(꽃 이름은 그리스에서 처음 만들어졌고, 꽃의 원산지는 멕시코다). 대중이 과학과 친해지길 바란 칼 세이건은 1980년에 만든 다큐멘터리 <코스모스>에 출연했다. 브라운관을 채운 다큐멘터리 <코스모스>종이 위에 피어나 한송이의 책이 되었다. 세이건은 살아있는 모든 존재가 코스모스의 자녀라고 말했다.[주1] 우리는 우주의 별에서 왔다. 유기물이 들어 있는 별 먼지들이 모여서 ‘창백한 푸른 코스모스(pale blue cosmos), 지구가 피어났다.[주2]


과학자들은 코스모스 우주론’을 매우 좋아한다. 코스모스 우주는 완벽할 정도로 질서정연하게 움직인다. 한 치의 오차가 없는 우주는 아름다운 예술과 같다. 코스모스 우주의 아름다움을 처음으로 눈여겨 본 과학자가 피타고라스(Pythagoras). 피타고라스는 모든 덕은 조화(harmonia)’이며 좋은 것도, (god)조화라고 했다.[주3] 우주에 질서를 부여한 존재는 조화로운 신이다. 피타고라스는 수()를 만물의 근원으로 이해했다. 피타고라스는 코스모스 우주가 완벽한 비율로 만들어진 음악이라고 상상했다. 피타고라스에게 수와 수학은 신이 만들어낸 우주를 듣기 위한 보청기였다.


세이건은 중세가 시작되면서부터 서양 과학이 혼수 상태에 빠졌다고 주장한다. 그는 1,000년이나 지속된 중세를 암흑시대라고 표현한다. 이 기간에 종교는 과학을 이단 학문으로 규정하여 탄압하고 학살했다. 교황과 성직자들에 의해 쫓겨난 과학은 학문에 관심이 많은 이슬람 국가로 도피했다. 무슬림 과학자들은 이방의 나라그리스에서 온 과학을 보듬어주었다세이건뿐만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은(특히 종교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 ‘로마가톨릭이 장악해 버린중세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종교가 과학을 박해했다고 믿는다. 종교의 폐해를 고발할 때 가장 많이 거론되는 과학자는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로마 교황청은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돈다고 확신한 갈릴레이를 이단 심문소로 소환했다. 처형과 종신형을 겨우 피한 갈릴레이는 가택 연금 처분을 받았다종교를 비판한 18세기 계몽주의자들은 천 년 동안 죽어 있던 코스모스가 르네상스 시대에 다시 피었다고 주장했다. 계몽주의자에게 과학은 코스모스의 씨앗이라면 이성은 코스모스를 활짝 피게 해주는 거름이다.


하지만 역사가들은 과학과 종교의 갈등 관계의 관점으로 과학사를 바라보지 않는다. 그들은 과학과 종교가 서로 보완하면서 발전했다고 주장한다. 중세는 생각보다 어둡지 않았다. 중세 지식인들의 서재에 고대 그리스 과학이 자취를 감춘 것은 사실이지만, 과학에 관심이 있는 수도사들이 있었다. 우리가 아는 갈릴레이 재판 사건은 반종교주의자들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진 것이다. 갈릴레이는 가톨릭 신자였다. 그와 친분이 있는 성직자들은 과학을 배척하지 않았다. 로마가톨릭은 과학의 후원자였다. 비록 가톨릭이 선호하는 과학은 천동설(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설)이었지만, 성서의 교리에 크게 거슬리지 않는 과학 이론을 부분적으로 인정했다.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이가 두려워한 세력은 가톨릭이 아니라 대학교수가 된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와 추종자들은 실험과 관측을 건너뛴 채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심지어 자신들이 믿는 지식과 상반되는 견해를 무시하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 과학의 발전을 막은 주범은 종교가 아니라 지식의 수정을 거부한 보수적인 과학자들이었다.


과학 친화적인 종교는 코스모스 우주론을 활짝 피게 해준 거름이다. 교회는 과학의 정원이 있는 경건한 온실이었다. 가톨릭과 기독교 신자들은 과학의 정원에 마음껏 드나들었고, 성직자들은 코스모스를 소중히 보살피는 정원사가 되었다. 그러나 코스모스가 필 무렵에 여성은 온실에 들어갈 수 없었다. 과학과 종교는 합심하여 여성이 과학의 정원에 발을 내딛지 못하게 했다.


물리학이 잃어버린 여성: , 물리학, 젠더 전쟁과학과 종교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자란 코스모스를 보여준다. 이 책을 쓴 마거릿 워트하임(Margaret Wertheim)은 종교가 없었으면 과학이 발전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논리적이며 객관적으로 자연 현상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신이 만든 코스모스 우주를 이해하고 싶어서 과학을 연구했다. ‘조화로운 신에 지나치게 심취한 피타고라스는 훗날 피타고라스학파로 알려진 비밀스러운 공동체를 이끄는 교주가 되었다. 피타고라스학파가 소멸하여 사라진 뒤에도 질서가 잡힌 자연 세계를 탐구하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은 멈추지 않았다. 성경을 열심히 읽은 중세 과학자들은 신을 과학자 또는 수학자로 인식했다. ‘중세의 가을이 최고조로 무르익은 르네상스 시대로 접어들자 그리스도적인 코스모스가 만개했다. 이 시기에 활동한 코페르니쿠스(Copernicus)는 피타고라스의 정신을 물려받은 과학자였다. 그의 천문학은 수학적 창조주인 신을 위한 학문이었다. 조화로운 우주를 좋아한 코페르니쿠스는 모든 천체의 궤도가 완벽한 원으로 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뉴턴(Isaac Newton)은 자신의 과학이 신을 탐구하는 데 유용한 지식이 되기를 바랐다.


저자는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뉴턴 등과 같이 종교에 협력한 과학자들을 사제(司祭)’에 비유한다. 그러면서 과학의 사제 대부분이 남성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물리학과 수학은 남성 과학자들의 텃세가 유독 심한 과학 분야이다. 저자는 가톨릭-기독교 남성 중심의 과학을 수학적 인간(Mathematical man)으로 의인화한다. 영국의 페미니스트 언어학자 데버라 캐머런(Deborah Cameron)남성 지배 사회에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고 말한다






* 남성은 정권이나 지도부를 독점하거나 지배하고, 정치적 의사 결정에서 여성보다 더 많은 발언권을 지닌다.

 

* 남성은 여성보다 더 많은 경제적 자원을 소유하거나 통제한다.

 

* 남성의 활동, 직업, 문화적 산물, 사상, 지식은 여성의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


(데버라 캐머런, 강경아 옮김, 페미니즘》, 

신사책방, 2022년, 

24~25쪽)




종교의 권위가 약해졌어도 남성 지배 사회는 건재했다. 남성 계몽주의자들도 수학적 여성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여권 신장에 반대한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감성에 손쉽게 지배당하는 여성은 과학을 이해하는 역량이 부족하다. 여성에 대한 수학적 남성의 편견은 절대불변의 진리가 되었고, 남성 과학자들은 가부장적 권위를 내세워 수학적 여성의 과학적 열망을 억눌렀다. 계몽주의 사상을 지지하는 남성 과학자들은 영국 왕립학회를 설립했다. 그런데 왕립학회는 여성 회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왕립학회의 초창기 회원들은 과학 연구에 매진하기 위해 독신 생활을 유지했다. 하지만 수학적 여성은 독신녀가 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여성은 결혼하지 않으면 경제적 자원을 소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수학적 인간’은 남성이 지배하는 가부장적 과학의 산물이다. 


오늘날의 과학은 교회의 보호를 받지 않는다신이 만든 우주를 규명하는 일이 숙원이었던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 유명해진 덕분에 물리학은 과학의 꽃이 되었다. 물리학자들의 최대 관심사는 자연계의 네 가지 힘인 전자기력, 강력, 약력, 중력을 하나로 통합해서 설명하는 만물이론(Theory of Everything, ToE)이다. 과학의 정원은 연구소와 천문대 그리고 거대한 기계가 돌아가는 발전소에 있다. 저자는 만물이론을 알고 싶어 하는 과학자들의 열망 속에도 우주의 신적인 원리를 이해하려는 종교적 기조가 스며들어 있다고 주장한다. 물리학자들은 만물이론 연구에 쓸 예산을 많이 받길 원한다. 저자는 과학이 대중의 실생활에 동떨어진 학문으로 전락하는 상황을 우려한다. 결국 대중은 과학을 어렵고 지루한 학문으로 인식한다. 대중과의 소통이 익숙하지 않은 과학자들은 논문 쓰기에 여념이 없다. 수학적 여성들이 물리학에 진입할 수 있는 문턱은 더 높아진다.


코스모스의 꽃말은 순결과 순정이다. 하지만 코스모스 우주를 좋아하는 과학은 순수하지 않다. 객관적이고 가치 중립적인 과학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가 정의한 과학은 지저분한 과학이다. 지저분한 과학은 종교를 포함한 문화적 환경의 영향을 받아서 형성된 학문이다


물리학이 잃어버린 여성1995년에 출간된 책이다. 원서 제목은 피타고라스의 바지(Pythagoras’ Trousers)’.[주4] 저자는 종교와 과학계의 여성 차별이 불가분 관계임을 쉽게 설명했다. 하지만 저자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톺아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남성과 여성’, ‘이성과 감성과 같은 이분법이 여성의 물리학 진출을 막는 문화적 관성이라고 지적한다(352쪽). 저자가 과학을 의인화해서 표현한 수학적 인간에는 수학적 남성수학적 여성’이 있다. 과학 연구에 참여해야 하는 수학적 여성이 생물학적 여성을 전제한다면 젠더 이분법(gender binary)의 한계를 답습하게 된다. 저자는 수학을 연구하는 여성의 역량이 남성보다 떨어진다고 보는 성차(性差)를 비판하기 위해 미국의 생물학자 앤 파우스토스털링(Anne Fausto-Sterling)의 연구 결과를 인용한다(349). 파우스토스털링은 남성중심주의와 이성애주의(heterosexism)를 옹호하는 생물학을 비판한 페미니스트 생물학자다. 이성애주의는 남성과 여성이 만나고 사랑하는 것을 정상으로 규정한다. 이성애주의의 문제점은 남녀 간의 성차를 강화하고, 이성애주의의 기준으로 비정상’에 속한 동성애와 젠더퀴어(genderqueer) 차별한다. 파우스토스털링은 성차의 한계를 넘어서서 인간의 다양성을 이해하기 위해 두 개의 성이 아닌 다섯 개의 성을 제안한다.[주5


수학적 남성수학적 여성만 존재하는 과학은 또 다른 차별을 만든다. 이성애주의의 잔재가 남은 과학은 젠더 이분법에 속할 수 없는 성소수자를 희미하게 만든다. 이런 과학은 성소수자를 비정상적으로 취급하는 우파 기독교의 우군이 된다과학과 종교가 서로 차이를 인정하면서 만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조화롭고 안정적인 사회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여성과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억압하는 과학과 종교는 잘못된 만남이다.





[1] 칼 세이건, 홍승수 옮김, 코스모스, 사이언스북스, 2006, 477.

 

[2] 칼 세이건, 현정준 옮김, 창백한 푸른 점, 사이언스북스, 2001.

 

[3]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김주일, 김인곤, 김재홍, 이정호 함께 옮김,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2, 나남출판, 2021. 8권 피타고라스학파, 175.








[주4] 물리학이 잃어버린 여성1997년에 원서 이름을 그대로 옮긴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다. 책의 부제는 여성의 시각에서 본 과학의 사회사출판사는 사이언스북스이다. 번역자는 최애리. 이번에 나온 물리학이 잃어버린 여성번역을 다시 맡았다. 물리학이 잃어버린 여성피타고라스의 바지의 구판인 셈인데, 번역자와 출판사는 구판이 출판된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주5] 티에리 오케, 변진경 옮김, 셀 수 없는 성: ‘두 개의 성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 오월의봄, 2021, 36.

 






※ cyrus의 주석과 정오표







* 297, 옮긴이 각주 [닐스 보어]


 덴마크 물리학자. 특정 원자핵의 비대칭 모양과 그 이유를 규명하여 1975 노벨상 수상[주6]



[주6] 연도 오류닐스 보어(Niels Bohr)1922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 297, 옮긴이 각주 [하이젠베르크]


1933 노벨상 수상. [주7]



[주7] 연도 오류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1932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 337




 

리정다오(Tsung-Dao Lee, 1926~ ) [주8]



[주8] 올해 84일에 별세했다.





* 356

 

 SSC 사업은 본래 2억 달러 예산으로 시작되었으나, 1993년 중반에는 100억 달러로 확대되었으며, 일각에서는 사업 완료까지 130억 달러는 들리라는 예측도 나왔다. 그 시점에 다다르자, 국회에서 플러그를 뽑았다. 이는 만물이론 학계로서는 커다란 좌절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꿈은 절대로 무산되지 않았다. 유럽 공동체가 자신들의 초가속기, 대형 강입자 충돌기(Large Hadron Collider, LHC)를 지을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여전히 관련 정부들은 재정 지원 문제를 놓고 옥신각신하고 있다. LHC를 짓는 데 드는 비용은 훨씬 적어서 100억 파운드(150억 달러) 정도이며, SSC만큼 강력하지는 못하지만, 그것도 통일 영역에서 새로운 전망을 보여줄 희망이 있다. [주9]



[주9] 이 책이 출간된 1995년에 LHC 건설이 승인되었다. 건설비와 실험을 위한 예산 등이 포함된 LHC 프로젝트의 예상 비용은 32~64억 유로(46천억 원)였다. 그러나 비용이 늘어나면서 건설 속도가 더뎌졌다. 우여곡절 끝에 건설이 완료되었고, 2008910일에 가동하기 시작했다.





* 미주, 390





Nicolaus Cusanus, De docta ignorantia [주10]



[10] 니콜라우스 쿠자누스, 조규홍 옮김, 박학한 무지, 지식을만드는지식,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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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주의
J. M. 버거 지음, 김태한 옮김 / 필로소픽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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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이상 한파가 일주일째 불고 있다. 칼바람을 아직 꺼내지 못한 동장군은 당황스럽다. 전국을 덮친 이상 한파는 용산에서 시작되었다. 용산에 독재자가 살고 있다. 독재자는 온종일 권력에 취해 있다. 자야 할 시간에 숙취가 덜 풀린 독재자는 잔뜩 화가 나 있다.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들 생각에 구역질한다. 계속되는 구토가 짜증이 난 독재자는 급기야 스스로 독불장군이 되기로 결심한다.

 


적 같은 녀석들이번 기회에 다 싹 잡아들여야겠어.” 

 


밤중에 그는 썩은 권력 찌꺼기를 토하면서 국민에게 호소한다. 국민에게 전하는 글이 적힌 종이 위에 독재자의 머릿속에서 나온 오물이 떨어진다. 더러워진 글은 비상계엄 선포문으로 변한다.



 저는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2024123, 1038. 용산의 독재자는 자신과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적들에게 선전포고했다. 독불장군이 일으킨 이상 한파는 헌법과 국회, 민주주의, 그리고 모든 사람의 일상을 얼어붙게 했다


광장에 모여서 독재자의 한파에 맞서는 시민들이 있는 반면에 이상 한파가 뜨거워서 좋다는 정치인과 시민들이 있다. 그들은 용산의 독재자를 지지한다. 그리고 독재자가 호명한 적들과 맞서 싸울 태세를 갖춘다자신들이야말로 애국심이 가득한 보수주의자요, 진정한 자유주의자라고 주장한다


독재자의 계엄령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도,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계엄령은 독재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독재자를 비판하는 국민은 처단’해야 할 적대 세력이 된자유주의민주주의는 독재자를 만나는 순간, 오염된 단어가 된다. 독재자의 손아귀에 들어간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엉뚱하게도 좌파와 사회주의에 대항하는 우파의 아군이 된다나와 너’, ‘우리와 그들로 구분 지어서 서로 대립하는 관계를 지향하는 것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극단주의(extremism)’.


올해 9월에 출간된 극단주의: 카르타고 파괴에서 백인 우월주의까지 극단주의의 본질을 파헤친 간결한 입문서극단주의가 만든 계엄령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책이다이 책은 극단주의를 너무 단순하게 이해하고, 종종 오해하는 문제점에서 출발한다. 대부분 사람은 상식에 벗어날 정도로 한 가지 생각으로 치우친 성향을 극단주의로 인식한다그렇지만 극단주의를 너무 단순하게 접근하면 오용될 수 있다자기 생각과 정체성과 완전히 다른 타인 및 사회 집단을 극단주의로 규정하면 차별을 조장하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대화가 단절된다. 타인을 극단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정작 자신은 극단주의자가 아니라고 믿는다.


역사상 최초의 극단주의자는 기원전 2세기에 활동한 고대 로마의 정치가 카토(Marcus Porcius Cato). 당시 로마는 카르타고와 세 번이나 혈전을 치른 끝에 승리했다. 기고만장한 원로원 의원 카토는 자신의 연설을 마치면 카르타고는 멸망해야 한다(Carthago delenda est)라고 말했다결국 로마는 무장 해제한 카르타고 시민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극단주의자는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들을 내집단으로 인식한다. 자신이 소속되지 않은 집단은 외집단이다. 내집단과 외집단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 문제가 없다. 그런데 내집단이 외집단을 으로 인식하는 순간 극단주의가 생긴다. 극단주의에 물든 내집단은 영향력이 줄어들었고, 결속력이 낮아진 외집단을 말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내집단의 모든 구성원이 다 같을 수 없다소수의 구성원은 내집단에 소속되면서도 내집단의 의견에 따르지 않는다. 극단주의 내집단 안에서 외집단으로 분류되는 구성원부적격 내집단이 된다. 극단주의를 거부하는 부적격 내집단은 내집단으로부터 배제될 수 있고, 내집단의 결속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잠재적인 적’이 된.


용산의 독재자는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때 국회의 업무에 제동을 걸고, 국가 예산을 삭감하는 데 앞장선 야당(더불어민주당)을 종북 세력이라고 주장했다. 계엄사령부 포고령에는 의료정책에 반대하여 파업에 참여한 의료인들을 으로 규정했다. 48시간 안에 병원으로 복귀하지 않으면 처단한다고 명시했다용산의 독재자와 그를 지지하는 여당(국민의 힘)은 극단주의 내집단이다. 독재자가 계엄군을 동원해서 처벌하려는 반국가 세력, 즉 야당은 외집단이다. 여당은 독재자가 탄핵당하는 상황을 막으려고 한다여당은 국민을 위한 보수주의 정당이 아니다. 독재자 한 사람을 지키려는 극단주의 내집단이다. ‘국민의 힘이 아니라 극단의 힘이다독재자 탄핵을 찬성하는 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있는데, 이들은 부적격 내집단이다극단주의자들은 내집단의 결속력이 무너지는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극단주의 내집단은 외집단과의 타협을 거부한다. 극단주의 내집단이 외집단을 적대 세력으로 바라보는 근거는 주관적이다. 그들이 접하는 외집단에 관한 정보의 출처는 정확하지 않으며 대개 부정적인 편견이 섞여 있다.


여당이 극단주의 내집단이라 해서, 야당을 극단주의 내집단에 의해 고통받는 외집단으로 바라본다면, 극단주의의 본질이 흐려진다극단주의를 단순한 기준을 선호하는 이분법으로 접근할 수 없으며 극단주의는 특정 정파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127, 여당 의원들의 집단 투표 거부로 인해 독재자 탄핵소추안 표결이 무산되었다. 당시 투표가 진행되고 있을 때 여당 의원들은 의원 총회에 참석했다고 한다. 야당 의원들은 갑자기 열린 여당의 의원 총회를 지적하면서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여당 의원들이 감금되었다고 주장했다.[주] 근거가 불충분한 견해와 가짜 정보로 외집단(여당)을 비난하는 행위는 외집단을 적대하는 극단주의 내집단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극단주의자는 누구나 될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예외가 아니다. 인간은 자신이 본 것, 들은 것, 알고 있는 것을 옳다고 생각한다. 모르는 것, 낯선 것,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것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다. 결국 자기 생각과 같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내 주변에 있는 극단주의자를 비판하기 전에 나도 극단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 탄핵소추안 부결 이후에 나온 기사들을 살펴보면 여당 의원 감금설을 발언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치인의 이름이 여러 명으로 나온다. 내가 확인한 이름은 박찬대 원내대표, 한준호 최고위원, 황운하 의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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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24-12-12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화의 내용도 그렇지만 그걸 녹화로 발표하는 것도 기괴한데 그게 유출되기까지 한 건 정말 너무 황당합니다. 정상이 아니에요 모든 것이...
 
생명으로 우리는 귀엽다
임주혜 지음 / 행복우물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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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협찬받고 쓴 서평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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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점  ★★★★☆  A






브론테 자매는 영국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자매다. 큰언니 샬럿(Charlotte Brontë)의 대표작은 제인 에어. 둘째 언니 에밀리(Emily Brontë)폭풍의 언덕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Wuthering Heights를 썼다《폭풍의 언덕》은 그녀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소설이다. 막내 앤(Anne Brontë)은 두 편의 소설을 썼다두 동생을 먼저 떠나보낸 샬럿은 앤의 첫 번째 소설 아그네스 그레이를 다시 펴내는 일을 맡았다. 그러나 앤의 두 번째 소설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을 다시 출간하고 싶지 않은 작품이라고 혹평했다20세기 중반이 지나서야 앤의 소설들은 두 언니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은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작품이지만, 드라마와 연극으로 각색될 정도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앤의 대표작이다.


아그네스 그레이는 가정교사의 사회적 지위가 잘 묘사된 소설이다. 가정교사는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들이 선호한 직업이다. 소설의 주인공 아그네스 그레이(Agnes Grey)는 가정교사로 일했던 작가의 삶이 반영된 인물이다아그네스는 가정교사를 하찮게 대하는 귀족의 집에 생활하면서 귀족의 자녀들을 가르친다. 그녀가 가르치는 톰 블룸필드(Tom Bloomfield)는 예의범절을 모르는 소년이다. 톰은 아주 못된 버릇이 있다. 정원에 있는 새를 잡아서 잔인하게 죽인다. 아그네스는 동물을 괴롭히는 행동이 잘못되었다면서 꾸짖지만, 톰의 어머니와 삼촌은 톰의 행동을 옹호한다. 톰의 삼촌은 조카의 동물 학대를 지켜보는 것을 즐긴다아그네스는 새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고통을 느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톰의 어머니는 모든 생명체가 인간의 편의를 위해 창조되었다면서 동물 학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오히려 톰의 어머니는 동물 학대를 지적하는 아그네스의 지도 방식에 문제가 있다면서 비난한다. 아그네스는 인간의 쾌락을 위해 동물을 고문할 권리가 없다(We have no right to torment them for our amusement)고 맞받아친다


우리는 동물의 생명도 인간의 생명처럼 소중하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안다. 하지만 동물을 존중하는 마음을 말과 글로 표현하는 일에 서툴다왜냐하면 동물을 위한 권리의 필요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동물권을 생각해야 하는 상황을 피할 수 없게 된 우리는 마음으로 아그네스를 지지하지만, 우리의 입은 톰의 어머니가 된다인간은 언어 능력을 가진 유일한 동물이다. 무언가를 생각하고 감정을 느낀 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일에 익숙한 우리는 종종 착각에 빠진다. 말하지 않는 동물은 우리처럼 생각하지 않으며 감정이 없다고 생각한다.


임주혜 작가의 두 번째 책 생명으로 우리는 귀엽다: 생명 존중과 동물권 그리고 존재하는 것에 대한 사유는 우리의 언어가 동물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 이유를 알려준다우리의 입은 듣고 있지만 말하지 않는 동물에게 말을 걸 수 있다. 당연히 동물은 인간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동물에게 대화를 시도하는 행위가 부질없는 것은 아니다. 동물을 존중하는 자세다. 저자는 우리의 언어가 동물의 목소리가 되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동물과의 대화는 인간과 동물을 같은 위치에서 마주 바라보게 만들며,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공생 관계를 잊지 않게 해준다.







작가는 책에 실린 모든 글을 거의 혼자 쓰지 않았다. 작가와 함께 사는 반려견 고동이(책 앞표지의 모델)가 언급된 글은 작가와 고동이와 함께 쓴 글이다고동이는 눈빛과 몸짓으로 작가에게 말을 걸고, 작가는 고동이의 마음을 읽는다인간과 동물이 아닌 생명과 생명으로 교감하는 일상은 귀엽다.


동물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방식은 다양하다. 그래도 동물 철학대표적인 학자가 피터 싱어(Peter Singer)와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을 공부하지 않고도, 동물권을 지키기 위한 비건(vegan)이 되지 않아도, 동물권 운동 단체에 가입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동물과 함께 살 수 있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인간에게 무참히 짓밟힌 동물들의 실태를 가까이서 본 동물권 운동가들은 저자가 불편한 실상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면서 동물권 문제를 천천히 고민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저자는 비건 중심의 세상을 조급하게 바꾸려는 실천이 때론 나의 것(생각)이 가장 옳다라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느리면서도 세밀한 고민이 빠진 동물권 운동은 다른 동물 또는 타자를 차별하고 혐오를 생산할 수 있다저자가 강조한 대로 동물의 삶에 대한 통찰과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을 멈추지만 않으면 된다. 동물권을 어떻게 확보해야 할지 고민하는 일을 멈추는 태도는 동물과의 공생 관계를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의 언어와 입은 내 생각을 지키기 위한 무기가 되어선 안 된다. 내 생각이 옳다고 믿는 입은 꾹 다문 상태였다가 나와 다른 목소리를 만나면 세게 때릴 자세로 돌변한다. 타자를 위협하는 언어는 포악하다. 반면 다른 생명을 존중하는 입은 계속 움직인다. 늘 열려 있다. 동물에 대해 생각하고 느낀 점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그리고 자신의 무지함과 오류를 정직하게 인정한다. 우리가 가져야 할 입은 공생의 의미를 천천히 알아가면서 진정한 공생을 말하는 입이다. 이런 입에서 나온 언어는 포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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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1-25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시로선 꽤 앞선 생각이었겠구나. 나도 어렸을 때 잠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어른들의 생각이 그대로 전수된 거지 뭐.
지금도 비행하다 빌딩 유리창에 부딪혀 즉사하는 새가 그렇게 많다더군. 인간이 죄가 많아. ㅠ

cyrus 2024-11-29 19:44   좋아요 0 | URL
아그네스 그레이가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말을 동물권 운동 구호로 써도 전혀 낯설지 않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