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
마크 피셔 지음, 안현주 옮김 / 구픽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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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weird) 으스스한(eerie) 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과연 이 두 가지 유형에 차이점이 있을까? 기이한 것은 말 그대로 이상한 것이다. 으스스한 것은 몸에 소름 돋게 하는 대상이다. 우리는 무서운 영화를 보고 나면 소름 돋았다라거나 소름 끼친다라는 말을 한다. 소름 돋게 하는 으스스한 것은 결국 불안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고 기묘한 존재나 현상을 접했을 때도 마음이 불안해지고 소름이 돋는다.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은 얼핏 보기엔 비슷해 보인다.

 

영국의 작가 겸 문화이론가 마크 피셔(Mark Fisher)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Howard Phillips Lovecraft: 미국의 작가, 공포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에 대한 학술 토론회에 참석하고 나서부터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의 사례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러브크래프트,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 마거릿 애트우드(Margaret Atwood) 등 작가의 작품들과 영화와 팝(pop)이 그의 관심사다. 그는 우리 일상을 관통하는 대중문화 속에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의 특성이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는지 분석하고 비평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자신의 연구 결과물을 보지 못한 채 2017년에 세상을 떠났다. 13편의 에세이로 이루어진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은 피셔의 유작이다.

 

으스스한 것에 접근하기라는 제목의 글에 피셔가 말한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의 의미가 잘 나와 있다. 기이한 것은 (우리와/현실에)어울리지 않는 존재이다. 기이한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가 보기에 기이한 것은 너무나도 이상하거나 뭔가 잘못되어 있다.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 나오는 괴물들은 기이하다. 그것들은 거대하며 인간의 외형을 닮지 않았다. 그래서 기이하다. 우리의 기준으로 볼 때 기이한 것은 잘못되고 위험한 것이다. 그러나 피셔는 기이한 것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 기이한 것에 대한 오해가 생긴다고 말한다.

 

으스스한 것은 존재의 오류또는 부재의 오류로 설명할 수 있다. ‘존재의 오류무언가 있어야만 할 때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부재의 오류존재의 오류와 반대되는 상황으로 이해하면 된다. ‘부재의 오류아무것도 없어야 할 곳에 무언가가 존재하는 상황이다. 으스스한 것은 미지의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진실을 알고 나면 으스스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은 단순히 유령이나 귀신과 같은 초자연적 존재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으로만 볼 수 없다.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은 일상의 공간에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 일상은 어떤 사람에게나 매일 되풀이되는 삶이다. 이런 친숙한 환경에 이전에 만나지 못한 낯선 존재가 나타나거나 익숙한 존재가 돌연 사라지게 된다면 그것은 일상을 와르르 무너뜨리는 기이하고 으스스한사건이다. 기이하고 으스스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느끼는 공포는 우리의 감정을 조여 오는 섬뜩한 현실이 된다. 일상을 위협하는 공포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숨어 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대중문화 속에 스며든 기이하고 으스스한 것을 즐기고 있다. 즐기는 건 좋다. 그렇지만 소설이나 영화 속에 나올 법한 기이하고 으스스한 사건들이 최악의 현실로 되지 않기를 바라야 한다.  

 

 

 

 

 

Trivia

 

 

* 역자의 주석에 오류가 있다. 주석의 글자 크기가 너무 작아서 읽기가 불편하다.

 

 

 

 

 

53쪽에 영국의 극작가 알프레드 제리라는 이름이 나온다. ‘알프레드 제리가 아니라 알프레드 자리(Alfred Jarry)라고 표기해야 한다. 그리고 그는 프랑스인이다. 그의 작품 <우부 로이(Ubu Roi)>위뷔 왕또는 위비 왕이라는 제목으로 두 차례나 번역되었다. 그런데 역자는 <우부 로이>국내 미번역작으로 분류했다.

 

 

 

 

 

 

81쪽에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의 사망 연도가 적혀 있지 않다. 그는 1989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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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9-05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이 책 훑어보면서, 이건 이쪽 분야에 조예가 깊은 사이러스님이 읽고 리뷰를 쓸 만한 책이겠구만- 하면서 읽기를 포기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오랜만에 PC로 사이러스님 서재 들어왔더니, 서재 알림말이 바뀌었네요. 언제 바꾸셨는데 제가 이제야 겨우 확인한 걸까요. 굉장히 재밌는 말입니다. 사이러스님 말씀인가요?

syo 2019-09-05 12:34   좋아요 0 | URL
혹시 바꾼 게 아니라 원래부터 계속 저거였으면,

그냥 최근에 바꾼 척 해주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

cyrus 2019-09-06 12:41   좋아요 0 | URL
저자가 언급한 문학작품이나 영화 대부분이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생소한 것이라서 호기심에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실망할 거예요. 저는 관심 있는 주제가 있는 글만 정독하고 나머진 대충 훑어봤어요. ^^

서재 알림 말 작년에 바꾼 거예요.. ㅎㅎㅎㅎ 제가 만들었어요. 애서가의 삶을 아이러니 기법으로 표현해봤어요.. ㅋㅋㅋ

서니데이 2019-09-11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추석인사 왔습니다.
가족과 함께 즐겁고 좋은 추석명절 보내세요.^^

훌라댄서 2019-09-12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파란 글씨에서 오는 불길함부터 실망 대중서로는 알맞지 않다
 

 

 

 

조선 왕조는 유학을 국가통치의 기본 이념으로 삼았다. 당시 유학의 주류를 이뤘던 성리학은 인간 심성에서부터 우주 운행에 이르기까지 태극, 음양, 이기(理氣) 등의 이치로 사물의 현상과 원리를 해명하는 학문이다. 성리학자들은 이를 바탕으로 개인의 인격 수양과 인간관계의 의리는 물론, 사회와 국가의 운영에까지 도덕에 기초한 이상을 구현하려 했다.

 

천자문을 익힌 아이들은 서당에 가서 소학(小學)을 읽고 배운다. 유교 사회에서는 본래 바른 생활습관과 품성을 배양하기 위한 인격 수양을 중시했다. 소학은 충효 · 예절 · 윤리 등을 알려주는 인격 수양의 지침서이다. 조선 시대의 사대부 여성들은 결혼하기 전에 소학과 같은 기초적인 유교 경전을 읽었다. 그러나 그녀들은 사대부 남성들과 함께 공부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소학에 있는 유교윤리를 그대로 실천하고 산다면 그 사람은 바로 성인이요 군자인 것이다. 유교 경전을 읽으면서 배운 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여성도 군자가 될 수 있다.

 

 

 

 

 

 

 

 

 

 

 

 

 

 

 

 

 

* 정옥자 사임당전(민음사, 2016)

 

 

 

5만 원 지폐에 등장하는 신사임당을 얘기하면 우선 현모양처가 떠오르고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 기억된다. 하지만 이것은 16세기 노론(老論: 조선 시대 붕당의 한 정파)의 수장이었던 송시열이 주도한 노론의 대모(大母) 만들기프로젝트에 의해 형성된 이미지다. 이이의 제자들은 노론에 속했고, 사임당은 스승을 낳은 위대한 어머니로 알려지게 됐다. 사임당은 탁월한 그림 실력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몇몇 사대부들은 신사임당의 그림 실력을 칭송하면서도 자녀 교육과 정숙한 행실에 더 초점을 맞추어 평가했다. 사임당전(민음사)의 저자인 정옥자 교수는 사임당에 대한 노론의 평가가 그녀의 예술가적 면모를 의도적으로 은폐했다고 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노론은 사임당의 행실에서 확인할 수 있는 유교적 가치를 예술가적 면모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어쨌든 화가 사임당은 잊히고 훌륭한 어머니 사임당만 남게 되어 지금까지 알려졌다.

 

이이는 사임당의 셋째 아들이다. 그는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선비행장>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선비는 세상을 떠난 사임당을, 행장(行狀)은 고인의 행실을 적은 글이다. 이 글에서 이이는 어머니의 그림 실력을 높이 평가했으며 그녀의 학식과 인격을 언급했다. 그렇다면 이이가 고인이 된 사임당을 가리켜 선비라는 호칭을 사용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선비는 학식과 인품을 갖춘 사람에 대한 호칭이다. 공자(孔子)와 그의 제자들부터 시작해서 조선시대에 이어져 온 유학자들은 유교 이념을 실현하는 인격을 선비로 확립하였다. 이이는 유교 이념을 철저히 수련하고 실천한 사임당의 행실에 주목하여 선비라는 호칭을 썼다. 따라서 <선비행장>화가 사임당선비 사임당이라는 뛰어난 면모를 동시에 보여주는 중요한 글이다.

 

사임당과 이이의 명성에 완전히 가려지는 바람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임당의 맏딸이자 이이의 손위 누이인 이매창작은 사임당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학식과 예술 실력을 두루 갖춘 여성이다. 사임당의 막내아들 이우의 8대손인 이서는 <집안에 내려오는 서화첩 발문>에 이매창을 부녀자 중의 군자라고 언급했다.

 

 

 

 

 

 

 

 

 

 

 

 

 

 

 

* 김경희 임윤지당 평전(한겨레출판, 2019)

 

 

 

임윤지당군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성리학자이다. 사대부 여성이 학문에 정진할 수 없는 불리한 시대 속에 윤지당은 공부와 연구에 매진한다. 성리학을 공부한 그녀는 성인과 범인(凡人)이 본래 같은 성품을 타고났다고 보며 이를 전제로 하여 남성과 여성의 본성에 하등의 차이가 없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그러면서 윤지당은 여성도 군자가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녀는 일평생 유교 경전과 성리학을 연구하여 군자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노력했다.

 

윤지당은 앞서 언급한 사임당과 비교되기도 한다. 사임당이 시와 그림을 중심으로 한 교양과 예술에 몰두했다면, 윤지당은 사상과 역사, 문장, 교양을 두루 겸비한 학자였다. 현재까지 윤지당이 쓴 것으로 알려진 시는 단 한 편도 남아 있지 않다. 사임당이 이이라는 대학자를 아들로 두어 유복했다면, 윤지당은 남편과 아들 모두 일찍 세상을 떠나 박복했다는 점이 대비된다. 두 사람이 각각 예술과 학문에 탐닉할 수 있었던 공통적인 배경에는 개방적인 집안 분위기가 있었다. 두 사람의 어머니는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았고, 딸에게도 인격 수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절판] 이영춘 강정일당(가람기획, 2002)

 

 

 

윤지당의 영향을 받은 여성 성리학자는 강정일당이다. 그녀는 사임당과 윤지당보다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고, 남편의 집안도 가세가 완전히 기울어진 명문가 출신이었다. 정일당은 길쌈과 바느질로 생계를 책임졌다. 시댁의 가계를 책임지던 정일당은 나이 서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학문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것도 바느질하면서 틈틈이 경전을 읽고 공부한 것이 전부다. 정일당의 공부는 확고한 생각과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녀는 천성을 기준으로 한 남녀의 차별이 없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믿음은 정일당보다 조금 먼저 태어나서 활동한 윤지당으로부터 이어받은 것이다.

 

성인이 되고자 하는 삼당군자(신사임당, 임윤지당, 강정일당)의 노력은 오랫동안 계속해 왔지만, 학문적으로 이론화되고 또 그 생각이 공유된 적은 별로 없다. ‘성품에 남녀의 차이가 없다는 말은 남녀가 역할은 달라도 인간 자체로는 같다는 뜻이다. 우리가 아는 보통 조선 시대의 여성의 삶은 남성 중심의 역사 서술이 놓친 반쪽짜리 삶이다. 역사의 기록 밖으로 밀려나 있던 조선 시대 여성들의 모습이 학계를 넘어서 일반 대중에게도 많이 알려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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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4 1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9-05 11:54   좋아요 0 | URL
‘유관순이냐, 사임당이냐’는 식으로 화폐 인물 선정에 대해서 논의를 한다면 오히려 잃을 게 많아지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어요. 저는 두 분 모두 훌륭하며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임당의 예술가적 면모를 잘 모르거나 높이 평가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게 무슨 업적이냐고 말합니다. 그림 그리는 일을 사임당의 개인적인 활동으로 보는 것이죠. 그런 논리라면 위대한 화가뿐만 아니라 소설가도 화폐 인물 후보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다른 나라의 화폐에는 소설가, 화가, 음악가의 얼굴이 들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훌륭한 예술가들이 있으며 당연히 화폐의 얼굴이 될 자격이 있습니다.

2019-09-05 1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9-09-04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신사임당을 우리는 조선시대 현모양처의 대명사처럼 알고 있는데 실제로는 뭐랄까 현대 여성처럼 자기주장과 개성이 강한 여장부였다고 하더군요^^

cyrus 2019-09-05 11:57   좋아요 0 | URL
‘현모양처’ 이미지나 그녀의 예술적 능력 때문에 사임당을 지폐 인물로 선정하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예술적 능력도 화폐 인물의 자격 조건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유발 하라리의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 - 전쟁, 역사 그리고 나, 1450~1600
유발 하라리 지음, 김승욱 옮김, 박용진 감수 / 김영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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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가 개인의 발견과 함께 발전했다는 건 상식이다. 르네상스부터 시작해서 종교개혁, 시민혁명 등으로 이어지는 근대적 개인의 등장 과정은 반드시 외워야 하는 역사 공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토대로 쓰인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에서 밝힌 유발 하라리(Yuval Harari)의 주장은 흥미롭다.

 

 

 르네상스 시대 군인회고록의 저자들을 문헌 속의 개인으로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135)

 

 

이게 무슨 소리인가? 서구에서 개인이 형성된 시기는 15세기로 알려져 있다. 개인은 중세의 성벽을 뚫고 르네상스 시대에 발견되었다는 스위스의 역사학자 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의 견해가 정설로 받아들여진 결과다. 그렇다면 르네상스 시대에 나온 전쟁회고록은 개인정체성을 인식한 사람의 기록으로 봐야 한다.

 

그러나 하라리는 부르크하르트의 견해를 뒤집는다. 그렇다면 부르크하르트가 주목한 ‘개인’은 누구란 말인가? 전쟁회고록또는 군인회고록(military memoirs)은 말 그대로 전쟁에 참전한 군인 출신 귀족이 쓴 글이다. 하라리는 1450년에서 1660년 사이에 발표된 군인회고록의 공통된 특징이 무엇인지 살핀 다음, 20세기의 군인회고록과 비교 분석한다.

 

르네상스 군인회고록을 쓴 저자들은 자신을 개인으로 묘사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전쟁터에서 살아가면서 느낄 법한 어떠한 감정도 표현하지 않았다. 하라리는 르네상스 군인회고록을 ()개인주의적 문헌으로 규정한다. 르네상스 군인회고록은 실증적인 문헌으로 보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역사는 사건의 인과관계를 따라 서술된다. 그러나 르네상스 전쟁회고록은 인과관계 중심의 서술과 거리가 멀다. 르네상스 전쟁회고록 저자들은 자신이 목격한 사건들을 쭉 나열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진실하게 쓰려는 의도는 없었다. 전쟁회고록 저자들은 자신들이 꼭 쓰고 싶은 것들, 기억할 가치가 있는 것들(choses digne de memoire)을 선별하여 기록했다.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억할 만한 것전사 귀족(warrior noblemen)으로 살아가면서 얻는 명예이다. 적들을 제압해서 전쟁에 승리하는 데 기여한 전사 귀족은 자신의 명예로운 업적을 기록으로 남긴다. 그러므로 르네상스 전쟁회고록은 전사 귀족으로서의 개인사와 역사가 하나로 일치된 기록물이다.

 

르네상스 전쟁회고록이 전사 귀족의 명예를 위대한 역사로 기념하기 위한 기록이라면, 20세기 전쟁회고록은 전쟁을 경험해보지 않은 독자들을 위한 것이다. 20세기 전쟁회고록의 저자들은 전쟁터 한가운데에 있는 군인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전쟁의 잔인하고 처절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20세기의 회고록에는 저자의 감정과 생각 등이 많이 나온다.

 

개인주의는 개인의 자유로운 삶을 국가나 사회공동체보다 우선시하는 사상이다. 우리는 개인주의를 당연하고 생득적인 것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개별적인 자아로 인식하기까지 오랜 역사 속에서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했다. 개인의 욕망과 양심에 따른 행동은 집단을 유지하려는 권력의 지속적 감시 대상일 수밖에 없었고, 감시와 억압을 벗어나 새로운 정신의 영토로 나아가려는 개인들은 소수자로 낙인찍혀 기나긴 고통의 시간을 견뎌야 했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르네상스의 전사 귀족들에게 명예는 자신의 체면뿐만 아니라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가치였다. 그들의 권위는 위계적인 귀족 남성 중심 사회를 지탱해주는 힘이었다. 그 힘에 억눌린 개인들이 얼마나 많을지 안 봐도 비디오. 우리는 그동안 르네상스 시대에 본격적으로 발견된 것으로 알려진 개인의 의미를 비판적으로 검토해보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르네상스에 발견되었다는 이 개인은 또 다른 인격체의 삶과 자유를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인간적인 존재로 보기 어렵다. 비인간적인 전사 귀족들은 자신의 명예를 얻기 위해 폭력과 살인도 마다하지 않았다.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개인과 개인주의의 기원에 대한 오해를 풀어줄 뿐만 아니라 역사학계의 주류가 규정한 개인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의 존재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만든다. 그 사람들은 역사로 기록되지 못한 무명의 개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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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9-09-03 2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본의 근대화 시기 서구 책을 번역할 때 가장 옮기기 어려운 단어가 ‘individual’이었다고 하던데요. 그렇게 본다면 우리에게는 개인주의가 정말 얼마 안 된 개념인 것 같습니다.

cyrus 2019-09-04 11:52   좋아요 0 | URL
개인주의의 역사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지 않았지만, 북다이제스터님의 의견에 공감합니다. 우리가 아는 개인주의는 서양의 그것이라기보다는 ‘일본이 번역한 서양’의 개인주의에 가까울 것 같아요. 개인주의를 받아들이는 역사가 짧다보니 개인주의에 대한 진지한 연구라든가 토론이 잘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2019-09-04 0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9-04 11:59   좋아요 0 | URL
부족한 글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좋은 말을 들으면 ‘글을 잘 써야겠다’라기보다는 ‘정확한 내용을 가지고 글을 써야겠다’라는 마음이 생깁니다. 저도 아는 게 많지 않아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통해서 지식의 범위를 넓혀갑니다. 물론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글로 썼다고 해서 모조리 기억하는 건 아니에요. 예전에 본 내용들이 잊고 있다고 느껴지면 다시 책을 읽고 글을 쓰려고 해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내용을 습득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독서와 글쓰기에 몰두하게 됐어요. 독학도 한계가 있어요. 독서모임에 참석하면 그동안 독학을 하면서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지식과 저의 단점도 알게 돼요. 제 글도 한계가 있으니 읽다가 이상하다 싶거나 궁금한 점이 있으면 의견을 주시거나 질문하셔도 좋습니다. ^^
 
다시, 책으로 - 순간접속의 시대에 책을 읽는다는 것
매리언 울프 지음, 전병근 옮김 / 어크로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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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잔치의 꽃은 돌잡이다. 돌잡이는 첫 생일을 맞은 아기의 미래를 재미로 점치는 행사이다. 아기가 무엇을 잡았느냐가 화젯거리가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에게 실, , 연필과 같은 것을 보여주고 잡게 한다. 돈을 잡으면 돈을 잘 버는 사람이 되고, 연필을 잡으면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요즘은 마이크, 판사 봉, 청진기, (야구공, 농구공, 축구공 등)이 돌잡이 물건으로 많이 나온다. 마이크는 가수, 판사 봉은 법관, 청진기는 의사, 공은 운동선수가 된다는 의미다.

 

만약 돌잡이 물건으로 이 있다면, 그것을 잡은 아기의 앞날은 어떻게 보면 좋을까? 책을 잡았으니까 남의 잘못을 지적하는 책잡는 사람이 되거나 아니면 오히려 문제투성이라서 상대방에게 책잡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방금 언급한 건 말장난[]이니까 책을 잡은 아기의 미래를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책은 연필과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부모는 책을 잡은 아기가 독서를 좋아하고, 공부 잘하는 똑똑한 사람이 되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돌잡이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이 좋다.

 

아기가 책이 많은 집에서 태어났다면 그 아기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렇게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집안 환경은 아기의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로 자라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아무리 책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책 읽는 행위가 몸에 배지 않으면 책에 친숙한 사람으로 자라지 못한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책을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책을 읽을 능력이라든가 책을 좋아하는 마음은 사람이 태어나면서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책 읽는 뇌라는 책을 쓴 미국의 신경심리학자 매리언 울프(Maryanne Wolf)는 애초에 인간의 뇌는 처음부터 독서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사람이 문자를 읽고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는 행위에는 뇌 회로의 연결이 필요하다. 인류가 문자를 발명하고 서서히 문명을 만드는 와중에 뇌는 기존 회로를 재편성해 문자를 인지하고 해독하는 능력을 향상해 왔다. 그러면서 독서라는 문화가 발달하게 된 것이다. 울프는 독서를 문화적 발명으로 본다. 따라서 독서는 타고난 능력도, 재능도 아니다. 책 읽는 사람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가 사는 세상은 책 읽는 사람이 만들어지기 어려운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 우리는 책보다 더 재미있는 것들을 누리면서 살고 있다. 우리는 스마트폰 안에서 동영상 프로그램 · 영화 · 음악 등 각종 미디어를 접한다. 콘텐츠도 전에 볼 수 없었던 형식으로 바뀌고 있다. 짧은 시간에 즐길 수 있는 영상 위주의 콘텐츠가 많아지고 있다. 울프는 이러한 디지털 시대를 순간 접속 시대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책으로라는 제목의 책에서 뇌의 읽기 회로가 잊히고 있는 현실을 되돌아본다. 전작 책 읽는 뇌에서 언급했던 뇌의 읽기 회로가 사라진다면 책을 깊이 읽고 생각하는 능력도 같이 사라진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한다면 당연히 사람들은 책을 좋아하지 않게 되며 책을 읽는다고 해도 수박 겉핥기식으로 읽는다. 책을 좋아하는 저자도 예외가 아니다. 그녀는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의 장편소설 유리알 유희를 다시 읽은 경험을 들려주면서 그 책을 제대로 읽지 않은 자신의 태도를 고백한다. 다른 사람보다 책을 더 많이 읽는다는 사람도 디지털 기기의 유혹을 벗어나지 못한다. 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책 속에 있는 문장을 빠르게 혹은 대충 읽고 있다. 마치 스마트폰 화면에 나온 짧은 텍스트를 훑어보듯이 말이다.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사람 중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은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시간적인 여유가 없으면 글을 대충 훑어보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제는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댈 수 없다. 나만큼, 그리고 나보다 더 책을 많이 읽는다고 생각하는 애서가 동지들이여, 우리 솔직해지자. 정말 책을 제대로 읽고 있는가? 종이책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뇌의 읽기 회로가 줄어들고 있으며 그 자리에 동영상과 짧은 글을 선호하는 뇌 회로가 생겨나고 있다. 예전과 다르게 책에 집중하지 못하고, 정독을 피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다시, 책으로는 책 안 읽는 사람과 책 읽는 사람 모두에게 경고한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사용할수록 글을 훑어보고 건너뛰는 신경회로는 강해지지만, 집중력과 성찰은 사라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매일 영상과 이미지들이 범람하는 디지털 시대에도 깊이 있는 사고 활동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종이책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저자는 종이책 읽기를 무조건 예찬하는 과거 지향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녀는 양손잡이 읽기를 제안한다. 디지털 기기를 적절히 사용할 줄 알고, 깊이 있는 사고를 유도하는 종이책에도 눈길을 주는 것이다.

 

다시, 책으로는 나에게 초심을 다지는 좋은 계기를 만들어준 책이다. 깊이 읽기를 강조하는 저자의 단순한 메시지는 나태해진 나를 깨우는 낙숫물이다. 종이책을 대충 읽으면 깊은 사고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 것이고, 그 시간 동안 여러 생각들을 모아서 재편성한 것들을 한 편의 글로 정리하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 독서는 책을 덮으면서 끝나는 종점에서 나만의 생각이 샘솟기 시작하는 출발점이다. 이 출발점을 잊어선 안 된다.

 

 

 

 

 

[] 책잡다남의 잘못을 들어 나무라다는 뜻의 동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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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3 1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9-03 17:19   좋아요 0 | URL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요, 20대가 독서 모임에 꾸준하게 참석하는 일은 드물어요. 독서모임에 호기심이 생겨서 오는 20대들은 많지만, 그들은 매번 모임에 자주 오지 않아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건데, 아무래도 요즘 20대들은 책보다는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시대에 살고 있다 보니 책을 집중해서 읽고 책에 대해 토론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아요.

2019-09-03 1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9-03 17:23   좋아요 0 | URL
그런 독서 패턴에 가끔은 질리지 않던가요? ㅎㅎㅎ 저는 책을 꼼꼼히 읽는 방식이 귀찮다고 여러 번 느낀 적이 있었거든요. 그럴 때는 정말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요. ^^;;

stella.K 2019-09-03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찔리는데...?!ㅋㅋ
습관이 무섭다고 난 완독주의였지. 비록 책을 많이 못 읽어도
완독해야 속이 풀리지 안 그러면 찜찜하더라고.
내가 독서에 취미가 붙었을 때 어느 명사가 완독을 하지 않으면
그게 무슨 책을 읽는 거냐고 지금 생각하면 권위주의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막 강하게 어필했던 게 내내 뇌리에서 떠나질 않더군.
지금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책들은 발췌독을 하던가 읽다가 포기하지만
정말 좋은 책이다 싶은 책은 완독을 하지.
누구는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라고도 하고.

cyrus 2019-09-03 17:27   좋아요 0 | URL
저도 완독해야 할지, 아니면 발췌 독서를 해야 할지 혼자서 생각이 많아질 때가 있어요. 완독하지 않으면 찝찝함을 지울 수 없거든요. 그래도 발췌 독서를 하면 편하긴 해요. 요즘에 나오는 책들은 색인이 잘 만들어져 있어서 내가 알고 싶은 내용만 찾아서 골라 읽을 수 있어요. 하지만 색인이 아예 없는 책은 어쩔 수 없이 정독해야 돼요. ^^;;

레삭매냐 2019-09-03 17: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6월 달궁모임에서 책읽기에도 훈련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제가 풀어낸 스토리가 기억이 나네요.

책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
지요.

하지만 그렇게 요약된 이야기들 혹은 짤을 보다
보면, 장편 소설 같은 스토리는 더 이상 볼 수가
없게 된다 뭐 그런 식의 이야기를 주장했던 것
같습니다.

긴 호흡으로 만나야 하는 책들이 외면 받고 있는
상황이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아서 말입니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과연
힘들게 장편을 써도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다면
누가 장편을 쓰려고 할지 전 그게 궁금했습니다.

cyrus 2019-09-03 17:40   좋아요 0 | URL
페미니즘 독서 모임이 있는 날에 멤버들을 만나면 많이 나오는 대화 주제가 ‘영화’입니다. 저도 영화가 책보다 재미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영화를 많이 보지 않는 저는 경청만 해요. 하지만 책 얘기만 나오면 수다쟁이가 됩니다. 아, 물론 상대방을 위해서 적당하게 말합니다. 너무 많이 떠벌리면 잘난 척하는 사람으로 보이기 쉽거든요. ^^;;

긴 호흡으로 만나야 할 책들은 독자들의 외면을 받기 쉽고, 이러면 소리 소문 없이 절판될 확률이 높아요.

syo 2019-09-04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임밸류가 사이러스 쯤 되니까 당당하게 ˝너 똑바로 읽고 있냐?˝ 이렇게 지를 수 있는 거지요. 호쾌하다 ㅎㅎㅎ

cyrus 2019-09-04 12:03   좋아요 0 | URL
저도 책을 제대로 안 읽고 그냥 넘긴 적이 많아요. 시간이 없어서 그냥 대충 본 것도 있고, ‘이건 다 알고 있으니 훑어보고 넘어가자’라고 생각하면서 책을 읽은 적이 있어요. 전자의 반응은 나태해서 그런거고, 후자의 반응은 오만이에요. 그래서 <다시, 책으로>을 읽으면서 저의 독서 생활에 대해서 반성했어요. ^^;;
 

 

 

낭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이다. ‘낭만이라는 단어를 보는 사람들의 생각은 다를 것이다. 나는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내가 느끼는 대로 삶을 인식하는 자유로운 내면 상태를 낭만이라고 생각한다. ‘낭만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자유.

 

낭만주의자들은 현실 너머의 세계를 꿈꾼다. 그러므로 현실이라는 세계를 받쳐주는 두 개의 기둥, 즉 이성과 논리적 사고와 친해지기 힘들어한다. 그들에게는 이 기둥들은 굵은 쇠창살이요, 현실은 거대한 감방이다. 이 현실의 감방을 탈출하는 유일한 돌파구는 감방 너머의 세계를 상상하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낭만주의자는 현실을 버텨낼 수 있는 새로운 활력소를 얻는다.

 

낭만주의는 이성보다는 감성을 추구하며 개인의 체험과 주관을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의미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현실과 상상, 이성과 감성, 주지(主知)와 주의(主意)를 철저히 분리하지 않았으며 현실 도피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 살아가지 않았다. 특히 독일의 낭만주의 지식인들은 현실을 벗어나야 할 세계가 아니라 변화해야 할 세계로 인식했다. 그리고 그들은 현실을 변화할 수 있는 실천적인 방안에 대해 진지하게 모색했다.

 

1789년 프랑스혁명에 대한 소식은 바람을 타면서 유럽 전역으로 전해진다. 그 당시 독일 지식인들은 프랑스혁명을 새로운 시대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해석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새로운 시대는 인간이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시대이다. 자유를 동경하는 독일 낭만주의자들은 프랑스혁명에 열광했으며 혁명을 지지했다. , 물론 혁명을 소극적으로 지지하는 낭만주의자도 있었다. 또 혁명의 과격함에 충격을 받아 혁명을 지지하는 입장을 철회하거나 혁명 세력을 비판하는 낭만주의자도 있었다. 어쨌든 독일 낭만주의자들은 현실에 발을 딛고, ‘자유로운 공기를 마시면서 살고 싶어 했다.

 

 

 

 

 

 

 

 

 

 

 

 

 

 

 

 

* [절판] 뤼디거 자프란스키 낭만주의: 판타지의 뿌리(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2012)

 

 

 

 

 

 

 

 

 

 

 

 

 

 

 

* 에른스트 호프만 모래 사나이(창비, 2017)

* 에른스트 호프만 모래 사나이(지만지, 2011)

* 에른스트 호프만 모래 사나이(문학과지성사, 2001)

 

 

 

낭만주의를 감성과 상상을 중시하는 사상또는 현실 도피적인 사상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또 낭만주의자들을 지나치게 감상적인 사람으로 취급한다. 이러한 단순한 생각은 낭만주의와 낭만주의자들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그런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는 책이 뤼디거 자프란스키(Rüdiger Safranski)낭만주의: 판타지의 뿌리(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책의 저자는 독일에서 시작된 낭만주의와 그에 영향을 받아 생긴 낭만적인 것의 정의를 구분한다. ‘낭만적인 것이란 특정한 시기에 국한되지 않은 시대정신이자 문화이다. 저자는 독일 낭만주의의 종착점에 서 있는 작가로 호두까기 인형모래 사나이를 쓴 에른스트 호프만(Ernst Hoffmann)을 지목한다. 호프만은 현실과 환상이 공존하는 세계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의 내면 상태를 묘사한 이야기를 주로 썼다.

 

호프만 이후에 이어져 온 낭만주의적 문화는 낭만적인 것으로 이름 붙여 분류할 수 있다. 독일 낭만주의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남긴 지적 전통과 문화적 유산들은 다음 세대에 이어져 내려왔다. 예를 들어 야성과 광기를 마음껏 발산하는 축제로 알려진 고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축제(city dionysia)에 영감을 얻은 니체(Nietzsche)의 디오니소스 예술관과 게르만 신화(Germanic mythology)와 중세 문학을 소재로 한 바그너(Wagner)의 음악들 모두 낭만적인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비극의 탄생(아카넷, 2007)

* 프리드리히 니체 비극의 탄생. 반시대적 고찰(책세상, 2005)

 

 

 

 

 

 

 

 

 

 

 

 

 

 

 

* 프리드리히 니체 우상의 황혼(아카넷, 2015)

* 프리드리히 니체 바그너의 경우. 우상의 황혼. 안티크리스트. 이 사람을 보라. 디오니소스 송가. 니체 대 바그너(책세상, 2002)

* 정영도 니체 vs 바그너(세창출판사, 2019)

 

 

 

그러나 독일 낭만주의에서 시작된 낭만적인 것민족주의와 전체주의를 만나면서 삐딱 선을 타게 된다. 바그너는 게르만 민족 우월 주의자이자 반유대주의자다. 서른 한 살의 니체는 열렬한 바그너 숭배자가 되어 자신의 책 비극의 탄생에서 바그너를 찬양한다. 니체는 바그너의 음악에 고대 그리스 비극의 정신인 디오니소스적 예술관과 이성 중심의 아폴론적 예술관이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니체는 바그너의 종교적 편견과 반유대주의에 실망하고, 그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니체 대 바그너를 썼다. 또 니체는 우상의 황혼에서 바그너를 음악을 병들게 하는 자라고 비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반유대주의를 비판했던 니체의 글과 사상은 유대인들을 학살한 히틀러(Hitler)에게 영감을 주었다. 니체는 자기 자신을 극복할 수 있고, 고통을 주는 세계를 긍정할 수 있는 인간상으로 위버멘쉬(Übermensch)를 제시한다. 그러나 히틀러는 이 니체가 제시한 인간상을 초인(超人)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망상에 가까운 히틀러의 왜곡된 해석은 자신을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가진 막강한 권력자로 부각시켜주는 지적 근거로 사용되었다. 정신병이 발병한 니체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돌본 누이동생 엘리자베트(Elisabeth)는 반유대주의자와 결혼했고, 그녀는 니체의 책과 유고를 반유대주의자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으로 해석하여 편집했다. 이렇다 보니 오랫동안 니체는 반유대주의자로, 그의 책에 히틀러가 좋아한 반유대주의적 내용이 적혀 있다는 식으로 잘못 알려졌다. 그리고 히틀러와 그의 추종자들은 게르만 민족의 정신을 잘 구현한 음악으로 바그너의 작품들을 꼽았다. 20세기 초에 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 그리고 파시즘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낭만적인 것은 낭만주의의 부작용이다.

 

 

 

 

 

 

 

 

 

 

 

 

 

 

 

 

* 이본 셰라트 히틀러의 철학자들(여름언덕, 2014)

* [절판] 괴테 괴테의 프랑스 기행(인화, 1998)

 

 

 

히틀러의 철학자들의 저자 이본 셰라트(Evon Sherat)는 히틀러의 나치즘에 사상적 근거를 제공한 지식인들에게 비판이 가해지지 않는 현실을 비판한다. 히틀러가 정권을 완전히 잡기 직전에 독일의 지식인들은 나치즘(Nazism)정치적 낭만주의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나치들은 게르만 민족과 민족문화의 우수성을 강조하기 위한 지적 및 문화적 도구로 낭만주의를 지목했고 특별히 관심을 가졌다. 독일 낭만주의 작가들의 책은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한 제3제국 시대의 필독서가 되었다. 낭만주의: 판타지의 뿌리는 독일 낭만주의에서 시작된 제3제국 시대의 낭만적인 것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설명한다. 자프란스키는 책의 머리말에 낭만적인 것은 병적인 것이라고 말한 괴테(Goethe)의 말을 인용한다. 괴테도 처음에 프랑스혁명을 지지했다. 그러나 자유해방이라는 이름으로 폭력과 약탈을 자행하는 혁명 세력의 행보를 목격한 이후로 혁명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괴테의 불길한 걱정은 틀리지 않았다. 갑갑한 현실 세계를 현실 너머의 세계로 만들려는 히틀러의 애착은 혁명에 흥분한 독일 낭만주의 지식인들이 남긴 불행한 유물이다. 위험한 낭만주의자는 자신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그 욕망을 위해 또 다른 개인의 자유와 삶을 무참히 짓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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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9-02 2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낭만은 로망의 일본식 음역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일본의 것을 차용할 바에야 차라리
원어를 사용하는 게 어떨지 싶네요.

그나저나 이데올로기의 왜곡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니체의 위버멘쉬를 퓨어러에 갖다
대는 방식의 기술적 접근에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cyrus 2019-09-03 11:45   좋아요 0 | URL
좋은 의견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다음부터는 낭만주의를 ‘로맨티시즘(romanticism)’이라고 써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