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냥이로 사회학 하기 - 혹은 나는 어떻게 고양이를 사랑하도록 배웠는가
권무순 지음 / 오월의봄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모님의 집에 매일 놀러 오는 고양이가 있다. 그 친구의 이름은 아직 없다. 어디서 왔는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주1] 











이름 없는 고양이는 제 방안을 거닐 듯 돌아다닌다.[주2] 한참 서성거리다가 문 앞에서 눕는다. 어머니가 문을 열고 나오면 밥을 달라고 야옹야옹 운다







반년 동안 밥을 얻어먹었는데도 고양이는 어머니의 손길을 무서워한다. 어머니는 지금까지도 고양이를 한 번도 쓰다듬지 못했다. 그런데 고양이가 착하다. 어머니가 자신을 만지려고 하면 발톱을 내밀지 않고, 하악질도 하지 않는다. 뒷걸음치면서 피하기만 한다어머니가 밥을 주면 가까이 다가와서 받아먹는다고양이는 어머니를 알아본다. 길을 가다가 어머니를 만나면 졸졸 따라다닌다정말 이상한 고양이다.[주3] 보면 볼수록 정말로 기묘(奇妙/奇猫)해.







이름 없는 고양이도 가족이 있다. 어떤 날은 거의 다 자란 새끼 고양이와 같이 밥 먹으러 온다. 맛있는 음식을 새끼에게 주고 먹지 못하니 그다지 살이 찌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런대로 만족하면서 부모님 집에서 이름 없는 고양이로 살아갈 작정인가 보다.[주4] 


무사태평해 보이는 저 고양이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에 고민거리가 있을 것이다.[주5] 인간과 함께 사는 집고양이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자유로운 길고양이로 살아갈 것인가. 이름 없는 고양이는 인간에게 애교를 부리는 반려묘도, 인간을 극도로 경계하는 야생 고양이도 아니다. 나는 이 기묘한 친구를 어떻게 봐야 할까?







길냥이로 사회학 하기는 고양이를 동물이 아닌 행위를 하는 주체로 다시 보게 만든다. 이 책의 저자는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STS)을 연구했다. 과학기술학은 과학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자연과 문화, 기술과 인간 등의 이분법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 두 가지 개념의 얽힌 관계와 연결망에 주목하는 학문이다행위를 하는 주체는 단독으로 행위를 하는 독립된 실체를 뜻하지 않는다. 또 다른 주체가 어떤 행위를 하는 데 영향을 주는 능동적 존재이다. 비인간도 행위를 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 과거의 이분법은 인간과 비인간을 철저히 구분하는 인간중심주의를 답습했고, 과거의 사회학은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만 분석했다. 과학기술학은 이 두 가지 한계를 비판하여 비인간의 행위성(agency)에 주목한다. 비인간의 행위성은 다른 인간과 비인간의 행위를 변화시킨다







과학기술학을 정립한 철학자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는 인간과 비인간 모두 행위자(actor)’로 인식했고, 이 세계가 인간 행위자와 비인간 행위자들이 얽힌 연결망(network)이 만든 결과물이라고 주장했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복잡한 연결망을 행위자 연결망 이론(actor-network theory, ANT)’이라고 한다.


ANT에 따르면 길고양이도 비인간 행위자. 길고양이는 자신을 괴롭히지 않는 인간에게 접근해서 먹이를 구한다. 나의 어머니는 길 위에 떠도는 강아지를 집으로 데려와서 함께 살았고, 고양이보다 개를 더 좋아한다. 시골에 정착하면 반려견을 키울 거라고 말했는데, 지금은 고양이 집사가 되었다. 이름 없는 고양이가 어머니의 인생 목표(행위 목표)를 수정하게 했다. 처음부터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거나 고양이를 길러본 적이 없는 인간이 주기적으로 길고양이에게 밥을 준다면 그 사람은 길고양이를 만나서 행위자가 된 것이다부모님의 집은 이름 없는 고양이의 맛집이자 편히 쉴 수 있는 안식처다인간 행위자인 어머니와 비인간 행위자인 길고양이는 한집에서 살고 있다.







저자는 길고양이가 비인간 행위자라면, 그들을 우리와 협상하는 대상으로 인정해야 하며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길고양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행위를 한다. 인간은 길고양이의 행위성을 바라보면서 동등하게 대해야 한다. 더 나아가 길고양이들과 함께 정치 공동체를 형성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길고양이를 정치적 주제로 보는 저자의 견해가 지나친 비약이라고 지적하는 독자들이 있다. 과학기술학이 낯선 독자들은 정치하는 길고양이가 터무니없는 생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저자는 인간과 비인간이 포함된 공동체를 뜻하는 사물의 의회(parliament of things)’를 언급만 했는데, 이 생소한 개념이 나오게 된 배경을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해야 했다. ‘사물의 의회는 라투르가 자신의 책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We have never been modern, 홍철기 옮김, 갈무리, 2009)에 제시한 용어다.











이름 없는 고양이는 집 밖에서 생활하는 반려종(companion species) 또는 반려(하는 행위)이다. ‘companion’빵을 함께 먹는다라는 뜻을 품은 라틴어 쿰 파니스(cum pains)’에서 생긴 단어다.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는 동료로서 빵을 나누는 존재를 반려 종이라 했다. 반려종은 단순히 음식을 같이 먹을 수 있는 동료가 아니다. 서로 돌보고,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면서 관계를 맺는 동반자다. 이름 없는 고양이는 어머니의 자식이 아니다. 기묘한 친척(odd kin)이다. 해러웨이가 강조한 친척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없는 존재다. 이름 없는 고양이는 두 발로 걷는 친척에 관심이 많다. 인간 친척과 함께 사는 법을 잘 아는 묘수(妙手/猫手).








88일 세계 고양이의 날을 맞아

이름 없는 고양이를 위해 글을 쓴

cyrus의 주석








[1]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첫 문장을 패러디했다.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송태욱 옮김, 16)









[2, 3]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고양이1연과 마지막 연의 구절을 인용했다. 오늘 88일은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을 번역한 황현산 선생의 8주기.

 

 

내 머릿속을, 강하고, 부드럽고, 매혹적인,

아름다운 고양이 한 마리가.

제 방안을 거닐 듯 돌아다닌다.

녀석이 야옹거려도 그 소리 겨우 들리고.

 

[중략]

 

너의 목소리밖에는, 신비로운 고양이.

세라핀 같은 고양이, 이상한 고양이.

내 안에서는, 한 천사 안에서처럼

모든 것이 미묘하고 조화롭구나!

 

(황현산 옮김, 102~103)






[주4, 5]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나온 문장들을 패러디했다.



* 36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지 못하니 그다지 살이 찌지는 않았지만 절름발이도 되지 않고 그럭저럭 건강하게 그날그날을 살아가고 있다. [중략] 그런대로 만족하면서 평생 이 선생 집에서 이름 없는 고양이로 살아갈 생각이다.

 

 

* 612


 무사태평해 보이는 이들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점 예찬 - 서점 멸종 시대에 쓰는 좋은 서점론
제프 도이치 지음, 장혜인 옮김 / 니라이카나이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종이 480이 만나서 모이면 1(ream)이다림은 종이를 셀 때 쓰는 단위서점에 있는 모든 책의 종이를 세면 몇 림일까? 종이를 일일이 세는 것은 엄청 힘들다종일 해서 끝나는 일이 아니다종이의 원료는 나무의 섬유질을 추출해서 만든 목재 펄프(wood pulp). 펄프가 된 나무들을 모으면(wood)을 만들 수 있다. 서점의 책들은 숲의 흔적이다. 종이책이 된 (書林)의 자취가 있 서점은 서림(書林)이다.


서점은 다양한 종류의 책이 주렁주렁 달린 숲이다. 서점을 찾는 애서가는 책 숲을 마음껏 둘러본다(browse)종이책이 그득한 서점은 서림이다애서가들의 발길이 잦은 서점은 좋은 서림이다. 서림에 매료된 애서가는 서가를 둘러보면서 책을 훑어본다(browse).







미국의 비영리 서점 세미너리 코옵(Seminary Co-op)책을 훑어보는 경험을 만끽할 수 있는 서림이다. 세미너리 코옵을 운영한 제프 도이치(Jeff Deutsch)의 서점 예찬점점 더 귀해지는 좋은 서점의 특징들을 소개한 책이다. 그는 좋은 서점에 가면 책을 훑어보려는 충동이 생긴다고 말한다훑어보기(browsing)책을 곱씹거나 되새김질하는 일이다. 책을 훑어보는 독자는 책을 파고들면서(digging) 먹는 책벌레와 같다. 책벌레는 서림을 갉아먹는 해충이 아니다책벌레는 서림을 맛있게 먹을 줄 안다.







* 리디아 데이비스, 서제인 옮김 세부 속으로: 더 자세한 쓰기, 사라짐의 쓰기에 대하여(에트르, 2026)

 

* 제임스 우드, 노지양 옮김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 삶과 문학, 읽고 쓰기에 관한 네 번의 강의(아를, 2025)

 

* 제나 히츠, 박다솜 옮김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 내면의 삶을 기르는 배움에 대하여(에트르, 2025)




똑똑한 지성인(知性人)이 좋은 책벌레가 되는 건 아니다. 좋은 책벌레는 일독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을 찾는 일을 성실히 하는 지성인(至誠人)이다. 바지런한 책벌레는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는 책을 발굴한다(dig)독자들의 눈빛을 받아본 적이 없는 평범한 책은 서림에 어울리지 않는 잡초(雜草)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책벌레는 잡초 속으로(Into the Weeds) 스며든다


소설가 리디아 데이비스(Lydia Davis)는 에세이  《세부 속으로(원제: Into the Weeds)에서 어떤 것에 신경 쓰이면(bother), 그것을 글감으로 삼아 글을 쓴다고 밝혔다. 마찬가지로 책벌레는 신경 쓰이는 주제를 만나면 그 주제와 관련된 책들을 모아서 탐독한다독자들이 신경 쓰지 않는 책도 책벌레는 꼼꼼하게 관찰하듯이 읽는다외골수 책벌레는 책에 적힌 사소한 단어를 대충 보지 않는다. 단어를 자세하게 파고들어(Into the Weeds) 자신만의 생각을 펼친다


문학 비평가 제임스 우드(James Wood)는 독자를 침묵의 비평가라고 했다. 책벌레는 자기 의견을 말할 줄 아는 혀(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 136쪽)를 가진 침묵의 비평가다침묵의 비평가는 자신만의 잡초(雜抄)를 직접 써서 펼친다. 잡초(雜抄)가 무성한 좋은 서림은 독자들의 잡다한 생각과 취향이 가지가지 피어 있다


평범한 서점의 주인은 소매업자처럼 일한다. 그들은 책을 판매하는 일에 능숙하다. 자기한테 이익이 되는 일만 한다책을 사는 손님들을 끌어모으려고 서점에 잘 팔리는 책을 갖춘다. 상품성이 떨어지고 수익성이 낮은 책을 거들떠보지 않는다. 잘 팔리지 않는 책을 찾는 독자를 하대한다.


좋은 서림의 주인은 애서가, 애독자이자 책벌레 애호가이기도 하다. 애서가는 잘 팔리지 않는 책의 매력을 눈여겨본다. 책을 못 팔아도 크게 아쉬워하거나 초조해하지 않는다. 은은한 매력이 있는 책을 알아보는 책벌레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린다책벌레 애호가인 서림의 주인은 쓸모없는 지식이나 주제에 파고든 책벌레를 쫓아내지 않는다. 책벌레의 무용한 공부와 독서를 북돋아 준다공부하는 책벌레는 호기심과 궁금증이 많고, 배움을 사랑하는 독자다(제나 히츠,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 226쪽)


서림은 더 많이 배우려고 하는 학생과 같은 독자들을 양성하는 곳(seminary)이다세미너리 코옵은 상품성과 수익성을 중시하는 서점이 아니다. 무용한 지식을 공부할 수 있는 서점이다제프 도이치는 효율성이 떨어지는 서점 운영 방식을 고수한다. 그는 오히려 책벌레를 좋아하는 서점과 배움을 좋아하는 독자가 지닌 비효율성이 평가절하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세미너리 코옵처럼 현명한 비효율성을 추구하는 서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좋은 서림의 주인은 책의 판매 부수가 저조해도 책을 훑어보는 책벌레들이 많이 와주길 바란다. 서점 주인은 책을 사지 않는 책벌레가 달갑지 않다. 심지어 책벌레의 관심사와 취향을 무시한다. 하지만 서림의 주인은 책벌레를 서림의 주인공으로 격상시킨다책벌레의 독서 취향이 생소하고, 책벌레의 공부 방식이 서툴러도 지속적으로 격려한다서림은 비효율적으로 살아가는 책벌레를 위한 안식처다.









19281121일 조선일보에 연재된 

벽초 홍명희의 장편소설 임꺽정1




서림(徐林)은 임꺽정의 책사(策士). 관군에게 사로잡힌 서림은 임꺽정을 배신했다. 책사(冊肆)는 잘 팔리는 책들만 진열한() 서점이다. 책사(策士)처럼 행동하는 서점 주인은 만듦새가 부족한 책들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 서림(徐林)이 책사(冊肆)를 운영했으면 독자를 기만하면서 책을 팔았을 것이다.


서림(書林)은 독자를 배신하지 않는다. 좋은 서림은 베스트셀러 목록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단 한 명의 독자가 알았으면 하는, 은은한 매력을 지닌 책들의 목록을 만든다. 좋은 서림은 유명한 지식인, 출판인, 북튜버들이 추천한 책들만 진열하지 않는다. 서림을 드나드는 침묵의 비평가인 무명의 독자들이 추천한 책을 읽고, 큐레이팅한다. 서림에 정직하게 책을 소개하는 주인과 정독하는 독자들이 살고 있다.








서점 예찬에 나오는 책을 가지고 있는 

cyrus가 만든 주석




[출판사에 관한 주석]


니라이카나이2020년에 등록되어 서점 예찬을 포함한 총 5권의 책을 만든 출판사. 니라이카나이(ニライカナイ)오키나와섬이 있는 류큐 열도(난세이 제도)의 토착 민족 류큐인(琉球人)의 전통 설화에 묘사된 낙원이다. 이 낙원은 바다 저 멀리 동쪽에, 혹은 바다 밑바닥에 있다고 여겨진다. 오키나와현에 낙원의 이름에서 따온 다리가 있다.





 


니라이카나이 출판사 대표는 오키나와에서 2년간 생활했는데, 우리나라로 돌아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 니라이카나이 다리였다고 밝혔다. 그래서 책과 사람을 잇는 다리와 같은 출판사가 되겠다는 마음을 담아 출판사 이름을 니라이카나이로 정했다고 한다.



(출처: 니라이카나이 출판사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niraikanai_books/)






책 마지막에 이 책에 나오는 책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참고문헌 목록이 있다. 서점을 운영한 저자의 추천 도서 목록으로도 볼 수 있는데, 애서가가 흥미를 느낄만한 책들이 포함돼 있다. 목록에 국역본 제목이 없는 책, 저자 이름과 번역자 이름이 빠진 책, 출판사 이름이 잘못 적힌 책이 있다.





* 272





아리스토텔레스 선집, 조너선 번즈 [주1]


도서관(Library: An Unquiet History), 매슈 배틀스 [주2]






[주1] 아리스토텔레스, 김재홍 · 김헌 · 유재민 · 임성진 · 조대호 함께 옮김 아리스토텔레스 선집(도서출판 길, 2023년, 품절


국역본은 테런스 어윈(Terence Irwin)과 게일 파인(Gail Fine)이 편집한 아리스토텔레스 선집(1995)을 참고한 책이다. 그리스 고전학자들이 많이 참고하는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은 독일의 문헌학자 아우구스트 이마누엘 베커(August Immanuel Bekker)가 편집한 판본(Corpus Aristotelicum, 아리스토텔레스 저작집, 1830~1870)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선집베커의 아리스토텔레스 저작집에 실린 주요 저서들의 일부를 발췌해서 번역한 것이다.




[주2] 매튜 베틀스, 강미경 옮김 도서관, 그 소란스러운 역사: 지식의 생성과 소멸의 은밀한 기록(지식의숲, 2016년, 절판)






* 273





영웅(On Heroes), 토머스 칼라일 [주3]


[주3] 토머스 칼라일, 박상익 옮김 영웅 숭배론(한길사, 2023)






* 273





연설(Orations), 키케로 [주4]


[주4] 키케로, 전영우 옮김 연설가에 대하여: 로마의 실천 변론법(민지사, 2013년, 절판)






[곧 나올 책] 키케로, 이선주 옮김, 연설가론(아카넷)






* 274





쓸모없는 지식의 효용, 에이브러햄 플렉스너 [주5]





[주5] 에이브러햄 플렉스너 · 로버르트 데이크흐라프 함께 지음, 김아림 옮김 쓸모없는 지식의 쓸모: 세상을 바꾼 과학자들의 순수학문 예찬(책세상, 2020년, 절판)


에이브러햄 플렉스너(Abraham Flexner)프린스턴고등연구소(Institute for Advanced Study, IAS)의 설립자이자 초대 소장이다. 학자들이 무용한 지식을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순수학문 연구소. 서점 예찬의 역자는 ISA 고급 학문연구소로 번역했다. 로버르트 데이크흐라프(Robbert Dijkgraaf)는 네덜란드의 이론물리학자로, 9대 프린스턴고등연구소 소장(2012~2022)으로 재직했다. 여담으로, 3대 프린스턴고등연구소 소장은 로버트 오펜하이머(Robert Oppenheimer).

 

번역본 제목으로 정해진 쓸모없는 지식의 쓸모는 플렉스너가 쓴 에세이의 제목이다. 이 글은 무용한 연구가 왜 중요한지를 알려준다. 번역본에 로버르트 데이크흐라프의 에세이 내일의 세계도 수록되었다.






* 275





시간 맥동의 비밀(The Secret Pulse of Time), 스테판 클라인(Stefan Klein) [주6]


[주6] 슈테판 클라인, 유영미 옮김 안녕하세요, 시간입니다: 심리학과 뇌과학이 파헤친 시간의 비밀(뜨인돌, 2017년, 절판)


슈테판 클라인, 유영미 옮김 시간의 놀라운 발견: 시간의 미스터리에 빠진 사람들을 위한 시간 사용 설명서(웅진지식하우스, 2007년, 절판)






* 275





철학자들의 생애,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주7]






[주7]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김주일 · 김인곤 · 김재홍 · 이정호 함께 옮김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나남출판, 2021년, 전 2권)






* 276





황금 노트북, 도리스 레싱 [주8]


[주8] 도리스 레싱, 권영희 옮김 금색 공책(창비, 2019년, 전 2권)


도리스 레싱, 안재연 · 이은정 함께 옮김 황금 노트북(, 2007년, 전 3권, 절판)






* 277





백과전서, 드니 디드로, 장 르롱 달랑베르 [주9]





[주9] 드니 디드로, 이충훈 옮김 백과사전(도서출판b, 2014)


정은주 옮김 《백과전서 도판집(프로파간다, 2017년, 전 5권)



35권으로 구성된 <백과전서>(Encyclopédie) 디드로(Denis Diderot)달랑베르(Jean-Baptiste Le Rond d’Alembert)가 편집자로 참여했고, 여러 명의 계몽사상가가 7만 개 넘는 항목을 작성했다. 1751년에 1권이 출간되었고, 35권은 1772년에 출간되었다. <백과전서> 서문은 달랑베르가 썼다.

 

백과전서 도판집원전 <백과전서> 17권과 과학, 인문, 기술에 관한 도판집이라는 부제가 달린 도판집 11권을 번역한 책이다백과사전》은 원전 <백과전서> 5권에 실린 디드로의 백과사전항목 전문을 번역한 책이다.

 






* 278





참깨와 백합 그리고 독서에 관하여, 유정화 옮김, 민음사, 2018 [주10]


[주10] 저자 이름이 빠졌다<참깨와 백합>존 러스킨(John Ruskin)의 강연문이며 유정화가 번역했다. <독서에 관하여><참깨와 백합>을 번역한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가 쓴 서문이다. <독서에 관하여>는 불문학자 이봉지가 번역했다.






* 278






의식은 육체의 굴레에 묶여, 수전 손택, 김선형 옮김, 고양, 2018 [주11]





[주11] 출판사 이름이 ‘고양이 아니라 이후의식은 육체의 굴레에 묶여다시 태어나다》(김선형 옮김, 이후, 2013년)수전 손택(Susan Sontag)1947년부터 1980년까지 썼던 일기와 노트에 기록된 잡문을 엮은 책이다. 두 권 모두 절판되었다.

 






* 279





흑인 소년, 리처드 라이트 [주12]












[주12] 리처드 라이트, 정병조 옮김, 흑인 문학전집 1(휘문출판사, 1965년, 절판), 수록된 작품명은 블랙 보이』다. 


리처드 라이트, 정병조 옮김, 블랙 보이(미문출판사, 1968년, 절판)


리처드 라이트, 이충률 옮김, 깜둥이 소년(푸른미디어, 1998년, 절판)






* 272





그웬돌린 브룩스(Gwendolyn Brooks) [주13] 









[주13] 그웬돌린 브룩스(1917~2000)는 미국의 시인이다. 1950년에 퓰리처상 시 부문(Pulitzer Prize for Poetry)을 받았다. 퓰리처상을 처음으로 수상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다. 흑인 문인들의 시와 에세이, 희곡을 모은 흑인문학전집 5브룩스의 시 3(모성애, 앞뜰의 노래, 그대가 일요일을 잊었다면)이 수록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부 속으로 - 더 자세한 쓰기, 사라짐의 쓰기에 대하여
리디아 데이비스 지음, 서제인 옮김 / 에트르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소한 것들은 가볍다

보잘것없는 것들은 가엽다

이 자그마한 것들은 잊히면 시나브로 사라진다.


무미건조한 것들은 무용하다.

무무(貿貿)한 것들은 무시당한다.

이 하찮은 것들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시나브로 사라진다.


점점 잊히는 것들에 대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진지한 관찰자’는 세심한 관심을 드러낸다. 









세상을 진지하게 관찰하는 사람은 호기심이 많다. 그들은 자그맣고 하찮은 것들을 열심히 주우러 다닌다영국의 문학 비평가 제임스 우드(James Wood)우리가 지나치기 쉬운 것들세부 사항(detail)’이라고 했다.


세부 사항은 관찰자를 만나고 싶다. 세부 사항은 원래 조용한 편이지만, 자신을 알아준 관찰자를 만나면 수다스러워진다관찰자의 눈빛을 느낀 세부 사항이 말을 건넨다. 



날 만져 주세요.” 



우드는 세부 사항을 우리에게 만져달라고 애원하는 삶의 조각으로 비유한다. 호기심이 많은 관찰자는 삶의 조각들을 모은다.












호기심이 솟아나면 세부 사항을 궁금해한다. 진지한 관찰자는 쓸모없는 세부 사항이 궁금해서공부한다. 미국의 철학자 제나 히츠(Zena Hitz)는 호기심을 죽이면서 실용성만 챙기는 공부를 비판한다. 그녀는 쓸모없는 것(지식)을 공부하는 관찰자 자유롭게 배움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격찬했다. 궁금증이 많은 관찰자는 삶의 조각들을 사랑한다. 이들은 중요하지 않은 것에 주의를 기울인다.









진지한 관찰자가 글을 쓰면 무색한 세부 사항에 선명한 빛깔이 생긴다미국의 작가 리디아 데이비스(Lydia Davis)는 자신의 글쓰기를 잡초가 무성한 곳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행위로 비유한다‘into the weeds(잡초 속으로).’ 이 관용구는 더 자세하게 들어가다라는 뜻도 있다잡초는 성가신(bother) 존재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잡초를 관찰하는 사람은 잡초의 매력을 알려고 노력한다. 진지한 관찰자는 성가신 것에 궁금증을 느끼면 그것에 신경을 쓴다(bother)진지한 관찰자는 보기 좋고, 쓸모 있는 것들만 찾는 남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데이비스는 신경 쓰이는삶의 조각들을 주워서 노트에 담는 작가다. 그녀는 자신의 눈앞에 아른거리는 삶의 조각이 신경 쓰이기 시작하면 글을 쓴다고 밝힌다. 



날 쓰다듬어주세요.”



삶의 조각을 여러 번 쓰()다듬으면 멋진 글이 된다글의 소재가 될 만한 삶의 조각은 작가가 직접 찾을 수 있지만, 때로는 예기치 않게 불쑥 나타나기도 한다그리고 자주 봐서 흔한 사물도 자신에게는 특별한 삶의 조각이 된다전업 작가가 아니어도 삶의 조각을 찾아서 글을 쓸 수 있다


데이비스는 무용한 글쓰기를 해야 하는 이유를 강조하기 위해 조지 스터트(George Sturt)의 책 <수레바퀴 제작인의 작업실>(The Wheelwright’s Shop)을 재조명한다스터트는 수레바퀴를 만드는 일을 하면서 틈틈이 소설을 썼다그는 사람들이 궁금해하지 않는 이야기, 즉 수레바퀴를 만드는 과정과 그 밖의 공예 기술들을 꼼꼼하게 기록했다<수레바퀴 제작인의 작업실>은 스터트의 소설들보다 더 유명해진 회고록이다. 이 책은 작가가 살았던 영국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 1837~1901)의 공예 기술을 알려주는 귀중한 사료가 되었다. 스터트는 보잘것없는 세부 사항을 관찰한작가.


똑똑하고, 표현의 기교가 뛰어난 사람만이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 자신의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을 애지중지하는 마음이 있으면.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진지한 관찰자,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알라딘 램프에 갇혀 16년째 무용한 글쓰기를 한

cyrus가 만든 주석





* 32




 

 ‘나는 내 어떤 책들을 어떻게 썼는가[주1]는 언제나 내 머릿속에 맴도는 책 제목이다. (중략) 이 제목은 프랑스 작가 레몽 루셀 에세이집 제목이면서 표제작 제목이기도 하다. 방금 그것을 찾아본 나는 존 애시베리가 루셀을 경유해 그 에세이집에 다시금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된다.







[1] 레몽 루셀(Raymond Roussel)독특한 방식으로 글을 쓴 프랑스의 작가다. 그의 실험적인 글쓰기는 당대의 독자들로부터 외면받았다. 루셀은 자신의 글쓰기에 관한 생각을 정리한 <나는 내 어떤 책들을 어떻게 썼는가>라는 글을 썼고, 자신이 죽은 후에 출간할 것을 요청했다







루셀의 대표작은 아프리카의 인상(송진석 옮김, 문학동네, 2019)로쿠스 솔루스(송진석 옮김, 문학동네, 2020). 국역본 아프리카의 인상에 부록으로 <나는 내 책 몇 권을 어떻게 썼는가>가 실려 있다. 루셀의 작품을 진지하게 분석한 학자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루셀에 심취한 푸코는 1963년에 <레몽 루셀>을 출간했다. 이 책의 영문판 제목은 <죽음과 미로>(Death and the Labyrinth: the World of Raymond Roussel)미국의 시인 존 애시베리(John Ashbery)는 루셀의 열렬한 독자이자 루셀의 작품을 영어로 옮긴 번역자로, <죽음과 미로> 서문을 썼다.







푸코의 <레몽 루셀>은 국내에 번역 출간되지 않았다. 루셀이 언급된 또 다른 철학서질 들뢰즈(Gilles Deleuze)차이와 반복(김상환 옮김, 민음사, 2004)이다. 들뢰즈는 푸코의 <레몽 루셀>을 참조했다. 










[2] 제임스 우드의 비평 에세이집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에 실린 두 번째 글은 진지한 관찰이다. 이 글에 리디아 데이비스의 단편소설 <문법 질문>(Grammar Questions)이 언급된다(177쪽). <문법 질문>작품집 불안의 변이》(강경이 옮김, 봄날의책, 2023년)에 수록되어 있다(제목은 문법 질문들이다). 불안의 변이<푸코와 연필>(Foucault and Pencil)이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이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lanca 2026-07-06 0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임스 우드 책 읽었는데 리디아 데이비스 언급된 것도 잊고 있었네요. 연결 지점 배워갑니다. 전 무엇보다 저 <수레바퀴제작인의 작업실> 읽어보고 싶어요.

cyrus 2026-07-13 06:55   좋아요 1 | URL
저는 존 애시베리의 시집이 출간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생소한 이름이라서 알아봤는데, 노벨 문학상 빼고 퓰리처상, 전미도서상을 받은 시인이라고 하더군요.
 








 의심할 수 있는 자유는 과학에서 중요한 문제이며, 다른 분야에서도 그렇다고 나는 믿는다. 이 자유는 오랜 투쟁의 결과로 얻게 된 것이다. 의심할 수 있도록, 확신하지 않도록 허락받은 것 자체가 투쟁이었다. (중략) 끊임없이 의심하는 자유의 가치를 알리고, 의심이 결코 공포의 대상이 아니며, 인류의 새로운 잠재 능력을 가능케 하는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다음 세대들에게 가르쳐야 할 책임을 느낀다. 무엇이든 확실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개선의 여지는 언제든지 열려 있다. 나는 미래 세대들에게 바로 이 자유를 요구하고 싶다.

 


(리처드 파인만, 과학이란 무엇인가중에서, 44~45)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는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 불완전한 텍스트를 대하는 방식을 제시한다.



 텍스트는 불완전하다. 항상 어딘가 빠진 부분이 있다. 빈 부분에 대해서는 해석이 필요하다.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중에서, 203쪽) 



김 교수가 말한 불완전한 텍스트는 해석에 관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경전을 뜻한다. 예를 들면 성경, 유대인 경전 <탈무드>, 유교 경전이다.
















* 김상욱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변화의 시대,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동아시아, 2026)




학술 논문뿐만 아니라 과학 도서, 과학을 주제로 한 칼럼도 불완전한 텍스트과학자들은 과학적 견해가 객관적인 사실에 기반한 것인지 검증한다과학자들도 가끔 틀리기도 하고, 잘못된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과학 텍스트가 불완전하다고 해서 과학이 부실한 학문을 뜻한다는 것은 아니다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Richard Feynman)은 표현을 빌리자면, 과학은 의심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릴 수 있으며 스스로 교정하는 학문이다.

 







김 교수는 자신을 소개할 때 모든 것에 의심을 멈추지 않고 자신의 이론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과학적 태도를 널리 알린다고 했다. 이 과학적 태도가 바로 회의주의(skeptic).
















* 마이클 셔머, 류운 옮김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바다출판사, 2007)


* [절판] 스켑틱 협회 편집부 엮음 《시간 여행은 가능한가: 한국 스켑틱 1호(바다출판사, 2015)


* 스켑틱 협회 편집부 엮음(마이클 셔머, 제임스 랜디 외 여러 명의 필자 참여), 김보은 · 류운 · 하인해 외 옮김 나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 스켑틱 10주년 베스트 에세이(바다출판사, 2025)




회의주의자는 모든 견해를 불신하거나 특정 신념에만 마음의 문을 닫는 사람이 아니다. 마이클 셔머(Michael Shermer)는 국내에서 발행된 지 11년이 된 잡지 <Skeptic>(스켑틱 코리아) 편집장이다그가 쓴 회의주의 선언」(A Skeptical Manifesto) 회의주의의 원칙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글이다.[주1] 셔머는 이 글에서 올바른 회의주의자 특정 지식에 관한 주장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으로 정의했다. 회의주의는 교조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게 한다
















* 리처드 파인만, 정재승 · 정무광 함께 옮김 파인만의 과학이란 무엇인가?(승산, 2008)




올바른 회의주의자는 정직하다. 자신의 오류와 무지한 점을 인정한다. 파인만은 정직해지려고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과학적 사고라고 말했다파인만이 말한 정직함은 단순히 정확한 사실만 전달하는 태도를 뜻하지 않는다. 확실한 정직함은 다른 사람들이 과학적 사고를 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분명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 이음 편집부 과학 잡지 에피 Epi 36: 펙트체커(이음, 2026)




회의주의자는 팩트체커(fact-checker)’. 팩트체커는 AI가 만든 진짜 같은 가짜 정보를 의심해야 한다. 권석준 성균관대학교 화학공학부 교수는 과학자가 팩트체크에 동참하려면 비판적 읽기(critical reading)’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주2] 학술논문의 결론을 의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 과정 전체를 꼼꼼하게 따지는 것이다. 과학의 팩트체크는 오류를 확인하고, 이를 수정해 나가는 과정이다.


과학 도서를 읽을 때도 팩트체크를 해야 한다김 교수의 글에 회의주의적 관점으로 생각해 볼만한 대목이 있다.



 지구상의 많은 동물이 양성생식으로 번식한다. 암수가 만나 둘의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자식을 만든다는 뜻이다.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결혼과 사랑의 불안한 동맹」, 103쪽)



생물의 생식 방식은 크게 무성생식과 유성생식이 있다. 무성생식은 암수 교배를 하지 않고, 자가 분열을 해서 새로운 개체를 생산한다. 그래서 무성생식을 한 생물종의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 유전자는 동일하다















* 데이비드 베이커, 김숲 옮김 세상에서 가장 짧은 섹스의 역사: 20억 년간 작동해온 생존과 욕망의 진화(RHK, 2026)




암수 교배, 즉 유성생식으로 태어난 생물종은 암수 유전자 절반씩 물려받는다.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유전자가 섞이면 생물종이 다양해지며 급격하게 변하는 환경에 잘 적응한다섹스(sex, 성행위)는 단순히 성적 쾌락을 느끼기 위한 행위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음란하고 불결한 행위인 것도 아니다섹스를 즐기는 우리는 섹스의 진화적 이점을 잘 모른다섹스는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김 교수가 표현한 양성생식은 유성생식과 동일한 의미. 유성생식과 양성생식이 익숙한 사람들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개의 생물학적 성을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며 정상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생물의 번식 방식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생물학자들은 성적 이분법(gender binary)을 반박한다.
















* 강병철, 백조원, 이주원, 오승재, 효록 함께 썼음 성소수자_LGBT(Q)(알마, 2018)




이성애주의(heterosexism)남성과 여성이 사랑하는 것을 정상으로 규정한다. 이성애주의는 성적 이분법을 강화한다. 성적 이분법의 기준에 벗어난 동성애와 젠더퀴어(genderqueer)비정상이 된다. 앤 파우스토-스털링(Anne Fausto-Sterling)이성애주의를 옹호하는 생물학을 비판한 페미니스트 생물학자다.[주2] 파우스토스털링은 성적 이분법의 한계를 넘어선 다섯 개의 성을 제안했다. 다섯 개의 성 중에 (생물학적) 남성과 여성을 제외한 나머지 세 개의 성은 간성(intersex)’이다. 간성은 여성과 남성의 몸을 모두 가진, 성별 구분이 모호한 사람이다과거에 간성을 남녀한몸증또는 자웅동체라고 불렀지만, 차별적인 의미가 반영되어 있어서 쓰지 않는다(성소수자_LGBT(Q)》 용어집 참조).















   


* 앤 파우스토-스털링, 홍승효 옮김 섹싱 더 바디: 젠더 정치와 섹슈얼리티의 구성(후마니타스, 2026)

 

* 퍼트리샤 오노니우 케이시언, 노승영 옮김 자연은 퀴어하다: 장소에 토박이가 된다는 것, 속한다는 것, 그리고 자연의 온갖 퀴어함에 관하여(에이도스, 2026)

 

* 모로하시 겐이치로, 김종현 옮김 자연은 성을 둘로 나누지 않는다(바다출판사, 2026)




자연은 매일 퀴어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자연스러운 퀴어 퍼레이드는 인간이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시작되었다초기 캄브리아기에 살았던 원시 물고기는 턱이 없는 무악류인데, 이들은 정자와 난자를 모두 지닌 간성이었다. 대부분의 원시 척추동물 종은 양성애적 짝짓기를 했다.[주3]


만화영화 <니모를 찾아서>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물고기인 흰동가리는 무리 내 암컷이 죽으면 수컷은 암컷이 되어 알을 낳는다. 점박이하이에나는 암수 성기를 모두 가지고 있다. 홍학과 까마귀는 같은 성별의 새에게 구애하고, 함께 살아간다.


모든 생물이 자손을 최대한 많이 낳기 위해 유성생식만 하는 것은 아니다. 거의 모든 동물 개체군에 ()번식성 이성애를 하는 개체가 존재한다. 이들은 생물학자들이 관찰하면서 증명된 번식 주기를 따르지 않으며 새끼를 낳지 않는다하지만 여전히 몇몇 생물학자와 동물학자는 동물의 번식 욕구를 자연스러운 본능으로 여기며, 동성애와 비번식 개체를 비정상으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퀴어한 생물을 연구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암묵적으로 은폐한다.


그래서 파우스토-스털링과 퍼트리샤 오노니우 케이시언(Patricia Ononiwu Kaishian)과 같은 페미니스트 생물학자와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생물학자들은 퀴어의 삶과 존재 방식을 잘 이해하기 위한 퀴어 생물학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 브루스 배게밀, 이성민 옮김 《생물학적 풍요: 성적 다양성과 섹슈얼리티의 과학(히포크라테스, 2023)

 

* 조안 러프가든, 노태복 옮김 변이의 축제: 다양성이 이끌어온 우리의 무지갯빛 진화에 관하여(갈라파고스, 2021)

 

* 티에리 오케, 변진경 옮김 셀 수 없는 성: ‘두 개의 성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오월의봄, 2021)


* [절판] 이음 편집부 과학 잡지 에피 Epi 9: 두 개로 나뉘지 않고 무한히 펼쳐지는, ‘젠더 스펙트럼(이음, 2019)




퀴어 생물학의 고전을 꼽으라면 나는 이 세 권을 소개할 것이다. 파우스토-스털링의 섹싱 더 바디(Sexing the Body, 2000), 브루스 배게밀(Bruce Bagemihl)생물학적 풍요(Biological Exuberance, 1999), 조앤 러프가든(Joan Roughgarden)변이의 축제(Evolution’s Rainbow, 2004)다.


생물학적 풍요1,000쪽이 넘는 벽돌 책이지만, 지금까지 관찰된 퀴어한 도물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담았다. 그리고 동물 동성애 연구의 역사를 소개할 뿐만 아니라 동물학 연구 과정에 개입된 동성애 혐오를 지적한다조앤 러프가든은 트랜스젠더 생물학자다. 변이의 축제2010년에 원서 제목을 그대로 이어받아 진화의 무지개(노태복 옮김, 뿌리와이파리)로 출간된 적이 있다러프가든은 퀴어한 동물들을 설명할 때 배게밀의 책을 참고했다성적 이분법을 과학적으로 비판한 세 권의 퀴어 생물학 고전은 완독하기가 부담스러운 분량이다. 발췌 독서를 한다면 세 권의 책이 한 번 이상 인용되었거나 참고한 책들(자연은 퀴어하다, 셀 수 없는 성, 과학 잡지 에피 9)을 읽으면 된다.


김상욱 교수는 변하지 않는 것은 이미 존재하고 있어서 충분히 배울 수 있다고 했다. 변하지 않는 것을 제대로 알면 불확실한 변화의 방향이 대충 어디로 갈지 알 수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은 10년 후에도 배울 수 있다. 김 교수는 역사, 철학,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 수학, 물리, 화학, 생물학1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라서 맨 먼저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회의주의를 변하지 않는 것의 목록에 추가하고 싶다편견과 교조주의, 그리고 나쁜 일에 쓰이는 AI에 속지 않으려면 회의주의의 기본 원칙을 배워야 한다. 회의주의의 기본 원칙은 금방 배울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다. 나도 틀릴 수 있음을 받아들인다. 내 생각과 완전 정반대인 견해가 낯설고 불편해도 친절한 호기심을 발동해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세상이 회의주의자를 속여도

그들은 계속 질문하고 항상 배운다.







 회의주의적 독자 cyrus의 주석

 







[주1] 회의주의 선언은 셔머의 저서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11장 전체 내용이다. 2015한국판 <스켑틱> 창간호 특집 연재 회의주의란 무엇인가의 첫 번째 글로 게재되었다. <스켑틱>에 수록된 17편의 글을 선별한 나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에 서문으로 수록되었다. 셔머의 글이 있는 세 권의 책 모두 바다출판사가 펴냈다. 



[주2] 권석준, AI 과학자 시대, 팩트체크의 재정의, 과학 잡지 에피 Epi 36: 펙트체커, 이음, 2026, 36.


















* 폴라 보글, 이지훈 옮김 운전 배우기(지만지드라마, 2019)

 

* 질 돌런, 최석훈 옮김 연극 그리고 섹슈얼리티(교유서가, 2025)



[주3] 파우스토-스털링은 레즈비언이다. 그녀의 연인은 극작가 폴라 보글(Paula Vogel)이다. 보글의 희곡 운전 배우기는 작품성이 뛰어난 퀴어 연극으로 평가받았고, 1998년 퓰리처상 희곡 부문 수상작이다





[주4] 데이비드 베이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섹스의 역사, RHK, 2026, 52~57.





*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168




   

 1863년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드 마네가 <올랭피아>에서 특정 매춘부[주5]의 누드화를 그렸을 때, 그는 예술로서의 누드화 규칙을 깬 것이었다.



[주5] 마네(Édouard Manet)의 대표작 <올랭피아>(Olympia)매춘부의 누드를 그린 그림이 아니다


























<참고 문헌> 


* 스테파노 추피, 최병진 옮김 마네: 전통에 반기를 든 근대의 화가(마로니에북스, 2009)

 

* 자비에르 질 네레, 엄미정 옮김 에두아르 마네(마로니에북스, 2006)

 

* [개정판] 이주헌 그리다, 너를: 화가가 사랑한 모델(아트북스, 2015)

 

* [구판, 절판] 이주헌 화가와 모델: 화가의 붓끝에서 영원을 얻은 모델 이야기(예담, 2003)



마네는 매춘부를 연상시키는 여성의 누드를 그렸고, 당시 보수적인 비평가와 관람객들은 <올랭피아>를 매춘부를 그린 그림이라고 비난했다. 그림의 모델은 마네를 비롯한 여러 화가의 작업을 위해 모델이 된 빅토린 뫼랑(Victorine-Louise Meurent)이다. 뫼랑은 모델 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화가였다. 1876년에 뫼랑의 작품이 살롱에 전시되었고(마네는 이 해에 열린 살롱에 낙선되었다), 그 후로도 뫼랑은 여러 번의 전시회에 작품들을 선보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지개를 변호하다 - 트랜스젠더 변호사 박한희의 삶과 생각
박한희 지음 / 한티재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법정에 큰 무지개가 가득히 떠오를 때면
작은 무지개들이 희망을 만들러 큰 무지개를 따라갔었죠.

(※ 조규찬이 부른 「무지개」의 노랫말을 바꿔 썼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