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1880826에 태어났다내 생일과 같다. 정확히 108년이 되는 날에 내가 태어났다.



















아폴리네르황현산 옮김 알코올》 (열린책들, 2010)

 

[절판] 아폴리네르성귀수 옮김 기욤 아폴리네르 시집내 사랑의 그림자》 (아티초크, 2015)



















* 아폴리네르, 황현산 옮김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민음사, 2016,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19)

 

* [절판] 아폴리네르, 송재영 옮김 미라보 다리(민음사, 1975, 구 민음사 세계시인선 5)

 



시인의 이름보다 그가 쓴 한 편의 시가 더 유명하다. 영영 돌아오지 않는 사랑이 센강(Seine River)의 물결처럼 흐르는 『미라보 다리』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시는 시인의 대표작이 된다. 그러나 유명한 작품만 대표작으로 칭송받는 것은 부당하다작가가 잘 쓴 작품이 대표작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잘 쓴 작품 속에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작가의 문학적 매력이 들어 있다. 잘 쓴 작품을 읽는 독자는 그 속에 살고 있는 작가를 만날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대표작의 조건이다미라보 다리는 아폴리네르의 대표작이 아니다미라보 다리에 가면 시인을 만날 수 없다. ‘밤이 와도 종이 울려도시인은 오지 않는다미라보 다리는 아폴리네르를 유명하게 해준 작품이다. 그러나 한 편의 시는 아폴리네르의 문학적 매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아폴리네르의 문학적 매력은 네 개의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자유, 회화, 환상, (). 아폴리네르는 기존 문법과 형식을 파괴한 자유시를 썼다. 구두점을 생략하거나 시 구절로 그림을 만들었다










시 구절을 자유롭게 배열하여 이미지로 형상화한 시상형 시(Calligram)’라고 한다. 아폴리네르의 상형 시는 텍스트와 이미지의 동시성을 보여준다.


아폴리네르는 화가들의 친구였다. 아폴리네르와 친하게 지낸 화가는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 로베르 들로네(Robert Delaunay), 앙리 루소(Henri Rousseau) 등이 있다. 아폴리네르의 과거 연인이었던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도 화가다.


















* 아폴리네르, 라울 뒤피 그림, 황현산 옮김 동물 시집(난다, 2023)

 

* 이소영 이것은 라울 뒤피에 관한 이야기(RHK, 2023)




화가들은 아폴리네르의 초상화를 그렸으며, 라울 뒤피(Raoul Dufy)는 아폴리네르의 동물 시집을 위한 목판화를 제작했다.









아폴리네르는 전통을 답습하지 않는 젊은 화가들을 지지했다. 그가 1913년에 쓴 미학적 명상: 입체주의 화가들(Les Peintres Cubistes, Méditations Esthétiques, 오병욱 옮김, 일지사, 1991년)은 입체주의 화가와 작품들을 처음으로 비평한 책이다이 책에서 아폴리네르가 주목한 피카소와 브라크는 20세기 초 현대 예술 운동 중 하나인 입체주의의 핵심 인물이다. 입체주의는 자연을 똑같이 모방하고, 유행을 따르는 미술을 거부한다. 입체주의 화가들은 자연의 형태를 해체하여 기하학적 형상(, 원통, 입방체)으로 다시 만든다.



















* 앙드레 브르통, 황현산 옮김 초현실주의 선언(미메시스, 2012)





아폴리네르의 자유로운 창조 정신은 그가 죽은 뒤에 등장한 초현실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초현실주의를 처음으로 쓴 사람은 아폴리네르다. 초현실주의는 이성으로 파악하고,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현실을 전복한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자유와 상상력의 힘을 믿는다.



















* [절판] 아폴리네르, 장혜영 옮김 티레시아스의 유방(연극과인간, 2004)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말도로르의 노래(문학동네, 2018)



아폴리네르는 희곡 티레시아스의 유방서문인간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초현실주의를 실천한다고 썼다. 초현실주의적 창조의 원천은 우연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서로 관련이 없는 물건들이 우연히 만나면 새로운 예술이 완성된다고 생각했다




해부대 위에서의 재봉틀과 우산의 우연한 만남처럼 아름답다.

 


(로트레아몽, 말도로르의 노래》 「여섯 번째 노래중에서, 황현산 옮김, 248)



로트레아몽(Lautréamont)의 산문 시 말도로르의 노래에 나오는 이 문장은 초현실주의를 상징하는 캐치프레이즈다.






 

 











* [절판] 아폴리네르, 성귀수 옮김 이교도 회사(문학수첩, 1999)




이교도 회사초현실주의적 소설집이다.소설가 아폴리네르를 본격적으로 알린 작품이다. 이교도 회사1910년 공쿠르상 최종 후보작에 오를 정도로 대중의 주목을 받았지만, 몇몇 비평가는 아폴리네르의 이야기가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E. T. A. 호프만(E. T. A. Hoffmann)의 소설과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 [절판] 아폴리네르, 성귀수 옮김 일만 일천 번의 채찍질(문학수첩, 1999)

 

* D. A. F. 드 사드, 성귀수 옮김 사드 전집 1: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워크룸프레스, 2014)



무명작가 시절 아폴리네르는 은행에 일하면서 틈틈이 글을 쓴다. 하지만 은행 업무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아폴리네르는 먹고 살기 위해 신문과 잡지에 실리는 기사를 썼다. 궁핍한 생활은 아폴리네르의 창작 활동을 방해했다. 무명의 매문가 아폴리네르는 익명으로 포르노 소설을 썼다. 그가 쓴 포르노 소설이 일만 일천 번의 채찍질어린 돈주앙의 무용담이다. 그는 또 과거에 출간된 포르노 소설들을 발굴하여 자신이 직접 주석을 붙인 선집을 만들기도 했다. 아폴리네르는 오랫동안 잊힌 포르노 작가를 긍정적으로 재평가했는데, 그 작가가 바로 사드 후작으로 알려진 마르키 드 사드(Marquis de Sade)사드의 작품을 해설한 아폴리네르의 글 신성한 후작사드 전집첫 번째 책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에 수록되어 있다1차 세계 대전에 포병으로 참전한 아폴리네르는 참호에 몸을 숨기면서 시를 썼다. 당시 사귀었던 루(Lou)라는 별칭의 여성에게 보낸 시는 에로틱한 연애 시.






 

 



 










* 황현산 황현산 전위와 고전: 프랑스 상징주의 시 강의(수류산방, 2021)


* 황현산 아폴리네르: 알코올의 시 세계(건국대학교출판부, 1996)




미라보 다리만 아는 독자는 아폴리네르를 서정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너무도 비좁은 수식어 서정 시인은 입체적이면서도 전위적인 아폴리네르의 문학적 매력에 어울리지 않는다. 아폴리네르는 자유’, ‘회화’, ‘환상’, ‘과 관련된 생각의 조각들을 모아 모아서 자신만의 문학을 완성했다. 아폴리네르의 문학은 ‘넉넉한 콜라주(Collage)’.








 

아폴리네르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황현산 선생은 현대 전위 작가와 미술가들에 영향을 준 아폴리네르를 이렇게 평가한다. 아폴리네르는 자식이 참 많다.” (황현산 전위와 고전: 프랑스 상징주의 시 강의, 407) 전 세계의 자식들을 키워 낸 아폴리네르의 문학적 매력은 참 많다.

 

아폴리네르의 수많은 자식 중 한 사람인 황현산 선생은 201888일에 별세했다. 내게 8월은 아폴리네르와 황현산을 다시 보게 만드는 달이다.








이제 곧 이제 곧 8월이 가리라.

아폴리네르와 황현산을 다시 보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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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8-26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일 축하드립니다^^
 
황현산 전위와 고전 : 프랑스 상징주의 시 강의 아주까리 수첩 3
황현산 지음 / 수류산방.중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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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고전 도서로 채워진 집은 편안하다. 아주 오래전에 나온 고전은 여러 번 읽어도 여전히 흥미롭다. 그래서 고전은 독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고전의 매력에 푹 빠진 독자들은 고전의 집을 자주 찾는다. 이곳에 모인 독자들은 고전을 함께 읽으며 각자의 감상과 해석을 마음껏 표현한다.


고전의 집은 튼튼하고 오래 간다. 누구나 살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그러나 너무 튼튼하고 하도 오래돼서 문제다. 고전들만 꽂혀 있는 서재는 밀폐되어 있다. 밀폐된 서재는 생각의 성장을 방해하는 책들의 웅덩이. 이 웅덩이에 갇힌 독자들은 늘 똑같은 생각을 재차 얘기하면서 살아간다. 생각이 늙어버린 독자들은 고전을 비판하는 해석을 지나치게 두려워하거나 경계한다. 고전의 장점을 철저히 보호하려는 독자들은 고전의 집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그들은 고전을 파괴하는 책이 고전의 집에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 그리고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서 생소한 주제나 분야의 책들을 멀리한다겉은 멀쩡하지만, 내부는 케케묵은 고전의 집은 고집(固執)이 센 고집()’이다.


고전을 색다르게 읽는 행위는 전위적이다. 전위적인 읽기는 고전의 명성을 깎아내리는 일이 아니다. 고전을 다른 방식으로 건드리는 일이다전위대처럼 책을 읽는 독자는 기존에 나온 해석을 답습하지 않고, 이를 과감히 비판한다. 


전위와 고전: 프랑스 상징주의 시 강의황현산 선생의 마지막 프랑스 시문학 강의를 채록하여 정리한 책이다. 고인이 된 선생을 대신해서 쓴 서문은 서로 만나지 못하게 만든 전위와 고전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전위는 고전의 반대말이 아니다. 그들은 고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고전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가짜를 부정하는 자들이다. 시공을 초월해 고전이 내장해 온 정수에 가 닿지 못하는 예술, 그 숨겨진 것을 찾으려는 모험심을 자극하지 못하는 예술,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의식을 망각시키는 예술을 부정한다


(일러두기를 위한 서문중에서, 11)



쌩쌩한 전위는 얌전한 고전과 잘 어울리는 단어다전위는 쉽게 말하면 다르게 본다는 뜻이다전위적인 읽기는 늙은 고전을 좀 더 젊게 만든다하지만 고전을 깊이 읽지 않으면서 고전이라는 껍데기만 뒤집어쓴 독자와 전문가들은 다르게 보기를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그들의 흑색선전은 성공했다. 고전 파수꾼은 고전을 잘 아는 전문가 또는 작가로 변신했다. 고전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높아지자, 출판사들은 초판본 표지를 씌운 고전들을 대량으로 만들었다








황현산 선생의 전공은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아폴리네르는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준 시인이다. 황 선생은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를 프랑스 근대 시문학의 시작점으로 설정하여 보들레르 이후의 시문학이 두 개의 계열로 나누어 발전했다고 말한다. 하나는 베를렌(Paul Verlaine)과 랭보(Arthur Rimbaud), 아폴리네르로 이어진 초현실주의 계열이다이 시인들은 개인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으며 논리와 규칙적인 문법에 얽매이지 않는 시구를 썼다반면 주지주의 계열에 속한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와 발레리(Paul Valery)이성의 힘을 믿었고, 단어 하나를 쓸 때도 논리적으로 생각하면서 썼다. 그래서 주지주의 계열의 시를 읽으면 마치 철학자가 쓴 시처럼 느껴진다.


초현실주의 계열의 시 문학은 전위, 주지주의 계열의 시 문학은 고전에 가깝다. 물론 주지주의 계열의 시인들 또한 전통적인 시작(詩作)법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시작법을 시도했으나 초현실주의 계열의 시인들은 주지주의 계열보다 좀 더 과감하게 시를 썼다. 대부분 문학 연구자와 비평가들은 주지주의 시인들을 높이 평가한다. 왜냐하면 시인이 시구에 숨겨 놓은 의미들을 읽을 수 있고, 설령 못 찾는다 하더라도 연구자와 비평가는 그럴듯한 해석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초현실주의 계열의 시는 연구자와 비평가를 당혹스럽게 한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러 번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시는 작품성이 떨어진 작품으로 취급받았다. 결국 주지주의 문학을 옹호하는 비평가들이 많아지면, 그들이 소개한 문학에 동조하는 문인들이 등장한다. 황 선생은 우리나라 해방 전후에 국내 영문학자들이 불문학 작품들을 번역하면서부터 주지주의 계열이 문단을 지배했다고 말한다초현실주의 계열 시인들의 작품은 독자들에게 덜 알려진 편이며 항상 난해함이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다.


고전에 대한 해석은 자주 반복되면 신선하지 않다. 그래도 독자들은 이미 누군가가 주장한 해석에 의존한다. 그들은 고전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착각한다. 이렇듯 모든 사람이 인정한 해석도 고전 껍데기로 들어가면 틀릴 수 없는 정답이 된다. 시험 점수를 잘 받기 위해 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틀릴 수 없는 정답을 외운다. 이들은 문학을 자유롭게 감상할 여유가 없다. 학교에서 외운(배운) 문학을 전위적으로 생각하는 힘이 부족하다.


황 선생은 상징주의 시인들의 다양한 매력을 가리는 진부한 고전적인 해석에 문제를 제기한다. 랭보는 전통에 반항한 천재 시인또는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를 묘사한 상징주의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생전에 랭보 전집 번역 작업을 진행했던 황 선생은 랭보의 문학이 사실주의에 더 가깝다고 주장한다. 랭보는 첫 시집 지옥에서 보낸 한철을 발표한 후에 시 쓰기를 그만두었고, 세계 이곳저곳 떠도는 노동자로 살아간다. 황 선생은 먹고 사는 현실적인 문제에 더 관심 있는 랭보를 주목한다.


고전 작품이 훌륭하다고 해도 전위적으로 읽지 않으면 칙칙한 고전 껍데기를 깨부수지 못한다. 고전 껍데기를 열심히 핥는 독자는 고전의 여러 가지 맛을 모른다고전의 여러 가지 맛을 모르고 살아왔음을 스스로 인식한 독자는 전위적인 독서를 한다. 전위적인 독자는 자신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고전 껍데기를 버리고, 고전 알맹이를 자유롭게 검토한다. 황 선생은 자신의 트위터에 자유롭게 검토할 지성이 없으면, 제가 잘났다고 뽐내는 일밖에는 다른 일이 불가능하다라는 글을 남겼다.[주1] 고전을 자유롭게 생각할 힘이 없는 독자는 텅텅 빈 고전 껍데기를 요란하게 흔든다. 요란한 독자는 자기가 잘났다고 뽐낸다.






[1] 2015111일 트윗. 황현산,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2014-2018 황현산의 트위터(난다, 2019), 110.








<전위대처럼 책을 읽는 cyrus의 주석과 정오표>





* 21






보를레르 보들레르






* 28





몰트케(Helmuth von Moltke, 1848~1916) [2]




[2] 몰트케의 생몰 연도가 잘못 적혀 있다. 독일의 군인 헬무트 폰 몰트케는 두 명이다. 보불 전쟁에 승리한 프로이센 군의 참모총장 몰트케는 1800년에 태어나 1891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와 이름이 같은 조카 헬무트 폰 몰트케(1848~1916)는 제1차 세계 대전의 독일 제국 군을 지휘했다두 몰트케를 구분하기 위해 보불 전쟁에 참전한 몰트케를 () 몰트케,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조카를 () 몰트케로 표기한다.

 





* 195




 

 아무렇게나 말해 버림으로써, 계산하지 않음으로써 의미가 돋보이지 않고 노래만 남게 하는 방식으로 시를 만듦니다.



만듦니다. 만듭니다.






* 225




 

영국의 주지주의로 데이비드 흄, T. S. 엘리엇 등이 있다. [3]




[3] 20세기 영국 문학의 유파인 주지주의는 1차 세계대전 전후에 등장했다흄의 이름이 잘못 적혀 있다.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은 영국 경험론을 완성한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 T. S. 엘리엇(T. S. Eliot)과 같은 시기에 활동한 영국의 주지주의자는 T. E. (T. E. Hulme, 1883~1917)이다.






* 398





 


아폴리네르가 태어난 날짜는 826일이다갓 태어난 아폴리네르의 세례명을 지어준 성당의 영세부에 적힌 아폴리네르의 출생 날짜는 825이다.








[참고 문헌]

 

* 아폴리네르, 황현산 옮김, 알코올(열린책들, 2010)

기욤 아폴리네르 연보337

 

* 황현산, 아폴리네르: 알코올의 시 세계(건국대학교출판부, 1996)

 

* 파스칼 피아, 황현산 옮김, 아뽈리네르(열화당,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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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8-26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런 종류의 책들은 웬만한 내공이 아니면 좀처럼 읽을 엄두가 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cyrus 2025-08-26 14:38   좋아요 0 | URL
황현산 선생님도 프랑스어로 쓴 시를 읽고 연구하는데도 읽을 때마다 이해되지 않는 시 구절이 있고, 우리말로 번역하면 난감할 때가 있답니다. 시가 어려울수록 독자는 마음대로 생각하고, 느끼고, 해석할 수 있어요. ^^
 



정해연의 소설 홍학의 자리를 읽다가 옥에 티를 발견했다.
















[<읽어서 세계 문학 + 향기의 미스터리 속으로> 2025년 8월의 책]

* 정해연 홍학의 자리(엘릭시르, 2021)




* 242

 

 포르말린은 소독제, 살균제, 방부제에도 쓰이는 약품이지만 독성이 강해 희석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다. 최소 30배에서 50배로 희석해 정작 들어가는 포르말린은 1%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실에서 흔히 표본을 만드는 데 쓴다고 알고 있지만 거기에도 다른 물질과 혼합하여 사용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표본은 관리에 상당한 주의를 요한다. (중략) 포르말린은 1급 발암물질로 분류되어 있을 만큼 독성도 강하다. 그렇게 위험한 물질이기에 아무나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전언이다.

 



소설의 화자는 삼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이야기하는 작가. 작가는 포르말린이 ‘1급 발암물질로 분류되어 있다고 하는데, 여기에 오류가 있다.


















* 사마키 다케오 · 잇시키 겐지 함께 씀, 원지원 옮김, 하루 한 권, 일상 속 화학 물질: 두 얼굴을 가진 우리 생활 속 다양한 물질들(드루, 2023)

 

* 김병민 거의 모든 물질의 화학: 화학 물질 세상에 대한 과학적 통찰(현암사, 2022)




발암물질은 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따라서 ‘1급 발암물질이라는 표현은 잘못되었다. 세계보건기구(WTO) 산하 국제암연구소(International Agency for Research on Cancer, IARC)는 실험과 역학 조사를 거쳐서 발암물질을 지정하고, 분류한다.


IARC 지정 발암물질은 5개 군(group)으로 나뉜다. 1, 2A, 2B, 3, 4이다. IARC는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 및 조사 결과를 토대로 발암물질을 5개 군으로 분류한다


1군 발암물질(Carcinogenic to humans)확실히인체에 암을 일으키는 물질이. 2A(Probably carcinogenic to humans)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정되는물질이다. 2B(Possibly carcinogenic to humans)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물질이다. 1, 2A, 2B군으로 분류되려면 발암성이 나타난다고 보는 증거가 충분히 있어야 한다


3(Unclassifiable as to carcinogenicity in humans)암을 일으킨다고 확신할 수 없는물질이다. , 발암물질로 보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4(Probably not carcinogenic to humans)암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확실한증거가 있는 물질이다.








발암물질 분류를 으로 잘못 쓰면 화학물질을 막연히 두려워하는 화학물질 공포증(Chemiphobia)’이 커진다1군 발암물질이라 해서 가장 위험한 물질로 생각하기 쉬운데, 절대로 그렇지 않다. 5개 군은 위험성에 따른 등급을 뜻하지 않는다. IARC는 매번 발암물질이 암을 유발하는 메커니즘을 연구하는데, 이 연구 결과를 토대로 5개 군 발암물질 목록을 다시 고친다. 4군 발암물질이 암을 일으키는 이례적인 현상이 발견된다면 반복 실험과 검증을 거쳐야 한다. 암을 유발하는 메커니즘과 관련된 증거가 확보되면 4군 발암물질은 1, 2A, 2B군으로 재조정될 수 있다.


포르말린은 폼알데하이드의 35~40%를 물에 녹여 만든 화학물질이다. 폼알데하이드는 새집증후군을 유발하는 독성 물질로 알려진 IARC 지정 1군 발암물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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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8-19 2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뭐 일반적인 의미에서 소설가가 cyrus님처럼 화학이나 발암물질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 않을 겁니다.그러면에서 정해연 작가가 1군 발암물질을 1급 발암물질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그정도 자료를 조사했다는 점은 칭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일본의 경우에도 작가의 성향에 따라서 누구나 다아는 유명 작가들의 경우도 메이지시대를 소설로 쓰면서 연필 한자루로만 메이지시대를 저술한 작가도 있지만 트럭 한대분의 조사 자료를 가지고 메이지시대를 서술한 작가가 있다고 하니까요.

cyrus 2025-08-24 19:57   좋아요 0 | URL
작가가 과학적 수사 기법을 언급한 대목이 흥미로웠어요. 카스피님이 말씀하셨듯이 작가가 소설을 쓰면서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참고했음을 알 수 있었어요. ^^
 
저주받은 시인들
폴 베를렌느 지음, 임민지 옮김 / 필요한책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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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점  ★★★☆  B+





절반으로 갈라진 랭보(Arthur Rimbaud)의 짧은 인생은 물과 기름과 같다. 은 시상(詩想)이 홍수마냥 흘러넘치는 조숙한 시인의 삶이다. 랭보는 열여섯 살에 처음으로 시를 썼다. 그의 첫 번째 시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 출간된 해는 1873. 이때 당시 랭보는 열아홉 살이었다









기름은 끈끈한 노동자의 삶이다. 랭보는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을 여행하면서 여러 가지 일을 했다고국과 완전히 다른 타지의 날씨는 랭보의 연약한 몸을 괴롭혔지만, 랭보는 꾹 참고 일했다서커스단의 사무직원, 식민지 산물 회사의 직원, 채석장 회사의 작업반장, 건축업체의 관리 감독, 커피콩을 골라내고 포장하는 회사의 관리자, 아프리카의 무기 거래 상인. ‘기름의 시대에 랭보는 틈틈이 시를 쓰긴 했지만,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지 않았다.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시인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었다. 여기저기 돌아니면서 일하느라 시상이 폭삭 늙어버린 랭보. 일과 방랑에 중독된 랭보는 고향 친구에게 자신은 더 이상 문학에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본인 스스로 의 시대에 마침표를 찍은 랭보의 나이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시 쓰는 삶을 스스로 포기한 랭보를 여전히 시인이라고 주장한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폴 베를렌(Paul Verlaine)이다랭보와 베를렌은 함께 여행하고, 토론하고, 질투심이 섞인 말다툼을 할 정도로 뜨겁게 사랑했다. 베를렌은 아내를 버리고 랭보와 함께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다. 그러나 사랑의 여정은 오래가지 못한다. 화를 참지 못한 베를렌은 랭보를 향해 권총 두 발을 쏜다. 다행히 두 개의 총알은 랭보의 목숨을 비껴간다. 살인 미수로 체포된 베를렌은 2년 동안 감옥 생활을 한다.


베를렌은 대중과 문단 모두에서 잊힌 랭보의 문학적 재능을 아까워했다. 그는 랭보처럼 관습에 도전하고 개성 충만한 시를 쓴 무명 시인들에게 저주받은 시인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베를렌의 시 비평서 저주받은 시인들은 랭보를 포함한 여섯 명의 시인의 작품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해설한 책이다. 오늘날 저주받은 시인또는 저주받은 예술가는 재능은 뛰어나지만,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불행한 예술가를 가리킬 때 쓴다. 하지만 베를렌이 생각하는 저주받은 시인세상에 편입된 삶을 거부했다. 그들은 독자의 문학 취향에 부합하는 시를 쓰지 않는다.


베를린이 찾은 6인의 저주받은 시인은 랭보, 트리스탕 코르비에르(Tristan Corbiere), 스테판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 마르슬린 데보르드 발모르(Marceline Desbordes-Valmore), 빌리에 드 릴라당(Villiers de L’Isle Adam), 그리고 가엾은 를리앙(Pauvre Lelian)’이다.


베를렌은 가엾은 를리앙가장 우울한 운명을 지닌 시인이라고 소개한다. 사실 가엾은 를리앙베를렌이 자신의 이름 철자를 바꿔 만든 가명이다. 베를렌은 왜 자신의 책 마지막에 자기소개서를 썼을까? 랭보 총격 사건 이후로 베를렌은 가톨릭에 귀의하여 종교적인 분위기가 강한 시를 쓰기 시작한다. 전 연인 랭보는 종교에 헌신하는 시인으로 변한 베를렌을 비판했다. 가엾은 를리앙은 가톨릭 신앙을 드러낸 시를 쓰는 베를렌의 분신이다. 베를렌은 화려하고, 나른하며, 신경질적 어조가 반영된 젊은 시절의 시들과 엄숙하고 단순한 어조로 읊는 종교적인 시는 결국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시상에 잠기는 대로 시를 쓰는 자유가 있다고 강조한다베를렌은 동료 시인들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 저주받은 시인이다.









명예와 긍정적인 평가를 좇아가면서 글 쓰는 작가는 불행하다. 이런 작가는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쓰지 못한다. 본모습이 없는 글을 쓰게 만드는 저주가 작가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힌다. 정말로 저주받은 시인은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이와 반대되는 베를렌과 저주받은 시인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시를 쓴다. ‘저주받은 시인의 유일한 독자는 시인 본인이다그들은 독자(獨自)적으로 시를 쓰는 독자(讀者)’.






<‘독자적인 독자’ cyrus가 쓴 주석>







* 65~66

 

 우리는 이 시의 정신을 매우 혐오하는데, 그 정신은 노년기의 불경스러운 미슐레[주1], 여인들의 더러운 속옷 아래, 그리고 파르니 뒤로 숨은 미슐레와의 불행한 만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다른 미슐레는 우리가 그 누구보다도 존경한다).



[1] 해당 인용문에서 베를렌이 언급한 랭보의 시는 첫 성체 배령(1871)이다. 저주받은 시인들을 쓸 무렵(1888), 베를렌은 가톨릭 신자였다. 첫 성체 배령은 제목과 상반되게 가톨릭 신앙과 그리스도교를 조롱하는 시. 그래서 베를렌은 이 시에 드러난 랭보의 반가톨릭적 정신을 혐오한다고 비평했다.

     

쥘 미슐레(Jules Michelet)는 프랑스의 역사가다. 그가톨릭의 권위주의를 비판한 볼테르(Voltaire) 계열의 반교권주의자. 미슐레는 1874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4년 전에 나폴레옹 3세 중심의 군주정(2공화국)이 종식되고, 3공화국이 수립되었다. 3공화국 초창기에 정계에 진출한 공화주의자들은 반교권주의자였다. 첫 성체 배령을 쓴 1871년의 랭보는 반교권주의적 성향이 강했다.

     

젊은 시절 베를렌은 제3공화국 출범을 지지했고, 시민 혁명 정부인 파리 코뮌(Paris Commune)에 협력했다. 랭보 총격 사건 이후부터 보수적으로 변했다그러나 베를렌은 모순적인 인간이었는데, 1878년부터 시를 가르치면서 알게 된 뤼시앵 레티노아(Lucien Létinois)라는 제자와 동성애 관계를 맺는다. 제자의 요절에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베를렌은 방탕한 생활을 한다. 아무튼 종교에 빠져 정신이 늙어버린 말년의 베를렌은 랭보의 반가톨릭적 정신이 불경스럽게 보였을 것이고, 첫 성체 배령이 반교권주의의 영향을 받은 시라고 비평한다

     

베를렌은 종교 비판적인 시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지만, 혁명을 일으켜 국가 권력을 무너뜨린 프랑스 민중을 지지한다. 미슐레는 민중을 프랑스 혁명의 주체로 보는 역사관을 주장했다. 1846년에 발표한 미슐레의 민중(조한욱 옮김, 교유서가, 2021)은 그의 대표작이며 민중 친화적인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이 즐겨 읽었다. 따라서 베를렌이 존경한다는 다른 미슐레민중을 쓴 역사가 미슐레를 의미한다.



[참고 문헌]

 

* 아르튀르 랭보, 한대균 옮김, 나의 방랑(문학과지성사, 2014)

 

* 폴 베를렌, 윤세홍 옮김, 베를렌 시선(지만지, 2013)

 

* 삐에르 쁘띠필, 나애리 · 우종길 옮김, 광인 뽈 베를렌느(역사비평사, 1991)

 

* 롤랑 바르트, 한석현 옮김, 미슐레(이모션북스, 2017)






[2] 베를렌이 저주받은 시인들에서 인용한 랭보의 시는 총 여덟 편이다. 모음들, 저녁 기도, 앉아 있는 자들, 놀란 아이들, 이 잡는 여인들, 취한 배, 첫 성체 배령, 파리가 다시 북적댄다. 이 작품들은 여러 종의 번역본이 있는 랭보 시()집에 수록되어 있다여덟 편의 시가 모두 실린 번역본은 나의 방랑(한대균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4년)이다.








※ 작품명은 번역본에 표기된 제목이며 번역본의 목차 순으로 적었다.



* 지옥에서 보낸 한철(최완길 옮김, 북피아, 2006, 절판)

깜짝 놀란 어린아이들, 저녁의 기도, 모음들, 이를 잡는 여인들, 취한 배


 

* 지옥에서 보낸 한철(김현 옮김, 민음사, 2016, 개정판)

모음, 취한 배

 


* 랭보 시선(이준오 옮김, 책세상, 2001, 절판)

모음들, 최초의 성체 배령, 취한 배

 


* 랭보 시선(곽민석 옮김, 지만지, 2012)

모음들, 이 잡는 여인들, 취한 배

 


* 나의 방랑(한대균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4)

놀란 아이들, 앉아 있는 자들, 저녁 기도, 파리의 향연 혹은 파리가 다시 북적댄다, 모음들, 첫 성체 배령, 이 잡는 여인들, 취한 배


 






* 103






여류 작가들 여성 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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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18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영화 이클립스로 랭보와 베를렌의 이야기를 만났어오. 하지만 시는 저는 대중이라 역시 접근하기 어렵더라구요. 베를렌의 책이 이런 내용인줄은 몰랐는데 책의 구성도 자신을 가엾은 를리앙으로 표현한것도 흥미롭네요

cyrus 2025-08-19 06:32   좋아요 1 | URL
랭보와 베를렌 두 시인의 시는 역시 계속 읽어도 어려운데, 그들이 살아온 과정이 더 흥미로워요. <토탈 이클립스>를 한 번 보고 싶은데, 자막 달린 영화 보기가 어렵네요. ^^;;
 
대구의 5.18, 두레양서조합 사건
김상숙 지음 / 책과함께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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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점  ★★★★★  A+














19809, 갑자기 대구의 바위섬에 폭풍우가 덮쳤다. 민주주의가 익어가던 5월의 광주를 무자비하게 짓밟은 폭풍우가 대구까지 오고 말았다바위섬에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주민들은 폭풍우를 피하려고 뿔뿔이 흩어졌다그들 중 일부는 폭풍우에 휘말려 모진 고생을 했다


반공 프레임에 갇힌 사람들은 바윗섬 생존자들을 빨갱이라고 손가락질했대구는 유독 바위섬 주민들을 싫어했다. 대구 토박이는 땅에 한 번 박히면 꿈쩍도 하지 않은 바윗덩어리만 보고 자라왔다. 광주를 제외한 1980년대 전국은 전두환을 위한 국가였다. 전국 언론사와 방송국은 광주에 폭풍우를 일으킨 전두환 정권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다 같이 입을 맞췄다. 신문과 TV는 국가를 무너뜨리려는 폭도들이 광주에 모여 있다는 가짜 뉴스를 퍼뜨렸다. 그러면서 북한의 지령을 받은 간첩과 손잡은 폭도들을 진압한 5월의 폭풍우를 옹호했다. 광주의 참상을 모르는 대구 시민들은 전두환 정권이 옳은 일을 했다고 믿었다. 


아득히 먼 옛날 대구에 바위섬들이 많았다. 그곳에 평등한 세상을 꿈꾼 공산주의자들이 모여 살았다.[주1]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분열하자 대구의 공산주의자들은 북쪽으로 건너갔다활발한 사람들이 살지 않는 바위섬은 점점 생기를 잃으면서 붙박이들이 살기 좋은 바윗덩어리로 변했다.


19809월에 사라진 대구의 마지막 바위섬은 경북대학교 후문(현재는 서문근처에 있었다. 이 바위섬의 이름은 두레 서점이다두레는 농사일을 돕기 위해 만든 작은 조직을 뜻한다. 두레 서점을 만든 바위섬 주민들은 과거에 농촌 문제에 관심이 많은 대학생이었다. 이들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농민의 권익 보호를 위한 농민운동에 뛰어들었다. 이 시기의 박정희 정권은 강력한 추진력으로 산업화 정책을 밀어붙였고, 농촌 경제를 더 악화시키는 저곡가 정책까지 단행했다. 대구와 경북 지역 대학생들은 대학 4-H 연구회[주2]를 결성하여 박정희 정권의 농업정책을 비판했다.


대학 4-H 연구회 소속 학생들은 사회 문제를 깊이 파고들기 위해 두레 양서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조합원들이 모인 자리에 두레 서점이라는 바위섬이 생겼다. 두레 서점은 생각의 폭을 넓혀주는 책들이 잔뜩 펼쳐진 정원이자 젊은 민중 운동가들의 결속을 다지는 아지트였다. 두레 조합원들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 독재 체제에 반대하는 학생 운동을 주도했다. 민주화 바람이 불기 시작한 안동에 가톨릭교회와 연대하여 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가톨릭농민회가 만들어졌다1979년에 경찰은 정권을 줄곧 비판해 온 안동가톨릭농민회 소속 간부와 가톨릭 신부들을 강제로 체포하고 감금했다박정희 정권의 비민주적인 만행이 알려지자, 경북대학교, 영남대학교, 계명대학교 학생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정권의 종교 탄압을 규탄하는 가톨릭 교구들의 기도회가 전국에 열렸다.


두레 서점에 가면 불온서적으로 알려진 마르크스(Karl Marx) 관련 서적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대구의 마지막 바위섬은 빨갛지 않았다두레 조합원들은 민주주의를 염원했다. 그들은 총과 탱크로 광주 시민들을 위협한 폭풍우의 진실을 알고 있었다. 전두환은 광주 민주화운동을 저지하기 위해 폭동 진압을 명분으로 계엄군을 동원했다두레 조합원들은 군부 정권이 감추려고 했던 광주 5·18 항쟁을 처음으로 접했다. 그들은 광주에 갇혀 버린 진실을 알리고자 유인물을 제작하여 배포했다. 하지만 바위섬 주민들도 계엄군이 통제하는 대구 한가운데에 갇히고 만다. 그들은 시민과 학생들이 동참할 수 있는 거리 시위를 계획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전략이 없어서 거세게 저항하지 못했다. 광주에 이어 대구마저 점령한 계엄군을 뚫을 힘이 부족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무르익었던 반공주의는 대구의 민주화 열기를 식게 했다. 보수적으로 변한 대구에 박정희반공’, 이 두 단어가 깊이 새겨진 바윗덩어리가 많아졌다.


바위섬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19809, 전두환 정권은 조용히 반독재 저항 운동을 준비하던 두레 서점을 습격했다. 두레 조합원들이 예상하지 못한 폭풍우가 갑자기 찾아왔다. 경찰은 민주화운동에 합류한 시민, 학생, 농민 100여 명을 강제로 연행했다. 두레 서점은 북한을 찬양하는 불온서적을 유통하고, 북한 간첩들을 은밀히 지원한 반국가단체로 낙인찍혔다대구에 하나뿐인 바위섬은 허망하게 사라졌다.


민중 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두레 조합원들은 혹독한 고문을 받았고, 감옥에서 치욕적인 가혹행위를 겪었다. 몇몇은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떠났다. 살아남은 바위섬 주민들을 계속 괴롭히는 것은 고문 트라우마가 아니라 죄책감이다. 그들은 광주 5·18 항쟁에 합류하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저항한 자신들을 스스로 실패자로 여긴다.


두레 양서협동조합의 민주 항쟁을 실패로 단정할 수 없다. 두레 서점에서 시작된 대구 민주 항쟁은 끝나지 않았다. 독재 정치와 두레 서점이 사라졌어도 민주주의와 역사의 진실을 지키는 일은 계속되어야 한다민생은 뒷전이고 정쟁만 일삼는 우파 정치인은 반공주의를 활용한다. 정계 입문을 노리는 극우 선동가들은 광주 5·18 항쟁을 북한이 개입한 폭동이라고 주장한다








박정희의 이름이 새겨진 바윗덩어리는 동대구역 광장의 동상이 되었다. 농촌을 죽이고, 도시로 이주한 농민들을 빈민으로 만든 박정희 정권의 저곡가 정책을 생각하면, 농부 코스프레를 한 박정희의 모습은 부자연스럽다. 이렇듯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잘못된 과거는 지금까지도 민주주의와 역사의 진실을 위협하거나 왜곡한다성숙한 시민은 과거사에 짙게 드리워져 있었던 독재의 그늘을 잊어서는 안 된다독재의 그늘은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방심하면 암울한 그늘이 스멀스멀 나타날 수 있다. 민주주의를 가린 독재의 그늘을 부지런스레 걷어낸 민중 운동가들을 기억해야 한다두레 서점이 세월 속에 지워지더라도, 두레 양서협동조합의 항거 정신은 우리가 되새겨야 할 민주주의 정신이다.







<5월 18일과 815일을 함께 기억하고 싶은[주3] cyrus의 주석>








[1] 대구는 과거에 조선의 모스크바라고 불릴 정도로 사회주의자들이 많이 활동한 지역이었다. 현재 대구의 모습과 완전히 정반대인 붉은 대구를 자세히 알고 싶어서 참고할 만한 책이 있는지 찾아봤지만, 일반 독자들을 위한 책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때마침 일제강점기 시절에 활동한 조선 사회주의자들을 주목한 박노자의 신간 붉은 시대: 독립을 넘어 쇄신을 꿈꾼 식민지 조선 사회주의 유토피아》(원영수 옮김, 한겨레출판, 2025년)가 출간돼서 대충 훑어보긴 했다. 그런데 대구와 경북 출신 사회주의자들이 많이 언급되지 않았다. 대구 · 경북 내 사회주의 운동에 관한 내용이 나오는지는 책을 정독해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정독하지 않고 책을 살펴보다가 유일하게 발견한 경북 출신 사회주의자는 조선공산당 창립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인 권오설(1897/1898~1930)이다.




[주2] 4-H는 1920년대 미국에 발족한 청소년 단체이다. 두뇌(Head), 마음(Heart), (Hand), 건강(Health)의 머리글자를 뜻한다. 우리말로 번역된 4-H의 뜻은 (: Head), (: Heart), (: Hands), (:Health).




[주3] 815를 거꾸로 하면 518, 518을 거꾸로 하면 815. 경북 안동 출신의 시인 이육사는 좌익 계열의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1898~1958?)이 만든 의열단에 가입한 독립운동가. 시인이 태어난 날은 1904518일(음력 4월 4일)이다. 시인의 동생은 문학 평론가 이원조(1909~1955). 형제는 마르크스-레닌주의자(ML)였다.












[주4] 책 앞표지에 그려진 도안은 사발통문을 연상시킨다. 사발통문은 둥근 사발 형태로 글이 적힌 문서다. 동학 농민운동을 이끈 녹두장군 전봉준은 주동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도록 사발통문을 활용했다. 비상계엄령이 내려진 19805월 광주 5·18 항쟁을 알고 있었던 경북대학교 학생들은 광주 시민들을 학살한 전두환 정권과 계엄군의 만행을 폭로하고, 시위 장소를 알리는 사발통문을 배포했다



 비상계엄이 확대된 뒤 경북대학교 학생들은 524반월당에 모여서 시위하자고 사발통문이 돌았어요. 그날 막상 반월당에 가니까 경찰차만 길가에 쭉 있고 사람들이 모이지 않았어요. 우리는 덕산빌딩 쪽에서 서성거리다가 시위는 포기하고 술 마시러 중앙공원 쪽으로 갔어요.


(대구의 5·18, 두레양서조합 사건》 중에서, 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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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5-08-16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시루스님의 글은 좋았지만, 이번 글은 특히 더 좋네요.
518과 815가 그런 관계로군요.

그런데 어떻게 알라딘에 글을 쓰면서 이렇게 깔끔하게 편집을 잘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html 편집을 잘 하시는 건가요?
알라딘에 사진을 넣으면 사진 크기 줄이기도 어렵고, 영 불편하기만 하던데요.
늘 시루스님의 글은 깔끔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cyrus 2025-08-17 07:42   좋아요 0 | URL
원래 이 책을 5월에 소개하려고 했는데, 차일피일하면서 미루기만 했어요. 광복절 날짜를 거꾸로 하면 518이라서 저는 특별한 방식으로 서평을 써봤어요.

글은 한글2022 프로그램에 쓰고요, 사진은 마우스 드래그 기능으로 크기를 조절해요. 사진이 너무 크면 가장자리 쪽이 잘린 채 나와서 제가 봐도 만족스럽지 못해요. 그래서 사진 크기를 줄이거나 작게 잘라서 편집해서 등록하는데, 문제는 해상도가 떨어져요. 원본 사진보다 선명하지 않아서 아쉬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