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다시 건강해지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위한 의료윤리학의 질문들
김준혁 지음 / 반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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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도덕과 윤리가 없으면 사회와 국가라는 공동체가 흔들린다. 도덕과 윤리는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지켜야 하는 행동규범이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철석같이 믿고 있는 도덕과 윤리의 정의다. 라틴어 ‘mores’는 도덕과 풍습을 뜻한다. 도덕적 또는 윤리적 삶은 오래전에 만들어진 공동체의 규율이나 관례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도덕과 윤리는 우리 귀에 대고 ‘반드시 해야 한다라고 끊임없이 속삭인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Nietzsche)는 윤리가 풍습을 지키기 위한 복종과 같다고 봤다. 그는 자신의 책 아침놀에서 가장 윤리적인 사람이야말로 공동체의 풍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런 사람은 개인의 자유와 비판 정신을 말살하는 도덕과 윤리에 따지지 못한다.

 

의료윤리학자 김준혁은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따지는 윤리의 역할을 따진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선택의 갈림길에 여러 번 선다. 이때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고민한다. 김준혁은 우리에게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학문이 윤리라고 말한다. 그런 다음,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윤리를 가지고 의학이 우리 사회에 올바르게 사용하고 있는지 따진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 삶의 변화를 앞당겼을 뿐만 아니라 감염병에 철저히 대비하기 위해 지켜야 할 도덕적 관습을 낳았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만든 가장 대표적인 도덕적 관습은 사회적 거리두기마스크 쓰기. 정부는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식당 및 카페의 영업시간과 모임 인원을 제한했고,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시행했다. 코로나19 확진자는 주변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과 비난을 한 몸에 받는다. 팬데믹에 지친 사람들은 확진자에게 책임을 묻거나 과도하게 비난한다. 확진되지 않은 사람(사실 이 표현에 문제점이 있다)은 확진자들을 비도덕적 인간으로 간주한다. 마스크를 제대로 쓰지 않았거나 사람이 많이 모인 장소에 돌아다녀서 확진자가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백신을 안 맞았는데도 확진 판정을 받지 않았고, 게다가 감기도 걸리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일수록 자신이 건강하다고 확신하며 건강하지 못한 확진자를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니체는 아침놀서문에서 도덕에 대한 지나친 신뢰를 철회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김준혁은 개인과 인간에게만 초점이 맞춰진 건강의 정의와 코로나19 방역 조치에 대한 지나친 신뢰를 따지기 위해 우리 다시 건강해지려면을 썼다. K-방역으로 알려진 신속항원검사는 한때 전 세계가 주목했다. 하지만 저자는 K-방역의 장점으로 주목받은 빠른 진단 검사에 지나치게 신뢰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문제를 제기한다. 모든 의학적 검사 결과는 완벽하지 않다. 양성과 음성으로 판정하는 신속항원검사 결과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는데도 확진자로 진단받을 수 있고(위양성), 감염되었는데도 아무 이상이 없다는 진단이 나올 수 있다(위음성). 위음성으로 의심되는 결과를 받은 확진자는 스스로 건강하다는 확신 속에서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낀다. 그들은 자신을 확진되지 않은 사람으로 인식하겠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확진되지 않은이라는 표현에 결점이 있다. 우리는 건강의 정의를 질병의 부재와 동일시한다. 그러므로 확진자가 아니더라도, 몸이 아프지 않으면 자신의 건강 상태가 좋다고 착각한다.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은 질병이 생각보다 많다.

 

건강 상태가 안 좋으면 그 원인을 개인의 생활 습관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개인의 부주의한 건강 관리와 생활 방식을 지적하는 것을 질병의 개인적 책임담론이라 한다. 개인적 책임 담론은 건강의 정의를 개인의 능력과 결부시키는 관점에서 비롯된다. 저자는 개인의 책임과 사회의 책임이라는 이분법적 틀로 의료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을 비판한다. 질병의 원인을 환자 개인의 문제로만 바라보게 되면 사람을 병들게 하는 사회구조의 문제점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저자는 개인과 사회가 건강 문제에 함께 관심을 가지는 동시에 함께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다시 건강해지려면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의학과 의료 제도가 우리 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실외 마스크 의무와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조치에 기분이 들뜨기 쉬운 지금 시기에 읽어야 할 책이다. 감염병 유행은 돌고 돈다. 그러면 팬데믹 시대의 문제점도 다시 나온다. 확진자를 향한 차별과 배제는 일상적인 일이 된다. 마스크를 잘 쓰고 다니고, 몸에 이상이 없는 사람은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확진자를 비난하면서 선량하고 건강한 차별주의자가 된다. 팬데믹이 길어지면 장애인과 노인의 돌봄 사각지대는 더 커진다. 지구에 오래 살고 싶은 인간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매개체로 밝혀진 야생동물을 무차별적으로 죽인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생각하게 만드는 윤리가 제 역할을 해줘야 한다. 네가 건강해지려면 무조건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명령하는 윤리와 헤어지자. 건강한 윤리는 자신을 따르라면서 우리에게 강압적으로 명령하지 않는다.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과 자연, 동물이 건강해질 수 있는 삶의 방식이 어떤 것인지 우리에게 재차 묻는다.






※ 미주(尾註)알 고주(考註)



* 30

 




 보통 나이가 들수록 몸 여기저기의 기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그렇다. 청년과 노인을 비교하면 청년보다 노인의 신체 상태가 일반적으로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므로[주] 노인은 무조건 건강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경험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건강하다고 할 수 있는 나이 든 사람은 많다.

 


[]그러므로라는 표현을 삭제하면 문맥이 자연스러워진다.




우리 다시 건강해지려면 102, 104쪽에 있는 25번과 26번 주의 출처는 ‘Judith Butler, Precarious Life: The Powers of Mourning and Violence(2004)’. 출처에 원서명만 나와 있는데 주디스 버틀러의 책은 불확실한 삶: 애도와 폭력의 권력들(양효실 옮김, 경성대학교출판부, 2008)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10년 뒤에 새로운 역자와 출판사를 만나면서 제목이 바뀐 위태로운 삶: 애도의 힘과 폭력(윤조원 옮김, 필로소픽, 2018)으로 재출간되었다104쪽의 인용문은 위태로운 삶서문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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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알라 - 뇌과학으로 다시 태어난 소크라테스의 지혜
스티븐 M. 플레밍 지음, 배명복 옮김 / 바다출판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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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고대 그리스인들은 미래를 알고 싶으면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을 방문했다. 이곳에서 그리스인들은 무녀 퓌티아(Pythia)에게 미래에 관해 물어봤다. 신전 안에 틈이 있는데, 지하에 있는 증기가 이 틈으로 새어 나온다. 증기를 마신 퓌티아는 무아경에 빠진 채 신이 내린 답변을 읊조린다. 옆에 있는 보좌관은 무녀의 예언을 받아적어 의뢰인에게 전달한다. 그리스인들은 퓌티아의 예언이 신비스러운 증기와 관련이 있다고 믿었다. 현대 학자들은 증기의 정체가 유황 가스 또는 에틸렌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신전 밑의 단층에 있는 유황 가스가 발견되었다. 이 기체를 마시면 정신이 몽롱해지는 환각 증상이 나타난다.

 

아폴론 신전의 기둥에 너 자신을 알라라는 한 줄의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이 문구는 철학자 소크라테스(Socrates)가 한 말로 알려져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답답해서 신전을 찾아간 그리스인들은 신전 기둥의 문구를 유심히 살펴봤을까. 인생의 해답을 찾고 싶은 마음이 앞선 그들의 눈에 문구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을 것이다

 

무녀가 무아경에 빠져 신탁을 내리는 방식은 과학적 현상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신탁의 내용은 추측에 가까운 예언일 뿐 정확하지 않다. 무녀의 예언은 정확한 정보를 분석해서 내리는 과학적 예측이라 할 수 없다. 잘 살기 위한 비결이나 인생의 해답은 무녀의 신탁에 없다. 빗나가기 쉬운 예언을 믿는 것보다 차라리 자기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곱씹어보는 게 최선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능력을 갖춘 동물이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탐색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고 싶어서 부단히 생각하는 능력을 심리학자들은 자기 인식(self-awareness)’ 또는 메타인지(meta-cognition)’라고 부른다너 자신을 알라는 심오한 철학적 명언이 아니다. 나 자신을 알라(Know Thyself)는 뇌과학이 밝힌 연구 결과와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면서 자기 인식이 왜 중요한 일인지 알려준다. 인간의 뇌는 자기 자신을 알려고 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낯선 세상과 타인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성장하는 내내 불확실한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터득하면서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 행동을 스스로 관찰하면서 나를 바라보는 타인의 마음 또는 나와 다른 생각을 이해하려고 한다. 인간의 뇌에 자기 인식 능력이 없었더라면, 협업과 연대가 불가능한 세상으로 발전되었을 것이다. 협업과 연대가 이루어지려면 이타심이 있어야겠지만, 이것이 발현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자기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기 인식은 내 생각이 항상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능력이 아니다. 내가 모르는 게 많고, 언제나 오류를 범하기 쉬운 존재임을 알려주는 능력이다. 자기 인식의 진정한 용도는 내 잘못을 스스로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내 생각과 행동을 바로잡아가면서 좀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 분투한다. 내가 틀렸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게 하는 자기 인식 능력은 회의주의(Skeptic)와 비슷하다(나 자신을 알라를 펴낸 바다출판사과학 계간지 스켑틱한국판을 발행하고 있다). 회의주의자는 특정 신념과 지식에 갇혀 있지 않고, 항상 의심한다. 자신이 믿고 있는 지식이 오류로 판명되면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인다.

 

나 자신을 알아가는 여정은 순탄하지 않다. 왜냐하면 자기 인식은 늘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우 합리적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간다고 믿지만, 대부분 이성보다 감성에 좌우되는 비합리적 의사결정을 한다. 우리 뇌는 많은 시간을 들여서 꼼꼼하게 분석해서 판단하는 것보다 직관에 의존해 손쉽게 판단을 내리는 일을 선호한다. 이것을 휴리스틱(heuristic)이라 한다. 나 자신을 알라는 자기 인식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하지 않는다. 비록 단점이 있어도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라는 통념이 꽤 오랫동안 남아 있는 이 세상에서 부족한 나를 알아가면서 조금씩 변화를 주는 일이 절실히 필요하다


대충 살자, ○○처럼이라는 인터넷 밈(meme)은 복잡하게 생각하기 싫은 우리 뇌가 무척 좋아할 수 있겠다. 그렇게 우리는 대충하자는 뇌의 은밀한 주문에 이끌리는 대로 살아갈 것이고.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잘 살고 싶어 하며 한 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혼자서 고민을 해결하기 버거운 사람들은 점집에 가거나 인터넷에 출몰하는 익명의 존재들에게 조언을 구한다. 문제는 전문가답지 않은 퓌티아들이 너무 많다알게 모르게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자기를 인식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살아왔다. 이러한 크고 작은 경험을 통해 생각 없이 대충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바보 같은 짓인지 스스로 확인했다. 자신을 알아가는 자기 인식은 어렵지 않고, 힘들지도 않다. 우리 혼자 할 수 있으며 반드시 해야 하는 나만의 공부다.






정오표




* 87





 2세 무렵부터 아이들은 부모나 교사가 정한 규칙이나 표준에 따라 자기 행동을 평가하기 시작한다. 거기에 못 미쳤을 때는 죄책감이나 당혹감을 나타내고, 성공했을 때는 자부심을 표시하는 등 자기 의식적 감정(self-concious[주] emotion)을 드러낸다.



[] ‘conscious(의식하는, 자각하는)’의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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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5-02 0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자신을 아는 건 전부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는 가능한거 같은데 긍정적으로 변화를 주는건 쉽지 않더라구요 😅 이론과 현실의 간격? ㅋ 대충살자 저런 밈이 유행인가 보네요. 왠지 찔립니다 ㅎㅎ

cyrus 2022-05-08 08:58   좋아요 1 | URL
‘대충 살자’ 밈이 저는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면서 살지 말자’라는 뜻으로 이해했어요. 생각이 너무 많은 것도 좋지 않아요. ^^;;
 




과학도나 사회과학도들을 만난다면 꼭 한번 묻고 싶다. 작년 12월에 타계한 미국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O. 윌슨(Edward O. Wilson)의 학문적 업적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내 질문에 그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도 인간의 행동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윌슨의 견해, 즉 유전자 결정론(또는 생물학적 결정론)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낼 것이다. 유전자 결정론은 여성의 신체적 · 정신적 열등함을 뒷받침하는 데 사용된다. 윌슨은 1975년에 사회생물학을 발표하여 진화론의 시각에서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분석했다. 그의 책에 반영된 유전자 결정론은 환경과 양육이 인간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절대적으로 보는 환경 결정론이 대세였던 당시 사회과학계를 분노로 들끓게 했다. 실제로 윌슨은 유전자가 성차를 결정한다고 주장했으며 앞으로도 여성은 남성보다 뒤떨어질 거라고 예상했다. 생물학자와 페미니스트들은 그의 발언을 비판했다윌슨이 같이 하버드 대학교에 근무하고 있던 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리처드 르원틴(Richard C. Lewontin)대중을 위한 과학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윌슨과 사회생물학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여기에 마르크스주의자와 좌파들까지 합세하면서 윌슨은 수세에 몰렸다. 그들은 윌슨이 성차별주의를 노골적으로 옹호한 보수 우파라고 비난했다. 심지어 윌슨이 있는 어디든 따라가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 시위자들은 심포지엄에서 연설을 시작하려는 윌슨에 다가가 물을 뿌리기도 했다.

















* 스티븐 제이 굴드 다윈 이후(사이언스북스, 2009)

* 스티븐 제이 굴드 인간에 대한 오해(사회평론, 2003)

 















* 리처드 르원틴, 스티븐 로즈, 레온 J. 카민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 생물학. 이념. 인간의 본성(한울아카데미, 2009)

 

* [품절] 리처드 르원틴 DNA 독트린: 이데올로기서의 생물학(궁리, 2001)





여전히 많은 사람은 유전자 결정론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들이 보는 유전자 결정론은 과학이 아니라 성, 인종, 장애인 차별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 유전자 결정론과 관련이 있는 사회생물학과 진화심리학은 남성의 여성 지배를 신체적 차이에 근거한 자연의 질서로 본다. 굴드는 자신의 책 다윈 이후(Ever Since Darwin, 1977)인간에 대한 오해(The Mismeasure of Man, 1981)에서 불평등한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이데올로기가 된 유전자 결정론을 비판하는 견해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르원틴은 굴드보다 한층 더 혹독하게 유전자 결정론을 비판한 학자다. 그가 쓴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Not in Our Genes: Biology, Ideology and Human Nature, 1984)DNA 독트린(Biology as Ideology: The Doctrine of DNA, 1991)은 사회생물학과 유전자 결정론을 요목조목 비판한 책이다이 네 권의 책은 유전자 결정론이 불편하지만, 조리 있게 반박하지 못하는 독자에게 힘이 되어 준다.


















* 데버라 캐머런 페미니즘(신사책방, 2022)


* 앤 커, 톰 셰익스피어 장애와 유전자 정치: 우생학에서 인간게놈프로젝트까지(그린비, 2021)


* 마리 루티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 진화심리학이 퍼뜨리는 젠더 불평등(동녘사이언스, 2017)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를 개선하려는 페미니스트와 마르크스주의자는 진화심리학과 유전자 결정론을 반대한다심리학자 마리 루티(Mari Ruti)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는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부추기는 진화심리학 이론이 과학적 사실인 것처럼 생산되는 현실을 비판한다페미니스트 언어학자 데버라 캐머런(Deborah Cameron)페미니즘에서 생물학적 결정론이 여성 지배 사회가 존재하지 않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된다고 주장한다. 생물학적 결정론에 따르면 남성은 여성보다 몸집이 크며 체력이 좋고, 공격성이 있어서 사회와 여성을 지배할 수 있다. 장애학도 생물학적 결정론을 비판하는 학문이다장애와 유전자 정치는 이름만 바뀌면서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우생학의 실체를 보여준다. 우생학은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켰고, 장애인을 사회에서 배제하는 정책들이 만들어졌다. 사회생물학은 1970년대에 등장한 신우생학이다.


유전자 결정론과 진화심리학에 대한 대중의 불신이 깊어지면서 환경 결정론은 본성 대 양육논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오랜 논쟁이 양육 가설을 지지하는 환경 결정론자의 일방적인 승리로 종결되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이제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지지해야 하는 이분법적 구분을 거부해야 한다. 더 나은 쪽은 없다. 유전과 환경의 상호작용이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


















* 에드워드 O. 윌슨 인간 본성에 대하여(사이언스북스, 2011)

* 에드워드 O. 윌슨 자연주의자(사이언스북스, 1996)





유전자 결정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사실과 전혀 다른 편견을 낳는다. 그 편견의 예가 진화론자는 유전자 결정론을 지지한다든가 윌슨 같은 사회생물학자들을 성차별주의자이자 우파라고 속단하는 일이다그러나 유전자 결정론을 지지하는 진화심리학자들은 환경의 영향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들은 인간의 행동이 유전적 요인과 환경과 상호 반응하면서 바뀔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윌슨은 사회생물학출간 이후에 펴낸 인간 본성에 대하여에서 인간은 신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의 우연(genetic chance)과 환경의 필연(environmental necessity)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유전적인 요인과 환경 둘 다 인간 행동에 필수적이라는 윌슨의 견해는 책에 또다시 나온다. 개인은 자신의 환경, 특히 문화적 환경과 사회적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된다(43).” 윌슨의 자서전 자연주의자는 사회생물학 논쟁의 소용돌이 한가운데를 지나오면서 느낀 생물학자의 솔직한 심정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윌슨은 사회생물학이 정치적인 동기가 반영된 학문이라고 비난받은 것에 반박했는데, 자신은 이데올로기에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


유전자 결정론이 우파의 정치적인 강령과 손을 잡는 것에 우려하는 과학도와 사회과학도의 반응은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인간 행동의 본질을 설명할 때 무조건 양육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과 유전자 결정론자를 성차별주의자’, ‘반페미니스트’, 나쁜 과학을 신봉하는 세력으로 몰아세우는 비난은 독단적인 태도다


















* [e-Book] 스켑틱 Vol. 4: 과학을 사유하다(바다출판사, 2015)

* [e-Book] 스켑틱 Vol. 16: 길러진 본능인가 타고난 학습인가(바다출판사, 2018)

 



 

과학 잡지 스켑틱4의 특집 기사 제목은 진화하는 진화심리학이다. 진화심리학이 인간 본성에 관한 최신 연구 결과를 받아들이면서 지식의 범위를 어떻게 확장해나가는지 확인할 수 있다. 진화심리학이 어떤 학문인지 파악했으면 본성과 양육’을 주제로 한 특집 기사가 실린 스켑틱16를 읽으면 된다.

 


















* 케빈 랠런드, 길리언 브라운 센스 앤 넌센스: 20세기를 뒤흔든 진화론의 핵심을 망라한 세계적 권위의 교과서(동아시아, 2014)

 

* [절판] 딜런 에번스 진화심리학(김영사, 2001)





센스 앤 넌센스진화심리학은 진화심리학의 한계를 설명하면서도 진화심리학에 대한 오해까지도 비판하는 책이다. 센스 앤 넌센스의 저자는 인간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본성과 양육이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분해하려는 발상 자체가 난센스라고 말한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인간은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라는 재료가 섞어져서 만들어진 케이크와 같다. 그래도 유전자 결정론과 진화심리학이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인간이라는 케이크에 먹음직스러운 환경적 요인만 쏙 빼서 먹고 싶어 할 것이다. 하지만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을 정확하게 구분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본성과 양육, 어느 쪽이 옳은 건지 따지는 건 어리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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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2-04-16 10: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굴드 책을 읽으면서 윌슨에 대해 비판하는 배경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항상 궁금했었습니다. cyrus님 덕분에 조금 이해가 되었어요.^^ 개개인의 다른 생각들이 중요하면서도 무언가에 비판적인 주장이 당론처럼 집단의 주장이 되어버리면 (그리고 전문가의 이름으로 강요되기 시작하면)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가기 쉬울 것 같습니다. 리처드 도킨즈 계열인 <개미와 공작>의 헬레나 크로닌이 굴드를 ‘사기꾼‘이라고 말하는 맥락도 뭔가 비슷한 이유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중에 가능하시다면 이 맥락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cyrus 2022-05-01 17:46   좋아요 2 | URL
<개미와 공작>을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리처드 도킨스와 윌슨은 유전적 결정론 지지자로 분류돼요. 물론 이들은 환경적인 요인도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도킨스 계열인 헬레나 크로닌이 도킨스와 윌슨을 혹독하게 비판한 굴드에 반감을 느낀 것 같습니다. ^^;;

초란공 2022-05-01 21:29   좋아요 0 | URL
아, 도킨스와 윌슨이 이런 관점에서 함께 묶일 수도 있군요!! 여기에 굴드나 르원틴의 관점을 이해하고 이들의 책을 읽으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blanca 2022-04-16 10: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아이를 키울수록 본성과 양육 두 측면 어느 한 부분도 함부로 폄하할 것이 못된다는 생각을 강렬하게 하게 됩니다. 마지막 문장에 정말 공감합니다. <스켑틱> 16호 읽어볼게요.

cyrus 2022-05-01 17:49   좋아요 1 | URL
육아가 양육의 동의어에 가깝게 느껴서 그런지 육아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적 요인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

이하라 2022-04-16 11: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태생적인 것과 환경적인 것 중 하나만 인간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닐텐데 한측만 강조하는 경향이 아직까지 이어지는 게 더 신기합니다. 과학과 사회에 대한 책들은 참 깊은 감상을 불러오는 것 같습니다. 이런 깊은 사유가 가능하도록 저도 다양한 장르의 독서를 해야겠다는 깨우침이 드네요.

cyrus 2022-05-01 17:51   좋아요 2 | URL
이제는 ‘본성 대 양육’이 아닌 ‘본성과 양육’으로 표현이 대체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파이버 2022-04-16 12: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선천적인 것도 후천적인 것도 둘다 중요하죠... 가끔 문제를 겪는 아이들을 키우시는 부모님들이 양육방식에 대해 자책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마음아파요...

cyrus 2022-05-01 17:54   좋아요 3 | URL
사회가 양육의 중요성을 너무 강조하면 양육이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능력으로 인식하게 돼요. 이러면 주변 사람은 부모의 양육 문제에 지나치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 참견하게 됩니다. 이런 주변의 압박감이 부모를 힘들게 하죠. ^^;;

미미 2022-04-16 13: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 덕분에 더 폭넓은 독서를 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낍니다.^^* 고맙습니다

cyrus 2022-05-01 17:58   좋아요 1 | URL
알라딘 서재에 다양한 분야의 책을 두루 읽는 분들이 많아요. ^^

수하 2022-04-16 13: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과학을 공부하긴 했는데 윌슨의 책은 통섭만 읽다가 말아서 윌슨의 업적에 대햐서는 뭐라 말하기 어렵네요. 그 분의 제자 최재천 교수는 존경할만한 분이라 생각합니다.

환경과 양육 두 가지 다 영향이 있다는 사실은 막연히 다들 알고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무엇이 얼마나 영향을 준다-에서 입장이 다르지 않을까 합니다. 그 무엇, 얼마나가 과학이 추구하는 바이고요. 그 무엇-얼마나를 자세히 설명하다보면 그 분야를 전공한 과학자들 외에는 모두가 알고 싶지 않아진다는게 과학이 대중들에게 오해받고 거리를 두게 되는 이유인 것 같아요. 과학자들도 좀더 대중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야할 것 같고 학교에서의 과학교육이 과거의 이론을 중심으로 하기보다 현재의 이슈와도 관련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cyrus 2022-05-01 18:00   좋아요 3 | URL
저도 수하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과학 교과서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잘 모르겠지만, 과학 교과서에 새로운 지식이 추가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아요. ^^;;

mini74 2022-04-16 2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읽었던 책이랑 연결돼서 무지 유익하게 읽었어요 책 몇몇 권은 관심도 가고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cyrus 2022-05-01 18:02   좋아요 2 | URL
사회생물학과 관련된 책이 더 있는데 내용이 길어져서 언급하지 못했어요. 그 책들을 읽고, 사회생물학에 대한 글 한 편 더 써볼 생각이에요. ^^

감은빛 2022-04-21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환경단체 신입활동가였던 시절에 사회생물학 석사과정 대학원생들과 공부모임을 짧게 한 적이 있었어요.
제대로 공부했던 것은 절대 아니고 살짝 맛본 수준이라고도 말하지 못할 정도이지만,
당시에도 이 학문에 대한 거부감이 컸던 것은 기억나요.
잘 정리해주신 이 글 덕분에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서 좋네요.
고맙습니다! ^^

cyrus 2022-05-01 18:06   좋아요 1 | URL
저 역시 사회생물학의 기초적인 내용만 이해한 상태라서 더 공부해야 해요. ^^

Angela 2022-04-23 0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nature vs nurture 에 대한 논의는 항상 있는것같아요~

cyrus 2022-05-01 18:10   좋아요 2 | URL
‘대(vs)’라는 표현을 쓰고 싶지 않아요. ‘본성 대 양육’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면 사람들은 본성과 양육이 절대로 섞이지 않은 물과 기름 같은 관계로 이해하게 돼요. ^^;;
 
반 고흐의 누이들
빌럼 얀 페를린던 지음, 김산하 옮김 / 만복당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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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 어머니, 빈센트는 진정한 나의 형제였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가 죽은 지 며칠 후에 테오 반 고흐(Theodorus van Gogh)는 자신의 참담한 심정을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 밝힌다. 빈센트와 테오는 서로 다른 몸에 들어있는 하나의 영혼이었다. 그들이 주고받은 수백여 통의 편지는 분리된 영혼을 더욱 끈끈하게 만들었다. 테오는 반쪽 영혼이 별이 된 지 일년 후 그의 곁으로 갔다.

 

형제가 남긴 방대한 편지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많은 사람은 외로운 빈센트가 테오에게 많이 의존했다고 생각한다. 빈센트가 동생의 도움을 받으면서 예술 활동을 한 건 사실이다. 빈센트에게 테오는 경제적 후원자일 뿐 아니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혈육이었다. 하지만 빈센트와 정신적 교감을 나눈 혈육이 또 한 명 있다. 그 사람은 바로 빈센트가 가장 아꼈던 여동생 빌레민(Wilhelmien, 애칭 ’)이다.

 

빈센트의 그림을 좋아하는 예술 애호가들도, 심지어 빈센트의 생애를 조사하면서 연구한 학자들마저도 간과하거나 잘 모르는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빈센트에게 세 명의 누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형제의 유명세에 가려진 세 누이의 삶을 조명한 반 고흐의 누이들을 쓴 저자 빌럼 얀 페를린던(Willem-Jan Verlinden)도 이 책을 쓰기 전까지 세 누이를 모르고 있었다. 반 고흐 가는 6남매로 이루어져 있다. 목사와 결혼한 안나(Anna)빈센트라는 이름이 붙여진 첫 아이를 출산하지만,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죽는다. 정확히 일 년 후에 태어난 아이는 죽은 형의 이름을 물려받는다. 그 이후로 안나(2), 테오, 엘리사벗(Elizabeth, 4, 애칭 리스’), (5), 코르넬리우스(Cornelius, 애칭 코르’)가 태어난다.

 

빈센트는 테오뿐만 아니라 누이들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편지는 빈센트가 살았던 당시에 멀리 떨어져 지낸 사람들이 유일하게 사용한 연락 수단이다. 반 고흐 가 사람들은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근황을 확인했다. 저자는 지금까지 남아 있는 편지를 바탕으로 빈센트의 세 누이의 삶을 복원한다. 그리고 반 고흐 가의 후손들을 직접 만나면서 공개되지 않은 세 누이의 초상 사진과 그 밖의 자료를 얻는 데 성공한다.

 

반 고흐의 누이들이 이전에 출간된 수많은 빈센트 반 고흐 관련 책과 차별화되는 지점들이 있다. 첫 번째 지점, 저자는 각종 서신과 기타 자료에 남아 있는 세 누이의 시선으로 빈센트의 삶을 바라본다. 빈센트와 테오의 편지는 예술사적 가치가 있는 텍스트로 평가된다. 그동안 학자들은 예술을 주제로 한 편지 내용을 토대로 예술가 반 고흐의 삶을 복원하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오빠 빈센트에 대해 솔직하게 감정을 밝힌 누이들의 편지가 사료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둘째 안나는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오빠 빈센트에 대한 불편한 심정을 드러낸다. 그녀가 생각하는 빈센트는 자기 주관이 뚜렷한 예술가가 아니라 아버지의 말을 따르지 않은 철부지 오빠다. 그러면서 제멋대로인 그를 인간적으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안나는 가부장 권위와 가족 간의 정을 중시했다. 그녀는 화가가 되고 싶은 열망이 거대해진 빈센트를 문제아로 취급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같은 피로 이어진 관계에서 물과 기름 같은 관계로 변하게 되고, 가족에게 실망한 빈센트는 고향을 떠나 본격적으로 타국 생활을 시작한다. 반 고흐의 누이들은 연구가들의 손에 의해 달라붙은 예술가라는 덧칠을 완전히 벗긴 빈센트를 보여준다.

 

그래도 반 고흐의 누이들의 저자는 미술사가다. 당연히 이 책에 빈센트의 작품에 대한 저자의 분석 작업이 포함되어 있다. 두 번째 지점. 저자는 빈센트의 작품에 반영된 당대 유럽의 사회적 · 경제적 · 문화적 지형을 살핀다. 빈센트가 네덜란드에 살면서 그린 초기작 대다수는 방직공과 농민을 모델로 하고 있다. 시골 노동자의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빈센트의 초기작들은 후기에 나온 걸작에 비해 주목도가 낮다. 하지만 저자는 이 작품들이 어떻게 사회적 상황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탄생하였는지 설명한다. 빈센트는 모델을 구하지 못해 마을에 사는 가난한 주민들을 모델로 삼아 그림을 그렸다. 여기서 저자는 근대화가 진행 중인 네덜란드의 궁핍한 시대를 읽어낸다. 빌과 빈센트는 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빈센트는 빌에게 보낸 편지에 자신이 읽은 책들, 특히 프랑스 작가들의 소설을 권했다. 빈센트의 작품 중에 책이 있는 정물화가 있다. 이 그림들과 문학에 관한 내용의 편지는 빈센트의 예술 활동 및 독서에 영향을 준 당대에 유행한 문학과 출판시장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단서다.

 

세 번째 지점. 저자는 남성 중심의 역사가 주목하지 않은 여성의 우정을 소개하고, 그 속에서 흐르기 시작한 네덜란드 페미니즘 제1 물결의 성취를 언급한다. 네덜란드의 중산층 집안 출신 여성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노동은 사회복지 일이었다. 그러나 결혼한 여성은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빌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가난한 환자들을 돌보는 간호사로 일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관심을 가지게 된 그녀는 암스테르담과 헤이그에서 활동한 페미니스트들을 만나 페미니즘 운동에 참여했다. 그리하여 헤이그에 여성을 위한 도서관이 세워졌고, 빌은 이 도서관 회원으로 활동했다. 테오의 아내 요한나 봉어르(Johanna Bonger, 애칭 ’)는 빈센트와 테오의 형제애를 세상에 알리는 데 이바지한 인물이. 요와 리스는 편지를 주고받을 정도로 친한 사이다. 그들은 편지로 책과 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편지에 나타난 두 사람의 관계는 올케와 시누이라기보다는 관심사가 비슷한 친구에 가깝다.

 

세 누이를 포함한 반 고흐 가의 여자들(어머니 안나와 요)은 오랫동안 반 고흐 형제의 주변인, 또는 예술과 무관한 인물로 소개되었다. 반 고흐의 누이들반 고흐 형제라는 이름의 먼지에 묻힌 여성들의 삶과 목소리를 이해하기 위한 책이다. 묵은 먼지를 털어낸 그녀들의 이야기는 고독한 천재가 아닌 예술에 푹 빠진 사람’ 빈센트 반 고흐를 볼 수 있는 창()이다.






※ 미주(尾註)알 고주(考註)



* 185

 

 뤼시앵[] 피사로1887년에 빈센트와 테오를 함께 그렸고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도 같은 해에 빈센트를 그린 바 있다.

 

 

* 229


 클로드 모네, 아르망 기요맹,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도 테오에게 추모의 편지를 보냈다. 카미유 피사로는 장례식에 직접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대신 아들 루시앙[]을 보냈다.

 

 

[] 185쪽에 언급된 뤼시앵 피사로229쪽의 ‘카미유 피사로의 아들 루시앙은 같은 사람이다. 2쇄가 나오면 이름 표기를 하나로 통일해서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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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la 2022-04-10 11: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누이에 대한 이야기 처음이예요. 페미니즘 1 물결이라니~

cyrus 2022-04-11 20:34   좋아요 1 | URL
제가 빈센트를 좋아하는 독자라서 이 책 나오기 전에 진행된 북펀딩에 참여했어요. ^^

미미 2022-04-10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이 인상적이네요! 저도 고흐에게 누이들이, 그것도 셋이나 있는 줄 몰랐습니다. 게다가 페미니스트였다니 반갑네요^^*

cyrus 2022-04-11 20:36   좋아요 2 | URL
테오의 아내도 훌륭한 사람이에요. 이 사람이 없었으면 빈센트와 테오가 주고받은 편지가 남아 있지 않았을 거예요. ^^

mini74 2022-04-10 1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관심있어서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리뷰 읽으니 고민은 끝 ! 읽어야겠습니다 ~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cyrus 2022-04-11 20:38   좋아요 2 | URL
고흐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책에 만족하실 겁니다. ^^

moonnight 2022-04-10 19: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토요일 신문에서 신간소개기사 읽었는데 벌써 읽으시고 리뷰까지 쓰셨군요. 존경@_@;;;; 고흐의 작품들은 좋지만 가족이라면 괴로웠겠다 싶던데요ㅜㅜ;;

cyrus 2022-04-11 20:40   좋아요 1 | URL
제가 <반 고흐의 누이들> 북펀딩에 참여했어요. 책은 지난주에 받았어요. 정해진 기간 안에 100자 평을 쓰면 북펀딩 정산금을 받을 수 있어요. 리뷰 안 쓰고 미루면 정산금 못 받을 거 후딱 썼습니다. ^^

stella.K 2022-04-10 20: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이런 책이 있었네.
누이들은 하나도 알려지지 않아서 난 부모가 테오 딱 두 형제만 난 줄 알았다.
언제 북펀드도 했었구만.
나도 언제고 읽어야겠다.^^

cyrus 2022-04-11 20:41   좋아요 2 | URL
제가 고흐 찐팬이라서 북펀드에 참여했어요. ^^
 
반 고흐의 누이들
빌럼 얀 페를린던 지음, 김산하 옮김 / 만복당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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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형제’라는 이름의 먼지에 묻힌 반 고흐의 누이들의 목소리가 담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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