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서병훈 옮김 / 마농지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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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독립선언서』 

공약 3장의 첫 번째 장



 금일 오인(吾人) 의 차거(此擧)는 정의, 인도, 생존, 존영을 위하는 민족적 요구이니, 오직 자유적 정신을 발휘할 것이오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일주(逸走)하지 말라.

 



[현대어 풀이]


 오늘 우리의 이번 거사는 정의, 인도와 생존과 영광을 갈망하는 민족 전체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의 정신을 발휘할 것이요, 결코 배타적인 감정으로 정도에서 벗어난 잘못을 저지르지 마라.

 


(출처: 나무위키)






소극적인 자유주의자는 남의 간섭을 받고 싶지 않다. 만약 타인이 그의 행동에 조금이라도 간섭한다면 자유를 침범한 것이다. 적극적인 자유주의자는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방식에 관심이 많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









영국의 정치철학자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자유의 두 개념이라는 강연문에서 자유를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로 분류한다. 그는 자유의 두 개념이 얼굴을 마주 보면서 같이 갈 수 없다고 선을 긋는다. 벌린은 소극적 자유주의자를 지지한다. 적극적 자유주의자는 개인의 자기 계발을 돕고 싶어 한다. 그러나 벌린은 적극적인 자유가 과하게 되면 개인의 자유를 간섭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적극적인 자유를 왜곡하거나 악용하면 개인의 자유를 죽이는 전체주의 사회가 등장한다.


벌린은 소극적 자유론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적극적 자유론을 전면 부정하지 않는다. 적극적 자유도 정당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냉전 시대에 소극적 자유론이 강세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자유주의의 근본은 소극적 자유라는 인식이 자리 잡는다적극적 자유론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학계와 정계에 진출한 소극적 자유주의자 중 일부는 우파 자유 지상주의자(libertarianism)가 된다. 이들은 전체주의의 등장을 지나치게 우려한 나머지, 마르크스주의자(Marxism)와 사회주의자의 목소리를 외면한다. 과거 냉전 시대에 공산주의와 대적한 정부를 찬양하고, 전체주의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그들은 냉전 시대 정부의 전체주의적 행보를 모르는 체한다. 오히려 우리가 공산주의에 점령당하지 않고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살 수 있게 해준 위대한 업적으로 포장한다자유주의를 비판하는 견해는 종북 세력과 결탁한 적으로 간주한다이런 그들은 스스로 자유민주주의자라고 떠벌린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무조건 배타적으로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개별성(individuality)을 발전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점점 가면 갈수록 자유의 다양한 의미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우파가 자유를 독점하다시피 틀어쥐고 있으니, 자유의 도 꺼내기 쉽지 않다자유를 마음대로 말할 수 없는 시대일수록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자유론을 곱씹어 읽어야 한다자유론을 꼼꼼하게 읽어 보면, 그의 자유주의에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가 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책의 머리말에서 어떤 사람의 물질적 또는 도덕적 이익을 위한다면서 그 사람을 간섭하는 것도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32). 소극적 자유의 맥락과 맞닿아 있다. 이어서 밀은 개인이 절대적인 자유를 당연히 누려야 하는 이유자기 자신, 즉 자기의 몸과 정신에 대해서는 각자가 주권자이기 때문이라고 명시한다(32). 주권자는 스스로 주체가 되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기 위해 의사결정에 참여한. 이러한 밀의 견해는 적극적 자유로 볼 수 있다자유론을 번역한 서병훈 교수는 밀의 자유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자유의 기본 원칙을 주장하면서도(소극적 자유), 자기 발전이라는 본원적 가치를 추구한다고 말한다(적극적 자유).


밀의 자유론자유주의 철학의 정석(定石)이면서도 회의주의(skepticism) 철학의 기본 원칙을 강조하는 교본(敎本)이다. 밀은 자유주의자 이전의 회의주의자또는 회의적 자유주의자밀은 영국의 어떤 작가가 말한 확정된 결론은 깊은 잠에 빠진다라는 말을 인용한다(91). 회의주의자는 확정된 결론 앞에서 꾸벅꾸벅 졸지 않는다. 그들은 사실로 확정된 결론을 절대 불변의 진리로 인식하지 않는다. 확정된 결론에 허점이 보이면 검증에 들어간다. 회의주의자 밀은 사람들이 마음 놓고 믿는 것일수록 온 세상 앞에서 더 철저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52).


회의주의자는 냉소주의자가 아니다. 냉소주의자는 믿을 만한 진리가 없다는 이유로 숙고와 검토를 포기한다. 그리고 회의주의자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상대방의 견해를 만나자마자 매정하게 마음을 닫고 배척하지도 않는다. 그들이 발언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경청한다. 밀이 강조한 것처럼 회의주의자는 어떤 문제에 대해 가능한 한 가장 정확한 진리를 얻기 위해서 의견이 다른 모든 사람의 생각을 들어본다.” (51밀은 소크라테스(Socrates) 모든 도덕 철학자의 원형으로 평가한다(58). 소크라테스는 검토 없이 사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주1]라고 말한 회의주의 철학의 원형이기도 하다.


전문가의 견해는 다수의 지지를 얻기 쉽다. 여기에 권위까지 실리면 검토하지 않아도 되는 확정된 지식으로 굳어진다. 회의주의자는 전문가가 말했으면 사실이야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회의주의적 독자는 자유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밀은 지적 스승이자 아내인 해리엇 테일러(Harriet Taylor)를 만나면서부터 여성의 불평등을 지적하고, 여성의 참정권을 역설한 여성의 종속을 발표한다. 가부장제 사회는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 바라보지 않았고, 어린이와 같은 미성숙한 존재로 인식한다. 그래서 수많은 남성 지식인은 정신적 · 경제적 능력이 떨어지는 여성은 남성의 보호를 받아야 하고, 남성에 종속되는 존재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밀은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하게 보는 차별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 지식인이다


그런데 밀은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에게만 자유의 기본 원칙을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미성년인 어린이를 자유 원칙의 적용 대상에 제외한다(32). 영국 산업혁명 시대에 살았던 10세 미만의 어린이들은 탄광이나 공장에서 열 시간 넘게 일했다. 1833년에 어린이의 노동 시간을 줄이고, 9살 미만의 어린이는 노동을 금지하는 일명 노동법이 만들어진다. 그래도 아동 노동은 여전했다. 밀이 어린이의 인격을 존중했다면 어린이에게 너무 많은 일을 시킨 사업주가 어린이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비판했을 것이다. 밀은 자유론시민의 자유를 다룬 책이라고 말한다(17쪽)모든 시민은 자유를 누려야 한다그러나 그의 머릿속에 있는 시민에 어린이는 없다


밀은 비유럽권 국가의 발전 가능성을 비관적으로 바라본다. 그는 아시아를 관습의 전횡이 극에 달한대륙이라고 규정한다(138~139).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겠지만, 밀이 백 세 넘게 장수해서 자유적인 정신을 발휘하는’ 자주적인 민족임을 세계만방에 알린 191931일 조선을 알았다면, 아시아를 바라보는 인식이 달라졌을까?







냉소주의자는 타인의 의견을 불신한다. 이들과 대면해서 자유로운 토론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냉소주의자는 타인의 의견을 경청할 줄 모른다. 밀은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토론의 자유가 이루어지려면 상대방을 향해 인신공격과 언어 폭력을 쓰는 사람을 비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배척하지 않고, 각자의 개별성을 존중하는 밀의 자유주의 또는 회의주의는 다정한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밀은 다정다감한 희망찬 회의주의자. 진보, 보수, 좌우를 떠나서 우리는 희망찬 회의론자가 되어야 한다.







<(밀리터리 덕후가 아닌

cyrus가 쓴 주석과 정오표>




[서평 제목이 있는 배경 사진에 관한 주석]

사진 속 남성은 밀, 

여성은 해리엇 테일러의 친딸이자 밀의 의붓딸

헬렌 테일러(Helen Taylor).

어머니의 외모와 정신을 빼닮은 헬렌은 

여성 참정권을 주장한 페미니스트.




[독서 모임 날짜에 관한 주석]

 <고라니 울고>자유론모임은 107주년이 된 3·1절인 일요일 오후 2시부터 시작했다. 모임 장소는 인더가든이다. 이곳은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모임 장소이기도 하다. <고라니 울고>를 이끄는 분은 김성현 님이다. 작년부터 만난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독자님이다.

기미독립선언서1919년 오후 2시 탑골공원에서 처음으로 낭독되었다. 모임이 시작되는 시간과 일치했다. 어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성현 님이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모임 시간을 정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성현 님도 기미독립선언서가 낭독한 시간을 모르고 있었다. 기미독립선언서낭독 시간과 모임이 시작되는 시간이 우연히 맞아떨어진 것이다.





[1]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38a, 

강철웅 옮김, 아카넷, 2020






* 33, 옮긴이 주





Akbar, 1524~1605 [주2]



[2] 인도 무굴제국의 제3대 황제 악바르(Akbar) 대제의 출생 연도가 잘못 적혀 있다. 그는 1542에 태어났다.





* 113




   

 다른 사람이 옳지 못한 행동을 하도록 직접 영향을 끼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의견의 자유도 무제한 허용될 수 없다. 예를 들어 곡물 중개상이 가난한 사람들을 배곯게 한다거나 사유재산은 강도질이나 다름없다는 의견[3]을 신문에 발표하는 경우는 누구도 제재해서는 안 된다.



[3] 사유재산을 부정한 프랑스의 아나키스트(Anarchist)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Pierre-Joseph Proudhon)의 견해. 그의 사상이 담긴 책이 소유란 무엇인가(이용재 옮김, 아카넷, 2013, 절판).













[4] 첨밀밀(甜蜜蜜, 달콤하다, 다정하다)’등려군(鄧麗君)이 부른 유명한 노래 제목이자 1996년 홍콩에 개봉한 영화 제목이다. 영화 <첨밀밀>(Comrades: Almost a Love Story)우리나라에 처음 개봉한 날은 19973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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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6-03-02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보고 웬 영화 리뷰인가 했더니 그러면 그렇지.ㅋㅋㅋ
저 영화 보긴 했는데 내용은 기억에 없다. 그런 뜻이었군.
뜻도 모르고 봤네. ㅠ

마힐 2026-03-03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첩밀밀의 밀의 큰글자를 보고 빵 터졌버렸요. ㅎㅎ 자유를 갇힌 제도안에서 사유의 자유로 끌어올리신 듯합니다. 그러고보니 첨밀밀의 남여 주인공의 엇갈리는 사랑이 마지막에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다시 만나는 장면이 생각나네요. 장만옥의 클로즈업된 얼굴은 아마 지금도 제겐 첨밀밀 최고의 명장면 입니다. 우연이겠지만 이 영화내용도 자유를 찾아 떠난 대륙 젊은이들의 사랑으로 이해했었는데 이제 보니 전부 우연이 아닌 것 같기도 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 교유서가 어제의책
퀜틴 스키너 지음, 조승래 옮김 / 교유서가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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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무슨 소원을 빌 건지 말해줄게. 우선 모험을 하고 싶다고 할 거야.” 헉(Huck, 허클베리 핀)이 크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런 다음에, 네가 나처럼 자유인이 되면 좋겠다고 할 거야.”

 “고마어여.”

 “고맙긴 뭘. 아예 모든 노예가 자유로워지면 좋겠다고 하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인간은 자유로울 권리가 있는 거 아냐?” 헉이 물었다.

 “권리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요.” 내가 말했다.

 “뭐라고?”



(퍼시벌 에버렛, 제임스중에서, 99~100)

 




허클베리 핀(Huckleberry “Huck” finn)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인이다. 그는 순진한 자유인이다. 모든 인간은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백인 소년은 절친한 흑인 노예 짐(Jim)도 자유인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하지만 짐은 순진하지 않다그는 자유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제임스(James)’. 그는 자유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제임스는 주인인 대처 판사(Judge Thatcher)의 서재에 몰래 들어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서재에서 볼테르(Voltaire)와 몽테스키외(Montesquieu)를 만난다. 두 사상가는 언어와 피부색과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고 주장했다. 제임스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인이라고 강조한 유럽 지식인들의 생각을 가슴속에 깊이 품는다. 자유에 목마른 제임스는 꿈속에서 볼테르를 만난다. 볼테르는 짐을 위로한다. 나는 자네와 같네. 자네는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되네.” [주1]


하지만 제임스는 신중하다. 지식인들이 말하는 자유의 의미를 회의적으로 숙고한다. 생각하는 제임스는 백인들 앞에서 어리숙하게 행동하는 짐이 아니다. 백인 지식인들을 주인처럼 대하지 않는다유럽 지식인들의 자유론은 순진하다. 노예가 자유인이 되려면 유럽인처럼 교육을 받고, 똑같이 행동하면 된다. 하지만 제임스는 현실에 동떨어진 순진한 자유론을 거부한다. 자유인이 되려고 백인처럼 행동하는 흑인은 절대로 노예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본 것이다백인이 흑인을 관대하게 대한다고 해도, 흑인은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한다. 제임스는 허클베리 핀의 친구이지만, 다른 백인들 앞에서 굽신거리면서 살아야 하는 노예 짐이다.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소설가 미하일 불가코프(Mikhail Bulgakov)는 창작과 출판의 자유를 빼앗긴 채 살아온 작가그는 스탈린(Joseph Stalin)이 좋아하는 극작가로 전성기를 누리지만, 소비에트 체제의 모순을 풍자하는 희곡을 쓴 이후로 마음대로 글을 쓰지 못한. 스탈린과 검열관들은 불가코프의 모든 희곡이 극장에 상연하지 못하게 하고, 소설의 출판을 금지한다창작의 자유를 박탈당한 불가코프는 스탈린에게 망명을 요청하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낸다. 하지만 그는 모스크바를 완전히 떠날 생각이 없다. 스탈린이 망명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모스크바에 남을 것이다. 소극적인 불가코프는 망명을 포기한다. 스탈린은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부닥친 불가코프에게 모스크바 예술 극장의 조연출로 일할 수 있게 해준다. 반 소비에트 작가로 비난받은 불가코프는 숙청과 수용소 생활을 피할 수 있었지만, 죽을 때까지 창작의 자유를 끝내 되찾지 못한다생전에 출판되지 못한 마지막 소설 거장과 마르가리타와 상연 금지된 희곡들은 불가코프와 스탈린이 죽고 나서야 해금된다.


허클베리 핀에 간섭받지 않는 제임스는 자유로운 인간인가? 스탈린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감시와 검열에 시달린 불가코프는 불행 중 다행으로 목숨을 부지하고 자유를 누린 작가인가? 두 사람은 자유인이 아니다. 제임스는 백인들의 자유가 우선되는 미국 사회에, 불가코프는 사회주의 이념을 강조하는 소비에트 체제에 예속된 상태다 













순진한 자유주의자는 타인으로부터 간섭받지 않는 삶이 진정한 자유라고 주장한다이러한 자유의 형태를 소극적 자유(negative freedom)라고 한다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이사야 벌린(Isaiah Berlin) 소극적 자유를 자유주의의 기본 원칙으로 정립한 철학자. 밀은 자유론에서 각자 원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모든 사람은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벌린은 자유를 두 가지 개념으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하나는 앞서 언급한 소극적 자유, 또 다른 하나는 적극적 자유(positive freedom)적극적 자유를 지향하는 개인은 자아실현을 중시하며 공동체적 가치와 평등을 강조한다.









순진한 자유주의자는 소극적 자유만이 진정한 자유라고 말한다. 그들은 적극적 자유를 비판한다. 적극적 자유를 지나치게 허용하면 개인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고, 결국 전체주의 사회로 이르게 된다고 우려한다. 소극적인 자유주의자는 허클베리 핀이 생각한 것처럼 인간이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으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스스로 무엇을 결정하고 행동하려는 의지가 발현되지 못한다면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그것은 반쪽짜리 자유.


영국의 정치 철학자 퀜틴 스키너(Quentin Skinner)소극적 자유를 자유주의의 근본으로 추켜세우는 벌린을 비판한다스키너는 허클베리 핀의 친구가 된 제임스와 같이 착한 백인을 만난 노예를 예시로 언급하면서 소극적 자유의 한계를 지적한다허클베리 핀이 제임스가 하는 일에 간섭하지 않고, 그를 가족처럼 대한다면 제임스는 자유인이 된 것일까? 스키너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어른이 된 허클베리 핀이 모든 노예가 자유로워지길 바라는 진심을 유지하고 있다면 노예제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를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해도 제임스의 우정이 변치 않으면 다행이다. 그러나 허클베리 핀이 세상의 변화를 두려워하는 기성세대에 공감하고, 그대로 답습한다면 노예제에 대한 생각이 바뀔 수 있다. 착한 백인을 주인으로 섬기거나 그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생활하는 노예는 다른 노예들에 비하면 자유로운 편이다. 그렇지만 주인의 간섭을 받지 않는 노예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기간은 길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착했던 주인이 마음이 바뀌어 노예의 삶을 간섭하고, 활용 가치가 떨어진 노예를 팔 수도 있다스키너는 당장 간섭하지 않는다고 해도 얼마든지 개인을 간섭하고 통제하는 힘을 가진 세력이나 집단이 있으면 완전한 자유인이 나타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노예가 자유를 누리려면 그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존중해야 하고, 더 나아가 사회 또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법적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스키너의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소극적 자유론의 강점에만 주목한 자유주의의 역사에 도전한 책이다. 스키너는 편향적인 자유주의의 역사를 톺아보면서 소극적 자유론자들이 외면하고 비판한 공화주의적 자유론을 발굴한다스키너가 주목한 자유주의자는 군주정을 폐지하고 의회를 도입하려고 했던 17세기 영국의 공화주의자들이다. 이들의 지적인 뿌리는 고대 로마법에 새긴 공화주의. 군주의 세력을 견제하는 권리를 가진 민중은 공화주의적인 자유인이다.













군주정의 폐단을 막을 수 있는 고대 로마 공화정의 장점을 본격적으로 주목한 사상가가 군주론의 저자로 유명한 마키아벨리(Machiavelli). 그의 또 다른 저서군주론보다 제일 먼저 읽어야 하는 로마사 논고는 영국의 공화주의자들에 영향을 준 책이다스키너는 로마 공화정의 부활을 꿈꾼 공화주의적인 자유론을 가리켜 신 로마적 자유론(Neo-Roman liberty)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하지만 보수적인 자유론자들은 공화정의 등장으로 인해 개인의 자유가 간섭받거나 억압받을 수 있다고 비판한다. 공화주의적 자유론에 적극적으로 반기를 든 철학자리바이어던의 저자인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 홉스는 민중이 주도한 혁명에 반대하고, 간섭받지 않는 개인의 자유를 강조한다. 공화주의자들의 혁명이 실패로 끝나면서 홉스의 소극적 자유론은 정치 철학의 핵심으로 자리 잡는다. 공화주의적 자유론은 잊히고, 자유주의는 개인의 사적 자유를 위협하는 전체주의 국가와 스탈린의 소비에트 정권에 대항하는 무기가 된다.


소극적 자유론자들은 외부의 간섭이 없는 자유를 강조했으면서도 비유럽인들의 자유를 침해한 제국주의에 침묵했다. 밀은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기 위해 세운 동인도 회사에서 근무했다. 그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인들의 자유에 무관심했고, 유럽 제국주의를 적극적으로 비판하지 않았다개인을 위한 자유에 지나치게 몰두하면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차가워진다. 이기심과 집단 이기주의가 뭉쳐진 자유주의는 타인과 다른 공동체를 배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 자유를 누리는 데 방해가 되는 경쟁 상대로 인식한다나와 다른 타인의 생각을 무시하는 자유주의는 삭막하다.


소극적 자유를 잘못 배운 자유주의자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양손에 꽉 쥐면서 자신들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자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들은 자유의 다양한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면서 토론하는 방법을 모른다. 밀은 생각과 토론의 자유가 있으면 개인의 오류를 스스로 검토하고, 자신의 생각만 고집하는 독선을 피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생각과 토론의 자유는 다르게 생각하는 타인의 권리를 방해하지 않으며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주입하는 독단적인 주도권을 경계한다우리가 진짜로 되찾아야 할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는 민주적인 대화가 익숙한 생각과 토론의 자유.







<마키아벨리와 밀을 좋아하는 cyrus가 쓴 주석>




[서평 제목과 너는 이미 죽어 있다사진에 관한 주석]


 너는 이미 죽어 있다일본 만화 <북두의 권> 주인공 켄시로(ケンシロウ)의 명대사. <북두의 권> TV 만화는 1984년에 방영되기 시작했다. TV 만화 1기 여는 곡(OP)의 제목은 をとりもどせ!!’. 우리말로 번역하면 사랑을 되찾아라!!’. 서평 제목은 여는 곡 제목에서 따왔다.




[1] 제임스, 71.




[2] 제임스의 꿈에서 나타난 사상가는 볼테르와 존 로크(John Locke). 볼테르와 마찬가지로 제임스는 노예제를 분석한 로크의 관점을 비판한다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 개정판에 역자가 쓴 논문 로크의 자유론이 보론으로 추가되었다

 역자는 이 논문에서 로크의 자유론을 소극적 자유론으로 분류하고 비판한 스키너의 견해를 반박한다. 그러면서 로크의 자유론이 자유주의자의 소극적 자유론뿐만 아니라 공화주의자의 적극적 자유론도 맞닿아 있다고 주장한다.

 




* 제임스중에서, 382

 

 “당신은 이 책이 없어져도 아쉬워하지 않을 거예요. 애초에 당신이 이 책을 왜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캉디드. 볼테르가 쓴 또 다른 책, 존 스튜어트 밀의 책[3]이에요.”

 “맙소사,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진보라고 하시면 돼요.” 내가 말했다.



[3] 제목은 나오지 않지만, 제임스가 대처 판사의 서재에서 읽은 책 중에 밀의 책도 포함되어 있다밀의 아버지는 열 살도 안 된 아들을 엄격하게 교육한 것으로 유명한 경제학자 제임스 밀(James Mill, 1773~1836)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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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6-02-24 1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든 자유에는 책임이 따라 오는데, 자유도 일종의 힘이라고 봐도 될까요? 제도권 자유는 힘의 구조에 따라 자유가 분배되는데 힘이 없다면 자유를 누릴 수가 없으니까요. 그럼 외적 자유는 힘에 의해 좌우 되지만 내적 자유는 스스로 메이냐 메이지 않느냐는 얽매임의 문제로 넘어 갈 것 같네요. Cyrus님의 좋은 글 감사드리고,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cyrus 2026-03-02 08:22   좋아요 1 | URL
지금도 ‘자유’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있는데, 자유라는 단어가 한두 가지 정의로 설명될 게 아니라는 것을 느꼈어요. 독서와 공부의 끝이 없어요. 할 수 있는 만큼 해봐야겠어요. 어느덧 3월이네요. 마힐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 교유서가 어제의책
퀜틴 스키너 지음, 조승래 옮김 / 교유서가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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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재장전: 신자유주의에 갇힌 자유 구출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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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들의 행성 - 여섯 개의 다리로 이룩한 위대한 제국
주잔네 포이트지크.올라프 프리체 지음, 남기철 옮김 / 북스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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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엔디아 가문(Buendía family) 사람들은 

마콘도(Macondo)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게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좁다란 섬처럼 생긴 도시 마콘도에 4년 넘게 비 바람벽이 푹푹 내린다

그칠 줄 모르는 거대한 비 바람벽에 쓸쓸한 고독만이 오고 간다.

[주1]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백 년의 고독은 환상과 현실이 얽섞인 도시 마콘도에서 부엔디아 가문이 몰락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부엔디아 가문이 6세대까지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근친혼이다. 가문의 대부(大父)이자 마콘도를 개척한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José Arcadio Buendía)사촌 우르술라(Úrsula)와 결혼한다. 친척들은 근친혼의 저주를 무시한 두 사람 사이에 돼지 꼬리가 달린 아이가 태어날까 봐 우려한다.


근친혼의 저주는 가문의 일곱 번째 후손 아우렐리아노(Aureliano)를 집어삼킨다. 돼지 꼬리가 달린 아우렐리아노는 가문의 6대손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Aureliano Babilonia)그의 이모 아마란타 우르술라(Amaranta Úrsula)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우르술라는 부유한 남편을 버리면서까지 조카를 사랑했지만, 아우렐리아노를 출산하다가 과다 출혈로 사망한다. 돼지 꼬리 아기마저 죽게 되자, 충격을 받은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는 밤새도록 거리를 헤맨다. 동이 틀 무렵에 정신을 차린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는 아내와 아기의 시체가 방치된 집으로 돌아온다. 그는 끔찍하게 매장되는 아기의 시체를 발견한다. 마당에 있는 개미 떼들이 바싹 마른 아기의 시체를 땅에 파놓은 소굴로 끌고 간다. 이 상황을 지켜본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는 부엔디아 가문의 저주와 관련된 예언을 떠올린다. 




가문 최후의 인간은 개미 밥이 되고 있다.” [주2]




마르케스는 세상의 모든 개미 떼가 아기의 시체를 끌고 간다고 묘사했다. 텍스트를 마주 보다가 불쑥 튀어나온 나의 특이한 궁금증. 아기의 시체를 운반할 정도로 힘이 센 개미 떼는 환상이 빚어낸 곤충일까, 아니면 실제로 볼 수 있는 곤충일까?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갓난아기의 시체는 개미 떼의 식량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개미는 먹잇감을 독차지할 수 없다. 파리와 송장벌레도 썩어가는 시체를 좋아한다. 이처럼 시체를 먹고 사는 곤충을 시식성 곤충(屍食性 昆蟲, carrion insect)’이라 한다곤충학자들은 시체를 좋아하는 곤충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개미, 파리, 송장벌레가 없으면 썩지 못한 시체들이 엄청 많이 널려 있었을 것이다. 시식성 곤충은 자연의 청소부. 시체를 청소하는 곤충 또는 동물을 스캐빈저(scavenger)’라고 한다. 그들이 있어서 시체의 부패가 빠르게 진행되고, 완전히 분해된 시체는 식물의 영양분이 풍부한 흙이 된다.


개미는 보기보다 힘이 세다. 자신보다 몸집이 큰 먹잇감을 혼자서 또는 동료 일개미와 협력해서 옮긴다. 자신보다 몸집이 크고 살아있는 먹잇감을 발견하면, 정예 부대처럼 공격을 감행하는 군대개미가 있다. 하지만 개미 떼가 갓난아기의 시체를 운반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개미집 밖은 위험하다. 개미의 천적들이 많다. 먹잇감을 노리는 다른 종의 개미들을 만나면 싸워야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린 일개미는 떠돌다가 객사한다. 지쳐서 죽거나, 아니면 천적에게 잡아먹혀서 죽는다.


독일의 두 개미 연구자가 함께 쓴 개미들의 행성소설보다 재미있는 개미 사회 이야기[주3]이 책에 나오는 일개미를 보면 친근함이 느껴진다. 열심히 일한 일개미도 당장 해야 할 일이 없으면 빈둥거린다. 근면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빈둥거리는 노동자를 질책하고, 찰나의 여유를 게으른 태도로 인식한다. 하지만 휴식은 내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소중한 시간이다. 일개미들은 일과 휴식의 균형을 맞출 줄 안다.


개미 제국은 계급이 뚜렷한 모권 사회다. 여왕개미는 수컷 개미를 만나 결혼 비행을 하고 알을 낳는다. 수컷 개미는 오직 여왕개미와의 짝짓기하기 위해 태어났다. 황홀한 결혼 비행이 끝나면 수컷 개미는 죽는다. 여왕개미가 되지 못한 자매들은 일개미로 살아간다. 일개미가 하는 일이 엄청 많다. 제일 중요한 임무는 미래의 여왕이 태어날 개미알들을 지극정성으로 보호하는 것이다. 개미알은 곰팡이와 병균에 취약하다. 일개미들은 특별히 신경을 써서 개미알이 저장된 곳을 청소한다.


인간의 눈에는 여왕이 되지 못한 일개미들이 불쌍해 보인다. 아늑한 궁전과 같은 개미집에서만 지내는 여왕개미가 죽도록 일하는 자매들보다 호사를 누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미 제국을 일군 것은 일개미다. 여왕개미는 알을 낳는 기계처럼 산다. 일개미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일을 척척 한다. 개미 제국의 사회 형태는 무정부주의에 가까운 민주주의.


식량을 찾으러 개미집을 떠나는 일개미들은 늙은 암컷이다. 단지 그들이 나이가 많아서 힘든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경험이 많아서 위험한 임무를 전담한다. 늙은 일개미의 몸속에 활력을 넘치게 만드는 호르몬이 있다고 한다. 우리 발밑에 지나가는 일개미들은 자신이 속한 군체(群體)를 위해 희생하는 베테랑이다일개미는 동고동락하는 자매를 각별하게 대한다. 도토리 개미(Temnothorax Nylanderi)는 병든 개미를 여왕개미 못지않게 보살핀다. 아프리카 마타벨레 개미(Megaponera analis)는 다른 개미 떼와 싸우다가 다친 자매를 버리지 않는다. 집으로 데려와서 자매를 치료한다.



하찮다는 이유만으로

심심풀이로 개미를 죽이려는 당신에게 묻는다

개미 함부로 발로 밟지 마라

일개미는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연탄과 같다. 



병든 일개미는 자신을 정성껏 간호한 자매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 집을 떠난다. 외근하는 일개미는 개미집에서 일하는 젊은 자매들을 생각한다. 페로몬이라는 화학 물질을 발산해서 젊은 자매들이 마음 놓고 걸어갈 길을 만든다.[주4]



개미를 잘 모르는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 발밑에 지나가는 조그만 누구를

알고 사랑하는사람이었느냐

[주5]









<백석의 시를 좋아하는 cyrus가 쓴 주석과 정오표>








* 오늘 215일은 시인 백석의 기일이다. 올해가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30주년이 되는 해다광복 이후 백석은 고향인 평안도에 거주했고,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북한에 정착했다. 월북 시인으로 낙인찍힌 백석의 시집은 출판 금지 도서로 지정되었다. 1988년 월북 작가 해금 조치가 이루어지면서 백석은 다시 주목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 백석이 생존했는지 아니면 사망했는지 확인이 어려웠다. 북한 내에서의 시인의 행적을 알 수 없었던 남한 연구자들은 시인이 1963년에 숙청당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백석의 생애를 연구한 기자 출신의 작가 송준은 어렵사리 취재한 끝에 백석이 살아 있음을 확인했고, 본인이 쓰고 1994년에 출간된 백석 평전을 다시 쓰는 일에 착수했다백석은 1996년에 사망했다. 송준이 다시 펴낸 백석 평전 시인 백석(흰당나귀, 2012년, 절판)에 따르면 백석은 심한 감기에 걸려 215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백석 평전(다산책방, 2014)을 쓴 안도현 시인과 다른 연구자들은 시인이 1월에 세상을 떠났다고 주장한다.





[주1]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소개한 서평의 머리글은 백석의 시구절을 접붙여서 썼다.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중략)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중에서

안도현 풀어씀, 《사슴》 (민음사, 2016년), 96~97쪽-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중에서

안도현 풀어씀, 《사슴》 , 59쪽 -









[2]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조구호 옮김, 백 년의 고독 2, 민음사, 303.





[주3] 최재천개미 제국의 발견(사이언스북스, 1999, 절판)의 부제.



※ 《개미 제국의 발견서평

[개미가 작다고 얕보지 마라]

2014426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haesung/6990026




[4, 5] 서평을 마무리하는 문장은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연탄 한 장 시구절을 접붙여서 썼다. ‘알고 사랑하는이라는 표현은 최재천 교수가 글과 강연에서 늘 강조하는 말, ‘알면 사랑한다를 인용, 변형한 것이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너에게 묻는다』 중에서

외롭고 높고 쓸쓸한》 (문학동네, 2004), 11쪽 -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중략)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 안도현, 연탄 한 장중에서

외롭고 높고 쓸쓸한, 12~13-





* 227

 

 노예 사육 개미들은 어차피 약탈 과정에서 죽음을 맞이할 위험성을 피할 수 없기에 많은 수의 노예를 확보할 가능성이 높은 큰 군체를 선택하여, 가능한 한 적게 전투를 치루는 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치루는 치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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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6-02-15 2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미가 만약에 인간이 밟을 수 없을 정도로 인간 만한 크기에 자아를 가지고 진화가 되었다면 인류는 어떻게 될까요? ㅎㅎ

cyrus 2026-02-16 21:57   좋아요 2 | URL
인류가 멸망했거나, 살아 있어도 개미의 노예가 되었을 거예요. 실제로 다른 개미 종을 노예로 부리는 개미 종이 있습니다. ^^

서니데이 2026-02-15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연휴 잘 보내고 계신가요.
개미의 생활사를 보니 한 조직을 위해서 여왕도 일개미도 모두 일정 역할을 끝내면 결말이 좋지 않은 것 같네요. 아마 벌들의 세계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잘 읽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즐거운 명절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도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cyrus 2026-02-16 21:59   좋아요 1 | URL
수컷 개미가 제일 불쌍해요. 정말로 짝짓기만 하고 죽으니까요. 그런데 예외로 결혼하고도 죽지 않는 수컷 개미 종이 있다고 합니다. ^^
 
인간은 동물이다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전대호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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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협찬받고 쓴 서평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본성적으로 알고 싶어 한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의 형이상학에 나오는 첫 문장이다.[주1]은 에서 시작된다. 시각적 감각(aisthēsis)은 현상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다. 현상을 파악하면 현상에 대한 정보가 기억에 남는다. 현상을 여러 번 기억하면 현상을 판단하고 처리할 수 있는 경험(empeiria)이 된다. 시각적 감각을 즐기는 인간은 기억과 경험을 거쳐 학문적 인식에 도달한다.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앎의 발전 단계.


아리스토텔레스는 앎을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인간과 그렇지 못한 동물을 구분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동물은 기억과 상상에 의존하면서 살아가지만, 경험 능력을 쌓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다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생각은 가장 오랫동안 살아남은 이분법 중의 하나다야생 동물을 길들이는 데 성공한 인간은 동물을 알기 위해 그들을 포획하고 관찰했다앎의 욕구가 점점 커지는 동시에 학문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자연을 개발하고 파괴했다


인간은 지구에서 가장 유일한 전지(全知)적 존재다. 유전공학 · 나노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유전자 가위 크리스퍼(CRISPR)로 유전병을 교정하고, 생명을 연장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중이다호모 데우스(Homo Deus: 신이 되고 싶은 인간)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인간상이 아니다.[주2] 가장 똑똑한 지구의 주인으로 살아온 인간은 전지전능한 지구의 주님이 되려고 한다. 지구의 주님은 학문이 더 발전하면 아직 밝혀내지 못한 자연의 수수께끼들이 풀릴 거라고 낙관한다. 과거에 인간이 동물과 지구를 괴롭히면서 일으킨 여러 가지 문제들도 주님이 알아서 해결해 주리라 믿는다. 전지적 주님은 자신만만하다.


독일의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Markus Gabriel)천사와 이름은 같지만, 지구의 주님을 섬기는 시종이 아니다.[주3] 그는 전지적 존재가 되기 위한 용도로 학문에 접근하는 분위기에 경종을 울린다. 지구의 주님은 종교가 아닌 과학을 편애하는 과학주의자다. 과학주의는 과학만능주의와 같은 말이다. 과학주의자는 과학만 있으면 인간은 전지적 존재가 될 수 있으며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최악의 문제들(환경 파괴, 전염병 유행)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브리엘은 과학을 찬양하자는 지구 주님의 가르침을 거스른다.


철학을 사랑하는 사람(philosophos)이라면 죽을 때까지 만나야 하는 거대한 질문이 있다. “인간은 누구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엄청 짧고 간단한 질문이지만, 정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사실 정답이 없는 질문이다. 이 질문을 만난 사람들이 밝힌 대답들은 다양하다. 그래서 인간의 정의를 알기 위한 질문은 한없이 크다가브리엘은 이 거대한 질문을 변형한다. 동물로 간주하는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은 동물이다는 마르쿠스의 변형된 질문에 대한 답변들을 정리한 책이다이 책에서 마르쿠스는 인간을 동물로서의 인간으로 재정의한다. ‘동물로서의 인간은 겸손하다스스로 슬기로운 사람(Homo sapiens)이라고 선포한 인간은 오만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반대로 동물로서의 인간은 앓을 지향하면서도 앎을 통해 얻은 지식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그리고 자기 생각이 틀렸으면 고치려고 한다이러한 태도를 가브리엘은 인식적 겸손이라고 표현한다. 겸손한 동물로서의 인간은 차분하다. 자신이 몰랐던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해 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기억을 반복하면 경험이 된다호모 사피엔스는 생각의 오류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자신의 오류를 받아들이는 것을 어려워한다슬기롭다고 믿는 사람들은 오류를 직시한 경험을 잊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겸손한 동물로서의 인간은 생각의 오류가 발생하면 게 눈 감추듯 지우지 않는다. 생각의 오류를 더 나은 생각으로 고치기 위한 디딤돌로 삼는다.


최악의 호모 사피엔스는 지식을 무기로 삼아 자신과 다른 생각을 공격하고 죽인다. 그들은 타자를 공격할 때 사용하는 지식이 정확하지 않고, 틀렸음에도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동물로서의 인간은 알고 싶어 하는 본능을 따르면서도 자신이 무지하다는 점을 안다. 가브리엘이 제시한 앎의 발전 단계는 무지(無知)의 윤리에서 시작한다. 무지의 윤리는 정직하다. 우리가 알고 있었던 지식이 틀릴 수 있고, 그 지식을 통해 편집한 생각도 틀렸음을 인정한다. 우리가 괴물로서의 인간이 되지 않으려면 무지의 윤리를 떠올려야 한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다. 많이 안다고 해서 잘난 척하지 않아도 되고, 모르는 것을 숨길 필요도 없다. 영국의 시인 토머스 그레이(Thomas Gray)는 생전에 자신을 시인이 아닌 사람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레이가 남긴 시구절[주4]은 인간은 동물이다의 한 줄 평으로 쓰기에 잘 어울린다.





Where ignorance is bliss,

‘Tis folly to be wise.


무지가 행복인 곳에서, 현명해지는 것은 어리석다









[1] 아리스토텔레스, 조대호 옮김, 형이상학, 31, 도서출판 길, 2017.



[2] 유발 하라리, 김명주 옮김, 호모 데우스 , 김영사, 2017.



[주3] 가브리엘은 성경에 나오는 대천사다.

 


 천사가 그에게 대답했다. “나는 가브리엘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있어요. 그대한테 말해 주라고 나를 보내셨어요. 이 좋은 소식을 그대에게 알려 주라고요.” 


(누가복음 제119절, 새 한글 성경 신약과 시편, 대한성서공회, 136)



[주4] Ode on a Distant Prospect of Eton College (17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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