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서 날아온 회고록 - 장애인 신탁 예언자가 전하는 지구 행성 이야기
앨리스 웡 지음, 김승진 옮김 / 오월의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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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독서 모임 <수레바퀴와 불꽃

열일곱 번째 선정 도서

(모임 날짜: 2025년 9월 27일 토요일)






잘 만든 자서전에 과연 어떤 내용이 들어있을까? 자서전의 주인공은 자서전을 쓰는 글쓴이다소설을 쓰고 남는 시간에 서평과 에세이를 써온 조지 오웰(George Orwell)한 편의 스트립쇼와 같은 어느 예술가의 자서전을 만났다오웰이 읽은 자서전의 주인공은 자아도취가 심한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오웰은 달리의 자서전을 비판적으로 비평한 글에서 잘 만든 자서전의 중요한 요소를 강조했다.



 자서전은 수치스러운 일을 들추어낼 때만 신뢰할 수 있다. 자기 마음속에서 바라본 삶은 누구에게나 그저 패배의 연속이기 때문에 자기 모습을 보기 좋게 설명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다.

 

(조지 오웰, 성직자의 특권: 살바도르 달리에 관한 몇 가지 단상 중에서, 오웰의 에세이 선집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279)

 


 

자신을 보기 좋게 꾸미는 자서전의 주인공은 남들보다 잘살고 있다고 거들먹거린다. 하찮은 자서전은 같잖은 거짓말들이 조롱조롱 달려 있다. 진솔하지 않은 자서전은 독자들의 조롱거리가 된다.


회고록(memoir) 자서전(autobiography)을 조금 닮았다회고록은 자서전과 다르게 글의 주인공이 여러 명이다. 회고록의 글쓴이는 자신의 기억 속에 살고 있는 가족과 친구들을 종이에 불러들인다회고록(reminiscence)을 쓰는 내내 글쓴이는 친애하는 사람들과 함께한 시절의 추억에 잠긴다(reminisce)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 모두가 회고록의 주인공이 된다


미래에서 날아온 회고록은 잘 만든 회고록이다회고록의 주인공 앨리스 웡(Alice Wong)은 장애 인권 활동가다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근육이 점점 수축하는 희귀 질환을 앓았다. 그녀를 따라다니는 휠체어와 호흡기는 삶을 연장해 주는 의료 보조 기기가 아니다. 삶과 결합한 몸의 일부. 앨리스는 기계와 한 몸이 된 자신을 사이보그적 존재라고 부른다사이보그적 존재는 SF에 나오는 허구의 피조물이 아니다. 유기체와 기계의 잡종이다. 사이보그적 존재는 미국의 페미니스트 철학자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가 쓴 사이보그 선언문[주1]에서 처음으로 언급된 개념이다. 해러웨이가 새롭게 정의한 사이보그는 정신과 육체, 유기체와 기계, 인간과 동물 사이의 이분법을 무너뜨리는 사회 현실 속의 피조물이다.


미래에서 날아온 회고록진지하면서도 유쾌한 잡종의 책이다. 에세이, 시, 일기, 인터뷰 기록, 사진과 음식 조리법까지 어우러져 있다여러 종류의 글과 그림이 섞인 책을 읽어나갈수록 책의 매력은 하나둘씩 늘어난다. 저자의 인터뷰는 정상성과 비장애성의 문제점을 정확히 찌르는 창이 되어주기도 하고, 일기는 즐겁게 살아가는 저자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앨범이 된다.


저자는 욕망에 충실하다. 음식을 먹는 일에 진심이다. 식탐이 많은 것을 인정한다. 군것질은 인생의 낙이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한다. 저자가 생각하는 사랑의 언어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일이다음식을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각자에게 주어진 음식을 다 같이 먹는 행위는 우호 관계를 더욱 돈독해지게 만든다. 해러웨이는 식탁에 함께 앉은 식사 동료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반려(companion)’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반려는 ()의 경계를 없애고 서로 돌보면서 관계를 맺는다.[주2]


저자는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숨기지 않는다. 침을 자주 뱉지 않으면 그녀는 숨을 쉴 수 없다. 타구(唾具) 컵은 그녀의 호흡을 도와주는 친구다. 책에 실린 그녀의 에세이 타구에 바치는 송가는 지저분해 보이는 침을 다시 보게 만든다. 더러운 분비물로 여기는 침은 우리 몸의 일부다. 침은 첫 번째로 음식물 소화에 관여한다. 저자는 침을 함께 사는 적으로 인식한다. 호흡을 원활하지 못하게 만드는 침은 인간의 취약성을 떠올려준다. 침은 소중하다. 그래서 저자는 침의 분비를 줄이는 약을 먹기보다는 타구 컵에 침을 뱉는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모른다장애인에 대한 삶의 지식이 부족하면 장애인은 마주하고 싶지 않은 투명한 괴물이 된다. 비장애인은 장애를 두려워한다. 그들이 막연하게 생각하는 장애는 건강하지 않고, 고통스럽고, 불편함을 수반하는 상태이다. 이러한 인식은 장애인을 계속 피하게 만드는 부당한 편견이다장애인은 항상 그늘 속에 지내지 않는다. 장애인은 햇볕이 가장 잘 드는 곳이 어딘지 잘 안다. 그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행복을 꿈꾸며 살아간다. 이러한 삶의 자세가 자립성이다. 장애인은 행복을 그러모으기 위해 꾸준히 움직인다.







<안경 쓴 사이보그 cyrus가 만든 주석>








[1] 원제는 사이보그 선언문: 20세기 후반의 과학, 기술, 그리고 사회주의 페미니즘이다. 이 글의 전문은 해러웨이의 저서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자연의 재발명(황희선 · 임옥희 함께 옮김, arte, 2023)해러웨이 선언문: 인간과 동물과 사이보그에 관한 전복적 사유(황희선 옮김, 책세상, 2019)에 수록되어 있다.



[2] 도나 해러웨이최유미 옮김종과 종이 만날 때복수종들의 정치(갈무리, 2022), 1장 종과 종이 만날 때서문, 29쪽과 48.


종과 종이 만날 때서평

<모순 속에서 함께 번영하는 법>, 2022922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haesung/13923077





* 74




 

수전 웬델 [3]



[3] 수전 웬델(Susan Wendell)거부당한 몸: 장애와 질병에 대한 여성주의 철학(강지영 · 김은정 · 황지성 함께 옮김, 그린비, 2013)을 쓴 미국의 여성학자다


거부당한 몸서평 <정상을 거부한다>, 2018125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haesung/10514815






* 417




 

스테이시 파크 밀번, 리아 락슈미 피엡즈나-사마라신하 [주4]

 

 


* 420





 

 2019310 <내 조상들의 지평에서: 크립의 전승과 우리 운동의 유산>(On the Ancestral Plane: Crip Hand Me Downs and the Legacy of our Movements)이라는 제목으로 스테이시의 글이 게재되었다. (중략)

 나는 스테이시의 예지력 있는 글을 내가 편찬한 에세이집 급진적으로 존재하기에 수록했다. 책이 나오기 불과 1~2주 전인 6월에, 스테이시는 세상을 떠났다[주4]



[주4앨리스 웡이 엮은 에세이집 급진적으로 존재하기: 장애, 상호 교차성, 삶과 정의에 관한 최전선의 이야기들(박우진 옮김, 가망서사, 2023)스테이시 파크 밀번(Stacey Park Milbern)리아 락슈미 피엡즈나-사마라신하(Leah Lakshmi Piepzna-Samarasinha)가 쓴 글이 실려 있다. 급진적으로 존재하기번역본에 표기된 밀번의 글 제목은 <양말의 계보: 내가 물려받은 장애 운동의 유산>이다.

 

급진적으로 존재하기의 원제는 ‘Disability Visibility’. 우리말로 번역하면 장애 가시성이다. 이 용어는 미래에서 날아온 회고록에 수록된 저자의 인터뷰 미국장애인법에 언급된다.

 

리아 락슈미 피엡즈나-사마라신하의 저서 가장 느린 정의: 돌봄과 장애 정의가 만드는 세계(전혜은 · 제이 함께 옮김, 오월의봄, 2024)도 번역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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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보기 전에 책 얼굴(앞표지)부터 살펴본다내가 선호하는 책 얼굴은 화가의 그림이 있는 것이다. 특히 좋아하는 화가의 그림으로 장식된 책 얼굴을 만나면 반갑다. 최근에 완독한 탄소라는 세계의 책 얼굴은 앙리 루소(Henri Rousseau)의 그림이다.






 













* 폴 호컨, 이한음 옮김 탄소라는 세계(웅진지식하우스, 2025)

 

* 코르넬리아 슈타베노프, 이영주 옮김 앙리 루소(마로니에북스, 2006)

 

* [절판] 정금희 · 조명식 · 쥬세페 고아 편집 앙리 루소(재원, 2005)





책 앞날개에 적힌 루소의 그림 제목은 Jungle with Setting Sun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해가 지는 정글이다







루소는 이국적인 풍경을 주로 그렸다. 그러나 루소는 열대우림이 많은 아프리카에 가본 적이 없다정글에 가지 않아도 정글을 그리는 방법이 있다. 열대 식물들이 자라는 식물원에 가면 된다. 루소는 식물원에 드나들면서 열대 식물들의 생김새를 눈여겨봤다하지만 그는 꽃과 나무를 똑같이 그리려고 하지 않았다루소는 정식으로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아마추어 화가였다. 그는 원근법을 무시하거나 상상력을 덧칠해서 풍경화를 그렸다.








 

그림의 실체를 잘 모르는 독자는 루소가 평화로운 정글을 상상해서 그린 풍경화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책 얼굴의 절반을 가린 띠지를 벗기면 참담한 형상이 나타난다수풀 사이로 야생 동물에 잡아먹히는 아프리카 원주민이 보인. 이 그림의 다른 제목은 Black Man Attacked by a Jaguar. 야생 동물의 정체는 재규어상상화에 묘사된 세상은 환상이고, 정확하지 않다. 재규어의 습격에 당한 아프리카 흑인은 모순이다. 재규어는 아프리카가 아닌 중남미에 서식한다.


루소의 그림들에서 나타나는 모순적 이미지는 예술적 상상력이 빚어낸 산물이다루소의 그림을 감상하려면 사실을 바라보려는 눈을 감아야 한다. 그러면 루소가 그린 환상의 세계를 들어갈 수 있다.

















* 찰스 로버트 다윈, 장대익 옮김, 최재천 감수 종의 기원(사이언스북스, 2019)



탄소라는 세계를 다 읽은 후에 다시 책 얼굴을 살펴봤다. 책 얼굴과 책의 속살(책의 핵심 내용)이 다르다.


책 얼굴이 된 루소의 그림은 약육강식의 냉혹한 정글을 연상시킨다. 강자는 약자를 지배하고 멸망시킨다지금까지 살아남는 존재는 강자다정글에 오직 힘의 논리만이 통한다탄소라는 세계는 정글이 생각보다 냉혹하지 않으며 자연에 살벌한 경쟁만 있는 건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 책이 독자에게 보여주고픈 속살은 협력하고 공생하는 자연 생태계다.



































* [개정판] 최재천 다윈 지능: 최재천의 진화학 에세이(사이언스북스, 2022)

 

* 브라이언 헤어 · 버네사 우즈 함께 씀, 이민아 옮김, 박한선 감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친화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인류의 진화에 관하여(디플롯[주1], 2021)

 

* 다니엘 S. 밀로, 이충호 옮김 굿 이너프: 평범한 종을 위한 진화론(다산사이언스, 2021)

 

* 프란츠 부케티츠, 이덕임 옮김 겁쟁이가 세상을 지배한다: 다윈의 자연선택론과 적자생존의 비밀(이가서, 2011)




지금도 여전히 대중은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자연관을 주장한 생물학자로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을 지목한다. 다윈은 억울하다. 그는 약육강식이라는 단어를 자신의 책 종의 기원에 쓴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을 강조하는 비정한 논리로 사용됐다하지만 다윈의 의도와 다르게 진화론은 경쟁을 부추기고 사회적 약자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선전 도구로 변질되었다.


자연에서 가장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적자는 완벽하지 않다. 그리고 생각보다 강하지 않다. 진화는 생명체가 완벽한 상태로 거듭나는 과정이 아니다. 약점이 있는 생명체가 끊임없이 변하는 자연에 적응하기 위한 전략이다

















신현철 다윈을 오해한 대한민국》 (소명출판, 2025)

 

[수정 증보판] 찰스 로버트 다윈신현철 옮김 종의 기원 톺아보기》 (소명출판, 2024)




우리나라에 번역된 진화경쟁일본에서 만들어진 한자를 수입한 것이다. 두 개의 단어는 일본의 지배를 받기 전인 대한제국 시절에 알려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근대 일본에서 번역된 진화경쟁은 명확한 정의가 없는 불완전한 단어였다. 서양 사상을 받아들인 일본 지식인들은 진화경쟁을 다윈의 생각과 다르게 이해했다. 다윈이 생각한 자연관을 제대로 이해한 일본 지식인은 남을 이기기 위한 경쟁이 아닌 모두가 이익을 누릴 수 있는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약육강식’을 내세우는 진화론이 우세했다유럽과 자웅을 겨룰 만한 강대국이 된 일본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전역을 지배한다. 이 시기에 진화경쟁은 우리가 아는 약육강식과 동일한 의미의 단어로 자리 잡게 된다.


일제강점기의 조선 지식인들은 굴욕적인 약소국 신세에서 벗어나기 위한 이론적 대안으로 약육강식을 주장했다. 처음에 그들은 부국강병을 주장했지만, 독립에 대한 열망이 식어버린 이후부터 강자 앞에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였다. 고개 숙인 지식인들은 아시아의 강대국 일본에 순응하면서 발전하는 것이 이롭다고 주장하는 친일파로 변절했다.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2025년 9월의 세계 문학]

조지 오웰이한중 옮김 나는 왜 쓰는가》 (한겨레출판, 2025개정 증보판)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을 위한, 그리고 어느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아카넷[주1], 2025)

 



조지 오웰(George Orwell)정치와 영어라는 글에서 정치적 언어를 이렇게 정의한다.



 정치적 언어거짓을 사실처럼 만들고 살인을 존중할 만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순전한 헛소리를 그럴듯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고안된다.


(조지 오웰, 정치와 영어중에서, 나는 왜 쓰는가수록, 291)




진화는 다양한 생명이 한데 어우러진 자연의 참모습이 담긴 과학 용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의 생각들이 묻혀서 지저분한 정치적 용어가 되고 말았다. 다윈의 책을 한 번도 읽지 않은 사람은 진화를 거쳐야 인간이 진보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다윈은 진화가 진보의 동일한 단어로 쓰이는 것에 반대했다. 진화론을 잘 안다고 주장하는 우파는 경쟁에서 살아남은 개인을 존중한다. 얼치기 진화론자는 진화의 정의가 강한 자가 되기 위한 과정이라고 거짓말하고, ‘남을 쓰러뜨려 이기는 경쟁을 정당화한다. 정치적 언어가 된 진화는 위험하다.


최근에 새로 나온 니체(Nietzsche)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번역본은 기존의 번역서들보다 번역자의 주석이 많은 편이다. 이번 번역본의 역자는 니체 철학 연구의 권위자 박찬국 교수그런데 본문이 시작되는 부분에 위험한 주석이 있다. 문제의 주석은 다윈의 자연관과 니체의 자연관을 비교한 내용이다.








 자연에는 불필요할 정도로 많은 종과 다채로운 변화와 풍요로움이 존재한다. 이 점에서 니체의 자연관은 자연을 부족한 자원을 둘러싸고 생명체들이 투쟁하는 결핍의 장소로 보는 다윈식의 진화론적인 자연관과는 다르다.

 니체에게서 자연은 마치 넘쳐흐르는 자신의 힘을 분출하지 못하여 고통스러워하는 생명체와 유사하다. 차라투스트라에게는 자신의 지혜를 베푸는 일이 행복이다.

 

(주석 5, 14)




박 교수가 언급한 다윈의 진화론적 자연관은 정치로 오염된진화의 잘못된 의미가 반영되어 있다. 다윈은 지구상의 수많은 생명체가 생물 다양성에 의해 건강한 상호 관계를 유지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유기체 간의 상호 관계, 그리고 각 유기체와 물리적 환경 간의 상호 관계가 얼마나 복잡하면서도 딱 들어맞는가도 생각해 보라.

 

(찰스 다윈, 장대익 옮김, 종의 기원》 「4장 자연선택중에서, 141)



다윈의 진화론을 편협하게 설명한 위험한 주석은 사소하지 않다. 주석의 심각성에 둔감한 독자들이 있다면 거꾸로 생각해 보자. 니체의 철학이 독일 나치즘(Nazism)에 영향을 준 사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보기만 할 텐가. 니체는 반유대주의를 비판했지만, 그가 죽은 후에 니체 철학의 핵심 위버멘쉬(Übermensch)’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Hitler)가 좋아하는 정치적 용어가 되었다.


다윈과 니체는 억울하다. 두 사람은 정치에 물들인 언어 진화와 위버멘쉬를 말하지 않았다그들을 지지하는 추종자들은 이론과 사상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정치색을 입혔다













<다윈과 니체를 좋아하는 cyrus가 만든 주석>



[1] 디플롯 출판사는 학술서와 고전을 주로 펴낸 아카넷 출판사 소속의 임프린트 출판사(독립 브랜드).

 





* 다윈을 오해한 대한민국, 104




 

 다윈이 쓴 또 다른 책 Desecnt of Man[2]인간의 친연관계가 아니라 인간의 기원이나 인간의 유래또는 인간의 계승으로 번역한다면, 다윈이 생각하는 바가 조금은 오해될 수 있을 것이다.



[2] Desecnt Descent. 인간의 유래로 알려진 다윈의 책 제목의 영어 철자가 틀렸다중간에 있는 ec가 바뀌었다.






* 다윈을 오해한 대한민국, 214




 

 다윈이 모든 생명체 사이에서, 그리고 생명체와 물리적인 살아가는[3] 조건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상호 연관성이 얼마나 무한히 복잡하면서도 서로에게 잘 부합하는지도 유념해야 한다고 설명했듯이, 생물과 환경과의 적절한 관계가 생물다양성의 지속성을 담보할 것이다.



[3] 문장이 어색하다. 저자는 자신이 직접 번역하고 주석을 단 종의 기원 톺아보기에 있는 문장을 인용했다. 그런데 종의 기원 톺아보기구판(2019년 출간) 118쪽에 있는 비문(非文)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옮겨 적었다작년에 나온 수정 증보판에도 비문이 남아 있다. 비문이 나오는 쪽수는 구판과 똑같이 118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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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라는 세계
폴 호컨 지음, 이한음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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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모든 생명체가 춤을 추는 거대한 무대이다. 생명력이 넘실대는 지구는 46억 년 전에 만들어졌다인간은 30만 년 전부터 지구에서 생명의 춤을 추기 시작했다46억 년 지구의 나이를 하루 24시간으로 표현한다면, 인간은 235955에 등장했다. 인간이 생명의 춤을 춘 시간은 1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을 슬기로운 춤꾼(Homo sapiens)이라고 주장한다. 


자연의 무대에 뒤늦게 오른 인간은 백업 댄서에 가깝다. 하지만 거만한 인간은 무대를 독차지하려고 오래전부터 생명의 춤을 춘 동물과 식물, 곤충을 쫓아냈다오늘날 지구는 인간의 독무대가 되었다인간의 춤 욕심은 끝이 없다. 춤을 더 잘 추고 싶어서 자기 입맛에 맞게 무대를 개조한다무대 위에 솟은 산을 깎고, 무대 위에 자란 나무들을 모조리 베어낸다자연의 무대에 인간이 무수히 남긴 흔적들만 있다. 생명의 독무(獨舞)에 열중한 인간은 지저분한 지구를 청소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짓밟힌 지구가 위태롭다. 심하게 망가져서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춤을 잘 추려면 안무가의 손길이 닿아야 한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아주 작은 안무가를 잘 만나서 생명의 춤을 출 수 있었다생명의 춤을 추게 만드는 안무가는 생명체 속에 살고 있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사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안무가와 함께 춤을 추고 있다. 비밀에 싸인 생명의 춤꾼인 안무가의 정체는 탄소(carbon)’.









탄소라는 세계재능이 많은 생명의 춤꾼 탄소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워주는 책이다. 탄소는 지구와 생명체를 이루는 기본 원소이다탄소가 없으면 지구는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되어 있을 것이다. 탄소가 없는 지구는 생명체가 살 수 없는 메마른 무대다. 그곳에 죽음의 춤(the dance of death)이 펼쳐진다탄소는 바지런하다. 생명체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달린다(run). 인간의 세포 한 개에 12,000억 개의 탄소 원자가 있다저자가 인용한 탄소의 춤(the dance of carbon)은 시들해진 생명체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생명의 춤꾼 탄소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알려준다. 첫 번째 교훈, 누군가를 이기기 위한 춤을 추지 말기. 탄소는 공평하다. 모든 생명체는 탄소를 만나고, 죽을 때까지 탄소와 더불어 살아간다. 생명체가 죽고 나면 탄소는 또 다른 생명체를 만든다. 생명의 춤을 추는 모든 존재는 탄소를 공유한다두 번째 교훈, 서로 돕고 살아가면서 춤추기인간보다 먼저 생명의 춤을 춘 동식물은 자신과 다른 종()들과 협력하면서 살았다곤충은 꽃가루를 퍼뜨리는 생명체다. 곤충 덕분에 식물은 열매를 맺고, 씨앗을 남길 수 있다. 그러나 곤충을 피하는 인간의 독무가 길어질수록 자연의 무대 위에 있어야 할 곤충이 사라지고 있다. 곤충의 도움을 받지 못한 식물은 생명의 춤을 추지 못한다. 식물이 멸종하면 그 식물을 먹고 살아야 할 동물과 인간도 멸종하고 죽음의 춤을 추게 된다.


인간이 하도 춤을 춰서 망가진 지구가 계속 뜨거워지고 있다.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가 많아지면 온실가스가 생겨서 지구온난화 현상이 지속된다. 자신이 슬기롭다고 착각하는 춤꾼은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탄소를 지목한다. 지구를 청소하는 환경 운동가들은 탄소와 이산화탄소를 뭉뚱그려서 온실가스라고 주장한다.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생명의 춤꾼은 오해로 둘러싸여 있다. 안무가의 은혜를 모르는 인간은 생명의 독무를 고집한다. 지구가 건강해지려면 모든 생명체가 아울러 춤추는 합동 공연이 이루어져야 한다. 생명 다양성은 인간, 동물, 식물, 곤충, 곰팡이와 같은 미생물이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추는 춤이다. 탄소의 춤을 방해하고, 이기적인 생명의 독무(獨舞)를 유도하는 무지의 독무(毒霧)는 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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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품은 미술관 - 예술가들이 바라본 하늘과 천문학 이야기
파스칼 드튀랑 지음, 김희라 옮김 / 미술문화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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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무한한 도화지다. 사람들은 까만 도화지에 알록달록한 상상력을 마음껏 수놓았. 바빌로니아 지역에 살았던 칼데아 사람(Chaldean)은 밤의 화가들이었다. 그들은 누워서 별 하나하나 눈 맞춤했다별빛을 듬뿍 받은 화가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밤의 화가들은 별을 그러모아서 여러 가지 동물을 그려 넣었다. 별들을 연결해서 만든 동물 그림은 별자리가 되었다. 밤의 이야기꾼들은 별자리에 어울릴만한 신화를 만들었다. 신화를 믿는 사람들은 밤하늘에 위대한 영웅들의 모습을 새겼다.


붓을 든 화가들은 한 폭의 캔버스에 우주를 담으려는 야망을 품었다. 대부분 화가는 우주를 몰랐다. 하지만 잘 모를수록 우주의 모습은 더 잘 그려진다. 화가들은 상상력을 동원해서 자신만의 별과 우주를 만든다.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천문학자들은 최대한 정확하게 별과 행성을 그린다. 거대한 도화지였던 우주는 그림이 되었다코스모스(cosmos, 우주)는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먹으면서 자라난다.


우주를 품은 미술관: 예술가들이 바라본 하늘과 천문학 이야기멀티버스(multiverse) 화보. 과학에서 말하는 다중우주(多重宇宙)는 실험으로 검증되지 않았다. 저 멀리 어딘가에 있을 또 다른 우주들을 직접 볼 수 없다그러나 고대부터 현대까지 동서양 예술가들이 그린 다중우주는 감상할 수 있다미술관에 코스모스(우주)가 울긋불긋 만개한다책의 저자는 문학 교수다. 저자는 그림 작품들을 설명할 때 우주와 행성을 소재로 한 문학 작품들을 인용한다시인과 소설가들도 우주에서 영감을 찾았다.








예술가들이 상상한 멀티버스는 시대별로 다르다중세인들의 우주는 신의 피조물이다. 태양은 예수의 신성함을, 달은 성모 마리아의 순결함을 상징한다. 성직자와 교부 철학자들은 성경 구절에 부합하는 우주를 좋아했다. 중세 예술가들은 성경을 펼쳐서 우주를 찾았다








실험과 관측을 중시하는 천문학자들이 등장하면서부터 중세 우주론의 한계가 드러났다. 코페르니쿠스(Copernicus)갈릴레이(Galileo Galilei)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주장했다. 천문학자들이 이용한 망원경은 우주를 좀 더 정확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화가들이 풍경을 그릴 때 사용한 카메라의 조상)









낭만주의자의 우주는 우울하고 암울하다낭만주의 예술가들이 묘사한 석양은 태양의 뜨거운 생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하늘이다. 희미한 석양은 힘이 없다. 인간처럼 우주 또한 쇠퇴하고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다.


거인 같은 망원경과 우주를 홀로 떠도는 인공위성 덕분에 우리는 우주와 행성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있다. 고대에 살았던 밤의 화가들은 토끼가 살고 있는 달을 상상하면서 그렸다. 과학의 혜택을 받고 사는 현대인들은 스마트폰 카메라로 선명한 달 사진을 찍을 수 있다그래도 예술가들은 여전히 우주를 상상한다. 우주를 정확하게 아는 과학은 우주를 자유롭게 상상하는 예술을 죽이지 못한다








예술로 피어난 코스모스는 영원하다.









<별의 먼지로 만들어진 cyrus가 만든 주석과 정오표>







* 106




 

 아폴리네르시집 알코올(1913)에서 과감하게 목이 잘린 태양이라 표현함으로써 태양의 언어를 혁신했다. [1]



[1] 목이 잘린 태양이라는 시구가 나오는 시는 알코올에서 첫 번째로 실린 변두리. “목이 잘린 태양은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기욤 아폴리네르, 황현산 옮김, 알코올, 열린책들, 2010)






* 145




 

아르튀르 랭보, <태양과 육체>, 시집, 1870 [주2]

 


[주2랭보가 처음으로 발표한 시집지옥에서 보낸 한철이다. 1873년에 발표되었다. 이 시집이 나오기 전에 랭보는 잡지를 통해 시를 발표했다. 1870년에 랭보의 이름이 실린 시집은 나오지 않았다. <태양과 육체>1870년에 쓴 시다.



[우리말로 번역된 <태양과 육체>가 실린 랭보의 시 선집]

 

* 최완길 옮김, 지옥에서 보낸 한철(북피아, 2006, 절판)


* 한대균 옮김, 나의 방랑(문학과지성사, 2014)



폴 베를렌(Paul Verlaine)은 랭보의 연인이다. 우리말로 번역된 베를렌의 시 선집은 그리 많지 않으며 절판되었다. 베를렌의 시 <하얀 달> 전문을 볼 수 있는 번역본 베를렌 시선(윤세홍 옮김, 지만지, 2013)이 유일하다.






* 159~160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소련의 우주 비행사 유리 가가린의 놀라운 업적을 칭송했다레비나스는 가가린이 한 시간 만에 인간이 모든 지평선을 넘어 존재했음을 보여준 첫 번째 사람이고 우주에서는 그를 둘러싼 모든 게 하늘이었다고 말했다[주3]



[주3출처는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의 에세이 Heidegger, Gagarin and Us(하이데거가가린 그리고 우리, 1961)이 글은 <Difficult Freedom: Essays on Judaism>(1963)에 수록되었다.



















[주4]


* 186

토성의 위성 수: 82

 

* 206

목성의 위성 수: 79

 

* 218

천왕성의 위성 수: 27

 

* 220

해왕성의 위성 수: 14



[주4토성, 목성, 천왕성, 해왕성의 위성 수가 정확하지 않다. 토성은 태양계 중 가장 많은 위성을 가진 행성이다. 국제천문연맹(International Astronomical Union, IAU)이 인정한 토성의 위성 수는 274. 목성의 위성 수는 95, 천왕성의 위성 수는 28, 해왕성의 위성 수는 16.

 

(출처: NASA Jet Propulsion Laboratory, ‘Planetary Satellite Discovery Circumstances’, https://ssd.jpl.nasa.gov/sats/discovery.html)







* 215





에베레스트산 8,844m [주5]


 

 


[주5] 에베레스트산의 높이 측량은 1849년부터 시작되었다. 중국, 인도, 미국이 산의 높이를 측정했는데, 측량법이 달라서 높이가 다르게 나왔다. 1954(또는 1955) 인도가 측정해서 확인된 산의 높이는 해발 8,848m였다. 처음으로 인정된 에베레스트산 높이 값이다


2005년 중국이 측정했을 때는 약간 줄어든 8844.43m가 나왔다. 8,844m는 바위 위에 쌓인 눈을 제외한 상태에서 측정된 높이 값이다


1999년에 미국은 GPS로 측정해서 확인된 산의 높이가 8,850m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의 측량 결과는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공식 높이는 해발 8,848m


에베레스트산은 지각 변동의 영향을 받으면 높아진다. 2015년 히말라야에 지진이 발생하고 5년이 지나서 중국과 네팔이 공동 측량을 착수했고, 1m 높아진 8,848.86m로 확인되었다.


(출처: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실측해 보니 1m가량 높아졌다>, 연합뉴스, 2020128일 입력,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2067863?sid=104)






* 259




 


 혜성의 꼬리와 사람의 머리카락이 비슷하므로 혜성은 여성의 이미지와 강력하게 동일시된다. 예를 들어 프루스트는 꽃다운 소녀들의 행렬이 바다를 향하는 것을 반짝이는 혜성처럼 둑을 따라나아간다고 표현했[주6]

 


[주6] 저자가 인용한 문장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대하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2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1919) 2고장의 이름 : 고장에 나온다프루스트 특유의 길고 늘어진 문장의 첫 부분에 해당한다.



 방파제를 따라 빛나는 혜성처럼 앞으로 나아가던 그 무리 안쪽에서 소녀들은 주위 군중이 자기들과는 다른 인종인 듯, 또 그들의 고통 역시 자기들 마음속에 어떤 유대감도 불러일으킬 수 없다고 판단한 듯 군중을 바라보지 않는 것 같았고, 나사가 풀린 기계처럼 보행자들을 피하는 수고도 할 필요 없다는 듯, 멈춰 선 사람들에게도 길을 비키도록 강요했으며, 기껏해야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접촉도 꺼리는 어느 겁 많은 또는 분노한 노신사가 허둥대거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도망이라도 치면, 자기들끼리 서로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김화영 옮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2중에서, 255,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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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9-08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도 흥미롭지만 책의 오류를 잡아내는 cyrus님의 수고와 능력이 항상 경이롭습니다.

cyrus 2025-09-10 06:51   좋아요 1 | URL
책을 읽다가 궁금한 내용이나 무언가 의심스러운 내용이 보이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 편이에요. ^^;;

서니데이 2025-09-09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위의 댓글 쓰신 분과 같은 생각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오타가 있거나 오류가 있을 때도 있지만, 그냥 지나가게 되거든요.^^
지난 월요일에 개기월식이 있어서인지, 우주와 행성의 이야기가 좋네요.
cyrus님 잘 읽었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cyrus 2025-09-10 06:53   좋아요 0 | URL
알고 있어서 오류를 잘 잡아낸다기보다는 모르는 것이 많아서 오류를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요. 오류를 확인하면서 제가 몰랐다거나 잘못 알고 있었던 사실을 알게 되거든요. ^^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1880826에 태어났다내 생일과 같다. 정확히 108년이 되는 날에 내가 태어났다.



















아폴리네르황현산 옮김 알코올》 (열린책들, 2010)

 

[절판] 아폴리네르성귀수 옮김 기욤 아폴리네르 시집내 사랑의 그림자》 (아티초크, 2015)



















* 아폴리네르, 황현산 옮김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민음사, 2016,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19)

 

* [절판] 아폴리네르, 송재영 옮김 미라보 다리(민음사, 1975, 구 민음사 세계시인선 5)

 



시인의 이름보다 그가 쓴 한 편의 시가 더 유명하다. 영영 돌아오지 않는 사랑이 센강(Seine River)의 물결처럼 흐르는 『미라보 다리』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시는 시인의 대표작이 된다. 그러나 유명한 작품만 대표작으로 칭송받는 것은 부당하다작가가 잘 쓴 작품이 대표작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잘 쓴 작품 속에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작가의 문학적 매력이 들어 있다. 잘 쓴 작품을 읽는 독자는 그 속에 살고 있는 작가를 만날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대표작의 조건이다미라보 다리는 아폴리네르의 대표작이 아니다미라보 다리에 가면 시인을 만날 수 없다. ‘밤이 와도 종이 울려도시인은 오지 않는다미라보 다리는 아폴리네르를 유명하게 해준 작품이다. 그러나 한 편의 시는 아폴리네르의 문학적 매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아폴리네르의 문학적 매력은 네 개의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자유, 회화, 환상, (). 아폴리네르는 기존 문법과 형식을 파괴한 자유시를 썼다. 구두점을 생략하거나 시 구절로 그림을 만들었다










시 구절을 자유롭게 배열하여 이미지로 형상화한 시상형 시(Calligram)’라고 한다. 아폴리네르의 상형 시는 텍스트와 이미지의 동시성을 보여준다.


아폴리네르는 화가들의 친구였다. 아폴리네르와 친하게 지낸 화가는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 로베르 들로네(Robert Delaunay), 앙리 루소(Henri Rousseau) 등이 있다. 아폴리네르의 과거 연인이었던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도 화가다.


















* 아폴리네르, 라울 뒤피 그림, 황현산 옮김 동물 시집(난다, 2023)

 

* 이소영 이것은 라울 뒤피에 관한 이야기(RHK, 2023)




화가들은 아폴리네르의 초상화를 그렸으며, 라울 뒤피(Raoul Dufy)는 아폴리네르의 동물 시집을 위한 목판화를 제작했다.









아폴리네르는 전통을 답습하지 않는 젊은 화가들을 지지했다. 그가 1913년에 쓴 미학적 명상: 입체주의 화가들(Les Peintres Cubistes, Méditations Esthétiques, 오병욱 옮김, 일지사, 1991년)은 입체주의 화가와 작품들을 처음으로 비평한 책이다이 책에서 아폴리네르가 주목한 피카소와 브라크는 20세기 초 현대 예술 운동 중 하나인 입체주의의 핵심 인물이다. 입체주의는 자연을 똑같이 모방하고, 유행을 따르는 미술을 거부한다. 입체주의 화가들은 자연의 형태를 해체하여 기하학적 형상(, 원통, 입방체)으로 다시 만든다.



















* 앙드레 브르통, 황현산 옮김 초현실주의 선언(미메시스, 2012)





아폴리네르의 자유로운 창조 정신은 그가 죽은 뒤에 등장한 초현실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초현실주의를 처음으로 쓴 사람은 아폴리네르다. 초현실주의는 이성으로 파악하고,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현실을 전복한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자유와 상상력의 힘을 믿는다.



















* [절판] 아폴리네르, 장혜영 옮김 티레시아스의 유방(연극과인간, 2004)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말도로르의 노래(문학동네, 2018)



아폴리네르는 희곡 티레시아스의 유방서문인간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초현실주의를 실천한다고 썼다. 초현실주의적 창조의 원천은 우연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서로 관련이 없는 물건들이 우연히 만나면 새로운 예술이 완성된다고 생각했다




해부대 위에서의 재봉틀과 우산의 우연한 만남처럼 아름답다.

 


(로트레아몽, 말도로르의 노래》 「여섯 번째 노래중에서, 황현산 옮김, 248)



로트레아몽(Lautréamont)의 산문 시 말도로르의 노래에 나오는 이 문장은 초현실주의를 상징하는 캐치프레이즈다.






 

 











* [절판] 아폴리네르, 성귀수 옮김 이교도 회사(문학수첩, 1999)




이교도 회사초현실주의적 소설집이다.소설가 아폴리네르를 본격적으로 알린 작품이다. 이교도 회사1910년 공쿠르상 최종 후보작에 오를 정도로 대중의 주목을 받았지만, 몇몇 비평가는 아폴리네르의 이야기가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E. T. A. 호프만(E. T. A. Hoffmann)의 소설과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 [절판] 아폴리네르, 성귀수 옮김 일만 일천 번의 채찍질(문학수첩, 1999)

 

* D. A. F. 드 사드, 성귀수 옮김 사드 전집 1: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워크룸프레스, 2014)



무명작가 시절 아폴리네르는 은행에 일하면서 틈틈이 글을 쓴다. 하지만 은행 업무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아폴리네르는 먹고 살기 위해 신문과 잡지에 실리는 기사를 썼다. 궁핍한 생활은 아폴리네르의 창작 활동을 방해했다. 무명의 매문가 아폴리네르는 익명으로 포르노 소설을 썼다. 그가 쓴 포르노 소설이 일만 일천 번의 채찍질어린 돈주앙의 무용담이다. 그는 또 과거에 출간된 포르노 소설들을 발굴하여 자신이 직접 주석을 붙인 선집을 만들기도 했다. 아폴리네르는 오랫동안 잊힌 포르노 작가를 긍정적으로 재평가했는데, 그 작가가 바로 사드 후작으로 알려진 마르키 드 사드(Marquis de Sade)사드의 작품을 해설한 아폴리네르의 글 신성한 후작사드 전집첫 번째 책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에 수록되어 있다1차 세계 대전에 포병으로 참전한 아폴리네르는 참호에 몸을 숨기면서 시를 썼다. 당시 사귀었던 루(Lou)라는 별칭의 여성에게 보낸 시는 에로틱한 연애 시.






 

 



 










* 황현산 황현산 전위와 고전: 프랑스 상징주의 시 강의(수류산방, 2021)


* 황현산 아폴리네르: 알코올의 시 세계(건국대학교출판부, 1996)




미라보 다리만 아는 독자는 아폴리네르를 서정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너무도 비좁은 수식어 서정 시인은 입체적이면서도 전위적인 아폴리네르의 문학적 매력에 어울리지 않는다. 아폴리네르는 자유’, ‘회화’, ‘환상’, ‘과 관련된 생각의 조각들을 모아 모아서 자신만의 문학을 완성했다. 아폴리네르의 문학은 ‘넉넉한 콜라주(Collage)’.








 

아폴리네르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황현산 선생은 현대 전위 작가와 미술가들에 영향을 준 아폴리네르를 이렇게 평가한다. 아폴리네르는 자식이 참 많다.” (황현산 전위와 고전: 프랑스 상징주의 시 강의, 407) 전 세계의 자식들을 키워 낸 아폴리네르의 문학적 매력은 참 많다.

 

아폴리네르의 수많은 자식 중 한 사람인 황현산 선생은 201888일에 별세했다. 내게 8월은 아폴리네르와 황현산을 다시 보게 만드는 달이다.








이제 곧 이제 곧 8월이 가리라.

아폴리네르와 황현산을 다시 보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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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8-26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생일 축하드립니다^^

cyrus 2025-08-28 21:0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