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실험실 - 위대한 《종의 기원》의 시작
제임스 코스타 지음, 박선영 옮김 / 와이즈베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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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점을 둘러보거나 온라인 서점에 서핑하면 올해 과학계와 출판계가 누구를 가장 주목하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 사람은 바로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다. 다윈의 저서 《종의 기원》을 번역한 책, 진화론 입문서와 그의 이론을 지지하는 책들이 나오고 있다. 올해는 다윈이 태어난 지 210주년, 《종의 기원》 초판이 출간된 지 160년이 되는 해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명사(名士)의 생일이나 기일, 심지어 기념비적인 책이 처음 나온 날을 기리는 데 익숙해졌다. 과학계에서도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과학자를 기념하는 일만큼은 절대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다윈은 이상하리만큼 인기 없는 과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아인슈타인(Einstein)처럼 천재로 주목받지 않았으며 리처드 파인먼(Richard Feynman)처럼 재미있는 후일담이 많은 과학자도 아니다. 다윈은 과학 교과서에 나오는 이론들을 정리한 책들을 썼지만, 그렇다고 정재승이나 김상욱처럼 글을 재미있게 쓰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다윈은 어떤 사람인가? 대부분 사람은 다윈을 ‘진화론의 창시자’로만 알고 있지, 실험 결과나 지식을 여러 사람과 공유하면서 소통한 지식인으로 살아왔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그리고 다윈은 현장 실험을 선호했다. 그가 살았던 집 주변의 정원은 교과서에 나와 있는 축적된 과학적 발견을 검증하고,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공간이다. 이미 누군가 발견하여 잘 정리해놓은 실험 결과를 재확인하는 것은 진정한 현장 실험으로 보기 어렵다. 아무도 도전해 보지 않은 실험을 시도하는 실험실에서 기존에 나온 지식은 참고용 지식일 뿐, 실천적인 지식이 될 수 없다. 다윈에게 실험실은 ‘매일매일 새로운 지식이 시험되고 태어나는 공간’이었다.

 

《다윈의 실험실》은 현장 실험을 중시한 다윈의 삶을 온전하게 알리고, 현장 실험을 하면서 새롭게 확인된 정보를 뼈대로 삼아 진화론이 형성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책이다. 다윈은 20대 때부터 5년간 해군 측량선 비글호(Beagle)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하며 박물학자로 거듭났다. 비글호는 다윈에게는 미지의 자연을 만나게 해주는 연구실이나 다름없는 공간이다. 그렇지만 다윈이 학문적으로 성숙하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준 실험실은 다운 하우스(Down House)이다. 비글호 여행을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온 다윈은 정신적 동반자인 엠마 웨지우드(Emma Wedgwood)와 결혼했고, 다윈 부부는 평온한 시골 마을 다운에 정착한다. 다윈 부부는 40년 이상 다운 하우스에 살았다. 다운 하우스의 정원은 ‘다윈에 의한, 다윈을 위한, 다윈의 거대한 실험실’이었다. 그곳에는 다윈이 직접 구입한 여러 품종의 비둘기가 있는 비둘기장이 있었으며 온실에서는 끈끈이주걱과 파리지옥의 식충 습성에 대한 실험이 진행되었다. 다윈은 일반인과 어린 아이들도 참여할 수 있는 실험을 즐겨 했다. 다윈의 일곱 자녀는 다윈의 든든한 조수가 되어주었다. 다윈의 자녀들을 가르친 가정교사도 다윈이 계획한 실험에 참여했다. 캐서린 솔리는 10년 동안 다운 하우스에 지내면서 다윈의 자녀들에게 프랑스어와 무용, 음악 등을 가르쳤다. 평소 식물 이름을 알아맞히는 것에 관심이 많은 그녀는 아이들과 함께 식물을 관찰하기도 했다.

 

정원에서 현장 실험을 한 다윈은 기존 학자들이 고수해온 ‘실험실 안에 있는 지식’이라는 고정관념을 허물었다. 다윈은 동료 생물학자와 박물학자와 다르게 흙을 손에 묻혀가면서 실험하는 것을 좋아했다. 《종의 기원》은 현장 실험이 이루어진 다운하우스 정원의 열매이다. 이 열매가 완전하게 맺어지길 원했던 다윈은 신중하게 진화론을 만들었다. 그는 확실한 증거를 확보할 때까지 실험을 반복했으며 자신의 생각을 단정해서 주장하기보다는 자신을 지지하는 동료 학자들에게 공유하면서 검증받기를 원했다.

 

《다윈의 실험실》은 다운하우스에서 진행된 역사적인 현장 실험을 복원할 뿐만 아니라 다윈의 실험에 직간접으로 도움을 준 주요 인물들도 소개한다. 다운하우스 안에는 다윈의 가족과 가정교사가 다윈 실험실의 보조 연구원으로 활약했다. 다운하우스 밖에서는 다윈의 지적인 스파링 파트너(sparring partner)이자 식물학자인 조지프 후커(Joseph Hooker)가 있었다. 후커는 미흡한 진화론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하면서 이론의 약점을 보완해주는 동료였다. 다윈은 자기 생각을 검증받기 위해 후커와 서신을 주고받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의 역사는 논문이나 교과서 혹은 연구 노트 등에 기록된 실험 결과들이다. 그러나 실험 결과에 초점이 맞춰진 과학의 역사에는 ‘기록되지 못한 것’이 있다. ‘기록되지 못한 것’이란 실험실 안에서 수행된 실험 방법이나 소소한 경험들이다.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용어로 로 과학 지식을 분류하여 설명하자면 문자로 남겨진 모든 과학 지식‘명시 지식(明示 知識, Explicit Knowledge)이고, 기록되지 못한 경험 및 상황 중심적인 지식‘암묵 지식(暗默 智識, Tacit knowledge)이다. 따라서 암묵 지식은 학자의 개인적 관심사와 관련되어 있거나 실험실에서 학자가 실험을 수행하면서 알게 된 지식이다. 《다윈의 실험실》은 과학 교과서에서 볼 수 없거나 《종의 기원》에 언급되지 않은 다윈의 암묵 지식을 소개한 책이다. 지루한 《종의 기원》에 무모하게 도전하는 것보다 《다윈의 실험실》을 먼저 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다윈의 실험실》을 읽으면 다윈을 인기 없는 학자라고 여기는 통념이 틀렸음을 알게 될 것이다.

 

 

 

 

※ Trivia

 

* 조지 허버트 웰스는 이 글을 읽고 영감을 얻어 그로부터 몇 년 뒤 <기묘한 난초의 개화>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356쪽)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의 오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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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9-08-04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상욱 교수 책이 재밌다는 데 동의 못합니다ㅎㅎ 김상욱 교수 글은 다윈과라고 저는 생각하는데ㅎ

cyrus 2019-08-05 16:27   좋아요 1 | URL
제가 김상욱 교수의 책을 한 권만 읽어서 그 분의 글쓰기 스타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같아요... ㅎㅎㅎㅎ 다시 생각해보니 제가 착각했네요... ^^;;
 
자궁이 아이를 품은 날 - 여성의 생물학과 건강에 대한 진화론적 관점
그라지나 자시엔스카 지음, 김학영 옮김 / 글항아리사이언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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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피트니스 센터는 운동만 하는 곳이 아니다. 그곳에 수영장, 사우나, 라운지 등 여러 가지 시설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이런 곳에서 열심히 운동하면 몸이 더욱 건강해질 것만 같다. 우리나라에서 ‘피트니스(fitness)는 흔히 ‘체력’ 또는 ‘건강 상태’와 같은 뜻으로 이해되고 있다. 피트니스는 원래 ‘적합성’, ‘적응도’를 뜻하는 단어이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말하는 적합성과 적응도는 어떤 개체가 환경의 변화에 맞춰 적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성질 또는 적응하는 능력을 뜻한다. 사실 진화론에서 ‘적응’을 언급할 때 가장 많이 쓰이는 원문은 ‘adaptation’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적응해 진화된 모습으로 지구 곳곳에 오랜 세월을 버텨 살아왔다.

 

그렇다면 환경에 잘 적응하면서 진화해온 인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생물인가? 왠지 이런 말을 들으면 마치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는 승리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진화론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라면 인간이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인간이 진화상 가장 성공한 존재라는 당연한 믿음에 허점이 있다는 것을 안다. 변화에 적응하면서 살아남은 인간은 성공의 축배를 들 자격이 없다.

 

진화는 늘 예전보다 더 나은 상태로 변하는 단선적인 과정이 아니다. 아직도 당신이 진화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당신은 ‘진화’를 ‘진보’의 동의어로 보고 있는 것이다. 진화가 모두 진보는 아니다. 다윈이 생각한 진화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 그 자체를 의미할 뿐이다. 그런데 다윈의 후계자로 자처하는 진화론자들은 진화를 더 나은 쪽으로 변화하는 일관된 과정인 것처럼 설명했다. 이러한 진화의 의미에 대한 오해는 사회학자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가 만든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라는 용어가 퍼지면서 시작됐다. ‘적자생존’이 널리 알려지는 바람에 사회학자가 제시한 진화론이 생물학자 다윈이 제시한 진화론(자연 선택과 성 선택)을 완전히 제쳐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적자생존을 뜻하는 원문에 ‘fittest’가 들어 있다. ‘적자(適者)’는 ‘적당한 사람’ 또는 ‘적합한 사람’을 뜻하지만, 종종 적자생존을 ‘약육강식’의 동의어로 보는 사람들은 ‘적자’를 ‘환경에 잘 적응하는 능력을 갖춘 강력하고 우수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잘못된 믿음 탓에 대부분 사람은 환경 적응도가 높은 강력한 존재는 반드시 살아남으며 그렇지 않은 존재, 즉 환경 적응도가 떨어지는 존재는 퇴보하게 되고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고 오해한다. 적자생존 이론은 인간을 ‘진화에 성공한 고등 생물’로 등극시켜준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

 

지금도 다윈주의자들은 ‘진화=진보’라는 잘못된 등식을 해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제는 ‘진화=건강’이라는 등식도 해제해야 한다. ‘진화=건강’ 등식을 믿는 사람은 현대인이 과거 선조들보다 몸이 더 튼튼하며 건강하게 잘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자궁이 아이를 품은 날》이라는 책을 권하고 싶다. 이 책의 서문에 이런 내용이 있다.

 

 

‘건강’과 진화적 ‘적응도(fitness)’는 동의어가 아니다.  (10쪽)

 

 

저자의 말이 맞다. 진화는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수 없다. 진화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들이 겪어야 하는 경험이다.

 

《자궁이 아이를 품은 날》은 여성의 몸과 생식(reproduction) 활동을 진화생물학 관점으로 설명한 책이다. 흔히 생식을 ‘암수가 만나 짝짓기를 해서 자손을 낳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생식을 ‘번식’과 같은 의미로 보기도 한다. 틀린 설명은 아니지만, 너무 단순한 설명은 생식의 의미를 협소하게 보게 만든다. 이 책에서 살펴보는 여성의 생식은 임신과 출산까지 보는 것이 아니라 ‘출산한 아이를 돌보는 일’까지도 포함한다. 여성의 몸은 자손의 출산과 양육에 초점이 맞춰진 채 진화해왔다. 그러나 여성이 아이 한 명을 낳고 키우기 위해 할당할 수 있는 에너지는 제한되어 있다. 여성은 생식과 생존, 두 가지 중요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살아간다. 이렇게 진화한 여성의 몸은 건강 상태가 나빠지기 쉽다. 따라서 저자는 여성에게만 특정 질환(자궁암, 유방암, 산후우울증 등)이 일어나는 이유를 진화의 결과에서 찾는다. 과거의 여성은 한평생 적어도 평균 잡아 3회 이상 임신을 경험했다. 임신과 수유 중에는 배란 과정이 중단되고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겐이 나오지 않는다. 과거 여성보다 임신 횟수가 적은 현대 여성은 여성 호르몬에 더 많이 노출된다. 호르몬에 과도하게 노출된 여성의 생식기관 세포들은 변이를 일으키고 암세포로 변형될 수 있다.

 

여성의 몸과 생식 활동을 진화론적 관점으로 설명하는 것은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라는 낡은 편견을 정당화하기 위한 근거가 아니다. 이 글에 있는 “여성의 몸은 자손의 출산과 양육에 초점이 맞춰진 채 진화해왔다”라는 문장을 보면서 내가 ‘여성을 아이만 낳는 기계’로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또 여성의 몸이 건강이 나빠지기 쉽다고 해서 ‘여성은 남성보다 생물학적으로 약한 존재’라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혹시나 그렇게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진보’를 생각하지 말고, ‘진화’의 진짜 의미를 보라고 말하고 싶다. ‘진화’에 겹쳐진 ‘진보’라는 프레임을 걷어내라는 말이다.

 

우리 몸은 현대인의 생활방식보다는 과거 원시인의 삶의 방식에 맞추어져 있다. 선사시대 이래 20세기 직전까지도 보통 사람들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루 끼니 걱정하고 농사짓고 아이들 키우며 고되게 살아왔다. 산업혁명과 근대화 이후 인간은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너무나 빠르게 변화시켰다. 그러나 우리 몸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 진화의 과정은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생활습관을 원시인의 생활방식에 근접하게 맞추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며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다. 우리 몸은 늘 건강한 상태로 완벽하게 유지하면서 진화되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다. 이 자명한 진리를 접한 사람들은 삶을 너무 비관적으로 보게 만드는 건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우리 몸에 대한 진실이 오히려 건강한 몸과 건강한 삶을 행복과 성공의 필요조건으로 삼는 건강 중심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살펴보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완벽한 몸’은 없다. 완벽한 몸은 인간이 추구하는 이상화된 개념에 불과하다. 현실의 몸은 변화하는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위태로운 몸(precarious body)[주]이다.

 

 

 

[주] ‘위태로운 몸’은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가 쓴 글의 제목 ‘위태로운 삶(precarious Life)’을 변용해서 만든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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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3 16: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7-24 06:01   좋아요 0 | URL
스마트폰을 자주 사용하게 되면 목, 허리에 변형이 생긴다고 해요. 몇 십년 후에는 거북목 아닌 사람 찾기가 힘들거예요.. ^^;;

2019-07-24 0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름다움의 진화 - 연애의 주도권을 둘러싼 성 갈등의 자연사
리처드 프럼 지음, 양병찬 옮김 / 동아시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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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다윈(Darwin)《종의 기원》이 출간된 지 160주년이 되는 해이다. 다윈은 이 책에서 인간은 신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영장류 조상으로부터 진화되었다는 이론을 주장했다. 기존의 세계관을 뒤흔들어 엎은 이 ‘자연 선택(natural selection)’은 지금도 중학생 정도면 다 아는 과학 이론이 되었다. 《종의 기원》이 나오고 12년이 지난 후에 다윈은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이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성 선택(sexual selection)이라는 새로운 이론을 제시했고, 성 선택이 자연 선택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은 철저히 외면당했고, 다윈을 지지하던 진화론자들도 이 책을 비난했다. 하지만 다윈이 더욱더 뼈아팠던 것은 따로 있다. 다윈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진화론을 증명하여 그와 공동으로 논문을 발표한 앨프레드 월리스(Alfred Wallis)가 성 선택을 공격하는 선봉장으로 나선 것이다.

 

조류학자인 다윈주의자 리처드 프럼(Richard O. Prum)이 쓴 《아름다움의 진화》는 백여 년 동안 진화론의 핵심 개념으로 자리 잡은 자연 선택에 밀려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성 선택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조류의 짝짓기와 수컷 조류의 구애 행동을 연구하면서 새로운 연구 주제에 도전하게 된다. ‘조류의 성 선택이 진화의 다양한 측면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성 선택은 간단히 말하면 수컷은 배우자가 될 암컷과 짝짓기를 하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과시하고, 암컷은 배우자 수컷을 고른다는 주장을 발전시킨 이론이다. 수컷은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줄 자식을 늘리기 위해 섹스(교미)에 집착하고, 성적 욕구가 있는 암컷은 (자신이 보기에 섹시하고 멋진) 수컷을 고르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수컷에 대한 암컷의 성적 선호와 이런 선호를 충족시켜 암컷을 유혹하기 위한 수컷의 깃털 장식들이 진화를 이끈 원동력이 되었다. 암컷의 성적 선호는 다음에 태어날 암컷에게 대물림되고, 수컷의 깃털 장식들은 점점 더 세련되고 화려해진다. 프럼은 이 과정을 오랫동안 진행되어 온 ‘성 선택에 의한 미적 진화(aesthetic evolution)라고 부르면서 배우자가 될 수컷을 ‘성적 욕구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암컷의 미적 감각과 짝짓기 행위가 이루어지면 자기 결정권을 갖는 암컷의 태도에 주목한다. 암컷을 반하게 만드는 수컷의 몸에 난 장식들, 즉 크고 화려한 깃털은 ‘성적 상징물(sexual ornament)이다.

 

성 선택을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성적 상징물은 수컷 공작의 화려한 깃털이다. 공작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수컷 조류들도 각자 암컷을 유혹하는 성적 상징물을 하나씩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이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암컷 앞에서 교태를 부린다. 따라서 수많은 조류에서 나타난 암컷의 배우자 선택과 수컷의 성적 상징물의 공진화는 다양한 ‘성적 아름다움’을 증가시켰다.

 

그러나 자연 선택을 지지하는 다윈주의자들은 여전히 다윈이 생각해낸 성 선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진화론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자연 선택과 성 선택으로 갈라진 다윈주의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를 ‘진화론의 허구’를 뒷받침해주는 근거로 본다. 진화론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생각보다 복잡한 진화론 논쟁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진화론자들끼리 서로 대립하는 모습이 의아하게 느껴질 것이다. 《아름다움의 진화》는 자연 선택의 한계를 밝혀내 성 선택에 더 많이 주목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연 선택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모든 생물의 진화를 자연 선택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고 역설한다. 이러한 저자의 입장은 다윈이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을 쓰게 된 의도와 관련이 있다. 다윈은 자연 선택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생물들의 특성에 주목했고, 진화론의 빈틈이 되는 부분을 메우기 위해 성 선택을 제시했다. 따라서 《아름다움의 진화》에 나오는 ‘자연 선택 지지자와 성 선택 지지자 간의 논쟁’을 ‘진화론을 틀린 이론으로 만드는 프레임’으로 삼는 것은 난센스다.

 

성 선택을 비판하는 자연 선택 지지자들은 암컷이 성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성 선택이 짝짓기에 너무 초점을 맞춰서 설명한다고 말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성 선택으로 모든 생물의 진화를 설명하게 되면 인간도, 생물도 모두 본능적으로 섹스를 선호하는 존재로 부각된다. 이러한 자연 선택 지지자들의 반응은 백여 년 전 다윈이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을 발표했을 때 나온 대중들의 반응과 거의 비슷하다. 다윈과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들, 즉 유독 성에 대해 보수적인 반응을 보인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 사람들은 암컷이 섹스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는 성 선택에 분노를 드러냈다. 성 선택은 암컷에게 짝짓기를 주도적으로 임하는 ‘성적 자기 결정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이론이다.

 

과학적으로 성 선택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왜 수컷은 자신의 생존에 불리한 거추장스러운 성적 상징물을 가진 채 살아가게 되었냐고 따진다. 그들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이를테면 수컷 공작의 깃털은 적에게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깃털이 지나치게 커서 적의 눈에 띄기 쉬운 수컷 공작은 생존할 확률이 낮을 뿐만 아니라 짝짓기를 할 확률도 낮아진다. 사실 성 선택을 주장한 다윈도 이 문제에 직면했다. 그는 ‘실용성 없는 성적 상징물’의 기원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그러나 저자는 성적 상징물의 무용성을 근거로 성 선택을 비판하는 입장을 다시 반박한다. 그는 성 선택이 종의 쇠퇴와 멸망을 초래할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짝짓기를 하는 데 유리한 이점이 분명히 있다고 주장한다. 적에게 잡혀 죽을 위험이 있더라도 수컷은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 점점 더 아름다워지도록 노력할 것이다. 유성생식을 하는 동물들에 짝짓기는 생존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수컷일수록 짝짓기에 유리하다는 성 선택을 재미있게 비유해서 설명한 저자의 말이 인상적이다.

 

 

 ‘잘생긴 용모를 가졌지만 무모함 때문에 요절한’ 제임스 딘(James Dean) 스타일의 수컷이 ‘책만 파면서 여든 살까지 생존한’ 범생이 스타일의 수컷보다 더 많은 자손을 남길 수 있다.  (201쪽)

 

 

‘아름다움이 무기’라는 말이 있다. 요즘 이 말은 여성에게 아름다움을 강요하게 만드는 강압적인 말이 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미디어가 만들어 낸 틀에 박힌 ‘강요된 아름다움’을 탈피하고, 다양한 형태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면 아름다움도 개인을 돋보이게 만드는 훌륭한 이점이자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움의 진화》가 강조하는 미적 진화론은 모든 존재가 아름다움을 즐기며, 아름다움을 선호하는 욕구를 가진 성적 주체라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인간은 사회적으로 진화하는(social evolution) 존재이다. 진화 속도가 더디지만, 과거에 최고로 여겨지던 아름다움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아름다움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우리 사회가 화장이나 성형을 하지 않아도 되고, 조금은 부족해도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아름다움을 선호하는 사회로 진화되길 바란다.

 

 

 

 

 

※ Trivia

 

* 482쪽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두더지와 여우(The Hedgehog and the Fox)>라는 에세이에서 이러한 지적 분열을 탐구했다.

 

→ 두더지가 아니라 ‘고슴도치(hedgehog)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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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6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7-08 17:46   좋아요 0 | URL
네, 간혹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형태의 생물들이 발견되곤 하죠... ^^;;

AgalmA 2019-07-07 1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커크 월리스 존슨 『깃털 도둑』을 읽으며 극락조 생태에 대해 좀 찾아보니 1년이 거의 짝짓기 준비더군요ㅎㄷㄷ 공작의 화려함만큼이나 극락조도 성 선택 이론의 표본 아닌가 싶습니다.
미의 추구를 인간의 예술적 감각으로 생각하는 인본주의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데, 모든 존재가 미적 욕구로 가득한 성적 주체라는 폭넓은 시각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아름다움의 진화』사놓고 아직 안 읽고 있었는데 곧 읽어봐야겠어요^^


cyrus 2019-07-08 17:48   좋아요 1 | URL
<아름다움의 진화>에도 극락조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수컷 극락조가 구애하는 모습을 찍은 컬러 사진도 있는데, 스마일 표시가 있는 커다란 깃털을 펼친 모습이에요. <깃털 도둑>이라는 책도 읽어봐야겠어요. ^^

AgalmA 2019-07-12 15:42   좋아요 0 | URL
극락조 중 그 새 사진 신기하다고 인커넷 커뮤니티에서 종종 보여요ㅎ 정말 신기하죠. 우리 인간이 유사를 보려는 특성이 있긴 하지만 극락조 구애 무늬가 웃는 모습이라니ㅎㅎ!
 
거울 촉각 공감각
조엘 살리나스 지음, 정유선 옮김 / 성안당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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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뇌는 주변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해석한다. 보이는 것을 보고, 들리는 것을 들으면서 주변 상황을 인식한다. 하지만 어떤 뇌는 종종 이 같은 인지 과정에서 벗어난 특이한 기능을 활성화하기도 한다. ‘책’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퍽퍽한 식감의 삶은 닭고기 맛이 난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특정 글자나 숫자를 보면 색깔이 보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통증을 느끼는 상대방을 보면 자신도 통증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이 세 사람의 반응은 마약에 취해서 나오는 환각 증상이 아니다. 거울-촉각 공감각(mirror-touch synesthesia)’ 능력자(줄여서 ‘공감각자’)들이 실제로 경험하는 일이다.

 

공감각자들은 전쟁 영화를 보는 것이 고문이다. 이들은 상대방의 신체에 가해진 물리적 충격을 보는 것만으로 그 자극이 마치 자신의 몸에 가해진 것처럼 감각 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감각자들은 물건을 보면 맛을 느끼거나 이름에서 색깔을 보는 경험을 한다. 공감각자 중에는 비범한 예술적 감각을 가진 이들도 많다.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Richard Feynman, 그는 살아있었을 때 삼바 춤을 즐겼고 봉고라는 타악기를 수준급으로 연주했다), 가수 빌리 조엘(Billy Joel) 등이 있다.

 

신경과 의사인 조엘 살리나스(Joel Salinas)는 공감각자다. 그는 《거울 촉각 공감각》에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공감각 능력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저자는 자신의 공감각 능력을 뇌과학의 관점으로 설명하면서 인간의 감각과 뇌의 활동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쉽게 풀어낸다. 이 책 머리말의 첫 문장은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하는 공감각자의 삶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나는 나를 배반한다.  (16쪽)

 

 

공감각자의 뇌는 상대방의 경험을 인식한다. 그 순간 공감각자의 몸은 ‘상대방의 몸’이 되고, 그 몸에 ‘내 감각’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공감각자는 ‘강제적으로’ 공감한다. 거울-촉각을 몸소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공감각자들이 평생 ‘나 자신과 싸움’을 하면서 살아간다고 생각할 것이다. 틀린 건 아니다. 실제로 저자는 공감각 능력으로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겪었다. 공감각자의 뇌는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이 다른 사람을 인식하면서 확인된 정보를 받아들인다. 저자는 자신의 뇌가 다른 사람의 경험과 감정에 지나치게 몰두하지 않도록 더욱 신경을 써야 했다. 외부 반응에 아주 예민한 공감각자는 늘 겪어야 하는 거울-촉각 경험을 피하고자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기도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거울-촉각 공감각이 그 능력을 갖춘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저주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거울-촉각 공감각은 병리적인 현상이나 장애가 아니다. 거울-촉각 공감각도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 중의 하나이다. 거울-촉각 공감각도 장점이 있다. 저자는 환자들의 정서적 · 신체적 경험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입체적인 의사’이다. 그는 이 경험을 통해 환자들의 진심을 확인하고, 그들이 느꼈을 통증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어느 정도인지 알게 된다.

 

 

 눈앞에서 환자가 세상을 떠날 때마다 나도 죽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 느낌은 결코 약해지는 법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여러 번 죽었다. 환자가 죽는 것을 볼 때, 죽음 속으로 사라지기 전 마지막 순간을 내 몸에서 체험했다. 헛된 공포의 마지막 순간, 또는 침묵의 특전이었다. 나는 이러한 순간마다 달갑지 않았고, 우발적이며 충격적이고 혼란스러운 죽음을 막기 위해 항상 무언가,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환자의 마지막 순간의 의식을 존중하고, 그들 삶에서 마지막 순간의 증인이 되고 싶었다. 환자의 마지막 바람은 존중받아야 하고 아무 결함 없이 확실히 이행되어야 한다.  (194쪽)

 

 

환자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의사들이 많다. 이런 의사들은 아프다고 칭얼대면서 찾아오는 환자들을 돌려보내기 위해 효과가 미미한 약을 처방한다. 그것은 인간의 고통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이 없는 행동이다. 환자와의 정서적 거리감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의사들은 저자의 공감각 경험 사례를 참고했으면 한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로써 과학적인 진단과 분석, 즉 ‘의술’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아울러 환자의 통증과 고통 및 두려움까지 공감하며 귀담아 들어주는 ‘인술’이야말로 질병으로 고통받아 병원을 찾는 환자들을 위해 갖춰야 할 덕목이다.

 

《거울 촉각 공감각》은 색다른 능력을 가진 신경과 의사의 자서전이 아니다. 이 책은 ‘공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공감. 얼핏 들으면 평범하고 쉬운 단어이지만 그 의미가 모호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동안 공감을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은 좋은 말인데도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누구나 공감의 중요성을 말하지만, 대부분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얼추 생각하는 선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저자가 말하는 공감은 이러한 단순히 ‘생각하기’에만 있지는 않다.

 

 

 공감은 단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왜 그 일이 일어나는지 생각할 정도로 신경 쓰는 것이다.  (386쪽)

 

 

정말로 진지하게 공감을 하려면 눈이라는 거울에 단순히 비친 상대방이 나 자신의 정신적 공간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즉 ‘나’와 상대방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만약 어떤 사람이 된다면 그 사람의 감정을 파악할 수 있고, 그 사람이 행동하는 이유를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상대방에 향한 과도한 몰입은 경계해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떤 사람에게 공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공감하지 못해도 괜찮다. 공감 능력이 남들보다 떨어졌다는 생각으로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상대방을 생각해주는 공감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내가 원하지 않은 공감’, ‘강제적인 공감’ 같은 억지스러운 공감은 진지한 공감을 위해 비워야 할 우리의 정신적 공간을 비좁게 만든다. 그런 공감은 ‘나’를 속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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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2 - 털보 과학관장과 함께라면 온 세상이 과학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2
이정모 지음 / 바틀비 / 2019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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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한 리뷰를 썼는데도 책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변명을 해보지만,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할 기본적인 사실을 자꾸 잊어버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 과학책을 읽고 있을 때, 그 책 속에 있는 과학 지식이 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는 기분이 든다. 그러나 자신감은 오래 가지 못한다. 책을 덮고 난 후부터 문제가 생긴다. 과학책에 있는 내용을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것을 말로 설명하기 시작하면 머리가 새하얘지고 말문이 막혀버린다. 누군가가 나에게 불쑥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의 차이가 뭐예요?”라든가 “이기적인 유전자가 무슨 뜻이에요?”라고 질문한다면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책을 많이 읽으면 똑똑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분명히 똑똑한 애서가들이 있다. 그러나 예외는 있다. 나 같은 헛똑똑이는 책 읽는 것 자체를 즐기기만 하는 딜레탕트(dilettante, 호사가)에 가까운 독자이다. 즉 나는 책을 좋아하지만, 아는 게 많지 않은 사람이다. 이 말은 겸손의 표현이 절대 아니다.

 

최근에 책의 내용을 쉽게 잊어버리는 문제의 원인을 알아냈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의 칼럼 모음집인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2》에 첫 번째로 실린 글은 암기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독일에 유학 생활은 한 이정모 관장은 자신을 가르친 독일인 교수가 내는 구두시험에 어려움을 느낀다. 구두시험에 좋은 성적을 받으려면 교수가 가르쳐준 내용을 암기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암기를 잘하지 못한 이정모 관장, 아니 학생은 외워야만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시험 방식에 불만을 가진다. 이정모 학생은 교수에게 직접 찾아가 암기 중심의 교육에 문제 있다는 식으로 따진다. 그러자 교수는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이며 대답한다.

 

 

 “아니, 누가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했는가! 학습은 암기일세. 자네 머릿속에 있어야지 책 속에 있는 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번쩍이는 아이디어는 책이 아니라 자네 머리에서 나와야 하네. 그러니 열심히 암기하게나.”

그리고 덧붙였다.

“이해는 완전한 암기를 위한 준비과정이지.”

 

(『누가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했는가』 중에서, 13쪽)

 

 

이정모 학생은 교수의 말에 동의한다. 과학관장이 된 이정모 학생은 교수의 죽비 소리를 들었던 그 날을 회고하면서 창의성보다 더 중요한 게 암기라고 강조한다. 혹시 지금까지 나온 내용만 보면서 이정모 관장이 주입식 암기교육을 옹호한다고 단정하지 마시길 바란다. 이 글의 전문을 보면 알겠지만, 이정모 관장은 암기와 주입식 암기 교육을 확실하게 구분한다. 이정모 관장도 그렇고, 나도 주입식 암기교육을 반대한다. 이정모 관장이 말하는 ‘좋은 암기’란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을 이해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기본기다. 독일인 교수는 스무 번 외우고 스무 번 잊어버리면 저절로 외워진다고 말한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책 속에 있는 내용을 확실하게 건져서 내 머릿속에 담으려면 일회성 독서만 가지고는 안 된다. 외워야 할 내용은 무조건 외워야 한다. 그러려면 책을 여러 번 읽어야 한다. 꼭 위편삼절(책을 엮은 가죽끈이 3번씩이나 끊어질 정도로 읽어야 한다는 뜻의 사자성어)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잊을 때가 되었다 싶으면 책을 읽으면 된다. 그러면 저절로 외워진다.

 

이정모 관장이 말했듯이 과학은 어렵다. 그런데 과학이 어렵다는 이유로 과학 공부를 피할 수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잖은가. 정말 재미있고, 쉽게 풀어쓴 과학책은 많다. 이정모 관장이 쓴 과학책이 재미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요즘에는 만화로 된 과학책이 나오고 있다. 읽을거리가 많다. 과학책을 반복해서 읽고, 알아야 할 내용을 암기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어렵게 느껴지던 과학이 친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포기하지 않고/그래도) 과학책을 읽어야겠습니다.

 

 

 

※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2권이 전작과 다른 점: 부록으로 이정모 관장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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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3 0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5-23 12:38   좋아요 0 | URL
귀찮은 방식이지만, 책을 읽을 때도 정말 외워야 할 내용은 꼭 외워야겠어요....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