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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review)리뷰(re-view)하다

 

EP. 1


 



십 년 전에 루이스 세풀베다(Luis Sepulveda)의 소설 연애소설 읽는 노인을 읽었다. 이번 달 독서 모임 필독서는 연애소설 읽는 노인이다. 이 책을 다시 읽기 전에 십 년 전에 쓴 연애소설 읽는 노인리뷰를 먼저 읽었다.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서 줄거리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리뷰를 보면서 줄거리를 이해하느라 헤맸다. 어떤 문장은 여러 번 읽어도 이해되지 않았다. 도대체 십 년 전의 나는 리뷰에서 뭘 말하고 싶었던 걸까? 과거의 글에 박제된 나에게 물어봤는데 그는 대답하지 않는다. 답답하다. 이 때 나는 맞춤법 검사기가 있는 줄 몰랐다. 머릿속에 나오는 대로 거침없이 글을 썼고, 다 쓰고 난 후에 글속에 오자와 비문이 있는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십 년 전의 나를 사이러스 군’, 줄여서 사 군이라고 부르겠다. 리뷰(review)리뷰하니까 여러 가지 감정이 느껴진다. 사 군, 너 참 열심히도 썼구나. 그런데 내용이 부실하고, 필력도 부족해. 오자가 너무 많고 비문도 있어. 그리고 문장을 좀 줄여서 쓸 수 없겠니? 내가 널 위해 리뷰를 리뷰하면서 고쳐 써볼게. 물론 지금의 나도 글을 잘 쓰는 편은 아니야. 그래도 네 글을 고쳐 쓰면서 작문 실력을 향상할 수 있도록 노력해볼게.



















* 루이스 세풀베다 연애소설 읽는 노인(열린책들, 2009)

 

* 사 군이 쓴 리뷰 전문

<자연 vs 인간, 싸움의 미학> (201094일 등록)

https://blog.aladin.co.kr/haesung/4083751




 




Scene 1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 완독을 할 겸 남미 계열 작가인 루이스 세풀베다(칠레 태생)작품을 읽기 위해서 도서관에서 대출하여 읽게 되었다.[1] 제목이 참 독특하다. 노인이 연애소설을 읽는다? 왜 노인이 연애소설을 읽는지 궁금하기만 하였다.[2] 하지만 이 책을 결정적으로 읽은 이유는... 책의 분량이 얇았기 때문이다. 사실 도서관에서 두 권 짜리 니코스 카잔차키스의최후의 유혹과 루이스 세풀베다의 책 사이에서 무엇을 읽을 것인지 많이 고민을 했다. 결국 얇은 책을 좋아하는 나쁜 습관(?)을 이기지 못해 세풀베다의 짧은 책을 선택했다

[3] [4]

 

 

[1] → 칠레의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의 대표작 연애소설 읽는 노인》을 읽고 싶어서 도서관에 있는 책을 빌렸다.

 

[2] 노인이 연애소설을 읽으면 안 되나? 읽을 수 있지! 사 군은 왜 저런 생각을 했을까? 어쨌든 이 문장은 지우자! 

 

[3] → 사실 연애소설 읽는 노인이 얇아서 읽고 싶었다. 


뒤에 있는 문장 세 개도 다 지우자! 앞에 나온 문장과 비교해봐. 넌 처음에 세풀베다의 소설을 읽고 싶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카잔차키스의 소설을 읽어야 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어? 말이 안 되잖아?


 

[4] 지금은 얇은 책만 선호하는 편식성 독서를 하지 않는다







Scene 2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은 아마존의 숲에서 홀로 사는 안토니오 노인이다. 그리고 노인과의 갈등 구도를 맺고 있는 인물이 뚱보 읍장이다. 그는 아마존 개발에 앞장 서는 권력자로 등장하며 노인과 반대로 자연의 위대함을 모른다.[1] 이야기 초반에보면 아마존의 독거 노인인 안토니오 노인은 초라하고, 읍장이라는 직책의 명함을 가지고 있는 뚱보의 기세는 당당하게 등장한다. 그러나 안토니오 노인이 뚱보 읍장의 사냥 수색대에 합류한 뒤부터는 이야기에서 읍장은 점점 조롱거리의 대상이 되어간다.[2] 질퍽한 늪지대를 지나가는데 노인이 알려준 늪지대를 수월하게 가는 방법을 따르지 않는다. 자신은 수색대의 우두머리라고 큰소리치며 절대로 그런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걷지 않는다고 똥고집을 부린다. 노인의 말을 따르지 않은 읍장은 결국에는 가다가 넘어지게 되면서 수색대원들마저도 그를 비웃고 만다.[3] 자연의 이치를 따르지 않고 무조건 자연을 인간의 생존을 위한 대상으로 생각하는 정치 권력자의 속물 근성을 세풀베다는 은밀히 조롱하고 있다.[4]

 

 

 

사 군! 두 번째 문단에 뜯어 고쳐야 할 부분이 많군!

 

 


[1] 소설의 주인공은 안토니오라는 노인이다. 그는 아마존 숲에서 혼자 산다. 소설의 또 다른 인물 뚱보 읍장은 아마존 개발을 추진하는 권력자다. 노인과 정반대의 성격이라서 자연의 소중함을 모른다.

 

[2] 아마존의 독거노인 안토니오는 초라해 보이고, 사냥 수색대를 이끄는 읍장은 당당하다. 그러나 안토니오가 사냥 수색대에 합류한 후부터 읍장은 점점 조롱거리가 된다.

 

[3] 노인은 늪지대를 수월하게 가는 방법을 안다. 그러나 읍장은 노인의 조언을 무시한다. 체면을 중시한 그는 늪지대를 지날 때 우스꽝스럽게 걷지 않으려고 애쓴다. 결국 노인의 말을 따르지 않은 읍장은 넘어지고 만다. 늪에 빠진 읍장을 본 수색대원들은 대놓고 비웃는다.

 

[4] 작가는 물질적 부를 좇으면서 자연을 자원으로 이용하려는 권력자의 속물근성을 희화화한다.







Scene 3



 하지만 이 작품에서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는 갈등은 안토니오 노인과 암살쾡이 사이의 갈등이다.[1] 사실 루이스 세풀베다 이전 세계문학들을 살펴보면 자연 대 인간이라는 골자로 하는 작품이 몇 편 있다.[2] 허먼 멜빌의백경의 에이햅 선장 대 흰 고래 모비 딕, 그리고 어니스트 헤밍웨이의노인과 바다에서의 노인 대 청새치, 상어 떼로 구성되어 있다. 두 작품은 공통적으로 인간은 거대한 자연 앞에서 굴복하는 이야기로 끝나지만 두 작가가 독자들에게 전하려는 의도는 과감하게 자연과 대결하는데 인간의 위대한 존엄성을 강조하고 있다. 에이햅 선장이 모비 딕과의 치열한 싸움 끝에 깊은 바다에 빠져 죽어도, 고생 끝에 잡은 청새치를 상어들에게 다 뜯긴 채 노인이 집으로 돌아와도 결국 자연은 자신에게 패배한 두 인간의 존엄성을 빛나게 해주는 배경 뿐인 것이다.[3]

 

 

[1] 하지만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대립 구도는 노인과 암컷 삵이다.

 

[2] 역대 서양고전 중에 자연 대 인간을 소재로 한 작품이 있다.

 

[3] 사 군은 거짓말을 했다. 그는 모비 딕노인과 바다를 읽은 적이 없으면서 읽은 척했다. 사 군이 초등학생이었을 때 동화로 편집한 두 작품을 읽었다. 풋내기 독서를 했던 사 군이 모비 딕노인과 바다를 깊이 있게 분석할 리 없다. 내 기억이 맞으면 사 군은 작품 해설을 참고했다. 서평을 쓸 때 한 번도 안 읽은 책을 언급하거나 설명하지 말아야 한다. 괜히 어설프게 썼다가 책을 제대로 읽은 독자에게 책잡힌다. 반성하는 차원으로 올해에 두 작품을 읽겠다.







Scene 4



 그러나 연애소설 읽는 노인에는 오히려 반대이다. 노인과 암살쾡이의 1 1 대면과 대면 후 결과는 긴장감보다는 엄숙미가 느껴진다. 사람을 해친 암살쾡이의 습성과 자취를 파악할수록 노인은 짐승의 힘과 용기에 경탄하면서 둘 중 하나는 살아남게 되는 최후의 대결을 준비한다.[1] 노인에게는 암살쾡이를 죽여서 자신은 살아남겠다는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암살쾡이의 두 눈을 통해 자신과의 대결에서 물러서지 않으려는 확연한 의지를 읽게 된다. 노인과 암살쾡이에게는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다. 인간 대 자연. 당연히 일어날 수 밖에 없으며 결코 피할 수 없는 숙명의 대결은 이 둘은 어쩔 수 없이 운명의 순리로 마주치게 된 것 뿐이다.[2]

 

 

[1] 최후의 대결을 끝내기 위해 노인과 암 삵이 만나는 장면은 긴장감보다는 엄숙미가 흐른다. 노인은 암 삵의 습성을 이해할수록 짐승의 힘과 용기에 경탄한다. 그러면서 둘 중 하나만 살아남아야 하는 최후의 대결을 준비한다.

 

[2] 노인은 암 삵을 죽여서 살아남겠다는 의지를 드러내지 않는다. 노인과 암 삵은 단지 살기 위해서 싸우지 않는다. 두 존재는 인간 대 자연이라는 거대한 숙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을 뿐이다.







Scene 5



 결국 안토니오 노인은 암살쾡이와의 사투 끝에 살아남는다. 비록 그는 살아남았지만 그다지 기뻐하지 않는다. 죽은 암살쾡이의 시체를 흐르고 있는 아마존 강에 떠내려가게 함으로써 암살쾡이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노인은 다시 집으로 돌아와 연애소설을 읽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끝나게 된다.[1] 노인의 안식처는 아마존의 자연을 상징한다. 암살쾡이를 죽였어도 아무 일 없다듯이 자신이 좋아하는 연애소설 읽기에 매달리는 것은 그냥 자연 속에 몸을 맡겨 본능적으로 살려는 자세이다. 노인이 살고 있는 광활한 아마존에는 인간의 손길을 거치치 않은 자연의 원시성을 간직하고 있는 동물들이 많이 있다. 노인의 암살쾡이 사살은 거대한 자연을 파괴하고 승리자인마냥 도취하고 있는 인간의 행위가 무의미하며 자연과 인간의 대결에는 승자는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2]

 

 

사 군이 소설 결말을 언급했다‥…

 

 

[1] → 치열한 사투 끝에 노인이 살아남는다. 하지만 그는 기뻐하지 않는다. 노인은 암 삵의 송장을 강물에 띄우면서 죽은 짐승을 애도한다. 수색 임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노인은 다시 연애소설을 펼친다.

 

[2] 노인의 안식처는 인간의 보금자리가 아닌 거대한 자연의 일부이다. 연애소설을 읽는 행위는 자연의 섭리에 따르면서 살려는 자세이다. 아마존은 인간의 손길을 모르는 야생의 터전이다. 노인과 암 삵의 만남은 승자와 패자가 없는, 누구에게 승자 또는 패자라고 단정할 수 없는 의미심장한 대결이다.







Scene 6



 아무리 암살쾡이가 인간들을 무참히 죽였다지만 정작 암살쾡이가 인간들을 향한 살기를 드러낸 이유는 자연에 해를 가하려는 인간의 행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암살쾡이 입장에서는 총을 들고 있는 인간들의 모습이 자신뿐만 아니라 자연을 향한 선전포고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암살쾡이가 어쩔 수 없이 날카로운 어금니와 발톱을 인간들에게 향한 것은 사필귀정이다.[1]

 

 간혹 뉴스을 보게 되면 도심 한복판에 야생 맷돼지가 돌아다닌다거나 사람이 사는 집에 말벌 떼들이 커다란 벌집을 틀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리고 소방대원들이 동원되어 맷돼지는 사살되고, 벌집은 가차없이 파괴된다. 인간의 눈에는 도시 속에 있는 맷돼지와 말벌은 우리에게 해를 가할 수 있는 위험한 존재로만 비춰질 뿐이다. 하지만 그들이 도시에 살고 싶어서 산 것은 아니다. 단지 살고 싶은 보금자리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의 존재가 쉽게 노출되는 인간의 보금자리에 살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들을 도시로 불러들이게 한 것은 무분별하게 자연을 개발하는 인간의 행위가 만든 현상이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려는 못된 사고와 행위가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리지지 않는 한 자연 파괴가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만은 우리 인간들 스스로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주2]

 

 

사 군. ‘맷돼지가 아니라 멧돼지라네

그리고 제일 마지막 문장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1] 암 삵은 인간을 죽이는 야생 괴물이 아니다. 살아있는 짐승과 자연을 위협하는 인간의 행위에 맞선 것이다. 암 삵은 총을 쥔 채 야생에 접근하는 인간의 행동을 선전 포고로 받아들였다. 분노가 서린 암 삵의 어금니와 발톱이 인간에게 향한 상황은 사필귀정이다.

 

[2] 뉴스에서 도심 한복판에 나타난 멧돼지와 가옥에 튼 벌집과 말벌 떼에 대한 소식이 심심찮게 나온다. 흥분한 멧돼지는 사살되고, 유충과 꿀이 있는 벌집은 파괴된다. 우리는 멧돼지와 말벌을 위험한 존재로 여긴다. 하지만 야생은 도시에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의 유일한 터전인 자연이 사라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우리 보금자리 주변을 떠돈다. 인간이 계속 자연을 개발할수록 야생은 도시로 향할 것이다. 자연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우리의 욕심을 조절하지 못하면 우리의 소중한 터전마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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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1-03 19: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맞아요 예전 리뷰를 읽으면 얼굴이 붉어지곤 하죠 젊은 시절 치기도 보이고. 전
지금도 얼굴이 빨개져요. 중학생때 글이랑 별반 달라진 게 없는 듯해서요 ㅎㅎ 사군님 글 읽으니 다시 읽어봐야 겠단 생각이 들어요.~

cyrus 2021-01-03 19:45   좋아요 1 | URL
옛날에 쓴 글을 읽으면 재미있어요. 옛날 생각도 나고 좋아요. cyrus는 제1부캐, 사군은 제2부캐입니다.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은데요... ^^;;

stella.K 2021-01-03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 군! 대단해. 난 지난 리뷰는 거의 안 보는데...
책을 내 본 사람으로서 부끄럽군.
이런 작업도 꽤 의미있어 보인다.^^

cyrus 2021-01-03 20:01   좋아요 0 | URL
다시 쓰는 일이 생각보다 시간이 좀 걸렸어요. 빨라도 두 시간 이내에 다 쓸 줄 알았어요. 문장을 계속 보면서 이걸 어떻게 고쳐 쓸지 생각하니까 두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어요. ^^;;

곰곰생각하는발 2021-01-03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가 쓴 옛글 읽다 보면 내가 쓴 글인데도 의미를 모를 때가 많더군요. ㅎㅎ

cyrus 2021-01-04 11:43   좋아요 0 | URL
곰발님의 옛날 글에 있는 언어유희는 지금 봐도 재미있어요. 보면 볼수록 부러워요. 저도 나름 시도를 해봤지만, 반응이 시원찮네요. ^^;;
 



어제 공개한 피은경의 톡톡 칼럼리뷰에 책의 아쉬운 점 몇 군데를 언급했다. 그날 밤에 해당 책의 저자인 페크는 필자가 리뷰에서 지적한 것들을 해명한 글을 써서 공개했다. 저자는 필자의 비판적 의견들을 조목조목 반박했으며 그중 하나는 필자의 오해와 무지에서 기인한 것으로 밝혀졌다.


















* 피은경 《피은경의 톡톡 칼럼: 페크의 생활칼럼집》 (해드림, 2020)




* 피은경의 톡톡 칼럼141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에 장발장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그는 배고파하는 어린 조카들을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감옥에서 19년의 세월을 보내다가 석방한다.

 


* 피은경의 톡톡 칼럼174

 빅토르 위고의 <가난한 사람들>이란 소설의 내용이다.




필자는 리뷰에서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가난한 사람들>은 내용이 같은 소설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페크는 해명 글에서 <레 미제라블><가난한 사람들>은 내용도, 형식도 다른 소설이라고 알려줬다. 저자의 말이 맞다.

 














 

* 빅토르 위고 빅토르 위고 동화(그린북, 2005)

 

 


<가난한 사람들>(Les Pauvre Gens)1859년에 나온 빅토르 위고(Victor Marie Hugo)의 서사 시집 <세기의 전설>(La Légende des siècles) 1집에 포함된 글(정확히 말하면 시편)이다. 이야기가 있는 시라서 단편소설로 소개되었다. <세기의 전설>은 총 세 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2집은 1877, 3집은 1883년에 발표되었다.

 

<레 미제라블>은 국내에 다양한 이름으로 소개되었는데, 비참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졌다. 필자는 가난한 사람들이 국내에 알려진 <레 미제라블>의 이명(異名)이라고 오해했으 피은경의 톡톡 칼럼에 언급된 위고의 소설 제목을 지적했다. 필자는 제목을 잘못 알았다. 또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위고의 글이 있다는 사실과 피은경의 톡톡 칼럼에 언급된 <가난한 사람들> 줄거리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독을 반성하고, 책의 저자에게 사과의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앞으로 글을 쓸 땐 더 신중하게 살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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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20-12-09 1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실 장 발장이 빵을 훔친 것만으로 19년을 복역한 것은 아니죠. 몇 차례 탈옥을 했기 때문에 가중처벌 받았죠. 아무리 19세기의 일이지만 빵 하나 훔쳤다고 19년 복역하는 것은 아닙니다 ㅎㅎㅎ

cyrus 2020-12-09 19:56   좋아요 1 | URL
맞아요. 저도 착각했어요. ‘빵 훔친 죄’가 워낙 임팩트가 크다 보니 사람들은 빵 하나 훔칠 걸로 19년 감옥 생활을 했다고 생각해요. ^^;;

페크(pek0501) 2020-12-09 22:0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착각했어요 2

빵 하나로 감옥 19년 어쩌구 하는 글을 여러 책과 인터넷에서 너무 많이 봐서 고정 관념으로 박혀 있어서요. 잘 따져 보면 알 텐데 말이죠.

페크는 항복, 하겠습니다. ^^

2020-12-09 15: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09 2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09 2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ott님의 도움을 받아 One Hundred Years of Solitude(약칭 백 년’) 번역본 2(문학사상사, 민음사)의 번역 실태에 대한 글을 다시 쓸 수 있게 되었다. scott님이 아니었으면 이미 썼던 두 편의 글은 필자의 부족한 외국어 실력만 드러낸 부끄러운 반쪽짜리 작업의 결과물이 될 뻔했다. scott님은 스페인어로 된 원작에 있는 원문을 직접 찾아 확인해주셨다. 그리고 스페인어 원문과 국역본 2종의 번역문을 비교 분석도 해주셨다. 이 글을 통해 scott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가르시아 마르케스, 안정효 옮김 백년 동안의 고독(문학사상사, 2005)

    

 

 

 

 

 

 

 

 

 

 

 

 

 

 

 

 

* 가르시아 마르케스, 조구호 옮김 백년의 고독(민음사, 2000)

 

 

 

    

 

이 글은 기존에 썼던 두 편의 글을 보완한 글이다. 새로 추가된 내용은 댓글에 있는 scott님의 의견이다. 그래서 scott님이 단 댓글의 내용을 인용했다글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scott님의 댓글 내용 중 필자가 쓴 글과 중복된 내용(영문판 원문과 국역본 2종에서 인용한 문장)은 제외했다백 년번역본 2종과 관련된 새로운 내용이 나오는 대로 계속 추가할 것이다.

 

 

 

 

 

 

 

 

 

1

 

 

* 영문판

  Úrsula on the other hand, held a bad memory of that visit, for she had entered the room just as Melquíades had carelessly broken a flask of bichloride of mercury. Its the smell of the devil, she said. Not at all, Melquíades corrected her. It has been proven that the devil has sulphuric properties and this is just a little corrosive sublimate.

 

 

* 문학사상사 10

  우르슬라만큼은, 멜키아데스가 실수로 제2산화수은이 담긴 병을 깨뜨린 순간 방에 들어섰기 때문에, 그의 방문에 대해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냄새, 정말 악마의 냄새처럼 고약했어요.” 우르슬라가 말했다. “아닙니다.” 멜키아데스가 대꾸했다. 지옥의 악마한테서는 유황 냄새가 나는데, 그날 부인이 맡은 냄새는 거기에 비하면 퍽 고상했죠.”

 

 

* 민음사 119

  멜키아데스가 2염화수은이 담긴 유리병을 실수로 깨뜨리는 순간에 하필 그의 방에 들어갔던 우르술라는 그의 방문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을 간직하게 되었다.

이건 악마의 냄새예요그녀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멜키아데스가 바로잡아 주었다. 「악마는 유황 성분을 지니고 있다는 게 밝혀졌고요, 또 이건 단지 약간의 염화수은일 뿐이지요

 

 

 

* 필자가 쓴 것

 

bichloride of mercury: 염화수은(II), 염화 제2수은, 2염화수은, 승홍(昇汞, corrosive sublimate)

 

염화수은: 염소와 수은의 화합물, 염화수은(II)화학식 HgCl2

 

산화수은(mercury oxide): 수은의 산화물(한 개 이상의 산소 및 다른 원소와 결합하고 있는 화합물), 화학식 HgO

 

 

 

 

* scott님의 분석 

  

 

스페인어 원문

  Úrsula, en cambio, conservó un mal recuerdo de aquella visita, porque entró al cuarto en el momento en que Melquíades rompió por distracción un frasco de bicloruro de mercurio.

-Es el olor del demonio -dijo ella.

-En absoluto -corrigió Melquíades-.

Está comprobado que el demonio tiene propiedades sulfuricas, y esto no es más que un poco de solimán.

 

이렇게 놓고 비교해보니 확실히 조구호씨 번역은 스페인어판을 직역하셨고(나쁘게 말하면 어순을 뒤죽박죽 구글 번역기 돌리듯) 안정효씨 번역은 영어판으로 번역해서인지 의역을 했지만 스페인어판과 똑같이 우르슬라와 멜키아데스에 주체를 뒤바꾸지 않고 어순도 정확합니다.

 

‘en que‘라는 시간 접속 부사구(that절이 아닌 시간 부사구 just as로 번역해야함) 뒤 주어를 조구호씨는 문장 첫머리 주어로 번역했는데 영어판 번역 우슬라가 주어로 나와야 정확한 번역입니다.

 

‘porque~’ 구절도 이유를 뜻하는 ‘for~’ 구절로 번역한 영어판이 정확하고

 

조구호 씨 번역은 어순이 뒤바꿔버릴 정도로 엉망

solimán은 스페인어로 수은으로 만든 화장품

sulfurico(단수형) / sulfuricas: (스페인어) 황산

sulphuric: (영어) 유황

 

스페인어판 원본에는 ‘황산’이라는 단어를 썼고 영어판에는 유황으로 번역했고 ‘corrosive sublimate’는 영어판에서 염화 제2수은이라는 전문 화학용어가 아닌 원문이 품고 있는 진짜 뜻, 즉 수은 성분이 들어간 화장품 / 황산이 부식할 때 나는 유황 냄새’로 번역했네요.

 

올려주신 번역본만으로 볼 때 안정효 번역본이 스페인어판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영어 번역본이 정확하고 (원문이 품고 있는 의미를 안정효 씨가 의역한 것은 있음) 2산화수은이라고 화학적 용어가 아닌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수은이 들어간 화장품을 의미했고 (원문에서) 조구호 번역은 일대일 사전 찾아 번역기 돌려버린 것 같아요.

 

 

 

 

 

 

 

 

8

 

* 영문판

  They found her dead on the morning of Good Friday. The last time that they had helped her calculate her age, during the time of the banana company, she had estimated it as between one hundred fifteen and one hundred twenty-two.

 

 

* 민음사 판 2203

  우르술라는 죽은 몸으로 성 목요일 아침을 맞이했다. 바나나 회사가 있던 시절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마지막으로 그녀의 나이를 계산해 보았는데, 그 당시 그녀가 백열다섯 살에서 백스물 살 사이라고 결론지었었다.

 

 

* 필자가 쓴 것

 

성 목요일(Maundy Thursday)은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Gethsemane)에서 체포된 날이며 성 금요일(Good Friday, 수난일: 십자가형을 받은 예수의 죽음을 기념하는 날) 전날이다. 그리고 백스물 살이 아니라 백스물 두 살이다.

 

 

 

* scott님의 분석

 

 

스페인어 원문

  Amaneció muerta el jueves santo. La última vez que la habían ayudado a sacar la cuenta de suedad, por los tiempos de la compañía bananera, la había calculado entre los ciento quince y los ciento veintidós años.

 

영어 번역본은 ‘good Friday’라고 했는데 스페인어 원문(el jueves santo)성 목요일이라고 되어있네요

 

‘ciento veintidós’는 백스물 두 살이 정확한 뜻입니다.

‘ciento quince’는 백 열다섯 살 정도

원문에는 백 열다섯 살에서 백스물 두 살 사이 라고 적혀 있어요.

 

 

 

 

 

 

 

 

10

 

 

* 영문판

  When he rode the bicycle he would wear acrobats tights, gaudy socks, and a Sherlock Holmes cap, but when he was on foot he would dress in a spotless natural linen suit, white shoes, a silk bow tie, a straw boater, and he would carry a willow stick in his hand.

 

 

* 문학사상사 420

  그는 자전거를 탈 때면, 곡예사의 흘태바지알록달록한 양말을 신고 셜록 홈즈의 모자를 쓰고 다녔지만, 걸어 다닐 때에는 티끌 하나 없는 단정한 양복에 흰 구두를 신고 비단으로 만든 나비넥타이에 밀짚모자를 쓰고 손에는 버드나무 단장을 짚고 돌아다녔다.

 

 

* 민음사 판 2254

  그는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닐 때는 곡예사 바지백파이프 연주자들이 신는 양말을 신고, 탐정들이 쓰는 모자를 썼으나, 걸어 다닐 경우에는 말끔하게 손질한 생 아마포 옷에 흰 구두를 신고, 비단 나비넥타이를 매고, 맥고모자를 쓴 차림으로 버드나무 단장을 들고 다녔다.

 

 

* 필자가 쓴 것

 

gaudy: 천박한, 촌스러운, 요란스러운, 번지르르한

 

인쇄가 잘못된 건지 아니면 안정효 씨가 잘못 적은 건지 알 수 없지만, 흘태바지가 아니라 홀태바지(통이 매우 좁은 바지)라고 써야 한다.

 

영문판에는 백파이프 연주자들이 신는이라는 번역문에 해당되는 표현이 없다. 그렇다면 스페인어로 쓰인 책에 백파이프 연주자들이 신는이라는 표현이 있을 수 있다. 필자가 스페인어 판을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뭐가 맞는 번역인지 판단하지 않았다.

 

그런데 조구호 씨는 ‘Sherlock Holmes cap’탐정들이 쓰는 모자라고 엉터리로 번역했다. ‘Sherlock Holmes cap’은 셜록 홈스가 써서 유명해진 모자(원래는 사냥꾼들이 즐겨 쓴 모자). 탐정들은 홈스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모자를 쓰고 다니지 않는다. (잘못된 내용이라 필자가 취소선을 그었음)

 

 

 

* scott님의 분석

 

 

스페인어 원문

  Cuando andaba en el velocipedo usaba pantalones de acrobata, medias de gaitero y cachucha de detective, pero cuando andaba de a pie vestia de lino crudo, intachable, con zapatos blancos, corbatin de seda, sombrero canotier y una vara de mimbre en la mano.

 

우선 스페인어 원문에서

pantalones de acrobata-곡예사 바지

medias de gaitero- ‘gaitero‘가 백파이프 medias 는 양말 즉, 백파이프 연주자들이 신는 양말이라는 뜻(조구호 번역이 맞음).

 

특히 영어번역판에 셜록 홈즈의 모자라고 해석했는데 스페인어 원문에는 cachucha de detective-‘탐정들이 쓰는 모자라고 쓰여 있어요. (영어판이 의역 원문에 셜록 홈즈라는 단어가 없음)

 

안정효 씨의 번역에 [그는 자전거를 탈 때면]이라고 해석한 부분 스페인어 원문은[pero cuando andaba de a pie vestia de lino crudo]‘andaba de a pie vestia de lino crudo’ 자전거를 타고 구석구석(목적 없이) 돌아다니는 어슬렁거리는 의미입니다. pero cuándo~접속사구 해석을 영어에서 단순히 ‘when’으로 해서 안정효 씨가 그냥 ‘00~라고 번역한 것 같습니다.

 

이 단락 부분은 영어판이 원문과 다른 의미에 단어 없는 단어를 넣고 있는 단어를 빼 버림

 

스페인어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한건 조구호

안정효 : 조구호- 50:50인 것 같네요.

 

 

 

 

 

 

* 필자의 소감

 

두 번째 글에서 필자는 조구호 씨의 번역문(‘탐정들이 쓰는 모자’)을 엉터리라고 지적했다. 스페인어 원문을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제넘게 조구호 씨의 번역을 엉터리라고 지적한 것은 잘못된 일이다. 잘못을 반성하는 차원에서 문제의 구절은 지우지 않고, 취소선을 그었다. 그러면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확인할 수 있다. scott님이 두 번째 댓글을 달지 않았다면, 필자의 잘못된 의견이 고쳐지지 않은 채 그대로 공개될 뻔했다.

 

독자의 눈에 보이는 무지로 인한 오류와 실수로 쓴 문장은 삭제하면 되지만, 그런 식으로 너무 쉽게 글에 드러난 결점을 덮어버리고 넘어가선 안 된다. 그렇게 되면 과거의 결점이 뭐였는지 금방 잊게 되고, 이로 인해 글을 쓰다가 또 한 번 비슷한 실수를 저지른다. 이런 일이 생기지 않으려면 글에 남아 있는 결점을 부끄러워하면서 지우기보다는 그냥 그대로 놔두는 게 낫다. 삭제하지 않고, 공개하는 것도 글쓰기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글에 얼룩처럼 남아 있는 과거의 오류를 되돌아보면서 다시 그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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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2020-12-06 1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생은 이 소설이 원시적이고 무속적이라며 은근 낯설면서도 재미있었던 모양입니다만 저는 파리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서 읽다가 집어던져버렸던 기억입니다.그 뒤로 남미 문학에 대한 주저함이 생겼어요.지금도 바뀌진 않은 듯합니다.낯설고 어리둥절한 문화 차이...나의 개성이겠지만..벌써 18년 전의 일입니다.ㅎ

cyrus 2020-12-07 07:41   좋아요 1 | URL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소설을 읽으면 소설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어요. 과거에 좋게 본 책이 나중에 다시 읽을 땐 그때만큼 좋은 느낌이 안 날 수 있어요. ^^

곰곰생각하는발 2020-12-06 13: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이거 사이러스 님과 스코트 님의 합작품이로군요..

cyrus 2020-12-07 07:41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

2020-12-06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0-12-07 0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읽다가 번역이 이상해보이면 그냥 짜증내고 마는데 이런 훌륭한 글을....

cyrus 2020-12-07 07:55   좋아요 1 | URL
번역 비판은 전문가가 해야 하는 일인데, 번역을 비판한 전문가의 글을 찾기가 쉽지 않아요. 물론, 제가 못 찾은 것일 수 있어요. 독자들이 번역을 지적한 서평이 있긴 합니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문장이 이상하고 잘못 되었는지 명시하는 내용이 없어요. 그냥 “이 책의 번역은 별로야”라고 언급한 게 전부에요. 번역을 비판한 독자의 글은 번역에 문제 있는 책을 읽으려는 다른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지만, 오역 사례를 제시하지 않는 이상 번역을 비판한 독자들의 입장 또한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여러 독자들이 왜 번역에 이상함을 느끼고, 지적하는지 알고 싶어서 이런 (비효율적인) 작업을 해왔어요.

2020-12-07 0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07 1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년 전에 국내에 번역된 코난 도일(Conan Doyle)셜록 홈스(Sherlock Holmes)시리즈 번역본들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정말로 고된 글쓰기였다. 나는 번역 일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고, 영어를 능숙하게 쓰지 못한다. 그렇다 보니 나도 글을 쓰다 보면 크고 작은 실수를 할 때가 있다.

 

지난달 마지막 날에 어느 분이 내가 쓴 셜록 홈스시리즈 번역본에 대한 글에 댓글을 남겼다. 나는 그 글에서 원문의 ‘three days’사흘이라고 번역한 문장이 틀렸다고 지적하는 내용을 썼는데, 댓글 작성자는 사흘‘3과 비슷한 뜻을 가진 단어라고 알려주셨다. 내 글에 있는 잘못된 내용은 삭제하지 않았다. 문장을 삭제하는 대신 취소선으로 그었다.

 

 

[셜록 홈즈의 회상/회고록번역본 비교 Part. 4] (2017628)

https://blog.aladin.co.kr/haesung/9422406

 

[셜록 홈즈의 회상/회고록번역본 비교 Part. 4]

(201774)

https://blog.aladin.co.kr/haesung/9435357

 

 

댓글 작성자가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으면 나는 사흘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분의 말에 따르면 3일이 사흘이라면, 4일은 나흘이라고 쓴다.

 

 

1하루

2이틀

3사흘

4나흘

 

 

지금까지 살면서 사흘나흘이라는 단어를 써본 적이 없던 것 같다. 그래서 사흘‘4의 동의어로 착각했다. 사실 단어의 의미를 잘 모르면 국어사전에 찾아봐야 하는데 그때 내가 안일하게 생각했다. 국어사전에 있는 사흘의 의미를 알아봤더라면 실수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글을 쓰다가 뜻이 애매모호한 낱말이 생각나면 국어사전을 이용한다. 그 낱말이 내가 써야 할 문장의 문맥에 어울리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그러나 얼른 글을 완성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면 국어사전을 참고하는 절차를 무시하고 싶어진다. 그러면 고작 1분도 안 걸리는 일을 하지 않는다. 뜻을 잘 모르는 낱말을 쓰기 전에 국어사전을 살펴보는 습관을 잊지 말아야겠다. 블로그에 남기는 글이라고 해도 아무나 보여줘도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는 게 내 글쓰기에 관한 지론이다. 그런 글이 될려면 내가 쓰려고 하는 낱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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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10-01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나도 동의어로 알고 있는데 그게 아니란 말야?

cyrus 2019-10-02 17:27   좋아요 0 | URL
처음에 ‘사흘’의 ‘사’가 ‘넉 사(四)’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사흘’의 의미를 착각하고 있었어요... ^^;;

2019-10-01 2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10-02 17:31   좋아요 0 | URL
저도요. 가끔 맞춤법 검사기가 서버 문제로 인해 작동 안 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완성된 글을 맞춤법 검사하지 않고 블로그에 올려요. 이러면 찝찝해요. ^^;;
 

 

 

415일에 올푸리 출판사의 전자책인 오비의 빛이 새로 업데이트(개정)되었다. 예전에 내가 확인한 연도 표기 오류뿐만 아니라 맞춤법도 고쳐졌다. 415일 이전에 다운받은 전자책이 e-Book 책장에 있으면 그걸 삭제하고 다시 다운로드하면 된다. 그러면 업데이트된 전자책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올푸리 출판사 공식 블로그에 공지되어 있다.

 

링크: https://orpuhlee.blogspot.com/

 

      

새로 업데이트된 전자책을 다운받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나는 출판사의 공지 사항을 보면서 처음에는 업데이트된 전자책을 다시 사야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사들이지 않고도 업데이트된 전자책을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e-Book] 아서 맥킨 오비의 빛(올푸리, 2019)

 

    

 

이번에 업데이트된 전자책에 또 하나 추가된 내용은 저자명 표기에 대한 부연 설명이다. 나는 오비의 빛리뷰에 작가 Arthur Machen아서 매켄또는 아서 매컨으로 표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입장을 표명한 내 글을 올푸리 출판사 편집자가 답변을 보냈다. 출판사 편집자의 답변을 읽고 난 뒤에 생각이 달라졌다.

 

달라진 내 생각은 이렇다. 첫 번째, ‘아서 매켄또는 아서 매컨으로 반드시 표기해야 할 의무는 없다. 두 번째, 아서 메이첸또는 아서 맥킨(올푸리 출판사가 표기한 저자명)으로 표기하는 것이 틀렸다고 말한 내 입장은 잘못되었다.

 

Arthur Machen에 관한 국립국어원의 권장 표기법은 없다. 주로 많이 쓰이는 게 아서 매켄아서 매컨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의 표기법을 많이 쓴다고 해서 올바른 저자명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런데 나는 아서 메이첸또는 아서 맥킨으로 표기하는 것은 틀렸다는 식으로 주장했다. 주관적인 잣대로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고 만 셈이다. 국립국어원의 권장 표기법이 없는 단어를 둘러싸고 어느 표기명이 맞느냐 틀렸느냐 식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

 

 

 

 

 

 

 

 

출판사 편집자의 말에 의하면 실제로 원어민들이 ‘Machen’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조사하고 검토했다고 한다. 편집자가 내게 제시한 참고 자료는 1937년에 아서 매켄이 BBC의 웨일스 지역 방송에 출연하면서 남게 된 육성 자료. 놀랍게도 이 귀한 자료는 유튜브에 있다. 이 영상에 흘러나오는 방송 진행자의 말을 들어보면 Machen맥킨또는 매킨에 가깝게 발음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411일에 등록된 오비의 빛관련 글 두 편을 수정했다. 잘못된 내용에 취소 선을 그었다. 예전에는 아무도 모르게 문장을 지웠다. 정말 간단한 일이다. 내 글에서 드러난 결점을 말끔하게 지울 수 있다. 하지만 남몰래 내 결점을 숨기는 게 과연 잘한 일일까? 나의 좋은 점이 부각된 글은 보여주고 내 결점이 분명하게 남아있는 글을 숨기는 데 급급하면 제대로 된 반성을 하지 못한다. 내 결점을 분명히 확인했다면 그게 왜 그렇게 나왔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피드백을 거치고 난 후에 글의 결점을 삭제해도 늦지 않다.

 

 

 

 

 

 

 

 

 

 

 

 

 

 

 

 

 

 

 

 

 

 

 

 

 

 

 

 

 

 

 

 

* 한스 로슬링, 올라 로슬링, 안나 로슬링 뢴룬드 팩트풀니스(김영사, 2019)

* 은유 다가오는 말들(어크로스, 2019)

* 은유, 이은의, 윤정원, 박선민, 오수경 불편할 준비(시사IN, 2019)

*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김영사, 2017)

 

    

 

스웨덴의 통계학자 한스 로슬링(Hans Rosling)실수를 부끄러워하기보다 실수에서 호기심을 가지라[1]라고 말한다. ‘내가 그 사실을 어쩌면 이렇게 잘못 알 수 있을까? 그렇다면 여기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실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게 되는 결점 중 하나이다. 그렇지만, 로슬링이 말한 대로 결점에 호기심을 가지면 새로운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마음속으로 교훈을 얻는 데 그친다면, 금방 잊어버리기 쉽다. 글로 써서 남겨야 한다. 작가 은유이성복 시인의 말을 인용하면서 글쓰기는 오만한 우리를 전복한 일이라고 말한다[2]. 내 결점과 한계를 글로 기록하면 온전한 내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내 결점을 확인했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나와 다른 생각이 틀렸다고 단정 지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나는 주관적인 생각에 가까운 확신이라는 오만함에 잠깐 눈이 멀었다. 은유는 확신에 찬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 했다[3]. 그녀는 40대 후반이면 그걸 두려워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요즘 2, 30대의 젊은 사람은 자기주장이 너무 강해서 확신에 찬 사람이 되기 쉽다.

 

어제 읽은 카알벨루치 님의 글[4]에서 유발 하라리(Yuval Harari)가 한 말을 발견했다. 경험하면 기록하라. 기록하면 업로드하라, 업로드하면 공유하라[5] 나는 내 결점을 확인하고 난 뒤에 성찰하는 피드백(feedback) 과정도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피드백 과정을 글로 기록하고, 업로드하고, 공유할 수 있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그리고 내 결점을 떳떳하게 글로 공개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나의 장점을 드러내고, 나를 자랑하기 위해 글을 쓰는 건 분명 재미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내가 ‘잠시 오만한 나’를 따끔하게 혼쭐내기 위한 글쓰기도 재미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은 부끄러운 나의 진짜 모습을 글로 표현하기가 망설여진다면, 은유의 문장[6]을 주문 삼아 외워보자.

 

남에게 보여주는 용기, 약점과 결핍을 드러내는 용기, 글에 대한 어떤 평가도 받아들이는 용기, 다시 글을 쓰는 용기.

 

 

 

 

[1] 한스 로슬링 외, 이창신 옮김, 팩트풀니스, 김영사, 2019, 357

 

[2] 은유, 나로 살고 싶은 여성의 글쓰기, 불편할 준비, 시사IN, 2018, 193

 

[3] 은유, 다가오는 말들, 어크로스, 2019, 19

 

[4] [투명사회의 기괴한 라디오], 2019418일에 등록됨

 

[5] 유발 하라리, 김명주 옮김, 호모 데우스, 김영사, 2017, 529~530

 

[6] 은유, 불편할 준비,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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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9-04-19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 속으로 교훈을 얻는 것이 아니라 글로 써서 남겨야 한다는 것. 공감합니다.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지요. 작은 용기가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

cyrus 2019-04-20 10:22   좋아요 0 | URL
윤동주처럼 좋은 시를 쓰지 못하지만, 윤동주처럼 종이를 거울삼아 자신을 되돌아보는 글을 쓰면서 살아가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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