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 - 독점계약 번역 개정판
E.H. 카 지음, 김택현 옮김 / 까치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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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폄(褒貶)이란 잘한 일은 칭찬하되 못한 일은 나무라는 것이다. 역사를 배움으로써 다시는 시행착오를 거듭하지 않도록 나아갈 바를 제시해 준다. 시간의 변화에 따른 역사의 내용을 바탕으로 현재의 의미를 파악하고, 미래를 예견하는데 기본 토대가 되는 역사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역사학에 대한 편견이 역사학의 포폄 정신을 가로막고 있다. 역사학은 ‘과거 지향적’이라는 믿음이다. 인류가 살아온 모든 삶의 활동을 연구하는 학문이 역사학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믿음이 강화되면 역사는 이미 완료된 고정불변의 실체가 된다. 기록으로 완성된 역사의 내용은 정설로 남게 되고, 이후 지속적인 연구 가능성의 여지가 없어진다.

 

역사교과서에 정리된 역사는 이미 그것을 저술한 학자들이 연구한 것이니 그것을 그냥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이건 역사학을 죽이는 일이다. 이러다 보니 역사학은 ‘죽은 학문’이 되었다. 정부와 여당은 국정교과서 논리를 강행하려고 현행 교과서가 패배주의를 가르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역사학 위기’ 담론의 정치적 배경이다. 역설적으로 역사에 간섭하는 지배집단이 역사학을 죽이고 있다. 그들은 ‘과거의 영광’을 다시 찾으면서 힘을 잃어버린 역사를 자기들의 입맛에 맞게 재창조해 권력을 강화한다.

 

뉴라이트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만들려고 시도한다. 그들이 갑자기 역사를 이용하는 목적은 세계 불황으로 인해 잔뜩 움츠러든 시장경제체제의 기를 펴기 위해서다. 뉴라이트도 시장경제의 약점을 목격했다. 그래서 국정교과서를 통해 시장경제의 약점을 은폐하고, 성장발전의 긍정성을 강조하고 싶어 한다. 자신에게 친숙한 과거를 고정불변한 소유물로 보는 자유경제원의 반쪽짜리 역사관은 현실에 대한 실천적·비판적 개입이 사라져버린 역사학의 죽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역사학의 임무를 모르는 사람은 에드워드 카가 반대하는 인간의 부류다. 집단세력은 자신들이 사랑하는 위인을 역사 밖으로 놓아두려고 한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이승만, 박정희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유령을 소환함으로써 국민에게 그들을 찬양하고 사랑하자고 전도한다. 카의 표현을 빌리자면 ‘수상한 명령’이다. 역사 밖의 위인은 역사가의 비판적 개입을 피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위인을 ‘최고 존엄’으로 격상시킨다. 북한에 있는 일이 실제로 남한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시장경제에 대한 간섭을 반대하던 뉴라이트는 위대한 권력자의 힘을 빌려 역사를 간섭한다. 그리고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입장을 반 정권세력으로 규정한다. 뉴라이트가 논하는 역사는 그들만을 위한 헛된 로맨스에 불과하다. 자유경제원은 자유주의를 가장한 엘리트 집단일 뿐이다. 그들의 역사 남용을 내버려둘수록 ‘저항적 지식인(intellectual dissident)’의 존재가 희미해진다.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다. 카는 나아가 “역사는 하나의 과학이며 동시에 진보의 과정이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렇지만 카의 명제는 우리나라에서만 힘을 크게 뻗치지 못하고 있다. 애석하게도 우리나라 역사학은 카가 지향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과거에 대한 해석이 수정되고 발전되기는커녕 여러 집단의 이해관계가 역사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다. 역사를 남용하는 정부와 엘리트 집단은 현재와 과거의 대화를 끊고 있다. 국정교과서 논리를 밀어붙이면서 역사학의 숨통마저 끊으려고 한다. 정부와 뉴라이트는 ‘이승만, 박정희, 국정교과서’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학뿐만 사회 전체가 아주 불행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과거를 너무 사랑할수록 미래에 대한 믿음과 미래에 한 발 내딛는 추진력을 잃어버린다.

 

 

 

 

 

역사는 지배세력을 만족시켜주는 박제품이 아니다. 과거에 벌어졌던 상황이 후대에 의해 끊임없이 재평가되어야지 역사학이 살아 숨 쉴 수 있다. 지배세력 이데올로기와 손잡은 역사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즉, 올바른 사실을 가지지 못하고 일부러 눈 감는 지식인은 ‘뿌리가 없는 쓸모없는 존재’다. 그들이 생각하는 역사학은 죽은 거나 다름없다. 카는 ‘과거의 죽은 손’에서 자신을 해방하자고 강조했다. 역사 또한 마찬가지다. 현재를 비춰야 할 역사의 거울이 과거의 죽은 자들에게 빼앗길 위기에 처해 있다. 과연 우리 사회와 역사학은 언제 이승만과 박정희의 죽은 손에서 해방될 것인가. 가까스로 과거에 해방되더라도 앞으로 펼쳐지게 될 상황이 너무 어둡다. 국정교과서라는 책의 감옥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 역사 밖으로 나온 이승만과 박정희의 살아있는 유령이 책의 감옥 내부를 떠돌아다닌다. 그들은 빅 브라더처럼 역사와 그 역사를 바라보는 국민의 눈을 감시한다. 현재와 과거의 진정한 대화가 점점 불가능해진다.

 

 

 

※ 서평대회 이벤트에 응모하기 위해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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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4-21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번 공감!~

cyrus 2016-04-23 11:23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16-04-21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지만 별점 만점이 아니라서 섭섭합니다. 흑 ㅠ
제 인생 최고의 책인데요. ㅎㅎ

cyrus 2016-04-23 11:24   좋아요 0 | URL
문체가 조금 더 매끄러웠으면 별 다섯 개였습니다. ^^

페크pek0501 2016-04-22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으로 유명한 책에 대한 서평을 쓰셨군요. 제가 존경하는 책입니다.
저도 이런 책은 별점에 만점을 주셔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시절에 꽤 충격을 받았던 책이었어요.
앞으로 신간에 갖는 관심을 줄이고 고전과 현대 책의 비율이 고칠현삼은 아니더라도 5대 5가 되도록 읽어야겠습니다.

cyrus 2016-04-23 11:27   좋아요 0 | URL
제가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그냥 ‘카가 말한 역사란 이런 거구나’하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최근에 개정판으로 다시 읽어보니까 전에 읽은 느낌과 완전히 달랐어요. 역사의 기본 개념을 잊고 있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yamoo 2016-04-23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의 이 책을 저는 3번 정도 읽었는데, 지금까지 리뷰를 쓸 생각을 못했네요. 언젠가는 리뷰를 써야 할 거 같습니다~

서평대회 열심히 응모하시는 군요~ 좋은 결과 있기를 바라겠습니다..ㅎㅎ

cyrus 2016-04-25 15:00   좋아요 0 | URL
서평대회는 복불복이죠. ㅎㅎㅎ
 

               

 

 

               

 

 

 

톰은 제리를 잡으려다 계단에 내려오는 피아노에 부딪혀 혼수상태에 빠진다. 톰의 영혼은 하늘로 올라간다. 천국행 열차를 타려면 천국의 문지기 역할을 하는 역무원 고양이의 확인 절차를 받아야 한다. 천국행 열차 탑승객이 아니면 지옥으로 가야 한다. 역무원 고양이 앞에 줄로 묶은 자루가 공처럼 통통 튀면서 등장한다. 자루 밖에 나온 세 마리 새끼고양이들은 물기를 털면서 천국행 기차가 있는 쪽으로 달려간다. 새끼고양이들의 모습을 지켜본 역무원 고양이는 혀를 차며 ‘정말 안 됐군’ 하면서 혼잣말을 한다.

 

 

 

 

톰과 제리 ‘천국행 열차(Heavenly puss)’의 장면, 3분 16초부터

 

 

이 짧은 장면 속에 불편하고 가슴 아픈 진실이 있다. 새끼고양이들은 인간의 손에 의해 자루에 담겨 물에 빠져 죽은 것이다. 과거 미국에는 고양이의 번식력을 감당하지 못해 새끼고양이를 물에 빠트려 죽이는 일이 빈번했다고 한다. 


 

고양이 잔혹사를 되돌아보면 고양이 미신과 연관성이 깊다. 아주 오래전부터 고양이, 특히 검은 고양이는 마법의 상징이나 흉조로 여겨졌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고양이를 숭배했는데, 고양이를 죽이면 사형에 처했다. 영국과 아일랜드를 제외한 유럽 문화권에서는 검은 고양이를 마주치면 불행한 일이 생긴다는 미신이 전해 내려왔다. 고양이를 두려워한 유럽인들의 인식은 오래된 고전문학 작품 속에 남아 있다.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검은 고양이》는 검은 고양이 미신을 소재로 한 공포작품으로 유명하다. 주인공은 자신이 기른 애꾸눈의 검은 고양이가 흉측스러워서 죽이려다가 그만 아내를 살해한다. 이 남자는 그전에 ‘플루토(지옥의 왕)’라는 이름의 검은 고양이의 한쪽 눈을 도려내어 나무에 매달아 죽였다. 러브크래프트의 짧은 단편 《울타르의 고양이》는 고대부터 전해져오는 고양이의 전설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울타르(Ulthar)는 고양이 살육을 금지하는 마을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고양이를 신처럼 모신다. 과거에 마을 사람이 고양이를 죽인 뒤에 끔찍한 저주를 받았다. 그 사건 이후로 마을 사람들은 고양이를 신성한 존재로 여기게 된다.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캥》에 나오는 고양이 또한 무시무시하면서도 불길한 분위기를 조장한다. 테레즈는 남편 카미유 몰래 남편 친구 로랑과 불같은 사랑을 한다. 테레즈의 집에 고양이 한 마리가 사는데, 테레즈와 로랑이 사랑을 나눌 때 고양이는 마치 그들을 감시하듯이 쳐다본다. 욕망에 눈이 먼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을 느낀 로랑은 자신을 바라본 고양이의 시선을 두려워한다. 테레즈의 고양이를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이 장면은 포의 《검은 고양이》의 사건 발단과 유사하다.

 

 

 

 

 

 

 

 

 

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 (1863~1865년)

 

※ 그림 오른쪽에 있는 고양이를 확대한 부분

 

 

 

죄책감을 느끼게 할 정도로 내면의 심연을 깊숙이 찌르는 고양이의 날카로운 시선은 졸라의 독창적인 발상이 아닐 수도 있다. 《테레즈 라캥》이 발표되기 2년 전, 졸라의 친구이자 화가인 에두아르 마네는 관람자를 노려보는 고양이를 그림에 그려 넣었다. 이 작품이 파리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던 『올랭피아』다. 그림 오른쪽 구석에 있는 검은 고양이가 꼬리를 바짝 세운 채 관람자의 눈을 응시한다. 『올랭피아』의 고양이는 매음굴에 가서 발기하는 파리의 부르주아 남성들을 상징한다. 마네의 의도를 알아챈 남성 관람자들은 <올랭피아> 그림에 마구 욕설을 퍼부었다. 남성들은 그동안 숨겨왔던 자신들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바라보는 고양이의 시선이 두려웠다.

 

 

 

 

 

 

고양이 미신에 대한 믿음을 지우지 못한 인류는 불길한 분위기를 가라앉으려고 고양이를 무자비하게 죽이기까지 했다. 고대 로마의 형벌 중에 살인죄를 저지른 사형수를 자루에 넣어 물에 빠뜨려 죽이는 익살형이 있었다. 익살형 집행자는 자루에 사형수와 개, 원숭이, 암탉, 뱀을 함께 넣었다. 이 네 마리 동물은 죄를 정화하는 주술적 힘을 가진 제물로 여겨졌다. 그러나 원숭이, 뱀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원숭이와 뱀을 대체하는 동물로 고양이를 선택했다. 그들이 무슨 의미로 고양이를 사형수를 위한 제물로 선택했는지 현재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인류의 마음을 점령한 고양이 미신의 위력을 생각해본다면, 아마도 사람들은 악의 상징인 고양이를 사형수와 함께 죄를 씻겨내야 할 존재로 봤을 것이다. 미신이라는 이름으로 죄 없는 고양이들이 자루에 갇혀 물에 빠져 죽었다. 불쌍하게도 인간이 저지른 죗값에 고양이가 대신 치렀다.

 

 

 

 

 

 

 

 

 

 

 

 

 

 

 

 

 

심지어 통제 불가능한 인간의 무시무시한 분노에 희생당할 때도 있다. 1730년대에 프랑스 인쇄소 노동자들은 고양이 대학살을 감행한다. 고양이 대학살을 주도한 인쇄소 노동자 인쇄공 제롬과 레베이예는 부르주아 집안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먹다 남긴 밥을 먹을 정도로 비참하게 살았다. 인쇄소 노동자들은 고양이보다 못한 자신들의 삶에 분노하여 단체로 고양이들에게 화풀이했다.

 

인간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미신에 집착했다. 그렇지만 잘못된 미신이 이성의 눈을 가리는 바람에 동물이 희생당했다고 보는 인간의 변명은 치졸하다. 이제 인간은 고양이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고양이를 만만하게 본다. 인간은 자신의 폭력성을 증명하기 위해 고양이를 마음껏 죽인다. 쓰레기봉투 옆을 사자처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는 고양이를 잔인한 방법으로 괴롭히거나 죽이는 일은 범죄에 가까운 동물 학대다. 도시의 고양이들은 무방비 상태로 살아간다. 인간의 분노가 담긴 발길질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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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성 2016-04-12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 `캣쏘우` 라는 필명의 누리꾼은 영화 쏘우에 아이디어를 얻어 고양이를 학대하고 살해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그는 애묘인으로 둔갑하여 분양받은 고양이를 칼로 절단하고 죽이는 등의 혐오스러운 범죄를 저질렀는데요. cyrus님의 글을 읽던 도중 문득 그 사건이 생각나 덧글을 달아봅니다. 인간은 고양이 뿐만 아니라 수많은 동물들을 생존이 아닌 재미로 희생시키고 있고 또 희생시킬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cyrus 2016-04-13 22:09   좋아요 0 | URL
기억납니다. 고양이뿐만 아니라 동물을 잔인하게 죽여서 그 장면을 동영상에 담아 공개하는 또라이도 있어요. 그들은 폭력에서 즐거움을 찾아요. 그리고 그걸 과시하고 싶어서 남들에게 보여주려고 합니다. 제정신이 아닙니다.

시이소오 2016-04-12 2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자만 보느라 고양이가 있는줄 몰랐네요. 예리한 관찰력이 십니다. 고양이가 이렇게 학대받아온지도 몰랐네요. 고양이뿐만 아니라 인간 때문에 참 많은 생명들이 고통받는군요. 또 이렇게 배우고 갑니다. ㅎㅎ

cyrus 2016-04-13 22:12   좋아요 0 | URL
화젯거리가 안 돼서 그렇지, 알려지지 않은 동물 학대 건수가 상당히 많을 걸요. 가끔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 자신의 동물 학대를 자랑이라고 공개하니까 욕먹습니다.

transient-guest 2016-04-13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세에도 주기적인 `고양이 대학살`이 있었지요. 이유가 잘 생각나지는 않지만, 평민층에 허가된 일종의 축제 같은 것으로 고양이를 죽이면서 귀족에 대한 화풀이를 했다는 강의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의 민담에서도 고양이가 좋게 나오는 경우는 드문 것 같네요. 한국에서는 토끼띠 (묘)라고 하지만, 중국이나 동남아권에서는 발음이 비슷한 고양이띠 (묘) 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역시 그리 좋은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더라구요..

cyrus 2016-04-13 22:15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고양이가 익살형의 제물이 된 이유가 중세의 축제 목적과 유사하겠군요. 한국 전래 동화 중에 고양이를 부정적으로 나오는 장면이 있는 것 같은데, 계속 떠올려봐도 기억이 나지 않아요.

yureka01 2016-04-13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여간 반려 동물,혹은 가축이나 어떤 식물이나 동물은 사람 곁에 있으면
좋은 꼴보기가 어렵다능 ....

동네에 돌아다니는 고양이 대부분이 유기묘라는 거....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지론은 모든 사람들에게 다 적용되는 말은 아닌거 같아서
씁쓸하죠...

cyrus 2016-04-13 22:17   좋아요 0 | URL
길고양이에 대한 일부의 불만(소음, 길거리 미화 문제 등)은 이해하지만, 그 불만이 과열된 분노로 표출되는 건 문제 있다고 봅니다.

빨강앙마 2016-04-13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제리가 너무 미웠던 기억이 있네요 톰과제리..이야기에서..ㅡ.ㅡ
고양이를 무자비하게 죽이다니..사실 그 울음소리와 눈빛때문에 저역시 그리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아무 이유없이 그런건 좀..ㅠㅠ

cyrus 2016-04-13 22:19   좋아요 0 | URL
어른이 되면 어렸을 때 봤던 만화의 불편한 진실들을 하나씩 깨닫게 되죠. ㅎㅎㅎ
예전에 둘리가 어른들에 맞서는 영웅이었는데, 지금은 고길동이 더 불쌍해 보이잖아요.
 

 

 

역사를 공부할 때 흔한 오해 중 하나는 역사가 반복된다는 믿음이다. 반복될 수가 없다. 실제로 역사가 그렇게 진행된다면 역사가들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예측하게 된다. 역사가들이 지난 경험을 아무리 잘 알아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전혀 예측하지 못한다. 지난 역사 경험을 들여다보면서 인간이란 어떤 존재고 사회는 대개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이해하는 수준이다. 그러니까 역사는 예측하기 위한 학문이 아니라 해석을 할 뿐이다.

 

역사에 어떤 명확한 방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공식적인 과거라는 틀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인류 각자는 특정한 경제 정치 질서에 의해 지배받는 세계 속으로 태어난다. 그 결과, 인류는 태어날 때부터 접한 주변의 현실을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사람들은 지금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유일하게 가능하고 우월한 방식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특히 유럽인들은 먼 옛날부터 자신들만이 가진 합리성과 과학기술 등 특유의 능력으로 인류역사를 이끌어 오고, ‘세계의 중심역할을 해왔다고 믿었다. 그러다 보니 과거의 손아귀에 잡힌 유럽 학자들은 아시아나 아프리카 대륙 국가들이 유럽의 방식을 습득하여 근대화로 향하는 열차에 뒤늦게 탑승했다고 주장한다.

 

 

 

 

 

 

 

 

 

 

 

 

 

 

 

 

 

 

최근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로부터 유발 하라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가 쓴 사피엔스는 인류가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과정을 되짚어간다. 유발 하라리는 이 책을 통해 인류가 어떻게 지구를 지배하게 됐는지, 역사의 심층적 구조를 체계적으로 증명한다. 하지만 그도 기존 세계사 해석을 지배한 유럽중심주의 장벽을 완전히 넘어서지 못했다.

 

유발 하라리는 인류 역사의 경로를 결정지은 세 가지 중요한 사건으로 인지 혁명과 농업 혁명, 과학 혁명을 꼽았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눈여겨 본 사건은 과학혁명이다. 과학, 자본주의 그리고 제국주의, 이 세 가지 요소가 자본주의를 움직이게 한 엔진으로 봤다. 다시 말하자면, 경제가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제국의 확장과 과학의 발견 덕분이라는 것이다. 즉 근대 과학의 발달이 유럽 제국의 성장과 함께 진행되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유발 하라리는 근대 과학이 고대 그리스, 중국, 이슬람 등 고대 과학 전통에 빚을 진다는 점을 밝혔지만, 근대 과학 발전에 이바지한 세력은 유럽 제국을 지배한 지적 엘리트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유럽 제국의 엘리트들이 피지배 민족을 지배하는 동안 이들에게 진보의 혜택을 가져다주었다고 말한다. 유발 하라리는 이러한 주장을 바탕으로 제국이 발달하는 과정을 하나의 주기로 만들어서 정리했다.

 

 

작은 집단이 큰 제국을 건설한다 제국 문화 구축 제국 문화가 피지배 민족에게 받아들여진다 피지배 민족이 공통의 제국적 가치의 이름으로 동일한 지위를 요구한다 제국을 설립한 자들이 지배력을 잃는다 피지배 민족이 스스로 채택한(받아들인) 제국 문화를 계속 발전시킨다. (사피엔스290)

 

 

그의 주장에 대해서 유럽중심주의 역사관에 반기를 든 학자들이 반박할 수 있다. 유럽 제국주의자들이 근대화의 수호자를 자처하면서 피지배 민족의 침략과 억압을 정당화한다고 비판한다. 이들은 발전과 안전을 보장한다는 명목으로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들었다. 유발 하라리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비판을 예상했다. 그 또한 비판점을 이해했다. 그가 제국주의자들이 주도한 과학혁명의 어두운 그늘을 쿨하게 인정하고 심도 있게 비판했더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억지스러운 논리를 내세워가면서 자신의 주장을 보호하려고 애쓴다. 피지배 민족들이 서구가 물려준 지적 유산을 자신의 필요에 맞춰서 변형해왔으니 과학혁명을 이끈 유럽 제국주의자들에게 선과 악으로 간단하게 딱지를 붙여가면서 평가하지 말자고 주장한다. 그렇게 되면 유발 하라리 본인의 의도와 다르게 유럽 제국주의자들의 세계 지배를 정당화하는 꼴이 된다. 유발 하라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제국주의자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말았다.

 

 

 

 

 

 

 

 

 

 

 

 

 

 

 

 

 

 

 

유발 하라리는 분명히 유럽중심주의 역사관의 문제점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오래된 역사의 손아귀에 잡혀있었기 때문에 그런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우리 또한 알게 모르게 유럽 학자들이 발명한 유럽중심주의에 세뇌당하고 있다. 비유럽 관점에 벗어난 시각으로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면 유발 하라리의 주장의 허점이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이미 안드레 군더 프랑크, 로버트 B. 마르크스 등 여러 학자들이 세계적 관점(global view)으로 유럽중심주의가 왜 신화이자 허구인지 조목조목 비판했다. 안드레 군더 프랑크는 유럽인들이 금과 은을 확보하면서부터 세계의 주도권을 갖기 시작했고, 19세기에 들어서자 드디어 식민지까지 가지게 되는 대박을 터뜨렸다고 주장한다. 유럽인들이 대박을 터뜨리기 전에는 아시아가 세계무대의 중심이었다. 로버트 B. 마르크스 역시 프랑크의 주장과 동일하다. 서양이 동양을 앞선 것은 겨우 200여 년 전의 일이다. 인도, 중국은 1400년대만 해도 유럽보다 월등한 경제 수준을 유지했고, 유럽이 이들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일 뿐이다. 유럽의 땅에는 석탄이 많이 매장되었고, 이를 통해 산업기술 능력을 확보하여 산업혁명을 이룰 수 있었다. 여기에 탄력받은 유럽은 고귀한 제국주의자로 변신하여 한순간에 동양보다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비유럽중심주의 역사관은 세계사의 정전(正典)에 억눌린 자들의 시선으로 전복하려 한다는 점에서 인정받을 만하나, 지구의 새로운 주인으로 아시아나 제3세계를 주목하고 예측하는 주장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다. 나 또한 서양이 아닌 국가가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는 역사가들의 낙관을 완전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역사를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학문이 아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최고의 책이라는 호들갑스러운 호평을 받고 있는 상황이 의아스럽다. 그 책 속에 제국주의자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던 논리의 흔적이 남아 있음에도 이를 문제 삼은 학자나 서평을 보기가 어렵다. 사실 일본의 식민 제국주의를 겪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제국은 불편하고 논란이 많은 주제다. 서양 헤게모니를 진리처럼 떠받드는 자세를 경계하고, 낯선 관점에서 역사를 다시 읽는 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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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3-10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많이 읽는 모양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오늘 바람불고 날이 많이 추웠습니다.
cyrus님,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cyrus 2016-03-10 20:49   좋아요 1 | URL
제가 사는 지역이 남부라서 그런지 바람이 차도, 많이 춥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저녁에는 진짜 추웠습니다. 제발 이번 주 추위가 마지막 꽃샘추위였으면 좋겠습니다. 편안한 밤 보내세요. ^^

시이소오 2016-03-10 22: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읽으면서 마치 영국의 인도 지배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이 저도 좀 거슬리긴 했습니다. 고진의 구분에 따르면 하라리가 말한 제국은 엄격히 따지면 제국주의겠죠.
인도같은 경우엔 제국주의에 대한 반감보다 카스트제도에 대한 반감이 크지 않았을까 해석되네요. 왜냐하면 하라리는 역사의 필연성을 거부하고 있거든요. 호모사피엔스는 다른 종들을 멸종사켜왔고 과학혁명기에 강대국과 가진자들은 약소국과 없는자들을 착취해왔으며 이제 사피엔스는 자신들마저 멸절시킬 위기에 봉착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라고 이해했거든요.
아무튼 날카로운 지적이십니다^^

cyrus 2016-03-10 23:11   좋아요 1 | URL
시이소오님이 《사피엔스》의 내용을 이해한 점은 저와 비슷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과학혁명을 설명하는 부분이 조금 걸리긴 합니다. 저자가 애매하게 주장만 하지 않았으면 별점 네 개, 다섯 개를 부여했었을 겁니다.

 《사피엔스》를 읽었거나 독자서평을 남긴 분 중에 저의 해석에 대한 비판을 해주길 은근히 바랐는데, 반응이 저조하네요. 내일 다시 《사피엔스》를 읽어보면서 제가 쓴 글을 재검토해봐야겠습니다. 책을 읽으신 분 중 유일하게 댓글을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빨강앙마 2016-03-11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 님 남부쪽이시군요..오호~ 어디신진 모르지만..저도 따닷한 이 아래쪽인지라 반갑네요^^
이 책 제목은 들어봤는데..흠.. 과연 읽고 제가 이해를 할 수 있을지 엄두가 안나네요^^

cyrus 2016-03-11 17:30   좋아요 0 | URL
제가 어디 사는지 알면 깜짝 놀랄걸요. 힌트를 살짝 알려드리자면, 제가 사는 곳이 그네공주님을 열렬히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지역입니다.

어려운 내용은 없습니다. 인류 초기부터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를 소개하는 책이예요. ^^

페크pek0501 2016-03-11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때 역사에 관한 책만 본 적이 있었는데 요즘은 읽게 되지 않네요.
요즘은 다른 분야에 관심 있어요.
언젠가는 역사에 꼭 도전해 볼 테예요.

긴 페이퍼인 줄 알고 글자를 크게 확대해 읽었는데 금방 읽었네요.
술술 읽혀서인가, 하고 생각했네요. ㅋ


cyrus 2016-03-11 17:33   좋아요 0 | URL
페크님. 제가 요즘 A4 용지 1장 반 정도로 글의 분량을 잡고 쓰는 중입니다. 몇 년 전에 쓴 제가 썼던 글들과 비교하면 많이 줄어든 겁니다. 최근에 서평대회 참여하려고 열심히 글 한 편 썼는데 그건 분량이 A4 용지 2장 채웠습니다. 예전에는 2장 반까지 쓴 적이 많았습니다. ^^

간서치 2016-03-11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지 않은 분야의책을.. 많이 읽으시는 님 덕분에 읽고 싶은 책이 한권 더 늘었네요.. 아.. 이 편식쟁이에 게으름쟁이가 반성을 또 하네요 ㅋㅋ

cyrus 2016-03-12 12:03   좋아요 0 | URL
저도 편식 독서가 심합니다. 호기심이 너무 많아서 한 분야의 책들을 깊이 읽지 못한 상태입니다. ^^

책한엄마 2016-03-12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다시 cyrus님 글 읽어야 겠어요.제 여덟단어 책 리뷰가 페이퍼로 되어 어쩔 수 없이 다시 글을 썼어요.그래서 예전 글을 지워 귀한 cyrus님 글이 지워졌어요.죄송합니다.ㅠㅠ

cyrus 2016-03-12 12:05   좋아요 1 | URL
사과하지 않아도 됩니다. 괜찮습니다. ^^

《사피엔스》 읽어보고, 제 글의 논리가 허점이 있거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댓글로 알려주세요.

단발머리 2016-03-12 12: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cyrus님 리뷰 잘 읽었습니다. 지금 방금 cyrus님 답글에 답글달고 왔어요.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네요.ㅎㅎㅎ

궁금한 점이 있어요. 제가 지금 책이 없어서.... 저는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거든요. 정확히 확인이 안 되는 점을 이해해 주세요.

1. 근대에서 유럽이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이유와 배경에 대한 것과 대제국의 건설에 대한 부분은 연관성이 적은 것으로.... 저는, 그렇게 이해했어요. 지금 책이 없어서 정확히는 모르겠는대요....

유럽이 과학과 자본주의 그리고 제국주의를 통해 세계 제패가 가능했다고 보는 견해에 대해서는 다양한 판단이 있을 수 있지만, 대제국의 설립 및 건설 부분은 로마 혹은 페르시아 제국등의 다른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봤어요. 유럽의 경우도 하나의 예가 될수는 있지만 두 가지가 직접적으로 어떤 연관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저는 느슨하게 봤거든요.

2. 저는 유럽의 세계 제패에 대해서는 이 부분에 밑줄을 그었어요.

˝유럽인들이 이례적인 점은 탐험과 정복의 야망이 어느 누구와도 비견할 수 없이 탐욕스러웠다는 데 있다.˝

제가 보고 싶은 부분이 더 크게 보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어요. 저는 돈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 자본주의에 대한 맹신, 새로운 세계에 대한 무한대의 탐욕이 유럽인의 세계 제패를 가능하게 한 가장 주요한 요인으로 보았거든요. 그들의 체제보다는 그들의 욕망이요.



cyrus 2016-03-12 13:32   좋아요 1 | URL
저도 《사피엔스》를 도서관에서 읽었던 터라 일단 제가 따로 메모한 내용을 근거로 설명하겠습니다. 잘못되었거나 이해가 안 되는 내용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

1. 유발 하라리의 관점(`제국의 주기`)대로 고대 로마 제국와 페르시아 제국의 등장과 전성기를 해석하면 피지배 민족보다 우월한 제국문화의 형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유럽 또한 제국의 주기 사이클에 따라서 세계의 중심으로 우뚝 섰다고 설명합니다.

 * 키루스는 전 세계를 지배한다고 주장했을 뿐 아니라 이것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페르시아인들은 ˝우리가 너희를 정복하는 것은 너희를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키루스는 복속당한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하기를 바랐으며, 페르시아의 신민이 된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하기를 원했다. (280쪽)

* 근대 유럽인들은 지구의 많은 지역을 정복하면서 우월한 서구 문화를 전파한다는 것을 구실로 삼았다. 이들은 워낙 성공했기에,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그 문화의 상당 부분을 점차 받아들였다. 20세기에 서구의 가치를 받아들인 지역의 집단들은 바로 이런 가치의 이름 아래 유럽 정복자들과 동등한 대우를 요구했다. 수많은 반식민지 투쟁이 민족자결, 사회주의, 인권의 기치 아래 벌어졌다. 이런 가치들은 서구의 유산이다. 오늘날 인도, 아프리카, 중국 사람들은 예전에 자신들을 지배했던 서구 군주의 제국 문화에서 많은 것을 받아들이고 이를 자신의 필요와 전통에 맞춰 변형시키려 노력해왔다. (289~290쪽)

저는 이 내용에서 유럽중심주의 역사관과 유사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단발머리님의 생각과 다르게 대제국의 건설 과정과 유럽이 세계를 재패하는 과정을 연관성이 있다고 해석습니다.

2. 로버트 B. 마르크스의 책 《어떻게 세계는 서양이 주도하게 되었는가》에 보면 유럽이 야망을 크게 가진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1400년대에 유럽의 세력은 미미했습니다. 이 시기 무역업에 적극적이었던 나라가 오스만 제국과 아프리카에 위치한 제국들이었습니다. 특히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했을 때 유럽은 무역로가 막혀버렸습니다. 유럽 입장에서는 세계의 주류에 뒤처질 뻔한 위기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정복에 대한 욕망이 크게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alummii 2016-03-25 2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cyrus 님의 날카로운 리뷰를 좋아합니다 ㅎㅎ

cyrus 2016-06-21 19:42   좋아요 1 | URL
댓글 지금 확인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훌라댄서 2016-06-21 04: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에 동의합니다. 재미는 있었지만 참으로 불편하고 힘든 책이었어요.

cyrus 2016-06-21 19:43   좋아요 1 | URL
책을 비판하는 내용의 서평이 많이 나오길 바랐는데 생각보다 보이지 않아서 아쉬웠습니다.

북프리쿠키 2016-07-17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 독서모임 선정책인데 다 읽고 제가 어떤식으로 토론할지 기대됩니다!!

cyrus 2016-07-17 12:30   좋아요 1 | URL
토론할 때 나온 내용들을 소개해주시면 읽어보겠습니다. ^^

아찌언니 2017-06-06 0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또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읽지 않았습니다 한때 글로벌트랜드였던 마이클센더스 그리고 김영사의 치밀하고얕밉기까지했던마케팅 이둘다 싫어서요ㅋ 유발 하발리 테드영상 보면서 책을 읽을지 말지 하다 마치 웅변대회나고 말쏨씨 뽑내는 모냥새가 싫어 읽지않기로다짐했고 여태까지 지키고 있네요 그 약속ㅋ 다들찬양하는 이 작가 저는 글쓴이가 언급한것처럼 유럽중심사고방식가진그냥 백인우월주의사상을기베이스로깔고 양념해놓은 책 싫증나고 가증스러워서 안읽잘햇다고 생각햇네요 글이 너무 신박하고 산란하고 까는 포인트들이 아주 좋습니다 ^^

cyrus 2017-06-07 08:39   좋아요 1 | URL
《사피엔스》에 유럽중심주의의 흔적이 남아 있어도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자가 책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본다면 문제가 없어요. 비판적인 독서가 가능해요. ^^
 
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이 한 권의 책만 읽고 ‘최고의 책’이라고 섣불리 판단하기에 이릅니다. 저자가 과학혁명을 설명하는 주장은 유럽중심주의 역사관을 탈피하는 역사가들에게 비판 받을 수 있습니다. 안드레 군더 프랑크, 로버트 B. 마르크스의 책을 읽어보면 유럽이 세계의 주인으로 완전하게 자리 잡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유발 하라리의 주장은 역사를 이해하는 하나의 관점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 책 350쪽에 《립 밴 윙클》의 작가를 ‘어빙스턴’이라고 잘못 썼다. 워싱턴 어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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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6-03-10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행 땜에 큰 기대로 중요한 순간 읽으려고 아끼고 있는 책인데... ㅠㅠ

cyrus 2016-03-10 20:32   좋아요 0 | URL
충분히 일독할만한 책입니다. 아예 안 읽어도 되는 책은 아닙니다. ^^

고양이라디오 2016-03-10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으려고 마음만 먹고 있는 책입니다ㅎ

cyrus 2016-03-11 08:04   좋아요 1 | URL
시간 있을 때 천천히 읽어보세요. ^^
 

               

 

 

            

 

 

도원경 - 난 인형이 아니예요

 

 

 

고대 로마인들은 쾌락을 열정적으로 추구했다. 유럽 전역을 지배하는 로마제국의 시민이라는 자부심을 만끽이라도 하듯 로마인들은 더 강도 높은 쾌락 문화에 빠져들었다. 그렇지만 여자는 예외였다. 여성의 몸은 남성들의 사회적 지위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졌다. 《로마의 일인자》를 읽어 보면 당시 사회 인식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마리우스는 집정관 자리에 오를 기회를 잡기 위해 첫 번째 부인 그라니아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그라니아는 수십 년 동안 남편에게 애정을 받지 못한 비운의 여인이다. 냉정한 남편의 부탁에 그라니아는 모욕감을 느끼지만, 남편의 정치적 야심을 이해하고 그를 포기한다.

 

 

 

 

 

 

 

 

 

 

 

 

 

 

 

 

 

마리우스와 그라비아는 25년 동안 섹스리스 부부로 살아왔다. 그녀는 ‘아이를 원해서’ 마리우스에게 다가갔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고대 로마의 부부들은 아이를 출산하기 위해서 섹스를 했다. 부부 사이에 친밀한 에로티시즘이 공유되지 않았다. 《로마의 일인자》 1권에 술라와 율릴라의 첫날밤 장면이 나온다. 훗날 로마의 일인자가 될 사람이 어떻게 사랑을 나누는지 궁금한 독자들이 있을 거다. 그러나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시라. 작가는 싱거울 정도로 두 사람이 섹스하는 장면을 야하게 묘사하지 않았다. 마치 엄숙한 분위기 속에 부부만의 종교의식을 보는 것 같다. 이 소설에서 술라는 율릴라에게 적극적으로 스킨십을 하고 있어도 실제 로마 남편들은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부부가 서로 만족스러운 성생활을 하려면 전희(前戱) 시간을 갖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여성의 경우 전희 과정을 거쳐 서서히 성적 자극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로마인들이 믿는 성적 금기 중 하나가 남편은 아내에게 커닐링구스(cunnilingus)를 하지 않게 되어 있다. 작가 컬린 매컬로가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첫날밤 장면을 상상했는지 아니면 일부러 관능성이 떨어지도록 썼는지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술라는 커닐링구스를 시도하지 않았다.

 

 

 

 

 

사진 : 드루수스의 저택 내부도 (로마의 일인자 2213)

 

    

주인의 침실이 두 개나 있다. 침실을 많이 만든 이유가 있다. 이게 다 집의 주인인 남편의 성적 만족감을 높여주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로마 남자들은 자신의 쾌락을 충족하기 위해서 이상한 기준을 내세웠다. 아내에게는 정숙한 섹스를 요구하는 반면에 첩이나 여자 노예를 거리낌 없이 품어 안았다. 남편은 아내보다 개인 침실을 여러 개 가질 수 있었다. 침실의 목적은 애인과 여자 노예들을 만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황제의 후계자로 지명될 뻔한 어느 로마인이 아내로부터 바람기에 지적받자 변명을 했다. “다른 여자들과 욕망을 발산하게 내버려두라. 아내의 동의어는 쾌락이 아니라 품위다.” (《고대 로마인의 성과 사랑》 93쪽)  여자들은 태어나서면서 죽을 때까지 늘 정숙하게 행동하면서 다녀야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원해도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했다. 아버지가 고른 신랑감을 만나야 했다. 소설에 나오는 로마 유행가에 보면 가장의 절대적인 권한 속에 갇힌 로마 여성들의 현실을 알 수 있다.

 

 

나의 여동생 피기 필러
방앗간 구스와 같이 있다 들켰어.
방앗간 탑 밑에
여동생의 꽃이 짓눌렸지.
아버지 말씀, 그만 됐다.
벌써 당한 게 뻔하구나.
어서 당장 시집가거라.
안 그럼 궁둥짝이 회초리맛을 보리라!

 

(《로마의 일인자 1》 364쪽)

 

 


고대 로마의 결혼은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손 있는 결혼식’인데, 신랑은 신부의 결혼 지참금을 포함한 전 재산을 소유할 수 있다. 반대로 ‘손 없는 결혼식’은 신부의 재산을 인정해주었다. 단, 신부는 친정아버지의 통제에 벗어나지 못한다. ‘손 있는 결혼’을 한 아내가 외간 남자와 바람을 피웠다가 남편에게 적발되면 일종의 명예 살인으로 남편이 아내를 죽일 수 있었다. ‘손 없는 결혼’을 한 아내가 바람을 피우면 남편은 그녀를 죽일 권한이 없다. 어떻게 할지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친정아버지다. 로마 사회는 간통을 저지른 여자를 범죄자 정도로 취급한다. 좀 더 심하게 표현하면, 인간 취급을 하지 않는다. 특히 명예를 중요시하는 상류 계층 가문의 여성이 결혼하기 전에 남자와 몰래 연애한다거나 결혼 생활 중에 바람피운 사실이 알려지면 가족들마저 그녀를 손가락질하고 무시했다. 《로마의 일인자》의 율릴라가 실존 인물이었으면, 그녀는 아버지의 손에서 일찍 생을 마감했다. 율릴라는 자신의 애틋한 감정을 담아 술라에게 풀잎관을 주게 되는데, 이 사실이 안 그녀의 부모는 크게 분노한다. 로마 여자는 결혼해도 아버지의 그늘에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술라와의 첫날밤을 보내고 난 뒤에 내뱉은 율릴라의 하소연처럼 로마 여자는 아버지의 그늘에 잠깐 벗어나 남편의 그늘 속으로 편입되면서 살아야 했다. 아버지와 남편 손이 이끄는 대로 제한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섹스 돌(sex doll)'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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