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바고 문화사
안대회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러 업무에 시달리는 직장인 남성에게 담배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이다. 담배 연기에 고민거리들을 실어 보내고 나면 왠지 마음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든다. 흡연은 술과 함께 대표적인 직장인들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으로 꼽힌다. 매년 새해맞이와 함께 금연을 다짐하는 직장인들이 많지만,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보면 담배 생각이 간절해진다. 담배를 두고 백해무익하다고 말하지만, 어찌 됐든 오랜 세월 우리 곁에서 삶의 애환을 달래주는 역할을 해왔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옛날에 담배를 가리키는 말이 무수히 많았는데 그중 하나가 ‘망우초(忘憂草)’다. 시름을 잊게 해주는 풀이라는 뜻이다. 시인 오상순의 호는 공초(空超)다. 공초란 ‘자신을 비우고 세상을 초월한다’는 큰 뜻이지만, 사실 궐련을 피우고 남은 꼬투리를 이르는 ‘꽁초’를 고상하게 바꾼 것이다. 오상순은 아침에 담배를 물면 잠자리에 들 때까지 담뱃불을 꺼뜨리지 않는 애연가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골초로 알려진 장유는 어전회의를 할 때도 담뱃대를 손에 놓지 않았다. 담배 냄새를 참다못한 인조가 어전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장유에게 지적을 할 정도였다.

 

요즘 흡연자들의 처지야말로 장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공공건물에 들어서거나 길을 가다 보면 한쪽 구석에 처량한 모습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흡연자들을 보게 된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외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있는데도 죄를 지은 것처럼 잔뜩 움츠린 채 담배를 피우고 있다. 늘 남의 눈치를 봐야 하는 데다 꽁초를 잘못 버리면 핀잔은 물론 망신당하기에 십상이다.

 

흔히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구수한 옛이야기를 들려줄 때면 흔히 서두로 꺼내는 말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다. 아주 오래전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이 말은 과연 어느 때를 가리키는 것일까. 놀랍게도 이 말이 처음으로 나온 시기는 구한말이다. 1910, 20년대에 호랑이가 담배를 피운다는 내용의 민담과 전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시절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담배 피우던 시절을 알려면 구한말 이전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보통 담배는 임진왜란 이후 국내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는데 문헌마다 그 정확한 시기를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담배를 남쪽에서 들어온 신령스런 풀이라는 의미로 남령초(南靈草)라고 불렀다. 그 후 개화기 때까지 ‘담바고’로 불렸는데 ‘Tabacoo’라는 외래 음에서 나온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처음 담배가 선보였을 때 조선시대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열광적으로 환영했다. 유몽인이 쓴 「담바귀설」이라는 글에서 담배를 즐겼던 상황을 알 수 있다.

 

 

장안의 남녀가 어린애고 늙은이고 가리지 않고 병이 있거나 없거나 즐겨 태워서 연기를 마셔대니 코를 비트는 악취가 거리에 가득했다. 때때로 못된 소년배가 “아름다운 여자와 맛좋은 술을 참아도 담바괴는 참을 수 없네”라는 노래를 앞다퉈 부르고 다녔다. (33쪽)

 

 

임진왜란 무렵 일본에서 건너온 담배는 질병을 치료하는 약초로 알려져 순식간에 조선 팔도로 퍼져 나갔다. 일본 상인들은 담배를 약으로 팔았다. 여자는 물론 어린아이까지 담배를 피웠으니 조선 시대는 그야말로 ‘담배 천국’이었다. 정조는 인조의 핀잔과는 반대로 백성들에게 흡연을 노골적으로 장려하기도 했다. 정조도 골초였는데 그의 재위 기간 동안 금연을 주장하는 상소가 줄을 이었다. 이에 발끈한 정조는 ‘남령초 책문’을 내린다. 책문이란 국왕이 신하들에게 내리던 논술시험이다. 정조는 앞으로 담배 정책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를 각자 생각하는 바를 논하여 올리라는 명을 내린 것이다. 정조가 책문을 내린 이유에는 분명한 의도가 있었다. 자신이 내린 책문으로 담배를 배척하려는 주장들을 하나하나 반박해서 담배 옹호론을 밀고 나가려고 했다. 남녀노소 모두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은 신분제를 무너뜨리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양반층들에 못마땅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담배 피우는 행위를 금지할 수는 없는 일. 담뱃대의 차이를 통해 신분 귀천을 구분토록 했다. 담배를 담는 대통과 물부리를 연결하는 설대의 길이가 신분을 상징했는데, 양반은 설대가 긴 장죽을, 서민은 설대가 없거나 짧은 장죽이나 곰방대를 사용했다.

 

담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기호품으로 애용됐다. 차(茶)나 술 대신 손님 대접용으로 담배를 내놓는 풍습까지 생겼다. 그렇지만 담배에 대한 찬사와 긍정적 인식은 오래가지 않았다. 담배를 오래 피우면서 몸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체험하는 사람이 늘어나게 되었다. 비옥한 논까지 돈 되는 담배재배에 매달리는 현상이 생기면서 사회문제로 번졌다. 유학자들 사이에서도 흡연론과 금연론이 맞붙었다. 조선 후기 들어 박지원과 이덕무 같은 학자들은 금연론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곰방대를 물고 한가롭게 담배를 피우고 있는 호랑이의 모습이 그려진 민화 속에는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서민들의 염원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해석을 뒷받침해주는 명확한 근거가 없다. 어쩌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라는 말 속에는 금연론이 나오기 전, 남녀노소 누구나 담배를 피우던 시절을 의미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때 흡연이 지식인들 사이에서 멋스러움의 상징으로 여긴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시절이 애연가에게는 담배의 해악에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담배를 피울 수 있었던 평화로운 시기였다.  

 

나라 곳간 때문이든 건강 때문이든 우리나라 담배의 역사는 흡연자와 비흡연자가 뒤엉켜 수세기에 걸친 논쟁이 만들어 낸 또 다른 흔적이다. 담배가 유해무익한 것을 알고 끊으려고 해도 끝내 끊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 세상에서 요망한 풀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담배는 조선의 백성들에게 근심을 덜어주는 벗이기도 했다. 지금은 아무리 건강에 위협적이라고 경고해도 요지부동인 흡연율이다. 여전히 우리 주변에 여전히 담배 연기를 날리고 있다. 만약에 정조가 환생한다면 무슨 말을 할까. 좁은 흡연실에 갇힌 것처럼 옹기종기 모여앉아 담배를 물고 있는 백성들의 후예를 만난다면.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실 2015-04-30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녀노소가 다 피웠다니 이런!
어릴때 담배 농사 짓는 집 참 많기는 했어요.

cyrus 2015-05-01 15:44   좋아요 0 | URL
옛날에도 담배 농사 짓는 일이 흔했어요. 담배 피는 사람이 많아서 밭농사보다도 수입이 좋았다고 해요.

붉은돼지 2015-05-01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망한 풀` ㅋㅋㅋㅋ
저도 담배 한 20년 훨 넘게 피웠는데요,,, 작년부터 끊었습니다. 저는 뭐 금연주의자는 아니고 담배도 피고 싶을 때는 한대씩 피워도 된다는 그런 조금 희미한 주의인데요
작년말에 담배 끊은 것도 생 용을 써서 끊은 건 아니구요....그냥 담배 좀 줄여야 겠다고 생각하고 안 피우니 어렵지 않게 끊어지더라구요...참 신기하게...

그런데 지금도 술마시고 하면 가끔 한대씩 피워요. 4월달에는 3대 정도 피운거 같아요,,..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매연으로 오염된 공기를 마시는 살아가고 있는데 어쩌다 담배 한대 핀다고 뭐 어떻게 되겠나 이런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ㅎㅎㅎㅎㅎㅎ

cyrus 2015-05-01 15:49   좋아요 0 | URL
20년 흡연했으면 끊기가 엄청 힘들텐데 아무 일 없이 금연한 붉은돼지님이 정말 대단하십니다! 저는 비흡연자라서 금연의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지만 금연하자는 생각만 한다고 해서 담배를 멀리 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

stella.K 2015-05-01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 나 어렸을 때는 담배 냄새가 지금같이 독하지 않았어.
어린 코에도 오히려 구수하다는 생각까지 들었지.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얼마 전 울엄마도 그러시더군.
옛날엔 담배 냄새가 좋았는데 지금은 담배 피우는 사람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다고. 그 사람이 실제로 담배를 피우지 않고 있더라도
담배가 몸에 베어서 불쾌해.
요즘엔 공공장소에서 못 피니까 길거리 걸어 다니면서 피우더라.
그게 더 나쁜 거 같아. 그냥 흡연 장소 정하고 거기서만 피우는 게
낫지 않을까 해.

아주 오래 전에 들은 얘긴데 어떤 남자는 여자 담배 피우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 연애를 했다나 결혼을 했다고 하더군.
그 남자 지금도 잘 사는지 모르겠어.ㅋㅋ

cyrus 2015-05-01 15:54   좋아요 0 | URL
저는 아버지가 비흡연자라서 집에서 간접흡연 경험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흡연자 친구들을 만나면서 담배 냄새에 적응했는데 저도 담배 냄새를 안 좋아해요.

어제 인터넷 기사에서 본건데 어느 중국인 영화감독이 탕웨이는 촬영 준비 전에 대사를 보면서 담배를 핀다고 기자회견 때 말해가지고 탕웨이 팬들한테 비난을 받았더군요. 감독이 무슨 의도로 그런 발언을 한건지 모르겠지만 탕웨이가 담배를 핀 것에 대해 혐오감은 들지 않았어요. 오히려 담배 피면서 대사를 외우는 모습도 예쁠 것 같아요.. ㅎㅎㅎ

stella.K 2015-05-01 17:58   좋아요 0 | URL
헉, 그거 중국에서 있었던 일이지?
그 나란 울나라 보다 더 보수적인가 보다.
그게 기호식품처럼 인식되어버린지 오랜데 무슨...
그런데 여자든 남자든 담배 안 피는 게 좋긴하지.
특히 여자는 더 안 좋다고 하잖아.ㅠ

해피북 2015-05-01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시대 담배천국 이였다니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구 정조임금님은 역시 논박으로 다스리시는 정책은 어떤 경우에서도 빛을 바라네요 ㅋㅋ

cyrus 2015-05-01 15:57   좋아요 0 | URL
조선시대 사람들의 삶 절반은 담배와 함께 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에요. 흡연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인지 흡연과 관련된 우리나라 문화사가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못한 것 같습니다. ^^

oren 2015-05-01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하더라도 시내버스 좌석 등받이마다 `재털이`가 달려 있었지요. 방학때마다 서울에서 안동으로 오고 갈 때 차멀미 때문에 고생할 때면 고속버스 좌석 등받이마다 달려 있는 `재털이`가 참 미웠더랬지요..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할 때도 `재털이`는 어딜 가나 꼭 있었어요. 소파와 함께 놓인 테이블 위는 물론이고 각자 자신의 책상 한귀퉁이에는 버젓이 재털이를 모셔 놓고 담배를 피워대곤 했었지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도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었다 싶네요. ㅎㅎ

cyrus 2015-05-01 19:09   좋아요 0 | URL
정말 신기한 풍경입니다. 시내버스 좌석 등받이에 재떨이가 있었다니... ㅎㅎㅎ 시대가 많이 변했어요. 담배가 술보다 인기가 많은 기호품이었다가 요즘은 흡연 건강 문제 때문에 위상이 줄어들었으니까요.
 
홍차 너무나 영국적인
박영자 지음 / 한길사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떫고 밍밍한 맛. 홍차에 대한 일반적 인식이다. 홍차는 늘 메뉴판에 구색 맞추기처럼 오르지만, 커피·녹차를 제치고 선택받는 일은 많지 않다. 해외로 나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홍차는 영국을 대표하는 음료이다. 미국인들이 커피 한잔으로 아침을 맞는다면 영국인들은 홍차 한 모금을 마시며 하루를 시작한다. 원래 차는 중국과 아시아 지역에서 마시던 것인데 유럽에 전해지면서 찻잎을 발효시킨 홍차가 탄생하고 영국에서 꽃을 피우게 됐다. 영국인들은 하루에 7잔 정도의 차를 마신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잠을 쫓기 위해 차를 마시는 것을 시작해서 아침 식사, 오전 일과, 간식을 먹는 오후, 저녁 식사 그리고 식사를 다 하고 나서도 차 한 잔. 마지막으로 잠을 자기 전에도 차를 마신다. 유럽대륙에서 생산되지도 않는 차가 영국인의 일상 속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17∼19세기 영국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상당 지역을 포함한 방대한 식민지를 건설했다. 수완 좋은 장사꾼이었던 영국인들은 제국 안에서 전 세계의 음식재료를 사고팔았다. 중국에서 전수받은 차를 인도와 스리랑카에서 대대적으로 재배한 후 고향에 팔았고, 전 세계에 중국과는 또 다른 차 문화를 수출했다. 이런 과정으로 중국 찻잎이 전래 내려온 이래 영국인들은 얼리 티, 브렉퍼스트 티, 애프터눈 티, 하이 티, 애프터디너 티 등으로 시간대별 이름을 붙여 홍차를 마셨다. 특히 애프터눈 티타임은 사교와 휴식을 위한 중요한 일과였다. 영국에서는 귀부인들과 말쑥한 신사들이 모여앉아 평온한 오후 4시쯤 티타임을 갖는 풍경이 흔했다.

 

만약 영국에 찻잎이 상륙하지 않았으면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에 나오는 품위 있는 주인공들은 아침 식사로 고기를 뜯으면서 맥주를 마셨을 것이다. 차가 등장하기 전에는 영국인들의 식수는 물이 아니라 술이었다. 어린아이도 술을 마셨다. 그 당시 영국의 하수도 시설은 엉망이라서 깨끗한 물을 마실 수가 없었다. 살균 효과가 있으며 알코올 도수를 낮춘 맥주는 식수대용으로 적절했으나 술을 지나치게 마신 탓에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영국인들이 점차 늘어났다. 서민들은 알코올 도수가 높은 진(gin)을 마셨다. 그래서 차는 술독에 빠진 영국을 구원해줄 성수(聖水)였다. 차 문화는 산업혁명 이후 중산층이 경제적으로 성장하면서 전파되어 서민들에게까지 이어졌다.

 

오스틴이 살았던 18세기 영국의 상류층들 사이엔 차 문화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홍차와 토스트로 아침 식사를 하는 것은 물론, 차를 홀짝이며 편지를 쓰고 사람을 사귀는 일이 중요한 일상의 하나였다. 홍차와 함께하는 영국인들의 일상은 소설 속에 그대로 남아있다. 특히 오스틴의 소설은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영국의 홍차 문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사실 오스틴도 홍차를 사랑했던 영국 여성 중 한 사람이다. 『홍차, 너무나 영국적인』의 지은이는 차를 끔찍이 사랑했던 오스틴이 소설 곳곳에 숨겨둔 18세기 영국의 차 문화를 꼼꼼히 짚어나간다. 차를 준비하고 티포트를 닦는 일상의 아기자기함을 사랑했던 그녀가 평생을 혼자 살았어도 외롭지 않았을 만큼 풍성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영국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은 영국인 특유의 차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리라. 영국은 일조량이 적고 습하기 때문에 체감기온이 낮다. 영국의 겨울 날씨는 지독하기로 유명하다. 축축하고, 음산하고, 하늘이 흐리고, 바람이 많다. 전반적으로 변덕스러운 날씨가 몇 개월 동안 이어진다. 이러한 날씨는 영국인들의 성격에도 영향을 미쳤다. 영국인들은 매우 내성적이다. 밖으로 나가 사람을 만나기보다는 벽난로 앞에 앉아 책을 읽으면서 홍차를 마실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을 선호한다. 그래서 과묵한 영국인들에게 홍차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평온한 일상과 함께할 수 있는 절친한 벗이다. 또 습한 날씨로 인해 푹 젖어버려서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마르게 해주는 ‘기적의 약’이기도 하다. 카페의 원조 격인 커피하우스의 차 광고를 보면 건강에 좋은 약처럼 소개하면서 판매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홍차 한 모금 입안에 1초 동안 혀를 가볍게 적시는 동안, 홍차와 관련된 영국의 역사를 떠올린다면 그 사람은 진정한 홍차 마니아다. 홍차는 영국의 역사와도 관련이 있다. 17세기 영국에서는 커피하우스가 생기면서 모여서 토론하는 문화가 만들어지고 민주주의의 기틀이 되었다. 미국에서는 차에 붙는 관세 때문에 보스턴 차 사건이 발생했고 이것이 독립전쟁으로 이어졌다. 아편전쟁도 홍차로 인한 무역 불균형에서 싹 텄다. 이 정도면 작가 시드니 스미스가 홍차를 격하게 예찬한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차를 우리에게 내려주신 신께 감사하라! 차가 없었다면 과연 어떤 일을 할 수 있었을까?”

 

홍차가 영국인의 음료이자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자기를 위로해주는 깊이 있는 맛과 화사함 때문이다. 현실은 힘들어도 홍차를 통해 ‘나는 이런 걸 누릴 자격이 있다’는 느낌을 준달까. 또 누군가 ‘너 힐링해!’ 하고 강요하는 게 아니라 차를 마시면서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어서 좋다. 홍차를 데우고 기다리는 게 번거로운 작업인데, 안 좋은 일이나 고민이 있을 때 느리게 차를 우리며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다.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galmA 2015-04-01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니 참 그래요. 서양인들 대체로 커피 문화던데, 영국인들의 그 홍차사랑은...역시 날씨...
이 글 보다가 홍차 생각이 간절해졌어요. 인도식 짜이면 더 좋겠지만, 이도 저도 없어 망연;_;)...

cyrus 2015-04-02 17:43   좋아요 1 | URL
오늘같이 흐리고 비가 내리는 날에는 따뜻한 차를 마셔야 합니다. ^^

에이바 2015-04-01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차는 힐링에 도움을 준다는 말씀 백번 동감합니다.

cyrus 2015-04-02 17:46   좋아요 0 | URL
모든 영국인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차를 끊이는 과정에서부터 차를 음미하면서 마시기까지 이 시간만큼은 영국인들은 내면의 문제에 대해 스스로 되돌아볼 수 있었을 겁니다.

해피북 2015-04-01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스틴의 홍차 사랑에 대한 글귀가 인상적이였어요^~^
일본 영국 중국등 차 문화가 발달해서 간간히 차마시는 모습 책으로보면 저두 그런 시간과 마음을 가지고 싶은데 차에대해 모르니 어떤 차를골라야할지 고민스럽더라구요 우리나라에서 판매하는 티백이아니라 진짜 차를 우려내마시고 싶은데 혹시 추천해주실만한 차있으심 추천 해주세요^~^

cyrus 2015-04-02 17:49   좋아요 0 | URL
오스틴도 천상 여자라서 귀부인처럼 홍차를 즐겨 마셨어요. 홍차를 마실 줄 아는 영국 여자들은 휴대용 도기 세트를 들고 다녔다고 합니다. 오스틴도 도기 세트를 가지고 다니면서 외출할 때 홍차를 마셨어요. 그런데 제가 홍차를 알고 싶어서 이 책을 고른 것이라서 홍차의 종류를 잘 몰라요. 사실 이 책 덕분에 홍차가 종류별로 다양하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

cocomi 2015-04-02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제목이 너무 영국/서구 중심적이어서 의심스러웠는데 <초목전쟁>처럼 차와 관련된 아편전쟁과 제국의 식민 역사도 다루어지나 보네요. 자세한 리뷰 감사합니다!^^

cyrus 2015-04-02 17:51   좋아요 0 | URL
차와 관련된 영국의 역사는 잠깐 언급됩니다. 나머진 영국의 차 문화와 음식 문화에 관한 내용이 전반적으로 많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영국 중심적이에요. 동양의 차 문화와 비교하면서 소개했더라면 책 내용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transient-guest 2015-04-02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그레이슬 즐겨 마십니다. 사무실이 입주한 건물에 공동부엌이 있는데 거기에 가면 커피와 다양한 차가 구비되어 있어요. 가끔 티백이지만 차를 우려서 우유를 살짝 부어마시면서 나름대로 영국신사의 오후 티타임을 그려봅니다.ㅎㅎ

cyrus 2015-04-02 17:54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 홍차를 즐겨 마시는 분이 의외로 많군요. 저는 이제 홍차 입문자라서 이 책을 읽으면서 홍차의 종류와 영국 차 문화를 알게 됐어요. 저도 홍차를 마실 수 있는 저만의 티타임을 갖고 싶습니다. ^^

수이 2015-04-02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차는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고 하던데_ 그래서 녹차보다는 역시 홍차가 좋더라구_ 홍차를 땡기게 하는 글이다. 책도 궁금하고_ :)

cyrus 2015-04-02 17:55   좋아요 0 | URL
저는 홍차보다 녹차를 마신 횟수가 많아서 자연스럽게 녹차가 좋아졌어요. 그래서 녹차라떼도 좋아해요.. ㅎㅎㅎ

:Dora 2015-04-03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익한후기 감사해요!여기북플에 글올리면 알라딘에 자동등록되는 건가요..궁금해서

cyrus 2015-04-03 11:41   좋아요 1 | URL
네, 북플과 알라딘 서재 기능이 거의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북플은 스마트폰 버전의 알라딘 서재인거죠. ^^
 
[세트] 나의 서양사 편력 - 전2권
박상익 지음 / 푸른역사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중국 고대 황제(黃帝) 시대의 전설에 의하면 거울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연결하는 작은 통로가 있었다고 한다. 이 통로를 통해서 거울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왕래하면서 평화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 날 거울 세계의 사람들이 인간의 세계를 급습했다. 치열한 전투 끝에 인간은 황제의 비범한 능력 덕분에 승리할 수 있었다. 황제는 통로를 막아버리고 침략자들을 거울 속에 가두어버렸다. 그리고 거울 세계의 사람들에게 인간의 행위를 똑같이 따라 하는 벌을 내렸다. 그들 본래의 모습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보르헤스의 《상상동물 이야기》(까치, 1994)에 나온다.

 

나 아닌 다른 사람, 내 나라 아닌 다른 나라를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일본 정부와 극우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저지른 자신들의 잘못을 미화하고 정당화하여 우리나라와 중국의 감정을 자극하고 있다. 역사 왜곡을 둘러싸고 일본 내의 입장은 이렇다. 하나는 우리 역사를 쓰고 가르치겠다는데 참견하는 한국과 중국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를 왜곡하고 미화하는 것은 일본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는 미래를 조망하는 거울이 된다.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새 장을 확인할 수 있다. 따져보면 일본의 역사 왜곡보다 우리 자신의 역사 왜곡이 더 심각하다. 정치권의 이념 대립은 교학사 역사교과서 파동에 이르러 급기야 역사 갈등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정치와 이념, 역사인식이 철저히 둘로 나뉘었다. 보수와 진보 진영은 역사마저 이념의 잣대에서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면서 공통의 역사를 부정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현실을 비춰주고 미래를 조명하는 거울의 용도를 상실한 지 오래다. 과거는 불변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양하고,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그만큼 인간은 거울의 세계(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보수와 진보로 나뉜 인간은 역사에 자신이 보고 싶은 모습 그대로 반영되기를 원한다. 대화와 소통의 통로를 원천 차단하여 역사를 정치적 이념 가치에 맞게 부합하여 정당화한다. 역사를 정치적 이념의 울타리 안으로 완전히 가두는 것이다. 이런 역사를 학생들은 암기하면서 공부한다. 역사를 유연하게 바라보고, 냉철하게 판단하는 사고력의 기회를 잃게 된다. 이러다 보니 역사는 ‘죽은 학문’이 된다. 역사는 이미 완료된 고정불변의 실체가 되고 역사학은 그런 대상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니, 역사학의 내용도 변화할 가능성이 없어지게 된다. 한마디로 한번 완성이 된 역사학의 내용은 정설로 굳어지게 되어, 이후 지속적인 연구 가능성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우리가 책을 통해 알게 된 역사는 이미 그것을 저술한 학자들이 연구한 것이니 우리는 그것을 그냥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는 편견이 생긴다.

 

무엇보다 심각한 사실은 우리나라 역사교육에 서양사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마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역사교육에서 서양사는 푸대접을 받고 있다. 자국사와 서양사를 모두 필수과목으로 포함한 일본의 역사교육과 대비된다. 전공의 경우에도 역사는 서양사가 짜놓은 틀 위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고대-중세-르네상스-근대로 이어지는 공식을 암기하면서 배운다. 이런 문제가 고착되면 서양사를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학생들이 전혀 느끼지 못하는 우려가 생긴다. 또 초보적인 서양사마저 제대로 공부하지 못하면 국가적 망신에 가까운 무지의 태도가 드러날 수 있다. 나치의 하겐 크로이츠 문양이 있는 복장을 착용한 걸그룹 가수의 실수는 전 세계적으로 뉴스거리가 된 적이 있다.

 

《나의 서양사 편력》은 서양사를 공부하고 싶은 독자도 볼 수 있는 99개의 작은 서양사 거울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고대, 중세, 근대, 현대 그리고 영국의 시인 존 밀턴의 시대를 볼 수 있는 총 4개의 거울 방으로 만들어졌다. 독자는 관심 있는 거울 방을 골라서 노크해서 들어갈 수 있다. 서양사 거울은 독자가 여행할 수 있는 통로다. 이 책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과거의 사실들을 총망라해서 공부하는 기존의 역사 교육을 답습하지 않는다. 그런 역사가 현재에 서로 어떻게 연결되고 영향을 미치면서 전체를 만들고 또 각자를 만들어 왔는가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다른 나라 역사도 우리의 현실을 비춰주는 거울이 된다. 이 지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결 고리 내지는 상호 연관성을 파악하는 작업이다.

 

가령 ‘새로운 로마’를 위해 ‘구(舊) 로마’를 상징하는 건축물을 파괴한 로마인들의 반달리즘(vandalism)을 통해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반달리즘을 조명한다. 외국 관광객들이 찾는 ‘새로운 서울’을 만든다는 핑계로 서울시(당시 서울시장은 이명박)는 역사가 있는 종로 피맛골을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했다. 그 이후로 피맛골은 예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이곳을 지키던 예술가들은 하나둘씩 떠났고, 서민들의 허기를 달래주던 맛집들도 문을 닫는 지경에 이르면서 사람들의 발길도 뚝 끊어졌다. 서양사는 역사분쟁을 헤치고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공존에 이바지할 가능성을 제시해준다. 에라스뮈스는 어느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학문을 연마한 선구자적인 ‘세계 시민’이었다. 유럽연합(EU)은 1987년 국경과 종교, 언어를 초월해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학문을 연마했던 에라스뮈스의 이름을 딴 ‘에라스뮈스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EU 회원국 대학생들은 재학 기간에 1∼2학기를 다른 유럽 국가의 대학에서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다. 한국과 중국, 일본도 아시아판 에라스뮈스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상호교류를 통해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이 아니라 ‘동북아인’이라는 정체성을 형성하여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세대의 등장을 기대할 수 있다.

 

5개의 거울이 있는 밀턴의 방으로 들어가면 권력화한 종교가 지배하는 17세기 영국의 사회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거울상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종교를 배타하는 성향이 강한 우리나라 개신교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또 권력 앞에 굴하지 않는 밀턴의 강인한 정신과 양심은 국회에서 ‘밥그릇 전쟁’하느라 여념 없는 국회의원들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진다. 왕정복고에 의해서 명예가 상실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실명이 된 밀턴은 궁핍한 상황에 처해있어도 자신의 공화주의적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훗날 제임스 2세가 될 요크 공 제임스와 나눈 대화는 권력 앞에 주눅이 들지 않는 밀턴의 성격을 알 수 있다. 요크 공 제임스는 밀턴을 직접 찾아가 실명한 상태가 왕정을 무너뜨리는 혁명 활동에 대한 신의 심판이라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어봤다. 이는 밀턴의 행적을 비꼬는 의도가 담긴 질문이었다. 그러자 밀턴은 한 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만일 전하께서 저의 실명을 신이 진노해서 받은 천벌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신은 전하의 부친이신 선왕께 훨씬 더 불쾌하셨을 겁니다. 선왕은 신의 심판으로 머리를 잃었으니까요.” 제임스 2세의 선왕은 의회를 무시하는 전체 정치를 펼치다가 청교도 혁명으로 참수당한 찰스 1세였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카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정 불변의 실체가 아니다. 과거에 벌어졌던 상황이 후대에 의해 끊임없이 재평가되며 그것의 가치가 변화하여 인식되는 유연한 학문이 바로 역사학이다. 현재를 비추는 거울로서의 역사를 통해 현실의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해나가는 방안을 모색하고, 잘못된 상황을 반성하는 계기가 만들어진다. 역사의 거울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역사를 바라보는 이런 인식은 역사에 대한 반쪽짜리 이해에 불과하다. 역사에 정치가 절대로 개입해선 안 되며, 현재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이용해선 안 된다. 역사는 정치권력을 흉내 내면서 따라다니는 그림자가 아니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게으른독서가 2015-03-19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읽고 나니, `읽고 싶어요`릉 누르게 되네요. 좋은 책 많이 알려주세요.

cyrus 2015-03-20 20:59   좋아요 0 | URL
참고문헌이 없어서 아쉽지만,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독서가님도 좋은 책 많이 알려주십시오. ^^

안티고네 2015-03-21 21:12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참고문헌? 2권 274-278쪽에 나와 있는데요~

cyrus 2015-03-21 21:15   좋아요 0 | URL
안티고네님. 지적 감사합니다. 오늘 2권에 참고문헌이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제가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안티고네 2015-03-28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cyrus 님. 무시할 수도 있는 댓글에 즉각 대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0시 1분 전 -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했던 순간
마이클 돕스 지음, 박수민 옮김 / 모던타임스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전후 미국의 외교정책 중 가장 참담한 실패 중의 하나가 1961년 4월 17일에 있었던 피그스 만 침공이다. 게릴라로 위장한 쿠바 난민들을 쿠바의 피그스 만에 침투시켜 카스트로 공산정권을 전복시키려 했다. 그러나 CIA의 낙관적인 말만 믿고 피그스 만에 상륙했던 쿠바 난민들은 카스트로 혁명군에 의해 생포되거나 사살되었다. 피그스 만 침공 계획은 처음부터 성공 가능성이 없었다. 카스트로 정권이 난민들에 의해 무너질 만큼 허약하지도 않았고, 성패와 관계없이 누구든 CIA를 그 배후로 지목하게 돼 있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케네디 정부의 외교적 손실은 막대했다. 국제사회에서 망신당한 것은 물론 미국이 반정부군을 지원한 것이 드러나, 케네디 대통령의 참신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쿠바는 소련과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쿠바는 결국 소련의 핵미사일을 끌어들임으로써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를 촉발했다.

 

케네디는 미국 코앞에 핵무기가 배치되는 것을 용인할 수 없었다. 일촉즉발의 위기를 타개하는 동시에 피그스 만 침공 계획 실패로 상실된 강대국으로서의 명예와 국민의 신뢰를 만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소련의 공산당 서기장 흐루쇼프로부터 면전에 굴욕을 당할 정도로 케네디의 입지는 흔들리고 있었다. 당시 정책실패를 통해 케네디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피그스 만 침공 계획은 ‘집단 사고’가 만든 무모한 정책 결정이었다. ‘집단 사고’란 정책 결정에 참여한 사람들 간에 친밀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논쟁을 통해 좋은 결정을 도출하기보다는 쉽게 한 방향으로 의견을 모아버리는 현상이다. 이러면 잘못된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

 

공교롭게도 쿠바 미사일 위기 때도 피그스 만 침공 계획에 참여했던 정책 결정자들이 케네디 옆을 지키고 있었다. 딘 러스크 국무장관,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 맥조지 번디 안보보좌관 그리고 법무부 장관이자 대통령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애칭은 바비)까지 보안을 철저히 유지하는 데 있어서 케네디는 이들을 믿고 국가안보회의를 열어 치밀한 전략회의를 했다. 하지만 서로 워낙 친했던 이들은 침공계획의 무모함을 집어내지 못했다. 전략회의가 수차례 열렸지만, 누구도 반대편에 서서 한 번쯤 생각해보려고 하지 않았다. 쿠바의 반정부 군인들을 침투하면 카스트로 혁명군을 투항시킬 수 있다는 성급한 결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케네디에게는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이 필요했다. 문제점만을 지적해서 집단적 사고를 훼방하는 악마의 적임자로 자신을 가까이 지켜봤던 바비를 선택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의 상황을 분석한 일부 역사가들은 바비가 그 일을 훌륭히 수행했고, 그 덕분에 즉각 공습보다 온건한 해안봉쇄로 선회했던 정책이 성공할 수 있었다고 평가를 했다. 지금도 쿠바 미사일 위기의 교훈을 논하면 젊고 용기 있는 미국 대통령과 대통령의 동생이 소련의 핵 위협을 놀라울 정도의 냉철한 판단으로 절묘하게 막아낸 것으로 묘사한다.

 

 

 

 

흐루쇼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핵무기를 초강대국간 경쟁에 있어서 한 가지 요소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전쟁을 원하면 “당장 해봅시다”라며 거칠게 몰아쳤다. 회담이 끝난 뒤 케네디는 <뉴욕타임스>의 제임스 레스턴에게 말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습니다. 흐루쇼프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습니다.” (26쪽)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공습을 옹호했던 사람은 바비였다. 그는 직함만 법무부 장관이었지 역할은 정부 내 2인자나 다름없었다. 오래전부터 쿠바 혁명군을 소탕하고, 카스트로를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CIA와 펜타곤 간부들을 긴밀하게 만나 비밀 위원회를 주관하기도 했다. 바비는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흐루쇼프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 난처해진 자신과 대통령의 상황이 모욕적으로 느껴졌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쿠바를 침공하고 싶은 마음은 형보다도 무척 강했다. 36살이라는 새파랗게 젊은 국무장관은 대통령의 귀에 쿠바 침공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귓속말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대통령은 동생보다 이성적이었고, 자칫 더 큰 위기를 자초할 수도 있었던 침공 결정의 욕망을 통제할 수 있었다. 케네디 정부의 역사를 기록한 아서 슐레진저 2세는 반카스트로 작전에 관여했던 바비의 활동을 ‘가장 눈에 띄는 바보짓’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측근들은 바비의 ‘바보짓’을 그저 지켜봐야만 했다. 대통령의 동생이자 백악관의 두 번째 실세의 뜻을 함부로 거역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3일 동안 이어진 쿠바 미사일 위기를 새롭게 조명한 마이클 돕스는 《0시 1분 전》에서 대통령과 바비의 관계를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고 비유한다. 케네디가 차분한 성격이라면, 바비는 쉽게 감정이 격앙되고 승부욕이 강한 거친 성격이다. 케네디도 마음만 먹으면 당장 쿠바 기지에 대한 공습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바비의 모습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케네디의 이면이기도 하다. 대통령으로부터 전폭적인 신뢰를 받았던 바비는 애초에 쿠바 미사일 위기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해줘야 할 ‘악마의 대변인’에 어울리지 않았다.

 

 

 

 

카스트로는 “주연 중에 주연”이자 “편집증이 있는 과대망상증 환자”였을 뿐만 아니라 “깜짝 놀랄만한 인물”이자 “정열적이고 머릿속이 복잡한 천재”였다. 세 명의 지도자 가운데 카스트로만이 특별한 임무를 위해 역사가 선택한 구세주적 야심을 가진 인물이었다. (137쪽)

 

그런데 바비 못지않게 ‘가장 눈에 띄는 바보짓’으로 위험한 상황으로 몰고 간 사람은 따로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카스트로였다. 흐루쇼프는 공산주의 국가의 위력을 보여주기 위해 핵미사일을 빌미 삼아 쿠바에 엄포를 놓았다. 이미 먼저 터키에 미사일을 배치한 미국의 태도에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흐루쇼프는 미국 앞에서 위축되지 않으려는 자세가 필요했고,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하여 핵전쟁으로 유도하도록 만들게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케네디와 흐루쇼프는 미국과 소련이 충돌하는 핵전쟁이 전 세계의 파괴를 부르는 ‘치킨 게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두 나라가 서로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에 쿠바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스트로는 엄청난 치킨 게임에 승리하기를 갈망했고, 이 게임에 한발 뒤로 물러나는 겁쟁이(chicken)가 되고 싶지 않았다. 이 게임에 승리하면 쿠바 내부에 있는 정치적 불만을 잠재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과 소련 간의 팽팽한 눈싸움에 쿠바의 카스트로는 눈치 없이 끼어들었고, 소련의 비호를 받아 당당해진 카스트로는 미국을 쓰러뜨리려고 핵전쟁을 불사하는 기세였다. 흐루쇼프도 쩔쩔 맬 정도로 카스트로는 야심이 강했다. 하지만 핵미사일을 둘러싸고 복잡하게 얽힌 양국의 정치적 계산을 이해하지 못했다. 질색하는 이념만 달랐을 뿐이지 카스트로는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빅 터짓슨 장군과 비슷하다. 반대로 미국에는 호전적인 성격의 커디스 르메이 장군이 있었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미사일 위기가 지난 뒤에 개봉했는데 빅 터짓슨의 실존 모델은 르메이다)

 

《0시 1분 전》은 단순히 쿠바 미사일 위기의 교훈을 되새기기 위한 책이 아니다. 혼돈으로 치닫기 일보 직전인 쿠바 미사일 위기의 순간들 하나하나 조명함으로써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재연한다. 마이클 돕스가 재구성한 13일간의 신경전에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오늘날 위기를 극복하는 데 성공한 승자로 기억되는 미국은 극도로 긴장한 모습을 보였으며 소련은 공산주의와 쿠바를 지켜내기 위한 방어적 자세로 ‘근거 없는 자신감’을 내세워 무모한 도박을 감행했다. 쿠바는 일촉즉발의 분위기에 휩쓸려 미국을 로켓으로 날려버리고 싶어 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냉전기의 분열된 세계를 극명하게 보여준 최악의 역사다. 이때는 표면적으로 어떤 협상도 오갈 수도 없었다. 흐루쇼프는 팽팽하게 맞서는 대치 상황을 ‘너무 단단하게 묶어서 묶은 사람조차 풀지 못하는 매듭’에 비유했다. 그야말로 전 세계는 핵무기가 달린 고르디우스의 매듭에 묶이고 말았다. 이미 갈 데까지 가게 된 위기 상황을 해소하기에 늦은 감도 있었지만, 미국과 소련은 냉전의 매듭을 누군가가 먼저 나서서 풀어주기를 원했고, 계속 눈치만 보고 있었다. 눈치 싸움이 길어질수록 대립의 긴장감은 날로 높아져만 갔다. 설상가상 쿠바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잘라버린 알렉산더 대왕처럼 치킨 게임에 승리한 영웅이 되고 싶었다. 위기를 해소하는 방안을 요구하는 친서를 내놓는다는 것은 치킨 게임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흐루쇼프는 풀릴 방법이 없는 이 냉전의 매듭을 오래 놔두면 위험하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미국에 먼저 친서를 보냈다. 하지만 오늘날 역사는 냉전의 매듭을 풀려고 앞장서서 해결한 나라로 미국을 제일 먼저 기억한다. 흐루쇼프의 친서를 ‘개소리’라고 헐뜯었던 르메이의 발언과 전쟁을 지지하는 강경파의 모습들은 어느 순간부터 싹 잊혀 버렸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쿠바 미사일 위기에 관한 공식적인 역사에 세계의 영웅으로 변신하기 위한 미국의 과장된 신화가 섞여 있다. 최근 쿠바는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에 흥분에 들떠 있다. 전 세계의 가슴을 쓸어내렸던 13일의 악몽이 너무 쉽게 잊어버린 듯하다. 인류의 멸망으로 향하는 ‘운명의 날’ 시계는 잠시 멈춘 상태다. 핵무기가 완전히 폐기되지 않는 이상, 언젠가는 13일의 악몽은 재현될 수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병통치약 2015-02-27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최근에 베트남 역사책을 읽는데 마지막 장이 베트남 전쟁이에요 거기서도 냉전이랑 쿠바랑 엮이는데 정말 극단가지 가던 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도 뭐 나아진점은 없지만 말이에요.

cyrus 2015-03-01 09:53   좋아요 0 | URL
지금은 북한과 IS가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고 있는데 과연 어떤 결과가 초래될 지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론 걱정됩니다.
 
나의 한국현대사 - 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Scene #1  풀과 가위의 역사

 

역사학자 에드워드 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풀과 가위의 역사’란 용어를 사용했다. 그는 역사적 사실이 사관에 의해서 가위로 자르고 풀로 붙임으로써 얼마든지 변형된 역사가 기록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적시했다. 풀과 가위의 역사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서는 역사의 주체들과 이를 기록하는 사관들의 공정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신문, 텔레비전, 인터넷 등에서 쏟아내는 미디어 정보는 넘쳐난다. 이 가운데는 양질의 정보와 그렇지 못한 정보가 섞여 있다. 이런 정보홍수 가운데 ‘무엇을 읽고, 무엇을 얻을 것인가’라는 판단과 선택의 능력이 요구된다. 이러한 능력이 갖춰져 있다면 자신의 필요에 따라 수집, 분류, 정리, 버리기를 반복한다. 이렇게 해서 나오는 결과물인 바로 스크랩북이다. 개인적인 발견인지는 모르지만, 흥미 있는 사실은 ‘스크랩북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스크랩북에는 한 사건에 대한 역사가 시간적인 순서로 들어 있다. 물론 풀과 가위에 의해서 적절하게 조작된 내용도 있으나 한 스크랩북을 들여다보면 정보 분석, 응용의 과정을 직접 해봄으로써 비판적 분석력을 키울 수 있다.

 

이런 풀과 가위의 역사는 역사적 사실의 단순한 편찬이 아니라 사실과 해석 상호작용의 결과이다. 과거의 사실 그 자체보다는 현재의 해석을 위해 역사적 사실이 더 우위에 있다. 유시민의 《나의 한국현대사》는 풀과 가위로 만들어진 한 권의 스크랩북과 같다. 그런데 역사 스크랩북 제작자 유시민은 이러한 시도를 ‘위험한 현대사 읽기’라고 본다. 1959년에서 2014년까지 딱 저자 본인이 살아온 세월만 정리했다. 선택한 사실에 대한 유시민의 역사 해석은 주관적 기록이 된다. 또 현대사는 역사적·정치적 공방이 동반되는 특수한 범위이다. 여기서 역사가와 정치가는 자신들이 지향하는 이념에 따라 공생 관계를 이룬다.

 

그러나 실제로 없는 것을 덧붙이거나 사실을 왜곡하는 불순한 의도가 아니라면 의미 있다고 보는 사실을 선별하여 객관적 인과관계를 밝혀, 해석할 권리가 있다. 풀과 가위에 의해서 정리된 여러 가지 사실들은 단순히 그럴싸해 보이는 평범한 기록으로 보이지만, 언젠가는 긴 역사적 안목에서는 진정으로 중요하고 의미 있는 사료(史料)로 평가받는다. 역사를 연구한다는 것은 풀과 가위에 의해서 여러 가지 사실들이 윤색, 혹은 탈색될 수 있어도 결국 공정한 평가로 진실이 가려져야 하는 엄숙한 일이기도 하다.

 

 

 

 

 Scene #2 <국제시장>과 《나의 한국현대사》의 공통점

 

 

 

 

 

유시민은 현재의 시각에서 과거 사실을 해석할 때 사실은 사라지고 해석만 남게 되는 허무주의적 또는 자아도취적 결론을 경계한다. 역사에 아주 민감한 우리 사회는 극명한 해석으로 양분된다. 이를 설명할 수 있는 대표적인 현상이 바로 윤제균 감독의<국제시장>을 둘러싼 평가다.

 

역사상 최초로 ‘쌍 천만’ 관객 수를 기록한 영화 <국제시장>은 《나의 한국현대사》에서 다루는 시기와 유사하다. 한국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굵직한 사건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를 두고 한쪽에서는 ‘한국현대사의 자화상’이라며 공감하는 한편, 다른 한쪽에서는 ‘박정희 정권 미화’라는 비판이 나온다. 부마항쟁, 4·19 혁명 등이 영화 속에 언급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진보적 지식인과 평론가 들은 <국제시장>을 역사의식이 모자란 우파 영화로 평가해서 큰 논란이 되었다. 그들의 눈에는 영화에 대한 아버지 세대의 공감과 자부심이 우파가 좋아할 만한 전형적인 ‘자아도취식 역사인식’으로 빠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런 반응에 윤제균 감독은 영화 매체의 특성상 해석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나의 한국현대사》도 마찬가지다. 유시민은 자신이 직접 선택한 현대사를 술회하여 이승만 대통령 시절 부정선거에서부터 4·19 혁명, 5·16 쿠데타, 5·18 광주 민주항쟁, 6월 항쟁을 포함한 1980년대 민주화 투쟁 등 민주화와 산업화를 중심으로 현대사의 이슈들을 최대한 공정하게 보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종국에 가서는 대북관계, 복지정책 등에서 진보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진보주의자로서의 유시민을 불편하게 여겼을 보수적 관점의 독자 입장에서는 그의 현대사 읽기 또한 매우 거북하게 느낄 수도 있다. 특히 눈여겨볼 내용이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을 국정원의 한국형 인민재판으로 지적하는 대목이다. 유시민은 자신의 책이 나온 지 5개월 뒤에 불거지게 될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의 문제점을 미리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승만 정권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남아있는 반공을 국시로 내건 보수 진영의 파시즘적 사고를 비판한다.

 

그리고 현대사에 대한 유시민의 ‘제한적인 자부심’이라는 표현도 쉽게 동의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특히 국정 역사교과서 전환을 바랐던 여당이라면 자부심 앞에 붙은 ‘제한적’이라는 단어를 지우고 싶을 것이다. 보수 진영은 현대사, 특히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 시절을 찬미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 시절 부끄러운 역사(유신체제로 인해 훼손된 민주주의의 원칙, ‘한강의 기적’에 가려진 부의 불균등 분배 그리고 열악한 노동환경)를 가르치고, 알아야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역사를 좌편향 일색으로 되어 있다고 말한다.

 

 

 

 Scene #3  상처 없는 역사는 없다

 

역사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이념의 색안경을 벗지 못하면 역사의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 없다. 유시민의 한국현대사 스크랩북은 국가적 위상을 드높인 ‘훌륭한 변화’와 ‘부끄럽고 추악한 역사’, 즉 빛과 어둠을 동시에 보여준다. 역사를 땅따먹기 식으로 나누어 서로 대립하는 자세를 지양하고, 역사적 관용으로 대립을 봉합할 수 있는 미래를 위해 포석을 놓는다. 

 

우리 현대사는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탄압의 사건들로 점철됐다. 랭보는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라고 한탄했지만, 과연 ‘상처 없는 역사’가 어디 있을 것인가. 우리가 바라봐야 할 역사의 거울이 항상 자랑스럽고 멋진 면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동안 역사의 거울 앞에서 “거울아, 거울아. 우리 역사 중에서 가장 멋지고 자랑스러운 것이 무엇인가”라고 끊임없이 물었다. 당연히 우리는 자부심을 느낄만한 역사를 보고 싶어 한다. 매슬로우의 욕망 단계설로 역사의 흐름을 바라본 유시민의 독특한 시선을 대입하자면 한국현대사는 자기실현이라는 최고의 욕구에 도달하고 싶은 대중의 힘으로 작동되었다. 암울한 식민지 시대와 전쟁으로 거의 쓰러져간 나라를 물질적으로 풍족한 사회 탈바꿈시켜버리는 기적 같은 역사는 처절한 생리적 욕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중의 욕망은 멈출 줄 모른다. 욕망이 충족되면 타인의 존경을 받을 수 있고, 자부심을 가진다.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는 데 성공했던 대한민국의 힘을 전 세계에 보여줌으로써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고 싶어 한다. 이처럼 역사의 거울 속에 비춰진 대한민국, 그리고 그 대한민국이 거울로 보고 싶은 그 모습은 ‘선진국’이라는 화려한 옷을 입은 역동적인 국가 이미지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너무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자신의 욕망을 멈추는 법을 몰랐다. 물질적 욕망에 치우치다보니 부정부패와 배금주의가 만연하고, 욕망을 충족하는 데 성공한 자들은 ‘갑’의 강자가 되어 ‘을’의 약자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선진국답지 않은, 부끄러운 우리 사회의 모습. 시간이 흐르면 이것 또한 하나의 역사가 된다. 과연 미래는 이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역사의 거울에 비친 부끄러운 역사를 후손들이 우리처럼 외면하게 될까봐 걱정된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명제는 역사의 교훈이 주는 중요성을 부각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역사의 교훈에서 우리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또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배워야 한다고 말이다. 문제는 깊게 팬 현대사의 상처가 다시 덧나지 않도록 봉합하고, 진실한 역사의 거울을 제대로 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는 부끄럽게 여길만한 시대상을 역사의 거울을 통해 똑바로 직시해야 한다. 이 거대한 작업으로서의 화해가 반성과 기억임을 유시민은 현대사 스크랩북을 통해 보여주었다. 기억하지 않는다면 역사는 무의미하고 거기서 얻을 교훈은 수행될 수 없는 것이며, 반성 없는 통합은 미래를 위한 화합의 전진을 기대하기 어렵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병통치약 2015-01-18 2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사람 너무 좋아서 이책을 읽지 않고 있어요 ^^ 말이 안되나요? 무슨 말을 할지 예상되고 내가 다 공감할 내용이라서요. 조만간 읽으려나요...

cyrus 2015-01-19 12:40   좋아요 0 | URL
통치약님의 말씀 이해합니다. 유시민씨의 팬이군요. 저도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나오면 천천히 읽거나 좀 나중에 읽는 편입니다. 저자의 글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고 싶은 마음으로 읽는다고 해야 될까요? ^^

봄밤 2015-01-18 22: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cyrus님의 풀과 가위가 이 책과 <국제 시장>을 한 눈에 살필 수 있도록 마름하신 것 같아요.

cyrus 2015-01-19 12:40   좋아요 0 | URL
졸문을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해피북 2015-01-18 2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저두 이 책을 앞두고있는데 선뜻 읽진 못하고 망설이고만 있어요 역사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이 옳지않음을 느낄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컸답니다 그래도 시대의 흐름을 읽기위해 조금더 느껴보기 위해 용기내보자고 글을 읽으며 생각해보게 되네요 ㅎ 잘 읽고 갑니다 꿀밤되세요~~^^

cyrus 2015-01-19 12:43   좋아요 0 | URL
현대사를 이해할 때 기억해야 될 굵직한 사건들을 잘 소개한 책이에요.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

표맥(漂麥) 2015-01-19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점을 참 잘 잡아 써내렸네요. 잘읽었습니다.
저에겐 아직 `판단 유보`의 영역이라 저 책 또한 `읽기 유보` ...^^

cyrus 2015-01-19 20:05   좋아요 0 | URL
사실 이 책을 두 번째로 읽었는데 여전히 판단을 유보해야 할 신중한 역사적 사실이 몇 개 있어요. 저자의 생각을 그대로 믿기보다는 좀 더 역사를 보는 눈을 넓히는 데 노력하려고 합니다. 졸문을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나와같다면 2015-02-01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유시민의 항소이유서를 읽었을 때의 그 전율을 아직두 기억합니다

cyrus 2015-02-01 20:11   좋아요 0 | URL
전설의 문장. 저도 한 번 읽고 싶군요. 항소이유서가 실린 책을 사진으로만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