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시인들
폴 베를렌느 지음, 임민지 옮김 / 필요한책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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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점  ★★★☆  B+





절반으로 갈라진 랭보(Arthur Rimbaud)의 짧은 인생은 물과 기름과 같다. 은 시상(詩想)이 홍수마냥 흘러넘치는 조숙한 시인의 삶이다. 랭보는 열여섯 살에 처음으로 시를 썼다. 그의 첫 번째 시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 출간된 해는 1873. 이때 당시 랭보는 열아홉 살이었다









기름은 끈끈한 노동자의 삶이다. 랭보는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을 여행하면서 여러 가지 일을 했다고국과 완전히 다른 타지의 날씨는 랭보의 연약한 몸을 괴롭혔지만, 랭보는 꾹 참고 일했다서커스단의 사무직원, 식민지 산물 회사의 직원, 채석장 회사의 작업반장, 건축업체의 관리 감독, 커피콩을 골라내고 포장하는 회사의 관리자, 아프리카의 무기 거래 상인. ‘기름의 시대에 랭보는 틈틈이 시를 쓰긴 했지만,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지 않았다.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시인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었다. 여기저기 돌아니면서 일하느라 시상이 폭삭 늙어버린 랭보. 일과 방랑에 중독된 랭보는 고향 친구에게 자신은 더 이상 문학에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본인 스스로 의 시대에 마침표를 찍은 랭보의 나이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시 쓰는 삶을 스스로 포기한 랭보를 여전히 시인이라고 주장한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폴 베를렌(Paul Verlaine)이다랭보와 베를렌은 함께 여행하고, 토론하고, 질투심이 섞인 말다툼을 할 정도로 뜨겁게 사랑했다. 베를렌은 아내를 버리고 랭보와 함께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다. 그러나 사랑의 여정은 오래가지 못한다. 화를 참지 못한 베를렌은 랭보를 향해 권총 두 발을 쏜다. 다행히 두 개의 총알은 랭보의 목숨을 비껴간다. 살인 미수로 체포된 베를렌은 2년 동안 감옥 생활을 한다.


베를렌은 대중과 문단 모두에서 잊힌 랭보의 문학적 재능을 아까워했다. 그는 랭보처럼 관습에 도전하고 개성 충만한 시를 쓴 무명 시인들에게 저주받은 시인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베를렌의 시 비평서 저주받은 시인들은 랭보를 포함한 여섯 명의 시인의 작품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해설한 책이다. 오늘날 저주받은 시인또는 저주받은 예술가는 재능은 뛰어나지만,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불행한 예술가를 가리킬 때 쓴다. 하지만 베를렌이 생각하는 저주받은 시인세상에 편입된 삶을 거부했다. 그들은 독자의 문학 취향에 부합하는 시를 쓰지 않는다.


베를린이 찾은 6인의 저주받은 시인은 랭보, 트리스탕 코르비에르(Tristan Corbiere), 스테판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 마르슬린 데보르드 발모르(Marceline Desbordes-Valmore), 빌리에 드 릴라당(Villiers de L’Isle Adam), 그리고 가엾은 를리앙(Pauvre Lelian)’이다.


베를렌은 가엾은 를리앙가장 우울한 운명을 지닌 시인이라고 소개한다. 사실 가엾은 를리앙베를렌이 자신의 이름 철자를 바꿔 만든 가명이다. 베를렌은 왜 자신의 책 마지막에 자기소개서를 썼을까? 랭보 총격 사건 이후로 베를렌은 가톨릭에 귀의하여 종교적인 분위기가 강한 시를 쓰기 시작한다. 전 연인 랭보는 종교에 헌신하는 시인으로 변한 베를렌을 비판했다. 가엾은 를리앙은 가톨릭 신앙을 드러낸 시를 쓰는 베를렌의 분신이다. 베를렌은 화려하고, 나른하며, 신경질적 어조가 반영된 젊은 시절의 시들과 엄숙하고 단순한 어조로 읊는 종교적인 시는 결국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시상에 잠기는 대로 시를 쓰는 자유가 있다고 강조한다베를렌은 동료 시인들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 저주받은 시인이다.









명예와 긍정적인 평가를 좇아가면서 글 쓰는 작가는 불행하다. 이런 작가는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쓰지 못한다. 본모습이 없는 글을 쓰게 만드는 저주가 작가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힌다. 정말로 저주받은 시인은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이와 반대되는 베를렌과 저주받은 시인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시를 쓴다. ‘저주받은 시인의 유일한 독자는 시인 본인이다그들은 독자(獨自)적으로 시를 쓰는 독자(讀者)’.






<‘독자적인 독자’ cyrus가 쓴 주석>







* 65~66

 

 우리는 이 시의 정신을 매우 혐오하는데, 그 정신은 노년기의 불경스러운 미슐레[주1], 여인들의 더러운 속옷 아래, 그리고 파르니 뒤로 숨은 미슐레와의 불행한 만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다른 미슐레는 우리가 그 누구보다도 존경한다).



[1] 해당 인용문에서 베를렌이 언급한 랭보의 시는 첫 성체 배령(1871)이다. 저주받은 시인들을 쓸 무렵(1888), 베를렌은 가톨릭 신자였다. 첫 성체 배령은 제목과 상반되게 가톨릭 신앙과 그리스도교를 조롱하는 시. 그래서 베를렌은 이 시에 드러난 랭보의 반가톨릭적 정신을 혐오한다고 비평했다.

     

쥘 미슐레(Jules Michelet)는 프랑스의 역사가다. 그가톨릭의 권위주의를 비판한 볼테르(Voltaire) 계열의 반교권주의자. 미슐레는 1874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4년 전에 나폴레옹 3세 중심의 군주정(2공화국)이 종식되고, 3공화국이 수립되었다. 3공화국 초창기에 정계에 진출한 공화주의자들은 반교권주의자였다. 첫 성체 배령을 쓴 1871년의 랭보는 반교권주의적 성향이 강했다.

     

젊은 시절 베를렌은 제3공화국 출범을 지지했고, 시민 혁명 정부인 파리 코뮌(Paris Commune)에 협력했다. 랭보 총격 사건 이후부터 보수적으로 변했다그러나 베를렌은 모순적인 인간이었는데, 1878년부터 시를 가르치면서 알게 된 뤼시앵 레티노아(Lucien Létinois)라는 제자와 동성애 관계를 맺는다. 제자의 요절에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베를렌은 방탕한 생활을 한다. 아무튼 종교에 빠져 정신이 늙어버린 말년의 베를렌은 랭보의 반가톨릭적 정신이 불경스럽게 보였을 것이고, 첫 성체 배령이 반교권주의의 영향을 받은 시라고 비평한다

     

베를렌은 종교 비판적인 시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지만, 혁명을 일으켜 국가 권력을 무너뜨린 프랑스 민중을 지지한다. 미슐레는 민중을 프랑스 혁명의 주체로 보는 역사관을 주장했다. 1846년에 발표한 미슐레의 민중(조한욱 옮김, 교유서가, 2021)은 그의 대표작이며 민중 친화적인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이 즐겨 읽었다. 따라서 베를렌이 존경한다는 다른 미슐레민중을 쓴 역사가 미슐레를 의미한다.



[참고 문헌]

 

* 아르튀르 랭보, 한대균 옮김, 나의 방랑(문학과지성사, 2014)

 

* 폴 베를렌, 윤세홍 옮김, 베를렌 시선(지만지, 2013)

 

* 삐에르 쁘띠필, 나애리 · 우종길 옮김, 광인 뽈 베를렌느(역사비평사, 1991)

 

* 롤랑 바르트, 한석현 옮김, 미슐레(이모션북스, 2017)






[2] 베를렌이 저주받은 시인들에서 인용한 랭보의 시는 총 여덟 편이다. 모음들, 저녁 기도, 앉아 있는 자들, 놀란 아이들, 이 잡는 여인들, 취한 배, 첫 성체 배령, 파리가 다시 북적댄다. 이 작품들은 여러 종의 번역본이 있는 랭보 시()집에 수록되어 있다여덟 편의 시가 모두 실린 번역본은 나의 방랑(한대균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4년)이다.








※ 작품명은 번역본에 표기된 제목이며 번역본의 목차 순으로 적었다.



* 지옥에서 보낸 한철(최완길 옮김, 북피아, 2006, 절판)

깜짝 놀란 어린아이들, 저녁의 기도, 모음들, 이를 잡는 여인들, 취한 배


 

* 지옥에서 보낸 한철(김현 옮김, 민음사, 2016, 개정판)

모음, 취한 배

 


* 랭보 시선(이준오 옮김, 책세상, 2001, 절판)

모음들, 최초의 성체 배령, 취한 배

 


* 랭보 시선(곽민석 옮김, 지만지, 2012)

모음들, 이 잡는 여인들, 취한 배

 


* 나의 방랑(한대균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4)

놀란 아이들, 앉아 있는 자들, 저녁 기도, 파리의 향연 혹은 파리가 다시 북적댄다, 모음들, 첫 성체 배령, 이 잡는 여인들, 취한 배


 






* 103






여류 작가들 여성 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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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18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영화 이클립스로 랭보와 베를렌의 이야기를 만났어오. 하지만 시는 저는 대중이라 역시 접근하기 어렵더라구요. 베를렌의 책이 이런 내용인줄은 몰랐는데 책의 구성도 자신을 가엾은 를리앙으로 표현한것도 흥미롭네요

cyrus 2025-08-19 06:32   좋아요 1 | URL
랭보와 베를렌 두 시인의 시는 역시 계속 읽어도 어려운데, 그들이 살아온 과정이 더 흥미로워요. <토탈 이클립스>를 한 번 보고 싶은데, 자막 달린 영화 보기가 어렵네요. ^^;;
 
손 가는 대로 - 조지 오웰 시사 에세이 오웰이 쓴 오웰
조지 오웰 지음, 정철.홍지영 옮김 / 빈서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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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내가 좋아하는 글은 정직하게 쓴 글이다. 정직한 글쓴이는 자신이 느끼고 생각한 것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정직한 글은 글쓴이의 정신(얼)이 돋아난 얼글이다. 얼글은 얼굴의 평안도 방언이다. 글쓴이의 얼굴을 닮은 얼글은 꾸밈새가 없다. 얼글을 읽으면 글쓴이의 참모습이 보인다. 글쓴이의 얼글을 좋아하면 그 글쓴이의 얼굴을 닮고 싶어진다.


작가의 얼굴은 하나지만, 작가의 얼글은 여러 개(, )수많은 얼글을 모아 놓은 한 권의 책은 조각무늬 그림으로 이루어진 작가의 자화상이다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얼글이 많은 작가다. 오웰이 쓴 얼글은 에세이와 칼럼이다우리에게 친숙한 오웰의 얼굴은 소설가 오웰의 모습이다얼굴이 유명해서 얼글을 많이 남긴 에세이 작가 겸 칼럼니스트 오웰의 모습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오웰은 194312월 초부터 19474월 초까지 트리뷴(Tribune)이라는 신문에 칼럼을 연재했다. 칼럼 제목은 ‘As I please’. 우리말로 풀이하면 나 좋을 대로또는 손 가는 대로오웰의 유명한 에세이는 주로 트리뷴에 실린 칼럼이다예전에 나온 오웰의 에세이 선집들은 트리뷴을 포함한 여러 언론 매체에 발표된 칼럼과 에세이를 모은 것이다지난달 초에 출간된 손 가는 대로: 조지 오웰 시사 에세이트리뷴‘As I please’에 연재된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이 에세이 선집에 처음 번역된 오웰의 글이 많이 있다.

 

오웰은 정치적인 글을 예술로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 했다.[주1] 소설가 오웰의 얼굴만 본 독자들은 동물농장과 1984가 예술이 된 정치적인 글이라고 생각한다1940년대 초중반 오웰은 소설가 겸 트리뷴』 전속 칼럼니스트’였이때 당시 오웰은 항상 공격적으로 글을 쓰는[주2] 칼럼니스트로 유명했다. 하지만 칼럼니스트 오웰은 자신의 약점을 가리려고 센 척하는 건방진 건공잡이가 아니. 얼글에 드러난 오웰의 참모습은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고, 공개하는 정직한 작가의 얼굴이다. 과거에 자신이 썼던 트리뷴칼럼에 오류가 발견되면, 이를 정정하는 글트리뷴에 실었다. 오웰은 중국인과 흑인을 경멸하는 감정이 스며든 차별어를 지적하는 칼럼을 썼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첫 소설 버마 시절에 있는 차별어를 직접 고쳐 쓴 개정판을 발표했다.

 

오웰의 정치 칼럼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쓴 매문(賣文)이 아니다. 정치와 예술이 융합한소설을 쓰기 위한 습작이다. 오웰은 짧은 칼럼도 성심껏 썼다. 그는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이나 주목을 끌어내고 싶은 어떤 사실[주3]을 알리려고 했다. 파시즘과 손을 잡은 좌파,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무시하는 작가와 언론인들, 베스트셀러를 과장 광고하는 가식적인 서평만 찾는 출판업계를 낱낱이 공개했다. 오웰의 칼럼은 세상의 모든 불의를 널리 알리는 종이 확성기


오웰은 진실을 무시한 채 거짓 선동을 하는 보수주의자, 공산주의자, 평화주의자들을 비판했다. 우리는 가짜 뉴스가 판치고, 누구나 선동꾼이 되기 쉬운 정치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 8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종이 확성기에서 오웰의 정치적인 목소리는 여전히 흘러나온다칼럼 속에 살아 있는 오웰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다. 








[1, 3]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이한중 옮김, 나는 왜 쓰는가(한겨레출판, 2025), 323.


[2] 조지 오웰, <울워스의 장미> 중에서, 손 가는 대로, 53. 오웰의 트리뷴칼럼은 원래 제목이 없다. <울워스의 장미>는 번역자가 붙인 가제목이다. 이 글은 최근에 나온 나는 왜 쓰는가개정판(한겨레출판)에도 수록되었는데, 이 번역본에 나온 가제목은 트리뷴』의 칼럼 제목인 나 좋을 대로(As I please).

 







<나 좋을 대로 서평을 쓰는 cyrus의 주석과 정오표>




* 이 책에 자주 나오는 단어가 카톨릭이다. 과거에 쓰던 외래어 표기법인데, 1995년에 새로운 외래어 표기법이 확정되면서 가톨릭으로 변경되었다.





* 28




 

 T. E. 흄이 대략 정립한 아이디어는 특히 20년대와 30년대에 크라이테리언을 중심으로 활동한 수많은 작가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윈덤 루이스[4], T. S. 엘리엇, 올더스 헉슬리, 에벌린 워, 그레이엄 그린 등이 모두 그에게 영향을 받았다.

 


 

* 29





 

 ‘패배의 규율을 비통하게 설교하는 페탱, 자유주의를 비난하는 소렐, 러시아 혁명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베르다예프, 복지 보고서로 유명한 베버리지를 비꼬는 비치코머[4], 미 함대의 대포 뒤에서 무저항을 주장하는 올더스 헉슬리 등,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인간 사회가 근본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는 믿음에 대한 거부다.



비치코머에 붙인 역자의 각주 22

Beachcomber. 윈덤 루이스[4]의 필명.



[4] 영국에서 태어난 윈덤 루이스라는 이름의 작가가 두 명이다. 한 명은 작가이자 화가로 활동한 퍼시 윈덤 루이스(Percy Wyndham Lewis, 1882~1957). 또 다른 한 명은 비치코머라는 필명의 칼럼니스트로 유명한 D. B. 윈덤 루이스(Dominic Bevan Wyndham Lewis, 1891~1969).






* 54




 

 대부분 남성 노동자가 하루 담배값으로 1실링 가까이 쓰는 나라에서 장미 나무에 6펜스를 쓰는 사치에 부르주아라는 이름을 붙여야 할까?

 


담배값 담뱃값






* 56, 각주 15




 

 오웰은 에즈라 파운드에 대한 의견을 독립된 에세이로 남겼다. [CW3612] ‘A Prize for Ezra Pound’.[5]



[5] ‘A Prize for Ezra Pound’가 우리말로 번역되었는지 확인해 봤는데, 찾지 못했다. 일단 번역되지 않은 글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혹시 번역된 글이 있으면 알려 주시라


오웰은 무솔리니를 노골적으로 찬양한 파운드를 심심찮게 비판했다. 1949년에 오웰은 <에즈라 파운드의 문학상 수상에 대한 의문(The Question of the Pound Award>라는 글도 썼다. 이 글은 오웰의 에세이 선집 영국식 살인의 쇠퇴(박경서 옮김, 은행나무, 2014)에 수록되었다. 문득 ‘A Prize for Ezra Pound’<에즈라 파운드의 문학상 수상에 대한 의문>과 비슷한 내용의 글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 130~131





 

 한 명은 읽어본 최악의 시라 단언했고

다른 비평자는또 다른 평론가는 헛소리!”라고 한마디 남겼다.

 


다른 비평자는또 다른 평론가는 또 다른 평론가(비평자)





* 171~172, 각주 125








박상은 역 야성의 부르짖음 / 하얀 엄니, 2013. [6]

 


[6] 출판사 이름(동서문화사)이 빠졌다.





* 287






 

 『고문실의 기쁨[7] 같은 책을 사려고 헌책방을 돌아다닌다면 

매우 불쾌한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다.



[7] 이 책의 번역본이 있으며 2018년에 나는 이 책의 서평을 썼다. 존 스웨인, 조석현 옮김, 고문실의 쾌락: 세계 고문 형벌의 발자취(자작나무, 2001년, 절판).





* 267, 325, 382, 401




 


세익스피어 셰익스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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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05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웰의 칼럼을 읽어보고싶어집니다.

cyrus 2025-08-10 17:42   좋아요 1 | URL
오웰은 관심사가 넓어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썼어요. 시시콜콜한 주제를 진지하게 쓰는데요, 그런 오웰의 글 쓰는 태도를 보면서 정말 본인 쓰고 싶은 대로 썼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오웰의 취향과 관심 분야가 다른 독자라면 지루할 수 있어요. ^^;;

stella.K 2025-08-05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오랫동안 카톨릭인 줄 알았는데 그것으로는 검색이 안 되서 나중에야
가톨릭으로 하니까 제대로 나오더군.
근데 이 판으로 <동물농장>이 있네. 왜 이렇게 두껍고 비싼가 했더니
이유가 있었어. 지금 당장을 살 수 없고 1, 2년 후에나 사 봐야겠어. ㅋ
문지혁 작가도 동물농장을 번역했네.
하여간 꼼꽁하기는...! ㅎㅎ

cyrus 2025-08-10 17:44   좋아요 1 | URL
최근에 오웰의 새로운 번역본들이 나오네요. 오웰의 아내에 관한 책도 나왔는데, 다음 달 독서 모임 선정 도서가 오웰의 에세이 선집이에요. 오웰에 대한 새로운 정보들을 미리 수집할 겸 오웰의 책들을 바지런히 읽어야겠어요. ^^

페크pek0501 2025-08-13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웰의 책은 세 권 , 읽은 것 같습니다.
제가 읽은 책이 언급되어 반갑네요.

cyrus 2025-08-15 12:15   좋아요 0 | URL
다음 달 독서 모임 선정 도서가 오웰의 에세이라서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오웰의 소설 <목사의 딸>, <엽란을 날려라>를 읽어보려고 해요. ^^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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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문학과 정치는 의외로 친분이 두텁다. 문학은 특정 정당 정치와 정치인에 힘을 실어주는 지지자다. 종이 안에서 문자로 정치를 언급해 온 문학은 종이 밖으로 나오면 정치적인 목소리가 된다자신이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이 부당하게 억압을 받으면 문학은 격렬하게 저항한다이럴 때 펜은 폭군이 쥔 칼보다 강한 무기로 변한다정치를 위해 펜을 꺾는 문학은 정치인이다. 정치에 지나치게 몰입한 문학은 독재자를 위한 나팔수.







조지 오웰(George Orwell)문학과 정치의 친밀한 관계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는 작가다. 종이 안에서 작가로 살아온 그는 정치적인 견해를 솔직하게 밝혔다. 하지만 오웰이 생각하는 정치는 종이 안에서만 갇혀 있지 않았다. 종이 밖으로 나온 오웰은 펜을 든 작가가 아니었다. 전체주의와 비민주적인 정치에 맞서 싸우기 위해 총을 든 저항군이었다.


오웰은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여 프랑코(Francisco Franco)의 파시스트 정권에 대항했다. 파시스트를 비판하는 유럽의 지식인들이 스페인에 모여 반()파시스트 저항군을 결성했다. 하지만 그들의 결속은 오래가지 못했다. 반파시스트 저항군 안에서도 파시즘이 꿈틀대고 있었다. 반파시스트 저항군에게 합류한 공산주의자들은 스탈린(Joseph Stalin)을 지지했다. 그들은 스탈린의 독재 정치를 외면했고, 이를 비판하는 사회주의자와 트로츠키(Leon Trotsky) 지지자들을 탄압했다. 사회주의자인 오웰은 저항군 안에서 일어난 갈등과 내전을 르포르타주 카탈로니아 찬가(Homage to Catalonia)에서 상세히 밝혔다. 스페인 내전은 오웰의 문학과 정치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사건이다.


오웰은 문학과 정치가 어울려 지내는 것을 인정했지만, 정치에 아부를 떠는 문학을 비판했다. 정치가 문학을 송두리째 집어삼키면 표현의 자유를 없애는 거대한 검열관이 된다오웰은 나는 왜 독립노동당에 가입했나라는 글에서 정치에 거리를 두려는 충동을 느낀 작가는 평화롭게 책을 쓰는 데 전념한다고 했다정치에 굴복한 문학을 경멸하는 작가는 문학과 정치를 철저히 분리하려고 애쓴다오웰은 펜에 좀 더 힘을 주면서 나는 왜 쓰는가에서 문학과 정치의 관계를 강조한다. 이 글에서 그는 예술(문학)과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라고 말한다. 오웰은 정치에 무관심한 문학도 경계한다. 흐리멍덩한 문학은 표현의 자유를 조용히 죽이는 정치를 찬양한다. 자신들의 펜을 옥죄는 상황임을 모르는 것도 문제지만, 알면서도 침묵하는 태도가 더 심각하다. 문학이 정치를 외면할수록 전체주의와 독재에 찔러야 할 펜 끝이 무뎌진다. 오웰의 정치적인 글쓰기는 불의를 감지하는 순간 시작된다.


오웰은 파시즘을 지지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한 작가들을 언급하면서 비판한다지금도 독자들에게 영향을 주는 작가들만 언급하자면 미국의 시인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타임머신투명 인간을 쓴 작가로 유명한 H. G. 웰스(Herbert George Wells), 탐정 브라운 신부(Father Brown)’ 시리즈를 쓴 영국의 추리소설 작가 G. K. 체스터턴(G. K. Chesterton) 등이 있다문학과 정치를 분리하려는 독자들은 정치색이 짙은 문학을 피한다. 이들은 파시즘과 제국주의를 찬양하거나 간접적으로 지지한 작가의 글을 거부한다. 글을 잘 쓴다고 해도 자신과 정치적 견해와 정반대인 작가는 반갑지 않다. 그러나 오웰은 비뚤어진 정치에 고개를 푹 숙인 작가들을 비판하면서도 그 작가들의 문학적 성취는 인정한다.


작가의 정치적 견해에 동의하는 반응과 작가의 문학을 즐기는 행위가 일치한다고 믿는 독자라면 정치 대 문학: 걸리버 여행기에 대하여(약칭 정치 대 문학’)를 읽어야 한다. 걸리버 여행기를 쓴 작가로 유명한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는 당대 영국 정치를 비판하는 팸플릿도 썼다. 어린이를 위한 동화로 알려진 걸리버 여행기는 사실 18세기 영국 사회와 정치를 풍자한 소설이다. 오웰은 스위프트의 정치적 견해에 동의하지 않지만, 여덟 살부터 처음 읽은 이후로 여섯 번 이상 읽었다는 걸리버 여행기를 극찬한다. 오웰은 문학을 감상할 수 있는 자유를 강조한다. 글에서 드러난 작가의 정치색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분노하게 되면 그 작가의 문학적 매력과 글의 장점을 즐기지 못한다(정치 대 문학, 358).


작가와 리바이어던(Writers and Leviathan)정치적인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에게 전하는 충고와 같은 글이다. 리바이어던은 성경에 나오는 괴물이다. 오웰은 문학을 침범하는 정치와 이데올로기를 이 괴물로 비유한다오웰은 작가의 정치적 활동을 독려하면서도 정당을 위해서 글을 쓰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정당이 공유하는 이데올로기를 찬양하는 글쓰기는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죽이는 일이다문학을 비굴하게 만드는 정치는 위험하다그러나 문학과 정치를 못 만나게 막을 수 없다


문학과 정치가 잘 협력하면 훌륭한 예술 작품이 나온다. 오웰은 자신의 대표작 동물농장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융합해 보려고 시도한 소설이라고 했다(나는 왜 쓰는가, 325). 오웰은 문학과 정치를 결합한 새로운 소설을 쓰고 있다고 밝히면서도, 이 작품은 실패작이 될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예측은 빗나갔다. 개인의 삶을 억압하고 파괴하는 전체주의의 위력을 암울하게 보여준 1984는 성공했다.













오웰의 에세이 선집 나는 왜 쓰는가15년 만에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했다구판[주1]에 수록된 에세이는 총 29. 이번 개정 증보판에는 국내에 처음 소개된 에세이 2이 추가되었다사진 도판의 배치가 달라졌다. 구판에 실린 도판들은 갓난아기부터 말년까지 오웰의 모습이 남아 있는 사진들과 글이 써진 시대적 배경을 보여주는 역사 자료와 같은 사진들이다구판의 사진 도판은 글 중간에 삽입되어 있었다. 개정 증보판에서는 사진 도판이 책 마지막에 나온다. 그런데 구판에 있었던 사진 도판 몇 개가 빠졌다.






[1] 나는 왜 쓰는가구판 

서평 <나는 왜 조지 오웰을 읽는가>

2010111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haesung/4234956







<cyrus가 만든 주석과 정오표>



* 134




 

 그의 책 역사 개괄[주2]에서 가장 큰 악한은 군인 모험가인 나폴레옹이다.

 


[주2] 인용한 문장은 웰스, 히틀러 그리고 세계 국가에 나온다. 역사 개괄 H. G. 웰스가 쓴 책이다. 원제는 <Outline of History>. 1920년에 출간된 세 권짜리 책이다. 지구의 기원부터 제1차 세계 대전까지의 세계사를 연대순으로 정리한 책이다. 1922년에 웰스는 방대한 <Outline of History>를 한 권으로 요약한 <A Short History of the World>를 썼다. 이 책의 국역본은 총 세 권이다. 


* 《웰스의 세계 문화사(지명관 옮김, 가람기획, 2003, 절판)


* 《H. G. 웰스의 세계사 산책: 세계 대문호와 함께 인류 문명의 위대한 역사를 걷다(김희주 · 전경훈 함께 옮김, 옥당, 2023)


* 《인류의 세계사: 생명의 탄생부터 세계 대전까지, 인류가 걸어온 모든 역사(육혜원 옮김, 이화북스, 2024).





* 205






정신분열증 환자 조현병 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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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5-07-26 1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책 오래 전에 사 놓고 안 읽고 있네. 그 사이 새판이 나왔구나.
그곳 대프리카는 어떠니? 여긴 넘넘 덥다. 그러다보니 의욕부진이다. 서프리카될 것 같다. 이미 된 거 같고. 휴~

cyrus 2025-07-30 06:47   좋아요 1 | URL
서울 더위는 대구랑 비슷하던데요. 차이점이라면 대구 더위는 습함이 느껴진다면, 서울 더위는 햇볕이 뜨겁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
 
생명으로 우리는 귀엽다
임주혜 지음 / 행복우물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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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협찬받고 쓴 서평이 아닙니다.


평점


4.5점  ★★★★☆  A






브론테 자매는 영국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자매다. 큰언니 샬럿(Charlotte Brontë)의 대표작은 제인 에어. 둘째 언니 에밀리(Emily Brontë)폭풍의 언덕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Wuthering Heights를 썼다《폭풍의 언덕》은 그녀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소설이다. 막내 앤(Anne Brontë)은 두 편의 소설을 썼다두 동생을 먼저 떠나보낸 샬럿은 앤의 첫 번째 소설 아그네스 그레이를 다시 펴내는 일을 맡았다. 그러나 앤의 두 번째 소설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을 다시 출간하고 싶지 않은 작품이라고 혹평했다20세기 중반이 지나서야 앤의 소설들은 두 언니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은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작품이지만, 드라마와 연극으로 각색될 정도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앤의 대표작이다.


아그네스 그레이는 가정교사의 사회적 지위가 잘 묘사된 소설이다. 가정교사는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들이 선호한 직업이다. 소설의 주인공 아그네스 그레이(Agnes Grey)는 가정교사로 일했던 작가의 삶이 반영된 인물이다아그네스는 가정교사를 하찮게 대하는 귀족의 집에 생활하면서 귀족의 자녀들을 가르친다. 그녀가 가르치는 톰 블룸필드(Tom Bloomfield)는 예의범절을 모르는 소년이다. 톰은 아주 못된 버릇이 있다. 정원에 있는 새를 잡아서 잔인하게 죽인다. 아그네스는 동물을 괴롭히는 행동이 잘못되었다면서 꾸짖지만, 톰의 어머니와 삼촌은 톰의 행동을 옹호한다. 톰의 삼촌은 조카의 동물 학대를 지켜보는 것을 즐긴다아그네스는 새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고통을 느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톰의 어머니는 모든 생명체가 인간의 편의를 위해 창조되었다면서 동물 학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오히려 톰의 어머니는 동물 학대를 지적하는 아그네스의 지도 방식에 문제가 있다면서 비난한다. 아그네스는 인간의 쾌락을 위해 동물을 고문할 권리가 없다(We have no right to torment them for our amusement)고 맞받아친다


우리는 동물의 생명도 인간의 생명처럼 소중하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안다. 하지만 동물을 존중하는 마음을 말과 글로 표현하는 일에 서툴다왜냐하면 동물을 위한 권리의 필요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동물권을 생각해야 하는 상황을 피할 수 없게 된 우리는 마음으로 아그네스를 지지하지만, 우리의 입은 톰의 어머니가 된다인간은 언어 능력을 가진 유일한 동물이다. 무언가를 생각하고 감정을 느낀 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일에 익숙한 우리는 종종 착각에 빠진다. 말하지 않는 동물은 우리처럼 생각하지 않으며 감정이 없다고 생각한다.


임주혜 작가의 두 번째 책 생명으로 우리는 귀엽다: 생명 존중과 동물권 그리고 존재하는 것에 대한 사유는 우리의 언어가 동물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 이유를 알려준다우리의 입은 듣고 있지만 말하지 않는 동물에게 말을 걸 수 있다. 당연히 동물은 인간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동물에게 대화를 시도하는 행위가 부질없는 것은 아니다. 동물을 존중하는 자세다. 저자는 우리의 언어가 동물의 목소리가 되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동물과의 대화는 인간과 동물을 같은 위치에서 마주 바라보게 만들며,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공생 관계를 잊지 않게 해준다.







작가는 책에 실린 모든 글을 거의 혼자 쓰지 않았다. 작가와 함께 사는 반려견 고동이(책 앞표지의 모델)가 언급된 글은 작가와 고동이와 함께 쓴 글이다고동이는 눈빛과 몸짓으로 작가에게 말을 걸고, 작가는 고동이의 마음을 읽는다인간과 동물이 아닌 생명과 생명으로 교감하는 일상은 귀엽다.


동물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방식은 다양하다. 그래도 동물 철학대표적인 학자가 피터 싱어(Peter Singer)와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을 공부하지 않고도, 동물권을 지키기 위한 비건(vegan)이 되지 않아도, 동물권 운동 단체에 가입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동물과 함께 살 수 있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인간에게 무참히 짓밟힌 동물들의 실태를 가까이서 본 동물권 운동가들은 저자가 불편한 실상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면서 동물권 문제를 천천히 고민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저자는 비건 중심의 세상을 조급하게 바꾸려는 실천이 때론 나의 것(생각)이 가장 옳다라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느리면서도 세밀한 고민이 빠진 동물권 운동은 다른 동물 또는 타자를 차별하고 혐오를 생산할 수 있다저자가 강조한 대로 동물의 삶에 대한 통찰과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을 멈추지만 않으면 된다. 동물권을 어떻게 확보해야 할지 고민하는 일을 멈추는 태도는 동물과의 공생 관계를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의 언어와 입은 내 생각을 지키기 위한 무기가 되어선 안 된다. 내 생각이 옳다고 믿는 입은 꾹 다문 상태였다가 나와 다른 목소리를 만나면 세게 때릴 자세로 돌변한다. 타자를 위협하는 언어는 포악하다. 반면 다른 생명을 존중하는 입은 계속 움직인다. 늘 열려 있다. 동물에 대해 생각하고 느낀 점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그리고 자신의 무지함과 오류를 정직하게 인정한다. 우리가 가져야 할 입은 공생의 의미를 천천히 알아가면서 진정한 공생을 말하는 입이다. 이런 입에서 나온 언어는 포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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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1-25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시로선 꽤 앞선 생각이었겠구나. 나도 어렸을 때 잠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어른들의 생각이 그대로 전수된 거지 뭐.
지금도 비행하다 빌딩 유리창에 부딪혀 즉사하는 새가 그렇게 많다더군. 인간이 죄가 많아. ㅠ

cyrus 2024-11-29 19:44   좋아요 0 | URL
아그네스 그레이가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말을 동물권 운동 구호로 써도 전혀 낯설지 않아요. ^^
 
한밤의 읽기
금정연 지음 / 스위밍꿀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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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4점  ★★★★  A-





후덥지근한 밤은 무겁다. 시곗바늘이 자정으로 향할수록 밤은 점점 무거워진다. 더위에 지친 몸은 열대야의 무게를 느낀다. 열대야를 견디지 못한 몸은 눕는다. 내가 언제 눕는지 기다리고 있었던 졸음이 찾아온다. 졸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 눈꺼풀이 눈동자를 덮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얼른 자야지


그러자 한쪽 손이 뒤척거린다. 손은 빨리 자기 싫다. 항상 붙어 다니는 스마트폰과 더 놀고 싶다. 손도 지쳤을 텐데 마지막 힘을 내서 스마트폰으로 다가간다. 손가락 끝이 스마트폰에 닿자, 쉬고 있던 스마트폰이 네모 눈을 뜬다. 네모 눈에서 빛이 나온다. 스마트폰의 빛은 어둠과 졸음을 깰 정도로 세다. 톡 쏘는 빛에 눈꺼풀이 놀라서 올라간다. 잠에서 깬 눈동자는 스마트폰의 빛나는 눈과 마주친다. 스마트폰이 재미있는 동영상들을 눈앞에 보여준다. 이거 봐봐, 재미있겠지? 눈동자는 줄줄이 지나가는 여러 편의 짧은 동영상을 쫓아간다. 보고 싶은 동영상이 너무 많다. 멈출 수 없는 재미. 눈동자는 즐겁지만 불안하다‘과연 일찍 잘 수 있을까?’

 

사람들은 피곤해도 자기 전에 항상 스마트폰과 눈 맞춤한다. 그렇지만 스마트폰은 같이 있으면 힘이 나는 애인이 아니다. 오히려 달콤한 동영상으로 유혹해서 우리의 소중한 힘을 빼앗아 가는 서큐버스(Succubus)와 인큐버스(Incubus). 한밤중에 스마트폰과 놀고 나면 아침에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아침이 되자마자 일어날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하루를 살아가는 힘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서평가 금정연스마트폰과 함께하는 한밤의 놀이에 익숙해진 우리 사회가 잘못됐다고 진단한다. 한국 사회는 사람들에게 책을 읽을 여유를 주지 않는다대부분 사람은 스마트폰 중독이 나쁜 걸 알면서도 스마트폰을 보면서 뇌에서 퐁퐁 솟아오르는 쾌락을 잊지 못한다. 스마트폰 앞에서 너무나도 쉽게 고개를 숙이는 본인의 통제력이 저질이라면서 자책한다하지만 금정연은 사람들이 독서를 포함한 여가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스마트폰의 즐거움에 의존하게 됐다고 주장한다. 야근과 주말 근무는 노동자의 몸과 정신을 지치게 만든다. 초과 근무 수당은 여가비보다는 생활비로 쓰이게 된다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피곤한 상태에서도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놀이를 선호한다. 스마트폰은 피곤해도 일찍 자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놀아주는 파트너로 최적이다.


금정연은 한밤의 놀이를 즐기기 위한 새로운 파트너을 추천한다. 그는 스마트폰이 독점한 한밤의 놀이대신에 한밤의 읽기를 해보자고 제안한다. 그가 말하는 한밤의 읽기는 단순히 심야 독서를 뜻하지 않는다한밤의 읽기는 프랑스의 비평가 헬렌 식수(Hélène Cixous)가 처음으로 언급한 표현이다그녀는 독서를 몰래 읽기라고 정의한다. 밤은 무언가를 몰래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시간대다. 독자는 자신만의 여행을 떠나기 위해 종이로 만든 마법의 양탄자를 준비한다. 종이 양탄자를 펼치면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다종이 양탄자의 정체는 이다


대부분 사람이 주로 읽는 책은 자기계발서와 실용서. 그들이 읽는 것은 지금 여기에 있는 것들이다. 목돈을 만들 수 있는 금융 정보, 요즘 유행하는 것들이 지금 여기에 다 있다. ‘지금 여기에 있는 것들은 살아가는 데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것들이다. 자기계발서와 실용서는 자신을 보러 온 독자들에게 명령한다. ‘당신, 잘살고 싶어? 그러면 주변을 돌아봐. 현실 감각이 떨어지면 당신은 뒤처져.’ 자신이 남들보다 게으르다고 믿는 독자는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는 책을 찾는다.


한낮의 읽기’가 좋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소설과 인문학 도서를 피한다. 이런 책들은 지금 여기에 없는 것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소설에 묘사된 지나간 날들, 과거가 돼버린 사람들의 이야기, 죽은 철학자들이 남긴 생각들은 흥미롭지만 실용적이지 않다한낮의 읽기에 익숙한 독자는 쓸모없는 잡학에 관심이 없다. 그들은 상상력을 중시하고, 철학과 잡학에 푹 빠진 독자를 이해하지 못한다. 현실에 아주 밝은 한낮의 독자들이 많아지자, 책 읽는 몽상가와 철학도는 자신만의 은신처에서 몰래 책을 읽는다. 잠시 현실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에 없는 것을 만나러 떠난다. 은신처가 조금 어두워도 상관없다. 그들이 종이 양탄자를 펼치는 순간, 대낮은 밤으로 변신한다한밤의 읽기는 고요하게 시작된다.


금정연은 한밤의 읽기대낮에 탈주하는 읽기로 표현하기도 한다. 마법의 종이 양탄자는 독자를 어딘가 다른 곳으로 보내준다. ‘한낮의 읽기는 살기 위해서 책을 읽는 행위라면, ‘한밤의 읽기는 오로지 읽기 위해서 읽는 행위다. 두 유형의 독서 중에 어느 한쪽만 좋다고 말할 수 없다금정연이 말하길 독자는 고정적인 존재가 아니다. 한낮/한밤의 읽기만 오랫동안 하다가 어느 순간에 한밤/한낮의 읽기를 선호할 수 있다. 한낮의 읽기한밤의 읽기를 동시에 할 수 있다. 나는 하얀 밤(백야, 白夜)의 읽기라고 부르고 싶다.


무거운 여름밤에 지쳐서 잠들고 싶지 않으면 책 읽는 밤을 만들어야 한다. 매일 책 읽는 밤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 피곤해도 책이 눈에 들어오고, 두 손이 스마트폰을 세게 밀칠 힘이 있다면 한밤의 읽기가 이루어진다. 힘이 부족해서 책이 반갑지 않으면 쉬면 된다한밤의 읽기가 즐거우면 무거운 밤이 무섭지 않다마법의 양탄자가 된 책은 절대로 독자를 지루하게 하지 않는다어떻게 하면 낮에 봤을 땐 평범했던 책을 ‘마법의 책탄자로 만들 수 있을까? 책을 펼치기 전에 주문을 외워 보자






책탄자야, 내 눈앞에서 펼쳐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이 무거운 밤을 뚫고 어디든 날아 보자꾸나.



흠, 내가 봐도 정말 이상(李箱)한 주문이군. 

그러니 밤에 몰래 읽기 전에 주문도 몰래 할 것






※ cyrus의 정오표



* 31

 




도블라토프의 책은 고작 네 권이 번역되어 있을 뿐입니다.



* 37





 북쪽에 있는 수용소에서 경비원으로 군복무를 하는데 이때의 경험이 훗날 수용소라는 소설이 됩니다. 아쉽게도 국내에는 번역되지 않았고요.


 



세르게이 도블라토프(Sergey Dovlatov)는 미국에 이주한 러시아 작가다. 지금까지 국내에 나온 도블라토프의 책은 네 권이 아니라 총 다섯 권이다. 국내에 출간된 순서로 열거하면 우리들의, 보존지구, 외국 여자, 여행 가방, 수용소: 교도관의 수기. 이 책들 모두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출판사에서 만들었다.







이 책의 첫 번째 글은 원래 강연을 위해 만들어진 글이다. 수용소: 교도관의 수기가 출간된 해는 2020(5)이다. 도블라토프의 작품 세계를 주제로 한 강연이 이루어진 시간이 수용소》가 출간되지 않은 20205월 이전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세 명의 작가 중 한 사람이 도블라토프라고 언급했다. 도블라토프를 좋아하는 금정연이라면 수용소: 교도관의 수기를 분명 입고했을 것이다. 그럴 리 없겠지만, 저자가 수용소가 번역된 사실을 정말 모르고 계신다면 다음 입고 도서목록에 포함시켰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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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7-29 11: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ㅎㅎ 너의 글은 묘한 중독성이 있어. 뭔말인지 알지? ㅋㅋㅋ
왠지 알라딘이 이 리뷰로 너에게 이달의 당선작을 줄 것 같아. ㅋㅋ
심심찮게 금정연이 많이 나오네. 책표지가 맘에 들긴하는데 페이지 수에 비하면 좀 비싸네. 중고샵에 나오면...

cyrus 2024-08-05 06:55   좋아요 1 | URL
나름 재미있게 써봤어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