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예찬 - 서점 멸종 시대에 쓰는 좋은 서점론
제프 도이치 지음, 장혜인 옮김 / 니라이카나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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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480장이 만나서 모이면 1림(ream)이다. 림은 종이를 셀 때 쓰는 단위다. 서점에 있는 모든 책의 종이를 세면 몇 림일까? 종이를 일일이 세는 것은 엄청 힘들다. 종일 해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종이의 원료는 나무의 섬유질을 추출해서 만든 목재 펄프(wood pulp)다. 펄프가 된 나무들을 모으면 숲(wood)을 만들 수 있다. 서점의 책들은 숲의 흔적이다. 종이책이 된 숲(書林)의 자취가 있는 서점은 서림(書林)이다.


서점은 다양한 종류의 책이 주렁주렁 달린 숲이다. 서점을 찾는 애서가는 책 숲을 마음껏 둘러본다(browse). 종이책이 그득한 서점은 서림이다. 애서가들의 발길이 잦은 서점은 좋은 서림이다. 서림에 매료된 애서가는 서가를 둘러보면서 책을 훑어본다(browse).







미국의 비영리 서점 세미너리 코옵(Seminary Co-op)은 ‘책을 훑어보는 경험’을 만끽할 수 있는 서림이다. 세미너리 코옵을 운영한 제프 도이치(Jeff Deutsch)의 《서점 예찬》은 점점 더 귀해지는 좋은 서점의 특징들을 소개한 책이다. 그는 좋은 서점에 가면 ‘책을 훑어보려는 충동’이 생긴다고 말한다. 훑어보기(browsing)는 책을 곱씹거나 되새김질하는 일이다. 책을 훑어보는 독자는 책을 파고들면서(digging) 먹는 책벌레와 같다. 책벌레는 서림을 갉아먹는 해충이 아니다. 책벌레는 서림을 맛있게 먹을 줄 안다.







* 리디아 데이비스, 서제인 옮김 《세부 속으로: 더 자세한 쓰기, 사라짐의 쓰기에 대하여》 (에트르, 2026년)

 

* 제임스 우드, 노지양 옮김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 삶과 문학, 읽고 쓰기에 관한 네 번의 강의》 (아를, 2025년)

 

* 제나 히츠, 박다솜 옮김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 내면의 삶을 기르는 배움에 대하여》 (에트르, 2025년)




똑똑한 지성인(知性人)이 좋은 책벌레가 되는 건 아니다. 좋은 책벌레는 일독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을 찾는 일을 성실히 하는 지성인(至誠人)이다. 바지런한 책벌레는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는 책을 발굴한다(dig). 독자들의 눈빛을 받아본 적이 없는 평범한 책은 서림에 어울리지 않는 잡초(雜草)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책벌레는 잡초 속으로(Into the Weeds) 스며든다. 


소설가 리디아 데이비스(Lydia Davis)는 에세이  《세부 속으로》(원제: Into the Weeds)에서 어떤 것에 신경 쓰이면(bother), 그것을 글감으로 삼아 글을 쓴다고 밝혔다. 마찬가지로 책벌레는 신경 쓰이는 주제를 만나면 그 주제와 관련된 책들을 모아서 탐독한다. 독자들이 신경 쓰지 않는 책도 책벌레는 꼼꼼하게 관찰하듯이 읽는다. 외골수 책벌레는 책에 적힌 사소한 단어를 대충 보지 않는다. 단어를 자세하게 파고들어(Into the Weeds) 자신만의 생각을 펼친다. 


문학 비평가 제임스 우드(James Wood)는 독자를 ‘침묵의 비평가’라고 했다. 책벌레는 ‘자기 의견을 말할 줄 아는 혀(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 136쪽)’를 가진 침묵의 비평가다. 침묵의 비평가는 자신만의 잡초(雜抄)를 직접 써서 펼친다. 잡초(雜抄)가 무성한 좋은 서림은 독자들의 잡다한 생각과 취향이 가지가지 피어 있다. 


평범한 서점의 주인은 소매업자처럼 일한다. 그들은 책을 판매하는 일에 능숙하다. 자기한테 이익이 되는 일만 한다. 책을 사는 손님들을 끌어모으려고 서점에 잘 팔리는 책을 갖춘다. 상품성이 떨어지고 수익성이 낮은 책을 거들떠보지 않는다. 잘 팔리지 않는 책을 찾는 독자를 하대한다.


좋은 서림의 주인은 애서가, 애독자이자 책벌레 애호가이기도 하다. 애서가는 잘 팔리지 않는 책의 매력을 눈여겨본다. 책을 못 팔아도 크게 아쉬워하거나 초조해하지 않는다. 은은한 매력이 있는 책을 알아보는 책벌레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린다. 책벌레 애호가인 서림의 주인은 쓸모없는 지식이나 주제에 파고든 책벌레를 쫓아내지 않는다. 책벌레의 ‘무용한 공부와 독서’를 북돋아 준다. 공부하는 책벌레는 호기심과 궁금증이 많고, 배움을 사랑하는 독자다(제나 히츠,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 226쪽). 


서림은 더 많이 배우려고 하는 학생과 같은 독자들을 양성하는 곳(seminary)이다. 세미너리 코옵은 상품성과 수익성을 중시하는 서점이 아니다. 무용한 지식을 공부할 수 있는 서점이다. 제프 도이치는 효율성이 떨어지는 서점 운영 방식을 고수한다. 그는 오히려 책벌레를 좋아하는 서점과 배움을 좋아하는 독자가 지닌 비효율성이 평가절하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세미너리 코옵처럼 ‘현명한 비효율성’을 추구하는 서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좋은 서림의 주인은 책의 판매 부수가 저조해도 책을 훑어보는 책벌레들이 많이 와주길 바란다. 서점 주인은 책을 사지 않는 책벌레가 달갑지 않다. 심지어 책벌레의 관심사와 취향을 무시한다. 하지만 서림의 주인은 책벌레를 ‘서림의 주인공’으로 격상시킨다. 책벌레의 독서 취향이 생소하고, 책벌레의 공부 방식이 서툴러도 지속적으로 격려한다. 서림은 비효율적으로 살아가는 책벌레를 위한 안식처다.









1928년 11월 21일 조선일보에 연재된 

벽초 홍명희의 장편소설 《임꺽정》 1회




서림(徐林)은 임꺽정의 책사(策士)다. 관군에게 사로잡힌 서림은 임꺽정을 배신했다. 책사(冊肆)는 잘 팔리는 책들만 진열한(肆) 서점이다. 책사(策士)처럼 행동하는 서점 주인은 만듦새가 부족한 책들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 서림(徐林)이 책사(冊肆)를 운영했으면 독자를 기만하면서 책을 팔았을 것이다.


서림(書林)은 독자를 배신하지 않는다. 좋은 서림은 베스트셀러 목록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단 한 명의 독자가 알았으면 하는, 은은한 매력을 지닌 책들의 목록을 만든다. 좋은 서림은 유명한 지식인, 출판인, 북튜버들이 추천한 책들만 진열하지 않는다. 서림을 드나드는 ‘침묵의 비평가’인 무명의 독자들이 추천한 책을 읽고, 큐레이팅한다. 서림에 정직하게 책을 소개하는 주인과 정독하는 독자들이 살고 있다.








《서점 예찬》에 나오는 책을 가지고 있는 

cyrus가 만든 주석




[출판사에 관한 주석]


‘니라이카나이’는 2020년에 등록되어 《서점 예찬》을 포함한 총 5권의 책을 만든 출판사다. 니라이카나이(ニライカナイ)는 오키나와섬이 있는 류큐 열도(난세이 제도)의 토착 민족 류큐인(琉球人)의 전통 설화에 묘사된 낙원이다. 이 낙원은 바다 저 멀리 동쪽에, 혹은 바다 밑바닥에 있다고 여겨진다. 오키나와현에 낙원의 이름에서 따온 다리가 있다.





 


니라이카나이 출판사 대표는 오키나와에서 2년간 생활했는데, 우리나라로 돌아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 니라이카나이 다리였다고 밝혔다. 그래서 ‘책과 사람을 잇는 다리’와 같은 출판사가 되겠다는 마음을 담아 출판사 이름을 니라이카나이로 정했다고 한다.



(출처: 니라이카나이 출판사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niraikanai_books/)






책 마지막에 ‘이 책에 나오는 책’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참고문헌 목록이 있다. 서점을 운영한 저자의 추천 도서 목록으로도 볼 수 있는데, 애서가가 흥미를 느낄만한 책들이 포함돼 있다. 목록에 국역본 제목이 없는 책, 저자 이름과 번역자 이름이 빠진 책, 출판사 이름이 잘못 적힌 책이 있다.





* 272쪽





『아리스토텔레스 선집』, 조너선 번즈 [주1]


『도서관』(Library: An Unquiet History), 매슈 배틀스 [주2]






[주1] 아리스토텔레스, 김재홍 · 김헌 · 유재민 · 임성진 · 조대호 함께 옮김 《아리스토텔레스 선집》 (도서출판 길, 2023년, 품절) 


국역본은 테런스 어윈(Terence Irwin)과 게일 파인(Gail Fine)이 편집한 아리스토텔레스 선집(1995년)을 참고한 책이다. 그리스 고전학자들이 많이 참고하는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은 독일의 문헌학자 아우구스트 이마누엘 베커(August Immanuel Bekker)가 편집한 판본(Corpus Aristotelicum, 아리스토텔레스 저작집, 1830~1870년)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선집》은 베커의 『아리스토텔레스 저작집』에 실린 주요 저서들의 일부를 발췌해서 번역한 것이다.




[주2] 매튜 베틀스, 강미경 옮김 《도서관, 그 소란스러운 역사: 지식의 생성과 소멸의 은밀한 기록》 (지식의숲, 2016년, 절판)






* 273쪽





『영웅』(On Heroes), 토머스 칼라일 [주3]


[주3] 토머스 칼라일, 박상익 옮김 《영웅 숭배론》 (한길사, 2023년)






* 273쪽





『연설』(Orations), 키케로 [주4]


[주4] 키케로, 전영우 옮김 《연설가에 대하여: 로마의 실천 변론법》 (민지사, 2013년, 절판)






[곧 나올 책] 키케로, 이선주 옮김, 《연설가론》 (아카넷)






* 274쪽





『쓸모없는 지식의 효용』, 에이브러햄 플렉스너 [주5]





[주5] 에이브러햄 플렉스너 · 로버르트 데이크흐라프 함께 지음, 김아림 옮김 《쓸모없는 지식의 쓸모: 세상을 바꾼 과학자들의 순수학문 예찬》 (책세상, 2020년, 절판)


에이브러햄 플렉스너(Abraham Flexner)는 프린스턴고등연구소(Institute for Advanced Study, IAS)의 설립자이자 초대 소장이다. 학자들이 무용한 지식을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순수학문 연구소다. 《서점 예찬》의 역자는 ISA를 ‘고급 학문연구소’로 번역했다. 로버르트 데이크흐라프(Robbert Dijkgraaf)는 네덜란드의 이론물리학자로, 9대 프린스턴고등연구소 소장(2012~2022년)으로 재직했다. 여담으로, 3대 프린스턴고등연구소 소장은 로버트 오펜하이머(Robert Oppenheimer)다.

 

번역본 제목으로 정해진 『쓸모없는 지식의 쓸모』는 플렉스너가 쓴 에세이의 제목이다. 이 글은 무용한 연구가 왜 중요한지를 알려준다. 번역본에 로버르트 데이크흐라프의 에세이 『내일의 세계』도 수록되었다.






* 275쪽





『시간 맥동의 비밀』(The Secret Pulse of Time), 스테판 클라인(Stefan Klein) [주6]


[주6] 슈테판 클라인, 유영미 옮김 《안녕하세요, 시간입니다: 심리학과 뇌과학이 파헤친 시간의 비밀》 (뜨인돌, 2017년, 절판)


슈테판 클라인, 유영미 옮김 《시간의 놀라운 발견: 시간의 미스터리에 빠진 사람들을 위한 시간 사용 설명서》 (웅진지식하우스, 2007년, 절판)






* 275쪽





『철학자들의 생애』,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주7]






[주7]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김주일 · 김인곤 · 김재홍 · 이정호 함께 옮김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나남출판, 2021년, 전 2권)






* 276쪽





『황금 노트북』, 도리스 레싱 [주8]


[주8] 도리스 레싱, 권영희 옮김 《금색 공책》 (창비, 2019년, 전 2권)


도리스 레싱, 안재연 · 이은정 함께 옮김 《황금 노트북》 (뿔, 2007년, 전 3권, 절판)






* 277쪽





『백과전서』, 드니 디드로, 장 르롱 달랑베르 [주9]





[주9] 드니 디드로, 이충훈 옮김 《백과사전》 (도서출판b, 2014년)


정은주 옮김 《백과전서 도판집》(프로파간다, 2017년, 전 5권)



총 35권으로 구성된 <백과전서>(Encyclopédie)는 디드로(Denis Diderot)와 달랑베르(Jean-Baptiste Le Rond d’Alembert)가 편집자로 참여했고, 여러 명의 계몽사상가가 7만 개 넘는 항목을 작성했다. 1751년에 1권이 출간되었고, 35권은 1772년에 출간되었다. <백과전서> 서문은 달랑베르가 썼다.

 

《백과전서 도판집》은 원전 <백과전서> 17권과 ‘과학, 인문, 기술에 관한 도판집’이라는 부제가 달린 도판집 11권을 번역한 책이다. 《백과사전》은 원전 <백과전서> 제5권에 실린 디드로의 「백과사전」 항목 전문을 번역한 책이다.

 






* 278쪽





『참깨와 백합 그리고 독서에 관하여』, 유정화 옮김, 민음사, 2018 [주10]


[주10] 저자 이름이 빠졌다. <참깨와 백합>은 존 러스킨(John Ruskin)의 강연문이며 유정화가 번역했다. <독서에 관하여>는 <참깨와 백합>을 번역한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가 쓴 서문이다. <독서에 관하여>는 불문학자 이봉지가 번역했다.






* 278쪽






『의식은 육체의 굴레에 묶여』, 수전 손택, 김선형 옮김, 고양, 2018 [주11]





[주11] 출판사 이름이 ‘고양’이 아니라 ‘이후’다. 《의식은 육체의 굴레에 묶여》와 《다시 태어나다》(김선형 옮김, 이후, 2013년)는 수전 손택(Susan Sontag)이 1947년부터 1980년까지 썼던 일기와 노트에 기록된 잡문을 엮은 책이다. 두 권 모두 절판되었다.

 






* 279쪽





『흑인 소년』, 리처드 라이트 [주12]












[주12] 리처드 라이트, 정병조 옮김, 《흑인 문학전집 1》 (휘문출판사, 1965년, 절판), 수록된 작품명은 『블랙 보이』다. 


리처드 라이트, 정병조 옮김, 《블랙 보이》 (미문출판사, 1968년, 절판)


리처드 라이트, 이충률 옮김, 《깜둥이 소년》 (푸른미디어, 1998년, 절판)






* 272쪽





그웬돌린 브룩스(Gwendolyn Brooks) [주13] 









[주13] 그웬돌린 브룩스(1917~2000)는 미국의 시인이다. 1950년에 퓰리처상 시 부문(Pulitzer Prize for Poetry)을 받았다. 퓰리처상을 처음으로 수상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다. 흑인 문인들의 시와 에세이, 희곡을 모은 《흑인문학전집 5》에 브룩스의 시 3편(「모성애」, 「앞뜰의 노래」, 「그대가 일요일을 잊었다면」)이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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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속으로 - 더 자세한 쓰기, 사라짐의 쓰기에 대하여
리디아 데이비스 지음, 서제인 옮김 / 에트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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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것들은 가볍다. 

보잘것없는 것들은 가엽다. 

이 자그마한 것들은 잊히면 시나브로 사라진다.


무미건조한 것들은 무용하다.

무무(貿貿)한 것들은 무시당한다.

이 하찮은 것들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시나브로 사라진다.


점점 잊히는 것들에 대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진지한 관찰자’는 세심한 관심을 드러낸다. 









세상을 진지하게 관찰하는 사람은 호기심이 많다. 그들은 자그맣고 하찮은 것들을 열심히 주우러 다닌다. 영국의 문학 비평가 제임스 우드(James Wood)는 우리가 지나치기 쉬운 것들을 ‘세부 사항(detail)’이라고 했다.


세부 사항은 관찰자를 만나고 싶다. 세부 사항은 원래 조용한 편이지만, 자신을 알아준 관찰자를 만나면 수다스러워진다. 관찰자의 눈빛을 느낀 세부 사항이 말을 건넨다. 



“날 만져 주세요.” 



우드는 세부 사항을 ‘우리에게 만져달라고 애원하는 삶의 조각’으로 비유한다. 호기심이 많은 관찰자는 삶의 조각들을 모은다.












호기심이 솟아나면 세부 사항을 궁금해한다. 진지한 관찰자는 쓸모없는 세부 사항이 ‘궁금해서’ 공부한다. 미국의 철학자 제나 히츠(Zena Hitz)는 호기심을 죽이면서 실용성만 챙기는 공부를 비판한다. 그녀는 쓸모없는 것(지식)을 공부하는 관찰자를 ‘자유롭게 배움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격찬했다. 궁금증이 많은 관찰자는 삶의 조각들을 사랑한다. 이들은 중요하지 않은 것에 주의를 기울인다.









진지한 관찰자가 글을 쓰면 무색한 세부 사항에 선명한 빛깔이 생긴다. 미국의 작가 리디아 데이비스(Lydia Davis)는 자신의 글쓰기를 잡초가 무성한 곳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행위로 비유한다. ‘into the weeds(잡초 속으로).’ 이 관용구는 ‘더 자세하게 들어가다’라는 뜻도 있다. 잡초는 성가신(bother) 존재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잡초를 관찰하는 사람은 잡초의 매력을 알려고 노력한다. 진지한 관찰자는 성가신 것에 궁금증을 느끼면 그것에 신경을 쓴다(bother). 진지한 관찰자는 보기 좋고, 쓸모 있는 것들만 찾는 남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데이비스는 ‘신경 쓰이는’ 삶의 조각들을 주워서 노트에 담는 작가다. 그녀는 자신의 눈앞에 아른거리는 삶의 조각이 신경 쓰이기 시작하면 글을 쓴다고 밝힌다. 



“날 쓰다듬어주세요.”



삶의 조각을 여러 번 쓰(고)다듬으면 멋진 글이 된다. 글의 소재가 될 만한 삶의 조각은 작가가 직접 찾을 수 있지만, 때로는 예기치 않게 불쑥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고 자주 봐서 흔한 사물도 자신에게는 특별한 삶의 조각이 된다. 전업 작가가 아니어도 삶의 조각을 찾아서 글을 쓸 수 있다. 


데이비스는 무용한 글쓰기를 해야 하는 이유를 강조하기 위해 조지 스터트(George Sturt)의 책 <수레바퀴 제작인의 작업실>(The Wheelwright’s Shop)을 재조명한다. 스터트는 수레바퀴를 만드는 일을 하면서 틈틈이 소설을 썼다. 그는 사람들이 궁금해하지 않는 이야기, 즉 수레바퀴를 만드는 과정과 그 밖의 공예 기술들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수레바퀴 제작인의 작업실>은 스터트의 소설들보다 더 유명해진 회고록이다. 이 책은 작가가 살았던 영국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 1837~1901년)의 공예 기술을 알려주는 귀중한 사료가 되었다. 스터트는 ‘보잘것없는 세부 사항을 관찰한’ 작가다.


똑똑하고, 표현의 기교가 뛰어난 사람만이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 자신의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을 애지중지하는 마음이 있으면.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진지한 관찰자요,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알라딘 램프에 갇혀 16년째 무용한 글쓰기를 한

cyrus가 만든 주석





* 32쪽




 

 ‘나는 내 어떤 책들을 어떻게 썼는가’[주1]는 언제나 내 머릿속에 맴도는 책 제목이다. (중략) 이 제목은 프랑스 작가 레몽 루셀의 에세이집 제목이면서 표제작 제목이기도 하다. 방금 그것을 찾아본 나는 존 애시베리가 루셀을 경유해 그 에세이집에 다시금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된다.







[주1] 레몽 루셀(Raymond Roussel)은 독특한 방식으로 글을 쓴 프랑스의 작가다. 그의 실험적인 글쓰기는 당대의 독자들로부터 외면받았다. 루셀은 자신의 글쓰기에 관한 생각을 정리한 <나는 내 어떤 책들을 어떻게 썼는가>라는 글을 썼고, 자신이 죽은 후에 출간할 것을 요청했다. 







루셀의 대표작은 《아프리카의 인상》(송진석 옮김, 문학동네, 2019년)과 《로쿠스 솔루스》(송진석 옮김, 문학동네, 2020년)다. 국역본 《아프리카의 인상》에 부록으로 <나는 내 책 몇 권을 어떻게 썼는가>가 실려 있다. 루셀의 작품을 진지하게 분석한 학자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다. 루셀에 심취한 푸코는 1963년에 <레몽 루셀>을 출간했다. 이 책의 영문판 제목은 <죽음과 미로>(Death and the Labyrinth: the World of Raymond Roussel)다. 미국의 시인 존 애시베리(John Ashbery)는 루셀의 열렬한 독자이자 루셀의 작품을 영어로 옮긴 번역자로, <죽음과 미로> 서문을 썼다.







푸코의 <레몽 루셀>은 국내에 번역 출간되지 않았다. 루셀이 언급된 또 다른 철학서가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차이와 반복》(김상환 옮김, 민음사, 2004년)이다. 들뢰즈는 푸코의 <레몽 루셀>을 참조했다. 










[주2] 제임스 우드의 비평 에세이집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에 실린 두 번째 글은 『진지한 관찰』이다. 이 글에 리디아 데이비스의 단편소설 <문법 질문>(Grammar Questions)이 언급된다(177쪽). <문법 질문>은 작품집 《불안의 변이》(강경이 옮김, 봄날의책, 2023년)에 수록되어 있다(제목은 ‘문법 질문들’이다). 《불안의 변이》에 <푸코와 연필>(Foucault and Pencil)이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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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6-07-06 0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임스 우드 책 읽었는데 리디아 데이비스 언급된 것도 잊고 있었네요. 연결 지점 배워갑니다. 전 무엇보다 저 <수레바퀴제작인의 작업실> 읽어보고 싶어요.

cyrus 2026-07-13 06:55   좋아요 1 | URL
저는 존 애시베리의 시집이 출간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생소한 이름이라서 알아봤는데, 노벨 문학상 빼고 퓰리처상, 전미도서상을 받은 시인이라고 하더군요.
 
해석에 반하여 ㅣ 수전 손택 더 텍스트
수전 손택 지음, 홍한별 옮김 / 윌북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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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탁의 탁월한 문장을 볼 때마다 감탄해서
손으로 머리를
‘탁’ 칠 때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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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5-12-22 1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혹시 아재 개그인가요? ㅎㅎㅎㅎ

cyrus 2025-12-25 06:30   좋아요 0 | URL
아재개그가 결합된 이행시입니다.. ㅎㅎㅎ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 - 삶과 문학, 읽고 쓰기에 관한 네 번의 강의
제임스 우드 지음, 노지양 옮김, 신형철 해제 / 아를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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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탑에 박힌 문학은 고루한 학문이다. 잘난 체하는 문학은 지루하다. 독자는 거꾸로 학문이 된 문학에 다가서지 못한다. 뻣뻣하게 경직된 문학과 친해질 수 없다. 


문학의 정석(定石)은 비평가와 문학 교수들이 정교하게 깎아 만든 비석이다. 학생들은 거대한 비석에 새겨진 이론과 비평 방식을 받아 적으면서 수련(修鍊)한다. 



문학을 학문으로 받아들인 학생들은 비석을 윤이 나게 열심히 닦는다(修). 


학생들의 오랜 반복 훈련으로 단련된(鍊) 문학의 정석은 

절대로 깨질 리 없다. 


학생들은 문학의 정석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정답을 찾는다. 




상아탑이 편한 문학은 잘 움직이지 않는다. 펑퍼짐한 문학은 상아탑에서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뚱한 문학은 독자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독자의 눈빛을 받지 못한 문학은 쓸쓸하다. 아무리 잘 썼다고 해도 쓸모가 없다. 문학이 있어야 할 곳은 상아탑이 아니다. 문학은 반드시 독자를 만나야 한다. 독자의 곁에 있어야 한다.








영국의 비평가 제임스 우드(James Wood)는 유년 시절에 문학의 숲(wood)을 심기 시작했다. 한 권의 책이 문학 숲의 씨앗이다. 이 책은 시, 소설, 수필, 희곡도 아니다. 독자들에게 소설이 무엇인지를 가르치기 위해 만든 것 같은 《소설과 소설가들》이라는 입문서다. 어린 우드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좋아했고, 그 부분만 열심히 읽었다. 전 세계 작가들의 이름을 알파벳순으로 나열하여 그들의 작품 세계를 요약한 장이었다. 그는 작가들의 이름과 소설 제목을 기억했고 틈틈이 그들의 작품을 읽었다. 이때부터 문학 소년의 마음속에 문학 새싹들이 모도록 돋아났다. 문학 소년과 함께 자란 문학의 숲은 비평가로 성장하기 위한 영양분이 되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비평가가 심어 가꾼 문학의 숲은 싱그럽다.









우드의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은 자신만의 문학의 숲을 가꾸고 싶은 독자, 작가들이 꾸민 문학의 숲을 거닐고 싶은 독자를 위한 안내서다. 책 제목은 영국의 소설가 조지 엘리엇(George Eliot)이 말한 ‘예술은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에서 따왔다. 우드는 상아탑에 박힌 문학만 보는 비평을 선호하지 않는다. 상아탑에 박힌 문학은 보면 볼수록 따분하다. 상아탑을 지키는 일에 몰두한 비평가와 문학 교수는 문학을 학문으로 취급한다. 학구적 문학 비평은 독자와 문학의 사이를 멀어지게 한다. 독자는 재미없는 상아탑을 보러 가지 않는다. 문학을 즐기기 위해 문학의 숲을 산책한다. 









문학의 숲에 문학만 있는 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널려 있다. 문학의 숲을 모험하는 우리는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사용할 수 있는 것’의 이름과 형태는 무수하다. 그것은 우리가 쓰고 있는 평범한 물건이 될 수 있고, 과거에 만났던 사람일 수도 있다.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우리의 인생 가까이에 있다. 그래서 금방 찾을 수 있다.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문학과 밀접하다. 우리는 이론에 의존하지 않고도 문학을 마음껏 감상하고,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다. 상아탑에 달라붙은 비평가는 독자의 비평에 관심 없다. 오히려 자신이 배운 비평 방식을 가르치려고 한다. 이와 반대로 우드가 강조한 문학 비평 방식은 비평가가 아닌 독자들도 따라 할 수 있다. 독자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독자적으로 사용하면 된다. 그리하여 독자는 소설의 여백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되거나 문학 작품의 매력을 볼 줄 아는 비평가가 된다. 우드는 문학에 편하게 말을 걸 수 있는 독자가 되라고 권한다. 문학과 친분이 두터운 독자는 문학 작품을 읽다가 발견한 것을 이야기하고(retelling), 목소리를 낸다(re-voicing). 우드는 자신의 비평 방식을 ‘비평적 다시 이야기하기’ 또는 ‘책을 통과하는 글쓰기’라고 표현한다.


독자가 책을 통과하려면 우선 ‘진지한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 진지한 관찰자는 다른 독자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아주 사소한 ‘세부 사항(detail)’을 좋아한다. 진지한 관찰자 유형에 속한 독자는 세부 사항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소설 속 등장인물이 말로 표현하지 못한 숨은 감정까지 포착한다.


문학의 정석은 무겁다. 우리가 만나야 할 문학은 가벼워야 한다. 우리가 가져야 할 문학은 평생 간직할 수 있는 소박한 조각으로 되어 있다. 



우리는 소중한 문학 조각을 쓰다듬는다. 

문학 조각 위에 글을 쓰(고) 다듬는다. 







우리가 정답게 어루만지는 문학 조각은 문학의 정석(貞石)이다.









<세부 사항을 관찰하면서 읽는 cyrus가 만든 주석>




[주1] 정석(貞石): 단단하고 아름다운 돌





* 43쪽, 역자의 각주





라스콜리니코프: 톨스토이의 《죄와 벌》의 주인공 [주2]


 


[주2] 《죄와 벌》을 쓴 작가는 도스토옙스키(Dostoevskii)다.






* 117쪽


 



리디아 데이비스의 단편소설 <문법 질문>(Grammar Questions) [주3]

 



[주3] 리디아 데이비스(Lydia Davis)의 작품집 《불안의 변이》(강경이 옮김, 봄날의책, 2023년)에 수록되어 있다. 번역된 제목은 ‘문법 질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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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시인들
폴 베를렌느 지음, 임민지 옮김 / 필요한책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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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점  ★★★☆  B+





절반으로 갈라진 랭보(Arthur Rimbaud)의 짧은 인생은 ‘물과 기름’과 같다. ‘물’은 시상(詩想)이 홍수마냥 흘러넘치는 조숙한 시인의 삶이다. 랭보는 열여섯 살에 처음으로 시를 썼다. 그의 첫 번째 시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 출간된 해는 1873년. 이때 당시 랭보는 열아홉 살이었다. 









‘기름’은 끈끈한 노동자의 삶이다. 랭보는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을 여행하면서 여러 가지 일을 했다. 고국과 완전히 다른 타지의 날씨는 랭보의 연약한 몸을 괴롭혔지만, 랭보는 꾹 참고 일했다. 서커스단의 사무직원, 식민지 산물 회사의 직원, 채석장 회사의 작업반장, 건축업체의 관리 감독, 커피콩을 골라내고 포장하는 회사의 관리자, 아프리카의 무기 거래 상인. ‘기름’의 시대에 랭보는 틈틈이 시를 쓰긴 했지만,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지 않았다.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시인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었다. 여기저기 돌아니면서 일하느라 시상이 폭삭 늙어버린 랭보. 일과 방랑에 중독된 랭보는 고향 친구에게 자신은 더 이상 문학에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본인 스스로 ‘물’의 시대에 마침표를 찍은 랭보의 나이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시 쓰는 삶을 스스로 포기한 랭보를 여전히 ‘시인’이라고 주장한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폴 베를렌(Paul Verlaine)이다. 랭보와 베를렌은 함께 여행하고, 토론하고, 질투심이 섞인 말다툼을 할 정도로 뜨겁게 사랑했다. 베를렌은 아내를 버리고 랭보와 함께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다. 그러나 사랑의 여정은 오래가지 못한다. 화를 참지 못한 베를렌은 랭보를 향해 권총 두 발을 쏜다. 다행히 두 개의 총알은 랭보의 목숨을 비껴간다. 살인 미수로 체포된 베를렌은 2년 동안 감옥 생활을 한다.


베를렌은 대중과 문단 모두에서 잊힌 랭보의 문학적 재능을 아까워했다. 그는 랭보처럼 관습에 도전하고 개성 충만한 시를 쓴 무명 시인들에게 ‘저주받은 시인’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베를렌의 시 비평서 《저주받은 시인들》은 랭보를 포함한 여섯 명의 시인의 작품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해설한 책이다. 오늘날 ‘저주받은 시인’ 또는 ‘저주받은 예술가’는 재능은 뛰어나지만,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불행한 예술가를 가리킬 때 쓴다. 하지만 베를렌이 생각하는 ‘저주받은 시인’은 세상에 편입된 삶을 거부했다. 그들은 독자의 문학 취향에 부합하는 시를 쓰지 않는다.


베를린이 찾은 6인의 저주받은 시인은 랭보, 트리스탕 코르비에르(Tristan Corbiere), 스테판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 마르슬린 데보르드 발모르(Marceline Desbordes-Valmore), 빌리에 드 릴라당(Villiers de L’Isle Adam), 그리고 ‘가엾은 를리앙(Pauvre Lelian)’이다.


베를렌은 ‘가엾은 를리앙’이 가장 우울한 운명을 지닌 시인이라고 소개한다. 사실 ‘가엾은 를리앙’은 베를렌이 자신의 이름 철자를 바꿔 만든 가명이다. 베를렌은 왜 자신의 책 마지막에 ‘자기소개서’를 썼을까? 랭보 총격 사건 이후로 베를렌은 가톨릭에 귀의하여 종교적인 분위기가 강한 시를 쓰기 시작한다. 전 연인 랭보는 종교에 헌신하는 시인으로 변한 베를렌을 비판했다. ‘가엾은 를리앙’은 가톨릭 신앙을 드러낸 시를 쓰는 베를렌의 분신이다. 베를렌은 ‘화려하고, 나른하며, 신경질적 어조’가 반영된 젊은 시절의 시들과 ‘엄숙하고 단순한 어조’로 읊는 종교적인 시는 결국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시상에 잠기는 대로 시를 쓰는 자유가 있다고 강조한다. 베를렌은 동료 시인들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 ‘저주받은 시인’이다.









명예와 긍정적인 평가를 좇아가면서 글 쓰는 작가는 불행하다. 이런 작가는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쓰지 못한다. 본모습이 없는 글을 쓰게 만드는 저주가 작가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힌다. 정말로 저주받은 시인은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이와 반대되는 베를렌과 ‘저주받은 시인’은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시를 쓴다. ‘저주받은 시인’의 유일한 독자는 시인 본인이다. 그들은 ‘독자(獨自)적으로 시를 쓰는 독자(讀者)’다.






<‘독자적인 독자’ cyrus가 쓴 주석>







* 65~66쪽

 

 우리는 이 시의 정신을 매우 혐오하는데, 그 정신은 노년기의 불경스러운 미슐레[주1], 여인들의 더러운 속옷 아래, 그리고 파르니 뒤로 숨은 미슐레와의 불행한 만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다른 미슐레는 우리가 그 누구보다도 존경한다).



[주1] 해당 인용문에서 베를렌이 언급한 랭보의 시는 『첫 성체 배령』(1871년)이다. 《저주받은 시인들》을 쓸 무렵(1888년), 베를렌은 가톨릭 신자였다. 『첫 성체 배령』은 제목과 상반되게 가톨릭 신앙과 그리스도교를 조롱하는 시다. 그래서 베를렌은 이 시에 드러난 랭보의 ‘반가톨릭적 정신’을 혐오한다고 비평했다.

     

쥘 미슐레(Jules Michelet)는 프랑스의 역사가다. 그는 가톨릭의 권위주의를 비판한 볼테르(Voltaire) 계열의 반교권주의자다. 미슐레는 1874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4년 전에 나폴레옹 3세 중심의 군주정(제2공화국)이 종식되고, 제3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제3공화국 초창기에 정계에 진출한 공화주의자들은 반교권주의자였다. 『첫 성체 배령』을 쓴 1871년의 랭보는 반교권주의적 성향이 강했다.

     

젊은 시절 베를렌은 제3공화국 출범을 지지했고, 시민 혁명 정부인 파리 코뮌(Paris Commune)에 협력했다. 랭보 총격 사건 이후부터 보수적으로 변했다. 그러나 베를렌은 모순적인 인간이었는데, 1878년부터 시를 가르치면서 알게 된 뤼시앵 레티노아(Lucien Létinois)라는 제자와 동성애 관계를 맺는다. 제자의 요절에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베를렌은 방탕한 생활을 한다. 아무튼 종교에 빠져 정신이 늙어버린 말년의 베를렌은 랭보의 반가톨릭적 정신이 불경스럽게 보였을 것이고, 『첫 성체 배령』이 반교권주의의 영향을 받은 시라고 비평한다. 

     

베를렌은 종교 비판적인 시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지만, 혁명을 일으켜 국가 권력을 무너뜨린 프랑스 민중을 지지한다. 미슐레는 ‘민중’을 프랑스 혁명의 주체로 보는 역사관을 주장했다. 1846년에 발표한 《미슐레의 민중》(조한욱 옮김, 교유서가, 2021년)은 그의 대표작이며 민중 친화적인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이 즐겨 읽었다. 따라서 베를렌이 존경한다는 ‘다른 미슐레’는 《민중》을 쓴 역사가 미슐레를 의미한다.



[참고 문헌]

 

* 아르튀르 랭보, 한대균 옮김, 《나의 방랑》 (문학과지성사, 2014년)

 

* 폴 베를렌, 윤세홍 옮김, 《베를렌 시선》(지만지, 2013년)

 

* 삐에르 쁘띠필, 나애리 · 우종길 옮김, 《광인 뽈 베를렌느》 (역사비평사, 1991년)

 

* 롤랑 바르트, 한석현 옮김, 《미슐레》 (이모션북스, 2017년)






[주2] 베를렌이 《저주받은 시인들》에서 인용한 랭보의 시는 총 여덟 편이다. 『모음들』, 『저녁 기도』, 『앉아 있는 자들』, 『놀란 아이들』, 『이 잡는 여인들』, 『취한 배』, 『첫 성체 배령』, 『파리가 다시 북적댄다』. 이 작품들은 여러 종의 번역본이 있는 랭보 시(선)집에 수록되어 있다. 여덟 편의 시가 모두 실린 번역본은 《나의 방랑》(한대균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4년)이다.








※ 작품명은 번역본에 표기된 제목이며 번역본의 목차 순으로 적었다.



* 《지옥에서 보낸 한철》(최완길 옮김, 북피아, 2006년, 절판)

『깜짝 놀란 어린아이들』, 『저녁의 기도』, 『모음들』, 『이를 잡는 여인들』, 『취한 배』


 

* 《지옥에서 보낸 한철》(김현 옮김, 민음사, 2016년, 개정판)

『모음』, 『취한 배』

 


* 《랭보 시선》(이준오 옮김, 책세상, 2001년, 절판)

『모음들』, 『최초의 성체 배령』, 『취한 배』

 


* 《랭보 시선》(곽민석 옮김, 지만지, 2012년)

『모음들』, 『이 잡는 여인들』, 『취한 배』

 


* 《나의 방랑》(한대균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4년)

『놀란 아이들』, 『앉아 있는 자들』, 『저녁 기도』, 『파리의 향연 혹은 파리가 다시 북적댄다』, 『모음들』, 『첫 성체 배령』, 『이 잡는 여인들』, 『취한 배』


 






* 103쪽






여류 작가들 → 여성 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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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18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영화 이클립스로 랭보와 베를렌의 이야기를 만났어오. 하지만 시는 저는 대중이라 역시 접근하기 어렵더라구요. 베를렌의 책이 이런 내용인줄은 몰랐는데 책의 구성도 자신을 가엾은 를리앙으로 표현한것도 흥미롭네요

cyrus 2025-08-19 06:32   좋아요 1 | URL
랭보와 베를렌 두 시인의 시는 역시 계속 읽어도 어려운데, 그들이 살아온 과정이 더 흥미로워요. <토탈 이클립스>를 한 번 보고 싶은데, 자막 달린 영화 보기가 어렵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