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함이 길어지면 인간은 비루해진다

지루한 삶에서 오는 권태는 인간을 나태하게 만든다.



















* 샤를 보들레르, 황현산 옮김 악의 꽃(난다, 2023)

 

* 샤를 보들레르, 윤영애 옮김 악의 꽃(문학과지성사, 2003)

 

* 앙투안 콩파뇽, 김병욱 옮김 보들레르와 함께하는 여름(뮤진트리, 2020)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권태의 섬뜩한 실체를 알고 있었다보들레르는 자신의 첫 시집 악의 꽃의 시작을 알리는 서문에 해당하는 독자에게라는 시에서 권태를 언급한다




가장 추악하고, 가장 악랄하고, 가장 더러운 놈이 하나 있다!

이렇다 할 몸짓도 없이 야단스러운 고함소리도 없이,

지구를 거뜬히 산산조각 박살내고,

하품 한 번에 온 세상을 삼킬지니,

 

그놈이 바로 권태! 눈에는 본의 아닌 눈물 머금고,

물담뱃대 피워대며 단두대를 꿈꾼다.

그대는 알고 있지, 독자여, 이 까다로운 괴물을,

위선자 독자여, 내 동류, 내 형제여!

 


(보들레르, 악의 꽃》 「독자에게중에서, 황현산 옮김)




그는 권태를 일시적으로 지루한 상태로 바라보지 않았다과장된 비유로 보일 수 있겠지만, 보들레르가 노려본 권태는 가장 추악하고 더러운 괴물’이이 괴물은 지구를 박살 내버리는 어마어마한 힘을 가졌다크게 하품하는 권태는 세계를 집어삼킨다.


보들레르는 한가한 생활에도 싫증을 느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살아가는 자신을 자책했고, 나태를 괴로워했다



 “영원한 불안에 휘둘리는 영원한 한가로움이 어떤 것일지 생각해 보세요. 마음 깊이 그 한가로움을 증오하면서 말입니다.”

 

(보들레르, 앙투안 콩파뇽의 보들레르와 함께하는 여름46쪽에서 인용함)



이때 당시 보들레르는 백수였다. 그는 의붓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의붓아버지는 보들레르가 법관(法官)이 되기를 바랐지만, 보들레르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20대 초반의 보들레르는 재산과 땅을 일찍 상속받았지만, 금방 다 써버렸다. 아들에게 실망한 가족은 금치산자 선고 신청을 했고, 보들레르는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청년으로 살아가게 된다스물여섯 살의 보들레르는 불안을 동반한 끝 모를 한가함을 증오한 청년이었다.




















* 파스칼, 김화영 옮김 팡세: 분류된 단장(IVP, 2023)

 

* 파스칼, 이환 옮김 팡세(민음사, 2003)

 

* 앙투안 콩파뇽, 김병욱 옮김 파스칼과 함께하는 여름(뮤진트리, 2021)





보들레르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지루함과 권태의 위험성을 간파한 철학자가 있었다보들레르는 이 철학자를 닮은 냉소주의자였고, 심연이라는 제목의 시(악의 꽃》에 수록되어 있다)에 철학자의 이름을 언급했다. 냉소적인 철학자의 정체는 짧은 글 모음집 팡세를 쓴 파스칼(Blaise Pascal)이다. 사실 그는 철학자보다 수학자와 신학자가 잘 어울린다. 파스칼은 이 책에서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 인간은 불행하다고 썼다인간이 지루함을 크게 느낄 때가 언제일까? 파스칼은 인간이 방 안에 가만히 있지 못할 때 불행이 시작된다고 봤다.


아늑한 방은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쓸쓸한 감옥이 될 수 있다. 너무 한가해도 문제다. 방에 틀어박혀 지내기 싫은 사람은 탈출을 시도한다. 지루함을 달래줄 기분 전환(divertissement)’을 감행한다. 그들은 돈을 흥청망청 쓰면서까지 오락(divertissement)을 즐긴다오락에 빠지면 즐겁고 행복하다. 그러나 파스칼은 기분 전환을 해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은 어리석은 착각이라고 말한다오락을 즐기는 사람은 지루함과 권태를 못 본 체하거나 감추고 있다.






























* 몽테뉴, 심민화 · 최권행 함께 옮김 에세 1(민음사, 2022)

 

* 몽테뉴, 심민화 옮김 에세 2(민음사, 2022)

 

* 몽테뉴, 최권행 옮김 에세 3(민음사, 2022)

 

* 몽테뉴, 뫼니에 드 케를롱 엮음, 이채영 옮김 몽테뉴 여행기(필로소픽, 2020)

 

* 앙투안 콩파뇽, 김병욱 옮김 몽테뉴와 함께하는 여름(뮤진트리, 2022)





파스칼은 은퇴 후에 즐기는 여가 생활도 인간에게 고통을 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몽테뉴(Michel de Montaigne)를 좋아하지 않는다. 귀족으로 태어난 몽테뉴는 스물네 살에 법관이 되었고 서른 일곱 살에 은퇴했다. 한가해진 그는 자신의 성 안에 있는 서재에 책을 보거나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부지런히 쓴 글이 바로 에세다. 이 책이 유명해져서 사람들은 몽테뉴를 사색하는 은둔자로 기억한다하지만 몽테뉴는 밖에 나가서도 세상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골똘히 생각했다. 신장결석에 시달린 그는 아픈 몸을 이끌고 프랑스이탈리아독일 등을 여행했다기록하는 것을 좋아했던 몽테뉴는 여행 일기를 남겼다.


교양 라디오 프로그램 <함께하는 여름>을 진행했고, 방송 내용을 책(보들레르와 함께하는 여름》, 《파스칼과 함께하는 여름》, 《몽테뉴와 함께하는 여름》 등)으로 펴낸 프랑스의 문학평론가 앙투안 콩파뇽(Antoine Compagnon)팡세몽테뉴를 반대하기 위해 쓴 글이라고 말한다몽테뉴는 자신을 향해 되묻는다.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Que sais-je)?” 파스칼의 관심사는 생각하는 자신이 아니라 이다그는 숨어 있는 신을 알고 싶어했다파스칼의 눈에 비친 몽테뉴는 비참한 신 없는 인간’(팡세1부의 제목)이다.










 









[카페 스몰토크 철학 도서 읽기 모임 지정 도서 (2025년 9월)]

* 고쿠분 고이치로, 김상운 옮김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 어떻게 살 것인가(arte, 2025)

 

* 남태현 극우의 노래: 한국의 극우, 그들은 누구인가(오월의봄, 2025)





지루함을 견디기 어려운 사람은 남을 돕거나 나를 둘러싼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일에 동참한다. 이것은 긍정적인 기분 전환이다. 그러나 비뚤어진 정신으로 타인을 대하고 세상을 바라보면 극단주의자가 된다.


지루함과 한가함을 철학으로 분석한 고쿠분 고이치로(國分功一郎)극우화된 일본 청년들이 긴장 속의 삶’에 익숙해졌고 진단한다극단주의 성향이 강한 청년들은 가짜 뉴스와 음모론을 진지하게 믿는다. 그들은 숨어 있는 적대 세력이 민주주의와 평화를 해칠까 봐 두려워한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천하태평이다. 자신이 믿는 음모론을 우습게 여긴다. 극단주의자는 초조하다.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 그들의 최대 관심사는 먹고 사는 일이 아니라 정치다. 적대 세력들을 공격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또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적대 세력 규탄 집회에 참여한다. 그렇게 자신들은 바람직한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지루함을 극단적인 방법으로 해소하는 사람들을 분석한 고쿠분의 견해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국내 청년의 극우화를 이해하는 또 다른 관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극우 청년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적대 세력은 친북 정치인들과 간첩, 그리고 일자리를 찾는 외국인 노동자와 여성이다구직에 어려움을 느낀 청년들은 외국인 노동자와 여성을 위한 정책에 분노한다. 외국인과 여성이 유리해질수록 자신들은 역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한다불만이 가득 쌓인 청년들은 외국인 혐오와 여성 혐오를 조장하는 극우주의자의 논리에 끌린다


대부분 사람은 이른바 태극기부대로 불리는 극우 집회에 참석한 노인들을 경멸한다. 태극기를 액세서리처럼 치장한 채 거리를 돌아다니는 그들을 바라보면 거부감이 느끼고, 애초에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버린다이러면 노인들이 극우 집회에 참석하게 된 속사정을 알지 못한다극우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눈 극우의 노래의 저자 남태현 교수지루함을 잊기 위해서 집회를 즐기러 오는 노년층을 주목한다.



 (태극기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함께 웃으며 그 순간을 즐겼습니다. 서로 동료애를 나누고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모습은 마치 오랜 친구들이 모인 자리 같았습니다. 한 참석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여기서 친구들을 만나려고 와요. 집에 있으면 할 일이 없거든요. 이렇게 친구들도 만나고 자주 볼 수 있어 좋죠.”



 실제로 집회 전후의 모습은 아이들의 소풍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풍경이 자연스러웠습니다. 정치적 토론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대화는 사적인 이야기들이었죠. 몇 년을 매주 함께하다 보니 깊은 우정도 쌓인 모습이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노년층의 고립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는 가운데, 태극기집회는 이들에게 연대와 우정을 쌓을 기회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극우의 노래》 중에서, 179~180쪽)



교수가 바라본 태극기부대의 노인들은 집회를 동년배와 함께하는 축제로 인식했다. 집회에 비속어를 섞어 가면서 정치적인 발언을 거칠게 하는 노인들만 있는 건 아니다. 어떤 노인들은 정치와 관련 없는 친밀한 대화를 나누었다.



혼자 있으면 한가하면서도 지루하다한가함을 뒤집으면 지루함이고, 지루함을 뒤집으면 한가함이다그래도 우리는 지루함을 더 크게 느낀다.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데도 지루할 수 있다가족과 연인이 함께 있으면 보드라운 사랑은 시간이 지나면 꺼칠한 권태로 변한다. 하품을 연신 해대는 권태 괴물을 조심해야 한다. 소리 없는 괴물은 우리를 계속 집어삼킨다. 권태에 잡아먹힌 우리는 기분을 전환하는 재밋거리를 찾는다. 오락이 재미있어서 행복감을 느끼면 권태 괴물의 속은 더부룩해진다. 불편한 권태는 행복한 인간을 뱉어낸다. 오락을 계속 반복하면 지루하다. 이때 권태는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다시 한번 하품할 준비를 한다.


파스칼은 사는 게 재미있어서 지루하지 않다고 믿는 사람을 딱하게 여겼다. 하지만 나는 그의 싸늘한 시선에 동의하지 않는다. 정말로 불행한 사람은 지루할 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남들이 재미있다고 하는 것을 따라 한다. 지루함을 해소할 수 있는 오락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도, 오락의 문제점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지루함을 극단적으로 해소하는 사람은 이기적이다자신의 즐거움과 행복을 위해 타인을 괴롭힌다. 타인이 즐거워하지 않는 오락(娛樂)은 오락(誤樂)이다. 잘못된 재밋거리(誤樂)



가장 위험한 권태 괴물은 지루함을 견딜 줄 모르는 사람에게 오락(誤樂)을 하라고 속삭인다


이 녀석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괴물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괴물이 우리를 닮아서 그런가?














[글 제목이 있는 사진 원본에 붙인 주석] 블룹 몬스터(The Bloop Monster)라는 미확인 괴생명체(Crypt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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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5-10-20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루함을 뜻하는 한자로는 민(闷)이 있고요, 한가함을 뜻하는 한자로는 휴(闲)가 있네요.
둘 다 부수로 문(門)이 네요. 마음이 문 안에 갇혀 있으면 지루하고 답답하게 되고, 마음이 문을 벗어나 나무를 보면 한가함이 된다고 하네요. 즉 같은 사물을 대하는 마음에 따라 지루함과 한가함이 나누어지네요. 파스칼 선생께서 지루함을 조금만 여유로운 마음으로 대하셨다면 한가로움의 충만함을 느끼셨을 것 같은데… 아마 느끼셨겠죠? ㅎㅎ
Cyrus 님께서도 한가로운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요일이 저물고 월()요일이 조용히 뜨기 시작하는 밤. 잠을 자야 할 시간인데도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는다. 일요일이 끝날 때만 생기는 불면증이다. 자꾸만 미룬 책들을 뒤늦게 펼쳐본다. 온종일 가만히 있었던 집중력이 되살아난다. 눈꺼풀에 매달린 졸음이 달아난다거뜬히 책을 읽고 나면 새벽 한 시. 집중력이 평소보다 높아지는 날이면 새벽 두 시까지 읽는다.

















* 파스칼 드튀랑, 김희라 옮김 우주를 품은 미술관: 예술가들이 바라본 하늘과 천문학 이야기(미술문화, 2025)

 




지난주 일요일(97)우주를 품은 미술관을 완독했다. 하루 만에 다 읽었다. 서평을 쓰기 시작했다. 쉬엄쉬엄 다른 책을 보면서 서평을 썼다. 완성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월요일(98) 새벽이 될 때까지 썼다


월요일 새벽에 붉은 달(blood moon)’이 뜬다는 뉴스를 알고 있었다. 달이 붉게 변하는 현상은 개기월식이다. 달은 지구의 그림자에 완전히 가려진 상태다. 우주를 품은 미술관에 일식과 월식 현상을 묘사한 그림들이 나온다고대 그리스-로마인들은 일식과 월식을 불길한 징조로 여겼다. 시대가 변하면서 일식과 월식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졌다. 기독교 미술에서 묘사된 일식과 월식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신의 메시지를 의미했다.


달이 붉게 변할 때가 개기식 최대로 볼 수 있는 시간대다. 그런데 붉은 달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개기식 최대 시간이 새벽 311이다새벽 3시를 넘긴 채 월요일 새벽을 맞이한 적이 없다. 아침에 깨어날 때 막 몰려오는 피로감을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자투리 잠을 잘 걸 그랬나. 하지만 서평 쓰는 데 몰입하느라 눈을 잠깐 붙일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서평을 다 쓰고 나니 새벽 2시였다잠이 오지 않아서 옥상에 갔다. 230분부터 개기식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밤하늘에 구름이 많았다. 구름은 서서히 붉어지는 달을 가렸다. 생각하지도 못한 변수다. 구름 뒤로 숨은 붉은 달이 있는 곳을 쳐다보기만 했다. 구름이 지나가길 바랐다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구름은 붉은 달을 감쌌다.



















* 블레즈 파스칼, 이환 옮김 팡세(민음사, 2003)

 

* 칼 세이건, 현정준 옮김 창백한 푸른 점(사이언스북스, 2001)





한 시간 남짓 불빛 한 점 없는 옥상 한가운데 서서 밤하늘만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으니 살짝 두려움을 느꼈다파스칼(Blaise Pascal)이 두려워하던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어떤 느낌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내 눈앞에 펼쳐진 구름 낀 밤하늘은 크기를 가늠하기 힘든 우주의 아주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런 우주 속에 살고 있는 인간은 아주 작은 존재파스칼은 어린 나이에 계산기를 발명했고, 젊은 시절에 수학과 물리학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다재다능한 학자다. 게다가 그는 팡세를 쓴 철학자이자 신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천문학에 관심을 드러나지 않았지만, 무한한 어둠의 우주 속에 있는 인간을 티끌로 비유한 칼 세이건(Carl Sagan)의 말에 공감할 것이다우주에서 바라보는 지구는 창백한 푸른 점이다파스칼은 무한을 두려워했지만, 사실 내가 두려워한 것은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그것은 바로 모기였다.








새벽 3시가 될 무렵에 구름이 전보다 줄어들었다. 지나가는 구름의 틈 사이로 붉은 달빛이 희미하게 보였다. 구름에 반쯤 가려진 붉은 달을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어설프게 고화질로 설정해서 찍은 건데 생각보다 붉은 달빛이 진하게 나왔다. 달 표면이 뚜렷하게 나온 사진은 아니지만, 맨눈으로 붉은 달을 봤다는 것만으로 만족한다325. 붉은 달 관측 종료.


집으로 돌아와서 바로 누웠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억지로 눈을 감았다. 그날따라 눈 속의 어둠이 무한한 우주의 어둠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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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9-10 0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생각보다 달이 잘 찍혔네요.요즘 스마트 폰의 사진 촬영능력이 나날이 좋아지는 것을 새삼 다시 느끼게 됩니다.스마트 폰이 이리 좋아지니 카메라 회사들이 자꾸 힘들어 지는 것 같네요^^

cyrus 2025-09-14 23:33   좋아요 0 | URL
흐릿하게 나올 줄 알았는데, 사진 보정 기능을 아무거나 해보니까 진하게 나왔어요. ^^;;

꼬마요정 2025-09-10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말씀처럼 여름밤에 무서운 건 모기죠!! 올해는 그나마 모기가 적다지만 독하더라구요ㅠㅠ 근데 사진이 정말 잘 찍혔네요. 가끔 달 찍어보면 저는 흐릿하거나 뭔가 잘 안 나오던데 멋집니다. 파스칼과 칼 세이건.... 똑똑한 사람들의 만남이로군요^^

cyrus 2025-09-14 23:35   좋아요 1 | URL
올해 여름은 신기하게도 집안에 모기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안심했는데, 역시나 새벽에 나가보니까 모기들이 돌아다니네요.. ^^;;

transient-guest 2025-09-11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잠이 안 올때 책을 펼치면 아침까지 잠을 못자게 됩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잠이 안 와도 책은 안 읽어요.ㅎㅎ 새벽에 일찍 일어나려구요.ㅎ 글이 좋네요. 책과 우주와 미술과 생활과...낭만적입니다

cyrus 2025-09-14 23:38   좋아요 1 | URL
지금도 잠이 오지 않아요. 오늘 해야 할 일은 독서 모임 발제를 만드는 것인데, 다 만들었어요. 읽다 만 책 조금 보다가 자야겠어요.. ㅎㅎㅎ
 











청계천은 여전히 푸르다. 한때 개천 주변 거리에 하얀색과 누런색이 제법 많았다. 애서가들은 두 개의 색이 활짝 펼쳐진 헌책방 거리를 걸었다보도블록에도 깔린 헌책방 거리의 색깔은 하천과 함께 흐르는 시간에 의해 씻겨 나갔다먼지를 털어내면서 책을 만지작거리던 애서가들의 손길도 줄어들었다현재 거리에 남아 있는 헌책방 가게는 열 개도 채 되지 않는다.


내가 청계천 헌책방 거리에 처음으로 갔던 해는 2013년이다. 십 년이나 훌쩍 지났으니 그때 가본 헌책방 가게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지난주 토요일은 독서 모임 <달의 궁전> 모임 날이었다. 아침 일찍 서울에 도착한 나는 청계천을 걸으면서 헌책방 거리로 향했다청계천 헌책방 가게들은 비좁다. 가게 입구부터 시작해서 사방에 책들이 쌓여 있어서 겨우 한 사람만 들어올 수 있다. 내가 첫 번째로 들어간 헌책방은 <대원 서점>이다. 내가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연세가 지긋한 헌책방 주인은 매입한 책들이 담긴 쇼핑백을 옮기고 있었다. 나는 잠시 가게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









<대원 서점>에 만난 책들은 미국의 추리 소설가 레이먼드 챈들러(Raymond Chandler)의 유명한 장편 소설 두 권과 고전 평론가 고미숙의 대표작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다.

















* [리커버판] 고미숙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북드라망, 2023)

 

* [개정 신판-절판] 고미숙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북드라망, 2013)

 

* [구판-절판] 고미숙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그린비, 2003)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2003년 그린비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그해 당시에 <TV, 책을 말하다>라는 책 소개 전문 프로그램이 KBS 1TV에 방영되고 있었다. 밤 열 시에 하는 프로그램이라서 매주 챙겨 보지 않았지만, 이 프로그램에 소개된 책들을 브라운관에서 만나면 그 책을 읽고 싶은 욕망이 가슴에 솟아올랐다. 책을 마음껏 살 수 없는 중학생인 나는 도서관에서 가서 방송에 나온 책들을 빌려 읽었다. 생각이 어린 중학생 머리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책들은 끝까지 읽지 못했다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읽다가 중간에 포기한 책 중 하나다. 왜냐하면 저자가 이 책에서 언급하는 서양 철학들이 상당히 낯설었기 때문이다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도 서양 작가나 사상가들의 이름은 잊지 않았다. 시간이 지난 후에 나는 그들이 쓴 책에 다시 도전했다.









 









* [절판] 샤를 보들레르, 김붕구 옮김 악의 꽃(민음사, 1974)




한밤중에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TV, 책을 말하다>을 마주친 나는 그 방송 프로그램 덕분에 시인 보들레르(Baudelaire)를 알았다. 가수 조영남이 출연해서 불문학자 김붕구 선생이 번역한 보들레르 시집을 추천했다.




















* 레이먼드 챈들러, 박현주 옮김 빅 슬립(북하우스, 2004)


* [절판] 레이먼드 챈들러, 박현주 옮김 기나긴 이별(북하우스, 2006)


















* 레이먼드 챈들러, 김진준 옮김 빅 슬립(문학동네, 2020)


* 레이먼드 챈들러, 김진준 옮김 기나긴 이별(열린책들, 2020)





레이먼드 챈들러의 하드보일드(hard-boiled) 문체는 간결하고, 화자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차갑다.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챈들러의 소설을 읽은 이후로 하드보일드 문체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 장 베르나르 푸이 · 파트릭 레날 · 프랑수아 게리프 · 알프레드 에벨 · 로베르 콩라트 함께 지음, 이규현 옮김 필립 말로(이룸, 2004)





챈들러가 만든 탐정 필립 말로(Philip Marlowe)코난 도일(Conan Doyle)이 창조한 탐정 셜록 홈스(Sherlock Holmes)보다 더 냉소적이면서 거칠거칠한 남성성을 드러낸다빅 슬립은 챈들러의 첫 번째 장편이자 말로가 처음으로 등장한 작품이다기나긴 이별은 말로 시리즈의 후기 작품이다.


















* 크리스토퍼 말로, 강석주 옮김 말로 선집: 에드워드 2/ 파리의 대학살 / 디도, 카르타고의 여왕(나남출판, 2011)

 

* 크리스토퍼 말로, 강석주 옮김 탬벌레인 대왕 / 몰타의 유대인 / 파우스투스 박사(문학과 지성사, 2002)

 

[대구 세계 문학 전문 독서 모임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첫 번째 책]

* 슈테판 츠바이크, 정상원 옮김 감정의 혼란(하영북스, 2024)

 

 


하드보일드 탐정의 이름은 영국의 극작가 크리스토퍼 말로(Christopher Marlowe)에서 따왔다. 말로는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와 동시대에 활동한 극작가다지금은 영국 연극사를 대표하는 작가로 셰익스피어가 많이 언급되지만, 영국 연극이 절정을 이룬 엘리자베스 1(Elizabeth I) 시대에 가장 인기가 많은 극작가는 말로였다. 당시 셰익스피어는 이제 막 주목받기 시작한 신인 극작가였다. 젊은 셰익스피어는 말로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셰익스피어와 말로는 영국 연극사의 맞수로 거론되는데,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이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의 중편소설 감정의 혼란이다. 소설에 나오는 늙은 교수는 셰익스피어를 찬양하고, 그를 따르는 젊은 제자는 말로를 좋아한다. 두 사람은 선호하는 극작가가 달라서 갈등을 빚는다.



















* 레이먼드 챈들러, 정윤희 옮김 살인의 예술(레인보우퍼블릭북스, 2021)

 

* [절판] 레이먼드 챈들러, 최내현 옮김 심플 아트 오브 머더(북스피어, 2011)

 

* 레이먼드 챈들러, 안현주 옮김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북스피어, 2014)




심플 아트 오브 머더》(The Simple Art of Murder)는 미국과 영국 추리 문학 작품들에 대한 챈들러의 비평이 담긴 에세이다. 그는 모든 장르의 소설은 현실을 추구한다고 주장한다. 이 글의 첫머리는 하드보일드 문학의 핵심이자 챈들러의 문학을 압축한 챈들러레스크(Chandleresque)’의 핵심이다. 챈들러는 영국의 추리 문학을 비판적으로 비평하면서 미국에 유행한 하드보일드 추리 문학의 매력을 알린다. 영국의 추리소설에 나오는 탐정들은 지식을 동원해서 사건을 풀어나가는 귀족이자 학자. 반면 하드보일드 탐정은 사건 해결보다는 사건이 발생한 세계 또는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바라보려고 한다.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 속 세계는 비열하고 비정하다. 하드보일드 탐정은 냉정한 현실을 묵묵히 받아들이면서 살아간다.

















레이먼드 챈들러, 승영조 옮김 레이먼드 챈들러밀고자 외 8》 (현대문학, 2016)





원래 《심플 아트 오브 머더표제작인 에세이와 총 열한 편의 단편 소설이 함께 실린 책이다(1950년 발표). 북스피어 출판사가 출간한 심플 아트 오브 머더는 에세이와 단편 소설 스패니쉬 블러드(Spanish Blood, 1935)만 수록된 책이다. 살인의 예술 에세이는 없고, 다섯 편의 단편이 수록되었다챈들러의 몇 안 되는 단편 소설들을 만날 수 있는 책은 단편 선집 레이먼드 챈들러: 밀고자 외 8 유일하다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편지를 가려 뽑아서 다섯 개의 주제로 묶은 서한집이다이 책에 수록된 편지들은 챈들러가 지향하는 문학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는 중요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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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5-06-16 1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이 비교적 깨끗해 보인다. 저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는 나도 갖고 있긴한데 아직도 못 읽고 있다. ㅠ 청계천을 다녀왔구나.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청계천 헌책방 골목 한 번 안 나가봤으니 나는 별로 책을 사랑하는 영혼은 아닌 것 같아. ㅠ 그 사이 헌책방이 줄어도 너무 많이 줄었나 보다. 일본엔 진보초란 울나라로 치면 청계천 같은 곳인데 한 마을 또는 플레이스 개념으로 보존되어 있는가 봐. 서점계가 어렵긴 일본도 마찬가진가 본데 그래도 그런 자구책일 가지고 서로 상생 노력한다는 게 기득하더군. 읽을 헌책은 많고 시력은 떨어지고. 그러며 사는 거지 별수 있니? ㅋ

cyrus 2025-06-24 06:37   좋아요 1 | URL
책이 많이 있는 유명 대형서점이나 유명한 헌책방에 한 번도 안 갔어도 꾸준히 책을 읽으면서 산다면 책을 좋아하는 영혼이에요. 저는 서울에 자주 가면서 광화문 교보문고와 아크앤북 잠실 롯데월드몰에 한 번도 안 가봤어요. 그리고 지난 주에 종료된 국제도서전에도 안 갔어요.. ^^
 




서울에 가는 토요일은 무조건 일찍 일어난다. 그날은 검푸른 빛 아침에 달리는 열차를 만난다. 검푸른 빛 아침 하늘에 슬며시 퍼지는 햇살은 밝지 않다. 여리여리한 햇살은 두 겹으로 된 열차 유리창을 통과하지만, 눈부시지 않다.








 











[서울 독서 모임 <수레바퀴와 불꽃열세 번째 모임(2025년 1월) 선정 도서]

정희진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한국 사회 성정치학의 쟁점들》 (교양인, 2023)





이틀 전 토요일은 독서 모임 <수레바퀴와 불꽃> 모임 날이었다. 올해 첫 독서 모임이다모임 선정 도서는 정희진다시 페미니즘의 도전이다이 모임 장소가 있는 동네는 서울 노원구. 모임은 오전 10에 시작된다. 새벽 6시에 서대구역을 지나는 아침 열차를 타야만 모임 장소에 여유롭게 도착할 수 있다. 서울역에서 노원역으로 가는 지하철 4호선을 타면 30분 정도 걸린다.


그런데 작년에 해야 할 건강 검진을 계속 미루었고, 회사는 토요일에 병원에 가보라고 독촉했다. 오전에 건강 검진을 받아야 해서 독서 모임을 불참하기로 정했다. 아침 일찍 병원에 가서 건강 검진을 받았다. 오전 시간대의 열차표 전부 매진되면 서울에 가지 않으려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10시에 서대구역을 지나는 열차 자리 하나를 대기 예약했다. 다행히 자리가 생겼다. 햇살 쨍쨍한 아침에 서울로 가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수레바퀴와 불꽃>은 세 시간 동안 진행된다. 1시에 모임이 끝나면 참석자들과 점심을 먹는다. 모임 뒤풀이라 할 수 있다.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나는 모임 뒤풀이에 합석했다. 혼자 식사하는 일이 주말 일상이 되다시피 해서 여러 사람과 식사하는 일이 드물다. 무엇보다도 그날의 점심 메뉴가 중요했다. 모임 참석자들이 먹으려는 음식은 피자였다.


<수레바퀴와 불꽃>은 처음에 서한용 작가김지용 님, 두 분의 대화에서 시작되었다. 김지용 님은 피자를 매우 좋아하는 분이다. 단순히 피자 먹는 일을 좋아하는 분이 아니다. 다양한 형태의 피자가 어떻게 만들어지며 어떤 재료를 쓰는지 살핀다. 지용 님이 선호하는 피자는 대기업이 만든 피자(프랜차이즈 피자)가 아니다. 자영업자가 운영하는 피자 전문 가게에 직접 가서 먹는다. 이런 피자는 기업형 피자의 토핑과 다르다. 그리고 만드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지용 님은 정말 피자에 제대로 미친사람이다. 그분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피자 사진이 많이 있다. 그분은 직접 구매한 피자를 먹고 나서 느낀 점을 인스타그램에 글로 남긴다. 피자 맛집을 잘 아는 지용 님이 추천한 피자 가게에 점심을 먹는다고 하니, 안 갈 수가 없었다. 그날 내 머릿속은 책이 아닌 피자 냄새로 가득했다













, 서 작가, 지용 님, 이 세 사람이 점심을 먹으러 간 곳은 지노피자 창동이라는 가게였다. 가게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도봉구 창동에 있다. 우리가 먹은 피자는 오리지널 디트로이트식 페퍼로니 피자 미트볼 피자였다.


피자 두 판이 나오자마자 지용 님은 피자의 전체 모습이 다 나오도록 사진을 찍었다. 이 가게의 도우는 두껍다. 두께가 얼추 토스트와 비슷하다. 도우의 식감은 겉바촉속이다. 피자의 겉부분인 크러스트는 바싹하고, 토핑이 올려진 피자의 속살은 촉촉하다. 피자 토핑이 된 미트볼은 피자 가게 사장이 직접 만든 것이다. 수제 미트볼위에 끈적하게 녹은 치즈가 있다.


우리는 피자를 먹으면서 책과 페미니즘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래도 대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피자였다. 세 사람의 입과 눈빛이 피자로 향하자 김지용 교수님의 피자 강의가 시작되었다.


















[절판] 캐럴 헬스토스키, 김지선 옮김, 주영하 감수 피자의 지구사(휴머니스트, 2011)





김 교수님은 이탈리아 피자와 미국 피자의 차이점을 알려줬다. 그 전에 먼저 김 교수님은 이탈리아 피자라는 말을 자주 쓰면 다양한 피자를 설명할 수 없게 된다고 강조했다. 왜냐하면 이탈리아 지방마다 피자를 만드는 방식과 토핑 재료가 제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전역에서 만들어진 피자는 빈민층들의 주식이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피자는 나폴리 피자. 나폴리 피자는 토마토와 치즈가 들어 있는 오늘날의 피자와 다르다. 나폴리 피자가 한참 유행했을 때 이탈리아에 토마토가 들어오지 않았다. 나폴리 빈민들에게 육류는 비싼 재료였다. 나폴리 피자에 먹음직스러운 토핑이 없었다. 둥글납작한 빵에 올려진 것은 마늘과 소금, 라드(lard: 고체 형태로 된 돼지기름)뿐이었다. 그래서 나폴리 피자의 별칭은 흰 피자였다고 한다미국 피자는 미국인들이 만든 피자를 뜻하지 않는다. 미국 피자를 처음 만든 사람은 미국으로 건너온 이탈리아 이민자들이다. 이들은 뉴욕, 보스턴, 코네티컷에 정착했고, 각 지역에서 나오는 특산물로 피자를 만들었다.


피자 가게에서 했던 우리의 대화는 뜨거웠다. 대화의 열기가 더욱 뜨끈뜨끈해질수록 피자는 천천히 식었다. 하루 지났는데도 내 머릿속에 여전히 따끈따끈한 피자 냄새가 진동했다. 다음날, 책에 미친 나는 도서관에 가서 피자의 지구사를 빌렸다. 피자에 미친 김 교수님도 이 책을 가지고 있었다이 책은 피자 강의의 교재였다교수님이 설명한 내용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해서 강의 후기를 못 쓸 줄 알았다. 강의 교재 덕분에 김 교수님이 설명한 내용을 떠올릴 수 있었다.



🍕

 

피자의 역사를 정리한 책을 봐서 그런가? 

여전히 피자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다

지나간 피자는 잊어버리고, 이제 책을 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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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5-01-20 1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피자 맛있어 보인다.
나중에 그분 피자 가게 낸 다고 할 것 같네. ㅎ
그래. 다니던 사람은 다녀야 해. 안 다니면 허전하고 뭔가 손해 본 것 같고 그렇잖아.
검진 결과는 이상무지?

cyrus 2025-01-21 06:40   좋아요 1 | URL
지용님이 책을 좋아하셔서 책과 피자를 파는 가게를 차리고 싶다고 하셨어요. ^^

자세한 결과는 2월 초에 나올 거예요. 혈압은 정상인데, 혈당이 어떻게 나올지 걱정이 되네요. ^^;;

cyrus 2025-01-27 09:19   좋아요 1 | URL
지난주에 결과가 나왔는데, 문제없었어요. ^^

stella.K 2025-01-28 11:49   좋아요 1 | URL
그랴. 잘 됐다. 명절에 과음 과식하지 말고, 건강하게 잘 보내라.^^

blanca 2025-01-20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자 얘기 재미있네요. 특히 나폴리 피자 얘기는 진짜 신기하네요. 저는 이탈리아 고급 피자인 줄 알았는데...새벽 기차까지 타고 서울 독서모임에 가시는 정열이 부럽습니다.

cyrus 2025-01-21 06:41   좋아요 0 | URL
왠지 올해는 피자를 많이 먹을 것 같습니다.. ㅎㅎㅎ

서니데이 2025-01-25 2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속의 피자 맛있을 것 같아요. 미국도 지역에 따라 피자가 조금씩 다르다고 들었는데, 디트로이트 식 피자는 처음봅니다. 건강검진 결과도 좋게 나왔으면 좋겠네요.

cyrus 2025-01-27 09:21   좋아요 1 | URL
건강에 큰 문제는 없었어요. ^^
 



서한용 작가가 감사하게도 내가 진행하는 독서 모임을 위한 추천사를 썼다. 이번 달 독서 모임 선정 도서는 내가 정했지만, 이 책의 존재를 처음 알려준 사람은 서한용 작가다. 서 작가의 추천사에 보르헤스(Borges)가 예술을 정의한 말이 나온다. 예술은 불과 수학의 결합이다.’ 





















* 리사 크론, 문지혁 옮김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 사람의 뇌가 반응하는 12가지 스토리 법칙》 (웅진지식하우스, 2024)




2주 전에 나는 서 작가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독서 모임 추천사를 써달라고 제안했다. 당시 서 작가는 소설 집필을 위해 창작 방식을 소개한 책을 읽는 중이라고 했는데, 그 책이 바로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였다서 작가는 이 책의 머리말에 언급된 보르헤스의 말을 다시 인용했다.



 독자를 사로잡는 이야기는, 독자의 강력한 기대를 계속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일찍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예술이란 불과 수학의 결합이다라고 말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중에서, 7)



불과 수학은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Tion, Uqbar, Obis Tertius)에 나오는 구절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송병선 옮김 픽션들》 (민음사, 2011)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황병하 옮김 픽션들》 (민음사, 1994)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는 보르헤스의 소설집 픽션들에 수록된 작품이다보르헤스가 만든 가상의 인물과 지명,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책들, 그리고 실존 인물의 이름이 나열되면서 뒤섞인 이야기는 독자에게 혼란을 준다여기에 여러 종류의 철학들도 녹아 들어 있어서 보르헤스의 글을 다가서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보르헤스의 글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꿈, 상상력, 백과사전이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픽션들은 현재 두 권이다. 처음 나온 지 30년이나 된 보르헤스 전집픽션들민음사 세계 문학 전집픽션들이 있다. 두 권의 책을 만든 출판사는 같지만, 번역자는 다르다픽션들》의 두 번역자는 불과 수학’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어느 해적판 백과사전에서 존재하지 않는 국가에 대한 피상적인 언질을 발견했었다. 이제 우연은 내게 보다 정확하고 꼼꼼히 읽어야 할 어떤 무엇을 제공하게 된 것이다. 이제 나는 그 알 수 없는 혹성에서의 건축과 놀이기구, 그곳의 신화가 가진 공포와 그곳 언어들의 흔적, 그곳의 황제들과 바다들, 그곳의 광석들과 새들과 고기들, 그곳의 기하학과 불, 그곳의 신학적이고 형이상학적 논쟁들과 함께 그곳의 전 역사를 개괄적으로 다루고 있는 방대한 자료의 일부를 바로 내 손안에 들고 있게 된 것이었다


(황병하 옮김, 27)


 이 년 전 나는 해적판 백과사전에서 존재하지 않는 거짓 국가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발견했다. 이제 우연은 보다 정확하고 보다 공들인 무엇인가를 내게 제시하고 있었다. 이제 나는 알려지지 않은 행성의 전체 역사를 광범위하고 체계적으로 다룬 자료 일부를 손에 넣게 된 것이었다. 거기에는 그 행성의 건축과 카드 패, 소름 끼치는 신화와 그 언어의 속삭임, 그곳의 황제와 바다, 광석과 새와 물고기, 그곳의 수학과 불꽃, 그곳의 신학적이고 형이상학적 논쟁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송병선 옮김, 19)




소설 속 화자인 보르헤스는 기억력이 좋다. 그는 동료 작가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Adolfo Bioy Casares)가 잠깐 언급한 말을 잊지 못한다그 말은 이교도 지도자 우크바르가 한 말인데, 거울과 성교는 사람들의 수를 늘리기 때문에 혐오스럽다는 것이다. 보르헤스는 우크바르의 말의 출처가 궁금해서 백과사전을 살핀다백과사전에 언급된 여러 편의 참고문헌까지 경유한 보르헤스는 틀뢴과 오르비스 테르티우스라는 비밀에 휩싸인 행성과 세계를 만난다.


두 권의 픽션들중에 딱 한 권만 읽으라고 추천하기가 애매하다. 왜냐하면 두 번역본에 있는 역자의 주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보르헤스 전집픽션들의 단점은 가독성이 떨어지는 문장이다. 비록 정확하지 않은 내용이 담긴 주석도 더러 있다. 그 예로, 실제 인물인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의 사망 연도를 물음표로 표시한 역주(18쪽). ‘보르헤스 전집이 출간된 1994년에 카사레스는 살아 있었고, 그는 1999년에 세상을 떠났다. 보르헤스의 창작 의도를 알려주는 역자의 주석은 보르헤스의 소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반면 보르헤스 전집픽션들의 문장은 읽기 수월하지만, ‘보르헤스 전집픽션들과 비교하면 역주의 양이 적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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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2-21 1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고가 많겠구나. 사람들은 많이 나오나? 이런 모임은 흔들리지 않는 꾸준함이 중요한 것 같아. 몇명이 나오든 상관하지 말고 꾸준히 잘 해 봐. 벌써 지원군도 있고. 든든하겠어. ㅎ 멀리서 응원한다!
이책 나도 읽어보고 싶던 책이야.

cyrus 2024-12-22 22:41   좋아요 1 | URL
문학 읽기 모임은 많으면 (저를 포함해서) 5, 6명이 참석하는 소모임이에요. 누님은 오래전부터 저의 서재를 봐서 아시겠지만, 저의 문학적 취향이 독특하잖아요.. ㅎㅎㅎ 모임에 꾸준히 참석하는 분들은 제가 추천한 문학 작품들이 재미없다고 투덜대요. 그런데도 제가 감탄할 정도로 작품 분석을 잘 해요. 문학 모임이 6월부터 시작했는데, 이번 달까지 하면 7개월째 진행했네요. 이 정도면 예상보다 오래 한 겁니다. 저는 이 모임이 길게 가봐야 3개월로 예상했거든요.. ^^;;

감은빛 2024-12-24 1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 거리를 극복할 수 있다면 시루스님 모임에 가고 싶네요. 저도 예전부터 책 모임 여러 개를 나가다 말다 했었어요. 제일 오래 나갔던 건 아마 1년 넘게 가기도 했었죠. 요즘은 SF읽기 모임을 시작한 지 세 달 정도 되었는데, 재미있습니다. 참석자들이 모두 내가 참 좋아하는 사람들이기도 하고 연령대가 다양하다는 점이 흥미로운 포인트인 것 같아요. 제일 연장자는 60대의 공장노동자이신데, 매주 주말은 하루종일 도서관에서 보내는 정말 책을 많이 읽고 상식이 풍부한 분이시고, 막내는 30대 후반의 예술가로 정기적인 급여를 받는 노동을 하지 않고도 어떻게든 생겨를 꾸려가면서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훌륭한 활동가입니다. 생물학적으로 유일한 여성이라 대화를 나눌 때, 여성의 시선으로 보려고 하는 흐름을 잘 이끌어 줍니다. 다른 사람들도 다 훌륭한 분들인데, 각자 긴 시간 다른 분야에서 사회운동을 펼친 사람들이라, 각자의 경험과 시선이 달라서 더 재미있어요.

cyrus 2024-12-26 06:26   좋아요 0 | URL
연령대와 관심사가 서로 다른 분들이 모여서 즐거운 분위기 속에 독서 모임을 진행한다는 건 축복이에요. 제가 20대 때 참석했던 독서 모임은 감은빛 님이 말씀하신 독서 모임과 거의 비슷한 분위기라서 정말 좋았어요. 그런데 요즘 독서 모임은 과거 분위기만큼 나지 않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