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모임에 가면 불문율이 얌전하게 앉아 있다. 모임 참석자들은 불문율을 절대로 건드리지 않는다. 불문율이 깨지면 모임이 난장판이 되기 때문이다. 모임 참석자 중 한 사람이 불문율을 빤히 쳐다본다. 참석자의 귀에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들어오지 않는다. 참석자의 눈빛이 불문율로 완전히 쏠려 있다. 다른 참석자들이 긴장하기 시작한다. 모임장은 불길한 눈빛을 멈추기 위해 참석자에게 당부한다.
“독서 모임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한 일이니 불문율을 지켜주세요.
절대로 그것을 말하면 안 됩니다.”
불문율을 지키고 싶지 않은 참석자는 모임장의 당부를 어긴다. 기어이 불문율을 건드리고 만다. 가만히 있던 불문율이 꿈틀거린다. 참석자의 입에 언급하지 말아야 할 것이 튀어나온다. 참석자는 심하게 요동치는 불문율을 깨뜨린다. 불문율이 깨지자, 고분고분하게 대화가 흐르던 독서 모임은 순식간에 싸움터가 된다. 참석자들은 서로의 말과 생각을 움켜잡아 싸운다.
“당신의 생각은 잘못되었어요.
책 좀 읽었다면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죠?”
흥분한 참석자들은 상대방이 틀렸다면서 야멸차게 쏘아붙인다. 대화 불가능한 독서 모임이 어수선하게 마무리된다.
독서 모임에 심심찮게 참석하는 불문율은 세 가지다. 첫 번째 불문율은 책과 무관한 대화를 하지 않기. 두 번째 불문율은 정치에 대해 말하지 않기, 세 번째 불문율은 종교 전도하지 않기. 이 세 가지 불문율을 하나로 모으면 완전한 성문법이 탄생한다. 독서 모임에 정치와 종교 책은 선정하지 않기.
사실 첫 번째 불문율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책 속에서만 흐르는 대화는 유익하지만, 늘 재미있는 건 아니다. 책 밖으로 이탈한 대화도 재미있다. 그래도 너무 멀리 나가면 곤란하다. 모임 참석자들 모두가 즐길 수 없고, 만족하지 못한 대화가 오래 지속되면 모임장은 정중하게 제지해야 한다.
[독서 모임 <수레바퀴와 불꽃> 열다섯 번째 모임(5월) 선정 도서]
* 피에르 다르도 · 크리스티앙 라발 · 피에르 소베트르 · 오 게강 함께 씀, 정기헌 옮김
《내전, 대중 혐오, 법치: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원더박스, 2024년)
올해 들어서 나는 두 번째 불문율을 깨뜨렸다. 5월 중순에 한 서울 독서 모임 <수레바퀴와 불꽃> 선정 도서는 정치와 결합한 신자유주의를 비판한 《내전, 대중 혐오, 법치》였다. 나를 포함한 모임 참석자들은 과거에 신자유주의 비판서를 탐독했을 정도로 신자유주의가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나는 여기에 모임 분위기에 반전을 주고 싶었다. 모임 전날에 참석자들은 발제를 공개한다. 나는 발제에 ‘정치색’을 드러냈다. 나는 자유주의자이고 온건 보수주의자라고. 자유주의자로서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방식을 제안했는데, 신자유주의자들이 자유를 독점하고, 왜곡하는 세태를 방치하면 ‘자유’의 정의가 변질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개인의 자유만 찬양하는 자유 지상주의와 비슷한 신자유주의와 정반대로, ‘다원성’을 강조하는 자유주의자도 있다고 언급했다. 그래서 내가 언급한 자유주의 사상가가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과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이었다.
* 에드먼드 포셋, 신재성 옮김 《자유주의: 어느 사상의 일생》 (글항아리, 202년)
* 헬레나 로젠블랫, 김승진 옮김 《자유주의의 잃어버린 역사: 》 (글항아리, 202년)
* 패트릭 J. 드난 , 이재형 옮김 《왜 자유주의는 실패하는가》 (민들레, 2025년)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기 전에 자유와 자유주의의 정의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알아야 한다. 신자유주의와 구분하기 위해 분류된 고전적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가 아닌 개인의 덕성과 공동체 결속을 위한 헌신을 강조한다. 계몽주의 사상이 본격적으로 무르익기 시작한 18세기부터 자유주의자들은 개인의 권리를 억압하는 군주정과 종교를 비판했다. 개인의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는 데 중점을 둔 자유주의라는 개념은 20세기가 돼서야 확립되었다.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 자유주의의 흐름을 정리한 책을 꼽자면 스스로 ‘좌파 자유주의자’로 소개한 정치 전문 기자가 쓴 《자유주의》, 개인과 타인이 연결된 관계가 모여서 형성된 공동체를 중시했던 자유주의의 과거를 보여주는 《자유주의의 잃어버린 역사》가 있다. 《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는가》는 개인의 덕성을 함양하기 위한 자유 학예(liberal arts)를 배우려는 고전적 자유주의를 ‘전근대 자유주의’로 분류한다. 이 책의 저자는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근대적 자유주의’로 발전할수록 자유주의가 퇴보(실패)했다고 주장한다.
[우주지감 <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 2020년 3월 도서]
* 스티븐 레비츠키 · 대니얼 지블랫 함께 씀, 박세연 옮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어크로스, 2018년)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2025년 7월 도서]
* 스티븐 레비츠키 · 대니얼 지블랫 함께 씀, 박세연 옮김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 (어크로스, 2018년)
이번 달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약칭 ‘세속’) 선정 도서는 ‘정치적인 책’이다. 지난 주 금요일에 모임이 있었다.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약칭 ‘극단적 소수’)는 <세속>의 정기 독자 김성현 님이 추천한 책이다. 김성현 님은 <고라니 울고>라는 독서 모임을 이끄는 모임장이다. <고라니 울고>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모임이다. 그분은 정치적인 책을 <고라니 울고> 회원들과 함께 읽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정치적인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는 독서 모임이 회원들에게 부담감을 줄까 봐 결정을 계속 보류했다. 때마침 내가 올해 <세속> 선정 도서 후보에 ‘비문학적인 책’도 가능하다고 허용했고, 그리하여 ‘정치적인 책을 읽는 문학 모임’이 만들어졌다.

정치 책을 읽는 독서 모임은 이번이 처음이다. 과거에 참석했던 독서 모임 <우주지감-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에 정치 책이 선정된 적이 있었다. 그 책이 바로 《극단적 소수》의 전작인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였다. 하지만, 모임은 취소되었다. 당시 코로나19 팬데믹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던 때였고,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면서 모임이 제한되었다.
* 조지 오웰, 이한주 옮김 《나는 왜 쓰는가》 (한겨레출판, 2025년)
* 남태현 《극우의 노래: 한국의 극우, 그들은 누구인가》 (오월의봄, 2025년)
‘정치적인 책을 읽는 문학 모임’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정치와 거리를 두는 문학을 경계한 조지 오웰(George Orwell)을 떠올린다면 문학 작품의 정치적인 독해가 가능하다. 오웰은 문학 작품 속에 스며든 작가의 정치색을 비평할 뿐만 아니라 파시즘과 반유대주의에 동조하는 작가들을 비판했다.

모임이 시작하자마자 <세속>의 정기 독자 조약돌 님이 먼저 우리나라 정치와 관련된 발제를 제시했다. 2, 30대 남성들은 왜 극우에 열광하는가? 나는 이 발제가 나올 거로 예상했고, 우리나라의 극우화 현상을 분석한 책 《극우의 노래》를 소개했다. 극우의 정치적 행보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시작되었다. 경기 침체가 길어질수록 살길이 막막한 청년들의 불만은 점점 높아졌다. 거대 양당 정치는 청년들이 만족할 만한 정책을 내놓지 못했다. 여권 신장과 성평등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고, 이주민이 증가하자 청년들은 자신들이 ‘역차별’을 당한다고 생각한다. 분노한 청년들은 외국인 혐오를 조장하는 극우 유튜버들을 지지한다. 보수정당은 청년들의 불만과 분노를 달래기는커녕 그들의 극우 성향을 감싸고, 정치적 의제로 삼았다.
* [절판] 《새 한글 성경: 신약과 시편》 (대한성서공회, 2021년)
독서 모임 구성원에 비종교인이 많으면 종교 책이 필독서로 선정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온갖 분야의 책들이 언급되는 모임 대화에 종교 책은 끼지도 못한다. 그래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알려진 성경은 대우가 좋은 편이다. 비종교인 애서가들도 성경이 고전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비종교인 애서가가 성경을 자주 인용하는 일은 드물다. 왜냐하면 성경을 읽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독서 모임 <수레바퀴와 불꽃> 열여섯 번째 모임(7월) 선정 도서]
* 금정연 《한밤의 읽기》 (스위밍꿀, 2024년)
지난주 금요일은 세계 문학 모임 날이었고, 다음 날인 토요일은 <수레바퀴와 불꽃> 16번째 모임 날이었다. 모임 필독서는 금정연 서평가의 《한밤의 읽기》였다. <수레바퀴와 불꽃>은 두 명의 애서가가 만나면서 시작된 독서 모임이다. 이중 한 분은 라캉(Jacques Lacan)과 알튀세르(Louis Althusser)에 관심이 많은 크리스천이다. 그분은 꾸준한 책 읽기를 욕망하게 한 최초의 책이 ‘설교 비평집’이라고 했다.
* [절판] 정용섭 엮음 《속 빈 설교 꽉 찬 설교》 (대한기독교서회, 2006년)
* 정용섭 엮음 《설교와 선동 사이에서》 (대한기독교서회, 2007년)
* 정용섭 엮음 《설교의 절망과 희망》 (대한기독교서회, 2008년)
그분 바로 옆에 앉은 나는 설교 비평이 궁금해서 질문했다. 설교 비평은 목회자들의 설교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일이다. 그분은 국내에 처음 설교 비평을 시도한 정용섭 목사가 쓴 책을 읽었다고 했다. 책 제목은 언급하지 않았고, 그 책이 절판되었다고 했다.

<수레바퀴와 불꽃> 모임을 마치고 대구로 돌아온 나는 설교 비평과 관련된 책을 찾아봤다. 운이 좋게도 알라딘 동성로 서점에 정용섭 목사가 엮은 설교 비평집 두 권이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분이 말한 절판된 책은 정용섭 목사의 설교 비평집 시리즈의 1부 《속 빈 설교 꽉 찬 설교》다.

기회가 되면 범상치 않은 분위기의 독서 모임을 만들어서 꾸리고 싶다. 문학 작품을 정치적 관점으로 읽는 모임이라든가 아니면 무신론자들을 위한 종교 책 읽기 모임이다. 실현 불가능한 모임이 될 가능성이 크지만, 정치와 종교 분야의 책도 독서 모임에 언급할 가치가 있다.
독서 모임에 환영받지 못한 책을 읽는 애서가들을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