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on your side

When times get rough

And friends just can’t be found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I will lay me down



저는 당신 편이에요.

힘든 시간이 다가오고

친구를 찾을 수 없을 때

험한 물 위에 있는 다리처럼

제가 다리가 되어 드릴게요.



-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

Bridge Over Troubled Water(1970) 노랫말 -







니체(Nietzsche)의 철학적 분신 차라투스트라(Zarathustra)는 인간이 위대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위대한 인간을 다리(bridge)’에 비유합니다.



































* 프리드리히 니체, 장희창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민음사, 2004)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을 위한, 그리고 어느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아카넷, 2025)

 


[카페 스몰토크 <니체 읽기> 지정 도서(2022)]

* 프리드리히 니체, 김인순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열린책들, 2015)

 


[펭귄클래식 독서 모임(<달의 궁전> 전신) 20113월의 책,

발제자: cyrus]

* 프리드리히 니체 · 레지날드 J. 홀링데일 서문, 홍성광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인간의 위대함은 그가 다리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인간이 사랑스러울 수 있는 것은 그가 건너가는 존재이며 몰락하는 존재하는 데 있다.

 나는 사랑한다. 몰락하는 자로서 살 뿐 그 밖의 삶은 모르는 자를. 왜냐하면 그는 건너가는 자이기 때문이다.

 

(장희창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중에서, 19)




목적에 맞춰서 행동하는 인간은 안정적으로 살아갑니다. 목적에 완전히 벗어난 삶의 경로를 피해 다닙니다. 반면에 다리형 인간은 유동적입니다. 새로운 세상, 새로운 나를 추구합니다. 그러려면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변화를 시도해야 하며 과거의 한계를 넘어서야 합니다. 다리형 인간은 몰락을 간절히 원합니다초인(Übermensch)이 되고 싶은 몰락하는 자는 과거가 된 세계관과 가치관을 해체합니다.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는 다리와 같은 독서 모임입니다. 과거에 읽은 책을 소환해서 새로운 관점으로 다시 읽습니다. ‘재독(rereading)’은 과거에 책을 보면서 느낀 것과 생각을 되돌아보는 행위입니다.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해서 책을 읽거나 한 해 동안 한 번 완독한 책들의 목록을 만들려는 목적형 독서는 다시 읽을 수 있는 시간적인, 정신적인 여유가 부족합니다.

















[서재를탐하다 & 읽다익다 <우주지감

이 작가의 책’ 20195월의 책, 추천 독자읽는 인간’ 천성은]

* [절판] 오에 겐자부로, 정수윤 옮김 읽는 인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50년 독서와 인생(위즈덤하우스, 2015)



 

[서재를탐하다 & 읽다익다 <우주지감

이 작가의 책’ 20196월의 책, 추천 독자읽는 인간 천성은]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20254월의 세계 문학

추천 독자: 정현정]

* 오에 겐자부로, 서은혜 옮김 개인적인 체험(을유문화사, 2009)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는 천성은 독자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 사람입니다. 천성은 독자의 별명은 읽는 인간입니다. 독서를 주제로 한 오에의 강연들을 엮은 책의 제목 읽는 인간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책에서 오에는 예전에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읽으면 전신운동을 하고 난 뒤의 상쾌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재독은 과거에 읽었을 때보다 더 깊이, 더욱 치열하게 읽어야 합니다. 다시 읽기는 과거에 읽으면서 몰랐던 책의 내용을 몇 번이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대구 독서 모임 <고라니 울고> 202511월의 소설]

* 앨리스 워커, 고정아 옮김 컬러 퍼플(문학동네, 2020)

 


* [절판] 앨리스 워커, 안정효 옮김 컬러 퍼플(청년정신, 2007)









<고라니 울고>는 김성현 독자와 정현정 독자가 소속된 독서 모임입니다. <고라니 울고>의 작년 11월 지정 도서는 미국 소설가 앨리스 워커(Alice Walker)컬러 퍼플이었습니다워커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입니다. 소위 말하자면 흑인입니다. 젊은 시절에 흑인 민권 운동에 뛰어들었으며 잊힌 흑인 여성 작가들을 발굴하기도 했습니다. 컬러 퍼플은 열네 살에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흑인 소녀가 정신적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인간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입니다. 이 소설이 성공하면서 워커는 1983년에 전미도서상과 흑인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았습니다.


저는 소설가로도 활동한 안정효가 번역한 컬러 퍼플을 읽었는데요, 이 책은 절판되었어요. 이 책의 앞표지에 소설 속 주인공의 실루엣이 그려져 있어요. 실루엣의 출처는 원작을 토대로 만든 영화 <컬러 퍼플> 포스터입니다


소설 주인공은 처음에는 맞춤법과 문법이 어색한 흑인 토속 영어로 말합니다. 안정효 번역가는 흑인 영어 특유의 발음과 억양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맞춤법이 틀린 우리말로 번역했습니다.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20261월의 세계 문학]

[서울 독서 모임 <달의 궁전> 2025년 12월의 책]

* 퍼시벌 에버렛, 송혜리 옮김 제임스(문학동네, 2025)

 


[그라디언트 <이 작가의 책>

미국 근대 문학 읽기’ 20267월의 책

추천 독자: ‘읽는 인간천성은]

* 마크 트웨인, 김욱동 옮김 허클베리 핀의 모험(민음사, 1998)

 


* 마크 트웨인, 이화연 옮김 톰 소여의 모험(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올해 1월의 세계 문학 작품의 주인공은 흑인 노예 남성입니다. 이 남성의 이름은 제임스(James)’입니다. 백인들은 그를 (Jim)’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모험심이 강한 백인 소년들이 구출한 흑인 노예로 기억합니다. 짐의 탈출을 도와준 소년들이 바로 허클베리 핀(Huckleberry “Huck” Finn)톰 소여(Thomas “Tom” Sawyer)입니다.


1월의 세계 문학은 퍼시벌 에버렛(Percival Everett)의 소설 제임스입니다. 작가는 앨리스 워커와 같은 조지아주 출신 흑인입니다. 제임스마크 트웨인(Mark Twain)허클베리 핀의 모험흑인의 관점으로 재해석한 작품입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두 백인 주인공의 시선으로 흑인 짐과 노예제도를 바라본 고전입니다. 이와 반대로제임스의 제임스는 흑인 노예가 백인 중심의 미국 사회를 관찰합니다.


제임스도 백인 앞에서 의도적으로 맞춤법이 틀린 채 말합니다. 소설에서는 흑인 영어를 노예 말투라고 번역했습니다실제로 흑인 노예들은 백인들에게 잘 보이려고 우스꽝스럽게 말했습니다. 우월감에 빠진 백인들은 문맹인 척하는 노예들을 자신보다 열등한 존재로 여겼습니다.

















[대구 페미니즘 독서 모임 <레드스타킹> 202011~12월의 책]

 

[그라디언트 <이 작가의 책>

미국 근대 문학 읽기’ 202612월의 책

추천 독자: ‘읽는 인간천성은]

* 토니 모리슨, 최인자 옮김 빌러비드(문학동네, 2014)












천성은 독자가 이끄는 독서 모임 <이 작가의 책>의 올해 큐레이션은 미국 근대 문학 읽기입니다. 7월 지정 도서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고, 12월 지정 도서는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빌러비드입니다. 제가 대구 페미니즘 독서 모임 <레드스타킹>에 활동했을 때 여성 작가들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중 한 작품이 빌러비드였습니다.

 

제임스지금까지 소개한 다른 독서 모임 지정 도서들을 연결해 주는 다리입니다. 컬러 퍼플빌러비드를 다시 읽고 싶거나 예전의 독서 경험을 다시 떠올리고 싶은 독자를 위해서, 그리고 허클베리 핀의 모험빌러비드를 읽으려는 독자를 위해서 제임스를 선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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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 온종일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과 놀았다. 즐거우면서도 괴로운 시간이었. 지젝이 쓴 책 잉여향유가 지난주 토요일 오전에 진행되었던 서울 독서 모임 <수레바퀴와 불꽃> 지정 도서라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읽었다.








 











[독서 모임 <수레바퀴와 불꽃> 열여덟 번째 모임(12) 지정 도서]

* 슬라보예 지젝, 강우성 옮김 잉여향유: 당황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길잡이(북스힐, 2024)




어영부영 이 책, 저 책 읽는 못된 독서 습관 때문에 독서 모임 지정 도서에 열심히 눈길을 주지 못했다결국 잉여향유》 를 끝까지 다 읽지 못했다지젝이 많이 인용하고 언급하는 헤겔(Hegel), 마르크스(Karl Marx), 자크 라캉(Jacques Lacan)의 사상을 깊게 이해하지 못해서 읽는 속도가 더디었다.

















































* 이찬용, 배세진 감수 마르크스주의 입문: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바꾸기 위해(오월의봄, 2025)


* 피터 싱어, 노승영 옮김 마르크스》 (교유서가, 2019)

 

* 한형식 마르크스 철학 연습: 세상을 직시하게 하는 한 권의 철학》 (오월의봄, 2018)

 

* 미카엘 뢰비 · 엠마뉘엘 르노 · 제라르 뒤메닐 함께 씀, 배세진 옮김 마르크스주의 100단어(두번째테제, 2018)


* 양자오, 김태성 옮김 《자본론을 읽다: 마르크스와 자본을 공부하는 이유》 (유유, 2014)


* 김수행 자본론 공부: 김수행 교수가 들려주는 자본 이야기(돌베개, 2014)


* 존 몰리뉴, 천형석 옮김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 입문(책갈피, 2013)




잉여향유는 라캉이 고안한 정신분석학 용어다. 잉여는 마르크스의 경제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잉여가치(Mehrwert, surplus value)와 관련이 있다.








노동자가 일을 해서 상품을 만드는 시간은 상품의 가치와 동일하다. 상품이 팔리면서 나온 이익은 노동자가 받는 임금이다. 그런데 노동자가 일하는 시간은 고정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노동자를 고용한 자본가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데 이윤을 더 많이 얻기 위해 노동 시간을 늘린다. 노동자의 일이 늘어날수록 상품의 가치가 증식된다. 이것이 바로 자본가가 획득하는 잉여가치. 자본가는 노동력을 착취하면서 생기는 잉여가치로 이익을 얻는다.






























* 칼럼 닐, 이미라 옮김 라캉을 읽기 위한 기본(yeondoo, 2025)

 

* 숀 호머, 김서영 옮김 라캉 읽기(은행나무, 2014)


* 브루스 핑크, 이성민 옮김 라캉의 주체: 언어와 향유 사이에서(도서출판b, 2010)

 

* 김석 에크리: 라캉으로 이끄는 마법의 문자들(살림, 2007)

 

* 딜런 에반스, 김종주 옮김 라깡 정신분석 사전(인간사랑, 1998)




향유(jouissance, 주이상스)쾌감을 뜻하는 용어다. ‘향락으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주이상스는 우리말로 번역하기 애매한 개념이다소크라테스(Socrates)가 시민들과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철학을 했듯이 라캉은 자신의 사상을 말로 설명하는 강의와 세미나를 중시했다. 그의 이름이 저자로 표기된 저작물은 강연과 세미나 내용을 편집해서 만든 것이다.









주이상스를 간단하게 설명하면 고통스러운 과도한 쾌락이다지나치게 쾌락에 빠지면 자기를 파괴하는 상황에 이른다. 극단적인 욕망의 끝은 죽음 충동과 맞닿아 있다따라서 주이상스는 죽음으로 향하는 통로이면서도 동시에 죽도록 즐기고 싶은매혹적인 쾌락이다


지젝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잉여향유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분석한다그가 자본주의를 분석하기 위해 사용된 사상의 도구 틀이 너무 많다. 앞서 언급했듯이 헤겔, 마르크스, 라캉을 자주 사용하며 이 세 사상가를 다르게 해석한 동시대 학자들의 견해까지 가지고 온다.

















* [절판] 자크 라캉, 홍준기 · 이종영 · 조형준 · 김대진 함께 옮김 에크리(새물결, 2019)




잉여향유1장에서 유심히 읽은 내용은 <과학 없이도 자본주의도, 자본주의에서의 탈피도 없다>라는 소제목의 글이다. 이 글에서 지젝은 라캉의 에크리의 제일 마지막에 있는 <과학과 진리>라는 강연 글의 한 대목을 인용한다.







 과학에는 기억이 없다. 일단 구성되면, 과학은 자신이 존재하게 된 순환 경로를 조작한다. 달리 말하면, 과학은 정신분석이 진지하게 작동시키는 진실의 차원을 망각한다


(잉여향유, 88)


 과학을 기억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과학은 구성되었을 때는 태어날 때의 우여곡절을 망각한다. 즉 정신분석이 거기서 명백히 작용시키는 진리 차원을 말이다


(라캉, 에크리, <과학과 진리> 중에서, 1029)



라캉이 바라본 과학은 합리적인 지식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반면에 정신분석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주체를 연구 대상으로 삼으며 주체의 무의식에도 주목한다. 따라서 정신분석학은 무의식적 주체를 규명하는 과학이다


지젝은 라캉이 표현한, ‘기억 없는 과학을 여러 번 강조하면서 과학을 비판한다. 그의 비판 지점들을 열거하자면, 주체의 차원을 폐제하는(폐지해 없애 버린다) 과학진실로 둔갑한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외면하는 과학의 태도, 연구 결과가 오용되는 상황에 신경 쓰지 않는 과학자들의 문제, 그리고 자본주의에 복무하는 과학이다.


과학이 잘못된 길로 나아가는 것에 우려하는 심정으로 과학을 강도 높게 비판한 지젝의 견해에 동의한다. 하지만 기억하지 않는 과학은 사실이라고 규정한 라캉의 견해에 반대한다.


라캉의 의도와 다를 수 있지만(오독할 가능성이 높지만), 나는 기억하지 않는 과학을 이렇게 해석한다. 미신과 종교를 비판하면서 합리적이고 실증적인 학문으로 자리매김한 과학은 시간이 지날수록 한계와 문제점들을 드러냈다. 목록을 작성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많다. 우생학, 성차별, 실험 조작, 비윤리적 실험, 원자 폭탄이나 무기 개발에 협조한 과학자들, 담배 회사와 손잡고 흡연의 해로움을 의도적으로 은폐한 과학자들. 그런데도 여전히 과학은 과거의 문제점들을 답습한다. 따라서 라캉이 말한 기억하지 않는 과학은 성찰하는 주체가 없는 학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결국 지식을 성찰하는 주체가 없는 상태의 과학은 자본주의와 인종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에 휩쓸린다.


하지만 오늘날의 과학은 연구실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어서 생각이 완전히 멈춰진 학문이 아니다연구실 안에서든 밖에서든 과학을 성찰하는 과학자들이 있다이들은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으며 과학의 치명적인 한계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다른 과학자들이 잊고 싶은 과학의 어두운 면을 누누이 언급하고, 대중에게 알린다. 그러면서 예비 과학자들에게 과학적으로 성찰하는 태도를 가지라고 당부한다.

















* 스티븐 제이 굴드, 홍욱희 · 홍동선 함께 옮김 다윈 이후(사이언스북스, 2009)

 

* 스티븐 제이 굴드, 김동광 옮김 인간에 대한 오해(사회평론, 2003)




미국의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는 과거에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잘못 포장된 사이비 학문, 양심을 저버린 과학자들, 우생학을 지지한 과학자, 성차별을 옹호한 과학을 비판한 글을 주로 썼다. 굴드처럼 과학의 약점을 기억하는 과학자는 그것을 교훈으로 삼아 인간다운 삶과 자연과 공생하는 관계를 모색하는 과학을 지향한다. 그리고 과학이 성숙해지려면 과학을 비판하는 시민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지젝은 오늘날 과학은 어느 때보다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하면서도 과학 그 자체가 이 일을 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한다(잉여향유》, 92쪽). 그는 여기서 또다시 라캉을 인용한다. 기억이 없고, 진실의 차원을 무시하는 오늘날의 과학은 자본주의에 저항하지 못한다. 지젝은 과학이 개선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과학과 진리>1965년부터 1966년까지 진행된 라캉의 세미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에 라캉이 생각한 과학은 너무 오래됐고 낡았다. 그때의 과학은 오늘날의 과학은 다르다. 그런데도 지젝은 과학에서 비롯된 문제점들을 허심탄회하게 인정해 왔고, 개선하기 위해 자성의 목소리를 낸 과학의 노력마저도 불신한다. 과학을 오해하고 있는 듯한 지젝의 냉소적 태도가 불만스럽다.







<끔찍한 오역에 관한 cyrus의 주석>









잉여향유의 번역자는 지젝이 인용한 라캉의 에크리문장을 직접 번역했다. 캔터는 무한을 연구한 독일의 수학자 게오르그 칸토어(Georg Cantor)를 영어식으로 표기한 것이다.


독일인의 이름을 영어식으로 어설프게 표기한 것은 가볍게 봐줄 수 있어도 끔찍한 오역은 지나칠 수 없다.






* 잉여향유89

 

 그는 무한이라는 개념의 혁명으로 인해 내적 혼란을 겪어 광기의 극한으로 치닫고 심지어 식인 행위를 하게 된 캔터를 언급한다.



[원문]

 He mention Cantor whose revolutionizing of the notion of infinity triggered an inner turmoil which pushed him to the limit of madness and even led him to practice coprophagia.

 


 

89쪽의 ‘식인 행위를 하게 된 캔터는 오역이다. 칸토어는 혼자서 무한집합론을 연구했는데, 당시 동료 수학자들은 칸토어의 무한 연구를 평가절하했다.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당한 칸토어는 말년에 우울증과 조현병에 시달렸고, 이상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coprophagia는 대변을 먹는 식분증을 뜻한다



















* D. 배로, 전대호 옮김 무한으로 가는 안내서: 가없고 끝없고 영원한 것들에 관한 짧은 기록(해나무, 2011)

 

* [절판]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 크리스토스 H. 파파디미트리우 함께 씀, 알레코스 파파다토스 · 애니 디 도나 함께 그림, 전대호 옮김 로지코믹스: 버트런드 러셀의 삶을 통해 보는 수학의 원리(RHK, 2011)

 

* 아미르 D. 악젤, 승영조 · 신현용 함께 옮김 무한의 신비: 수학, 철학, 종교의 만남(승산, 2002)




무한으로 가는 안내서무한의 신비칸토어의 삶과 업적을 상세하게 다룬 책으로, 무한을 주제로 한 연구가 정신 나간 연구로 취급받게 된 시대적 배경을 알 수 있다







로지코믹스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을 수학자로 유명하게 만든 저서 <수학의 원리>의 탄생 배경을 그래픽노블로 구성한 책이. 이 책에 러셀이 태어나기 전에 활동한 수학자들이 나오는데정신 질환에 걸린 칸토어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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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낫지 않는 질병에 걸리면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건강이 나빠진 상태를 보여 주기 싫어서 병에 걸린 사실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이런 사람에게 충언할 때 쓸 수 있는 속담이 있다.







병 자랑은 하여라.’ 병에 걸린 사실에 혼자 불안해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겪는 증상을 알려서 치료법을 찾으라는 뜻이다.


몸과 정신이 아픈 경험은 누구나 겪는 일이다. 그러나 질병을 터놓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모든 아픔이 동등하게 관심받는 것은 아니다누군가의 아픔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동정심을 일지만, 다른 누군가의 아픔은 외면받거나 의도적으로 지워진다어떤 아픔은 마땅히 치료받아야 할 대상이 되지만, 또 어떤 아픔은 질병에 대한 부정적 시선에 찔린다아픈 사람의 목소리는 소거된다. 결국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다침묵당한 아픔은 불평등과 차별을 유발한다. 정확하게 진단하는 의료 기기가 갖춰진 병원이 많이 생겨도 아픔을 말할 수 없게 만드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2025년 12월의 세계 문학]

* 비키 바움, 박광자 옮김 크리스마스 잉어(휴머니스트, 2023)




오스트리아에 태어나 독일과 미국에 활동한 비키 바움(Vicki Baum)의 단편 소설 <>아픔을 말하지 못한 여성이 느끼는 소외감이 잘 묘사되어 있다1924년에 발표된 <>토마스 만(Thomas Mann)이 극찬한 작품으로, 국내에 유일하게 출간된 바움의 단편 선집 크리스마스 잉어에 실려 있다.


<>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아픔을 참는 주부의 이야기다주인공은 새 옷장을 사고 싶어 한다. 그러나 집안일하는 주부는 경제적 자유가 없다. 그녀는 옷장을 사는 데 필요한 돈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 돈을 쓰려면 남편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답답한 일상은 주부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한다. 결국 그녀는 알 수 없는 몸의 통증에 시달린다몸에 이상을 느낀 주부는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아파서 쉬게 되면 해야 할 집안일이 산더미처럼 쌓인다. 자기 대신에 식사를 차려 줄 사람이 없다참다못한 주부는 남편에게 자신의 증상을 밝힌다. 그러나 남편은 아내가 감기에 걸렸다고 생각한다. 주부는 자신의 아픔을 가볍게 여기는 남편에 실망한다도통 낫지 않아서 병원에 가보지만, 의사는 그녀의 병을 감기로 진단을 내린다. 주부는 의사의 진단을 믿는다.









   











* 베티 프리단, 김현우 옮김 여성성의 신화: 새로운 길 위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용기를(갈라파고스, 2018)

 

* 김선희 페미니즘의 방아쇠를 당기다: 베티 프리단과 <여성의 신비>의 사회사 (푸른역사, 2018)




<> 집안일을 열심히 하는 삶에 만족하는 가정주부이미지가 허상임을 보여준다. 이 소설이 나온 지 40여 년 후에 가정주부의 아픔을 본격적으로 주목한 책이 나온다이 책이 바로 미국의 페미니스트 베티 프리단(Betty Friedan)여성성의 신화(The Feminine Mistique). 바움이 미국 할리우드에서 세상을 떠난 지 3년 후에 출간되었다주부에게 집은 일터다. 집안일은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여성으로 태어나면 자연스럽게 해야 하는 일로 여긴다. 주부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스스로 묻지 못한 채 살아왔다. 가정에 헌신하는 여성은 의사도 명확히 진단 내리기 어려운 신체적 증상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거나 정신적인 공허감을 느낀다프리단은 주부들의 속앓이를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problem that has no name)로 명명한다.


















* 아서 프랭크, 최은경 · 윤자형 함께 옮김 아픈 몸을 이야기하기: 육체, 질병, 윤리(갈무리, 2024)

 

* 아서 프랭크, 메이 옮김 아픈 몸을 살다(봄날의책, 2017)




한 사람의 아픔에도 이야기(narrative)가 있다. 아픈 이야기는 한 사람의 삶 속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다. 말하지 못한 아픈 이야기는 약을 먹거나 치료해서 금방 사라지는 가벼운 증상이 아니다병을 자랑하는 이야기는 병을 치료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에 아픈 이야기는 질병을 극복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푼 이야기가 아니라 질병이 삶의 일부가 된 이야기. 아픔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픈 몸의 취약함을 온전히 받아들이면서도 자기 비하로 빠지지 않는다질병, 장애 등이 포개진 아픈 이야기를 듣는 일은 지금 아프기 시작했거나 과거에 아팠던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을 읽는 방식이다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우리도 언젠가는 아플 수 있다아픈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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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어요. 요즈음에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있어요. 지난달 모임 도서인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읽을 때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서곡만 여러 번 들었네요.

 

11월의 세계 문학 도서는 클래식 음악을 같이 들으면서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에요. 책 제목은 유명한 음악 제목과 같습니다.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11월의 세계 문학]

자우메 카브레

권가람 옮김

겨울 여행

민음사

2025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11월의 세계 문학은 자우메 카브레(Jaume Cabré)의 단편 소설집 겨울 여행입니다.










<겨울 여행(Winterreise, Winter Journey)>은 오스트리아의 음악가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의 연가곡집입니다. 우리나라에 알려진 제목은 겨울 나그네입니다. ‘겨울 나그네는 의역한 제목이라서 원문에 살짝 벗어나 있어요. ()가곡은 이야기가 있는 가곡을 뜻합니다.








빌헬름 뮐러

김재혁 옮김

겨울 나그네

민음사

2017





<겨울 여행>은 총 24곡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중5보리수가 유명합니다. 가곡의 노랫말들은 독일의 낭만주의 시인 빌헬름 뮐러(Wilhelm Müller)가 쓴 동명의 시입니다. 슈베르트는 뮐러의 시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에도 곡을 붙여 연가곡집을 썼습니다. <겨울 여행>,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백조의 노래>는 슈베르트의 3대 연가곡집입니다.

 

자우메 카브레는 스페인 카탈루냐 출신 작가입니다. 카탈루냐의 주도는 바르셀로나입니다. 카탈루냐는 17세기부터 자치 정부를 세웠습니다. 그 이후에도 카탈루냐는 네 차례 공화국 선언을 했지만,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2014년에 정권을 잡은 카탈루냐 민족주의자들은 다시 한번 독립을 선언합니다. 하지만 스페인과 대부분 국가(우리나라도 포함되어 있어요)는 카탈루냐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요.

 

겨울 여행14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어요. 소설 한 편의 분량이 짧지도, 그렇다고 길지도 않아요. 적당해요. 슈베르트의 음악이 언급되는 단편 소설이 있고요, 음악과 관련 없는 줄거리가 전개되는 단편 소설들도 있어요.

 

겨울 여행예술 소설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소설에 슈베르트뿐만 아니라 아주 유명한 음악가와 화가도 나옵니다. 겨울 여행을 직접 읽어보시면 알 수 있어요.








 

대구에서 오래된 음악 감상실인 하이마트 음악 감상실에서 같이 슈베르트의 가곡을 듣는 모임을 추진해 보려고 합니다. 히시마 님이 하이마트 음악 감상실을 추천했습니다. 한 번 방문했는데, 음악 감상하기에 쾌적했습니다. 세계 문학 모임 속 작은 예술 즐기기 모임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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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1-09 0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장소가 있었군요. 대구에서 성장했지만 떠난 지가 오래되어서 이를 몰랐네요.

cyrus 2025-11-09 09:07   좋아요 0 | URL
대구 토박이인 저도 최근에 알았어요. 혼자 가기 좋은 장소였어요. ^^
 







대구 독서 모임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10월의 세계 문학







아서 C. 클라크

김승욱 옮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황금가지

2017




2025년 10월 31일 금요일

저녁 8시~10시

장소: 인더가든








<10월의 세계 문학>을 만든 독자들







[북 큐레이터(도서 추천)]

김성현, 천성은, 최해성

 


[진행, 북클럽투르기, 윤색]

최해성



[사진]

천성은, 최해성



[참여]

조약돌, 김성현, 히시마, 천성은, 배러(첫 참석)

 


 

북클럽투르기(bookclubturgy, bookclubtur+)

 

독서 모임 후기 엮은이.

북클럽투르기는 공연 제작을 위해 희곡과 연극을 전체적으로 분석하는

작업 또는 이러한 작업을 하는 사람을 뜻하는

드라마투르기(dramaturgy)’에서 따온 말입니다.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보지 않았지만, 영화 초반부에 나오는 유명한 장면은 알고 있어요. 영화는 총 4막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1막에 달을 감시하는 자라는 이름을 가진 원숭이 인간(원시 인류)이 등장합니다. 지능이 발달한 원숭이 인간들은 뼈로 만든 곤봉을 써서 동물을 사냥하고, 동족끼리 싸우기도 합니다.








 

달을 감시하는 자는 땅바닥에 널브러진 동물의 뼈를 뼈 곤봉으로 내리칩니다. 여기서 영화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 나옵니다. ‘달을 감시하는 자는 뼈 곤봉을 공중으로 던집니다. 이때 공중에 뜬 곤봉은 우주를 나는 인공위성으로 자연스럽게 전환됩니다이 장면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의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약칭 차라투스트라서곡이 장엄하게 흘러나옵니다. 서곡의 제목은 해돋이(Sonnenaufgang)’입니다.


영화가 유명해지면서 슈트라우스의 교향시는 대중에게 친숙한 클래식 음악이 되었어요. 2시간 이상의 영화를 본 적 없는 사람은 뼈 곤봉을 휘두르는 원숭이 인간이 나오는 장면만 기억합니다.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지 않는 사람은 2분도 채 안 되는 서곡만 익숙합니다.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총 9장으로 편성되어 있어요. 사실 저도 서곡을 제외한 나머지 곡들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을 위한, 그리고 어느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아카넷, 2025)

 

* 프리드리히 니체, 레지날드 J. 홀링데일 서문, 홍성광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 프리드리히 니체, 정희창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민음사, 2004)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니체(Friedrich Nietzsche)의 대표작에 영감을 얻어 만든 곡입니다영화와 원작 소설의 줄거리가 조금은 달라요. 소설 후반부에 우주 탐사대의 유일한 생존자 데이비드 보먼(David Bowman)별의 아이(Star Child)’로 변하는 과정이 나옵니다. 영화를 먼저 본 후에 원작 소설을 접한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니체를 주목했습니다.


니체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은 별의 아이가 위버멘쉬(Übermensch, 초인)’를 상징한다고 주장했어요. 차라투스트라는 도덕과 기독교 교리에 얽매여 노예처럼 살아가는 보통 인간들을 향해 위버멘쉬가 되라고 강조합니다. 위버멘쉬는 스스로 힘에의 의지를 발현해서 고통을 극복하고, 자유로운 정신을 가진 창조적인 존재입니다.


소설 원작자 아서 C. 클라크(Arthur C. Clarke)와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은 영화 각본을 함께 썼습니다. 두 사람은 니체 철학으로 감상하고 해석하는 관점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독자와 관객들의 자유로운 해석을 존중했어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니체가 따라다니는 작품 해석은 시들어졌어요. 특히 소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후속작 세 편이 나온 이후부터 독자들은 니체와 헤어질 결심을 합니다. 그들은 별의 아이=초인해석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소설과 영화에서 떨어질 줄 모르는 철 지난 감상법을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일시 품절] 롤랑 바르트, 김희영 옮김《텍스트의 즐거움》 (동문선, 2022)


* 그레이엄 앨런, 송은영 옮김《문제적 텍스트 롤랑/바르트》 (앨피, 2006)


* [절판] 필립 소디, 권순만 옮김《롤랑 바르트》 (김영사, 2009)





클라크와 큐브릭은 자신들의 작품에 의도적으로 철학적인 메시지를 심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죽었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우리 독자를 위해 ‘저자의 죽음을 선언했습니다. 저자가 죽어서 남긴 텍스트는 결국 독자가 차지합니다. 독자는 저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텍스트를 마음껏 해석할 수 있어요. 틀려도 좋아요. 우리는 완벽할 수 없어요. 텍스트를 오독오독 곱씹어 읽어도 오독할 수 있어요. 죽은 저자는 말이 없습니다. 우리의 오독에 쓴소리하지 못합니다. 다른 독자들의 오독을 비판하는 것은 원본 텍스트와 독자의 해석으로 재구성된 텍스트 모두를 해석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오독만 보면 깔보거나 비아냥거리는 독자들이 있어요. 우리는 못된 독자들을 만나면 죽여야 합니다.


















* [개정 증보판] 블레즈 파스칼, 김화영 옮김, 팡세-분류된 단장(IVP, 2023)

 

* 블레즈 파스칼, 이환 옮김, 팡세(민음사, 2003)

 



저는 무신론자입니다종교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아서 조금씩천천히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지난달부터 읽기 시작한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의 팡세는 기독교를 변증하는 책입니다. ‘팡세(Pensées)’는 생각들이라는 뜻의 프랑스어입니다이 책은 파스칼이 죽을 때까지 쓴 단상(짧은 글모음집이에요파스칼이 39세에 요절한 후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어요.

 

과장된 해석 혹은 잘못된 해석이 나올 수 있어요그래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읽으면서 신과 인간에 대한 파스칼의 생각과 종교관을 투사해 봤습니다. 제가 종교적 관점으로 재구성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본 독자들의 비판을 환영합니다.


소설에 묘사된 인류는 화성을 개척할 정도로 뛰어난 기술 공학을 습득했고우주를 정복할 기세입니다소설의 화자는 아주 잠깐 파스칼을 언급합니다.



* 137

 

 모든 것이 지금보다 훨씬 더 단순했던 시대에 파스칼은 우주에서 전파가 끊임없이 지직, 쉭쉭 소리를 내고 있는데도 무한한 우주의 침묵이라는 순진한 소리를 했다.

 



무한한 우주의 침묵팡세에 있는 구절입니다파스칼은 무한한 우주의 침묵에 직면한 상황을 가정합니다.




팡세-분류된 단장, 193


무한한 공간들의 영원한 침묵에 나는 두려움을 느낀다.



팡세》(민음사), 213


이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




화자는 무한하고 침묵하는 우주 앞에 두려움을 떠는 파스칼이 순진하다고 말합니다소설 속 미래 인류는 우주를 두려워하지 않거든요. 인공지능 컴퓨터 HAL 9000의 반란을 방어하고 혼자 살아남은 데이비드 보먼은 우주에서 혼자 사는 것에 적응합니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무한한 우주의 침묵을 두려워하고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 279


 보먼은 자신의 행동 패턴이 약간 변했음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침묵을 참을 수가 없었다. 잠을 잘 때와 지구와 통신하고 있을 때를 빼면, 항상 우주선 음향 시스템의 소리를 고통스러울 정도로 크게 올려놓았다.

 

 

보먼은 우주 속의 침묵과 고독을 잊으려고 음악을 크게 틀어놓습니다파스칼은 무한한 공간에 혼자 있는 인간은 지루함을 느끼게 되고, 결국 고독에 영원히 갇히는 불행한 존재로 봤어요. 지루한 인간은 재미있는 것을 하고 싶어 해요. 그래서 오락(divertissement)’을 합니다. 오락을 하면 즐겁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하지만 파스칼은 오락마저 냉소적으로 바라봅니다. 인간이 자신의 비참한 상태를 외면하기 위해 오락에 탐닉한다고 본 것이죠. 그리고 오락에 중독된 인간은 자신이 행복을 느낀다고 착각합니다.


보먼은 미지의 우주를 무사히 통과하여 목성에 도착하는 데 성공합니다. 화자는 점점 더 생존력이 강해지는 보먼을 묘사할 때 전지전능한 신을 언급합니다.



* 325

 

 뒤쪽에서 불의 바다가 점점 더 커져 가는 순간, 보먼은 마땅히 두려움을 느꼈어야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가벼운 불안만 느껴질 뿐이었다. 그의 머리가 놀리다 못해 아예 마비되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논리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뭔가 거의 전능한 지적 능력을 가진 존재가 지금 상황을 통제하며 그를 보호해 주고 있음이 틀림없다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중략) 따라서 누군가가 그를 살려 두려고 지금까지 이렇게 애쓴 것이 사실이라면, 아직 희망이 있었다.




보먼을 보호하는 전지전능한 지적 존재파스칼이 그토록 만나고 싶어 했던 숨은 신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파스칼은 신이 숨어 있어서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인간이 아무리 뛰어난 이성과 지혜를 가지고 있어도 신을 만날 수 없다고 봤어요. 숨은 신은 그로부터 선택받은 소수의 사람만 볼 수 있어요. 파스칼의 유신론에 따르면 보먼은 숨은 신에게 선택받은 자입니다.


















* 임마누엘 칸트, 백종현 옮김, 판단력 비판(아카넷, 2009)

 

* 피오나 휴즈, 임성훈 옮김, 《칸트의 미적 판단력 비판입문(서광사, 2020)




파스칼과 다르게 독일의 철학자 칸트(Immanuel Kant)는 무한한 공간 앞에 선 인간을 긍정적으로 바라봅니다. 칸트는 가늠하기 힘든 거대한 자연 앞에 서면 두려움(또는 불쾌감)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두려움이 사라지면, 자연이 아름다워 보이고 경외감을 느낍니다(쾌감). 이렇듯 칸트는 불쾌감을 느끼면서도 뭔가 기분이 좋아지는 감정의 변화 상태숭고(역학적 숭고)라고 명명했습니다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칸트의 숭고 개념을 적용할 수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 314


 그는 눈을 감아 자신을 둘러싼 이 진줏빛 무()의 공간을 차단해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겁쟁이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그는 그런 충동에 굴복하고 싶지 않았다.

 



보먼은 무의 공간, 무한한 우주를 두려워하지만, 어떻게든 잘 적응해 나갑니다. 그가 두려운 감정에 압도당하는, 즉 파스칼이 상정한 비참한 인간이었다면 우주에 생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숭고를 인식한 인간은 미지의 자연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숭고는 인간이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존재임을 확신시켜 줍니다. 칸트의 이성적 인간은 겁쟁이가 아닙니다. 그는 자연의 위력에 굴복하지 않습니더 나아가 자연을 정복하려고 합니다.




















[천성은 독자의 추천 도서]

* 장 자크 루소, 이재형 옮김, 인간 불평등 기원론(문예출판사, 2020)

 

* [리커버판] 장 자크 루소, 고봉만 · 주경복 옮김, 인간 불평등 기원론(책세상, 2018)




천성은 님달을 탐사하는 자가 나오는 소설의 초반부 장면(영화의 1)에 루소(Jean-Jacques Rousseau)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투사했습니다.








루소의 견해에 따르면 문명이 발달하기 전인 자연 상태의 인간은 평등하게 살았습니다. 혼자 생활하던 인간은 하나둘씩 모여서 집단(공동체)을 형성하는데, 루소는 여기서부터 불평등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합니다문명 속의 인간은 자신과 타인을 비교합니다. 친하게 지내고 있어도 자신이 남들보다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자신보다 더 잘 사는 타인에 질투심과 경쟁심을 느낍니다. 반면에 경제적으로 우월한 사람들은 자신보다 한 단계 아래인 사람들을 경계합니다.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그들을 지배하고 통제하려고 합니다. 지배 계층과 피지배 계층이 형성되고, 두 계층 간의 불화와 불평등은 더 커집니다. 루소는 문명이 발달하면서 불평등 문제가 생겼고, 이에 따라 인간은 도덕적으로 타락했다고 주장합니다.









성은 님은 인류의 진화를 압축해서 보여준 소설 초반부를 인간이 타락(불행)하기 시작한 장면으로 해석했습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다양한 해석이 태어날 수 있는 소설입니다독자가 이 소설을 제대로 즐기려면 제일 먼저 늙은 니체를 죽여야 합니다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저자 행세하는 낡은 니체를 죽인 독자는 소설에 자신만의 생각을 덧붙여 씁니다

 


독자 여러분, 저자의 눈치를 보지 마세요.

저자를 죽여서 초인적인 독자가 되어 주세요.









<파스칼, 칸트, 루소에 관한 니체 빠’ cyrus의 주석>








[1] 어린 시절 파스칼은 수학 신동이었다. 세무 공무원인 아버지를 위해 10대 소년 파스칼은 사칙연산이 가능한 수동식 계산기를 발명했다. 독일의 철학자 라이프니츠(Leibniz)도 계산기를 만들었다. 파스칼과 라이프니츠 계산기는 컴퓨터와 인공지능의 조상이다







[참고 문헌]

[절판더멋 튜링김의석 옮김계산기는 어떻게 인공지능이 되었을까?: 주판에서 알파고까지 거의 모든 컴퓨팅의 역사》 (한빛미디어, 2019)





[2] 니체는 도덕이 인간의 본질적 생명력과 창조력을 억누르고, 자기 극복을 방해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니체는 도덕을 강조한 루소와 칸트를 싫어했다.







* 프리드리히 니체, 이동용 옮김《아침놀: 도덕적 선입견에 대한 생각들》 (세창출판사, 2022)







[품절] 프리드리히 니체박찬국 옮김《아침놀》 (책세상, 2004)


 


니체는 아침놀에서 칸트를 도덕의 유혹에 사로잡힌 철학자로 평가했으며 루소를 도덕의 독거미로 비유했다. 니체는 도덕의 독거미루소에게 물린 칸트의 영혼 밑바닥에 도덕적 광신이 숨어 있다고 썼다.







프리드리히 니체박찬국 옮김《우상의 황혼》 (아카넷, 2015)





우상의 황혼에서는 루소가 평등하다고 가정한 자연에 반대하여 더러운 자연이라고 표현했다. 니체가 생각한 더러운 자연은 이미 갈등과 투쟁으로 점철된 불평등한 세계다그리고 루소가 프랑스 혁명을 옹호하기 위해 내세운 만민 평등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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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5-11-05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의 니체에 대한 주석 너무 너무 좋습니다. 니체를 죽여야 진정한 독자로 태어나다는 cyrus님만의 살불살조(杀佛杀祖) 선언으로 들립니다. 당나라 때 임제선사는 진리의 길에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고 했어요. 수행자들이 부처의 뼈를 오도독 오도독 씹어 먹어서 부처의 골수를 얻었듯이 cyrus님 또한 니체를 죽여서 진정 니체를 부활 시키셨네요. 부럽습니다!!!

cyrus 2025-11-07 07:00   좋아요 1 | URL
제가 니체를 좋아해서 니체의 한계를 잘 압니다... ㅎㅎㅎ 독서 모임 선정 도서 한 권 덕분에 철학을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

페크pek0501 2025-11-09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와 파스칼의 팡세는 대척점에 있는 듯한데 저는 두 책을 다 좋아하고 어떤 때는 니체의 문장인지 파스칼의 문장인지 헷갈려 할 때가 있어요. 아마 단상처럼 쓴 문장들이라는 공통점 때문인가 봅니다. 제 서재에도 두 책에 실린 글을 올린 적이 많은데 제 맘대로 해석한 게 많았죠. 제 해석이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다는 것을 최근 니체 강좌를 들어 알았어요. 그런데 별로 상관이 없더라고요.ㅋㅋ
아포리즘을 좋아하는 저로선 두 책을 안 좋아할 수가 없어 밑줄이 많이 그어 있는 애독서인 셈입니다.

cyrus 2025-11-09 21:39   좋아요 1 | URL
아포리즘은 우리가 마음대로 해석하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그리고 금방 읽을 수 있어서 너무 길게 쓴 문장보다 읽기 편해요. 그런데 장점을 뒤집으면 단점이 생겨요. 우리 독자의 해석이 틀릴 수 있다는 점이에요. 그래도 저는 니체를 읽기 시작하는 독자를 만난다면 과감하게 아포리즘의 장점을 누리라고 권하고 싶어요. 그런 다음에 제대로 니체 철학의 핵심을 안다면 아포리즘을 다시 읽으면서 다르게 해석할 수 있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