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들이 잘 안 보는 책을 좋아한다. 이런 책들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지 못한다. 책을 즐겨 읽는 지인들은 내가 따분한 책만 골라 읽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만 이런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나의 독서 취향과 비슷한 독자들이 있다.

 

소설가와 번역가로 활동 중인 정보라 작가는 본인을 이렇게 소개했다. 한국에선 아무도 모르는 작가들의 괴상하기 짝이 없는 소설들과 사랑에 빠졌다고. 정 작가의 소개말을 보는 순간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괴상한 소설들을 쓴 작가들의 이름이 제멋대로 튀어나왔다.















































*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이동신 옮김 러브크래프트 걸작선(을유문화사, 2024)


* 로드 던세이니, 정보라 옮김 얀 강가의 행복한 나날(바다출판사, 2011)

 

[서울 독서 모임 <달의 궁전> 2021년 1월의 책]

* 레오 페루츠, 강명순 옮김 스웨덴 기사(열린책들, 2020)


[서울 독서 모임 <달의 궁전> 2021년 3월의 책]

디노 부차티한리나 옮김 타타르인의 사막》 (문학동네, 2021)

 

* 조리스 카를 위스망스, 유진현 옮김 거꾸로(문학과지성사, 2007)

 

* [4 개역판] 제임스 조이스, 김종건 옮김 율리시스(어문학사, 2016)

 

* [절판] 아서 매켄, 이한음 옮김 불타는 피라미드(바다출판사, 2011)

 



일단 제일 먼저 나온 작가는 러브크래프트(H. P. Lovecraft). 예전에 많이 읽었고, 최근에 다시 읽고 있다. 러브크래프트에게 영향을 준 로드 던세이니(Lord Dunsany). 서울 독서 모임 <달의 궁전> 덕분에 알게 된 디노 부차티(Dino Buzzati)와 레오 페루츠(Leo Perutz). 그 밖에 위스망스(Huysmans),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아서 매켄(Arthur Machen). 이중에 정말 유명한 작가는 조이스 뿐이다. 나는 이 작가들의 책이 흥미로웠는데, 그래도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지 않다작중 묘사와 작가의 문장이 상당히 독특해서 이런 작품을 선호하는 취향이 아니면 어렵거나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좋다고 느낀 정보라 작가의 소개말이 있는 책 역시 특이한 소설이다. 이 소설을 쓴 작가를 아는 독자는 드물다. 나만큼 괴상한 소설을 즐겨 읽는 서한용 작가이 작가를 알고 있었다예전에 내가 서울에 사는 애서가서한용의 서재를 소개한 적이 있었다.[주1] 서한용 작가는 올해 6월 문학잡지 <현대문학> 신인 추천작 소설 부분 당선작 성대모사는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로 등단했다. 그는 다음에 발표할 소설을 열심히 쓰고 있다. 


















* 찰스 부코스키, 황소연 옮김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민음사, 2019)

 

* 찰스 부코스키, 로버트 크럼 (그림), 설준규 옮김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 언더그라운드의 전설 찰스 부카우스키의 말년 일기(모멘토, 2015)




서 작가는 나에게 정지돈찰스 부코스키(Charles Bukowski), 그리고 이 작가의 괴상한 소설이 좋다면서 여러 번 추천했다.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12월의 책은 서 작가가 추천한 이 작가의 특이한 소설이다. 내게 이 소설을 소개한 서한용 작가의 추천사를 공개한다. 바쁜 와중에 독서 모임을 위한 추천사를 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

 


















[대구 세계 문학 읽기 모임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12월의 책]

* 보리스 사빈코프정보라 옮김 《창백한 말》 (빛소굴, 2022)




19세기 러시아의 모스크바 총독 암살 사건을 다룬 이 소설을 지금 이 시대에 읽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쩌면, 어떤 사람들에겐 아무 의미 없을지 모른다. 혁명? 허무와 사랑 사이의 고뇌?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이지. 현실을 살아. 대형할인마트에서 쇼핑하기,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맛있는 음식 먹기, 다이소에서 갓성비 아이템 사기, 쿠팡에서 로켓배송 상품 주문하기, 텔레비전으로 예능 보기, 누워서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커뮤니티 접속하기, SNS로 남들이 올린 여행지 구경하기, 유튜브로 하루종일 쇼츠 영상 보기.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30평형 아파트에 들어와 잠을 청하기. 안온하고 안락한 하루. 이런 거, 이런 게 행복 아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작동할 여지가 얼마나 있을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열거한 것들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 세계는 병들었고, 나는 누군가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고, 세계의 어떤 이도 노예가 되어선 안 된다고 믿는 사람, 우리는 세계의 압제와 폭력과 억압과 착취와 부조리에 맞서 싸워야 하지만, 싸우는 것이 좋아서 싸우는 게 아니라, 사랑을 위해서 싸워야 한다고 믿는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 어쩌면 이 책은 모든 것을 의미하게 될지 모른다.


















* 리사 크론, 문지혁 옮김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 사람의 뇌가 반응하는 12가지 스토리 법칙》 (웅진지식하우스, 2024)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송병선 옮김 픽션들(민음사, 2011)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황병하 옮김 픽션들(민음사, 1994)

 



리사 크론이야기란 변화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잘 쓰인 소설은, 주인공이 변화하는 만큼 독자를 변화시킨다. 읽은 후의 나를 읽기 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소설. 이것이 좋은 소설이다. 관건은, 그 변화가 얼마나 근본적인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렇게 바꿔 말할 수 있겠다. 좋은 소설이 독자를 변화시킨다면, 위대한 소설은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독자를 변화하게 만든다. 보르헤스 예술은 불과 수학의 결합[주2]이라고 했다. 보리스 사빈코프의 <창백한 말>은 화염을 방사하는 수학의 정석이다.



보리스 사빈코프(Boris Savinkov)러시아 고위 관료들을 암살한 사회주의 계열의 테러리스트. 자신의 테러 활동을 기록한 <테러리스트의 수기>를 썼고, 3년 후에 이 글은 창백한 말이라는 제목의 소설로 세상에 공개된다. 당시 사빈코프는 망명 중이라 ‘빅토르 롭쉰(V. Ropshin)’이라는 필명으로 소설을 발표했다.


이 소설에 서로 다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혁명을 꿈꾸는 테러리스트들이 나온다작가 본인의 성격과 가치관이 반영된 소설의 주인공은 감정 기복이 심하며 그의 인격은 세상에 대한 악의로 가득 차 있다. 내가 인용한 소설 속 문장은 주인공의 성격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요즘 나는 열병에 걸린 사람 같다. 나의 모든 의지는 단 한 가지, 살인하고 싶다는 열망에 집중되어 있다. (68)

 


창백한 말‘특이한 소설’이. 소설의 원형인 <테러리스트의 수기>의 흔적이 남아 있어서 이야기를 따라가는 독자는 어디가 사실이고 허구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것이다사빈코프는 러시아 문학사에서 잘 언급되지 않는다. 작가보다는 사회주의자 또는 테러리스트로 알려졌다위험한 사상을 가진 작가의 책을 독서 모임 선정 도서로 읽을 필요가 있는지 따지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창백한 말을 번역한 정보라 작가는 작품 해설에 사빈코프를 민중 해방을 위해 혁명에 몸을 바친 민중주의자로 소개했다. 그러나 사빈코프가 파시즘을 지지한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달에 미국의 공포 소설 작가 러브크래프트의 단편 선집이 세계 문학 전집에 포함되어 출간되었다.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번역한 역자는 러브크래프트의 극단적인 인종차별주의와 우생학 지지를 상세히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 위험한 생각’이 녹아들어 있는 작가의 소설을 신중하게 읽고 비평하자고 제안한다. 창백한 말》도 비판적인 비평방식으로 읽어야 한다.


창백한 말을 소설 또는 문학 작품으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이 드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소설이 처음에 수기였으니 에세이로 분류할 수 있다사빈코프가 왜 수기를 소설로 고쳐 썼는지 궁금하다.




















* 알베르 카뮈, 김화영 옮김 알베르 카뮈 전집 4: 여행 일기. 계엄령. 정의의 사람들. 시사 평론(1947~1950)(책세상, 2010)

 

* [절판] 알베르 카뮈, 김화영 옮김 정의의 사람들 · 계엄령(책세상, 2000)

 




사빈코프는 크게 주목받지 못한 문학의 아웃사이더. 하지만 소수의 작가만이 그를 기억했다. 특히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창백한 말에 영감을 얻어 희곡 정의의 사람들을 썼다. 정의의 사람들에도 러시아의 테러리스트들이 등장한다. 그중 한 사람인 이반 칼리아예프는 도덕을 중시하는 테러리스트다서 작가의 알라딘 블로그 필명(닉네임)은 칼리아예프.[주3] 

 





[1] <...: 서울 청년 서한용 씨의 서재를 탐()하다

2023104일 등록

https://blog.aladin.co.kr/haesung/14958932


[2]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에 나오는 표현이다.


[3] 서한용 작가의 알라딘 블로그 주소

https://blog.aladin.co.kr/seohy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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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11-29 2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보라 작가가 동아일보에 연재하곤 했는데 잘 알려지지 않은 책에 대한 소개의 글이었어요. 저도 창비에서 나온 세계단편선을 읽으면서 잘 알려지지 않은 단편 중 좋은 작품이 많구나 하고 느꼈지요. 픽션들, 제가 읽다만 책이네요. 언젠가는 완독하는 날이 올 거라고 믿어요. .

cyrus 2024-12-12 06:33   좋아요 0 | URL
보르헤스의 소설 중에 봐도 이해가 안 되는 내용이 있어요. 또 읽다 보면 무슨 뜻인지 알게 되는 날이 올 거예요. ^^;;

stella.K 2024-11-29 2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서한용 씨가 소설도 썼구나. 알지.
근데 방금 서재 잠깐 다녀왔는데 저 사진 뽀샵한 거 같다. ㅎㅎ
암튼 오늘 소개한 책 매력적이긴한데 난 언제 보게될지 모르겠어.
글치 않아도 <타타르인의 사막> 좋다는 사람 많던데...ㅠ

cyrus 2024-12-12 06:35   좋아요 1 | URL
<타타르인의 사막>은 처음에 지루할 거예요. 소설 중반부 지나서야 이상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카프카의 소설을 읽는다는 느낌이 나요. ^^;;

칼리아예프 2024-11-30 11: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 해성님 잘 읽었습니다. 추천의 글을 쓰게 되서 기쁘네요. 모임 참여하시는 분들도 <창백한 말> 재밌게 읽으셨음 좋겠습니다. ㅎㅎ 읽고나서 대화도 즐거우시길! ㅋㅋ 😆 그리고 stella.k님ㅋㅋ 서재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사진은 등단하고나서 사진스튜디오에 가서 프로필 사진 찍게 되어서 찍은 거다보니, 원본에 보정을 해주셨어요. ㅎㅎ 뽀샵을 얼마나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뽀샵 한 것 맞습니다…. 😇

stella.K 2024-11-30 11:57   좋아요 1 | URL
ㅎㅎ 아, 이거 죄송합니다. 제가 원래 거짓말을 잘 못하는 성격인데다 사이러스와는 좀 이물없이 소통하는 편이라 본의 아니게 결례를 범한 것 같습니다.😂 등단 축하합니다. 모쪼록 건필하시고 소설집 한 번 내십시오. 읽어 보겠습니다.^^

blanca 2024-11-30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 sf에 빠져서 러브 크래프트 저 단편집 읽어보려 했는데 지루한가요? 작가가 우생학 지지한지도 몰랐네요. 와, 그리고 습작 기간도 없이 첫작품으로 바로 등단이라고요? 대단하시네요. 댓글 읽고 빵 터졌어요.

cyrus 2024-12-12 06:37   좋아요 0 | URL
러브크래프트는 아무나 추천하기 힘든 작가예요.. ㅎㅎㅎ 읽어 보면 재미있는 소설도 있는 반면에 결말이 허무한 소설도 있어요. ^^;;

transient-guest 2024-12-12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P Lovecraft전집을 읽었는데 번역이 좀 이상하긴 했습니다. 최근엔 셜록 홈즈의 세계관과 이를 합친 노작 (Lovegrove란 작가입니다)을 즐겁게 읽었어요. 저는 위의 모음에 작가 하나를 더 추천합니다. 엘저넌 블랙우드라는 작가인데 아주 특이한 시리P Lovecraft전집을 읽었는데 번역이 좀 이상하긴 했습니다. 최근엔 셜록 홈즈의 세계관과 이를 합친 노작 (Lovegrove란 작가입니다)을 즐겁게 읽었어요. 저는 위의 모음에 작가 하나를 더 추천합니다. 엘저넌 블랙우드라는 작가인데 John Silence라는 occult detective시리즈가 정말 특이합니다
 




옐로스톤(Yellowstone)엄청 뜨거운 국립공원이다. 이곳 지하 밑에 엄청난 양의 마그마 덩어리가 있다. 옐로스톤의 온천과 간헐천은 섭씨 100도에 이른다. 특히 올드 페이스풀(Old Faithful) 간헐천은 최대 50m까지 온천수를 뿜어낸다전 세계 관광객들은 지구가 내뿜는 뜨거운 분수 쇼를 보기 위해 옐로스톤을 방문한다.



















[독서 모임 <수레바퀴와 불꽃열두 번째 모임(11월) 선정 도서]

* 빌 브라이슨, 이덕환 옮김 거의 모든 것의 역사(까치, 2020)





빌 브라이슨(Bill Bryson)거의 모든 것의 역사 15장 제목은 위험한 아름다움이다. 이 장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옐로스톤의 화산 지대를 연구하는 지질학자들의 이야기다. 빌은 옐로스톤에 근무하는 폴 도스(Paul Doss)라는 지질학자를 만난다. 폴은 지질학을 연구하기에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이 옐로스톤이라고 주장한다온천에 암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는데, 달걀 썩는 냄새와 비슷한 황 냄새가 나는 온천보다 더 아름다운 곳은 없다고 한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 262쪽). 폴은 옐로스톤을 사랑하는 지질학자다. 

















* 스켑틱 협회 편집부 SKEPTIC 23: 과학의 시대, 종교를 생각한다(바다출판사, 2020)




과학자들은 종종 자신들이 연구하는 대상을 아름답다고 표현한다. 특히 수학자들은 수학 공식을 아름답다고 한다도대체 과학자들은 과학의 어떤 점에 매료되었기에 아름답다고 표현할까과학의 아름다움을 무조건 미학적 관점으로 국한해서 이해해야 할까? 


지난번 독서 모임 <수레바퀴와 불꽃>의 선정 도서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였다. 나는 앞서 언급한 폴 도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아름다운 과학’의 의미를 자유롭게 생각해볼 수 있는 발제문을 만들었다<수레바퀴와 불꽃> 소속 회원 지용 님은 과학 잡지 스켑틱 SKEPTIC23호에 실린 글 한 편을 추천했다글 제목은 <실험의 미학에 대하여>이다. 글쓴이는 분자생리학자 전주홍 교수.


대부분 사람이 생각하는 과학 연구는 이렇다. 가설 설정으로 시작해서 가설을 확증할 수 있는 실험을 반복해서 수행한다. 이렇게만 보면 과학이 객관적인 학문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전 교수는 실제로 진행되는 과학 연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정확성이 떨어질 정도로 뒤죽박죽으로 진행된다몇몇 과학자는 가설의 오류를 보여주는 실험 결과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이 처음으로 제시한 가설이 틀렸는데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설이 이라는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실험 단계를 수정한다. 이러면 실험 과정이 번잡스러워진다그렇지만 전 교수는 과학자들의 실패와 오류가 빈번히 생기는 비과학적인 실험이 아름답다고 말한다왜냐하면 과학자들은 실패와 오류를 즐기면서 과학을 배우기 때문이다


<수레바퀴와 불꽃> 회원 진범 님은 시를 좋아하고평소에 시를 쓰는 분이다. 진범님은 과학이 끝내 증명하지 못한 것들이 언급된 거의 모든 것의 역사가 흥미롭다고 했다. 진범 님이 느낀 과학의 아름다움과학의 한계를 받아들이면서도 이해하기 위해 계속 질문하고 실험하는 과학자들의 태도.


예전에 내가 쓴 글에서 인용된 빌의 말을 다시 떠올려보자.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학은 겉으로는 우아하게 보이지만, 실상은 매우 너저분한 학문이다(거의 모든 것의 역사194)우리가 알고 있는 우아한 물리학은 정확하다. 우리는 실험하지 않아도 이미 증명된 법칙으로 과학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너저분한 물리학은 비논리적이며 오류투성이다. 실험은 과학자의 계획대로 착착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설을 제대로 검증하려면 성능이 뛰어난 실험 장비를 마련해야 한다과학자가 처음에 지정한 실험 장비만 가지고 실험을 반복할 수 없다. 더 나은 실험을 수행하려면 연구비가 계획했던 것보다 더 많이 나올 수 있다.


















김현철 세 개의 쿼크강력의 본질양자색역학은 어떻게 태어났는가》 (계단, 2024년)

 



입자 가속기의 한 종류인 사이클로트론(Cyclotron)의 초기 형태는 손바닥만 한 크기였다. 그래서 책상 위에 올려놓고 실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물리학자들은 입자보다 아주 더 작은 입자를 찾기 위해 사이클로트론을 꾸준히 개량했다. 그러면서 사이클로트론은 점점 거대해졌다. 사이클로트론의 변천사는 과학이 실험 장치의 개선을 통해서 발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험실의 장치화[주]는 과학자들의 연구 방식에 변화를 주었다실험 장치가 많아지자, 과학자가 혼자서 실험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다수의 과학자가 함께 연구하고, 연구 결과가 담긴 논문도 함께 쓴다

 








 












김재영 상대성이론의 결정적 순간들세계에 대한 관점을 뒤바꾼 가장 유명한 이론의 탄생과 발전》 (현암사, 2023)

 




영국의 천문학자 아서 에딩턴(Arthur Eddington)은 아프리카 프린시페섬에서 개기 일식을 관측해 태양 주변의 별빛이 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별빛이 태양의 중력 때문에 휜 것이다. 1919년 아서 에딩턴의 개기 일식 관측은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관측으로 증명해 낸 역사적인 순간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관측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에딩턴이 주도한 관측대 팀이 얻은 데이터는 일반 상대성 이론을 지지하는 데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프린시페섬 관측대 팀과 브라질 소브라우 관측대 팀은 같은 시간에 개기 일식을 관측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 브라질 팀은 스물여섯 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프린시페 팀은 단 일곱 장의 사진만 가까스로 건졌다. 관측 사진을 찍는 날에 프린시페섬의 날씨는 좋지 않았다. 아침에 심한 천둥이 쳤고, 오전 내내 하늘에 짙은 구름이 드리워졌다. 운이 나쁘게도 프린시페섬 팀이 찍은 사진 전부 화질이 좋지 않았다. 그나마 쓸모 있는 사진 일곱 장을 건졌지만, 이 사진들만 가지고 태양 부근에 지난 별빛은 휘어진다는 일반 상대성 이론을 증명할 수 없었다.

 

반면에 브라질 팀이 촬영한 사진들은 화질이 좋았고, 사진으로 확인 가능한 측정값은 일반 상대성 이론을 입증하는 근거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1911년 말에 영국왕립학회와 영국왕립천문학회는 일반 상대성 이론이 입증되었다는 사실을 공동 발표했다. 에딩턴을 비롯한 영국 과학자들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소원해진 영국 과학계와 독일 과학계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다. 그래서 영국 과학계는 자신들의 대선배나 다름없는 뉴턴(Newton)의 역학을 뒤집어버린 독일의 과학자 아인슈타인의 손을 들어주었다. 양국의 평화를 위해 에딩턴이 브라질 팀의 측정값을 의도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브라질 팀이 촬영한 사진의 측정값은 뉴턴 역학에 근접한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일반 상대성 이론과 크게 차이가 날 정도는 아니었다. 에딩턴의 개기 일식 관측 결과와 일반 상대성 이론이 전 세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는 과정에 논란이 있었으나 1979년에 일반 상대성 이론의 효과로 별빛이 태양 근처를 지난다는 사실이 재확인되었다개기 일식 관측은 에딩턴의 임기응변이 아니었으면 실패한 실험으로 평가받았을 것이다.








<수레바퀴와 불꽃> 회원이자 소설가로 활동 중인 박하신 님은 과학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감정을 반복된 경험이 만든 후천적 감정이라고 했다. 과학자는 실패와 실수를 늘 반복하면서도 이를 배움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면서 실험을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과학자에게 무수한 실패와 실수는 좌절감이 기다리는 종착점이 아니라 호기심과 도전 정신이 마르지 않는 출발점이다. 그래서 실험은 계속되어야 한다과학의 미학은 간결성과 완벽성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완벽하지 않아도 과학은 아름답다.




[] 전주홍, <실험의 미학에 대하여>, SKEPTIC 23: 과학의 시대, 종교를 생각한다125.





cyrus의 변명

 

이번 달 초에 있었던 <수레바퀴와 불꽃> 독서 모임의 두 번째 후기. 독서 모임 후기를 두 편 연달아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후기에 모임 때 언급하지 못한 내 생각이 덧붙여졌다. 결국 두 번째 후기의 분량이 길어졌다.

 

분량이 많은 글은 지저분한(너저분한) 글’, 그러니까 한마디로 실패한 글이다컴퓨터나 스마트폰 화면에 나온 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독자는 귀하다(이런 분이 있으면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 글을 쓰면서 최근에 읽은 책의 내용이 포함되었고, 이때부터 실패가 내 눈앞에 어슬렁거리면서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 이 글을 썼을 때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두 번째 후기를 쓰겠다고 박하신 님에게 얘기하는 바람에 안 쓸 수가 없었다. 인스타그램에 이 글을 편집해서(분량을 줄여서) 올려야 하는데, 귀찮아서 다시 쓰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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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11-18 09: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학을 읽는 모임인가봅니다.
흥미있는 책이 많이 있네요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오래전에 읽었는데,,, 그 후 빌 브라이슨의 책은 다 사서 보는 편입니다. 유머러스 한 사람이란 생각했습니다.^^
<우주가 바뀌던 날 그들은 무엇을 했나>도 비슷한 류, 재밌었어요.

cyrus 2024-11-19 06:51   좋아요 1 | URL
제가 요즘 과학을 주제로 한 글을 써서 <수레바퀴와 불꽃>이 과학책 읽는 모임으로 보일 수 있겠어요.. ㅎㅎㅎ <수레바퀴와 불꽃>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모임이에요. 내년 1월 도서는 페미니즘 책이에요. ^^ <우주가 바뀌던 날 그들은 무엇을 했나>는 아직 안 읽어봤어요. 과학사를 다룬 책이 의외로 재미있어요. 어려운 내용이 많지 않아요. ^^

syo 2024-11-19 1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사이러스님 글을 보니 역시 여기가 알라딘이로구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 성의 있는 레이아웃하며 알찬 구성하며...

cyrus 2024-11-24 22:00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에요. syo님. 세월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듯이 예전에 비해 독서량이 줄어들었어요. 글 한 편 쓰려면 최소 2~3일 걸릴 때가 있어요. 알라딘 서재는 글을 올릴 때만 방문하지 자주 들어오지 않아요. 서재 방문이 뜸해지니까 예전에 친했던 서재 이웃분들과 교류가 줄어들었어요. 그래도 알라딘 접속 시간을 줄이니까 독서와 글쓰기에 집중이 잘 돼서 좋아요. ^^
 





독서 모임 <수레바퀴와 불꽃>의 모임 장소는 서울 노원구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더숲세미나실입니다.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시작됩니다. 어제가 독서 모임이 있는 날이었는데요, 이번 달 모임은 특별히 성동구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성수동에 가보게 되었습니다







모임 장소인 성수지앵에 제가 먼저 도착했어요. ‘성수지앵2층에 세미나실이 있는 카페입니다. 이곳에 가면 하루에 80잔만 판다는 민트 라떼를 마실 수 있어요.


















[독서 모임 <수레바퀴와 불꽃> 열두 번째 모임(11월) 선정 도서]

* 빌 브라이슨, 이덕형 옮김 거의 모든 것의 역사(까치, 2020)

 

[독서 모임 <수레바퀴와 불꽃열 번째 모임(7월) 선정 도서]

* 제니퍼 프레이저, 정지호 옮김 괴롭힘은 어떻게 뇌를 망가뜨리는가: 최신 신경과학이 밝히는 괴롭힘의 상처를 치유하는 법(심심, 2023)





<수레바퀴와 불꽃> 열두 번째 모임 선정 도서빌 브라이슨(Bill Bryson)거의 모든 것의 역사입니다. 7월 모임(열 번째 모임)에 이어 두 번째 과학 도서입니다.


책에 대한 감상문과 발제문을 제일 먼저 공개한 보람 님은 이 책에 소개된 과학자들의 다양한 삶을 재미있게 읽었다고 했습니다. 특히 보람 님은 139쪽에 저자가 쓴 각주에 주목했어요각주는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Max Planck)의 불행한 삶을 요약한 것이었어요플랑크의 딸들은 출산 중에 사망했고아들들은 두 차례의 세계 대전에 휘말려 사망했습니다한편 이 책을 거의 모든 남성 과학자의 역사처럼 읽혔다고 했습니다책에 나온 과학자들의 이름을 확인하고 싶으면 이 책의 뒤쪽에 있는 찾아보기를 참고하면 됩니다.


















* 하워드 마르켈, 이윤지 옮김 생명의 비밀: 차별과 욕망에 파묻힌 진실(늘봄, 2023)

 

* [절판] 브렌다 매독스, 진우기 · 나도선 옮김 로잘린드 프랭클린과 DNA(양문, 2004)




이 책에 언급된 여성 과학자가 몇 명인지 세어보지 않았어요. 프랑스의 화학자 라부아지에(Antoine Lavoisier)의 아내는 남편과 함께 실험한 과학자입니다(121). 그녀의 이름은 마리안 폴즈 라부아지에(Marie-Anne Paulze Lavoisier)입니다. 제가 찾은 여성 과학자는 메리 애닝(Mary Anning, 104~105)로잘린드 프랭클린(Rosalind Franklin, 455~459)입니다. 애닝은 화석 발굴에 나선 영국의 고생물학자입니다. 로잘린드 프랭클린은 DNA 이중 나선 구조를 발견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수집한 영국의 물리학자입니다두 사람 모두 훌륭한 업적을 남겼음에도 남성 과학자들의 명성에 가려져서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보람 님이 남성 과학자 중심의 과학사를 지적했다면, 지용 님은 영어권 국가 출신 과학자 중심의 과학사를 지적했습니다. 지용 님은 스웨덴의 화학자 카를 셸레(Carl Scheele)가 명성을 얻지 못한 점(119~120)을 예로 들었는데요, 셸레는 수많은 원소와 화합물을 발견한 화학자입니다. 하지만 셸레의 성과는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 출신의 과학자들이 발견한 것으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빌은 세상에 좀 더 정의로웠다면, 그리고 스웨덴어를 쓸 줄 아는 사람들이 좀 더 많았으면 셸레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과학적 성과를 먼저 발견하는 일에 매달린 과학자들은 종종 엄격한 검증을 지나치거나, 자신의 견해에 반증하는 견해를 무시했습니다. 지용 님은 그런 과학자들의 모습이 비합리적으로 보였다고 했습니다.


과학자 대부분은 객관적인 검증을 중시하기 때문에 실험으로 검증되지 않은 것, 관념론에 상당히 거부감을 느낍니다. 그렇다 보니 몇몇 과학자는 상상력의 중요성을 간과하기도 합니다이러한 과학자들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한용 님은 철학을 알아야 하는 과학을 제안했습니다한용 님은 과학이 철학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의 학문과 만난다면 어떠한 현상을 교차적으로 분석하고 검토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한용 님은 과학이 앞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성을 가치 종합성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모임이 끝난 후에 보람 님의 남편이 일하는 태국 전문 음식점에 갔습니다. 그린치앙마이라는 식당이었는데, 서울숲 공원으로 향하는 성수도 골목길 안에 있어요. 오랜만에 여러 사람과 함께 식사했어요. 주말에 책을 읽고 서평을 쓰다 보면 식사를 거르거나 혼자 밥을 먹을 때가 많거든요. 태국 음식이 제 입맛에 맞았어요. 제가 독서의 고수(高手)라서 향신료 고수를 좋아합니다.

















[독서 모임 <수레바퀴와 불꽃열한 번째 모임(9월) 선정 도서]

* 박하신 여기까지 한 시절이라 부르자(문학수첩, 2024)


 


저를 포함한 다섯 명의 남자는 서울숲 공원을 산책했어요. 어제는 산책하기 정말 좋은 날씨였어요








서한용 님과 박준혁 님은 소설가로 등단했어요. 한용 님의 데뷔작은 올해 6월 문학잡지 <현대문학> 6월 호에 신인 소설가 추천작으로 실렸어요, 소설 제목은 성대모사는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입니다. 박준혁 님은 박하신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젊은 소설가입니다. 소설집 여기까지 한 시절이라 부르자를 출간했어요. 이 책은 9월에 진행된 <수레바퀴와 불꽃> 열한 번째 모임의 선정 도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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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11-17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까지 오셔서 독서모임 하시는군요
👍👍
책보다 성수동의 민트라떼가 눈에 뜁니다.
한 번 가봐야겠어요^^
독서모임 필수품은 백팩? ㅎㅎ

cyrus 2024-11-17 20:55   좋아요 0 | URL
백팩이 책을 매우 좋아하는 남자들의 필수템입니다.. ㅎㅎㅎ 저도, 한용 씨도 백팩 안에 책 두 권 이상은 들어있어요.. ^^

stella.K 2024-11-11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고수라는 배우 좋아하는데. 넘 썰렁한가? 으하하하~
얼마전 궤도가 EBS에 나오던데 난 과포자지만 뭔지는 몰라도 들을만하더군. 저렇게 여성과학자에 관한 책을 읽으면 좀 도움이 될까? 괜히 끌리네. ㅋ

cyrus 2024-11-17 20:57   좋아요 0 | URL
여성 과학자들의 업적을 소개한 책들이 있어요. ‘과학책방 담다’의 북큐레이션으로 ‘여성 과학자 열전’이라는 주제로 만들어 볼 생각이에요. ^^

그레이스 2024-11-17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레스코드가 블랙인가요?
백팩도 ...!
기본 세권은 들어가 있죠?!
그린 치앙마이 가보고 싶네요.

cyrus 2024-11-17 21:28   좋아요 1 | URL
남자들 옷이 온통 검정색이라는 사실을 그레이스님의 댓글을 보면서 알았어요.. 🫢 책바보 남자의 클리셰가 검정색 옷에, 검정색 백팩을 매고, 그 안에 책이 들어있어요.. ㅎㅎㅎ 😅
 




혹시 박경리 문학상을 아시나요? 대하소설 토지를 쓴 박경리 작가를 기리기 위해 만든 문학상입니다. 박경리 문학상은 국내 최초의 세계 문학상입니다. 그래서 이 상은 전 세계의 모든 작가에게 주어집니다. 수상 자격에 우리나라 작가도 포함됩니다

















* 최인훈 광장 / 구운몽(문학과지성사, 2008)




2011년 첫 번째 박경리 문학상 수상자는 광장을 쓴 소설가이며 극작가로도 유명한 최인훈(1934~2018)이었습니다

















* 실비 제르맹, 김화영 옮김 밤의 책(문학동네, 2020)





박경리 문학상은 올해로 13회를 맞이했어요. 9월 말에 박경리 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었습니다수상자는 프랑스의 소설가 실비 제르맹(Sylvie Germain)입니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작가의 이력이 독특한데요, 그녀는 철학을 전공했으며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녀에게 철학을 가르친 교수가 바로 리투아니아 출신의 유대계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입니다. 작가의 데뷔작은 1984년에 발표된 밤의 책입니다.


1010일은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된 날이었어요. 출판계와 독자들이 한강에 빠져 있을 때 실비 제르맹이 우리나라에 찾아와서 강연했어요. 
















* 실비 제르맹, 김화영 옮김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문학동네, 2006)




세계 문학 작품 읽기 전문 모임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11월의 작가 올해 박경리 문학상 수상자 실비 제르맹입니다. 함께 읽고 싶은 실비 제르맹의 책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입니다이 소설은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실비 제르맹의 작품입니다. 1991년에 발표된 작가의 다섯 번째 소설이에요작가의 첫 번째 소설 밤의 책2020년에 번역 출간되었는데요,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는 2006년에 번역되었어요.

















* 실비 제르맹, 박재연 옮김 빛의 아틀리에(마르코폴로, 2024)

 



실비 제르맹은 저에게는 낯선 작가입니다. 그녀가 쓴 책 중 유일하게 읽은 것이 미술 에세이 빛의 아틀리에였어요. 작가의 소설을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실비 제르맹이 우리나라 독자들과 주고받은 대화 일부를 요약한 기사를 공유합니다. 작가의 문학 세계를 알 수 있는 글입니다어제 나온 글이라서 따끈따끈하군요.








<[조용호의 문학 공간] “써라, 그래야 존재할 것이다”>

KPI뉴스, 2024111


https://www.kpinews.kr/newsView/1065573253819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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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1-02 20: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근데 박경리 문학상은 상금이 얼만지 모르겠어.
울나라는 문학상을 제정해도 울나라 사람만 주는데
그래도 이 상이 외국 작가에게도 주니까 뭔가 권위있어 보이긴 하지.
그래도 실비 제르맹의 책이 제법 번역이 많이 되있네.
이 사람 작품 어떤지 궁금하긴 하다.

cyrus 2024-11-03 12:15   좋아요 2 | URL
그러고 보니 제가 상금은 안 적었네요.. ㅎㅎㅎ 방금 알아봤는데, 상금은 1억 원입니다. 13명의 박경리 문학상 수상자 중 최인훈, 윤흥길을 제외하면 외국 작가는 11명이에요. 이 사람들 노벨 문학상 후보자로 종종 거론되는 작가들이에요. 실비 제르맹도 노벨 문학상을 받을 수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이에요. ^^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 하나. 철학자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와 시인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의 공통점이 있을까? 이 질문을 만든 내가 생각해 봐도 두 사람을 잇는 접점이 없어 보인다.

























* 에마뉘엘 레비나스, 서동욱 옮김 

존재에서 존재자로(민음사, 2003)

 

[레비나스 읽기 모임 두 번째 도서 (8~10월)]

* 에마뉘엘 레비나스, 김도형 · 문성원 · 손영창 함께 옮김

전체성과 무한: 외재성에 대한 에세이(그린비, 2018)

   

[레비나스 읽기 모임 첫 번째 도서 (6~8월)]

* 에마뉘엘 레비나스, 강영안 · 강지하 함께 옮김 

시간과 타자(문예출판사, 2024)




레비나스에게 문학은 철학을 무럭무럭 자라나게 만든 자양분이다레비나스는 어렸을 때부터 문학 작품을 즐겨 읽었다. 그는 타자를 환대하는 철학도스토옙스키(Dostoevskii)의 소설에서 드러난 사해동포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레비나스가 죽음의 철학적 의미에 대해 논할 때 자주 인용하는 작가는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시간과 타자에서 레비나스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분석하기 위해 셰익스피어의 비극 작품의 주인공 맥베스(Macbeth)가 죽어가면서 내뱉는 말을 인용한다






















* 아르튀르 랭보, 한대균 옮김 나의 방랑(문학과지성사, 2014)

 

* 아르튀르 랭보, 김현 옮김, 황현산 감수 지옥에서 보낸 한 철(민음사, 2016)


* [구판 절판] 아르튀르 랭보, 김현 옮김 지옥에서 보낸 한 철(민음사, 1974)


















* 폴 발레리, 김현 옮김 해변의 묘지(민음사, 2022)

* [구판 절판] 폴 발레리, 김현 옮김 해변의 묘지(민음사, 1973)




존재에서 존재자로1947년에, 전체성과 무한1961년에 발표된 레비나스의 저서다이 두 권의 책에서도 작가와 문학 작품 속 문장들을 만날 수 있다레비나스가 태어난 곳은 과거에 러시아 영토였던 리투아니아다. 그는 독일에서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철학을 만났고, 프랑스로 건너가 후설의 현상학을 소개했다. 문학을 사랑하는 레비나스가 프랑스 문학을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존재에서 존재자로전체성과 무한19세기 중후반에 활동한 프랑스 시인들이 나온다. 보들레르, 랭보(Arthur Rimbaud),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 폴 발레리(Paul Valéry).























샤를 보들레르, 황현산 옮김 악의 꽃》 (난다, 2023)


* 샤를 보들레르, 윤영애 옮김 악의 꽃(문학과지성사, 2003)


[절판] 샤를 보들레르, 박은수 옮김 《보들레르 시 전집》 (민음사, 1995)


* [절판] 샤를 보들레르, 김붕구 옮김 악의 꽃(민음사, 1974)





존재에서 존재자로에 인용된 보들레르의 시는 <여행>, <밭 가는 해골>, <심연>(Le gouffre) 등이다. 작품 출전은 시집 악의 꽃이다. 1857년에 발표된 이 시집은 태어나자마자 집중포화를 맞았다. 법원은 시집에 외설스럽고 부도덕한 표현이 많다는 이유를 내세워 보들레르를 재판에 서게 했다. 법원은 보들레르에게 벌금형을 내렸다. 악의 꽃2판은 여섯 편의 시가 삭제된 채 1861년에 출간되었다. 보들레르가 세상을 떠난 후에 악의 꽃3판이 출간되었다.










 






 

 



* 앙투안 콩파뇽, 김병욱 옮김 보들레르와 함께하는 여름(뮤진트리, 2020)


* 이건수 보들레르: 저주받은 천재 시인(살림, 2006)

 

* [절판] 윤영애 지상의 낯선 자 보들레르(민음사, 2001)


 



레비나스가 보들레르를 인용하면서 자신의 철학을 설명하는 모습이 내게는 색다르다윤리를 제1철학으로 내세운 레비나스도덕을 경멸한 보들레르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공통점이라고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다른 철학자와 시인의 기묘한 만남이다. 레비나스는 인간을 선한 존재로 전제하지만, 보들레르는 원죄에 물든 나쁜 존재로 봤다. 보들레르는 도덕적인 생활이 인간의 악을 감춘다고 생각했다레비나스는 유대인이다. 보들레르는 반유대주의자다.










 


 

 










* 테오필 고티에, 권유현 옮김 모팽 양(열림원, 2020)

* [구판 절판] 테오필 고티에, 권유현 옮김 모팽 양(열림원, 2006)

 

* 샤를 보들레르 · 테오필 고티에, 임희근 옮김 보들레르와 고티에: 아름다움을 섬긴 두 사제(걷는책, 2020)




레비나스는 존재에서 존재자로테오필 고티에(Theophile Gautier)가 한 말을 사물들을 즐기고자 하는 모든 욕심으로 해석한다

 

 


 나는, 그들을 위하여 외부 세계가 존재하는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이다.” 라는 말로, 테오필 고티에는 사물들을 즐기고자 하는 모든 욕심을 표현한다. 이 욕심이 세계 내 존재를 구성한다.


(존재에서 존재자로》 중에서, 56~57쪽)



여기서 레비나스가 말한 욕심은 타자를 지향하는 욕망과 동일하다레비나스는 전체성과 무한에서 타자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존재가 아닌 무한한 자로 바라보면서 조건 없이 환대하는 욕망을 형이상학적 욕망이라고 표현한다.


고티에는 예술지상주의를 강조한 시인 겸 소설가. 그의 대표작 모팽 양서문예술지상주의 선언문이라 할 수 있다. 고티에는 이 서문에서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들은 아무 쓸모가 없는 것들뿐이며, 유용한 것은 추하다고 했다. 예술지상주의자 혹은 유미주의자라고 부르는 예술가들의 제1철학은 아름다움이다예술의 유일한 목적은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누리는(향유) 이다. 그 밖에 실용적인 사물과 도덕은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어서 예술지상주의자에게는 쓸모가 없는 것들이다.


보들레르는 자신의 첫 시집 악의 꽃초판에 고티에에게 보내는 헌사를 남겼다. 실제로 두 사람은 친했으며 서로를 존경했다. 보들레르 사후 1868년에 출간된 악의 꽃3판의 서문은 고티에가 보들레르를 만났던 일을 회상한 <샤를 보들레르>라는 글이다. 보들레르는 1859년에 쓴 <테오필 고티에>에서 모팽 양아름다움에 바치는 찬가라고 평가했으며 정치에 무관심한 예술지상주의자 고티에를 옹호한다.


레비나스의 책을 읽을 때 그가 인용한 문학 작품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레비나스는 철학을 만들기 위해 문학이라는 풍부한 재료를 마음껏 사용한 철학자다물론 몇몇 작품들은 레비나스의 타자 철학을 도드라져 보이게 만드는 문학적 장식품일 수 있다. 그렇지만 문학으로 철학에 접근하면, 처음에 난해하게 느껴진 내용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철학자가 의도하지 않은 새로운 해석도 나올 수 있다. 철학을 공부하면서 사랑하는 방식은 무한하다보들레르의 시를 자주 읽은 독자로서 레비나스와 보들레르의 기묘한 관계를 알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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