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세습에 열중하는가 - 재벌의 세습경영과 한국경제의 미래
유재용 지음 / 나남출판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경제가 어려워지고 정권의 임기 끝이 저만치 보이기 시작하면 레임 덕(lame duck) 현상이 일어난다. 레임 덕은 임기 말 대통령의 권력이 약화하는 현상을 뜻한다. 대통령의 지도력이 약해지면서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을 다리를 저는 오리의 모습에 빗댔다. 이때 재벌과 보수 야당은 공세의 고삐를 조이기 시작한다. 전경련, 자유기업원 등 산하단체는 물론이려니와 우파 학자들까지 총동원하여 정부의 기업정책을 비판한다. 일부 보수 언론까지 여기에 가세하여 마치 정부가 재벌을 억압하여 우리 경제가 정부 잘못되고 있는 것처럼 여론을 호도한다.

 

그들은 정권 교체를 위해 현실의 왜곡도 마다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정경유착을 알고도 묵인하는 재벌 중심 자본주의를 종식하고 우리나라에 올바른 시장경제가 정착되도록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을 서슴없이 좌파 또는 종북 세력으로 매도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못 하는 일이 없다. 과거에 그랬듯이 말이다.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1997년. 재벌의 연쇄도산으로 역사 이래 최대의 경제 위기를 맞았다. 부실 재벌의 처리 비용으로 이미 백조 원이 넘게 들었고 앞으로 더 들어야 할 돈과 이자 비용까지 고려하면 이백조 원은 넘을 터인데, 이 모두가 우리 같은 서민들이 갚아야 할 빚이 되었다. 이런 천문학적인 규모의 빚을 국민에게 떠넘긴 장본인들이 바로 재벌이 아니었던가. 그들은 남의 돈을 내 돈인 양 물 쓰듯 쓰면서 수익성을 무시한 채 화려한 외형확장에만 탐닉했다. 돈을 못 벌어 이자를 갚기 힘들면 돈을 더 꾸면 되었다. 회계장부를 조작하여 돈을 많이 버는 양 꾸미면 되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제대로 한번 살려보자는 것이 재벌개혁이다. 재벌의 성적표를 제대로 매겨 시장에 보여주자는 것이다. 각종 비리에 연루되거나 경제 성장을 위해 제대로 된 노력을 하지 않은 재벌에 책임을 묻자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오랫동안 유지해온 국가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런 것이 있었기에 그 국가들의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성공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도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이다.

 

《우리는 왜 세습에 열중하는가》는 기업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 발전을 더디게 하는 세습 경영을 비판한다. 여기까지 보면 너무 당연한 얘기로 들린다. 하지만 책 제목의 주어에 주목하시라. ‘우리’는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이 ‘우리’는 중의적이다. 불공정한 세습 경영을 고집하는 우리나라 재벌과 그들을 옹호하는 세력들을 가리킬 수 있고, 이러한 심각한 상황을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 대중을 뜻하기도 한다. 멜로드라마의 진부한 단골 소재 중 하나가 ‘백마 탄 왕자’처럼 등장하는 재벌 2세이다. 그들은 부모의 경영권을 물려받은 차기 경영인이면서도 자신이 소유한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을 좋아한다. 대중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설정임을 알고 있지만, 그런 이야기에 열광한다. 세습 경영이 부작용이 많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경영인의 리더십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에 소극적이다. 경제가 잘못되면 먼저 대통령 탓으로 돌린다. 물론 대통령의 리더십과 관료주의는 비판 대상이다. 그런데 재벌 3, 4세들이 선친의 기업을 물려받아 경영하면서 경제 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만한 일을 한 적이 있는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중소기업 등에 빨대를 꽂은 재벌 3, 4세들을 보라. 이게 경제 발전을 위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정경유착 근절과 재벌개혁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전근대적인 세습 경영이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친 재벌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경영 방식을 ‘기업 상속’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기업 상속은 장점이 많다. 기업이 보유한 핵심기술과 경영 노하우를 발전시키고, 기업경영의 영속성을 제고할 수 있다. 그런데 친족 관계로 맺어진 경영인들이 기업 상속을 위해 분식회계 · 정경유착 등 무리한 시도를 했다면 그들의 경영 능력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과연 그들은 경제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자신감 있는 경영 비전이 있어서 기업 상속을 하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기업’ 그 자체를 지키고 싶은 것일까. 후자의 목표를 위한 거라면 문제가 있다. 기업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를 깎는 요인 중 하나다. 그런데 친 재벌 경제학자들은 기업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분노, 그리고 비판마저 ‘반 기업 정서’를 부추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금의 재벌을 만든 고인들은 남다른 도전과 창의성으로 기업을 일궈낸 공로로 생전에도 재계 지도자로 추앙을 받았다. 이 땅에 자동차와 중화학공업을 뿌리내리고 반도체 · 전자 등 첨단산업을 태동시킨 혜안은 경영학의 사례연구와 분석과제로 손색이 없다. 그들의 경영 방식도 한계가 있고 비판 대상이 되지만, 국익과 경제 성장을 위해 노력했으므로 존경받아 마땅하다. 재벌 1세들에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 경영권 세습을 당연하게 여긴 점이다. 그들의 후손은 리더십 검증을 받지 않은 채 기업을 이끈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의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재벌 1세들의 공로에 감명받은 사람들은 말한다. 재벌 1세가 워낙 능력이 뛰어나니 당연히 그들의 후손들도 기업을 잘 이끌어나가는 능력이 있을 것이라고. 실제로 그런 일이 이루어진다면 정말 좋은 일이다. 하지만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된다. 경영인의 외모는 유전될 수 있어도 자질과 능력은 절대로 유전되지 않는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 사실만 알아도 세습 경영이 얼마나 전근대적이고 후진적인지 깨달을 수 있다.

 

《우리는 왜 세습에 열중하는가》는 적폐 청산을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는 이 시대에 어떻게 정경유착의 명맥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지 아주 쉽게 설명한다. 기자 출신인 저자는 권력과 부만 대물림되는 세습 경영의 문제점들을 하나하나씩 알려준다. 재벌 3, 4세의 역량에 대한 공정한 검증이나 평가가 없이 부모의 사회경제적 후광에 의지해 정치권력과 자본 권력의 중심에 선다. 세습 경영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부의 편중 현상을 심화시켜 서민들을 시름에 빠지게 하고, 부정부패에 따른 기회비용은 경제 발전을 저해한다. 세습주의(저자는 어쩔 수 없이 ‘세습자본주의’라고 썼는데, 저자 말대로 ‘세습 자본주의’를 자본주의라고 볼 수 있는지 딜레마다)가 근절되지 않으면 ‘흙 수저론’ 논쟁이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평범한 ‘흙 수저’ 청년이 경영인이 될 수 있는 공정한 경쟁 기회가 박탈된다. 우리는 먹고 살기 바쁜 와중에 재벌이 저지른 크고 작은 사건들을 보면서 점차 분노에 무감각해지고, ‘역시 그럴 줄 알았어!’라면서 짜증 섞인 혼잣말을 되뇐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가 먹고 살기 힘든 원인을 대통령에게 찾는다. 그러면서 경제를 확실히 살릴 만한 대통령 후보감이 누군지 살펴본다. 이런 와중에 재벌 책임론은 잊힌다. 우리의 무관심 속에 재벌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세습과 비리를 시도한다.

 

이제 재벌 문제를 논할 때 ‘우리는 왜 세습에 무관심하는가’에 먼저 초점을 맞춘 다음 ‘그들이 왜 세습에 열중하는지’ 접근해야 한다. 우리는 ‘그들만의 자본주의(세습주의)’에 적극적으로 분노하고 타파할 수 있는 주체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저항하는 시민들의 힘으로 역사의 흐름을 바꾼 경험이 수없이 많다. 우리는 정권 교체를 이끈 결정적인 동력이 된 저항 의식과 결집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그런 우리가 재벌 세습주의를 근절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 Trivia

 

 

* 우리나라에서 유독 세습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로 능력에 대한 평등적 인식을 꼽았다. 그렇다. 능력에 대한 존중의식이 있다면 사실 세습은 가능하지 않다. (234쪽)

 

 

→ 재벌 3, 4세의 능력을 특별하게 여기는 것은 능력에 대한 평등적 인식과 거리가 멀다. 저자는 재벌에 속하지 않은 전문 경영인의 능력을 존중하는 인식이 형성되어야 세습주의를 근절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입장이 제대로 전달되려면 ‘능력에 대한 평등적 인식의 부재’라고 써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넛 경제학 - 폴 새뮤얼슨의 20세기 경제학을 박물관으로 보내버린 21세기 경제학 교과서
케이트 레이워스 지음, 홍기빈 옮김 / 학고재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해 50주년을 맞은 노벨 경제학상은 미국의 윌리엄 노드하우스(William Nordhaus)와 뉴욕대의 폴 로머(Paul Romer)가 공동 수상했다. 노드하우스는 기후 변화의 경제적 효과에 관해 연구했으며, 로머는 지식 기반 기술 혁신을 통해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는 ‘내생적 성장 이론’을 제시하여 주목받았다. 노드하우스의 스승은 1970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새뮤얼슨(Paul Samuelson)이다. 새뮤얼슨이 1948년에 발표한 《경제학》은 거의 반세기 동안 전 세계 주류 경제학의 표준이었다. 가장 많이 팔린 경제학 원론 교과서가 됐으며 2009년까지 19판을 찍었다. 우리나라에도 번역된 19판은 새뮤얼슨의 마지막 저서이다. 《경제학》은 그에게 노벨상 수상의 명예보다 훨씬 실속 있는 어마어마한 인세 수입을 안겨줬다. 노드하우스는 1985년 12판부터 《경제학》의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경제학은 정확한 과학이 아니다.” 새뮤얼슨이 즐겨 썼던 말이다. 경제문제가 왜 일어나는지, 그 처방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어느 정도 말할 수 있지만 꼭 어떻게 된다고 확신할 수 없는 것이 경제현상이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인간을 끝없는 욕망과 완벽한 합리성을 갖춘 인간, 즉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로 본다. 경제학 교과서의 설명에 따르면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정확한 판단에 따라 합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존재이다. 앞서 언급한 새뮤얼슨의 말을 돌이켜보면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실체에 갸우뚱해진다. 인간은 항상 합리적인 예측을 하면서 항상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존재가 아니다. 또 인간은 때에 따라서는 이기적으로 행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현실 속 인간은 경제학 교과서에서만 사는 호모 에코노미쿠스와 전혀 다르다. 경제학 교과서가 말하는 인간상과 현실의 인간상이 다를 때 교과서 속의 경제이론은 현실을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 또한 이런 경제이론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경제정책 역시 현실에서 기대했던 만큼의 효과를 만들어 내지 못하기도 한다.

 

 

 

 

 

 

 

호모 에코노미쿠스를 전제해온 주류 경제학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소득이 많고 부를 많이 축적할수록 그 사람은 많은 이익을 얻고 더 행복해진다는 논리다. 소득이 많으면 직장과 사회에서 더 나은 지위를 차지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 삶에 대한 만족도가 더 높아진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한 국가의 국부(國富)를 평가할 때 경제성장률과 GDP(국내총생산)를 핵심 도구로 사용한다. 그런데 세계는 수백 년 동안 물적, 양적 성장 신화로 엄청난 부를 얻었지만, 금융, 식량, 윤리, 인권, 기후 등 사회 곳곳에선 부작용이 일어났다. 자원 고갈과 환경오염, 금융 위기 등 성장의 한계가 분명해졌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성장’을 말한다. 과연 부를 더 많이 축적해서 경제가 하늘을 찌르듯 성장하는 것, 그것만이 인간 모두 잘 살게 해주는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일까. 영국의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Kate Raworth)‘도넛 경제학’을 제시하면서 현실 경제를 설명하는 데 필요한 기준이 호모 에코노미쿠스만이 전부가 아님을 보여주고자 한다. 저자는 20세기에 나온 폴 새뮤얼슨의 경제학 교과서와 이별하자고 말한다.

 

 

 

 

 

《도넛 경제학》은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다른 경제이론을 소개한다. 그것도 경제학 전공자를 위한 책이 아니라 일반인을 위한 책이다. 레이워스는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공정무역 거래에 대해 연구했으며 국제구호단체 옥스팜(Oxfam)에서 일했다. 그녀는 인류의 번영과 지속 가능한 발전에 중점을 둔 경제학을 ‘도넛 그림(한가운데에 구멍이 있는 도넛)’으로 시각화하여 설명한다. 도넛 경제학이 강조하는 것은 성장이 아닌 ‘분배’와 ‘균형’이다. 도넛의 안쪽 원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사회적 기초’를 나타내는 부분이다. 도넛의 구멍은 물이나 식량, 교육, 에너지 등 인류가 살아가는 데 절대로 없어선 안 될 필수 요소들이 고갈된 세계를 뜻한다. 바깥쪽 원은 ‘지구 생태 한계선’이다. 이 한계선을 넘으면 치명적인 환경 문제가 일어나 지구 생태계는 인류가 살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된다. 인류가 잘 살려면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최적의 도넛에 머물러야 한다. 하지만 현재 인류는 도넛 안팎으로 한계에 직면한 상태다.

 

저자는 사람들이 호모 에코노미쿠스처럼 완전히 이기적이거나 금전적 이익에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새로운 경제적 인간의 초상화를 제시한다. ‘새로운 경제적 인간’의 정체성은 다양하다. 인간은 의식적으로 비용과 혜택을 정확하게 계산할 능력도 없고, 완벽한 자기 통제력을 갖추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 도우면서 살아야 한다. 경제적 인간은 이타적인 존재일 수도 있다. 저자는 현실과 동떨어진 20세기 경제학 교과서의 숱한 오류와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발상 일곱 가지를 제안한다. 저자는 인류 발전을 설명할 때 주류 경제학처럼 높은 소득이 결정적 요인이 된다고 강조한다면 경제와 인간의 삶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가치들을 너무 많이 놓치게 된다고 지적한다. 도넛 경제학은 복잡계 경제학, 생태경제학, 여성주의 경제학, 행동경제학 등 다양한 최신 경제 이론에 근거한 종합적 사고의 결과물이다. 도넛 경제학의 주연은 경제학자, 기업인이 아니라 소비자, 노동자 등 현실적인 경제적 인간이다. 저자는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한계가 있다며 행복과 경제, 부의 분배 정도, 환경 및 건강 등 인간의 행복과 삶의 만족도를 결정하는 요인들을 다각도로 분석한다. 그간 우리를 지배해온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이 같은 요소들이 지나치게 무시했다. 이제 경제적 부는 기업을 위한 이윤보다 인간 위주로 재편성돼야 한다.

 

모든 인간은 충분한 자질들을 가지고 있다. 단, 지역 공동체와 인간적인 유대 관계가 확장된 사회를 만들고 스스로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한 노력을 갖출 때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 지나치게 커진 이기심을 눌러야 한다. 도덕과 연대의식을 회복한 경제적 인간이 되어야 한다. 호모 에코노미쿠스를 처음으로 설명한 애덤 스미스(Adam Smith)도 그렇게 주장했다. 그 어느 때보다 공동체 의식과 상호성의 행동이 필요한 우리 사회에서 《도넛 경제학》이 주는 메시지는 새길 만하다. 우리 스스로를 위해서는 ‘착한’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 Trivia

 

* 70쪽에 있는 이 문장은 비문이다.

 

“하지만 도넛 그림은 사실상 거의 같은 않은 이야기를 과학에 기초해 설명한다는 걸 알겠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12-21 2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2-23 16:02   좋아요 0 | URL
봄날 같았던 어제 미세먼지가 많았대요... ㅎㅎㅎㅎㅎ
 
하이에크 vs 케인스 아이디어 전쟁 - 시대의 위기를 돌아보는 경제학사 두 거인의 날카로운 분석
토머스 호버 지음, 김효원 옮김, 이승환 감수 / 매일경제신문사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문을 가장 쉽고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학문의 이론이 만들어지게 된 전체 배경을 알아야 한다. 하나의 이론이 발전하면 수많은 분야로 갈라져서 나오기 때문에 전체를 보지 못하면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일이 된다. 특히 요즘같이 모든 면에서 사회가 발전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새로운 것들이 자꾸 나오는 상황에서는 학문 전체를 보는 방식은 더욱 중요한 일이 되었다. 우리가 흔히 경제학은 어렵다는 인식을 가지는 것도 너무 많이 세분되어 발전한 각 경제학 분야들을 전체가 아닌 부분적으로 접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으로 불리는 시장의 기능과 ‘보이는 손’인 정부의 기능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논의는 경제학 역사만큼 오래됐다. 《하이에크 vs 케인스 아이디어 전쟁》은 경제학사의 두 거인이 걸어온 길, 그 과정의 대립 지점을 명료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케인스(Keynes)하이에크(Hayek)는 20세기 한복판에서 시장의 기능, 시장과 사회 그리고 경제와 정치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사람들이다. 그 고민을 많은 저작과 현실 참여를 통해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구현했던 경제학자들이기도 하다.

 

1929년 미국에 대공황이 일어나면서 시장의 자유를 옹호한 고전적 자유주의 경제 이론에 의문이 생겼다. 주가는 하루아침에 40% 이상 폭락했다. 공장이 줄줄이 도산했고, 엄청난 수의 실업자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생산은 많은데 사서 쓸 사람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 케인스는 시장이 저절로 최적의 상태로 돌아가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생각했다. 그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재정 지출을 늘리고 대규모 공공사업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 이론》을 펴냈다. 미국은 케인스의 처방을 선택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 대통령의 ‘뉴딜 정책’은 에 케인스 이론에 기초한 것이다. 결국 케인스의 처방은 효과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정부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유럽에 ‘복지 국가’의 개념이 등장하면서 정부의 역할이 비대해졌다.

 

케인스 이론에 따라 경제를 운영하던 세계 각국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위기를 만났다. 정부가 돈을 풀어도 경기는 살아나지 않고 물가만 올라가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나타났다. 이때부터 하이에크의 이론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하이에크는 시장의 자유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케인스 이론을 반대하면서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면 반드시 부작용이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노예의 길(Road to Serfdom)은 하이에크의 대표작이다. 이 책에서 하이에크는 정부의 지나친 규제로 사람들의 재능과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어 ‘노예의 길’로 가게 된다고 주장했다. 사회주의, 독일 나치, 이탈리아 파시즘의 전체주의에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사실, 하이에크는 전쟁을 일으킨 독일 나치의 만행을 폭로하기 위해 《노예의 길》을 썼다) 시장 질서를 왜곡하는 복지 국가도 위험한 것으로 봤다. ‘복지병’으로 알려진 정부 개입의 부작용이 생기면서 198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신자유주의’ 물결이 일어났다. 이에 따라 영국의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 정부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정부는 ‘작은 정부’와 시장 경쟁을 지향하는 정책을 폈다.

 

이 책의 일차적 목표는 누가 옳나 그르냐를 따지기보다는 서로 다른 주장을 선명하게 대비해 오늘날에도 영향을 미치는 두 가지 경제학의 이론적 지형을 드러내는 데 있다. 똑같이 사회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접점을 찾기 어려운 인식, 경제 대공황의 처방을 둘러싼 대립, 시장 기능에 대한 두 사람의 견해차를 보여준다. 저자는 두 경제학자를 가능한 한 공정하게 보여주기 위해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한계도 설명한다. 이 책의 이차적 목표는 ‘실생활과 동떨어진 경제학’이라는 편견을 깨는 일이다. 경제학은 학자들의 세계에서만 논의되는 어려운 학문이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경제학만큼 세계를 움직이게 한 학문은 없다. 저자는 대중이 다가설 수 있는 경제학이 되려면, 경제학자들은 사회를 이해하고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해 설명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의 저자는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자유주의 사상을 다소 두루뭉술하게 설명했다.

 

 

 계속해서 부를 축적하려는 무한한 욕망은 자유주의의 반갑지 않는 측면으로 간주되어왔다. 물론 18세기라면 이러한 욕망은 여전히 환영할만했을 것이고, 애덤 스미스라면 틀림없이 강력하게 옹호했을 것이다.

 

(225~226쪽)

 

 

스미스는 고전적 자유주의 경제학의 창시자 또는 신자유주의의 조상(하이에크가 ‘신자유주의 아버지’라면 스미스는 ‘신자유주의의 할아버지[주]’ 정도?)으로 알려졌지만, 그의 사상은 훨씬 복잡해서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다. 《국부론》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을 언급하면서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고 싶은 사람들의 동기를 풀어놓고 잘 활용하는 자유 방임 경제를 강조한다면, 《도덕감정론》에서는 개인의 이기심이 아니라 사회적 이타심을 사회의 구성 원리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이 책에서 절제없는 부의 추구는 정의와 도덕이라는 사회의 근본 원리를 무시함으로써 오히려 시장과 사회를 위협한다고 주장했다. 《도덕감정론》에 드러난 스미스의 견해를 생각하면 그가 부를 축적하려는 욕망을 강력하게 옹호했다고 볼 수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국부론》만 본 채 스미스를 부와 탐욕의 화신인 것처럼 오해한다.

 

 

 

 

[주] ‘고전적 자유주의의 어머니’ 또는 ‘신자유주의의 어머니’라는 호칭에 어울리는 인물이 있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자유지상주의자인 아인 랜드(Ayn Rand)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12-17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2-18 17:06   좋아요 0 | URL
학자들이 정부나 공공기관의 지원을 받아 연구하는 것은 좋은 일인데, 말씀하신 것처럼 특정 세력의 하수인이 되는 게 문제죠. 물론 공적 지원금을 받는 학자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요. 또 어떤 경제 전문가들은 뻔뻔하게 자신의 분석과 예측에 대한 실패를 인정하지 않아요. ^^;;
 

 

 

 

메디치(Medici) 가문을 거론하지 않고는 르네상스를 설명할 수 없다. 메디치 가문이 부를 바탕으로 한 권력으로 당시 피렌체(Firenze)의 입법 · 사법 · 행정을 장악했고, 교황까지 손아귀에 넣었다. 권력의 이면에는 엄청난 업적도 있었다. 그들의 사치와 예술 애호 열기가 인류문화의 황금기 르네상스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메디치가의 학문과 예술에 대한 지원은 대단했다. 그들의 지원으로 피렌체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중심 도시가 됐다.

 

 

 

 

 

 

 

 

 

 

 

 

 

 

 

 

 

 

 

* G. F. 영 《메디치 가문 이야기》 (현대지성, 2017)

* [절판] 크리스토퍼 히버트 《메디치 스토리》 (생각의나무, 2001)

 

 

 

중세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본격적으로 이행하기 시작한 시대에 메디치 가문은 이미 자본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거대한 집단이다. 메디치 가문은 은행 업무와 무역을 통해 유럽 전역에서 가장 수익이 많은 가족 사업체로 발전한다. 《메디치 가문 이야기》(현대지성)와 절판된 《메디치 스토리》(생각의나무)는 권력의 정점을 이룬 메디치 가문의 흥망성쇠를 보여준다. 메디치 가문은 숱한 정치적 위기에 직면하지만, 그 순간들을 돈과 계략으로 모면하면서 살아남았다. 황금빛이 날 것만 같은 피렌체라는 무대의 이면에 피비린내 나는 배신과 칼부림이 있었다.

 

르네상스 이전의 메디치 가문은 피렌체의 농촌 지역에서 이주해 온 별 볼 일 없는 존재였다. 메디치 가문은 고리대금업을 하면서 부를 축적했고, 막대한 액수의 결혼 지참금을 들고 온 신부와 결혼하면서 제법 정치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신흥 가문으로 성장했다. 작은 땅을 가진 일개 가문이 피렌체를 주름잡는 거대 세력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결혼 지참금 제도에 있다.

 

 

 

 

 

 

 

 

 

 

 

 

 

 

 

 

 

 

 

* [절판] 매릴린 옐롬 《아내의 역사》 (책과함께, 2012)

* [절판] 홍성표 《서양 중세사회와 여성》 (느티나무, 1999)

 

 

 

왕족, 귀족 가문의 결혼은 지참금을 매개로 한 ‘재무 거래’였다. 지참금은 보통 신부의 아버지가 신랑의 아버지에게 직접 전달한다. 이때 시아버지는 지참금을 자식을 위해 사용하고 헛되이 탕진하지 않을 것은 물론 며느리가 사망하면 반환하겠다는 것을 문서로 약속했다. 즉 서양에서 결혼은 개인들의 애정 관계가 아닌 두 가문의 이해관계로 바라보았으며 가문 간의 계약 관계인 것이다.

 

고대시대부터 여성은 가축, 노예와 같이 남편의 재산목록의 하나에 불과했다. 남편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아내는 자식을 낳는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어머니로서만 존재했다. 《아내의 역사》(책과함께)는 시대별로 달라지는 아내의 정의와 사회적 지위를 들여다보고 있다. 과거에 아내가 남편의 소유물로 취급받던 시대가 있었다. 《서양 중세사회와 여성》(느티나무)은 중세 영국의 결혼지참금 제도가 여성의 재산권 행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밝힌다. 중세 영국의 결혼 지참금은 남편을 잃은 신부가 생계수단을 확보하는 데 유용한 재산이었고, 친아들에게도 상속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여성이 법률에 따라 재산권을 온전히 행사할 수 있는 경우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재산권의 저울은 남편 또는 친자 쪽으로 한참 기울어져 있었다.

 

 

 

 

 

 

 

 

 

 

 

 

 

 

 

 

 

* 미하르 데사이 《금융의 모험》 (부키, 2018)

 

 

그러나 유럽 전역에 흑사병이 창궐하면서 인구가 대폭 감소하였고, 결혼 지참금 제도에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다. 크고 작은 전쟁과 흑사병 이후로 사망한 남성 인구가 늘어나면서 ‘좋은 신랑감’ 찾기가 어려워졌다. 귀한 아들을 둔 부모는 신부가 될 집안에게 어마어마한 액수의 지참금을 요구했다. 딸을 둔 부모는 결혼하지 못한 딸의 앞날을 걱정했고, 신분을 상승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까 봐 걱정했다. 결혼하지 못한 여성은 경제적 자립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한편, 신랑 측 집안은 자신들이 요구한 지참금을 받지 못할까 봐 염려했다.

 

이러한 결혼 시장의 불확실성을 해결하기 위해 1425년에 이탈리아 피렌체 정부는 ‘결혼 지참금 펀드’를 만들었다. 아버지가 딸의 출생과 거의 동시에 혼인 시기를 예상하여 일정 기간 적금 형태로 목돈을 모을 수 있게 하는 제도이다. 이 목돈은 정부가 관리했으며 딸의 혼인이 성사되면 목돈은 지참금이 되어 신랑 집안에게 지급했다. 그래서 딸을 둔 여러 가문들은 딸들의 지참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정한 금액의 돈을 정기적으로 저축했다고 한다. 《금융의 모험》(부키)에서는 결혼 지참금 펀드를 ‘금융 공학의 쾌거’라고 평가한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Levi Strauss)는 근친상간 금기와 ‘여성의 교환’이 인류 사회의 기본 구조임을 밝혔다. 딸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족외혼을 통해 두 집안은 사돈 관계가 형성되고, 집단 간 동맹을 맺는 것이다. 가문끼리 연결된 사회는 점점 더 커지고 더 많은 연대를 이뤘으며 보다 강력해질 수 있다. 이렇듯 결혼 지참금 제도가 정착되면서 동질적 특징을 공유한 가문들끼리 결혼하면서 남성은 손쉽게 권력을 독점할 수 있었고, 여성은 자기 결정권이 박탈된 채 지참금과 함께 남편의 재산으로 취급받았다. 결혼 지참금 제도는 금융기관 발전에 기여한 점이 있지만, 이 제도 덕분에 남성 중심의 권력은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다. 오랫동안 결혼은 남편이 아내의 합법적인 주인임을 인정받는 의식이었다.

 

 

 

 

 

 

 

 

 

 

 

 

 

 

 

 

 

* 마리아 미즈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갈무리, 2014)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중국 등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는 여전히 결혼 지참금 제도가 남아 있다. 특히 인도의 결혼 지참금 제도는 여성 및 계급차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악습이다. 결혼 지참금이 너무 적다는 이유로 신부를 폭행하거나 불 태워 죽이는 일이 발생한다. 이런 비인간적인 일이 야만적인 악습 때문에 일어난 것일까? 여성에 대한 폭력과 여성의 신체를 억압하는 일은 비정한 자본주의적 축적의 한 과정이다. 그런데도 (남성) 경제학자와 사회학자 들은 자본주의가 초래한 여성의 경제적 종속과 희생에 무관심했다. 심지어 자본주의적 축적의 야만성을 지적한 마르크스(Marx)마저 여성이 처한 비참한 현실을 외면했다. 자본주의는 자본 축적을 위해 여성을 이용할 줄 알았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yo 2018-10-23 12: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르크스 이름에 r 하나 빠졌네요 ㅎㅎ 저건 베버의 퍼스트 네임이죠?

결코 사이가 좋을 수가 없을 마르크스랑 베버가 알게 되면 쌍방이 언짢아할 실수를 하셨네요^-^

cyrus 2018-10-23 19:25   좋아요 0 | URL
제가 봐도 여성 해방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마르크스가 급진적(radical)인 인물이 아닌 것 같아서 일부러 ‘r’자를 뺏습니다....... 는 개소리고, 제가 실수로 이름을 잘못 적었어요... (데헷~ (・ω<))

2018-10-23 15: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0-23 19:33   좋아요 0 | URL
요즘 같이 독신도 살기 힘든 시대에 결혼하는 사람들을 보면 진심으로 존경스러워요. 제가 사교성이 좋지 않고, 가족을 먹여 살리는 능력이 없을 것 같아서 연애하고 싶다거나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1도 나지 않아요. 독신과 부부 생활에 각각 뚜렷한 장단점이 있으니 결혼이 좋다느니 독신이 좋다느니 하면서 비교하는 분위기가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

stella.K 2018-10-23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올 여름에 영드 메디치를 보다가 말았다.
12부작인가 그렇던데 나름 영상은 좋은데
왜 그리 재미가 없던지 결국 보다...ㅠ
어느 나라든지 역사를 이루려면 꼭 피 없이는 안 되는 것 같아.
피 흘림이 없이 역사도 없는 거지.ㅠ

cyrus 2018-10-23 19:38   좋아요 0 | URL
저는 역사책은 잘 읽는데, 역사 드라마나 사극은 잘 안 봐요. 처음에는 재미있어서 보는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흥미가 느끼지 않으면 안 봐요. ^^;;
 
금융의 모험 - 세상에서 가장 지적이고 우아한 하버드 경제 수업
미히르 데사이 지음, 김홍식 옮김 / 부키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으로부터 십 년 전, 미국발 금융위기에 세계 경제가 몸살을 앓은 적이 있다. 오랜 역사를 가진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Lehman Brothers)가 파산 신청을 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뉴욕 증시는 폭락했고 세계 증시 역시 일제히 곤두박질쳤다.

 

리먼 브러더스의 성쇠는 파생금융시장 흥망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1970년대부터 새로운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군림한 신자유주의는 파생금융시장의 급성장을 이끌었다. 레버리지(leverage) 효과에 도취한 월 스트리트(Wall Street)는 온갖 새로운 파생금융상품을 시장에 선보였다. 최첨단 이론으로 중무장한 과학자들은 파생금융시장에 진출했고 자신이 아니면 누구도 시스템을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금융상품을 만들었다. 금융위기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월 스트리트의 금융회사에 일하는 사람들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금융회사들은 자기자본의 수십 배에 달하는 자금을 조달하여 수익성이 높은 상품이나 사업을 벌여 많은 돈을 벌었다. 그 성과로 월가의 최고경영자들과 직원들은 매년 연말 두둑한 상여금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의 잔치는 2008년에 멈췄다. 그리고 그 뒤에 남겨진 것은 1929년 대공황 이후의 최악의 금융위기였다. 미국 정부는 자국 경제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규모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부실채권 매입에 나섰다. 위험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보너스 잔치를 즐겼던 금융회사들이 미국 정부에 손 벌리는 것에 대해 미국인들의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금융은 제대로 작동하면 성장촉진제지만, 반대의 경우 독이 돼 금융시장 전체와 세계 경제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간다. 금융이 경제에 순기능이 아닌 역기능으로 작용해 위기를 부른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금융위기가 끊이지 않는 데는 무엇보다 자신들의 실적을 찬양하기 바쁜 투자자들의 과신과 탐욕이 자리 잡고 있다. 금융에 대한 신뢰는 붕괴하고 부패가 늘어났다. 국민의 관점에서 보면 금융은 근심거리다. 대부분 사람들은 과도한 금융이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금융은 사람들에게 신뢰를 잃었다.

 

 

 

 어떻게 하면 금융에 접근하는 관념들을 누구나 알기 쉽고 수긍할 수 있도록 보여 줄 수 있을까? 금융이 수행하는 미덕들을 깨달아 금융이 하는 일이 개선되도록 할 수 있을까? (22)

 

 

2015년 하버드경영대학원 졸업반 학생들을 위한 마지막 강의를 펼친 미히르 데사이(Mihir Desai) 교수가 한 말이다. 그는 이 강의를 통해 우리 삶에 쓸모 있는 금융의 가치를 전달하려고 했고, 그 결실이 한 권의 책으로 이루어졌다. 원제는 금융의 지혜(The Wisdom of Finance)인데, 우리나라 번역본 제목은 금융의 모험으로 정해졌다. 이 책에는 금융과 삶의 문제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독자는 이 책에서 사람 냄새 나는 금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철학자 찰스 샌더스 퍼스(Charles Sanders Peirce)는 보험이야말로 우리 삶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틀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생전에 우리는 모두 보험 회사다라는 말도 남기기도 했다. 보험료 인상은 서민들의 주름살을 깊어지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험이 서민 지갑을 축내는 금융상품이라고 볼 수 없다. 그 이유는 보험은 기본적으로 우연성과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보험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는 역할을 한다. 보험은 우리에게 불확실한 세상을 대처할 수 있는 경험과 지혜를 가르쳐준다.

 

앤서니 트롤럽(Anthony Trollope)의 소설 피니어스 핀에 나오는 바이올렛 에핑검(Violet Effingham)은 좋은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효율적으로 리스크(lisk)를 관리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그녀는 최종적으로 배우자를 결정할 때까지 배우자가 될 만한 여러 선택지(option)를 확보한다. 에핑검의 선택지 확보 전략은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최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옵션전략과 비슷하다. 그러나 선택지가 너무 많으면 문제가 생긴다. 선택지를 모으는 일에 치중하면 선택지를 행사할 기회를 놓친다.

 

데사이 교수는 금융업 종사자들의 능력 만능주의를 비판한다. 그는 성경에 나오는 달란트의 우화를 재조명하면서 금융인들이 알아야 할 교훈을 강조한다. 운이 따른 실적을 개인의 능력에서 나온 것이라고 과신해선 안 되고, 항상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금융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우리 삶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금융의 불안은 경기 침체를 일으키거나 필요 이상으로 악화시켜 실업을 일으킨다. 분명 오늘날의 금융은 문제가 있다. 그렇지만 금융이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고 해서 금융시장을 고소득자들을 위한 세계로 봐야 할까? 금융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사적인 활동일까? 데사이 교수는 금융을 사악한 것으로 취급하고 배격하는 태도는 생산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금융을 적대시하고 외면하기보다는 우리 실생활에 필요한 지혜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금융은 일부 고소득층의 사익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이 될 것인가, 아니면 일상 속 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혜가 될 것인가. 금융업만을 위한 이익이 아닌 금융이 필요하다. 정부와 우리 사회의 관심에 달려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10-23 15: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0-23 19:43   좋아요 1 | URL
요즘의 금융회사와 보험회사는 이 책에서 말하는 ‘금융의 인간성’과 아주 거리가 멀죠. TV를 켤 때마다 나오는 보험회사, 대출업체 광고가 싫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