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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품격 - 말과 사람과 품격에 대한 생각들
이기주 지음 / 황소북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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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후 노아(Noah)의 후손은 하늘에 닿을 수 있는 탑을 쌓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간의 오만한 행동에 괘씸하게 여긴 야훼(Yahweh)는 인간의 언어를 혼란에 빠뜨려 뿔뿔이 흩어지게 함으로써 탑 쌓기를 중단시킨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바벨탑(Tower of Babel)’ 이야기에는 언어가 통하지 않는 상황에 대한 인간의 절망감이 잘 묘사돼 있다. 바벨탑의 교훈은 말 잘하기의 필요성이 갈수록 절실해지는 지금도 유효하다. 살다 보면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 간에 뜻이 통하지 않는 상황이 때때로 찾아온다. 예를 들면 진심으로 이야기했는데 소통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또 기껏 생각해서 이야기했는데 화만 내는 사람이 있다.

 

대화는 발화자가 상대방(수신자)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전달하기 위해서 특정한 형태의 말을 의도적으로 보낼 때 성립된다. 이처럼 너무도 단순해 보이는 과정이지만, 우리의 현실 속에서는 참으로 어렵고 힘든 작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사실 인간사의 모든 갈등은 대화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탓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곡되고 엇갈린 대화는 개인과 사회조직의 건강성을 해친다. 대화는 가정과 사회생활을 성립시키는 기초적인 행동이다. 이것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개인과 사회 모두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된다. 같은 언어를 사용해도 개인이나 조직의 서로 다른 경험과 이해, 가치관으로 인해 말의 차이 못지않은 대화의 장애를 겪는다.

 

우리는 지금 말 잘하기의 필요성이 갈수록 절실해지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생산적인 말하기를 위해 말하는 법도 공부해야 한다. ‘말하기’도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한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각종 대화법과 화술을 배양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들이 앞 다투어 쏟아져 나온다. 이런 책들이 비뚤어지고 휘어진 언어 습관을 교정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복용해야 하는 약이라면, 《말의 품격》(황소북스, 2017)가시 돋친 언어에 상처받아 허해진 마음을 북돋아주는 십전대보탕(十全大補湯)이다.

 

《말의 품격》은 ‘상대방을 위한 말하기’란, 기본적으로 나와 상대방을 이어주는 과정이란 인식에서 출발한다. 상대방을 알려면 그가 어떤 말을 하는가를 보면 된다. 사람은 때로 상대방의 말 속에 숨은 생각을 읽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내 마음대로 상대방의 말을 판단하지 않고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잘 들어야 한다. 섣부르게 상대방의 말에 개입하거나 끊어버리는 태도는 상대방의 발화를 막는 일방적인 자세이다. 상대방의 말 위에 자신의 말을 아무 생각 없이 얹어 버리면 서로가 이해할 수 없는 소음으로 변한다. 에머슨(Emerson)은 말이란 말하는 사람의 마음에 있는 소리라고 했다. 책의 저자도 말은 ‘마음의 소리’라고 말한다. 말이 정갈하게 모여 쌓이면 사람의 품성으로 완성된다.

 

한마디 말이 상황뿐만 아니라 인생을 바꾼다. 우리의 주변에 좋은 말 한마디 때문에 성공과 행복을 거머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말 한마디 때문에 인생을 망친 사람도 있다. 말은 이렇게 인생을 뒤바뀌게 하는 힘이 있다. 많은 말을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말은 소통이 목적이지 자신의 과시가 목적이 아니다. 저자는 침묵이 ‘말실수를 하는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침묵이 항상 좋은 처세도 아니다. 적절한 말을 적절한 때에 하는 것이야말로 잘하는 말이다. 상대방의 진심을 들여다보고 싶으면 침묵을 깨고 질문을 하는 것도 좋다.

 

저자는 《말의 품격》을 쓰기 위한 재료로 공자, 맹자, 장자, 《손자병법》 등 동양고전에서 찾아낸 질 좋은 문장들을 사용한다. 내가 왜 이 책을 열 가지 한약 재료를 넣어 만든 십전대보탕으로 비유한 이유가 있다. 몸에 좋은 동양고전의 문장들과 편안하고 쉬운 저자의 말을 함께 달인 《말의 품격》은 차가운 언어로 얼어버린 독자들의 몸과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어 준다. 하지만 한약재를 잘못 먹으면 부작용이 일어나는 법. 상대방에게 잘 보이려고 이 책을 읽는다면 세속적 차원의 대화를 지향하는 것이 된다. 말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면 형식적인 말에 불과하다. 상대방이 알아듣고 통하는 말의 특징은 마음에서 곧장 흘러나와 단순하면서도 감동을 준다. 말은 상처받은 이들이 위로받고, 낙심한 이들이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생산적인 도구가 되어야 한다. 좋은 말은 사람을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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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7-09-27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말은 사람을 살리듯이 나쁜 말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요.

품격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품격 높은 정치 좀 보고 싶군요.ㅋ

cyrus 2017-09-27 18:44   좋아요 0 | URL
야당이든 여당이든 어느 정당이 제1정당이 되어도 막말하는 정치인은 매년 한두 명씩 튀어나옵니다.. ㅎㅎㅎ
 
책장의 정석 - 어느 지식인의 책장 정리론
나루케 마코토 지음, 최미혜 옮김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애플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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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가는 책만 보면 호구(虎口)가 된다. 읽고 싶은 책을 발견하면 일단 사고 본다. 새 책을 집에 데려올 때 장서가는 행복하다. 그러나 책장의 터줏대감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들은 새 책의 향기를 맡자마자 인상을 찡그린다. 비좁은 자리 때문에 터줏대감들은 답답해 죽을 노릇인데 주인은 그 마음을 모른다. 장서가의 눈에는 책장에 꽂힌 책들이 귀여운 자식처럼 보인다. 터줏대감들은 주인에게 항의한다. “거 주인장, 욕심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 그들의 볼멘소리를 아는지 모르는지 애서가는 읽지도 않는 책을 사들인다.

 

일본의 다독가 겸 서평가인 나루케 마코토는 책만 열심히 읽은 게 아니라 일찌감치 책장의 터줏대감들의 마음마저 읽어냈다. 그는 불필요하게 많은 책으로 가득 채워진 책장을 관리하는 일에 한계가 있음을 깨달았다. 여유로운 독서를 위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책장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마코토는 《책장의 정석》에 효율적으로 책장을 관리하는 비결을 알려준다.

 

저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책장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을 책장에 꽂아둔다. 베스트셀러는 피해야 한다. 너무 평범한 책장이 된다. 보기 편하도록 책장의 20% 여백을 남긴다. 공간이 없을 정도로 책이 빽빽하게 들어찬 책장은 답답해 보인다. 책장에 여유 공간이 있어야 지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을 누릴 수 있다. 오래된 정보가 된 책은 책장에 있을 필요가 없다. 나이가 많은 터줏대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어야 한다. 그들의 빈자리에 최신 정보의 신간을 맞아들인다. 이로써 장서가는 따끈따끈한 지식으로 무장하여 한 단계 성장한다. 책장은 그저 뽐내기 위한 장식품이 아니다. 받아들여야 할 정보와 필요 없는 정보를 구분하는 외장형 두뇌처럼 활용되어야 한다. 과학, 경제 같은 사회인이라면 알아야 할 분야의 책은 ‘메인 책장’에 보관하면 좋다.

 

책장을 깔끔하게 정리했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다. 책장에 보관할만한 책을 잘 찾아내야 한다. 저자는 상대방에게 좋은 책을 추천받을 때, 무조건 ‘좋은 책’을 소개해달라고 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자신과 상대방이 생각하는 ‘좋은 책’의 기준은 큰 차이가 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를 남들에게 알리고 싶어진다. 그럴 때 서평을 작성하면 된다. 저자는 독자가 이 책의 재미를 느끼게끔 서평을 쓴다. 감상 위주로 쓰면 서평이 아니라 독후감이 되고 만다. 그리고 글의 분량이 길어질 수 있다.

 

정석은 ‘정해져 있는 일정한 방식’을 의미한다. 《책장의 정석》 뒤표지에 ‘책장에도 룰이 있다’라는 문구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책을 보관한 자리가 없어서 고민이 많은 장서가는 이 책에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100% 해결될 거라는 보장은 없다. 장서가에게 책장 관리는 숙명이다. 저자처럼 책장을 정리하려면 소설이나 에세이를 좋아하는 독자들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저자는 픽션은 전자책으로 읽으라고 말한다. 물론 저자가 문학을 무시해서 픽션을 책장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저자 개인의 생각일 뿐이다. 픽션이나 문학 에세이를 선호하는 독자들은 《책장의 정석》을 보지 않는 것이 좋다. 한편으로 문학을 책장에서 제외하는 저자의 태도를 생각하면, 고전을 ‘나중에 읽을 책’이라고 강조하는 그의 주장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는 고전을 당장 읽지 않더라도 보관해두면 좋다고 말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고전에는 ‘문학’이 다수를 이룬다. 그렇다면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책장의 정석》은 분명 장서가로 자처하는 독자들을 겨냥해서 만든 책인 건 분명하다. 그러나 저자의 책장 관리법이 장서가의 고민을 완벽하게 해결해 줄 것으로 보지 않는다. 나는 이 책에 평점을 좋게 매긴 서평들을 이해할 수 없다. 책장이 바뀌면 인생이 달라질 거라고 강조하는 책의 홍보 카피에 속지 마시라.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책장을 정리하는 데 치중하면, 자칫 책을 진열하는 것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 저자는 책을 외출복처럼 비유한다. 그런데 내가 입어야 가치가 있는 외출복을 한 번도 입지 않고 보관만 한다면 문제가 있다. 저자의 말처럼 자신의 성장에 유용한 오락처럼 책을 즐겨야 한다.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기 책장을 꾸미는 일은 오락이 아니라 오만이다. 독자는 《책장의 정석》에서 새겨들을만한 내용만 가려내서 읽으면 된다. 특히 책장 관리를 꾸준히 할 자신이 없는 독자라면 서평을 작성하는 방식을 소개한 4장만 읽어도 충분하다. 그러므로 《책장의 정석》은 특별히 돈 주고 사야 할 책이 아님을 강조하고 싶다. 아, 안 그래도 책장에 자리가 없는데 이 책을 산 것이 조금 후회된다. 팔 것인가, 보관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역시 나는 책만 보면 호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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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꿀이 2016-01-19 0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책장을 효율적으로 정리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cyrus 2016-01-19 10:13   좋아요 2 | URL
이 책을 읽으면 책장 정리의 필요성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 책을 사놓고 실천을 하지 못하면 책값 낭비, 책장 자리 낭비입니다. 내용을 먼저 확인하고, 이 책을 살지 안 살지 결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

yureka01 2016-01-19 0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전 다행입니다.ㅎㅎㅎ거의가 사진 관련 책들만 가집니다.나머지 책들은 줘버리거나 중고로 팔거나....그런데 또 사진책은 출간되는 량이 다른 분야의 책들에 비해서 엄청나게 적다는거....어차피, 세상에 나온 책..나올 책들..다 못보고 죽으니까요.ㅎㅎㅎㅎ

cyrus 2016-01-19 10:14   좋아요 2 | URL
사진 책은 다른 분야의 책들에 비해 귀한 편이라서 함부로 버릴 수가 없어요. ^^

글월마야 2016-01-19 0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삐뚤빼뚤 쌓이고 꽉꽉 채워진 책장이 그득한 쌀통보다 그득한 옷당보다 더 좋더라구요. 행복한 책바보 21세 간서치이고 싶습니다.
서평 잘 읽었습니다^^좋은 하루 되세요!!

cyrus 2016-01-19 10:15   좋아요 2 | URL
저도 그렇습니다. 책을 좋아하려면 사소한 불편을 감수하면서 살아야죠. 글월마야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오늘 날씨가 상당히 추워요. 감기 조심하세요. ^^

표맥(漂麥) 2016-01-19 10: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온 방에 책. 책. 책...
한번 모두 기증할 기회가 있었는데, 가족들이 아직 자기들 안읽었다고 반대하는 바람에 집구석이 엉망(?)입니다.
정작 말한 그들은 읽지도 않으면서...^^

cyrus 2016-01-19 10:18   좋아요 2 | URL
인정하기 싫지만 제가 안 읽는 책에 미련이 남아서 못 버리고 있습니다. ㅎㅎㅎ

transient-guest 2016-01-19 16: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주문했는데 조금 후회할 수도 있겠습니다 좀 낚인 것 같네요

cyrus 2016-01-19 21:31   좋아요 1 | URL
생각보다 특별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서니데이 2016-01-19 22: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니 책장정리도 자주 해야할텐데, 괜히 하기 싫어요.^^;
cyrus님, 좋은밤되세요.^^

cyrus 2016-01-19 22:07   좋아요 1 | URL
맞아요. 방이 따뜻하니까 움직이기 싫어져요. ㅎㅎㅎ

심성 2016-01-22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 님 서평을 보고 관심이 생겨 방금 구매했습니다. 읽어보고 저도 제 생각을 적어 봐야겠습니다 ^^

cyrus 2016-01-23 15:51   좋아요 0 | URL
심성님이라면 책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드러낼 거라 믿습니다. 기대됩니다. ^^
 

 

 

 

 

 

 

 

 

 

 

 

 

 

 

 

 

 

미국의 심리학자 쉐드 헴스테드는 인간은 하루에 5만 가지 이상의 생각을 한다고 주장한다.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른다’는 우리말이 어느 정도 과학적 근거가 있다는 말이다. 이 많은 생각 중에 75%는 부정적인 생각이고 25%는 긍정적인 생각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인간은 가만히 있어도 부정적인 방향으로 사고로 기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터넷과 언론매체를 통해 수많은 정보가 홍수처럼 밀려든다. IS 테러 소식, 광화문 시위, 각종 사건 사고 소식 등 많은 정보가 우리 주위에 맴돌고 있다. 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는 대부분 부정적이거나 비판적인 기사를 다룬다. 실제로 우리의 삶 속에서도 비판적이나 부정적인 이야기에 더 관심을 끌게 된다. 비판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사람 이야기는 대상이 구체적이다. 눈에 보이기 때문에 실감이 난다.

 

 

 

 

 

 

 

 

 

 

 

 

 

 

 

 

 

 

 

 

우리 사회는 긍정을 강조한다. '매일 읽는 긍정의 한 줄' '긍정의 힘' '긍정심리학' 같은 책이 불티나게 팔렸다. '긍정'이라는 제목을 전면에 내세우진 않았지만 같은 얘기를 하는 책들도 많다. "결국, 마음먹기에 달렸다"며 '끌어당김의 법칙'을 내세운 베스트셀러 《시크릿》이나 1년 열두 달 삶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제시하는 '무조건 행복할 것'과 같은 여러 자기계발서가 궁극적으로 전하는 메시지도 결국 "긍정하라"인 것이다. 이지성은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는 뜻을 가진 R=VD 공식을 들고 나왔다. 그러면서 인생의 진리는 단순하므로 우리 스스로 상상한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과연 아직 열리지 않은 희망의 열매가 거둘 것이라고 낙관해도 좋을까. 삶의 난관들을 무시하고 긍정적인 측면만 부각하는 생각은 위험하다. 긍정의 힘만 믿으면 자신에게 유리한 사실만 보면서 문제의 본질을 무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켄 블랜차드의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가 주목을 많이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긍정적인 말의 칭찬만 더 듣고 싶어 하는 역설적인 표현인지 모른다. 부정적인 말이 조직 내 분위기를 흐리게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올바른 비판 의식이 갖춰진 부정적인 말을 할 수 없도록 만드는 분위기로 조성해서는 안 된다. 자신에게 향한 부정적인 비판이 자신의 명예에 조금이라도 흠집을 낼 까봐 아예 그런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부정적인 말을 듣는 것 자체를 거부하여 오로지 칭찬만 듣고 싶어 한다. 칭찬만 듣고 자란 사람은 자신이 남들의 눈에는 완벽한 사람이라고 믿는다. 거의 아부에 가까운 칭찬만 듣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 앞에 자신이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아주 열심히 춤을 춘다. 그런 모습을 사람들은 열정이라고 말하지만, 남들 앞에서 잘 보이고 싶어서 부단히 애쓰는 모습일 뿐이다. 그렇게 잘했는데도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익이나 좋은 반응이 없다면 분명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다. 계속 칭찬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도전적 과업을 포기하거나, 심리적 압박을 느끼게 된다. 중세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자 허무맹랑한 미신에 지나치게 의존했고, 죽음의 공포를 잊기 위해 미친 듯이 춤을 추었다. '죽음의 무도'는 죽음 앞에서 누구나 죽게 되는 인생의 덧없음을 보여준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칭찬의 긍정적 효과를 상징하는 말로 알려졌지만, 이것을 삐딱하게 보면 '칭찬'이라는 미신을 믿고, 좋은 소리만 들으려고 남들 앞에서 열심히 춤추는척 하는 비참한 상황을 보여준다. 과도한 칭찬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칭찬의 무도'를 멈추지 못한다. 언제까지 주변 사람들이 치켜세우는 칭찬의 춤을 추고 있을 건가? 당신의 모습을 보라. 비판과 실패를 두려워하는 비굴한 모습을.

 

 

어떤 질문이 당사자를 불편하게 했다면 본질에 정확했다는 이야기다.

 

(손호성 《악당의 명언》 중에서, 408~409쪽)

 

 

칭찬을 장려한다는 이유로 '강요'를 하면 상대방의 기분을 맞추려는 가식만 나올 뿐이다. 긍정과 부정의 균형이 필요하다. 부정적 피드백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비판적 직언을 존중해야 한다. 직언을 막으면 조직이 실패할 수 있다. 노키아 경영진은 “아이폰에 버금가는 스마트폰을 빨리 개발해야 한다”는 개발진의 건의를 무시해 급격한 경영 악화를 경험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상대방의 직언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지만, 현실에 안주하는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좋은 약이 될 수 있다.

 

 

1등 악당에게는 근면 성실이 필수 덕목, 빌 게이츠, 히틀러, 무솔리니도 근면, 성실했다.

 

(손호성 《악당의 명언》 중에서, 114~115쪽)

 

 

윗사람들은 젊은 사람들을 향해 '우리 젊은 시절보다 노력하지 않는다', '옛날보다 풍족한 세상에 살고 있는 데도 불만 타령만 늘어놓고 있다'라고 잔소리한다. 그러나 근면이 무조건 성공을 보장해주는 필수 조건이 아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심지어 우리가 믿고 표를 준 국회의원마저도.

 

 

똑똑한 애들은 보통 상대방의 약점을 찾아내서 공략한다. 하지만 사악한 애들은 장점을 무력하게 만들어서 좌절시킨다. 다신 못 일어나게.

 

(손호성 《악당의 명언》 중에서, 221쪽)

 

 

제대로 일하지 않거나 성과가 미미한 사람일수록 자기 나름으로 열심히 했다고 변명을 한다. 열심히 한다는 칭찬이 능력을 향상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약점을 가리려는 방패가 된다. 정글 같은 냉혹한 현실에는 자신의 특출한 능력을 무기로 앞세워 성공을 노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독한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곳에서 '성실'과 '노력'이라는 방패를 든 사람들이 살아남기 힘들다.

 

긍정과 칭찬은 우리 삶을 기분 좋게 해주는 꿀이다. 그 꿀을 맛보려면 벌의 독침 공격을 맞으면서까지 벌집에 다가서야 한다. 꿀을 지키기 위해 공격하는 벌들은 안정적인 우리 삶에 공격하는 수많은 난관이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따끔거리게 하는 가벼운 쓴소리가 될 수 있고, 심하면 눈물을 흘리게 할 정도로 좌절하게 하는 최악의 상황일 수도 있다.

 

 

 

 

 

 

 

 

 

 

 

 

 

 

 

 

 

 

베트남전에 참전해서 포로가 된 스톡데일은 지속적 고문과 가혹한 환경을 견뎌내는 생활을 8년이나 한 끝에 극적으로 생환하였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또는 부활절에는 미군이 승리, 포로수용소에서 나갈 수 있다고 막무가내로 믿었던 많은 병사는 계속되는 실망감에 결국 상심해 죽게 된다. 현실을 파악하지 않은 맹목적인 낙관은 결국 실패로 이끌지만, 어려운 현실 속의 냉혹한 사실들을 직시하고 결국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으면 어떠한 어려움이 오더라도 극복해 낼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실화이다. 강요에 가까운 무조건적 긍정은 언젠가 우리의 발등을 크게 찍을 때가 있다. 긍정에도 힘이 있지만, 부정에도 중요한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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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11-27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읽었습니다. cyrus님, 편안한 밤 되세요.^^

cyrus 2015-11-28 09:41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

인디언밥 2015-11-28 0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칭찬의 무도` 아프게 와닿네요. 저도 누가 저를 좋게 보면, 그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엄청 애썼었거든요. 지금도 여전한지는 모르겠지만...

cyrus 2015-11-28 09:46   좋아요 1 | URL
저도 그랬습니다. 남들 앞에서 잘 보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누군가가 부탁하는 일을 쉽게 거절하지 못했어요. 뭐든지 잘 하려는 마음이 정신적 압박감으로 되어서 스트레스가 생겼어요.

saint236 2015-11-28 12: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괜찮아 다 잘될거야가 너무 팽배하다보니까 현실의 문제를 외면해 버리더라고요. 잘 될거라는 믿음도 현실을 직시하고 돌파할 수 있는 용기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헛된 꿈이지요.

cyrus 2015-11-29 19:44   좋아요 1 | URL
제가 글로 쓰고 싶은 내용을 아주 간결하게 말씀해주셨네요.

페크(pek0501) 2015-11-29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제가 이지성 저자를 비판하는 글을 많이 봅니다.

사탕발림에 넘어가는 자는 그래서 행복해질까요?

saint236 2015-11-29 23:50   좋아요 0 | URL
개인적인 편견일지 모르지만 이지성은 뽕도 안되더라고요

yureka01 2015-11-30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죽음도 맹목적 낙관의 일종이라면...ㅎㅎㅎ그러게요.

cyrus 2015-11-30 17:43   좋아요 0 | URL
올리버 색스나 지미 카터 같은 사람들이 대단한 것 같아요. 그들처럼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나이에 이르면 죽음을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됩니다.
 
인비저블 - 자기 홍보의 시대, 과시적 성공 문화를 거스르는 조용한 영웅들
데이비드 즈와이그 지음, 박슬라 옮김 / 민음인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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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언덕 꼭대기에 서서

소리치지 말라.
물론 네 말은

옳다, 너무 옳아서

말하는 것이

도리어 성가시다.
언덕으로 들어가,

거기 대장간을 지어라,

거기 풀무를 만들고,

거기 쇠를 달구고,

망치질하며 노래하라!
우리가 들을 것이다,

듣고,

네가 어디 있는지 알 것이다.

 

(울라브 H. 하우게  「언덕 꼭대기에 서서 소리치지 말라」)

 


세상은 두 부류의 인간으로 나뉜다. 소셜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무리와 사용하지 않는 무리. 스마트폰이 열어젖힌 광대한 대륙인 소셜 네크워크에는 새로운 정보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다. 대륙에 정착한 소셜 네크워크 접속자들은 셀 수 없이 많은 애플리케이션들을 갈아타면서 정보와 네트워킹의 세계를 탐험한다. 와이파이의 전파를 온몸에 적실 수 있는 곳이라면 그들을 막을 장벽은 아무것도 없다. 인터넷이 소통에서 아주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오늘날, 소셜 네트워크 대륙에서 연줄이 없는 사람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외톨이라는 걸 인증이라도 하는 듯하다. 많은 사람들과 쉽게 연결될 수 있고, 시공간 제약이 최소화된 상태에서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사람과 쉽게 소통할 수 있는 상황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사람을 더 외롭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타인의 능력이나 의견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어도 쉽게 알 수 없었던 예전에 비해 서로 경쟁적으로 자기가 어떻게 하고 있으며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온갖 SNS를 통해 알릴 수 있다. 자신에 대한 정보를 상대방에게 필요 이상으로 노출하는 이른바 ‘홍보 과잉 시대’라고 할 수 있다. 홍보 과잉 시대 속 소셜 네크워크 접속자는 언덕 꼭대기 위에 올라가 외치는 사람과 같다. 자신에 관한 모든 내용을 상대방이 알아주고 귀 기울여 들어주길 원한다. 페이스북 접속자는 보이지 않는 확성기를 들면서 ‘소통’을 명분으로 업적을 과시한다. 만인에게 공개되는 SNS에는 본질적으로 자신의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어 하고, 조금이라도 더 멋있게 감동적으로 보일 수 있는 수단을 찾게 된다. 이런 반복되는 환경에 절대다수는 뒤처지고 있다는 불안감과 자괴감에 시달린다. 마케팅 목적이 아니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친구를 거느리면 읽고, 응대하고, 사진을 올리는 등 홍보와 관리는 상당히 시간을 잡아먹는 피곤한 노동이 된다. 본인 이야기만 있는 ‘페이스북 친구’의 게시물이 성가시게 느껴진다.

 

한때 소셜 네크워크는 다양한 정보 콘텐츠를 공유하면서 인맥을 형성할 수 있는 최적의 블루오션으로 각광받았지만, 지금은 허세스럽고 선동적인 게시물이 넘쳐나는 레드오션이 되었다. 홍보에 눈이 멀어 과도하게 게시물을 올리는 ‘관종’(관심병 종자의 줄임말)이 소셜 네크워크를 지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들에 대해 “관심을 바라는 마음의 병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리기도 한다.

 

거기 대장간을 지어라,

거기 풀무를 만들고,

거기 쇠를 달구고,

망치질하며 노래하라!

 

노르웨이의 시인 하우게는 언덕 꼭대기에 소리치지 말고, 대장간을 짓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라고 충고한다. 이것은 데이비드 즈와이그가 강조하는 ‘인비저블(Invisible)’의 정의와 일맥상통하다. 인비저블은 자기 홍보의 소음이 가득한 레드오션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안다. 이들은 타인의 인정이나 관심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기량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일에 있어서도 지독할 정도로 꼼꼼해 사소한 부분까지 집중해 완벽하게 처리한다. 업무를 완벽하게 완수하는 데 기쁨을 느낀다. 주연이 아니라 조연으로 남는 것을 즐길 만큼, 일 자체에서 얻는 만족감을 중요하게 여긴다. 특정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탁월한 기량을 유지하면서 남들의 시선에 띄지 않으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공의 결과만을 누리려고 하고 거기까지 가는데 필요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기피하는 반면 인비저블은 막중한 책임을 지며 그것을 즐기는 경향을 가진다.

 

자기 과시와 명성의 시대 속에 조용히 자기 일과 삶을 즐기는 인비저블이 되려면 가장 중요한 기본자세가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자기관리를 하지 않은 채 홍보에 집착하면 전문가가 될 수 없다. 자기 일에 집중해야 한다. 직업적인 성공과 내적 성취감을 지향하는 인비저블의 모습은 장인 정신과 비슷하다. 하지만 저자가 소개하는 인비저블에 부합하는 인물들을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소박한 장인으로서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캘빈 클라인의 남성용 제조한 조향사, 124층 높이의 상하이타워를 짓고 있는 수석 구조 공학자, 유엔 최고 동시통역사 등은 모두 대중들로부터 크게 눈에 띄는 일을 하지 않더라도 중견·고위급 직업에 해당한다.

 

미국의 빈곤층이나 개발도상국에서 힘겹게 일하는 무명의 노동자들과 달리 인비저블은 대부분 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고, 탁월한 전문성과 실적에 힘입어 관련업계와 동료들 사이에서 높은 평가와 인정,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다. (18쪽)

 

저자는 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고위직 전문직 종사자에 국한해서 인비저블의 정의를 규정하여 빈곤층 노동자와 명백한 차이가 있음을 밝힌다. 그렇다면 빈곤층이나 힘겹게 일하는 무명의 노동자들은 인비저블이 될 수 없다는 말인가? 고위직 전문직 종사자에 비하면 빈곤층 노동자는 경제적 보상 같은 외적 요인을 누릴 경험이 적다. 경제적 보상에 따른 동기 부여가 이루어져야 업무 성취를 높일 수 있다. 책 속에 나오는 인비저블들도 경제적 보상을 충분하게 받은 상태에서 작업을 수행하여 자신의 기량을 발전시킬 수 있었고 타인의 인정을 받는 데 성공했다. 칭찬, 보상 같은 외적 요인을 배제하면서 일을 하는 과정에 내면적 만족감을 찾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일을 수행하는 열정을 구실로 더 낮은 급여를 주는 '열정페이'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노동자들이 사회 문제로 대두된 지금, 이 사회에 과연 내면적 만족과 외면적 풍요를 조화시키는 삶, 일을 통해 지속적인 행복과 성취를 얻는 삶이 가능한 지 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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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3-29 0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개발서를 너무 질색하는..저는 어쩌나요?!^^ 이 편견부터..어째야할텐데...앞에있음 읽으면서..찾아서 사서 부러 보게는 안되는...

붉은돼지 2015-03-29 13:09   좋아요 1 | URL
저도 예전엔 자기개발서 종류는 질색을 했는데 어쩌다 몇 권 읽어보니 괜찮은 것도 있더라구요.
요즘은 자기개발서에 대한 편견은 없어진것 같아요

도서관에서 한두권 빌려보세요~~^^

cyrus 2015-03-29 16:02   좋아요 0 | URL
붉은돼지님 말씀이 맞아요. 저도 자기개발서를 안 읽는 편인데 책의 목차를 직접 확인해서 내용이 마음에 들면 읽어봅니다. 읽다가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면 그냥 읽지 않습니다. 저자의 메시지는 주로 서문이나 책 맨 끝장에 나오는데 자기개발서만큼은 정독을 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핵심내용만 발췌해서 읽습니다.

[그장소] 2015-03-29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안보는건 아니랍니다.어쩌다 넘겨봐서 맘에들면 읽어요. 편식이 편견보다..더 한 지도...ㅎㅎㅎ

낭만인생 2015-03-29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사회적 약자들은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으니 그들이 진짜 인비저블이죠.

cyrus 2015-03-29 18:03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묵묵히 자기가 맡은 일을 수행하고 능력을 발휘하는 인비저블이 많이 있을 겁니다. 인비저블의 정의를 설명하는 과정에 ‘빈곤층’을 언급하면서까지 계층이라는 기준을 내세우는 저자의 발언이 불편했습니다.
 
공감하는 능력 - 관계의 혁명을 이끄는 당신 안의 힘
로먼 크르즈나릭 지음, 김병화 옮김 / 더퀘스트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다른 이들이 하는 말을 듣는 것만이 아니라, 말로 하지는 않지만 전달되는 그들의 경험, 희망, 소망, 고난과 걱정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프란체스코 교황)

 

 

 

상대방의 감정과 의견을 함께 나누는 공감(Empathy)은 이제 현대사회를 이끄는 새로운 힘이다. 이 각박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고 함께 느끼고 싶어 한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감동적이거나 위로가 되는 글이나 사건을 보면 메시지를 보내고 네트워크를 통해 공유하고 공감하고자 한다. 그래서 제러미 리프킨은 자신의 저서 『공감의 시대』에서 인간을 공감하는 존재(homo empathicus)로 파악했다. 그는 인간은 다윈이 주장한 것처럼 적자생존의 경쟁으로 치닫는 존재가 아니라 공감의 본성을 가진 존재로 보았다. 이견이 있겠지만, 사회적 공간에서 다른 사람과의 발전할 수 있는 유대감을 가장 고차원적인 욕구로 지향할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인 것은 틀림없다.

 

영어사전에서 '공감'은 'Empathy'와 'Sympathy'로 나온다. 어원을 따져보면 'pathy'는 그리스어의 'Pathos'라는 말에서 나왔다. 이성적 판단이 로고스(Logos)라면 그 반대 지점에 있는 인간의 감정은 파토스다. 파토스라는 말 자체가 고대 그리스어'paschein(받다)'라는 동사에서 왔기 때문에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인간의 마음이 받은 상태를 의미한다. 거기에 '함께'라는 뜻의 'sym'이 더해지면 바로 공감을 뜻하는 Sympathy가 된다. 슬퍼하는 사람의 감정을 알아채고 함께 슬퍼한다. Empathy에서 'em'은 '내부'를 의미한다. 단순히 감정을 함께하는 것을 넘어 나 역시 상대의 감정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공감하는 능력』의 저자 로먼 크르즈나릭은 'Sympathy'를 공감의 의미와 별개로 구분한다. 상대방에 대한 연민은 공감이 아닌 '동정심'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동정과 연민은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한 공감이지만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내 감정이 될 수 없기에 한계가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에 우리 사회는 한때 슬픔의 공감에 빠졌다. 희생자와 유가족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는 많은 사람이 사고 소식을 전하는 뉴스를 차마 보지 못했다. 웃고 떠드는 즐거운 자리를 잠시 미루고, 슬픔을 함께 나눴다. 기업도 마케팅이나 홍보를 자제하고 차분한 가운데 애도 분위기에 동참했다. TV에선 예능 프로그램들이 자취를 감췄다. 예상치 못한 큰 어려움을 당했을 때 이런 사회적 공감은 시련을 이겨내고 더 나은 내일로 나가는 힘이 되어준다. 우리가 함께 겪은 슬픔의 연대는 다시는 우리 아이들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희생이 일어나는 일이 없도록 다짐한다.

 

소셜 네트워크의 발전으로 공감하는 능력을 갖춘 인간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타인과 공감할 수 있는 소통의 수단을 가지게 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을 이용하면 평상시에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함께 모여 정보나 감정을 공유하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그러나 소셜 네트워크의 발전가능성을 공감하는 인간인 우리가 잘 활용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우리는 어딘가에 접속해 있지만, 익명성을 즐기며 깊은 교류를 꺼린 채 살아간다. 온라인 공간 속에서 개인은 지나치게 자신의 집단에 대한 편애와 타자를 구분한다. 내 편이 아닌 사람과 집단에게는 비방과 공격적인 댓글을 퍼붓는다. 이런 사회에서는 공감의 지속을 통해 생성되는 신뢰를 기대할 수 없다.

 

"(미디어)이미지는 마비시킨다"고 말한 수잔 손택의 지적은 손쉽게 공유되고 전달되는 소셜 네트워크의 이미지에 마비되어 나타나는 '공감피로' 증상을 예언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이 우리 사회의 심장을 할퀴면서 생긴 고통을 일부러 피하거나, 알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대형 사고나 우울한 사건에 무감각하다. 공인이나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대중의 반응에도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크르즈나릭이 강조하는 공감은 일차적으로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알아채는 데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감정을 함께 느끼고 나누는 능력을 말한다. 다른 사람의 고통과 슬픔을 알아챘더라도 그것이 내 이해관계와 상충할 때 바로 등을 돌리게 된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공감', 그리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관계지향성과 거리가 멀다.

 

우리는 'homo empathicus'이다. 잃어버린 공감 능력을 되찾을 수 있다. 물론 선천적으로 공감이 잘 안 된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흔히 사이코패스라고 부른다. 공감의 능력이 병적으로 결핍되어 상식적으로 이해되기 어려운 비이성적 행동과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에게 공감의 능력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 분명히 향상시킬 수 있다.

 

가장 먼저 기본적으로 공감능력을 향상할 수 있는 자세가 바로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그를 이해하는 것이다. 내 입장에서, 내 방식대로, 내 감정대로 이해하는 것과는 다르다. 공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경우 대부분 선입관, 편견이 작용하기 때문에 상대방 입장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상대방의 감정을 좀 더 이해하고 싶은 좋은 훈련법으로는 평소와 다른 새로운 체험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낯선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 타인의 말에 귀 기울여 듣는 대화법을 배운다면, 조율과 타협 능력이 향상된다. 책과 예술작품 같은 간접경험도 도움이 된다. 잠시 스마트폰과 컴퓨터 전원을 끄고 안락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는 시간을 들인다면 집에서도 공감여행을 할 수 있다.

 

 

 

 

 

지난해 실시한 한국인의 의식 가치관 조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를 더 좋은 사회로 만드는 데 필요한 가치로 가장 많은 사람이 꼽은 것이 ‘상대방을 향한 배려’였다. 우리 사회가 배려에 목말라하는 까닭은 과도한 경쟁 속에서 상대방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서이다. 자기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상대방의 상황과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의견과 생각만 강하게 밀어불인다.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리턴 사건'은 공감능력이 부족한 리더십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 상대방에게 어떤 상처를 줄지 예상하지 못한다. 모든 상황을 자신의 기준으로 생각하므로 상대방의 형편을 생각하지 않는다. 배려심 없는 이기적인 태도를 방관한다면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공감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기본적 능력의 하나다. 상대방의 필요를 미리 알고 있다가 소리 없이 한 손을 건네주는 사람, 따뜻한 말 한마디로 격려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타인의 삶에 잔잔한 변화를 일으키고 행복한 인간관계를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프랑스 속담에 ‘사람들은 친절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친절한 공감으로 맺어진 인간관계는 서로 소통하고 배려할 수 있다. 그 속에서 자신에 대해 개방할 수 있는 친밀감과 정서적 유대를 얻게 된다. 공감은 건조하고 외로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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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4-12-12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있어요.
요즘 공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는 중입니다.

cyrus 2014-12-12 23:22   좋아요 1 | URL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제가 생각했던 공감에 대해서 반성할 수 있었어요. 물론 글로 공감 능력을 배운다는 게 이상하지만, 이런 책이 많이 읽혀졌으면 좋겠어요. 특히 땅콩 부사장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12-12 2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자가 말했잖아요. 인간이 갖춰야 할 가장 큰 덕목은 측은지심이라고. 측은지심이 바로 공감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cyrus 2014-12-12 23:24   좋아요 0 | URL
제가 좋아하는 공 선생님의 말씀입니다. 맞아요. 동정심마저 느끼지 못한다면 상대방의 감정이나 처한 상황을 알려고 하지 않죠.

수연 2014-12-12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다. 좋아요_를 누르거나 라이크를 누를 때마다 정말 좋아하는건가 의구심에 사로잡혀 버릇처럼 누를 때도 있는데_ 좋아서 좋아요 대신 댓글_

cyrus 2014-12-13 20:03   좋아요 0 | URL
저도 좋아요만 누르는 것보다 댓글이 달린 것이 더 좋아요. ^^

나와같다면 2015-02-16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이메일 주소... Sympathy 예요...

cyrus 2015-02-17 16:49   좋아요 0 | URL
정말 좋은 의미가 있는 주소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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